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봇·반도체·바이오·미래모빌리티… 산업구조 대전환 5510억 원 AX 프로젝트 본격화, 대한민국 AI 수도 도전
1970~1980년대 대구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상징이었다.
서문시장과 염색공단, 성서공단을 중심으로 형성된 섬유산업은 전국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대한민국 수출을 책임졌다. 공장 굴뚝에서는 연기가 끊이지 않았고, 전국의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대구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세계화와 산업구조 변화는 도시의 운명을 바꾸기 시작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저가 생산체제가 확산되면서 섬유산업 경쟁력은 약화됐고, 한때 대구 경제를 떠받치던 제조업 역시 성장 정체에 직면했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났고 지역경제는 활력을 잃어갔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 대구는 다시 한 번 산업의 판을 바꾸려 하고 있다. 이번 주인공은 섬유가 아니라 인공지능(AI)이다.
대구시는 AI를 단순한 신산업이 아닌 지역 산업 전체를 바꾸는 핵심 엔진으로 규정하고 있다. 제조업과 로봇, 반도체, 바이오, 미래모빌리티를 AI로 연결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AI 산업도시’로 도약하겠다는 전략이다.
◇“사람 대신 AI가 불량을 잡는다”…제조현장의 변화
대구 경제의 뿌리는 여전히 제조업이다. 지역 내 제조업체 수는 8000여 곳에 달한다. 자동차부품과 기계, 금형, 소재부품 산업은 대구 산업 구조의 중심축이다.
문제는 제조현장의 현실이다. 기업들은 심각한 인력난과 생산성 정체에 직면해 있다. 청년층은 제조업 취업을 기피하고 있으며 숙련 기술자들은 고령화되고 있다. 여기에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의 기술 추격까지 더해지면서 지역 제조업 경쟁력은 지속적으로 위협받고 있다.
성서산업단지의 한 자동차부품 업체 관계자는 “예전에는 사람을 뽑아 생산량을 늘렸지만 이제는 사람을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며 “AI와 자동화 없이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구시는 이러한 위기의 해법을 AI에서 찾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이 제조데이터 활성화 사업이다. 총 120억 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공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생산 효율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AI는 생산라인의 온도와 압력, 진동, 전력 사용량 등을 실시간 분석해 설비 고장을 예측하고 불량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경고한다.
과거에는 숙련 기술자의 경험에 의존했던 공정관리가 이제는 데이터 기반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삼보모터스와 상신브레이크, 한국OSG 등 지역 대표 제조기업들은 이미 AI 기반 품질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생산성 향상 효과를 거두고 있다.
대구시는 향후 제조AI 플랫폼을 구축해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들도 저비용으로 AI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성서산단, AI 제조혁신의 실험장이 되다
대구 산업혁신의 최전선은 성서산업단지다. 과거 섬유와 자동차부품 산업의 중심지였던 성서산단은 지금 AI 제조혁신의 테스트베드로 변신하고 있다.
이곳에는 전국 최대 규모의 AI 기반 공정혁신 시뮬레이션센터가 구축돼 있다. 핵심 기술은 디지털트윈이다. 디지털트윈은 실제 공장을 가상공간에 그대로 구현하는 기술이다. 기업들은 생산라인을 실제로 가동하기 전에 가상공간에서 먼저 실험을 진행할 수 있다.
신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미리 파악하고 최적의 생산 방식을 찾을 수 있다. 현재까지 180여 개 기업이 250건 이상의 기술지원을 받았다. 기업들은 생산시간 단축과 비용 절감, 품질 향상이라는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대구시는 성서산단을 시작으로 서대구산단과 검단산단까지 AI 실증단지를 확대할 계획이다.
◇휴머노이드 로봇, 대구 미래산업의 핵심 카드
AI와 함께 대구가 가장 공을 들이는 분야는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간과 유사한 형태로 움직이며 작업을 수행하는 차세대 로봇이다.
