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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자기기 브레이커

유독 물건을 잘 망가뜨리는 사람이 있다. 잉크가 반 이상이나 남은 볼펜을 못 쓰게 만드는 사람. 신발 한쪽 밑창만 빨리 닳게 만드는 사람. 스마트폰, 컴퓨터 장비, 라디오와 같은 전자기기를 손만 대면 고장 내는 사람. 그 모든 게 나지만 전자기기를 무력화시키는 일에 있어선 특히 권위자에 가깝다. 마감을 위해 타자를 치다가 키보드 자판이 하나씩 안 눌리기 시작하는 건 이제 놀랍지도 않다. 내가 너무 우악스럽게 누르는 걸까. 어떻게 조금 전까지 잘만 작동하던 ‘ㅇ’이 나의 신호에 따라 반응하지 않는단 말인가. 한숨을 쉬며 다른 키보드를 가져온다. 새로 가져온 키보드는 곧, ‘ㅏ’와 ‘ㅜ’가 입력되지 않는다. 저주받은 손가락이 따로 없다. 온갖 기기 중에서도 내가 가장 잘 고장 내는 건 이어폰이다. 나는 나의 특성을 알았기에 비교적 싼 이어폰을 사서 쓰다 한쪽이 안 들리면 바로 똑같은 제품의 새것을 사서 쓰곤 했다. 짧게 쓰면 한 달. 오래 쓰면 석 달이었다. 혹시 자연히 고쳐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버리지는 못해 내 책상 서랍에는 한쪽이 묵묵부답인 이어폰으로 가득했다. 이것의 왼쪽과 저것의 오른쪽을 결합하면 완벽한 이어폰으로 다시 태어날 것 같은데. 그들이 스스로 움직여 합체할 리가 없었고, 내게 그들을 매만질 기술도 없었다. 고장 난 이어폰의 개수가 10개를 넘어갈 무렵 나는 자기합리화를 했다. 나의 손길에 따라 망가진 게 아니라 이어폰의 수명이 짧을 운명이었을 뿐이라고. 그런 내가 크게 마음을 먹고 값비싼 이어폰을 지른 적이 있다. 무려 80만원이나 하는 슈어 사의 제품을 구매한 것이다. 슈어 사의 제품 중에서는 그다지 비싼 편이 아니지만 내게 이어폰 하나의 가격으로는 너무 과했다. 원래 쓰던 게 5만원 내외였으니 80만원이면 그걸 적어도 15개는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음악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계속 좋지 않은 이어폰을 쓰는 것도 아니다 싶었고, 비싼 거니까 튼튼할 거라는 이상한 믿음이 있었다. AS도 가능하다고 해서 오래 쓸 마음으로 구매했다. 귀에 이어폰을 꽂은 순간부터 정말 값어치를 다 했다고 생각했다. 사용한 첫날부터 완전 극락이었다. 내 영혼의 뮤지션인 다프트 펑크, 자미로콰이, 레드핫칠리페퍼스의 음악과 그제야 제대로 마주하게 된 느낌이었다. 이전까지 내가 들었던 건 음악의 외연에 불과했다. 여기에 이런 소리가 있었단 말야? 역시 좋은 게 좋았다. 그러나 모든 행복에는 끝이 있었다. 일 년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한쪽이 먹통이 된 것이다. 매번 케이스에 고이 넣어서 보관했건만. 줄도 꼬이지 않게 열심히 풀어주었는데. 정말 내 손에서 마이너스 전파라도 나오는 것일까. 그렇다 하더라도 슈어사의 이어폰만은 이대로 보낼 수 없었다. 이어폰 수리를 위해 인터넷에 알아보니 해당 파츠가 한국에 없어 미국 본사로 연락해야 한다고 했다. 이미 여기서 1차 좌절. 영어로 내 이어폰 상태를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다른 방법은 없나 찾아보는 도중 마우스 왼쪽이 눌리지 않았다. 하필이면 예비 마우스도 없을 때였다. 여기서 아주 큰 2차 좌절. 나는 실소를 머금고 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기를 선택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슈어사 이어폰은 여전히 고장 난 상태로 서랍에서 한쪽만 기능하는 수많은 이어폰과 함께 뒹굴고 있다. 검색해보니 이제는 한국에서 고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왜인지 의욕이 꺾였다. 내 손에 쥐어진다면 또 얼마 못 가서 망가질 거란 예감이 든다. 불행하게도 슬픈 예감은 대체로 틀리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어제부터는 소니사의 헤드폰과 KRK사의 스피커가 동시에 노이즈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더는 그들의 수명이 거기까지란 말로 치부하고 싶지 않다. 그냥 내 잘못이다. 기계에게는 잘못이 없다. 내 손이 닿지 않았다면 나와 만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아주 오래오래 잘 살았을 거다. 정성을 다해 관리하지도 않았으니 내 손을 탓할 필요도 없다. 내 손이 아니라 내 잘못이다. 기계 세계의 내부 커뮤니티가 있다면 나는 아마 엄청난 악명을 떨치고 있을 터다. 쟤 손에 들어가면 죽는대- 같은. 다가가면 안 되는 위험하고 불결한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오해가 아닌 진실이므로 나로서는 딱히 여론을 뒤집을 만한 변명거리가 없다. 맞아. 내가 죽였어. 이런 드라마나 영화 속 악역의 대사나 다름없는 말을 던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 칼럼을 쓰는 와중에 백스페이스가 고장난 키보드 대신 쓸 만한 키보드를 인터넷에 알아보고 있다. 미안해. 또 죽이고 말았어. 나의 기계였던 아이들은 저승에서 철퇴를 들고 한 사람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구현우(시인)

2026-04-15

정신과 약은 중독이 되는가?

“정신과 약, 중독되지 않나요.” 진료실에서 공황장애 환자들이 많이 묻는 질문이다. 동시에 치료를 시작하기 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걱정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떠올리는 ‘중독’의 모습은 대체로 비슷하다. 알코올이나 마약으로 통제가 무너지고 삶이 흔들리는 장면이다. 문제는 그 이미지가 치료에도 그대로 덧씌워진다는 데 있다. “정신과 약은 중독된다.” 이 말은 공황장애 환자에게 특히 치명적이다. 공황장애의 핵심 고리는 두려움이다. 두려움이 치료를 막으면 병은 더 길어지고 더 깊어진다. 한 환자가 말했다. “약이 무서워서 미뤘습니다.” 두 달 뒤 그는 다시 응급실을 찾았다. 발작은 더 잦아졌고 예기불안은 일상을 잠식하고 있었다. 치료를 미룬 대가는 병의 악화였다. 생각을 바꿔보자. 고혈압 약으로 혈압이 안정되면 우리는 그것을 ‘중독’이라 부르지 않는다. ‘치료’라고 말한다. 당뇨 약도 마찬가지다. 약을 줄이거나 끊으면 수치가 다시 올라갈 수 있지만, 그것을 약의 문제가 아니라 질환의 특성으로 이해한다. 공황장애도 다르지 않다. 약을 통해 발작이 줄고 불안이 낮아져 일상이 회복된다면 그것은 중독이 아니라 치료다. 약은 삶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민해진 불안 체계를 안정시키는 도구다. 물론 주의가 필요한 약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벤조디아제핀 계열은 신중한 처방과 단계적 감량이 필요하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약을 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이다. 전문의의 관리 아래 최소 용량과 적절한 기간을 지키면 위험은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 치료는 과정이며, 시작과 조절, 정리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더 중요한 점이 있다. 공황장애는 조기에 치료하면 회복 가능성이 높은 병이다. 그러나 치료가 늦어지면 발작이 반복되고 삶이 점점 좁아진다. 만성화되면 우울증, 알코올 중독 등 다른 어려움이 함께 나타날 수 있고, 삶 전체의 기능이 흔들릴 수 있다. 가장 위험한 것은 주위의 말이다. “그 약 먹으면 평생 못 끊어.” 이런 말 한마디가 치료를 미루게 하고, 약을 임의로 중단하게 만들며 결국 재발을 부르기도 한다. 그때 공황장애 환자들은 스스로를 탓한다. “나는 약한 사람인가 보다.” 그러나 공황장애는 약해서 생기는 병이 아니다. 과민해진 뇌의 불안 체계가 만들어낸 반응이다. 치료는 그 체계를 다시 안정시키는 과정이다. 약을 먹는다는 것은 내 스스로 증상을 통제할 의지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치료는 의지가 만들어내는 선택이다. 회복을 선택했다는 의미다. 중독이 두려워 치료를 피하는 선택이야말로 병을 키울 수 있다. 공황장애는 두려움이 키운 병이다. 치료는 이해에서 시작된다. 약을 편견으로 보면 공포가 된다. 정확히 이해하면 길이 된다. 그리고 그 길은 다시 삶으로 이어진다. 공황장애 앞에서 필요한 것은 버티는 힘이 아니라, 치료를 선택하는 용기다. /사공정규 동국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의학박사 …………………… 사공정규 33년 차 공황·불안 전문의이자 ‘힐링닥터’로 알려진 그는 증상 호전을 넘어 삶의 근본적 회복을 위한 치료에 주력한다. 동국대 의대에서 3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진료·연구·교육에 힘썼고,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 메사추세츠 종합병원(MGH)에서 방문교수와 임상연구원으로 활동했다.

2026-04-15

조각보의 나라 유고슬라비아 탄생 ①순진한 유고슬라비즘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 데에는 매우 능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에는 그렇지 못하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한 말이다. ‘민족주의!’ 앞서 참 많이도 다룬 말이다. 민족주의는 미국 독립에 이어 프랑스 혁명, 영국 시민혁명, 산업혁명으로 인한 자본주의 발달과 제국의 확산 등 격동기를 거치면서 절대주의 왕정과 귀족관료들에 의한 민족주의 노선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어서 자민족 중심주의가 당연시되면서 배타적이며 보수적인 국가주의로 변화되어 갔다. 19세기 말에 와서 편협하고 초월적이며, 극단적인 민족주의가 확산되고, 사회가 어떻게 조직되고 운영되어야 하는지가 맹렬한 기세로 드러났다. 이는 전쟁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하면서 제국주의가 무한경쟁 상태로 돌입하게 했다. 기실 민족자결주의는 프랑스혁명 당시 사상가 루소에 의해 등장했지만, 그것이 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성명한 14개 평화조항이 세계질서에 주요 목표로 설정되면서 곳곳에 분규를 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했다. 이 원칙은 발칸반도나 동유럽 등 패전국 영토에 속해있던 소수민족이 대상이었고, 극동 조선을 위시해 라틴아메리카 등 세계 약소민족은 적용대상이 아니었다. 속내는 1차 세계대전 승전국이 패전국 식민지의 넓은 땅을 갈라놓기 위한 허울 좋은 명분이었다. 결국 국가주의적 민족주의가 파시즘과 나치즘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면서 세기의 전쟁을 불러왔다. 개인의 자유는 물론, 인간성의 가치까지 부정되는 폭력에 정당성이 부여되면서 인류 폭거의 역사가 되풀이 되었던 것이다. 즉 민족주의의 어두운 면모가 여실히 드러나면서 자기 정체성 확립이 포장되고, 민족이나 국가의식은 우리와 그들이라는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양산하고 주변국에 대한 억압이나 왜곡은 정당화되기에 이른다. 마침 내 폭력의 서막이 열렸고, 제국주의의 무한 경쟁의 구도 속에 필연적으로 폭력을 불러왔다. 그리고 세계 제1차 대전은 상처만 남긴 채 전쟁이 끝났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유고슬라브 민족 간 힘겨루기가 시작된다. 발칸반도 망명정부가 속속 본국으로 귀환하면서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와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그리고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가 바쁘게 움직였다. 발칸반도에서 주도권을 잡거나 먹이사슬에서 여차하면 약자로 몰락할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다. 세르비아 베오그라드는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블랙핸드를 몰락시킨 세르비아의 걸출한(?) 왕 알렉산다르를 중심으로 정치적 역량이 결집되면서 야심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즉 왕정을 중심으로 유고슬라비아 단일국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었다. 알렉산다르는 비상한 두뇌를 가졌다. 크로아티아 내 유고위원회의 자중지란을 위해 모종의 프로젝트를 꾸민다. 왕의 밀명을 받은 시모비치 중령은 크로아티아로 급파되어 자그레브에 사는 세르비아인의 대표자 스베토자르 프리비세비치를 포섭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알렉산다르의 뜻을 받들어 크로아티아가 자국 내 세르비아인 분열을 노린다고 부추겼다. 프리비세비치는 시모비치 중령에 의해 고국에 대해 애국심을 전달받았던 것이다. 때마침 프리비세비치가 크로아티아 내 국민회의 의장권한대행의 직책에 있었던 터라 알렉산다르의 밀명을 충실하게 받들어 스스로 크로아티아의 국민회의를 속으로부터 무너트리기 시작했다. 프리비세비치는 자그레브뿐만 아니라 서쪽 해안지방 달마티아까지 달려가 들쑤셨다. 역사적으로 아드리아해에 대해 야욕을 감추지 않았던 이탈리아에 대한 경계심을 들먹이며 국민회의 달마티아지부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1918년 11월 달마티아 국민회의 지부는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인만의 통일 국가건설을 위해 세르비아 정부와 빠른 시일 내에 접촉하라는 결의안을 통과시켜버렸다. 여론이 이렇게 돌아가자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국민회의는 떠밀리듯 베오그라드로 향했다. 이처럼 세르비아 왕 알렉산다르가 기획한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얼떨결에 28명으로 구성된 자그레브 대표단이 세르비아에 파견되면서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세르비아 알렉산다르 왕은 제헌국회가 구성될 때까지 섭정통치를 맡는다며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합헌적 통치를 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자신에게 법률제정권과 거부권을 명문화해버렸다. 웃기게도 합헌이냐 불법이냐 판단은 자신의 몫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크로아티아 유고슬라비즘의 희망과는 달리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은 연방제가 아니라 세르비아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중앙집권을 노렸던 것이다. 살얼음 판 위에서 동상이몽을 꾸고 있던 중에 세르비아 보이보디나 지역 노비사드에서 대의원들이 모여 세르비아와 통합을 논의하면서 먼저 유고슬라비아 국가 구성을 찬성한다며 만장일치로 통과시켜버렸다. 대의원이 대부분 세르비아인이라 결과는 하나마나였다. 또 몬테네그로도 유고슬라브족 통합을 결의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몬테네그로는 이상하리만치 세르비아를 형제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6-04-15

