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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밤을 쓰고 싶지 않아

대부분 나의 작업은 해가 진 이후에 이뤄진다. 어둠 속에서 조명을 켜고 모니터의 빛과 함께 밤을 이겨내곤 한다. 어떻게든 마감을 끝낸 뒤 창밖을 보면 먼동이 트며 세상이 눈을 뜨고 있다. 모두가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 나는 잠에 든다. 내가 밤에 일한다고 하면 대개 사람들은 “역시 새벽 감성으로 쓰나 봐!”한다. 어떤 의미로는 보편적인 작가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 나도 일조하고 있는 셈이다. 하나 정말로 나는 밤에 일하고 싶지 않다. 피곤하기도 하고, 새벽 감성 또는 밤이 주는 영감이란 것을 별로 믿지 않는다. 뇌도 일하기 싫은 시간일 텐데 머리도 안 돌아가는 상황에서 갑자기 번쩍 떠오른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건 높은 확률로 내가 헛것을 본 거다. 밤에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대체로 단순하다. 낮에 시작하더라도 해가 지기 전까지 끝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은 할 수 없어도 정해진 패턴이 있어야 할 텐데. 나는 오랫동안 그 패턴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작품 하나를 쓰고 나서도 부족한 면이 자꾸 보여서 붙잡고 있기 일쑤다. 나를 옭아매는 지독한 강박으로부터 나는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요즘은 그런 밤 생활의 영향이 몸으로 오는 것 같다. 피부에 자꾸 트러블이 난다. 소화가 잘되지 않는다. 머리가 무겁다. 물리적인 피해가 커지기 시작하자 내 안에서 비상 신호가 울렸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이렇게 살다간 골로 갈 거야. 더군다나 몸이 아프니 마음까지 아프다. 마감 하나를 끝내도 내부에 쌓인 우울감과 피로감이 사라지지를 않는다. 정말 이대로는 곤란하다. 가벼운 것부터 실천해 보기로 한다. 해가 중천에 떠 있기 전에 눈을 뜨는 것. 그리고 암막 커튼을 걷는 것. 지금까지 의도적으로 빛을 차단해 왔다면 이제는 빛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일 때다. 다음은 씻고 컴퓨터 앞에 앉지 말고 바로 나갈 것. 이른 시간에 카페든 도서관이든 작업실이든 향해야 한다. 나의 방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방에 있는 동안에는 시간 감각을 제법 잃어버린다. 오후 두 시든 새벽 두 시든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내가 움직이는 것에 따라 시간이 흐를 따름이다. 그걸 바꾸려면 방법은 하나다. 빛이 있는 다른 세계로 가야 한다. 실용적인 일이 바로 되지 않는다 해도 괜찮다. 빛 사이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꽤 중요하다고 느낀다. 당장 뭐가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스스로 환기가 되는 기분이다. 밤에는 잠들어야 하니 커피 대신 따뜻한 카모마일 차를 마신다. 그리고 오늘 할 일을 정리한다. 문서로 한 번 정리하고 나면 하루의 윤곽이 조금은 보인다. 다음날의 일은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오늘치 일을 빨리 끝낸다고 해서 다음날 일을 미리 건드리는 건 에너지의 과용이 될 수 있다. 내일도 같은 에너지로 해낼 수 있단 보장이 없으니 할 수 있는 만큼, 가능한 만큼만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쓰기 시작한다. 이때 쓰는 것은 작품이 아니다. 일종의 가벼운 스케치 혹은 크로키에 불과하다. 문장을 정돈하지 않는다. 단어를 고르지 않는다. 그랬다간 생각이 감속하고 만다. 거의 무용한 것들로 페이지가 채워지더라도 그렇게 한다. 폴 발레리의 말을 다시금 마음에 새긴다. “작품을 결코 완성할 수는 없다. 단지 어느 시점에서 포기하는 것뿐이다.” 그 말대로 나는 포기하는 법을 익히기로 한다. 이게 더 좋은 대안은 아니었을까? 이런 고민은 내일로 미룬다. 생각이 많아지면 다시 잠들지 못한다. 그리고 내가 집착하고 있는 그 작품은, 최선을 다한다 해도 오늘 완성될 운명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이쯤에서 포기한다. 펜을 내려놓고 모니터를 꺼야 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나의 노력은 일주일도 가지 못했다. 여러 마감이 하루에 겹친 탓이다. 낮에 시작했지만 저녁에 전부 끝낼 수는 없었고 다음 낮을 보고서야 마감을 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것도 변명이다. 미리 시간 배분을 해서 우선순위대로 착착 처리하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낮에는 아무 생각도 안 났어. 나 자신에게 이런 변명만 하고 있다. 밤의 생활이 계속된다는 게 무섭다. 무섭게도 이 칼럼 또한 밤에 쓰고 있다. 칼럼을 끝낸 후에는 바로 다음 일이 기다리고 있다. 자고 일어나서 하고 싶지만 마감이… 마감이 아침까지다. 지금 잠들면 그 일을 해낼 수가 없다. 내일까지만 이렇게 하고 모레에는 다시 낮에 일해야지. 아마도 이 계획은 또 금방 실패할 것이다. 작심삼일이어도 좋다. 밤과 내가 친해지지 않을 때까지 이 시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낮의 빛이 언젠가 나를 지켜줄 거라 믿으면서.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6-04-29

국민의힘은 ‘장동혁 소유물’이 아니다

지난주 국민의힘 지지율이 15%까지 떨어진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장동혁 대표의 리더십 위기가 임계점을 넘어섰다. 지방선거 판세에 적신호가 켜진 주요 후보들이 노골적으로 “장 대표 체제로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말이 나오는 단계에 이르렀다. 서울을 비롯해 상당수 광역단체장 후보들은 “장 대표가 가만있어 주는 게 선거를 도와주는 유일한 길”이라며 중앙당 선거 지원을 거절하는 분위기다. 중도층 외연 확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광역단체장 후보들의 이런 움직임에도 장 대표는 전혀 흔들리지 않고 ‘마이웨이’를 고수하고 있다. 그가 ‘도피성 외유’ 논란을 일으킨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후 내린 첫 지시는 한동훈 전 대표 부산 보궐선거를 돕는 진종오 의원에 대한 진상 조사였다. 그는 지난 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는 “기강이 무너진 군대로는 전투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면서 “해당 행위를 하는 후보자의 경우 즉시 교체하겠다“는 경고를 하기도 했다. 장 대표가 자신의 입지에 대한 위기 속에서도 강경 발언을 쏟아낼 수 있는 것은 당 지도부 대부분이 측근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장 대표가 당을 사유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현재 장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당권파의 논리는 ‘강력한 보수결집이 선행돼야 당의 외연확장이 가능하다’는 식이다. 주요 당직 인사 때마다 ‘윤 어게인’을 외치는 인물들이 임명되는 것도 이러한 비상식적인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장 대표가 지난해 8월 26일 당 대표로 선출된 후 한 수락 연설을 보면, 그의 ‘극우 정치철학’을 여실히 알 수 있다. 그는 당시 “모든 우파 시민과 연대해 이재명 정권 끌어내리는 데 제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전제하면서, 당내 탄핵 찬성파를 콕 집어 “당을 분열로 몰고 가는 분들에 대해선 결단이 필요하다”고 했었다. 외부에서 보면 대구·경북 지역이 국민의힘에 대한 극우 지지자들의 온상처럼 비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젊은 층이 아니더라도 50~60대 장·노년층에서도 이 지역의 정치적 후진성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많다. 주변을 돌아보면 “국민의힘이 당의 영역을 넓히고, 국가적 현안에 대한 해결역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당 지도부가 하루빨리 극우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람이 많다. 당 지지율 15%는 국민의힘이 벼랑 끝 위기에 몰렸다는 것을 말한다. 물론 지방 선거는 유권자들이 4대 선거(기초·광역의원, 기초·광역단체장)를 연계해서 투표하기 때문에 당 지지도 만으로는 선거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그렇지만 당의 외연 확장을 위해서는 정당 정체성을 극우 방향이 아니라 중도 쪽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국민이 바라는 보수의 가치는 민생을 책임지는 ‘유능하고 합리적인 보수’이지, 특정 강성 세력에 휘둘리는 ‘폐쇄적 보수’가 아니다. 장 대표가 지금처럼 책임당원을 중심으로 한 극우세력만 바라보고 정치를 한다면, 국민의힘은 다수의 국민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은 절대 장 대표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6-04-28

마라톤 왕국 케냐

케냐가 마라톤 러너의 성지라거나 마라톤 왕국이란 별명이 붙는 배경은 뭘까. 이에 많은 전문가들이 내놓는 분석을 보면 매우 흥미롭다. 케냐 선수들은 대개 해발2000~2500m 고지대에서 자라거나 생활해온 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곳은 산소 농도가 낮아 자연스럽게 적혈구 수치와 헤모글로빈 농도가 높아지게 된다. 이는 산소를 몸 구석구석까지 운반하는데 큰 도움을 주며 평지에서 뛸 때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산소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또 케냐의 어린이는 어릴 때부터 하루 수십km를 맨발로 다닌다. 비포장 도로를 걷거나 달리면 하체근육의 지구력과 평형감각, 발바닥이 강한 자극을 받게 된다. 마라톤 하기에 신체가 구조적으로 최적화되는 조건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케냐에서 마라톤은 단순한 스포츠 개념을 넘어선다는 점이다. 마라톤을 공동체의 생계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알고 자란다. 세계적 마라토너가 되면 수천만 원, 수억 원의 상금을 손에 쥐게되므로 세계적 마라토너가 되는 것이 어릴 때부터 꿈이다. 케냐 선수는 신체 조건이나 환경, 훈련, 사회문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세계적 선수로 성장한다는 것이 케냐가 마라톤 강국이 될 수 있는 이유라는 것이다. 국제육상경기연맹에 의하면 남자 마라톤 공인 기록의 100위 이내에 케냐 선수가 58명이 된다. 이 사실만으로 케냐는 분명 마라톤의 왕국이다. 인류가 절대 깰 수 없다던 마라톤 2시간대 벽이 깨졌다. 세계를 놀라게 한 인류 최초의 신기록 수립도 케냐 선수가 해냈다. 사바스타인 사웨의 기록은 1시간59분30초. 마라톤의 신기록 도전이 점점 더 흥미로워진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4-28

제조업의 안전활동 원리

제조기업에서 안전은 흔히 ‘관리의 대상’으로 다뤄진다. 보호구 착용, 안전 교육, 규정 및 점검 강화 활동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만으로 사고를 근본적으로 줄이기는 어렵다. 안전은 규정 준수의 문제가 아니라, 공정과 시스템 수준, 스스로 위험요인을 개선하는 자율 안전이 만들어내는 ‘결과’이다. 규정, 통제로 하는 안전관리는 한계에 부딪친다. 월드 클래스 수준의 선진 기업은 안전관리시스템과 직원들의 안전 요인을 보는 눈, 스스로 탐색하고 위험 요인을 제거하는 자율 안전과 병행하는 체계다. 현장의 안전사고를 들여다보면 공통된 특징이 있다. 설비가 고장이 나고, 작업이 자주 멈추며, 품질이 불안정한 환경에서 사고가 반복된다. 작업자는 비정상 상황을 복구하기 위해 무리한 개입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위험이 발생한다. 또한 하루 전 D-회의, 작업 위험 수준에 따라 S·A·B급 업무 분류와 안전관리자, 안전활동 범위 설정, 안전작업허가서, TBM(Tool Box Meeting), 전원·에너지 차단 및 잠금의 ILS(Isolation & Lockout System), 안전보호구 착용, 작업위험도 평가 등 안전운영관리와 통제로 안전사고를 다 막지 못한다. 결국 사고의 본질은 ‘사람의 부주의’ 보다 ‘생산시스템의 불안정’에 있다. 안전을 근원적으로 개선하려면 접근의 순서를 바꿔야 한다. 첫째, 설비의 안정화이다. 고장, 진동, 누유, 오작동을 제거하고 예방보전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고장이 반복되는 설비에서는 안전을 기대할 수 없다. 둘째, 생산 장애 개선이다. 공정의 끊김과 막힘, 비정상 작업을 제거해야 한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많은 사고는 정상이 아닌 상황, 돌발작업이나 임시조치 과정에서 발생한다. 셋째, 품질 불량개선이다. 품질이 불안정하면 재작업과 수정작업이 증가하고, 작업자는 시간 압박 속에서 무리한 행동을 하게 된다. 넷째, 작업 환경 개선이다. 정리정돈, 동선, 조명, 소음, 작업 공간과 같은 요소는 작업자의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기반이 갖춰진 이후에야 비로소 안전 시설물 개선이 의미를 갖는다. 방호장치, Interlock, 센서 등은 안전관리의 마지막 단계다. 많은 기업이 이 순서를 거꾸로 적용하면서 실질적 개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안전은 따로 존재하는 관리 영역이 아니다. 설비, 공정, 품질, 환경이 안정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다. 또한 안전의 토양은 기업문화이고, 일하는 사고와 방식이 안전관리 활동으로 연동된다. 규정, 통제, 문서 위주의 관행적 안전관리 활동은 사고를 예방하지 못한다. 안전 수준은 그 기업의 일하는 문화를 바탕으로 개선 활동이 보여주는 지표다. 이제 제조 기업은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안전을 관리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생산시스템을 안정화 하고, 일하는 문화를 바꿀 것인가’로 접근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안전은 구호가 아닌 현실이 된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

