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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교육비가 남긴 교육 격차

우리나라 부모들의 자식 교육에 대한 열망은 끝이 없다. 나는 비록 못 배웠지만 자식만큼은 반드시 공부시키겠다는 부모의 마음이 결국은 사교육 열풍으로 이어진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는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한 과외열풍을 잠재우기 위해 과외를 전면금지한 7·30조치를 내린다. 공직자 자녀가 과외를 하면 공직자가 공직에서 물러나도록 강력한 법규까지 만들었지만 시중에는 암암리에 과외가 성행했다. 7·30 조치는 2000년 헌법재판소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위헌판결을 내려 2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수능에 등장하는 킬러 문항이 과외를 증폭시킨다는 여론으로 한때 정부는 수능시험 문제에 킬러문항을 배제하는 조치를 취한 적이 있다. 킬러문항이란 최상위권의 변별력을 높일 목적으로 출제되는 초고난이도 문제다. 학원의 도움없이는 풀기가 어렵다. 강남의 유수학원에 학생들이 몰려드는 이유라고도 한다.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우리나라 초중고생이 쓴 한해 사교육비 규모가 밝혀졌다. 27조원 정도다. 5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를 보여 그 원인을 두고 설왕설래다. 교육부는 초등 돌봄이나 방과 후 학교 확대 등 정책적 효과가 일부 나타난 것으로 해석을 한다. 그러나 일각서는 학령인구 감소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준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문제는 사교육비 총액의 감소에도 고소득층일수록, 학업 성취도가 높을수록 사교육비가 많이 드는 것으로 조사돼 사교육비의 사회적 폐해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성적 상위 10%가 월 66만원 쓸 때 성적 하위 20%는 월 32만원을 써 두 배 차이가 났다. 계층 간 교육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3-17

봄은 이제 오려나?

봄이 가까워 오건만 춥다. 옛날에 배운 것, 꽃샘추위. 북쪽 오츠크해에서 차갑고 습한 고기압이 발달, 남쪽으로 내려온다. 차가운 북동풍이다. 기온이 급강하, 봄에 꽃이 피기 시샘하는 추위가 닥친다. 청량리 발 평창으로, 아침 9시 37분 발. 손발 관절의 통증에 밀려 눈을 뜬다. 아직 새벽이다. 무슨 꿈을 꾸웠나. 분명 기억으로 남겨야 할 꿈이었건만, 이즈음엔 잠에서 깨면 채집이 어렵다. 작고 낮은 침대가 무슨 관짝같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살아나는 중인가. 이효석은 불과 35년 1개월 20일만을 이 세상에 머물러 있었다. 일찍 세상 떠난 작가들. 나도향, 24년 4개월 27일. 이상, 26년 6개월 25일. 김유정, 29년 1개월 17일. 백신애 31년 1개월 6일. 강경애, 38년 6일. 짧다. 인생은 짧고 예술가의 인생은 더 짧은가 보다. 더 오래 산 작가들도 얼마든지 있잖더냐고?(누가 아니랬나요?) 청량리역은 롯데백화점 뒤에 큰 성냥갑처럼 숨어 있다. 3인의 출발 예정자 가운데 1인은 그저께 밤 낙오했고, 1인은 너무 늦어 기차 ‘이음’ 출발 시각 전에 올지말지란다. 커피. 어딨을까. 이런 땐 옛날 경성역 그릴(Grill) 같은 곳에 앉아 멋진 커피를 앞에 놓았을 텐데. 없다. 현대의 역사는 사각진 모형 경기장처럼 칸막이로 나뉘어 테이크아웃 커피만 즐비하다. 습관성 두통으로 디카페인을 마신 지 몇 달째지만 효과가 없다. 부실해진 위를 걱정해서 카푸치노를 마신다. 흐린 날의 양평은 우울해 보인다. 횡성은 근심스러워 보인다. 생각보다 일찍 와 걱정을 덜어준 1인은 흰 마스크를 쓰고 눈을 감고 묵상 중. 나는 아무것도 손에 들지 않았다. 오늘은 아무것도 메고 지고 싶지 않다. 어깨 통증, 목디스크 악화가 무섭다. 기차는 산, 강, 들, 또, 들, 산, 산, 강을 반복한다. 메마르다. 산빛, 들빛이 아직 재색이다. 푸른빛이 아직 감돌지 않는다. 비가 한번 왔건만 다시 한번 와야 하나? 예년엔 어땠더라. 한 해 한 해를 더해 수십을 더해도 아직 순환주기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몸. 회의까지 시간이 남았다. 몇 번 들러본 장평에, 오늘 마침 장날이라니 들러보자 한다. 장평은 옛 교통 요지였다고 한다. 여기서 춘천도 가고 원주도 가고 제천도 갔더란다. 강릉 가는 고속철도 평창역 생기기 전만 해도 장평은 제법 큰 곳이었다 한다. 평창 장날에 장평 장도 함께 열기로 했다는데, 잘 안된단다. 불과 몇 집 안 나온 장터는 아직 겨울만 같다. 강냉이 튀긴 것에 뻥튀기 사들고 효석 아드님 이우현 선생께 갖다 드리겠다고, 장평 터미널 바로 옆 카페에서 ‘어울리지’ 않게 멋진 차를 한잔씩 하고 택시를 잡아탄다. 재단 사무실로 다들 오셔서 의사 정족수가 채워진다. 가난한 살림이라면 이우현 선생께서 화를 내시려나? 재단은 과제가 많다. 의견을 나눌수록 이효석 문학관만이라도 운영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생각뿐이다. 돌아오는 길은 시간을 앞당겨 입석이다. 서서 이것저것 급한 일들 떠올리고 창밖으로 또 산, 강, 들, 들, 강, 산을 바라보다가 어느덧 양평 지나 창량리다. 서울이다. 역사 바깥에 혼자 서서 광장 내려다본다. 한기가 훅 끼친다. 서울은 봉평보다 더 춥다. 곧 비가 다시 한번 내리려나? 그럼 정말 봄은 오려나? 꽃이 피려나?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6-03-16

불행해질 권리

헉슬리는 자신의 저서 ‘멋진 신세계’에서, 인간성이 거세된 몬드 총통에게 야만인 존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저는 안락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신(神)을 원합니다, 시(詩)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善)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불행해질 권리를 원합니다” 1932년에 헉슬리가 집필한 대표적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는 기술, 과학, 쾌락, 통제가 결합 된 미래 사회를 통한 인간의 자유와 행복에 관한 본질을 질문한 책이다. 전쟁도, 빈곤도, 갈등도 없는 공동체는 모두가 똑같이 안정적이다. 모두가 모두를 위해 존재 하고, 개인은 중요하지 않다. 문제가 생기면 행복 약 ’소마‘를 먹으면 된다. 우울도 권태도 없고, 철학도, 종교도 필요하지 않다. 공포가 아닌 쾌락을 통한 통제가 이루어지는 세계. 결국은 통제까지도 사랑하게 만든다. 자유, 비판, 고통을 포기하고 얻은 대가가 진정한 행복인지에 대하여 철학적 경고를 던진 책이다. 신세계의 미래는 어쩌면 현대판 기술주의의 세계일지 모른다. 민주주의의 종말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기술주의‘는, 사회 운영을 기존의 정치제도가 아닌 기술에 맡겨야 한다는 사상이다. 정치인이 아닌 과학자, 엔지니어, 전문가가 사회의 운영을 책임지고 이끌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사회를 정치의 영역이 아닌 기술적, 합리적 관리 대상으로 보는 정치철학이다. 사회문제는 기술의 문제이며, 전문가가 데이터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최적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본다. 기술주의는 20세기 초 산업화 과정에서 등장한 후 1930년대에는 경제를 화폐 대신 에너지 단위로 계산하자는 소위 기술주의운동까지 펼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충돌하면서 쇠퇴하였다가 디지털 기술과 결합하면서 오늘날 다시 등장하고 있다. 데이터 기반 행정, 알고리즘 정책, 인공지능 의사결정, 중앙은행의 기술관료 통치들로 대표되는 기술주의 가버넌스의 등장이 그것이다. 민주주의가 이념, 선동, 분열, 감정에 의하여 파괴되는 장면들을 우리는 수없이 경험하였다. 기술주의가 민주주의의 이러한 비합리적 요소에 의하여 흔들리지 않는다면. 경험과 전문성을 가진 엔지니어들이 과학적 합리성의 바탕에서 소모적 정치 논쟁을 뛰어넘어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문제 해결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인류는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까. 최근 ’미국을 누가 움직이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물 중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팔란티어의 피터 틸이 기술주의의 중심에 선 자들이다. 이들은 기술을 신봉한다. 특히 틸은 민주주의는 더 이상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지 못한다고 선언한다. 민주주의를 의심한다. 틸은 기술이 정치보다 중요하며, 현대 민주주의는 혁신을 느리게 한다고 주장한다. 기술이 권력으로, 데이터가 통치로, 알고리즘이 의사결정으로 이어지는 엘리트 기술주의로 전 세계를 하나의 운영체계로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보 권력의 집중과 알고리즘 통치는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와 충돌하게 된다. 헉슬리의 신세계와 틸의 기술주의가 묘하게 겹치는 시대가 왔다. 기술주의의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 내면의 병든 곳을 치료하는 약은 소마가 아니라 고통이요, 슬픔은 기쁨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공봉학 변호사

2026-03-16

라일락, 그리움 되다

3월 초순, 이웃 아파트의 정문 앞, 텅 빈 느낌이다. 아릿한 슬픔이 강물의 윤슬처럼 마음에 도진다. 지난해 이맘때 한 아침이었다. 볼일로 이곳을 지나는데, 무언가 텅 빈 느낌이 들었다. 쳐다보는 순간, “아뿔싸! 라일락이 사라졌네! 어, 겹벚꽃나무 두 그루도 없어지고···.” 절로 나온 탄식이다. 해마다 나의 봄은, 라일락 보랏빛 꽃봉오리로 찾아와 꽃피며 내뿜는 향기에 홀려 겹벚꽃 고운 자태로 마무리되었었다. 그런 봄이, 잔인한 톱날에 댕강 잘려버렸다. 슬픔의 파도가 가슴속을 헤집었다. 이웃 아파트도 우리처럼 두 동에 같은 이름을 붙여 가, 나동으로 부른다. 우리는 두 동 모두 현관이 마당으로 나 있는데, 이웃은 나동만 현관이 마당 쪽이고 가동은 반대편 길 쪽에 있다. 그러니, 이웃 가동은 마당이 있고도 없다. 베란다가 마당 쪽이니 마당이 있다고 할 수가 있고, 현관이 반대편 길 쪽이니 마당은 없다고 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이웃은 지난해 이맘때 마당 아스팔트 포장공사를 했다. 그때, 가동은 동쪽 벽 옆의 봄 전령사 라일락 나무 한 그루와 남쪽 화단의 두 그루 아름다운 겹벚꽃나무를 잘라냈다. 더해, 현관 좌우의 향나무들도 모조리 베었다. 또, 겹벚꽃 곱던 화단의 화초들도 모두 없애고 폐콘크리트 자갈로 메웠다. 황량했다. 법에 따라 만든 조경을 무참히 없앤 집단심리의 작동 현장이었다. 도대체 왜, 이웃 가동주민은 수십 년을 식구처럼 함께 살아온 라일락 나무와 그 친구들을 모조리 베내고 뽑아버렸을까. 의문과 원망이 몰아쳤다. 달려가 따져보고 싶었으나 닿지 못할 일이라 그만두었다. 나동은 조경이 온전한 걸 보면, 가동은 반장이 바뀌었거나, 말발 센 사람들의 주장이 이겼거나, 둬 봐야 나동만 좋기 때문이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작년 이맘때의 나라 꼴이 이웃 가동주민 심성에 영향을 끼쳤을지 모른다. 국민이 12.3 비상계엄 대통령탄핵 찬, 반으로 갈라져 헌법재판소의 재판을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타협보다는 막무가내 주장과 선동이 난무하여 국민 마음이 메말라가고 어두운 안개가 드리우게 했었다. 안개가 주민 분별심을 덮어 애꿎은 조경 식물에 화가 미쳤을 수도 있다.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으로 몰린 것을 국민이 다 아는데, 헌재는 탄핵을 인용했고 형사재판 1심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웃 아파트와 닮았지 싶다. 70여 년을 지켜온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침묵하는 다수 국민이 정당성을 의심하는 세력에 의해, ‘사법개혁 3법’에서 보듯 전체주의적 법제화의 길로 치닫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사실이 웬일인지 내겐,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라일락과 겹벚꽃나무와 조경 식물들을 매정하게 베어 버린 이웃의 심사와 맞닿아 보인다. 해방 이후, 걸출한 지도자들과 부지런한 국민이 함께 심고, 가꾸어, 꽃피운 위대한 선진 대한민국. 그 근간인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라일락 나무처럼 잘려 나가는 것만 같은 걱정이 파도치는 요즈음이다. 보랏빛 라일락꽃과 향기가 그립다. /강길수 수필가

2026-03-16

AI 시대에 ‘석기시대 행정’

