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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역사 에세이] 전쟁은 포수가 하는데, 공은 선비가 가져간다고?

전쟁은 위기 앞에서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듯 보인다. 그러나 포성(砲聲)이 멎은 자리, 혹은 전투의 한복판에서도 오래된 신분의 질서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공동의 적 앞에 서 있어도 인간 사회의 위계(位階)는 여전히 작동한다. ‘신분·출신 차별과 갈등’은 어느 한 시대, 어느 한 민족의 문제가 아니었다. 전쟁과 신분의 묘한 함수관계가 기록으로 남은 첫 사례는 고대 로마다. 기원전 494년, 귀족(파트리키)이 정치를 독점하던 로마에서 평민(플레브스)은 전쟁에는 동원되면서도 정치적 권리는 거의 없었다. 결국 평민들은 도시를 떠나 ‘성산(星山, Mons Sacer)’으로 집단 철수했다. 이른바 ‘평민 철수’(Secessio Plebis) 사건이다. 외적과 싸워야 했던 로마는 병력의 다수를 차지한 평민의 이탈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귀족은 결국 양보했고, 평민 보호관(Tribunus Plebis) 제도가 탄생했다. “전투는 평민이, 통치는 귀족이”라는 구조에 대한 첫 집단 저항이었다. 성경에도 비슷한 긴장이 등장한다. 예수는 갈릴리 어부들, 세리(稅吏) 마태, 열심당원 시몬처럼 서로 배경이 다른 이들을 제자로 불렀다. 특히 세리는 로마에 협력해 세금을 걷던 직업으로, 당시 유대 사회에서 배척의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예수는 그들을 공동체 안으로 끌어들였다. 혈통과 직업, 종교적 배경을 넘어선 선택이었다. 로마 말기의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는 또 다른 장면을 보여준다. 그의 갈리아 원정군은 주로 평민 병사들로 구성했다. 카이사르는 병사들과 땅바닥에서 함께 자고, 음식을 나누며 고난을 공유했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에 카이사르는 ‘병사들과 같은 행군 속도를 유지했고 눈·비를 가리지 않고 야영했으며, 병사 개개인의 이름을 기억하며 포상에 후했다’고 적고 있다. 이러한 긴장은 조선 말 항일 의병 안에서도 나타난다. 의병은 ‘나라를 위해 싸운 민중의 군대’로 불리지만, 내부에는 양반·평민·천민의 구분이 여전히 작동했다. 을미·정미의병을 이끈 다수는 유학자 출신이었고, 실전 전투의 핵심은 포수·사냥꾼·상민이 담당했다. “전쟁은 포수가 하는데, 공은 선비가 가져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1896년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킨 유인석(柳麟錫)의 부대에서도 산포수(山砲手) 세력과의 긴장이 있었다고 전한다. 유교적 명분과 엄격한 군율을 중시한 지휘 방식, 그리고 매복·기동전을 선호한 포수들의 실전 감각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했다. 제천 관아 점령 이후 방어 전략을 둘러싼 이견이 누적되며 일부 세력이 이탈했고, 이는 일본군의 반격 국면에서 약점으로 작용했다. 반면 평민 출신 의병장 신돌석은 실력으로 인정받은 인물이다. 그는 양반 중심 의병 구조 속에서도 전과(戰果)를 세우며 대중적 지지를 얻었다. 더 나아가 의병에서 독립군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는 신분의 벽이 한층 낮아졌다. 김좌진 휘하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에는 노비·머슴 출신 인물들이 중책을 맡았고, 이는 청산리 전투 승리의 동력이 됐다. 오늘의 눈으로 보면 이러한 차별과 배제는 비상식적이고 답답한 일이다. 그러나 당시 사회의 세계관과 질서 속에서 보면, 그것은 오랜 관습과 신념이 쉽게 무너지지 않았던 결과이기도 하다. 전통을 지키려는 의지와 새로운 질서를 향한 요구가 한 공간에서 충돌하는 순간, 갈등은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위기 속에서 우리는 과거의 질서를 끝까지 붙들 것인가, 아니면 공동의 대의를 위해 경계를 허물 것인가. 로마의 성산(聖山) 몬스 사케르, 갈릴리의 어부들, 루비콘 강, 그리고 제천의 의병진은 서로 다른 시대에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In the midst of crisis, will we continue to cling to the old order?”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6-03-07

TK통합 무산 책임론, 지선 최대 이슈로 부상

대구·경북(TK) 행정통합 특별법 처리가 사실상 무산국면에 접어든 것 같다. TK지역으로선 특별법 처리시한에 쫓겨 일분일초가 아쉽지만, 여권은 계속 불가능한 전제조건을 내걸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답답한 상황이다. 여권은 이미 TK행정통합 성사여부가 지방선거 판세에 변수가 되지 못한다고 판단한 듯하다. 현재 TK통합법은 국회 법사위에 계류돼 있다. 지방선거 일정상 3월 임시국회 본회의가 열리는 오는 12일이 법안 처리를 위한 마지노선이지만 민주당은 여전히 “TK통합법은 충남·대전통합법과 함께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민주당은 그동안 호남권 통합법을 처리한 후 TK통합법에는 온갖 조건을 추가하면서 버텨왔다. 민주당이 조건으로 내건 TK통합법과 충남·대전 통합법 병합처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충남·대전 통합법의 경우 단체장, 시·도의회가 모두 반대하고 있어 사실상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채택할 수가 없다. 여권에서는 TK통합법만 국회에서 통과시킬 경우 충남·대전에서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분위기속에서 지난 4일 국회에서 국민의힘 주도로 열린 ‘TK통합법 국회통과 결의대회’도 통합법 처리 무산에 따른 책임론으로 흐르는 분위기였다. 장동혁 대표는 “소수 야당의 마지막 투쟁 수단인 ‘필리버스터’까지 중단하며 TK특별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했지만, 아무런 답이 없다”고 했고, 추경호(달성군) 의원은 “민주당이 정략적으로 대구·경북 통합을 거부한다면 500만 시도민은 국가균형발전을 회피한 이재명 대통령과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은 정청래 민주당 대표. 법사위 빗장을 걸어 잠근 추미애 위원장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행정통합 무산에 따른 책임론은 TK지역 지방선거의 주 이슈로 자리 잡게 됐다. 아마 주 타깃은 행정통합을 주도한 현직 단체장이나 국회의원이 될 것이다. 산적한 대구·경북지역 현안해결을 위한 공론의 장이 돼야 할 이번 지방선거가 소모적인 책임론으로 오염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2026-03-05

아찔했던 대구도심 천공기 사고, 책임 따져야

지난 4일 오전 9시쯤 대구시 수성구 만촌네거리 지하철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대형 중장비인 천공기 전도사건은 하마터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사고다. 높이 21m, 무게 64t의 천공기가 왕복 8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쓰러졌으나 지나가던 차량이나 사람이 직접 다치는 피해가 없어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쓰러진 천공기를 보고 급정거한 택시운전기사와 승객 등이 다쳤으나 큰 피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가 난 만촌네거리는 평소에도 신호대기 차량이 줄을 서고 보행자도 많은 곳이다. 사고가 난 시간대가 출근 시간을 막 넘긴 때여서 큰 사고는 피했지만 사고 현장을 목격한 주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만촌네거리 천공기 전도 사고에 대한 노동청, 경찰 등 관계 당국의 조사가 진행되겠지만 철저한 사고원인을 밝혀내 도심 건설현장에 대한 경각심 고취와 제2의 사고를 막도록 해야 한다. 도심건설공사 현장은 일반공사 현장과 달리 협소한 공간과 상하수도 매설 등 복잡한 작업환경 때문에 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높다. 특히 사고가 발생하면 무고한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지난해 6월 경기도 용인시 전철공사 현장에 있던 길이 44m의 항타기가 쓰러져 인근 아파트 건물을 덮쳤다. 항타기는 땅에 말뚝을 박을 때 사용하는 것으로 천공기와 비슷한 중장비다. 이때 건설부 장관이 현장을 찾아 중장비 사고 예방에 총력을 쏟겠다고 약속했다. 장관이 약속했다고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사고는 당국의 엄격한 관리감독과 건설사의 철저한 안전의식이 병행될 때 사고를 줄일 수 있다. 노동청 관계자가 사고 당시 작업방식과 안전 준칙 준수 여부, 지반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원인을 밝히겠다고 하고 있으나 이를 계기로 도심의 건설 현장 전반에 대한 안전도 검사를 진행하는 것이 좋다. 사고가 난 현장은 지하철 연결통로 및 출입구 공사가 진행 중인 곳이나 이 공사도 두 차례나 연기돼 인근 주민들의 불만이 많다. 철저한 원인 규명과 함께 책임소재를 물어야 한다.

2026-03-05

총과 투표용지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평소에는 정치인들이 하는 일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국민들은 선거 날 투표권을 행사하며 비로소 강력한 정치적 의사를 발현한다. 국민은 투표를 통해 주권자임을 자각하고, 그 한 표를 잘 행사하기 위해 정치와 사회가 돌아가는 것에 관심을 가지기도 한다. 투표권이 있다는 것은 나라의 실질적 주인이라는 뜻이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우리 투표권자의 연령은 만 18세 이상이다. 요즘 선거 연령을 더 낮추자는 목소리가 있지만, 학생들에 대한 정치적 선동과 학교의 정치화가 우려된다는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교육과정은 정치에 대해 가르치는 일을 아예 손 놓아 버린 듯하다. 아이들이 올바른 정치적 의견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조차 하지 않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지난 우리 역사에는 나라의 수호자 역할을 한 많은 청소년들이 있었다. 1960년 3·15 마산 시위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이 얼굴에 박혀 순국한 김주열 열사의 나이는 17세였다. 그의 희생은 4·19 혁명의 촉발제가 되었고, 고등학생 다수가 시위에 참여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서는 많은 고등학생과 중학생이 시위에 참여했다. 새벽 전남도청을 사수하며 죽어간 문재학, 안종필 열사는 16세 고등학생이었다. 일제강점기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3·1운동을 주도한 유관순 열사는 16세였고, 서대문형무소에서 고문을 받다 순국한 나이는 17세였다. 1950년에는 국군의 낙동강 방어선을 유지하기 위해 포항여중에서 학도병들이 북한군과 교전하며 나라를 지켰다. 이 포항여중 전투로 대부분이 전사한 학도병 71명은 모두 17세, 18세의 청소년들이었다. 이렇듯 수많은 청소년들의 피와 희생 위에 독립한 나라에서 민주화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우리는, 청소년은 나이가 어려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기에 미성숙하다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청소년들은 더 용기 있게 나라를 지키고 목숨을 희생했다. 그것은 모두 그들의 성숙한 정치적 결단이었다. 위기의 시기에 청소년들에게 정치적 빚을 진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는, 왜 지금이 평화로운 시기라고 해서 청소년을 정치적 미성년자로 그저 단정짓는 것인가. 선거권 연령을 낮춰 무조건 투표권을 쥐여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들이 정치를 바로 알고 선동당하지 않으며 정상적인 사고 과정을 거쳐 스스로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과정에 관한 정치’를 가르치자는 것이다. 학교에서부터 정치를 ‘커서 하는 것’, ‘지금 너희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취급한다면 오히려 성인이 되었을 때 무방비 상태에서 선동과 세뇌를 당하는 일을 초래할 수도 있다. 홀로코스트의 뼈아픈 역사를 가진 독일은 아이들에 대한 정치 교육을 헌법적 사명으로 삼고 체계적으로 정치를 가르친다. 교실에서 정치 토론이 제도화되어 있고, 적극적인 비판과 토론을 통해 극단주의에 대응할 수 있도록 아이들의 내성을 길러 준다. 민주주의는 중립적 방관 속에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파괴적 선동과 극단주의에 대해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는 정치 교육은 결국 민주주의를 지킨다.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로부터의 격리가 아니라, 총 대신 투표용지를 들 수 있게 하는 정치 교육이다. /김세라 변호사 △고려대 법과대학, 이화여대 로스쿨 졸업 △포항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2026-03-05

