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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부정적으로도 생각해 봅시다

참 아끼는 동생이 한 명 있다. 의리가 있고 언행이 솔직해서 여러모로 믿음이 가는 동생이다. 그런데 그에게 딱 하나 고쳐지지 않는 단점이 있다. 바로 시간 약속의 문제다. 그는 항상 늦는다. 적게는 일이십 분, 많게는 한두 시간까지 늦어 주변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인다. 그를 아끼는 사람으로서 나와의 사적인 약속에 늦는 것은 얼마든지 이해해줄 수 있지만 그가 아주 중요한 약속에서 늦는 바람에 낭패를 보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항상 갖고 있다. 어느 날 그가 내게 고민을 토로했다. 자신도 그런 문제를 충분히 알고 있는데, 도무지 고쳐지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충고하는 것을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는 용기를 내어 그에게 한 마디 했다. “넌 지나치게 긍정적이야.” 그가 나와 오후 두 시에 시청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한 상황이라고 상상해보자. 그의 집 근처 지하철역에서 지하철로 30분을 가서 버스로 갈아타고 30분을 가면 시청에 도착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그는 그것을 한 시간 거리라고 생각하고 한 시에 집을 나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계산이다. 한 시간 만에 그가 도착하기 위해서는 우선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순간이동을 해야 하고, 역에 도착하자마자 때마침 지하철이 도착해야 하며,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버스가 도착해서 문이 열려야 한다.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 교통체증 같은 것도 절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고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변수는 언제 어디서나 도사리고 있고 때때로 최악도 일어날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작은 일이 하나 생길 때마다 도착시간은 몇 분 씩 지연되고 그것들이 더해져 한 시간 두 시간을 늦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동생은 그렇게는 생각해보지 못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이 자신의 결점을 보완하는 데 내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 지금은 조금 덜 해진 것 같지만 온 세상이 ‘긍정’이라는 말에 미쳐있는 것 같은 때가 있었다.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모든 책들이, 당시 티비속에서 ‘긍정! 긍정!’을 외치던 어느 예능인처럼 다 괜찮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이야기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유행이 다소 못마땅하게 느껴졌던 것은 내가 부정적인 사고를 많이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내색하지 않는 불만과 걱정이 많고, 세상 사람들과 심지어 나 자신에 대해서도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긍정 일변도의 사고는 일종의 마취제다. 걱정과 불안은 확실히 삶을 괴롭게 하는 일이고, 그것을 외면하는 것은 확실히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마취제에는 어떠한 치유효과도 없다. 상황이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그저 긍정을 외치며 고통을 모면하려 하는 것은, 환부가 곪아가고 있는데 그것을 치료하려고 하기보다는 마취제로 버티는 방식을 택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고통으로부터 빠르게 벗어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라도 환부를 도려내는 것이고, 아니면 애초에 몸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는 일이다. 부정적인 사고는 이 두 가지를 가능하게 한다. 문제를 인지하고 이것이 심화되었을 때 내가 겪게 될 최악의 상황을 상상함으로써 빠르게 해결책을 모색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부정적인 사고다. 행여나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를 미리 염려하여 그 가능성을 낮추는 것도, 아니면 그것에 미리 대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게 만드는 것도 모두 부정적인 사고다. 부정적으로 사고하는 덕분에 나는 보다 원활하게 내 일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먼 지역에서 공연이 잡혔을 때 최악의 교통상황을 상상하고 여유롭게 출발하거나 전날 미리 현장 근처에 숙소를 잡고 잠을 자는 것, 혹시나 공연장에 갖추어져있지 않을지도 모르는 장비를 미리 여분까지 넉넉하게 챙기는 것. 이런 것들이 나를 지켜준 횟수가 꽤 많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성향이 처음부터 내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긍정이 안일함이 되는 바람에 박살 나 본 경험이 내게도 몇 번 있었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부정적인 생각들은 그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내게 준 소중한 가르침이다. 긍정과 부정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이상적인 상태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단어만 보면 ‘긍정’이 긍정적이고 부정이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무엇이 옳고 다른 쪽은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매사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동생의 태도가 부러울 때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동안 나를 지켜준 부정의 가치를 믿는다. 그에게도, 내게도 둘 사이의 균형을 찾아내는 지혜가 있길 바란다. /강백수(시인)

2026-04-08

영원 같은 잠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은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스포를 일부 포함하고 있음을 알린다. 최근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았다. 두 시간 반이 넘는 긴 러닝타임 동안 인상적인 장면이 꽤나 많았지만, 영화관을 빠져나오며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잠에 대한 이야기였다. 주인공 그레이스(인간)와 로키(외계인)의 첫 만남 후, 로키는 잘 자라는 그레이스의 인사에 자는 모습을 지켜봐 주겠다고 이야기한다. 자는 모습을 지켜본다니, 인간의 관점에선 다소 소름 끼치고 꺼림칙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레이스도 같은 이유로 로키의 제안을 거절하지만, 로키는 진지하게 덧붙인다. 잠들었을 때는 위협에 대비할 수 없으므로 서로 지켜봐 주는 거라고, 지켜봄으로써 지켜주는 거라고. 이들은 영화 내내 가까이에서 잠을 자며, 서로의 잠든 모습을 지켜보고 또 지켜봐 준다. 그레이스의 지친 잠을 로키가 지켜주고 로키의 영원 같은 잠을 그레이스가 지켜준다. 살아있는 존재에게 ‘잠’은 필수 요소이다. 포유류 중에 가장 잠을 적게 자는 것으로 알려진 코끼리바다표범도 하루 두 시간은 숙면을 취해야 한다. 물론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처럼 수면 시간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생물도 있지만, 대부분의 생명체에겐 길든 짧든 일정한 수면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잠을 자는 동안 우리의 몸은 재정비에 돌입한다. 과학적으로 수면은 뇌와 신체를 회복시키는 시간이다. 수면 중의 뇌는 깨어 있는 동안 쌓인 노폐물을 내보내고, 기억을 정리한다. 우리의 몸은 세포를 재생하고 면역 체계를 강화한다. 잠은 집중력과 기억력이 상승하며 스트레스가 완화될 뿐만 아니라 각종 성인병과 질환을 예방해주는 효과까지 있다.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우리의 몸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이토록 활발한 우리의 몸과 달리, 잠의 세계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의 정신은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꿈을 꾸기도 하고, 꿈도 꾸지 않을 만큼 깊은 잠에 빠져 그저 어둠밖에 없는 공간에 머물기도 한다. 의식은 사라지고 자아는 희미해진다. 잠이 우리의 의식을 꺼트리는 일이라면, 그 시간에 우리는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까? 이러한 불확실성 때문인지, 어린 시절 대부분의 인간은 홀로 잠드는 것을 두려워한다. 부모는 아이가 잠든 모습을 지켜보고, 아이는 부모가 곁에 있음을 끊임없이 확인한다. 훗날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는 사랑하는 존재 옆에서 잠을 청하거나, 아프고 병든 이의 잠을 지켜준다. “잠든 모습을 지켜본다”는 로키의 말이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지겠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서로의 잠을 지켜보며 살아온 것이다. 영화 말미에서 로키는 그레이스를 구해주다 큰 부상을 입고 영원과도 같은 긴 잠에 빠진다. 로키의 잠자는 모습은 꼭 마비된 것처럼 보인다. 인간이 눈으로 인식할 수 있는 얼굴도 없기 때문에, 그레이스는 로키가 잠든 것인지, 죽은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 깨어날 수도, 그러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레이스는 묵묵히 잠든 로키의 곁을 지킨다. 연구하고 알아낸 것들에 대해 들려주면서 로키가 깨어나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그레이스는 이제 로키가 부탁하지 않아도 로키의 잠을 지켜보게 된 것이다. 잠자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것, 그건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당신이 건강하지 않아도, 기쁘지 않아도, 그 어떤 상태일지라도 함께하겠다는 가장 조용하고 깊은 형태의 언어. 나의 무방비한 모습을 기꺼이 보여주고, 또 상대의 무방비한 모습을 기꺼이 지켜보며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안심시켜 주는 신뢰이자 다정한 행위. 그것이 바로 사랑 그 자체일 거라고 나는 믿게 되었다. 우리는 매일 잠들고 또 잠에서 깬다. 몸이 서서히 이완되고 의식이 점차 흐려지다가 마침내 어둠이 찾아올 것이다. 소리를 비롯한 감각이 차단되고 나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갈 것이다. 다행히 내게도 그 시간을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다. 나 또한 그 사람의 잠을 지켜본다. 가장 무방비하고 연약한 순간을 지켜본다. 우리는 같은 시간에 잠들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시간에 깨어나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그가 잠든 동안 나는 지독한 불안과 고독감에 휩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가장 약한 모습을 지켜보려면 반대로 나는 가장 강해져야 할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서로가 있다는 이유로 우리는 외롭지 않게 잠들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영원에 가까운 잠일지라도. /양수빈(소설가)

2026-04-08

호르무즈의 파도와 대한민국의 선택

트럼프 대통령이 또 한 번 물러섰다. 최후통첩의 시한을 앞두고 ‘2주간 폭격 중단’이라는 시간을 벌었고, 그 대가로 이란에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요구했다. 겉으로는 긴장완화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군사적 압박과 협상의 교차 지점에서 흔히 나타나는 전술적 후퇴다. 문제는 그 파장이 한반도에까지 미친다는 데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수송량의 약 20%가 지나는 병목이다. 이곳이 흔들리면 국제 유가가 출렁이고,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는 곧바로 충격을 받는다. 지금 상황은 단순한 중동 분쟁이 아니라, 글로벌 에너지 질서와 해상 통제권을 둘러싼 구조적 충돌이다. 이런 국면에서 한국의 선택 기준은 명확해야 한다. 첫째는 동맹, 둘째는 시장, 셋째는 자율성이다. 세 축을 조정하는 것은 ‘국익’이라는 균형추다. 먼저 한미동맹이다. 대한민국 안보의 핵심 축이라는 점에서 미국과의 전략적 보조를 맞추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동맹의 작동원리는 자동 개입이 아니라 선택적 협력이어야 한다. 군사행동에 대한 직접적 참여는 최대한 신중해야 하며, 대신 정보·후방 지원 등 비전투적 기여로 역할을 제한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동맹의 신뢰는 유지하되, 불필요한 전장 개입은 피해야 한다. 둘째는 에너지시장 대응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외교적 수사보다 물리적 대비다. 비축유 확대와 수입선 다변화, 장기계약 재조정이 추진되어야 한다. 특히 중동 의존도를 낮추는 구조적 전환 없이는 위기가 반복될 때마다 경제는 같은 충격을 되풀이할 것이다. 에너지 안보는 이제 경제정책을 넘어 국가 생존전략의 일부가 되었다. 셋째는 외교적 자율성이다. 한국은 중동에서 적대 당사자가 아니다. 이 점은 오히려 자산이다.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이란을 포함한 역내 국가들과의 외교 채널을 열어두는 ‘이중 트랙’이 필요하다. 갈등의 한쪽에 깊이 묶이는 순간, 한국의 선택지는 급격히 줄어든다. 중요한 것은 원칙의 문제다. 국제정치에서 도덕은 힘을 이기지 못한다는 현실이 있지만, 힘만 좇는 외교는 결국 스스로를 소진시킨다. 한국은 분명한 기준을 가져야 한다. 원칙은 감정적 수사가 아니라 전략적 선택이어야 한다. 한국은 ‘줄타기’를 요구받고 있다. 이는 우유부단이 아니라 전략적 균형감각이다. 동맹을 지키되 종속되지 않고, 시장을 읽되 요동하지 않으며, 원칙을 말하되 무력하지 않는 진정성을 지켜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의 파도는 멀지만, 파장은 대한민국에 가까이 있다. 파장을 피할 것인가, 읽을 것인가. 국제사회의 역학 속에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을 살려 국익과 국민의 일상을 지키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적 행보가 정책의 방향을 혼돈스럽게도 하지만, 국격과 국익을 지키면서 관계를 유지하는 중심을 가져야 한다. 이란, 사우디, UAE 등 중동지역 각국의 독특한 여건들을 세심하게 분석하고 확인하여 전반적으로 우호적인 관계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원유시장 수입선 다변화에 초점을 두면서 시장 환경에도 유연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위기임에 분명하지만, 기회로 만들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6-04-08