2026-04-28

전봇대를 묻는 도시 경쟁력

요즘 일본이 다시 ‘전봇대’를 없애기 시작했다. 달리 말하면, 전선과 전주를 지하로 묻는 ‘무전주화(無電柱化)’ 정책을 국가 차원에서 재가동했다. 일본은 1980년대부터 이 사업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속도는 기대에 못 미쳤다. 현재도 약 3600만개의 전주가 남아 있고, 오히려 증가 추세다. 그런 일본이 다시 이 정책을 내세운 이유는 분명하다. 더 이상 ‘미관 개선’ 수준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핵심은 재난 대응이다. 최근 일본은 태풍과 집중호우, 그리고 대지진까지 겹치며 전주 붕괴로 인한 도로 마비와 장기 정전 사태를 반복 경험했다. 특히 노토반도(能登半島) 지진에서는 전주가 3480개나 쓰러져 구조와 복구 자체가 지연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일본은 결론을 내렸다. “전봇대는 도시 인프라가 아니라 재난 리스크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제3차 무전주화 추진계획’을 통해 정책을 전면 재정비했다. 어떤 시설을 설치하는 단일 사업으로 보지 않고 이를 국가 인프라 전략으로 격상한 것이다. 이번 정책의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 선택과 집중이다. 모든 도로가 아니라 고속도로 IC와 주요 거점을 잇는 ‘긴급 수송도로’를 중심으로 우선 정비한다. 재난 시 도로가 막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둘째, 속도보다 실행력이다. 기존처럼 ‘착공률’이 아니라 ‘완공률’을 기준으로 정책 목표를 설정했다.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실제 효과 중심으로 전환한 셈이다. 셋째, 현실적 접근이다.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선 공동구뿐 아니라 측구 활용, 건물 벽면 배선 등 다양한 저비용 방식까지 허용했다. 완벽한 지중화보다 “현실 가능한 지중화”를 택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관광과 도시 이미지 개선도 중요한 목표다. 전봇대가 사라진 도시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훨씬 ‘정돈된 국가’로 보인다. 일본이 관광대국을 지향하는 상황에서, 전주 정리는 곧 국가 브랜드 전략이기도 하다. 물론 단점도 분명하다. 막대한 비용과 공사 기간, 주민 불편, 그리고 지방 재정 부담은 여전히 큰 장벽이다. 그래서 일본 역시 전면 시행이 아닌 ‘우선순위 전략’을 택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할까. 우리 역시 무전주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속도는 더디고 기준은 모호하다. 특히 지방 도시에서는 관광·경관·보행 안전 측면에서 체계적인 접근이 부족하다. 철강 산업도시 포항은 다양한 각도로 미래 전환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도심 곳곳을 가로지르는 전봇대와 전선은 여전히 ‘과거의 산업도시 이미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전봇대를 없애는 일을 미관 정비라는 좁은 시야로 보면 오산이다. 재난을 줄이고, 도시의 품격을 높이고, 관광과 정주 환경을 바꾸는 도시 구조 개혁이다. 일본이 전봇대를 묻기 시작한 것도 이제는 ‘보이는 인프라’로 경쟁하는 시대에 들어섰음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도시 포항도 이제는 선택해야만 한다. 도시 경쟁력은 공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걷기 좋은 도시, 보기 좋은 도시, 안전한 도시가 곧 경쟁력이다. 도시전역에 들쑥날쑥 솟아있는 전봇대를 그대로 둘 것인가, 아니면 도시의 미래를 다시 설계할 것인가. /김진홍 경제에디터

2026-04-28

조각보의 나라 유고슬라비아 탄생 ②동상이몽이 낳은 폭력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유고슬라브 민족 간 힘겨루기가 시작된다. 발칸반도 각국 망명정부가 속속 본국으로 귀환하면서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와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그리고 슬로베니아가 바쁘게 움직였다. 발칸반도에서 주도권을 잡거나 먹이사슬에서 여차하면 약자로 몰락할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다. 이처럼 발칸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세르비아 대표단과 협상테이블에 앉은 크로아티아 대표단은 하나의 통합안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세르비아는 카라조르지예의 왕가의 지도 아래 한 살림을 꾸리기로 했다며 발표했다. 블랙조지 카라조르지예가 누군가? 19세기 오스만제국 에니체리 폭정에 맞선 농민 출신 지도자가 졸지에 발칸반도에서 가장 위상이 높은 진골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한 지붕 아래에 여러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세계만방에 힘을 과시하면서 스스로 강대국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는 원대한 꿈을 꾼다. 슬라브민족 최초의 통일국가, 즉 민족적 이질성만 두드러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등 조각보 나라 집합체 ‘유고슬라비아’란 나라가 탄생한다. 이제 발칸반도에는 그리스, 루마니아, 불가리아, 알바니아, 그리고 유고란 국가로 정착된다. 유고슬라비아 왕을 비롯해 총리까지 세르비아인이 차지하면서 겨우 부총리와 외무장관만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의 몫으로 돌아가자 무게의 중심 추는 시작하기도 전에 기울었다. 더구나 왕권과 군권까지 장악한 알렉산다르는 무소불위의 힘을 구축했다. 민주정인 이상 견제세력인 야당도 존재했다. 그러나 제1야당인 크로아티아 농민당이 링에 오르기도 전에 알렉산다르는 농민당을 해산해버린다. 한발 더 나아가 당수인 라디치에게 자객을 보내 저승행 열차에 태워버리면서 주변정리를 깔끔(?)하게 마무리 했다. 라디치가 볼셰비키의 불순한 사상에 물들었다는 여론을 조작하면서 암살사건은 유야무야 된다.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의 순진하기 짝이 없는 유고슬라브민족 통일국가 꿈이 워낙 장밋빛이다 보니 대세르비아주의 욕망은 아지랑이에 가려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힘 있는 자리에는 세르비아인의 관료로 채워지는 것을 세르비아는 당연시 했다. 누가 보더라도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자연스럽게 세르비아에 흡수합병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크로아티아인 입장에서는 절대로 간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반란의 기운이 소물소물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때마침 라디치가 불의의 객이 되면서 본격화된다. 그러나 이는 대세르비아주의 실현이라는 목표가 눈앞에 왔다고 판단한 알렉산다르가 기다리던 바였다. 거칠 것이 없었던 왕으로서는 소요진압에 목검이 아니라 핏빛을 머금은 광휘의 진검을 뽑았다. 1929년 1월 새해, 신년벽두가 밝아오자 알렉산다르는 헌법을 폐지하면서 독재정을 펼치기 시작했다. 세 나라의 통치권자, 군 통수권자, 고위관리 임명권자인 알렉산다르는 정당까지 모조리 해산시켜버렸다. 이처럼 불합리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지방 자치권은커녕 새롭게 헌법을 개정하고, 누가 보더라도 엄명한 독재정을 확정지으면서,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인 왕국’에서 처음으로 ‘유고슬라비아’라는 국명이 탄생했던 것이다. 그리고 정해진 순서인 양 반정부인사에 대한 탄압이 막이 올랐다. 세르비아인 식민백성으로 전락한 사람들은 탄압을 피해 망명의 길을 올랐고, 서러운 눈물을 빨면서 복수의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이를 갈아야 했다. 1933년 농민당을 암암리에 이끌던 블라드코 마체크가 그해 4월 반역죄로 체포되어 구금당했다. 이를 시작으로 구금과 통제는 통일왕국 최초 부총리와 외무장관을 지낸 인사들조차 예외일 수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유고슬라비아 땅에 살아가는 소수민족에 대한 비극적 사건은 일일이 거론할 수조차 없었다. 마케도니아인, 알바니아인, 이슬람을 믿는 보스니아인은 그야말로 하층민으로 추락했다. 더구나 크로아티아에서 유고슬라비즘의 주역 ‘프레차니’의 대표자격인 세르비아인 프리비세치마저도 투옥된다.(전편에서 언급한 것처럼 알렉산다르 밀명을 받은 시모비치 중령에게 설득당해 세르비아 왕을 위해 자중지란을 일으킨 인물이다. 훗날 체코로 도망치다 시피 해서 살다가 1936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타국에서 세르비아인으로 살아가는 프레차니들은 늘 살해의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물론 그럴수록 자신들끼리 더욱 똘똘 뭉쳐 베오그라드와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았다. 이때 알렉산다르의 폭정을 피해 이탈리아로 망명길에 오른 인물 중 파벨리치가 있었다. 그는 크로아티아 극우보수정당 민권당의 당수로서 대크로아티아민족주의를 주창한 안테 스타르췌비치의 영향을 받은 인물이다. 그는 망명지인 이탈리아에서 극우민족주의 단체인(세르비아의 시각에서는 반란단체지만) ‘우스타샤’를 조직했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6-04-28

고택의 빈 나무

울산의 봄볕은 담장이 낮은 고택의 마당 위로 유난히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조선의 외교관으로서 수많은 이들을 사지에서 구해냈던 충숙공 이예 선생님의 자취가 서린 학성 이씨 근재공 고택. 그곳에 들어서면 정갈하게 얹힌 기와 아래로 시간의 결이 켜켜이 쌓여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그날 내 발길을 오래도록 붙잡은 것은 정교한 가옥의 구조도, 고귀한 가문의 내력도 아니었다. 마당 한쪽, 낮은 돌담을 등지고 선 늙은 모과나무 한 그루였다. 처음 그 나무를 보았을 때 위태로워 보였다. 나무의 몸통은 마치 누군가 예리한 칼로 도려낸 듯, 혹은 세월이라는 거대한 벌레가 파먹은 듯 속이 텅 비어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껍데기만이 얇은 막처럼 남아 간신히 나무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 너머로 반대편 풍경이 휑하니 보일 정도였다. 저토록 처절하게 제 몸을 비워낸 나무가 어떻게 여태껏 쓰러지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는지, 자연의 신비보다는 차라리 어떤 지독한 의지 같은 것이 느껴져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그런데 더욱 경이로운 것은 그 빈 몸체 위로 뻗어나간 가지들이었다. 생명의 기운이라곤 전혀 남지 않았을 것 같은 마른 껍데기 위로 연두색 새순이 돋아나고 있었고, 해마다 가지에 모과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다고 했다. 속은 비어버린 채 껍데기만 남은 나무가 제 몸보다 무거워 보이는 열매들을 자식처럼 보듬고 있는 그 모습은 형언할 수 없는 역설의 미학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 나무 아래 서서 한참을 응시했다. 텅 빈 나무의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그 비어 있는 공간은 단순히 사라진 목질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내어준 ‘헌신’의 흔적처럼 보였다. 그것은 영락없이 우리네 부모님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부모라는 이름의 거목 아래서 그들이 피워낸 달콤한 과실을 먹고 자란다. 부모는 자식이라는 열매를 맺기 위해 자신의 수분을 내어주고, 영양분을 나누며, 급기야는 자신의 뼈와 살인 속살까지도 아낌없이 갉아 내어준다. 자식이 세상 밖으로 나가 단단한 씨앗을 품은 어엿한 결실이 될 때까지 부모는 제 안이 비어가는 줄도 모르고 오로지 가지 끝에 달린 열매의 무게만을 온몸으로 견뎌내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의 등이 넓고 단단한 줄만 알았다. 늘 그 뒤에 숨으면 세상의 어떤 풍파도 비껴갈 것 같았고, 부모님은 언제까지나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나에게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존재라고 믿었다. 하지만 내가 어른이 되어 직접 열매를 맺어보니 그 단단해 보였던 등 뒤에는 자식을 키우느라 문드러지고 비어버린 고독한 세월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속은 텅 비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껍데기만으로 버티며 여전히 가지를 뻗어 올리는 모과나무의 처절한 생명력은, 자식을 향한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일치한다. 나무는 제 몸 안에 가득 찼던 모든 것을 자식에게 다 주고 나서야 비로소 가장 향기로운 모과를 완성해낸다. 부모 또한 자신의 꿈과 청춘, 그리고 육체적인 강건함을 자식이라는 열매 속에 오롯이 담아 보내고는 본인은 거친 주름만 남은 껍질이 되어버렸다. 이예 선생님의 고택에서 만난 이 모과나무는 나에게 묻는 듯했다. “너라는 열매는 과연 어떤 향기를 품고 있느냐”고, “그 향기가 누구의 희생으로부터 길어 올려진 것인지 잊지 않았느냐”고 말이다. 고택의 돌담 아래 쌓인 햇살 속에서 모과나무는 여전히 당당했다. 비록 속은 비었을지언정 그가 매달고 있는 열매들은 누구보다 건강하고 풍요로웠다. 그것은 패배한 삶의 흔적이 아니라 완성된 사랑의 훈장이었다. 부모라는 이름의 나무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제 몸을 다 내어주고 껍데기만 남았을지라도 자식의 삶 속에서 주렁주렁 맺히는 열매들을 바라보며 그들은 다시금 살아갈 이유를 찾기 때문이다. 고택을 나서는 길,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텅 빈 속을 감추지 않고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길러내는 저 늙은 나무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눈물겹도록 고귀해 보였다. 나 또한 누군가의 열매로서 그들이 내어준 빈자리만큼이나 깊고 진한 향기를 내뿜으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부모님이 남겨주신 그 숭고한 껍데기의 의지 위에서 말이다. /김경아 작가

