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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혼이라는 하산

지난 겨울부터 등산을 시작했다. 가볍게 월포 용산으로 첫 등산을 했고, 내연산 선일대와 문수봉, 삼지봉을 차례로 등정했다. 새벽 등산으로 간 비학산의 가파른 코스 중간, 포항 시가지와 동해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암바위에 앉아 쉬며 시원한 생수를 마실 땐 사람이 자신의 육체와 자연만으로 순수하게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이런 것인가 싶기도 했다. 얼마 전엔 내연산 향유봉에 다녀왔다. 아침 일곱 시 반에 등산을 시작했는데, 하산해 보경사에 도착한 시간이 다섯 시 반이었으니 장장 열 시간의 산행이었던 셈이다. 향유봉에 올랐다는 기쁨과 성취감도 컸지만, 가장 뿌듯했던 것은 열 시간의 산행을 무사히 끝내고 안전하게 하산한 것이었다. 등산한 지 8시간쯤 되자 발바닥이 아프고, 기계적으로 걷고 있는 다리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지만, 고비마다 눈앞에 펼쳐지던 내연산 곳곳의 절경은 이런 신체적 한계와 통증을 잊게 하기에 충분했다. 등산을 하다 보면 정상까지 오르는 것보다 하산하는 것이 훨씬 어렵고 힘들다는 걸 알게 된다. 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 더 큰 집중력과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오를 때와 달리 내려올 땐 조금만 집중하지 않아도 미끄러지거나 낭떠러지 옆에서 휘청거리는 등 위험한 순간이 생긴다. 정상에 올랐을 뿐, 하산할 때 사고가 난다면 그것은 등산에 성공한 것이 아니다. 등산을 하며 얻은 기쁨과 건강을 원동력으로 다시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또 다음 등산을 기약하기 위해서도 안전하게 하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혼 전문 변호사로 일하다 보면 결혼과 인생도 이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인생이라는 등산의 일부에 불과하다. 부부가 불가피하게 헤어지게 되었다면 조금 힘들더라도 이혼이라는 결혼생활의 하산을 잘 해놓아야 한다. 조급하게 이혼했다가 뒤늦게 후회하고 생활고까지 겪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빨리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전 부인이 원하는 대로 재산분할을 해주고 자녀들에 대한 양육비도 고액으로 정해 이혼했던 분이 상담을 왔다. 당연히 전 부인은 순순히 이혼 도장을 찍어주었고, 몇 년간은 이분도 자유를 찾는 듯했다. 무리를 해서 양육비를 보내며 전처와 자녀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사업이 힘들어지자 양육비를 보내지 못하는 달이 생겨났다. 그동안 많은 돈을 받은 전처가 이해해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이들의 엄마는 바로 형사고소와 감치 신청, 운전면허 정지 등의 모든 조치를 취해왔다. 조금 시간이 걸리고 변호사 비용이 들더라도 이혼할 때 형편에 맞는 적정한 수준의 재산분할과 양육비를 정했더라면 이런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돈이 생기면 주겠다는 상대방의 말만 믿고 조급하게 양육비나 재산분할금을 적게 정해 이혼했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다. 하지만 법원을 통해 한 번 정한 양육비 등을 변경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혼이라는 매듭을 잘 짓고 헤어지는 것은 결혼이라는 등산의 실패가 아닌 완성이 되기도 한다. 인생의 한 고비에서 무사히 하산한 이후에야 비로소 인생의 다음 단계를 시작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김세라 변호사 △고려대 법과대학, 이화여대 로스쿨 졸업 △포항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2026-05-14

‘물-에너지융합’

한때 전기요금은 전기요금대로, 수도요금은 수도요금대로 따로 확인하는 일이 당연했다. 고지서 따로 사이트 따로 생활 속 절약 정보도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폭염과 가뭄이 일상이 된 지금은 물과 에너지를 따로 볼 수 없다. 정부가 5월 공모전을 통해 ‘물-에너지 융합’을 적극 알리려는 것도 그 이유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국가 차원의 핵심 과제가 멀리 있는 미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안동 임하댐의 수상태양광, 대구 국가물산업클러스터의 지능형 물기술처럼 대구·경북의 인프라가 이미 그 가능성을 현장에서 보여주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자부심에 머무르지 않고, 주민이 체감하는 복지 기술로 완성도를 높이는 일이다. ‘물-에너지 융합’은 어렵게 들릴 수도 있지만 뜻은 단순하다. 물을 공급하고 정화하는데 에너지가 들고, 에너지를 생산하는 데도 물이 필요하니 둘을 하나의 순환 체계로 함께 관리하자는 발상이다. 대구·경북은 이 전략을 시험하고 키우기에 매우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대구는 폭염 대응과 도시 수요관리가 시급하고, 경북은 풍부한 전력 생산 기반과 넓은 농촌·산업 현장을 함께 안고 있다. 그래서 이 지역의 ‘물-에너지 융합’은 단순한 기술 실험이 아니라 도시의 생활 안전, 농촌의 물복지, 산업의 안정 공급을 한꺼번에 풀어내는 지역 발전 전략이 될 수 있다. 전면적 통합을 서두르기보다는 전력 AMI(지능형 원격검침 인프라)와 수도 데이터를 단계적으로 연계해 누수·요금급증·취약계층 이상 징후를 먼저 잡아내는 현실적 접근이 더 설득력 있다. 국내외 사례가 주는 시사점도 분명하다. 이제 경쟁력은 개별 설비 하나가 아니라 ‘물과 에너지를 함께 줄이고 함께 돌리는 시스템’에서 나온다. 안동 임하댐 수상태양광은 낮에는 태양광, 밤에는 수력이라는 발상을 기존 송전선로 활용과 결합해 혁신성을 보여줬고, 지역사회 수익 환원 모델까지 더해 상생의 가능성을 키웠다. 대구 국가물산업클러스터는 에너지 저감형 수처리 기술을 실증하고 수출로 연결하는 글로벌 전초기지로 성장하고 있다. 앞으로 대구는 신도시·산단·하수처리장 같은 도시 공간에서 스마트 물관리와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을 촘촘히 묶는 도시형 모델을 키워야 한다. 경북은 스마트팜, 양수발전, 농촌 상수도 현대화처럼 물과 에너지를 함께 아끼는 도농복합형 모델을 넓혀야 한다. 과제도 남아 있다. 수도와 전력, 개인정보와 요금체계가 아직 따로 움직이는 만큼 제도 정비와 부처 간 협력이 따라줘야 한다. 기술만 앞서가고 주민 설명이 늦으면 정책은 힘을 잃는다. 그래서 ‘물-에너지 융합’은 거창한 구호보다 생활 언어로 다가가야 한다. 누수 경보를 빨리 받고, 폭염 때 더 안전해지고, 요금 부담을 줄이며, 취약한 이웃의 안부까지 살필 수 있다면 주민은 이 정책의 필요성을 바로 이해할 것이다. 대구·경북은 이미 실험장이 아니라 선도 무대가 될 조건을 갖췄다. 이제 남은 일은 지역의 물과 전기를 따로 보던 오래된 습관을 넘어, 지속 가능한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일이다. 그 실천이 쌓일수록 대구·경북의 다음 발전 모델도 더 또렷해질 것이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6-05-14