확증편향

부활의 기쁨이 온 누리에 가득한 봄날이었다. 연합 예배 현장에서 나눠준 달걀 한 알은 그 자체로 풍성함을 주었다. 매끄러운 껍데기 속에 응축된 온기, 그리고 부활절이라는 절기가 주는 당연한 관습은 내 의식 속에 이미 하나의 견고한 확신을 심어놓았다. 이 작고 둥근 물체는 의당 단단하게 응고된 단백질의 결정체, 즉 삶은 달걀이어야만 했다. 점심을 먹고 한참이 지난 시간, 허기가 몰려왔다. 차량의 시동을 걸자마자 나와 남편은 일말의 의심도 없이 달걀을 집어 들었다. 단단한 매질을 찾아 고개를 돌린 곳은 차창의 모서리였다. 경쾌한 파열음을 기대하며 ‘탁’ 하고 달걀을 내리치던 그 찰나, 나의 확신은 비참하게 붕괴되었다. 파편이 튀는 소리는 결코 경쾌하지 않았고 오히려 둔탁하고 축축했다. 껍데기의 균열 사이로 쏟아져 나온 것은 견고한 흰자가 아니라 생경하고 점성 강한 액체였다. 날달걀의 투명한 점액질과 노란 눈동자가 순식간에 내 옷과 시트를 점령했다. 동승했던 남편 역시 같은 확신에 차 있었던 터라, 차 안은 순식간에 비린내와 당혹감으로 가득 찼다. 양쪽에서 터져 나온 생(生)의 파편들이 옷을 적시고 차 안을 뒤덮는 것을 보며 나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왜 그것이 삶은 달걀이라고 그토록 굳게 믿었는가. 부활절이니까,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 수많은 정황들은 나를 눈멀게 했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의 성벽을 쌓아 올렸다. 이러한 인지적 맹목은 비단 차 안의 소동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생의 도처에서 ‘삶은 달걀’이라는 허상을 쥐고 살아간다. 내가 쌓아온 경험치가 정답이라는 오만, 내가 속한 집단의 논리가 보편적 진리라는 착각은 우리를 성급한 심판자로 만든다. 타인의 침묵을 동의로 확신하거나 누군가의 실수를 고의로 단정 짓는 그 모든 순간에 우리는 확인하지 않은 달걀을 생의 창문에 내리치고 있는 셈이다. 내면의 필터를 거쳐 여과된 정보만을 진실로 수용하는 사이, 정작 삶의 본질인 ‘날것의 실체’는 외면당하고 만다. 확증의 덫에 걸린 마음은 새로운 가능성을 수용할 틈을 잃어버린 채, 익숙한 오류의 반복 속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이러한 편향은 현대 사회의 거대한 알고리즘 속에서 더욱 교묘하게 우리를 통제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옳다고 믿는 것들만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디지털 세계에서 우리의 확신은 날카로운 흉기가 되기도 한다. 껍데기 속의 액체성을 잊은 채 단단한 고체성만을 고집하는 태도는 결국 타자와의 소통을 단절시키고, 나만의 폐쇄적인 세계관 속에 안주하게 만든다. 손에 쥔 무게감을 다시 느껴보거나, 살짝 흔들어 내부의 유동성을 확인해 볼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내 안의 선입견은 그 짧은 검증의 시간조차 사치로 치부하며 생략해버린 것이다. 이 비린내 나는 사고는 단순한 실수를 넘어, 생의 전반을 관통하는 철학적 화두를 던진다. 우리는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날달걀’을 ‘삶은 달걀’이라 오독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타인의 미소를 선의로 확증했다가 그 뒤에 숨은 날것의 욕망에 데이기도 하고, 나의 지식과 경험이 절대적인 완성형이라 믿고 세상을 향해 거칠게 신념을 내리칠 때, 예상치 못한 진실의 파편들이 내 삶을 오염시키기도 한다. 확증편향의 대가는 늘 비린 법이다. 검증되지 않은 확신은 반드시 예기치 못한 순간에 터져 나와 우리의 일상을 눅눅하게 적신다. 진정한 지혜는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인지적 겸손에서 시작된다. 내 손바닥 위의 달걀이 흔들리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믿는 진리가 실상은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혼돈은 아닌지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부활절 계란 소동은 내게 묻는다. 혹시 내가 아직도 확인하지 않은 믿음으로 생의 창문에 거칠게 자아를 내던지고 있지는 않은지. 옷에 배어든 비린내는 쉽게 가시지 않겠지만, 이 냄새는 앞으로 내가 마주할 수많은 당연함 앞에서 나를 멈춰 세울 소중한 경고등이 될 것이다. 사유의 깊이가 결여된 확신은 때로 스스로를 옥죄는 칼날이 된다. 나는 이제 달걀 한 알을 쥘 때도 그 속의 유동성을 가만히 음미해본다. 껍데기를 깨뜨리기 전, 잠시 멈추어 그 무게를 가늠하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가 확증편향이라는 거대한 늪에서 벗어나 삶의 실체에 다가가는 유일한 길임을, 나는 오늘 이 비린내 나는 교훈 속에서 뼈저리게 배운다. /김경아 작가

2026-04-15

국힘 ‘백만명 책임당원’, 순기능을 한다고 보나

국민의힘이 지난주 국회에서 ‘100만 책임당원 돌파 기념식’을 가졌다. 장동혁 대표는 이날 “제가 당 대표에 취임한 후 책임당원이 40% 이상 늘었다”고 자랑했다. 지난해 75만 명 수준이던 책임당원이 장 대표 취임 이후 108만 명까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책임당원은 매월 정기적으로 당비(1000 원)를 내는 사람들이며, 당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투표권도 가지고 있어 지방선거 후보 공천 등에도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문제는 책임당원 대부분이 ‘윤 어게인 세력’ 중심의 강성 지지층이라는 점이다. 진보 진영에선 ‘아스팔트 우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민주당의 극성 지지층인 ‘개딸’과 비슷한 개념이다. 정치적 성향이 강경하고 선명한 노선을 유지하고 있으며, 조직화 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국민의힘 책임당원을 지역별로 분류하면 수도권이 34%, 대구·경북 23%, 부산·경남 20%, 충청 15.5%다. 수치로는 수도권이 많지만, 인구 비율로 따져보면 영남권이 주류라고 볼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장 대표 취임 이후 이들이 똘똘 뭉친 형태로 당의 의사결정을 주도하면서 중도 보수 세력이 떨어져 나가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국민의힘 책임당원 수는 4400만 유권자 중 2%가 조금 넘는 수치다. 이와 관련,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책임당원 100만 명만 가지고 선거에서 이길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윤 어게인 세력 중심으로는 지방선거에서 참패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체제가 ‘강성 스피커’ 중심으로 지도부를 구성하면서 당 지지율은 급락하고 있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여야의 우열이 이렇게 극명하게 갈린 경우는 드물다. 특히 ‘국민의힘이 공천하면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대구시장 선거조차 민주당에 위협받고 있으니 충격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장 대표가 ‘100만 명 책임당원’을 자랑하지만, 전혀 순기능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일 발표된 전국지표조사(NBS) 정당 지지율을 보면 민주당은 47%, 국민의힘은 18%로 나타났다. 이번 지방선거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서울에서는 민주당이 49%, 국민의힘이 14%를 기록했다. 국민의힘으로선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처참한 성적표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장 대표가 지난 주말 미국 출장을 떠난 것을 두고 ‘지방선거를 포기했나’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중동 전쟁 여파로 어려움이 있는데, 보수 야당으로서 역할이 있지 않겠나”라고 했지만, 선거를 진두지휘해야 할 당 대표가 일주일간이나 해외로 나간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선봉에 서서 영남권 공략에 나서는 모습과 너무 비교된다. 국민의힘은 지금이라도 당 지도부 재편으로 리더십을 확보해 ‘선거 참패’를 피할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50일 채 안 남은 지방선거 판세가 지금처럼 대책 없이 흘러가면 국민의힘은 설 땅이 없어진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6-04-15

천궁2의 성공적 데뷔

천궁2는 우리나라가 개발한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다. 드론과 탄도미사일, 항공기 등을 요격할 수 있는 방공체계로 이번 이란전쟁 중 처음 선보였다. 속도가 무려 마하 5, 시속으로 하면 6120km다. 사거리는 50km에 이른다. 표적에 직접 충돌해 파괴하는 히트 투 킬 방식으로 항공기, 순항미사일, 탄도미사일을 모두 잡아낸다. 이달 초 뉴욕타임스는 “한번도 실전에 사용된 적이 없는 한국의 천궁2가 성공적 데뷔를 했다”고 보도했다. 천궁2는 이란이 아랍에미리트를 향해 쏜 미사일과 드론 30대 중 29대를 격추했다고 한다. 격추율 96%다. 이는 패트리엇과 이스라엘 애로우 방공체계와 어깨를 겨눌수 있는 성능이다. 그러면서 미국 록히드 마틴이 생산하는 요격미사일 가격의 3분의 1수준이어서 걸프 국가들이 천궁2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한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 걸프국가들이 한국산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인 천궁2의 인도 일정을 앞당길 수 있는지 타진했다는 보도를 했다. 걸프 국가들이 이란과의 전쟁으로 방공 탄약이 소진되고 중동전쟁의 앞날을 가늠할 수 없게 되자 중거리 요격미사일 구입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천궁2는 국내 LIG넥스원과 한화시스템의 합작품이라 한다. LIG는 요격미사일, 한화는 다기능 레이더를 담당했다고 한다. 성능의 우수성으로 현재까지 UAE, 사우디 등에 약 12조원의 무기를 판매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동전쟁 덕에 국내 생산의 천궁2의 우수성이 널리 알려진 것은 반가운 소식이나 협상 결렬 후 중동전쟁이 더 어려운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 같아 암울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4-15

식어가는 지방 경제의 심장, ‘비수도권 세제 개편’이 해답이다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전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빠지지 않으며, 우리 국민의 내면에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된다’는 강한 의지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수도권에 머물기를 원할까? 단연코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명문대학, 첨단 시설을 갖춘 종합병원, 거미줄 같은 교통망 등 교육·의료·문화·교통 등 모든 인프라가 최고 수준으로 갖춰져 있다. 반면 지방은 인프라 격차와 인구 감소의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수도권으로의 자원 쏠림이 가속화되면서 지역의 경쟁력은 저하되었고, 이는 청년 인구 유출과 구인난으로 이어지며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소멸 위험 지역의 대부분이 비수도권이며, 지역 간 불균형은 이제 단순한 격차를 넘어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현재 대한민국은 모든 영양분이 머리(수도권)에만 쏠려있고, 정작 몸을 지탱해야 할 팔다리(지방)는 영양실조로 쓰러질 지경이다. 뇌는 과밀로 인한 고혈압(저출산·주거비)을 앓고 있고, 손발(지역 대학·산업)은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은 환자 그 자체인 것이다. 한때 삼성전자 애니콜 신화의 고장 구미의 상황은 더 적나라하다. 대한민국 수출비중의 두 자릿수를 차지했던 내륙 최대 수출기지 경북 구미는 대기업의 해외양산과 수도권 집중으로 옛 명성을 잃은지 오래됐다. 구미시와 상공계를 중심으로 다시 한 번 도약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지만 요원하기만하다. 지방경제의 어려움은 구미 뿐만 아닐 것이다. 문제의 본질을 찾아 현실을 타파하는 노력을 않고서는 지방은 생존이 위태롭다. 시급히 방안을 찾아야 한다. 다양한 논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우선은 무엇보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방에 영양분을 공급할 필요가 있다. 그 전제 조건은 정책적, 제도적 장치 등의 토대 마련이다. 상대적으로 정주여건과 인프라가 열악한 지방에 기업과 근로자들이 유입될 수 있도록 유인책을 강구하는 등 민관이 나서 촘촘하게 묘안을 짜내야 한다. 경북·경남·전북·전남상공회의소협의회가 출범시킨 비수도권상공회의소협의회도 그 역할을 위해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미 ‘비수도권 차등적용 세제개편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추진하였으며, 2025년 11월 24일에는 국회도서관에서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세제 개편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입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 냈다. 2026년 2월 14일 구자근·허성무 의원이 ‘법인세법·지방세법·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여·야 23명 국회의원 동의를 얻어 공동발의 한 것 또한 이를 바탕으로 한 성과다. 이 법안의 핵심 내용은 비수도권 소재 중소·중견기업에 법인세율과 지방법인세율 각각 3%p씩 인하하고, 2030년 말까지 비수도권 기업에 취업하는 근로자의 근로소득세의 50%(연간 500만원 한도)를 감면하자는 것이다. 이 정도의 실질적 혜택이 있어야 수도권 기업들이 지방으로 이전을 검토는 할 것이라 생각한다. 작금, 지역경제의 어려움은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위기이다. 수도권 규제를 강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비수도권을 선택하는 기업과 근로자에게 제도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하루라도 빨리 만들어 줘야 한다. 이러한 절박함을 담아 비수도권상공회의소협의회와 정태호·박수영·구자근·허성무 국회의원실에서는 오는 4월 29일 국회에서 ‘국가균형성장으로 실현하는 세제 전환의 당위성’을 주제로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비수도권 세제개편 포럼’을 공동 개최, 뜻을 모은다. 비수도권상공회의소에서 전하는 지역의 간절한 목소리가 입법이라는 결실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이제는 수도권 공화국에서 벗어나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머무르기 좋고 기업하기 좋은 대한민국이 되길 간절히 염원한다. /윤재호 경북상공회의소협의회 회장

2026-04-15

5%의 동행, 다문화 사회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

대한민국이 외국인 주민 300만 명 시대를 맞이했다. 전체 인구의 5%에 육박하는 수치다. 이는 단순한 통계적 증가를 넘어, 우리 사회의 인구 구조와 경제 지형이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알리는 거대한 신호탄이다. 이제 외국인 주민은 우리 사회의 이방인이 아닌,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명실상부한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이미 농·어촌과 산업 현장에서 이들의 존재 없는 생산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외국인 노동력이 없다면 공장 라인은 멈추고 농작물 수확은 포기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머지않아 외국인이 농장주나 사업체의 주축이 되는 모습도 낯선 풍경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뒷받침해야 할 제도와 인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이들을 ‘함께 살아갈 이웃’이 아닌 필요할 때 쓰고 돌려보내는 ‘노동력’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최근 농·어촌 계절근로자 유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법 브로커의 개입은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행정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체계적인 관리 부재와 교육 인프라 부족, 사각지대에 놓인 인권 문제는 결국 사회적 비용 증가와 생산성 저하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이제는 임기응변식 처방이 아닌, 국가 차원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시급하다. 첫째, 정책 컨트롤타워인 ‘출입국·이민관리청(가칭)’ 설립을 서둘러야 한다. 여러 부처로 분산된 기능을 일원화하여 현장 중심의 일관된 정책을 추진할 때 비로소 행정의 효율성과 정책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둘째, 법무부 주관의 사회통합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한국어와 한국 문화 교육은 단순한 적응을 넘어 산업 현장의 안전 및 소통과 직결되는 필수 요소다. 이는 외국인 개인의 복지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투자다. 셋째, 현장 밀착형 관리 체계와 공정한 송출입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외국인 고용 사업장에 ‘다문화 사회 전문가’ 배치를 의무화하여 갈등을 예방하는 가교 역할을 맡겨야 한다. 또한, 계절근로자 배정 과정에서의 브로커 개입을 원천 차단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철저한 단속과 제도적 보완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나아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외국인 근로자와 다문화 가족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소외되지 않도록 촘촘한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행정력을 집중해야 한다. 다문화 가족의 정착은 단순히 경제적 지원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들이 언어와 문화의 장벽에 가로막혀 의료, 교육, 법률 서비스 등 기본적인 공공 서비스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행정의 문턱을 획기적으로 낮추어야 한다.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거대한 파고 속에서 외국인 인력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다. 이제 우리는 ‘얼마나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양적 논의를 넘어, ‘어떻게 함께 잘 살 것인가’라는 질적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 다문화 사회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준비된 제도와 성숙한 시민의식이 만난다면, 이 변화는 위기가 아닌 대한민국의 새로운 활력이 될 것이다. 지속 가능한 미래는 우리가 이들을 ‘이방인’이 아닌 ‘동반자’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지점에서 시작될 것이다. /정봉영 경북글로벌공동체센터장