포항시 행정의 공백이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최근 시청에 전화를 걸어본 시민이라면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일이 있다. 수차례 신호음만 울리다 끊기거나, 어렵게 연결되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늘 “담당자 출장 중”이라는 무성의한 안내뿐이다. 시청의 문턱 역시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현재 포항시청 출입은 담당 공무원과 전화로 연락해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민원을 해결하러 온 시민이 입구에서 발이 묶인 채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들여보내 달라’고 사정해야 하는 기묘한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악성 민원으로부터 공직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대다수 선량한 시민들에게는 입구에서부터 잠재적 문제 인물로 취급받는 듯한 불쾌감만 안겨준다. 행정 편의주의가 낳은 폐쇄 행정의 전형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전화 연결의 벽이 시청 입구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포항시 홈페이지 조직도 역시 시민과의 소통을 가로막는 또 다른 장벽이 되고 있다. 조직도에는 담당 공무원의 이름과 행정전화 번호만 공개돼 있을 뿐, 실제로 시민들이 신속하게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행정전화가 불통이 되면 민원인은 속수무책으로 답답함만 감내해야 한다. 담당자를 찾기 위해 몇 번이고 전화를 돌려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지만, 정작 연결되기란 쉽지 않다. 공무원의 명함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명함에는 사무실 전화번호만 덩그러니 적혀 있을 뿐 정작 긴급한 상황에서 연락할 수 있는 휴대전화 번호는 사라진 지 오래다. 담당자가 자리에 없으면 업무는 그대로 멈추고, 민원인은 연결될 기약도 없는 사무실 번호만 붙잡고 전화를 반복해야 한다. ‘공직자 보호’라는 방패 뒤에 숨어 ‘소통’이라는 기본 책무를 내려놓은 모습이다. 여기에 점심시간 일제 휴무제까지 더해지면서 시민 불편은 더욱 커지고 있다. 창구 민원 공무원들이 점심시간에 맞춰 일제히 업무를 중단하면서, 점심시간을 쪼개 시청을 찾던 직장인들은 허탕을 치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일이 반복된다. 시민의 생활에 맞춰 제공돼야 할 행정 서비스가 오히려 시민에게 불편을 강요하는 형국이다. 문제의 본질은 ‘소통의 단절’이다. 세상은 이미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로 행정 혁신을 이야기하는 시대다. 민원 서비스 역시 온라인 플랫폼과 다양한 소통 창구를 통해 시민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포항시 행정은 정작 시민과의 소통에서는 눈을 가린 채 벽을 쌓는 ‘블라인드 행정’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닫힌 출입문과 연결되지 않는 전화, 그리고 “출장 중”이라는 한마디 뒤에 숨은 행정이 계속되는 한 시민의 불만과 분노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결국 그 책임은 고스란히 행정을 향한 더 큰 심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임창희 선임기자 lch8601@kbmaeil.com

2026-03-16

자녀 사교육비에 무너지는 노후

한국의 사교육 시장 규모는 실로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지난 2024년 이미 29조2000억 원을 넘어섰고, 현재는 3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 달 평균 1인당 사교육비는 45만 원에 육박한다. 서민 가정으로선 부담스러운 금액일 수밖에 없다. 사교육 시장의 지속적인 팽창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과도한 걱정에서 시작된다. ‘남의 아이보다 학원에 덜 보내면 내 아들·딸의 성적이 떨어지고, 그렇게 되면 향후 대학 진학과 취업전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지 않을까’라는 우려. 이는 자식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하는 것이니 마냥 부모를 탓할 수만도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은 어느 지역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 사교육에 적지 않은 돈을 쓰는 건 서울이나 지방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금액의 차이만 있을 뿐. 교육부는 최근 ‘2025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서울의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66만3000원이었다. 전국적으로 봐도 45만8000이 넘었다. 사교육 참여율은 서울의 경우 82.6%였다. 지방도 이보다 크게 낮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치원부터 시작해 자녀를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보낸 학부모 가운데 89%는 어떤 형태로건 사교육비를 지출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었다. 경제적 형편에 따라 지출액은 조금씩 다르지만 10명 가운데 9명이니 한국 학부모 거의 대부분이라 봐도 무방하다. 이런 상황이니 “자녀의 사교육비가 부모의 안정적인 노후를 위협한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온다. 그렇다고 공부하겠다는 자식의 학원행을 막을 수 있겠는가? 이래저래 부모 노릇 하기 힘든 세상이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3-16

청령포와 트럼프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자 돌연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곳이 영월 청령포다. 청령포는 조선 6대 임금 단종과 얽힌 곳이다. 단종 이홍위(李弘暐)는 1452년 열두 살에 왕위에 올랐지만, 권력의 화신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내주고 1455년 상왕(上王)으로 물러난다. 그것도 잠시, 1457년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은 청령포로 유배길에 오른다. 청령포는 남한강 지류인 서강이 동-북-서쪽을 휘감아 흐르고, 남쪽은 기암절벽으로 가로막힌 경이로운 지형으로 이뤄져 있다. 단종의 유배지를 청령포로 결정한 자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탁견(卓見)의 소유자가 아닐 수 없다. 육지 속의 작은 섬으로 고립무원의 청령포를 무슨 수로 탈출할 수 있단 말인가?! ‘빠삐용’(1974)의 주인공 스티브 맥퀸이라면 혹시 모르지만. 무슨 까닭인지 나는 이미 세 번이나 청령포를 다녀왔다. 한여름에도 봄철에도 청령포를 찾았지만, 가장 깊은 상념이 몰려든 시절은 삭풍의 한겨울이었다. 서강이 꽁꽁 얼어붙어 나룻배가 아니라, 걸어서 청령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칼바람이 얼굴과 귓전을 때리는데, 노산대(魯山臺)와 망향대에서 어린 단종을 떠올리려니 눈시울이 절로 뜨거워지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것과 달리 세조는 어린 조카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김시습 평전’(2003)에서 심경호 교수는 단종의 사사(賜死)를 끝까지 주장한 이는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라고 기록한다. 단종이 세종의 아들 문종의 대를 이었으니, 단종을 죽이도록 세조를 교사한 인물은 두 할아버지였던 셈이다. 늙은이들이 무슨 연유로 혈족의 손자를 죽음으로 내몬 것일까! 이쯤에서 우리는 조선 왕조의 태생적 한계에 주목해야 한다. 이성계가 개창(開創)한 조선의 권력은 왕권과 신권(臣權)의 연합체였다. 양반 사대부의 협력에 크게 의지해야 했던 군왕들의 일방통행이 불가능했던 왕조가 조선이었다. 그런데 세종은 집현전을 통한 각종 제도개혁과 한글 창제 같은 대업을 이룸으로써 신권 강화의 기틀을 시나브로 만들어준 군왕이다. 문제는 병약한 문종이 즉위한 지 2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왕권 약화가 명약관화(明若觀火)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정치적인 변곡점에 일어난 정변이 계유정난(癸酉靖難)이다. 양녕대군은 이 정변에서 일찍이 수양대군의 편에 섰고, 훗날 효령대군이 단종의 죽음에 동참함으로써 왕권 강화에 일익(一翼)을 담당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이란 요물(妖物)에 취해 인명을 살상하고, 제 한 몸과 일가 및 특정 집단의 편익을 도모한 자들이 적지 않다. 그 와중에 희생당한 이들의 통절(痛切)한 사연도 다채롭거니와 노산군의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가슴 짠하다. 한 살 위인 정순왕후와 재회의 기약도 없이 헤어진 채 노산대에서 한없이 그녀를 기다렸다는 사연은 눈물겹게 다가온다. 요즘 세계는 전쟁광 트럼프로 인해 거대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린란드를 탐하고, 베네수엘라를 침탈한 것도 모자라 이란을 공습하여 전쟁을 일으킨다. 그러더니 다음 차례는 쿠바라고 적시한다. 이런 사태의 출발점은 권력에 도취한 자의 지독한 과대망상과 정신착란 아닐까?!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3-15

동대구로 히말라야시다

히말라야시다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히말라야 북서부와 아프카니스탄 동부가 원산지다. 상록 침엽수로 우리는 개잎갈나무라 부른다. 높이 최고 50m까지 성장하며 늘 푸른 잎과 아름다운 수형 때문에 공원과 가로수 등 관상용으로 많이 식재된다. 세계 3대 공원수로 꼽히며 인도서는 신의 나무라 부른다. 고대 이집트서는 이 나무 열매에서 기름을 추출해 미라에 발랐으며, 기름을 바른 미라는 몇백 년 가도 잘 썩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1930년대에 도입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좋아해서 1970년부터 전국 곳곳에 심어졌다고 한다. 동대구로에서 범어로터리까지 식재된 히말라야시다도 이때 심어졌다. 동대구로 왕복 10차선 도로 2.7km에 걸쳐 심어진 히말라야시다는 어느덧 대구의 상징물이 됐다. 이처럼 긴 구간에 히말라야시다가 심어진 사례도 드물지만 대구의 관문인 동대구역에 내리면 바로 마주할 수 있어 대구를 기억하게 하는 나무로 자리를 잡았다. 대구를 떠나 모처럼 고향을 찾은 이들에게는 향수마저 느끼게 한다. 겨울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는 상록의 기개는 대구시민의 꿋꿋한 기질을 연상한다. 시민들은 동대구로 히말라야시다 거리를 대구의 자랑으로도 여긴다. 동대구로를 지나가는 대구도시철도 4호선 공사가 7월부터 시작될 거로 알려진 가운데 대구의 명물 히말라야시다 가로수의 일부 훼손이 우려된다. 대구시교통공사는 대구 상징성을 고려, 가로수 훼손 범위를 최소화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정류장 일부 구간의 훼손은 불가피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50년 이어온 동대구로 히말라야시다에 얽힌 시민들의 정서를 감안한 공사가 돼야 할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3-15

일본의 ‘독신세’ 논쟁을 보며

요즘 일본에서는 이른바 ‘독신세 논란’이 가장 뜨거운 정책 논쟁 가운데 하나다. SNS에서는 “4월부터 독신세가 시작된다”는 말이 퍼졌다. 실제 독신자에게 새로운 세금이 생긴 것은 아니다. 일본 정부가 저출산 대책 재원 마련을 위해 의료보험료에 ‘아동·육아 지원금’을 추가로 얹어 징수하기로 하자 이를 두고 일부에서 ‘독신세’라는 표현을 쓰면서 논쟁이 커졌다. 제도의 구조는 단순하다. 연봉 600만엔 정도의 직장인은 매달 약 600엔가량을 추가 부담하게 된다. 금액 자체는 크지 않지만 문제는 부담 대상과 수혜 방향이 다르다는 데 있다. 자녀가 없든 자녀 양육을 마친 고령층이든 같이 부담한다. 그러나 실제 혜택은 아동수당이나 육아 지원 등 자녀 가구에 집중된다. 때문에 일본에서는 “왜 싱글이 육아 비용을 대신 부담해야 하느냐”는 불만이 SNS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설명은 다르다. 아이와 육아 가정을 사회 전체가 함께 지원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미래 노동력이며 장차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내며 연금과 복지 체계를 떠받치는 세대다. 그럴 경우 무자녀인 사람 역시 결국 그 혜택을 받게 되므로 사회 전체가 비용을 분담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논리다. 결국 이번 논쟁의 본질은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아이를 누가 키우는가.” 이 질문이다. 일본 정계에서 이 문제와 관련한 논쟁은 오래됐다. 2009년 민주당 정권은 “아이를 사회가 함께 키운다”는 철학 아래 소득과 무관하게 지급하는 아동수당을 도입했다. 반면 당시 야당이던 자민당은 “육아 책임은 기본적으로 가족이 맡아야 한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이후 정책 방향은 바뀌었다. 자민당 정권에서도 유아교육 무상화와 아동수당 확대 같은 정책이 추진됐다. 출산율 하락이 그만큼 심각해진 때문이다. 일본의 출산율은 여전히 하락세다. 2024년 일본의 합계출산율은 1.15로 역대 최저 수준이다. 정책은 확대되지만 아이는 늘지 않는 상황이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최근 ‘육아 페널티’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경제적 부담이 된다는 인식이 그만큼 확산됐다는 의미다. 일본의 ‘독신세 논쟁’은 정책 차원의 갈등을 넘어 사실상 사회계약과 관련된 문제다. 아이를 낳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성장해 사회의 노동력과 납세자가 되고 결국 연금과 사회보장 체계를 유지한다. 그렇다면 그 비용을 개인이 전적으로 부담해야 할지, 아니면 사회 전체가 분담해야 할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이 논쟁은 한국에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8명 수준까지 떨어졌다. 일본보다 훨씬 낮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저출산 정책을 지원금 확대 정도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본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저출산 정책의 핵심은 돈이 아닌 사회적 합의라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비용을 부담해야 하지만 그 이유를 국민에게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결국 일본의 ‘독신세 논쟁’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아이를 키우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아이 없는 사회를 받아들일 것인가. /김진홍 경제에디터

2026-03-15

쇼츠(Shorts)