딸깍 글쓰기를 넘어서는 방법

지난 4월 3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이자 베스트 셀러 작가인 김영민 교수가 클로드와 첨삭 대결을 했다. 클로드에게 프롬프트를 준 사람도 김영민 교수다. 김영민 교수를 좋아하는 사람, 클로드와 사람의 대결을 보고 싶은 사람 130여 명이 모였다고 한다. 첨삭은 바둑과는 달리 우열을 판단하기 어렵다. 실제 이번 대결에서 첨삭 내용 중 겹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팽팽하게 끝난 셈이다. 그만큼 텍스트 생성형 인공지능의 성능이 좋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오픈AI에서 생성형 인공지능 챗지피티가 나온 것이 2022년 11월이니 이제 3년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지금은 생활 곳곳에서 생성형 AI를 이용하고 있다. 이제 생성형 AI는 텍스트, 이미지, 소리와 음악, 영상, 코드, 멀티모달 등 여러 기능으로 특화되어 수요자의 필요에 따라 생성형 AI를 선택할 수 있다. 글쓰기와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그중에서 글쓰기 분야에서 사용하는 ChatGPT, Claude, Gemini 같은 텍스트 생성형 인공지능을 눈여겨보게 된다. 이것들은 글이 필요한 모든 현장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한때 대학생들이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과제를 제출해서 문제가 된 적이 있지만, 이제는 교수들이 나서서 이 툴을 어떻게 잘 이용할까를 가르치는 단계에 왔다. 실제로 ChatGPT가 써준 글을 처음 보면 얼마나 매끄러운지 감탄스럽다. 하지만 다시 보면 어딘가 이상하다. 여러 번 보면 그 이상함의 실체를 알게 되는데, 그것은 글에서 인격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이용하지 않는다. 글쓰기 도움보다는 질문하는 정도로 몇 번 사용해 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어쩌면 세상은 곧 이 한없이 매끄럽지만 매력은 없는 이런 글들로 도배될지도 모른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초능력으로 딸깍 출판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딸깍 출판이란 프롬프트로 책을 만들어 빠르게 출간하는 것을 말한다. 대형 출판사의 연간 발행 권수가 200여 권이라는데, 작년 어느 출판사는 이런 식으로 9000권 이상의 AI 도서를 발행했다고 한다. 어느 출판인은 이 딸깍 출판을 세금 도둑이라고 맹비난한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의무 납본하면 보상금을 주는데 이들은 이를 악용하여 책을 한두 권만 인쇄하고 보상금만 먹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딸깍 출판의 근본적인 문제는 이 비열한 글쓰기가 인간다움을 파괴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오늘 SNS 글쓰기 모임에 처음 참여했다. 자기소개도 없는 익명의 모임이었지만 어떻게 글을 쓸까, 어떤 책이 좋은가 하는 주제로 카페에 앉아 글을 쓰며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사람의 관계 맺기가 중요하다는데, 오늘 우리는 관계 맺기의 정수를 체험한 셈이다. 제아무리 클로드가 첨삭을 잘해도 사람이 주는 프롬프트 없이는 한 줄도 글을 못 쓴다. 우리가 글쓰기 없이 한 순간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없는 것은 글쓰기의 핵심 기능인 자기성찰, 경험 공유, 관계 맺기 때문이다. 딸깍 글쓰기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유영희 인문학자

2026-04-08

날씨만 흐리면 아픈 이유가 기분 탓일까

비가 오기 전이면 몸이 먼저 안다. 날씨가 흐려지거나 비가 오기 직전이면 관절이 쑤시고 허리가 묵직해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 비 오기 전부터 아프다라고 이야기하는 환자들이 흔하다. 단순한 기분 탓이나 우연으로 넘기기 쉽지만 이 현상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날씨와 통증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압이다. 비가 오기 전에는 대기압이 낮아지는데 이때 우리 몸에 가해지던 압력이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조직이 팽창하려는 방향으로 변한다. 관절 안에는 관절액이 있고 주변에는 다양한 연부조직이 있는데 이 구조들이 미세하게 팽창하면서 신경을 자극하게 된다. 특히 이미 염증이 있거나 손상된 부위는 이런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평소에는 괜찮다가도 날씨가 흐려지면 통증이 먼저 올라오는 것이다. 여기에 자율신경의 영향도 크다. 기압이 떨어지고 습도가 올라가는 환경에서는 우리 몸의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이 흔들리기 쉽다. 혈관의 수축과 이완이 평소보다 불안정해지고 그로 인해 혈류가 떨어지거나 조직 내 노폐물 배출이 원활하지 않게 된다. 쉽게 말해 몸이 전체적으로 둔해지고 무거워지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때 근육은 더 긴장하고 통증을 느끼는 역치도 낮아진다. 그래서 같은 자극에도 더 아프게 느껴진다. 한의학적으로 이러한 상태는 몸에 차 있는 습(濕)이 외부의 습이랑 동기된 것으로 설명한다. 습은 무겁고 끈적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몸의 순환을 방해하고 통증을 지속시키는 특징이 있다. 비가 오기 전이나 장마철에 몸이 무겁고 찌뿌둥해지는 느낌은 바로 이 습의 작용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관절이나 근육에 이미 문제가 있는 경우라면 이 습이 더 쉽게 쌓이고 빠지지 않으면서 통증을 악화시키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런 통증이 단순히 날씨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날씨는 하나의 방아쇠 역할을 할 뿐이고 실제 문제는 이미 몸 안에 준비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근육의 긴장, 관절의 불균형, 신경의 과민 상태 등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외부 환경 변화에 더 크게 반응하는 것이다. 그래서 날씨가 좋아지면 괜찮아지고 나빠지면 다시 아픈 패턴이 반복된다. 이런 경우에는 단순히 진통제로 버티는 것보다 몸의 상태를 근본적으로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고 순환을 개선하며 자율신경의 균형을 회복시키는 치료가 필요하다. 특히 통증이 반복되는 부위를 정확히 찾아서 치료하면 날씨 변화에 덜 흔들리는 상태로 만들어줄 수 있다. 평소에 비만 오면 아프던 사람이 치료 이후에는 요즘은 날씨가 바뀌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미국의 건조한 기후에 있으면 아픈게 좋아진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운동을 해서 땀을 자주 흘려주면 관절과 몸에 있는 습이 조금씩 제거 되기 때문에 땀을 흘리는 운동을 꾸준히 해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몸은 생각보다 정직하다. 날씨가 나빠질 때마다 통증이 올라온다는 것은 이미 몸 어딘가에 조절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는 신호다. 그 신호를 단순히 참고 넘기기보다는 왜 그런 반응이 나타나는지 이해하고 미리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접근하면 날씨에 휘둘리는 몸이 아니라 스스로 균형을 유지하는 몸으로 바꿔 갈 수 있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6-04-08

꽃비는 내리는데

꽃비 오는 속을 두 사람이 나란히 걷는다. 부부가 되기로 언약한 인생의 시작이 꽃길이다. 저렇듯 모두가 축복하는 속에서 두 사람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팔짱을 끼고 함께 걷는 걸음이 행복해 보인다. 이제 시작하는 그 걸음이 늘 꽃비 속을 거니는 일상이었음 좋겠다. 예식장 방문 후에 어머니에게도 꽃바람을 쐬어 주고 싶었다. 어디로 가고 싶으냐고 여쭈니 H 할머니를 만나고 싶어 했다. 어머니는 H 할머니에게 결혼 부조금을 받기만 한 것이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었다. 빚도 갚을 겸 안부가 궁금한 것이었다. 경산의 요양원으로 향했다. 대구를 넘어서 요양원 인근으로 가는 길옆 밭에는 복숭아꽃과 살구꽃이, 산에는 진달래가 피었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논밭을 지나 언덕 위의 요양원으로 가는 길에 벚꽃이 터널을 이루었다. 그 길을 따라 굽이진 도로 끝에 요양원이 자리한다. “죽으려고 들어왔잖아.” 여기서는 죽어야 나가지, 죽기 전에는 못 나간다. 첫 마디가 가슴에 맺힌 한을 토해낸다. H 할머니와 우리는 어릴 적 한집에서 살았다. 6·25로 신랑을 잃고 아들 하나만을 믿고 살아왔다. 나이 90에 아직도 꼿꼿한 허리는 건강을 말해 주지만 자식을 생각함인지 여기 들어올 때는 기어서 다녔다고 묻지도 않은 얘기를 두 번씩이나 한다.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감쌀 수밖에 없는 부모의 마음이 슬픈 멜로디로 천천히 흐른다. 그 마음을 아는지 창밖에는 꽃비가 내린다. 유족 연금으로 병원비와 약간의 용돈만을 받는다고 한다. 벌이가 없는 자식이 연금을 떼어서 생활비로 쓰고 있으며, 입원 후 아이들이 이사하여서 집도 모른다고 한다. 자신이 살던 집은 손녀의 결혼 자금으로 쓰이고 갈 곳 없는 할머니가 갈 곳은 요양원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현대판 고래장은 요양원 밖으로 어머니를 보내지 말라는 며느리의 요구를 철저하게 이행한다. 돈을 주는 사람의 목소리를 따를 수밖에 없는 못난 자본주의의 틀이다. 철저한 틀이 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벚꽃이 날리는 뜰에서 그동안의 회포를 풀었다. 만나지 못한 그동안의 이야기를 천천히 나누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는 벚꽃이 핀 뜰을, 손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 오랜만에 만남을 축복이라도 하듯이 꽃잎은 주위를 가득 메웠다. 이제 곧 끝이 날 만남이 아니라 긴 만남을 축복하는 꽃비였으면 좋으련만. 돌아오는 길에 경산의 한의대학교 캠퍼스를 차로 돌았다. 벚꽃이 가득한 길을 따라 올라갔다. 어머니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활짝 핀 벚꽃에는 관심이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잿빛이 되어가는 엄마의 모습이 안타깝다. 눈물처럼 바람에 떨어지는 꽃비가 저리로 날린다. 어제도 사위에게 맞아 죽은 장모의 시신이 캐리어에 이삿짐처럼 담기어 신천을 떠돈다.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천박한 자본주의는 사람들을 일터로만 내몰고 가정을 돌보는 일은 모른 체 한다. 아버지로도 모자라 어머니마저도 돈을 벌게 만들고 아이들은 돌봄센터를 전전한다. 지친 잠결에 부모를 보고 소젖을 먹고 자란 아이는 어쩌면 점점 인간성을 잃어가는지도 모른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좋은 음식을 먹고 비싼 차를 타고 좋은 옷을 입는 것일까. 삶은 과정이다. 부족한 음식이라도 함께 나누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 아닐까. 옆에 있는 이웃을 알고 친구를 만나고 취미가 같은 사람끼리 모여 차를 나누며 좋아하는 걸 하고 살 때 우리는 더 많이 웃지 않을까. 혼자 휴대폰을 들고 시간을 보내기보다 친구와 공을 차는 게 더 인간답지 않을까. 삶에 지쳐 사는 것이 힘들다고 여길 때라도 우리는 인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식장에도 요양원에도 꽃비는 내린다. 꽃비 속에서 두 사람은 새로운 출발을 꿈꾸고, 다른 두 사람은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나눈다. H 할머니를 두고 돌아서는 마음이 먹먹하다. 돌아오는 길에도 꽃비는 내리는데 따뜻하지 않음은 비가 가지는 속성 때문인가. /김규인 수필가