2026-04-15

송진은 폭발음 없는 소이탄 ⋯ 참나무 주림 시대로 가야

봄이 되면 상춘객들은 산으로 들로 나가 새봄 즐기기에 야단법석일 때, 반면에 강원도와 경상도 임업직을 비롯한 상당수 공무원들은 주말도 반납한 채 긴장된 날들을 보내야 한다. 2000년엔 강원 삼척 등 동해안 일대를, 2005년엔 낙산사를 전소시키며 보물 동종까지 녹여 버리고, 2019년엔 강원 고성 속초 일대를, 2022년엔 울진 삼척 일대를 휩쓸면서 3만여 ha를 불사르고야 막을 내린 참담한 사태가 일어난 지 불과 3년 만인 을사년 3월 22일 의성에서 발화된 역대 최악의 산불이 동해에 이르도록 초토화한 대참사가 발생했었다. 강풍 따라 불꽃 휘저으며 수백미터 먼곳까지 불덩이 날아가 산불에 강하고 구황 식량 제공하는 참나무 가을 금수강산 연출 한국인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 편애 임업 정책 이제는 대변환을 작은 불씨가 7~8일간에 걸쳐 10만여 ha(994.9 ㎢)를 태우면서 사망 28명 부상 32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의성·안동·청송·영양·영덕 5개 시군의 산야를 휩쓸었다. 주택 4458채 피난민 3만 6674명, 국가 유산 31건, 피해액 1조 8300억 원을 기록한 대재난이었다. 주로 인간의 잣대로 조성한 산림들이 일으킨 재난이다. 자연의 섭리를 무시한 그간의 임업 정책에 대 변환점을 찍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유독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림에서 발생하는 수관화(樹冠火·Crown Fire)는 폭발음 없는 소이탄(燒夷彈)이다. 마른 잎에다 화력이 강한 송진을 함유한 생 솔잎까지 버무려서 고열을 내며 강풍 따라 이리저리 불꽃 휘저으며 하늘을 날아다닐 때의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형과 바람 따라 회오리칠 때는 거대한 불기둥이 70m 이상 치솟기도 해 불덩이를 비행시켜 수백 미터 떨어진 먼 곳까지 마구 퍼 나른다. 웬만한 소방 기법으로서는 불가항력이다. 송림이 다 태워질 때까지, 아니면 흡족한 비가 내릴 때까지는 속수무책이다. ◇ 소나무를 유독 좋아하는 국민성의 문제점 소나무는 보통 12월부터 4월까지 2~3년 묵은 잎을 말려서 떨구는데 상당수는 수관층에 끼어얹처서 싱그러워야 할 봄 산색(山色)을 흐릿하게 퇴색시키는가 하면 불이 나면 수관화로 옮겨 번져 대형산불을 유발한다. 녹색 결핍 시대를 겪은 탓인지 2014년 한국갤럽조사에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나타났다. 소나무를 좋아하는 국민성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데다 고가의 송이버섯 생산 욕구로 사유림 소유자들의 청원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작년의 대재앙은 소나무 단순림 분포가 지나친 탓이다. 가장 건전한 산림은 혼효림(混淆林)이라고 학술적으로도 결정된 이론이다. 이는 다양한 품종의 식물들이 저희들 개개의 조건에 적합한 지형지물에서 왕성하게 생존하면서 저들끼리의 유대를 형성해 건실하게 공존하는 것이다. 식물세계든 인간세계든 다양성 속의 공생과 상생으로 건실한 세상을 창조 유지할 수 있음이다. 이쯤에서 이러한 점들을 교훈 삼아 대오각성해야 한다. 어찌 보면 이런 현상들은 한국이 행운국(幸運國)으로 변하고 있는 과도기적 현상이라 여겨진다. 대규모 소나무밀림들을 불과 재선충으로 축소 제거하고 있는 작금의 이 현상은 하늘의 깊은 뜻이요 자연의 섭리라 판단된다. 과다한 푸른색을 줄이고 다양하고 은은한 색상으로 금수강산이라는 이 나라 국토 본색의 아름다운 산천을 재현하게 되는 계기인 것이다. 소나무는 녹화 사업의 1등 공신으로서 장수, 생동, 절개라는 좋은 이미지로 알려진 반면에 망국수(亡國樹)라는 나쁜 이미지도 있다. 나라가 망했을 때를 전후해 산에는 소나무가 주림을 이루는가 하면 그 품성이 제왕적 기질을 갖기 때문에 국민성에 미치는 유감주술적 악영향 또한 크기 때문이다. 인간은 주변 환경의 위력, 즉 양과 질에 따라서도 그러하려니와 자기가 선호하는 인간이나 동식물 등 그 대상의 성품을 은연중에 닮아간다고 한다. 따라서 소나무 위주의 산림이 되면 독선적인 풍조가 만연돼 국론분열이 심하고 비민주주의적 정치가 종식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소나무는 통섭(通涉)할 줄 모르는 독선적 성품의 수종이다. 이 나라 산림의 25%가 소나무인 데다 조경 현장마다 소나무 일색이라 국민들은 무시로 보게 돼 있다. 이에 더해 소나무를 국목(國木) 취급하는 정제되지 않는 풍조 때문으로 판단된다. 독일이 참나무를 국목으로 정해 패전국의 후유증을 신속히 떨쳐버리고 유럽의 강대국으로 재 군림한 것을 예의 주시해야겠다. 임정(林政)은 정치지도자의 몫이요 ‘政治정치의 최고의 道도는 治山治水치산치수’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 서서히 참나무 주림 시대로 가고는 있다 옛사람들은 참나무를 진목(眞木)이라 칭송하면서 귀한 나무로 다뤘다. 참나무림이 무성하면 그 나라의 문물(文物)이 황금기를 맞는다는 이론이 있다. 세계역사상 유례없는 천년왕국의 번영을 누린 신라시대의 산림은 참나무가 주림을 이루고 있었다고 유추된다. 고고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서라벌 건축자재 중 서까래를 비롯한 중요 자제로서 참나무가 주류를 이뤘다 한다. 석유에너지시대 이 전까지는 참나무로 만든 참숯이 최고급 열에너지로도 사용됐다. 참나무림은 대형산불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리고 풍성한 낙엽과 구황 식량도 되는 도토리는 산천을 비옥하게 살찌우고 강과 바다의 수질을 정화시켜 마침내 어종(魚種)의 질까지 상향시킨다는 사실도 일본에서 밝혀진 지 30여 년이 지났다. 참나무림은 사철 변화하면서 갈참나무나 졸참나무 같은 품종은 아름다운 적갈색 단풍으로 물들어 산을 금수강산답게 연출하기도 한다. 조선조 말기부터 6·25를 겪으면서 보릿고개는 절정기에 이르렀고, 동반해 민둥산의 극한 시대를 맞았을 때 소나무는 산림녹화의 1등 공로수였다. 반면에 세월이 흘러 어느덧 대형산불 원흉목으로 변해버렸다. 이것이 곧 세상사요 자연의 섭리이다. 이제는 시대적으로도 임업 정책부터 변화할 때다. 소나무는 집약적으로 관리 보호가 가능한 특별한 명수(名藪)나 마을 숲이라던가, 혹은 특수 조경용으로나 만족해야 하는 운명에 놓인 것 같다. ◇ 포항은 지금 안전한가? 촘촘히 자리 잡은 소나무들이 세월 따라 뭉청 자라서 서로가 수관을 비비대고 있는 도시 주변 산들을 볼 때면 때로는 섬뜩한 느낌을 받곤 한다. 이 지역은 강수량이 다른 지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서 건조 피해가 심하다. 작년 11월부터 금년 1월까지 강수량이 모두 합해도 50~70mm 정도로서 이 나라에서 가장 비가 적은 지역이다. 10수년간 송림도 엄청나게 자랐기 때문에 2013년도 그때의 규모보다 더 큰 산불이 언제 또 발생할지, 산불은 그 규모와 때를 예고하지 않는다. 따라서 재선충감염이 되지 않은 구역의 소나무 단순림들을 수관이 서로 닿지 않게 과감히 솎음질하는 등 특별관리해야겠다. 간벌로 수관화 발생을 최소화하고 잔존 수목들이 영양분을 넉넉히 확보할 수 있게 생육 공간을 확보해주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발화 가능성이 높은 구역을 선택해 은행나무 풍향수 참나무 아외나무 등 내화성 강한 수종으로 방화림대를 조성해 나가야겠다. GNP가 상승할수록 미려한 숲으로 비단에 수놓은 듯 재창출된 금수강산(錦繡江山)은 국보(國寶) 그 자체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겠다. /이삼우 노거수회명예회장·기청산식물원장

2026-04-14

어머니의 증세

분명 대전 집에 계신데, 서울에 와 있다고 대전에 데려가 달라고 하셨다. 고모할머니가 조금 전까지도 계셨는데, 어디 갔느냐고도 하셨다. 과일을 사면서 아버지 드시기 좋은 것으로 사자고도 하셨다. 아버지는 3년 전에 세상 떠나셨건만. 두 주일 사이에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지셨다. 언제까지 남의 집에 얹혀살아야 하느냐고 빨리 데려다 달라고도 하셨고, 아파트 12층에 내려가 전화해서 집을 잃어버렸다고, 데려다 달라고도 하셨다. 동생들 ‘압력’을 이기지 못해 이곳저곳 검색하고 전화를 해보니 6인 병실에 간병인 24시간 2교대가 200만 원이란다. 고민 끝에 요양 보호사를 파견해 주는 곳에 전화를 드려보니, 아직 어머니는 병원에 모실 상태라고 할 수 없고 정 그런 단계가 되면 집에서 요양보호사가 24시간 돌보는 쪽으로 가는 것이 환자 정서적으로나 자식들 ‘심리’ 면에서 낫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한 달에 240만 원이라 하고, 24시간 요양보호사와 가정 전문 병원을 합쳐서 생각하면 그게 더 나은 선택 같기도 하다. 그래도 차마 마음을 정할 수 없다. 그러는 사이에 어머니는 대전 집에 계시면서도 대전 집에 데려다 달라고 아우성을 치신다. 하루에도 두 번씩 자동차를 타고 집에 가는 시늉을 하고, 집의 아버지 사진이며 오르간이며 아버지 환갑 때 어머니 스스로 쓰신 ‘白雲靑松’(백운청송) 액자도 가리키며 여기가 바로 집이라고 알려 드려도 ‘도로아미타불’이다. 혹시 드시는 약 때문일까? 챗지피티에게 어머니 약에 항우울제가 들어 있는데, 이게 혹시 착란 증세의 원인이 될 수 있느냐 묻는다. 아주 신중한 체 하면서도 챗지피티는 항콜린성(anticholinergic) 작용이 있는 약, 일부 삼환계 항우울제(TCA) 같은 것들은 착란 현상을 일으킬 수도 있으리라 한다. 항콜린성이 뭐냐 하니, 어려워서 한숨이 나오는데, 일단 의사를 찾아가 부작용 여부도 물어보아야 할 것 같다. 토요일 일요일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어머니 주민등록증 사진도 다시 만들고 모시고 산책 나가 붉은 꽃나무 밑에서 사진도 찍고 빌린 차로 드라이브로 시켜드리고 하는 사이에 몸이 녹초가 된다. 이날 따라 KTX는 밤 열 시 반 넘어서까지 만석이다. ‘ITX 마음’을 타고 터덜터덜 서울로 향하는데 몸보다도 마음이 더 고단하다. 앞날은 막막하고, 자기를 잃어가시는 어머니가 한없이 가엾어진다. 그러다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홀연히 떠오른다. 나 또한 그 어렸을 적에 어디 ‘나’라는 걸 알고 살았었느냐는 것이다. 어머니가 혹여 ‘나’를 잃어버리며 사시더라도 그것은 그것대로 하나의 삶의 과정일 뿐 그것이 삶이 아닌 것은 아니리라. 삶을 시작할 때 ‘나’라는 걸 몰랐던 것처럼, 사물의 질서를 제멋대로 설정했던 것처럼 삶이 끝나갈 때도 아이처럼 그럴 수가 있고, 그것이 꼭 비극이나 슬픔은 될 수 없는지도 모른다. 마음이 다소 가라앉는 것 같았다. 기차는 7분 연착으로 11시 반이 가까워서야 서울역에 닿았는데, 내일도, 모레도, 다음 주도 아직은 어머니를 내 힘으로, 함께, 돌보아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6-04-13

무위(無爲)의 미학

무언가 ‘해야만 되는 것’이 사람이다. 우리는 해야만 하는 습관에 길들여 있다. 그렇다. 우리는 무언가를 해야만 안심한다. 계획을 세우고, 결과를 점검하고, 부족한 것을 채워 넣어야 한다. 삶은 늘 더하기의 방향으로 움직인다. 모든 걸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를 해결하고, 관계를 정리하고,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고 믿는다. 몸은 움직임으로, 마음은 생각으로, 이리저리 바쁘다. ‘하지 않음’이란 것이 있다. 짊어지려는 부담에서 벗어나고, 결과를 통제하려는 긴장에서 풀려나, 잠시 생각을 멈추고, 몸을 가만히 둔다. 행위를 완전히 버리는 것이 아니다. 행위의 밀도를 낮추고, 필요 이상의 개입을 줄이고, 결과에 대한 집착을 조금 내려놓는 것. 그러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망아지처럼 시도 때도 없이 움직이는 우리의 몸을 한번 붙들어 메어 보자. 잠시도 쉬지 않는 우리의 생각을 한번 멈추어 보자. 몸을 고요히 하고, 생각을 쉰다. 아! 나는 정녕 단 한 번만이라도 완전히 움직이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단순한 정지가 아니라, 모든 것이 스스로 드러나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상태, 그것이 하지 않음이다. 하지 않음은 게으름이 아니다. 적극적 작용이다. 무언가를 더하려는 습관을 잠시 내려놓고, 이미 일어나고 있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림 해보자. 무위란 단순히 하지 않음이 아니라, 억지로 하지 않는 상태 즉, 자아의 개입을 멈춘 상태를 의미한다. 무언가를 할수록 오히려 어긋나고, 물러날수록 도리어 맞아떨어진다. 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하게 되는 이치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때 변화는 일어난다. 억눌려 있던 것들이 풀리고, 흩어져 있던 것들이 제 자리를 찾아간다. 엉킴이 풀리는 것이다. 자연도 이러한 방식으로 움직인다. 계절은 서두르지 않고, 꽃은 강요 없이 피지 않는가. 어떤 것도 억지로 이루어지지 않지만, 모두가 제때 도달하며, 인간의 삶도 다르지 않다. 통제하려는 태도는 긴장을 낳고, 긴장은 다시 왜곡을 부른다. 반대로 조금 덜 하려는 태도, 조금 비워두려는 태도는 삶에 여백을 만든다. 그 여백 속에서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는 것이다. 무위는 포기도, 무력함도 아니다.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선택이며, 이미 진행하고 있는 작용을 방해하지 않는 태도이다. 철학이 아닌 기술이다. 이 미묘한 무위의 감각을 익힐 때, 우리는 비로소 삶과 충돌하지 않고 함께 흐르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순간,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있다. 무언가를 설명하려 애쓸수록 본질은 멀어지고, 붙잡으려 할수록 흩어진다. 잠시 매려 놓고 생각을 멈춰보자. 흩어진 시선이 모이고, 지금 이 순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미 충분히 존재하고 있는 세계로, 말 이전의 자리로, 존재만이 고요하게 머무르는 그곳으로. 그곳에서 다시 시작된다. 진리가 궁금한가. 그러면 잠시 아무것도 하지 마시라. 그 자리에 진리가 현현할 것이니. 고요히 앉아 오직 호흡에 집중하여 ‘알아차림’ 하자. “나는 숨 쉰다. 고로, 존재한다.” /공봉학 변호사