하이브리드 전쟁

잡종으로 해석되는 하이브리드(Hybrid)는 서로 다른 두 개 이상의 요소가 합쳐진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성질이 다른 두 가지 이상의 요소를 합치는 목적은 대개 성능이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있다. 페달과 전기모터가 함께 달린 자전거는 하이브리드 자전거, 휘발유와 전기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자동차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라 부른다. 미국은 이란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 등 정부 요인들이 만나는 시간과 장소를 미리 정확히 알고 정밀타격을 가했다. 미국의 정확한 정보력과 미사일의 정교한 타격 능력이 합쳐져 이란의 지휘부는 완전 붕괴된다. 같은 시간 이란 전역의 인터넷 접속은 평소 4% 수준으로 급감했다. 오늘날의 전쟁은 총과 탱크를 앞세운 과거의 전쟁과는 양상이 다르다. 사이버 공격, 여론조작, 경제 제재, 정보전, 심리전 등 보이지 않는 전장이 넓게 전개된다. 이른바 군사적 조치와 비군사적 조치가 총 동원돼 치르는 전쟁이다. 이를 하이브리드 전쟁이라 부른다. 전쟁 학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대표적인 하이브리드 전쟁이라 명명한다. 군사 충돌 이전부터 사이버 공격으로 정보전이 전개되고 나라 안 여론을 분열시켜 자국 내 혼란을 조장한다. 선전포고가 없는 전쟁이다. 미사일이 날아오기 전 이미 전력망이 마비되고 금융시장과 환율이 흔들린다. 사회 전체가 전쟁터가 된다. 과거 전쟁이 군대와 군대 간의 싸움이었다면 국가시스템과 국가시스템 간의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 하이브리드 전쟁이다. 지금 지구촌은 전쟁과 갈등으로 얼룩지고 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국제사회의 현대전을 바라보면서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안보 태세는 어떤지 반면교사 해볼 때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3-05

토론의 자격

부정선거를 주창하는 극우 인사들과 군소 정당 대표의 토론이 화제가 된 모양이다. 실시간 접속자 30만 명, 누적 조회수는 600만을 돌파했다고 한다. 솔직히 한심하다. 아무런 합리적 근거 없이 부정선거 따위를 외치며 정치 선동을 일삼는 자들에게 공론장에서의 발언권을 주면 어쩌자는 건가? 토론을 성립시킨 그 저의 역시 의심스럽다. 서로가 서로를 정쟁의 수단쯤으로 생각한 것 아니겠나. 토론은 민주주의의 미덕으로 자주 찬양되지만 모든 주장이 토론의 자격을 갖는 것은 아니다. 토론에도 최소한의 요건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가령 토론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공통의 사실 기반을 인정해야 하고, 합리적 근거와 증거를 제시할 의무를 수용해야 한다. 또한 반박될 가능성에 자신을 열어두어야 하는데, 이 조건이 무너지면 토론은 ‘공적 숙의’가 아니라 ‘선동의 무대’로 전락하게 된다.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는 ‘관용의 역설’에 관해 논한 바 있다. 민주주의는 관용을 요하지만 그 관용은 무제한적일 수 없다는 논의였다. 한 사회의 관용이 불관용에 대한 관용까지 포함하게 되면 결국 불관용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어 관용적인 사람들과 실천마저 제거된다는 것이다. 관용의 역설이란 관용적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불관용에 대해 불관용할 권리가 확보되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토론은 단지 말의 교환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가 동일한 규칙을 공유한다는 암묵적 합의 위에서만 가능하다. 예컨대 선거관리기관의 절차, 사법부의 판결, 검증 가능한 통계 자료 등은 논쟁의 전제가 돼야 한다. 만약 어떤 집단이 이러한 공적 장치 전체를 불신하며, 그 불신을 증명할 책임조차 지지 않는다면, 그들과의 토론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경우 토론은 진실을 가리는 과정이 아니라, 허위 주장에 공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효과를 낳는다. “양쪽 의견이 있다”는 형식적 균형은, 사실과 허위를 동일한 수준에 놓는 오류를 범하게 한다. 부정선거와 같은 근거 없는 음모론을 공적 토론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순간, 민주주의는 두 가지 위험에 직면한다. 하나는 허위 정보의 확산이고, 다른 하나는 제도에 대한 신뢰의 붕괴다. 제도를 부정하면서 동시에 그 제도의 보호 아래에서 발언권을 행사하는 태도는 자기모순이다. 이런 모순을 비판 없이 수용하거나 자기 정치를 위해 동원하게 되면 민주주의는 공허해지기 마련이다. 민주주의는 모든 말을 허용하는 체제가 아니라, 공통의 규칙을 존중하는 말만이 정치적 힘을 갖는 체제다. 그 규칙을 인정하지 않는 주장과의 토론은 숙의가 아니라 소모일 뿐이며, 때로는 민주주의의 토대를 잠식하는 정치적 이벤트에 불과하다. 그런 와중, 거대 야당 대표는 부정선거 토론을 통해 “선거 관리 부실에 대한 공감대”가 이뤄졌다며 ‘선거시스템TF’를 구성하겠단다. 봐라, 이런 토론은 없어야 한다는 사실의 반증이 여기 있다. 토론에 참여한 자나 그를 이용하려는 자나 매한가지 아니겠나. 자기 정치를 위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세력을 도구화할 뿐인 자들을 어찌해야 할까. 한국 보수의 현재와 미래가 이렇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6-03-05

사라진 가장놀이

애처가와 공처가 차이를 묻는다. 난 대답했다. 그런 질문 자체가 낡은 사고방식이라고. 내 팬티는 내가 알아서 빨면 공처가이고 내 팬티 빨 때 마누라 팬티도 같이 빨면 애처가라는 말은 이십여 년 전부터 나돌던 이야기다. 주위에 힘없는 가장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음식물 쓰레기통 앞에서 서로 묵례하면서 겸연쩍게 웃는 모습이 남자들의 자화상이다. 베란다에서 담배 피우던 반딧불이 세대는 이미 한참 지나간 이야기다. 장사꾼과 사업가의 차이가 무엇인가 하면 장사꾼은 물을 많이 뜨기 위해 양동이만 늘리고자 힘쓰지만, 사업가는 한꺼번에 다량의 물을 퍼 올리는 양수기부터 준비한단다. 근본 생각부터 차이가 나야 한다는 말이다. 집안에 가장 노릇도 마찬가지이다. 권위는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냥 나이만 먹는다고 저절로 권위가 생기는 시절이 아니기에 고도의 전략과 전술이 필요한 것이다. 요즘 대통령 꼴이 말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존경받아야 할 자리임에도 탄핵당하고 형사소추 당하고 있으니, 나라가 어디로 갈지 자못 걱정스럽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양아치들의 계급 놀음인 보스가 아니다. 일종의 리더십이 있는 지도자로 자리매김하는 위치이다. 보스는 사람들을 몰고 가지만 지도자는 그들을 이끌고 간다. “가라”고 명령하지 않고 “가자”고 권고한다. 따라서 보스는 권위적이지만 지도자는 그렇지 않다. 보스는 음흉하게 비밀리에 일을 꾸미고 들키면 발뺌하거나 다른 이의 탓으로 돌려버린다. 남을 절대 믿지 않으며 겁을 주는 폭력에 의한 공포심을 심어주어 복종만을 요구한다. 아버지는 보스였다. 그게 남자라고 믿었다. 가끔 소리도 지르고 밥상도 한번 엎고, 술 드시고 늦게 들어와 자는 애들 깨워서 일장 연설도 하고. 그래도 절대 탄핵당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집에 가장으로서 존경받지 못하고 늘 뒷전이거나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은 젊은 시절 할아버지나 아버지 흉내 내면서 힘으로 짓누르려고 했기 때문이라 생각하면 거의 틀림없다. 김두한 시절 흉내 내던 보스 기질이 그대로 살아남았으리라. 농사짓던 시절 아버지의 권위는 하늘 이상이었다. 나라에서도 군사부일체니, 뭐니 하면서 아버지 권위를 부추겼다. 덕분에 할아버지와 아버지 시대에는 잘 먹고 잘 놀다 가셨다. 세상이 이렇게 빨리 변할 줄은 몰랐다. 그래도 우리 세대까지는 어떻게 세력 유지하면서 버틸 줄 착각했다. 꿈은 바로 깨졌다. 대통령은 탄핵당하기 일쑤이고 아버지는 돈 벌어오는 기계가 됐다. 요즘 젊은 애들은 남자도 음식을 한단다. 서로 맞벌이가 많아 청소나 설거지도 여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 작업구역으로 변모했다. 우리 때는 여자 일로 규정되어 있어 조금이라도 거들어 주면 칭찬받았는데, 이젠 안 하면 바로 지적당한다. 다행히 아들이 없어 며느리에게 구박받으며 사는 아들 꼴을 안 봐서 다행이지만, 사위가 내 딸에게 잡혀 사는 것도 별반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내 딸이라 못 본 체할 뿐이다. 안사돈은 자신이 낳아 좋은 음식만 갖다 먹여 키워놓은 자식이 저 지경으로 사는 걸 보고는 천불이 나 어쩔 줄 모르고 신세 한탄만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노병철 수필가

2026-03-05

어쨌건 전쟁은 비극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전역에 폭탄을 쏟아붓고 있다. 전쟁은 시작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중이다. 이 전쟁으로 이란의 고위 지도자와 미국 군인들만이 생명을 잃은 건 아니다. 지난달 28일. 이란 미나브 지역에선 여자 초등학교가 폭탄에 피격됐다. 다수의 외신은 이 폭격으로 160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사망한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날 숨진 아이들은 복잡한 국제정치의 역학관계나 종교적 갈등과는 무관한 죄 없는 이들이었다. 이란도 당하고만 있을 수 없으니 반격을 시작했다. 미사일과 공격용 드론이 이스라엘과 미군 기지가 있는 중동 전역으로 발사됐다. 거기서도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중구난방 폭탄이 날아다니는 중동에선 비행기를 띄울 수 없어 공항이 폐쇄됐고, 여행 중에 날벼락을 맞아 아랍에미리트와 카타르 등에서 발이 묶인 한국인도 일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아랍에미리트에선 탄도미사일 포화에 3명이 죽고, 수십 명이 다쳤다고 한다. 이번 전쟁은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싸움에서 중동 전역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알다시피 그 지역엔 친미국가가 여럿 있는 반면, 이슬람 시아파를 지지하며 이란의 편에 선 사람들도 적지 않다. 오랜 기간 지속된 종교·정치적 갈등으로 인한 확전(擴戰)의 위험성이 갈수록 커지는 이유다. 며칠 전. 이번 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으로 지상군을 파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렇게 되면 사망자는 더 늘어날 터. 미사일과 총알엔 눈이 달리지 않았다. 그러니, 군인과 민간인을 구별하지 못한다. 더 큰 비극이 기다리는 듯해 우려스럽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3-04

