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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름값

백화점의 화려한 조명은 눈부시다. 그곳에 입점한 브랜드들은 저마다 영원한 품질과 고결한 신뢰를 약속하는 신전처럼 군림한다. 나는 그 신전의 보증서를 믿고 대가를 지불했다. 그것은 물건을 사는 행위를 넘어 그 이름이 지닌 ‘책임’을 사는 일이었다. 최근 오래 아껴 신던 부츠의 밑창이 악어처럼 벌어졌다. 익숙한 로고가 박힌 매장을 찾았을 때, 직원의 반응은 정중했으나 단호했다. “저희는 밑창을 수선하지 않습니다. 바깥에 있는 일반 수선집으로 가져가 보세요.” 지난달 고장 난 노트북 서비스센터에서도 같은 문장을 마주했다. “여기서는 고치기가 어려우니 사설 수리점에 맡기시는 게 빠를 겁니다.” 내가 산 것은 브랜드의 가치가 아니었다. 단지 유효기간이 정해진 화려한 껍데기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판매라는 축제에는 열광하지만 노후라는 쓸쓸한 뒤처리는 모르는 척하는 것같이 다가왔다. 제 몸에서 떨어진 파편 하나 품지 못하고 길 위의 이름 없는 수선공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대기업의 시스템은 비겁했다. 신뢰라는 이름으로 쌓아 올린 성벽은 정작 수선이 필요한 순간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당혹한 마음과 함께 발길을 돌리며 시선은 이내 나에게 향했다. 타인의 무책임을 비판하던 날 선 화살이 거울 속의 나에게로 되돌아와 박힌다. 나는 과연 내 인생의 라벨들에 걸맞은 함량(含量)을 채우며 살고 있는가.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고 아이들을 마주할 때 혹시 보증기간이 끝났다며 아이들의 마음을 세상 밖으로 떠밀지는 않았는지. ‘아내’라는 이름으로 곁에 머물면서 남편의 해어진 고독을 수선해주기보다 사설 매장의 서비스 같은 건조한 위로만 건네지는 않았는지. ‘작가’라는 이름을 가슴에 품고 문장의 본질을 탐구하기보다 화려한 수사(修辭)라는 로고 뒤에 숨어 독자를 기만하지는 않았는지. 진정한 이름값이란 찬란한 신상품의 상태일 때가 아니라 닳고 해져 수선이 필요할 때 비로소 그 진가가 드러나는 법이다. 이름은 부르는 이의 편의를 위한 기호가 아니라 불려지는 이가 감당해야 할 생의 무게여야 한다. 내게 맡겨진 인연들이 고장나고 삐걱거릴 때 “나는 몰라” 하며 외주를 주지 않는 것. 내 안에서 발생한 균열을 내 손으로 직접 만지고 기우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만이 ‘이름’이라는 성채를 품위있게 지키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백화점의 문을 나서며 발걸음이 무거웠다. 품에 안긴 부츠는 이제 세련된 패션의 상징이 아니라 거대한 시스템으로부터 외면당한 유물에 불과했다. 나는 화려함을 뒤로 하고 낡은 간판들이 있는 뒷골목으로 향했다. ‘브랜드’라는 이름이 약속했던 안락한 울타리는 사라지고 나의 해진 밑창을 받아줄 손길을 찾아 낯선 거리를 헤매는 유랑자가 되었다. 수선점들은 죄다 문이 닫혀 있고 스마트폰 지도가 가리키는 수선점들은 신기루처럼 멀기만 했다. 골목마다 들어선 화려한 카페가 나의 고장 난 하루를 비웃듯 유리창을 번득였다. 추운 겨울날 길 위에서 보낸 그 막막한 시간은 단순히 수선처를 찾는 물리적 고통을 넘어 내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름값’의 실체가 얼마나 휘발성 강한 것인지를 깨닫는 과정이었다. 자본이 설계한 성벽 안에서는 귀빈이었으나 수선이 필요한 지점에서 결함을 드러낸 순간 나는 번거로운 이방인이 되어 차가운 거리를 배회했다. 막막한 배회는 오히려 나에게 묻는다. 나 또한 누군가 내게 기대어온 상처를 ‘시스템’이라는 핑계로 문밖으로 밀어내며 그를 차가운 거리에서 방황하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동네 어귀에서 만난 낡은 수선집에서 나는 화려한 보증서 대신 기름때 묻은 앞치마와 세월을 견딘 투박한 도구들을 만났다. 수선하는 어르신은 브랜드의 계보를 묻지 않고 밑창의 상처만 묵묵히 응시했다. 그의 손길에서 죽어가던 밑창이 다시 붙어갔다. 진정한 이름값은 화려한 쇼케이스가 아니라 먼지 쌓인 작업대 위에서 완성되어갔다. 자본의 논리가 거부한 폐기 직전의 그것들을 살려내는 그들의 손길은 나에게도 작가로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복원의 책무가 무엇인지 일깨워 주었다. 매끈한 로고보다 이름 없는 수선공의 거친 손마디에서 더 깊은 신뢰를 다시 배웠다. 이름값을 한다는 것은 화려한 보증서를 내미는 일이 아니라 끝까지 곁을 지키며 고쳐 쓸 수 있는 성실한 뒷모습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김경아 작가

2026-02-24

티티카카, 잃어버린 태양의 호수

쿠스코(Cusco)를 떠나 티티카카로 향하는 길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특별한 여정이 될 거라고 믿었다. 밤 10시, 야간 버스에 몸을 싣고 쿠스코를 출발, 볼리비아의 라파스(La Paz)를 향했다. 기나긴 밤이 지나고 새벽 5시 30분, 푸노에 도착했다. 낯선 도시의 새벽은 어색했지만,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과 아침 식사를 함께하며 굳어있던 마음은 조금씩 녹아내렸다. 아침 7시, 작은 관광 보트를 타고 호수를 향해 달렸다. 마침내 물 위에 떠 있는 갈대 섬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리는 순간, 그곳은 마치 동화 속 마을처럼 아름다웠다. 단 네 가구만이 살고 있는 작은 섬은 수천 년 동안 먼지와 식물의 씨앗이 쌓여 만들어졌으며, 그 두께는 4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갈대와 같은 식물로 집을 짓고, 배를 만들며 삶을 이어간다. 그들의 생계는 대부분 관광에 의존하고 있다. 갈대로 만든 공예품을 팔아 자식들을 키우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그 풍경은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여행 경비를 아끼려는 방문객들은 애써 시선을 피하고, 원주민들은 생계를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물건을 권한다. 서로 다른 세계가 교차하며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문득 ‘아침보다 오후에 더 잘 팔린다’는 말이 떠올랐다. 오전에는 이성이 지갑보다 앞서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판단은 흐릿해진다. 여행지의 상거래는 때로는 인간 심리를 엿볼 수 있는 작은 실험실과 같다. 티티카카는 해발 3812m에 위치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호수이다. 뚜렷한 수평선은 마치 바다처럼 넓게 펼쳐져 있다. 그러나 이 압도적인 느낌은 단순히 고도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이 흐른다. 맑은 물 위로는 크고 작은 배들이 오가고, 호수 바로 옆은 볼리비아 국경이다. 이러한 척박한 환경 속에서 고대 잉카인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그 답은 바로 ‘갈대와 물’에 있었다. 잉카인들은 호숫가에 자생하는 갈대, ‘토토라’를 이용하여 물 위에 떠 있는 인공 섬, ‘우로스’를 만들어 외적의 침입을 막았다. 갈대로 만든 배를 띄워 바다와 같은 호수를 가로지르며 어업과 교역을 이어갔다. 밤이면 영하로 떨어지는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밭 주변에 수로를 파 낮 동안의 열을 가두는 와루와루 농법을 고안해 냈다. 덕분에 해발 3800m가 넘는 고지대에서도 감자와 퀴노아를 재배하며 생존 기반을 넓힐 수 있었다. 티티카카는 그들에게 단순한 호수가 아니었다. 태양신 ‘인티’가 인류의 시조를 내려보냈다는 신성한 발상지였다. ‘태양의 섬’과 ‘달의 섬’에 신전을 세우며 우주의 질서를 확인하던 그들만의 영적인 중심지였다. 라마와 알파카를 길러 따뜻한 옷을 만들고, 거대한 호수를 천연 고속도로 삼아 부족들과 물자를 교류했다. 구름 위의 바다를 경외하며,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안데스 문명을 꽃피웠다. 그러나 그 찬란했던 문명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536년, 투팍 아마루 1세가 이곳에서 스페인 정복자에게 맞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실패했고, 이후의 저항 또한 좌절되었다. 총과 말을 앞세운 정복자 앞에서 끈질긴 저항은 무력하기만 했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땅의 패배’가 아닌 ‘문화의 말살’이었다. 언어는 사라지고, 신앙은 잊혔으며, 삶의 방식은 마치 전시품처럼 박제되어 갔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는 영국에서 온 두 명의 여행객, 그리고 미국에서 온 젊은 커플과 함께 타킬레 섬으로 향했다. 푸노에서 배로 2~3시간 거리에 있는 그 섬에는 자동차도, 소음도 없다. 잉카 시대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여전히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해발 3800m가 넘는 고산 지대의 가파른 오르막길을 숨 가쁘게 오르면, 눈부시게 푸른 호수와 소박한 마을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주민들이 직접 짠 직물을 조용히 내어 보이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그곳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하산길에 들려오는 맑은 물 소리는 여행자의 숨을 고르게 해준다. 정말 시간이 멈춘 듯한 평온함. ‘속도’가 사라진 자리에서 마음은 다시 제 속도를 찾아가는 듯했다. 섬에서 돌아오자 볼리비아로 향하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카사니 국경 심사대를 직접 걸어서 통과하는 특별한 경험을 한 후, 다시 버스를 타고 달리다 저녁 무렵 티키나 해협에 도착했다. 밤 7시가 넘어 어스름이 짙게 깔리자 승객들은 버스에서 내려 작은 보트에 몸을 실었다. 차가운 호수 바람을 맞으며 어둠 속 물길을 건넜다. 그 사이 버스는 커다란 바지선에 실려 따로 이동했다. 사람은 작은 배로, 버스는 큰 배로. 두 나라의 경계를 호수가 품어 옮겨주는 그 모습은 극적이면서도 낭만적이었다. 티티카카가 오랫동안 기억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긴 것이다. 티티카카는 화려한 관광의 이름 아래 식민의 상처와 잃어버린 문명의 침묵을 숨기고 있지만, 나는 그 유산을 ‘소비되는 풍경’이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정신으로 대하려는 자긍심 속에서 정체성 회복의 희망을 보았다. 잉카의 세계관을 더 깊이 이해할수록 사라진 목소리들이 다시 숨을 쉬는 듯했고, 그 깨달음을 가슴에 단단히 묶어 둔 채 나는 또 다른 기억의 땅, 볼리비아를 향해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발걸음을 옮긴다.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

2026-02-24

동계올림픽의 변화, 그리고 정치신인의 등장

2026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올림픽은 늘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땀과 시간, 감동과 승리의 서사가 한순간의 기록으로 응축되기 때문이다. 메달 획득의 여부와 관계없이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스포츠 정신으로 선의의 경쟁을 펼친 대한민국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동계올림픽 폐막식을 보면서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니, 이번 올림픽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었다. 메달의 주인공과 종목의 지형이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동계 효자 종목은 ‘쇼트트랙’이었다. 세계 최강이라는 수식어는 우리의 자부심이었고, 시상대는 당연한 목표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낯선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스노보드와 같은 비교적 새로운 종목에서 우리나라 메달리스트가 탄생했고, 새로운 얼굴들이 시상대에 올랐다.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다양한 동계 스포츠 종목의 저변확대, 훈련 방식의 변화, 새로운 선수들이 만들어 낸 결과다. 쇼트트랙은 여전히 견고하지만, 과거와 같이 특정 종목에 성과가 집중된 구조에서 벗어나 다른 종목으로 가능성이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 대회였다. 스포츠는 이렇게 진화한다. 강점을 지키되,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고,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는다. 변화와 다양성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간다. 그리고 국민의 박수를 받는다. 정치 역시 다르지 않다.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고, 익숙함에 안주하면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6월 열리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각 지역의 출마예정자들은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익숙한 얼굴, 반복되는 구도, 예측 가능한 경쟁 속에서 선거를 치러왔다. 물론 경험과 안정은 중요하다. 하지만 안정만으로는 혁신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이번 동계올림픽과 같이 새로운 시각과 문제 해결 방식, 다른 배경과 전문성을 가진 정치 신인들이 기회를 얻어야 정치 체력이 강화된다. 정치신인의 등장은 위험이 아니라 기회다. 정치신인의 등장은 정책 경쟁을 촉진하고, 지역 의제에 대한 해석이 다변화된다. 행정은 더 많은 질문을 받고, 의회는 더 치열한 토론을 한다. 결과적으로 시민의 이익이 커지는 것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메달 지형이 달라진 이유는 분명하다. 새로운 종목에 새로운 선수가 유입됐고, 도전의 문턱이 낮아졌으며, 다양성이 경쟁력을 키웠다. 쇼트트랙이 여전히 강하듯, 정치에서도 경험 많은 인물이 계속 필요하다. 하지만 새로운 인재가 육성되고, 공정한 경쟁 구조가 작동하며, 준비된 신인이 제대로 평가받는 환경이 함께 만들어져야 한다. 정치신인은 ‘검증되지 않은 선택’이 아니다. 오히려 ‘검증 가능한 새로운 선택’이다. 국회와 대통령실에서 한 단계, 한 단계 밟으며 쌓은 필자의 경험도 시민들께 평가받을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된다고 생각한다. 정치가 변해야 지역이 변하고, 지역이 변해야 시민들의 일상이 달라진다. 변화는 누군가의 양보가 아니라 시스템의 진화에서 시작되고, 유권자의 선택지가 넓어질수록 민주주의는 건강해진다. 올림픽은 우리에게 메달의 색깔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메달이 없어도 발전의 가능성을 볼 수 있고,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정치도 이 질문 앞에 서야 한다. 익숙함의 안전지대에 머무를 것인가, 새로운 가능성의 무대로 나아갈 것인가. 정치 메달리스트만으로는 감동도, 발전도, 기대도 받지 못할 것이다. /박대기 전 대통령실 대외협력비서관 직무대리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단체장 출마 희망자의 기고문을 받습니다. 후보자의 현안 진단과 정책 비전 등을 주제로 200자 원고지 7.5∼8.5장 이내로 보내주시면 지면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기고문은 사진과 함께 이메일(hjyun@kbmaeil.com)로 보내주세요. 외부 기고는 기고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2-23