2026-04-08

철강의 미래, 용광로의 온도가 아닌 ‘도시의 지혜’에 달렸다

지금 세계는 하나의 충격이 다른 충격을 불러내는 연쇄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중동의 군사 충돌은 더 이상 먼 지역의 비극으로 머물지 않는다. 호르무즈 해협의 차질은 곧바로 국제유가를 밀어 올리고, 국제유가의 급등은 환율과 물류비, 원료비를 흔들며, 그 충격은 제조업 국가인 한국의 공장과 가계로 곧장 밀려온다. 최근 보도들에 따르면 미국·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국제유가는 배럴당 120달러에 근접했고, 글로벌 공급 차질 우려도 커졌다. 전쟁은 언제나 먼저 약한 사람들의 삶을 무너뜨리고, 그 다음 산업과 무역의 질서를 흔든다. 민간인 피해가 이어지는 현실 앞에서 전쟁의 조속한 종식을 바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이 와중에 미국은 또 하나의 파고를 만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월 2일, 철강·알루미늄·구리 관련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 방식을 다시 손질하는 포고령에 서명했다. 백악관 설명에 따르면 철강 코일처럼 금속 자체에 가까운 품목은 전가치 기준 50% 관세를 유지하고, 철강·알루미늄·구리가 상당 부분 들어간 파생제품은 전가치 기준 25% 관세를 적용하며, 금속 비중이 15% 이하인 제품은 해당 232조 관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겉으로만 보면 제도가 정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냉장고와 세탁기 같은 완제품까지 영향을 넓히며 미국 시장으로 연결된 공급망 전체에 부담을 얹는 조치다. 철강이 직접 수출되지 않아도 철강을 품은 제품이 미국으로 들어가는 순간, 부담은 다른 형태로 되돌아온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 철강산업의 어려움은 더 선명해진다. 포스코홀딩스, 현대제철, 동국제강은 오랜 부진 끝에 2026년 1분기 반등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철강업의 수익성을 좌우하는 것은 단순한 판매량이 아니다. 미국의 보호무역이 만들어내는 통상 비용, 중동 불안이 자극하는 고환율과 원료비 상승, 그리고 갈수록 강해지는 탄소규제와 탈탄소 투자 부담이 한꺼번에 덮쳐 오고 있다. 산업은 회복을 말하는데, 비용은 회복을 허락하지 않는 형국이다. 오늘의 철강은 가격만으로 경쟁하는 산업이 아니라, 통상과 환율과 탄소가 한 몸처럼 얽힌 복합 비용 경쟁의 산업이 되었다. 이러한 현실은 포스코홀딩스 윤창원 수소저탄소연구소장의 말과도 정확히 맞물린다. 그는 한국처럼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제조업 비중이 큰 나라에서는 탄소중립과 산업성장을 함께 이루기가 구조적으로 쉽지 않으며, 하나의 기업이나 하나의 국가만의 힘으로는 해법을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진단은 단순한 기업 발언이 아니라 시대의 구조를 드러내는 고백에 가깝다. 철강 탈탄소는 공장 안의 기술 혁신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값싸고 안정적인 청정수소, 대규모 저탄소 전력, 송배전과 저장 인프라, 금융과 세제 지원, 시장 창출과 통상 대응이 함께 가야 한다. 기술 하나가 아니라 국가 시스템 전체가 움직여야 하는 과제라는 뜻이다. 그래서 포항에서 최근 이뤄진 포스코 수소환원제철소 부지 최종 승인은 단순한 개발 승인이 아니다. 국토교통부는 3월 27일 포항국가산업단지 계획 변경안을 승인·고시했고, 이에 따라 포스코는 포항제철소 인근 해역을 매립해 약 135만㎡ 규모의 수소환원제철 용지를 조성할 수 있게 됐다. 개발기간도 2041년까지 연장됐다. 이것은 선언이 아니라 입지의 확보이고, 구호가 아니라 실행의 출발이다. 포스코의 탄소중립 전환이 더 이상 연구실과 발표문 안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공간과 설비와 전력 수요의 문제로 넘어왔다는 뜻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부지가 무엇을 상징하느냐다. 수소환원제철은 기존 고로처럼 석탄에 기대어 돌아가는 공정이 아니다. 수소와 전력이 핵심이며, 결국 에너지 체계와 제철 체계가 결합된 새로운 산업 질서 위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 포스코는 포항제철소에 연산 30만 톤 규모의 하이렉스 데모플랜트 건설을 추진하고 있고, 이를 위해 2021년부터 인허가 절차를 밟아 왔다. 이는 곧 포항이 더 이상 ‘철을 만드는 도시’에만 머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포항은 수소를 조달하고, 전력을 연결하고, 환경 갈등을 조정하고, 지역 일자리와 기술 인력을 키워내는 도시여야 한다. 철강의 미래는 이제 용광로의 온도만으로 결정되지 않고, 도시의 민주주의 수준과 사회적 조정 능력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환경 및 사회문제에 대한 공론화와 그것을 해결하는 민주주의적 과정은 더 이상 산업의 바깥에 있는 장식물이 아니다. 그것 자체가 산업경쟁력의 일부가 되었다. 주민의 우려를 무시한 채 속도만 높인 사업은 결국 더 큰 지연과 더 큰 비용으로 돌아온다. 반대로 충분한 정보 공개와 토론, 검증과 보완, 신뢰 형성은 사업의 시간을 단축하고 불확실성을 줄인다. 포항의 수소환원제철 부지 역시 긴 행정절차와 환경 논란, 주민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승인에 이르렀다. 이 과정은 불편했을지 몰라도, 바로 그런 불편을 견디는 능력이 앞으로의 산업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탈탄소 시대의 경쟁력은 속도만이 아니라 정당성에서 나온다. 포항시민의 지혜가 필요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탄소중립을 말하는 목소리는 많다. 그러나 정작 그 대책을 세우기 위한 지역 차원의 숙의는 자주 늦어진다. 수소는 어디서 어떻게 들여올 것인가.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계통 전력은 어떤 조합으로 연결할 것인가. 해양환경 영향은 어떤 기준으로 감시하고 공개할 것인가. 지역 대학과 연구기관, 중소 협력사는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가. 철강 노동자의 전환 교육과 일자리 안전망은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이 질문들이 언론과 의회와 시민사회, 기업과 행정의 공적 토론장에서 더 자주, 더 깊게 다뤄져야 한다. 수소환원제철의 성공은 포스코만의 성공이 아니고, 포항만의 사업도 아니다. 그것은 한국 철강산업이 관세와 환율과 탄소의 삼중 압박을 뚫고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묻는 시험대다. 지금 포항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첫째, 전쟁과 통상 충격이 길어질수록 산업의 체질 전환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둘째, 수소환원제철을 지역의 자부심만이 아니라 구체적 정책과 인프라의 과제로 다뤄야 한다. 셋째, 환경과 안전을 비용이 아니라 경쟁력으로 이해해야 한다. 넷째, 지역사회 전체가‘찬성’과‘반대’의 단순한 구호를 넘어, 어떻게 성공시킬 것인지의 설계 논의로 들어가야 한다. 전쟁의 바람은 멀리서 불어오지만, 그 바람이 흔드는 것은 결국 우리 삶의 식탁과 공장의 불빛이다. 미국의 관세는 워싱턴에서 발표되지만, 그 파장은 포항의 제철소와 협력업체와 항만과 지역경제에 닿는다. 탄소의 시계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포항은 더 늦기 전에 토론해야 하고, 설계해야 하며, 함께 결단해야 한다. 수소환원제철의 성공과 철강산업의 빠른 회복을 말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산업의 미래는 기술에서 시작되지만, 완성은 시민의 지혜와 사회의 합의 속에서 이루어진다.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2026-04-08

(특별기고) 포스코의 결단, 포항 상생의 새로운 길을 열다

포스코가 협력업체 근로자 7000여 명 규모의 직고용을 전격 결정했다. 이는 단순한 고용 형태의 전환을 넘어, 포항 지역사회가 오랫동안 안고 있던 갈등을 마무리하고 상생의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책임 있는 결단으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무엇보다 이번 조치의 가장 큰 의미는 15년 가까이 이어져 온 소모적인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일단락지을 수 있는 분명한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사내협력사 문제는 지루한 법정 다툼과 현장의 반목을 낳으며 기업과 노동자, 그리고 지역사회 모두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되어 왔다. 이제는 승패를 다투는 소송의 시간을 넘어,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노사 질서를 세워야 할 때다. 갈등과 대립의 구조를 책임 있게 정리함으로써, 이제 노사는 더 본질적인 과제에 집중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됐다. 소송에 쏟던 시간과 비용을 현장의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강화, 그리고 지역과의 동행에 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수천 명에 달하는 근로자의 고용 안정은 개별 가정의 안정을 넘어 포항 지역경제 전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이는 소비와 내수를 진작시켜 위축된 골목상권에 생기를 더하고, 포항의 산업 생태계를 한층 더 탄탄하게 만드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다. 또한 이번 직고용은 제철소 현장을 묵묵히 지켜온 근로자들의 헌신에 대한 합당한 예우이자, 현장의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중대한 발걸음이다. 대규모 중후장대 산업 현장에서 안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우선 가치다. 소속감과 책임성을 공유하고 관리 체계를 일원화하는 통합적 운영 시스템은 현장의 안전망을 더욱 촘촘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더 안전한 작업환경을 구축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 철강산업은 글로벌 공급과잉, 거세지는 통상 압박, 탄소중립 전환,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 등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처럼 엄중한 시기일수록 내부의 갈등 비용을 최소화하고 미래 경쟁력 확보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이번 결정이 과거의 문제를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철강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모범적인 상생 모델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포스코의 경쟁력은 곧 포항의 경쟁력이다. 포항 남구와 울릉군의 민생과 발전을 살피는 국회의원으로서, 상생의 새 길을 연 포스코의 결단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이번 결정이 15년간 이어진 갈등을 딛고 안전과 책임, 신뢰를 바탕으로 포스코와 지역사회가 함께 새로운 100년의 미래를 열어가는 뜻깊은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국민의힘 이상휘(포항남·울릉) 의원

2026-04-07

공황장애는 왜 생기고, 어떻게 회복되는가

진료실에서 공황장애 환자들이 자주 묻는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다. 이해되지 않는 증상은 두려움을 키우고, 두려움은 다시 증상을 증폭시킨다. 공황장애는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몸과 마음, 뇌와 삶의 맥락이 함께 작용한다. 인간의 뇌에는 위험을 감지하고 생존을 준비시키는 경보 체계가 있다. 위협을 느끼면 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심장이 빨라지고 호흡이 가빠지며 몸이 긴장한다. 정상적인 반응이다. 문제는 이 경보가 지나치게 예민해질 때다. 화재경보기처럼 실제 위험이 없어도 경보가 울리는 상태가 공황발작이다.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 흔들리면 이 경보 체계는 쉽게 과민해진다. 그래서 공황장애는 의지나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불안 회로가 예민해진 기능적 질환이다. 그러나 공황장애는 여기서 완성되지 않는다. 몸의 반응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병을 깊게 만든다. 같은 심장 두근거림도 어떤 사람은 “긴장했구나”라고 받아들이지만, 어떤 사람은 “심장에 문제가 생겼다”고 해석한다. 이 차이가 공황을 만든다. 이를 파국적 해석이라고 한다. 가슴 두근거림을 심장마비로, 숨가쁨을 질식으로, 어지러움을 뇌졸중으로 단정하는 순간 공포는 커진다. 공포가 커지면 교감신경은 더 올라가고, 몸의 증상은 더 강해진다. 그리고 그 증상을 다시 위험으로 해석한다. 이 반복이 공황장애의 핵심이다. 문제는 공황발작이 아니라, 그 이후의 해석이다. 여기에 스트레스와 피로가 겹치면 신경계는 더 예민해진다. 수면 부족, 과로, 관계의 긴장은 경보를 쉽게 울리게 만든다. 또한 회피가 악순환을 강화한다. 발작을 경험한 장소를 피하면 일시적으로는 안심이 되지만, 뇌는 그 회피를 통해 “그곳은 위험하다”고 학습한다. 그래서 다음에는 더 빠르고 강하게 반응한다. 삶의 범위는 점점 좁아지고 공포의 영향력은 커진다. 그래서 치료의 목표는 분명하다. 이 악순환을 끊는 것이다. 그 출발은 몸을 안정시키는 데 있다. 공황 상태에서는 신경계가 과도하게 흥분되어 있어 이성적 이해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 몸이 안정되어야 생각을 다룰 수 있다. 약물치료는 과민해진 신경계를 안정시키고 경보의 민감도를 현실적인 수준으로 낮춘다. 이는 증상을 없애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과도하게 울리는 경보를 정상 범위로 되돌리는 과정이다. 몸이 안정되면 다음 단계가 가능해진다. 해석을 바꾸는 치료다. 공황장애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일어나는가’보다 ‘어떻게 해석하는가’이다. 인지행동치료는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점검하고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는 연습을 한다. 동시에 회피하던 상황을 다시 경험하면서 “괜찮다”는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간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공황의 강도와 빈도는 줄어든다. 공황은 이해되는 순간, 힘을 잃는다. 결국 공황장애 치료는 몸의 반응을 낮추고 해석을 바꾸는 두 축으로 이루어진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작동할 때 공황장애는 더 이상 위태롭지 않다. 공황장애는 낯설고 강렬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병은 아니다. 공황장애는 삶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을 때만 삶을 좁힌다. 이해하는 순간, 회복은 시작된다. /사공정규 동국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의학박사 …………………… 사공정규 33년 차 공황·불안 전문의이자 ‘힐링닥터’로 알려진 그는 증상 호전을 넘어 삶의 근본적 회복을 위한 치료에 주력한다. 동국대 의대에서 3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진료·연구·교육에 힘썼고,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 메사추세츠 종합병원(MGH)에서 방문교수와 임상연구원으로 활동했다.

2026-04-07

우유니, 붉은 눈물과 하얀 희망의 노래

볼리비아의 우유니, 그곳은 시간을 붙잡아 두는 마법 같은 땅이었다. 며칠을 더 머물게 한 광활한 소금 사막은, 밤의 신비로움을 품기 위해 오후의 햇살 속으로 이끌었다. 전 세계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신비로운 현장으로 가는 길목에는, 또 하나의 역사적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바로 ‘열차 무덤’이라 불리는, 잊혀진 시간의 잔해였다. 사막 한가운데, 뼈대만 남은 열차들이 침묵 속에 멈춰 서 있다. 한때 사람과 자원을 싣고 생명처럼 달렸을 철로는 이제 붉게 녹슨 채 바람의 노래에 흩날린다. 사람들은 우유니를 떠올릴 때, 발밑으로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하늘을 비추는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을 먼저 상상한다. 나 역시 그랬다. 눈부신 백색의 천국, 맑고 투명한 하늘을 먼저 그렸다. 하지만 우유니가 처음 제게 보여준 얼굴은, 그 찬란한 백색의 천국이 아니었다. 입구에서 저를 맞이한 것은 ‘열차 무덤’이라는 이름의 황량한 풍경이었다. 삶의 기세를 잃은 거대한 쇳덩이들이 사막 위에 버려져, 바람은 철골 사이를 스치며 낮고 긴 휘파람 소리를 냈다. 가까이 다가가자, 철판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과 상처가 깊이 새겨져 있었다. 부식된 객차 안에는 더 이상 좌석도, 사람의 온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곳은 단순한 포토존이 아니라, 시간이 버려진 자리, 욕망이 스쳐 지나간 빈터였다. 이 열차들은 19세기 말, 볼리비아 땅속 깊은 곳의 은과 주석을 더 빨리, 더 많이 실어 나르기 위해 태어났다. 제국과 자본은 철길을 깔고 이 땅의 풍요를 착취하기 위해 달려왔다. 그러나 광산의 빛이 사그라들고 경제적 가치가 희미해지자, 한때 그렇게 필요했던 열차들은 사막에 그대로 버려졌다. 필요할 때는 가져가고, 쓸모가 다하면 버려지는, 잔인한 역사의 반복이었다. 우유니의 붉은 녹은 단순한 부식의 흔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착취의 기억이었으며, 오래된 상처의 색처럼 보였다.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에서 셔터를 누른다. 하지만 어떤 장소는 사진보다 더 깊은 질문을 남긴다. 열차 무덤이 바로 그런 곳이다. 저는 그곳을 걸으며 ‘다크 투어리즘’을 떠올렸다. 비극과 상처의 현장을 마주함으로써 과거를 성찰하고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고개를 숙이게 하는 여행 말이다. 우유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기 앞서, 겸손함을 배우게 하고 눈부심보다 슬픔을 먼저 통과하게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유명한 하얀 세계가 펼쳐진다. 끝없는 소금 평원 위에서 하늘과 땅은 경계를 지우고 하나의 거대한 거울이 된다. 발밑은 눈처럼 희고, 머리 위는 유리처럼 맑다. 여행자들의 웃음소리는 소금 위를 굴러가고, 세상은 마치 아직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백지처럼 보인다. 그 순백의 풍경 앞에서 사람은 저절로 겸손해진다. 하지만 우유니의 하얀 빛은 단지 아름다움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열차 무덤에서 시작된 붉은 눈물은 이제 리튬의 바다로 이어진다. 그 깊은 소금층 아래에는 전기차 시대의 핵심 자원인 리튬이 잠들어 있다. 사람들은 이를 ‘하얀 석유’라고 부른다. 과거 은과 주석이 이 땅의 운명을 흔들었다면, 오늘의 리튬은 볼리비아의 미래를 바꿀 또 하나의 희망이 될 수 있다. 붉은 녹이 상처의 기억이라면, 하얀 리튬은 새로운 가능성의 이름이 된다. 그러나 진정한 희망은 자원 그 자체에서 나오지 않는다. 자원이 많다고 해서 미래가 저절로 밝아지는 것은 아니다. 희망은 자원을 다루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볼리비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아마 이런 불안이 남아 있을 것이다. “이번에도 우리 것은 남이 가져가고, 우리에게는 상처만 남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은 단순한 의심이 아니라, 역사가 남긴 깊은 상처에서 우러나오는 절규다. 이 상처를 치유하는 길은 차가운 계약서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손님’처럼 와서 필요한 것만 챙겨 가는 관계를 넘어서야 한다. 자원을 사 가는 나라가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교육을 돕고, 환경을 지키며, 안데스의 고유한 문화를 존중하는 태도. 관광객 또한 사진 몇 장만 남기고 떠나는 소비자가 아니라, 현지인의 삶을 경청하고, 작은 마을의 빵을 나누며, 그들의 시간을 존중하는 진정한 여행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정은 소유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존중과 경청에서 자라난다. 우유니의 열차 무덤은 더 이상 죽은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아픈 과거를 잊지 않으면서도 그 위에 새로운 내일을 세우려는 한 나라의 조용한 의지를 보여주는 이정표이다. 녹슨 철로 위에도 꽃은 피어야 한다. 바로 그런 아픈 자리이기에 더욱 피어나야 한다. 상처를 기억하되 원망에만 머물지 않고, 그 기억을 희망으로 바꾸려는 힘.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우유니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진짜 아름다움일지 모른다. 나는 다시 붉은 열차 너머로 펼쳐진 하얀 평원을 바라본다. 우유니는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이곳에서 과거의 그림자만을 보는가. 아니면 그 그림자를 딛고 함께 만들어 갈 눈부신 빛을 보는가.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