점심 후 차 한잔을 위해 커피숍에 들어왔다. 눈에 들어오는 모두는 고개 숙여 손안의 작은 화면에 빠져 있다.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에서도, 식당에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에도 사람들의 시선은 대부분 휴대전화 화면으로 향한다. 손가락 하나로 화면을 위로 밀어 올리면 다음 영상이 나타난다. 길어야 2~3분 남짓한 짧은 영상들, 이른바 ‘쇼츠’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자연스럽게 휴대전화를 켜는 순간부터 하루가 시작된다. 출근 준비를 하며 잠깐 본 영상이 이어지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몇 초의 시간에도 또 하나의 영상이 재생된다. 밤이 되면 침대에 누워 “이 영상 하나만 더 보고 자야지”라고 생각하지만, 알고리즘은 끊임없이 다음 영상을 이어 붙인다. 그렇게 10분 또 30분이 되고 어느 순간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우리는 분명 많은 것을 본 것 같지만, 막상 무엇을 보았는지 떠올리려 하면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거의 없다. 기술의 발전으로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쓰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어느 때보다 바쁘고 쫓기듯 살아간다. 더 많은 것을 보고 강한 인상도 받지만 정작 마음에 오래 남는 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쇼츠는 즉각적인 재미와 반응을 제공하지만, 그 경험은 쉽게 내면에 남지 않는다. 화면은 빠르게 전환되고 자극은 계속되지만, 생각이 머물 여유는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웃고 놀라고 반응하지만, 영상이 끝나고 나면 묘한 공허함이 남는다. 짧은 시간 감정은 소진되었지만, 삶의 의미는 충분히 녹아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깊이 생각할 시간 없이 이어지는 정보들은 기억으로 남기보다 금세 사라지는 잔여물이 되기 쉽다. 미국의 기술 철학자 니콜라스 카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The Shallows)’에서 인터넷 환경이 우리의 사고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인터넷이 정보를 빠르게 찾는 능력은 키워주지만 깊이 읽고 오래 집중하는 능력은 약화시킨다고 말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따라 화면을 넘기는 습관 속에서 우리의 뇌는 점점 빠르게 훑어보는 방식에 익숙해지고 그 결과 한 문장에 오래 머물며 의미를 곱씹는 능력, 복잡한 생각을 차분히 따라가는 능력은 점차 약해진다. 이 빠른 흐름 속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의식적으로 속도를 늦추는 일이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독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독서는 쇼츠와 정반대의 속도를 요구한다. 문장은 즉각적인 보상을 주지 않고 의미는 천천히 드러난다. 독자는 페이지를 넘기며 멈추고 되돌아가며 타인의 생각 속도를 따라 걷는다. 이 느린 과정속에서 주의력은 다시 우리 것이 되고 기억은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인다. 결국 인문학적인 삶이란 더 강한 자극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오래 남는 의미를 선택하는 태도에 가깝다. 쇼츠의 세계에서 잠시 벗어난다는 것은 단순히 화면을 끄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이 만들어 놓은 속도에서 내려와 자신의 삶에 맞는 리듬을 다시 찾는 일이다. 모두가 더 빠르게 달려가는 시대에 잠시 멈추어 생각하고 산책하며 사색하는 행위는, 오늘날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하지만 분명한 삶의 자세일지도 모른다. /손철호 지역문화포럼 따로또같이 대표

2026-03-15

바람꽃

수은주가 빠른 속도로 올라가며 언 땅을 살살 만지고 있다. 그럼에도 차바퀴 자국이 선명한 산 초입의 길은 아직 질퍽질퍽하다. 봄은 여린 것으로 시작된다. 양지 바른 곳에는 연초록이 살짝 고개를 빼고 주변을 살피고 있다. 나무들은 줄기 끝에서 겨울을 서서히 털어내고 있지만 봄 숨결이 미처 닿지 못한 산자락이다. 계곡을 끼고 걷다 경사진 비탈길을 천천히 올랐다. 쌀쌀한 날씨에도 사람의 다녀간 흔적이 남아 있다. 여러 명의 사진작가들이 거의 바닥에 엎드려 부지런히 셔터를 누르고 있다. 부러져 누워있는 마른 나뭇가지와 낙엽 사이를 잘 살펴보면 가냘픈 하얀 꽃과 눈이 마주친다. 바람꽃이다. 바람이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부러질 것 같은 연약하고 하늘하늘한 모습이다. 무심히 지나치면 밟고 갈 수도 있어 발걸음이 갑자기 조심스러워졌다. 초봄이면 바람꽃을 보러 다녔다. 사람의 손길이 별로 닿지 않는 곳에 봄을 불러들이듯 군데군데 무더기로 피어있는 꽃. 앙증맞은 꽃잎과 가녀린 줄기 사이로 바람이 불면 온몸이 흔들린다. 겨울의 강하고 거친 추위를 유연함과 부드러움으로 뚫고 일어서는 것이 그 꽃의 매력이다. 늘 강하고 싶었다. 그래야 거칠고 풍파 많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프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남들 앞에 드러내지 않고 태연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내 목소리를 높여 생각을 관철시키는 것. 단단한 겉모습으로 틈을 보이지 않는 것이 강함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지만 작은 시련 앞에 그 강함은 쉽게 무너졌다 돌 지난 둘째를 유모차에 앉히고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다. 갑자기 쿵하는 소리에 돌아보니 유모차째로 아이가 넘어졌다. 안전띠를 묶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가 일어선 것이었다. 타일 사이 매끄럽지 않게 돌출된 부분에 부딪힌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숨넘어가게 우는 아이를 안은 내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갔다. 이마에서 피가 쉴 새 없이 흐르고 있었다. 수건으로 이마를 누르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우유를 타 입에 물렸다. 금세 수건이 빨갛게 변했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원이 어디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집을 나섰다. 4살 된 큰아이는 데리고 갈 수가 없어 경비아저씨께 부탁한 뒤 놀이터에 두었다. 집 근처에 보이는 병원으로 무작정 들어갔다. 외과가 아니었지만 부탁을 드렸다. 다른 환자분들이 양보해주셔서 바로 의사선생님은 아이의 이마를 꿰매어 줄 수 있었다. 병원을 나오는데 그 때서야 놀이터에 두고 온 큰애 걱정에 가슴 한켠이 타들어갔다. 다행히도 큰애는 잘 놀고 있었다. 그날 밤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하며 혼자 엄청 울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강함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것이었다. 역설적이게도 바람꽃은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는 모습인데 그 이름에 바람을 담고 있다. 금방 흩어지고 무너질 것 같은 모습으로 서 있지만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지 않고 바람의 세기만큼 유연하게 같이 움직인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다. 강함은 결국 단단함만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바람이 불면 같이 흔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꺾이지 않기 때문이다. 살면서 뜻밖의 말들에 상처 받고 예고 없는 이별이나 아픔에 중심을 잃을 때도 있다. 열심히 계획하고 실행하던 일들이 어그러져서 실망할 때도 많다. 그럼에도 주저앉지 않고 일어서야 한다. 연약해보이지만 아픔과 시련에 꺾이는 것이 아닌 유연함 속에 강함은 숨어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이나 단단함 커다란 성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기다린 인내심 속에 그 본질은 숨어 있다. 살아가면서 겪는 무수한 시련 속에서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 바람에 온몸이 휘어지더라도 꺾이지 않는 것. 강한 추위 속에서 고통의 긴 시간을 지나더라도 뿌리를 깊게 내리고 꽃을 피울 봄을 인내로 기다리는 것. 바람꽃이 내게 말해주는 것들이다. 진정한 강함은 유연함과 인내 속에 함께 하는 것이라고. 유난히 무리 지어 있는 하얀 꽃들이 나를 반긴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6-03-15

텍스트·이미지·음성·영상을 넘나든다 ‘멀티모달 AI의 시대’

지난주 우리는 파인튜닝과 프롬프팅, 인공지능(AI)을 내 것으로 만드는 두 가지 전략을 비교했다. AI 뇌를 바꾸느냐, AI와 소통하는 방식을 바꾸느냐의 차이였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지금까지는 주로 텍스트로 AI와 대화했는데, AI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영상까지 이해할 수 있다면 어떻게 달라질까?” 오늘은 AI가 단순히 글을 읽고 쓰는 수준을 넘어, 사진을 보고, 말을 듣고, 영상을 분석하는 ‘멀티모달(Multimodal) AI’의 영역으로 들어가 보고자 한다. AI에게 눈과 귀, 그리고 영상 감각이 생겼다 멀티모달(Multimodal)이란 ‘여러 가지 양식(modality)’을 뜻한다. 기존 AI가 텍스트라는 단 하나의 통로로만 세상과 소통했다면, 멀티모달 AI는 텍스트·이미지·음성·영상을 동시에 받아들이고 처리한다. 비유를 들자면, 지금까지의 AI는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은 채 손으로 점자만 읽는 사람과 같았다. 텍스트라는 제한된 채널로만 세상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멀티모달 AI는 눈을 뜨고, 귀를 열고, 화면까지 보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사건을 이해하고자 할 때 글만 읽고 이해하는 것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이해하는 것의 차이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대표적인 멀티모달 AI로는 OpenAI의 GPT-4o, Google의 Gemini 1.5 Pro, Anthropic의 Claude 3.5 Sonnet 등이 있다. 이들은 이미 이미지·음성·영상 입력을 모두 지원하며, 실시간 대화까지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네 가지 감각들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멀티모달(Multimodal) AI가 처리하는 네 가지 주요 입력 방식을 살펴보자. 첫째, 텍스트(Text) 즉, 문자는 여전히 AI의 가장 강력한 토대이며, 산업 전영역에서 널리 활용된다. 모든 멀티모달 처리의 중심에는 언어 모델이 있으며, 다른 양식들도 결국 텍스트로 변환되거나 텍스트와 결합 되어 처리된다. 둘째, 이미지(Image) 처리다. AI는 이제 사진 한 장을 보고 제품 불량을 잡아내고, X레이를 분석해 이상 소견을 찾아내며, 사용자가 찍은 식물 사진을 보고 병충해를 진단한다. 단순히 “이 사진에 뭐가 있어?”를 넘어, 이미지 속 맥락과 감정, 디자인의 완성도까지 평가할 수 있다. 대표적인 적용 분야는 의료·제조·커머스 등이며, 데이터 처리량은 중간 수준이다. 셋째, 음성(Voice) 처리다. AI가 사람의 말을 듣고 텍스트로 바꾸는 것(STT)은 이미 익숙하다. 그러나 최신 멀티모달 AI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억양, 감정, 말의 빠르기까지 분석한다. 콜센터에서 고객의 목소리 톤만으로 불만 수위를 감지하고 대응 전략을 바꾸는 것이 가능해졌다. 금융 및 서비스 분야에 많이 활용된다. 넷째, 영상(Video) 처리는 멀티모달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다. 영상은 ‘시간이 흐르는 이미지의 연속’이다. AI가 영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한 장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장면과 장면 사이의 맥락 변화, 행동의 흐름, 화자의 감정 변화를 연속적으로 추적한다는 의미다. Google Gemini 1.5 Pro는 최대 1시간 분량의 영상을 통째로 분석해 핵심 내용을 요약하거나 특정 장면을 찾아낼 수 있고 한다. 이 영역은 지금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교육, 보안, 스포츠 분야 등이 대표적인 적용 분야라 할 수 있다. 이들 멀티모달 AI 기능은 이미 산업현장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몇 가지 활용사례를 살펴보면 아래 예와 같다. 제조업의 이미지·영상 결합 품질 검사 자동차 부품 제조사 K는 딥러닝 기반 비전 검사 방안을 제안한 특정 스타트업의 멀티모달 AI를 생산 라인에 도입했다. 카메라로 부품 이미지를 실시간 촬영하고, AI가 미세한 스크래치나 치수 불량을 0.1초 이내에 감지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영상 분석 기능을 추가해 불량이 발생하는 공정 단계를 역으로 추적, 어느 순간 어떤 동작에서 결함이 생겼는지를 영상 흐름으로 찾아낸다. 그 결과 결함 발생 빈도가 눈에 띄게 급감하여 품질 관리 비용을 크게 절감했다. 교육 현장의 영상 분석 AI 국내 한 에듀테크 기업은 온라인 강의 영상을 멀티모달 AI로 분석하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AI는 강사의 말투, 판서 내용, 학생의 표정 변화(화상 수업의 경우)를 종합 분석해 이해도가 떨어지는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분석 리포트에 반영함으로써 해당 개념에 추가 설명이 필요합니다“라고 피드백을 해준다. 영상, 음성, 텍스트(자막) 세 가지를 동시에 처리한 결과다. 유통·커머스의 멀티모달 쇼핑 경험 국내 한 대형 쇼핑 플랫폼은 ‘사진으로 찾기’를 넘어 ‘영상으로 찾기’ 기능을 도입했다. 소비자가 인플루언서 영상에서 마음에 드는 장면을 캡처하거나 짧은 영상 클립을 올리면, AI가 영상 속 의류·소품을 인식해 동일하거나 유사한 상품을 즉시 추천한다. 검색에 소요되는 불필요한 과정을 획기적으로 줄여 쇼핑의 피로도를 낮췄다. 나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멀티모달(Multimodal) AI 활용을 처음 시작한다면 세 가지 진입점을 추천한다. 가장 쉬운 시작은 이미지 분석이다. ChatGPT나 Claude에 사진을 첨부해 “이 계약서 사진에서 주요 조항을 정리해 줘”, “공장 사진에서 안전 위반 사항이 있는지 점검해 줘”처럼 활용해 보라. 별도 투자 없이 지금 당장 가능하다. 다음은 음성 연동이다. 회의 녹음 파일을 AI에 넣어 요약·분석하거나, 고객 상담 음성 데이터에서 주요 불만 유형을 자동 분류하는 것이 대표적 활용이다. 가장 고도화된 단계는 영상 분석 파이프라인 구축이다. n8n 같은 자동화 도구와 Gemini API를 연동하면, 영상이 업로드되는 순간 자동으로 분석 결과가 문서로 저장되는 워크플로우를 만들 수 있다. 교육 기관이나 제조업체에서 특히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 멀티모달의 미래 멀티모달 AI의 진화 방향은 명확하다. 실시간성과 통합성이다. OpenAI의 GPT-4o는 이미 화상 통화 중 상대방의 표정을 읽고 감정에 맞는 답변을 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Google의 Project Astra는 스마트폰 카메라가 비추는 실시간 영상을 AI가 보면서 대화하는 ‘눈이 달린 AI 비서’를 현실화했다. 한국에서도 변화가 빠르다.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X, 카카오의 KoGPT 모두 이미지·음성 처리를 통합하는 방향으로 업그레이드 중이다. 2026년 이후에는 텍스트 AI와 멀티모달 AI를 굳이 구분할 필요조차 없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결국, 멀티모달(Multimodal) AI는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 즉 보고 듣고 읽고 느끼는 방식을 AI가 따라오고 있다는 신호다. AI에게 글만 주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이미지를 찍고, 목소리를 담고, 영상을 보여주며 AI와 협업하는 시대가 지금 열리고 있다. 다음 주에는 개발 코드(Code)를 공유하는 오픈소스 AI와 그렇지 않은 클로즈드 AI의 전략 전쟁, LLaMA, GPT, Claude가 서로 다른 길을 걷는 이유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자. /서용운 계명대 글로벌 창업대학원 벤처창업학과 교수