2026-04-13

알아차림

요즘 들어 ‘알아차림’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기억하다, 놓치지 않다, 마음에 새기다’라는 뜻을 가진 팔리어 ‘사띠(sati)’에 근거해서 만든 용어인데, 불교 수행의 전통에서는 ‘지금 이 순간을 분명히 의식하고 놓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서구권에서는 ‘Mindfulness(마음챙김)’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심리학이나 명상을 하는 사람들이 정의하는 알아차림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한다. 첫째는 자신에게 지금 일어나는 생각이나 감정, 감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고, 둘째로는 그런 생각 · 감정 · 오감에 대한 일체의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다. 가령 화가 날 때는 “아, 지금 화가 올라오고 있구나”하고 관찰하는 태도를 가지고 현상을 사실대로 수용하는 것을 말한다. 셋째는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불안에 빠지지 않고, 오직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것이다. 현재에 충실한 것이야말로 삶의 가장 진실한 태도라는 것이다. 현재 알아차림은 승려들의 수행뿐 아니라 심리치료나 일상생활 등에 널리 적용되고 있다. 불교에서는 참선이나 위빠사나(Vipassanā)수행에서 번뇌를 줄이고 집착을 끊는 방법으로 쓰이고, 심리치료에서는 MBSR(마음챙김 기반 스트레스 완화), ACT(수용전념치료) 등 우울증과 불안 장애 치료의 핵심 도구로 쓰인다. 일상생활에서는 감정조절능력을 높여 대인관계를 개선하거나, 집중력 향상으로 업무 몰입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 용어가 부쩍 유행하는 것은 첫째, 정보의 과부하와 연결의 피로감 때문이다. 손바닥 안의 스마트폰은 끊임없이 외부 세계의 소식을 쏟아낸다. 뇌가 쉴 새 없이 자극에 노출되면서 현대인의 정신은 ‘주의력 결핍’ 상태에 빠졌다. 밖으로만 향해 있던 시선을 안으로 돌려 내면의 고요를 찾으려는 본능적인 갈망이 알아차림이라는 형식을 빌려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는 통제 불가능한 환경에 대한 실존적 대처다. 잦은 자연재해나 경제적 불안정, 인공지능의 공포 등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거대 담론들이 삶을 압도할 때, 인간은 무력감을 느낀다. 이때 유일하게 내가 다스릴 수 있는 영역, 즉 ‘나의 마음’에 집중함으로써 삶의 주도권을 회복하려는 심리가 작용한다. 외부 세계가 혼란스러울수록 내면의 질서를 잡으려는 노력은 필연적이다. 또한 알아차림은 현대인의 고질병인 ‘번아웃(Burnout)’에 대한 처방이 되기도 한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극심한 심신의 피로감, 무기력증과 우울감, 신체적 이상, 감정조절의 어려움 등의 증상에도 알아차림 명상이 도움이 된다. 알아차림의 유행은 우리가 그만큼 자신의 마음을 돌보지 못한 채 달려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에,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최후의 고유성은 결국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는 의식’에 있을 것이다. 길이 막막할 때,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깊게 들이마셔 보자. 그리고 내 마음의 풍경이 어떠한지 가만히 들여다보자. 그 작은 알아차림의 순간이 활로의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6-04-13

갑론을박 수학여행

‘수학(修學) 여행’. 학업의 연장선상에서 배움의 폭을 넓히기 위해 떠나는 여행을 의미한다. 학창시절을 보낸 어른들이라면 누구나 수학여행에 얽힌 추억 한두 토막은 가지고 있다. 수학여행의 역사는 장구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강점기에 주요 사적지 등으로 수학여행을 가기 시작했다는 게 보편적인 학계의 견해. 이미 100년 전에도 학생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기차를 타고 일상 탈출의 즐거움을 경험했고, 그 여행에서 추억을 만들며 무언가를 배워왔다. 세월이 흐르면서 수학여행은 ‘주제별 체험학습’ ‘소규모형 교육여행’ ‘테마형 교육여행’ 등으로 이름을 바꿨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학부모와 교사, 학생들은 ‘수학여행’이란 명칭이 보다 익숙하다. 최근 수학여행을 놓고 인터넷 상에서 설왕설래가 있었다. 설전의 시작은 수학여행 경비 문제였다. 한 학부모가 온라인에 ‘강원도 2박3일 수학여행 비용이 60만6000원이라니, 금액이 과하다’는 요지의 글을 올렸다. ‘중학교 3학년 아들이 비용을 보더니 가지 않겠다고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를 접한 현직 교사 한 명은 “공개 입찰 방식으로 여행사를 선정해 최저가 입찰이 이뤄진다. 입찰 후엔 학부모가 교사와 동행해 사전답사도 간다”며 “세월호 참사 이후 강화된 안전 규정으로 학생 200명 기준 8~10명의 전문 인력이 필요해 인건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이전 수학여행 결정 과정과 바뀐 환경을 설명했다. 적지 않은 비용이 부담스러운 학부모의 입장과 ‘리베이트를 받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억울한 교사의 처지 모두 이해된다. 둘의 갑론을박이 수학여행 비용과 관련된 양측의 오해를 푸는 의견 개진이었길 바란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4-13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라(리스트 ‘사랑의 꿈’)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는 화려한 기교와 더불어 인간의 내면 감정을 깊이 있게 표현하는 데 탁월한 음악가로 평가받는다. 그의 대표적인 피아노 작품 가운데 하나인 S.541 No.3, A♭장조 ‘사랑의 꿈’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장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담아낸 곡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이 작품은 원래 가곡 형태로 작곡한 ‘오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O lieb, so lang du lieben kannst)’를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것으로, 1850년 ‘사랑의 꿈, 3개의 녹턴’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곡 중 3번째 곡이다. 이 곡의 바탕이 된 시는 독일의 혁명 시인 페르디난트 프라일리그라트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리스트는 이 시에 담긴 철학적 메시지를 음악으로 승화시키며, 사랑의 본질과 그 덧없음을 동시에 그려냈다.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라'는 시의 메시지는 단순한 연애 감정을 넘어선다. 이는 조건 없는 성숙한 사랑,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붙잡아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언젠가 우리는 무덤 앞에 서서 지나간 시간을 슬퍼하게 될 것이기에, 지금 사랑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말 한마디조차 신중히 해야 한다는 윤리적 성찰을 담고 있다. "오 사랑하라, 그대가 사랑할 수 있는 한! 시간이 오리라, 그대가 무덤가에 서서 슬퍼할 시간이. 그리고 애써라, 그대의 마음이 타오르도록 그리고 사랑을 품도록 그리고 사랑을 간직하도록 그대의 마음을 향해 또 다른 마음이 사랑으로 따뜻하게 두근거리는 한. 그리고 그대에게 자기 가슴을 열어놓는 자, 오 그를 위해 그대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라! 그리고 그를 항상 기쁘게 하라 그리고 그를 한시도 슬프게 하지 마라. 그리고 그대의 혀를 잘 조심하라! 곧 못된 말이 뱉어졌구나. 오 이런, 그것은 나쁜 뜻이 아니었는데 그 다른 사람은 그러나 떠나가서 슬퍼한다. "- 페르디난트 프라일리그라트 연주 측면에서 이 작품은 매우 섬세한 표현력을 요구한다. 부드럽게 흐르는 선율 속에는 정교한 터치와 세심한 페달링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멜로디와 반주의 균형이 중요하다. 특히 일반적인 기법과 달리 멜로디가 오른손과 왼손, 특히 엄지의 교차로 이루어지며, 양손이 번갈아 노래하듯 이어간다. 한편 보통은 왼손의 역할인 아르페지오 반주는 오른손 전체가 담당하여, 한 손 안의 멜로디를 해치지 않으면서 반주까지 자연스럽게 연주하는 어려운 능력이 요구된다. 또한 중간부로 갈수록 점차 고조되는 감정과 클라이맥스 이후 다시 잔잔히 가라앉는 구조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격정과 여운을 동시에 드러낸다. 연주자는 이 흐름 속에서 단순한 음의 나열이 아닌, 호흡과 긴장, 이완을 조율하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하면서도, 그 속에서 오직 사랑만이 의미 있음을 전하는 이 선율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용한 울림을 전한다. 오늘은 피아노 버전 ‘사랑의 꿈’을 감상하며,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사랑이라는 마음에 대해 잔잔히 성찰해보는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 /박정은 객원기자

2026-04-13

법률 AI 혁명···계약 검토· 판례 분석·법률 자문의 변화

계약서 한 장 검토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 숙련된 변호사라도 수십 페이지짜리 계약서를 꼼꼼히 읽고 위험 조항을 짚어내려면 반나절은 각오해야 한다. 그런데 인공지능(AI)은 같은 작업을 한 시간 이내에 처리한다. 영국 법무법인 Bird & Bird의 변호사 엘데르 산토스는 “며칠 걸리던 계약 분석이 한 시간 이하로 단축됐다고 말하며 법률 업무 수행 방식이 재편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법률 분야는 AI가 가장 빠르게, 그리고 가장 깊숙이 스며든 전문직 영역 중 하나가 되었다. 리걸테크의 시대가 열리다 법률(Legal)과 기술(Technology)의 결합, ‘법률 기술’ 분야는 이제 글로벌 법조계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비즈니스 리서치 인사이트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법률과 관련된 기술 시장은 2026년 약 141조 원 규모에서 출발해 2035년까지 연평균 27%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약 215조 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AI 기술이 그 폭발적 성장의 엔진인 것이다. 법조계의 AI 활용과 관련된 변화의 속도를 보여주는 수치가 있다. 렉시스넥시스(LexisNexis) 2024년 조사에 따르면, 생성형 AI를 업무에 활용하지 않는 변호사 비율이 61%에서 15%로 급감했고, 업무용 생성형 AI 사용자는 11%에서 41%로 4배 가까이 늘었다. 톰슨 로이터 보고서는 로펌(Law Firm)과 기업 법무팀이 전문직 중 AI 도입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밝혔으며, 영국 대형 로펌의 75%가 AI를 사용 중이다. 법조계가 초기의 관망 자세를 접고 AI를 실무 도구로 본격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계약서 검토, 반나절이 한 시간으로 법률 AI가 가장 먼저, 가장 뚜렷한 성과를 낸 영역은 계약서 검토다. 기업 법무팀은 매일 수십, 수백 건의 계약서를 다룬다. 납품 계약, 임대차, 투자 계약, 비밀 유지협약 등 각각의 계약마다 독소 조항을 걸러내고, 불리한 조건을 수정하며 법적 리스크를 평가하는 일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면서도 본질적으로 반복적이다. AI는 이 반복의 굴레를 깨고 있다. 톰슨 로이터가 발표한 ‘퓨처 오브 프로페셔널스 리포트 2025’에 따르면, AI 활용을 통해 법률 전문가 1인당 연간 약 240시간의 업무 시간을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AI 도입에 따른 실질적인 성과(ROI)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240시간이면 하루 8시간 근무 기준으로 한 달 치 업무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국내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법무법인 율촌은 AI 기업 Bhsn과 협력해 지능형 법률 AI 시스템 ‘아이율’을 전사적으로 구축해 2026년 1월부터 사용하고 있다. 기존 사내 지식관리 시스템에 축적된 방대한 자료를 AI가 문맥 단위로 이해하고 근거를 제시하는 구조이며, 외부 데이터 전송을 차단한 폐쇄형 RAG 아키텍처를 적용해 보안을 강화했다. 법무법인 세종은 글로벌 리걸테크 기업 하비(Harvey)의 생성형 AI를 해외 자문 업무에 시범 도입했다. 하비는 오픈AI 기술 기반으로 전 세계 250여 개 기업과 로펌이 사용하는 법률 전문 AI다. 하비는 최근 싱가포르 국부펀드 GIC와 세쿼이아 캐피털로부터 2억 달러(약 2600억 원)를 추가 유치하며 기업 가치 110억 달러를 인정받았다. 법무법인 김앤장도 법률 용어에 특화된 번역 AI 시스템을 자체 개발하고, 고객 정보 보호를 위한 온프레미스 기반 AI 솔루션 구축을 추진 중이다. 판례 460만 건, 이제 수초에 해결 법률 업무에서 판례 검색의 비중은 절대적이라고 한다. 비슷한 사건에서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파악하는 것은 소송 전략의 기본이자 핵심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대법원 판례만 수십만 건, 하급심까지 포함하면 수백만 건에 달한다는 점이다. 사람의 힘으로 관련 판례를 모두 훑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국내 리걸테크 기업 로앤컴퍼니의 AI 법률비서 ‘슈퍼로이어’는 460만여 건의 판례 데이터를 학습해 신청서나 서면 초안을 2분 안에 처리한다. 엘박스는 2025년 8월 검찰과 정식 계약을 체결해 법리 검토, 유사 판례 검색, 유무죄 판단 기준 분석 등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정식 계약 이후 엘박스 AI를 업무에 활용하는 검사와 검찰수사관이 증가하는 추세이며, 법리 검토와 유사 판례 검색 등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평가가 많다고 전했다. 리걸 AI는 판례를 찾아주는 수준을 넘어, 기업의 법적 리스크 전체를 관리하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경고:법정에 나타난 ‘가짜 판례’ 그런데 이 흐름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잇따랐다. 미국 뉴욕의 30년 경력 변호사 스티븐 슈워츠는 챗GPT를 이용해 항공사 소송 서면을 작성하다가 존재하지 않는 판례 최소 6건을 법원에 제출했다. 해당 판례들에는 가짜 사건명과 사건 번호, 심지어 허위 인용문과 내부 참조까지 포함돼 있었다. CIO 미국 뉴욕 남부연방법원은 AI가 만들어낸 허위 판례를 검증 없이 제출한 변호사에게 제재금 5만5000달러(약 8,000만 원)를 부과했다. 이후 플로리다주 법원도 AI 가짜 판례를 그대로 제출한 변호사에게 1년 정직 처분을 내렸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해 8월 서울북부지법 민사 사건에서 원고 측이 제출한 서면에 존재하지 않는 대법원 사건 번호가 포함됐고, 재판부는 판결문에 이 사실을 명시하며 원고 패소를 선고했다. AI가 만든 가짜 판례 및 증거가 각급 법원에 제출되는 사례가 잇따르자,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법관 8명과 변호사 2인 등 10인으로 구성된 ‘AI 활용 허위 주장·증거 제출 대응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 TF는 허위 판례 제출 적발 시 해당 변호사에게 소송 비용을 부과하거나 대한변호사협회에 징계를 의뢰하고, 소송서류에 AI 사용 사실을 고지 하며, 내용 정확도를 검증하도록 민사소송규칙을 개정하는 방향을 추진하고 있다. AI 변호사는 오지 않는다 이쯤 되면 자연스러운 의문이 생긴다. “AI가 결국 변호사를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은 아니다. 법률 AI는 여전히 ‘환각’ 현상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법률은 단 하나의 오류도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 영역이다. 또한 의뢰인의 처지를 이해하고, 상대방의 주장을 예측하며, 법의 취지와 현실 사이에서 최선의 전략을 고르는 것은 여전히 인간 변호사의 고유 영역이다. 미국변호사협회(ABA)는 법률 AI 활용 시 변호사가 준수해야 할 윤리적 의무로 역량을 갖출 의무, 의사 교환 의무, 비밀 유지 의무, 감독 의무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AI에 전적으로 의존할 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AI의 작업을 감독하고 그 결과물의 정확성을 확인할 의무를 강조한다. 도구가 아무리 발전해도 최종 책임은 변호사에게 있다는 뜻이다. 일반 시민도 법률 서비스의 달라진 환경을 활용할 수 있다. AI 기반 법률 서비스로 기초 정보를 미리 파악한 뒤 전문 상담에서 더 핵심적인 조언을 얻는 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 단, AI가 제시하는 법률 정보는 어디까지나 참고용이다. 법률 해석은 사건의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이 나오기도 한다. 최종 판단은 반드시 전문가와 함께해야 한다. 법률 AI는 변호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변호사가 정말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도구다. 그 도구를 제대로 이해하고 다루는 법조인이 그렇지 못한 법조인을 압도하는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 /서용운 계명대 글로벌 창업대학원 벤처창업학과 교수