2026-04-07

거센 김부겸 바람···국힘 ‘경북자민련’되나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대구시장 선거 완주 의지를 굳힌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기차는 떠났다”는 글을 남겼다. 전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공개적으로 권유한 ‘국회의원 재보선 출마’를 거부한 것으로 해석된다. 만약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도 탈당하고 무소속 출마를 하게 되면 대구시장 선거는 여·야·무소속 후보 4파전 구도가 된다. 대구지역 한 의원은 “정말 그렇게 되면 대구시장을 민주당에 갖다 바치는 꼴이 될 것”이라고 했다. 여권은 현재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총력전에 나섰다. ‘여당 프리미엄’을 최대한 활용할 경우 김 후보 당선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1박 2일 일정으로 의성과 영덕을 찾은 데 이어 8일에는 대구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연다. 정 대표는 이날 김 후보에게 공천장을 주는 형식을 빌려 ‘중앙당의 전폭 지원’을 약속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여당 프리미엄’이 없어도 김 후보는 대구시민들에게 인기 있는 정치인이다. 3선 국회의원이었던 그는 19대 총선에서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대구 수성갑에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그러다가 4년 후(2016년)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다시 수성갑에 출마해 62.3%의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됐다. 당시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 후보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였다. 그 후 2020년 4월 15일 치러진 제21대 총선에서 40%에 가까운 득표율을 기록했는데도 불구하고 아깝게 낙선했다. 김 후보가 대구 현역 국회의원일 때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릴 때였다. 당시 대구지역 종합병원에는 입원할 병실이 없어 열이 펄펄 나는 코로나 환자 수천 명이 응급치료를 받지 못한 채 집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경북도 말고는 대구 코로나 환자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김 후보는 코로나 대구 펜데믹 때인 2020년 2~3월에 민주당 ‘코로나19 대구경북 재난안전특위’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 주요 인사들이 “대구경북을 봉쇄하라”, “대구는 손절해도 된다”며 비수를 꽂는 언행을 서슴지 않을 때, 대구시민 편에 서 주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가 김 후보였다. 당시 김 후보가 추경예산 1조394억원을 대구에 지원해준 것은 시민들에게 큰 도움이 됐다. 그는 지난달 30일 대구시장 출마선언을 하면서 “대구가 코로나 19로 고통받을 때 제가 1조원이 넘는 지원금을 대구·경북에 갖다 주이 신문에도 나왔잖아요. 뭐라캤습니까. “지 돈 가왔나” 캤잖아요. 그것 때문에 내가 속이 뒤집어져 정치 치웠잖아예”라며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정계에서 사실상 은퇴한 김 후보를 대구시장 선거에 불러낸 주체는 국민의힘이라고도 볼 수 있다. 대구시장 후보 공천파동에다 당 지도부 리더십 실종까지 겹쳐 국민의힘이 무기력해지니까 민주당이 삼고초려하며 김 후보를 소환한 것이다. 만약 오늘이 선거일이면 선거가 3파전이 되든 4파전이 되든, 국민의힘은 ‘TK 자민련’이 아닌 ‘경북 자민련’으로 쪼그라들 가능성이 높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6-04-07

‘라이언 일병’ 다시 보기

1998년 제작해 큰 흥행을 본 미국영화 ‘라이언일병 구하기’는 전쟁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전쟁의 비인간성, 잔인한 폭력성, 죽음 앞에서의 동지애, 개인보다 국가 이익에 협조하는 군인정신, 전쟁의 막대한 비용 등 전쟁이 남기는 폐해를 통해 전쟁의 아픈 이면을 다룬 영화다. 특히 라이언 형제 4명 중 3명이 전사하고 마지막 남은 막내 라이언을 구하기로 결정한 미국 정부의 명령과 임무를 부여받는 8명의 병사가 겪는 갈등과 혼란 등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과연 한 명의 병사를 구하기 위해 8명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이 옳은 결정인지를 되묻고 있다. 미국은 20년간 지속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단 한 명의 실종자도 없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이를 두고 “전장에 남겨진 군인은 어떤 희생과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고국의 품으로 다시 데려온다는 미국의 의지”라 풀이했다. 며칠 전 이란군 미사일에 격추됐던 F-15에 탑승했다 실종된 미군 장교를 극적으로 구한 미국의 결정을 두고 많은 언론들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다시 소환했다. 2000m가 넘는 이란 산등성에 고립된 1명의 장교를 구하기 위해 수백 명의 특수부대 병사들을 보내 고난도 작전을 수행한 미국의 결정이 흡사 영화 라이언 일병을 닮았다는 것이다. 미군 장교가 이란에 포로로 넘어갈 경우 미국이 처할 불리한 점이 고려됐다 하더라도 미국 정부가 1명의 장교를 구하기 위해 엄밀한 작전을 펼친 것은 많은 이에게 감동이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건 장병을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국가의 존립 이유는 충분히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4-07

전쟁과 에너지 위기 이후, 자립도시가 필요하다

요즘 주유소 앞 가격 전광판을 볼 때마다 마음이 철렁한다. 일반 가정도, 골목의 자영업자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전쟁이 우리 밥상물가와 골목 상권까지 흔드는 일이 이제는 낯선 일도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세계의 불안정한 연결망 위에 일상을 얹어 놓고 살고 있다. 팬데믹 기간 영국에서 그 불안함을 직접 마주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이던 어느 날 대형마트에 갔는데 신선한 채소가 가득했어야 할 진열대가 텅텅 비어 있었다. 오직 말라비틀어진 콩깍지 한 팩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풍요롭고 견고해 보이던 시스템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연결이 곧 경쟁력이라고 믿어왔다. 값싼 에너지와 자유로운 물자 이동, 촘촘한 공급망은 번영의 조건이었다. 그러나 팬데믹과 전쟁은 그 믿음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지금 우리는 보호무역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공급망은 흔들리고, 에너지 가격은 치솟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 이제 도시는 얼마나 빠르게 연결돼 있는가 보다, 연결이 흔들릴 때도 스스로 설 수 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따라서 필자는 자립도시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립도시는 외부와 단절된 자급자족 도시를 뜻하지 않는다. 외부와 연결돼 있으면서도, 흔들릴 때 지역의 삶을 스스로 지탱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을 갖춘 도시를 말한다. 적어도 먹고, 저장하고, 돌보고, 결정할 수 있는 힘은 지역 안에 남아 있어야 한다. 외부 충격이 와도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지지 않는 힘, 그리고 지역의 앞날을 남에게만 맡기지 않는 힘. 그 두 가지가 자립도시의 핵심이다. 자립도시는 단지 버티기 위한 장치로 끝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위기에 대비하려고 만든 구조가 시간이 지나면 그 지역의 운영 방식이 되고 생활의 리듬이 되어, 결국은 도시의 정체성이 된다. 식량의 주권도 마찬가지다. 단지 비상시를 위한 대비책만이 아니라, 한 지역의 생산 방식과 시장, 문화와 삶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자립은 살아남기 위한 준비이면서, 동시에 그 지역이 자기 색을 잃지 않는 방식이기도 하다. 자립은 연결의 반대가 아니다. 오히려 자립 기반이 있을 때 외부와의 연결도 더 건강해질 수 있다. 스스로 설 수 없는 도시는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끌려 다니게 된다. 반대로 최소한의 자립 기반을 가진 도시는 외부와 더 대등하고 안정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좋은 연결은 늘 버틸 힘 위에서 만들어진다. 다만 이런 구조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실제로 느껴지고 쓰여야 오래간다. 보이지도 않고 쓰이지도 않는 시스템은 금방 힘을 잃는다. 그래서 자립도시는 결국 공간과 건축, 시장과 거리, 공공시설 같은 일상의 장면 속에서 드러나야 한다. 이제 도시가 물어야 할 것은 얼마나 넓게 연결돼 있느냐가 아니다. 연결이 흔들릴 때 무엇으로 버틸 수 있는가, 그리고 그 힘을 바탕으로 어떤 질서와 풍경을 자기 손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가다. 앞으로 도시의 생존은 거기에 달려있을 것이다. /조관필 한동대 교수

2026-04-07

깨진 유리창의 법칙과 백마리 원숭이 효과

조직의 흐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균열과 작은 행동에서 갈린다. 기업은 전략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환경과 행동의 축적으로 움직인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과 ‘백마리 원숭이 효과’ 개념이 이를 말해준다. 깨진 유리창 법칙은 사소한 무질서가 방치될 때 더 큰 혼란과 범죄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뉴욕 지하철 범죄 소탕 원리’도 벽의 낙서와 바닥 쓰레기 등 나쁜 환경에서 범죄가 일어나고, 경찰을 투입해도 멈추지 않는다. 낙서를 지우고 바닥을 청소했더니 범죄가 사라졌다. 깨끗한 환경은 기본이 지켜진다는 의미이고, 보이지 않는 룰이 존재하는 것이다. 제조기업에서는 현장 바닥에 쌓인 불필요한 자재, 정리되지 않은 공구, 지켜지지 않는 작업 표준, 묵인되는 규정 위반 등 이것은 단순한 ‘작은 문제’가 아니라, 조직 전체에 보내는 잘못된 신호다. 이 신호가 쌓이면 직원들의 행동 기준은 점점 낮아지고 결국 품질 저하, 안전사고,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진다. 혁신이 실패하는 이유는 거창한 전략의 부재가 아니라, Clean 마인드가 깨지거나 작은 무질서를 방치하는 태도에 있다. 백마리 원숭이 효과는 변화의 확산 원리를 시사한다. 교토대학교 연구진이 남쪽 고지마섬 원숭이를 관찰한 결과, ‘한 어린 원숭이가 고구마를 씻어 먹기 시작하고, 점점 개체 수가 늘어나 100마리에 도달하자 멀리 떨어진 북쪽 홋카이도 원숭이들도 같은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한 개체의 행동이 주변으로 퍼지고, 일정 수준을 넘으면 집단 전체의 변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변화는 지시로 이루어지지 않고, 반복과 확산을 통해 문화로 자리 잡는다. 기업에서 보면, 변화는 소수에서 시작, 한 사람의 개선 행동이 주변으로 확산하고 문화로 간다. 초기 점화 단계(0~10%)는 소수만 참여하고 대부분 관망한다. 확산 단계(10~30%)는 성과가 보이기 시작하고 주변에서 따라 한다. 여기서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 타임이다.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인 폭발 단계(40% 이상)에 이르면, 조직 전체에 빠르게 확산하고, ‘안 하면 이상한 조직’이 된다. 실패하는 조직의 공통점은 전사적으로 동시에 성공하려는 전략이 문제가 되고, 작은 위반을 묵인한다. 결국 변화는 확산되지 못하고 10% 수순에서 멈춘다. 성공하는 조직은 첫째, 환경부터 바꾼다. 정리정돈, 표준 준수, 기본을 철저히 한다. 둘째, 작은 성공을 만든다. 한 개 라인, 한 개 팀에서 확실한 성과를 만든다. 셋째, 확산을 설계한다. 성과를 보여주고, 사람들이 따라오게 만든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작은 문제를 방치하지 않고, 작은 성공을 반복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성공의 비밀이다. 변화는 설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성공과 환경 변화로 전염된다. 기업 혁신은 전략이나 시스템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깨진 유리창을 고치는 것, 작은 행동을 바꾸는 것이다. 그 작은 변화는 조직 전체를 바꾸는 힘이 된다. 작은 무질서를 제거하면 조직은 무너지지 않고, 작은 행동을 확산시키면 조직은 스스로 바뀐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