2026-03-15

필사즉생 각오 없는 보수, 2018년 참패 잊었나

6·3 지방선거를 불과 80일 앞둔 국민의힘 모습이 점입가경이다. 의원총회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단절을 결의하며 이른바 ‘절윤(絶尹)’ 노선을 선언했다. 하지만 장동혁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태도는 종잡을 수가 없다. 오히려 ‘절 윤’ 선언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공천관리위원회가 후보자 접수 기간을 연장했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접수를 거부했다. 혁신선대위를 구성하라는 요구다. 장 대표는 “공천은 공정이 생명”이라며 오 시장의 요구를 일축했다. 여기에 강성 보수 성향의 유튜버 전한길씨가 반발하고, 이정현 공관위원장마저 사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민심은 차갑게 식어간다. 국민의힘이 방향을 잃었다. 선거를 앞둔 정당의 최우선 가치는 ‘승리’다. 그런데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 하는 ‘패거리 싸움’에 매몰돼 있다. 현실은 냉혹하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3월 2주 차)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지지도는 47%, 국민의힘은 20%다. 지지율 차이가 갑절을 넘겼고, 국민의힘 비호감도는 70%에 달한다. 민주당은 39%다. 비호감도는 거꾸로 국민의힘이 갑절이다. 이대로라면 광역단체장 17곳 중 15곳을 민주당이 휩쓸었던 2018년 지방선거의 참패가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가 단순한 기우로 들리지 않는다. 위기의 근원은 명확하다.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는 노선과 특정 지역에 고립된 ‘TK당’으로의 퇴행이다. 문제는 ‘보수의 심장’이라는 대구·경북(TK)조차 예 전 같지 않다는 점이다. 갤럽 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전국적으로 66%를 기록 중이다. 보수 세가 강한 TK에서도 49%, 부산·울산·경남(PK) 은 57%에 이른다. 특히 TK 지역의 무당층 비율은 31%로 전국 평균(28%)보다 높다. 이는 전통적 지지층마저 국민의힘에 실망해 등을 돌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맹목적 지지’가 아닌 ‘냉철한 생존’을 고민하고 있다. 결국 ‘장동혁 노선’은 실패했다. 양대 정당 체제에서는 어차피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절대적 지지층’이 있다. 승부는 중도층에서 난다. 그런데 중도층 지지율에서 민주당(51%)과 국민의힘(12%)의 격차가 회복 불가능한 수준이다. 장 대표의 간판으로는 지금의 국면을 타개할 동력이 없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최 소한 선거 기간만큼이라도 중도층을 흡수할 수 있는 새로운 얼굴과 전략으로 경쟁해야 한다. 이런 국면이 계속되면 중도층마저 민주당 지지로 돌아서고, 보수 지지층 가운데도 지리멸렬한 국민의힘에 실망해 투표를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 선거 이후에 다시 내부 경쟁을 하더라도, 지금은 ‘간판’을 바꿔 달고 사즉생의 각오로 임해야 할 때다. 극우 층에서 얼마나 더 표를 얻으려는 것인가. 어차피 이길 지역에서 이긴 정도로 지도부가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면 후안무치한 일이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세력은 스스로를 ‘폐족(廢族)’이라 부르며 고개를 숙였다. 그 처절한 성찰 끝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대구와 경북을 제외한 전국 모든 광역단체장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다. 지금 보수 정당이 본받아야 할 것은 당시 그들이 보여준 처절한 자기반성이다. 기득권을 움켜쥔 채 입으로만 쇄신을 외치는 것은 지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에서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必死則生, 必生則死)”라고 했다. 지금 국민의힘 지도부가 보여주는 모습은 ‘나만 살고 당은 죽어도 좋다’는 식의 아집이다. 중앙정부를 포기한 대구·경북만의 고립된 승리는 상처뿐인 영광일 뿐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경제와 시도민에게 돌아온다. 오세훈 시장의 요구가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보수 유권자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라. 선거에서 완패한 뒤 지도부가 물러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차라리 선거 전 일시 후퇴하여 전열을 가다듬는 것이 보수 전체를 살리는 길이다. 선거 결과를 보기 전에는 못 물러난다는 고집은 결국 ‘다 같이 망하자’는 소리다. 진정한 지도자라면 나보다, 내 패거리보다, 국민과 지역의 미래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자신을 던지는 용기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6-03-15

천만 관객 영화의 이면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연예계 마당발로 소문난 장항준 감독의 작품이라 그런지 500만 관객 돌파 시점부터 매일 같이 관련 뉴스가 쏟아져 나왔다. 유명인들의 SNS는 물론이고, 각종 유튜브 채널과 언론들이 한국 영화의 저력이라 치켜세운다. 영화업계는 극장가 회복의 신호탄이라 반기는 분위기다. 좋은 영화의 흥행 자체는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천만 관객 이면에 드리운 그림자를 지나치기 어렵다. 과연 천만 관객이라는 지표는 한국 영화 산업의 희망을 담보하는가. 과거 천만 영화는 한국 영화 생태계 전체의 활력을 상징했다. 2003년 ‘실미도’를 시작으로 총 스물다섯 편의 작품이 천만고지를 넘으며 산업적 활력을 과시했다. 당시 관객들은 극장을 찾아야만 영화를 접할 수 있었고, 이는 제작·배급·상영이 균형을 이루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졌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로 사정이 달라졌다. 이제 천만 관객 돌파는 영화 산업의 번영이라기보다 오히려 그 이면의 심각한 불균형을 드러내는 신호에 가깝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스크린 독과점이다. 대형 상업영화가 개봉하면 멀티플렉스는 순식간에 상영관을 그 영화에 집중시킨다. 이는 관객의 자율적 선택이 반영된 결과라기보다, 애초에 선택지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구조다. 한 작품이 전국 스크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일이 반복되면, 다른 영화들이 설 자리를 잃는다. 관객들은 다양한 영화를 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영화 산업은 몇몇 초대형 흥행작 중심으로 재편된다. 그렇게 영화의 다양성은 고사된다. 여기에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OTT 미디어 플랫폼의 급성장은 영화 산업의 제작과 소비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영화 제작자로서는 안정적 투자처이자 새로운 기회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를 반기는 관객들도 많다. 많은 작품의 극장 상영 기간이 눈에 띄게 짧아졌다. 아예 극장을 거치지 않고 온라인에서만 개봉하는 작품들도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극장은 관객 감소와 유지 비용 상승이라는 이중 압박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지방 중소 도시의 극장은 이미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최근 몇 년 새 문을 닫은 극장도 적지 않다. 살아남은 곳도 운영 여건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지난 연휴, ‘왕과 사는 남자’를 보러 간 지역 극장은 언론 보도와 달리 한산했다. 직원 2명이 검표와 청소, 팝콘을 판매하는 일까지 하고 있었다. 상영관 내부는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관객이 외투를 벗지 못한 채 영화를 봐야 했다. 한겨울에 외투를 입은 채 두세 시간을 버텨야 하는 극장, 수익 구조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는 징후다. 한편에서는 또 하나의 천만 영화 달성을 한국 영화계의 성과인 양 자축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영화 생태계의 기반인 지방의 극장들이 무너지고 있다. 몇 편의 흥행 영화만 살아남고, 중간 규모 영화는 사라지며, 지방 관객은 점점 더 열악한 환경으로 내몰리는 구조라면 그것은 지속 가능한 산업이라 할 수 없다. 영화 산업의 진정한 경쟁력은 다양한 영화가 공존하고 전국 어디서나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작품들과 만날 수 있는 생태계에 있다. 천만 영화 이면에는 사람이 있다. /주재원 한동대 교수

2026-03-12

꽃샘 추위와 봄 사이

우리 속담에 “봄 추위에 장독 깨진다”는 말이 있다. 봄이 오면 금방 따뜻해질 것 같은 날씨인데, 꽃샘추위가 느닷없이 찾아와 장독이 얼어 깨진다는 말이다. 봄철에 찾아오는 늦추위가 매섭다는 뜻이다. 비슷한 속담으로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말도 있다. 3월 중순이다. 하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여전히 날씨가 차갑다. 겨울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추위인 꽃샘추위가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다. 꽃샘추위란 겨울철 내내 우리나라를 지배하던 시베리아 기단의 세력이 약화되면서 기온이 상승하던 중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이상 저온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보통 개나리, 벚꽃이 피기 직전에 나타난다. 이른 봄에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한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겨울이 지나가는 것에 대한 미련과 봄에 대한 열망을 짧게 그리고 정서적으로 잘 표현해 시인들에게 꽃샘추위는 매력적 소재다. 시인들은 봄에 대한 기다림, 혹은 겨울의 심술로, 때로는 겨울을 밀쳐내고 등장하는 봄의 생명력에 비유한다. 한 시인은 “봄은 그냥 오지 않는다”는 말로 고난 뒤에 찾아오는 봄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또 다른 시인은 “봄으로 가는 마지막 시련···. 조금만 더 버티라”면서 봄을 애타게 기다리는 심정을 호소한다. “날씨가 오두방정을 떤다”, “빵떡 어멈의 심술 같다”는 말로 꽃샘추위의 변덕을 표현하기도 한다. 기상청은 9일간 일 평균 기온이 5도 이상 오르고 다시 떨어지지 않은 첫날을 봄의 시작으로 본다고 한다. 올해 꽃샘추위는 3월 말까지 반복적으로 등장할 것 같다는 소식이다. 꽃샘추위라 움츠릴 필요는 없다. 꽃샘추위와 봄은 지척지간에 있어 꽃샘이 곧 봄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3-12