회생법원 출범, 지역경제 회생의 마중물 되길

대구와 경북지역의 오랜 숙원이었던 대구회생법원이 드디어 출범식을 갖고 업무에 들어갔다. 그동안 대구와 경북지역은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도산 사건이 발생했으나 전담 법원이 없어 대구지법 도산부에서 사건을 맡아왔다. 그러나 조직과 인력 등이 턱없이 부족해 화급을 다투는 도산 사건들이 신속히 결정되지 못해 일부 신청인들은 회생법원이 있는 서울 등지로 원정을 가는 불편을 겪었다. 회생법원은 기업이나 개인의 회생업무만을 담당하는 전문성 있는 법원인 동시에 신속성,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설치한 법원이다. 서울, 수원, 부산에만 있던 회생법원이 대구에도 늦게나마 설치된 것은 다행이다. 회생법원은 어려움에 처한 기업과 개인이 빠르게 경제활동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사법적 지원 체제란 점에서 특히 경제계의 기대가 크다. 대구는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비중이 99%를 차지할 만큼 매우 높다. 경기순환 사이클에 취약한 경제구조여서 개인파산 사건의 경우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전국에서 가장 많다. 지난해 대구지법에 접수된 개인 파산 사건만 4167건으로 하루 11건 꼴이다. 그럼에도 사건 처리 속도는 전국 평균의 1.5배 이상 느리다. 타이밍이 중요한 도산 사건의 특수성 때문에 서울, 부산 등지로 원정을 간다는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대구지방법원의 관할구역이나 사건 규모 등을 볼 때, 대구회생법원의 설치가 너무 늦었다는 말이 나올 만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달부터 늦게나마 전문성을 갖춘 회생법원이 출범함으로써 그에 대한 지역민의 기대 또한 적지 않다. 복잡한 회생사건에 대한 정교하고 전문적인 법적 판단 이뤄질 것으로 기대를 한다. 또 신속한 업무 처리로 채무자가 더 빨리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도 있다. 무엇보다 제조업 기반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많은 지역경제의 든든한 안전망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지역경제계가 반기고 있다. 특히 회생법원이 심판자 입장에서가 아닌 경제적 재기의 지원센터로서 역할에 무게를 두었으면 하는 바람이 많다.

2026-03-04

국힘, ‘현역 물갈이’로 선거에 이길 수 있을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연일 현직 단체장들의 지방선거 출마에 부정적인 메시지를 내놓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이 위원장은 지난 3일에도 페이스북에 “현직 단체장들은 이른 시점에 직을 내려놓고 예비후보로 등록하라”는 글을 올렸다. 현직 프리미엄을 포기하고 일찍 선거전에 뛰어들라는 요구다. 이 위원장은 지난달 26일에도 영남권 현역 단체장들을 지목하며 용퇴를 압박했었다. 그가 “권고사항이지 강제 규정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국민의힘 현역 시·도지사와 재선, 3선을 준비하는 기초단체장들로선 엄청난 압박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일 전 90일(3월 5일)까지 공직자의 사직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현직 단체장과 지방의원이 해당 지방선거에 입후보할 때는 사퇴하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다만 예비후보 또는 후보 등록을 할 경우에는 선거일까지 권한은 정지된다. 현역 국회의원이 단체장 선거에 입후보할 때는 선거일 30일 전인 5월 4일까지 사직하면 된다. 국민의힘 공관위는 5일부터 11일까지 지방선거 후보 접수를 받고, 9일부터 20일까지 심사를 한다. 청년과 정치신인, 여성, 유공자에게는 가산점을, 현역 국회의원과 단체장, 지방의원에게는 감점을 준다. 현재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을 준비하고 있는 국회의원과 이철우 지사 모두 감점 대상 리스트에 올라 있다. 다만, 역대 TK지역 보수정당 경선 과정을 보면 가산점과 감산점이 공천에 큰 변수가 되지는 않았다. 지난주(23~25일 조사) 발표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정당지지율을 보면,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이긴 곳이 전무했다. ‘보수안방’인 TK지역에서도 양당 지지율이 동률(28%)을 기록했다. 이러한 지지율 추세를 감안하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은 과거와 같은 ‘TK완승’을 장담할 처지가 안 된다. 이처럼 TK지역 정치지형도 흔들리는 상황에서 국민의힘이 선거승리를 위해 전국적으로 현역 물갈이를 단행하겠다는 발상은 유권자에게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2026-03-04

포항이 사라졌다

포항은 경상북도의 대표 도시다. 250만 경북 인구 가운데 거의 50만을 품고 있는 중심 도시다. 그러나 도시의 풍경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묘한 공백이 느껴진다. 분명 큰 도시인데, 정작 ‘도심’이라고 부를 만한 공간이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과거 포항의 중심은 분명했다. 육거리 일대와 중앙상가, 죽도시장 주변이 자연스럽게 도시의 심장 역할을 했다. 사람이 모였고, 상권이 형성되었고, 도시의 기억이 쌓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중심은 점점 약해졌다. 상권은 낡아갔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새로운 주거지로 이동했다. 구도심은 천천히 힘을 잃어 갔다. 50만에 달하는 포항시민들 모두에게, 도시의 중심을 되찾는 일은 가히 전대미문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그런 다음이다. 새로운 도심이 만들어졌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포항의 주거환경은 남과 북으로 빠르게 흩어졌다. 남쪽에는 이동과 효자동 일대가 커졌고, 북쪽에는 장성동과 양덕 일대의 신흥 주거지가 형성되었다. 이들 지역은 ‘주거지’일 뿐 도시의 중심은 아니다. 소위 거주 공간의 확장만 진행된 셈이다.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가고 싶어 하는 공간, 도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장소, 외부 방문객에게 ‘여기가 바로 포항이다’라고 소개할 만한 상징적 중심이 보이지 않는다. 도시에는 단순한 주거지 이상의 ‘중심 공간’이 필요하다. 사람이 모이고, 문화가 숨을 쉬며, 경제 활동이 집중되는 장소가 있어야 한다. 도심이 있어야 도시가 살아 움직인다. 예를 들어 영일대 해수욕장은 분명 포항의 자랑스러운 공간이다. 바다와 해변, 야경이 아름다운 관광지다. 하지만 영일대는 관광 공간이지 도시의 중심 기능을 수행하는 도심(core downtown)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육거리 일대 역시 오랜 역사와 기억을 가진 장소지만 오늘날의 도시 규모와 기능을 감당하기에는 이미 힘이 약해졌다. 결국 지금의 포항은 구도심은 약해지고 신도시는 분산되어 있으며 도시 전체를 묶어주는 새로운 중심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도시 발전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단순한 미관이나 이미지의 문제가 아니다. 도심이 사라진 도시는 상권이 분산되고 문화가 축적되지 못하며 외부에서 도시를 기억할 상징도 만들어지기 어렵다. 이제 포항은 주거 확장을 넘어 도시중심을 다시 세우는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도심은 자연적으로 생겨나지 않는다. 계획과 투자, 그리고 도시 비전이 함께 작동할 때 만들어진다. 포항이 어떤 도시가 될 것인지, 어디에 도시의 심장을 다시 세울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진지하게 시작되어야 한다. 시민이 찾아가는 도심, 외부 방문객이 기억하는 도시의 중심. 포항은 지금 그 질문 앞에 서 있다. 구도심을 더 이상 추억의 장소로 간직하게 하는 일을 멈추어야 한다. 도심 공간을 어떻게 새롭게 바꾸어 사람들의 발길이 흐르고 경제가 느껴지며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회복시켜야 한다. 철강도시 포항의 도심에 새로운 맥박이 뛰게 해야 한다. 구도심은 추억거리가 아니라 포항의 미래 자산이 되어야 한다. 포항이 경북 제일의 도시로 버젓이 발전해 가기 위해서도, 도심 공간을 확보하고 사람들의 흐름을 회복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6-03-04

부모보다 시민이 먼저인가요?

한국 부모들이 공동체 정신은 없이 개인적 탐욕으로 아이를 잘못 키운다고 비판하는 ‘탐욕스러운 돌봄’이라는 책이 나왔다. 이 책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어느 게시글에는 ‘알 만한’ 이들조차 부동산과 자식 교육 두 가지 앞에서는 딴사람이 된다면서 그들에게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 게시글을 쓴 이의 말이 아니더라도 부동산과 자식 문제만큼은 진보와 보수의 차이가 별로 없다. 진보를 자처하거나 능력지상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조차도 자녀를 위해 강남으로 이사하는 사례가 많다. 두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는 나 역시 잠시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어느 정도 능력이 있었다면 실행에 옮겼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입시는 한국의 부모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다. 그러나 저자가 책의 서문에서 말하듯이 “돌봄의 어려움은 나 혼자 애쓴다고 덜어지지 않으므로” 양육을 사적인 헌신에 가두지 말고 모두의 책임으로 재사유하자는 제안에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저자는 이런 주장에 논거로 제시한 것은 들러리 서는 아이들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부모 찬스’를 쓸 운이 없었던 것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능력 있는 부모들의 개인적인 탐욕을 비판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불안과 욕망을 부추겨 공동체를 훼손하는 사회 전체의 탐욕을 더 비판한다. 이렇게 하여 저자가 도달한 결론은 부모인 사람들이 자기 자식을 돌보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지 말고 사회 구성원 모두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만드는 데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소개하는 이도 부모이기 이전에 시민이 먼저라면서 이 주장에 동의한다. 이런 주장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 한 가지 이유는 3년 전쯤 만난 어느 법조인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자녀가 공부에 큰 재주가 없는 것 같다면서 그런 아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만드는 데 관심 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며 공부에 재주가 없으면 다른 재주를 계발해야 하지 않나, 사회 구조가 어떻게 그의 행복을 책임질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저자의 주장에 의문이 생긴 두 번째 이유는 무엇보다 자기 자식을 돌보는 데서 남긴 에너지를 어떻게 공동체 구성원을 돌보는 데 얼마나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오래전 두 아이가 아토피가 심해서 생협을 이용하다가 지역 공동체 활동으로 반경을 넓혔는데, 두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쏟는 관심의 절반만이라도 자기들에게 신경 써달라고 여러 번 불평한 적이 있다.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도 내 가족과 공동체 사이에서 균형 잡기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대치동 학원가에서 자녀가 5분이라도 찬 바람 맞는 것을 꺼리는 것을 탐욕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다만, 불법의 영역만큼은 엄격하게 단속해야 한다. 아이를 태우기 위해 도로에 불법 주차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니 비판하고 규제해야 한다. 부모들의 불법을 단죄하는 것은 사회의 모든 아이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노력과는 관계없지만 사회 구성원을 훌륭한 시민으로 만들 수 있는 토양이 된다. /유영희 인문학자