2026-04-28

나는 과메기로소이다

나는 본래 꽁치였다. 넓고 깊은 푸른 바다에서 나름 삶을 살고 있었다. 물 밖의 세상은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알 수 없는 것에 이끌려 물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차가운 고체 덩어리 속에서 나의 육체가 굳기 전까지 아주 잠시 공기와 햇빛이라는 지옥을 경험했다. 나는 얼음덩어리들 속에서 잠들었다. 그때 내가 죽었었다는 것, 그 죽음이 냉동 상태였다는 것은 바닷가의 어느 위판장 바닥에 내가 내동댕이쳐졌을 때 비로소 알았다. 공기와 빛의 세상, 땅이라 불리는 그 견딜 수 없는 지독한 세계에 나는 툭 던져졌다. 늙은 어부의 손수레에 실리기 전까지는, 내가 사람이란 종으로 다시 태어나리라는 것과 장차 대단한 신분의 소유자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바닷가 어느 초라한 집 마당 한 구석에 도착하였다. 소금기 가득 머금은 차가운 바닷바람이 불어닥치는 곳이었다. 기다란 막대 위에 나의 종족들은 나란히 걸렸다. 바닷속의 적당한 수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극한의 냉기 속에서 차갑게 굳어져 갔다. 어부는, 해풍에 속절없이 흔들리는 우리들의 몸을 가끔 어루만지면서 장차 오게 될 ‘부활’을 미리 축복해 주었다. 나는 그렇게 과메기로 거듭 태어났다. 어둠이 내리던 어느 날, 나는 동료들과 함께 이름 모를 소주방 탁자 위에 통째로 올려졌다. 배추와 미역, 약간의 마늘과 쪽파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몸을 붉게 치장할 초장과 함께. 내가 올려진 탁자에 세 남자가 둘러앉았다. 있어 보이는 한 남자가 이슬이 2병을 주문한 뒤, ‘과메기는 통째로 먹어야 제맛이지’ 하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소주방 주인이 아첨하는 말을 들어보면,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이 지역의 중요한 임무를 맡을 후보를 점지하기 위하여 큰 도시에서 내려온 거물이다. 나의 동료들은 주인의 가위질에 두 동강이 나고, 있어 보이는 한 남자의 억센 손아귀에서 갈기갈기 찢어졌다. 심장의 피와 같은 붉은 색의 시큼한 초장에 버무려져 속절없이 세 남자의 검은 입속에서 소주와 함께 섞였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을 때, 소주잔을 들던 셋 중 가장 높은 남자가 갑자기 결심한 듯 이렇게 외쳤다. “그래! 후보는 바로 너야!” 주인의 가위질이 멈추고, 나는 식탁에서 해방되었다. 큰 남자가 나를 추천한 이후로 나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 중에도 대단한 사람이 되었다. 지저분한 기름기, 역겨운 비린내는 고급 로션과 향수로 도배되고, 맛이 간 눈동자는 외제 선글라스 뒤쪽으로 갈무리되었다. 높은 남자는 나에게 말했다.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 해. 저것들이 뭐 아는 게 있나. 너는 향수 뿌리고 선글래스 끼고 유세장을 돌면서 주먹으로 허공을 향해 어퍼컷만 날려!” 인간들이 지도자를 뽑는 방식은 가관이었다. 꽁치 세계에서는 돈 주고도 볼 수 없는 한판의 개그. 높은 분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일부 제정신을 가진 자들이 과메기를 지도자로 선출할 수 없다고 목에 핏대를 올렸지만 역부족이었다. 나는 당선되었고, 높은 분으로부터 칭찬도 받았다. 앞으로의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물어보았지만, 높은 분은 대답이 없었다. 인간들은 나에게 표를 던졌을 뿐 아니라 아첨까지 하였다. 그들에게는 내가 사람인지 과메기인지는 처음부터 관심도 없었다. /공봉학 변호사

2026-04-27

지식과 지성, 그리고 지성인

대한민국 국민의 학력은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85세 이상은 절반이 무학인데 비해, 25세에서 35세 사이 연령층은 전문대 이상의 학력이 70%를 넘는다. 이는 OECD 국가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이 단시일에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기반 중 하나는 국민들의 높은 교육열이었다. 고학력자들이 각 분야의 전문가로서 산업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학력이나 학벌을 인재등용의 최우선 조건으로 삼는다. 그러다보니 경쟁위주의 과도한 교육열이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시험을 위한 주입식 · 암기식 교육이 창의성이나 논리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떨어뜨리고, 무엇보다 인성교육을 등한시하는 폐단이 있다. 오로지 지식 습득에만 전념하는 교육으로는 인격도야를 겸한 전인교육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기형적 교육현상은 사회적 병폐로 이어지기 쉽다. 부모가 대학교수인데도 자식의 대외활동 스펙을 위조해서 부정입학 시킨 경우도 그런 예이다. 지식은 칼과 같다. 잘 쓰면 문명의 이기가 되고 함부로 휘두르거나 악용하면 사회악을 자행하는 흉기가 될 수 있다. 특히나 지금은 인공지능이 무제한 제공하는 각종 지식에 누구나 손쉽게 접속할 수가 있다. 지식의 오남용으로 인한 위험 요소가 그만큼 가중되었다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지식을 누구나 손쉽게 습득할 수 있는 만큼 그것을 지성으로 숙성하고 내면화하는 과정이 더 요구된다. 나아가 그 지식이 공동체에 미칠 영향까지 성찰하는 책임의식이 필요하다. 그 책임은 결국 개인의 윤리와도 직결된다. 지성(Intellect)은 단순히 많이 아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지식의 양보다 그것을 다루는 태도와 책임이 더 본질적이다. 지성인은 우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다. 주어진 정보나 권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근거를 따져 묻고 스스로 판단한다. 이는 철학에서 말하는 합리적 사유의 기본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지성인은 자기 성찰을 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끊임없이 돌아보고, 오류를 인정하며 수정할 줄 안다. 이런 태도는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자각처럼 ‘나는 모른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셋째로 지성인은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는 사람이다. 개인의 명예나 이권에 머물지 않고 공공선을 지향한다. 사회와 국가, 나아가서는 세계 보편의 가치를 구현하려는 것이 지성인의 역할이다. 마지막으로 지성인은 균형감각을 지닌 사람이다. 감정과 이성,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특정 이념이나 집단에 매몰되지 않고, 복잡한 현실을 다면적으로 보고 성찰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총체적인 위기상황이다. 민족이 남북으로 분단된 것도 모자라, 남한에서도 좌우로 갈라 피터지게 싸우고 있다. 법치와 삼권분립은 파괴되고, 국방과 외교는 위태롭고, 자유시장경제도 심각하게 훼손되는 등 국가의 정체성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사법부가 권력의 주구가 되고, 언론이 정권의 나팔수가 되고, 지식인들까지 시류에 휩쓸려 곡학아세로 권력의 부역자가 되면 나라는 결국 망국의 독재로 치닫게 된다. 지성의 결핍이 초래하는 결과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6-04-27

다른 사고방식은 이길 수가 없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다. 그 두 주 전이이었던가 석 주 전이었던가 이란에서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그때 이란 정권인지 혁명수비대의 소행인지 몰라도, 3만 명에서 4만여 명으로 추산되는 시민 학살이 자행되었다. 그때 미국·이란 전쟁이 촉발된 것이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전쟁 시작 단 하루 만에 이란 군대를 거의 완전히 무력화시켰는데, 이날 미국·이란 전쟁의 결과는 예정된 것이었다. 그러자 왜 남의 나라 내정에 간섭하느냐, 약소국가 자주권을 유린한 것이라는 일부 ‘여론’이 흘러다녔다. 세상을 보는, 다른 사고방식의 소산이었다. 이스라엘이 이란을 치는 것을 두고, 또 그보다 먼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하마스를 공격하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도 자못 거셌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할 수 없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에 한국의 일부 지식계는 일방적으로 팔레스파인 편을 든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유린한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식인들의 선호는 오래되었다. 1980년대 전반기에 ‘제3세계연구’라는 게 두 권 나왔는데, 팔레스타인을 한국과 같은 제3세계로 보는 상상력의 소산이었다. 지금 이 제3세계론은 어떻게 되었나? 적어도 우리 학생들에게 한국은 제3세계냐고 물어보면 한 사람도 손을 들지 않는다. 제3세계론은 ‘정태론’적이다. 제국과 식민지·신식민지의 중심·주변 관계가 불변한다고 보는 종속이론에 결부된다. 세계가 이렇듯 움직이지 않는다면 역사 전개라는 것도 없어야 할 것이다. 이란이 약소국이냐 했을 때, 나는 쿠르드 사람들을 생각한다. 이란 북부 지역에 살고 있는 아제리인들을 생각한다. 한국이 1945년 해방되었을 때, 소련과 이란 사이에 아제르바이잔 사태가 있ᅌᅥᆻ다. 이란은 유엔에 강대국 소련이 이란의 영토를 탐낸다고 호소했다. 페르시아적 사고다. 페르시아 제국은 많은 약소민족을 자기 내부에 거느렸다. 그 질서를 교란시키는 것이 이란에게는 탐탁치 않았겠다. 팔레스타인 하마스는 이란의 신정일치 이념만큼이나 위험해 보인다. 그들이 과연 팔레스타인 민중들을 자유롭게 만들어 주고 있나? 해방을 위한 통치고 신의 섭리라지만 극도로 무자비하기는 이란 신정일치 정권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왜 이란 국민의 피맺힌 자유의 요구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을까? 왜 이스라엘의 무자비함만이 보이고 가자 정권의 위험성을 보이지 않을까? 베르트랑 웨스트팔의 ‘지리비평’을 읽다가 깜짝 놀란 것이 있다. 담론은 담론 자체의 내적 요구 때문에 세계를 절대로 그대로 반영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뻔한 말 같은데, 곱씹을수록 무서운 말이었다. 어떤 담론에 길들여지면 다른 것을 볼 수 없게 된다. 자꾸 공부해서 그 속으로 들어가면 그른 것이 옳은 것으로 보인다. 확신하게 된다. 그러면 마치 자신이 진리를 말하는 양 이스라엘은 나쁘다, 미국은 나쁘다 한다. 언젠가부터 나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꾸 회의하게 된다. 아무래도 데카르트가, 파스칼이 좋아 보이나 보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6-04-27

피격 당한 미국 대통령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시 한 번 죽음의 위기를 넘겼다. 지난 25일 워싱턴 힐튼호텔에서 열린 백악관 출입기자협회 만찬. 행사장에서 여러 발의 총성이 울렸다. 총구는 트럼프를 겨냥하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그날 트럼프 대통령과 아내인 멜라니아, JD 밴스 부통령 등이 자리한 헤드테이블 지척에서 산탄총과 권총 등으로 무장한 총격범 콜 토머스 앨런이 대통령 경호국 요원들에게 체포됐다. 만찬장에 있던 수백 명의 기자와 주요 참석자들은 총성에 크게 놀랐지만, 다행히 부상자는 없었다. 총에 맞은 경호 요원도 방탄조끼를 입고 있어 화를 피했다. 당시 트럼프는 재빨리 행사장 뒤편으로 피신했다고 알려졌다. 트럼프의 피격 위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선 후보로 펜실베이니아 유세장에 등장했던 2024년 7월엔 총탄이 그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사건을 겪었고, 그로부터 2개월 뒤에는 플로리다 골프장에 숨어 트럼프에게 총을 쏠 기회를 노리던 용의자가 체포되기도 했다. 역사를 돌아보면 ‘대통령 피격 사건’은 미국에서 이미 여러 차례 발생했다. 1865년엔 에이브러햄 링컨이 존 윌크스 부스가 쏜 총탄에 의해 사망했다. 1963년 존 F. 케네디가 리 하비 오스월드에게 피격 당해 목숨을 잃은 사건도 유명하다. 1981년에는 로널드 레이건 암살 미수 사건이 있었다. 레이건은 이때 생명이 오가는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권력자에겐 친구도 많지만 적 또한 적지 않다. 지향하는 이념과 추진하는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목숨을 노리는 이들은 언제 어디서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이 마냥 좋은 직업만은 아닌 것 같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4-27

6·3 지방선거, 시민의 선택

지방선거일이 다가오고 있다. 후보들도 바빠졌다. 덩달아 지역은 새 지도자 선출에 대한 기대와 냉소가 교차하고 있다. 원래 선거는 시민들의 꿈이 격돌하는 무대이다. 자신의 시민적 삶과 미래가 투표함에서 열릴 것이라는 꿈, 그것이 민주주의의 이상이다. 그러나 지금 대구·경북의 현실은 그 이상과 한참 멀어 보인다. 지역은 이미 오래전부터 인구 감소와 경제 침체, 청년 유출이라는 복합 위기에 놓여 있다. 그런데 이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고 해법을 찾아야 할 지방선거가 정작 지역 유권자는 안중에도 없다. 동네 살림꾼을 뽑는 선거가 중앙선거로 변질된 지 오래되었다. 지역의 유력 정당은 오로지 공천권을 쥔 당 지도부만 바라보고, 결과는 이미 정해진 듯 당색(黨色)이 모든 것을 덮는다. 선거를 왜 하는지 회의감이 든다. 그러니 지역의 현안 문제나 공적 담론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역 유권자들이 무기력하게 가만히 있는 것은 시민적 책임과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이제는 하늘에서 영웅적 지도자가 나타나지도 않거니와, 기다릴 시간도 없다. 그렇다면 시민 스스로가 움직여야 한다. 소수 세력이 독점해 온 지역의 민주적 제도와 공간을 시민들이 되찾아야 한다. 시민은 들러리가 아니다. 침묵하거나 누군가의 결정에 그저 순응하면 시민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역의 공적 공간에 시민이 직접 참여하여 실질적 권한을 행사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의 구경꾼이 아니라 진정한 주인이 되는 것이다. 시민을 진정으로 주인 자리에 돌려놓을 자, 그 사람이 지역의 참 일꾼이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후보를 선택해야 할까. 첫째는 한 시민으로서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가이다. 평소 지역주민의 삶과 현실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헌신해 왔는지가 그 척도다. 선거철에 하는 말이 아니라 평소의 삶이 그 사람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지역의 해묵은 현안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해결 역량이다.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우리 지역에 필요한 현실적 해법을 제시하고 진짜로 문제 해결을 위해 움직일 수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실현 불가능한 공약은 지역의 낭비이자 기만이다. 셋째는 후보가 속한 정당의 궤적이다. 지역 현안에 침묵했거나 중앙의 논리만 대변해 온 정당이라면, 아무리 공약과 정책이 그럴듯해도 그 결과는 뻔하다. 끝으로 결과에 책임지는 태도, 즉 막스 베버가 말한 책임윤리(責任倫理)다. 표를 달라는 후보를 만날 때마다 나는 묻는다. 당신은 지역 공동체에 진정 무엇을 남기려 이 자리에 나왔는가? 결국 이번 선거의 본질은 단순히 좋은 후보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다. 오랫동안 중앙 정치에 종속되어 온 지역 민주주의를 시민의 손으로 되살리는 일이다. 그것은 시민의 권리이자, 동시에 시민의 책임이다. 헤겔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에야 날개를 편다”고 했다. 역사는 사건이 끝난 뒤에야 그 실상이 제대로 드러난다는 뜻이다. 지방자치 40년, 이제는 지역 민주주의가 제 모습을 찾을 때다. 6월 3일, 투표소로 향하는 그 한 걸음에서 시민의 위대한 권리가 시작될 것이다. /서병철 대구YMCA 사무총장

