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좌담▶ 희미해진 대구·경북 행정통합 시도민 실익은? 오창균 전 대구경북연구원장·이창용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상임대표
대구·경북(TK) 행정통합이 이재명 대통령의 ‘지방선거 전 통합 불가능론’ 언급으로 제동이 걸렸다. 사실상 정부 임기 내 추진 불가 선언으로 해석되면서, 지역 사회에 파장이 이는 가운데,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추경호 대구시장 당선인은 “2028년 통합 단체장 선출 약속을 이행하겠다”며 정면 돌파를 예고했다. 본지는 창간 36주년을 맞아 ‘지방분권과 주민주권’의 관점에서 특별 좌담회를 마련했다. 윤희정 기자의 진행으로 오창균 전 대구경북연구원장과 이창용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상임대표 등 대구·경북 분권 자치와 행정통합 모델을 연구해 온 학계와 시민사회 대표적 전문가로부터 대안을 들었다.
-대구경북 행정통합이 빠르게 이루어질 줄 알았는데, 지난 8일 대통령의 취임 1주년 기자회견으로 제동이 걸렸다. 이번 대통령 발언의 함의와 지역의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나.
△오창균 전 원장(이하 오) =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행정통합의 핵심 키를 쥔 중앙정부가 이 문제를 국가적 최우선 어젠다로 다루지 않겠다는 방증이어서 지역으로선 매우 당혹스럽다. 대통령이 제기한 지방의원 임기 등 기술적 문제는 2028년에 초대 통합시장만 2년 임기로 선출하고, 기존 지방의원들의 임기를 보장해 순차적으로 선거 주기를 맞추는 등 방법이 있음에도 정부가 속도조절을 언급한 것은 정치적 역학관계를 의식한 정략적 후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에 맞선 지역 단체장들의 추진 의지는 중앙정부의 입장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배수의 진인 셈이다.
△이창용 상임대표(이하 이) = 대통령이 임기 내 통합 불가능을 이야기했다. 대구경북 통합은 지역 운영방식을 바꾸는 대전환이기에 사실 대통령 의지보다 시도민의 의지가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단체장들의 의지만으로 성공하기는 어렵다. 그동안의 ‘톱다운(Top-down)’ 통합추진방식은 통합의 내용과 주민 의사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고 본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시・도민 간의 소통을 통한 합의 도출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정부의 속도조절론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삼아야 한다. 시도지사 중심의 일방적 추진방식을 멈추고, 다음 총선까지 남은 1년 반 동안 시도민과 지방의회,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숙의 과정을 통해 지역의 분명한 뜻을 결집해야 당면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
-현 상황에서 대구경북 통합을 추진할 해법이 궁금하다.
△오 = 정부의 속도조절론을 우회하려 하기보다,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아 정부가 요구하는 수준 이상의 투명하고 강력한 주민 공론화 프로세스를 우리가 먼저 추진하는 정공법이 필요하다.
△이 = 동감한다. 통합은 대구·경북이 분리된 지 40여 년 만에 다시 합치는 역사적 과업인 만큼, 시도민이 주체가 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동안 추진 과정에서 시도민을 그저 일방적 홍보 대상으로만 취급했다.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를 돌파하려면 지금의 형식적인 설명회 수준을 완전히 뛰어넘어야 한다. SNS, 시군구 단위로 바닥을 다지고 숙론 과정을 거쳐 주민투표에 부쳐야 한다. 이렇게 민주적 논의 절차를 통한 시도민의 의지와 생각이 결집될 때, 대통령의 임기 내 불가론을 극복할 수 있다.
-행정통합이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지역 발전으로 이어지려면 특별법안에 담길 ‘분권자치의제’가 핵심일 것이다. 특별법에 반드시 반영되어야 할 자치 권한과 제도적 장치는 무엇인가?
△이 = 대구경북 통합의 성패는 행정구역의 통합 여부가 아니라, 얼마나 강력한 자치권을 확보하느냐에 있다. 먼저, 자치입법권 강화가 필요하다. 통합특별시와 시·군·구, 읍·면·동이 지역 실정에 맞는 조례를 자율적으로 제정할 수 있도록 조례 입법범위를 확대하고, 중앙정부의 법률에 대한 포괄적 입법위임을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자치행정권 확대가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 산업, 복지, 교통, 환경, 문화, 도시계획 등 주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의 권한을 중앙정부로부터 이양 받아 특별지방행정기관의 기능을 단계적으로 통합특별시로 이관해야 한다. 또한, 자치재정권 확보가 중요하다. 국세 일부의 지방세 전환, 지방세 신설권 부여, 재정조정제도 도입 등을 통해 지역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주민주권 강화와 직접민주주의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주민투표, 주민발안, 주민총회 도입 및 강화를 통해 주요 정책과 조례를 주민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구경북 통합특별법의 핵심은 돈이 아니라 권한을 확보하는 '통합’이어야 한다.