2026-03-04

어깨가 아픈데 왜 목을 치료할까

어깨가 아파서 병원을 찾았는데 목을 같이 치료한다고 하면 환자들은 의하해 하는 경우가 있다. 어깨가 아픈데 왜 목까지 치료를 하는지 과잉치료를 하는 게 아닌지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인체를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이 보기엔 당연한 반응이다. 아픈 곳이 어깨니 어깨만 치료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 인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어깨 통증의 상당수는 어깨 관절 자체의 문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어깨를 움직이는 근육들은 팔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목과 등까지 이어져 있다. 특히 경추에서 나오는 신경들은 어깨와 쇄골을 지나 팔을 타고 손가락까지 연결되어 있다. 이 신경들에서 따로 분지하는 신경들은 등으로도 내려가고 어깨 깊은 곳과 바깥을 두르면서 내려간다. 따라서 목 상태가 나빠지면 어깨 근육의 힘도 약해지고 긴장도도 커져서 통증을 유발한다. 목 주변 근육이 지속적으로 긴장하면 경추의 신경이 지나가는 통로가 좁아지고 신경은 평소보다 자극에 더 민감해진다. 이때 실제 어깨 관절에는 큰 손상이 없어도 통증이 발생하거나 팔을 들 때 힘이 빠지는 느낌이 생긴다. 어깨가 뭉쳐 있거나 뻐근한 통증도 더 강하게 나타난다. 환자는 어깨만 문제라고 느끼지만 대부분 원인은 목에서 시작된 경우가 많고 어깨와 목을 같이 치료하고 풀면 더 빨리 회복된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사용이 늘어나면서 고개가 앞으로 빠진 자세가 일상화된 현대의 어깨 통증은 더더욱 어깨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자세에서는 목 뒤 근육과 등 근육이 계속 긴장하고 어깨를 잡아당기는 힘이 커진다. 결과적으로 어깨가 뭉치고 어깨 관절에 작용하는 힘이 틀어지고 이에 특정 힘줄에 부담이 반복되어 시간이 지나면 회전근개 염증이나 이두근 통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어깨는 치료를 반복해도 잘 낫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통증이 나타난 결과만을 치료하고 원인이 되는 목과 신경의 문제는 치료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음파 검사를 해보면 흥미로운 경우가 많다. 심한 파열은 없는데 특정 근육만 과도하게 굳어 있거나 움직일 때 힘줄이 비정상적으로 당겨지는 모습이 보인다. 이런 경우 목의 긴장을 풀어주고 신경 자극을 줄이면 어깨 통증이 예상보다 빠르게 줄어드는 일이 흔하다. 인체는 떨어진 부품처럼 각각 따로 존재하지 않고 하나의 연결된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목의 움직임이 제한되면 어깨가 대신 더 움직이게 되고 어깨는 부하가 축적된다. 반대로 목의 근육과 신경의 긴장이 풀리면 어깨 근육과 관절의 부담도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치료의 방향은 단순히 아픈 부위에 침만 놓는 것이 아니라 왜 그 부위가 아프게 되었는지를 찾고 그 원인인 목을 푸는 과정이 된다. 환자들이 목이 편해지면 어깨 뭉침이 훨씬 빨리 줄고 팔도 잘 올라가는 것을 경험하면 다음엔 목도 같이 풀어 달라고 한다. 이런 것을 보면 인체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어깨 통증이 목 때문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실제 어깨만의 파열이나 관절 문제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통증이 오래 지속되거나 치료 반응이 느린 경우라면 어깨만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넓히면 더 나은 치료 결과를 접하게 된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6-03-04

포항 시민 신영학-과수원칼국수

제자리를 잘 지키는 것이 나아감보다 융숭함을 본다 개고생 끝에 오롯하게 생업을 유지하며 사람을 환대할 줄 아는 그 사과꽃 미소는 고난의 끝에서 길어 올린 소박한 인고의 결실이다 젊은 날의 방황과 설움과 밥벌이의 고난을 그는 항시 기억하며 살고자 한다 불평등 혹은 격차가 더욱 깊어지는 시절에 그는 사람의 길을 생각하며 국수를 끓인다 치열함과 절박함을 함께 녹여 낸다 따스한 세상이 그의 종착역이지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제자리 지킴의 가치가 더욱 선연해진다. 술자리에서 보수와 진보를 두고 침 튀길 때 세상사에 별 관심 없는 그가 농담으로 무심히 던진 말이 자정 넘어 집으로 오는 길, 유독 귀에 남는다 청송 옆에 진보 있다 그 말은 먹고 사는 형편의 이리 불편함과 어려움을 슬쩍 일깨워 주려는 헛기침일지도 모른다 각설하고, 그는 살아가는 일에 늘 충실하며 진보적이라는 사실은 자명(自明)하다 과수원칼국수는 자명리(自明里)에 있다. …. 이 시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자명과 청송과 진보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러나 청송이라 불려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너무 많다. 진보는 아득히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지명을 특정적으로 지칭하지 않음을 양해 바란다. 나는 다만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봄빛 가득한 사과꽃이 피길, 이런 무책임한 말을 하는 나를 적당히 욕해 주시길. 신영학의 말에서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그 말에 함축된 의미가 너무 의연해서 오래 밤길 걸으며 생각했다. 마음으로 쓴 엽서는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렇지만 우체부의 걸음이 휘청일 수도 있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6-03-04

관성에서 벗어나기

병오년 새해가 밝았지만 내 일상은 여전히 같은 궤도를 돈다. 해가 바뀌면 무언가 달라지리라 기대하지만, 아침에 눈 뜨면 익숙한 동선이 기다린다. 일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람들을 만나는 반복. 그 반복이 나를 안정시키기도 했지만, 어느새 익숙함은 관성이 되어 나를 가만히 묶어 두었다. 새해는 벌써 저만치 가고 있는데, 작년과 같은 궤도를 돈다. 지난해도 그렇게 흘렀다. 달이 지구의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듯 내 하루도 판박이처럼 돌았다. 느슨하거나 게으르진 않았지만 돌아보면 남은 건 손에 닿지 않는 성과와 허접한 문장들뿐이었다. 칼럼을 쓰고 잡지에 원고를 실었지만, 내가 꼭 필요해서 쓴 글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었다. 작품집을 내는 작가들의 소식을 접할 때면 마음만 조급했다. 책상 위에 쌓인 그들의 작품집을 보며 봉투를 뜯지 못한 채 그냥 바라만 본다. 부러움과 자책이 번갈아 올라온다. 얼마나 더 글을 쓸 수 있을까. 건강 검진에서 의사는 건강에 이상은 없으나, ‘근력운동을 하라’고 권했다. 그 말 한마디가 마치 유통기한을 확인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마음은 스무 살인데 몸은 나이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사실이 불현듯 무겁게 내려앉았다. 뒤늦게 근력운동을 시작했지만 막연한 불안과 의미 없는 조급함이 줄어들진 않았다. 그나마 헬스장에서 근력운동을 시작했다는데 위안을 얻었다. 관성은 나를 편안한 자리로 다시 데려다 놓고, 그 자리에 머물다 시간을 흘려보냈다. 계획표엔 야심 찬 목표들이 빼곡했지만, 연말이면 남는 건 아쉬움뿐이었다. 스스로를 부지런하다고 여겼지만, 실상은 주어진 일에 밀려 나의 삶은 누군가가 짜 놓은 시간의 틈으로 흘러 들어갔다. 앞을 향해가는 대열에서 나만 뒤로 밀려났다. 익숙한 궤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몇 가지를 고치기로 했다. 느슨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감이 있는 글쓰기. 도서관에서 글쓰기 강의하며 결과를 모아 한 권의 글쓰기 책을 내기. 집중을 위해 몸을 더 챙기고, 반시계 방향으로 운동장을 도는 건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작은 저항이다.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 시간을 거스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숙달이 되면 궤도를 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술잔을 기울이며 나를 위로하고 설득해야 했다. 누군가의 성취를 부러워하기보다 내게 남은 하루를 어떻게 쓸지 묻기로 했다. 부지런함이 곧 생산성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되, 꾸준히 한 방향으로 걸음을 내딛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작지만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고, 한 시간이라도 책 속에 머무르는 날을 쌓아 가기로 했다. 시간은 야박하게 흘러간다. 유통기한은 누구에게나 다가오지만, 그 속도는 내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조금은 늦출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반시계 방향으로 운동장을 돌았다. 돌면서 생각하리라. 내가 집중해서 해야 할 일을.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반시계 방향으로 돌며 관성을 벗어나 나의 길을 가리라 다짐한다. 글을 쓰는 일이 내게 남은 중요한 일이라면, 이제는 관성에 기대지 않고 일부러 걸음을 바꿔 걸어야 한다. 시작은 늘 불안하지만, 살면서 쉽게 이루어진 일이 있었던가.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결과는 늘 뜻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삶은 늘 힘들고 만족스럽지 않지만 그래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다가오는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다 보면 글이 내게로 다가오는 날도 오기를 소망한다. 묵묵히 길을 가다가 보면 어느 날은 단어 하나가, 또 다른 날은 문장 하나가 올라올 수도 있으리니. 문장들이 모이면 한 편의 글이 되고 책이 될 수도 있으리니. 내 꿈도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리라. 작심삼일. 그러기에 하루하루를 살리라. 삶은 일생의 모든 하루의 집합임을 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에 휘둘려 한눈을 팔지도 않으리라. 먼 미래를 위해 살겠다고 하루를 허투루 보낼 것이 아니라 그냥 하나만 생각하며 살면 되는 것을. 성실한 하루에는 작심삼일은 발도 붙이지 못한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그렇게 글만 보며 하루를 살아가리라. /김규인 수필가

2026-03-04

블랙스완의 충격과 회색코뿔소의 돌진

결국 터질 것이 터지고야 말았다.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주요 시설과 민간인 시설에 대해 대대적인 합동 공습을 벌이고, 이란이 이에 맞서 반격에 나서면서 중동은 물론 세계질서가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는 예견된 위기이면서도 가공할 파괴력을 지닌 복합적 성격을 띤다. 우리는 이를 ‘블랙스완(Black Swan)’의 돌발성과 ‘회색 코뿔소(Gray Rhino)’의 경고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해부해 보아야 한다. 나심 탈레브가 정의한 ‘블랙스완(Black Swan)’은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발생해 체계 자체를 무너뜨리는 예외적 사건을 말한다. 반면 미셸 부커가 주창한 ‘회색코뿔소(Gray Rhino)’는 개연성이 높고 파급력도 크지만, 사람들이 설마 하며 무시하다가 결국 치명적인 충격을 입게 되는 위기를 상징한다. 지금 지구촌을 엄습한 중동전쟁의 위기는 이 두 동물이 동시에 날뛰는 형국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對)이란 군사 행동은 그 자체로 글로벌 물류의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의 폐쇄를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지정학적 리스크를 넘어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 또한 글로벌 공급망과 에너지 안보, 그리고 우리 기업들이 직면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체계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의 폭등은 기업들의 화석연료 의존도를 단기적으로 높이며 탄소중립(Net-Zero) 목표 달성을 지연시키게 될 것이다. 에너지 수급 불균형은 재생에너지 전환을 위한 우리들의 노력을 약화시키고, 고유가로 인한 물류비용 상승은 전 산업군의 탄소 발자국 관리에 비상을 걸게 된다(E).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불안과 단절은 단순한 경제 손실을 넘어 생존의 문제로 직결된다. 에너지 및 식료품 가격의 급등은 사회적 약자에게 가장 먼저 타격을 입히며(S), 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영역 내에서 관리해야 할 ‘인권 및 커뮤니티 리스크’를 증폭시키게 될 것이다(G). 우리 기업들은 이제 지정학적 불안정성을 경영의 ‘변수’가 아닌 ‘상수’로 보아야 한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의 붕괴에 따른 예측 불가능성과 지정학적 리스크의 현실화 속에 단순한 비용 절감 차원의 대응은 무의미하다. 우리에게 이번 사태는 돌발적인‘블랙스완’의 충격처럼 다가오지만, 사실 에너지 안보와 공급망 취약성이라는 오래된‘회색 코뿔소’가 우리를 향해 돌진해 온 결과다. 수출 중심의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특정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면적이며, 특히 지역경제의 대들보인 철강산업은 그 충격파의 정점에 서 있다. 지역철강업은 에너지 다소비 구조상 전력 생산을 위한 유가와 가스 가격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중동발 에너지 쇼크는 즉각적인 제조 원가 상승으로 이어져 단순한 수익성 악화를 넘어 ESG 경영의 ‘E(환경)’ 지표를 위협하게 된다. 치솟는 에너지 비용은 수소환원제철 등 저탄소 공법으로의 전환에 투입될 재원을 고갈시키게 된다. 고유가 상황에서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려는 노력은 역설적으로 더 큰 비용 부담을 안게 된다. 철강 기업들은 이제 ‘탄소중립’이라는 장기 과제와 ‘에너지 수급’이라는 당면 과제 사이에서 거버넌스(G)의 진정한 시험대에 올랐다. 특정 지역에 편중된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 수급 구조에서 탈피해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등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에너지 자립화 전략(E)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큰 지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신뢰할 수 있는 국가들로 공급망을 재편하는 공급망의 ‘리쇼어링’과 ‘프렌드쇼어링’ 가속화는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거버넌스(G) 전략이다. 이것이 블랙스완과 회색 코뿔소의 복합충격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중동의 위기는 지역산업의 취약점을 드러내는 거울인 동시에, 더 단단한 지속가능성을 구축하라는 경고다. 역설적으로, 중동의 포성은 우리에게 ESG 경영의 엄중함을 일깨우고 있다. 위기는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블랙스완의 재앙이 되지만, 철저히 대비한 자에게는 회색 코뿔소를 길들여 앞으로 나아갈 기회가 된다. 이와 함께 글로벌 차원의 협력 강화도 필수적이다. 국제기구와 다자협약을 통해 에너지 시장 안정화 메커니즘을 구축하고, 재생에너지 기술 공유 플랫폼을 확대해야 한다. 국내 기업은 공급망 디지털화와 ESG 데이터 투명성 확보에 투자해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하며, 정부는 탄소중립 R&D 지원과 그린 파이낸싱 확대를 서둘러야 한다. 전쟁 리스크 속에서 ESG는 단순한 경영 전략이 아닌 국가적 생존 전략으로 진화해야 할 때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호뿐인 ESG가 아니라, 전장의 포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리스크 회복력’이다. 블랙스완의 날갯짓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회색 코뿔소의 뿔을 잡고 정면으로 돌파하는 담대한 ESG 리더십이 절실한 시점이다. /서득수 지속가능ESG연구소장

