고성환 기자
선거철만 되면 언론사와 여론조사기관이 발표하는 각종 지지율 조사 결과가 지역사회의 가장 큰 관심사 가운데 하나가 된다. 어느 후보가 앞섰는지, 누가 상승세인지에 따라 선거판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지지자들의 반응도 극명하게 갈린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여론조사를 두고도 후보 진영마다 받아들이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지지율이 높게 나온 측은 “민심이 확인됐다”고 반기고, 낮게 나온 측은 “500명 조사로 어떻게 전체 민심을 알 수 있느냐”며 조사 자체를 불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로 지역 선거에서는 “응답자가 몇 명 안 되는데 믿을 수 있느냐”, “주변에서는 그런 분위기가 아닌데 왜 결과가 다르냐”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그러나 여론조사의 본질과 역사, 조사 기법을 이해하면 단순히 숫자만으로 평가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현대적 의미의 선거 여론조사는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큰 전환점을 맞았다. 당시 미국의 유명 잡지인 The Literary Digest는 무려 수백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받아 대선 결과를 예측했지만 실제 결과와 크게 빗나갔다. 반면 통계학자이자 여론조사 전문가였던 조지 갤럽은 훨씬 적은 수의 응답자를 조사하고도 실제 결과를 거의 정확히 맞혀 세계를 놀라게 했다. 차이는 단순했다. 많이 조사한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를 어떻게 뽑아 조사했는가’가 핵심이었다. 당시 대규모 조사는 전화와 자동차 보유자 중심으로 이뤄졌는데, 대공황 시기의 미국에서 전화와 자동차를 가진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부유층 비율이 높았다. 결국 응답자 수는 많았지만 대표성이 부족했던 것이다.
이 사건 이후 현대 여론조사의 핵심 원칙인 ‘표본조사’와 ‘대표성’ 개념이 자리 잡았다. 즉 전체 유권자를 모두 조사하지 않더라도 지역, 연령, 성별 등을 과학적으로 나눠 표본을 추출하면 전체 민심을 상당 수준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선거 여론조사 역시 이런 통계 기법을 바탕으로 실시된다. 흔히 지역 여론조사에서 500명 정도를 조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단순히 임의로 정한 숫자가 아니다. 통계적으로는 500명 안팎의 표본만으로도 일정 수준의 신뢰도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사 결과에는 항상 “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와 같은 문구가 함께 붙는다. 이는 실제 지지율이 조사 결과에서 일정 범위 안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A후보가 45%, B후보가 42%로 조사됐다면, 오차범위 안에서는 접전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물론 여론조사가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다. 응답률 저하, 숨은 표심, 막판 변수, 실제 투표율 차이 등으로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지방선거나 재보궐선거처럼 지역 조직력과 투표 참여율이 중요한 선거에서는 막판 흐름 변화가 실제 결과를 바꾸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 최근에는 전화를 잘 받지 않는 사회 분위기와 정치 양극화 현상 때문에 조사 정확도 논란도 계속 제기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론조사 자체를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과학적 조사 체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보는 시각일 수 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여론조사를 ‘절대적인 결과 예측’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다. 여론조사는 어디까지나 특정 시점의 민심 흐름을 보여주는 참고자료다. 한 번의 조사 결과만 볼 것이 아니라 여러 조사기관의 흐름과 추세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 언론과 유권자 모두 조사 방식, 응답률, 표본 구성, 오차범위 등을 함께 확인하는 성숙한 태도가 필요하다. 단지 내 지지 후보에게 유리하면 믿고 불리하면 부정하는 식의 접근은 오히려 유권자의 판단을 흐릴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론조사는 민심을 읽기 위한 중요한 사회적 도구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과학적 통계와 축적된 경험 위에서 발전해 온 제도이기도 하다. 결국 필요한 것은 맹신도, 무조건적인 불신도 아닌 ‘올바르게 읽는 눈’일 것이다.
/고성환기자 hihero2025@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