2026-04-12

중동전쟁의 가장 큰 변수는?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 역대 총리 중 최연소 출신이면서 최장수 총리다. 그는 총리 외에도 11선 의원을 지냈고, 국방장관, 외교장관, 보건장관 등을 겸직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지도자 중 가장 강력한 지도자 중 한명으로 손꼽힌다 그럼에도 정치적 평판은 극과 극으로 나뉘어지는 인물이다. 특히 일부 비판론자들은 그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개인의 안위를 위해 전쟁을 지속하고 있다는 날 선 비판을 쏟아 붙는다. 네타냐후 총리는 현재 뇌물, 사기, 배임 등 3가지 부패 혐의로 재판 중이다. 그는 전쟁과 국가 비상사태를 이유로 재판 출석을 자주 미루고 자신에게 유리한 사법개혁을 밀어붙이려 한다. 비판론자들은 그가 전쟁을 지속하는 이유는 전쟁이 끝나는 날이 그의 정치 생명이 끝나는 날이기 때문이라 지적을 한다. 미국과 이란 간의 휴전 논의가 실패로 끝나면서 향후 전망도 어둡다.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과 이란의 휴전 협의가 진행 중임에도 레바논에 대한 공격을 감행한 바 있다. 세계가 희망하는 종전에 찬물을 끼얹은 인물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안전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헤즈볼라를 계속 공격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의 단호한 태도에 서방국가들은 네타냐후가 호르무즈해협 개방에 최대 걸림돌이란 지적도 했다. 이스라엘은 공식적으로 “미국의 결정을 지지한다”고 밝히지만 실제로는 네타냐후가 독자적인 군사 행동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이스라엘을 이란의 핵위협으로부터 완전히 구제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인지 아니면 전쟁을 자신의 안위 수단으로 삼으려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중동전쟁의 가장 큰 변수는 트럼프보다 네타냐후가 아닐까. /우정구(논설위원)

2026-04-12

어울림에 관하여

언제부턴가 나라 곳곳에 휴양림이 하나둘씩 세워져 오가는 길손들의 훌륭한 쉼터 구실을 하고 있다. 국토 면적의 65% 정도가 산으로 이뤄져 있는 산악국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알뜰한 행정이라 하겠다. 봄비가 제법 많이 그리고 자주 내리는 시기에 금원산 자연 휴양림에 다녀온다. 그곳에서 느낀 소회(所懷)가 적잖게 깊고 다채로워 짤막한 글로 옮긴다. 유안청 폭포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밤새 멈추지 않는 곳에서 유숙함은 특별한 경험이다. 인간의 감각기관은 낮과 밤에 따라 기능 분화가 심화(深化)된다. 낮에는 시각이 밤에는 청각이 특화되는 것이다. 빛이 넘쳐나는 한낮에 눈은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지만, 어둠이 지배하는 한밤중에는 귀가 중요한 정보를 전달한다. 연암 선생은 ‘열하일기’에서 이 점을 입증한다. 한밤중 바깥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바람 소리인지, 물소리인지, 빗소리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무위자연의 실천가들에겐 심상(尋常)한 노릇이겠지만 말이다. 이튿날 아침에 비는 그쳤지만, 바람은 드세게 불었고, 물소리도 어젯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되 구름장 사이로 간간이 비치는 햇살에 의지해 짧은 등정(登程)을 시도한다. 일주일 사이에 두어 차례 오신 봄비와 거센 바람으로 산벚꽃잎들이 하얀 눈송이처럼 떨어져 있다. 숲속 오솔길의 야트막한 바위들 틈새에 온갖 여린 풀들이 각자의 하늘과 대지에 의지해 환한 얼굴로 각자의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그들 가운데 내가 알아본 것은 남산제비꽃, 현호색, 고사리, 광대나물 정도다.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노릇이다. 하나의 존재를 수용하는 첫 번째 관문은 이름 아닌가?! 우리는 커다란 나무와 이름난 꽃들은 잘 기억한다. 영춘화(迎春化), 매화, 산수유, 살구꽃, 벚꽃, 목련, 박태기, 수수꽃다리, 배꽃 등속은 환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꽃다지, 제비꽃, 민들레, 갈퀴나물, 엉겅퀴, 뽀리뱅이, 지칭개, 씀바귀, 애기똥풀, 양지꽃, 고들빼기 같은 작은 풀이나 꽃에 이르면 사정이 완연히 다르다. 크고 높고 이름난 것은 누구나 알아본다. 반대로 작고 낮고 알려지지 않은 것은 무시당한다. 노자는 ‘도덕경’ 52장에서 “견소왈명(見小曰明) 수유왈강(守柔曰强)”이라 설파한다. “작은 것을 보는 것을 밝다 하고,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을 강하다고 한다.” 노자는 크고 작음, 높고 낮음의 상대성에 주목하면서 양자의 조화와 공존에 자연의 이법(理法)이 있다고 본 것이다. 산벚꽃이 하얗게 뿌려진 길섶 틈틈이 여린 풀잎과 꽃들이 피어나는 기막히게 아름다운 장면을 보면서 오고 감의 ‘무상(無常)’을 새삼 생각한다. 벚꽃이 그토록 아름다운 까닭은 그것이 유한한 생명을 지녔기 때문이다. 1년 내내 피어있는 벚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여길 사람이 있겠는가! 유한성에 기초한 순환에서 우리는 무상과 함께 영탄(詠歎)의 순간을 만나는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는 양태를 보면서 화합에 기초한 상생과 조화를 깨우치지 못한 유대교도와 개신교도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본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인 것을 알지 못한 채 고귀한 인명 살상에 몰두하는 학살자들의 얼굴이 낙화(落花)와 자꾸 겹쳐지는 봄날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4-12

지역경제 어떻게 버틸 것인가

요즘 뉴스에는 중동발 지정학적 긴장으로 촉발된 에너지 가격 상승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환율 역시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겉모습은 국제 정세 이야기지만 그 파장은 이미 일상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고 있다. 시민의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생업을 위해 차량을 운행해야 하는 이들에게 주유소 가격은 하루 단위로 체감되는 변수다. 움직여야 수입이 발생하는 구조에서 에너지 비용 증가는 곧바로 소비 축소로 이어진다. 여가와 취미, 외식과 같은 선택적 소비는 어느새 ‘사치’처럼 느껴져 뒤로 밀렸다. 먹거리 물가도 마찬가지다. 수입산 농·축·수산물 가격은 운송·에너지 비용과 환율 상승이 겹치며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소비자물가는 구조적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반면 소득은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다. 당연히 고정된 수입 속에서 가계는 더 촘촘한 지출 관리로 버텨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지역 산업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포항·경주·구미에서 대구로 이어지는 산업벨트는 제조와 유통이 결합된 구조다. 제조업의 핵심인 수입 원자재 가격도 상승 압력이 거센데다, 이를 이용한 제조과정에 드는 산업용 전력 비용 역시 부담이다. 원재료와 에너지 비용이 같이 오르는 전형적인 비용 상승 국면이다. 이는 곧 수익성 저하로, 기업의 투자와 고용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가계에는 또 다른 문제가 남아있다. 주택 담보 대출을 받은 가계는 원리금 상환 압박까지 받고 있다. 과거 대비 다소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기준금리는 장기간 동결 상태다. 물가 불안이 이어지면 언제든지 오를 수 있는 여건이다. 결과적으로 가계와 기업 모두 비용 증가와 불확실성이라는 이중 부담에 직면해 있다. 결국 시민의 선택지는 단순해지고 있다. 지출을 보다 정교하게 관리하고, 제한된 자원 안에서 합리적인 소비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과거보다 훨씬 엄격한 기준으로 소비를 선택하는 ‘경제적 판단의 일상화’가 요구되는 시기다. 앞으로의 여건도 낙관하기는 쉽지 않다. 중동 지역의 긴장이 완화되더라도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국제 정세에 따라 언제든 공급 리스크가 재부각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는 에너지 가격의 변동성을 상수로 만들고, 산업 전반의 체질 변화를 요구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금의 위기는 특정 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포항과 경주, 영천, 구미, 대구를 아우르는 대구·경북 전반이 같은 흐름 속에 놓여 있다. 지역 산업과 경제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어느 한 축이 흔들리면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시기일수록 지역 산업체와 노동자들은 방향을 공유하며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산업의 지속성과 회복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대응과 협력이 엇박자를 내지 않아야 한다. 동시에 도시의 행정 역시 이러한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시민의 삶과 지역 기업의 회생을 뒷받침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결국 위기 국면에서의 선택과 집중이 지역 경제의 향방을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다. /김진홍경제에디터

2026-04-12

콜 포비아

딸아이와의 사소한 말다툼은 아주 평범한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어른들께는 톡 말고 전화로 해야지.” 무심코 꺼낸 말이었는데, 딸은 곧바로 되물었다. “왜 꼭 전화여야 해?” 그 짧은 질문 하나가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다. 서로의 말이 엇갈리면서 대화는 금세 기 싸움처럼 변했고, 그 과정에서 나는 처음 듣는 말을 알게 됐다. ‘콜 포비아(call phobia)’. 전화를 걸거나 받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고 불편하다는 이야기였다. 솔직히 그때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에게 전화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약속을 잡을 때도, 미안한 마음을 전할 때도, 중요한 이야기를 나눌 때도 늘 전화였다. 목소리의 떨림, 잠깐의 침묵, 말끝의 뉘앙스까지도 다 의미 있는 소통이라 믿어왔다. 그런데 딸에게 전화는 오히려 부담이라고 했다. 예고 없이 울리는 벨소리가 사적인 공간을 깨뜨리는 느낌이고, 바로 반응해야 한다는 압박이 싫다는 말이 낯설게 들렸다.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씩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딸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그 안에도 나름의 질서와 감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짧은 문장 하나, 이모티콘 하나에도 아이의 기분이 묻어 있었다. 답장이 늦어도 예전처럼 서운해하기보다 지금은 바쁜가 보다 하고 기다리는 법도 배우게 됐다. 전화처럼 즉각적이지는 않지만, 그 나름의 호흡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딸이 말한 콜 포비아는 단순한 예의의 문제가 아니었다. 실수하지 않으려는 마음, 불편한 상황을 피하고 싶은 감정, 그리고 스스로를 지키려는 방식이었다. 전화는 예상하지 못한 반응과 감정을 바로 마주해야 하지만, 메시지는 한 번 더 생각하고, 다듬고, 때로는 미룰 수도 있다. 그 차이가 아이에게는 훨씬 편안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여전히 전화의 가치를 놓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분명해졌다. 미안하다는 말이나 고맙다는 말처럼 마음의 무게가 실린 순간에는, 여전히 목소리가 더 깊이 닿는다고 믿는다. 실제로 얼마 전, 딸에게 짧은 전화를 건 적이 있다. 별다른 말은 아니었지만, “괜찮냐”는 한마디에 아이가 잠시 말을 고르던 그 짧은 침묵 속에서, 문자로는 느낄 수 없는 온기가 전해졌다. 그래서 요즘 나는 예전처럼 방식을 고집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상황에 따라, 그리고 서로의 마음에 따라 방식을 건너간다. 아이가 편안해하는 메시지로 시작해, 필요할 때는 조심스럽게 전화를 건다. 예전 같으면 설득하려 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저 함께 맞춰 가려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전화 또는 메시지가 아니라, 서로를 향해 얼마나 다가가고 있는가인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전화가 더 익숙한 사람이고, 딸은 메시지가 더 편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조금씩 건너가 보려는 마음이 있다면, 방식은 다르더라도 관계는 이어진다. 그날의 작은 말다툼 덕분에 나는 한 가지를 배웠다. 관계는 옳고 그름으로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깊어진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어른이 할 일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한 걸음 건너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손철호 지역문화포럼 따로또같이 대표