2026-03-04

균형과 느림

균형이란 뭘까.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상태일까, 아니면 어느 것 하나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알맞음일까. 우리는 균형이라는 단어에 유난히 좋은 의미를 붙인다. 균형 잡힌 식사, 균형 잡힌 사고, 균형 잡힌 삶. 그 말 속에는 늘 안정과 성숙이 함께 따라온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일과 삶을 적절히 나누며, 타인의 말에도 쉽게 치우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을 떠올릴 때 우리는 어쩐지 안심하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한다. 저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겠구나, 중심이 단단하겠구나 하고. 균형 잡힌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은 어쩌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고백과도 닮아있다. 회사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도 당황하지 않고 정리하는 사람, 삶의 여러 영역을 적절히 나누어 관리하는 사람,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영리하게 선을 긋는 사람. 그런 모습은 완성형에 가깝게 느껴진다. 마치 중심이 정확히 잡혀 있어서 어떤 외부의 힘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같은 모습을 요구한다. 왜 나는 이렇게 쉽게 기울어질까, 왜 감정이 먼저 앞설까, 왜 한쪽으로 치우쳤다가 뒤늦게 후회할까 하고선 자주 자책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존재할까?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우리는 가만히 서 있으려 애쓰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열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발끝에 힘을 주고 무게를 조금 옮기고 손잡이를 더 단단히 붙잡는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히 서 있는 것 같지만, 몸은 계속해서 미세하게 방향을 조정하고 있다. 그 작은 움직임 덕분에 우리는 넘어지지 않는다. 균형은 가만히 버티는 힘이 아니라, 흔들리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몸을 옮기는 능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마다 나는 유난히 느려지는 편이다. 이리저리 재보고, 가능한 경우의 수를 상상하고, 마음속에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사실 그동안 나는 고민이 드는 순간 결정을 빠르게 내리는 편이었다. 고민을 하는 시간은 늘 답답하고 두려움이 들었기에 빨리 결론을 내린 적이 많았다. 그러나 그렇게 서둘러 내린 선택은 종종 오래 마음에 남았다.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다는 찜찜함, 다른 가능성을 놓쳤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오래 뒤따랐다. 크게 후회를 한 뒤로는, 반대로 며칠을 두고 생각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감정이 가장 크게 요동칠 때는 아무 결론도 내리지 않고 하루쯤 지나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마음속 급급함이 조금씩 내려갔다. 처음에는 확신처럼 느껴졌던 감정이 사실은 불안이었음을 알아차리기도 하고, 당장 피하고 싶었던 선택이 오히려 필요한 방향임을 이해하게 되기도 했다. 때문에 중요한 결정을 앞두면 나는 여전히 느려지고, 그 과정은 여전히 괴롭지만, 잠시 멈추어 이 상황 저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보는 시간이 결국 나를 덜 후회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건 단지 결정을 늦게 내리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 넘어지지 않기 위해 조금 더 오래 균형을 잡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균형을 이상적인 상태로 그려놓는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놓여 있고, 감정도 일도 관계도 정돈된 모습을 원한다. 그러니 조금만 삶이 한쪽으로 기울어져도 쉽게 불안해진다. 일이 바빠지면 ‘나는 지금 너무 일에 치우친 건 아닐까’ 걱정하고, 쉬는 시간이 길어지면 ‘이렇게 오래 쉬어도 되나’ 하며 초조해진다. 완벽하게 반듯한 상태를 상상해두었기 때문에 그 선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실패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삶은 완벽히 정지된 화면이 아니다. 매일 다른 변수가 생기고, 감정의 온도도 달라지고, 우리의 에너지도 일정하지 않다. 그렇게 끊임없이 움직이는 조건 속에서 완벽한 균형을 기대하는 일은 어쩌면 지나치게 이상적인 바람일지도 모른다. 균형이란 결국 매일 조금씩 방향을 고치며 살아가기 위한 열렬한 몸짓이라 생각한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발을 옮기는 일, 한쪽으로 치우쳤음을 알아차리고 다시 중심을 찾으려는 노력, 빠르게 결론을 내리기보다 잠시 멈춰 서는 선택. 그것은 완벽함의 증명이 아니라, 흔들림을 인정하는 태도에 가깝다. 균형 잡힌 사람으로 보이는 이들도 아마 매일 같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없이 방향을 수정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균형은 단단히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기보단, 기울어질 때마다 다시 중심을 찾으려는 의지다. 오늘도 나는 작은 외부 충격에도 쉽게 흔들리겠지만, 그 대신 조금 더 오래 서 있기 위해 천천히 몸을 조정할 것이다. 그리고 그 느린 조정이 결국 나를 넘어지지 않게 할 것이다. /윤여진(시인)

2026-03-04

‘호락호락’도 락이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괜찮다. 나도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신사역에서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려고 기다리던 중 광고판에 호랑이 캐릭터와 함께 이런 문구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강의가 끝나고 왜인지 모를 실의에 빠져 있는 때였다. ‘쓸데없이 말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아. 누가 누굴 가르친담. 내가 괜히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 건 아닐까?’ 몇 년간 나를 짓누르는 무력감에 무거운 짐이 어깨와 등에 더해진 기분이었다. 그런데 저 문구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따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괜찮다. 나도 호락호락하지 않아. 나도 호락호락하지 않아. 출처가 궁금해서 알아보니 이미 밈으로 돌아다니던 문장을 가수 태연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려 화제가 된 것이라고 한다. 귀여운 호랑이 캐릭터와 그 말이 무슨 관계가 있고 또 무엇을 광고하려고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이미지와 문장은 내게 분명하게 남았고, 스스로 약간의 동력이라도 찾을 수 있게 되었으니 광고와 무관하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사실 나는, 제법 호락호락한 편인 것 같다. 부탁을 받으면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나쁜 말을 들으면 곧장 나쁜 말로 되받아치지 못한다. 외양이라도 좀 강해지고 싶은데 그건 태생적인 부분이라 어쩔 수가 없다. 키와 덩치가 그닥 크지 않은데 얼굴도 동그래서 좀 만만하게 생겼다. 심지어 목소리도 낮고 음성의 크기 또한 크지 않다. 전반적으로 별다른 포스가 없다. 스스로 위축되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어디에서든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바로 쭈구리가 된다. 사람과 닿는 것도 무서워서 지하철이나 버스 옆자리에 누군가 앉으면 있는 힘껏 몸을 말곤 한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잘 안 된다. 언제나 내가 제일 약하고 볼품없어 보인다. 이런 나지만 의외로 오프라인에서 하는 것들을 즐긴다. 특히 콘서트. 아무래도 좌석을 선호하지만 스탠딩도 아주 싫어하지는 않는다. 일어서서 뛰면서 함께 해야 더 즐거운 공연도 있다. 락이 그렇다. 엊그제 일본 록(J-Rock) 밴드 원오크락(ONE OK ROCK) 내한 콘서트를 보러 친구들과 잠실실내체육관에 갔다. 전부터 좋아하던 밴드라 기대가 됐다. 동시에 걱정도 됐다. 노래가 하나도 쉬운 게 없는데 이게 다 라이브가 되는 건가? 공연장 음향 상태가 안 좋으면 어떡하지? 나… 밖에 오랜만에 나왔는데 사람들 속에서 음악에 집중할 수 있을까? 그렇게 양가적인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원오크락은 시간을 끌지 않고 바로 등장했다. 그리고 오프닝 첫 곡으로 ‘Puppets Can‘t Control You’를 했다.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직전의 걱정이나 고민은 모두 기우라는 걸 알았다. 전율이 일었다. 두 번째 곡으로 한 건 ‘The Beginning’. 두 곡만으로도 분위기는 완전히 달아올랐다. 나도 열심히 손을 흔들고 소리를 질렀다. 앞이나 옆에서 종종 작은 나의 영역에 침범해서 리듬에 몸을 맡겼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쨌든 그 순간 나는 누구든 허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저 원오크락의 음악 안에 빠져 노는데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한 시간 아니 두 시간쯤 더 해도 좋았을 테지만 모두가 예상했을 앵콜곡 ‘We Are’를 마지막으로 공연은 끝났다. 친구들은 나와 같은 감정이 되었는지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보컬은 말할 것도 없이 끝내줬고, 악기들 또한 합과 움직임이 엄청났다.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결속력 같은 게 보이는 듯했다. 나도 저런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고 싶단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잠깐이고,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그리 쉽게 바뀔 수 없다. 인간은 나약하고 나는 더 나약하다. 공연장 밖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가볍게 치이고 자꾸 움츠러드는 나 자신을 보면서 호락호락이라는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내 안에 원오크락이 준 에너지는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호락호락. 하지만 호락호락도 락이 아닐까. 아니야. 확신을 갖자. 내가 설령 호락호락한 사람이라고 해도, 락처럼 이겨낼 수 있을 거야. 심지어 락이 두 번이나 있는걸. 그래서 작지만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했다. 호락호락도 락이다. 가방을 안고 대중교통을 조용히 타고 있는 내 이어폰에서는 늘 락이 나오고 있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의 전투력은 이미 최고치에 달했다. 싫은 소리를 들어도 또 별말 못하겠지만 뭐 어떤가. 내 안에서는 다시 내가 짱이 되었다. 정말 강해지지는 못할지라도 너무 약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나에게 호락호락한 정도라면, 딱 괜찮을 것 같다. /구현우(시인)

2026-03-04

與, ‘TK통합’ 이용해 영호남 갈등 유발하나

국회 법사위에 계류된 대구·경북(TK) 행정통합 특별법 처리가 민주당의 잇따른 ‘조건 추가’에 가로막혀 좌초 위기에 놓였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지난 2일에도 민주당에 원내대표 회동을 제안했지만 거부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은 그동안 필리버스터까지 전격 중단하며 민주당이 요구한 조건들을 이행했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2일 “전남광주, 대구경북, 충남대전 행정통합 모두 쌍둥이 법이기 때문에 다 같이 처리해야 한다”는 조건을 추가로 내걸었다. 전남광주 통합법안은 이미 통과시켜놓고, 이제 충남대전까지 통합에 찬성해야 TK통합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조건들을 제시하면서 TK행정통합을 무산시키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이러니 “민주당이 처음부터 TK통합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말이 나온다. 지난 2일 대구시당에서 긴급회의를 연 대구지역 국민의힘 국회의원들도 “전남광주 행정통합 법안은 되고 TK법안은 왜 안 되는 것이냐. 민주당 정권의 ‘TK 홀대’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분개했다. 민주당은 행정통합 무산으로 인한 TK지역 여론악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당내에서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TK가 야당 텃밭이라 해도 전남광주 법안을 처리했는데 TK법안을 못 본 척할 수 있겠느냐. 당 지도부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지목한 충남대전 법안을 어떻게 같이 처리할지가 고민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TK 출신 민주당 임미애 의원도 최근 페이스북에 “(TK지역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이재명 정부가 오롯이 독박 쓰는 게 아닐까”라는 글을 올렸다. 민주당의 몽니로 인한 TK행정통합 무산은 그동안 해빙 분위기였던 영호남 갈등을 다시 유발시킬 위험성이 있다. 민주당이 진심으로 국민통합을 원한다면 영호남을 이간시키려는 이러한 행위를 즉각 중지해야 한다. 오는 5일부터 시작되는 3월 임시국회 본회의가 12일로 잡혀 있는 만큼,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TK통합법안을 통과시킬 시간은 있다.