2026-04-07

목욕탕의 파수꾼과 이방인

아버지가 떠나신 뒤 집안의 공기는 줄곧 영하에 머물러 있었다. 상실의 무게는 중력보다 무거워 어머니의 어깨를 짓눌렀고 나는 그 적막한 냉기를 견디다 못해 어머니를 이끌고 대중목욕탕으로 향했다. 어머니가 평생을 살아온 동네, 낡은 타일과 빛바랜 간판이 세월을 증명하는 그곳은 슬픔을 씻어내기에 가장 적당한 온도를 품고 있을 것만 같았다. 목욕탕 문을 여는 순간 자욱한 수증기 사이로 낯선 공기가 나를 덮쳤다. 그곳은 단순한 세척의 공간이 아니었다. 탕 주위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앉아 있는 ‘여사님들’의 무리는 마치 고대 그리스 원형극장의 합창단처럼 견고한 결속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집요하고도 원초적이었다. 옷가지와 함께 사회적 지위나 나이를 벗어던진 그곳에서 뉴페이스인 나는 그저 해부되어야 할 하나의 피사체였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이어지는 그들의 ‘시각적 검문’은 노골적이었고, 내가 샤워기를 틀고 자리를 잡는 모든 동선을 따라 그들의 눈동자가 집요하게 뒤를 쫓았다. 침입자가 된 듯한 불쾌감이 습한 공기와 섞여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탕 속에 몸을 담그는 찰나, 기다렸다는 듯 질문의 화살이 날아왔다.“누구네 집 딸이냐, 며느리냐?”“어디서 왔어? 몇째야?”그들에게 프라이버시는 수증기처럼 휘발된 개념이었다. 이름보다 관계를, 직업보다 근거지를 묻는 그들의 질문 세례 속에서 나는 알몸보다 더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는 익숙한 듯 그들의 질문에 대답을 얹어주셨고, 그제야 나에 대한 감시는 호구조사라는 통과 의례로 변모했다. 어머니와의 목욕은 두 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다. 나에게 목욕은 ‘씻어내야 할 과업’이었으나, 그들에게 목욕은 ‘머물러야 할 일상’이었다. 그 여사님들은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나갈 때까지 단 한 번도 그 자리를 이탈하지 않았다. 얼굴에는 초록빛 오이를 촘촘히 붙인 채, 마치 영겁의 시간을 박제해 놓은 듯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흐르는 수증기 속에서 아이스 커피를 시켜 마시며 어제의 일상과 오늘의 일과를 나누었다. 1분 1초를 효율의 잣대로 재단하며 언제나 시간에 쫓기듯 살아가는 도시의 관성으로 볼 때 그것은 기이한 풍경이었다. 나에게 시간은 직선으로 달려가는 화살이었으나 그들의 시간은 탕 안의 물처럼 그저 그 자리에서 일렁이며 고여 있었다. 그 정체된 시간을 바라보며 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한편으로는 무엇에도 쫓기지 않는 그들의 태평함이 지독하게 부러웠다. 마감 시간에 쫓기고, 성과에 매몰되어 스스로를 소진하던 나에게 오이 향기 속에 파묻혀 흘려보내는 두 시간은 사치스러운 평화처럼 느껴졌다. 축축한 수증기 사이로 비치는 그들의 느릿한 몸짓은 마치 정지된 화면처럼 비현실적이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맡긴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눈동자들, 의미 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낄낄거리는 웃음소리. 그 속에서 나는 나만의 잣대를 들이대며 그들을 평가하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 저토록 귀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가’라는 날 선 질문은 이내 그들을 향한 연민으로, 그리고 다시 나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려는 치졸한 시선으로 변질되었다. 성취가 없는 삶은 무가치하다는 강박이 이곳의 안온한 정적을 불순한 게으름으로 규정짓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풍경 속에 섞여 있다 보니, 문득 낯선 감각이 발끝에서부터 차올랐다. 거창한 목적지 없이도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손길에는 다정함이 배어 있었고, 탕 속에서 나누는 대화들은 이 공간을 유대의 장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요구하는 치열한 ‘생산’의 굴레에서 잠시 벗어나 살아있음을 만끽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생의 여백’이라 비하했던 그 빈틈이야말로, 상처 입은 일상을 회복시키는 치유의 공간이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나의 오만함 너머로 사람들의 진짜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비판할 문제도, 평가할 문제도 아니었다. 어머니가 그 두 시간 동안만큼은 슬픔을 잊고 여사님들의 수다에 미소 지을 수 있었다면 그 고인 시간은 그 자체로 숭고한 치유의 시간이었으리라. 목욕탕을 나오자 찬바람이 불어왔지만, 등 뒤에 남겨진 오이 향기와 왁자지껄한 소음이 어머니와 나의 등을 따뜻하게 밀어주고 있었다. 각자의 보폭으로 걸어가는 삶 속에서, 가끔은 이렇게 시간을 죽이며 생을 살리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김경아 작가

2026-04-07

군사력 ‘세계 5위’라는 착각

이재명 대통령은 “군사력 세계 5위인 대한민국이 스스로 방어하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하면서 우리의 국방비가 북한 GDP의 1.4배임을 강조했다. 자주국방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이었다고 하겠지만, 자칫 ‘핵무기의 절대성’을 경시(輕視)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대통령의 인용 근거가 된 GFP(Global Firepower)의 평가는 핵무기를 제외한 재래식 군사력 순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가안보를 책임진 대통령은 군사력의 강점과 약점을 국민에게 정확히 알리고 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만약 국민이 “재래식 군사력 5위의 한국이 핵무기를 가진 재래식 군사력 31위인 북한의 핵 공격을 받는다면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재래식 군사력이 아무리 강해도 핵무기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핵은 절대무기이고 비대칭전력’이기 때문에 ‘핵에는 핵’만이 유일한 대응책이다. 비핵국가인 한국이 한미동맹에 의한 ‘미국의 핵우산’으로 북핵 위협에 대처하고 있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우리의 재래식 전력이 세계적 수준이고 자주국방을 위한 중요한 기반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고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마치 ‘세계 5위의 재래식 군사력’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GFP가 발표한 군사력 순위는 20세기 기준으로 21세기 군사력을 평가했다는 약점이 있고, 핵과 같은 전략무기를 제외한 통계일 뿐만 아니라, 군사력의 상대성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있다. 이러한 통계를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되며, ‘지피지기(知彼知己)’가 중요한 전쟁에서는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상대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전략은 성공하지만 ‘주관적 해석’에 의한 전략은 실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주국방’과 ‘한미동맹’의 관계를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자주국방이 “타국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국의 안전과 영토, 주권을 지켜내는 능력”이라고 한다면 현재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가? 재래식 군사력은 북한에 비해 압도적이지만, 비대칭 전력인 핵무기가 우리에게는 없다. 만약 북한이 핵무기로 공격해온다면 우리가 미국의 핵우산 없이 어떻게 방어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자주국방이라는 당위’와 ‘북핵 위협이라는 현실’ 사이에는 격차가 있고, 그 격차를 메꾸어주는 것이 바로 한미동맹이다. 현재의 남북대치 상황에서는 자주파와 동맹파의 대립, 즉 자주국방이냐 한미동맹이냐의 논쟁은 어리석고 무의미하다. 장기적으로는 ‘자체 핵개발을 포함한 자주국방 능력’을 제고해나가면서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핵우산으로 북핵 위협에 대처하는 것이 최선이다. 단순한 참고자료에 불과한 GFP의 군사력 순위에 대한 과신이나 정치적 해석은 금물이다. 정치인들이 군사적 통계나 정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국가안보가 위험해진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6-04-06

어느 벚꽃이 흐드러진 날에

전원생활을 시작하면서 포항 주변 바닷가 길과 산속 길을 드라이브하는 취미가 생겼다. 주말 하루는 차를 몰고 바닷가로 산속으로 떠난다. 정원 마당 정리를 마치고, 집을 나선다. 집사람은 커피를 내리고, 나는 음악을 탐색한다. 덕성리 마을을 나서 곡강천 입구에 도달하기 전까지 약 5분의 시간에 우리는 그날의 드라이브 코스를 정한다. 바닷가로 갈 것인지, 산속으로 갈 것인지. 남쪽으로는 흥환, 구만, 대보, 구룡포, 양포, 감포, 전촌 쪽 바닷가로 갔다가 돌아오기도 하고, 오천, 진전 고갯길 넘어 기림사길, 불국사, 보문단지 코스로 가기도 한다. 안계리 사골동 넘어 양동마을 쪽도 남쪽이라면 남쪽이다. 서쪽 산속 길은, 기계, 죽장, 두마 쪽, 기계, 죽장, 청송길 쪽, 유계리, 경북수목원, 상옥, 가사리, 입암길 쪽, 장사, 달산, 옥계, 부남 쪽이 주로 가는 길이다, 북쪽 바닷길은 강구에서 대진항으로 이어지는 블루로드 길이 단연 으뜸이다. 블루로드 길은 영덕에서 노물로 들어가는 길도 좋다. 가장 많이 다녀본 코스는 장사, 달산, 옥계, 가사리 코스이다. 절경이다. 옥계길을 가다 보면 중간에 계곡을 가로질러 하옥으로 가는 길이 있다. 넘어가는 고갯길 일부가 비포장길이 있기도 하고, 길이 험하여 집사람이 무서워하는 코스이기도 하다. 계곡을 따라 하옥을 가로질러 상옥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아름답다. 상옥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멋진 동네다. 상옥에서 나가는 길이 4곳이다. 가장 먼저 우측으로 청송 부남으로 가는 길이 있고, 좌측으로 청하 유계리로 넘어가는 길이 나온다. 거기 삼거리를 지나 조금 더 가면 우측으로 가사리로 넘어가는 길이 나오는데, 그 길이 가사천을 따라 죽장 입암리로 가는 길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길이다. 상옥의 남쪽은 성법리를 지나 기북 오덕마을로 이어진다. 상옥에서 성법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은 가을에 단풍이 절경이다. 봄날 곳곳이 벚꽃의 향연이다. 지금은 단연코 영천댐 ‘벚꽃 백리길’이다. 기계를 지나 죽장으로 가는 길에 정자리를 지나 자동리로 좌회전하여 쭉 가면 된다. 한때 자양댐으로 불린 영천댐 벚꽂 백리길은 대한민국 최고의 벚꽃 길이다. 벚꽃 시즌이면 매년 집사람과 2번 이상 가는 명소이다. 정자리에서 내려가는 길도 좋지만,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코스도 좋다. 임고에서 죽장으로 가다가 충효리에서 좌회전하여 보현산 천문대 쪽 별빛마을을 돌아 나오는 길이다. 오늘 당장 커피 한 통 챙겨서 출발해 보시길. 물론, 차 안의 음악 중, 우순실의 ‘어느 벚꽃이 흐드러진 날에’는 필수다. ‘돌아보지 말아요/ 멈춰 서지 말아요/ 지난날들일랑 기억하지 말아요/ 떠난 내 뒷모습 정말 보기 싫어/ 그저 조금만 더 울고 갈께요/쳐다보지 말아요 생각하지 말아요/이렇게 가슴이 타버릴 줄 몰랐죠/ 뒤돌아 간들 무슨 소용 있나요/그땐 정말 내가 바보였나 봐/ 이젠 내가 철이 든 거죠/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바람결에 띄울까 지쳐버린 마음을/ 어느 벚꽃이 흐드러진 날에’ 볼륨 UP!! /공봉학 변호사