최근 미국 테슬라의 옵티머스(Optimus), 중국 유니트리(Unitree), 현대차그룹의 보스턴다이내믹스 등이 앞다퉈 휴머노이드 개발에 나서면서 세계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들은 향후 10~20년 내 휴머노이드 산업 규모가 수백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구 역시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최근 구축된 AI 기반 휴머노이드 로봇 활용 제조특화 거점센터에서는 제조현장 적용을 위한 로봇 플랫폼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대구가 휴머노이드에 주목하는 이유는 인구 구조 변화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대구의 생산가능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제조업 현장의 고령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향후 단순 반복작업은 물론 위험 작업까지 로봇이 대신 수행하는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대구시는 국가로봇테스트필드와 휴머노이드 안전인증센터 구축도 추진하고 있다. 연구개발부터 실증, 인증, 사업화까지 가능한 국내 최대 로봇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AI 반도체, 미래산업 경쟁력의 핵심
AI 시대의 석유가 데이터라면 이를 움직이는 엔진은 반도체다. AI 기술이 발전할수록 고성능 반도체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대구시는 올해부터 AI 반도체 실증 생태계 구축 사업에 본격 착수했다. 경북대학교를 중심으로 반도체 설계기업과 제조기업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AI 반도체의 상용화를 지원할 계획이다.
특히 AI 반도체를 로봇산업과 미래모빌리티 산업에 적용해 지역 주력산업과의 시너지를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전문가들은 AI 반도체 경쟁력이 향후 지역 산업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래차 산업 전환, 생존을 위한 선택
대구는 전국에서도 자동차부품 산업 비중이 높은 지역이다. 하지만 산업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내연기관 중심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엔진과 변속기 중심의 부품 생산만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대구시는 최근 AI 기반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기술개발 사업과 제조AI 확산센터 구축사업에 선정되며 미래차 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총사업비 250억 원 규모의 제조AI 확산센터는 자동차부품 생산공정에 AI를 적용해 품질과 생산성을 높이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단순한 산업 지원을 넘어 지역 자동차산업의 생존 전략으로 평가받고 있다.
◇의료데이터 25만 건…AI 바이오 혁명의 중심으로
대구가 가진 또 하나의 강점은 의료산업이다. 계명대 동산병원과 경북대병원, 영남대병원 등 대형 의료기관이 밀집해 있는 대구는 전국 최고 수준의 의료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구축된 의료데이터는 25만 건 이상이다. AI 기업들은 이 데이터를 활용해 암과 뇌질환, 심혈관질환 등을 진단하는 의료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 유치한 540억 원 규모 AI 신약개발 연구거점 사업은 이러한 강점을 집약한 프로젝트다.
AI가 수만 개의 후보물질을 분석해 신약 가능성을 찾고 자동화 연구시설이 이를 검증하는 방식이다.
신약 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약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기술로 평가받는다. 사업이 성공적으로 안착할 경우 대구는 국내 AI 신약개발 산업의 핵심 거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수성알파시티, 대한민국 AI 허브를 꿈꾸다
대구 미래산업 전략의 심장은 수성알파시티다. 비수도권 최대 소프트웨어 집적단지인 수성알파시티에는 현재 1500여 개 기업과 연구기관이 입주해 있다.
정부와 대구시는 이곳에 AX 혁신 R&D센터와 산업AX혁신허브, DGIST 글로벌캠퍼스 등을 구축할 계획이다. 특히 5510억 원 규모의 지역거점 AX 혁신기술개발 사업은 대구 AI 전략의 상징으로 꼽힌다.
AI 연구개발부터 기술 실증, 창업, 사업화까지 가능한 국가급 혁신거점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대구시는 2030년까지 AI 기업 1000개, 종사자 2만 명, 매출 9조 원 규모의 산업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추경호 시장 체제, 대구 미래를 결정한다
대구의 산업 대전환은 이제 시작 단계다. AI 제조혁신과 휴머노이드 로봇, AI 반도체, 미래모빌리티, 디지털 바이오 산업이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대구는 과거 제조도시를 넘어 대한민국 대표 AI 산업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
그러나 과제도 만만치 않다. △수도권에 집중된 AI 인재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글로벌 기업과 투자자들을 어떻게 지역으로 끌어들일 것인가 △AI 산업 육성이 실제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향후 대구의 미래를 결정하게 된다.
추경호 대구시장 당선인은 경제 회복과 미래 신산업 육성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청년이 떠나지 않는 도시, 기업이 찾아오는 도시, 다시 성장하는 대구를 만들겠다는 비전도 제시했다.
결국 대구시가 추진 중인 AX 전략과 미래산업 프로젝트를 얼마나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실질적 성과로 연결하느냐가 산업 대전환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한때 섬유가 대한민국 경제를 움직였던 것처럼 이제 대구는 AI를 통해 새로운 성장 신화를 꿈꾸고 있다.
공장 굴뚝 대신 데이터센터가 들어서고, 방직기 대신 알고리즘이 돌아가는 시대. 산업화 시대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상징이었던 대구가 AI 시대에도 대한민국 경제지도를 다시 그릴 수 있을지 그 도전에 전국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