대구경북 경협 파트너 베트남이 중요해졌다

대구와 경북의 경제협력 파트너로서 베트남이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대구경북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베트남과의 교역액(수출+수입)은 대구 9억6000만달러, 경북 31억8000만달러로 전년보다 23.5%와 14.5%가 각각 상승했다. 전국 교역액 증가율 9%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베트남의 국가별 교역 순위도 달라져 대구는 기존 4위에서 3위로, 경북은 5위에서 3위로 올라섰다. 동시에 베트남에 대한 경제의존도도 대구는 6.3% 경북은 5.9%로 전년보다 1.0%, 1.2%포인트가 각각 상승했다. 베트남과의 교역량이 늘어난 것은 미중 무역전쟁과 코로나 이후 탈중국을 위한 핵심 생산기지의 이전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또 한·베트남 수교 이후 지정학적 이점과 안정적인 제도, 풍부한 인적차원을 가진 베트남의 장점이 교역량을 끌어 올린 배경으로도 분석된다. 베트남은 우리나라와 수교한 지 30년 되는 해인 2022년도에 일본을 제치고 우리나라 3대 교역국에 오른 국가다. 1992년 수교 이후 교역액이 무려 175배나 증가했다. 대구와 경북에서도 수교 이후 695개 사가 현지에 법인을 설립할 정도로 전략적 요충지로 주목받는 곳이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베트남은 생산기지로서 매력이 있어 향후 다양한 분야에서 경제협력이 더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특히 대구와 경북이 주목할 것은 교역품목의 80-90%가 중간재라는 사실이다. 지역기업들이 베트남을 단순한 소비시장이 아닌 핵심 생산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 성장 측면에서 보면 베트남은 소비시장으로도 매력이 있는 국가다. 대구경북의 경협 파트너로서 부상한 베트남을 공략할 다양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 지방정부는 베트남 주요 도시와 자매우호도시 관계를 적극 활용하는 한편 베트남의 젊은 학생들을 지역대학에 유치하는 노력으로 양국 관계를 더 밀착화 해야 한다. 또 베트남 해외사무소를 전초기지로 삼아 지역상공인들의 현지 업무 지원과 네트워크 형성에도 보다 적극 나서야 한다.

2026-02-23

TK지방선거 구도, ‘행정통합’ 변수에 달렸다

지방선거가 10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대구·경북(TK) 시·도지사 예비후보들의 혼란도 커지고 있다. TK행정통합 특별법이 예상대로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게 되면 이 지역은 이번 선거에서 통합단체장 1명만을 뽑게 된다. 이 경우 예비후보들은 선거전략을 다시 짜야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인구 500만 도시를 이끄는 통합단체장의 상징성과 정치적 비중은 기존 시장·지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 선거공약이나 조직, 캠프 구성 등을 원점에서 새롭게 준비해야 한다. 국민의힘 예비후보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또 다른 요소는 공천관리위원회가 예고한 ‘고강도 인적 쇄신’이라는 허들이다. 일찌감치 “무조건적인 현역 프리미엄을 억제할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힌 이정현 공관위원장은 지난 22일에도 “현직이라고 자동 통과 안 된다. 지지율, 직무 평가, 주민 신뢰가 기준 미달이면 용기 있게 교체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현역 광역단체장이나 국회의원을 아예 경선대상에서 컷오프시킬 수 있다는 소리로도 들린다. 현재 대구시장 선거에는 국민의힘 소속 8명이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는데, 이중 5명(주호영·윤재옥·추경호·유영하·최은석)이 현역 국회의원이다. 경북도지사 선거에는 이철우 지사만 현직에 있고, 현역 국회의원 예비후보는 없다. 만약 이번 선거에서 통합단체장을 뽑게 되면 현역만 6명이나 돼 격렬한 공천 경쟁이 예고된다. 민주당에서는 TK지역이 국민의힘 텃밭이긴 하지만, 통합단체장 선거는 의외의 변수가 많기 때문에 유력후보를 낼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경북 상주가 고향인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대구·경북에서 두루 인지도가 높은 만큼 출마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안동이 고향인 권오을 국가보훈부장관 출마설도 나온다. 현재 시·도지사 예비후보 대부분이 행정통합을 기정사실화하며 대구·경북 전역을 대상으로 여론전을 펴는 모습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과연 인구 500만 규모의 ‘TK통합특별시’를 이끌 초대단체장이 선출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26-02-23

보수의 재건을 위한 고언(苦言)

국민의힘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수구보수의 길인가, 혁신보수의 길인가? 선거 승리의 길인가, 패배의 길인가? 윤석열과 절연하라는 혁신파의 목소리는 작고, ‘윤 어게인’을 외치는 수구파의 목소리는 크다. 장동혁과 한동훈, 반탄파와 찬탄파, 수구파와 혁신파의 대립은 길 잃은 보수정치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중병에 걸려 허덕이고 있는 보수에게 미래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중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진통제 처방이 아니라 환부를 도려내는 수술이다. 곪아 썩어가고 있는 가짜보수를 방치하면 진짜보수가 위험해진다. 환자가 중병에 걸려 있는 줄도 모르고 수술을 거부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 현재의 국민의힘은 ‘부분적 보수(補修)’가 아니라 ‘전면적 재건축’이 불가피하며,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대수술을 받아야 한다. 첫째, 잘못된 과거와 확실히 결별하는 것이다. 비상계엄에 대해서는 이미 헌재가 법적 판결을 내렸고, 국민이 대선에서 정치적 심판을 했다. 그럼에도 장동혁이 찬탄파를 축출하고 ‘윤 어게인’을 외치는 극우세력과 야합하는 것은 보수를 아끼는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여론조사결과(한국갤럽, 2026년 2월 6일)를 보면 장동혁이 ‘잘못한다(56%)’는 응답이 ‘잘한다(27%)’의 두 배를 넘고 있다. 윤석열의 그림자를 지우고 민심에 역행하는 극우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보수의 미래는 없다. 가짜보수가 진짜보수로 거듭나는 그 첫 출발점은 바로 ‘잘못된 과거와의 결별’에 있다. 둘째, 보수의 가치와 정체성을 제대로 정립해야 한다. 보수는 수구가 아니다. 수구는 변화를 싫어하고 옛것만 지키려하지만, 보수는 시대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변화와 개혁을 모색한다. 하지만 현재 국민의힘 지도부는 혁신보수가 아니라 수구보수로 퇴행하고 있다. AI혁명으로 세상은 급변하고 있는데 아직도 산업화시대의 낡은 사고에 갇혀 보수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외관보다 내용을 중시해야 할 보수가 내용의 혁신 없이 당명만 바꾸어서 유권자를 속이려는 꼼수를 부리는 것이나, 보수의 핵심가치인 법과 질서를 어긴 윤석열을 두둔하는 것은 모두 보수의 정체성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개혁에 수반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무너진 보수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혁신의 고통’이 따른다. 혁신을 위해서는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정신이 요구되지만 현재의 국민의힘 상황은 녹록지 않다. 극우세력에 기대어 당권을 지키려는 당대표, 보수의 미래보다 자신의 기득권에 안주하는 국회의원들, 그리고 극우의 선동에 이성을 잃은 강성 당원들 등 구성원들의 이기주의와 독선이 당을 망치고 있다. ‘국민이 명령하는 혁신’에 부응해도 모자랄 판에 ‘마이 웨이(my way)’를 고집한다면 재기할 수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당심(黨心)이 아니라 민심(民心)’이며, 당심은 결코 민심을 이길 수 없다. ‘민심을 받드는 혁신의 고통’이 바로 ‘사즉생(死卽生)’이요 ‘보수 재건의 길’임을 왜 모르는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6-02-23

행복은 예약을 받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좋은 순간들’이 있다. 이때, 우리는 행복하다고 말해도 좋다. 행복을 정의할 순 없지만 ‘행복해’라고 말할 수 있음이 행복의 또 다른 모습이다. 우리는 아주 가끔씩 ‘이 순간이 행복해’라고 하지만, 내면의 행복은 아쉽게도 늘 먼 미래에 있다. 결코 맞이할 수 없는 아주 먼 곳에. 왜냐면 우리 모두 ‘파랑새 증후군’ 환자이므로. 행복은 향수와 같아서 자신에게 먼저 뿌리지 않고서는 남에게 향기를 풍길 수 없다. 도달해야 할 경지가 아니라, 지금 느끼는 상태이다.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행복은 없다. 행복은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축적된 미세한 순간들의 감각이다. 삶의 여정에서 매 순간순간 경험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행복은 매 순간 내 몸이 우주와 교감하는 방식인 셈이다. 모닝커피 한잔의 향기, 퇴근길 노을, 지나치는 행인의 미소, 동료들과의 농담, 아내가 차린 조촐한 밥상, 행복이 아닌 것들이 없다. 행복을 추구하여 봤자, 그것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행복은 저기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이다. 그래서 행복을 좋은 ‘순간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좋았던 순간들이 행복이었던 것을 몰랐던 사람들은 세월이 지나 과거를 회상하며 ‘그때가 좋았지’라고 중얼거린다. 하지만 뒤늦은 중얼거림이 자신이 놓친 행복을 다시 찾아오지는 못한다. 행복을 미래로 예약하는 순간, 오늘은, 결핍이 된다. 행복은 예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현장 경험만이 가능한 것이기에. 행복을 미래로 미루는 사람은 늘 조건을 기다린다, 건강해지면, 돈이 모이면, 아이가 크면···. 그래 봤자 삶이 이렇게 순서대로 진행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러한 조건이 갖추어진들 또 다른 조건이 기다린다. 행복을 목표로 정하여 둔 사람은, 그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전에 그 행복이 사라져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행복은 추구할수록 멀어지고, 누릴수록 가까워진다. 추구함은 항상 긴장을 동반한다. 더 나아가야 한다는 압박, 뒤처지지 말아야 한다는 두려움이 따른다. 그러나 누림은 이완이다. ‘지금 여기’에 머무는 태도이다. 누린다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적극적인 태도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삶은 종종 결핍의 언어들로 가득하다. 아직 부족하다. 아직 멀었다.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 등등. 그러나 ‘행복을 누리는 삶의 문법’은 완전히 다르다. 지금 충분하다, 지금 숨 쉬고 있다, 지금 살아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행복은 더 이상 미루어야 할 프로젝트가 아닌 것이 된다. 현대의 디지털 기술은 행복을 더욱더 복잡하게 이끄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을 끊임없이 비교의 장으로, 미래로 보낸다. 소셜 미디어 속에서 타인의 삶은 언제나 빛나 보이며, 행복은 지금 이 순간의 체험이 아니라, 미래의 전시가 된다. 자신의 행복을 즐기기에 앞서 타인의 행복을 부러워하고, 아름다운 광경을 가슴에 담기에 앞서 카메라에 담는다. 파스칼은 인간이 불행한 이유를 다음과 같은 단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모든 불행은 방안에 조용히 앉아 있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공봉학 변호사