2026-04-12

앤디 워홀의 구두

앤디 워홀의 전시회를 보러 갔다. 일요일이라 사람이 너무 많으면 어떻게 하나 고민했는데 다행히 생각보다 적어 편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그는 대중문화와 소비사회의 이미지를 예술로 끌어올린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이다. 동일인물의 색감을 달리 하거나 캠벨 스프 캔 등 일상에서 쓰이는 물건을 소재로 삼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앤디 워홀은“나는 상업 미술가로 출발했고 비즈니스 아티스트로 끝맺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전시회를 보다보니 광고와 앨범 표지 영화 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것을 알게 되었다. 친구와 나는 구두를 뱀으로 표현한 광고 앞에 멈춰 섰다. 전율이 느껴졌다. 미혹, 매혹, 유혹이라는 단어가 깊이 마음에 들어왔다. 예쁘고 높은 하이힐을 신던 시절도 있었지만 내게 구두는 이제 절대적으로 발이 편해야 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보는 순간 이제는 신을 수 없는 하이힐을 신고 싶다는 유혹을 느꼈다. 구두를 보며 뱀을 떠올린 발상이 놀라웠다. 문득 아들의 미술학원에 갔던 일이 떠올랐다. 학부모 초청 수업시간이었다. 원장님이 아이들의 작품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 중 한 아이의 그림에 대한 설명이 기억에 남아있다. 바다 속을 그렸는데 바탕이 온통 붉은색이었다. 원장님은 무척 잘 그린 것이라 했다. 왜 저 그림을 좋은 작품이라고 하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당연히 바다는 파란색 계열을 써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원장선생님이 그 아이에게 물었다. 왜 빨간색으로 바다를 칠했느냐고. 다섯 살인 아이는 물고기 사이에 전쟁이 벌어져 피를 흘려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기존에 가지고 있던 구태의연한 생각을 뛰어넘는 신선한 발상이라며 이런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혹시 집에서 아이들이 생각지 못한 그림을 그리면 틀렸다고 말하기 전에 왜 그렇게 했는지를 꼭 먼저 물어보라고 당부했다. 고정된 생각은 창의성을 떨어뜨린다며. 아기 상어라는 동요를 즐겨 듣는 손녀에게는 정해진 색이 있다. 아빠는 파랑, 엄마는 분홍, 자기는 노랑, 할머니는 주황이다. 아기 상어에 나오는 색이 아이의 머리에서 굳어져 버린 것이다. 색종이로 무엇을 만들던, 색칠 공부나 그림을 그리던 파랑은 아빠색인 것이다. 다른 색은 절대 아빠를 대신할 수가 없다. 이제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는 손녀가 이미 색에 대해 고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무척 안타깝다. 어떻게 그것을 깨뜨리고 다양성을 가지고 가게 할 수 있을지가 은근히 고민이다. 한 가지로 굳어버린 생각이나 이미지는 바꾸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주입식 교육에 익숙했던 우리에게 생각을 다르게 한다는 것, 관점을 바꾸어 생각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지금은 초등학교 글쓰기에서 비틀어 생각하기, 새롭게 생각하기 입장 바꿔 생각하기 등을 시도하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던 그림을 그리던 또는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삶에 있어서 발상의 전환은 무척 필요한 일이다. 경직되지 않고 유연한 사고를 가질 수 있어 변화에도 쉽게 적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동력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은 그런 사람들에 의해 발전해왔다. 내 이야기를 듣던 친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존 관념의 틀을 계속 깨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했다.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그 시간을 즐기는 친구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생각과 사유를 배워가고 있다고 했다. 전적으로 친구의 생각과 노력에 동의하면서 우리는 틀에 갇히지 말자고 서로를 응원했다. 글을 쓰는 일도 무한하고 다양한 생각 속에서 자신만의 무엇인가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요즘 더 깊이 느끼고 있다. 앤디 워홀의 구두를 다시 한 번 더 보고 그의 유연하고 독특한 생각과 예술을 향한 그의 치열함을 배우고 싶었다. 기회가 주어지면 그의 전시회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회를 나서는 발걸음이 자꾸 뒤로 돌아가고 있는 듯 했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6-04-12

국회의원이 대통령 방탄경호원인가

생수병에 소주를 채우는 의원들이 답답했다. 한심한 의원들의 언행이 언짢다 못해 참담했다. 지난 9일 수원 지검 앞. 민주당 의원들이 편의점에서 소주 4병과 생수 3병을 샀다. 카메라 앞에서 소주를 생수통에 바꿔 넣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러고는, 진술을 조작해 기소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반박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그걸로 무엇이 입증됐다는 건지 어리둥절하다. 국회 ‘윤석열 정권 조작 기소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조작 기소 국조특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다. 이들은 검찰이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에게 연어회로 파티를 열어주고,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의 주범이 이재명 대통령이라고 진술하게 회유했다고 주장한다. 도대체 뭐 하는 건가. 국회의원이 그렇게 한가한가. 이란 전쟁으로 세계가 위기다. 세계는 약육강식의 정글이 됐다. 우리가 완전히 의존하는 미국이 사태를 악화시키는 주역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유무역과 관련한 기존 합의를 쓰레기통에 집어 던져 버렸다. 유럽 동맹들을 손보겠다고 위협했다. 한국을 콕 집어 표적으로 삼았다. 그는 지난 6일 북한이 핵탄두를 45개 갖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북한은 이제 핵무기를 넘어, 악마의 무기라는 ‘집속탄’까지 실험했다고 위협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머리를 숙였는데도, 북한은 겨우 외교부 국장을 내세워 “멍청한 바보들의 희망 섞인 해몽”이라고 모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국무위원장과 대화하고 싶어 한다. 이 대통령은 양측으로부터 모두 무시당하고 있다. 한국 주가가 이 정부 들어 크게 폭등했다. 그런다고 안심할 수 있나. 롤러코스터에 타고 있다. 조그만 자극에도 요동친다. 그만큼 불안하다는 증거다. 관리를 잘하면 더없이 좋은 자산이다. 하지만, 한순간에 폭락할 위험도 안고 있다. 국민의 대표들이 생수통에 소주 채우기나 보여줄 한가한 때가 아니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권익을 챙겨야 할 대변자다. 사리사욕, 당리당략을 도모해도, 최소한 민생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지금 그들이 국민을 위해 일하나. 아니면 권력자의 방탄막이 되려고 기를 쓰나. 이들은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공소 취소를 요구하는 의원 모임을 만들었다. 안팎으로 비판받았지만 자제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마저 “이상한 모임”, “미친 짓”이라고 질타했겠나. 그런데도 당내에 ‘조작기소국정조사 특별위원회’를 발족하고, 국회에도 국회 국정조사특위까지 만들었다. 굳이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국회의원이 대통령의 경호조는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무리를 지어 대통령 경호를 지상 과제로 내세운다. 그걸 무슨 훈장이나 완장, 깃발처럼 휘두르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8조는 “감사 또는 조사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계속 중인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의 소추에 관여할 목적으로 행사되어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1988년 제정 당시부터 있던 조항이다. 그 이유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정치만큼 부패 위험이 큰 집단이 없다. 견제도 쉽지 않다. 국회 다수당이 면죄부를 남발하면 정치 부패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지금 민주당의 행태가 그런 우려를 증명한다. 민주당은 대북 송금 사건을 수사한 박상용 검사를 직무 배제하고, 탄핵 소추하겠다고 위협한다. 이 대통령이 연루된 사건들을 공소 취소해 원천 무효로 만들겠다고 한다. 정권을 쥔 민주당 의원들이 증인들을 일일이 만나 ‘회유’ 진술을 종용한다면, 그들이 비난한 대로, 연어회로 진술을 유도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장영수 고려대 명예교수는 “정치가 사법을 좌우한다는 것은 법과 정의가 사라진 무법천지가 초래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문제가 있다면 정상적인 법 절차로 해소하는 게 옳다. 이들이야말로 정상적인 법 절차로는 이 대통령이 혐의를 벗기 힘들다고 믿는 게 아닌가. 민생은 뒷전이다. 과잉 충성으로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얻어, 정치적 보신을 꾀한다. 부당하게 개입할수록, 이 대통령의 혐의만 굳혀준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6-04-12

‘탄탄의 풍경소리’ 孤峯頂上을 향한 깨달은 구름 한 점

어릴 때는 참 무료했다. 시간이 꼭 멈추어 선 듯, 술도 마셔야 하는데, 담배도 피우고 이성도 만나야겠는데, 너무도 세월이 슬로우로 흐르더란 말씀이다. 그때 시간을 죽이려 오락실을 드나들거나 학교 뒷동산에 숨어들어 발랑까진 조숙한 몇몇 까까머리 친구 녀석들과 담배도 피우고 야한 외국 칼라사진도 주고받으며 세월을 낚거나 그 일도 정 따분하여 지면 즐겨 읽던 책이 있었으니, 남로당 좌익 아버지의 원죄를 짊어지고 평생토록 연좌제의 낙인을 끌어안고 살다가 세상 떠난 김성동 선생의 『만다라』란 장편소설과 일본 역사소설의 거장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荘八)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번역한 『대망(大望)』이라는 이름의 소설책 이었다. 훗날 세월이 한 참을 흐른 후에 보니, 참으로 내 ‘인생의 바이블’이기도 했고 ‘인생의 지침서’로 자리 잡았다고도 하겠다. 만다라는 지금 읽어도 어려운 불교용어와 대망은 수십 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두 서사적 특징, 그것이 내 인생의 방황과 맞물려 많은 통찰을 하게끔 한 이유는 ‘불교적 깨달음과, 야마오카 소하치가 그려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기다림의 달인’으로 미화한 부분에 충분히 매료 된 이유에서였다고 하겠다. 이만 각설하고, 얼추 30년도 더 된 에피소드지만, 난 그때 속리산 법주사에서 중물(치문)을 들이고 있었다. 장판때(강원)좀 묻히라는 스승의 당부를 받들어 ‘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 법주사 큰방에서 살 때, 무작정 지루한 시간을 죽여야 하는, 기다림의 미학을 배워야 하던 차에, 참 크게 매료된 큰 인물이 있었다. 불교사의 마지막 전설적인 큰 스님 ’월탄대화상(月誕大和尙)‘이신데, 꼭 속리산 청동 미륵대불처럼 법당(풍체)도 장대하시고 한국 근, 현대불교사에 있어 미륵불처럼 장엄히 우뚝서신 어른스님의 산중토굴인 ’미륭당‘을 드나들거나 큰 스님 주석처(駐錫處)인 청주 무심천변 용화사(龍華寺)에 머물 때, 만나진 인연이 각생, 각운 두 형제 스님이다. 월탄화상의 문하(門下) 여러 스님 중에 많은 스님들과도 그 인연의 깊이가 깊다고 하겠지만, 그중 가장 인간미 넘치는 각생스님과는 유독 많은 추억이 있다. 어렵고 힘든 시절 서로의 의지처가 되어 주기도 하고 여행도 함께하며 궁색한 처지에는 엽전도 나누어 쓰며 더불어 어울렁 더울렁 살았는데, 지금도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무심도인(無心道人)이었던 각생스님은 세속의 미련이 깊지 않아서인지, 그리 명이 길지 못해 갓 회갑을 넘기고는 운명을 달리했다. 그 때 각생스님을 그리며 내가 쓴 몇 자의 글이 있는데, 아마도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형님, 속리산 시절이 마냥 그립습니다. 공양간에서 삼색 나물에 참기름, 고추장 넣고 맛나게 비벼 먹은 점심공양은 지금도 가끔 군침을 돌게 합니다. 올해 초 음지에 서러운 듯 나 홀로 핀 선홍빛 진달래가 채 지기도 전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실속 없이 분망하기만 했던 못나고 무정한 아우를 찾아오셨을 때 그저 바쁘다는 핑계로 놀아드리지도 못했는데, 돌이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가시니 이제야 가슴을 치며 후회가 막급할 뿐 입니다. 운제산의 초겨울 앙상한 나뭇가지에는 낙엽이 한 올도 없이 우리네 인생처럼 헐벗어 있습니다. 깊은 밤이 되었지만 밖에는 바람 소리만 을씨년스럽고, 고즈넉한 산중 깊은 암자에선 저 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각생 형님! 얼추 30년 성상이 다 되어가는 형님과의 지난 세월을, 그 수많은 추억을, 이제 가슴에 묻어야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늘 사시기도 시간에 법당에서 촛불이 춤을 추며 타들어 가고 잠시 눈을 감고 무상계를 한편 독송해 보았습니다. 수일 전 2시간 남짓 다비 후 남은 형님의 한 줌 유골을 보며 허망하고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황급히 자리를 뜨며 산길을 내려오는 동안 내 모습도 저러하지 않겠는가 하는 무상의 가르침이 내내 교훈이 되었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그 순간 훌륭한 명상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합니다. 죽음이 늘 멀리에 있지 않고 이렇게 가까이 있었음을 망각하고 살다가 오늘 죽음을 생각한 하루는 삶을 생각하는 하루보다 더 값진 하루였습니다. 각생 형님! 죽은 자를 기리는 제삿날은 또 누군가의 생일날이듯, 살고 죽는 것이 어찌 둘이겠습니까? 그동안 살아오면서 만난 이들이 떠날 때면 다시는 살아서는 더 그들을 볼 수 없다는 가슴 아픈 영원한 이별에 이 중생은 통한의 눈물이 흐릅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 빈손으로 와 빈손으로 가는 인생, 벌거벗고 와서 옷 한 벌 걸치지 않은 채, 벌거벗은 채로 훌쩍 고독사(孤獨死)로 가신 각생 형님! 다음 생에는 눈 깜짝할 사이 번갯불에 콩 볶아 내는 그런 짧은 세월을 사는 허망한 인생살이는 이제 그만두시어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산다는 주목이나, 오랜 세월 산다는 나무로 태어나서 천 년 만 년 세월을 굳게 우뚝 서 견디어요. 다음 생에는 골골 아프지도 말고 백 년도 못사는 인생 노릇보다 모진 비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천년쯤만 살아보자구요. 속리의 천년 세월 묵묵히 지켜보는 정이품송처럼 그렇게 오래도록 살길을 걸어봅시다. 아우도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았는지 모르지만, 삶이란 덧없는 집착에서 벗어나 여여하게 남은 인생 세찬 삶의 여정을 굳굳하게 잘 걸어서 다 마치고 난 뒤에 저승에서 다시 형님을 뵈올 때는 우리 스승님의 간곡하신 당부로 미처 마시지 못하고 참아야 했던 곡차나 실컷 배가 터지도록 마실 텝니다. 天堂佛刹 천당불찰 隨念往生 수념왕생 快活快活 쾌활쾌활 이제 천당이나 부처님 계신 곳에 마음대로 태어나게 되었으니 참으로 기쁘고 기쁜 일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각생스님 영전에 받치는 나의 마지막 조사였다. 속가에서는 피를 나눈 형제의 인연으로 각운은 각생의 아우였으나, 한 은사스님의 문하에서 출가하여 각운은 다시 각생의 사형이 되었다. 그러한 각운스님과도 함께한 기억에 가물가물 하지만, 용화사에서 몇날 며칠을 밥도 먹고 곡차도 한 잔하며 더불어 살던 그때의 각운스님은 사판(事判)이기도 했지만, 늘 이판(理判)을 꿈꾸던 수좌(首座)이기도 하여서 수북이 쌓인 불전(佛錢)을 손금이 다 닳도록 세다가도 “이놈의 노릇은 그만두어야지”하며 늘 좌복에 대한 미련을 지니고 살던 이였다. 좌복이란 단순히 방석이 아니라, 이를테면 ‘단두대’이기도 하다. ‘나’라는 아상(我相)이 죽지 않고서는 결코 새로운 삶(깨우침)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은사스님이 주신 깨달을 각(覺)은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다. 그것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무명을 밝히려는 뼈를 깎는 인고의 시간이며 제 몸에 불을 지피는 자기와의 고독한 투쟁이다. 좌복 위에 앉은 수좌의 등줄기는 늘 서릿발 같이 곧두서야 하며, 그 기세는 마치 굶주린 사자가 먹잇감을 노리듯 절박해야 하며, “한 생각 일어나지 않으면 온 우주가 멸하고, 한 생각 깨어있으면 만물이 거기서 살아난다.” 이것이 눈 푸른 수좌가 시시때때로 품고 지키는 자리(座)의 무게라 하겠다. 어린 시절에 아궁이 연탄 불꽃 위에서 얻은 육신의 흉터를 평생 지니고 사는 각운은 채워 질수 없는 아픔과 결핍을 안고 있다. 그리고 그 시절 60년 대 쯤에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이들은 끼니보다 더 깊었던 마음의 허기를 늘 품고 있었으니, 그‘유년의 공허’를 메우기 위해 어쩌면 눈 푸른 납자(衲子)각운은 누구보다도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늘 치열했다. 온기의 발원지에서 얻은 잔인한 큰 상처, 발가락이 몇 개 잘려진,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몸뚱이에 새겼지만, 그 뜨거웠던 통증이 훗날 수행자의 길에서 마주한 그 ‘번뇌의 불길’과 어쩌면 그리 닮아 있었다. -파격(破格)을 보이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각운(覺雲)’은 깨달음조차 집착하지 않는 무심(無心)의 극치를 말한다. 구름이 청산(靑山)을 감싸 안고 있지만 청산을 속박하지 않고, 청산을 떠날 때 백운은 미련을 두지 않는다. 진정한 도인이란 깨달았다는 생각조차 버린 사람이다. 금가루가 아무리 귀하다고 해도 눈에 들어가면 병이 되듯, 깨달음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그것은 더 이상 참된 구름이 아니다. 백운은 떠돌아도 자취가 없고 지니어서 집착하는 바 없이 행운유수(行雲流水), 구름에 달 가듯이 흐르는 물처럼, 인연 따라 사라지고 인연 다하면 그저 소멸할 뿐, 그 어디에서도 ‘나’라고 할 만한 고정된 실체가 없음을 증명하는 삶이다. 각운은 수십 안거를 나며 이제야 말길이 끊어진 격외선(格外禪)도리를 넘어선듯하다. 그의 내공에서는 논리적 설명이 불가능한 언어도단(言語道斷)의 경지에 와 있는 듯, 이제 계란으로 바위를 쳐 그 바위를 깨려는 몸부림을 감행하려 한다. 문: 무엇이 수좌의 본분입니까? 답: 서쪽 산에 해 지니, 동쪽 계곡에 달이 뜨는구나. 이 문답 속에 모든 것이 있다. 억지로 꾸며내지 않은 천진난만함, 그대로가 곧 깨달음의 현현(顯現)이며 낙처(落處)가 분명하다 하겠다. 그 수행이 깊은 수행자는 진리를 설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그저 존재 자체로 푸른 하늘의 구름처럼 당당하고 여여(如如)할 뿐. 이제 각운에게 서슬 퍼런 칼 한 자루, ‘취모검(吹毛劍)’이 쥐어져 있으니 그 칼의 용도가 자못 궁금하다. 구참이 된 각운스님이 청산이 되려하는지, 백운이 되려하는지, 이제 더 좀 두고 볼일이다. 그 갈증의 끝이 과연 어드메인가? 萬里靑天 一點紅日 만리청천 일점홍일 本來無一物 본래무일물 何處惹塵埃 하처야진애 만 리 푸른 하늘에 붉은 해 하나 솟아오르네, 본래 한 물건도 없거니와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 있으리.