2026-03-03

벌써 오일쇼크···지역경제도 만반 대비해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에 대한 이란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국제 에너지 시장에 비상이 걸렸다. 벌써부터 국제기준 유가인 북해산 브렌트유는 전일 대비 7~8%가 올랐고, 미국 텍사스산 원유 가격도 7% 정도 급등했다. 특히 이란의 최정예 부대인 혁명수비대가 2일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시도하는 모든 선박에 대해 공격하겠다는 공개 경고를 함에 따라 원유 수송을 비롯한 글로벌 물동량의 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실정이다. 이란이 밝힌 호르무즈 봉쇄가 실제로 이어진다면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을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게다가 해상 운임도 80%까지 폭등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란 사태가 장기화하느냐 단기전으로 끝날 것이냐에 따라 대응 방법이 다르겠지만 국제유가 폭등에 따른 다양한 대응책이 서둘러 모색돼야 한다.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있겠지만 기업도 상황에 맞는 대응책을 잘 준비해야 한다. 특히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대구·경북 제조 산업은 유동성 확보와 원가절감, 원자재 확보 등 각 분야별로 대응책을 구체적으로 검토한 후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 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또 지방자치단체와 상공단체 등 유관기관들이 나서 중동지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들을 모니터랑 해 기업이 제대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체제를 강화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유가가 오르면 제조업 원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산업연구원은 국제 유가가 10% 오를 경우 제조업 생산자 물가가 0.68% 상승한다는 통계를 제시한 바 있다. 특히 유가 상승과 환율 상승은 수입 물가를 끌어 올려 국내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일 수 있다. 이란 사태가 우리 경제에 미칠 파장이 만만치 않다. 그동안 2%대로 안정세를 보이던 국내 물가 흐름이 이번 사태로 다시 오름세로 돌아설지도 걱정되는 대목이다. 내수경기 침체 등으로 힘들게 버텨온 골목상권이나 자영업자들에게 불똥이 튈지도 걱정이 된다. 정부와 기업 모두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단단한 각오로 대응에 나서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2026-03-03

흔들리는 TK민심···여권 러브콜 통할까

보수진영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져 왔던 대구·경북(TK)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폭락하자 여권의 전방위 공략이 시작됐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최근 라디오방송에서 “국민의힘은 이번 지방선거를 장동혁 체제로 치르면 잘해야 경북지사 한 사람 당선될 것”이라며 “대구도 우리가 먹는다”고 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8일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2‧28민주운동 기념식에서 “알고 보니 대구가 이 땅의 내란을 막아냈던 빛들의 뿌리였다. 정부는 앞으로도 대구·경북 지역이 대한민국의 선도 지역으로 발전하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2‧28민주운동을 진보진영의 상징인 ‘빛’의 뿌리로 네이밍한 것이다. 2‧28민주운동은 1960년 3·15 선거를 앞두고 이승만 정권이 야당 부통령 후보의 대구 수성천변 선거유세에 학생들이 참가하지 못하도록 일요등교 지시를 내리자 이에 반발한 대구 고교생들의 시위사건이다. 김 총리 대구방문 하루전인 27일에는 정청래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가 대구 중구 2·28기념회관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이젠 대구시민들이 민주당에도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정 대표는 이날 TK신공항 건설 등 지역 숙원사업 해결을 약속하면서 “이재명 대통령의 약속대로 대구를 AI 로봇 수도로 우뚝 세우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지도부가 ‘윤 어게인’ 늪에 빠져 맥을 못 추는 틈을 타 민주당이 보수텃밭의 안방까지 치고 들어온 것이다. 민주당 대구시당도 최근 지역 밀착 공약을 쏟아내면서 공격적인 선거전을 펼치고 있다. 지난달 23~25일 발표된 전국지표조사(NBS)에서는 민주당 지지율이 45%로 국민의힘(17%)을 2배 이상 앞질렀다. 특히 TK지역 정당지지율 조사에서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동률(28%)을 기록했다. 그동안 대선이나 총선 때마다 보수정당 후보 대부분이 TK지역에서 70~80%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선된 것과 비교하면 충격적이다. 민주당 강득구 의원은 대구 최고위원 회의에서 “28%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변화의 신호탄이다. 민주당의 전국정당화가 현실이 될 수 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민주당은 현재 대구시장 후보에 ‘김부겸 전 국무총리 카드’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김 전 총리는 출마가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유력 인사들이 김 전 총리를 설득하는 중”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김 전 총리가 출마 의사를 굳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김 전 총리는 지난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 간판으로 대구 수성갑에 출마해 60% 넘는 득표율로 당선됐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국민의힘이 대구시장 후보로 누굴 공천하느냐에 따라, 정권 프리미엄을 등에 업은 민주당 후보의 파급력이 예상외로 커질 수 있다. 여당에서 정치적 비중이 큰 후보를 공천할 경우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말이다. 국민의힘도 이제 ‘TK지역은 지팡이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식의 안이한 생각을 버리고,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민심과 지역발전을 토대로 한 후보를 공천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6-03-03

블루칼라 시대의 도래

네오블루칼라는 블루칼라에 속하지만 대도시의 화이트칼라보다 높은 삶의 질을 누리며 고소득을 통해 막강한 구매력을 행사하는 신흥 소비계층을 이르는 말이다. 첨단기술과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고소득 숙련 노동자들이 등장한 배경은 기술적 변화와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 세대의 가치관 변화가 주요 원인이다. 특히 결정적인 것은 인공지능의 발전에 있다. 과거에는 안전하다고 믿었던 화이트칼라의 업무가 AI와 자동화에 대체될 가능성이 커진데 따른 변화라 할 수 있다. 원래 블루칼라는 육체 노동자를 뜻하는 말로 1920년대 미국 신문 구인광고에 처음 사용되면서 알려졌다. 당시 미국 노동자들은 청바지와 청색 셔츠를 입고 일을 해 깔끔한 흰셔츠를 입고 일하는 사무직인 화이트칼라와는 대비되는 직업군으로 묘사된 것이다. 당연히 화이트칼라의 임금이 블루칼라보다 훨씬 높고 젊은세대의 직업 선호도도 화이트칼라에 집중됐다. 그러나 최근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생산인구 감소 등으로 인력난이 빚어지자 블루칼라 직종에 대한 젊은이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작년 한 여론조사에서 Z세대 구직자의 63%가 블루칼라 직종을 긍정 평가했다. 이런 현상은 수백대 1의 경쟁률을 보인 현대차 생산직 채용에서 이미 입증된 바 있고, 최근 기피 직종으로 알려진 버스 기사 채용에도 젊은세대의 도전이 늘고 있는 것과도 유관한 흐름이다. 물론 젊은층의 취업이 상대적으로 어려워진 시대 탓도 있으나 직업관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분명하다. 일본서도 블루칼라 직종의 임금이 오르면서 화이트칼라 연봉을 앞지르는 임금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세상 일은 새옹지마(塞翁之馬) 아니겠는가. /우정구(논설위원)

2026-03-03

AI시대, 인간의 일은 무엇인가

최근 산업 현장에서 인공지능의 존재감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과거에는 숙련 작업자의 경험과 직관에 의존하던 설비 진단과 품질 판단이 이제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설비 이상을 먼저 발견하는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되는 장면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기술 변화가 현장의 질서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현재 활용되는 인공지능(AI)은 특정 업무를 수행하는 도구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인간처럼 학습하고 추론하는 AGI(범용 인공지능), 더 나아가 인간 지능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는 ASI(슈퍼 인공지능) 단계까지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기술 발전을 넘어 노동과 조직, 그리고 인간 역할 자체의 변화를 예고한다. AI 확산을 둘러싼 논의는 흔히 일자리 감소라는 우려에 집중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기술 혁신은 인간의 역할을 소멸시키기보다 재정의 해왔다. 산업혁명이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체했다면, AI 혁명은 인간의 판단 과정 일부를 대체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기술의 등장 여부가 아니라 인간이 어떤 역할로 이동 하느냐에 있다. 일반 제조업이나 거대 장치산업의 일의 특성은 ‘출선구 작업’이나 ‘전기로 전극봉 교체작업’ 등은 고열·고위험 작업으로 작업자 접근이 없어도 일이 가능하도록 하는 로봇화, AI 연결로 안전한 작업, 편리한 일로 일하는 방식이 진화 발전하게 된다. 또한, 높고 복잡한 공장의 실시간 상태를 알기 위해 여러 개소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상태만 보는 것이 아니라 AI 프로그램 적용으로 상태를 분석해서 작업 조건 최적 제어하는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여 나가는 일하는 방식의 변화인 것이다. 제조 현장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분명하다. 경험 중심 의사결정은 데이터 중심 판단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관리자의 역할 역시 지시와 통제에서 문제 정의와 방향 설정으로 전환되고 있다. AI가 분석과 예측을 담당할수록 인간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오히려 질문 능력과 통합적 판단 능력으로 수렴한다. 현장의 개선 활동이 보여주듯 혁신은 정답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왜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가’라는 질문이 변화를 만든다. AI는 답을 빠르게 도출할 수 있지만,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결정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책임과 판단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다가올 AI 시대에는 보고서 작성, 데이터 분석 등 상당수 지식 노동이 자동화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선택의 책임, 가치 판단, 협력과 설득은 자동화 되기 어려운 영역으로 남는다. 결국 미래 경쟁력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에서 결정될 것이다. AI는 인간을 대체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역할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촉매제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AI와 함께 인간은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것인가’이다. 기계가 생각을 시작한 시대, 인간의 일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설계되고 있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