2026-04-06

원픽족 되다

실시간 문자투표가 시작되었다. 마음이 급하다. 내 휴대폰으로 얼른 문자투표를 했다. 한 표라도 더 보태려고 아내 휴대폰으로도 문자를 보내려는데 안된다. 두 사람이 번갈아 휴대폰을 이리저리 만져봐도 마찬가지다. 평소에 문자를 잘 보내던 두 사람이 급한 김에 혼침했나 보다. 마음을 가다듬고 찬찬히 메뉴를 찾아 문자투표를 성공시켰다. 이로써 우리 부부도 내 응원 가수에게 두 표를 보탰다. 낮에 옛 학교 동기 카톡에도 문자투표를 독려하는 영상을 올리고 투표 부탁을 해 두었다. 몇 주 전부터 대국민 응원 투표플랫폼에서 하루에 한 번씩 응원 투표도 했다. 그 결과, 내가 응원하는 가수는 최종 5위로 톱 7안에 들었다. 5번의 도전 끝에 성공한 감격의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한 종편의 예능 프로그램 ‘현역가왕3’ 결승 2차전 때의 이야기다. 내 응원 가수를 TV에서 처음 본 것은 ‘미스트롯2’에서 였다. 경연에서 참가자들이 최선을 다해 열창하는 모습이 사람을 감동케 하는 데 매료되어 계속 시청했다. 그중 앳되고 아름다운 한 가수 K양이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되바라지지 않아 보여서 유심히 보게 되었다. 게다가 성씨도 같으니, 막내딸이라도 보는 듯했다. 예술의 목적이 미학(美學)이란 관점에서 그녀는 더 돋보였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아 자꾸 듣게 된다’라고 노래 영상의 어떤 댓글이 말하듯, 그녀의 노래는 예술성이 높아 보였다. 이 계기가 ‘현역가왕1’부터 ‘현역가왕3’까지 다 시청하게 했다. 특히, 이번에는 대국민 응원 투표와 실시간 문자투표까지 하게 되었다. 퍼뜩, “나도 젊은이들처럼 ’원픽족‘이 되었구나!”하는 마음이 들었다. ‘원픽’이란 말이 많이 쓰인다. 영어의 원픽(One-Pick)이 우리말 신조어가 되었다. 좋아하는 배우, 가수 등 예술인(artist)에 대해 주로 써오다가 요즈음은 여러 분야로 확대, 일반화된 느낌이다. 원픽은 아직 포털 국어사전에도 없다. ‘원픽족’이 오픈 사전에 있을 뿐이다. “원픽족은 ‘하나를 선택한다’는 의미의 원픽에서 파생된 신조어로 결정의 상황 속에서 당당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뜻함”이라고 사전은 풀었다. 현대인은 선택의 파도 안에 산다. 수많은 대상 즉, 사람, 콘텐츠, 상품, 지식, 정보 등의 파도 속에서 끊임없는 선택을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대응이 바로 ‘원픽’이 아닐까. 여러 선택지에서 하나를 고르는 원픽. 남이 정한 것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질문, 비교, 분석, 고민하여 선택하는 원픽. 단순 선택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 기준을 따라 당당히 해내는 원픽. 원픽은 사람을 원픽족으로 이끈다. 어찌 보면, 많은 사회현상을 원픽이란 돋보기로 살펴볼 수 있겠다. 나라 망칠 원픽의 예를 본다면, 여‧야를 불문한 대부분 ‘의원 나리들’이다. 선거철엔 간이라도 빼 줄 것처럼 유권자 원픽을 한다. 한데, 배지를 달고나면 뭔가 두려운 듯, 선관위 원픽으로 태세전환 하니 말이다. ‘가요 경선 프로그램 원픽족’은 시종일관 자기 선택 가수를 지지, 성원한다. 이처럼 의원 나리들도, 변함없는 ‘국민 원픽족’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빈다. /강길수 수필가

2026-04-06

빚내서 하는 주식 투자

빚으로 빚을 막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으로 조사돼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최근 여신금융협회는 삼성과 현대, 신한과 우리 등 국내 8개 전업카드사의 카드론 대환대출 잔액이 지난 2월 1조5001억 원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9월 1조3214억 원에서 13.5%가량 증가한 수치다. 카드사 대환대출이 증가세라는 이야기. 대환대출은 말 그대로 빚의 상환을 위해 다시 빚을 내는 걸 의미한다. 은행들이 신용대출의 문턱을 높이면서 급한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카드론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출 받은 돈의 상당 부분이 주식 투자에 사용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투자 전문가들은 ‘빚을 내가며 주식을 사고파는 행위의 위험성’을 때마다 경고하지만 이는 ‘한 방’을 노리며 짧은 시간에 주식을 매매하는 이들을 설득시키지 못하고 있다. ‘당분간 주식시장이 호항을 누릴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은 이런 세태에 기름을 부었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세칭 ‘돌려막기’까지 해서 하는 주식 투자는 개인을 파산으로 내모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카드사에서 대환대출을 받은 이들이 늘고 있다는 건 대출자의 상환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연체율 상승으로 이어진다. 한국은행 통계의 의하면 올해 1월 말 기준 대출금 연체율은 4.1%. 이는 20년 8개월 만에 최고치다. 빚으로 빚을 막거나, 빚을 얻어 단타 매매에 몰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대출금 연체율이 걷잡을 수 없이 높아진다면 향후 카드사도 위기를 맞을 수 있다. 경계해야 할 일이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4-06

기억과 망각

지난 4월 3일은 제주 4·3 항쟁이 일어난 지 78년 되는 날이다. 제주 4·3 항쟁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일어난 도민들의 시위 운동과 대한민국 군경(軍警)의 무력 진압을 일컫는다. 추산에 따르면, 당시 제주 인구의 10%에 이르는 2만5000에서 3만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한국 현대사 최대의 비극적인 사건이 제주 4·3 항쟁인 셈이다. 어떤 이는 4·3 사건이라 하지만, 나는 4·3 항쟁이라 부른다. ‘사건’이라는 말에 담긴 가치 중립적이고, 어눌하며 밋밋한 표현은 희생자들의 넋을 온전히 기리지 못한다. 희생자의 80%가 군경의 조직적이고 치밀한 작전으로 불귀의 객이 되었다. 제주 구좌읍에 자리한 다랑쉬굴에 피신해 있던 주민 11명은 군경이 굴 입구에 피운 연기에 질식해 전원 사망했다. 소설가 현기영 선생은 1978년 단편소설 ‘순이 삼촌’으로 4·3 항쟁의 단면을 보여준다. 항쟁이 발생한 지 30년이 지난 시점에도 처절한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임시 봉합되어 있음을 보여주면서 소설은 끝난다. 현기영은 ‘순이 삼촌’ 출간 이후 보안사에서 ‘빨갱이’ 소리를 들으며 악랄한 고문을 받았다고 한다. 진짜 빨갱이 형을 둔 ‘박통’ 시절에 일어난 일이다. 2003년 봄에 나는 처음 제주도에 간다. 그것도 공적인 업무를 위해서. 경북대 학생 70여 명을 인솔하여 4·3 항쟁 피해자와 그 흔적을 찾는 것이 주요 과제다. 어떤 마을에서는 제삿날이 같은 집이 수두룩했다. 군경이 무고한 민간인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한 결과다. 어린애든 부녀자든 노인이든 가리지 않고 그들은 반공(反共)을 내세워 무차별적인 학살을 감행한 것이다. 처음 찾아간 제주도에서 내가 만난 ‘한라산 소주’는 무척 특이했다. 병의 생김새나 알코올 도수는 대구와 다르지 않은데, 병뚜껑에 태극기가 선명했다. 그런데 제주도에 와본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말했더니,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태극기 내력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 제주(濟州)도 대한민국의 일부입니다. 더는 우리를 죽이지 말아주세요!” 눈물겨운 한라산 소주 뚜껑에 새겨진 선명한 태극기 무늬가 기억에 선연하다. 얼마 전 이재명 대통령은 “제주 4·3은 대표적인 국가폭력 사례이며,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시간이 아무리 지났다 해도 국가폭력의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다. 늦어도 너무 늦었지만, 매우 적절한 발언이고 현명한 방향이 아닐 수 없다. 소설가 한강은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2021)에서 세 여성의 시각으로 제주 4·3 항쟁을 돌아본다. 생명의 소중함과 인간다움 그리고 역사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여러 각도로 조명하는 따뜻한 작품이다. 제목에 드러나 있는 것처럼 인간은 대물림하며 살아가는 현재의 존재고,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잇는 이음쇠다. 이음의 원리는 망각이 아니라, 기억이다. 국가폭력의 잔인하고 음습한 결과를 묻어두려는 행위는 의도된 망각이다. 망각은 어둠과 파괴를 향한다. 처절하고 참혹한 과거일수록 낱낱이 드러내 재발을 방지하는 편이 나을 터다. 세련된 망각을 딛고, 투박한 기억에 의지할 때 밝고 투명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릴 것이므로.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4-05

달의 경제학

많은 문학과 예술의 상징적 소재로 다뤄졌던 달이 경제의 대상으로 가치관이 바뀌고 있다. 신비스럽고 풍류와 낭만으로 가득찼던 달의 이미지가 퇴색하고 달이 가진 자원의 가치에 인류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과학적 탐구를 목적으로 출발했던 우주개발이 우주 자원개발을 통한 경제적 이익추구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는 말이다. 인구가 증가하고 부족한 지구촌 자원 고갈문제에 대한 해답을 지구를 넘어 우주에서 찾겠다는 인류의 노력이 본격화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지난 2일 발사된 미국 우주선 아르테미스 2호의 목적은 지구와 우주를 연결하는 우주정거장 건설이다. 달에 장기간 머물 수 있는 기반과 물자수송, 착륙, 보급체계 등을 구축하기 위한 준비단계의 첫걸음이다. 과거 달 탐사가 국력 과시용이었다면 이번 아르테미스 2호 발사는 경제적 실익을 목표로 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미 우주항공국은 달에는 지구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희토류와 헬륨-3와 같은 광물질이 풍부하게 매장된 것으로 보고있다. 특히 헬륨-3는 1g만 해도 석탄 20t 이상과 맞먹는 에너지를 낼 수 있는 광물로, 핵융합 발전의 원료로도 높은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런 막대한 경제적 이익 때문에 달 탐사 경쟁에는 중국도 이미 뛰어든 상태다. 2018년 창어 4호를 달 뒷면에 착륙시킨 중국은 2024년 달 탐사 때는 세계 최초로 달 뒷면 토양을 채취해 지구로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미국은 2028년, 중국은 2030년 달에 정주 여건을 갖춘 기지건설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달이 돈이 되는 루나노믹스(lunanomics) 시대를 향해 달 탐사 선점 경쟁의 서막이 올려졌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4-05

고유가에 흔들린 탈탄소

유럽이 흔들리고 있다. 탈탄소를 가장 강하게 밀어붙이던 유럽이 지금은 오히려 ‘기름값 낮추기’에 나섰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이후 국제 유가가 급등하자, 각국이 앞다퉈 연료세 인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스페인, 폴란드, 이탈리아 등 최소 10개국이 이미 감세를 결정하거나 검토 중이다. 유럽연합(EU)의 휘발유 가격은 ℓ당 1.87유로까지 올라 한 달 새 14% 상승했고, 경유는 30% 급등하며 2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고유가 문제가 아닌 유럽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에너지 충격’에 가깝다. 애초 유럽은 기름값을 낮출 생각이 없던 지역이다. 휘발유 가격 절반이 세금일 정도로, 탄소 감축을 위해 의도적으로 가격을 높여온 구조였다. 그런 유럽이 지금 그 세금을 다시 깎고 있다. 탈탄소 정책과 민생 안정이 정면으로 충돌한 결과다. 선택지는 많지 않다. 기름값이 오르면 물가가 뛰고, 물가 상승은 곧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 이미 경기 둔화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에너지 가격까지 겹치면 산업과 가계가 동시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꺼내 든 해법이 ‘한시적 감세’다. 시장 가격은 유지하되 세금으로 충격을 흡수하는 방식이다. 가격 자체를 억누르는 한국식 보조금 정책과는 결이 다르다. 다만 이 선택이 갖는 의미는 세제 조정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이 장면은 한국, 더 정확히 말하면 포항의 상황과도 맞닿아 있다. 포항 철강 산업은 에너지 비용에 가장 민감한 구조다. 전기로와 고로 모두 막대한 전력과 연료를 필요로 한다. 전기요금은 지난 몇 년 간 큰 폭으로 올랐고, 유가와 환율까지 높은 수준으로 흔들리고 있다. 중동 리스크까지 더해지며 부담은 더욱 커졌다. 유가 상승은 연료비는 물론 물류비와 원료비, 전력비까지 연쇄적으로 파급된다. 철강은 이 세 비용이 동시 작용하는 산업이다. 원가가 올라가면 수출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격을 올리면 수요가 줄고, 가격을 올리지 못하면 수익성이 무너진다. 지금 포항 철강이 마주한 구조적 딜레마다. 유럽이 연료세를 낮추는 이유와 포항이 긴장해야 하는 이유가 겹친다. 에너지 가격이 흔들리면 산업 전체가 흔들린다는 점에서다. 문제는 정책 대응의 여지다. 유럽은 세금이라는 완충 장치를 갖고 있다. 상황에 따라 올리고 내리며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전기요금, 유류세, 보조금이 얽혀 정책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결국 기업이 비용 상승을 직접 떠안는 구조다. 특히 철강은 가격을 자유롭게 올리기 어려운 산업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수출 품목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비용 상승은 즉시 철강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이번 사태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에너지 문제는 더 이상 환경이나 정책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 산업 생존의 문제라는 것을. 유럽은 탈탄소라는 방향을 고수하면서도 속도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이상을 포기하지 않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선택이다. 포항 역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탄소를 줄이면서도 버틸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비용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 결국 답은 하나로 모인다. 탈탄소는 피할 수 없지만 속도 조절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세계 경제는 ‘친환경’이 아니라 ‘버틸 수 있는 친환경’을 요구하고 있다. /김진홍 경제에디터

