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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물야면 오전리 애전 보부상촌의 잊혀진 역사

등록일 2026-05-25 17:33 게재일 2026-05-2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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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전 보부상 위령비.

굽이치는 백두대간, 그곳에 ‘인간 택배’ 보부상의 거친 숨결이 있었다. 새벽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경북 봉화의 산간 자락은 예나 지금이나 날이 선 듯 가파르고 험준하다. 이 험준한 고갯길을 오직 두 다리와 지게 하나에 의지해 넘나들던 이들이 있었다. 조선 시대 유통망의 핏줄이자, 오늘날로 치면 ‘인간 택배’였던 보부상들이다.

경북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에는 오래전 장터를 누비고 백두대간을 넘나들었던 보부상의 숨결이 남아 있다. 이곳은 봉화와 울진, 풍기와 영월, 태백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당시 박달령과 주실령을 넘나들던 보부상들은 봉화 물야면 오전리 애전마을에 임소를 두고 활동했다. 이제 그들의 안식처와 이들을 위로하는 위령비를 따라 조선 보부상들의 거친 숨결을 추적한다.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 애전마을은 저수지 개발로 사라졌지만, 이들을 추모하는 위령비와 보부상들의 이야기에는 여느 산골과 다른 서글프고도 독특한 역사의 흔적이 흐른다. 과거 오전리 애전마을에는 보부상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는데, 이들은 대부분 가족과 연고가 없는 ‘사고무친’의 사람들이었다. 백두대간의 가파른 산길을 떠돌며 장사를 하던 이들은 번 돈으로 오전리 애전마을 일대의 토지를 사들여 마을 주민들에게 농사를 짓도록 하였고, 생을 마감하면서 그 전 재산을 마을에 남겼다.

이곳 보부상촌의 우두머리는 ‘이청양’으로 전해진다. 이는 본명이 아니라 충남 청양 출신이라는 의미를 담아 성은 이 씨로, 이름은 고향인 청양으로 사용한 것이다. 실제 토지대장에도 이청양, 문울산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향을 떠나 백두대간 험로를 헤매던 이들에게 지역명은 곧 자신의 정체성이자, 서로를 알아주는 유일한 표식이었다. 이청양을 비롯해 문울산, 권원주, 곽제천, 이평창, 강영월, 권봉순, 김울산, 김길수, 문진개, 황태인 등 고향을 이름으로 사용한 흔적과 함께 다수의 보부상이 활동했으나, 현재는 11명의 이름만이 전해오고 있다.

평생을 가족이나 친척도 없이 홀몸으로 거친 산길을 누비던 이들의 말로는 쓸쓸했다. 하지만 외로웠던 보부상들을 따뜻하게 품어준 애전마을 주민들이 있었고, 보부상들은 생을 마감하며 자신들이 피땀 흘려 소유했던 토지를 애전마을 공동체에 전 재산으로 남겼다. 이에 마을 주민들은 위령비를 세우고 약 70~80년 동안 위령제를 이어왔으며, 이는 지역사회에서 보기 드문 이례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오전리 애전 보부상들의 흔적은 마을 곳곳에 남아 있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보부상들의 묘지는 물야저수지 서쪽 산기슭에 약 8기 정도 조성되어 있었으나 저수지 건설로 사라졌고, 마을이 수몰되면서 보부상들의 본부이자 숙소였던 터도 함께 사라졌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여전히 이들의 상부상조 정신과 나눔의 가치를 기억하고 있다. 문학 속에서도 오전리 애전마을 보부상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소설가 김주영의 대표작 ‘객주’에는 떠돌이 상인의 대표인 천봉삼이 마지막으로 정착하여 살아가는 삶이 그려지는데, 봉화 오전리의 보부상촌 역시 이 작품의 배경 정서와 맞닿아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봉화상무사 연구 학술용역 연구자들은 오전리 애전 보부상촌이 단순한 장돌뱅이 집단이 아니라, 조선 후기 상인조직인 ‘봉화상무사’의 분소 역할을 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봉화상무사는 경북 북부지역 상권을 연결하던 대표적인 보부상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오전리가 교통의 요충지였고 당시 후평장이 열리고 있었다는 점에서 연구자들은 깊은 관련성이 있다고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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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전 보부상촌 복원 이미지.

하지만 현재 전국적으로 보부상 관련 자료와 생활 유적은 대부분 사라진 상태다. 이 때문에 지역 주민들은 오전리 애전 보부상촌이 지닌 역사적·민속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보부상들이 실제 생활했던 주막을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단순한 관광시설이 아니라, 떠돌이 삶과 공동체 문화를 보여주는 ‘보부상생활사 교육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오전약수와 보부상위령비, 옛 장터길을 연계하고 물야저수지 벚꽃길, 동서트레일까지 아우른다면 봉화의 새로운 역사문화 관광 자원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름 없이 살다간 보부상들의 흔적을 지키려는 작은 산골 마을의 노력이 지역 문화유산 보존의 새로운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

/류중천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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