2026-04-27

오래된 기억에 숨 불어넣기

빈 상가가 늘고 발길이 줄어든 포항 원도심을 보면 우리는 습관처럼 ‘쇠퇴’라는 말을 꺼낸다. 하지만 나는 그 표현이 이 공간을 너무 쉽게 규정한다고 느낀다. 원도심은 사라진 곳이 아니라,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곳에 가깝다. 이곳은 단순한 상업 지구가 아니다. 항구에서 시작된 삶이 있고, 산업화의 시간 속에서 쌓인 노동의 흔적이 있으며, 시장 골목마다 사람들의 온기가 여전히 남아 있다. 그 시간은 지금도 이곳에 존재한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지금의 감각으로 읽어내는 데 서툴렀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살릴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다시 읽어낼 것인가”로. 이미 비슷한 길을 걸었던 도시들이 있다. 일본의 일부 원도심은 한때 공동화를 겪었지만, 서브컬처(Subculture·단순한 취향을 넘어 사회적,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주류 문화와 상호작용하며 발전하는 하위 문화)라는 흐름을 통해 다시 살아났다. 과거를 지우는 대신 그 위에 새로운 취향과 작은 공간들을 쌓아 올렸다. 도쿄의 미야시타 파크 역시 그런 방식으로 변화했다. 사람들은 물건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위해 찾아왔다. 그렇게 일상과 비일상이 섞이며 새로운 도시의 리듬이 만들어졌다. 이런 변화의 기류는 포항에서도 조금씩 감지된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들이 원도심을 이야기하고 다양한 공약을 내놓고 있다. 빈 상가 활용, 청년 창업, 문화예술 기반 재생 등 방향도 다양하다. 원도심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문제라는 데에는 공감대가 형성된 듯하다.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이 ‘개발’에서 ‘삶’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한 가지가 걸린다. 이 공약들이 과연 이 공간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원도심 재생은 새 건물을 짓는 일이 아니다. 이곳에 쌓인 시간과 기억을 지금의 방식으로 다시 쓰는 일이다. 포항의 원도심은 부족해서 멈춘 것이 아니다. 아직 쓰이지 않은 가능성이 남아 있는 공간이다. 오래된 여관이 작업실이 되고, 빈 상가가 공연장이나 전시 공간으로 바뀌는 순간, 사람들은 다시 그곳으로 모여든다. 공간은 지어질 때가 아니라, 사용될 때 살아난다. 이 변화는 결코 한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자체는 제도와 기반을 만들고, 건물주는 공간을 길게 바라봐야 하며, 문화 기획자는 그 안의 이야기를 읽어 사람을 불러들이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서로 다른 역할이지만, 그것들이 맞물릴 때 비로소 하나의 흐름이 만들어진다. 나는 가끔 “시내 우체국 앞에서 보자”라는 말이 자연스럽던 시절을 떠올린다. 그 말은 단순한 약속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이 모이고 머물던 시간의 기억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결국 그런 공간 아닐까. 이유 없이도 가고 싶고, 자연스럽게 머물게 되는 곳. 원도심의 미래는 거창한 개발 계획이 아니라, 다시 사람이 모이는 장면을 만들어 내는 데서 시작된다고 나는 믿는다. /손철호 지역문화포럼 따로또같이 대표

2026-04-27

충무공을 생각하며

4월 28일은 이순신 장군 탄신일(誕辰日)이다. 충무공은 음력 1545년 3월 8일 태어났는데, 그날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해마다 4월 28일 그를 기리는 행사가 열린다. 음력 생일을 기준으로 행사를 진행하면 해마다 날짜가 바뀌기에 상당한 난관이 기다리는 까닭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4월 28일은 다가왔고, 충무공의 사후(死後) 기록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음력 1592년 4월 13일 시작된 임진왜란은 충무공이 관음포 앞바다에서 펼쳐진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음력 1598년 11월 19일 종결된다. 15만이 넘는 왜군이 시작한 전란(戰亂)이 충무공의 죽음으로 끝났다는 사실은 실로 의미심장하다. “지금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말라!”는 그의 마지막 말은 오늘도 우리를 선연하게 일깨우는 우레 비처럼 다가온다. 이충무공의 죽음과 관련해서 아직도 몇 가지 설이 떠돌고 있다. 자살설과 암살설, 은둔설 그리고 전사설이 그것이다. 숙종 시절 선비 서하(西河) 이민서(1632-1688)는 ‘김덕령 전기’를 남긴 바 있다. 거기서 이민서는 충무공이 갑옷과 투구도 없이 노량해전에 임했다고 쓴다. 죽기 살기로 도주하는 왜군을 평상복 차림으로 막아선 충무공의 흉중이 자못 궁금하다. 암군(暗君) 선조는 울부짖는 백성을 버리고 도주에 도주를 거듭하면서도 민심의 향방에 예민한 촉수를 가진 자였다. 저 하나 살자고 명나라 신종(神宗)에 요동 성주 자리를 구걸했던 비루한 군주 선조. 그자는 의병장 김덕령을 반역죄로 몰아 친히 국문하고, 장(杖) 130대로 구국의 선봉장을 때려죽인다. 그 뒤에 그자의 의심을 받은 충무공은 온갖 곤욕을 치러야 했다. 그런 까닭에 충무공은 최후의 결전에서 차라리 왜적의 손에 죽는 것이 오히려 현명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암군의 질시(嫉視)에 가문 전체가 당할 화근을 미연(未然)에 방지하려는 의미가 담겨 있는 셈이다. 김훈의 ‘칼의 노래’(2001)는 이런 정황을 염두에 두고 집필된 장편소설이다. 암살설과 은둔설은 설득력이 미약하기에 이 글에서는 제외한다. 정조는 실학자 유득공을 집필 책임자로 삼아 ‘이충무공전서’ 8권을 1795년 출간한다. ‘이충무공전서’는 이순신에 관한 가장 정확하고 포괄적인 기록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따르면, 충무공은 명나라 진린 제독의 거듭된 만류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노량해전에 임했다고 한다. 최후의 해전에서 적을 완전히 섬멸하겠다는 일념으로 위험천만한 선봉을 자임했다는 것이다. 지극한 혼전(混戰) 중에 적선에서 날아온 유탄(流彈)에 충무공은 겨드랑이를 맞았다고 한다. 부하 장수 송희립이 총상을 입자 그의 상태를 확인하려 이동하던 차에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고 전한다. 다시는 이 나라에 왜놈들의 사악한 발길이 닿지 못하도록 그들을 절멸하려 했던 충무공의 우국충정이 끝내 그를 사지(死地)로 내몬 결과가 되고 만 것이다. 불과 53년 남짓한 세월을 살면서 이토록 길고도 깊게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인물이 또 있을까, 생각한다. 조선왕조 518년을 생각하면, 세종 임금 이도(李裪)와 충무공 이순신만이 떠오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따사로운 봄날 아침 잠시나마 충무공의 탄생과 최후를 생각해본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4-27

황금알 낳는 반도체

도덕과 처세훈을 풍자적으로 그린 이숍우화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는 이렇다. 어느 가난한 농부 농장에 거위가 들어오자 농부는 그 거위를 요리해 먹을 생각에 집 기둥에 묶는다. 다음날 거위한테 가보니 황금알을 낳았더라는 것이다. 거위 덕분에 농부는 큰 부자가 된다. 어느날 욕심이 생긴 농부는 거위의 배를 가르면 훨씬 많은 황금알이 나올 것 같아 거위의 배를 가르나 배 속은 보통 거위와 다를 바 없어 거위만 잃고 만다.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른다”는 교훈의 이 우화는 다른 버전으로도 양산돼 유행한다. 버전1)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소유한 아주머니는 모이를 많이 주면 더 많은 황금알이 나올거 같아 잔뜩 먹이를 주었더니 거위가 살이 너무 쩌 알을 낳지 못하게 됐다. 버전2) 돈을 토해내는 거위 이야기다. 거위 주인은 거위가 빨리 돈을 토해 내도록 하고파 욕심을 부리다가 거위가 그만 질식사하고 만다는 내용. 버전3) 긍정 버전이다. 거위가 매일 황금알을 낳아 부자가 된 한 농부는 어느날 수척해진 거위를 발견하고 거위를 숲속으로 보내 휴식을 취하도록 한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돌아온 거위가 알을 놓기 시작하는데, 종전보다 더 크고 순도가 높은 알을 낳더라는 것. 황금알을 낳는 거위 우화는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가공돼 모순과 갈등으로 점철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고음을 준다. 삼성전자 노조의 역대급 성과급 요구를 바라보는 다수의 국민 눈에는 노조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우를 범할까 걱정을 한다. 내 눈앞의 이익 때문에 기업의 장래를 위태롭게 하는 소탐대실의 결과가 되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4-27

여권을 만들며

봄맞이로 서랍을 정리하다 여권이 만료된 것을 알았다. 새로 발급을 받기로 했다. 집안일을 미루고 사진을 찍고 구청으로 갔다. 점심시간이라 40여 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구청 안 카페에서 음료수 한잔을 시키고 휴대폰을 열었다. 어디선가 한국인이 유독 여행을 좋아한다는 기사를 읽은 것 같아 검색을 해 보았다. 한국은 대도시 중심의 생활, 빠른 정보소비, 업무의 고강도, 경쟁의 압박 등으로 새로운 자극을 찾는 경향이 여행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비교적 짧은 기간에 ‘확실히 다른 세계’를 체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경험의 밀도를 높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정해진 루틴을 따라 사는 것을 나는 선호한다. 모르는 길보단 아는 길을 가는 것이 좋고 해오던 방법을 사용하며 사는 것에서 안정을 느낀다. 자주 보는 사람들을 만나면 쉽게 마음을 열고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과는 어색해서 만남이 쉽지 않다. 그래도 가끔은 익숙함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느끼고 싶을 때 여행을 생각한다. 내게 여행은 두 마음을 품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낯섦이 주는 두려움과 설레임. 출발하기 전 갈 곳의 자료를 통해 볼 곳과 먹을 것을 찾아보면서 설레임을 느낀다. 새로운 장소를 거닐며 만날 뜻밖의 풍경과 나와 같은 듯 다른 일상을 사는 사람들을 보는 것. 상상만으로도 설레임은 증폭된다. 낯섦 속에서 시작된 설레임은 여행을 하면서 때로 두려움으로 그 얼굴을 바꾼다. 모르는 길을 여러 번 묻거나 지도를 보며 찾아가는 과정은 불안함을 키우며 나를 작아지게 만든다. 무능을 느끼게도 한다. 가끔은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도 한다. 지인들과 처음 패키지로 해외여행을 했을 때의 일이었다. 유난히 더운 날이었고 국경일이라 광장엔 엄청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룹 별로 자유롭게 구경하다 모이기로 한 장소에 갔는데 너무 더웠다. 가이드가 다른 쪽 그늘에서 만나자고 해서 우리는 장소를 옮겼다.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아픈 다리를 쉴 겸 한 걸음 정도 앞에 앉았다. 약속된 시간에 일어나 뒤를 돌아보니 일행이 없었다. 우리를 두고 가 버린 것이었다. 머리가 하얗게 비어갔다. 가이드 뒤를 병아리처럼 쫓아만 다녀 숙소 이름을 기억하지도 적어놓지도 않았었다. 여권도 가이드가 다 가지고 있었고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미아가 된 것이다. 지금이야 폰이 있으니 어떻게라도 연락이 되었겠지만 그 당시는 휴대폰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았다. 다른 두 친구들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 어쩔 줄을 몰랐다. 반은 울며 발을 동동 구르는 친구들을 보면서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가야 할지 두려움이 앞섰다. 결국 우리 셋은 무작정 그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거의 한 시간쯤 뒤 가이드가 얼굴이 파랗게 질려 저쪽에서 달려왔다. 당연히 있는 줄 알고 인원 점검을 안 했다며 사과를 했다. 그 날 가이드가 일찍 오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두고두고 생각해도 아찔한 경험이었다. 그 날 이후 여행 시에는 여권을 복사해두고 숙소 이름과 전화번호 영사관이나 대사관의 전화번호를 적어두게 되었다. 미아가 되었던 여행의 두려움은 초조해하기만 할 뿐 문제해결 능력이 떨어지는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했다. 모든 것이 익숙했던 평상시의 삶에서는 몰랐던 모습이었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낯섦 가운데에서 생동감을 얻는다. 설레임과 두려움은 여행이 진행되면서 설레임이 커지기도 하고 두려움이 커지기도 하면서 소중했던 시간으로 추억으로 내 기억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인다. 결국 여행은 그런 과정을 통해 내 안의 나를 발견하며 지경을 넓혀가는 일인 것 같다.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며 새로움을 익혀가는 일. 나와 다른 사람들이지만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내 삶을 더 치열하게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는 일. 그것이 내가 여행을 하고 여행을 하고 싶은 의미인 것 같다. 일주일 후 여권을 찾기로 하고 나서는 길에 보이는 봄꽃들이 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화려한 유혹의 계절이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6-04-26