2026-02-23

깨추고랑과 학산천

추운 겨울이면 콧물을 훌쩍이며 수갯도(앉은뱅이 스케이트)를 끌고 나섰다. 얼음이 완전히 얼지 않은 날에는 발밑이 불안했지만, 그마저 겨울철 최고 놀이의 일부였다. 여름이면 태풍 뒤 불어난 물살에 중학교 앞 다리 밑으로 돼지가 떠내려가던 장면을 멀찍이서 지켜보며, 세상이 얼마나 거칠고 생생하며 동시에 두려운지 알게 되었다. 지금은 ‘학산천’이라 불리는 그곳, 내가 살던 포항시 덕수동에서 조금만 걸으면 닿던 놀이터를 우리는 깨추고랑(깨추·‘붉은 찔레 열매’를 뜻하는 경북 북부 사투리. 왜 깨추고랑이라 불린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아마 그 주변에 깨추가 많이 자란 듯)이라 불렀다. 새로이 단장되었다는 그곳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다시 걸었다. 한때 흙과 물과 위험이 뒤섞여 있던 곳은 아스팔트 아래로 사라졌다가, 이제는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전과 다른 깨끗한 모습을 되찾았다. 콘크리트로 정갈해졌고 보행로는 안전해졌다. 도시의 기준으로 보자면 성공적인 정비일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 서자 이상하게도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풍경은 남아 있지만 서사는 사라졌고, 장소는 존재하지만 삶의 흔적은 지워져 있었다. 학산천은 보기 좋은 하천이 되었지만, 더 이상 내 삶 속의 장소가 아니었다. 기억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질 때는 굳이 표식을 남길 필요가 없지만, 단절되는 순간 사람들은 기념비와 기록으로 그것을 붙잡으려 한다. 지금의 학산천은 이 아이러니를 그대로 보여준다. 물길은 복원되었지만, 그곳에서 살았던 시간과 감각을 불러내는 장치는 어디에도 없다. 그 결과 이 하천은 추억의 장소가 아니라 안전과 깨끗함을 돌보는 관리의 대상이 되었다. 도시의 하천은 단순한 경관 시설이 아니다. 그것은 동네의 성장기였고, 공동의 기억이 축적되던 생활 공간이었다. 깨추고랑이라는 이름 속에는 동네 사람들의 언어가 있었고, 위험과 놀이, 일과 휴식이 뒤섞인 삶의 리듬이 담겨 있었다. 인문 지리학자 이푸 투안이 ‘공간과 장소’라는 저서에서 말했듯, 공간은 인간의 경험과 삶, 애착이 녹아들 때 비로소 장소가 된다. 이름이 바뀌고 이야기가 지워지는 순간, 그곳은 누구 것도 아닌 중립적인 공간으로 남는다. 나는 학산천을 다시 깨추고랑으로 부르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이름이 불리던 시절의 감각과 기억을 함께 공유하고 남기자는 것이다. 안내판 하나, 짧은 기록이나 QR코드 하나, 혹은 주민의 목소리를 담은 작은 오디오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다. 아이들이 “여기서 예전에는 뭐 하고 놀았어요?”라고 묻고, 어른들이 “우리는 여기서 이렇게 컸지”라고 답할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이 하천은 현재와 과거가 만나는 문화적 장소가 될 것이다. 문화는 새로 만드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미 살았던 시간을 존중하고, 사라진 그때의 감성을 다시 불러오는 일에서 문화는 시작된다. 이제 학산천이 동네의 풍경이 아니라, 동네의 이야기로 다시 흐르기를 바란다. 개인의 향수가 아니라, 모두의 기억이 조용히 겹쳐지는 곳으로. 그것이 진짜 복원의 모습이 될 것이다. /손철호 지역문화포럼 따로 또 같이 대표

2026-02-23

‘로또 광풍’의 어두운 그늘

경제 상황이 어려울수록 복권 판매량이 늘어난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어떤 방법을 써도 금전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낮은 서민들은 토요일 밤이면 다들 한 번쯤 꿈을 꾼다. ‘로또복권에 당첨돼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 여행이나 다니며 유유자적 살아봐야지...’라는. 실제로 로또복권에 당첨되는 사람은 평균적으로 보아 매주 10여 명 안팎은 되고, 이들은 수십억 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당첨금으로 받는다. 확률이야 너무 낮지만, 희망은 확률과는 무관하게 무한으로 증식하는 법. 그게 욕망하는 인간의 부정할 수 없는 한계이기도 하다. 공짜로 생기는 돈을 싫어할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이런 사실을 간파해 로또 관련 사기를 벌인 범죄자들이 얼마 전 법의 심판을 받았다. 부산지법 서부지원은 최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혐의로 기소된 30대 2명에게 징역 4년 6개월과 징역 2년 6개월을 각각 선고했다. 사기범들은 사무실을 차려 사업자등록을 한 후 온라인 사이트를 운영했다. 그리고는 “로또 운영사에 지인이 있으니 공 무게를 조작해 당첨 번호를 알려주겠다”는 거짓말로 피해자들을 속여 7억 원이 넘는 돈을 편취했다고 한다. 사기 행위는 2년 가까이 지속됐다. 아주 가끔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로또복권에 당첨돼 ‘팔자를 바꾼 사람들’의 후일담을 듣는다. 예상과 달리 부자가 된 그들이 행복해졌다는 소식보다는 갑작스레 생긴 많은 돈으로 인해 가족 간에 싸움이 벌어지는 등 복권 당첨이 불행의 씨앗이 됐다는 보도가 대부분이었다. ‘로또 광풍’의 어두운 그늘은 여기저기에 드리워져 있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2-23

TK통합 성공은 시민 권한 확대

김민석 국무총리가 지난 21일 포항 포은흥해도서관에서 열린 ‘K-국정설명회’에서 던진 화두는 단연 TK통합이었다. 대구·경북 행정통합은 찬반을 떠나 지역 사회의 구조를 근본부터 흔드는 중대한 의제다. 그 자리에서 김 총리는 “통합 이후 그것이 발전의 길이 될지 여부는 전적으로 주민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통합의 성패를 중앙정부가 아닌 주민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 셈이다. TK통합 논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는 이미 여러 차례 행정통합을 공식 의제로 올렸고, 공동연구용역과 공론화 과정을 거쳐 특별자치단체 모델까지 검토해왔다. 통합이 현실화될 경우 인구 약 500만 명, GRDP 기준 전국 상위권 규모의 초광역 경제권이 형성된다. 권한과 재정 규모 역시 확대된다. 일부에서는 ‘수도권에 맞설 유일한 비수도권 블록’이라는 기대도 내놓는다. 하지만 숫자와 외형만으로 통합의 정당성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김 총리가 강조했듯 “통합의 의미는 단순히 권한이나 재정이 늘어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통합이 또 하나의 거대 행정조직을 만드는 데 그친다면, 지역 소멸의 흐름을 되돌리기 어렵다. 지금 TK가 직면한 현실은 냉혹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경북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청년층 순유출이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 대구 역시 제조업 침체와 일자리 감소로 성장동력이 약화된 지 오래다. 결국 통합의 본질은 ‘규모의 확대’가 아니라 ‘구조의 전환’이어야 한다. 김 총리가 배경으로 제시한 ‘지방주도 성장전환’은 이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서울에 인구·자본·청년이 과도하게 집중된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국가 전체의 지속 가능성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진단은 이미 여러 국책연구기관 보고서에서도 반복돼왔다. 수도권 인구 비중은 50%를 넘어섰고, 청년 고용의 질 좋은 일자리 역시 서울·경기 지역에 몰려 있다. 지방이 스스로 성장 동력을 갖추지 못하면 통합 역시 껍데기에 불과하다. 포항을 예로 들면 문제는 더 선명해진다. 포항시는 한때 대한민국 제조업을 상징했다. 포스코를 중심으로 한 철강 산업은 지역 경제의 심장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탄소중립 흐름, 중국발 공급과잉, 철강 시황 변동성 속에서 구조전환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김 총리가 언급한 것처럼 수소 산업, 2차전지, 반도체, SMR 등 미래 산업과의 결합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다만 이 지점에서 질문은 더 구체화된다. TK통합이 포항의 산업전환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가. 통합 광역정부가 들어서면 산업정책의 조정 권한이 커지고, 국비 확보 경쟁력도 강화될 수 있다. 예컨대 초광역 교통망, 연구개발 특구, 국가첨단산업단지 지정 등에서 통합 단위의 전략 수립이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행정 중심이 대구로 쏠릴 경우 경북 동해안권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공존한다. 행정통합은 필연적으로 권한 재배분의 문제를 동반한다. 청사 위치, 의회 구성, 예산 배분 방식, 공공기관 이전 등 민감한 사안이 줄줄이 대기한다. 과거 다른 지역의 광역 통합 논의가 번번이 좌초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통합이 ‘균형발전’이 아닌 ‘중심 재편’으로 비쳐질 경우 지역 내부 갈등은 오히려 증폭될 수 있다. 그래서 김 총리의 발언 중 가장 주목할 대목은 “시민의 권한이 더 강해지고, 견제와 균형 속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살아나는 정치 개혁적 통합으로 가야 한다”는 부분이다. 통합 논의가 행정 효율성이나 예산 규모의 확대에만 머문다면 주민 설득은 쉽지 않다. 주민투표, 공론화위원회, 권역별 자치권 보장 장치 등 구체적 제도 설계가 병행되어야 한다. TK통합은 단순한 행정구역 개편이 아니다. 수도권 일극체제에 대한 문제 제기이자, 지방이 스스로 생존 방식을 재정의하는 시험대다. 그러나 방향을 잘못 잡으면 또 하나의 거대 담론에 그칠 위험도 있다. 통합 이후 4년, 10년 뒤 청년이 돌아오고 기업이 투자하며 인구 감소세가 완화될 수 있는지, 그 실증적 시나리오를 제시하지 못하면 통합은 구호로 끝난다. 정치권은 통합의 명분을 말하고, 정부는 구조 전환을 강조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세부 설계도다. 권한은 어디로, 재정은 어떻게, 산업 전략은 무엇으로 재편할 것인가. 무엇보다 포항과 같은 산업도시가 통합의 주변이 아니라 중심 축으로 설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수 있는가. TK통합은 규모의 정치가 아니라 책임의 정치여야 한다. 권한이 커질수록 책임도 무거워진다.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 청년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지 못한다면 어떤 통합도 성공이라 부르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통합을 위한 통합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통합이다. /임창희 선임기자 lch8601@kbmaeil.com

2026-02-22

국민 대신 윤석열을 받드는 전환인가

국민의힘이 늪에 빠졌다. 이런 상태로 지방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염려된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방선거 포기하고, 당권을 선택했다”라고 평가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 1심 판결이 가져온 후폭풍이다.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443일 만이다. 재판부는 내란 혐의를 인정했다.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고 민주당은 불만이다. 내란 수괴에게 선고할 수 있는 형량은 사형 아니면 무기징역이다. 판사가 정상을 참작해 작량감경(酌量減輕)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사형이 사실상 폐지됐다. 29년째 사형 집행이 없었다. 사형을 선고해도 집행이 안 된다. 비상계엄 중에 유혈사태는 없었다. 그런데도 집행도 안 될 사형을 선고하라고 사법부를 압박하는 것은 지나치다. 12·3 비상계엄이 내란임을 분명히 해, 혼란을 정리할 가닥을 잡은 것이 중요하다.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을 선포할 권한이 있다. 하지만 헌법 질서 안의 권한이다. 국회는 비상계엄을 해제할 수 있다. 비상계엄으로 국회의 기능을 마비시킬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 위에 존립한다. 국회를 봉쇄한 건 열쇠를 넣은 상자를 잠근 꼴이다. 윤 전 대통령이 주장한 대로 ‘국회의 권한 행사로 인한 국익 저해 및 국정 마비’가 있었다고 해도, “정치적·제도적 수단을 통해 해결할 문제이지, 병력을 동원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재판부의 판단이 옳다. 지귀연 부장판사는 “성경을 읽는다고 촛불을 훔칠 수는 없다”라는 서양 속담을 인용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이라는 주장은 “이유나 명분을 목적과 혼동한 주장”이라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이율배반이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민주주의의 장치가 균형을 잃을 때 어떤 참극이 벌어지는지 똑똑히 봤다. 윤 전 대통령은 선고 이후에도 비상계엄이 ‘구국의 결단’이었다고 주장했다. “저의 부족함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많은 좌절과 고난을 겪게 해드린 것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라고 말했다. 쿠데타를 사과한 게 아니라, 쿠데타 실패를 사과한 것이다. 반성은커녕 “법과 양심에 의한 판결을 기대하기 곤란한 상황”이라고 재판부를 희롱했다. 더구나 “싸움은 끝이 아니다”라고 선동했다. 이런 마당에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1심 판결에 대해 “안타깝고 참담하다”고 말했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들먹였다. 비상계엄이 무죄이고, 유죄 판결이 참담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도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밝히지도 못했다. 대법원 확정판결을 기다리라고 한다. 비겁하다. 정치는 재판으로 결론을 내는 영역이 아니다. 불법만 아니면 무엇이나 해도 되는 분야가 아니다. 정치지도자는 국민을 앞장서 이끌어야 한다. 법률적 책임뿐 아니라 도덕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까지 져야 한다. 그런데 장 대표는 아직도 자신이 판사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그는 “국민의힘은 줄곧 ‘계엄이 곧 내란은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라고 주장했다. 윤 전 대통령이 무죄라는 뜻을 담고 있다. ‘계엄은 정당했다’라는 ‘윤어게인’ 세력과 보조를 같이하고 있다. 물론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할 권한이 있다. 계엄령이 바로 내란은 아니다. 그렇지만 국회를 마비시키려 했다. 헌법상 견제 장치를 파괴하려 했다. 장 대표는 차라리 ‘무죄’라고 떳떳이 말하는 게 정직하다. 극우세력의 비위를 맞추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한다. 이미 443일이 지났다.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기다려야 판단할 수 있나. 전쟁이 터져도, 내란이 발생해도, 법원만 쳐다보겠다는 건가. 국민에게는 분명한 의견을 밝히고, 사과해야 할 것 아닌가. 보수세력을 괴멸하건 말건, 선거에 이기건 말건, ‘무죄추정’만 주장할 건가. 장 대표는 사과보다 ‘전환’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쿠데타 세력이 아니라, 쿠데타 저지 세력을 쫓아낸다. 국민의힘을 ‘윤석열의 힘’으로 전환하고 있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사과는 거짓이다. 사과마저 회피하기 위해 변명하고, 쟁점을 흐리는 것은 무책임하고, 비겁하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6-02-22