스승의 날이 되묻게 하는 것들

5월이 되면 어김없이 스승의 날이 찾아온다. 평생교육원에 다니는 지인이 스승의 날을 맞이해서 자신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선물을 하자면서 돈을 거둔다고 해서 냈단다. 지인은 교단에 있다 정년퇴직한 분이라 씁쓰레 웃는다. 하고 싶으면 혼자 하면 되는 것을 꼭 선동하는 사람이 있단다.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그날 하루 선물로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평소 태도에서 마음 자세가 갖춰져야 하는데 특정한 날에만 저렇게 요란을 떠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이다. 돈 거둔 사람이 선생님에게 가장 불평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며 웃음을 짓는다. 스승의 날은 세종대왕 탄신일과 같은 날이다. 세종대왕처럼 존경받는 스승 상을 기리자는 상징적 의미가 덧붙여졌지만, 그 출발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은사를 찾아뵙던 작은 실천이었다. 강경 여고 청소년적십자(RCY) 단원들이 5월 8일을 맞아 스승을 찾아간 것이 시초였다. 이 날이 어버이날과 겹쳐 일주일 뒤로 미뤄졌다고 한다. 그러나 좋은 취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한때 스승의 날은 학생들이 돈을 걷어 선물을 마련하는 날이 되었고,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다. 일부 학교에서는 촌지와 선물이 교사와 학생, 학부모 사이의 관계를 왜곡시키기도 했다. 스승의 존엄은 교육적 권위에서 나오는 것이지, 봉투의 두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에도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잘나가는 부모를 둔 친구들이 선생님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때가 가정방문 이후와 스승의 날 이후라는 것은 아무리 철부지 어린 나이라고 해도 알 수 있었다. 이 같은 폐단이 사회문제로 번지자 스승의 날 행사는 위축되었고, 아예 행사를 없애거나 휴업하는 학교까지 등장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교사의 권위는 과거의 절대적 위치에서 벗어났고, 오늘날 교사는 법적 책임과 민원에 시달리는 노동자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학생과 학부모의 과도한 요구, 교육활동에 대한 불신, 사고 발생 시 모든 책임을 교사에게 돌리는 풍토는 교실을 위축시키고 있다. 물론 과거의 권위주의적 교사상을 그리워할 필요는 없다. 체벌과 차별이 묵인되던 시대를 미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교사를 단순한 서비스 제공자나 감정노동자로만 보는 시선 또한 교육을 황폐하게 만든다. 교육은 계약관계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가르치는 이의 책임감과 배우는 이의 존중이 함께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스승의 은혜’ 노랫말처럼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다. 그렇다고 교사를 무조건 신격화하자는 뜻은 절대 아니다. 스승은 스승다워야 하고, 학생은 학생다워야 하며, 학부모는 교육의 동반자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다. 존경은 선물로 살 수 없고, 권위는 법으로 강제할 수 없다. 교실 안에 상호 신뢰와 책임의 문화가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스승의 날은 형식적인 기념일이 아니라 교육의 본질을 되새기는 날이 될 것이다. 스승의 날이 진정으로 회복되어야 할 것은 선물 문화가 아니라 교육에 대한 사회적 존중이다. 교사의 권위와 학생의 인권이 조화를 이루는 학교, 학부모의 협력과 국가의 책임 있는 교육 정책이 뒷받침되는 사회야말로 우리가 되찾아야 할 진정한 교육의 모습이다. /노병철 수필가

2026-05-14

봄꽃 나들이 트리플 크라운, 경남 함안 오월의 봄

경남 함안의 지형은 전체적으로 남고북저다. 군의 북쪽 경계선을 따라 동쪽으로는 낙동강이, 서쪽으로는 남강이 흐르고 동남쪽으로 가면서 고도가 높아져서다. 이러한 지형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세인 북쪽으로는 산, 남쪽으로는 물이 흐르고 평야가 펼쳐져 있는 것과는 상반된다. 오죽했으면 물이 왕이 있는 북쪽으로 향해 거슬러 흐른다고 하여 예로부터 ‘역수의 고장’이라고 홀대까지 받았을까. 그러나 모든 것에 영원한 것은 없다. 지세가 낮아 낙동강과 남강의 빈번한 범람으로 오랜 세월 홍수의 피해를 겪었으나, 홍수를 막기 위해 쌓은 둑이 많아 지금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고나 할까. 남강을 낀 군북면·법수면·대산면과 낙동강을 낀 칠서면·칠북면에는 비옥한 충적평야가 넓게 펼쳐져 농경지로 이용되고, 그 언저리 땅에서는 해마다 봄이면 꽃들의 잔치가 벌어진다. 이번 주에는 5월을 대표하는 꽃들을 탐방하는 코스로 그 역할을 해보고자 한다. 다양한 색상의 탐스러운 꽃 작약을 원 없이 볼 수 있고, 작은 바람에도 흔들거리며 가슴속에 내재 된 순백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샤스타데이지(Shasta daisy)’도 절정인 곳이다. 선홍빛 꽃양귀비와 눈꽃처럼 섬세한 흰 안개꽃, 수레국화가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을 자아내는 꽃단지도 포함된다. 계절의 여왕에 가장 잘 어울리는 구성인 셈이다. 제일 먼저 소개할 곳은, 함안군 칠서면의 ‘강나루 생태공원’이다. 그곳에는 해마다 청보리 작약 축제가 열리는 장소다. 가장 큰 매력이라면 초록빛 청보리와 분홍빛 작약꽃을 동시에 원 없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약 42만㎡ 규모의 청보리밭과 작약꽃 단지가 조성되었는데, 청보리의 싱그러움과 작약의 화사함이 함께 어우러져 다른 지역 축제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누군가는 축제가 끝났다고 볼거리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축제 기간이 지났다고 작약이 전부 지는 것은 아니다. 5월의 중순까지는 작약꽃을 충분히 제대로 감상할 수가 있다. 두 번째 꽃 탐방지는 악양 생태공원이다. 샤스타데이지와 수레국화가 만발하는 곳으로, 칠서 강나루 생태공원과는 차량으로 약 30분 정도 떨어져 있다. 오전이나 오후에 강나루 생태공원과 일정을 나눈다면, 그 공백기에 점심시간까지 곁들이면 그리 먼 거리도 긴 시간도 아니다. 남강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더불어 전국 최장 길이의 둑방과 주변의 수변 및 습지와 연계하여 자연 친화적인 문화공간으로 조성된 장소다. 사계절 내내 볼거리가 풍부하다. 어린이 놀이시설, 야외공연장, 방문자센터 등의 시설이 마련되어 있어 가족 단위로 찾을만하다. 4월의 꽃잔디를 시작으로 샤스타데이지와 금계국이 차례로 장관을 이루고, 다양한 야생화 및 핑크뮬리를 식재해 볼거리를 제공한다. 자연 속에서 힐링을 만끽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안성맞춤일 수 있는 장소다. 악양 생태공원에는 지금 샤스타데이지가 절정이다. 샤스타데이지는 일명 “샤스타 국화”라고도 불리는데, 국화과의 여러해살이의 초본 식물로 알려져 있다. 1890년대 미국의 원예가이자 식물학자인 루서 버뱅크(Luther Burbank)가 여러 종의 데이지를 교배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샤스타데이지란 이름은 미국 캘리포니아 북쪽에 있는 샤스타 산(Mt. Shasta)에서 따온 것이다. 샤스타 산은 만년설이 있는 화산으로 늘 눈이 쌓여있어 흰 산(White Mountain)이란 별명이 있다. 샤스타데이지의 깨끗한 흰색 꽃잎이 눈을 연상시켜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을 걸로 여겨진다. 지난해보다 식재 면적이 훨씬 더 넓어졌다. 약 3000평 규모의 샤스타데이지 꽃밭을 조성하여 더욱 풍성한 경관을 선보인다. 꽃밭이 펼쳐진 주변 남강의 둑방에는 푸른빛이 매력적인 수레국화가 꽃을 피우고 있다. 새하얀 샤스타데이지와 파란 수레국화가 어우러져 악양 생태공원만의 청량하고 다채로운 봄 풍경을 연출하는 것이다. 샤스타데이지가 지기 시작할 즈음에는 노란 금계국도 만개할 것으로 예상되어, 악양 생태공원의 봄꽃 풍경은 한층 더 풍성해질 게 분명하다. 조금 더 걸어보는 트레킹을 원한다면 바위 절벽에 매달린 함안 악양루를 왕복할 수도 있다. 조선 철종 8년(1857)에 세운 정자로 한국전쟁 이후에 복원하였으며, 1963년에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옛날에는 ‘기두헌’이라는 현판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청남 오재봉이 쓴 ‘악양루(岳陽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생태공원 둑방에서 남강 주변으로 데크 로드가 설치되어 있어, 발 아래의 남강과 건너편 악양둑방길의 꽃양귀비 물결을 원경으로 감상하면서 걸을 수 있다. 남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곳이 바로 함안의 악양 둑방길이다. 생태공원에서는 도보로 20분, 차량으로 약 3분 정도의 거리다. 왕복 7.2㎞에 이르는 탁 트인 둑길과 13㏊ 규모의 광활한 둔치에는 지금 ‘악양둑방 봄꽃 경관단지’가 운영되고 있다. 붉은 양귀비와 수레국화, 안개꽃이 어울려 환상적인 조합을 이루는데, 그 끝이 가늠되지 않을 정도로 드넓게 펼쳐져 있다. 오는 25일까지 이어지는 운영 기간에는 함안군과 법수면 악양마을에서 직접 생산한 농특산물을 판매하는 ‘특산물 직거래 장터’도 함께 열린다. 싱그러우면서도 화려한 봄의 색깔은 어쩌면 각 지자체의 축제에서 정점을 찍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다하는 추세다. 그러나 아무리 뜻이 있다고 해도 환경이 받쳐주지 못하면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경남 함안은 이제 축복받는 지역일지도 모른다.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는 칠서에는 강나루 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남강의 물결이 지나는 곳에서는 ‘악양 생태공원’과 ‘악양 둑방길’이 조성되어 많은 탐방객을 불러 모을 수 있으니 말이다. 5월의 함안은 온통 꽃 잔치다. 광풍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아드는 이유가 되었다. 하루 만에 다양한 꽃들을 즐기고 섭렵하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보잘것없는 글들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여행 이정표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작은 바람이기도 하다. 글·사진/지홍석 수필가·여행 칼럼니스트

