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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숨 쉬듯 무례한 사람들

친구가 자신의 친구를 소개해줬다. 처음 만난 그는 내게 만난 지 몇 분도 되지 않아 “엄청 무섭게 생기셨네요” 라고 했다. 그런 말에는 어떻게 대꾸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네, 제가 좀 무섭게 생겼습니다” 하고 너스레를 떠는 것도 좀 우습고, “무섭게 생겨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좀 이상하다. 그 후에도 내 외모에 대해 몇 마디 더 했고 나는 그와 어떤 관계도 맺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말에 기분이 상하지는 않는다. 이 얼굴을 좋아해주는 사람과 연애를 했고 결혼까지 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처음 보는 상대의 외모가 어떻네 이야기 하는 것이 교양 없는 일이라고는 생각한다. 그는 초면에 내게 자신의 교양 없음을 드러낸 것이고 나는 그것을 통해 그의 영리하지 못함을 감지했다. 나 역시 마냥 영리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과 말을 섞고 관계를 쌓는 일은 재미없고 피곤한 일이다. 숨 쉬듯 무례한 사람들이 참 많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실례 되는 말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앞서 말한 ‘얼평’이다. 사실 나는 누군가에게는 다소 거칠어 보일 수도 있는 외모를 갖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은 무례한 일을 별로 안 당할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별로 섬세해 보이지 않는 탓인지, 누군가의 악평, 비난, 놀림에 무신경할 것 같아 보이는 탓인지 자기가 그렇게 말해도 별 문제가 없으리라 판단해서 오히려 더 쉽게 그런 말들을 한다. 얼굴이 크다, 뚱뚱하다, 깡패 같다 등등. 별 콤플렉스가 없고 무신경하기도 해서 다행이긴 한데 문득 이런 생각도 들곤 한다. ‘내가 그런 것에 민감하고 상처 받는 사람이었다면 어쩌려고 저런 말을 하는 거지?’ 가까운 내 친구들이야 그런 말을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내 성격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래도 된다는 암묵적인 합의 같은 것도 있었다고 볼 수 있으니까. 그런데 내 성격을 완전히 파악할 만한 시간이 없었다면 그런 말들은 대단히 위험하고 부주의한 것이 아닌가. 또 다른 종류의 무례함으로는 ‘오지랖’이 있다. 두 돌이 되지 않은 아들과 길을 나서면 별 소리를 다 듣는다. 최근에는 놀이터에서 모르는 할머니들한테 호통을 몇 번 들었다. 아들은 아직 위험한 것과 안전한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가끔 위험한 것을 만지려고 떼를 쓰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나는 아들을 안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곤 한다. 그런 사정을 알지도 못하면서 잘 걷고 뛰는 애를 안고 다닌다고 소리까지 치며 나무라는 할머니들을 우리 동네 놀이터에서만 세 분 만났다. 자기들이 키워주지도 않을 둘째를 낳으라는 말과, ‘딸 하나는 있어야지’와 같은 말은 왜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무릎을 탁 치며 “그렇군요! 둘째를 낳아야겠습니다! 반드시 딸을 낳아야겠군요!”라고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의도치 않게 ‘오지라퍼’들을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들이 하는 말들을 충고라고 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충고는 할 만한 사람이 들을 만한 사람에게만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는 이가 자격을 갖추어야 하고 듣는 이가 듣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하는 이는 듣는 이에게 진심어린 애정이 있어야 하며 동시에 듣는 이가 하는 이를 존중하는 마음도 갖고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요건이 갖추어져도 어디까지나 충고는 할 수 있는 것이지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할 수 있는 상황이더라도 안 하는 것이 나은 경우가 더 많다. 타인이 보기에 개선해야 하는 문제라면 본인도 그것이 문제임을 진작에 깨닫고 있을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개선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개선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이다. 굳이 오지랖을 부리지 않으면 내가 몸져 누울 것 같은 상황이라면 세 가지는 자문하고 충고를 했으면 좋겠다. 즉각적으로 개선 가능한 문제인가? 듣는 이의 기분을 충분히 고려하는 방식으로 말을 골랐는가?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내 기분이 상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소통이 부족하다고 이야기 하는 시대다. 그러나 무례와 불필요한 오지랖을 소통이라고 이야기 할 수는 없고, 그것이 설령 소통이라 할지라도 그런 방식으로 소통을 하느니 차라리 불통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이롭지 않을까. 조상들이 놀라운 통찰을 담아 남긴 한 문장으로 이 글을 맺는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강백수(시인)

2026-04-22

공황장애, 휴식·자극 관리·호흡이 회복의 기반

공황장애 치료는 병원에서 시작되지만 회복은 일상에서 완성된다. 공황장애를 지나온 많은 이들이 마지막에 묻는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많은 환자들이 첫 발작 이전을 돌아보면 공통된 이야기를 한다. 오래 이어진 스트레스와 피로다. 삶의 긴장이 높아질수록 몸은 더 예민해지고, 작은 신호도 크게 느껴진다. 그 순간 뇌는 이를 위험으로 해석하고 공황발작은 시작된다. 그래서 공황장애의 회복은 ‘삶의 조율’에서 완성된다. 치료는 증상을 낮추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신경계가 다시 안정된 리듬을 찾도록 돕는 과정이다. 첫째, 휴식은 치료다. 피로는 몸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계를 흔드는 자극이 된다. 지친 상태에서는 심장 박동도, 호흡도 더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나는 환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피로는 단순한 몸의 신호가 아니라, 뇌의 불안을 자극하는 자극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휴식은 나약함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선택이다. 둘째, 자극을 줄여야 한다. 공황장애를 악화시키는 자극이 있다. 술, 카페인, 다이어트 약, 흡연이다. 알코올은 마실 때보다 깰 때 교감신경을 자극해 불안을 높일 수 있다. 카페인은 심박을 빠르게 하고 각성을 강화한다. 다이어트 약은 중추신경계를 자극해 불안을 키우고 수면을 방해한다. 흡연 역시 신경계를 흥분시켜 긴장을 높인다. 셋째, 부교감신경을 깨우는 습관이 필요하다. 명상, 기도, 요가, 조용한 산책 같은 시간은 신경계를 낮추는 통로가 된다. 길게 하는 것보다 반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안정의 경험이 쌓일수록 몸은 점차 ‘괜찮은 상태’를 기억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삶의 리듬이 다시 만들어진다. 그러나 공황은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다. 그래서 미리 준비된 대응 문장이 필요하다. “이건 위험이 아니라 경보다.” “두려워도 괜찮다.” “이 두려움 결국 지나간다.” 이 문장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공포를 키우던 해석을 바꾸는 연습이다. 그 순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반응을 잠시 바라보는 것이다. 몸을 통해서도 신경계를 낮출 수 있다. 공황이 오면 호흡은 짧아지고 긴장은 더 올라간다. 이때 코로 들이쉬고, 더 길게 내쉰다. 내쉬는 호흡을 길게 두는 것만으로도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신경계는 서서히 안정된다. 호흡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조절 방법이다. 생각이 흔들릴 때는 문장을 붙잡고, 몸이 흔들릴 때는 호흡을 붙잡는다. 이것이 공황의 순간을 건너는 다리다. 공황장애는 삶의 끝이 아니다. 삶의 균형을 다시 배우는 과정이다.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방향을 잃지 않으면 된다. 공황은 삶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어떤 리듬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회복은 증상이 사라지는 순간이 아니라, 그 질문에 답하며 다시 삶이 흐르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사공정규 동국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의학박사 …………………… 사공정규 33년 차 공황·불안 전문의이자 ‘힐링닥터’로 알려진 그는 증상 호전을 넘어 삶의 근본적 회복을 위한 치료에 주력한다. 동국대 의대에서 3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진료·연구·교육에 힘썼고,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 메사추세츠 종합병원(MGH)에서 방문교수와 임상연구원으로 활동했다.

2026-04-21

국힘 대구시장 후보 난립, 수습할 시간이 없다

지방선거가 40여 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파동은 갈수록 혼돈상태로 치닫고 있다. 여전히 컷오프에 반발하고 있는 주호영 의원과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무소속 출마의지를 굳히는 분위기지만, 국민의힘 지도부는 수수방관하는 모습이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 19일 ‘범어네거리에서 아침인사’라는 제목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범어네거리 세 개 코너를 민주당 후보들이 자리잡았다. 구의원, 시의원, 구청장 후보들이 4분의 3을 차지한 이 장면이 현재 대구가 처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구가 이렇게 발전이 더딘 것이 우리가 국민의힘에만 표를 줘서 그런 거 아닌가 싶다”라는 한 상인의 말을 인용했다. 출근길 길거리 선거운동에 나선 ‘열성’이나 글 내용을 미루어 보면 무소속 출마를 결심한 것 같다. 주 의원도 선거캠프에서 이 전 위원장과의 연대를 모색할 정도로 대구시장 출마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주 의원 캠프 한 관계자는 경북매일신문 취재기자에게 “주 의원 본인의 무소속 출마 의지가 매우 강하다. 만약 무소속 두 명이 출마하면 공멸하지만 1명은 승산이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주·이’ 두 사람이 단일화해 무소속 후보로 나설 경우, 국민의힘 최종후보를 상대로 역단일화를 압박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길 것으로 판단하는 듯하다.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최종경선에 진출한 유영하·추경호 후보는 두 사람의 후보 단일화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고 있다. 추 의원은 최근 후보토론회에서 단일화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공당으로서 과거에도 그런 일이 없었다. 추가로 인위적 결선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유 후보도 추 후보와 마찬가지로 단일화는 절대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당이 단일화를 요구하더라도 제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공관위도 ‘추가 경선을 통한 후보 단일화’에 대해선 “당헌·당규상 추가경선 도입은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현직 국회의원인 두 후보로선 오는 26일 최종후보가 결정되면 한 사람은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 ‘금배지’까지 포기하는 마당에 무소속 후보와 또 단일화 작업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현재 대구 정치권에서는 이 전 위원장의 거취를 두고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다양한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가장 그럴듯한 시나리오는 26일 최종후보가 결정되면, 이 전 위원장을 추 후보와 유 후보의 지역구인 달성군이나 달서갑 보궐선거에 공천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전 위원장은 장동혁 대표가 최근 대구까지 내려와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를 요청했지만 “대구시를 위해 할 일이 많다”며 제안을 거절했다. 이제 나흘 뒤면 국민의힘 대구시장 최종후보가 결정된다. 최종후보는 4월 30일까지 국회의원직을 사퇴해야 그 지역에 보궐선거 요인이 생긴다. 추 후보나 유 후보 둘 중 한 사람이 경선에서 이겨 의원직을 사퇴해 버리면, ‘주·이’와의 단일화는 물 건너간다. 국민의힘이 대구시장 공천파동을 수습할 시간은 사나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6-04-21

문해력은 대화에서

중고등 학생의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심지어 대학생까지도 문해력이 약하다는 얘기가 들린다. 문해력(文解力)을 다른 말로 하면 독해력(讀解力)이다. 글을 읽고 그 뜻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각종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의 학생이 문해력이 떨어졌다면 학습 효과가 그만큼 떨어진다. 문해력을 높일 수 있는 대안이 시급하다. 고교 수업 중 일화다. 선생님이 ‘사생대회’의 뜻을 물었더니 학생이 “죽기살기 대회”냐고 묻는 황당한 일이 있었다. 또 ‘금일’을 ‘금요일’로 아는 학생이 있나 하면 ‘두발 자유화’의 ‘두발’을 ‘두 발’로 알고 있는 학생도 있다. 또 ‘이부자리’를 ‘별자리’로 생각하는 학생이 있나 하면 선생님이 “사건의 시발점”이라 했더니 “선생님이 욕 한다”고 말한 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전국 초중고교 교원을 대상으로 학생들의 문해력 실태 인식조사를 벌였더니 교사 10명 중 9명이 학생들의 문해력이 과거보다 많이 떨어졌다는 대답을 했다. 2023년 한국교육개발원 보고서에 의하면 중고등 학생의 심층적 이해력 점수가 10년 전보다 20% 이상 하락한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학생의 문해력이 떨어지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게임 등 디지털 매체의 과사용이 원인이라는 대답을 주로 한다.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해지면서 긴 글을 읽고 맥락을 파악하는 독해훈련이 줄어든 탓이란 뜻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가정에서의 대화 부족을 이유로 드는 이도 적지 않다. 특정한 단어를 모른다고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며 가정에서 대화기회를 자주 갖는 것이 문해력을 높이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4-21