2026-04-10

교단을 떠나는 선생님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대표적인 직업군으로 인식되는 교사직은 시대흐름에 따라 다소 변동은 있으나 대체로 희망 직업으로서는 인기가 높은 편에 속한다.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매년 조사하는 학생들의 직업 선호도 조사에서 교사는 십수 년째 선두그룹을 지키고 있다. 2023년 조사를 보면, 초등학생은 교사를 운동선수, 의사 다음으로 세 번째 희망 직업으로 꼽았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은 의사, 연구원, 운동선수 등을 제치고 교사를 1위로 꼽았다. 과거 기준으로 하면 교사 직업은 보수 면에서 회사원과 큰 차이가 없는 데다 사회적 예우도 나쁘지 않아 오랫동안 학생이나 학부모의 희망직업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교사들의 이직이 조금씩 늘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 교육기반이 자칫 흔들릴까 봐 걱정된다는 교육계의 목소리가 있다. 국회교육위원회 소속 김대식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의하면 2020년 6704명이던 전체 중도퇴직 교원 수가 2024년에는 7988명으로 1200여 명이 늘었다. 특히 저연차 교원 중심으로 중도 퇴직이 늘고 있고, 수도권보다는 비수도권에 집중되는 것으로 분석이 된다고 한다. 교사 이직이 늘어난 이유는 다양하다. 대기업 등 민간기업과 비교해 연봉 격차가 갈수록 커지는데 대한 박탈감을 꼽는 사람도 있다. 또 교권침해로 인한 스트레스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라 한다.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에 대한 교사들의 심리적 부담을 퇴직 이유로 꼽는다는 것이다. 과중한 행정업무도 다른 이유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존경받으면서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이 무너진 것이 교사를 교단 밖으로 몰아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정구(논설위원)

2026-04-09

벌거벗은 임금님의 교훈

‘벌거벗은 임금님’, 누구에게나 친숙한 안데르센의 동화다. 권력의 위선을 이보다 더 쉽고 직관적으로 표현한 우화는 드물다. 임금의 허영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옷이라는 허구적 상상력에 매료되고 마침내 벌거벗은 채 행진을 감행한다. 모두가 임금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한다. 두려움 때문이다. 권력 앞에서 사람은 진실보다 먼저 안위를 택한다. 위선과 침묵은 그렇게 새로운 질서가 된다. 마침내 한 아이의 입에서 한마디가 터져 나온다. “임금님이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 그 한마디는 권력 앞에 길들여진 침묵을 깨고 사람들로 하여금 진실을 마주하게 한 가장 중요한 장면이다. 오늘날 국제정치에도 이런 장면이 낯설지 않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향해 군사행동에 나서고, 그 여파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누군가는 생명을 잃고, 누군가는 삶의 터전을 잃는다. 멀리 떨어진 나라의 시민들조차 유가와 환율, 금융시장의 동요 속에서 불안해하고 있다. 전쟁은 총성이 닿는 곳을 넘어, 평범한 일상과 오랜 기간 형성해 온 국제질서까지 함께 허문다. 그런데도 세계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와 비판은 사라지고, 외교적 차원의 공식 논평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힘센 국가의 일방적 폭력을 잘못이라 부르지 못한다. 냉혹한 국제 질서에서 국가의 힘은 곧 명분이 되고, 침묵은 생존 전략이 된다. 물론 국제정치는 냉엄하다. 국가는 도덕 교과서가 아니라 이해관계의 계산에 의해 움직인다. 특히 미국과 동맹 관계에 있는 한국으로서는 모든 사안을 도덕적 언어로만 재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안보와 외교, 경제가 복잡하게 얽힌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하지만 힘 있는 자의 행동에는 관대하고, 약한 자의 저항에는 엄격한 국제질서는 정의롭지 못하다. 원칙이 국력에 따라 달라지고, 도덕이 진영에 따라 변한다면, 그 세계는 오래 버틸 수 없다. ‘벌거벗은 임금님’은 사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권력은 늘 화려한 언어와 장엄한 명분으로 자신을 치장한다. 사람들은 거기에 압도되고, 침묵은 신중함으로 포장되며, 비겁은 현실주의라는 합리적 이름을 얻는다. 그러나 진실은 그런 장식 속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벌거벗은 임금님 놀이를 하고 있다. 자신들의 행동이 얼마나 부끄러운지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폭력적이고 위선적인 행동을 일삼고 있다. 분명 비난받아야 마땅한 일임에도 전 세계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의 행진을 바라보는 군중들처럼 숨죽이며 다음 행보를 지켜본다. 지금 우리에게는 잘못된 전쟁 앞에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동맹이라는 이유로 판단까지 위탁하지 않는 이성, 힘 앞에서도 원칙을 접지 않는 자존감이 필요하다. 벌거벗은 임금의 행렬은 늘 성대하다. 주변은 간신들의 아첨과 박수로 가득하고, 침묵은 충성으로 오인된다. 그러나 그 행렬을 멈추는 것은 대포도, 군대도 아니다. 단 하나의 진실한 외침이다. 지금 전 세계가 기다리는 말도 결국 그것일지 모른다. 임금님은 벌거벗었다. /주재원 한동대 교수

2026-04-09

‘물 수요관리 종합계획’

이제 물 문제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비가 한꺼번에 쏟아졌다가도 금세 가뭄이 이어지고, 도시에는 사람이 몰리고 산업은 더 많은 물을 요구한다. 대구·경북도 이런 복합 위기 한가운데 있다. 예전처럼 댐을 더 짓고 관로를 더 놓는 방식만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건설비는 커지고, 입지는 줄고, 환경 갈등도 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 정책의 중심은 “어디서 더 가져올까”에서 “지금 가진 물을 어떻게 덜 새게 하고, 더 똑똑하게 쓰고, 다시 쓸까”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물 수요관리의 출발점이다. ‘물 수요관리 종합계획’은 어렵게 들리지만 뜻은 단순하다. 새 물을 찾기 전에, 우리 손안의 물부터 제대로 관리하자는 계획이다. 크게 보면 세 축으로 이뤄진다. 첫째, 물이 생산·공급되는 단계에서 누수를 줄이고 유수율을 높이는 일이다. 둘째, 한 번 쓴 물을 다시 활용하는 재이용 단계다. 셋째, 가정과 건물, 공장 같은 최종 사용 단계에서 절수 설비와 효율적 소비를 늘리는 일이다. 강점은 분명하다. 댐 하나를 새로 짓지 않아도 물·예산·탄소를 함께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제5단계(2026~2030) ‘물 수요관리 종합계획’은 이런 관점을 더 체계화해 지역별 목표관리와 데이터 기반 행정, 주민 수용성과 투명성을 강조하는 ESG형 거버넌스로 나아가고 있다. // 해외와 국내 사례도 방향을 보여준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도시 물관리계획을 5년마다 세우며, 수요관리와 가뭄 대응, 재이용수 활용을 함께 다룬다. 일본 도쿄는 1982년 15%였던 누수율을 장기적인 관 교체와 기술 투자로 3.2% 수준까지 낮췄다. 국내에서도 노후 상수관로 정비를 마친 지자체들은 평균 누수율을 10.8%포인트 낮추는 성과를 냈다. 이런 흐름은 대구·경북에 더 절실하다. 2023년 기준 대구의 유수율은 93.8%, 누수율은 1.9%로 비교적 우수하지만, 경북은 유수율 74.6%, 누수율 20.5%로 격차가 크다. 즉, 대구는 공공시설·대형건물 중심의 절수, 스마트 관망, 가뭄 단계별 수요절감 매뉴얼이 필요하다. 이처럼 맑은 물은 더 이상 무한한 자연의 선물이 아니라, 경제적 비용과 고도의 기술력, 그리고 이웃 지자체 간의 치열한 협상을 통해 확보해 내는 가장 값비싸고 희소한 사회적 공공재다. 대구·경북의 지속가능한 발전은 물을 얼마나 더 끌어오느냐보다, 지금 있는 물을 얼마나 오래 버티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과제도 분명하다. 노후 관로 정비, 재이용수 인식 개선, 데이터 기반 관리, 지역 간 협력 체계가 더 촘촘해져야 한다. 하지만 방향은 이미 나와 있다. ‘물 수요관리 종합계획’은 절약 캠페인이 아니라 도시와 산업, 농촌을 함께 지키는 생존 전략이다. 새 물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흘려보내던 물 그냥 지나치던 습관, 손보지 않던 시스템 안에 있다. 대구는 도시형 효율 관리의 모범을 만들고, 경북은 광역 물 안보 전략을 세운다면, 이 계획은 단순한 행정 문서를 넘어 대구·경북의 미래를 떠받치는 필수 행동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6-04-09

오류를 바로잡을 의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불편함을 느낀다. 머리로는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쉽게 따라가지 않는다. 오랫동안 믿어 온 지식일수록 더 그렇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이런 경향은 더 강해진다.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기보다 기존의 믿음을 지키려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 단정해 놓은 것을 이해시키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논쟁이 싫다면 그냥 똥이라 부르고 넘어가는 것이 마음 편한 선택이 되기도 한다. 어느 순간 자신 역시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깨닫게 될 때 느끼는 씁쓸함도 적지 않다. 이러한 모습은 역사와 문화 속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충남 공주 마곡사에는 김구 선생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을 처단한 뒤 인천 형무소에서 탈옥한 김구가 승려로 변장해 이곳에 숨어 지냈다는 이야기다. 절에는 그가 심었다는 향나무와 ‘법명은 원종’이라는 안내문도 세워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김구가 머물렀던 곳은 대광명전 앞의 백범당이 아니라 마곡사 인근 암자인 백련암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많은 방문객은 백범당 앞에서 사진을 찍고 그곳이 은신처였다고 믿는다. 한번 굳어진 인식이 쉽게 바뀌지 않는 사례다. “눈 덮인 들길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말라. 오늘 남긴 발자국이 뒷사람의 길이 된다.”라는 시구는 흔히 서산대사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이 시는 조선 후기 문신 이양연의 ‘야설’이라는 작품이다. 이미 밝혀진 사실이지만 일부 사찰과 안내문에는 여전히 서산대사의 시로 소개되어 있다. 익숙한 이름이 더 권위 있게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이 아닌 내용을 반복하는 일은 역사 이해를 흐리게 만든다. 문학사에서도 비슷한 논쟁이 이어진다. 한국 최초의 한글 소설로 알려진 홍길동전의 작가가 허균이라는 통설 역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의 친구 이식의 문집에 관련 기록이 남아 있지만, 해당 자료가 후대에 편집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더구나 허균이 남긴 다른 한글 작품이 없고 작품 속 시대 상황이 그의 생애와 맞지 않는 부분도 적지 않다. 무명의 작가가 허균의 명성을 빌려 작품을 발표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교과서에서는 여전히 허균의 작품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런 오류가 발견되어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문적 논쟁은 계속되지만, 대중의 인식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사실 여부보다 익숙함이 더 큰 힘을 갖기 때문이다. 어쩌면 모두가 어느 정도는 그런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틀린 것을 바로잡기보다 그대로 두는 편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과 역사라는 것은 끊임없이 수정되고 보완되는 과정에서 발전된다. 작은 오류라도 바로잡으려는 노력 없이 쌓인 정보는 또 다른 오해를 낳는다. 물론 일상의 삶에서 모든 사실을 완벽하게 따져가며 살 수는 없다. 하지만 틀렸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면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보는 태도는 필요하다. 사소해 보이는 것도 정확하게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쌓일 때 우리의 역사와 문화도 조금 더 또렷해질 것이다. /노병철 수필가

