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예술의전당·반월성·첨성대··· 미디어아트 등 ‘환상적 밤풍경’ 연출
경주로 산책을 나섰다. 더워지기 시작하는 5월이라 낮보다 밤이 경주를 즐기기에 더 좋다. 첫 코스로 예술의전당으로 향했다. 어떤 전시를 하는지 검색하지 않았다. 언제나 한 가지는 전시 하겠지 싶은 마음으로 갔다. 4층 갤러리는 잠시 쉬는 기간이었다. 창밖의 형산강 둑에 금계국이 노란 띠를 만드는 풍경이 좋아서 한 컷 찍었다.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갤러리 달’에 전시공간지원프로젝트 ‘공유’가 진행 중이었다. 한 점 한 점 찍어서 그린 고목이 잠시 우리를 쉬게 했다.
늦은 밤까지 경주를 걸으려면 먼저 배를 채워야 했다. 만석정이라는 숯불구이 집에 주차하다 보니 바로 앞에 능이 보였다. 아파트와 교회 학원 같은 동네 건물이 도래솔처럼 능 주위를 감쌌다. 신라 귀족의 무덤일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아이들 놀이터처럼 슬며시 동네랑 어우러지는 모습이 역시 경주구나 싶다.
저녁을 먹고 나와도 아직 어두워지지 않았다. 한 시간은 더 있어야 어스름이 깔릴 것 같아서 반월성 주변을 걷기로 했다. 차를 쪽샘 주차장에 두고 사잇길로 빠져나오니 첨성대 앞이다. 첨성대의 야경을 보려는 사람들이 많아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 사이를 비집고 꽃밭으로 발길을 옮겼다. 개양귀비가 붉게 들을 덮었고, 연분홍 낮달맞이 앞에 부부가 삼각대에 카메라를 설치해 타이머의 초침이 끝나기 전에 셀카를 찍느라 급히 달리는 모습, 장미 터널을 지나니 금계국이 낮에 내린 비를 피하려는지 꽃봉오리를 오므린 채 고개를 숙였다. 비가 묻은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와 산책하기에 딱 좋은 저녁이었다.
반월성 둘레에 해자를 복원해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를 냈다. 주변에 패키지투어 중인지 해설사가 설명하고 등을 든 관광객이 열심히 신라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반월성의 제일 높은 곳으로 올랐다. 어두워지기 시작한 숲이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다 오르니 경주가 한눈에 들어왔다. 첨성대 너머 시내에 불빛이 노랗게 온기를 내 뿜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경주의 밤을 지키는 야경꾼이 된 기분이었다. 렘브란트의 그림이 떠올랐다.
렘브란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야경’ 혹은 ‘야간 순찰’이라고 불리는 이 작품의 원래 제목은 ‘프란스 반닝 코크 대장의 민방위대’이다. 그렇다면 왜, 작품의 제목이 야경으로 바뀌게 된 것일까? 사실 이 그림은 밤이 아닌 낮을 그렸다. 낮에 성벽에서 훈련하기 위해 무기고에서 나서는 모습을 그렸는데, 이 작품의 배경이 밤처럼 검게 바뀐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낮이라는 배경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물감에는 납이 포함되었다. 납은 다른 흰색과는 다른 창백함이 있어 많은 화가가 사용하였다. 작품은 군부대에 걸리게 되었고 군부대에 있던 이탄 난로에서 나오는 황과 그림 속 납이 만나 검게 변하는 황화납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한 세기가 지나자, 사람들은 이 그림이 야밤을 틈타 이루어지는 기습 장면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경주의 야경을 수집하는 야경꾼들이 오후 8시 30분이 되자 첨성대 앞에 몰려들었다. 미디어아트를 보기 위해서였다. 주변을 산책하면서 가로등처럼 위에서 빛을 환하게 하기보다 발밑에 낮게 깔려 고즈넉함을 더했다. 그러다가 빛으로 첨성대에 그림을 그리자, 주변이 환해졌다. 첨성대로 신라인이 걸어 올라갔다. 천마가 휘감아 날아오르니 야경꾼들의 함성이 터졌다. 7분간 모두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1940년 렘브란트의 그림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보존가들이 심하게 색이 변한 바니시를 제거하고 새로 칠해주는 과정에서 숨어있던 렘브란트의 빛을 찾아냈을 때처럼 첨성대의 미디어아트를 본 사람들의 탄성이 경주의 밤을 밝혔다.
/김순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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