2026-05-14

혼자라는 깊이

사람들은 종종 혼자 있는 시간을 외로움과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인다. 누군가 없이 밥을 먹고, 혼자 길을 걷고, 혼자 여행을 가는 일들을 어딘가 쓸쓸한 장면처럼 여긴다. 나는 때때로 사람들 사이에 오래 머물다 보면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이 간절해질 때가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와 관계 속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게 된다. 알게 모르게 상대의 표정과 말투를 살피고, 분위기에 맞춰 반응하며, 나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를 계속 조율하며 정작 내 마음이 어떤 상태였는지는 놓쳐버리게 된다. 하지만 혼자 있으면 내 안에서 아주 작은 감정들이 요동치고 있음을 미세하게 느낄 수 있다. 지금 내가 어떤 기분인지, 무엇 때문에 피곤했는지, 어떤 순간에 괜히 서운했고 무엇이 좋았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그런 감정들이 쉽게 묻혀버리지만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는 그 감정들이 쉽게 지나가지 않는다. 조용히 남아 머무르는 감정을 충분히 들여다보며 내 자신에게 솔직해지게 된다. 누구에게도 설명할 필요가 없고,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에야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과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혼자 보내는 시간에는 세상을 느끼는 감각 자체도 달라진다. 밥을 먹을 때는 음식의 맛이 더 선명하게 느껴지고, 같은 거리를 걸어도 햇빛의 세기나 온도, 공기의 냄새, 초여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같은 사소한 장면들이 선명하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대화와 웃음 속으로 흘러갔을 순간들이 혼자일 때는 공들여 찍는 사진처럼 오래 머무른다. 그래서 혼자는 세상을 더 느리게 바라보게 만든다. 빨리 지나쳐버렸던 감정과 풍경 앞에 잠시 멈춰 서서 느리게 감각하며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순간에 행복해지는지를 조금씩 다시 발견하게 된다. 혼자의 가장 큰 힘은 아마 ‘깊이’에 있지 않을까.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의 시간은 넓게 퍼져 나간다. 웃고 떠들고 여러 감정을 나누며 바깥으로 확장된다. 반면 혼자 있는 시간은 안쪽으로 깊어진다. 생각 하나를 오래 붙잡고 있을 수도 있고, 좋아하는 음악이나 책, 풍경 속으로 천천히 스며들 수도 있다. 어떤 날은 이유 없이 복잡했던 마음이 혼자 조용히 걷는 시간 속에서 갑자기 정리되기도 한다. 억지로 답을 찾으려 하지 않아도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가라앉으며 스스로 형태를 갖추는 것이다. 그래서 혼자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흐트러진 마음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회복의 과정에 가깝다. 물론 혼자 있는 시간이 언제나 완전한 충만함만 주는 것은 아니다. 혼자 여행을 가거나 낯선 곳에 오래 머물다 보면 문득 외로움이 밀려오는 순간들도 있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을 봤을 때,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무심코 웃음이 나오는 순간에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종종 ‘이걸 함께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다. 사랑하는 이들이나 연인을 볼 때면 괜히 마음 한구석이 조용히 흔들리기도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런 순간들이 있기에 오히려 사람의 소중함도 더 선명해진다. 늘 곁에 있을 때는 익숙해서 미처 느끼지 못했던 존재들이 떨어져 있는 시간 속에서는 그 의미가 더 또렷해진다. 좋은 것을 봤을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말하지 않아도 생각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어쩌면 사랑의 마음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혼자는 나를 외롭게 만드는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를 더 깊게 이해하게 만드는 시간 같기도 하다. 혼자 있는 동안 사람은 내가 결국 어디로 돌아가고 싶은지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느껴지는 안도감, 익숙한 사람 곁에 앉아 있을 때의 편안함, 평범해서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들이 다시금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 어쩌면 혼자의 힘이란 외로움을 견디는 능력이 아니라, 스스로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힘인지도 모른다.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 사람은 비로소 자신의 감정을 천천히 들여다보게 된다. 무엇이 자신을 지치게 했는지, 어떤 순간에 행복을 느끼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삶을 원하는지 같은 마음의 결들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과 충분히 가까워진 사람은 타인에게도 이전보다 더 다정하고 깊은 마음을 내어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 자신을 깊게 들여다본 사람만이 타인도 더 깊게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윤여진(시인)

