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사가 수개월간의 진통 끝에 2026년 임금협상 잠정합의안을 도출했지만, 합의안이 오히려 사업부 간 갈등을 폭발시키며 조직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반도체 사업부와 비반도체 사업부 간 성과급 격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지면서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노노(勞勞) 갈등’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 20일 밤 경기고용노동청에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의 중재 아래 극적으로 잠정 합의에 도달했다. 이번 합의안의 핵심은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 부문 사업 성과의 10.5%를 특별경영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해 자사주 형태로 지급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합의안이 공개되자 사내 분위기는 급격히 냉각됐다. 사업부별 성과급 규모가 구체적으로 알려지면서 내부 구성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폭발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연봉 1억원 기준 DS 부문 메모리 사업부 직원들의 경우 최대 6억원 수준의 특별성과급 수령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같은 DS 부문 내에서도 수년간 적자를 기록한 시스템LSI·파운드리 등 비메모리 사업부는 메모리의 4분의 1 수준인 약 1억6000만원 선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큰 반발은 모바일·TV·생활가전 등을 담당하는 DX(디바이스경험) 부문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DX 부문 직원들에게 지급되는 보상은 600만원 상당의 자사주 수준에 머물 것으로 알려졌다. 메모리 사업부와 비교하면 10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같은 회사 안에서 어떻게 이런 격차가 가능하냐”는 불만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DX 부문 직원들은 “과거 완제품 사업이 벌어들인 수익으로 반도체 사업 투자가 가능했던 것 아니냐”며 강한 박탈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 내부 갈등도 적지 않다. 메모리 사업부 일각에서는 “적자를 내는 사업부에 왜 대규모 성과급을 지급해야 하느냐”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는 반면, 비메모리 사업부에서는 “처음부터 메모리 인력들이 이동해 사업을 키운 만큼 함께 보상받아야 한다”는 반발이 맞서고 있다.
노조 내부 분열도 심화되고 있다. DX 부문 중심의 삼성전자노동조합(SECU·동행노조)은 기존 초기업노조 집행부가 DS 중심으로 협상을 진행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실제 DX 조합원들은 집행부가 전체 조합원 동의 없이 독단적으로 교섭을 진행했다며 단체교섭 중지 가처분 신청까지 제기한 상태다.
조합원 이탈도 현실화되고 있다. 한때 7만6000명 수준이던 초기업노조 조합원 수는 최근 7만명 수준으로 감소했다. 반면 DX 중심의 동행노조는 이달 초 2300명 수준이던 조합원 수가 지난 21일 기준 1만30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지도부의 발언도 논란을 키웠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위원장은 노조 소통방에서 “노조 분리를 고민해보자”, “DX는 솔직히 못 해먹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남겨 DX 구성원들의 반발을 샀다. 이송이 초기업노조 부위원장 역시 “회사를 없애버리겠다”, “분사할 거면 하라” 등의 과격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동행노조는 이에 대해 ‘초기업노동조합은 초심을 잃지 말라’는 내용의 공식 공문을 보내 지도부 사과를 요구한 상태다.
현재 노사는 오는 27일 오전 10시까지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전자 찬반투표를 진행 중이다. 합의안은 전체 조합원의 과반 찬성을 얻어야 최종 확정된다.
투표 첫날부터 참여율은 57.4%를 기록하며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조합원의 약 80%를 차지하는 DS 부문 인력들이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지만, DX와 비메모리 사업부를 중심으로 한 반대표 결집 움직임도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번 임금협상이 단순한 보상 체계를 넘어 삼성전자 내부 사업 구조와 조직 정체성, 노조 권력 지형까지 흔드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