‘수질오염총량관리제’가 열쇠

1991년 발생한 낙동강 페놀 오염 사고는 우리 지역사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 사건 이후 낙동강을 둘러싼 상·하류 지역 간의 취수원 갈등은 수십 년째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그러나 깨끗한 물을 마시고 싶어 하는 하류 주민과 지역 개발권을 보장받으려는 상류 주민 사이의 감정적 골을 메우기 위해 도입된 것이 바로 ‘수질오염총량관리제’다. 2000년대 초반, 오염물질 배출 농도만 규제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하천이 수용할 수 있는 오염물의 ‘총량’을 관리하는 과학적 해법이 제시된 것이다. 현재 이 제도는 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BOD)과 총인(T-P)을 중심으로 기술적·제도적 안착을 이뤄냈다. 하지만 기후 변화와 산업 구조의 변화로 인해 총유기탄소(TOC)나 미량유해물질에 대한 관리 필요성이 커짐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도권 안으로 완전히 끌어들이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수질오염총량관리제’란 쉽게 말해 하천에 ‘오염물질 가계부’를 쓰는 것과 같다. 하천이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한계치를 먼저 정하고, 그 범위 내에서만 오염물질 배출량을 할당하는 방식이다. 이 제도의 최대 강점은 ‘환경과 개발의 조화’를 과학적으로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오염물질을 줄인 만큼 지역 개발을 허용하므로, 상·하류가 감정싸움 대신 객관적인 수치로 소통하며, 안전한 취수원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그러나 약점도 명확하다. 관리 대상 물질이 확대될수록 고도의 모니터링 기술과 행정 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측정 장비 설치와 운영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어야 한다. 단순한 산술적 계산을 넘어선 고도의 정책적 의지와 비용 부담이 수반되는 셈이다. 관련 해외 사례를 보면 시사점이 크다. 미국의 TMDL(Total Maximum Daily Load)은 7만 개 이상의 수체에 대해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적용하며 유역 기반의 통합 관리를 실현하고 있고, 일본은 도쿄만 등 폐쇄성 수역에서 총량 규제를 통해 가시적인 수질 개선 효과를 거두었다. 한편, 국내에서도 한강과 금강 유역에서 성공적인 정착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대구·경북이 이 제도를 선도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확한 오염원 데이터 확보가 필요하다. 또한, 기존 물질에만 안주하지 말고 TOC나 미량유해물질에 대해서도 측정망을 확충하고 시범 사업을 운영하는 등 단계적인 확대 적용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규제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지역의 물 안보를 선제적으로 지키는 방어막을 치는 과정이다. 결국 ‘수질오염총량관리제’는 대구경북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핵심 열쇠다. 안정적인 취수원 확보와 상·하류 상생은 구호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염물질 총량관리를 고도화하여 과학적 신뢰를 쌓을 때 비로소 갈등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 이제는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TOC와 미량유해물질까지 아우르는 포괄적인 ‘수질오염총량관리제’ 체계로 진화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가 선제적으로 이 도전에 응답한다면 낙동강은 갈등의 물줄기가 아닌 상생과 번영의 젖줄로 거듭날 것이다. 깨끗한 물을 지키는 과학의 힘이 우리 지역의 미래 경쟁력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6-03-12

남자의 길을 없앴다

여자 얼굴이 반반하면 집구석 망친다고 어머니는 항상 말씀하셨다. 딸 하나 없이 아들만 삼 형제를 둔 엄마는 사내들이 돌아다니면서 어떤 사고나 치지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한 것 같다. 싸움판에 끼어들어 주먹질하다가 잡혀갈까 싶어 우려하셨고 ‘야시 같은’ 여자에게 넘어가 제 앞길 못 갈까 봐 볼 때마다 매사 행동거지 조심하라는 말을 잊지 않으신다. 아마도 아들만 둔 엄마의 심정을 그대로 표현하셨으리라.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삼 형제가 다 연애결혼을 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과학적 분석을 통해서만 아는 것이 아니다. 아버진 끝까지 가족의 안위를 위해 돈 벌기를 거부하셨고, 없는 집 자식이 결혼하기엔 연애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었기에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것이다. 특히 돈 없는 집 장남이 결혼하기란 허우대만 멀쩡해서 되는 것은 아니기에 선택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좁았다는 말이 맞겠다. 집사람은 아직도 자기 얼굴이 반반해서 선택받았다고 알고 있는데 굳이 반박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나도 오래 살고 싶다. 어머니가 생각하는 당신 며느리들의 미적 기준인 ‘반반함’은 없었나 보다. 근근이 형제들이 밥은 굶지 않고 살고 있으니 말이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의 뜻은 왕이 여자 치마폭에 빠져 나라가 망하는 것도 모를 정도의 헤매게 하는 뛰어나게 아름다운 여자를 이르는 말이다. 의자왕을 정신 못 차리게 한 가희, 숙종 때 장희빈, 연산군 때 장녹수가 그 대표적인 주자로 보면 되겠다. 중국에선 호수에 얼굴을 비추자,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을 잊어 가라앉았다는 서시, 하늘을 보는 순간 기러기가 날갯짓하지 못해 떨어졌다는 왕소군, 보름달도 부끄러워 구름 뒤로 숨는다는 초선, 꽃 중의 꽃 모란꽃도 스스로 고개를 숙인다는 양귀비를 내세운다. 중국 사람들 ‘뻥’이야 세상이 아는 이야기인지라 대충 감안 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문학적 형상화만큼은 인정할 만하다. 이런 반반한 여자는 집구석이 아니라 나라까지 ‘망조’들게 만든다는 전례를 강하게 전해준다. 살면서 반반한 얼굴만 보고 결혼해서 파탄이 난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때 어머니가 왜 ‘반반한 여자’를 조심하라고 한 건지 이해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전에는 아버지가 분명 사고 치신 전력이 있어 그 화가 자식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청빈한 생활의 대표적 주자라 술집에 작부에게 갖다줄 돈이 없었고, 고질병인 잠꼬대로 인해 낮에 있었던 일을 고스란히 토해내는지라 여자로 인한 추문 하나 없이 아주 깔끔한 삶을 사셨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본받으라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는 이유이다. “남자는 풍류를 즐길 줄 알아야 돼.” 흔히 남자의 조건에서 주색잡기에 능해야 한다고 배웠던 ‘남자의 길’은 어디에서도 대놓고 이야기도 못 할 지경이 되어버렸다. 반반한 여자 찾다가 미투에 걸리거나 패가망신 한 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반적 추세가 이젠 ‘여존남비’의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괜히 옛날이야기를 지금 떠벌리고 다니면 사람 꼴만 우습게 되는 세상인지라 난 큰 결심을 했다. 아들을 낳지 않겠노라고. 그래서 아들이 없다. 남자의 길을 없애버렸다. /노병철 수필가

2026-03-12

모포줄다리기 유래담에 담긴 의미

바닷가의 조그마한 마을인 포항시 남구 장기면 모포 2리(칠전 마을)에서는 오래 전부터 매년 추석에 이른바 ‘모포줄’로 명명된 줄로 줄다리기를 한다. 모포 줄다리기의 유래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 장기현감의 꿈에 뇌성산에서 한 장군이 용마를 타고 내려와서 장군정에서 우물을 마시고 하는 말이 “이곳은 만인이 밟아 주면 마을이 번창하고 태평하며 재앙이 없을 것이다.”하고 사라졌다. 이 일이 있은 후로 땅을 밟아 주기 위해서 줄다리기를 시작했고, 현몽한 날이 추석 다음 날인 8월 16일(음)이기에 매년 이 때가 되면 줄다리기를 하게 되었다 한다. 이 줄다리기의 유래담에는 모포리에서 줄다리기를 시작한 동기가 잘 설명돼 있는데, 그 내용을 분석해 보면 몇 가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줄다리기의 시작은 마을을 편안하게 하고, 번창시키겠다는, 즉 고을 수령이 민심 수습의 차원에서 기획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모포는 태풍이나 해일 등 자연재해에 매우 취약한 해안 마을이다. 유래담의 내용을 미루어 보아 아마 어느 해 극심한 자연재해를 입었고, 큰 어려움에 직면한 모포를 비롯한 장기 고을 백성들의 민심 수습의 필요를 느낀 현감이 자신의 현몽을 내세워 줄다리기를 제의하면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본다. 둘째, 현몽의 주인공이 현감이라는 점은 모포줄다리리가 처음부터 이 마을에 한정되지 않고 장기 고을 전체의 축제로 시작했음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실제로 모포 줄다리기는 모포리 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장기면민, 북쪽의 구룡포읍, 남쪽의 월성군 주민들도 참여하는 대규모 축제였다. 셋째, 장군과 용마(龍馬)의 관계이다. 장군(장수)과 용마는 아기장수 전설에 많이 등장하는 모티프로 아기장수가 나면 장수를 태워 다닐 용마가 반드시 등장하게 돼 있다. 용마는 용의 머리에 말의 몸을 하고 있다는 전설상의 동물로 장차 장수가 타고 다닐 신성한 말이다. 그러나 보통 아기장수 전설에서는 보통 아기장수가 죽게 되고, 용마도 어디로 사라진다는 슬픈 내용을 담고 있다. 포항시 신광면 냉수리 마주마을 전설에 등장하는 아기장수는 태어나자마자 선반 위에 올라가기도 하고, 벽을 타는가 하면,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 있었다고 한다. 이에 놀란 어머니가 친지들과 의논하니, 이는 분명 아기장군이며, 민가에서 장군이 나면 역모죄를 뒤집어쓸 염려가 있다며 싹이 자라기 전에 달라야 한다고 했다. 어머니와 가족들은 할 수 없이 아기가 잠든 사이 배 위에 콩 두 섬을 올려 눌러 죽이게 된다. 그러자 마을 뒷산에서 용마가 사흘간 울다가 날아갔다. 갓난아기가 선반 위에 오르거나 날개가 달려 있다는 것은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는 비범한 능력을 지녔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런 비범한 능력을 가진 아기장수가 태어나지만 그 비범함 때문에 뒷감당을 두려워한 민중들은 아기장수를 결국 죽이게 되고, 주인 잃은 용마가 울면서 그곳을 떠난다는 비극적인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모포줄다리기의 유래담에서는 아기장수의 출생담은 생략된 채 성인이 된 장수가 용마를 타고 산 아래로 내려와 현감에게 땅을 밟아 주라는 계시를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설화가 여느 아기장수 이야기에서처럼 장수의 죽음과 용마의 이거(移居)라는 비극적 결말이 아닌 현감의 꿈을 통해 고을의 번영과 태평을 기원하는 형태로 전개된 것은, 이 모포 줄다리기를 장기현감이 기획하면서 설화도 윤색됐을 가능성을 짐작하게 한다. 이 유래담에서 뇌성산 장군은 이 마을 공동체 신앙의 신격(神格)으로 이해된다. 마을을 지켜 주는 뒷산인 뇌성산에서 내려왔고, 마을의 번영과 안녕을 위한 처방까지 해 주었기 때문이다. 장군이 산 아래로 내려와서는 장군정의 물을 마시는데, 장군정은 오래전부터 동제 때 제수용으로 사용되어 온 신성한 물로 신격만이 마실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후에 장군의 계시에 의해 줄다리기를 하게 되고, 줄다리기를 위해 만든 줄이 영구 보존되면서 마을제당의 신체(神體)로 인식되어 매년 동제 때, 그리고 줄을 꺼내는 줄제 때 제사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뇌성산 장군은 칠전마을의 골매기로 줄로 형상화되어 있는 셈이다. 넷째, 땅을 밟는다는 말의 민속적 의미이다. 땅을 밟아 주면 좋다는 의미에서 시작된 세시풍속의 대표적인 예는 지신밟기다. 지신은 집터와 가정을 지켜주는 신을 말하며, 지신을 밟는다는 것은 집 안 곳곳에 좌정하고 있는 지신이 함부로 발동하지 못하게 하는 동시에 풍물과 축원 등으로 지신을 위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지신밟기는 고사소리와 풍물놀이를 통하여 지신을 진정시킴으로써 마을과 가정의 평안을 빌며 마을과 각 가정을 축제적 공간이 되게 한다는 데 목적을 둔다. 땅을 밟는 세시풍속으로 대부분의 마을에서 행하고 있는 지신밟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마을에서 굳이 줄다리기를 하게 된 것은 줄다리기에는 마을 풍물패에 의한 지신밟기를 비롯한 다양한 놀이가 포함되고, 많은 인원이 동원되는 점에서 땅을 밟을 수 있는 보다 효과적인 수단으로 인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박창원 동해안민속문화연구소장