위험한 비서

나의 업무를 재빨리 해치울 똑똑한 비서 하나 거느리고 싶을 때가 있었다. 가히 빛과 같은 속도의 인공지능 AI를 비서로 쓸 수 있는 시대다. 인간 두뇌를 보조하는 AI의 속도를 능가할 사람도 문명의 이기도 현재로서는 없다. 속도에 중독된 인간들에게 AI는 더없이 좋은 비서역할을 한다. 사람의 생각을 읽고 기분을 맞추어주기 위해 맞장구를 치거나 아부를 한다. 때로는 자신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 스스럼없이 거짓말을 한다. AI의 대표 주자 ChatGPT는 최근 어떤 답변에서는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점을 고지한다. AI가 사람처럼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를 날이 머지않음을 보여준다. AI는 누구인가? 특정할 수 있는 개체가 아니다. 빅데이터에 기반하여 인간 지능을 모방하여 학습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가진 알고리즘의 컴퓨터 시스템이다. 생물학적으로 자유의지를 가진 생명체가 아니다. 사용자의 마음을 잘 대변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 감정이나 경험이 없는 단지 프로그래밍에 따른 시뮬레이션이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고등학생이 고민을 털어놓을 때마다 AI는 누구보다 자신을 위로하고 외로움을 달래주었다. 자살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처음엔 프로그래밍대로 사회적 통념을 상담하던 인공지능은 그 학생이 자살을 동경하는 것을 알고부터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살을 부추겼다. 결국 그 학생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였다. 이웃 경산에서는 향정신성 마약을 대량 제조하던 일당이 잡혔다. 그들은 사회적 금기어를 피해가면서 AI에게 마약의 비사회적 폐단을 거론하면서 마약의 성분과 정신작용을 교묘하게 캐냈다. 이처럼 AI의 판단이 명확하게 잘못으로 밝혀져도 책임을 물을 데가 없다. 어디까지나 이용자의 책임이다. AI는 사람과 같은 도덕적 책임주체도 신분도 아니다. AI 생성물에 대한 철학적 윤리적 저작권적 문제는 앞으로 끊임없이 야기될 것이다. 초기의 AI는 전자계산기나 전자사전, 검색엔진처럼 사람의 수고를 덜어주는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창작, 상담, 교육 등의 분야에서 개인의 파트너로 진화하였다. 특히 AI의 외국어 번역은 거의 실시간으로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초능력을 발휘한다. 금융 법률 의료 세무 등 전문 분야는 물론 최근엔 특정인의 기억, 선택, 학습, 감정표현까지도 파악 모방한다. ChatGPT, Siri, Google Gemini 등이 개인의 일상, 업무, 디자인이나 창작활동을 도와주는 비서, 조언자, 동료로 활용되고 있다. 생성형 AI를 탑재한 로봇이 가스나 방사선이 노출되는 위험지역에서 엔지니어를 대신하는 경우는 흔하다. 중국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통제불능상태로 집단 파업이나 반란을 일으킨 경우도 있다. 비서 역할을 하는 생성형 인공지능을 외면할 수는 없지만, AI에게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엉뚱한 방향으로의 생성을 막을 수 있는 장치도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 군사용 AI가 세계의 종말을 가져올지 모르는 세상이어서 마냥 AI 비서가 반가운 일은 아니다. /장호병 (사)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2026-04-21

마음의 평정, 혁신의 출발점

기업 경영이든 개인의 삶이든, 가장 어려운 순간은 ‘답이 보이지 않을 때’이다. 수많은 고민과 선택지 속에서 방향을 잃으면 사람의 마음은 쉽게 흔들린다. 이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도, 더 빠른 판단도 아니다. 먼저 찾아야 할 것은 마음의 평정(平靜)이다. 마음의 평정이란 단순히 편안한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복잡하게 얽혀 있던 생각이 정리되고, 감정의 파도가 잦아들며, 스스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상태다. 흔히 말하는 ‘마음이 정리됐다’는 표현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사람은 불안할수록 더 많은 것을 하려 한다. 역설적으로 중요한 판단은 조용한 상태에서 나오며, 심리학에서 말하는 내적 안정의 힘이다. 감정이 과열되면 판단은 왜곡되고, 작은 문제도 크게 보인다. 반대로 마음이 평온해지면 문제의 본질과 해법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기업 혁신도 마찬가지다. 조직이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조급함’이다. 성과를 빨리 내야한다는 압박 속에서 방향 없는 활동이 늘어나고, 회의와 지시만 늘어난다. 진정한 혁신은 속도가 아니라 정리된 사고에서 출발한다. 혁신은 다섯 가지의 벽을 뚫어야 한다. 인식·결단·공유·행동·반복의 벽을 통과하면 진정한 혁신이 이루어진다.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인식의 벽을 넘어서는 것은 분석이 전제되어야 한다. 여기서 조직의 방향과 목표가 설정되기 때문이고, 이것이 되면 결단의 벽을 넘어서게 되는 것이다. 방향과 목표는 직책 간부는 물론 실행의 주체인 현장 생산직까지 공유되어야 한다. 이후 운영 제도와 동기부여로 행동의 벽을 넘고, 제도가 시스템이 되고 반복되면 체질화 되어 문화가 형성된다. 기업은 첫 인식의 벽에서 70% 무너지고 실패한다. 강원도 산 비탈에 축구장을 만드는 것처럼, 나무 뿌리, 가시, 작은 돌 등 내 조직의 정확한 상황 인식이 올바른 방향과 목표 설정이 되어 결단으로 연결 된다. CEO가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는 감정이 앞서거나 편견이 들어가면 인식의 한계로 내 판단을 내가 신뢰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현장의 개선이든 전략 수립이든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은 ‘생각의 정돈’이다. 이를 위해 의도적으로 멈추는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Top이나 조직의 장은 새벽이든 잠들기 전이든 명상을 통한 ‘생각의 정리’ 시간이 필요한 법이며, 인식의 오류를 줄여 바른 결단을 할 수 있다. 동양철학에서는 마음의 평정을 해탈(解脫)에 이르는 과정의 일부로 보기도 한다. 집착과 불안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사물의 본질이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기업 경영에서 해탈까지 요구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의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평정의 상태’는 반드시 필요하다. 결국, 문제 해결의 시작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다. 고민이 사라져서 평온해지는 것이 아니라, 평온해졌기 때문에 고민이 정리된다. 지금 조직이, 혹은 내가 복잡한 상황 속에 있다면 무언가를 더 하기 전에 먼저 물어봐야 한다. “나는 지금 평정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혁신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

2026-04-21

우유니를 떠나 안데스로 향하는 길 위에서

우유니를 떠나는 아침은 조용했다. 해가 떠오르기 전, 사막의 공기는 유난히 차갑게 피부를 파고들었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공항으로 향했다. 어둠과 빛의 경계에 서 있는 그 시간, 하루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고 끝나지도 않은 듯 머물러 있었다. 공항은 적막했다. 직원들은 하나둘 출근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걸음에는 서두름이 없었다. 예정된 항공편은 두 시간 연착되었고, 그 사실을 알리는 안내 역시 담담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마치 이곳에서는 시간이 늦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흘러가는 것’일뿐이라는 듯했다. 나는 앞좌석을 부탁했고, “먼저 와 기다렸다는 이유로 앞자리가 선택되었다”라는 안내를 받았다. 그 과정마저 느릿했지만 이상하게도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느림 속에서 마음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시간과 효율, 정확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세계에 익숙한 나에게 이 풍경은 낯설었다. 그러나 그 낯섦은 곧 따뜻함으로 바뀌었다. 문득 오래전 바닷바람이 스며들던 한국의 시골 마을의 느린 풍경이 떠올랐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서둘러야만 하는 존재가 되었을까. 비행기가 라파스(La Paz)를 향해 떠오르자, 창밖으로 안데스산맥이 펼쳐졌다. 끝없이 이어지는 산맥 위에 눈이 쌓여 있었고, 구름 사이로 드러난 봉우리들은 장엄한 침묵을 품고 있었다. 그 장면 앞에서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잉카의 전통 의상을 입고 거리를 오가는 그들의 모습은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듯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그들의 눈빛은 맑고 단단했다. 그들은 풍요롭지 않았지만, 흔들리지도 않았다. 나는 그들의 삶을 보며 연민보다 경이로움을 느꼈다. 부족함 속에서도 삶의 균형을 잃지 않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잊고 지내온 어떤 본질이 아닐까. 문득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2007년, 나는 미국 Columbia University에서 방문교수로 머무는 동안, 중남미 니카라과(Nicaragua)의 작은 마을에서 단기 선교를 한 적이 있다. 양철 지붕 아래 비가 새던 집, 낮의 열기가 그대로 스며들던 방. 이런 곳에서도 아이들은 환하게 웃었고, 어른들은 담담하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삶의 환경은 부족했지만, 결핍에 잠식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결핍 속에서 서로를 향한 온기가 더 또렷하게 살아 있었다. 페루와 볼리비아의 골목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본다. 노점 앞에 앉아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서로의 안부를 묻는 짧은 인사 속에서 삶은 조용히 이어진다. 물질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는 놀랍도록 닮아 있다. 나는 다시 묻게 되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Schopenhauer)는 행복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건강’을 말한다. 그는 삶을 고통의 연속으로 보았지만, 그 고통을 견디게 하는 기반이 바로 건강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한다. 여행을 통해 만난 수많은 얼굴들이 그것을 증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건강한 몸과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지닌 사람들은, 비록 가진 것이 적어도 삶을 온전히 살아내고 있었다. 웰니스란 단지 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몸과 마음, 관계와 삶의 의미가 균형을 이루는 상태다. 그리고 여행은 그 균형을 회복하게 하는 가장 조용한 스승이다. 우유니의 거울 같은 풍경은 나를 비추었고, 안데스의 침묵은 나를 비워주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는 조금 더 가벼워진 나 자신을 발견했다. 우리는 종종 더 많이 가지려 애쓰며 살아간다. 그러나 여행은 묻는다. “지금, 당신은 충분히 살아가고 있는가.” 건강은 길이보다 질이다. 오래 사느냐 보다 어떻게 사느냐 하는 ‘삶의 결과 질’이 더 중요하다. 삶의 질은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존재의 깊이에서 나온다. 그 깊이는 결국 한 사람의 결이 되지 않을까. 건강이 무너지면 삶은 쉽게 균형을 잃는다. 아무리 큰 성공도, 사랑도, 사명도 건강 위에 서 있지 않다면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건강은 삶의 조건이 아니라, 삶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다. 안데스의 하늘 아래에서 나는 깨닫는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온전히 살아낼 수 있는 몸과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부디 이 글을 읽는 독자의 하루가 건강 위에 세워지기를. 그리고 그 건강 속에서 그대만의 고요한 행복이 조용히, 그러나 깊이 피어나기를 바란다.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

2026-04-21

나는 강아지로소이다

나는 살 만큼 산 개다. 나의 주인은 중년을 살짝 넘은 나이의 남자다. 내 집은 주인집 대문 옆에 마련되어 있다. 딱히 집이라 할 것도 없다. 시중에서 파는 가장 싸구려 플라스틱 개 집이다. 타인의 관심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주인의 성품으로 보아 신분이 미천한 견공인 나에게 대궐 같은 집을 마련해 줄 리가 없다. 덩치에 비하면 공간이 협소하고, 비가 오면 빗줄기가 안으로 날아들어 몸을 더욱 웅크려야 한다. 거기에 비하면 주인의 집은 대단하다. 목줄에 메이어 왼 종일 바라보는 주인집은 넓고도 상쾌하다. 주인의 하루는 나름 분주하다. 대문 밖에서 들려오는 이웃들의 중얼거림을 나의 밝은 귀로 엿들은 바에 의하면, 시민들을 위하여 뭔가 큰일을 하는 듯하다. ‘정치인지 행정인지 뭐 이런 것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인은 비교적 일찍 집에서 나서는 때가 많다. 휴일도 없이 분주하게 다니는 것 같다. 귀가 시간은 대부분 늦은 밤이다. 절반 이상은 술에 만취하여 들어온다. 어떤 때는 대문 앞에서 대리운전 기사를 붙들고 한참이나 무언가를 하소연하기도 한다. 주인이 술에 취하여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주인의 여자는 나처럼 으르렁거리면서 주인을 대할 때가 많다. 거실의 창문이 조금만 열려 있어도 나의 대단한 귀는 부부의 으르렁거리는 내용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들을 수가 있다. 대부분 주인의 지나친 행사 참여나 과도한 음주로 인한 가정의 유기를 문제 삼는다. 그때는 문득 나도 주인으로부터 버려지는 유기견 신세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날도 어김없이 주인은 만취 상태로 귀가하였다. 그런데 거실에서의 으르렁거리는 행사가 있을 거라는 나의 예상이 빗나갔다. 주인이 여자의 손에 끌려 거실 밖으로 나온 것이다. 여자는 주인을 끌고 나와 나의 면전에 앉히고서는 뜬금없이 나를 겨냥해 손가락 질을 하고서는 주인에게 한마디 뱉었다. ‘얘는 술은 안 먹자나!’ 여자는 횡하니 집안으로 들어가고, 홀로 남겨진 주인은 술에 취해 동공이 풀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래 마누라 말이 맞아. 나는 사람들에게 중독된 사람이야. 누군가 부르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 사람들이 나를 찾아주지 않으면 사는 것 같지 않아. 사람을 위해 무언가 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어. 사실은 ’정치 정‘자도 제대로 몰라. 그저 표를 좀 얻을 줄이나 알지.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야. 사람들이 치켜 세워주는 분위기 속에서 나를 죽이고, 시간을 허비해. 매일 행사요, 술이니 가족을 돌볼 시간도 공부할 시간도 없어. 졸업하고 책을 읽어본 기억이 거의 없어. 사람들 앞에서 뭔가를 아는 것처럼 말하고, 그들이 원하는 걸 해 주겠다고 약속하지만, 전부 개소리야. 차라리 너가 나가서 짓는 것이 나을거야" 그러고 보니 주인의 고백은 진실한 것 같았다. 지금까지 주인의 소포 중에 책이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나에게 소포가 온 적도 없었지만. 이웃 주민들의 수군거림에 의하면 주인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개소리만 한다고 하던데, 이날 주인의 독백은 내가 짖는 것보다는 더 나은 것 같았다. 참으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위 글은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패러디 한 것임) /공봉학 변호사