다시 돌아오는 봄

계절의 순환은 경이롭다. 열흘 전인 2월 13일 마당을 살피다가 아, 하는 소리가 부지불식간에 나온다. 수선화 어린싹 몇 줄기가 뾰족하게 돋아나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수선화 알뿌리를 몇 알 심어놓았는데, 녀석들이 해마다 잊지 않고 봄을 알리는 전령 구실을 하는 것이다. 주위를 살펴보니 샛노란 영춘화(迎春化)가 어느새 담장 아래 환한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 이튿날 바위 틈새에서 튤립과 히아신스도 싹을 틔운다. 며칠 뒤에 학교에 갔더니 홍매(紅梅)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화사하게 웃고 있다. 그리고 돌 틈에서 크로커스가 보라색 시든 꽃을 달고 처연하게 삐죽, 모습을 드러낸다. 시든 꽃을 보건대, 필시 며칠 전에 마른 잔디 아래서 힘겹게 피어난 것 같다. 미안한 마음에 물을 듬뿍 뿌려준다. 생명에 절실한 물! 조금 늦든 이르든 봄은 기어이 오고야 만다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에 새삼 마음이 뻐근해진다. 한번 먼 길 떠나간 사람은 돌아오는 법이 없는데, 초목은 그러지 아니하는 곡절이 궁금하다. 마당에서 자라는 네 종류 구근(球根)인 히아신스, 크로커스, 튤립, 무스카리는 대학 후배가 택배로 보내준 것이다. 그이는 작년에 고인(故人)이 되어 영영 작별한 인연이 있다. 마지막 가는 길에 무슨 상념(傷念)과 만났는지 알 길 없지만, 올해도 여린 싹이 여기저기 돋아나는 걸 보니 자연 그이 생각이 난다. 다소 그늘이 진 얼굴에 떠오는 맑고 순정한 표정과 어색한 웃음이 일품이었던 사람. 만약 그가 네덜란드에서 수입한 네 종류 알뿌리를 전해주지 않았다면, 내가 아끼는 마당의 풍경은 상당히 쓸쓸하고 허전했으리라. 불가(佛家)에서 전해지는 말 가운데 ‘진공묘유(眞空妙有)’가 있다. 참으로 비어 있지만, 묘하게 존재한다는 의미다. 비어 있음(空)은 없음과 같은 말이 아니다. 그것은 인연 따라 이루어지지만, 고유한 자성(自性)이 없다는 말이다. 세상 만물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인연으로 서로 엮여서 어떤 형태를 가지며, 그 인연이 다하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진공은 사물의 본질을 가리키고, 묘유(妙有)는 사물의 작동 원리를 일컫는다. 얼핏 보면 상호 모순적인 표현으로 보이지만, 진공과 묘유는 만물에 내재한 근본원리이자 이치다. 한 알의 사과에서 우리가 들여다보는 것은 무엇인가?! 영양과 비타민, 맛과 향, 색과 형태?! 아니면, 아이작 뉴턴처럼 만유인력의 실마리를 당신은 사과에서 보고 있는가?! 사과 열매를 보면서 씨앗 하나와 흙과 물과 햇빛과 바람을 떠올려 보시라. 적절한 생육조건, 즉 인연이 생겨나서 씨앗 하나가 발아(發芽)하여 싹으로 자라고, 그것이 나무로 생장하여, 벌과 나비의 도움을 받아 수정하여 마침내 열매 맺었음을 상기하면 어떤가! 만약 이런 여러 가지 조건 가운데 하나라도 어긋난다면, 우리는 사과 열매와 만나지 못할 것이다. 홍매와 크로커스가 피고, 수선화와 히아신스가 여리지만, 단단한 싹을 밀어 올리는 것을 보면서 기약 없이 훌훌 떠나간 후배를 떠올린다. 부질없는 노릇이지만, 인지상정 아닌가! 삶에 허여된 ‘지금과 여기’를 치열하고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는 자명한 명제를 곱씹을 시각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2-22

다케시마의 날 행사 강행한 일본의 억지

일본 시마네현은 22일 예정대로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의 날 행사를 강행했다. 일본 정부는 이번에도 차관급인 내각부 정무관을 파견해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억지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시마네현은 2005년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제정한 후 2006년부터 매년 관련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독도에 대한 일방적인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한일정부 간의 마찰을 유발한다. 2024년부터는 동해를 형상화한 카레음식과 독도 모형 위에 죽도 깃발을 꽂은 다케시마 카레를 만들어 현청 구내식당에서 판매해 논란을 키우고 있다. 경북도의회는 22일 다케시마의 날 행사와 관련,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 조례 폐지를 촉구했다. 박성만 의장은 “독도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대한민국 영토인 만큼 정부와 외교당국은 원칙에 기반한 단호한 외교적 대응을 주문한다”고 했다. 다케시마의 날 행사와 관련해 독도수호전국연대 회원들은 2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일본 정부의 독도강탈 만행규탄대회를 열었다. 정부도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초치해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일본 외무성 차관급 인사가 참석한 것에 엄중 항의했다. 2006년 이후 일본의 작은 도시인 시마네현에서 시작한 다케시마의 날 행사는 일본의 유력 언론들이 보도하면서 이젠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일본인의 관심도 커졌다. 그 영향을 받아 초중고 교과서에도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내용이 게재되는 상황까지 빚어졌다.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는 22일 시마네현 지사에게 보내는 메일에서 “20여년 동안 행사를 강행한다고 해서 독도가 일본 땅이 되지 않는다”며 “독도는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명백한 대한민국 영토”라고 일갈했다. 매년 되풀이되는 다케시마의 날에 의례적인 대응에만 그친다면 일본의 다케시마의 날 행사는 내년에도 그 이후에도 계속 될 것이 뻔하다. 독도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는 문제까지 신중히 검토하는 등 국가 차원의 단호한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 국제사회의 호응을 이끌어 낼 외교 전략의 강화도 필요하다.

2026-02-22

‘윤석열 블랙홀’ 빠진 국힘, 지방선거는 어쩌나

지방선거를 100여 일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절연’하는 대신 ‘윤 어게인’ 세력에게 러브콜을 보냄으로써 보수진영이 대혼돈에 빠졌다. 장 대표는 20일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인정한 법원에 대해 “안타깝고 참담하다”면서 “대통령과의 절연을 앞세워 당을 갈라치기 하는 세력이 절연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당초 윤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가 나오면 장 대표가 강성지지층에서 벗어나 외연 확장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기존 기조를 유지하는 ‘마이웨이’를 선언한 것이다. 당연히 후폭풍이 거셀 수밖에 없다. 당내 비주류뿐 아니라 영남권 의원들 사이에서도 격앙된 반응이 쏟아졌다. 국민의힘 의원의 5분의 1 이상이 참여하고 있는 ‘대안과 미래’ 간사인 이성권 의원은 “국민과의 전쟁을 선포했다”며 대표직 사퇴를 요구했고, 소장파 초선인 김재섭 의원은 “장 대표는 분열의 리더십이었고, 철저한 마이너스 정치를 추구해 왔다”고 비판했다. 친한동훈계 박정하 의원은 “국민의힘 대표는 오늘부로 내 사전엔 없다”고 공격했고, 한지아 의원도 “장 대표와 절연해야 한다”고 가세했다. 정치권에서는 장 대표가 오로지 본인의 권력만을 위한 선택을 했다는 분석이 주류다. 당 지지율이 쪼그라들더라도 윤 어게인 세력 지지만 유지한다면 당권은 계속 장악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본인이 살자고 당을 팔아먹는다“는 원색적 비난도 나왔다. 이날 장 대표의 ‘절윤 거부’로 국민의힘은 개혁신당과 합리적 보수세력과의 선거연대도 어려워졌다. 당장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국민의힘은 내란판결이 나온 다음 날 ‘계엄이 곧 내란은 아니다’라고 했다”면서 “과거가 떳떳한 정치 세력만이 미래를 말할 자격이 있다”며 국민의힘과 거리를 뒀다. 앞으로 여권의 ‘내란당 공세‘도 강화될 것이다. 장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가 하루빨리 ‘윤석열 블랙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지방선거 참패는 피할 수 없게 됐다.

2026-02-22

대구공항의 민낯

국토교통부는 지난주 2025년 한해 우리나라 하늘길을 이용한 항공교통량을 집계한 결과를 발표했다. 국제선 수요 회복과 다양한 해외노선 증가로 하늘길 항공교통량이 사상 처음으로 연간 100만대를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수치는 하루 평균 2778대가 우리나라 하늘길을 오간 것으로 5년 전보다 약 20% 증가했다. 특히 국제선은 작년보다 9.4% 증가했으며 동남아와 남중국 노선은 전체 국제선의 절반이 넘는 52%를 차지한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에 인천, 제주, 김포, 김해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공항은 하늘길 이용대수가 하루 평균 100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조한 실적을 나타냈다. 항공교통량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수도권과 관광지인 제주 중심의 편향된 결과로 분석이 됐다. 특히 대구공항은 하루 하늘길 이용 순위에서 국내 10개 공항 가운데 인천(1193), 제주(487), 김포(390), 김해(300), 청주(88), 무안공항(86)에 이어 7번째인 것으로 조사됐다. 대구공항의 하늘길 이용 항공교통량은 72대다. 전년 대비 4.7% 증가지만 전국 평균 증가율(6.8%)에는 미치지 못했다. 전국에 있는 지역소재 공항은 공항 이용 정도에 따라 지역경제의 국제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다. 특히 무역활성화, 관광산업 발전, 고용창출 면에서 지방소재 공항의 활성화는 중요한 경제 요소이다. 정부도 이런 점을 고려 지방공항의 수용 창출과 성장기반 확충에 애쓰고 있으나 이것 역시 수도권 초집중 현상에 밀려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 일극화가 낳은 성장 불균형의 문제 중 하나가 지방공항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2-22