고장 나기 전에 알려주는 공장··· 제조업 ‘AX 시대’ 열렸다

오전 6시, 경북의 한 자동차 부품 중견기업 가공 공장. 야간 근무를 마친 정비팀장이 모니터 앞에서 커피잔을 든다. 수십 개의 설비 그래프가 잔잔히 흐르던 화면 한 귀퉁이가 노란색으로 바뀐다. 사흘 뒤 이상이 예상되는 CNC(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컴퓨터 수치 제어) 장비의 주축 모터다. AI가 사람 귀로는 도저히 구분할 수 없는 미세한 진동의 변화를 잡아내는 것이다. 이때, 정비팀이 출동하고 야간 점검 시간을 활용해 베어링을 교체한다. 따라서 제품생산 라인은 멈추지 않는다. 과거라면 갑작스런 설비 정지로 수천만 원의 손실이 났을 상황이 조용히 지나간다. 요즘 한국 제조업 현장에서 한창 회자되는 ‘AX(AI Transformation·인공지능 전환)’의 한 장면이다. DX는 ‘내비게이션’, AX는 ‘자율주행’ 지난 몇 년간 우리는 ‘DX(Digital Transformation·디지털 전환)’라는 말에 익숙해졌다. 종이 서류를 디지털화하고, 공장에 센서를 달아 데이터를 모으고, MES(생산관리시스템)로 공정을 관리하는 일들이 모두 DX였다. DX가 “데이터를 모으고 자동화하는” 단계였다면, AX는 “그 데이터로 AI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단계로의 도약이다. 쉽게 비유하자면 DX는 자동차에 내비게이션을 단 것이고, AX는 자동차가 스스로 운전대를 잡고 길을 찾아가는 것에 가깝다. 운전자를 ‘보조’하는 수준에서 운전을 ‘대신’하는 수준으로 진화하듯, 공장도 그 길을 가고 있다. 예지 정비···고장 나기 전에 AI가 알려준다 제조업 AX의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예지 정비(Predictive Maintenance)’다. 기존 정비는 두 갈래 방식이었다. ‘고장 나면 고치는 사후정비’, ‘일정 주기로 점검하는 예방정비’가 그것이다. 사후정비는 갑작스런 제품생산 라인 정지로 손실이 크고, 예방정비는 멀쩡한 부품도 미리 교체해야 하는 낭비가 있다. 예지 정비는 두 단점을 모두 해결한다. 설비에 부착된 진동·온도·소음·전류 센서가 24시간 데이터를 보내면, AI가 학습한 ‘정상 패턴’과 비교해 미묘한 어긋남을 포착한다. “이 패턴이 3주 후 베어링 마모로 이어진다”고 예측해 정비 시점까지 알려준다. 그 효과는 이미 수치로 입증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사 딜로이트(Deloitte)의 예지 정비 연구에 따르면, AI 기반 예지 정비 도입 기업은 설비 다운타임을 20~50% 줄이고, 전체 유지보수 비용을 최대 25%까지 절감하며, 설비 가동시간(uptime)을 10~20% 끌어올리고 있다. 부품 수명 역시 20~25% 연장된다는 보고가 이어진다. 이는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선다. 국내 제조업은 숙련 기술자의 고령화와 은퇴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 30년 경력의 정비 명장이 퇴직하면 ‘소리만 듣고도 어느 부품이 이상한지 아는’ 그의 머릿속 경험지식인 노하우가 함께 사라진다. AI 예지 정비 시스템은 바로 이 암묵지(暗默知)를 데이터로 변환해 저장한다. 숙련공의 경험을 다음 세대가 이어 쓸 수 있는 자산으로 바꾸는 셈이다. AI의 ‘눈’이 사람의 눈을 대체한다 품질관리 영역의 변화도 거대하다. 핵심은 ‘머신비전(Machine Vision)’ 기술이다. 카메라로 제품을 촬영하고 AI가 이미지를 분석해 불량을 판별한다. 사람 검사원은 8시간 일하면 피로해진다. 야간엔 집중력이 떨어지고, 작은 흠집은 놓치기 쉽다. 그러나 AI 비전 시스템은 24시간 같은 정확도를 유지한다. 1초에 수십 장의 사진을 찍어 1마이크로미터 단위 결함까지 잡아낸다. 이 기술의 도입은 빠르게 글로벌 표준이 되고 있다. 산업용 머신비전 분야 글로벌기업 코그넥스(Cognex)가 북미·유럽·아시아 제조업체와 시스템 통합업체 500여 곳을 대상으로 2026년 발표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7%가 이미 머신비전 운영 환경에 AI를 도입했고, 30%가 단기간 내 도입을 계획 중이라고 답했다. 국내 머신비전 검사 시스템 시장 역시 2021년 1조2000억 원에서 2026년 1조6000억 원 이상으로 성장할 전망이다(프로스트앤드설리번 인용). 이차전지가 성장의 견인차다. 배터리 안정성 요구가 엄격해지면서 셀 업체뿐 아니라 부품 협력사까지 AI 비전 도입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국내 중소 제조기업의 현실은 다르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국내 중소 제조기업의 AI 도입률은 1% 안팎에 머문다. 필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2025년 10월 스마트공장을 구축한 중소제조업체 502개 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47.4%가 “제조 공정에 AI 도입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보통’ 응답까지 포함하면 그 비율이 78.5%에 달했다. 필요한 분야로는 품질관리(33.9%), 생산 최적화(32.3%), 공정 자동화(31.9%)가 꼽혔다. 인식과 현실의 간극의 차이, 이것이 바로 한국 제조업 AX의 숙제다. 정부도 움직였다··· ‘M.AX 얼라이언스’ 출범 정부 차원의 행보도 본격화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5년 9월 ‘M.AX(Manufacturing AI Transformation) 얼라이언스’를 출범시켰다. 제조업 앵커 기업과 AI 벤처·로봇기업·연구기관을 연결하는 협력 플랫폼으로, 출범 당시 1000곳이던 참여기관이 3개월 만에 1300곳으로 늘었다(산업부, 2025년 12월). 2026년 M.AX 얼라이언스 예산은 7000억 원 규모다. 여기에 더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 3개 부처가 2026년 3월 합동 공고한 AX 통합사업 예산이 4230억 원이다. △AI 응용 제품 신속 상용화 1300억 원 △제조업 특화 스마트공장 구축 800억 원 △AI 통합 바우처 718억 원 등이다. 중소·중견기업이 핵심 수혜 대상이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의 2026년 AI 바우처는 기업당 최대 2억 원까지 지원되며, 중기부의 ICT 융합 스마트공장 보급·확산 예산도 전년 대비 크게 늘어 1695억 원이 편성됐다. 그러나··· “AI를 도입했는데 왜 그대로일까?” 화려한 통계 뒤에는 그늘도 있다. 현장 관리자들 사이에는 “AI를 도입했는데 수율은 기대만큼 오르지 않고 엔지니어 업무량도 줄지 않는다”는 푸념이 적지 않다. 이유는 단순하다. AI 모델은 학습 시점의 데이터를 기준으로 작동한다. 장비를 교체하거나 원자재가 바뀌면 환경이 변하고, AI의 정확도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 조용히 떨어진다. 이를 ‘모델 드리프트(Model Drift)’라 부른다. 도입은 시작이지 끝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AI 모델의 성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데이터가 달라지면 자동으로 재학습시키는 운영 체계, 즉 ‘MLOps(Machine Learning Operations)’가 주목받고 있다. 제조업의 AX는 기술 도입 프로젝트가 아니라 조직과 일하는 방식의 변혁이다. 경북, 중견 제조업의 ‘AX 골든 타임’ 마지막으로 우리 지역을 살펴보자. 구미의 전자·부품, 경주의 자동차 부품, 영천·영주의 기계금속, 안동·예천의 식품 가공, 그리고 포항·경산의 철강·금속 산업, 경북은 한국 제조업의 핵심 거점이지만, 인구 감소와 숙련공 고령화라는 구조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주목할 만한 지점은 중견기업의 민첩성이 AI 시대에 오히려 강점이 된다는 점이다. 2025년 8월 발표된 MIT NANDA 연구소의 ‘The GenAI Divide: State of AI in Business 2025’ 보고서에 따르면, 전문 공급업체와 파트너십을 맺고 AI를 도입한 기업의 성공률은 67%로, 자체 구축을 시도한 기업(성공률 약 3분의 1)의 두 배를 웃돌았다. 의사결정이 빠르고, 자원이 한정되어 오히려 ‘가장 아픈 한 곳’에 집중하기 좋은 중견기업일수록 이 모델에 적합하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시스템을 한 번에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아픈 공정 한 곳에서 작은 성과를 만들고 그 성과를 다음 공정으로 확장해가는 것’이다. 정부 지원사업도 이러한 단계적 접근을 염두에 두고 설계돼 있다. ‘AI를 활용하고 지배하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이 연재 첫 회의 메시지는 이제 우리 지역 공장 현장에서 가장 절실한 화두가 되고 있다. /서용운 계명대 글로벌 창업대학원 벤처창업학과 교수

2026-04-26

대통령도 권력을 사사로이 쓸 수는 없다

어린아이에게는 위험한 물건을 맡기지 않는다. 요즘은 모든 게 미쳐 돌아간다. 거대한 정치권력들이 기본이 안 된 어린애들에게 맡겨진 느낌이다. 민주주의의 모형이 된 아테네 정치도 몰락하고, 가장 민주적으로 설계됐다는 바이마르 체제도 나치의 등장으로 스스로 무너졌다. 우리 시대의 민주주의도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한 권력자의 결심으로 전쟁이 벌어졌다. 우크라이나에서, 이란에서. 세계 무역 질서가 무너졌다. 수십 년간 쌓은 약속과 계약이 휴지가 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무기를 손에 든 위험한 독재자다. 하지만 그는 세습했다. 문제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의 폭주다. 하버드대 교수들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연작에서 그런 사례들을 보여줬다. 당장 국민의힘은 장동혁 대표의 폭주를 막지 못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 총선에서 악재만 쏟아냈다. 오늘의 민주당 폭주를 낳은 장본인이다. 하지만, 본인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재명 정부 지지율이 고공행진 한다. 잘해서 얻은 박수인가. 윤석열 정부 실패의 반사이익,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는 국민의힘에 대한 거부감 덕분 아닌가. 그 수치만 믿고 스티븐 레비츠키가 설명한 길을 가고 있다. 정치적 경쟁자를 부정하고-사법부를 장악하고-언론의 입을 틀어막는 과정이다. 이재명 정부는 국회를 장악했다. 이전에도 대부분의 국회는 과반 다수당이 차지했다. 그럼에도 권위주의 시절 집권당도 이처럼 철저히 야당을 무시하지 않았다. 사법 체제도 손아귀에 넣었다. 검찰을 아예 없애고, 대법관의 과반수를 자기 손으로 임명하려고 할 줄 누가 예상이나 했겠나. 그래도 선의의 개혁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 스스로, 자신의 중단된 재판 문제임을 확인해준다. 이 대통령은 24일 X에 지난 2023년 ‘대장동 그분’ 보도로 한국신문상을 수상한 동아일보에 대해, “이제라도 수상을 취소 반납하고, 사과 및 보도 정정하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요?”라고 올렸다. 현직 대통령의 말이다. 엄청난 압박이다. 특검과 사법 체제에 대한 일련의 조치들이 과잉 충성이 아니라, 대통령의 의지인 셈이다. 검찰의 공소를 취소해 없었던 일로 만들려는 기초 작업이다. 동아일보의 2021년 10월 9일 보도는 뭔가. ‘정영학 녹취록’에 대장동 사건의 주역인 김만배 씨가 “천화동인 1호가 내 것이 아닌 것을 잘 알지 않느냐”, “그(천화동인 1호 배당금) 절반은 ‘그분’ 것이다. 너희도 알지 않느냐”라고 말했다는 내용이다. 김 씨가 뇌물로 쓸 150억 원을 요구하자, 정영학·남욱 씨가 천하동인 1호의 배당금 1208억 원에서 쓰면 되지 않느냐고 반발했다. 김 씨의 역할이 로비이고, 뇌물로 쓰려고 배당한 돈이란 의미다. 그러자 김 씨가 그 돈을 쓸 수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이 보도 며칠 뒤 이정수 당시 중앙지검장도 국회에서 “정치인 그분을 말하는 게 아니다”라면서도 “녹취록에도 ‘그분’이라는 표현이 한 군데 있기는 있다”라고 인정했다. 김만배 씨는 “내 쪽으로 구사업자 갈등이 번지지 않게 하려는 차원에서 말한 것”이라며 이 발언을 인정했다가, “그런 말을 한 일이 없다”라고 번복하는 등 오락가락했다. 이 대통령은 “팩트 발굴이 아니라 엄청난 조작을 한 것”이라고 직격했다. 당시 동아일보가 보도한 것은 ‘그분 것’이라는 표현이다. 거기에 대장동 일당 중 가장 연장자인 김만배 씨가 ‘그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나이는 허가권자인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뿐이라고 분석을 더 했다. ‘그분=이재명’이라고 보도하지는 않았다. ‘그분 것’이란 표현이 없었다면, 당연히 동아일보는 물론 당시 이를 보도한 모든 신문이 정정해야 한다. 한국신문상도 취소해야 한다. 그러나 정상적인 절차가 있다.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중단된 대장동 사건 재판을 재개해 사실을 밝히는 것이다. 그것이 어렵다면 국회에 관련자들을 불러 의견을 듣는 것이다. 왜 그 이야기는 듣지 않는가. 권력을 쥐었다고, 힘으로 밀어붙이면 또 다른 왜곡이 된다. 그런다고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6-04-26