2026-04-05

반려동물

옛날에는 주로 농촌에서 개를 길렀다. 묶어놓지도 않아서 제멋대로 돌아다니다가 끼니때 쯤 들어와서 음식물 찌꺼기를 먹곤 하였다. 젖먹이 아기가 마당에다 똥을 누면 기다렸다가 먹어 치우는 것도 개의 역할이었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똥개다. 당시에도 개는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긴 했지만, 결국은 식용을 위한 가축이었다. 그러다가 경제가 좀 나아지면서 집집마다 대문이 생기고 개의 역할도 격상(?)이 되어 방범을 겸하게 되었다. 마당에 매어서 기르기 시작한 때였다. 개나 고양이 등에 대한 애완동물의 개념이 생겨난 것은 1960년대 중반부터였다. 주거환경의 혁신적 변화가 주요 원인이었다. 산업화·도시화로 급증한 아파트의 실내에서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시골 동네에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눈만 뜨면 서로 어울려 지냈지만, 핵가족이 폐쇄된 공간에 격리되어 살다 보니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이 가족이나 이웃을 대신한 셈이었다. 배우자나 자식 대신 반려동물을 선택한 경우도 적지 않은 현실이다. 우리나라에 ‘반려동물’이라는 용어가 매스컴에 등장하며 캠페인이 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였다, 지금은 법령과 공문서에도 ‘애완’ 대신 ‘반려’라는 용어를 표준으로 사용하고 있다. 198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사람과 더불어 사는 동물’이란 뜻으로 반려동물(Companion Animal)이란 용어가 공식화된 것이 발단이었다. ‘애완동물’이라는 장난감이나 소유물의 느낌을 주는 일방적·수직적 관계에서, 가족이나 친구의 느낌을 주는 상호적·수평적 관계로 인식이 바뀐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반려동물 인구는 1500만을 넘는다고 한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현대사회 특유의 고독과 단절이라는 심리적 요인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현대인들은 어느 때보다 심각한 사회적 소외를 경험한다. 타인과의 관계는 파편화되었고, 경쟁 중심의 사회구조 속에서 인간관계는 언제든 손익계산에 의해 변하는 불안정한 것이 되었다. 여기서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 반려동물이다. 개나 고양이는 동거인을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으며, 사회적 처지가 어떻든 변함없는 신뢰와 애정을 보낸다. 인간에게서 받은 상처를 동물을 통해 치유하는 ‘동물 매개적 위안’은 이제 현대인에게 하나의 생존방식인 셈이다. 사람은 관계를 추구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사람을 인간(人間)이라 하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과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을 반려로 삼는 것은 그만큼 인간관계를 소원하게 할 우려가 없지 않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온갖 갈등과 어려움을 피해서 반려동물과의 유대에 집착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 수만은 없는 이유다. 타인과의 이성적(理性的) 교류와 갈등 극복을 통해 얻게 되는 사회성과 인간에 대한 통찰이 결핍될 때, 또 다른 고립과 소외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휴머노이드라는 AI로봇이 반려동물의 역할을 상당부분 대신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또 어떤 양상으로 인간의 삶과 인식을 바꾸어 놓을지,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서는 것은 왜일까.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6-04-05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

날파리를 잡았다 손바닥에 날파리의 눈알이 느껴진다 작지만 단단한 세계가 거기 뭉쳐 있다 어떤 암흑은 방금 선사된 것이다 내가 잘 놀라는 이유를 알고 있다 언제부터 손바닥 마주치는 소리를 들었는지도 놀라지 않으면 불안하다 놀랄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놀랄 일을 걱정하느라 머리가 꽉 차지 않으면 텅 빈 머리로 나는 하루 종일 나를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손바닥을 생각하는 이유다 누군가의 손에 작고 단단한 두 개의 동그란 세계를 선물해주고 싶은 이유다 ―황성희, ‘손바닥을 생각하는 이유’ 전문 (‘너에게 너를 돌려주는 이유’, 아침달) “보이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한다.”라는 클레의 유명한 공식을 황성희 시인의 시에 대입해 보면 어떤가. 우리가 문학을 감각 기관을 통해 구분한다면 소설은 후각이고, 시는 시각이라는 상징적 정의는 이 문법을 가능하게 한다. 화자는 이 찰나의 살생을 통해 존재의 무게와 실존적 불안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 화자는 보이지 않을 만큼 미미한 존재인 날파리를 죽이는 순간, 역설적으로 그 생명의 단단함에 대해 감각하는 것이다. “손바닥에 날파리의 눈알이 느껴진다”라고 했을 때, 화자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작은 생명체의 ‘눈알’이라는 구체적인 감각에 집중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이는 대상을 단순한 해충이 아닌, 세상을 바라보던 하나의 시선을 가진 주체로 인식했음을 의미한다. 기실 날파리의 몸집은 “작지만 단단한 세계가 거기 뭉쳐”있는 것이다. 그 안에는 하나의 생명이 작동하기 위한 완벽한 세계가 들어있을 테니까. 시인은 그것이 파괴되는 순간 느껴지는 저항감을 단단함으로 표현하며, 생명의 밀도를 경이롭고 서늘하게 묘사하고 있다. “어떤 암흑은 방금 선사된 것이다”라고 했을 때, 암흑은 날파리의 죽음이고, 시력의 상실을 뜻한다. 내가 손바닥을 침으로써 그 생명에게 영원한 어둠을 선사했다는 표현은, 가해자로서의 자각과 생사가 교차하는 섬뜩한 순간일 테니까. 들뢰즈가 ‘감각의 논리’에서 “회화의 임무는 보이지 않는 힘을 보이도록 하는 시도”라고 정의했다면, 시에서 화자가 손바닥으로 타격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힘”의 내재성을 사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부터 손바닥 마주치는 소리를 들었는지도”에서 감각은 대상이 없는 감각 그 자체이다. 피부에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은 재현이 아니라 신체가 경험하는 방식으로 생성되는 감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시의 놀라운 반전은 “놀라지 않으면 불안하다” “놀랄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이라는 언술에 있다. 화자는 일상의 평온함보다 충격과 사건에 길들어져 있다는 사실을 송출한다. 손바닥을 마주쳐 생명을 죽이는 소리가 박수이건 타격음이든 이에 익숙해진 현대인은 오히려 자극 없는 정적을 견디지 못한다는 역설을 품고 있는 대목이다. 놀랄 일이 없다는 것은 죽음과 다름없는 상태로 받아들이는 현대인의 불안증을 묘파하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시인의 눈이다. 누구보다 예민한 촉수를 지닌 시인이 손바닥을 생각하는 이유일 것이다. “누군가의 손에 작고 단단한 두 개의 동그란 세계를 선물해주고 싶은 이유” /이희정 시인

2026-04-05

의료 AI의 현주소···진단 보조부터 신약 개발까지

지난 12주 동안 우리는 AI가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가?’를 함께 들여다봤다. 기계가 패턴을 학습하는 원리부터, 트랜스포머 구조, 환각 현상, RAG, 파인튜닝, 멀티모달, 오픈소스 전쟁, 그리고 벤치마크의 진실까지. 열두 개의 퍼즐 조각이 완성됐다. 사실, 조금은 어렵고 재미없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지식을 들고 현장으로 가보고자 한다. 2분기의 주제는 ‘산업별 AI 혁신’이다. AI가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생각한다는 강의실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의료진과 함께 진료 행위에 참여하고, 공장의 생산 라인에 일하고, 법정 공방 자료를 분석하고 있는 현장의 AI를 확인하러 갈 것이다. 그 첫 번째 현장은 의료다. AI가 가장 뜨겁게, 그리고 가장 조심스럽게 도입되고 있는 바로 그 공간이다. 의사 옆에 앉은 AI 병원에서 AI를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곳은 영상의학과다. CT, MRI, X선 사진을 판독하는 일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하루에 수백 장의 영상을 검토하는 전문의의 눈은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피로해진다. AI는 그 빈틈을 파고들었다. 국내 의료 AI 기업 루닛(Lunit)이 개발한 유방촬영 판독 보조 소프트웨어 ‘루닛 인사이트 MMG’는 국내 상급종합병원 47곳 중 약 60%에 해당하는 28곳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96~99%의 정확도로 유방암을 검출한다. 이 수치는 단순한 기술 자랑이 아니다. 유방암 검진 워크플로우에서 AI를 분류 도구로 도입했을 때 의료진 업무량을 약 69.5% 줄이면서도 진단 정확도는 약 30.5% 향상 시켰다는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의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더 중요한 판단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잡무를 덜어주는 구조다. 영상 AI의 활약은 유방암에 그치지 않는다. 폐암 조기 발견을 위한 흉부 X선 판독 AI는 이미 다수 병원에서 운영 중이며, 안저 사진으로 당뇨병성 망막병증을 스크리닝하는 AI는 안과 전문의가 없는 1차 의료기관에서도 쓰이기 시작했다. 응급 상황에서 AI의 가치는 더욱 극명하다. 뇌졸중 AI 진단 보조 솔루션을 개발한 제이엘케이의 경우, 전문가들이 평균 45분이 넘게 걸린 판독을 AI는 평균 12분 4초 만에 처리했고, 예측 성률은 전문가 평균(50%)을 크게 앞선 72%를 기록했다. 뇌졸중은 1분 1초가 생사를 가르는 질환이다. 그 시간을 30분 이상 단축한다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생명이다. 서울대병원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국내 의료법과 진료 가이드라인, 의료 언어 체계를 반영해 의료진이 직접 개발에 참여한 의료 특화 대형언어모델 ‘KMed.ai’는 2025년도 의사 국가고시 벤치마크 평가에서 평균 96.4점을 기록했다. 의사 국가고시를 거의 만점에 가깝게 통과하는 AI라니, 상상이 가는가. 물론 이 AI가 당장 진료실에 앉는 것은 아니다. 진료 기록 작성, 진단 보조, 의사결정 지원 같은 역할을 맡아 의사의 부담을 덜어주는 도구로서 단계적으로 현장에 투입될 예정이다. 손목 위의 심장 전문의도 등장했다. 메디컬에이아이와 삼성전자가 공동 개발한 기술은 스마트워치로 좌심실수축기능부전(심부전)을 조기 발견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식약처 인허가를 획득했다. 10초짜리 심전도 측정만으로 심부전 가능성을 감지한다. 이제 병원에 가지 않아도 매일 손목이 심장을 감시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노벨상을 받은 AI, 신약의 지도를 다시 그리다 진단만이 아니다. AI는 신약 개발의 판도 자체를 바꾸고 있다. 전통적인 신약 개발은 평균 10~15년 간의 시간과 3조 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되는 고난도 작업이었다. 수많은 후보 물질 중 실제 시판에 성공하는 것은 극소수다. 연구자들은 이것을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라고 불러왔다. 이 구조를 뒤흔든 것이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AlphaFold)다. 신약 개발의 핵심은 단백질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한다. 단백질이 어떤 모양으로 접히느냐에 따라 어떤 약이 그것과 결합해 병을 치료할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 문제는 이 구조를 실험으로 밝히는 데 수년이 걸렸다는 점이다. 25년 전에는 박사 과정 학생이 단 하나의 단백질 구조를 파악하는 데 5년이 걸렸다. 알파폴드는 아미노산 서열을 입력하면 그 구조를 즉시 알려준다. 알파폴드2는 현재까지 2억 4천만 개 이상의 단백질에 대한 구조 예측을 완성했으며, 이는 인간이 생성한 약 1만 8천 개의 단백질 구조 데이터베이스를 수백만 배 넘어선 규모이다.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수십억 년이 걸렸을 작업을 AI가 해낸 것이다. 이 공로로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CEO와 존점퍼 연구원은 2024년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는데, AI 연구자가 노벨 화학상을 받은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국내에서도 신테카바이오와 파로스아이바이오 등 AI 신약 개발 전문 스타트업들이 이 흐름에 합류했다. 이들은 AI로 발굴한 항암제와 희귀질환 치료제 후보 물질들을 임상 단계로 끌어올리고 있으며, 전통적인 신약 탐색 기간을 수년에서 수개월로 압축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국내 제약 바이오 기업들도 그 흐름에 올라타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AI 기반 데이터 레이크 구축과 디지털 트윈 기반 자동화 생산 환경을 추진 중이며, SK바이오팜은 AI를 활용해 차세대 신약 파이프라인을 준비하고 있다. AI 신약 개발이 더 이상 연구소 이야기가 아니라, 국내 대기업의 핵심 전략이 된 것이다. 조심해야 할 것들 - 기대와 현실 사이 그러나 의료 AI에는 냉정하게 직면해야 할 현실도 있다. 국내에서 400개가 넘는 AI 기반 의료기기가 시장에 출시됐지만, 성능이 아무리 높아도 의료진의 업무를 오히려 가중 시키면 상용화는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술이 좋아도 현장에 녹아들지 못하면 그것은 반쪽짜리 혁신인 것이다. 신약 개발에서도 마찬가지다. AI 신약 개발은 후보 물질 발굴과 임상 1·2상에서 성공률을 높였지만, 최종 관문인 3상의 유효성과 안전성 평가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시각이 여전히 크다. AI가 설계한 약이 실제 환자에게 효과적이고 안전한지를 확인하는 긴 여정은 아직 진행 중이다. 데이터 편향 문제도 짚어야 한다. 특정 인종이나 성별에 편중된 의료 데이터로 훈련된 AI는 다른 집단의 환자에게 부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여기에 민감한 환자 개인정보 보호와 사이버 보안 문제까지 더하면, 의료 AI가 넘어야 할 과제는 기술 너머의 영역까지 이어진다. 의료 AI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원칙은 하나다. 현행 의료법상 AI는 의료 보조도구에 해당하며, 최종 진단 권한과 책임은 의사에게 있다. AI가 발견한 이상 징후를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어야 한다. 속도와 정확도는 AI에게, 책임과 판단은 의사에게. 이 역할 분담이 흔들리는 순간, 의료 AI는 혁신이 아닌 위험이 된다. 지역 의료 현장을 생각해 보자. 전문의가 부족한 지방 중소 병원에서 AI 영상 판독 보조 시스템이 도입된다면, 서울 대형 병원 수준의 진단 보조가 가능해진다. 포항을 비롯한 경북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응급 의료 취약 지역 주민들의 골든 타임을 지켜줄 현실적 대안으로 AI 기반 원격 판독 시스템이 주목받고 있다. 의료 격차를 좁히는 데 AI가 기여할 수 있는 현실적인 시나리오인 것이다. 기술이 지방을 살리는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의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의사가 달라지는 것이다 AI 의사가 진료실에 앉는 날은 아직 멀었다. 그러나 AI가 영상을 먼저 보고, 위험 신호를 알리고, 신약 후보를 추려내는 작업을 하는 동안 의사는 더 깊은 곳에서 더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의사의 전문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전문성이 향할 곳이 달라지고 있다. 노벨상을 받은 AI가 신약의 지도를 그리고, 손목 위의 센서가 심장을 지키고, 새벽 응급실에서 AI가 뇌졸중 여부를 12분 만에 판별하는 세상. 그 세상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펼쳐지고 있다. /서용운 계명대 글로벌 창업대학원 벤처창업학과 교수