포항이 열어갈 환동해 블루이코노미

경상북도가 ‘환동해 블루이코노미 신성장 계획’을 발표했다. 북극항로와 에너지, 해양산업을 하나의 축으로 엮고, 영일만항과 부산항, 대구경북 신공항을 연결하는 큰 그림이다. 동해안을 단순한 항만과 관광 공간이 아니라 물류와 에너지,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새로운 성장축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영일만항의 역할 변화다. 계획에 따르면 영일만항은 북극항로와 에너지, 벌크화물, 콜드체인에 특화된 환동해 관문항으로, 부산항은 글로벌 컨테이너 환적 중심항으로 기능을 분담한다. 여기에 영일만항과 대구경북 신공항을 잇는 해운과 항공 복합 물류 허브를 구축해 북방 물류와 세계 항공 물류를 동시에 처리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계획도 담겼다. 그동안 영일만항은 인프라와 입지에 비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물건은 포항에서 만들고 선적은 부산에서 하는 구조가 굳어져 왔다. 이번 계획은 이 구조를 바꾸겠다는 첫 공식 로드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지만 방향이 옳다고 해서 저절로 성과가 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구상이 실제 물동량과 투자, 일자리로 이어지느냐 하는 점이다. 수소와 암모니아 등 청정에너지 물류기지, 해상풍력과 해양 신재생에너지, 철강·이차전지·첨단소재와 항만·공항을 잇는 산업 벨트, 스마트 수산·양식과 해양관광 등 계획에 담긴 과제들은 모두 시민의 삶과 맞닿아 있다. 동해안 여러 도시가 함께 잘 되자는 수준을 넘어, 각 지역이 어떤 기능을 맡고 어떤 성과를 나눌지에 대한 현실적인 설계가 필요하다. 포항은 이 가운데서도 중심축을 담당해야 할 도시다. 영일만항과 블루밸리, 철강·이차전지·수소 산업, 영일만 해역과 호미곶에서 구룡포와 동해면, 장기면으로 이어지는 해양관광과 어촌, 수산 벨트를 모두 품고 있기 때문이다. 해운과 항공 복합 허브, 북극항로 관문 항, 에너지와 해양산업, 수산, 관광의 결합이 실제로 구현된다면, 포항은 제조 도시를 넘어 종합해양 경제 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 시민들의 바람도 분명하다. “이제야 제대로 된 큰 그림이 나온 것 같다”라는 기대와 함께 “이번에도 말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라는 우려가 동시에 들린다. 그동안 장밋빛 계획은 많았지만, 삶이 달라진 경험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획 발표를 환영하면서도 지역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실행력과 꾸준함이 뒤따르지 않으면 종이 위의 설계에 머물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영일만항 배후단지에 어떤 기업을 유치할지, 북극항로와 에너지 항로를 어떻게 개척할지, 해운과 항공 복합 허브 구축에서 포항이 맡을 몫은 무엇인지, 어촌과 어항, 수산업과 해양관광이 어떻게 상생할지에 대한 답은 책상 위가 아니라 현장에서 찾아야 한다.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지역 정치가 시민과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대목이다. 도시의 발전이 산업 지표 상승에만 그치지 않고 시민의 일자리와 삶의 질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설계해야 한다. 환동해 블루이코노미 구상은 포항에 큰 기회다. 동시에 준비된 도시만이 과실을 나눌 수 있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포항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영일만항을 살리고, 어민과 상인이 함께 웃고, 청년이 머무는 일자리를 만들며, 바다와 항만이 시민의 자부심이 되는 도시로 나아가는 것이다. /김일만 포항시의회 의장

2026-02-22

K 국정 설명회와 효능감의 정치

지난 토요일 포은흥해도서관에서 김민석 국무총리의 ‘K 국정설명회’가 열렸다. 설명회가 열린 포은흥해도서관은 2017년 포항지진 이후 지역사회의 아픔과 회복의 시간을 함께 견뎌온 공간이다. 지진 피해를 딛고 다시 일어선 상징적 장소에서, 내란 사태 이후 재정비된 국정 운영을 설명하는 자리가 열렸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설명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도서관은 사람들로 가득 찼고, 포항뿐 아니라 경북 곳곳에서 찾아온 분들까지 더해져 현장의 열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만큼 국정 운영의 방향과 성과에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이날 김 총리께서는 지난 8개월간의 국정 운영 성과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설명했다. 특히 외교 분야에서의 변화가 눈에 띄었다. 한미동맹 강화,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 회복 등 외교적 성과에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고 했다. 또한,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 정상들과의 회담 과정에서 상대국의 특성과 분위기에 맞춘 맞춤형 외교 이벤트까지 화제가 되면서, 외교가 형식이 아니라 전략이 될 수 있음을 바로 보여주고 있었다. 코스피 5천 시대 달성, 마이너스 경제 성장률에서 1.8% 반등 등 경제 지표의 회복세 역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행정통합 문제에 대해서는 지역의 우려와 기대를 청취해, 지금보다 더 경쟁력 있는 방향으로 책임 있게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포항지진 촉발 지진 소송과 관련해 국가 책임을 다시 점검해보고 포항의 철강 산업에 대한 지원도 약속했다. 개인적으로는 포항 지진종합안전센터에 대한 국비 지원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달라는 쪽지를 전달하며, 정부가 포항지진 문제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길 기대했다. 설명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머릿속에 가장 오래 남은 단어는 ‘효능감’이었다. 효능감이란 ‘내가 참여한 선택이 실제로 변화를 만들어낸다’라는 감각이다. 정치의 영역에서 효능감은 곧 시민이 자신의 삶과 정치가 연결돼 있다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지난 1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정권이 바뀌고, 외교와 경제, 국정 운영 전반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면서 “우리 삶이 조금은 나아지고 있다”라는 체감이 생겼다면, 그것이 바로 정치효능감의 출발점일 것이다. 정치가 멀고 추상적인 세계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직결된다는 감각을 시민들이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K 국정 설명회는 단순한 보고 자리를 넘어섰다. 정치효능감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투표했는데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느낄 때, 민원을 넣어도 형식적인 답변만 돌아올 때, 시민들은 정치로부터 한 걸음씩 멀어진다. 반대로 작은 변화라도 체감할 수 있을 때, ‘내가 참여한 정치가 무언가를 바꿀 수 있구나’라는 감각이 쌓인다. 포항지진의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선 흥해의 공간에서 열린 국정 설명회는, 정치가 국민에게 어떤 방식으로 다가가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정치가 삶을 바꾸는 힘이 될 때, 국민은 정치에 효능감을 느낀다. 그 효능감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토대다. 정치는 결국 국민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려고 존재한다. 그것이 필자가 정치에서 꼭 지키고 싶은 가치이자 원칙이기도 하다. /김은주 포항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2026-02-22

내 안의 이브들

‘이브의 세 얼굴’이란 영화가 있다. 다중 인격을 소재로 한 아주 오래 된 흑백영화로 우연히 TV에서 보고 충격을 받은 작품이었다. 이브 화이트는 소심하며 소박한 모습의 현모양처이다 어려운 살림을 현명하게 잘 꾸려 나간다. 어느 날 그녀에게 제2의 인격이 나타난다. 처녀 적의 이름인 이브 블랙을 사용하며 사치스럽고 방탕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 두 인격이 번갈아 나타나 많은 사건을 겪다가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조신한 모습의 제인이 나타나며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한 사람 안에 둘 또는 그 이상의 각기 구별되는 정체감이나 인격 상태가 존재하는 것을 다중인격이라고 한다.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현재에 쓰이는 병명은 해리성 정체감 장애이다. 어린 시절 심한 신체적, 성적 학대를 받았을 때 자기 방어 기제의 한 방편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여성에게 특히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빌리 모리건이라는 사람은 24개의 인격이 드러난 것으로 유명하다. 다른 인격으로 나타날 때에는 본인이 배운 적이 없던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동안 이브의 삶을 보며 영화가 주는 묵직한 무게만큼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평상시에도 우리는 갑자기 화를 내거나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이중인격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으니까.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조금씩은 그런 모습이 숨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현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생존 기술일지도 모른다. 내 안에도 여러 명의 이브들이 살고 있는 것 같다. 직장에 다녔을 때나 모임이나 행사에 가 있을 때는 영락없는 이브 화이트이다. 적당히 사회적 규범이나 규칙을 따르며 타인의 무례한 언행이나 태도에 미소로 응대할 줄 안다.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눈을 살짝 감고 넘어가기도 하고 무의미한 농담이나 필요 없는 시시한 화제에 아무렇지도 않게 끼어들기도 한다. 현모양처처럼 적당히 남을 배려하며 나를 죽이는 것에 익숙하다. 이 인격은 사회를 살아가는데 잘 맞추어져 있다. 때때로 이런 원하지 않는 웃음과 교제 뒤에는 극심한 피로감이 자리 잡기도 한다. 집에 돌아온 순간 깨어나는 것은 이브 블랙이다. 그녀는 이브 화이트의 깊숙이 감춰진 내면이다. 화장을 지운 민낯과 활동하기 쉬운 헐렁한 차림의 그녀는 거칠 것이 없다. 가장 편안하고 늘어진 모습으로 TV를 보며 신랄한 비판의 목소리도 잊지 않는다. 욕망과 본능에 충실한 모습이다. 이브 블랙이 가장 현란하게 드러나는 곳은 아마도 여행지일 것이다. 적당한 책임감과 도덕심, 사회인으로 포장된 나라는 존재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곳. 그동안 만들어놓은 나를 버리고 가장 원시적이지만 자신에게 가까운 모습이 나타날 수 있는 곳이다. 익명성이 주는 편안함을 크게 느끼며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평소라면 절대 소화하지 못할 옷에 도전할 수도 있고 충동적인 행동도 과감히 해 볼 수가 있다. 오래 살던 곳을 떠나 낯선 도시로 왔을 때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이 그런 익명성이주는 자유로움이었다. 나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새로운 나를 보이고 그것을 토대로 또 다른 나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새롭고도 꽤 신나는 모험이었다. 무수히 잠자고 있었던 내 안의 이브들을 깨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평상시와 다르게 보이고 싶어 했던 내면에는 우유부단하고 소심했던 자신에 대한 불만이 컸기 때문이었다. 나를 벗어나고 싶고 내가 아닌 새로운 나를 꿈꾸다 이브 화이트와 이브 블랙을 잠재우며 드러난 제인을 주목하게 되었다. 순종과 반항, 절제와 방탕, 배려와 이기심을 조화롭게 아울러가는 우아한 여인을 말이다. 내 안에 살고 있는 다양한 모습의 이브들을 본다. 가끔은 튀어나오고 싶어하는 인격들을 보면서 그것들이 잘 조화되도록 하는 것이 건강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그 다양성들이 나의 한 파편들임을 인정하고 잘 아우를 수 있기를 바란다. 때로는 비겁하게 세상과 타협하는 나를 나무라기도 하고 때로는 대담한 나를 타이르기도 하면서 제인처럼 우아하고 현명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다. 영화처럼 완전한 해피엔딩은 아니더라도 조금은 소란스럽고 조금은 어설픈 나의 다양성을 사랑하면서 말이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6-02-22

“RAG와 벡터 데이터베이스 - AI의 기억력을 확장하는 기술”