거지방과 거지맵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3고시대를 맞아 젊은 세대들 사이에 지출을 극단적으로 줄이려하는 절약문화가 확산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온라인 상의 ‘거지방’과 ‘거지맵’이다. 거지처럼 절약하자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온라인 상에서 그들이 주고받는 내용들은 매우 건전하며 유익하다. 거지방은 카카오톡이나 오픈채팅 등에서 운영되는 절약 공유 커뮤니티다. 절약과 관련한 생활습관이나 정보로 가득하다. 기발한 절약방법을 공유하면서 서로가 격려와 칭찬도 주고 받는다. 거지맵은 최대한 돈을 아끼면서 먹을 수 있는 장소를 지도에 표시해 놓는 사이트다. 누군가가 만든 것이 아니고 이용자가 경험한 저가식당과 메뉴들을 소개하며 정보를 공유한다. 메뉴 가격은 대체로 1만원 미만이다. 두 사람이 같이 먹어도 1만원 정도 되는 수준이다. 중국집 메뉴인 자장면은 3000원, 찜뽕은 4000원 하는 곳이 더러 눈에 띈다. 서울을 비롯해 대구와 부산에서도 거지맵이 등장했다고 한다. 지역에 따라 거지맵의 하루 방문자 수가 수십만 명에 이르는 것도 있다고 하니 고물가 시대에 대응하는 MZ세대의 생존전략이 유난히 독특해 보이는 대목이다. 어쨌거나 예전에는 1만 원이면 한 끼 식사비로 충분했다. 하지만 요즘은 1만 원으로는 변변한 밥 한끼 먹기가 쉽지 않다. 중동전쟁의 여파로 국내 물가가 또 한 번 거센 인상 압박을 받고 있는 시점이다. 당국의 물가안정 대책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물가는 한번 오르면 잘 떨어지지 않는 속성이 있다. 굳이 거지라는 표현을 쓰면서 고물가와 싸우는 젊은 세대의 고육책의 배경에는 우리 경제의 어두운 단면이 숨어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4-23

스포츠 생중계 시대의 종말

최근 JTBC의 ‘2026 북중미 월드컵’ TV 독점 중계권을 두고 여러 논란이 확산되었다.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서 ‘보편적 시청권’을 언급하자 뒤늦게 KBS가 공동 중계에 뛰어들었다. 언론에서는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같은 메가 스포츠 이벤트에 대한 보편적 시청권의 관점에서 이번 사태를 바라보지만, 정작 더 심각한 문제는 스포츠 생중계 시청 행태의 근본적인 변화에 있다. 올해 2월 밀라노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닐슨코리아가 집계한 개막식 생중계 시청률은 1.8%였다. 이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시청률(44.6%)이나, 코로나 시기 치러진 2021년 도쿄 올림픽(17.2%)과 비교해 턱없이 낮은 수치다. 때로는 숫자 하나가 시대의 흐름을 보여준다. 일각에서는 1962년 이후 처음으로 지상파 올림픽 중계가 무산되어 발생한 참사라고 하지만, 이를 JTBC 독점 중계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이미 방송 업계를 강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유튜브를 통한 ‘하이라이트 시청 문화’의 보편화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알트만솔론이 2024년 3000명의 스포츠 팬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18~24세 팬 중 라이브 경기 전체를 시청하는 비율은 31%에 불과했다. 영국의 통계업체 원폴에 따르면 2024년 기준 10~20대의 80% 이상이 TV가 아닌 스마트폰으로 스포츠경기를 시청한다. 인스타그램 릴스, 틱톡, 유튜브 쇼츠 등이 그들에게는 익숙한 스포츠 세계다. 1분 미만의 편집된 영상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 두세 시간짜리 스포츠 생중계는 너무나 지루한 의식에 가깝다. 실제로 2024년 NBA(미국농구리그) 정규시즌의 ESPN 단독 중계 경기는 전년 대비 7% 하락했으며, NHL(북미하키리그)은 2024-25시즌 시청률이 전년 대비 13% 급감했다. MLB(메이저리그야구)의 가장 큰 행사인 ‘월드시리즈’의 하락세는 더욱 심각하다. 1991년 월드시리즈 7차전은 미국 전역에서 5034만 명이 시청했다. 하지만 2023년 월드시리즈의 평균 시청자는 911만 명으로 통계업체 닐슨이 집계를 시작한 1963년 이래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TV는 한 때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시청하는 공동체 미디어였다. 1977년 홍수환의 4전5기, 1983년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 대회의 4강 신화 등은 마을을 넘어 전 국민을 하나로 모은 서사였고,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 바로 TV 중계방송이었다. 스포츠 중계가 만들어내는 국가주의와 집단주의의 폐해도 분명 존재하지만, 공동체의 공통된 서사가 사라지고 개별화된 미디어 소비만 추구하는 현 상황이 대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스포츠 생중계가 제공하던 집단적 경험은 소리 없이 사라져가고 있다. 알트만솔론은 현 상황에 대해 “애피타이저와 디저트가 메인 요리가 되어버렸다. 스포츠 경기에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만든 짧은 콘텐츠가 경기 그 자체보다 더 인기를 끄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언급했다. 스포츠 팬들이 스마트 미디어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시청 시간은 점점 짧고 파편적인 단위로 쪼개진다. 스포츠의 서사는 사라지고, 화려한 순간들만 편집되어 소비된다. 이런 상황에서 월드컵의 보편적 시청권 논의는 큰 의미가 없다. 스포츠 중계 시대의 종말은 이렇게 다가온다. /주재원 한동대 교수

2026-04-23

‘탄소중립 거버넌스’

지구촌 곳곳에서 들려오는 이상기후 소식은 이제 더 이상 낯선 외신이 아니다. 우리 정부는 이에 대응해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2035)를 설정하고, 기후와 에너지 정책을 통합한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새롭게 출범시키며 탄소중립을 향한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각 부처 역시 앞다투어 다양한 감축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짚어보자. 중앙정부의 정책적 변화만으로 탄소중립이 가능할까? 실질적인 감축이 일어나는 현장은 결국 지자체이며, 시민들의 일상이 머무는 지역사회다. 탄소중립은 몇몇 개별 사업이나 단기적인 수치 달성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우리 삶의 방식이 바뀌는 지속가능한 거버넌스 체계가 구축될 때 비로소 탄소중립의 문턱을 넘을 수 있다. ‘탄소중립 거버넌스’란 말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핵심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 구조’에 있다. 과거에는 정부가 결정하면 시민은 따르는 방식이었다면, 거버넌스는 행정, 기업, 시민사회, 학계가 대등한 파트너로서 함께 목표를 세우고 결과에 책임을 지는 ‘협치’의 틀을 의미한다. 마치 마을의 큰일을 결정할 때 주민들이 모여 반상회를 열듯,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지역의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는 운영체계인 셈이다. 특히 대구와 경북은 지리적, 산업적 특성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타지역과는 차별화된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대구의 소비 에너지와 경북의 생산 에너지를 연계한 ‘대구경북 에너지 공동체’ 형성이 그 예다. 이러한 체계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으려면, 지역 내 갈등을 조정하고 장기적인 로드맵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 지속가능성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해외 사례를 보면 시사점은 명확하다. 독일의 ‘에너지 전환(Energiewende)’은 지역 단위의 에너지 협동조합과 거버넌스가 뿌리가 되었고, 국내에서도 당진시나 전주시처럼 시민 참여형 에너지전환 모델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를 우리 지역에 대입해 본다면 대구광역시는 ‘도시형 맞춤 거버넌스’가 핵심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아파트 단지별 탄소 다이어트 프로그램이나 수성알파시티 중심의 스마트 에너지 관리 시스템에 시민 참여를 결합하는 방식이다. 반면 경상북도는 ‘도농복합 맞춤형 모델’이 적합하다. 농촌의 영농형 태양광 사업이나 산림 자원을 활용한 탄소 흡수원 확충 과정에서 마을 공동체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지원하는 거버넌스를 도입해야 한다. 결국 ‘탄소중립 거버넌스’의 성공은 대구경북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결정짓는 핵심 도전과제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지자체는 권한을 시민과 공유하고, 지역민은 수동적인 정책 소비자가 아닌 능동적인 ‘탄소중립 실천가’로 거듭나야 한다. ‘대구경북 탄소중립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이는 단순히 환경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지역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다. 이제 정부의 입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대구경북의 손으로 우리 지역의 미래를 설계해야 할 때다. 우리 동네에서 시작되는 작은 협치가 거대한 기후 위기를 막아내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6-04-23

상식적인 법 집행을 보고 싶다

장모가 사위에게 맞아 죽었다는 뉴스를 접한다. 기가 막힌다. 세상이 흉포해졌다는 체감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다. 심지어 대낮에 흉기를 휘두르는 사건들이 이어지고, 무고한 시민이 피해자가 되는 일이 낯설지 않다. 이제 한두 사람 피해를 당하는 것은 뉴스감으로 와 닿지 않을 정도로 감각이 무디어져 가고 있다. 실제 누군가가 자신을 위협하는 행위가 일상화된 사회라는 이야기다. 그 결과 사람들은 불안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을 찾는다. 호신용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누군가는 차량에 위험한 도구까지 싣고 다닌다. 그러나 이 같은 현실은 우리 사회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문제는 단순히 범죄의 증가에 있지 않다. 더 큰 문제는 법과 정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법 체계는 원칙적으로 정당방위를 인정하고 있지만, 실제 적용 과정에서는 ‘과잉 방어’라는 기준이 엄격하게 작동한다. 그 결과 위협에 대응한 피해자조차 가해자로 전환되는 사례가 발생한다. 이는 시민들에게 “차라리 피하라”는 메시지를 주며, 적극적인 방어 의지를 꺾는다. 더 나아가 타인을 돕는 행위마저 위축된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보고도 개입을 주저하게 만드는 사회는 결코 건강하다고 할 수 없다. 법이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기는커녕, 행동을 억제하는 족쇄로 인식된다면 공동체의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의는 교과서나 영상 속 이야기로만 남고, 현실에서는 냉소와 방관이 자리 잡는다. 현행 법체계 아래에선 정당방위로 인정받는 사례가 드물다는 것이 국민의 정서와는 아주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누군가가 자기를 해치려고 할 때도 아주 이성적으로 방어하지 않으면 오히려 범죄자로 몰린다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요즘 드라마에서조차 법을 믿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고 한발 더 나아가 법이 하지 못하는 것을 개인이 알아서 복수한다는 개념의 사적 보복행위를 미화하는 것을 본다. 법이 물러터져 이런 형상을 가져오는 것일까? 잔인한 범죄자의 인권이 피해자의 인권보다 우선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 만드는 현재 이루어지는 법 집행에 많은 의문이 든다. 물론 법이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과도한 자력구제는 또 다른 폭력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선의의 피해자가 반복적으로 양산될 위험이 크다. 정당방위의 기준을 현실적으로 재정립하고, 긴급한 상황에서 시민이 자신과 타인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한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본다. 안전은 국가가 보장해야 할 기본 조건이다. 국민에게 ‘각자도생’을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사회는 이미 균열이 시작된 것이다. 법은 처벌의 도구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지탱하는 최소한의 장치이다. 지금 필요한 것이 더 강한 처벌만 원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균형 잡힌 정의의 회복이다. 그렇기에 명확한 법 집행을 요구하는 것이고 법률가들의 장난에 법이 훼손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것이다. 판사, 검사 그리고 경찰이 가진 제대로 된 공권력을 보고 싶다. 그래야 국민이 진정 법을 신뢰할 수 있을 것 같다. /노병철 수필가