△오 = 이 대표님 말씀에 적극 공감한다. 특별법은 단순히 행정구역을 합치는 법이 아니라, 대한민국 지방자치 제도의 틀을 바꾸는 ‘특례법’이 되어야 한다. 대구경북연구원 등에서 오랜 기간 검토해 온 핵심은 ‘실질적 재정 분권과 규제 프리존의 확보’이다. 중앙정부의 징수 권한을 통합특별시가 통째로 넘겨받는 ‘교부세 및 국세 이양 특례’가 법안에 정밀하게 설계되어야 하며, 토지이용규제나 환경영향평가 등 지역 개발의 발목을 잡았던 핵심 규제 권한을 통합 단체장에게 이양하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농경지나 산림이 많은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자치적인 토지 이용 권한을 확보하는 것이 대구경북 통합특별법이 쟁취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의제다.
-통합이 완료된다면 거대한 행정구역이 탄생하게 된다. 하지만 대구로의 쏠림 현상이나 경북 북부권의 소외론 등 우려도 상당한데, 통합의 시너지를 극복하고 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한 공간 재편 방안은 무엇인가?
△오 = 기존의 ‘대구 중심 일극 구조’에서 벗어나 지역별 특화 강점을 살린 ‘다핵 구조(Multi-core)의 공간 재편’으로 가야만 행정통합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대구는 신공항과 연계한 글로벌 비즈니스 및 미래 모빌리티·AI 중심의 ‘남부권 경제 거점’으로, 경북 북부권(안동·영주 등)은 바이오·백신 산업과 전통 문화체험 중심인 ‘행정·바이오·관광 거점’으로, 동해안권(포항·경주 등)은 이차전지·수소 등 에너지 산업과 해양 물류 중심의 ‘신산업·해양 거점’으로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청사를 다원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각 거점 간을 1시간대로 연결하는 광역 교통망(철도 및 고속도로망) 구축이 공간 재편의 선결 과제다. 네트워크형 도시 구조를 만들어야만 ‘빨대 효과’를 막고 상생할 수 있다.
△이 = 대구경북 통합은 행정구역을 단순히 합치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의 강점을 살린 기능적 재배치로 새로운 성장축을 만드는 과정이어야 한다. 우선 대구를 중심으로 구미, 경산 등을 묶는 광역대구권은 ‘경제중심도시권’으로 육성해야 한다. 금융·의료·R&D와 첨단 제조업이 융합된 혁신성장 축을 만드는 것이다. 반면 안동·예천 등 경북 북부권은 통합특별시 본청과 의회가 들어서는 ‘행정중심도시’로 구축해야 북부권 소외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 대구 경제와 안동의 행정을 축으로 삼는 다핵방향의 발전 모델이 해법이다.
-끝으로 TK 행정통합이 실질적 성과를 내기 위해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가 무엇인가?
△오 = 행정통합은 단순한 구역 개편이 아니라 지방이 스스로 생존하기 위한 거대한 혁신이다. 안동·영주 등 경북 북부권 주민들이 느끼는 ‘대구 중심의 빨대 효과’나 소외론은 지극히 현실적인 우려다. 이를 불식하기 위해 추진 중인 다원청사제가 북부권에 바이오·백신 및 문화관광 산업의 컨트롤타워를 확실히 이관하는 등 실질적 상생 대책으로 이어져야 한다. 위기일수록 통합특별시가 가져올 정교한 청사진을 시도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이 = 대구경북 통합의 성공 여부는 외형적 통합이 아니라 분권과 자치 실현에 달렸다. 철저한 주민 공론화와 숙의 과정을 거쳐 시도민의 자발적 동의를 얻는 것이 우선이다. 이를 바탕으로 특별법에 실질적인 자치권과 지역 균형발전 전략을 촘촘히 담아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올바른 방향이며, 단순한 ‘행정통합’을 넘어선 주민 중심의 ‘자치통합’이어야 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