2026-03-03

크로아티아 민족주의 ①무한 폭력의 싹이 자라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까지 합스부르크제국 최전선이 크로아티아라면, 오스만트루크제국 최전선은 세르비아가 된다. 이때부터 가공할 폭력의 역사적 선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세르비아인들이 합스부르크 지배지역인 크로아티아와 보이보디나 지방으로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왔던 것이다. 어떤 이들은 알바니아와 보스니아로 이동했고, 북동쪽의 살기 좋은 달마티아로 들어가기도 했다. 합스부르크제국과 오스만터키제국 국경선의 경우 세르비아인이 거주민의 3분의 1에 달했다. 세르비아 사람들은 합스부르크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로 터전을 옮겨 사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목숨을 건 국경탈출은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타국 내 세르비아인들이 흩어져 살게 되고, 훗날 대세르비아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릴 때 이들의 후손들은 자진에서 혼란을 부추기다 폭력의 선봉에 선다. 당시 크로아티아는 하층민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크로아티아 친 헝가리 인사들에 의해 선진문물 헝가리 문화를 받아들이자는 자칭 정치 지식인의 외침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들의 가련한 짝사랑은 차별을 가져왔다. 헝가리인은 크로아티아인을 미개인 취급을 했으니 말이다. 한편으로 크로아티아 민족주의자들은 민족영웅 토미슬라브는 물론 민족의 기원을 찾아내 역사를 기록했고, 중세 왕국 발전과정과 찬란한 문화의 향기를 덧입혀 자존감까지 충족했다. 오스만과 마지막 전투 ‘피의 평원’도 새롭게 조명했다. 그들만의 성경이 발간되는가 하면, 크로아티아 전설이나 설화 등 사연을 들춰내 아픔을 노래하면서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리고 고고학적, 인류사 연구가 이루어지며 그 뿌리를 더 멀리 더 깊숙하게 박아 놓았다. 종교의 정통성과 민족성을 결부해 하느님으로부터 일방적 동의를 얻는다. 더불어 유럽에 불어 닥친 르네상스를 경험한 해외파들이 조국 크로아티아를 찾으면서 문화적, 민족적 정체성에 대해 자각하기 시작했다. 민족 자주성과 민족성에 대한 의식, 즉 ‘우리(We)’와 ‘그들(They)’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인식하면서 크로아티아 민족 정체성 형성이 확고하게 자리 잡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만약 세르비아처럼 오스만트루크제국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면 단절과 암흑의 시대를 보내야 했을 크로아티아는 합스부르크제국의 지배에 들게 됨으로써 사회경제적 분야는 물론 문화발전과 국민의식이 함께 상승일로를 걸었다고 봐야 한다. 이에 힘입어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민족주의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단어에 의기만 충만해지게 된다. 실상은 크로아티아 토미슬라브가 세운 최초의 중세 왕국은 후손들이 헝가리에 복속되면서 막을 내렸다. 이들이 선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시대별, 지역별로 각기 다른 대국의 그늘에서 숨 쉬며 살았기 때문이다. 아드리아해 도시들은 베네치아 영향 아래, 북부 크로아티아와 슬라보니아 지역은 헝가리 지배하에, 크로아티아 서쪽 아드리아해로 불쑥 튀어나간 이스트라반도는 오스트리아 영향 아래, 그리고 두브로브니크는 중세 해양국가 라구사공국으로 진화(?)되면서 19세기를 맞는다. 결과적으로 크로아티아는 주위로부터 억압 받으면서 성장했고, 그 영향으로 가톨릭국가가 생겨났다. 과정과 결과가 말하듯 이때부터 세르비아와 여타 발칸의 여러 지역과 갈라지면서 문화적 이질감이 형성된다. 민족성과 가치관마저 차이를 보이며 누가 보더라도 도무지 합쳐질 수 없는 일이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루어진 하나의 남슬라브 나라를 기세 좋게 추진했던 일련의 사건들을 포함해 살육과 내전의 씨를 뿌리고 있었던 셈이다. 각설, 민족주의 탄생에서 이제 마지막 남은 것은 예술과 문화와 문학과 언어로 찬란하게 옷을 입힐 스토리텔링만 남았다. 민족이동부터 발칸정착, 주위세력들로부터 침략 받으면서 나름의 문화로 승화시킨 자신들만의 종교와 문화적 자존, 그리고 민족 정체성에 완성을 이루어 내고야 만다. 민족 정체성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크로아티아인들은 토착세력 토대 위에서 비잔티움제국 문화와 프랑크, 로마교회, 합스부르크제국, 게르만 문화뿐만이 아니라 헝가리 전통적인 문화까지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면서 접목됐다. 그야말로 다양성의 짬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스스로는 고유한 문화와 동일한 민족정체성을 강조하는 아이러니를 가감 없이 내보였다. 우리만의 고유한 언어의 통일과 주변국들 견제를 위해 만들어낸 절박한 민족주의라고도 할 수 있다. 필요는 창조의 어머니니까. 그런데 크로아티아 역사에서 전혀 의도치 않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19세기 초 나폴레옹은 1804년 12월 아우스터리츠전투에서 오스트리아와 러시아군을 꺾으며 기세를 이어갔다. 비록 해군이 넬슨 제독에게 패해 영국 입성에는 실패했지만, 프랑스 육군은 전 유럽에 악명을 떨쳤다. 나폴레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1805년 아드리아해의 북쪽 이탈리아와 경계를 이루는 이스트라반도와 달마티아 해안지역을 접수해버렸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6-03-03

찬란한 모순

겨울의 아스팔트는 계절의 잔인함을 고스란히 박제해 놓은 전시장 같다. 시멘트 바닥에서 배어 나오는 냉기는 발목을 타고 올라와 온기를 앗아가고, 그 차가운 물리적 실체 앞에 인간의 다정함은 종종 무력해지곤 한다. 그러나 그 차가운 무채색의 공간 한복판에 한 송이 꽃처럼 주저앉은 아이가 있다. 아이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아파트의 미지근한 난방 열기가 아니라 구석진 곳에 웅크린 길고양이 ‘양말이’의 작고 가쁜 숨결이다. 아이가 바닥에 퍼질고 앉아 있는 풍경은 지나가는 어른들의 마음을 할퀸다. 무릎이 시릴까, 감기라도 들까 노심초사하는 마음들이 모여 검은 방석 하나를 내놓았다. 그것은 오직 아이의 온기를 보전하기 위해 마련된 ‘주인’의 자리였다. 하지만 냉기 속에서 그 방석을 점유하고 있는 주인은 아이가 아닌 고양이었다. 아이는 여전히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에 앉아 방석 위에서 나른하게 몸을 웅크린 고양이를 평온하게 바라보았다. 이 사소하고도 다정한 주객전도는, 우리 삶이 얼마나 본래의 목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며 그 어긋남 속에서 도리어 어떤 본질을 길어 올리는지를 보여주는 은유다. 우리는 언제나 주인이 되기를 갈망하며 살아간다. 내가 만든 도구가 나를 앞지르지 않기를, 내가 쏟은 사랑이 나를 배신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문명의 첨단에서 만나는 인공지능(AI)의 눈동자는 기묘하게도 방석을 차지한 고양이를 닮았다. 인간은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기계를 빚었으나, 이제는 기계의 알고리즘에 간택 받기 위해 자신의 사유를 검열하고 파편화한다. 사유의 주체였던 인간이 데이터라는 먹이를 공급하는 객체로 전락하는 순간 도구는 목적이 되고 창조주는 피조물의 눈치를 살피는 기묘한 전도가 발생한다. 편리함을 위해 영혼의 한 자락을 내어준 채, 우리는 방석을 빼앗긴 아이처럼 차가운 바닥에 앉아 기계가 뿜어내는 정교한 논리에 감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전도의 드라마는 가장 밀접한 혈연의 안방에서도 소리 없이 상연된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이름의 긴 복도에서 부모는 자식의 행복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일생을 투신한다. 자식은 부모 삶의 유일한 ‘목적’이 되지만 그 지독한 사랑은 종종 목적과 수단을 뒤섞어버린다. 자식의 미래라는 명분으로 자식의 ‘현재’를 압수하고 부모의 못다 이룬 꿈을 아이의 생애라는 캔버스에 덧칠할 때, 자식은 제 삶의 주권을 잃고 타인의 열망을 수행하는 대리인이 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식의 자리를 찬탈하는 이 주객전도는 고양이에게 방석을 내어준 아이의 무구한 양보와는 결이 다른 소유욕의 서글픈 변주에 가깝다. 교육의 현장 또한 이 역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진리 탐구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한 동행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육은 지식의 전수라는 ‘수단’이 성적과 입시라는 ‘목적’으로 치환되며 주객이 전도되었다. 제자는 스승의 등을 보고 배우는 존재가 아니라 스승이 내놓는 정보를 소비하는 고객이 되었고 스승은 제자의 영혼을 깨우는 자가 아니라 시스템의 관리자로 전락했다. 배움의 즐거움이라는 주인은 쫓겨나고 효율성과 등급이라는 불청객이 안방을 차지한 풍경은 우리가 상실한 시대적 자화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이에게 방석을 양보한 아이의 모습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주객전도가 강요가 아닌 자발적 환대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방석의 권리를 고양이에게 기꺼이 내어줌으로써, 방석보다 더 고귀한 생명에 대한 애정을 완성했다. 내가 주인이 되어 군림하는 삶보다 타자를 위해 나의 자리를 비워주는 전도가 때로는 더 거룩할 수 있음을 아이는 몸소 웅변한다. 내가 수단이 되어 누군가의 목적을 빛내주는 순간 주객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비로소 ‘우리’라는 온기가 발생한다. 인생이란 끊임없이 주객이 교차하는 무대다. 때로는 내가 주인공이라 믿었던 순간이 타인을 위한 정교한 배경이었음을 깨닫기도 하고, 가장 보잘것없는 수단이라 여겼던 것들이 삶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차가운 아파트 길목에서 방석을 양보하고 맨바닥의 냉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고양이의 평온에 미소 짓는 아이의 모습은 그 자체로 찬란한 모순이다. 그 작고 단단한 모습에서 나는 배운다. 세상이 말하는 효율의 논리로는 결코 번역할 수 없는 다정한 전도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유일한 불꽃이라는 것을. 주(主)와 객(客)이 뒤바뀌어 본질이 전도된 세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타인을 향한 지극한 사랑에 의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 길 위에서 기꺼이 길을 잃어도 좋으리라. /김경아 작가

2026-03-03

평생에 걸쳐 쓴 음악의 일기,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음악의 성인’이라 불리는 루드비히 반 베토벤(1770~1827)은 독일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한 고전주의 시대의 거장 작곡가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음악가였던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혹독한 음악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고,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경계에 서서 음악사의 흐름을 바꾼 인물이다. 베토벤은 57세의 생애 동안 교향곡, 협주곡, 소나타 등 다양한 장르에서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피아노 소나타 32곡은 피아니스트들에게 ‘신약 성서’라 불릴만큼 예술적·정신적 깊이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피아노 전공자라면 입시나 실기 시험을 통해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때로는 고통스러운 과제로 느껴지지만, 이 소나타들은 단순한 기교를 넘어 연주자의 음악적 깊이와 사유의 수준을 가늠하는 작품들이다. ‘소나타’는 본래 ‘악기 소리를 내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소나레(suonare)’에서 유래했다. 제시부·전개부·재현부로 구성된 엄격한 형식의 다악장 구조가 기본이 되는데, 베토벤은 이 전통적 틀 안에서 형식미의 완성을 이루는 동시에, 그 경계를 과감히 넘어서며 낭만주의로 향하는 새로운 문을 열었다. 그의 32곡의 소나타는 초기·중기·후기로 나뉜다. 대략 1번부터 15번에 해당하는 초기 소나타들은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을 바탕으로 고전주의적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점차 파격적인 화성과 실험적 요소가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시기다. 16번부터 27번에 이르는 중기 소나타들은 청각 장애가 본격적으로 악화되며 극심한 절망에 빠졌던 베토벤이 이를 극복하려는 내적 투쟁을 음악에 투영한 시기다. ‘발트슈타인’과 ‘열정’ 소나타는 구조적으로 탄탄하면서도 폭발적인 추진력과 극적인 대비를 보여주며, 베토벤 음악의 힘과 깊이가 정점에 이르렀음을 증명한다. 이 시기부터 그는 점차 형식에서 자유로워지며 자신만의 언어를 확고히 구축해 나간다. 28번부터 마지막 32번까지의 후기 소나타들은 베토벤이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에서 완성한 작품들이다. 외부의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는 고립 속에서 그는 내면의 소리에 더욱 집중했고, 그 결과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은 해체되고 푸가와 잦은 트릴 등 다양한 작곡 양식이 적극적으로 도입된다. 후기 소나타로 갈수록 음악은 더 이상 ‘아름다운 소리’에 머물지 않으며, 해탈과 우주적 평화, 신과의 대화에 가까운 형이상학적 세계로 나아간다. 베토벤 소나타에 처음 관심을 갖는 이들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두 곡이다. 중기 소나타의 정점을 보여주는 23번 ‘열정’은 분노와 절제, 파괴와 의지가 충돌하는 거대한 에너지를 담고 있다. 반면 마지막 소나타인 32번은 베토벤 소나타 대장정의 완결판으로, 특히 2악장 변주곡에서 깊은 위로를 전한다. 베토벤은 음악가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청각 장애라는 시련을 딛고, 끝내 자신의 예술 세계를 완성해낸 인물이다. 불굴의 의지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그의 삶과 음악은 오늘날까지도 ‘인간 승리’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베토벤의 소나타를 연주하고 감상하는 일은, 한 위대한 인간이 고난을 넘어 신성에 이르는 길을 함께 걷는 경험이기도 하다. /박정은 객원기자