지난주 우리는 인공지능(AI)이 왜 거짓말을 하는지, 즉 ‘환각 현상(Hallucination)’에 대해 알아보았다. 30년 경력의 베테랑 변호사조차 ChatGPT가 지어낸 판례에 속아 넘어갔던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그 원인은 명확했다. AI는 2021년까지의 데이터로만 학습되었기에, 그 이후의 정보는 자신의 ‘기억’ 대신 ‘추측’으로 채웠고 그 답변이 너무나 정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AI에게 실시간으로 정확한 정보를 건네주면 된다. 마치 시험장에 들어가는 학생에게 참고서를 쥐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바로 ‘RAG(Retrieval-Augmented Generation·검색 증강 생성)’ 기술이다. 2024년,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의 ‘AI 프로젝트 실패의 근본 원인과 성공 방법’이란 보고서에 의하면, 기업들의 AI 프로젝트 실패율이 80% 이상이라는 통계가 있다. 실패 원인 1위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부정확한 정보 제공”이었다. 회사 내부 데이터를 모르는 생성형 AI가 엉뚱한 답을 내놓았고, 실무자들은 결국 AI를 불신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회사의 정확한 정보에 기반한 RAG를 도입한 기업들의 이야기는 달랐다. 같은 생성형 AI인데도 정확도가 95%까지 올라갔다. 비밀은 단 하나, “AI에게 회사 문서를 먼저 읽게 한 것”이었다. RAG란 무엇인가? - 시험지와 참고서의 만남 검색 증강 생성(RAG)을 이해하기 위해 일반 AI와 RAG 적용 AI를 비교해 보자. 일반 AI vs RAG 적용 AI: “2023년 한국 수출액은?” 기존 AI(학습 데이터 기반) : “약 6500억 달러 정도로 추정됩니다.” (이유: 2021년까지의 지식만 보유한 상태에서 부족한 정보를 ‘추측’으로 채우며 발생하는 전형적인 환각 현상) RAG 적용 AI(실시간 자료 기반) : “관세청 발표 자료에 따르면 6324억 달러입니다.” (이유: 외부의 최신 공식 데이터를 즉시 검색하여 답변의 근거로 활용함으로써 100%의 정확도 구현) 차이가 분명하게 보일 것이다. RAG 기술은 AI가 답하기 전에 관련 자료를 먼저 찾아서 읽게 만드는 기술이다. AI가 ‘기억’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료 검색’ 후에 답하게 하는 것이다. RAG의 3단계 작동 원리 - 검색, 증강, 생성 RAG는 영어 약자 그대로 세 단계로 움직인다. 1단계: Retrieval(검색) “사용자 질문과 관련된 문서를 찾아라!” 회사의 구성원 중 한 명이 회사 AI에게 “우리 회사 휴가 정책이 뭐야?”라고 물으면, AI는 먼저 회사 내부 문서 DB에서 ‘휴가’, ‘연차’, ‘정책' 같은 키워드가 들어간 문서들을 찾는다. 인사팀 규정집, 2024년 개정 사항, 휴가 신청 양식 등이 쭉 검색된다. 2단계: Augmentation(증강) “찾은 자료를 AI에게 건네준다!” 검색된 문서 내용을 AI의 ‘임시 메모리’에 집어넣는다. 원래 생성형 AI는 2021년까지만 아는데, 지금은 “2024년 우리 회사 휴가 규정”을 눈앞에 펼쳐놓는 것이다. 3단계: Generation(생성) “자, 이제 이 자료를 보고 답해!” AI는 원래 학습 데이터 + 방금 건네받은 최신 문서를 합쳐서 답변을 만든다. “2024년 개정된 규정에 따르면, 연차는 입사 1년 후 15개, 3년 후 16개입니다.”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다. 벡터 데이터베이스는 AI의 똑똑한 서랍장 여기서 핵심 질문이 생긴다. “회사 문서가 수만 개인데, 어떻게 관련 문서를 0.5초 만에 찾지?” 답은 ‘벡터 데이터베이스(Vector Database)’에 있다. 이것은 일반 검색과는 다르게 작동한다. 일반 검색(키워드 매칭) : ‘휴가’라는 단어가 들어간 문서를 찾는다. 쉽게 말해 단순하다. 이 경우 “여름휴가 여행지 추천” 같은 엉뚱한 문서도 검색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벡터 검색(의미 기반 검색) : ‘휴가’의 ‘의미’를 숫자 배열(벡터)로 바꾼다. ‘연차’, ‘휴일’, ‘근로기준법’처럼 의미상 비슷한 단어들도 비슷한 숫자 형식을 갖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연차 사용 규정’ 문서가 최상위로 뜬다. (단어가 달라도 의미가 정확히 일치!) 다시 비유를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일반 검색은 도서관에서 ‘휴가’라는 제목이 붙은 책만 찾기와 같다면, 벡터 검색은 사서에게 “휴가와 관련된 모든 내용의 책 찾아줘”라고 부탁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 경우 생성형 AI는 도서 분류체계에 맞춰진 벡터 DB 속의 문서를 순식간에 골라낸다. 실제 활용 사례 -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사례 1: 법무법인의 계약서 검토 AI 어느 법무법인은 30년 치의 계약서 10만 건을 벡터 DB에 넣었다. 이제 변호사가 “부동산 매매 계약서에서 독소조항 찾아줘”라고 하면, AI는 과거 유사 사건 판례와 문제가 됐던 조항들을 0.3초 만에 찾아낸다. 슈워츠 변호사처럼 가짜 판례에 속을 일이 없다. 사례 2: 병원의 의료 상담 챗봇 “두통이 3일째인데 어떡하죠?”라는 질문에, AI는 병원 내부 진료 가이드라인, 최신 의학 논문, 유사 증상 환자 기록을 검색한 뒤 답한다. “일반 두통약 복용 후 48시간 내 호전 없으면 신경과 진료 권장”처럼 정확하게 답한다. 사례 3: 스타트업(StartuP)의 사내 지식 검색 “지난달 A 프로젝트 회의록 어디 있어?” 라고 질문을 던지면, AI가 슬랙(Slack) 대화, 노션(Notion) 문서, 이메일 등을 모두 뒤져서 “2026년 1월 10일 회의록입니다” 하고 정확한 링크를 준다. 신입사원도 5년 차처럼 일할 수 있다. RAG의 한계 - 완벽하진 않다 RAG를 사용하는 것도 만능은 아니다. 따라서 아래와 같은 사항은 주의해야 할 것이다. 1. 입력 데이터의 질이 결과의 질을 결정한다(Garbage In, Garbage Out) RAG 시스템의 신뢰성은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문서의 품질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만약 오래되거나 부정확한 정보를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면, AI는 그 잘못된 정보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18년의 오래된 규정을 데이터베이스에 넣어두면, AI는 이를 ‘최신 규정’이라고 주장할 수 있으며, 이는 매우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2. 검색 실패 = 환각 재발 RAG 시스템의 성공은 정확한 정보 검색에 달려 있다. 만약 AI가 질문과 관련된 적절한 문서를 찾지 못하면, 근거 없는 정보를 만들어내는 ‘환각’ 현상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양질의 문서 검색은 RAG 시스템 성공의 열쇠, 즉 90%를 좌우한다. 3. 비용 문제 대규모 기업 문서를 AI가 활용할 수 있는 벡터 데이터로 변환하고 실시간 검색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발생한다. 특히 자금력이 제한적인 중소기업에게 이러한 투자가 큰 재정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100만 페이지에 달하는 문서를 처리하고 빠르게 검색할 수 있는 인프라(Infra)를 구축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과 기술적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전 활용 팁 - RAG를 내 것으로 만들기 AI 기술의 발전으로 이제 개인도 쉽게 개인화된 RAG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자신의 PDF 문서들을 AI 플랫폼에 업로드(Upload) 하면, 시스템은 자동으로 문서들을 분석하고 검색 가능한 지식 데이터베이스로 만든다. 이를 통해 개인은 대량의 문서 중에서 필요한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찾을 수 있으며, 마치 개인 비서와 같은 맞춤형 정보 검색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다. RAG 기능을 제공하는 주요 생성형 AI 플랫폼은 다음과 같다. OpenAI의 자체 RAG 시스템, Notion AI의 내장된 문서 RAG 기능, Google Gemini의 Google Drive 통합 RAG 서비스, Claude(Anthropic)의 파일 업로드 후 대화 컨텍스트 내 검색 지원, Microsoft Copilot의 OneDrive 문서 기반 RAG 기능 등이 그것이다. 개인과 다르게 기업에서 RAG를 성공적으로 도입하려면 먼저 문서 관리부터 철저히 해야 한다. 최신 문서만 남기고 오래된 문서는 과감히 정리하며, Pinecone, Weaviate 같은 벡터 데이터베이스를 선택한다. 부서별로 엄격한 접근 권한을 설정하여 민감한 정보의 무단 접근을 차단하고, 소규모 부서에서 파일럿 테스트를 통해 시스템의 안정성과 효과를 검증한다. 이후 점진적으로 조직 전체로 확대하는 전략을 수립한다. 마지막으로 RAG를 써도 “믿되 확인하라”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AI가 이 문서를 참고한 출처를 밝히면, 그 문서를 직접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AI의 기억력, 이제 무한대로 RAG는 AI의 ‘뇌 용량’ 한계를 없애버렸다. 원래 ChatGPT는 2021년 9월까지만 기억하지만, RAG를 쓰면 2026년 2월 오늘 아침 회의록까지 참고해서 답한다. 중요한 건, RAG가 ‘환각 현상’을 완전히 없앤 게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적어도 “학습 데이터에 없어서 지어낸 거짓말”은 막을 수 있다. AI가 모를 땐 추측 대신 자료를 뒤지게 만들었으니까. 앞으로 모든 AI 전환(AX)을 추구하는 기업에 있어서 기업용 AI는 RAG가 기본이 될 것이다. “우리 회사 데이터를 모르는 AI”는 쓸모가 없다. RAG는 범용 생성형 AI를 ‘맞춤형 전문가’로 바꿔주는 힘이 될 것이다. /서용운 계명대 글로벌 창업대학원 벤처창업학과 교수

2026-02-22

‘설국’ 울릉, 박제된 축제 대신 ‘멍석’ 깔아라

대한민국 최다설지(最多雪地), 눈이 오면 고립이 아닌 축복이 되어야 할 울릉도의 겨울이 올해도 아쉬운 성적표를 남겼다. 지난해부터 울릉군이 추진한 ‘2026 울릉 스노우 페스티벌’은 시작 전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더니, 결국 예산과 기간이 대폭 축소된 ‘반쪽짜리’ 행사로 전락했다. 이는 단순한 예산 문제를 넘어 울릉군 행정의 고질적인 ‘불통’과 ‘관행’이 낳은 예고된 참사였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축제 때마다 반복되는 ‘사회단체 동원령’이다. 행정의 기획력이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전매특허처럼 등장하는 것이 바로 자원봉사자와 관변단체의 머릿수 채우기다. 살을 에이는 추운 날씨에도 안내와 급식을 도맡는 이들의 헌신은 고귀하지만, 그 이면에는 행정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운 지역사회의 특수성이 깔려 있다. 자발성이 거세된 동원은 결국 축제의 생명력을 갉아먹고 지역민의 피로감만 가중할 뿐이다. 잘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북도와 협력한 ‘겨울철 여객선 운임 지원’은 비수기 울릉 관광의 고질적인 문턱을 낮추는 데 일조했다. 운임 70% 지원으로 관광객 수가 전년 대비 30% 이상 급증한 수치는 울릉도가 ‘겨울에도 가고 싶은 섬’이라는 잠재력이 충분함을 방증한다. 물론, 나리분지의 설경 투어나 울릉 고유의 음식을 활용한 프로그램 역시 울릉만의 색깔을 담으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실망감이 앞선다. 기대를 모았던 이번 축제는 행정의 ‘불통’에 발목을 잡혔다. 축제의 핵심 주체인 청년 소상공인들과의 협의 내용을 신임 부서장이 일방적으로 뒤집으며 갈등을 자초했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서류와 행정 편의주의에 갇힌 결과, 축제는 동력을 잃었고 지역민의 냉소만 샀다. 이제는 ‘축제’라는 틀에 갇힌 울릉군의 시각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매년 반복되는 일회성 행사나 보여주기식 포토존 설치만으로는 까다로운 요즘 여행객들을 잡을 수 없다. 관광객들은 화려한 개막식이나 행정 주도의 이벤트를 보러 울릉까지 오지 않는다. 울릉도의 겨울은 그 자체로 거대한 콘텐츠다. 굳이 무대를 세우고 가수를 부르지 않아도, 무릎까지 차오르는 눈밭에서 캠핑을 즐기고 싶은 아웃도어족과 홀로 설국을 만끽하려는 알뜰 여행자들이 이미 울릉도를 주목하고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행정이 주도하는 ‘관치(官治) 축제’가 아니라, 마음껏 눈 위를 뒹굴 수 있도록 안전을 확보해주고 편의를 제공하는 ‘멍석’이다. 자연 그대로의 눈밭을 캠핑지로 개방하거나, 눈길 트레킹 코스를 정비해 자율성을 보장하는 식의 ‘가장 울릉도다운’ 겨울나기가 정답이다. 행정은 주도권을 내려놓고 그저 판만 깔아주며, 실제 알맹이는 민간의 창의성과 관광객이 자유롭게 채워가도록 내버려 두는 지혜가 필요하다. 울릉공항 개항이 코앞이다. 100만 관광객 시대를 호언장담하기에 앞서, 울릉군은 이번 겨울 축제 파행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행정의 권위는 지시가 아니라 소통에서 나오고, 관광의 생명력은 인위적인 동원이 아닌 지역 본연의 매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내년 겨울에는 ‘관광객을 동원하는 섬’이 아닌, ‘전 세계 아웃도어족이 스스로 찾아와 눈밭에 텐트를 치는 섬’ 울릉도를 기대해 본다. /황진영 기자 h0109518@kbmaeil.com

2026-02-21

TK통합 성패, ‘특례·공공기관 배정’이 결정

국회가 오는 24일 예정된 본회의에서 대구·경북(TK), 광주·전남, 대전·충남 3개 행정통합 특별법안을 일괄 상정해 처리할 가능성이 크다. 6월 지방선거에서 ‘통합특별시’ 단체장 선출을 목표로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현재 특별법안은 소관 상임위인 행안위를 거쳐 법사위에 넘겨진 상태다. 법사위는 체계·자구 심사가 주된 권한인 만큼 특별법안의 본회의 회부는 기정사실화 됐다. 문제는 3개 통합특별시 특별법안 내용을 두고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행안위에서 의결된 TK 특별법안의 경우, 주요 특례조항(TK신공항 건설 국비 지원 의무화, 낙후지역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지역거점 국립의대 신설 등)이 삭제된 데다 광주·전남 법안과 비교해 봐도 불이익을 받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군 공항 이전 지원’ 조항을 보면 광주·전남 법안에는 국가의 정책·재정 지원을 직접적으로 명시했지만, TK 법안은 ‘자체 재원보조와 요청 권한’ 식으로 규정돼 있다는 점이다. 사실 법사위에서는 예산이 수반되는 조항을 새로 신설하거나 변경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러나 여야 간 정치적 합의가 전제되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법사위 심사 과정을 비롯해 국회 본회의 최종 의결 전까지 TK 특별법안이 다른 지역과 비교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국회 설득 작업을 이어가야 한다. 특히 정부가 행정통합 지역에 2차 공공기관 우선 배정 인센티브를 주기로 한 만큼, 대구·경북은 지금부터 공공기관 유치에 행정력을 집중시켜야 한다. 현재 대구시는 IBK기업은행, 한국무역보험공사, 한국환경공단 등 33개, 경북도는 농협중앙회, 한국마사회,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환경산업기술원 등 40여 개 공공기관을 유치 대상으로 선정해둔 상태다. 그러나 유치희망 기관 중 농협중앙회, 한국마사회 등 주요 공공기관은 다른 지역에서도 눈독을 들이고 있는 만큼 일찌감치 유치전에 뛰어들어야 한다. 자칫 여권의 텃밭인 호남에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