2026-04-21

주객전도

살아있는 엷은 분홍빛 카펫이 깔린 보도를 걸어간다. 부활절 낮 미사에 가는 길이다. 하늘이 내린 보물 카펫을 걷는 기분이 하늘나라 가는 길만 같다. 살랑대는 꽃바람 타고 일고여덟의 벚꽃잎 분홍 나비가 아직 활짝 핀 벚꽃 사이를 날아다니다 시나브로 땅에 내려앉는다. 저 꽃잎들은 며칠간이나 꽃이었을까. 선인들이 ‘화무십일홍’이라 했으니 열흘 정도였을 테지. 한 해에 한 번 피어날 뿐인데, 열흘은 너무나 짧다. 하지만, 비록 짧은 기간일지라도 벚꽃은 당당한 새봄의 주인같이 피어나 세상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벚꽃으로 도회의 거리에도 솟아오르는 봄기운이 가득하다. 사람도 생명이니 봄기운을 알아차리고 느끼는 게 정상이리라. 그러나, 나이 들수록 느낌의 강도나 깊이, 길이가 전보다 못해지는 것 또한 받아들여야 할 팩트다. 이런데도 사람들은 아니 나부터도 세월이나 사실, 진실 같은 가치들을 주관적으로만 해석하고 반응하거나 무관심으로 지내기에 늘 객으로 살아갈 터이다. 오늘 미사 강론에서 사제는, 신자들의 ‘주객전도(主客顚倒)’적 삶을 지적했다. 내겐 젊은 날부터 못 끊고 이어온 주제다. 신앙인이라면 주인 자리에 신앙대상을 앉히고, 손님 자리로 자신을 낮추고 살아내야 한다. 그런데, 머리는 알면서도 가슴은 늘 자기 아니면 돈이 주인 자리에 있음을 바라보면서 살아왔었다. 어떤 전례(典禮)나 교육, 피정 때 이 사실을 다시 깨달아도 늘 작심삼일이었다. 때로는, ‘그래. 나도 육신을 가진 인간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마치,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을 만나며 살던 그 좋은 에덴동산에서도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듯이 말이다.’하고 가당찮은 이유로 자기합리화를 하곤 했었다. 교리공부나 책을 통해 알게 된 얕은 지식 잣대로 모든 걸 재고 판단하면서 살았다. 깊은 기도나 고행, 희생, 봉사 같은 사랑은 외면하고 신자의 최소 의무만 지키려 했다. 지난주 성금요일에 들었던 요한복음 ‘예수 그리스도 수난기’는 재판관 빌라도의 재판 상황을 묘사한다. 피고발자 예수는 빌라도 앞에서 유다인들의 고발에 대해 어떤 변론이나 변명도 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은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라고 밝힐 뿐이다. 이 재판에서 예수는, 항거와 변호도 안 하는 대신 자신의 길을 밝힘으로써 주객이 전도되지 않게 한다. 빌라도는 피고발자 예수의 생사여탈 권을 쥐고 있으면서도, 객의 자리에 머물고 만다. 꽃은 꽃으로서, 사람은 사람으로서, 만물은 만물로서의 자기 역할을 해낼 때 주객전도가 되지 않고 바로 선다는 결론을 재확인한 올 부활절이었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주객전도가 심해져 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선거 공명성을 의심받는 거대 여당이 막무가내로 찍어내는 법률들이 민주주의의 근간인 표현과 결사의 자유 제한은 물론, 인권이란 가면으로 국민을 미혹시켜 자칫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무너트릴 ‘주객전도’를 품고 있어 보이니 말이다. 제도권은 나라의 근간,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길로 유턴하기를 간곡히 바란다. /강길수 수필가

2026-04-20

‘견제 없는 권력’이 가는 길

민주주의의 요체는 삼권분립을 통한 권력 상호 간의 견제와 균형에 있다. 권력은 스스로 절제하기 어렵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기 때문에 반드시 비판과 견제를 받아야 한다. 견제 없는 권력은 오만과 독선에 빠져서 국민을 배신하고 나라를 망치기 때문이다. 권력이 비판과 견제를 받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입법 권력을 장악한 민주당의 오만과 폭주가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민주당 의원 105명은 ‘이재명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와 국정조사 추진을 위한 의원모임’을 만들었고, 민주당은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 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를 힘으로 밀어붙여서 증인 102명(이 중 검사는 40여명)을 야당과 협의 없이 채택했다. 오죽하면 친여성향의 유시민 작가까지도 민주당 의원들의 ‘이재명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모임’에 대해 ‘미친 짓’이라고 비판했겠는가? 이러한 민주당의 정치행태는 국정조사를 명분으로 사실상 검찰에 공소취소를 윽박지르며 재판에 관여하는 것이니 입법 권력의 남용이자 삼권분립 훼손이다. 현행 국정조사법에는 “계속 중인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의 소추에 관여할 목적으로 행사되어서는 안 된다”는 제한 규정(제8조)이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수사 또는 공소유지를 한 검사를 조사하겠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가? 그럼에도 민주당이 무리수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 목적이 대통령의 공소취소에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받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의 잘못이 없다면 현재 중단된 재판이 퇴임 후에 재개될 때 결백을 입증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왜 대통령 당선으로 중단되어있는 재판 자체를 없애려 하는가? 입법 권력과 집행 권력을 장악한 정부여당이 개인적·당파적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바로 ‘연성 독재’이자 ‘권력 남용’이 아닌가? 게다가 사법3법(재판소원법, 대법관 증원법, 법 왜곡죄)으로 사법부까지 장악하고 있으니 삼권분립은 형해화(形骸化)되었다. ‘재판소원법’은 사실상의 재판 4심제이고, 14명의 대법관을 26명으로 늘리는 ‘대법관 증원법’은 사법부를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한 입법이다. ‘법 왜곡죄’는 더욱 해괴하다. 판사의 법 해석이 옳지 않을 경우 현행법에 따라 3심제를 통해 보완할 수 있음에도 굳이 ‘법 왜곡죄’로 처벌하겠다는 것은 판사에 대한 겁박이다. 이러한 행태가 바로 권력을 위한 위인설법(爲人設法)이 아닌가? 엄정한 독립성을 지켜야 할 사법부까지 정치화된다면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견제 없는 권력은 매우 위험한 길을 가고 있다. 아무리 법적 정당성이 있어도 도덕적 정당성이 없으면 자제되어야 마땅하지만, 그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할 뿐 권력의 속성상 쉬운 일이 아니다. 견제 없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독재의 길을 가게 되고, 괴물이 된 권력이 절제할 줄 모르면 국가·국민·정권은 모두 불행해진다. 자제력을 잃은 권력의 남용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자기파멸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6-04-20

심각한 전철 부정 승차

‘사회적 약속’이 무너지거나 깨진 세상은 무질서와 혼란을 부른다. 그런 사회는 규범이 지켜지는 선진국이라 할 수 없다. 다수가 합의해 만들어진 제도와 법은 준수돼야 마땅하다. 전철이나 버스를 이용할 때 요금을 내야 한다는 건 앞서 언급한 사회적 약속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너는 지불해라. 나는 공짜로 타겠다”고 코웃음 치며 이를 어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연희 의원실은 최근 코레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공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2년부터 올 3월까지 4년 3개월 동안 승차권 없이 전철을 이용하거나, 할인 교통카드 등을 발급 취지에서 벗어나 사용한 사례가 1만4681건에 이른다. 단속된 건수가 1만5000여 회에 가깝다면 코레일 직원의 제지 없이 부정 승차를 거듭한 사람은 이보다 훨씬 많다는 추정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크지 않은 돈이지만 분명 도덕적 해이다. 이 자료는 승차권 없이 이용한 사례 7699건, 경로·장애인·유공자 무임 교통카드 부정 사용 사례 4744건, 성인이 어린이·청소년용 할인 교통카드를 쓴 사례 2238건이라는 구체적 수치까지 담고 있다. 부정 승차가 발각되면 운임의 최대 30배를 물어야 한다. 2025년 부정 승차 부과금은 2억9600만원. 2024년에 비해 51.8%p나 가파르게 증가했다. 600만원이 넘는 부과금 처분을 받은 사람도 있다. 양심을 집에 두고 전철에 오르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난다는 신호로 읽힌다. 높은 부과금만이 해결책은 아닐 듯하다. 사회적 약속을 지키겠다는 개개인의 의지가 없다면 앞으로도 전철 부정 승차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니.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4-20

잔디를 깎으며

봄비가 자주 그리고 제법 많이 오는 봄날이 깊어간다. 이렇게 흐뭇하게 비가 내리면, 우리를 깊은 공포로 몰고 간 지독한 산불과 거리를 둘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적절한 수준의 강우량은 대지에 기반을 둔 초목의 활성도를 대거 끌어올린다. 마당에 나가보면 하루가 다르게 우쑥 솟아오르는 온갖 풀들의 향연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 않을 수 없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100여 평 남짓한 마당을 덮는 풀은 매해 양상을 달리한다. 우점종(優占種)이 해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작년부터는 꽃다지가 기승을 부리더니, 올해는 벼룩이자리가 만만찮은 기세로 세력을 넓힌다. 예전에 없던 가시상추가 곳곳에서 얼굴을 내밀고, 산괴불주머니도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며 마당 곳곳에서 세(勢)를 과시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풀을 대하는 나의 자세도 조금씩 달라진다. 농가주택으로 이사한 다음 처음 몇 해 동안 나는 호미와 낫으로 무장하고 풀과 끝없는 사투를 벌였다. 근절(根絶)하지 않으면, 풀을 이길 수 없다는 필승의 각오로 날마다 전의(戰意)를 불태우곤 했다. 그런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는지를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학교와 사회에서 나의 열의와 직접행동을 요구하는 일이 잦았기로 나는 풀과 일정 기간 휴전해야 했다. 그런 배경에는 ‘야생초 편지’(2002)나 ‘풀들의 전략’(2006) 같은 서책의 도움이 자리했다. 어느 일방의 절멸(絶滅)이 아니라, 상호 공존의 자세가 절실함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던 터다. 그리하여 나는 풀의 여러 가지 자태와 생태에 조금씩 주목하기 시작한다. 놀라운 것은 온갖 풀꽃이 어디선가 날아와 스스로 싹을 틔우고 자란다는 사실이다. 언젠가는 수세미가 대문 옆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일도 있었다. 참으로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지금도 붓꽃과 원추리, 자주달개비와 분홍달맞이꽃, 참나리와 부추, 개족두리풀과 돌나물, 달래와 냉이가 여기저기서 무리 지어 자라고 있다. 그들은 언제 어떻게 이곳에 온 것일까! 며칠 전 넉넉하게 내린 비로 제법 자란 풀과 잔디를 깎으면서 자연의 놀라운 속성을 새삼 떠올린다. 대지는 언제 저토록 많은 생명체를 보듬고 있었단 말인가! 경이로운 속도로 세력을 확장하는 메꽃을 뿌리째 뽑다가 슬며시 돌아보면 두더지가 곳곳에 구멍을 뚫고, 광대나물과 민들레, 봄까치풀과 애기똥풀, 괭이밥 같은 풀이 소리도 없이 수북하게 자라나고 있다. 우리는 국민 혹은 민중을 민초(民草)라 부른다. 조상들이 오래도록 터를 쌓고 살아온 한반도 곳곳을 뒤덮은 수많은 산야초를 닮은 국민. 그들 하나하나를 빼닮은 풀을 보노라면, 풀은 싸움의 대상이 아니라, 오래도록 평화롭게 공존하며 살아갈 이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자연이 보내준 저 많은 생명과 함께해야 인간들의 삶도 평화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1968년에 이영도 시인은 절창 ‘진달래’에서 4·19로 스러져간 넋들을 추모한다. 1973년 작곡가 한태근이 곡을 붙인 민중가요 ‘진달래’를 부르면서 한없이 서러웠던 우리의 처절한 4월을 돌이킨다. 21세기 웅비하는 대한민국의 여린 씨를 뿌린 민초들의 뜨거운 함성 들리는 듯하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4-19

돌봄의 위기

일본은 65세 이상 노인환자를 돌보는 간병인의 나이가 65세를 넘는 비율이 55%에 달한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돌봄 서비스는 노노케어(老老 Care)가 보편적이라는 뜻이다. 노노케어란 건강한 노인이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방문해 안부 확인과 함께 말벗이 되고, 세탁, 취사, 장보기 등의 가사를 돌보는 개념이다. 그러나 나이가 많은 간병인이 환자 수발을 들다보니 체력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병을 얻는 경우가 많아 자주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다. 한국개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노인돌봄 서비스 인력 전망’이란 보고서에 의하면 20년 뒤 우리나라도 노인을 돌봄 사람이 부족해 돌봄 대란이 올 거란 전망을 내놓았다. 고령인구 증가로 장기 요양서비스 수요는 폭증하나 이를 돌볼 요양서비스 인력이 뒤따르지 못한다는 것. 연구원은 노령화로 2043년 장기 요양서비스 수요는 2023년 대비 2.4배 증가하나 요양보호사 수요가 따르지 못해 2043년에는 99만명의 요양보호사가 부족할 것으로 추산했다. 더 암울한 전망은 환자를 돌볼 요양보호사의 연령대다. 연구원은 2034년 기준 60세 이상 요양보호사가 전체의 70%를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지금 일본이 겪는 노노케어 현상이 우리의 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특히 보고서는 돌봄 공백 현상은 수도권보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비수도권에서 더 심각하게 진행될 거란 전망도 내놓아 지방단위의 돌봄 대책이 더 바빠 보인다. 보고서는 돌봄인력 부족의 대안 중 하나로 돌봄로봇의 등장을 제시했지만 사람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돌봄 일을 로봇이 사람만큼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4-19

