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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논어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26-06-14 17:49 게재일 2026-06-1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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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논어’를 깊이 들여다보기 시작한 지 어언 20년이 지난다. 2006년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나는 오직 ‘논어’만 주야장천(晝夜長川) 읽고 또 읽었다. 그리하여 2007년 2월 하순에는 6번 반 정도 읽을 수 있었다. 읽으면서 수긍이 간 대목, 낯설고 낡아진 대목, 전율을 삼킨 대목, 경이롭게 여겨진 대목 등을 에이4 용지 여섯 장 분량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개강을 코앞에 둔 시점에 아침 일찍 일어나 정리해둔 여섯 장 분량을 날마다 공책에 옮겨 쓰면서 그 의미를 뼛속까지 이해하려 노력한다. 강의 쉬는 시간에, 점심시간 이후 산책길에서, 운전하는 차 안에서 나는 6장 분량을 모든 구절을 통째로 기억하는 작업에 돌입한다. 아울러 여름이 오기 전까지 ‘논어’ 완독 10회, 정리 분량 10장에 도달하기에 이른다.

‘논어’를 만나기 전까지 서양 학문, 그것도 러시아 문학을 연구해온 나는 공자와 그의 언행에 관한 기록에 태무심한 편이었다. 그러다가 50줄에 가까워지면서 삶의 돌파구 같은 것을 ‘논어’에서 찾은 것이다. 내가 읽은 ‘논어’ 번역본은 600쪽이 넘는다. 그런 연유로 나는 같은 책을 6000쪽 넘게 끈질기고 인내심 있게 읽고 또 읽고 나름으로 정리한 셈이다.

북송의 유학자 정자(程子)는 ‘논어’를 읽고 난 사람들의 네 가지 반응에 관한 흥미로운 기록을 남긴다. 첫째, 아무런 변화가 없는 사람, 둘째 한두 구절을 얻고 기뻐하는 사람, 셋째, ‘논어’를 알게 돼서 기뻐하며 계속 배우려는 사람, 넷째, 자신도 모르게 손발을 움직여 덩실덩실 춤을 추고 마침내는 인생에 대한 태도와 자세를 바꾸는 사람이 그것이다.

나는 두 번째 부류에서 시작하여 세 번째 단계를 거쳐 네 번째 단계로 옮겨온 사람이다.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연각(緣覺)의 경지에 이른 상태라 할 수 있다. ‘논어’에서 시작한 동양고전 읽기는 그 후로 줄기차게 이어진다. ‘논어’와 연관된 여러 서책을 읽다가, 그렇다면 노자는 ‘도덕경’에서 장자는 ‘장자’에서 어떤 사유와 인식을 설파했는지 궁금해지는 게다.

나아가 사마천의 ‘사기’와 도가(道家)의 서책 그리고 ‘벽암록’을 비롯한 불가의 다채로운 서책을 두루 읽게 되었다. 서양 학문을 하다 보면 답답하게 여겨지는 대목이 미주알고주알 세세하게 따지고 나누고 분석하는 행위다. 그것은 자연과학에서 유용한 자세일 터, 인간 본연의 자세와 세계인식 그리고 삶에 대한 통찰을 다루는 인문학은 초월적인 관점도 중요하다.

적어도 40여 권 이상의 동양학 서책을 여러 차례 되풀이하여 읽으면서 그들이 주장하는 고갱이를 곱씹어 생각하고 나의 생활철학 일부로 만들어가기에 이른다. 요즘도 ‘논어’나 ‘도덕경’, ‘장자’ 강연을 할라치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러시아 문학 전공자가 웬 ‘동양학이냐?’ 하는 것이다. 교양의 헤아리기 어려운 분야와 깨달음을 생각하면 무척 뜨악한 물음이다.

요즘처럼 혼탁하고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위악(爲惡)의 시대에 동양고전은 우리가 나아갈 길과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 구실을 한다. 누구도 읽지 않는 고전을 읽음으로써 얻는 크고 작은 깨우침과 폐부를 찔러오는 통찰에 경탄하면서 환한 하루를 보낸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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