2026-04-23

보경사 적광전의 청기와 한 장

포항 보경사 적광전 용마루 가운데엔 청기와가 1장 얹혀 있다. 적광전 지붕 위 수천 장의 기와 가운데 청기와 1장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사찰 건물 용마루에 청기와가 얹힌 사례는 보경사 말고도 개심사 대웅보전, 직지사 대웅전, 내소사 대웅보전, 대흥사 대웅보전, 마곡사 대광보전, 백양사 대웅전, 선운사 대웅보전과 만세루, 전등사 대웅보전, 구례 화엄사 각황전과 대웅전, 화계사 대웅전과 보화루 등 전국적으로 꽤 많다. 청기와가 보경사처럼 용마루에 1장만 올려져 있기도 하지만, 선운사처럼 한 사찰 내 여러 건물에 있는 경우도 있고, 화계사처럼 한 건물에 여러 장이 얹힌 경우도 있다. 전각도 대웅전이나 적광전, 원통전 같은 법당뿐만 아니라 만세루, 보화루 같은 누각에도 올라가 있다. 사찰 지붕 용마루에 청기와가 얹히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속설이 있다. 먼저 용마루의 청기와가 피뢰침 역할을 한다는 설이다. 이 설이 어디에 근거하는 알 수 없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인데도 불구하고 이 속설이 넓게 퍼진 것은 유명 사찰인 해남 대흥사의 공식 설명 때문인 듯하다. 2009년 8월에 어느 방문자가 이 절 홈페이지에 대흥사 대웅보전 지붕 가운데에 청기와가 얹힌 연유에 대해 질문을 했고, 사찰 측에서 “대웅보전 용마루 위에 청기와 한 장은 천둥번개와 벼락을 대비해서 피뢰침 역할을 하는 기능을 갖춘 기와입니다.”라는 답변을 적었다. 피뢰침의 원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설명이 도무지 상식에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찰 측에서 내놓은 공식 설명이기에 사실인 양 인식되었고, 다른 사찰의 청기와를 설명할 때도 그대로 차용되고 있는 듯하다. 사찰 용마루의 청기와가 임금이 다녀간 절을 의미한다는 속설도 있다. 직지사 대웅전 지붕의 청기와를 설명하는 어느 블로그에는 “스님들 말로는 임금이 왔다 간 절이라 합니다.”라고 적고 있는데, 이 속설도 꽤 널리 퍼져 있다. 서울 주변의 사찰이면 모를까, 조선시대에 김천 직지사나 포항 보경사, 해남 대흥사까지 임금이 어찌 다녀갈 수 있었겠는가를 생각해 보면 이 또한 사실과 부합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화려함의 상징으로 불리는 청기와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와를 만든 후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해 색조 변화를 추구한 결과다. 청기와 제작에 쓰이는 주원료인 염초(焰硝)는 화약을 만드는 주재료인 염토에서 채취해 만들었는데, 그러다 보니 염초는 국가에서 관리할 정도로 매우 중요하게 취급하였다. 이 때문에 청기와 제작에는 비용이 많이 들었고, 궁궐이나 왕실과 관련이 있는 건물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기에 청기와는 곧 권위의 상징이 되었다. 그런데 기록을 살펴보면 청기와는 궁궐 이외에도 원각사, 봉선사, 장의사 등의 사찰 전각에 사용된 사례가 있고, 발굴조사를 통해 관악사지, 중흥사지, 한흥사지, 원각사지, 영국사지, 서봉사지, 개흥사지, 회암사지 등에서 청기와가 확인되었다. 사찰에서 청기와가 한두 장 전해 오는 경우는 왕실 하사품인 경우가 많다. 그걸 설명해 주는 일화가 있다. 단양 영춘면 화장암(華藏庵)은 조선말에 폐허가 되었는데, 1897년에 김영준(金永俊)이 유지들의 협조를 얻어 중창하게 되었다. 그러나 착공한 뒤 돈이 걷히지 않자 영춘현감에게 국고 1천 냥을 빌려 짓게 되었는데, 뒤에 갚지 못하게 되었고, 김영준은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이때 대원군이 화장암 산신령의 현몽을 얻은 뒤 김영준을 직접 문초한 뒤 사면하고, 친필로 화장암 현판 1점, 청기와 3장, 법복 1벌과 함께 고종의 초상화를 내려 절에 봉안하도록 하였다 한다. 이 일화는 대원군의 명에 의해 화장암이 왕실의 원찰이 되었으며, 당시 왕실에서 청기와를 3장 하사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청기와는 왕실을 상징했고, 청기와가 있는 사찰은 원찰로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순천 송광사 성보박물관에는 청기와가 2장 소장돼 있다. ‘조계산 송광사지(曹溪山松廣寺誌)’에 따르면 고종 39년(1902)에 환갑을 맞은 고종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성수전(聖壽殿)이 건립되었다. 이 당시 왕실에서 자금은 물론 상량문과 예폐(禮幣)를 내렸다고 한 것으로 보아 박물관에 있는 청기와도 이때 하사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화장암과 송광사의 사례에서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왕실에서 하사한 청기와를 사찰 측에서 보물로 여겨 소중하게 보관하기도 했지만, 사찰에 따라서는 건물 지붕 용마루 같은 곳에 올려 왕실 원찰임을 과시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현재 사찰 전각의 청기와는 이러한 연유에서 용마루에 얹힌 것이 아닐까 한다. 보경사 적광전 용마루의 청기와 1장은 결국 왕실 원찰임을 나타내고 싶은 의도로 봐야 한다. 전국의 많은 사찰에서 발견되는 용마루의 청기와는 상당수가 보경사 적광전의 경우처럼 왕실 원찰임을 나타내고 싶은 의도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유교국가인 조선왕조의 억불정책과 관련이 깊다. 말하자면 노골적인 불교탄압 정책 속에 관아와 사대부로부터 사찰과 승려를 보호하고자 하는 절실함이 숨어 있는 것이다. 왕실로부터 보호받는 사찰이라면 관아에서도, 사대부도 함부로 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경사의 경우 적광전 비로자나후불도에 왕과 왕비, 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축원문을 새겨 넣은 일이나 숙종대왕의 어필각판(御筆刻板)을 제작하여 보관해 온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된다. /박창원 동해안민속문화연구소장

2026-04-23

장수시대

오늘도 어김없이 그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별다른 용건은 없다. 그의 집에서 도서관으로 가는 길목에 내 사무실이 있을 뿐이다. 지난해 연말 퇴직한 그는 요즘 도서관 가는 일을 하루 일과처럼 삼고 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그는 같은 시간에 같은 걸음으로 이 길을 지난다. 나는 자리에 앉은 채 고개만 까딱했다. 그는 여느 때처럼 가방을 소파에 내려놓고, 물 한잔으로 숨을 고른다. 빈 종이컵을 쥔 채 내게 묻는다. 표적치료 보험은 들어 두었느냐고. 마치 안부를 묻듯 자연스러운 질문이다. 이 나이에 또 새로운 보험을 들어야 하느냐고 되묻자, 그는 암이 정복되는 시대라며 말을 이었다. 치료비가 워낙 비싸니 미리 준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다. 인공지능 기술로 만든 보조기구만 있으면, 관절염으로 걷기 힘든 사람도 산을 오른다지 않는가. 텔레비전에서 보았다며, 누군가는 로봇의 힘을 빌려 다시 걷는 연습을 한다고도 했다. 머지않아 장기 교체도 가능해질 것이고, 어떤 이는 200세 시대를 이야기한다고 했다. 그의 말은 과장처럼 들리면서도 그렇다고 허황되지는 않았다.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변해 왔고, 앞으로는 더 빠를 것이다. 다만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 미래를 더듬어 180세쯤 된 나를 떠올려 본다. 가진 것은 넉넉지 않지만, 그 시대에 맞춰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혼자서는 외출은커녕 차려진 밥상에 앉는 일조차 남의 손을 빌려야 하는 어머님의 모습이 내가 된다.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다리와 굳어가는 손끝, 그리고 말없이 길어지는 하루. 그렇다면 내 아들은 150세나 되었을까. 그 또한 누군가의 돌봄을 받으며 살아갈지 모른다. 120세가량 되는 손자는 로봇의 도움으로 혼자 생활하고 있을까. 사람보다 많은 기계 속에서 눈을 뜨고 눈을 감는 삭막함이 생활화 되었을까. 이미 로봇이 되어가는 90세쯤 되는 증손은 제 삶을 꾸리기에 바빠 제 아비를 돌아볼 겨를이나 있을까. 늦게 결혼해 마흔의 고손이라도 있다면, 그는 180세의 할미인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까. 나는 그의 존재를 알까. 핏줄로 이어졌다는 사실만으로 서로를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각자도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삶이 그려진다. 그때 어머님 얼굴이 떠올랐다.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만 건너는 하루는 창밖을 몇 번이나 바라보고, 벽에 걸린 시계를 몇 번이나 들여다보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하루를 밀어내는 눈앞에 잠만이 왔다 갔다 한다. 그 긴 하루를 보내고 있는 어머님은 지금 어떤 마음일까. 장수라는 말이 더는 축복처럼 들리지 않는다. 살아 있음이 아니라, 버텨냄에 가까운 시간들. 누군가에게 기대어 이어가는 하루가 반복된다면, 그 시간을 과연 삶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아도 좋겠다. 내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는 날들, 내 손으로 밥을 먹고, 내 의지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날들로 채워지기를 바란다. 보험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에게 말했다. 아프면 그냥 죽을 거라고.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만 오래 살아서 무엇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친구도, 대화할 그 누구도 없이 살아가는 일이 과연 삶일까. 후손들 가운데 누군가에게 닥친 고통을 지켜보며 살아야 한다면, 그 또한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은 별 탈 없이 지내고 있지만, 더 나이 들어 그러하다면 나는 자연에 순응하겠다고 했다. 말로는 쉽게 내뱉었지만, 그 말이 나를 향한 다짐인지 두려움의 다른 이름인지는 알 수 없다. 그는 못 믿겠다는 듯 웃었다. “그 말, 나중에 바뀔걸요?” 그럴지도 모른다. 사람 마음이란 그렇게 단단하지 않으니까. 살아야 할 이유보다 버텨야 할 이유가 많아지는 날이 온다면, 나 역시 생각을 바꾸게 될지도 모른다. 늘그막 눈서리 끝에 폭설이 올까 두렵지만, 그래도 나는 오래 사는 일보다 오늘을 느끼며 사는 쪽을 택한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지금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며, 순간의 시간을 살아내는 일. 그 하루가 쌓여 삶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는 도서관으로 향했고, 나는 컴퓨터를 켰다. 각자의 방식으로 또 하루를 살아간다. 올 봄, 벚꽃이 유난히 예쁘다. /윤명희 수필가

2026-04-22

6·3 포항시장선거, 여야를 떠나 공약은 ‘수소환원제철’이어야 한다

2026년 4월 6일 오전 11시, 포항시청 브리핑룸에 두 개의 노동조합이 나란히 섰다. 서로 다른 상급 단체에 속한 포스코노동조합과 현대제철지회였다. 같은 자리에 서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그들이 꺼낸 메시지는 더 이례적이었다. “철강산업이 무너지면 포항이라는 도시의 심장도 멈춘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도시 전체를 향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이들은 철강 위기를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10만 철강 가족의 생존 문제이자, 포항이라는 도시의 존립 문제로 규정했다. 글로벌 공급 과잉과 수요 감소, 탄소 규제 강화,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 급등한 산업용 전기요금까지, 산업을 짓누르는 사중고를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절박함이 그 말 속에 압축되어 있었다. 그들은 지방정부의 전면 대응을 요구했고, 실질적인 지원책과 함께 다가오는 6·3 지방선거에서 산업 위기를 놓고 공개적인 정책 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장면은 지금 포항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포항에서 철강은 산업이 아니라 삶의 일상이다. 그래서 철강의 흔들림은 곧 도시 전체의 흔들림으로 이어진다. 철강이 약해지면 일자리가 줄고, 일자리가 줄면 청년이 떠나며, 청년이 떠나면 도시의 숨결이 빠르게 식는다. 지방소멸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산업의 약화에서 시작해 삶의 기반이 무너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금 포항이 서 있는 자리는 그 연쇄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문제는 단순한 경기의 등락이 아니다. 산업을 둘러싼 규칙 자체가 바뀌고 있다. 탄소중립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 진입 조건이 되었고, 철강은 가격과 품질만으로 평가되던 시대를 지나 생산 과정의 탄소 배출량으로 평가받는 산업으로 바뀌고 있다.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는 그 변화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제 고탄소 철강은 경쟁력 이전에 시장 접근 자체가 제한된다. 전환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구조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이 변화 앞에서 포항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하나다. 철강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철강을 바꾸는 것이다. 그 중심에 수소환원제철이 있다. 석탄 대신 수소를 이용해 철을 생산하는 이 방식은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평가된다. 철강이 계속 존재하기 위해서는 결국 이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전환을 가장 현실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도시가 바로 포항이다. 오랜 기간 축적된 산업 생태계와 숙련된 노동력, 항만과 물류, 연구개발 기반이 이미 이곳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철강의 과거가 포항에 있었다면, 철강의 미래 또한 포항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러나 방향이 곧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수소 산업은 목표는 분명하지만 기반은 취약하다. 청정수소는 아직 충분한 물량이 확보되지 않았고 가격도 높다. 공급 체계 역시 산업 현장의 요구를 감당할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정수소만을 기준으로 산업을 설계하면 출발 단계에서부터 전환이 멈춰 설 수 있다. 산업은 선언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물량과 가격, 그리고 예측 가능한 환경이 갖춰질 때 비로소 움직인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이상적인 목표가 아니라 현실적인 경로다. 초기 단계에서는 일반수소를 기반으로 생산을 확대하고, 그 과정에서 가격을 낮추며 산업을 키운 뒤 점진적으로 청정수소로 전환해 가야 한다. 과정을 건너뛴 전환은 없다. 이 단계를 무시하면 수소환원제철은 기술의 이름으로만 남고, 현장은 끝없는 대기 상태에 머물게 된다. 이 문제는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수소 산업을 바라보고 투자에 나선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존재한다. 설비와 부품, 저장과 운송, 안전 관리와 플랜트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산업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지만, 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이들 기업이다. 산업 전환이 성공하려면 이 생태계 전체가 함께 살아남아야 한다. 전환은 기술이 아니라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그 구조의 가장 약한 고리가 드러나고 있다. 수소 관련 중소기업들이다. 일부 기업들은 이미 수소 생산과 관련한 혁신 기술 개발에 뛰어들어 있다. 그러나 이들은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무너질 위기에 놓여 있다. 포항이 수소 산업 특구를 지향하고 있음에도 현장의 기업들은 안정적인 수요와 가격을 확보하지 못한 채 버티고 있다. 기업 경영에는 ‘자본의 시간’이 있다. 기술이 아무리 앞서 있어도 시장으로 연결되기까지 버틸 자금이 없으면 기업은 살아남지 못한다. 현금 흐름이 끊기는 순간 기술도 산업도 함께 사라진다. 결국 산업 전환의 성패는 대기업의 투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중소기업이 버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업이 예측 가능한 환경 속에서 투자하고 생산하고 버틸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정책의 역할이다. 이제 시선은 6·3 포항시장선거로 향한다. 이번 선거는 단순한 지역 정치의 경쟁이 아니다. 포항이 철강 도시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전환에 실패한 도시로 남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선택의 과정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단순해진다. 후보들의 공약은 이 변화에 답하고 있는가. 수소에너지가 직접적으로 사용되는 수소환원제철은 더 이상 하나의 정책 아이디어가 아니다. 그것은 포항의 생존 전략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 이 문제를 핵심 공약으로 다루지 않는다면, 그 공약은 현실을 외면한 것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언급이 아니라 내용이다. 수소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가격을 어떻게 낮출 것인지, 철강 기업과 중소 협력업체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노동 전환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그리고 중앙정부와 어떤 방식으로 협력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답이 필요하다. 공약은 구호가 아니라 실행 계획이어야 한다. 여기서 더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이 문제는 특정 정당의 공약이 되어서는 안 된다. 철강의 전환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포항의 미래를 좌우하는 이 과제는 여야를 나눌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야를 넘어 공통의 기반 위에서 추진되어야 할 최소한의 합의이자 출발점이다. 따라서 수소환원제철은 특정 후보의 차별화 공약이 아니라, 모든 후보가 반드시 채택해야 할 기본 공약이 되어야 한다. 경쟁은 채택 여부가 아니라 실행 능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누가 더 현실적인 경로를 제시하는가, 누가 더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는가, 누가 더 빠르게 산업 전환을 실현할 수 있는가의 경쟁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번 선거가 지역의 미래를 놓고 벌어지는 진짜 선택이 된다. 포항은 한 번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었던 도시다. 이제 다시 한 번 선택의 문 앞에 서 있다. 과거의 방식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산업 질서를 여는 도시가 될 것인지가 결정되는 순간이다. 철강이 멈추면 도시도 멈춘다. 그러나 철강을 바꾸는 데 성공한다면, 포항은 다시 한 번 대한민국 산업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무엇을 말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약속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약속은 분명해야 한다. 수소환원제철은 선택 가능한 공약이 아니다. 포항시장에 출마하는 후보라면, 여야를 떠나 누구나 반드시 제시해야 할 공약이다.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2026-04-22