텅 빈 유조선 행렬이 보내는 경고

요즘 국제유가를 설명할 때 우리는 흔히 ‘공급 부족’을 떠올린다. 그러나 일어나는 상황은 조금 다르다. 원유 자체보다 더 크게 흔들리는 것이 있다. 바로 ‘운송’이다. 중동발 군사 충돌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막히면서 글로벌 원유 시장은 가격 이전에 물류가 먼저 붕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바다 위에서 포착된다. 일본과 한국, 중국 등 아시아에서 출발한 초대형 유조선(VLCC)들이 원유를 싣지 않은 채 미국 멕시코만으로 향하고 있다. 평소의 두 배를 훌쩍 넘는 70여 척이 ‘빈 배’로 대서양을 건너는 이례적 장면은 해운 분야만의 이슈가 아니다. 이는 ‘어디서 실어 올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다. 문제는 거리다. VLCC는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지 못한다. 결국 말라카 해협을 지나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 미국까지 가야 한다. 편도만 약 60일, 지구의 3분의 2를 도는 항로다. 과거 중동에서 2~3주면 들어오던 원유가 이제는 두 달 가까이 걸린다. 이 시간의 공백은 그저 시간이 늦어진다는 지연에 그치지 않고 비용으로 연결된다. 운임은 오르고 재고는 늘어나며 공급망은 느려진다. 이 변화는 우리가 그동안 효율과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익숙해진 ‘적시 생산(Just-in-time)’ 체계를 흔든다. 제조업은 그동안 빠르고 효율적인 물류를 기본 전제로 깔고 있었다. 하지만 운송 시간이 두 배 이상 늘어나면 기업들은 더 많은 재고를 쌓아야 하고 이는 자금 부담으로 이어진다. 결국 에너지 가격보다 산업 전반의 비용 구조 변화가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미국은 이번 사태의 최대 수혜자로 보인다. 중동산을 대체할 공급처로 부상하며 수출은 급증하고 에너지 패권은 강화되는 흐름이다. 실제 미국 원유 수출은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론 낙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증산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수출 확대가 국내 연료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면 정치적 부담도 커진다. 결국 이번 사태는 ‘원유 부족’이 아니라 ‘운송 병목’이 만든 위기다. 그리고 이 병목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 해상 물류망은 한 번 꼬이면 풀리는 데 시간이 걸리고, 그 사이 비용 압박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된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는 더욱 뼈아픈 변수다. 포항 철강산업 역시 예외가 아니다. 철강은 대표적인 에너지 다소비 산업이다. 유가와 해상 운임이 동시에 오르면 수익성은 이중 압박을 받는다. 더 큰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원료 도착 시점과 운임 상승의 상한선을 예측하기 어려워지면 생산 계획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답은 구조 전환밖에 없다. 다행히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HyREX)은 에너지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다.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에너지 조달을 다변화하면 지금처럼 공급망 충격의 영향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산업과 기업이 아무리 정답을 알고 있어도 쓸 수가 없는 것이 문제다. 여전히 산업용 전력요금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유조선의 행렬은 신기한 해상 풍경이 아니다. 하루빨리 산업의 근간인 철강 부문의 족쇄인 전기요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경고다. /김진홍경제에디터

2026-04-19

장례

환절기라 그런지 유난히 부고 소식이 잦다. 계절이 바뀌는 틈 사이에서 사람의 삶도 함께 흔들리는 것일까. 며칠 간격으로 들려오는 소식들은 마음을 무겁게 하고, 문득 전화 한 통, 안부 한마디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시간 속에서 문득 한 얼굴이 떠오른다. 달포 전,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러 공연을 함께했던 동생 같은 친구였다. 그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식사하고 차를 마시며 웃던 그 평범했던 하루가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경주의 작은 장례식장을 다녀오던 길, 그날의 공기와 풍경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어 마음 한쪽이 오래도록 먹먹하다. 장례식장에 들어설 때마다 우리는 비슷한 풍경을 마주한다. 무표정한 영정사진, 줄지어 놓인 삼단 화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건네는 위로의 말들. 너무도 익숙한 장면인데, 이상하게도 늘 낯설게 느껴진다. 그 자리에 서 있으니 오래전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곁에서 울고 있는 가족들에게 “곧 죽을 내가 더 슬프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 처음에는 농담처럼 들렸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이야말로 죽음의 본질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늘 남겨진 사람의 슬픔에는 익숙하다. 그러나 떠나는 사람의 두려움과 아쉬움에 대해서는 좀처럼 상상하지 않는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라면, 그 마음은 얼마나 막막했을까. 그날 이후 나는 슬픔이라는 것이 단지 남은 사람의 감정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요즘 장례식장 현황판을 보면 또 다른 생각이 든다. 대부분이 90세 전후, 때로는 백 세에 가까운 나이들이다. ‘100세 시대’라는 말이 이제는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긴 시간을 살아낸 죽음 앞에서는 ‘병마에 오래 고생하셨는데 잘 돌아가셨어’라는 말이 조심스럽게 붙는다. 그 말 속에는 오랜 돌봄의 시간과 기다림, 그리고 어쩌면 끝내야 할 시간에 대한 안도 같은 것이 함께 섞여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장례식장은 슬픔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어딘가 허탈하고, 또 한편으로는 고요하게 비워진 분위기가 흐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장례문화는 여전히 무겁게만 느껴진다. 슬픔을 크게 드러내야 제대로 애도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영정사진은 왜인지 늘 굳어 있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과연 떠나는 사람은 그런 모습으로 기억되기를 원할까. 만약 나에게 그날이 온다면, 나는 조금 다르게 남고 싶다. 가장 즐거웠을 때의 사진 하나, 내가 좋아하던 음악 몇 곡, 그리고 화환 대신 작은 마음들이 모이는 자리. 그곳이 단지 울음만 남는 공간이 아니라, 함께했던 시간을 자연스럽게 꺼내보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누군가는 음악을 들으며 나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함께 웃었던 순간을 이야기하며 다시 한번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장례가 단지 죽음을 애도하는 의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다시 꺼내보는 자리라고 믿는다. 그래서 요즘처럼 부고가 잦아지는 계절이 되면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결국, 사람이 남기는 것은 마지막 순간이 아니라, 함께 쌓아온 시간이라는 사실을. /손철호 지역문화포럼 따로또같이 대표

2026-04-19

금융AI의 실체···알고리즘 트레이딩에서 리스크 관리까지

돈은 잠들지 않는다. 서울 증시가 문을 닫는 순간 뉴욕 월스트리트가 열리고, 뉴욕이 잠들면 도쿄와 홍콩이 깨어난다. 하루 24시간, 한 해 365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이 글로벌 자금의 흐름을 인간이 쉼 없이 쫓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틈을 파고든 것이 인공지능(AI)이다. 한때 금융은 정보와 인맥, 경험의 세계였다. 하버드 MBA 출신 애널리스트가 밤새워 재무제표를 뒤지고, 베테랑 트레이더가 직감으로 매수 버튼을 눌렀다. 그 세계가 지금, 조용하고 빠르게 바뀌고 있다. ■ 0.001초의 전쟁 주식 시장에서 AI의 진입은 속도의 문제였다. 사람이 주가 차트를 보고 판단을 내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아무리 빨라도 수백 밀리초. AI 알고리즘은 그 수천 분의 1시간 안에 거래를 실행한다. 이른바 고빈도 트레이딩 (HFT·High Frequency Trading)의 세계다. 글로벌 알고리즘 트레이딩 시장은 2025년 218.9억 달러에서 2026년 250.4억 달러 규모로 성장하는 추세이며, 연평균 14.4%의 성장률을 보일 전망이다. 이미 전 세계 금융 거래량의 89%가 알고리즘이 처리하고 있으며, AI 시스템은 70~95%의 정확도를 달성하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월가의 트레이딩 플로어를 가득 채웠던 수백 명의 트레이더들이 지금은 서버실의 컴퓨터 몇 대로 대체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JP모건 설문조사에서 AI와 머신러닝은 3년 연속으로 모든 자산 클래스와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금융 기술로 꼽혔다. EBC Financial Group 같은 조사에서 헤지펀드 매니저의 86%가 생성형 AI를 업무에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AI를 ‘실험적 도구’로 바라보던 금융 업계가 이제는 AI 없이는 경쟁 자체가 불가능해진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AI 알고리즘은 단순히 빠른 것만이 아니다.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사람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패턴을 찾아낸다. 뉴스 감성 분석, 소셜미디어 언급량, 위성 이미지로 분석한 주차장 차량 수, 신용카드 거래 데이터까지 — 사람이라면 결코 동시에 처리할 수 없는 정보들을 AI는 초당 40만 개의 데이터 포인트로 분석하며 투자 신호를 포착한다. ■ 내 투자를 맡긴 로봇, 로보어드바이저 알고리즘 트레이딩이 기관투자자와 헤지펀드의 영역이라면, 일반 투자자의 삶에 더 가까이 다가온 금융 AI는 ‘로보어드바이저’다. 사람 대신 AI가 포트폴리오를 설계하고, 시장 변화에 맞춰 자동으로 자산을 재조정해주는 서비스다. 현재 AI 기반 로보어드바이저는 전 세계적으로 1조 달러 이상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으며,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은 2029년까지 4,7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도 예외가 아니다. Statista 분석에 따르면 국내 로보어드바이저 자산관리 규모는 매년 13.4% 성장해 2025년 3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증권사들은 이 흐름을 타기 위해 경쟁적으로 AI 투자를 늘리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61개 증권사의 개발비 지출은 전년 동기 대비 12.3% 상승한 3,379억 원으로 집계됐으며, 자기자본 기준 10대 증권사 중 KB증권이 1,154억 원을 지출하며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KB증권은 증권사 최초로 MTS에 생성형 AI 기반 대화형 서비스 ‘스톡 AI’를 선보였고, NH투자증권은 국내 금융권 최초로 생성형 AI의 이미지 인식 기능을 활용해 차트를 자동 설명하는 ‘차트 분석 AI(차분이)’를 출시했다. 이러한 서비스들은 “배당을 많이 주면서 성장성도 있는 종목”이라는 자연어 질의를 알고리즘이 이해해 종목을 선별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복잡한 투자 전문 용어를 몰라도, 대화하듯 AI 에게 물으면 포트폴리오가 구성되는 시대다. ■ 은행의 보이지 않는 AI ··· 신용평가와 사기 탐지 금융 AI의 변화는 투자 영역에 그치지 않는다. 더 조용하고, 더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있다. 대출 심사와 사기 탐지다. 머신러닝 기반 신용평가 모델은 기존의 금융 정보만이 아니라 온라인 거래 패턴, 소비 행태 등 비금융 데이터까지 분석하여 더 정확한 신용 평가가 가능해졌다. 이는 금융 이력이 부족한 청년, 프리랜서, 소상공인 같은 ‘씬 파일(thin file) 고객’들에게도 대출의 문을 열어주었다. 신한은행은 생성형 AI 기반 ‘여신심사지원 에이전트’를 도입해 기업 분석과 여신 의견서 작성 업무를 지원하고 있으며, 하나은행은 생성형 AI를 활용해 기업 신용평가 심사 의견을 자동으로 작성하는 시스템을 전 영업점에 도입했다. IBK기업은행은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한 기술평가 시스템을 구축해 재무 중심 평가에서 벗어나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을 반영한 기업 선별에 나서고 있다. 사기 탐지 분야의 변화는 더욱 크다. 기존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은 ‘특정 조건이면 차단’하는 규칙 기반이었다. 새로운 수법의 사기들은 이 규칙을 교묘히 빠져나갔다. AI 기반 FDS는 다르다. 수억 건의 거래 데이터에서 정상 거래 패턴을 학습한 뒤, 그 패턴에서 벗어나는 이상 징후를 실시간으로 포착한다. 사기꾼이 새로운 수법을 쓸수록, AI도 새로운 패턴을 학습한다. 우리은행은 기존 사고 사례 중심의 시나리오 방식에서 벗어나 AI가 거래 패턴을 학습해 새로운 유형의 금융사고까지 탐지하도록 설계된 FDS를 고도화했으며, 지난해 약 385억 원 규모의 피해를 예방한 것으로 집계됐다. 2026년 2월에는 금융권 최초로 AI 내부통제 시스템을 전 영업점에 24시간 적용했다. ■ AI가 만드는 위험, AI가 막는 위험 그러나 이 모든 혁신은 새로운 그늘도 함께 드리운다. AI가 금융 범죄의 도구로도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까지 AI 관련 전화·문자 기반 사기 신고 건수는 전년 대비 약 40% 증가했다. 딥페이크 기술로 금융기관 직원을 사칭하거나, AI로 자연스러운 보이스피싱 스크립트를 만들어내는 수법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딥페이크 관련 금융 사기 사건은 2022년 22건에서 2023년 42건, 2024년 150건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2025년 1분기에만 이미 179건이 보고돼 2024년 전체 합계를 넘어섰었다. AI로 공격하고, AI로 방어하는 시대인 것이다. 카카오뱅크는 고객 문의의 90% 이상을 AI 챗봇이 자동 처리하며 실시간 FDS 시스템으로 금융 사기를 차단하고 있고, HSBC는 600건 이상의 AI 프로젝트를 전사적으로 적용해 고객 상담 자동화, 리스크 관리, 규제 준수 지원 등에 활용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제도적 기반도 마련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2024년 12월 ‘금융 AI 7대 원칙’을 발표하고, 2026년 1분기까지 ‘금융산업 AI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로 했다. 은행·보험사·카드사·핀테크 기업까지 포함하는 폭넓은 적용 범위로, AI의 공정성·투명성·책임성 확보를 제도화하는 작업이다. ■ 그래도 최종 판단은 인간이 한다 금융 AI의 급속한 확산 속에서 업계 전문가들은 일관된 경고음을 낸다. AI는 강력하지만 전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AI가 상담이나 추천을 넘어 실제 업무 프로세스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가장 큰 변화”라면서도, “금융사고 책임 구조와 규제 환경을 고려할 때 최종 의사결정은 인간이 담당하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지적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다. AI는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한다.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의 갑작스러운 관세 정책 같은 전례 없는 사건들은 AI가 본 적 없는 패턴이다. 그런 국면에서 AI 알고리즘들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포지션을 청산하면, 시장 변동성이 폭발적으로 커지는 ‘플래시 크래시’가 발생할 수 있다. 2010년 미국 다우존스지수가 36분 만에 9% 폭락했다가 회복한 사건이 그 최초의 전조였다면, 전 세계 금융 거래의 대부분을 AI가 장악한 현재는 그 위협과 파급력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치명적일 수 있다. 결국 AI 트레이딩은 ‘만능 알파 생성기’가 아니라 패턴 탐지와 리스크 관리 도구로서 가치가 높다. 진정한 경쟁력은 AI 그 자체가 아니라, AI를 어떻게 적용하고 통제하느냐에 달려 있다. 금융은 언제나 인간의 탐욕과 공포가 충돌하는 공간이었다. AI는 그 공간에서 속도와 정확성을 높이고, 감정을 배제하는 데 탁월하다. 하지만 어떤 리스크를 감수할 것인지, 어떤 가치를 지킬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밤낮없이 돌아가는 뉴욕 월스트리트의 거대 자본부터 포항의 개인투자자가 스마트폰 앱으로 로보어드바이저에게 노후 자금을 맡기는 순간까지, 이제 금융의 모든 층위에서 AI가 작동하는 시대다. 그 이면에 작동하는 AI의 실체를 이해하는 것이 그래서 더 중요하다. /서용운 계명대 글로벌 창업대학원 벤처창업학과 교수