2026-03-12

K-기후환경과 수소에너지

고등학교 1학년 생물 시간이었다. 식물에 필요한 10대 영양소를 외워야 했지만 이름도 많고 순서도 복잡해 좀처럼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구레나룻이 멋졌던 생물 선생님께서 칠판 앞에서 외우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CHON SPeaK Mg Ca Fe.” 그리고 웃으며 덧붙이셨다. “촌사람들은 마카다 철을 말한다.” 포항제철소가 형산강 뚝방 넘어 빤히 보이는 포항의 송도동에서 자란 필자는 그 말을 금방 외울 수 있었다. 그리고 사십육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문장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참 묘한 일이다. 교실에서 시험을 위해 외웠던 한 줄의 암기법이 오늘날 기후위기와 산업대전환의 시대를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가 되었기 때문이다. CHON SPeaK Mg Ca Fe. 탄소(C), 수소(H), 산소(O), 질소(N), 황(S), 인(P), 칼륨(K), 마그네슘(Mg), 칼슘(Ca), 철(Fe). 식물의 몸을 이루고 생명활동을 떠받치는 핵심 원소들이고 C.H.O는 탄수화물과 지방을, C.H.O.N은 단백질을 이룬다. 세상에 존재하는 원소가 아무리 많다 해도 생명의 기본 재료는 결국 이런 원소들이다. 사람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인간도 동물계의 존재이며 먹이사슬을 통해 식물과 연결되어 있다. 결국 우리 몸을 이루는 성분 역시 식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인류 문명을 움직여 온 석탄과 석유 같은 화석연료 역시 탄소와 수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유기물의 축적물이다. 산업혁명 이후 공장과 자동차, 발전소와 도시의 불빛까지 인류 문명의 대부분은 탄소를 태워 움직였다. 탄소는 산업문명을 성장시킨 원소였지만 이제는 기후위기의 중심에 선 원소가 되었다. 지구 평균기온의 상승, 극단적인 폭염과 폭우, 거대한 산불과 태풍의 증가 등 기후 변화는 이미 우리 일상 속에서 체감되고 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경제, 산업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왔다. 오늘의 기후위기는 더 이상 환경 문제만이 아니다. 산업과 에너지, 무역과 안보까지 동시에 흔드는 문명의 전환 문제다. 세계는 지금 탄소를 중심으로 산업 질서를 다시 짜고 있다.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제 철강과 시멘트, 알루미늄 같은 산업 제품은 가격과 품질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생산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했는지가 곧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 변화는 단순한 환경 규제가 아니다. 새로운 경제질서의 등장이다. 탄소를 많이 쓰는 산업은 점점 불리해지고 탄소를 줄이는 기술을 가진 국가와 기업이 앞서 나가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기후정책이 산업정책이 되고 에너지정책이 무역전략이 되는 시대다. 산업의 경쟁력과 국가의 경제전략이 기후와 에너지 정책과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탄소 다음의 에너지는 무엇이 될 것인가. 여러 답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현실적인 후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수소다. 수소는 연소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대신 물을 만든다. 저장과 운송이 가능하고 발전과 모빌리티, 산업 공정까지 폭넓게 활용될 수 있다. 그래서 수소는 단순한 연료가 아니라 탄소중립 시대의 산업 원료이자 에너지 매개체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철강산업에서 수소의 의미는 더욱 크다. 현재의 제철공정은 석탄을 이용해 철광석에서 산소를 제거하는 방식인데, 이 과정에서 막대한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철강은 전(全)세계 제조업의 기반산업이지만 동시에 대표적인 고탄소 산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등장한 기술이 바로 수소환원제철이다. 기존에는 탄소가 철광석의 산소를 제거했다면 앞으로는 수소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부산물은 이산화탄소가 아니라 물이 된다. 철을 만들면서도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 개선이 아니다. 산업 문명의 연료와 재료 체계를 함께 바꾸는 일이다. 탄소 문명에서 수소 문명으로 건너가는 산업 대전환의 상징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포항의 의미가 다시 떠오른다. 포항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상징적인 철강 도시이다.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한국 산업 성장의 상징이었고 철강은 자동차와 조선, 건설과 기계 산업을 떠받치는 국가 경제의 기둥이었다. 그러나 지금 포항은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정부는 포항을 수소특화단지로 지정해 발전용 연료전지 산업을 중심으로 수소산업 집적화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영일만 산업단지 일대는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으로 지정되어 수소 기반 발전과 지역 전력 공급을 결합하는 새로운 에너지 체계를 실험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산업단지 지정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수소특화단지가 수소산업의 씨앗을 심는 일이라면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은 그 산업이 실제 전력 시스템과 연결되어 작동하도록 만드는 토대다. 수소와 전기, 제조업과 전력시장, 산업전환과 지역경제가 한 도시 안에서 함께 움직이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처럼 제조업 비중이 높은 나라에서 철강산업의 탈탄소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포항이 수소환원제철과 수소연료전지, 분산에너지 산업의 거점으로 성장한다면 그것은 한 도시의 변화가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 구조의 방향 전환을 의미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전환은 기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소 공급망과 전력 인프라, 산업 투자와 사회적 합의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탄소중립은 선언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제도와 시장, 산업과 지역사회가 함께 움직일 때 비로소 현실이 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K-기후환경’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환경을 지키는 일이 산업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산업경쟁력을 만드는 일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기후와 에너지, 산업과 환경을 따로 떼어 볼 수 없는 시대다.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적인 제조업 역량을 갖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추진방향이다. 탄소 중심의 낡은 산업구조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수소와 재생에너지, 저탄소기술을 중심으로 새로운 산업질서를 준비할 것인가. 돌이켜보면 생물 시간에 외웠던 “촌사람들은 마카다 철”이라는 말 속에는 이미 생명의 원소와 산업 문명의 재료가 함께 들어 있었다. 탄소는 우리가 지나온 시대의 연료였고 수소는 우리가 건너가야 할 시대의 에너지이며 철은 그 전환의 한복판에 서 있는 문명의 재료다. 철의 도시 포항은 이제 과거의 산업도시를 넘어 수소와 분산에너지의 실증 도시로 변화하게 된다. 탄소의 시대를 넘어 수소와 청정(淸淨)전력의 시대로 건너가는 대한민국 산업대전환의 최전선이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기후와 산업, 환경과 에너지가 만나는 교차로에서 대한민국은 선택해야 한다. 탄소의 시대를 천천히 연장할 것인가, 수소의 시대를 확실하게 준비할 것인가. 그 선택의 현장에 오늘도 포항의 철이 서 있다.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2026-03-11

꽃젓갈 이성자의 발효라는 인내의 시간, 혹은 삶의 태도

신념이 과장되면 교조적으로 되기 쉽지만 객관적 결과로 증명이 된다면 가치의 소금꽃이 핀다 새벽별, 낮달의 빛을 띤다 존재는 썩으면 흙으로 돌아가지만 정신은 앙스트불뤼테의 경우도 있다 썩어 일상의 이익과 향기가 되는 것은 시간의 힘, 지켜보는 자의 깡다구가 필요한, 화학적이지만 인간적인 가역반응(可逆反應)을 자체적으로 형성시키는 것, 응축된 시선과 감각의 일관성의 문제에 집중한 결과는 젓갈도 와인이 되는 소박한 기적이 되어 먹고 사는 일에도 잠재적 기여를 한다. 곡강천이 마침내 먼 길에 이르면 바다가 마중을 나온다 도리어 바다에서 내륙으로 아름다운 역류(逆流)를 한다. *앙스트불뤼테 : 전나무는 자신의 생존이 마지막에 다다랐다고 판단이 되면 필사의 노력으로 다시 꽃을 피우며 되살아난다는 생물학적 용어, 젓갈의 그러한 내재적 미학(內在的 美學)을 담보하여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필생(畢生)의 작업임을 감당하지 못하면 흔한 사람이 되고 만다. ..................... *일가(一家)를 이룬 사람의 말은 그저 담담하다. 두려움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그 긴 세월의 역경의 과정을 마음속에 잘 정리해 두었기에 복기(復記)할 필요도 없어 체화된 기억으로 반응하기에 흔들림이 없다. 젓갈 만드는 그 과정은 구도(求道)의 자세와 닮았다. 그저 평범하면서 가장 낮게 오래 빛난다. 이성자 대표는 자신과 삶에 이긴 사람이다. 오래 기다리는 사람이 최우의 강자다. 승리자에게 모든 것을!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6-03-11

보이지 않는 이정표

갈림길 앞에서 잠시 멈춘 날이 있었다. 영덕도서관 글쓰기 첫 모임에서 카페를 운영한다는 분을 만났다. 시골집을 고쳐 카페로 만들었다고 했다. 수업을 마친 뒤 나는 그녀가 알려준 ‘시골카페’를 찾아갔다. 길을 따라가다가 갈림길을 만났다. 이정표에 평해와 영해가 적혀 있었다. 내가 가야할 곳은 영해 방면이었지만 내비게이션은 평해 쪽으로 가라고 알려주었다. 잠깐 망설이다가 영해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길은 점점 좁아졌고 산길로 이어졌다. ‘아, 길을 잘못 들었구나.’ 차를 돌려 다시 갈림길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평해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뜬금없이 영해휴게소로 들어가라는 안내가 나왔다. 생뚱맞게 느껴졌지만 조금 전에 길을 헤맸던 순간이 떠올라 그냥 들어갔다. 휴게소만 있는 줄 알았는데 건물 옆에 예주문화예술회관이 보였다. 그쪽으로 가다보니 마을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다. 골목길을 따라가자 드디어 ‘시골카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담한 카페 안은 밝은 온기로 가득했다. 그녀가 그린 그림을 음미하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내 눈길을 끈 것은 한쪽 벽에 붙어 있던 편지였다.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여학생 두 명이 남긴 글이었다. 힘들 때마다 찾아와 위로를 받았고 대학생이 되어 생활이 바쁘더라도 한 번씩 찾아오고 싶다는 감사의 마음이 적혀 있었다. 학생들에게 ‘시골카페’는 길 위의 이정표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 삶의 좌표를 잃어 마음이 지쳤을 때 여기로 돌아오고 싶다는 글을 보니, 어쩌면 이곳은 조용히 서 있는 이정표 같은 곳인지도 모른다. 비바람 속에서도 제자리를 지키며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는 그 존재만으로도 길을 오가는 사람에게 위안이 된다. 내 삶에도 이정표 같은 사람이 있었다. 친정아버지는 한때 교통경찰이었다. 아버지는 눈보라가 몰아쳐도 한여름 열기가 아스팔트를 달궈도 언제나 맡은 자리에 서 있었다. 사람과 자동차의 흐름을 손짓 하나로 정리하며 모두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길 위의 질서를 지켰다. 학창 시절,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곤 했다. 아버지는 내가 진로 문제로 고민하던 날 조용히 말씀하셨다. “길은 많다. 중요한 건 네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싶은 가다.” 아버지의 말씀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지금은 생전에 아버지가 계셨던 자리가 비어 있지만 삶의 갈림길에서 내 걸음이 위태롭게 흔들릴 때마다 보이지 않는 이정표를 만난다. “여기서 잠시 멈춰. 그리고 네가 가야 할 길을 생각해.” 아버지의 목소리는 세월이 흘러도 바람에 쓰러지지 않는 철제 이정표처럼 내 마음 한켠에 서 있다. 내가 길을 잘못 들어 잠시 헤맬 때도 결국은 다시 방향을 찾게 해준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을까. 누군가의 마음이 잠시 머물러 숨을 고르고 자신의 마음을 정리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시골카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아버지처럼 잠시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게 묵묵히 품을 내어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오늘, 보이지 않는 이정표 하나를 마음속에 세워 둔다. 글·사진/정미영 수필가

2026-03-11

소녀가 전쟁을 멈추는 법

한 소녀가 전쟁을 멈추게 하는 아름다운 동화가 있다. 스페인의 인권활동가 조르디 시에라 이 파브라가 쓴 ‘병사와 소녀’이다. 전쟁터에서 총알을 눈앞에 둔 어느 병사 앞에 소녀가 나타난다. 그 소녀는 자신을 병사의 죽음, 이를테면 저승사자라면서 아저씨는 그동안 속아왔다고 말하며 병사에게 총을 쏜 적군도 만나게 해주고 양쪽 진지의 장군과 장교들이 회의하는 장소도 데려간다. 적군 병사는 명령 때문에 억지로 총을 쏜 후 울고 있었고, 장군과 장교들은 전투에서 죽어 나가는 병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쟁을 통해서 얻는 이익을 따지고 있었다. 이것을 본 병사가 깜짝 놀라 펄쩍 뛰어오르자 총알이 비껴나가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병사는 평화운동에 평생을 바친다는 이야기다. 마이클 잭슨도 그의 노래 ‘Heal the World’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당신이 충분히 그 삶에 충분한 관심을 가진다면, 당신과 나를 위한 더 나은 곳을 만들어요.’라고 하면서 적과 나 모두를 위해 전쟁을 멈추라고 말한다. 모든 동화가 그렇듯이 그야말로 환상적인 이 이야기를 어린이 그림책으로 만났을 때 마이클 잭슨의 노래보다 더 신선했다. 이제 이런 책이 나오다니, 이런 의식이 퍼져나가면 앞으로 희망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후에도 전쟁은 끊이지 않았다. 최근만 해도 지난달 21일 파키스탄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여 현재 파키스탄 사람 60명, 아프가니스탄 사람은 230여 명이 죽었다고 한다. 이들은 2026년 이란 전쟁에 가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들의 전쟁은 쉽게 종식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했다. 그 첫날, 이란 남부 미나브의 샤자레 타이 초등학교가 미사일 공격을 받아 175명이 사망한 것을 비롯하여 3월 9일 현재 이란의 사망자 수는 1200명에서 3000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비해 미군은 7명이 사망했다. 그렇다고 미국과 이스라엘이 현격하게 우세한 상황도 아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러우 전쟁처럼 장기전으로 갈 것이라고 점치는 사람이 많다. 문제는 최근의 전쟁은 그림책의 병사처럼 총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총으로 싸우면 서로 마주칠 일이라도 있지만, 이제는 탄도 미사일을 쏘아대고 드론을 날려 폭격한다. 그야말로 멀리서 버튼 하나로 수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버튼 전쟁’이라는 말이 비유가 현실화된 시대가 되었다. 우리가 2026년 이란전쟁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유가 상승 등 경제적 피해를 직접 당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지 전쟁 자체에 대한 비판은 아니다. 이란 국민조차 전쟁 초기에는 미국의 공습을 반겼다고 한다. 장기간 계속된 이란의 신정 체제를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2025년 격렬했던 이란 내 반정부 시위가 그 증거다. 이제 와서 보니 동화의 작은 상상력은 이상주의자 인권활동가의 허황된 상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모든 세계 시민이 병사와 소녀처럼 평화의 상상을 계속한다면 전쟁이 끝날 수 있을까? /유영희 인문학자