2026-03-03

증가하는 ‘적자 가구’

적자(赤字)란 지출이 수입을 초과해 손해가 발생된 상태를 뜻하는 단어다. 한국 가정의 상당수가 현재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돼 우려스럽다. 최근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은 “지난해 4분기 기준 4가구 중 1가구가 적자 가구(25%)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이는 6년 만에 가장 커진 수치라고 한다. 지출이 처분가능소득을 넘어서면 적자 가구가 된다. 처분가능소득이란 전체 소득에서 세금과 사회보험료, 이자 비용 등 비소비 지출을 뺀 다음 이전소득을 더해 가계와 개인이 자유롭게 소비와 저축에 쓸 수 있는 소득을 의미한다. 풀어서 쉽게 이야기하면 ‘벌어들인 돈에서 이것저것 나가는 것을 제하고 나면 기념일 조그만 선물을 사거나 식구들과 근사한 식당에서 외식 한 번 할 돈도 모자란다’는 것. 적자 가구 비율은 2020년엔 23.3%였다. 2021년과 2023년 사이엔 24%대였고, 2024년에는 23.9%로 하락했다. 하지만, 지난해 다시 1.1%p 상승하는 그래프를 그렸다. 하위 계층일수록 적자 가구 비율이 높은 것도 문제로 보인다. 지난해 4분기 소득 하위 20%인 1분위의 적자 가구 비율은 58.7%로 조사됐다. 1년 전보다 1.8%p 높아진 것이다. 반면 비교적 소득이 높은 3분위와 4분위의 적자 가구 비율은 각각 20.1%와 16.2%로 나타났다. 가구당 월평균 이자 비용이 13만4000원으로 가파르게 상승 중이고, 물가도 연일 오르고 있는 상태다. 주식시장은 호황이라지만 적자 가구는 주식에 투자할 여윳돈이 없다. 적자가 반복되는 서민 가정의 삶은 언제쯤 나아질 수 있을까?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3-02

정부는 대구·경북 광역철도망 구축 서둘러야

지난달 개통한 칠곡군 북삼역은 대경선 경유의 역이 추가로 하나 더 생겨 지역주민의 교통편익을 높였다는 사실 말고도 대구광역 생활권 확장이라는 또다른 의미가 내포돼 있다. 대경선은 지방단위 최초의 도시와 도시를 잇는 광역권 철도망이다. 대구와 경북 도내 여러 도시를 잇는 철도로 대구를 중심으로 주민 생활권이 확장되는 동시에 경제영역 확장이라는 측면에서의 기대효과도 적지 않다. 2024년 12월 개통한 대경선은 경산-대구-구미 간 1시간대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대경선 통과 지역민의 생활 반경이 확대되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이른바 대경선 효과다. 대경선은 개통 1년만에 누적 이용자 수가 500만명을 돌파했다. 대구와 경북지역 주민 모두의 반응도 매우 좋다. 또 지역경제 활성화 측면의 효과도 검증이 되고 있다. 구미시는 대경선 개통 후 구미역 문화로 일대의 소비가 6.6% 정도 늘어난 것으로 분석했다. 대구 등지서도 백화점과 동성로 등 상권의 변화가 관측이 되고 있다고 한다. 북삼역 개통에 맞춰 대구와 경북 6개 지역(대구시, 경북도, 구미시, 칠곡군, 군위군, 의성군) 자치단체장이 대구-경북권 광역철도 조기 건설을 정부에 공식 건의한 것도 광역철도망의 파급효과가 지역에 긍정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단체장들은 정부의 국가균형전략인 5극 3특 사업의 핵심은 광역철도망 확장에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도시의 발전은 교통망의 혁신에 달려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구와 경북은 대경선을 김천까지 연결하는 2단계 사업이나 서대구역에서 통합공항 건립 예정지인 의성까지 연결하는 광역철도망 조성사업을 서둘러해야 한다. 현재 정부가 예타에 착수, 경제성을 검토중이나 빠른 시일내 정부정책에 반영돼야 인구의 유입과 기업 유치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시도 행정통합 논의도 광역철도망 구축을 잘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라질 수 있다. 이처럼 광역철도망 구축은 지역발전의 기본이다. 북삼역 개통을 계기로 대구경북 광역교통망 확충에 가일층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2026-03-02

국힘 지지율 바닥···TK도 ‘無主空山’ 되나

지방선거가 다가올수록 국민의힘 지지율이 계속 추락하고 있다. 장동혁 지도부가 강성 지지층과 한배를 타면서 중도층 민심과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에서도 “대구에서 우리 후보가 당선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한국갤럽이 지난주(24∼26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정당지지율은 민주당 43%, 국민의힘 22%로 나타났다. 거의 더블스코어 차이다. 갤럽조사만 보면, 장 대표 취임(지난해 8월 26일) 이후 가장 낮은 지지율이다. 지난달 23~25일 발표된 전국지표조사(NBS)에서는 민주당 지지율(45%)이 국민의힘(17%)을 2배이상 앞질렀다. 인구가 많은 영남권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제1야당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진 것은 놀라운 일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전국지표조사에서 민주당·국민의힘의 대구·경북(TK)지역 정당지지율이 동률(28%)을 이뤘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전국에서 민주당을 앞지른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TK지역 응답자 다수(37%)는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했다. 이번 지방선거 판세가 중도층은 물론이고 TK지역 합리적 보수층까지 국민의힘에 등을 돌리고 있음을 나타내주는 여론조사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NBS와 한국갤럽조사 결과는 국민의힘의 존립 자체를 뒤흔드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지지율 하락 차원을 넘어 ‘당의 존재 가치'에 대한 민심의 ‘레드카드’인 것이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이처럼 허약한 민심기반 위에서도 ‘친윤‘ 유튜버와 ‘윤 어게인’ 세력에 기대 노선 전환을 하지 않을 경우 지방선거 참패는 피할 수 없다. 지난달 27일 대구에서 최고위원회를 연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TK지역 현안에 대한 예산 지원을 약속하면서 “이젠 민주당에도 기회를 달라”고 했다. 국민의힘에서 제명된 한동훈 전 대표도 이날 서문시장을 찾아 “죽이 되는 밥이 되든 나서겠다”고 했다. 6월 재보궐 선거 대구출마를 강력하게 시사한 것이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윤 어게인’ 늪에 빠진 사이 TK지역도 이제 ‘무주공산’이 됐다.

2026-03-02

'딥 블루'

서울 동묘시장을 배경 공간으로 삼은 단편소설, 겨우 완성은 했다. 제목은 ‘윙컷’, 영어로 ‘wing cut’, 날개를 잘렸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쓰겠다고, 수년을 오갔었다. 이번에도 여러 번 다시 찾았다. 그래도 이것저것 부족한 것이 적지 않다. 그래도 어떻게든 썼다. 수년 만에 간신히 한 편 더한 셈이 되었다. 탈북 여성 춘희가 ‘베카’라는 이름으로 동묘시장 빈티지 가게에서 일하는 내용이다. 개연성에 얽매이지 않고 싶다. 삶은 근본적으로 우연에 얽매인다. 옛날 작가 이효석처럼 나 또한 지금 그렇게 믿는다. 세월과 경험은 논리 이상이다. 그러고 나서 ‘딥 블루’(deep blue)가 왔다. ‘깊은 우울’이라 해도 좋고 ‘깊은 푸른빛’이라 해도 좋은 것을, 어감은 굳이 ‘딥 블루’라 쓰게 한다. 만족스럽지는 않다. 작가 최인호 소설 ‘깊고 푸른 밤’을 생각한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확실히 나는 ‘본의 아니게’ 북한이라는 명제에 매달린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나를 생각한다. ‘딥 블루’가 더욱 분명해진다. 꼭 그것만은 아니다. 몇 주 전 학생들과 함께 나가사키에 다녀올 때, 거기 '침묵'의 작가 엔도 슈사쿠 문학관 앞 망망한 바다, ‘딥 블루’였다.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 자기 믿음을 위해 죽음을 무릅쓴 스물여섯 명의 순교자들. 또 이 나가사키 군함도를 쓴 한수산 소설 ‘군함도’. ‘딥 블루’. 또 그것만은 아니다. 나는 확실히 ‘블루’한 삶의 도정 속에 있다. 정치나 종교, 북한이나 순교만이 아니다. 삼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는 치매 증세라고밖에 명명할 수 없다. 그런데도 현실을 겪어내야 한다. 학과는 십 년을 표절 문제로 진통을 겪었다.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했다. 이를 둘러싼 ‘처신’ 때문에 다들 힘들다. 세상일이 옳은 데로 가는 것만 아님이, 이토록 뼈저리게 감각될 수 있을까. 길고도 힘든 시간이다. 옳고 그름뿐 아니다. 사실이니 진실이니 하는 것에 접근한다는 것, 얼마나 어려운가? 이에 얽매여 침닉되면 마음이 병들고 몸도 결딴난다. 남의 잘못뿐 아니라 나 자신을, 그 발뿌리를, 삶의, 생각의, 심리의 바닥까지 들여다보면 ‘딥 블루’ 아니고는 도리가 없다. 언젠가 나는 어떤 참사와 그에 따른 정치적 사건의 진실에 제법 접근했노라 ‘느꼈다’. 그런 뉘앙스를 담은 소설 한 편을 썼다. 며칠 전 다시 읽고, 한숨이 크게 났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다. 과연 소설이 될 수 있을까? 하나의 제법 분량이 될 법한 소설을 생각한다. 인과에, 플롯의 엄밀성에 얽매이지 않는 소설. ‘오토픽션’(autofiction)이라는 말이 최근에 한때 유행했다. ‘오토바이오그래피’(autobiography)가 아니라 ‘오토’한 ‘픽션’이라는 것이다. 서양 사람들이 1977년에 이 말을 처음 썼다고들 한다. 그네들이 동아시아를 몰라서 한 말. 일본에서 일찍 말한 ‘사소설’이 바로 그것이다. 이 양식의 픽셔널(fictional)한 특징에 유의해서 한국에서도 여러 작가가 일본과 류가 다른 ‘다른’ 사소설들을 썼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6-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