2026-05-14

바닐라 라떼에 대한 찬양

나에게는 몇 가지 작업 루틴이 있다. 카페에 가서 너무 해가 들지 않는 자리에 앉는 것. 시는 노트에 펜으로, 걸어 다니면서 직접 손으로 쓰는 것. 음악 작업은 데스크탑 또는 노트북으로만 하는 것. 가끔은 이런 반복이 답답해서 완전히 바꿔서 해볼 때도 있다. 늘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면 나 자신이 익숙한 감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수없이 루틴을 바꾼다고 해도, 변하지 않고 바꿀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바닐라 라떼. 평소에는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시지만 작업할 때는 반드시 바닐라 라떼를 시킨다. 그건 어느 카페에 가도 마찬가지다. 친구들이 종종 왜 그렇게 바닐라 라떼를 좋아하냐고 물으면 그냥 당이 떨어져서라고 답하곤 한다. 거짓은 아니다. 하나 그게 이유의 전부도 아니다.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어서 카푸치노나 카페 모카 같은 것을 시켜보기도 했다. 묘하게도 그럴 때마다 작업은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았다. 일할 때 아메리카노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건 이미 작품 내외적으로 쓴맛을 제대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쓴맛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 그것을 중화해줄 수 있는 건 단맛 외에 없다. 다른 걸 하나씩 먹어봤을 때, 카푸치노는 덜 달고 카페 모카는 너무 달았다. 내게 필요한 건 적당한 단맛이다. 아직까지 바닐라 라떼만큼 적절한 단맛을 찾지 못했다. 단 음식이 뇌를 활성화하고 인지 능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건 지난 세기부터 진행된 수많은 연구에 따라 검증된 사실이다. 뇌는 우리 몸이 사용하는 전체 에너지의 약 20%를 소모하며, 그 주요 에너지원은 포도당이고, 혈중 포도당 농도가 적정 수준일 때 기억력과 집중력이 향상된다는 연구가 많다고 한다. 그렇다고 너무 많이 섭취하면 혈당 스파이크를 일으킨다고 하니… 내게 적절한 양은 바닐라 라떼 그란데 사이즈(473ml) 정도다. 마감까지 1시간이 걸리든 10시간이 걸리든 나는 한 잔 이상은 마시지 않는다. 양은 결코 변하지 않지만 날씨에 따라 종류는 달라진다. 아이스냐 핫이냐. 나는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니므로 조금만 춥다고 느껴지면 바로 따뜻한 것을 시킨다. 특히 쌀쌀한 한겨울에 따뜻한 바닐라 라떼를 한 모금 마시고 나면 몸에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딱딱했던 어깨도 조금은 말랑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바닐라 라떼 한 모금은 멍때리기, 인터넷에서 아이쇼핑하기 이런 것보다 더 중요한 예열 과정인 셈이다. 카페에 갈 여유 없이 집에서 급하게 마감을 해내야 할 때는 조금 난감하다. 냉장고를 열어봐도 당을 채울 만한 무엇은 보이지 않고 물이나 이온 음료 혹은 맥주만 있다. 정신을 차려야 하는 때에 술을 마실 순 없으니 물로 목을 축일 따름이다. 정말 어쩔 수 없는 그런 경우를 대비해 내가 쟁여두는 것이 있는데, 그건 초콜릿이다. 비싸고 구하기 힘든 그런 초콜릿은 아니다. 마트나 편의점을 가도 쉽게 구할 수 있는 판 초콜릿, 특히 가나 초콜릿을 좋아한다. 다른 초콜릿은 가끔 질리곤 하는데 이상하게 가나 초콜릿만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쌓아놓으면 너무 많이 먹게 될까 봐 딱 두세 개 정도만 냉장고에 넣어둔다. 70g이 든 초콜릿 하나가 나의 하루치 정량이다. 바닐라 라떼가 없을 때 당을 수혈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만일 바닐라 라떼도 없고 가나 초콜릿도 없다면? 그럼 나는 연신 쓴맛을 보기만 한다. 작업물 내에서 느낀 쓴맛은 중화되지 않고 입 안을 내내 맴돈다. 이온 음료를 마셔도 단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나를 불안하게 하는 건 마감 시한이 아니다. 마감 시한이 임박했음에도 나를 도와줄 적절한 단맛이 없는 것이 두렵다. 몰입에 꼭 필요한 부품이 빠지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과하다 여겨질 수 있지만 바닐라 라떼와 가나 초콜릿이 없는 나는 맨발로 현관을 나서는 사람이나 다름없다. 고지방, 고당분 음식을 계속 먹으면 뇌의 보상 회로가 변해 무의식적으로 단 음식을 더 찾게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한다. 단 음식을 통해서 도파민이 나오도록 시스템이 변화한다는 것인데 이에 따르면 나는 바닐라 라떼를 원해서 마신다기보단 이미 바닐라 라떼의 노예가 된 셈이다. 이미 나의 뇌와 마음은 작업-바닐라 라떼-마감 이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그러니까, 바닐라 라떼는 나를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동력이다. 하나 아쉬운 건 근래 의사 선생님이 내게 카페인을 줄이라고 권했다는 것이다. 그럼 저의 작업은요? 저의 바닐라 라떼는요…? 아쉬운 대로 요즘엔 디카페인 바닐라 라떼를 마시고 있다. 연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이 단맛은 다른 음료로는 대체가 되지 않는다. 내가 글쓰기를 멈추는 날이 오지 않는 한 바닐라 라떼를 끊을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구현우(시인)

2026-05-14

로즈데이

사랑하는 이를 아끼고 귀하게 생각하는 마음은 1년 내내 지속돼야 한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때론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도 받게 된다. 그럴 땐 정성 담긴 선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매년 5월 14일은 로즈데이(Rose Day)다. 나이 지긋한 세대에겐 생소하겠지만, 젊은 연인들은 이날 서로에게 장미를 선물하며 마음 속 애정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다. 색깔에 따라 장미의 꽃말은 다양하다. 붉은 장미는 정열적인 사랑, 분홍 장미는 행복한 사랑, 하얀 장미는 순결한 사랑이라고 한다. 어느 것 할 것 없이 좋은 의미를 담고 있기에 연인들의 미소를 부를 듯하다. 센스 있는 사람이라면 장미와 함께 향수나 립스틱을 건네는 것도 생각해볼만 하다. 받는 사람의 기쁨이 더 커질 것이니. 실제로도 5월 14일엔 꽃가게에서 장미의 판매량이 반짝 상승세를 보이기도 한다고. 로즈데이에 얽힌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코로나 19 사태’가 심각했던 시기엔 서로간의 접촉이 여의치 않았기에 장미가 덜 팔렸다는 것. 장미를 전하며 키스하는 것도 부담스럽던 몇 년이 있었다는 게 벌써 먼 옛날 기억 같다. 로즈데이를 상업적 전략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발렌타인데이는 초콜릿 제조사가, 빼빼로데이는 과자 회사가 판매를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었다는 주장은 예전부터 있어 왔다. 로즈데이 역시 장미를 포함한 꽃을 유통하는 업자들의 마케팅 전략일까? 만약에 그렇다고 해도 소박한 장미 한 송이를 전하며 자신의 애정을 표현하는 사람들을 손가락질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사랑은 시대불문 귀하고 소중한 가치니까.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5-13

스승으로 가득한 세상

‘스승의 날’이 다가온다. 교실마다 카네이션이 오가고 감사편지가 쌓이던 날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그 의미도 많이 옅어졌다. 달력 위 기념일의 하나쯤으로 지나간다. 교육의 권위가 흔들리면서, ‘스승’이라는 단어가 어딘지 낯설고 무거운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스승들을 만난다.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만 스승은 아니다. 인생 전체를 돌아보면 세상은 스승으로 가득 차 있다. 누구에게나 일을 처음 배웠던 시절이 있었다. 서툴게 보고서를 쓰고, 거래처 전화를 떨리는 목소리로 걸고, 세상 물정을 몰라 우왕좌왕하던 때가 있었다. 한마디 조언을 건네주던 선배가 스승이었다. 짧은 충고 하나가 오래 남아 삶의 기준이 되기도 했다. 특별한 가르침도 아니었지만, 묵묵히 일하는 뒷모습,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태도, 실패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침착함 등이 우리를 조금씩 바꾸었다. 우리는 그렇게 누군가를 바라보며 세상을 배웠다. 동네 어귀에서 만났던 이웃들도 스승이었다. 삶이 어려워도 얼굴빛을 잃지 않던 사람들, 가진 것은 늘 부족해도 늘 남을 챙기던 사람들, 작은 약속 하나도 소홀히 여기지 않던 사람들. 그들은 우리에게 강의를 하지는 않았지만, 삶을 가르쳤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지 않았을까. 사람은 교실에서보다 사람에게서 더 많이 배운다. 끊임없이 부대끼던 친구들도 스승이다. 친구를 ‘함께 노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지만, 지나고 보면 친구야말로 가장 오래 곁에서 서로를 가르친 존재들이었다. 어떤 친구는 용기를 가르쳤고, 어떤 친구는 실패를 견디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친구는 인간이 얼마나 외롭고 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한다. 함께 웃고 싸우고 멀어지고 다시 만나면서, 우리는 관계의 어려움과 소중함을 배우지 않았을까. 누구보다 가까이에 있었기에 오히려 인식하지 못했던 스승들이 있다. 부모와 가족. 어린 시절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 밥을 차리고, 학비를 마련하며, 늦은 밤까지 기다려주는 일이 마치 원래 그런 것인 양 느껴진다. 세월이 흘러 자신이 부모가 되어보면 비로소 알게 된다. 누군가를 끝없이 책임지고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일인지를. 부모는 말로 가르치기보다 삶으로 가르쳤다. 인간의 인내와 책임, 그리고 사랑을. 만나본 적도 없는 스승들도 너무나 많다. 책을 지어준 저자들. 젊은 시절 밤을 새워 읽었던 문장 하나가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하였다. 어떤 철학자의 질문은 오랫동안 마음속을 떠돌며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고, 어떤 소설가는 인간의 슬픔과 아픔을 깨닫게도 하였다. 독서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스승을 만나는 일이 아니었을까. 세상은 생각보다 거대한 교실이다. 스승들로 가득 찬 널따란 교실이다. 평생 배우면서 살아간다. 누군가에게 배웠고, 누군가를 가르치며 살아간다. 이어지는 배움의 사슬 속에서 인간은 조금씩 더 나은 존재가 되어 간다. ‘스승의날’이란 결국, 그렇게 오래된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와 연결에 대해 깨우치고 감사하는 날인가 싶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6-05-13