2026-02-19

SMR 특별법 통과···준비된 도시 ‘경주’

2년간 표류하던 소형 모듈원자로 개발촉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SMR 특별법)이 지난 1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AI와 데이터센터 건립에 따른 전력수요 급증에 대비하고, 탄소중립 실현을 뒷받침할 핵심 기술인 SMR 개발 사업이 드디어 본 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SMR은 기존 대형 원전대비 출력이 낮고 모듈화된 설계로 안전성과 경제성이 높은 차세대 원자력 기술로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현재 미국, 중국, 영국 등 전 세계 18개국에서 AI시대에 대비해 80여 종의 다양한 SMR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들 나라 대부분은 2030년까지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제11차 전력수급기본 계획에 2035년까지 소형 모듈원자로 도입을 목표로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이번 특별법의 통과로 정부는 5년마다 소형 모듈원자로 시스템개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매년 시행 계획도 별도 마련해야 한다. 문제는 소형 모듈원자로 1호기가 들어설 입지다. 정부는 입지에 대해선 “2028년 기술개발 완료 후 신중히 결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럼에도 경북 경주와 대구, 부산 등 지자체들의 유치전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2024년 SMR 국가산단 최종후보지로 선정된 경주시가 현재로선 가장 강력한 후보지라 할 수 있다. SMR 국가산단이 추진 중에 있으며, 원자력 기술 개발 및 인력을 뒷받침할 문무대왕과학연구소도 조성 중이다. 한수원 본사와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중수로해체기술원 등 원전 관련 핵심시설이 집적된 전국 유일의 도시기 때문이다. 기존 원전이 있는 지역이라 수용성에서도 뒤질 것이 없는 곳이다. 경주시는 최근 범시민추진단을 구성하고 서명운동에 나섰다. 빠른시간 안에 범시민서명운동 결과와 함께 한수원에 공식적인 유치 의사를 표명할 것이라 한다. 그러나 경쟁 지자체가 어떤 전략으로 정부를 설득할지 알 수가 없다. 경주가 SMR의 준비된 도시임을 입증할 충분한 근거와 과학적 자료로 정부를 설득해 가는 것이 지금부터 관건이다.

2026-02-19

입방아 오른 명절 떡값

명절 떡값은 박정희 정권 시절 박봉에 시달리는 공무원에게 명절 제수 마련에 보태라고 설과 추석에 두 번 나눠주던 상여금이 시발점이다. 당시 공무원 봉급명세서에는 ‘효도비’라고 적혀 일종의 복지 차원의 복리비를 명절 떡값이라 불렀던 것이다. 떡값이라는 표현이 나오게 된 배경은 명절 제사상에 오르는 떡을 구입하는 비용에 작지만 보태 쓰라는 뜻인데, 이것이 떡값으로 불리게 된 동기다. 1990년대 들어 떡값은 고위 공직자의 부정축재 뇌물이나 부정한 돈을 은유적으로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주식시장 코스피가 5500선을 뚫는 등 활황을 보이나 대부분 서민에게는 ‘그림의 떡’처럼 보이는 게 현실이다, 주식시장 활황 소식에도 설 명절을 보내는 서민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다는 뜻이다. 경영자협회가 447개 기업 대상으로 상여금 지급 여부를 묻는 질문에 58.7%만이 지급한다는 대답을 했다. 10개 기업 중 4개 기업의 종업원은 상여금을 못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국회의원들이 받는 설 명절 떡값이 서민들 입방아에 올랐다. 국회의원은 명절 휴가비로 일반공무원과 같은 방식으로 월 봉급액의 60%를 받는다. 국회의원 연봉 1억6000만원을 기준하면 이번 설에 국회의원은 각자 439만원의 상여금을 받은 것이다. 직장인의 절반가량이 명절 떡값을 못 받는다는데 국회의원은 일반 직장인 평균의 7배나 되는 떡값을 받았다고 하니 그들이 받는 떡값이 서민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당연지사다. 명절마다 “정쟁으로 날 새면서 돈만 챙긴다”는 국회의원을 겨냥한 비난 목소리가 나오나 시간이 지나면 또 잊혀짐을 반복한다. 오는 추석 명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2-19

판사 바꿔주세요

소송과 재판을 이끌어가는 기본원리에 신속과 공정이 있다. 그중에서도 공정한 재판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유지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소송법은 공정한 재판을 위한 장치를 두고 있다. 그중 하나가 판사가 공정하지 않은 판결을 할 위험성을 제거하는 것이다. 재판의 결과는 판결이고, 판결은 전적으로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 법관의 몫이다. 법률과 양심에 의거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판단을 내리고 그에 대한 판결문을 쓰라는 것이 법관의 독립성 보장이다. 따라서 법관은 독립적이어야 하고, 사건 또는 당사자와 학연, 지연으로 연결되어 있어서는 안 된다. 판사 개인 스스로도 공정한 재판을 하기 위해 애쓸 것이지만, 판사도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기에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민사소송에서 담당 판사가 원고의 혈족이라면, 형사소송에서 담당 판사가 기소된 사건의 피해자라면 아마 공정한 재판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고 판결의 신뢰성도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 소송법엔 법관에 대한 제척, 기피, 회피 제도가 있다. 제척 제도는 일정한 사유가 있을 때 당연히 그 법관이 그 재판에서 배척되는 것이다. 판사와 당사자가 일정한 친족 관계에 있을 때가 가장 대표적이다. 3심제의 심급 재판 보장을 위해 1심에서 판결을 내렸던 판사가 2심에 또 담당 판사가 되었을 때도 제척 사유다. 기피는 제척 사유 외에 불공정한 판결이 우려될 때 당사자 등이 신청하면 담당 법관을 이 재판에서 배제할지 말지를 상급 법원이 판단해 결정하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기피 사유는 담당 판사와 소송 대리인인 변호사, 피고인의 변호인이 친족 관계에 있을 때이다. 어떻게 보면 당사자와 판사가 일정 관계에 있는 제척 사유보다 더 많을 수 있기에 이런 경우는 기피 신청을 해야 한다. 회피란 법관 스스로 기피 사유가 있음을 인정하고 재판에서 물러나고자 하는 것이다. 역시 상급 법원의 허가를 필요로 한다. 이처럼 제척·기피·회피 제도는 공정한 재판의 보장을 위해 필수적이라 할 수 있지만 이를 재판 지연 목적에서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일단 하고 있던 재판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은 재판 지연 목적이 분명한 경우 해당 재판부가 바로 기피 신청을 기각할 수 있게 하고 있는데 이것이 간이 기각이다. 내란 관련 혐의로 기소된 전 국방부 장관의 구속영장 심문에서 피고인이 반복해 네 차례 기피 신청을 냈지만 모두 기각되었다. 피고인은 헌법상 방어권을 침해당했다는 이유로 재판부 전원에 대한 기피 신청을 냈지만, 재판부는 재판 지연 목적이 분명하다는 이유로 간이 기각한 것이다. 이처럼 재판을 할 때는 담당 판사와 당사자 또는 사건 간의 관계를 살펴보고 불공정한 사유가 발견될 경우 제척, 기피 요구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제척 등 사유가 없는데도 일단 기피 신청을 해 보자는 태도는 재판 지연을 초래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내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만큼 상대방의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도, 국가의 적정한 재판권과 형벌권 행사의 공익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세라 변호사 △고려대 법과대학, 이화여대로스쿨 졸업 △포항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2026-02-19

AI와 문체(文體)

AI가 대학 교육 현장에 미친 효과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논의들이 제출되고 있다. 이제는 모두가 안다. AI의 활용이 단순히 과제 수행 방식의 변화를 넘어, 지식의 생산과 학습의 의미 자체를 변혁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긍정의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리뷰나 서평, 에세이처럼 ‘사유의 훈련’으로 간주되던 전통적인 과제들마저 생성형 AI에 의해 손쉽게 대체 가능해지면서 인문학과 AI의 관계에 대한 보다 심화된 이해를 요구하고 있다. AI는 이미 학생들을 둘러싼 학습 환경의 일부가 되었다. 검색 엔진이 등장했을 때 도서관 이용 방식이 변했듯, 이제 학생들은 검색창이 아니라 대화형 AI에 온갖 질문을 던진다. AI는 단순한 정보 검색을 넘어, 논지 구성과 문장 생산까지 대신하고 있다. 물론 인문학 교육의 과제는 ‘결과물’만이 아니라 ‘사유의 과정’ 전반을 문제 삼는다. 인문학적 사유의 함양은 텍스트의 형태와 논리적 정합성의 문제로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평가의 초점은 완성도 높은 문장만이 아니라 그 문장이 생성되기까지의 사유의 궤적, 텍스트와 맺는 관계의 밀도, 그리고 학생 고유의 정치적 주체성 확보에 있어야 한다. 일본의 비평가 에토 준은 문체(文體)란 “작가의 행동과 작가가 놓인 사회가 빚은 알력이 남긴 자취”라 정의한 바 있다. “작가들은 확실히 언어의 앞으로 뛰쳐나가 직접 현실과 접촉”해야 하며, 이는 “수영 선수들이 행동 뒤로 물보라와 물결을 남기는 것처럼 작가들은 행동 뒤에 문체를 남긴다”는 의미이다. 진정한 문체란 글 쓰는 자가 주위의 현실과 격돌하면서 일으키는 방전 현상의 불꽃과도 같다. 글을 쓰는 행위란 행동한다는 것이고 그 결과 글쓰기의 주체는 자기가 속한 사회와의 긴장과 알력 속에서 세계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 알력이 남긴 흔적이 바로 문체라는 것이다. AI가 보급되고 대학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문제는 바로 이 문체의 소멸 아니었을까? 반복컨대 문체란 저마다의 개성이 아니라, 현실과 싸운 자기만의 종적을 의미한다. 간단한 질문과 의제에 대한 답조차도 AI에 의탁하여 손쉽게 사고해버리고 마는 행태의 사회적 확산 속에서 학생들은 자기 고유의 문체를 상실하고 있다. 어떠한 주제든 대체로 비슷한 입장에서 비슷한 어투로 비슷한 평가를 하고 마는 자기의 현재를 기술 환경의 변화라는 구실로 그냥 넘어가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인문학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언어의 생성’이다. 이는 단지 문장과 사유의 독창성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단 텍스트를 읽고, 텍스트와 충돌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위치를 발견하는 경험을 의미한다. AI는 정보를 요약하고 논지를 정리해 줄 수는 있지만, 그 판단의 책임을 져주지는 않는다. 인문학 교육의 지향이란 바로 이 ‘판단의 책임’을 감당하는 주체를 길러내는 일에 있지 않을까. AI 시대에서 인문학의 가치는 기술을 통제하는 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기술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인간의 판단과 책임을 포기하지 않는 용기를 샘솟게 하는 데 있다. 오늘날의 인문학자는 우선 이 점에 천착해야 한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6-02-19

의료계 문제

우리나라는 매년 의료질 평가라는 것을 한다. 수술, 질병, 약제사용 등 병원의 의료서비스를 의료의 안전성· 효과성· 효율성 ·환자 중심성 등 측면에서 평가한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다. 지역 종합병원 중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이 고관절 치환술, 췌장암수술, 식도암 수술, 조혈모세포이식술, 위암, 간암 평가등급에서 모두 1등급을 받았다. 이는 의료능력자들이 대거 투입되었거나한 대규모 투자가 있어 시설이나 장비가 엄청나게 보완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경북대병원은 췌장암과 식도암, 간암에서 2등급을 받았고, 칠곡경북대학교병원은 췌장암에서 2급, 식도암은 평가대상에서 제외되었고, 영남대병원은 식도암, 위암에서 2등급을 받았다. 대구카톨릭대병원은 췌장암, 식도암, 위암에서 2등급을 받았다. 모두 1등급 받은 병원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정도라 계명대 동산병원이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1등급을 받은 서울의 최상급 병원들은 거의 세계적인 수준이다. 이렇다 보니 전국에 있는 중환자들이 이들 병원으로 몰린다.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제대로 진료받고 싶다는 심리일 것이다. 그래서 이들 병원에서 새벽 수술은 거의 일반화되어 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밀려드는 수술 환자를 쳐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 의료계가 경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방과 서울 의료 격차가 크다는 이야기를 지방에 사는 우린 많이 듣는다. 왜 이런 이야기가 도는지 지역 의사들의 각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투자하지 않는 곳에 발전은 없다. 교수들은 자꾸 노령화되어 가고 있고 신기술을 받아들일 여력은 없다. 그렇다 보니 할 수 있는 한계치가 보이게 마련이다. 적자에 허덕이며 주차비 받고 매점 운영해서 병원 운영비 보태야 하는 지금 상황에선 의료 발전을 기대하긴 힘들다. 미국 최고로 꼽히는 ‘빅4’ 병원은 메이요 클리닉, 존스홉킨스대 병원, 하버드대 부속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클리블랜드 클리닉을 꼽는다. 이 병원의 의료 기술은 세계적이라는데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세계 갑부들이 거의 이 병원에서 치료받으니 말이다. 이들은 우리나라 병원을 찾지는 않는다. 이들 병원과 우리 1등급 병원들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이 병원들이 가지는 모토를 보면 ‘환자가 최우선’이고 ‘창의적인 의학 연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들 병원에는 대략 한국 병원보다 10배 이상 많은 전문의와 교수가 있다. 이들이 하루에 진료하는 환자 수는 한국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이러니 개개 환자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 최상의 진료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은 세계적 수준이라는 소리는 이제 그만하자. 의료 보험비보다 의료 사보험비를 더 많이 내야 하는 이상한 의료체계를 왜 생각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병원 간병인이 재중동포인 조선족으로 대체된 지 오래됐다. 곧 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의사들이 중국이나 동남아 의사로 대체될 것이다. 수술할 의사가 없어지는 데도 정치권은 지금도 의료인 숫자놀음에 빠져 한가하게 국민 세금을 축내고 있다. /노병철 수필가