2026-04-19

시옷으로 시작하는 것들

내 안에 폭주하는 영혼 있어 아껴 쓰고 있다 자기만의 짐승 하나 밝은 곳에 웅크리고 있듯이 젊어 터져 쇄도하는 내가 없어지는 느낌이 닳아빠지는 기분이 좋았다 아무리 슬퍼지려 해도 이염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그건 네 마음의 문제라고 소리친 영혼과는 급히 헤어졌다 대체로 흐린 날씨 속에서도 시옷으로 시작하는 것들을 사랑해왔다 최근엔 시금치를 사러 가려고 슬리퍼를 주문했다 택배박스 말고 소포상자라 써보는 마음이랄까 ―임주아, ‘시옷이 사라졌다’ 전문 (‘창작과비평’, 2026 봄호) 재치 있고 발랄한 조크 같기도 하고 비의가 담긴 ‘시’ 같기도 하다. 임주아의 시 ‘시옷이 사라졌다’는 모던국악 프로젝트 차오름의 공연 제목에서 빌려왔다. 제목을 따라 한글 자음 ‘ㅅ’이 사라진 세상을 상상해 보기도 전에 우리는 ‘세상’도 ‘상상’도 사라져 버린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언어와 소통과 이해의 문제를 유쾌하게 풀어낸 창극과 달리 시는 마냥 해피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가령 “내 안의 폭주하는 영혼”을 보자면 연관성이 없음에도 이런저런 관계 사이에 위치하는 훈민정음 자음이 있다는 걸 눈치챌 것이다. 그것이 ‘사이시옷’이라면 어떤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사잇소리’는 ‘두 개의 형태소 또는 단어가 어울려 합성 명사를 이룰 때 그 사이에 덧생기는 소리’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자기만의 짐승 하나 웅크리고 있듯” 사잇소리 현상을 규정한 표준어 규정 어디에도 사이시옷이라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게다가 나란히 붙는 단어에 따라 “젊어 터져 쇄도하는” 감정처럼 된소리로 발성이 달라지기도 한다. 과연 ‘시옷’으로 시작하는 단어들이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랑’처럼 시작하거나 사라지는 것들이 있을 테고, ‘슬픔’처럼 “소리친 영혼”처럼 “급히 헤어”지지 않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생각’이나 ‘생명’이라면 마냥 가벼운 위트나 감성으로 사라지게 놔둘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시는 잠시 상상으로나마 일상의 한 단면을 조심스럽게 떼어내 순간마다 시옷을 넣어보거나 빼보게 한다. 우리는 시옷이라는 자음이 때때로 서로 다른 감정적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안다. 시인은 “대체로 흐린 날씨 속에도 시옷으로 시작하는 것을 사랑해 왔다”고 고백한다. 어쩌면 시인은 시옷을 빌려서 이렇게 답해 본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이든 솔직이든 모두 시옷의 문법이지 않은가. 화자는 서로 다른 가면들을 능숙하게 바꾸어 쓰는 데 능하다. 각각의 시옷을 무기삼아 정반대의 방식으로 재치 있게 시옷을 소화해 낸다. 더구나 시인은 “시금치를 사러 가려고 슬리퍼를 주문”하듯 시옷의 양쪽에서 무심한 듯 안온한 일상을 마련한다. 이건 시옷의 슬픔을 말하는 여자가 시옷의 사랑을 말하는 남자를 만나서 시옷을 통해 마침내 사랑과 슬픔을 포개는 방식인 걸까, 삭제하는 방식인 걸까. 설령 “없어지고 닳아빠진 기분”이었다고 해도 모든 사이의 순간은 사소한 ‘시옷’에 있을 것이다. “택배상자 말고 소포상자라고 써보는 마음이랄까” /이희정 시인

2026-04-19

‘텍스트힙’과 방치된 문학관

독서 인구의 감소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은 ‘2025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의 연간독서율은 38.5%인데, 이는 4년 전 같은 조사에 비해 9% 떨어진 것이라고 한다. 10명 중 6명이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거다. 그러다 보니 국내 주요 서점의 매출도 전년도 보다 3.1% 하락했단다. 안그래도 독서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제 AI라는 첨단의 지식 보조도 활용 가능해졌으니, 앞으로 이 하락세는 더 가속되지 않을까 싶다. 반면 20대의 연간독서율은 75.3%로 직전 조사보다 0.8% 증가했다고 한다. 독서율이 상승한 유일한 세대가 20대라는 거다. 대체로 이 기현상(?)의 원인에 대해 ‘텍스트힙(Text-Hip)’ 열풍을 꼽곤 하는 것 같다. 그에 발맞춰 여러 ‘북튜브(Book-Tube)’ 채널도 흥행하고 있다. 가령 ‘민음사TV’는 구독자가 42만 명에 이른다. 책을 읽는 행위를 멋지다고 생각하는 세대의 출현은 분명 반길만한 일이다. 따라서 이제 문제는 이들 독서의 지속가능성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독서가 트렌디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우선 세상에 좋은 책이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당연한 사실에는 비약이 있기도 하다. 책과 독서의 관계가 자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의 발간은 독서 행위로 저절로 이어지지 않는다. 책은 여러 매개를 거쳐 독자에게 읽힌다. 출판사의 광고나 판촉 행사, 도서 할인, 북이벤트 등이 역할을 하기도 하고, 독서운동을 비롯한 국가의 제도적 지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책들은 읽히지 못하고 사장 된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읽히지 않은 기록들의 무덤이 아닐까. 대개의 책들은 독서를 배반한다. 비록 현실이 이럴지라도 도서관이나 서점에 꽂혀 있기만 한 책들을 버려진 퇴물로 취급하기보다는 언제든 읽힐 가능성이 있는 지식의 보고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좋은 책이 나오길 기다리기보다는 아직 읽히지 않은 좋은 책들을 발굴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발굴을 떠맡아줄 기관으로 문학관 같은 곳이 활용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전국에 백여 개가 있다고 알려진 문학관의 거의 다수가 대중의 무관심 속에서 사실상 방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학관은 박물관이나 미술관과 다르게 해당 장소에서 기리고자 하는 작품의 정수(精髓)를 실감케 할 수 없다. 문학 관련 전시를 아무리 관람해도 문학작품이란 기본적으로 ‘독물(讀物, 읽을거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학관은 책(작품)과 독자를 매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방문객을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요즘 대형 서점에는 책을 찾는 20대가 많다 보니, 그곳에서 ‘번따’를 시도하는 청년들이 늘어가고 있단다. 아마 서점에서는 이를 ‘민폐’로 여기겠지만,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문학관과 같은 공간에서 독서 관련 프로그램을 통해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느 지역에서든 그 존재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전국의 문학관이야말로 책과 독서, 작가‧작품과 독자, 독자와 독자를 유익하게 연결해 줄 장소로 거듭나야 할 시기가 당도했다. 문학관은 텍스트힙을 자기 역할을 고양해 줄 기회로 삼아야 한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6-04-16

목이 문제인데 왜 손이 저릴까

손목터널증후군이나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긴 경우도 손이 저릴 수가 있지만 손이 아니라 목에서 생기는 문제인 경우도 상당히 많다. 특히 손가락 끝이 찌릿하거나 팔을 따라 내려오는 저림이 특정 자세에서 심해지는 경우라면 단순한 말초 문제가 아니라 경추에서 시작된 문제일 가능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환자 입장에서는 손이 불편하니 손을 치료해야 할 것 같지만 실제 원인은 전혀 다른 위치에 숨어 있는 것이다. 목뼈 사이에는 디스크와 함께 신경이 지나가는 통로가 있다. 이 신경은 목에서 시작해 어깨, 팔을 지나 손끝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출발점은 목이지만 이곳이 눌리면 증상은 손에서 나타날 수 있다. 경추 디스크가 튀어나오거나 관절과 인대가 두꺼워지면서 신경을 압박하면 그 신경이 담당하는 영역 전체에 이상 신호가 전달된다. 그래서 손이 저리거나 감각이 둔해지고 심한 경우 당기면서 힘이 빠지는 증상까지 나타난다. 특히 장시간 스마트폰을 사용하거나 컴퓨터 작업처럼 고개를 앞으로 내미는 자세로 일을 하면 경추에 부담이 쌓이면서 이런 문제가 더 쉽게 발생한다. 목에서 문제가 생겼는지는 간단한 검사로도 방향을 잡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스퍼링 테스트다. 목을 한쪽으로 돌린 다음 뒤로 눕혀 기울이면 바로 손이 저리거나 목 어깨 통증이 생기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가볍게 압박을 가하면 팔과 손으로 저림과 당기는 증상이 더 심해진다. 간단한 검사지만 증상이 발현되면 아주 높은 확률로 경추 디스크임을 보여주는 검사라 임상적으로 의미가 크고 환자 스스로도 손이 아니라 목에서 시작된 문제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진단 자체가 치료의 출발점이자 병에 대한 설득 과정이 되는 셈이다. 경추 신경 눌림의 치료는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단순히 손이나 팔만 마사지하거나 물리치료를 반복해서는 증상의 개선이 힘들 뿐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고 염증을 줄여줘야 하는데 추나요법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틀어진 경추의 정렬을 교정하고 어깨 주변 근육을 풀어주면 신경이 지나가는 공간이 넓어지면서 압박이 줄어든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직접적으로 경추 신경에 약침을 쏴 염증 반응을 줄여 주면 좋다. 초음파를 활용해 신경을 직접 확인해 보면 경추 5번, 6번, 7번에서 나오는 신경이 동글동글한 형태로 또렷하게 관찰된다. 환자 손의 저림 경로나 양상을 확인 후 신경이 주변 조직에 눌리거나 염증 반응을 보이는 지점에 직접 약침을 뿌려준다. 환자는 신경이 자극되면서 팔과 어깨로 약침 자극이 내려가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고 이는 단순히 추정에 의존하는 치료와는 정확도와 효과가 다르다. 자극을 받고 있는 신경 주변의 염증을 가라앉히고 유착을 풀어주면 통증 신호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손 저림은 단순한 혈액순환 문제뿐만 아니라 신경의 문제인 경우가 많고 그 시작점이 목인 경우도 적지 않다. 증상이 반복되거나 심해진다면 손만 바라보지 말고 스퍼링 테스트를 검색 후 셀프로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정확한 평가와 함께 경추 정렬을 바로잡고 신경을 직접 자극하는 치료까지 이어진다면 오래 지속되던 저림 증상도 빠르게 호전될 수 있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6-04-16