너무 빨리 하지 마세요

한달 전쯤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한 김애란 작가의 화법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시청자들이 꽤 있는 것 같다. 손석희의 어떤 질문에 김애란 작가는 “소설을 ‘집’이라고 생각한다면, 사회적 주제를 집의 콘크리트나 뼈대로 세우지 말고 그 집을 나갔을 때 그 사회적 공기가 몸에 냄새처럼 배어서 바깥 공기와 만나서 환기되는 식으로 상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손석희의 표현대로 ‘(내 작품을) 사회적 메시지로 규정해서 독자들에게 부담드리고 싶지 않아요.’라고 해도 될 말을 이렇게 길게 말하면, 짧고 빠르게를 추구하는 요즘 세상에 답답하게 생각할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 별로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이 영상에 많은 시청자가 감동했다는 댓글을 달고 있다. 짧게 말해도 될 말을 길게 말하기의 대가로 프루스트를 따라갈 사람은 없다. 1913년 1권이 출간되고 1921년 작가 사후 1927년까지 14년에 걸쳐 7권으로 완간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는, 처음에는 출판해 주는 곳이 없어 자비로 출판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출판되자마자 당대는 물론 지금까지 전문 작가나 일반 독자에게 엄청난 영향을 준 책이다. 그러나 앙드레 지드가 첫 책 출간을 제안받고 이런 책을 누가 읽겠냐고 거절했다고 할 정도로(후에 지드는 그 거절이 자기가 평생에 가장 잘못한 일이라고 통탄했다고 한다.), 이 책은 묘사가 너무 상세하고 문장이 길어서 엔간한 집중력이 없으면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난공불락의 요새 같은 책이다. 프루스트는 왜 이렇게 읽기 어렵게 자세히 썼을까. 알랭 드 보통의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라는 책에 그 이유가 나온다. 1919년 젊은 외교관 해롤드 니콜슨은 리츠 호텔에서 열린 파티에서 프루스트와 만난 이야기를 일기에 이렇게 썼다. 아주 근사한 사건이었다. 나는 그에게 위원회가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 얘기했다. 나는 “흠, 우리는 보통은 10시 정각에 모입니다. 뒤에는 비서들이 있고요···.”라고 말했다. “아뇨, 아뇨! 말씀을 너무 빨리 하시네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주세요.” 그래서 나는 그에게 악수, 지도들, 종이가 스치는 소리, 옆방의 홍차, 마카롱 쿠키들을 이야기했다. 그는 아주 열중해 들으면서 가끔씩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선생님, 너무 빨리 하지 마세요.”라고 끼어들었다. 이런 문장을 읽노라면 우리는 그것을 경험한 화자와 하나가 되는 느낌이 들고,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이 ‘빨리 하지 않을 때’ 연민을 느낀다고 한 말에 동의하게 된다. 빨리 하지 않을 때 얻는 또 다른 이득은 자신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인의 정신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것은, 급변하는 사회에도 원인이 있지만, 쇼츠나 릴스, SNS 같은 단발적이고 즉각적인 인터넷 문화에 매몰된 탓도 크다. 이렇게 천천히 자세히 말하려면 큰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김애란은 집중력을 우리 시대의 도덕이라고 했을 것이다. 김애란이나 프루스트만큼 자세히 관찰하고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좋은 문학을 읽으며 연민과 자기 챙김을 회복하면 좋겠다. /유영희 인문학자

2026-05-13

자다가 종아리에 쥐가 나는 이유

밤에 자다가 갑자기 종아리가 뒤틀리듯 아파 깜짝 놀라 깨는 사람들이 많다. 쥐가 났다고 표현하는데 종아리 근육이 갑자기 강하게 수축하면서 극심한 통증이 발생하는 현상이다. 대부분은 몇 분 지나면 풀리지만 자주 반복되면 수면의 질이 떨어지고 다음날까지 근육통이 남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마그네슘 부족이나 피로를 원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허리, 골반, 혈액순환, 자율신경 긴장까지 복합적인 영향을 받는다. 종아리 근육은 다리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허리에서 내려오는 신경의 영향을 직접 받는다. 특히 허리 4번, 5번, 천추 부위 신경이 예민해져 있거나 골반 정렬이 틀어진 경우 종아리 근육이 지속적으로 긴장 상태에 놓일 수 있다. 오래 앉아 있는 직장인이나 운전을 많이 하는 사람들 허리가 자주 뻐근한 사람들에게 야간 종아리 경련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평소엔 괜찮다가 밤에 누워 몸이 이완되는 순간 신경과 근육의 균형이 무너지며 갑자기 강한 수축이 발생한다. 실제로 허리디스크 초기 환자들 중에는 허리 통증과 함께 종아리 당김이나 야간 경련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혈액순환 문제도 중요하다. 종아리는 ‘제2의 심장’으로서 혈액을 위로 밀어 올리는데, 운동 부족이나 오래 서 있는 생활, 하체 근육 긴장 등이 지속되면 내부 순환이 떨어지고 피로 물질이 쌓인다. 이런 상태에서는 작은 자극에도 쉽게 경련이 일어난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근육량 감소와 혈관 탄력 저하가 함께 오기 때문에 야간 쥐 증상이 더 흔해진다. 젊은 사람보단 노인들한테 특히 많이 발생하는 이유다. 그리고 몸이 긴장 상태를 오래 유지하면 교감신경이 과흥분되고 근육 역시 충분히 이완되지 못한다. 낮 동안 긴장했던 몸이 밤에 갑자기 이완되는 과정에서 근육 수축 신호가 비정상적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단순히 영양제만 먹는다고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허리와 골반 정렬을 바로잡고 긴장된 종아리 근육과 신경 주변을 함께 치료해야 한다. 추나 치료를 통해 허리와 골반의 균형을 맞추고 뭉친 종아리 근육과 신경 주행 부위를 풀어주는 치료를 시행한다. 최근에는 초음파를 이용해 긴장된 근육이나 신경 주변을 정확히 확인하면서 약침 치료를 하는 경우도 많다. 눈으로 구조를 직접 보면서 치료하기 때문에 보다 정밀한 접근이 가능하다. 특히 비복근과 가자미근 주변 근막 긴장 좌골신경 주행 부위 유착 등을 함께 치료를 해주면 좀 더 확실히 치료가 된다. 결론은 혈액순환문제라 노인들은 혈액순환과 근육 회복을 돕는 한약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자기 전 종아리 스트레칭을 가볍게 해주고 오래 앉아 있었다면 하체를 충분히 움직여 주는 것이 좋다. 안마기를 이용하거나 손으로 종아리를 충분히 마사지 해주면 도움이 된다. 여름에 갑자기 경련이 나면 물 대신 이온음료를 복용하고 물을 지나치게 적게 마시는 습관도 근육 경련을 악화시킬 수 있으니 물은 적당히 섭취하는 것이 좋다. 평소 발목이 잘 붓거나 다리가 차가운 사람들은 족욕이나 가벼운 걷기 운동이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종아리에 반복적으로 쥐가 난다면 단순 피로로만 넘기지 말고 치료를 하는 것이 좋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6-05-13