2026-02-19

복지의 이름으로 ‘상생’을 잊은 행정

“법을 지키며 세금을 내온 우리가 오히려 바보가 된 기분입니다” 포항시 북구에서 만난 한 목욕업자의 한숨 섞인 토로다. 주민 복지라는 명분을 앞세운 지자체가 사설 업소의 반값도 안 되는 요금으로 ‘공공 목욕탕’ 공세를 펴면서 수십 년간 지역 상권을 지켜온 영세 상인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현장에서 마주한 포항시의 행정은 ‘복지’라는 선한 의도와는 달리 민간의 삶을 위협하는 ‘포식 행정’의 그늘을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청림문화복지회관 내 목욕 시설은 지자체 행정이 탁상행정에 머물러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12년 준공 이후 지난해 10월까지 13년 동안 운영된 이 시설은 영업 신고조차 하지 않은 ‘무허가’ 상태였다. 인허가권을 쥔 시청이 정작 자신들이 운영하는 시설의 법적 근거를 무시한 처사다. 그 결과 시민들은 정기 수질 검사나 위생 점검 같은 최소한의 법적 안전망 밖에서 10년 넘게 공공 목욕탕을 이용해야 했다. 운영의 불투명성도 도를 넘었다. 모든 수입을 시 금고에 넣어 예산안에 따라 집행해야 한다는 예산총계주의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수익금을 별도 통장에 두고 직접 꺼내 쓰는 ‘깜깜이 회계’가 이뤄졌고 카드 단말기조차 없이 현금만을 고집했다. 투명해야 할 공공 행정이 오히려 회계의 사각지대를 자초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모두에게 공정해야 할 ‘행정’이 시장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점이다. 적자 민간 시설을 타당성 검토 없이 인수해 반토막 요금제로 운영하거나, 거대 복합센터를 지어 저가 물량 공세를 펴는 방식은 인근 민간 업소들을 폐업으로 내모는 ‘상권 살생부’나 다름없다. 전문가들은 이를 ‘포퓰리즘’에 경도된 적극적 행정의 폐해라고 꼬집는다. 하혜수 경북대 교수는 “민간이 이미 잘하고 있는 영역을 시가 직접 침해할 게 아니라 기존 업체들에게 보조금을 지원해 주민 할인을 유도하는 상생 모델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조언한다. 진정한 복지는 민간이 닿지 않는 오지의 시민 등을 어루만지는 ‘소극적 접근’에서 시작해야 한다. 포항시가 이미 형성된 시장에 직접 뛰어들어 가격을 파괴하는 방식은 결국 민간 상권 붕괴와 시 재정 부담 가중이라는 악순환만 낳을 뿐이다. 주민 복지라는 명분이 모든 행정적 과오와 자영업자의 희생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법치를 외면하고 시장의 상생을 잊은 행정은 주민들의 박수를 받을 수 없다. 포항시는 이제라도 ‘복지’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차가운 현실을 직시하고 민간과 함께 숨 쉴 수 있는 ‘정교한 행정’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2026-02-19

예천군민들이 군수 후보자들에게 보낸 설 민심

오는 6·3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예천군수 출마를 앞둔 예비후보들이 앞다투어 왕성환 행보를 보였다. 이번 선거는 단순히 행정 책임자를 뽑는 절차를 넘어, 예천의 방향과 품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는 점에서 주민들도 이들을 예의주시하며 맞았고, 의견을 주고 받았다. 이번 군수선거에는 국민의힘 공천을 노리고 김학동 예천군수, 도기욱 경북도의원, 안병윤 전 부산 부시장이 일찌감치 공천 경쟁에 뛰어 들었고, 그 영향으로 선거 분위기와 열기가 예사롭지가 않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윤동춘 전 경북경찰청장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지역정서 상 국민의힘 공천은 군수 보증 수표, 당선증이나 마찬가지이다 보니 주민들도 온통 누가 공천을 받을 것이가에만 관심이 쏠린다. 설 연휴 동안 김학동 군수는 “가장 잘하는 행정이 가장 잘하는 정치”라는 철학을 주창하며 주민들을 만났다. 3선 도전을 선언한 그는 현직 유지와 관련해선, 3~4월 당내 경선 일정이 확정될 때까지는 그대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도기욱 도의원도 “과정과 결과가 정의로운 예천군을 만들겠다”고 강조하고 명절 내내 바삐 움직였다. 그는 ‘우문현답’ 북콘서트를 열어 지지자들과 교감한데 이어 군민들과는 ‘군수에 나오게 된 결심’등을 설명하며 지지폭을 넓혔다. 안병윤 전 부산 부시장은 ‘안병윤이 사랑하는 예천을 담다’ 출판기념회 등을 통해 지지세를 결집했다. 안 전 부시장은 “공직 경험을 살려 내가 사랑하는 고향 예천의 가치를 담아내고 지역을 위해 봉사하고자 한다”고 말하며 동분서주했다. 이들 3명이 이번에 설 명절을 전후해 지역 어르신들을 찾아 인사를 나누고, 전통시장과 마을회관, 각종 행사장을 누비며 지역민들과의 접점을 넓힌 것은 선거운동의 일환일터다. 하지만 군민들을 만나보면 이제는 단순히 이름을 알리고 명함을 주는 그런 선거운동으로서는 표 받기가 쉽지 않다. 그런 구닥다리 보다는 누가 진정성을 갖고 예천과 군민을 위해 일하려할 것인가 하는 비전과 철학을 원한다. 이런 경향은 분명 현재 저간에서 흐르고 있고 다가올 군수 선거의 핵심 화두와도 일맥상통한다. 지금 군민들은 바라는 것은 ‘책임과 진정의 리더십’이다. 책임은 단순히 직책을 맡는 것이 아니라 그 무게를 끝까지 감당하는 자세를 의미하고, 진정성은 형식적인 방문과 인사말이 아니라 주민과 제대로 된 공감을 바탕으로 군정을 이끌어 주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일 것이다. 예천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해 왔다. 또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따뜻한 공동체이기도 하다. 오는 6월이면 예천은 또 새로운 수장을 뽑는다. 그 선거를 두고 이번 설 연휴 동안에 유독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민심도 4년 전보다는 한층 더 성숙해 있었다. 국힘 3명의 후보자들이 그 속을 어떻게 녹여낼지가 자못 궁금헤진 설 연휴였다. 민심 변화는 어쩌면 과거의 선거 방식과 단절됨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이제 예천의 리더는 단순한 행정가를 넘어서야 하며 신뢰 속에 함께 군정을 펼칠 수 있는 그런 청사진을 내놓아야 한다. 늘 그래왔듯 선거는 사람을 선택하는 일이다. 시대가 변한 만큼 후보자들도 보다 더 진화된 자세와 가치관, 공약으로 군민들 속을 파고 들어야 할 것이다. 군민들도 이제 내일의 예천은 오늘의 선택에서 시작됨을 잘 알고 있다. ‘책임’과 ‘진정’을 가슴에 품고 주민과 함께 걷겠다는 약속을 끝까지 실천하며 지켜낼 수 있는 인물에게 지역의 미래는 맡겨질 것이다. /정안진기자 ajjung@kbmaeil.com

2026-02-19

2026 대구마라톤, 국제 축제로 승화시켜 가야

22일 열리는 2026년 대구마라톤은 올해 국내에서 개최될 세계육상연맹 인증 첫 마라톤이자 국내 최대 규모 마라톤대회다. 2001년 1회 대회 시작 이래 매년 대회 규모가 성장하면서 2011년 세계육상대회 개최를 계기로 국제적 대회로 자리를 잡았다. 2023년 대회부터 세계육상연맹 인증의 골드라벨 대회로 승격하였으며, 국내 4대 마라톤대회로 손꼽히는 등 국제육상도시 대구를 대표하는 행사다. 작년 9월 2026 대구마라톤 마스터즈 풀코스 참가자를 접수한 결과, 하루만에 총 1만6000여 명이 신쳥을 해오는 기염을 토했다. 전년 81일에 걸쳐 모집한 풀코스 참가자 1만3000명을 하루 만에 넘어선 숫자였다. 이는 대구마라톤에 대한 전국 마라토너의 높은 관심과 기대를 반영한 결과라 하겠다. 현대의 스포츠는 단순한 경기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 스포츠에 열광하는 시민이 늘어나 스포츠가 도시의 힘이 되고 도시를 변화시킨다. 국가 브랜드 가치도 덩달아 높인다. 영국 맨체스터는 세계 축구 팬들의 성지로 통한다. 축구 경기를 보러 세계에서 연간 1200만명이 찾는다. 경기가 열리면 지역관광과 숙박업 등 지역 상권이 살아나고 도시의 글로벌 인지도가 더 높아진다. 마라톤은 개인적으로는 건강 유지와 자신감,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스포츠이면서 사회적 연결성이 높아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많은 기여를 한다. 장시간에 진행되면서 도시의 훌륭한 경관을 세계에 알리는 경기로서 적합하다. 대구마라톤은 이제 세계 메이저대회 반열에 들고자 한다. 아직은 세계 신기록이 나오지 않았지만 신기록 달성을 목표로 좋은 선수를 유치하는 전략 등 과제도 적지 않다. 그 무엇보다 마라톤에 대한 시민의 관심과 열기가 뒷받침돼야 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다. 시민의 참여와 열기를 모으기 위한 문화관광축제로서 분위기 조성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 22일 열리는 대구마라톤의 성공은 대구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높일 뿐 아니라 젊고 역동적인 도시 대구의 이미지를 알리는 좋은 기회임을 알아야 한다.

2026-02-18

국힘, ‘청년중심‘공천 성과낼 수 있을까

국민의힘이 10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를 앞두고 청년층 공천확대에 당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최근 ‘청년 의무 공천제’를 언급하면서 “국회의원 지역구마다 청년 1인, 여성 1인 공천을 의무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 15일에는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페이스북을 통해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이 최대한 정치의 중심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고, 당 인재영입위원회도 “인재영입의 기조는 청년과 미래”라며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 인재영입위는 조만간 청년중심의 공천대상자들을 발표할 계획이다. 장동혁 대표도 이달 초 국회 대표연설에서 선거권 나이를 현행 18세에서 16세로 낮추자고 제안했었다. 국민의힘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청년인재를 대거 발굴해 공천하겠다는 생각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정치 역량과 도덕성을 갖춘 청년을 단체장이나 지방의원 선거에 집중 공천하면 낡은 당 이미지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려되는 점이 더 크다. 당 내분 격화로 지지율이 바닥인 상태에서 정치신인들이 과연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한국갤럽이 설연휴 직전(10∼12일) 유권자 1003명을 대상으로 정당 지지도 조사를 한 결과, 민주당 44%, 국민의힘 22%로 나타났다. 충격적인 것은 국민의힘이 민주당보다 우위를 차지한 지역이 한 곳도 없다는 점이다. ‘보수텃밭’인 대구·경북마저 민주당과 동률(32%)을 이뤘다. 청년층 지지율도 민주당에 완패했다. 20대는 민주 26%·국민의힘 18%였고, 30대는 민주 36%·국민의힘 23%였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사실 코앞에 다가온 지방선거에서 청년신인을 과감하게 발탁하는 전략은 당 지지율이 높은 민주당에 적합하다. 후보 인지도가 다소 낮더라도 집권당 프리미엄으로 당선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의 경우, 정치신인이 짧은 선거운동 기간에 낮은 당 지지율을 극복하고 본선에서 과연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감이 든다.

2026-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