치매 환자를 욕보이지 마라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이란을 침공한 일부터 그 이후 보여준 행보에 대해 미국 내 인사들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그를 치매라느니, 정신병자라느니, 요양원에 보내야 한다느니 하는 식의 비난이 뉴스를 달구고 있다. 실제로 어떤 네티즌은 오락가락하는 트럼프의 발언을 날짜별로 정리해서 게시했다. 일부를 인용하면, 3월 3일 “우리가 전쟁에서 이겼다.”, 3월 9일 “우리는 이란을 공격해야 한다.”, 3월 12일 “우리가 이기긴 했는데, 아직 완전히 이긴 것은 아니다.”, 3월 14일 “우리를 도와달라.”, 3월 16일 “사실 우린 어떤 도움도 필요 없다.”, “누가 내 말을 듣는지 테스트해 봤다.”, “나토가 도와주지 않으면 아주 나쁜 일을 겪게 될 거다.”, 3월 17일 “우리는 나토의 도움이 필요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 등이다. 이후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둘러싸고도 말이 여러 번 바뀌었으니 누가 봐도 트럼프는 정신없는 사람 같다. 지난 12일에는 자신을 예수처럼 표현한 AI 합성 사진을 올렸다가 보수 기독교계의 뭇매를 맞고 12시간 만에 내리더니 15일에는 눈을 감고 예수 품에 안겨 있는 AI 합성 사진을 올리고 뿌듯해하고 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이런 모습을 보면 트럼프에게 정신 병원에 가라는 비난이 지나친 것 같지는 않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비난은 지난 9일 중앙의 한 일간지에서 대서특필한 ‘치매설’ 보도다. ‘마가(MAGA)’ 진영의 대표적 보수 논객 알렉스 존스조차 ‘이란 문명을 멸망시키겠다’는 트럼프를 비난하면서 자신을 공격하는 트럼프에게 ‘치매’라고 응수했다는 뉴스다. 어떤 사람의 행보를 비판할 때 비유를 사용하는 것은 직설적인 표현보다 강력한 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트럼프에게 치매라는 비유는 적절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면죄부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염려스럽다. 더 큰 문제는 치매와 치매 환자에 대한 인식을 엄청나게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최근 보여준 트럼프의 행동이 정상적인 판단력이라고 생각하기 어렵고, 오락가락하는 급격한 감정 변화는 비정상이라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 게다가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최고령으로 현재 79세이니, 치매가 발병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이다. 그러나 백번 양보해도 치매 환자의 특징과 트럼프의 광포함은 공통점은커녕 비슷한 점도 하나 없다. 치매 환자는 길을 잃고 판단력을 잃고 자신조차 잃지만, 트럼프가 가는 길은 명확하고 확실한 이해관계가 있으며 극단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치매 환자가 얼마나 연약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인지 생각하면, 트럼프를 치매라고 하는 것은 치매 환자를 욕보이는 것이다. 한때 ‘개 같다.’ 등 개를 비하하는 욕설에 개가 얼마나 충직한 동물인데 개를 모욕하지 말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개만도 못하다.’는 욕설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동물 비유조차 이러한데 하물며 사람이랴. 정치지도자의 비정상적인 선택을 비판할 때는 비유법보다 직설법이 백배 낫다. /유영희 인문학자

2026-04-22

원인이 없이 지속되는 심한두통

머리가 아프면 대부분은 머릿속의 문제를 먼저 떠올린다. 그래서 두통이 낫지 않거나 극심하면 MRI나 CT를 찍어보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은 검사 결과가 정상이고 머릿속은 특별한 이상이 없다. 실제로 머릿속에 문제가 있으면 뇌졸중이나 뇌종양 같은 구조적 문제가 발생한 경우라 이상이 있었다면 병원에서 놓치기 힘들어 이렇게 원인 없이 지속적으로 고생을 하지 않는다. 두통의 대부분은 뇌의 문제가 아니라 목의 문제다. 특히 상부경추가 비틀어지거나 주변 근육이 뭉쳐서 생기는 두통일 가능성이 높다. 이를 경추 기원성 두통이라고 한다. 목뼈 위쪽 특히 2번 경추 주변에는 대후두 신경이라는 중요한 신경이 지나가는데 이 부위가 긴장되거나 눌리면 통증이 머리 뒤쪽만이 아니라 관자놀이 눈 주변 등 머리 전체적으로 통증이 생길 수 있다. 검사에서는 이상이 없지만 실제 통증은 분명히 존재하는 이유는 대부분 여기에 있다. 통증의 원인이 머리가 아니라 목이기 때문에 이런 두통은 단순히 진통제를 먹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특히 장시간 앉아서 일하거나 스마트폰을 오래 보는 등 경추에 무리가 가는 생활을 하는 경우 상부경추에 지속적인 부담이 쌓인다. 여기에 어깨와 흉추까지 함께 굳어 있으면 목 주변의 긴장은 더 심해지고 신경이 압박되는 상태가 반복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두통은 점점 만성화되고 심해진다. 치료는 단순히 아픈 머리를 누르고 침을 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원인이 되는 경추와 주변 근육 그리고 어깨 등의 구조를 풀어주는 것이다. 먼저 추나나 마사지로 상부경추의 정렬을 바로잡고 함께 긴장되어 있는 흉추와 어깨까지 풀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목 주변의 부담을 줄이고 신경이 눌리는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 여기에 대후두 신경이 지나가는 부위를 사혈이나 침으로 직접 풀어주는 치료를 병행하면 통증을 줄이는데 더욱 효과적이다. 특히 대후두 신경을 하이드로다이섹션 방식으로 직접적으로 신경 주변을 약침으로 박리하면 빠른 시간에 두통이 사라진다. 두통은 구조 문제뿐 아니라 혈액 순환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목과 어깨가 긴장되어 있으면 머리로 가는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못해 두통이 더 쉽게 발생하고 낫지 않고 오래 지속된다. 이런 경우에는 목과 어깨 머리 쪽의 혈액순환을 개선하고 자율신경을 안정시키는 한약을 함께 사용하면 회복 속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환자 스스로 할 수 있는 관리도 중요하다. 가장 기본은 목을 앞으로 빼는 자세를 줄이는 것이다. 앉아 있을 때 턱을 살짝 당겨 목을 세우는 자세를 유지하고 한 자세로 오래 있지 않도록 중간중간 가볍게 목과 어깨를 움직여 주는 것이 좋다. 무리한 스트레칭보다는 통증이 없는 범위에서 부드럽게 움직여 주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 특히 어깨를 뒤로 가볍게 젖혀주고 가슴을 펴는 동작은 상부경추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MRI나 CT 등이 정상인데도 두통이 계속된다면 원인을 머리에서 찾지 말고 목으로 옮겨볼 필요가 있다. 반복되는 두통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고 그 원인을 정확하게 찾고 풀어주면 생각보다 빨리 통증은 사라진다. 진통제만 먹고 버티지 말고 경추를 바로 잡고 눌리는 신경을 풀어주면 빠른 시간에 두통을 잡을 수 있으니 참고 살 이유는 없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6-04-22

고향 등지는 청년들

자신이 태어나고 유년기와 소년 시절을 보낸 공간에서 삶을 영위하고 싶은 건 인간의 보편적 바람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그건 이루기 힘든 꿈에 가깝다. ‘20~30대 청년이 직장을 찾아서 부모 곁을 떠나 수도권으로 몰리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들어온 것일 터. 지방엔 청년세대가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구체적인 수치 역시 청년들의 ‘지방 이탈-수도권 진입’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어 서글프다. 2023년 12월에 발표된 통계청 고용동향은 수도권 청년 취업자 비중이 51.6%라고 적시하고 있다.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직업을 찾는 청년 가운데 절반 이상이 고향을 등지고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을 향하고 있는 것. 무사히 수도권에서 직장을 잡았다고 해도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서울 포함 수도권 지역 전월세와 매년 월급보다 많이 오르는 물가, 여기에 홀로 지내는 외로움까지 떠안아야 하는 게 타향살이다. 경험자들은 잘 알고 있다. 대다수 전문가의 지적처럼 지역 소멸 문제는 일자리 부족과 직결된다. 일할 곳이 없는 도시라면 머물기가 어려운 게 당연지사. 여기에 더해 맞벌이를 하는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는 것도 지방이 안고 있는 문제다. 어린이집 등 돌봄기관의 부족은 한국 지방자치단체 대부분의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도, 믿을만한 보육기관도 부족하니 지방을 떠나 수도권으로 가는 청년들을 막을 방법이 있을까? 누구도 뾰족한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4-22

오래된 것, 밝은 것, 하얀 것

새벽 4시 30분, 정류장 벤치에 앉아 공항버스를 기다렸다. 이르다고 해야 할지, 늦었다고 해야 할지 모를 모호한 시간이었음에도 거리에 차가 제법 많았다. 아직은 가벼운 캐리어를 끌어안고 꾸벅꾸벅 조는 사이 점차 정류장에 사람이 모였다. 사람들의 얼굴에 머문 기대감과 설렘 덕에 우리가 모두 같은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의 목적지가 같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버스는 예정된 시각에 도착했다. 일행과 나는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불빛들을 눈으로 훑으며 우리가 가야 할 곳과 해야 할 것들을 떠올렸다. 우리는 삿포로에서 5일간 머무를 예정이었다. 삿포로는 눈에 의한, 눈을 위한 도시였지만 우리의 목표는 눈이 아니었다. 나에게 눈이란 여행지를 조금 더 여행지답게 만들어주는 작은 요소일 뿐이었다. 게다가 우리가 여행을 떠난 3월 말에는 새하얗고 부드럽기로 유명한 삿포로의 눈은 다 녹아 없어진 후였다. 우리의 목표는 학교에 방문하는 것이었다.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학교였지만, 일행에겐 중요한 장소. 일행이 어린 시절 다녔던 학교는 스미카와라는 작은 동네에 있었다. 스미카와역은 삿포로역에서 지하철로 20분 거리에 있었다. 한적한 역, 사람도 차도 보이지 않는 거리. 역에 도착했을 때부터 일행은 들뜬 듯 걸음이 빨라졌다. 나는 일행을 따라 주택과 작은 카페뿐인 동네를 걸었다. 이토록 사람이 없는 거리라니, 나는 점점 고양되어 팔다리를 힘차게 휘저으며 도로를 행진했다. 그러다 작고 귀여운 강아지와 산책하는 할머니 한 분을 맞닥뜨렸다. 카와이, 내가 감탄하자 할머니는 무어라 일본어로 내뱉고는 조용히 멀어져갔다. 뭐라고 하신 거야? 일행에게 묻자 일행은 웃으며 대답했다. 강아지가 사람과 친하지 않아 미안하대. 학교 건물은 내 생각보다 더 작고 아담했다. 나는 일행을 건물 앞에 세워두고 필름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외부인은 학교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기에 우리는 어색하게 건물 주변을 서성였다. 나는 건물을 촘촘히 쌓아 올린 벽돌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일행이 그 학교에 다녔던 시절 품고 있던 외로움에 대해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눈 쌓인 도로를 질주하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가 여러 번 꺼내놓았기 때문이다. 낯선 동네, 낯선 언어, 낯선 사람들, 그 낯섦이 오히려 어떤 위안이 되어주었다는 것도. 한참 건물을 올려다보던 일행이 이제 됐다고 말했다. 다 봤어? 다 봤어. 나는 앞서가는 일행 뒤에서 몰래 건물 사진 한 장을 더 찍었다. 이른 시간이었던 터라 동네에 문을 연 가게가 거의 없었다. 동네를 배회하던 우리는 근처에 뮤지엄 액티비티라는 화석 센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범해 보이는 입구와 달리 내부에는 거대한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전시실 안쪽에 자리한 거대한 화석이었다. 데스모스틸루스. 일행이 안내판에 적힌 문구를 소리 내 읽었다. 약 1300만 년 전 신생대 바다에서 살았던 해양 포유류. 데스모스틸루스라는 이름은 ‘결속된 기둥’이라는 뜻이었다. 이빨 구조가 여러 개의 기둥을 묶어놓은 듯 독특한 구조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우리는 느긋하게 센터를 돌아다니며 각종 화석과 표본들을 구경했다. 연구실에는 흰 가운을 입은 연구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무거운 책을 옮기거나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관찰했다. 관람객은 일행과 나뿐이었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은 채 일에만 집중했다.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 좋아하는 일에 몰두한 사람들. 나는 그들을 몰래 바라보았다. 거대하고 화려한 화석보다도 그들의 모습이 더 경이롭게 느껴졌다. 그렇게 얼마나 서 있었을까, 우리는 천천히 센터를 빠져나왔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우리는 화석 센터에 기념품이 없던 걸 연신 아쉬워했다. 손에 쥘 수 있는 게 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계속 기억할 수 있을 테니까. 일행은 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을 떠난 후에도 늘 스미카와에서의 시간을 기억했고, 마침내 다시 찾아왔다. 나는 그때와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지만, 일행과 맺은 인연을 계기로 그곳을 찾았다. 결속과 기둥. 두 단어로 이루어진 하나의 이름이 계속 떠올랐다. 3월 말 삿포로에는 눈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한때 이곳에도 새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는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일행의 기억 속 외로움도, 자전거를 타고 언 도로를 달리던 감각도. 오래되고 밝고 하얀 것들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른 모양으로 남는다. 손에 쥘 수 없어도. /양수빈(소설가)

2026-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