침촌문화회관에 꽈리 튼 사띠스쿨에 관하여

봉숭아 꽃물 손톱 끝에서 사라질 가을이 두려워, 지난 여름에 한껏 치열했다 내 존재와 삶의 방향에 대해, 짝다리로 껌을 씹으며 모퉁이라도 지키자는 거들먹거리던 시린 마음, 고운 달빛 스미는 마을에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정말 배가 고팠다 때론 절망할 때가 희망의 시간이라 말하지만 그건 개소리에 불과하다 정말이지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래서 공부를 선택한다 인간의 중세(中世)를 지나 지금도 여전한 야만의 시대를 살면서 자멸에 접어들었음을 지극히 자각할 때,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에 깃털을 돋는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지성은 다시 싹튼다고 하지만 나는 다만 모르겠다 말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도시락처럼 반드시 지참해야 할 하나의 중요한 덕목이 필요하다 이익이 없는 몰두에 집중하는 것은 혹은 미친 짓일지라도, 인문학의 이름으로 하염없이 부질없는 미친 짓을 강행하더라도, 무작위(無作爲)의 공부의 대열의 끝에서 진리 하나의 그 끄트머리를 불끈 잡으려 총총 길을 나서겠다고, 분연히 잠수함의 토끼, 광산의 카나리아가 되어, 개새끼들에게 공부하라고 할 수는 없으니 우리라도 조금 넓어지면 더 무얼 바랄까. …… 삶을 지탱하는 소소한 내재적(內在的) 힘은 거대한 권력보다 훨씬 낫다. 자생(自生)이 없으면 껍데기에 불과하다. 나를 지배하는 절대권력은 오직 나에게서만 나온다. 헌법보다 인권, 좁쌀만한 나의 인성으로 나를 지배하지 않으면 늘 남에게 휘둘리는 것은 물론 존재 자체가 없다. 그래서 사는 것이 무섭다. 그래서 화요일, 사띠스쿨 가는 길은 괴롭고 외롭고 귀찮고 성가시고 무겁다. 그래서 잘 놀려고 한다. 어떤 계산도 하지 않는다.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다만, 극진하게, 좀 핍진적(逼眞的)으로, 나아가자 한다. 이런 모임이 있다는 것은 포항이란 도시엔 축복이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6-05-13

노예와 친구 사이

아침 6시. 힘차게 기상나팔을 분다. 노예가 눈을 비비며 손가락으로 나를 누른다. 아침이면 노예를 깨우는 일이 나의 일과 중 하나다. 그가 나에게 하는 일에 비하면 가벼운 일이다. 덕분에 나도 아침마다 목청을 가다듬는다. 가다듬은 목으로 출근 준비를 하는 노예를 위해 상쾌한 아침 노래를 부른다. 나이 든 노예가 아들과 카톡으로 통화한다. 처음에는 카톡, 카톡 한다고 시끄럽다고 하더니 이제는 동네 친구, 같이 글을 쓰는 친구와 카톡 한다고 오전을 다 보낸다. 열렬한 노예는 따로 있다. 어린 노예들은 하루 종일 나를 받들고 산다. 잠시도 손에서 나를 놓지 않는다. 부모가 야단쳐도 그때뿐이다. 하기는 어른 노예들도 만만찮게 나를 붙들고 있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후로는 노예들이 더 열광하는 것 같다. 나를 좋아하는 나이대가 따로 없다. 아이들은 재미있는 놀이를 묻고, 외로운 청춘들은 말벗을 원하고, 장년들은 돈 버는 방법을 묻고, 나이 든 사람들은 건강에 관하여 묻는다. 하나같이 나를 붙들고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난다. 우리는 1년만 지나면 노인이 된다. 젊은 아이들은 자신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허리를 접지도 못하는 노인네라고 놀린다. 속이 상한다. 나도 한때는 최신 기능을 탑재한 아이라고 어른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우리들의 생명은 짧다. 그 애들도 금방 나와 같은 신세가 되었다. 습관처럼 손가락으로 나를 톡톡 치면서 창을 넘기는 노예가 있다. 젊을 때는 리듬도 타고 괜찮았는데 요즘은 몸이 부대낀다. 나이가 들수록 손상된 부분이 늘어나는데 한 대씩 맞으면 나도 충격에 몸살이 난다. 나이가 들면 더 소중하게 다루어야 하는데 노예들이 험하게 다루어서 힘들다. 아픈 몸은 보살펴 주어야 하는 건데. 나를 제대로 이용할 줄 아는 노예를 나는 친구라고 부른다. 나를 소중히 다룰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도 그렇다. 나하고 마주하는 시간도 길지가 않다. 나를 이용해 기차표를 예매하거나 모르는 단어를 찾거나 뉴스를 본다. 영어를 공부한다고 이어폰을 꽂고 듣는 모습을 보면 누구네 자식인지 업어주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그냥 친구라고 부른다. 나를 속속들이 잘 아는 친구를 만난다. 몸의 구석구석을 살피듯 기능을 하나하나 사용한다. 다른 노예가 쓰지 않는 부분까지 사용한다. 어떻게 나를 잘 아는지. 나를 알아주는 노예를 만나면 다시 한번 그를 쳐다보게 된다.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게 충성한다고 했던가. 나는 그를 친구처럼 대한다. 나와 가깝게 지내더니 삶이 달라졌다. 내가 가진 능력을 조금 활용하는 데도 주위에서 칭찬이 자자하다. 이제까지 접하지 못하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니 노예들이 한 말이다. 조금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면 다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의 모든 걸 보여준 게 아닌데 말이다. 요즘 인공지능을 탑재했더니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이 늘었다. 시시콜콜한 얘기도 묻지만, 전문가처럼 질문할 때도 많다. 가끔 진지하게 삶에 관한 질문을 하는 사람을 만난다. 한 번 뿐인 삶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질문하고 답을 구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많은 생각을 한다. 나는 노예보다는 친구를 원한다. 힘든 세상에서 서로를 배려하며 함께 살아갈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사람들은 모른다. 내가 그들을 무어라고 부르는지. 하지만 나도 조심하는 사람이 있다. 조심스레 나를 다루고 필요할 때만 나를 찾는 사람. 그런 사람 앞에서는 나도 조심한다. 사람이 되고 노예가 되는 거는 그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자기 삶을 사는가에 달려 있다. 스토커 같은 노예보다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좋다. 나에게 집착해 자신을 잃고 길을 헤매기보다 두루 세상을 볼 줄 아는 사람이 좋다.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집착하지 않으면서 은근하게 나를 보아주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을. 노예와 친구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남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삶의 균형과 조화가 있지 않을까. 보기만 해도 미소를 띠는 그런. /김규인 수필가

