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읍성 산책길에서 벼루박물관(경북 경주시 화랑로 107번 길 10-9)을 만났다. ‘벼루’를 앞세운 박물관이 이색적이면서도 궁금하게 다가왔다. 그 이름을 따라 저절로 발길이 옮겨졌고 골목길에서 장미로 둘러싸인 주택 옆에 우뚝 선 벼루박물관과 마주했다.
전시실의 공간은 작았다. 개인 박물관이다 보니 그동안 수집한 열정이 입구에서부터 고스란히 느껴졌다. 전시된 여러 벼루에는 친절하게 관련 설명이 붙어 있다. 때마침 외출에서 돌아온 관장님이 자신이 박물관을 개관한 이유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해주셨다.
먼저 자신이 벼루를 수집하게 된 건 33년간 지역 언론에 몸담으면서 주변 사람들이 무언가 수집하는 걸 보게 됐다고 한다. 그걸 보고 어릴 적 기억이 있는 벼루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때부터 50여 년간 수집한 것이 1500여 점이 됐고, 어느 순간 혼자서만 보기에 아까워 일반에게 공개하기로 했다. 자신의 호인 취연(醉硯)을 붙여 2019년 4월에 박물관을 열었다고 했다. 전시실에 공개된 건 100여 점이다.
시민기자가 벼루를 처음 접해본 건 초등학교 미술 시간이었다. 수묵담채화를 그린다고 벼루에 먹을 갈았던 기억이 있다. 오래전 종이와 붓, 먹과 함께 문방사우(文房四友) 중 하나인 벼루는 필사 도구였다. 서민들은 쓰지 못한 행정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보통은 돌로 만들었지만 처음 신라시대는 돌이 아닌 흙으로 벼루를 만들었다. 모양 또한 둥글어서 벼루라기 보다는 토기처럼 보였다. 복제된 신라 벼루는 백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모양이 투박해 보였다.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벼루는 더 다양해졌다. 시대별로 전시된 벼루에서 다양한 크기와 모양을 비교해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조선의 경우는 서원과 서당이 생기면서 점점 더 수요가 늘어났고 휴대도 더 쉬워졌다. 검은색 벼룻돌은 충남 보령의 남포석이 유명했다. 붉은색의 자석(紫石)도 있었는데 가장 좋은 벼루를 만들 때 쓰였다. 단순히 검고 직사각형의 벼루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다양한 모양과 크기, 색깔이 있는 것에 놀랐다. 전시실 사이사이에는 다양한 벼루 상자를 구경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였다.
중국과 일본의 벼루도 전시가 돼 있다. 벼루의 발상지인 중국에서는 조금 더 화려하고 다양한 벼루를 사용했다. 전시된 벼루는 용과 두꺼비 모양이라 중국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지배층인 양반들이 쓰던 벼루는 소나무와 대나무, 매화, 용이 그려졌다. 반면 서민들의 벼루에는 장수와 다산을 의미하는 가지, 참외, 거북 등의 문양이 새겨졌다. 그중 개똥벌레는 곤충의 세밀한 다리까지 잘 표현이 돼 있었다. 뚜껑에도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어 벼루라기보다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보였다.
벼루 중에는 독특한 것도 있었다. 벼루가 기록하는 도구로만 쓰이지 않았다. 여성들의 눈썹 화장용으로 쓰인 수정 벼루도 구경할 수 있었다. 이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귀한 벼루다. 휴대용으로 만들어진 작은 벼루도 있었다. 벼루는 가운데 구멍이 나 있다. 돌로 만든 벼루가 구멍이 날 정도면 얼마나 사용했을까 싶어 자세히 들여다본다.
마지막으로 관장님은 “요즘 박물관이 인기 있는 곳 중 하나다. 하지만 무료라는 인식이 강해 비용이 드는 개인 박물관은 잘 찾지 않아서 아쉽다. 그래도 박물관은 공익적인 측면이 있어서 계속 이어져야 한다. 경주읍성에 오면 벼루박물관도 많이 찾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물관 입장료는 성인 3000원, 어린이 2000원이고 월요일은 쉰다.
/허명화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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