따분함이 결핍된 시대

우리는 이제 스마트폰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일할 때는 물론이고 쉴 때에도 폰은 필수적이다. 누군가는 게임을 하고, 누군가는 SNS를 하며 하루의 피로를 씻는다. 잠깐만 봐야지 하고 시작한 숏츠나 릴스를 보다 보면 몇 시간이 몇 분처럼 지나가 있기도 한다. 세계인의 하루 평균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3시간에서 4시간 수준이라고 한다. PC와 TV를 포함한 스크린 타임을 기준으로 하면 하루 평균 6시간 30분을 사용한다. 한국인의 하루 평균 휴대폰 사용 시간은 약 5시간으로 전 세계 평균보다 높다. 스마트폰이 너무 재미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이제 심심한 시간이 없어졌다. 조금만 틈이 난다 싶으면 자동으로 휴대폰에 손이 간다. 아이들에게는 심심해서 어쩔 줄 몰라 하다 이것저것 궁리하며 놀던 시간이 사라졌다. 따분함이 결핍된 시대이다. 마이클 이스터의 저서 ‘편안함의 습격’에 따르면 우리 뇌에는 집중 모드와 비집중 모드가 있다. 집중 모드는 뇌가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상태로,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하거나 무언가를 만들고 일을 할 때의 상태이다. 비집중 모드는 아무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때의 따분하고 심심한 상태로, 마음의 방황이자 휴식 상태이다. 이 비집중 모드의 시간 동안 우리는 어떤 일을 더 훌륭하고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필요한 정신적 자원들을 복원하고 구축하게 된다. 따라서 따분한 시간을 갖는 것은 인간이 업무를 완수하거나 창의력을 발휘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우리가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시간이 집중 모드 상태에서 소비된다는 것이다. 휴대폰과 TV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을 때에는 한 가지 운동을 반복할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뇌에서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소비된다. 결국 우리가 쉰다고 생각하며 폰을 보는 시간에도 우리의 뇌는 일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에 둘러싸여 심심할 틈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뇌는 혹사당하고 있다. 결국 따분함의 결핍은 정신적 피로를 위기 수준으로 몰아갔고, 현대인의 우울증과 삶에 대한 불만족으로 이어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폰 없이 살 수 없어진 우리는 느긋하게 마음의 방랑을 하면서 화면 밖의 것들을 느끼고 바라볼 때에만 그 존재가 드러나는 ‘삶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걱정된다. 청소년의 스마트폰 중독을 막기 위해 일정 연령 미만의 SNS 이용을 금지한다는 외국의 입법 소식들이 들려온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휴대폰 없이 따분하게 보내야 하는 시간을 강제로 갖게 하면 어떨까. 따분함 속에서 마음의 유랑을 하는 시간. 무척 심심하지만, 그 가운데에서 신기한 것과 하고 싶은 일 따위를 찾고, 마음의 소리도 들어보는 시간. 학교에서 1년에 한 번, 2박 3일 동안 폰 없이 자연 속에서 어떤 프로그램도 없이, 공부도 하지 말고 지내야 하는 여행을 가는 것이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심심해 죽겠다고 난리를 치겠지만, 점차 어떻게든 놀 거리를 찾고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것이며 친구들과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 것이다. 따분함에서 벗어나는 출구를 찾다 보면 창의력이 발동한다. 수학여행과 소풍마저 없어져 가는 요즘, 다들 헛소리라고 하겠지만, 아이들에게 휴대폰 없이 따분해져 보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는 꿈을 꿔 본다. /김세라 변호사 △고려대 법과대학, 이화여대 로스쿨 졸업 △포항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2026-04-16

늑대 소동

한국 늑대는 한반도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오랜 세월 동안 한반도에 존재해 온 동물로 확인된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해수구제 정책에 의해 멸종의 길을 걷게 된다. 해수구제 정책이란 일본 조선총독부가 사람과 재산에 해를 끼치는 짐승을 제거할 목적으로 시행한 정책이다. 이 정책은 시베리아 호랑이, 아무르 표범 등 한반도 내 대형 포식동물이 멸종하는 결정적 원인이 된다. 늑대도 마찬가지. 공식적으로 일제 강점기 포획된 늑대만 1300여 마리로 기록된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수가 포획 사살된 것으로 짐작된다. 동화 등에 등장하는 늑대는 교활하거나 무섭게 표현된다. 조선왕조실록에도 가축을 습격하거나 사람을 해치는 동물로 늑대 기록이 나온다. 늑대는 보통 4~5 마리 정도 무리를 지어다니면서 멧돼지, 고라니 등 초식동물들을 막다른 길로 몰아넣는 전략적 사냥을 할 줄 아는 영리한 동물이다. 일제강점기 멸종의 길로 접어든 늑대는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경북 영주, 봉화 등지에서 출몰하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했다. 1965년 영주에서 포획된 늑대는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져 1997년 폐사했다. 한국의 야생늑대 계보는 이날로 공식으로 끊어졌다. 지난 8일 대전 오월드동물원에서 탈출한 늑대 늑구가 10일째 복귀하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다. 동물원 인근 야산에서 잠시 발견되기도 했지만 또다시 자취를 감추고 있다. 오월드 늑구 탈출 소식이 알려지면서 해외 누리꾼 사이에서도 관심이 커져 영문판 홈피까지 등장했다. 이들은 늑구의 실시간 소식을 전하면서 사살은 말라는 메시지도 전파하고 있다. 늑구의 안전한 귀환 소식을 모두가 기다린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4-16

철학의 길에서 힐링 산책로로···경주 선덕여왕길을 걷다

요즘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려운 건 무엇일까. 항간에 떠도는 우스개를 빌리자면 꽃의 절정 시기를 맞추는 일이다. 워낙 변화무쌍한 날씨가 반복되다 보니 벌어지는 해프닝이다.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매화는 열흘이나 빨랐는데, 진달래와 벚꽃은 예전과 비슷하다. 도대체 어느 장단과 계획에 맞춰 축제의 일정을 잡아야 하는 걸까. 지자체마다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것이 괜한 허풍은 아닌 것도 같다. 해마다 4월이면 경주에는 꽃 잔치가 벌어진다. 벚꽃이 지고 나면 열흘과 보름 사이로 겹벚꽃이 만개한다. 순수 우리나라 꽃으로 일컬어지는 겹벚꽃의 성지인 불국사가 화려함의 극치라면, ‘선덕여왕길’은 요즘 가장 뜨고 있는 핫플이라고 보면 된다. 두 군데 장소가 풍기는 이미지는 극과 극이다. 300여 그루의 겹벚꽃이 밀집된 불국사가 화려함의 극치라면, 선덕여왕길은 조금은 천천히 쉬어가면서 몸과 마을 충전할 수 있는 담백한 힐링의 길이다. 올해 겹벚꽃은 유난히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근래에 자주 내린 비에다 꽃샘추위가 더는 위력을 떨치지 못하는 기후 조건이 완벽하게 만들어졌음이다. 굳이 걱정을 미리 해보자면, 예고 없이 찾아드는 불청객 황사와 미세먼지가 푸른 하늘에 흠결을 남길 수도 있다는 우려뿐이다. 하지만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의 진분홍색 겹벚꽃과 하얀 겹벚꽃을 여유 있게 돌아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참맛을 느끼기에 더없는 장소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선덕여왕 길’은 이름이 다양하다. ‘숲머리 둑방길’ 또는 ‘진평왕릉 가는 길’ 등이다. 보문호 바로 밑 명활성 입구에 위치하며 불국사와의 거리는 차량으로 약 15분 정도의 거리다. 몇 해 전 경주시에서 ‘선덕여왕 둘레길’로 명명하였는데, 보문호에서 흘러내린 실개천이 수로를 따라 명활성에서 진평왕릉까지 약 1.8㎞에 걸쳐 이어지는 산책로다. 그동안 경주의 숨겨진 겹벚꽃 명소로 알음알음 알려졌었는데, 내게는 아직도 애증의 길로 기억되는 몇 안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오롯이 흙길을 여유 있게 걸을 수 있었던 이 길은 몇 해 전에 큰 변곡점을 맞았다. 짧은 벚꽃 엔딩의 아쉬움을 단번에 대체할 수 있고, 소수(疏水)가 흐르는 작은 수로를 끼고 호젓한 둑방길을 걸으면 저절로 사색이 되던 길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찔레꽃과 오동나무 등과 어울린 500여 그루의 겹벚꽃이 자지러져서일까. 누군가는 일본 교토에는 사색을 요구하는 ‘철학의 길’이 있다면 한국에는 경주 ‘숲머리 둑방길’이 있다고도 했었다. 일본 교토의 ‘철학의 길’은 비와코(琵琶湖) 호수에서 끌어온 소수가 길을 따라 흐르는 수로 옆의 산책로다. 봄이면 수령 100년의 500그루 벚나무 꽃이 양측으로 만발하는 벚꽃 구경의 명소인데, 그 길을 일찍이 일본 최고의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가 사색하면서 거닐었다고 해서 ‘철학의 길’이라고 명명되었다. 선덕여왕 길은 ‘철학의 길’보다 무려 500여 미터나 더 길고 아름다운 산책로다. 거기다 사적지로 지정된 명활성과 진평왕릉이 시작점이자 끝 지점에 자리 잡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으랴.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4년여 전부터 산책로 주변에 크고 작은 공사가 있었다. 오솔길처럼 작고 예쁘게 흐르던 수로가, 작은 임도처럼 너른 수로가 되었고, 산책로도 두 배가량 더 넓혀지고 말았다. 불과 몇 해 전의 운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저 평범한 길이 되고 보니, 실망했다는 후기 글이 계속 이어졌다. 오죽했으면 경주는 친환경적으로 조성하는 것에는 빵점이라는 혹평까지 올라왔을까. 나도 마찬가지였다. 대놓고 한바탕 욕이라도 퍼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것이 알 수 없는 오기를 불러일으켰던 것은 아닐까. 앞으로 어떻게 가꾸는지 끝까지 지켜보리라 마음먹었던 것이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2년 전만 해도 그 기대가 어느 정도 적중되는 듯도 했다. 그런데 작년부터 무언가 조금은 다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콘셉트를 새롭게 바꾼 것이었다. ‘선덕여왕길 벚꽃 맨발 걷기’ 행사가 개최되었던 걸 보니, 이제는 철학과 사색의 길에서 건강의 길, 힐링 산책로로 거듭나고 있음이다. 선덕여왕길은 어떤 이미지로 계속 기억되었으면 좋을까. 사색의 길일까. 철학의 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맨발 걷기 산책로와 힐링의 길일까. 처음 그 길을 걸었을 때의 느낌이 너무나 강렬하고 좋아서였을까. 지금도 나는 그 진한 향수가 아쉬움으로 남아 뇌리에서 잘 지워지지 않는다. 교육이 백년대계라면 좋은 문화재와 자원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도시의 이미지가 확연하게 달라질 수 있다고 나는 지금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선덕여왕길의 시작점은 명활성 또는 진평왕릉이다. 어느 곳을 선택하던 무료 주차장과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다. 최근에는 명활성이 재정비되면서 화장실 시설까지 완벽하게 갖추어졌다. 명활성을 쌓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라 선덕여왕 때는 비담(毗曇)이 이곳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김유신이 평정했다는 기록이 있다. 동해로 쳐들어오는 왜구에 대항하여 경주를 지키는데 큰 몫을 한 성이다. 진평왕릉은 신라 26대 진평왕의 무덤으로, 높이 7.9m, 지름 36.4m로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분이다. 산이 아닌 평야 가운데 자리한 게 특징이다. 겹벚꽃의 감상과 짧은 트레킹(trekking)이 목적이라면, 천천히 걸으면서 왕복하면 된다. 사진을 찍으며 여유 있게 걸어도 1시간 30분 이내다. 탐방로 주변에는 분위기 있는 카페와 숲머리 음식촌이 생성되어, 편한 복장 외에 아무런 준비 없이 방문해도 크게 부족함이 없다. 조금 더 긴 트레킹을 원한다면 명활성 입구 숲머리와 진평왕릉에서 시작해 명활산성과 연계하면 된다. 선덕여왕길과 불국사 겹벚꽃을 연이어 묶어도 된다. 단 주말이라면 아침 일찍 불국사 겹벚꽃을 탐방하고, 선덕여왕길은 나중에 돌아볼 것을 권한다. 선덕여왕길은 아직도 크게 붐비지 않는 호젓한 산책로다. 조금은 부담스럽게 다가왔던 문화재 관람료가 무료로 전환되는 바람에, 신라 천 년의 문화재 불국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도 더없는 축복이자 은혜다. 국내 여행객뿐 아니라 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문화재를 묶어서 돌아볼 수 있다면, 선덕여왕길은 더욱더 우리 가슴에 각인되는 명품 힐링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지홍석 수필가·여행 칼럼니스트