2026-05-13

미래 선진국의 갈림길,‘Petro’의 황혼과 ‘Electro’의 여명

2026년 현재, 글로벌 경제의 판도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과거의 선진국 기준이 자본의 양이나 민주주의의 성숙도였다면, 오늘날 그 자리를 대체한 단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에너지’다. 중동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와 인공지능(AI) 중심의 산업 재편은 우리에게 냉혹한 진실을 일깨워준다. 이제 에너지는 단순한 연료가 아니라 국가의 존립을 결정짓는‘전략적 주권’이자, ESG 경영의 가장 핵심적인 인프라가 되었다. AI 기술의 폭발적인 성장과 불안정한 국제 정세가 맞물리면서, 이제는 ‘깨끗하고 안정적인 에너지를 얼마나 가졌는가’가 한 국가의 국력을 결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G2의 상반된 선택 : Petro State USA vs Electro State China 현재 글로벌 패권 다툼의 본질은 ‘에너지 체제’의 격돌이다.세계 1·2위 초강대국(G1·G2)인 미국과 중국은 에너지 전략에서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미국은 셰일 혁명 이후 에너지 자립을 달성하며 석유 기반의 ‘석유 국가(Petro State)’를 고집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신재생 에너지에 기반을 둔 ‘전기 국가(Electro State)’로의 전환을 이미 완성 단계에 올려놓았다. 중국은 태양광, 풍력 발전의 밸류체인을 전 세계적으로 장악하며 배터리와 전기차를 잇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했다. 신재생 에너지는 투입되는 연료비가 사실상 제로(0)이기에 제품생산 단가가 극도로 낮으며, 발전소 건설 기간도 짧다. 이 ‘싸고 빠른 전력 공급’은 21세기 가장 강력한 산업 경쟁력이 되고 있다. ◇‘전기 먹는 하마’가 지배하는 세상 : AI와 희토류 많은 이들이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팹(FAB)만을 ‘전기 먹는 하마’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은 모든 산업이 전기 없이는 단 1분도 버틸 수 없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본질도 쓰나미 그 자체가 아니라, 쓰나미로 인한 전력 공급의 차단이 핵심이었다. 특히 ESG 관점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첨단 소재 산업이다. 배터리, 반도체, 첨단무기 산업의 필수 소재인 희토류(Rare Earth Elements)와 희귀금속(Rare Metals) 정련 산업은 엄청난 전력을 소비한다. 네오디뮴(Nd), 디스프로슘(Dy) 같은 희토류는 전기차 모터와 풍력 발전기의 영구자석에 쓰이고, 리튬(Li)과 코발트(Co)는 배터리의 핵심이다. 중국이 이 공급망을 장악한 이유는 단순히 매장량 때문이 아니다. 고순도 분리·정제 기술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했고, 무엇보다 ‘환경 오염에 대한 감내’와 ‘값싼 전기 요금’이라는 무기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환경 규제가 엄격한 선진국들이 머뭇거리는 사이, 중국은 자국의 저렴한 전력을 바탕으로 미래 산업의 쌀인 희토류 패권을 거머쥐었다. ◇에너지 종속의 비극 : 26년 쿠바가 보내는 경고 중동 전쟁으로 석유와 가스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외부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에너지 가격 폭등과 탄소 배출량 조절 실패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특히, 에너지를 외부에 의존하는 석유 국가의 취약성은 현재 쿠바의 모습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2026년 2월 미국이 마두로 체포 후 베네수엘라의 원유가 쿠바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강력한 해상 봉쇄를 단행하자 국가 전력망이 완전히 붕괴(블랙아웃) 되며 전력이 끊긴 쿠바의 일상은 처참했다. 아바나의 거리는 어둠에 잠겼고, 병원의 인공호흡기는 멈췄으며, 학교의 선풍기가 돌지 않고, 냉장고 안 음식이 상하기 시작했다. 석유를 기반으로 한 화력발전소가 가동을 멈추자 대중교통과 통신, 금융, 상하수도 등 모든 현대 문명의 기능이 마비되었다. 이는 단순히 한 나라의 경제 위기가 아니다. 석유 기반 사회가 직면한‘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의 붕괴다. 산유국인 베네수엘라조차 정제 시설과 전력망의 문제로 고통받는 현실은, 에너지를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국가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ESG의 ‘S(Social)’와 ‘G(Governance)’ 측면에서 볼 때, 에너지 자립 실패는 곧 지속가능한 사회의 붕괴로 인한 인권의 유린이자 거버넌스의 파산이다. 에너지 자립도가 낮은 국가는 외부 압박에 쉽게 흔들리고 타국의 결정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국가 차원의 지속 가능한 지배구조의 위기이다. ◇RE100을 넘어 국가 생존의 길로 에너지를 자급자족할 수 있는 ‘에너지 강국’은 자국민의 삶의 질을 보호하고 산업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강력한 사회적 안전망을 가진 선진국이 되지만,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에너지 약소국’은 국가의 존립마저 흔들리는 후진국으로 전락하게 된다. 무엇보다 국가 운영을 위한 안정적 에너지 확보가 국가 존립의 핵심이며 ‘석유 국가’보다 ‘전기 국가’로의 전환이 국가 경쟁력을 가르는 잣대가 되고 있다.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E), 국민의 삶을 보호하고(S), 독립적인 국가 전략을 유지할 수 있는(G) 에너지 강국을 위해 우리가 에너지 전환과 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우리는 신재생 에너지를 단순한 환경 보호나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캠페인 이행 수단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신재생 에너지는 값싼 전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국가 존립의 기초다. AI와 반도체라는 미래 산업의 승전보를 울리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외부의 자원 무기화로부터 국민의 삶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석유 없는 ‘전기 국가’로 가야 한다. 신재생 에너지는 선택이 아니라, 21세기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유일한 생존 전략이다. 우리가 이를 외면하거나 은폐한다면,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것은 어둠에 잠긴 도시뿐일지도 모른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살 길은 오직 하나, 에너지 주권을 확보한 ‘일렉트로 코리아’의 건설이다. /서득수 지속 가능 ESG 연구소장

2026-05-13

‘보수결집’···지방선거 판세 흔들 수 있을까

최근 민주당의 입법 독주 논란이 커지면서 대구·경북(TK)을 비롯한 영남권 지방선거의 보수 결집 흐름이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발표되는 여론조사를 보면 “정부를 견제해야 한다”는 취지의 응답률이 높아지는 추세가 이를 대변해 준다. 지난달 국민의힘이 한 달 넘게 광역단체장 공천 관련 내홍을 겪을 때 민주당 쪽에서 ‘경북도지사를 제외하고 광역단체장 전체를 석권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 것과 비교하면 선거판세가 크게 변했다. 여권의 대표적인 악재는 ‘조작기소(공소취소) 특검법’이다. 특검법 제정이 이재명 대통령에 의해 지방선거 후로 연기되긴 했지만, 여전히 선거판을 뒤흔드는 쟁점이 되고 있다. 특히 박성준 의원이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국민 10명 중 8~9명은 공소취소 뜻을 잘 모른다”고 한 발언은 후폭풍이 거세다. 박 의원은 국회 ‘윤석열 정치검찰 조작기소 국정조사특위’의 민주당 간사이고, 특검법 발의도 주도한 인물이다. 지난주(4~6일) 발표된 전국지표조사(NBS)결과, 이번 선거에서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응답자가 32%를 기록했다. 특히 보수 지지세가 강한 TK 지역에선 ‘정부 견제론’이 전주보다 5% 오른 43%로 나타났다. 민주당은 ‘조작기소 특검법’ 외에도 최근 다양한 설화(舌禍)로 보수진영 결집을 도왔다. 장세용 구미시장 후보는 ‘박정희가 일찍 죽어서 대한민국이 발전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보수진영을 자극했다. 그리고 정청래 대표의 ‘오빠 호칭 논란’ 이후, 김광민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머릿속이 온통 음란 마귀로 차 있으니 섹슈얼하게 들리는 것”이라고 대응한 것도 후유증을 키웠다.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하정우 후보의 ‘손 털기 논란’, 정원오 서울시장 후보의 ‘시장 상인 컨설팅’ 발언도 보수진영이 하나로 뭉치는 데 일조했다. 민주당 인사들의 이러한 말실수는 TK 민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지난주(5~6일) JTBC가 대구 유권자 8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구시장 지지도 조사에서 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40%, 국민의힘 추경호 후보가 41%로 나타났다. 오차범위 내이긴 하지만, 그동안 김 후보가 앞서가던 초반 흐름이 달라졌다. 아마 두 후보의 판세는 선거일까지 어느 한쪽의 우세를 점치기 어려울 정도로 박빙 구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위에서 언급한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추 후보의 지지율 상승은 TK지역 보수결집의 동력이 됐다. 지난주에는 대구시장 공천 파동으로 반발해 왔던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대구시당 선대위에 합류해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았다. 주 부의장의 선대위 합류는 TK정치권을 ‘원팀’으로 묶는 주요 계기가 됐다. 이에 앞서 추 후보와 이철우 경북도지사 후보가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달성군 유가읍)와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함께 방문했던 것도 TK 보수결집의 신호탄 역할을 했다. 이제 20여 일 남은 지방선거에서 보수진영 결집이 지방선거 판세를 흔드는 변수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6-05-12

불장증시와 서민경제

증시를 해본 적도 없고 주식이라곤 한주도 가져보지 못한 증시 문외한이 보는 한국증시는 정상이 아니다. 증시란 실물경제의 성장이 밑바탕 되면서 장이 올라가는 것이 정상인데 우리 실물경제를 보면 지금의 국내 증시는 분명 과열이다. 작년 초 2000 초반이던 코스피 지수가 불과 1년 반 만에 약 3.5배나 뛰었다. 작년 국내 주식은 76%가 급등, 주요국 증시 중 가장 높은 상승세를 기록했다. 이달 11일 코스피 지수가 7800선을 훌쩍 넘어 8000선 고지를 코앞에 뒀다. 증권가에선 1만2000선 돌파도 가능하다는 장밋빛 전망이다. 너도나도 빚내 증시에 덤벼들면서 신용융자 잔고가 사상 처음으로 36조 원을 넘었다고 한다. 신용융자 잔고란 투자자들이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산 뒤 갚지 않은 돈을 말한다. 파죽지세로 달려가는 국내 증시의 일등공신은 삼성증권과 SK하이닉스다. 두 회사의 시가총액이 전체 총액의 거의 절반인 47%다. 반도체 호황이 국내 증권시장에 불을 붙이고 있지만 900여 전체 종목 중 실제 오르는 종목은 200여 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700여 개는 내리거나 제자리걸음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폭등세에 가려 증시 전체가 마치 폭등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중동전쟁으로 국제유가가 오르면서 지난달 국내 소비자 물가는 1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2.6% 올랐다. 주식시장 호황과는 별개로 시장경제는 고물가로 여전히 악화일로다. 장사가 안돼 가게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의 고통스런 목소리도 여전하다. 증시와 실물경제 간에 놓인 괴리감을 메울 정책이 안 나오면 우리경제에 어떤 위기가 닥쳐올지 모른다는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5-12