2026-04-09

보경사 사명대사 진영에 그려진 수염

규모가 큰 사찰에 가면 조사당(祖師堂)이나 진영각(眞影閣)이 있고, 거기엔 고승들의 진영(眞影)이 봉안돼 있다. 진영이란 글자 그대로 ‘참모습’이란 뜻으로 흔히 초상화 또는 영정이라고도 한다. 포항 보경사의 경우 이름은 다르지만 원진각(圓眞閣)이 그런 역할을 한다. 원진각은 본래 고려말에 보경사 주지를 지내면서 보경사를 크게 일으킨 원진국사(圓眞國師)를 기리기 위해 지었으나 후에 보경사를 창건한 지명법사(智明法師)를 비롯한 역대 고승들의 진영을 함께 모시면서 진영각 구실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사찰에 진영이 가장 많이 봉안된 고승은 아마 임진왜란 때 승병장(僧兵長)으로 크게 활약한 사명대사(四溟大師)일 것이다. 사명대사는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김천 직지사에서 출가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금강산 건봉사에서 승병을 일으켜 국가 존망의 위기에서 공을 세웠고, 해인사에서 입적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다 보니 표충사, 직지사, 건봉사, 해인사는 물론 통도사, 월정사, 동화사, 범어사, 보경사 등 사명대사와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은 전국 20여 개의 사찰에서 그의 진영을 모시고 있다. 건봉사와 표충사에는 동상까지 세워두었다. 보경사 원진각에는 창건주인 지명법사(智明法師)와 중창주인 원진국사를 비롯한 고승들의 진영 15점이 봉안돼 있다. 여기에는 수염이 텁수룩한 모습의 사명대사도 있어 눈길을 끈다. 다른 열네 분의 고승들은 수염이 없는데, 사명대사만 수염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사명대사가 보경사에 주석한 일은 없지만, 보경사 오층석탑의 조성기인 ‘내연산보경사금당탑기(內延山寶鏡寺金堂塔記)’(1588)를 지은 인연으로 해서 대사의 진영을 모시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보경사를 비롯하여 전국의 유명 사찰에 봉안된 사명대사의 진영은 한결같이 수염이 텁수룩한 모습으로 표현돼 있다. 동상도 마찬가지다. 예나 지금이나 ‘수염 기른 승려’를 상상하기 어렵기에 참배객의 입장에서는 의아스럽다. 사명대사의 진영 중 가장 이른 시기인 임진왜란 직후에 그려진 것으로 짐작되는 동화사 진영에도 사명대사는 수염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어 실제로 수염을 길렀던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삭발은 수행의 필수 과정이기에 승려들은 출가할 때 당연히 머리를 깎는다. 삭발은 세속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고 외모에 신경 쓰지 않으며, 승려임을 분명히 드러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석가모니도 출가하여 머리를 깎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따라 하는 것 자체가 본받으려는 의미가 있다. 수염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어떤 연유로 사명대사의 진영은 모두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표현되었을까? 결론적으로 말해 사명대사는 실제로 수염을 길렀다. 스승인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수염 기른 사명을 보고는 머리는 깎았으면서 왜 수염은 그냥 두었느냐고 묻자, 머리를 깎은 것은 속세를 떠났다는 뜻이고, 수염을 기른 것은 대장부의 기개를 나타낸다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후 전후 협상을 위한 사신으로 임명되어 일본에 건너갔다가 쓴 ‘대마도객관(對馬島客館)’이란 시에 자신의 수염 이야기가 나온다. 病扃賓館痛生牙 坐筭平生百不嘉 削髮作僧長在路 留鬚效世且無家 (후략) 위의 시 4행 留鬚效世且無家(수염 길러 세속을 배웠으나 집이 없다네)에 수염을 길렀다는 얘기가 나오는 걸로 보아 사명대사가 수염을 기른 것이 확실해 보인다. 김정중(金正中)의 ‘기유록(奇遊錄)’(1792)에는 사명대사 진영에 그려진 수염을 보고 쓴 기록이 전하는데, “서산영당(西山影堂)에 이르니, 당은 모두 두 채로 벽에 두 초상을 걸었는데, 하나는 서산(西山)이고 하나는 송운(宋雲), 곧 서산의 고제(高弟)인 사명당(泗溟堂)이다. 머리는 깎았으나 수염은 몇 치나 되니(仍到西山影堂, 堂凡二楹, 壁掛二綃像, 一則西山, 一則松雲, 是西山之高弟泗溟堂也, 祝髮而髥表數寸)”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때에도 사명대사 진영은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소설 ‘임진록(壬辰錄)’에는 임진왜란 후 사신으로 임명된 사명대사가 일본에서 겪은 이야기가 나온다. 수염 이야기다. “왜인들은 사명대사를 구리로 만든 집에 모셨다. 그리고는 문을 잠그고 사면에 숯을 쌓고 불을 피웠다. 사명당이 그 간계를 알고 사면 벽에 ‘서리 상(霜)’ 자를 써 붙이고, 방석 밑에는 ‘얼음 빙(氷)’ 자를 써놓고 팔만대장경을 외니 방 안이 빙고(氷庫) 같았다. 이튿날 아침, 왜인들이 사명대사가 죽었겠거니 하면서 문을 열어 보니 사명대사의 눈썹에는 서리가 맺혀 있고, 수염에는 고드름이 달려 있는 게 아닌가. 사명대사는 놀라는 왜인들을 보고 “왜국이 남방이라 덥다 하더니 어찌 이러하게 차냐?” 하고 큰 소리로 꾸짖었다.(전규태 주해 ‘홍길동전·전우치전·임진록’ 참조) 이처럼 사명대사는 실제로 수염을 길렀다. 전국 여러 곳의 사찰에 걸려 있는 초상화와 곳곳에 세워져 있는 동상의 수염은 실제 모습을 반영한 것이다. 다만 처음부터 길렀다기보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이끄는 장수가 되면서 ‘이미지 관리’의 필요에 의해 길렀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기에 사명대사 진영에는 기골이 장대하고 기개가 서려 있는 장수의 이미지가 묻어난다. 동화사 진영에는 아예 화제(畫題)를 사명당대사(四溟堂大師)가 아닌 사명당대장(四溟堂大將)이라 적었을 정도다. /박창원 동해안민속문화연구소장

2026-04-09

포스코 직고용 확대가 포항경제에 미칠 영향

포스코가 협력사 직원 7000명을 직접 고용하기로 했다. 숫자만 보면 고용 정책의 변화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결정의 본질은 수치적인 채용 확대가 아니다. 철강 생산 방식과 지역경제 구조를 동시에 바꾸는 ‘체질 전환’에 가깝다. 철강 산업은 오랫동안 원·하청 구조를 기반으로 운영돼 왔다. 대규모 설비를 24시간 가동해야 하는 특성상 다양한 협력업체와의 분업 체계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위험의 외주화’와 생산 책임의 분산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늘 따라붙었다. 이번 결정은 이 틀을 혁신하겠다는 선언이다. 포스코가 직접 고용을 택한 것은 안전을 비용이 아닌 경쟁력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생산과 안전을 하나의 체계로 묶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특히 탈탄소와 고부가 철강으로의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는 시점에서, 현장 통제력과 공정 연계성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이 됐다. 이 변화는 포항 경제에도 적지 않은 의미를 던진다. 포항은 여전히 제철소 중심의 단일 산업 구조를 갖고 있다. 이 구조에서는 포스코의 고용과 임금이 곧 지역 소비와 직결된다. 협력사 인력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고용 안정성과 소득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소비 여력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단기적인 소비 증가만으로 이번 결정을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이미 이들은 지역에서 일하고 소비해 온 인력이다. 숫자 자체가 지역경제를 단숨에 끌어올릴 정도는 아닐 수 있다. 오히려 더 중요한 변화는 ‘사람의 이동’이다. 불안정한 일자리에서는 사람은 떠난다. 특히 청년층은 더 빠르게 움직인다. 반대로 안정적인 일자리는 사람을 붙잡는다. 포스코의 이번 결정은 고용자의 지위 변경 차원이 아닌 포항에 머무를 이유를 만들어주는 장치다. 이는 인구 감소로 고민하는 지역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해법 중 하나다. 물론 부담도 있다. 협력업체 중심으로 형성된 기존 산업 생태계는 재편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부 업체는 역할 축소나 구조 조정이라는 현실을 마주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산업이 변하지 않으면 지역도 버티기 어렵다. 지금의 선택은 ‘불편한 변화’를 감수하고라도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결국 이번 조치는 포스코가 정부 방침과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해 대승적 차원에서 내린 결단이다. 원하청 구조의 획기적 개선을 통한 현장 안전관리체계를 혁신함으로써 통합 관리와 책임 경영으로 나아가는 노사상생모델 구축의 신호탄이다. 철강 산업은 지금 거대한 전환의 한가운데 서 있다. 탈탄소, 보호무역, 공급 과잉이라는 삼중 압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용 절감이 아니라 구조 혁신이 필요하다. 포스코의 7000명 직고용은 그 변화의 시작일 수 있다. 이 선택이 일회성에 그칠지, 아니면 포항 산업의 체질을 바꾸는 계기가 될지는 이제 실행에 달려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번 결정이 한 기업의 고용 정책에 그치지 않고 포항의 미래와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6-04-08

미국과 이란, 종전의 길 찾기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과 폭격, 이에 저항해 이란이 중동 내 미국의 주요 군사시설에 대한 공격을 진행하면서 시작된 전쟁이 1개월을 넘어서고 있다. 세계 각지로 원유를 공급해온 호르무즈 해협이 이란의 봉쇄조치로 막히면서 지구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 유가는 폭등하고, 주가는 널뛰기를 지속하고, 석유화학물질로 만들어내는 각종 생활필수품 공급에도 비상이 걸린 상황인 것. 전쟁은 먼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한국인들의 실생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미국·이란 전쟁’ 이전보다 30% 가까이 오른 주유소 기름값은 가계를 주름지게 했고, 쓰레기봉투를 사재기하는 보기 드문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 물가 상승에 대한 서민들의 걱정도 갈수록 커졌다. 천만다행으로 8일 오전 외신을 통해 반길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미국과 이란이 앞으로 2주간 휴전할 것에 합의했다고 한다. 7일 밤까지만 해도 미군이 이란 내 각종 시설에 대한 대규모 폭격을 예고하고 있었던 터라 우려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번 휴전 협상에는 파키스탄이 중재자 역할을 하며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 시간 2주 연장을 제의한 파키스탄의 의견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받아들인 것.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의 즉각적이고 안전한 개방’을 휴전 조건으로 내세웠다. 그간 이란은 대외적으론 미국에 대한 결사항전을 선언하면서도 파키스탄의 2주 휴전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왔다. 전쟁이 오래 지속될수록 돌이킬 수 없이 피해가 커질 게 분명하니까. 이 기간 동안 두 나라가 적극적 협상을 통해 휴전이 종전(終戰)으로 가는 평화의 길을 찾아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4-08

포스코 직고용, ‘결단의 크기’만큼 ‘실행의 정교함’이 필요하다

포스코가 협력업체 근로자 7천여 명을 직고용하기로 결단했다. 오랜 갈등을 매듭짓고 지역사회와 산업 현장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이번 결정은 단순한 고용 형태의 변화가 아니라, 포항의 미래와 직결된 책임 있는 선택이라는 점에서 더욱 뜻 깊다. 다만 큰 결단일수록 그 이후의 과정이 더 중요하다. 발표 자체만으로 모든 과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평가는 선언의 순간이 아니라, 그 결정 효과가 현장에 얼마나 안정적으로 안착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번 직고용이 진정한 상생의 결실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도 적잖다. 노사정이 전환 과정에서 파생될 수 있는 현실적 과제들을 꼼꼼히 살필 필요가 있다. 첫째, 무엇보다 직고용 전환의 대상과 기준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도록 투명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같은 현장에서 함께 땀 흘려온 이들 사이에서 충분한 설명 없이 희비가 엇갈린다면, 기대했던 상생은 또 다른 불안과 상대적 박탈감으로 바뀔 수 있다. 특히 전환 대상에서 제외되는 인력들에 대해서는 어떤 보호와 지원 방안이 뒤따를 것인지 분명한 설명과 대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둘째, 기존 협력업체의 존립 문제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이들은 오랜 시간 포스코와 함께 생산 현장을 지탱해 온 포항 산업 생태계의 중요한 한 축이었다. 이번 조치가 오랜 갈등을 해소하는 계기가 될 것은 분명하지만, 그 과정에서 협력업체의 경영 기반이 급격히 흔들려 또 다른 고용 불안이나 지역경제의 부담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협력업체가 앞으로 어떤 역할로 지역 산업과 공존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도 함께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직고용 이후의 처우와 근무체계가 안정적으로 정착되는 일도 중요하다. 고용 형태의 변화가 실질적인 책임감과 소속감으로 이어져야 하고, 기존 인력과 전환 인력 사이에 새로운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세심한 관리가 뒤따라야 한다. 또 과도기적 상황에서 안전관리와 생산운영에 단 한 치의 공백도 있어서는 안 된다. 직고용의 핵심 취지 중 하나가 안전관리체계의 혁신에 있는 만큼, 그 성과 또한 현장에서 분명하게 확인되어야 할 것이다. 포항은 철강과 함께 성장해 왔다. 포스코의 변화는 곧 포항의 변화다. 수천 명의 고용 안정이 가져올 긍정적 파급효과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이 결정이 지역 협력업체 생태계와 주변 상권 전반에 미칠 영향까지 함께 더 고민하고 숙의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이번 포스코의 결정이 기업 내부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포항 전체를 살찌우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포항제철소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필자는 이러한 이유로 직고용 발표에 앞서 시민의 눈높이에서 우려되는 현실적 문제들을 포스코 측에 전달한 바 있다. ‘결단의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전환 기준의 투명성, 제외 인력과 협력업체에 대한 대책, 조직 융화와 안전관리 방안, 지역경제에 미칠 영향까지 폭넓게 검토해 달라’는 것이 의견의 요지였다. 이러한 의견 제시는 이번 결정의 의미를 깎아내리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결단이 품고 있는 뜻이 큰 만큼 그 결실의 온기가 고스란히 포항 바닥 곳곳에 퍼졌으면 하는 차원이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다. 선언이 클수록 실행은 정교해야 한다. 포스코의 경쟁력은 곧 포항의 경쟁력이다. 포스코의 이번 직고용 결단이 현장의 세밀한 목소리까지 담아내어 전환기의 불안과 충격을 최소화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안착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노사와 지역과의 진정한 상생이다. /국민의힘 이상휘(포항남·울릉) 의원

2026-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