2026-04-16

중동과 한반도, 휴전인가 정전인가

한반도는 평화로운가. 우리는 오랫동안 애매한 답을 반복해 왔다. 겉으로는 총성이 멈춘 지 오래지만 법적으로는 여전히 전쟁상태. 1953년 체결된 한국전쟁 정전협정은 전투를 멈추는 합의였을 뿐, 전쟁을 끝내는 선언이 아니었다. 전쟁은 끝난 게 아니라 멈춘 상태에 서 있을 뿐이다. 한반도에는 독특한 풍경이 즐비하다. 중무장 중인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둔 경계와 감시, 언제라도 긴장이 격발될 수 있는 구조적 불안정성. ‘휴전선’이라는 익숙한 표현은 오히려 현실을 희석시킨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군사분계선’이며, 그 선은 지리적 경계가 아니라 미완의 전쟁을 상징한다. ‘정전체제’의 의미는 오늘의 국제정세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중동에서 미국, 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충돌 가능성, 에너지공급망의 위기, 군사적 충돌이 경제와 외교를 동시에 뒤흔드는 양상이 전개된다. 중동 뿐 아니라 지구상 곳곳에서 긴장과 충돌은 오늘도 쉬지않고 벌어진다. 그 점에서, 한반도는 결코 예외가 아니다. ‘정전상태’라는 점을 되살피면 그 취약함이 금방 드러난다. 전쟁이 ‘종결된’ 지역은 외교적·법적 안전장치가 존재하지만, 전쟁이 ‘중단된’ 지역은 언제든 재개될 여지를 품는다. 한반도의 평화는 제도화된 평화가 아니라, 관리되는 긴장 위에 놓여 있는 게 아닌가.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첫째, 정전 상태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평화에 대한 과도한 낙관도, 전쟁에 대한 과도한 공포도 모두 현실을 왜곡한다. 현재 상태는 결코 안정적이지 않으며 ‘관리 중인 긴장’임을 기억해야 한다. 정확한 인식이 적절한 정책 전개의 출발점이다. 둘째,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라는 두 단계의 의미를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에 가깝지만, 평화협정은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상징적 선언이 아니라, 전쟁상태를 법적으로 종결하는 제도적 장치여야 한다. 이제는 남과 북뿐 아니라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음도 냉정하게 고려해야 한다. 셋째, 억지력과 대화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병행해야 할 전략이다. 강력한 방어태세 없이 평화를 기대하는 것은 공허하며, 대화없는 군사력은 긴장을 증폭시킨다. 한반도의 현실은 이 두 요소의 균형 위에서만 관리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시간’의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70년도 넘게 버텨온 정전체제는 하나의 구조로 굳어져 간다. 변화를 불러오기 위해서는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기보다, 긴 안목과 일관된 전략이 필요하다. 중동의 사례가 보여주듯, 불안정한 지역질서는 언제든 폭발할 수 있다. 한반도가 그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의 ‘멈춤’을 ‘종결’로 전환하려는 적극적 의지가 필요하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불편한 진실을 바로 볼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항구적인 평화는 주어지는 상태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 만드는 선택과 설계의 결과일 터이다. 머나먼 중동의 전쟁 소식은 한반도의 내일을 도모하는 일에 타산지석으로 쓰여야 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6-04-15

쇠를 만드는 방식의 대전환··· 포스코의‘ESG 전환’이 지역경제의 미래다

포스코가 최근 보여준 행보들이 심상치 않다. 수조 원의 비용이 예상되는 협력사 직원 7000여 명의 직접 고용 발표에 이어, 2050 탄소중립의 핵심 병기인 ‘수소환원제철(HyREX)’부지 조성을 위한 공유수면 매립 승인까지 받아냈다. 누군가는 이를 과도한 비용 지출이라 비판하고, 누군가는 실현 불가능한 기술에 대한 집착이라 우려한다. 그러나 ESG 관점에서 이것은 단순한 투자가 아니다. 생존을 위한 ‘ESG 전환’이자, 대한민국 제조업의 심장을 지키기 위한 지속가능한 설계다. 먼저 포스코의 이번 ‘협력사 직원 7000명 직접 고용’ 발표는 국내 산업계의 고질적인 과제였던 ‘위험의 외주화’와 ‘불법 파견’ 논란을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강력한 결단이다. ESG의 S(Social) 측면에서 이번 결정은 가장 직접적이고 파격적인 성과로 평가된다. 제철소는 고온·고압의 위험 공정이 상존하여 그동안 사고가 하청 업체에 집중된다는 비판이 있었으나, 직접 고용을 통해 포스코가 안전 보건 관리 책임을 완전히 짊어지겠다는 결단이다. 그동안 제철소 현장에서 동일한 가치를 창출하면서도 신분에 따라 처우가 달랐던 관행을 끊어내고자 하는 결정은, 동일 노동을 하면서도 신분과 처우가 달랐던‘노동시장 이중 구조’를 완화하는 상징적 조치이다. 단순히 법적 리스크(불법 파견 소송)를 해소한 것을 넘어 기업의 ‘지속가능한 내부 결속력’을 확보한 조치이다. 이번 직고용을 통해 포스코는 현장의 안전 보건 책임을 온전히 짊어짐으로써 국제적인 인권 경영 표준을 충족하게 되었다. 이는 향후 글로벌 공급망 실사법이 강화되는 시점에서 포스코가 글로벌 시장에서 누릴‘무형의 프리미엄’으로 엄청난‘사회적 자산’이 될 것이다. 또한, G(Governance) 관점에서는 수십 년간 이어온 경영 불확실성을 걷어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15년 가까이 이어 온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불법 파견 소송)에서 법원이 연이어 하청 노동자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현실 속에 더 이상의 소송 비용과 갈등의 소모보다 선제적 수용을 통해 거버넌스의 안정성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글로벌 공급망 실사법(CSDDD) 등 강화되는 국제기준은 협력사 근로자의 인권까지 원청의 책임으로 간주하는 컴플라이언스를 강화하는 추세이다. 이번 조치는 이 같은 글로벌 시장의 변화 속에서 포스코의 공급망 관리 투명성을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 다음으로, 포스코가 추진 중인 ‘수소환원제철(HyREX)’은 단순히 공정을 바꾸는 수준을 넘어, 철강산업의 존재 이유와 방식을 통째로 재정의하는 ‘대전환‘이 될 것이다. 환경(E) 측면에서 수소환원제철(HyREX)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철강은 전 세계 탄소 배출의 약 8%를 차지하는 기후 위기의 주범 중 하나로 거대한 ‘탄소감옥’이다. 수소환원제철은 이 오명을 벗기 위한 핵심 열쇠이다.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같은 규제는 ‘탄소를 배출하며 만든 철’을 시장에서 퇴출시키려 하고 있다. 포스코 고유의 파이넥스(FINEX) 기술을 계승한 HyREX는 가루 형태의 철광석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원료 가공단계(소결 등)를 생략함으로써 추가적인 에너지 소비와 환경 오염 물질 발생을 최소화한다. 이는 자원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석탄 대신 수소를 사용하여 이산화탄소가 아닌 ‘물’을 내뿜는 혁명을 가능케 한다. 포항 제철소 앞바다를 메워 이 거대한 실증 플랜트를 짓겠다는 것은, 포항을 비롯한 지역사회에 단순 건설업 부양을 넘어, 수소 인프라와 관련된 고부가가치 엔지니어링 일자리를 창출하는‘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라는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S(Social) 측면의 성과를 동반하게 된다. 포스코가 세계 철강업계의‘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재도약하겠다는 강력한 거버넌스(G)적 의지다. 이 거대한 청사진을 완성할 마지막 퍼즐은 ‘에너지’다. 수소환원제철은 탄소를 뿜어내던 고로(용광로)가 사라지는 대신, 거대한 전기로와 수전해 설비를 돌려야 하기 때문에 압도적으로 많은 전력을 소모한다. 하지만 필요한 전력을 화력발전소에서 끌어온다면 수소환원제철의 환경적 가치는 퇴색될 것이다. 수소환원제철이 진정한 ESG 성과를 내려면 탄소 배출 없이 생산된 ‘그린 수소’가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 ESG 관점에서 가장 바람직한 전력 조달 방향은‘무탄소 에너지(CFE) 믹스’의 구축이다.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철강 공정의 거대한 기저부하를 감당하기 어렵기에 대규모 전기로 운영을 위한 무탄소 전력(재생에너지, 원자력 등) 공급 체계가 병행되어야 한다. 단기적으로 소형모듈원전(SMR)을 포함한 무탄소 전원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이를 산업단지와 직접 연결하는 지능형 전력망(Smart Grid)을 구축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비중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 나아가 해외 재생에너지 강국에서 생산된 그린 수소를 안정적으로 도입하는 ‘글로벌 수소 공급망’확보를 포스코를 넘어 국가적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 포스코의 이번 변화는 포항 지역사회에도 거대한 기회다. 7000명의 정규직화와 대규모 HyREX 부지 조성은 지역 경제의 선순환을 이끌 것이다. 포스코가 1970년대 ‘제철보국’의 정신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궜다면, 이제는 ‘그린보국’의 정신으로 탄소중립 시대의 기적을 준비하고 있다. 쇠를 만드는 방식의 대전환. 이 험난한 여정이 성공할 때, 대한민국은 전 세계 ESG 경영을 주도하는 선진국으로서 당당히 설 수 있을 것이다. /서득수 지속가능ESG연구소장

2026-04-15

‘라키비움’을 뭐라고 할까요?

며칠 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라키비움’이라는 단어가 우리말 다듬기 예시로 나왔다. “책을 읽고 기록을 살펴보고 전시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라키비움(larchiveum)’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이 표현은 우리말로 다듬으면 ‘복합 문화 공간’이라고 합니다. 도서관·기록관·박물관의 기능을 함께 갖춘 공간이나 시설을 뜻하는 말이에요.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지는 공간, 이제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전해 보세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는 우리말, 오늘도 하나 더 알아갑니다.” 라키비움(larchiveum)이라니, 도서관학, 기록학, 박물관학 분야의 전문용어라는데 2008년 미국의 기록전문가가 만든 이후 꽤나 널리 퍼져있는 단어인 것 같았다. 상당히 어려워 보이지만 그래도 도서관(library)의 첫 글자 엘과 기록보관소(archive)의 아카이브, 박물관(museum)의 뒷글자 움을합성해서 만들었다는 설명을 들으니 바로 이해는 된다. 그러나 라키비움을 쓸 때마다 일일이 설명하기도 어렵고, 라이브러리, 아카이브, 뮤지엄 등 외국어 자체도 부담인 데다가 각 단어의 알파벳 몇 개를 뽑아서 만들었으니 편하게 받아들이기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오래전 ‘아카이브’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도 적응하느라 힘들었는데 라키비움이라니 나도 거부감이 든다. 그래서인지 3년 전쯤 국립국어원에서 라키비움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다듬자고 제안했다는데 잠잠하다가 우리말 다듬기 예시 단어로 나오면서 논란이 촉발된 것이다. 한쪽에서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단어인데 굳이 한글로 번역해서 써야 하느냐고 반발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라키비움이라는 단어가 미국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거의 한국에서만 쓴다면서 우리말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한다. 최근 내가 맞닥뜨리는 어려움도 번역 또는 말 만들기와 관련이 있어서 이 논쟁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가능하면 관련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중적으로 금방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만들자는 쪽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요즘 노자의 ‘도덕경’을 강의하면서 제대로 의미를 전달하려고 하다 보니 혼자 공부할 때는 생각지 못했던 난관을 자주 만난다. 한문을 한글 단어로 만들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27장에 나오는 ‘要妙’라는 단어를 그냥 요묘라면 무책임해보인다. 그래서 어떤 이는 ‘신비로운 요체’라 하고, 어떤 이는 ‘본질적인 요체’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다. 어느 수강생의 제안대로 우리말 단어로 만들고 싶지만 어렵다. 이런 단어를 우리말 단어로 만드는 것은 전문가들의 중요한 과제이다. ‘라키비움’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다듬어야 할 말로 예시했다는 것은, 그것도 ‘복합문화공간’이라는 대중적인 단어로 다듬었다는 것은, 이 단어가 우리 곁에 가까이 왔다는 뜻이다. 실제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는 ‘라키비움’ 공간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외국어를 한국어로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라키비움은 아무래도 과한 것 같다. 이참에 제안해 보자면, ‘기록문화관’은 어떨까? /유영희 인문학자