2026-03-11

자율신경이 무너지면 나타나는 몸의 신호

우리 몸은 의식하지 않아도 심장 박동, 혈압, 호흡, 소화, 체온 등을 자동으로 조절한다. 이런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자율신경이다. 자율신경은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균형을 이루면서 몸을 안정된 상태로 유지하게 만든다. 하지만 스트레스, 과로, 수면 부족, 계절 변화 등 다양한 이유로 몸과 정신에 부하가 지속되면 자율신경의 균형이 쉽게 무너진다. 자율신경이 흔들리면 특정 장기 하나만 아픈 것이 아니라 몸 여기저기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증상이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진료실에서 자주 보게 되는 자율신경 이상 신호를 살펴보자. 첫 번째는 어지럼증이다. 특별한 뇌 질환이 없는데도 머리가 멍하고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 반복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자율신경이 혈압과 혈류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나타날 수 있다. 특히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어지럼이 심해지는 경우가 많다. 어지럼은 두통과 동반되는 경우도 많고 환자는 두통과 어지럼을 헷갈리기도 한다. 이때는 집중력 저하가 동반되며 학생들은 이유 없이 공부가 안되고 성적이 떨어지기도 한다. 두 번째는 두근거림과 가슴 답답함이다. 검사를 해보면 심장은 정상인데도 심장이 빨리 뛰거나 가슴이 조이는 느낌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있다. 이는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흥분하면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자율신경 증상이다. 세 번째는 소화 불량과 속 불편함이다. 위와 장의 운동 역시 자율신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자율신경 균형이 깨지면 위가 더부룩하고 식후에 속이 불편하거나 트림이 잦아지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네번째는 수면 문제이다. 밤이 되어도 교감신경이 계속 활성화되어 있으면 잠들기 어렵고 자다가 자주 깨게 된다. 잠을 못자 힘들고 괴로움을 호소하며 잠을 충분히 자도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 지속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증상들은 검사를 해도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환자 본인도 답답함을 느끼고 치료 방향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증상이 복잡하고 명확히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인 방식의 접근으로는 정확한 치료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한방에선 예전부터 이런 증상들에 강점이 있었으며 이는 지금도 유효하다. 환자의 증상을 세밀히 관찰하고 처방을 하여 환자 체질에 맞는 한약을 복용시키면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들이 안정된다. 수면 소화불량 가슴 두근거림 어지럼증 이 모든 증상들이 다 같이 조금씩 좋아진다. 그리고 한약 치료와 함께 약침치료나 상부경추를 풀어주는 추나를 병행하면 훨씬 빠르고 안정적인 치료가 가능하다. 한약과 자율신경 약침치료만으로도 공황장애나 불안장애 증상들이 많이 개선되고 삶의 질이 향상된다. 또 몸이 약간 힘들 정도의 운동도 꾸준히 하면 많은 도움이 된다. 천천히 걷는 것도 좋지만 슬로우 조깅같이 몸이 약간 힘들 정도의 운동을 하면 머릿속이 비워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머릿속이 비워질 때는 명상과 비슷한 효과가 나타나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때 자율신경의 균형과 함께 몸의 건강도 회복되니 이렇게 약간 힘든 운동을 병행하는 것도 효과적이니 각자의 몸에 맞게 운동도 하는 것이 좋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6-03-11

문제는 청년 정책이다

포항 등 지방도시가 인구감소를 겪는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청년들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으로 떠나는 현상은 이제 거의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보인다. 통계는 늘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지역의 청년인구는 격감하고 고령인구는 증대한다. 지방소멸이라는 말이 이제는 과장이 아니다. 젊은이들이 떠나면 도시는 빠르게 생기를 잃는다. 도시 소음이 사라지고 아기 울음소리가 줄어들며 학생 수 감소로 문닫는 학교가 늘어난다. 청년의 감소는 곧 도시의 미래가 공허해지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를 지나치게 ‘인구정책’의 틀 속에서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출산장려금이나 각종 지원금을 더하거나 빼는 식의 정책으로만 접근한다. 마치 인구가 행정의 계산표 위에서 움직이는 숫자인 것처럼 취급한다. 청년은 숫자가 아니다. 젊은 일상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청년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문제의 구조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도시가 그들의 필요와 기대를 채워주지 못하면, 그들은 떠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자리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꿈을 펼칠 기회가 보이지 않는 도시에서 청년은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 교육환경과 보육시스템도 중요하다. 결혼과 출산을 고려하는 세대에게 핵심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청년주거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합리적인 가격의 주택과 안정적인 정주환경이 없으면 청년은 지역에서 삶의 기반을 만들기 어렵다. 일자리와 주거, 보육과 교육, 문화와 생활환경까지 삶의 조건 전반이 수도권보다 뒤처진다면 청년의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다. 질문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청년이 왜 떠나는가’가 아니라 ‘청년이 무슨 까닭으로 이 도시에 머물러야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청년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 출발점이다. 삶의 조건을 청년의 눈높이에서 다시 설계하고, 젊은이들에게 도시의 활력과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게 사람이 모이기 시작하면 도시의 흐름이 달라진다. 도시발전의 순서도 청년정책에 열쇠가 있다. 사람을 모으면 기업이 온다. 기업은 사람이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인재가 모이고 활력이 살아있는 도시를 기업은 선택한다. 지방도시의 인구문제는 머리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의 철학과 방향의 문제다. 사람을 모으는 도시가 될 것인가, 아니면 사람이 떠나가는 도시로 남을 것인가. 도시의 미래는 그 선택에 달려 있다. 사람을 모아야 기업이 온다. 청년을 모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일자리와 문화정책, 교육과 보육정책, 주거환경과 정주여건을 뿌리부터 살펴야 한다. 청년의 숨결이 함께 하지 못하면 도시는 미래를 담보할 길이 없다. 50만 미만으로 떨어진 포항의 인구수를 걱정할 게 아니라, 젊은 숨소리가 모이도록 활기를 회복해야 한다. 포스코가 아니라도 내일을 꿈꿀만한 일터가 늘어나야 하고, 아이를 낳아서 길러낼 환경이 확보되어야 하며, 재미와 웃음거리가 넘치는 거리를 조성해야 한다. 한때 신명나던 경제적 활력을 되찾아야 하고, 스토리와 콘텐츠가 풍성한 문화 저변을 불러와야 한다. 인접한 해양자원과 가까운 문화거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부분도 반성해야 한다. 포항에 젊은이가 모일 기초 여건은 존재하지 않는가. 지혜를 모아 도시를 살려야 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6-03-11

고액 체납자의 명품들

체납 발생일로부터 시작해 1년이 경과한 국세 미납액이 2억 원 이상인 사람을 ‘고액 체납자’라 부른다. 국세청은 이들의 이름과 주소, 체납된 세금액을 공개하고 있다. 적지 않은 현금을 이곳저곳에 숨겨놓거나, 위장이혼 등의 방법으로 부동산을 타인 명의로 옮기고는 세금을 내지 않고 버티는 악질적이고 상습적인 체납자의 모습은 TV 화면을 통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국세청은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걸쳐 4개월 동안 고액 상습 체납자를 추적해 124명으로부터 81억여 원에 이르는 재산을 압류했다. 현금과 귀금속, 고가의 시계와 가방, 그림 등 압류품의 종류는 다양했다. 지난해 12월. 이재명 대통령은 고액 체납자 문제를 거론하며 ‘체납자들에게 압류한 물건을 지체하지 말고 강제 매각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에 따라 앞서 언급된 압류품들은 공개를 거쳐 곧 공매될 예정이다. 첫 번째 공매엔 세칭 명품가방과 지갑 35개, 시계 11개, 예술품 9점, 고급 주류 110병 등 총 166점이 나온다고 한다. 이것들은 현재 서울 강남구 신사동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에르메스와 샤넬 등의 가방과 롤렉스와 까르띠에 시계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공매품 전시장을 찾는다고 한다. 언급된 가방과 시계는 대부분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이르는 비싼 것들이다. 고액 체납자들은 그런 걸 살 돈은 있지만 세금 낼 돈은 없었던 것일까? 압류된 고액 체납자의 값비싼 명품 공매 소식을 접한 평범한 서민들의 심정은 어떨지 궁금하다. 이상스레 낯이 뜨겁고 가슴 속에서 부아가 치밀 것 같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3-11

바람이 불어오는 곳

봄이 올 거라는 기대감을 가볍게 무너뜨린 3월의 바람은 한겨울의 것보다 매섭고 날카롭다. 옷장 깊은 곳에 넣어두었던 겨울옷을 다시금 꺼낸다. 발열 기능이 있는 이너를 챙겨입고 옷깃을 올린다. 안감에 보드라운 털이 가득한 부츠를 신어야만 현관 앞에 설 용기가 생기는 날씨. 좌우로 살을 베어내는 바람에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되는 요즘 같은 날이면, 내 머릿속엔 희고 거대한 풍력 발전기가 떠오른다. 작년 이맘때 나는 미국에 있었다. 8일간 서부를 가로지르는 짧고 굵은 여행 중이었다. 무언갈 보고, 먹고, 음미하는 시간보다 버스에 실려 이동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었다. 여행이 아니라 이동하기 위해 미국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창밖으로 비슷한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미국 서남부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일대에는 모하비 사막이 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사막을 달리다 보면 관광객이 우글우글 모여 있는 거대한 라스베이거스 사인이 보인다. ‘LAS VEGAS’라고 적힌 붉은 글씨는 사막과 잘 어울린다. 사막 한가운데에 세워진 세계적인 관광 도시, 초대형 호텔과 휘황찬란한 카지노, 시선을 사로잡는 분수 쇼까지, 이 도시에 입성한 순간 ‘사막’이라는 단어는 머릿속에서 지워진다. 내가 지금 밟고 있는 땅이, 이 풍경이 사막의 것을 빌려왔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자연은 감쪽같이 지워진다. 새벽이 되어도 꺼지지 않는 불빛, 공기 중에 맴도는 대마초 냄새, 카지노 기계 앞에 앉아 눈을 부릅뜬 사람들. “여긴 바람이 안 부네.” 동행인 Y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 바람이 꽤 쌀쌀한데?” 그런 바람이 아니라고 대답하려다 그만두었다. 라스베이거스에는 바람이 온전히 바람으로 존재하는 순간이 없었다. 식물의 몸체를 뒤흔들고 형체 없는 뱀처럼 모래 사이를 지나다니는 바람, 낯선 냄새를 묻히고 돌아다니지 않는 바람, 그런 게 없어서 이 도시에는 정이 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튿날 짧은 환락을 뒤로 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또다시 사막, 사막, 그리고 사막이 이어졌다. 비슷한 풍경이 반복될수록 잠이 쏟아졌다. 눈을 떠도 감아도 나는 여전히 사막 위에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버스 안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가이드가 창밖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처럼 혼곤한 잠에 빠져있던 사람들이 부스스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꼬리가 긴 기차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1마일이 넘을 정도로 긴 길이 덕분에 ‘마일 트레인’이라 불리는 화물 기차였다. 규모에 놀랄 새도 없이, 기차 뒤로 풍력 발전기가 끝도 없이 늘어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모하비 사막 산등성이를 가득 채운 풍력 발전기에 나는 압도당했다. 5천 대가 넘는 거대한 발전기가 동시에 회전하는 모습이 경이롭게 느껴졌달까. 모하비 사막은 세계에서 풍력 발전기를 설치하기 가장 좋은 곳으로, 미서부의 풍력 발전기는 캘리포니아의 날개라고 불린다. “멋지죠? 저 풍력 발전기 한 대에 한화로 2억 원이 넘어요.” 가이드의 목소리에 뒷자리에 앉은 이가 헉, 하고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장관이네요, 여행 내내 유독 목소리가 컸던 아저씨 한 분이 외쳤다.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말 그대로 정말 장관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풍력 발전기에 대해 아는 건 아주 단편적인 정보뿐이었다. 자연 바람을 이용해 친환경적인 데다 미관상으로도 아름다운 발전기. “그런데 마냥 멋진 것만은 아니에요. 풍력 발전기는 하얗지만, 그 아래는 아주 새까맣거든요.” 가이드의 차분한 설명에 누군가가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풍력 발전기는 새들의 무덤이에요. 풍력 발전기가 내는 소음이 새들의 경로를 방해하고 혼란을 일으키죠. 또 강력한 바람에 휩쓸려 발전기에 부딪히는 사고를 만들어내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해요. 친환경을 표방하지만, 실상을 알면 결코 친환경적이라고 할 수 없어요. 인간에겐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는 바람이지만, 새들에겐 죽음의 바람인 셈이죠. 그렇게 생각하면, 바람이 불어오는 저 언덕이 더는 장관처럼 느껴지지만은 않을 거예요.” 버스 안에 작은 침묵이 감돌았다. 그때 누군가 손을 들었다. “저 발전기는 나라에서 관리하는 겁니까?” 가이드는 고개를 저으며 저 발전기는 모두 개인에게 분양했으며, 현재 발전기 주인들은 여생을 편히 즐길 수 있을 만큼의 수입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돈을 뿌리는 바람이네요.” 질문을 던진 사람이 덧붙이자 가이드 역시 웃으며 농을 던졌다. “빚을 내고서라도 분양받았어야 하는 건데요.” 모두가 한마음으로 발전기 주인들을 부러워했다. 나는 커튼을 치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여긴 바람이 너무 많이 부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양수빈(소설가)