2026-04-05

남은 건 장동혁 대표의 결단뿐이다

선출직 공직자가 선출된 지 1년쯤 지나면 대충 평가가 나온다. 손가락을 자르고 싶다는 말이 나올 때도 있다. 표를 던져 그 공직자를 선출한 사람이 뒤늦게 후회하는 경우다. 의원내각제 국가라면 그럴 때 곧바로 의회를 해산하고, 다시 선거할 수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해 8월 26일 선출됐다. 7개월이 조금 지났다. 대체로 6개월은 허니문 기간이라고 한다. 6개월간은 야당이 대통령 비판을 참는다. 업무를 파악하고, 자리에 걸맞은 의견을 결정하고, 그것을 추진할 진용을 구성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을 하고, 성과를 내는 것은 기다려야 한다. 국가는 아니지만, 장 대표는 하지 않는 게 문 제다. 장 대표를 향한 비판은 취임 초부터 매우 거세다. 국민의힘 안에서, 보수 진영 안에서 비판이 더 심하다. 그만큼 당의 존립이 걸린 문제다. 당의 혼란이 파산할 수준이다. 국민의힘 사정이 허니문을 따질 계제가 아니다. 장 대표의 리더십이 이미 바닥을 보였다. 장 대표 측은 ‘내부 총질’이라고 비난한다. 민주당 정권의 횡포에 힘을 모아 맞서야 하지 않느냐고 핏대를 올린다. 비판하지 않으면 잘 굴러갈지, 문제가 없게 되는 건지 회의적이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잘못 끼운 단추를 고쳐 끼우지 않으면, 옷을 바로 입을 수 없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비판 목소리에 귀를 막고, 내부 총질이라며 입을 틀어막았다. 그 결과는 탄핵이었다. 장 대표도 꼭 같은 길을 가고 있다. ‘윤 어게인’ 이다. 정치인은 공감 능력이 중요하다. 민심이라는 바다에 떠 있는 조각배다. 바다가 없으면 움직일 수 없고, 파도를 거스르면 뒤집힌다. 윤 전 대 통령은 민심과 반대 방향으로 폭주했다. 국민의 생각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마이 웨이만 고집했다. 아무리 높은 이상도 민심이 따르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반대로 대중의 눈치만 보며 뒤를 따라가는 건 포퓰리즘이다. 윤 전 대통령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말만 들었다. 극단적인 성향의 유튜버들이 가짜뉴스로 만든 가짜 세상에 살고 있다. 분별력을 잃었다. 정권이 무너지는 것도 몰랐다. 보수세력의 표로 대통령이 되 었지만, 보수세력을 무너뜨렸다. 정치인은 책임을 져야 한다. 민심을 외면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보수 세력을 붕괴시킨 데 대해서도 사과해야 한다. 윤 전 대통령은 한 번도 마음을 담아 사과하지 않았다. 아직도 극단적 지지 세력을 선동해, 혼란을 일으키려 한다. 장 대표는 다른가. 민심과 거꾸로 폭주하던 윤 전 대 통령을 흉내 낸다. 민심에 대한 공감은커녕, 관심도 없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은 67%, 부정 평가는 22%다. 민주당 지지율은 48%, 국민의힘은 18%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서울은 13%, 경기도는 17%다. 선거가 두 달 뒤다. 어떻게 선거를 치를 건가. 대구·경북은 안전한가. 국민의힘 35%, 민주당 26%로, 이 지역만 겨우 앞섰다. 그런다고 무조건 표를 줄까. 보수세력마저 등을 돌리는 건 또다시 윤석열의 실패를 반복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다. 누가 이 지경을 만들었나. 윤 전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 그렇지만 그는 흘러간 과거다. 이미 처벌받고 있다. 결국 장 대표 책임이다.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하려는 의원들 목소리를 슬쩍 묵인했을 뿐, 장 대표가 직접, 제대로 반성한 적이 없다. 오히려 ‘절윤’ 탓에 지지율이 떨어졌다며 분개했다고 한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게 공천 작업을 망쳐놓고, 법원 탓만 한다. 법원이 제동을 걸기 전에 민심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신뢰가 무너졌다. 민주당 정부의 실책, 지나친 독주가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야당이 신뢰를 잃어 버리니, 무슨 말을 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실패했다. 장동혁 대표도 실패했다. 그래도 보수 정당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 보수 정당이 없는 민주당 독주는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이런 상태로는 선거 참패를 피할 수 없다. 굳이 결과를 봐 야 하나. 구차한 변명으로 연명할 건가. 이런 지경이 되도록 많이 왔다. 이제 멈춰야 한다. 장 대표가 결단할 때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6-04-05

81회 식목일

산림청은 올해를 ‘범국민 나무심기 원년’으로 정했다. 산림청은 범국민적 나무심기 식목일 행사를 지난 3월 제주에서부터 시작했으며 5월까지 정부 부처와 기업,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대대적인 나무심기 캠페인를 벌인다. 나무심기를 통해 신규 탄소흡수원을 확충하고, 기후위기 대응과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이행을 실천하겠다는 것이 캠페인의 취지다. 국립산림과학원은 2년 전 우리나라 산림의 공익적 가치를 수량화해 발표한 적이 있다. 202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산림의 공익적 가치는 모두 259조원으로 평가됐다. 당시 국내 총생산의 13.3%에 해당한다. 기능별로는 온실가스 흡수 저장기능이 97조원, 산림경관 제공기능 32조원, 산림휴양 기능 28조원 등이다. 산림의 공익적 가치를 국민에게 돌아오는 혜택으로 환산하면 1인당 499만원에 이른다고 했다. 아마존 열대우림을 우리는 지구의 허파라 부른다. 전 세계 산소의 20%를 생산한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아마존 우림지대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함으로써 지구온난화를 늦추고, 기후변화를 완화해주는 특별한 역할에 우리가 더 주목을 해야 한다. 숲은 동식물의 서식지로 생물의 다양성을 제공할 뿐더러 생태계 균형을 유지시켜 준다. 물 순환과 토양 보존을 통해 수자원과 환경을 보호하는 등 지구와 인간 삶에 있어 유익한 필수 환경이다. 어쩌면 숲의 이런 기능이 인류에게 매일 건강한 하루를 제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식목일은 단순히 나무만 심는 날이 아니다. 심어진 나무를 아끼고 잘 가꾸어 보다 많은 건강한 숲을 조성해야 한다. 나무를 심는 것이야말로 지구와 인류를 위한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4-02

촉법소년 연령 하향, 해답이 아니라 시작이다

중학생이던 아들이 초등학생인 여동생이 서랍 깊숙이 숨겨놓은 일기를 훔쳐보다가 걸렸다. 아들에게 “너 동생 일기 몰래 보면 안 돼. 비밀침해죄라는 게 있다”라는 변호사 엄마다운 잔소리를 하니 아들은 이렇게 답했다. “어차피 난 촉법소년이라 상관없어.” 요즘 아이들이 이렇다. ‘촉법소년 = 어떤 나쁜 짓을 해도 괜찮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것이다. 촉법소년의 촉(觸)은 ‘닿을 촉’이다. 촉법소년이란 법에 닿았으나 처벌되지 않는 소년을 의미한다. 형법 제9조는 촉법소년을 형사미성년자라고 하면서 14세가 되지 아니한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14세 미만의 소년에 대해 아무런 처분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소년법에 따라 범죄행위를 한 10세 이상 14세 미만인 아이들에겐 소년법상 보호처분을 내릴 수 있다. 소년법상 보호처분은 교육 수강 명령이나 사회봉사명령부터 소년원 송치까지 가능한 결코 가볍지 않은 처분이다. 결론적으로 14세 미만인 자가 범죄를 저지르면 어떤 처분도 받지 않는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10세 이상이라면 소년보호처분을 통해 범법행위를 교정하고 교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만 10세 미만이라면 살인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은 물론 어떠한 보호처분도 내릴 수 없다. 얼마 전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촉법소년 연령을 13세 미만으로 낮추는 방안을 지시한 이후 정부 주도로 촉법소년 연령 개정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14세 미만을 13세 미만으로 바꾸는 방안이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지금의 14세 미만 기준은 1953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스마트폰과 AI, 인터넷을 사용하며 70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정보를 접하고 있고, 정신적·육체적 성숙도 상당히 이루어진 지금의 청소년들을 70년 전과 똑같이 볼 수는 없다. 이제는 촉법소년 연령을 낮출 때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제 13세 이상은 모두 형사처벌하자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지금도 13세, 14세의 범죄는 대부분 소년보호처분으로 처리되고 있기 때문에 촉법소년 연령이 한 살 낮아진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중학교 2, 3학년들도 “난 촉법이라 괜찮아”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요즘,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는 것은 소년의 형사책임에 대한 국가의 태도와 사회 인식이 변화했다는 상징적 메시지가 될 것이다. 또한 가해자 보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던 기존 촉법소년 제도의 범위를 좁히는 것이므로, 소년범죄 피해자의 보호와 권리 회복을 더 고려하겠다는 사회적 선언이 될 수 있다. 촉법 연령을 낮추는 것을 해답으로 끝내선 안 된다. 연령 기준만 낮추고 소년범죄의 분석과 예방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13세 미만으로 조정된 촉법소년의 문제는 도돌이표일 것이다. 촉법소년 범죄들의 원인을 분석하고 적절한 교육과 보호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국가적 인력과 인프라 확보에 힘써야 한다. 소년보호처분을 조금 더 세분화하고 개선해야 하며, 이미 존재하는 소년보호처분도 적극 활용해 아이들이 다시 범법의 경계에 가지 않도록 이끌어야 한다. 처벌의 문턱을 낮출수록, 그 보호의 책임은 더 무거워지는 법이다. /김세라 변호사 △고려대 법과대학, 이화여대 로스쿨 졸업 △포항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2026-04-02

노인의 앞날

행정복지센터에서의 일이다. 대기표를 뽑고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고성이 들렸다. 사연인즉, 노인 한 분이 대중교통비 환급 문제로 직원과 대화를 나누다, 옆에서 기다리던 청년과 시비가 붙었나 보다. 어르신이 너무 큰 소리로 외쳐서 듣고 있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분은 자신의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목소리가 커진 것일 뿐, 화를 낸 건 아니라고 외쳤지만, 좀처럼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청년 곁에 있던 주변 사람들도 눈살을 찌푸리며 조금씩 자리를 피하고 있었다. 다음 주 어느 날이었다. 운전면허 적성검사를 위해 면허시험장에 방문했는데, 맨 끝 창구에서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또 뭐지 싶어서 가봤더니 이번엔 노부부가 직원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알고 보니 어떤 어르신이 운전면허증 재발급에 필요한 사진을 너무 옛것으로 가져온 탓이었다. 규정상 6개월 이내의 사진이 필요했다. 담당 직원은 최근 사진으로 다시 가져오시라 안내했고, 어르신은 이것도 분명 내 사진이니 그냥 처리해달라는 실랑이가 오고 갔다. 사실 현장에서도 사진 촬영은 가능했다. 하지만 어르신은 자신과 같은 노인에게 신분증 사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냐면서, 이발도 못한 이런 행색으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단호히 맞섰다. 난감해하는 담당자의 표정을 보고 있으려니 나도 힘들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직원 여럿이 노인 분을 안쪽 어딘가로 안내하는 모습을 뒤로 한 채 그곳을 서둘러 나왔다. 집으로 향하는 내내 항의하던 노인들의 얼굴이 눈에 밟혔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장면을 두 번이나 목격한 셈이었다. 한 분은 귀가 안 들렸을 뿐이고, 다른 한 분은 행정에 관한 시비였지만 대단히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규정과 방침을 지키지 않거나 못한 어르신의 항의를 묵살하기 어려운 ‘노인의 사정’이라는 게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저 어르신들은 마치 선량한 직원을 괴롭히고 시민들에 불편을 끼친 훼방꾼처럼 취급됐다. 문득 세월이 흐른다는 건, 나이를 먹는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게 됐다. 늙는다는 건 우선 후천적 장애를 겪게 된다는 것 같다. 들리던 게 안 들리고, 보이던 게 안 보이거나 거동이 힘들어지는 것으로, 즉 몸의 불편으로 우선 감지되는 것 아니겠나. 또한 늙는다는 건 행정이나 키오스크와 같은 사회 시스템으로부터의 소외를 의미하는 것 같다. 아마 노인들을 위한 행정 서비스조차 어르신들은 절차를 따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노인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일상 상당 부분을 의탁해야만 하는 의존적인 존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 의존한다. 나만 해도 부모덕에 공부했고, 지금은 아내 덕에 직장을 다닌다. 인간이란 본래 취약한 존재이다. 그 취약함은 단순한 약점이 아니라 불가피한 상호 의존과 돌봄의 조건이 된다. 관계가 존재론의 최소 단위이다. 인간이란 나 홀로 살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그렇다. 그렇기에 살만큼 살았다고 오인되는, 마치 세상의 짐처럼 여겨지는 노인들의 앞날에도 사회의 많은 관심이 모아져야겠다. 노인의 모습이야말로 모두의 근미래일테니 말이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6-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