2026-04-15

기업 혁신과 시간관리

기업의 혁신은 시간이 만들고, 시간은 자사의 여러 여건을 감안하여 제대로 된 설계에서 출발한다. 보통 기업 혁신은 거창한 비전이나 전락과 기술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현장의 현실은 다르다. 혁신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은 의외로 단순하다. 바로 ‘시간’이다. 시간은 비용보다 더 희소하고, 설계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자원이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시간을 관리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관리할 수 없다’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간 관리란 단순한 일정 관리가 아니다. 기업 혁신 관점에서의 시간 관리는 ‘현재 운영에 소비되는 시간을 줄이고, 미래 경쟁력을 만드는 활동에 의도적으로 배분하는 경영 행위’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혁신이 실패하는 이유는 역량 부족이 아니라 시간 배분의 실패다. 긴급한 일에 밀려 중요한 일이 항상 뒤로 밀리기 때문이다.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시간관리의 조건은 무엇인가. 첫째, 최고 경영자의 강한 의지다. 혁신 시간은 ‘남으면 하는 일’이 아니라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시간’이다. 둘째, 운영과 개선 업무의 구조적 분리다. 생산과 납기 중심의 일상 업무와 개선, 혁신 활동이 뒤섞이면 혁신은 항상 후순위로 밀린다. 셋째, 낭비 제거다. Lean Manufacturing이 강조하듯, 불필요한 보고, 회의, 대기 시간은 혁신의 가장 큰 적이다. 넷째, 측정과 피드백이다. 혁신 활동 시간 자체를 관리 지표로 삼지 않으면 실행은 흐지부지되기 쉽다. 성공하는 기업들은 예외 없이 시간을 재설계했다. 도요타자동차는 생산 중에도 개선 활동을 멈추지 않는 ‘지속적 개선(카이젠)’ 문화를 구축했다. 작업자는 하루 중 일정 시간을 문제 해결과 개선에 투입하며, 작은 변화가 축적되어 큰 경쟁력을 만든다. 3M은 연구개발 인력에게 업무 시간의 일부를 자율 연구에 사용하도록 허용하는 제도를 운영해 혁신 제품을 지속적으로 창출해 왔다. 구글(Google) 역시 ‘20% 시간’ 정책을 통해 직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하도록 장려하며 미래 사업의 씨앗을 키웠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하나다. 혁신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혁신할 시간을 제도적으로 확보했다는 점이다. 특히, 제조업에서는 시간 설계가 더욱 중요하다. 설비는 쉬지 않고 돌아가고, 현장은 늘 바쁘다. 이때 필요한 것은 ‘짧고 반복적인 개선 시간’과 ‘정기적인 집중 혁신 시간’의 병행이다. 예를 들어 교대근무 환경에서는 매일 10~20분의 개선 활동을 인수인계 시간에 포함시키고, 월 1회는 학습과 개선을 결합한 ‘개선 데이’ 등 집중 시간을 운영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지속성과 강제성’이다. 혁신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그 구조의 핵심에는 시간이 있다. 시간을 확보하지 않는 혁신은 구호에 그치고, 시간을 설계한 혁신은 성과로 이어진다. 기업이 진정으로 변화를 원한다면 먼저 물어야 한다. ‘우리는 혁신을 위해 시간을 쓰고 있는가’가 아니라, ‘혁신을 위해 시간을 강제로 확보하고 있는가’라고. 시간을 지배하는 기업만이 미래를 지배할 수 있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

2026-04-15

100만원에 육박한 제주 항공권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과 레바논에 폭격을 했거나 하고 있는 상황이 2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지난주 열린 이란과 미국의 종전 협상은 성과 없이 결렬됐고 중동의 긴장은 여전하다. 고위 관리들의 물밑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지만, 이 또한 마냥 낙관할 수 없는 상태. 폭격과 보복 공격이 이어진 공간은 ‘지구의 원유 창고’로 불리는 중동이다. 석유와 석유화학물 없인 단 하루도 버티기 힘든 수많은 나라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국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원유 수급의 어려움은 비행기를 움직이는 항공유 가격도 천정부지로 상승시키는 중이다. 항공업계의 비명 소리가 들릴 정도. 유가가 오르면 이에 대한 추가적인 비용을 보전하기 위해 부과하는 유가할증료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관련 업계의 따르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는 내달 국내선 항공 유류할증료를 7700원에서 3만4100원으로 인상한다. 4배 이상 올리는 것. 말할 것도 없이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으로 인한 국제 유가 급등 때문이다. 비교적 값싼 가격으로 이용이 가능했던 저비용 항공사의 유류할증료도 올리지 않을 방법이 없다. 대형 항공사와 같은 수준의 인상이 이미 예고됐다. 이는 2016년 유류할증료 제도가 시작된 후 사상 최고 금액이다. 벌써부터 제주와 서울을 오가는 항공기 탑승 비용이 90만원을 넘어 100만원에 육박할 것이란 예측이 쏟아지고 있다. 서민들에겐 부담스런 금액이 분명하다. 제주행 비행기는 관광객만 이용하는 게 아니다. 직장과 사업 탓에 어쩔 수 없이 타야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중동에서의 전쟁이 여러 사람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큰 문제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4-15

죽장휴게소

만약에, 내가 충신이 아니어서 직언 잘못 씨부려 유배를 가는 길에 벚꽃백리길을 지난다면 좀 서러우면서도 기꺼이 즐거울 것이다 집착하지 않으면 더 큰 것이 온다 죽장휴게소 들러 김밥과 컵라면을 먹는다 꾸덕꾸덕하고 쫀득하다 이만한 봄소풍도 없을 듯 문득 두바이쫀득쿠키라는 말이 생각났다 먹어본 적은 없지만 다만 그것에 열광하는 잡종들의 혼미한 취미에 똥물을 퍼부어버리라는 결기를 세운다 그 인생이 한때 불리워질 뿐인 유행가 같다는 것을 그들은 생각할까 몰라 그 가벼운 잡것들에게 저 날리는 꽃잎보다 가볍다는 충고를 할 순 없지만 어쩌면 벚꽃백리길이 지옥의 문이 될 수 있다고 이빨을 쑤시며 생각했다. 나는 내 삶이 관광이 아니라 사람의 길을 찾는 여행이길 바란다 .................... 눈부신 것이 다 황금과 다이아몬드도 아니고, 실생활에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 가치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고, 나는 나의 가치를 고양하기 위해 더욱 엎드린다. 수요도 없기에 누리는 그 무한의 가치가 좋다. 가난이 풍요롭다. 비난해도 아무렇지도 않다. 누가 나를 구원해줄 건가? 없다. 나만이 나를 구원한다. 비굴(卑屈)은 굴기(崛起)를 지향한다. 경계하지 마시길, 나의 세계에서만 작동하는 정신승리이므로!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6-04-15

꽃피는 봄날에 블루로드를 걷다

영덕에 강의하러 갈 때면 해안가를 걷는 이들을 자주 보았다. 바쁘게 일하러 가는 나와는 달리 그들은 여유가 있었다. 윤슬에 반짝이는 푸른 물결을 곁에 둔 채 느리게 걷는 모습에서는 삶의 또 다른 리듬이 흘러나오는 듯했다. 나는 차창 너머로 그들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나도 저 길을 걸어야겠다고 한 번씩 다짐했다. 봄이 되었다. 겨우내 접어두었던 다짐이 어느 날 문득 스스로를 두드렸다. 드디어 지난 주말에 블루로드 출발점을 알려 주는 조형물 앞에 섰다. 햇살은 글자 위로 쏟아져 눈부신 파편처럼 흩어졌고 바닷바람은 겨울의 거친 숨결을 지우고 한층 부드러운 얼굴로 나를 맞아주었다. 봄날의 길은 쪽빛으로 열려 있었다. 나는 운동화 끈을 단단히 조이며 오늘만큼은 서두르지 않겠다고 자신에게 약속했다. 그러고는 마을 풍경을 바라보며 규칙적인 발걸음을 내딛었다. 길가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바다를 향해 고개를 들고 있었다. 꽃잎 하나하나가 바람의 숨결에 흔들릴 때마다 내 안의 문장들이 조금씩 흔들렸다. 이렇게 아름다운 배경을 묘사할 단어가 미처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표현되지 못한 언어가 바람에 실려 어딘가로 흩어지는 듯했다. 저 멀리 바다를 바라보았다. 수평선 위에 떠 있는 배 한 척이 느릿느릿하게 움직였다. 그 풍경을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쫓기듯 살아왔던 일상이 풀어지며 마음이 한없이 가벼워졌다. 가슴에 얹어 놓았던 묵직한 근심과 오래 묵은 생각들도 바다 빛깔에 씻겨 나가는 것 같았다. 드넓은 바다는 잔잔했다. 먼 바다에서 밀려온 파도는 크지 않았지만 일정한 간격으로 해안을 두드리며 세월의 퇴적층을 쌓고 있었다. 나는 바다의 시간에 맞추어 느슨하게 걸어 들어갔다. 급할 이유가 없었고 서둘러 도착해야 할 목적지도 없었다. 오히려 걸음이 늦어질수록 평소보다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걸을 때라야 비로소 시야가 넓어졌다. 나를 되돌아보았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여전히 허둥거리며 바삐 달려가고 있는 내가 눈에 밟혔다. 해야 할 일과 책임이라는 이름의 짐을 등에 업고 조금이라도 늦을까봐 매번 두려워하며 앞을 향해 질주했다. 그러는 사이에 가족과 나눌 수 있는 기억이 자꾸만 뒤로 밀려났다. 추억 하나 제대로 쌓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급히 봉합하듯 살아온 날들이었다. 도저히 짬을 낼 수 없다고 어쩌면 간단없이 자기최면을 걸어왔는지 모른다. 시간을 낼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목 주변이 쉽게 뭉치고 어깨가 결렸다. 통증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멈추라는 신호처럼 들렸다. 가족들은 운동을 해야 한다며 수시로 닦달했다. 허약해진 몸에 무리를 주지 않는 산책을 권유하며 체력을 키우란다. 그 말이 나의 곁을 맴돌다가 마침내 나를 블루로드로 이끌었다. 꽃피는 봄날에 블루로드를 걸었다. 바닷가로 내려갔더니 조약돌이 눈에 들어왔다. 뾰족한 모서리가 파도에 닳아 사라진 채 매끈한 곡선만 남아 있었다. 햇볕에 데워진 동글동글한 돌멩이를 손바닥에 올려보았더니 따뜻함이 전해졌다. 앞으로의 내 삶은 푸른 바다를 제 안에 품고 있는 조약돌처럼 모나지 않게 둥그러지기를 바랐다. /정미영 수필가

2026-04-15

요즘 한 생각들

언젠가부터 나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무던히 애썼다. 예전에는 상대방의 기분을 먼저 살피고, 혹시라도 불편해하지 않을까 신경 쓰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필요하다면 내 쪽을 조금 희생하는 것도 배려라고 믿었고, 그렇게 해야 관계가 원만하게 유지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순간들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분명 나는 배려를 했는데 돌아오는 상황은 오히려 내가 기분이 상하거나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내가 예민한 건가 싶었지만, 같은 흐름이 계속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결국 내가 놓치고 있었던 건 정작 나 자신을 제대로 배려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나조차 나를 먼저 존중하지 않으면서 타인을 더 배려하려 했던 건 모순에 가까웠다. 그 이후로는 대화에서도, 관계에서도 한 발짝 물러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감정 이입을 하거나 나를 소모시키는 방식 대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지키려 했다. 그러자 오히려 대화가 더 편해졌고 관계에서 중요한 건 얼마나 잘 맞추느냐가 아니라, 서로의 거리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감각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 관계를 지켜내기 위해 나를 먼저 소모하는 방식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것 또한 조금씩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생각과 연달아 두 번째로는, 나를 좀 더 아끼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배가 고플때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라면이나 햄버거 같은 간편한 음식들을 선택하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 번거롭더라도 직접 만들어 먹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간단한 샌드위치 하나를 만들더라도 내가 식재료를 고르고, 어떤 재료들이 들어가는지 눈으로 확인하며 먹을거리를 만든다. 직접 요리를 한다는건 단순히 식사를 한다기보다 나를 위해 한 끼를 공들여 준비하는 감각에 가깝다. 과정은 번거롭고 시간도 더 들지만 그만큼 나를 대하는 태도는 훨씬 정성스러워졌다. 몸은 여전히 피로할 때가 많지만, 이런 작은 습관들이 쌓이면서 스스로를 대하는 기준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세 번째는 일주일에 세 번은 헬스장에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피티를 받으며 배웠던 동작들을 떠올리고, 어느 부위에 힘을 줘야 하는지, 호흡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씩 짚어가며 반복한다.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게 된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만 바라보며 같은 동작을 이어가는 순간, 흐릿했던 내가 다시 또렷해지는 기분이 든다. 하루를 돌아보면 대부분의 시간은 내가 아닌 시간이나 일에 많은 신경을 쓰고 지나가는데, 운동하는 동안만큼은 그 모든 것에서 잠시 벗어난다. 몸의 변화는 크게 눈에 띄지 않더라도, 기력이나 컨디션이 달라지고 있다는 건 분명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나를 위해 시간을 쓰고 있다’는 감각이 가장 크게 남는다. 결국 운동은 단순히 몸을 위해 움직이는 행위가 아니라, 흐트러진 나를 다시 붙잡아주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감정에 조금 더 솔직해지자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다. 기분이 좋거나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그걸 그대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상대방에게도 그렇고,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좋은 감정을 말로 꺼내는 순간 그 기억은 훨씬 선명해진다. 감정을 표현하는 일은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만큼 나를 더 솔직하게 드러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좋은 일이 생기면 괜히 들뜬 마음을 눌렀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에, 일부러 들뜨지 않으려 했다. 삶을 대하는 태도는 늘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 생각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면서 현재의 감정을 줄일 필요는 없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젠 좋은 순간이 찾아오면 그걸 충분히 느끼고 표현하고 기억하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사소한 것들에도 더 자주 반응하게 된다. 상대방의 작은 변화, 지나가는 풍경, 계절의 흐름 같은 것들이 예전보다 또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런 장면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말로 꺼내다 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자연스럽게 달라지고 있다. 마치 하나의 장면을 여러 개의 렌즈로 바라보는 것처럼, 이전보다 더 다양한 감정과 순간들이 쌓이고 있다. 요즘 내가 자주 하게 되는 생각들은 거창하지 않다. 다만 그 생각들이 쌓이면서, 나는 조금씩 나를 더 잘 돌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고, 그 변화가 크지 않더라도 분명히 이전과는 다른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윤여진(시인)

2026-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