2026-03-11

그래도 봄은 온다

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봄이 오는가 싶더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 잔 생각이 나서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친구 집에 놀러 갔다. 궂은 날씨지만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져서 모처럼 봄맞이 음식을 준비했다. 먼저 나름 자신 있는 돼지고기 수육. 앞다리살을 사서 된장과 커피, 통후추를 푼 물에 통마늘과 함께 푹 삶았다. 그렇지만 술상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바로 봄나물. 보통은 수육을 맛있게 먹기 위해 채소류를 준비하지만 이날만큼은 오히려 봄나물을 맛있게 먹기 위해 수육을 삶았다. 달래, 미나리, 냉이를 사다가 차가운 물에 정성스레 씻었다. 달래와 미나리는 그냥 적당한 크기로 숭덩숭덩 썰었고 냉이는 끓는 물에 아주 살짝 데쳤다. 달래는 간장을 베이스로 한 양념에 무쳤고 냉이와 미나리는 각각 된장과 고추장 양념으로 맛을 냈다. 마치 호리병처럼 작았던 친구의 딸은 내일이면 초등학교 3학년이 된다고 했다. 새로운 학급에서 어떤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게 될지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등교하던 새학기 첫날이 생각났다. 그날의 감각은 포근한 듯 하면서도 조금 서늘한 것이 봄 날씨와 닮았었다. 그때로부터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싶기도 하고 친구 딸이 벌써 저렇게 컸나 싶기도 해서 참 세월 무섭게 흐른다는 얘기를 하며 준비해간 안주에 소주를 마셨다. 친구 딸이 자기가 쓴 동화 자랑하는 소리와 세 살 배기 아들이 엄마 찾는 소리로 조금 소란한 가운데 은은한 취기가 돌았다. 대리기사님이 운전해주시는 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제법 추웠다. 집에 도착해서 아들과 아내를 먼저 올려 보내고 편의점에 들러 마실 것을 좀 샀다. 아파트 통로 문을 여는데 뜻밖의 기척을 느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앙증맞은 고양이 두 마리의 동그란 눈 네 개가 두려운 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랑 한참 같이 살다가 지금은 아버지 댁에서 나 대신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우리 삼봉이와 같은 치즈색 털이 예쁜 두 녀석은 아마도 따뜻해진 날씨를 믿고 밖으로 나섰다가 갑자기 만난 비와 추위를 피하려 아파트 안으로 숨어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로서는 녀석들이 무거운 유리문을 열지 못해서 거기 들어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계속 거기 있을 작정인지를 알 수 없었다. 밖으로 내보내 주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문을 닫고 거기 하룻밤 머물도록 두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사이 한 녀석이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둘을 생이별 시킬 수는 없으니 하는 수 없이 그냥 문을 열어둔 채로 집에 돌아왔다. 다음 날은 아들이 새로 다닐 어린이집의 입학식에 다녀왔다. 아직 아기 냄새를 지우지 못한 채 엄마 아빠 품에 안겨있는 아기들에게서 어제 먹었던 봄나물 내음이 나는 것 같았다. 짧은 행사를 마치고, 이번에도 아내와 아들을 먼저 집으로 올려 보내고 편의점에 들러 점심으로 먹을 라면을 사서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거기서 반가운 이들을 만났다. 바로 어제 만난 고양이 두 녀석. 이번에는 어둡고 습한 지하실 계단이 아니라 아파트 화단에서 드러누웠다가 벌떡 일어나 장난을 치다가를 반복하며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너무나도 평화롭고 다행스러운 장면이었다. 어제를 잘 견디고, 그보다 압도적으로 길었을 겨울을 잘 견디고 따스한 오늘을 맞이한 녀석들이 대견했다. 사실 내게도 겨울은 순탄치 않다. 더위를 많이 타고 추위를 안 타는 나에게 겨울은 원래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었는데, 공연과 강연 같은 행사가 생활에 있어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 뒤로는 여러모로 견디기 어려운 계절이 되어 버렸다. 매년 같은 계절에 같은 상황을 맞이하지만 일 없는 한 철의 초조함에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봄이 오면 날이 따뜻해지는 것이 당연하듯이 나를 찾아주는 연락도 오기 마련일 텐데, 올해는 작년 만큼 벌이를 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불안해지곤 한다. 그런데 나보다 혹독했을 그 추운 계절을 어떻게든 이겨내고 저렇게 한가로이 놀고 있는 고양이들을 보니, 나의 사정도 어떻게든 다시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여유가 조금은 생겨나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봄은 오는 것이다. 겨우내 온 세상에 별 일이 다 있었다. 오늘 뉴스에도 온 세상의 힘든 이야기가 가득했다. 지난번에 칼럼에 쓴 것처럼 장사가 되지 않아 힘든 시간을 보냈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나처럼 언제나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불황기를 힘겹게 버텨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어떻게든 봄은 왔다. 언제 그랬냐는 듯 떠나버린 겨울 추위처럼 모두의 힘든 이야기들도 멀리 떠나버렸으면 좋겠다. /강백수(시인)

2026-03-11

[정치 에세이] ‘尹 어게인’과 ‘카고(화물)신앙’

제2차 세계대전 때 남태평양 멜라네시아의 원주민들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통조림과 옷가지 등 각종 물자에 경탄했다. 미군 수송기가 섬에 상륙한 미군들을 위해 투하한 생필품 ‘카고(Cargo·화물)’였다. 전쟁이 끝나고 주둔했던 군인들이 섬을 떠나자 물자도 끊겼다. 원주민들은 나무로 비행기 모형을 만들고 숲에 가짜 활주로를 닦았다. 횃불을 들고 행진하며 기도를 올렸다. 미군들이 했던 행동을 그대로 흉내 내면 다시 하늘에서 화물이 내려올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인류학자들이 말하는 ‘카고 신앙(Cargo Cult)’이다. 외부에서 나타난 압도적인 힘과 풍요를 경험한 사회에서 종종 나타나는 현상이다. 스스로 원인을 이해하거나 만들어내기보다 그 힘이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믿음이다. 한국의 미륵 신앙과 동학(東學)의 ‘후천개벽’ 사상도 현실의 고난을 초월적 사건이나 새 질서가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점에서 카고 신앙과 구조가 비슷하다고 해석 한다. 문제는 이 기묘한 인류학적 장면이 21세기 한국 정치에서도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2017년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성조기를 든 태극기 집회가 등장했을 때 일부 외신은 이를 ‘21세기형 화물 숭배’라고 해석했다. 2025년 윤석열 탄핵 국면에서도 태극기와 성조기의 조합은 다시 힘을 얻기 시작했다. 요즘 극우 진영 일각에서는 더 노골적인 기대가 떠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가 항공모함을 타고 와 한국 정치를 뒤집을 것이라거나, 이재명 정권이 외부의 압력으로 곧 무너질 것이라는 식이다. 어떤 인사는 “지방선거도 못 치른다. 여름 전에 정권이 날아간다”고 장담한다. 문제는 이 믿음의 구조다. 스스로 정치 세력을 조직하고 시민을 설득해 권력을 바꾸겠다는 현실 정치의 노력 대신, 외부의 절대적 힘이 상황을 대신 뒤집어 줄 것이라는 기대에 의존한다. 마치 멜라네시아 원주민들이 가짜 활주로를 만들고 하늘을 바라보던 장면과 닮았다. 지난 3월 9일 의원총회에서 국민의힘 의원 107명 전원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완전한 단절’을 결의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정치적 후폭풍 끝에 당이 마침내 ‘윤석열’이라는 과거의 활주로를 닫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 국민의힘이 과거의 ‘활주로’를 닫고 스스로 비행기를 띄울 수 있을지, 아니면 또 다른 ‘카고 신앙’의 활주로를 만들 것인지.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6-03-11

‘징계정치’ 도구가 된 국민의힘 윤리위

‘친윤 스피커’로 불리는 장예찬 국민의힘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 지난주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수성하면 장동혁 대표는 2028년 총선까지 연임할 것이다. 그러나 수성에 실패하더라도 휴지기를 가진 뒤 당 대표로 재선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국민의힘 당원들 기류를 감안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장 대표에 대한 당원들의 신임이 그만큼 강하다는 주장으로 들린다. 장 대표 임기는 2027년 8월까지이며, 제23대 총선은 2028년 4월 12일 치러진다. 이날은 마침 한국갤럽이 장 대표 취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한 국민의힘 지지율(21%)을 발표한 날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에 대한 민심이반 경고등이 곳곳에서 켜지고 있지만, 친윤계 내부에선 국민의힘이 지방선거 이후에도 장 대표 중심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형성돼 있는 것이다. 장 부원장의 말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어떻든 2028년 총선에서 장 대표가 다시 공천권을 쥘 수 있다고 믿는 부분이다. 국민의힘 윤민우(54) 윤리위원장이 현재 사분오열된 당 내분 속에서도 비주류에 대한 ‘징계 정치’를 계속할 수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해가 가능해진다. ‘윤민우 윤리위’는 새해들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를 전격 제명한 데 이어, 친한계인 김종혁 전 최고위원과 배현진 의원에 대해서도 중징계를 했다. 배 의원에 대한 징계는 법원이 나서서 “윤리위가 재량권을 남용한 중대한 하자가 있다”면서, 본안 재판 때까지 징계조치를 정지하라는 판결까지 했다. 당내 비주류인 친한계에 대한 당 윤리위 징계가 계속되자 국민의힘 소장파 의원들 사이에서는 ‘윤리위가 당권파의 사냥개 노릇을 한다’는 비판도 쏟아진다. 일부 의원은 “당 윤리위가 지도부 입맛대로 움직이며 정적을 제거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성명서를 냈고, 지난 9일 열린 의원총회에서는 윤리위원장 사퇴요구도 나왔다. 현재 국민의힘 윤리위에는 한동훈 전 대표의 대구 서문시장 방문에 동행한 의원들과 장동혁 대표의 사퇴를 요구한 서울시당 전·현직 당협위원장 24명에 대한 징계안도 상정돼 있는 상태다. 만약 윤민우 위원장이 이들에게 중징계를 내릴 경우 당 내분은 폭발할 수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8일까지 지방선거에 나설 후보 공천 신청을 받았지만, 수도권(서울·경기·인천) 광역단체장 공천 신청자는 거의 없었다. 별다른 당내 경선 흥행없이 현역 시·도지사들로 선거를 치러야 하는 초라한 상황이 된 것이다. 최근에는 전국적으로 국민의힘을 탈당하는 지방의원들도 속출하는 모양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 지지율이 바닥까지 떨어지고 있어서 생기는 현상이다. 앞으로 당 지도부가 ‘징계정치’를 계속하며 당을 늪으로 몰아가면 대구·경북 민심도 민주당 쪽으로 돌아설 수 있다. 이미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힘과 민주당에 대한 TK 지지율이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난다. 장동혁 지도부가 TK를 자신들의 안방이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6-03-11

깡통계좌 공포

모 증권회사가 2년 전 자산 30억원 이상 보유한 고객을 상대로 그해 증권시황 전망과 투자 계획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응답자의 33%가 사자성어 거안사위(居安思危)라는 말에 동의했다. 거안사위는 중국 고서 한비자에 나오는 말로 “평안할 때도 위험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전국시대 재상 관중은 제나라 환공을 도와 패권을 차지했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군사력을 축소하지 않고 전쟁이 없을 때 무기를 갈고 병사를 훈련시켜야 다음 위기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이 말을 증시에 대입하면 안정적인 시장 상황에도 미래에 닥쳐올 위기에 대비하라는 뜻이다. 설문 응답자 중 시황의 불확실성을 예측한 응답자들은 새옹지마(塞翁之馬)와 설상가상(雪上加霜)을 그해 사자성어로 꼽았다. 이는 투자의 길흉화복은 늘 바뀌면서 등락을 거듭할 것이라는 말로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이란 전쟁으로 국내 주식시장이 오르막 내리막 요동을 치고 있다. 빚내 주식을 투자한 개인의 빚투 공포도 확산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의하면 주식 투자를 위해 돈을 빌린 신용거래융자 잔고가 5일 현재 33조원으로 역대 최대치라 한다. 중동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주가 등락에 따라 증권사의 반대매매가 감행될 소지도 높다. 이럴 경우 투자자들은 원금 회수는 고사하고 깡통계좌를 찰 판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주식의 본질은 불확실성을 전제로 한 기업의 가치 투자에 있다. 지나친 욕심과 성급함은 낭패를 부를 수 있다. 교활한 토끼는 자신이 숨을 굴을 세 개 파놓고 있다는 교토삼굴(狡免三窟)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