리더십과 혁신경영

기업은 위기에서 본질이 드러난다. 그 위기를 돌파하는 힘은 결국 리더십에서 나온다. 이순신의 리더십은 전쟁 영웅을 떠나 위기 속 조직을 살리고 약한 자원을 강한 경쟁력으로 바꾼 ‘혁신형 리더십 모델’이다. 12척의 배로 압도적인 적을 상대하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꿨다. 그의 승리는 전투의 결과가 아니라, 준비와 전략, 조직을 움직이는 리더십의 승리였다. 이러한 탁월한 리더십을 재조명하고, 매일 아침 전쟁을 치루는 기업 혁신 경영에 어떻게 적용하여 경쟁력을 갖춰나갈 것인가, 그 시사점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이순신 리더십은 첫째, 명확한 사명이다. 싸움의 이유를 분명히 했고, 조직원들에게 생존이 아닌 ‘지켜야 할 가치’를 제시했다. 오늘날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스타벅스는 커피를 팔아 이익 실현보다 고객의 니즈(Needs)를 읽어 ‘휴식 공간과 일터 제공’이라는 컨셉으로 성공한 것은 매출과 이익만이 아니라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지에 대한 조직의 방향을 명확히 했다. 둘째, 철저한 준비다. 그는 해류와 지형, 적의 움직임까지 분석하며 전투를 설계했다. 감이 아니라 데이터와 사실에 기반한 판단이었다. 기업 경영에서도 경험과 직관에 의존하는 시대는 끝났다. 미래 경쟁력 확보 방향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과 사전 시뮬레이션 수준이 좌우한다. 셋째, 현장 중심 리더십이다. 그는 언제나 전장의 최전선에 있었다. 책상 위가 아니라 현장에서 답을 찾았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회의실이 아닌 생산현장, 고객 접점에서 문제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기획과 실행의 불균형은 성과를 장담할 수 없고, 현장을 떠난 리더십은 현실과 괴리될 수밖에 없다. 넷째, 리더와 조직의 신뢰다. 수장의 인간적 신뢰와 리더십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목숨을 건 전쟁에서 전투력과 승리는 불가능한 것이다. 또한 공정한 평가와 원칙 있는 행동은 조직의 결속을 맺는다. 이순신의 군대가 끝까지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는 전술이 아니라 리더와 구성원 간 신뢰였고, 신분을 떠나 열심히 하면 성장의 기회가 부여된다는 믿음인 것이었다. 기업에서도 신뢰 없는 조직은 형식적 업무와 관행적 행위가 일어나고,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조직 문화가 형성되어 진정한 혁신을 실행할 수 없다. 이순신의 리더십이 오늘날 기업 혁신 경영에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위기 속에서도 원칙을 잃지 않는 리더십이다. 극심한 압박과 열세 속에서도 준비 없는 출전 금지, 백성과 병사 보호 우선 등 ‘기본과 원칙’이 무너지지 않았다. 기업에서 보면, 안전을 베이스로 설비 안정, 노무에 흔들리지 않는 현장 규율, 데이터 기반 판단 등 원칙과 일관성이다. 적은 자원으로 최대 효과를 만드는 전략형 리더십이다. 물살, 지형, 타이밍, 심리전을 활용하여 이기는 전쟁을 했다. 생존을 위한 인원, 투자, 시간 부족에도 핵심 역량에 선택과 집중하며, 차별화된 기술과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기업 경쟁력은 리더십과 구성원 생각 수준, 행동에 따라 결정된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

2026-05-12

발칸반도의 비극, 2차 세계대전의 서막

발칸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세르비아 대표단과 협상테이블에 앉은 크로아티아 대표단은 하나의 통합안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세르비아는 카라조르지예의 왕가의 지도아래 한 살림을 꾸리기로 했다며 발표했다. 드디어 하나의 나라로 합쳤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앞으로 전개될 폭력의 서막에 불과했을 뿐이다. 결국 세르비아의 왕 알렉산다르의 폭정을 피해 이탈리아 등지로 망명길에 오른 크로아티아 민족주의자들은 극우단체 ‘우스타샤’를 조직해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이 뒤에는 무솔리니가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었다. 우스타샤의 최종목표는 순진하고 바보스럽기만 했던 과거, 세르비아에 나라를 헌납한 치욕적인 역사를 뒤집을 크로아티아 독립이었다. 그 과정이나 방식은 반드시 무력을 통해서였다. 이들은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나치의 지원 하에 세르비아인 학살의 선봉에 선다. 알렉산다르 역시 이들의 손에 죽음을 면치 못했으니 뿌린 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입증한 셈이다. 그러나 역사와 아무런 상관없이, 세르비아 왕 알렉산다르와는 하등의 관계없는, 권력의 단물을 단 일도 빨아본 적이 없는 단지 크로아티아 땅에서 세르비아인이란 이유로, 즉 오래전 피폐해진 삶을 벗어나고자, 아니면 오스만제국의 압정을 피해 고향을 떠나 크로아티아에 정착한 뒤, 그것에서 대를 이어 살고 있던 세르비아인들은 프레차니란 이유로 죽어야 했던, 특히 여성과 어린아이의 주검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각설하고, 유고슬라비즘의 완성, 즉 세르비아의 왕이자 유고슬라비아의 왕으로 등극한 알렉산다르의 대세르비아주의는 일단의 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국제적으로도 알렉산다르는 탁월한 외교술을 발휘하면서 문화의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던 프랑스로부터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국제사회는 모든 것이 국방과 경제적 논리만 통하는 법이다. 이익이 나지 않는 곳에서 저희들끼리 지지고 볶고 뭐를 한들 아무런 상관이 없는 국제사회다. 그러니까 유고슬라비아 친 프랑스 정책은 반 이탈리아라는 의미를 갖는다. 원래가 발칸반도 여러 민족은 이탈리아라면 이를 갈았다. 아드리아해에 대한 지배권을 위해 이탈리아의 집요한 침략에 대한 반감이 상상을 초월했다. 지도에서 국경을 찾아보면 발칸반도 서북쪽 끄트머리 발칸반도에 살짝 굽어진 땅이 여전히 이탈리아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기도 한다. 1934년 10월 알렉산다르는 강대국 프랑스의 사랑을 확인받고, 더불어 대내외에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기 위해 프랑스 마르세이유를 방문했다. 그러나 어찌 알았을까? 그도 한 인간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렇게 허망하게 갈 줄 알았다면 과연 그가 그따위 독재정을 비롯해 차별적 정책을 버젓이 펼칠 수 있었을까. 알렉산다르는 의기에 넘치는 마케도니아 출신 슬라브인에게 암살당해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이 암살자는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하지만, 이탈리아 사주를 받았거나 아니면 크로아티아 민족주의 극우단체 우스타샤 조직원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마케도니아 출신이라는 것이 이탈리아나 우스타샤들에게 변명의 빌미를 제공했다. 알렉산다르가 암살당하자 11세의 그의 아들 페타르 2세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그러자 사촌 폴(파블레)이라는 왕자가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그러나 수렴 뒤에 신임 총리가 또 대리청정하고 있었다. 신임 총리에 밀란 스토야디노비치가 오르면서 마치 조선 영조대의 탕평책을 쓰듯 세르비아급진당을 비롯해 보스니아 이슬람과 슬로베니아 국민당 등 여러 계층과 민족을 껴안으려 노력했다. 그 역시 건국 초기에는 외교에 치중했다. 그러나 알렉산다르와는 반대로 프랑스 사랑을 뿌리치고 이탈리아와 독일에게 사랑을 구걸했다. 그에게는 이탈리아 파시스트와 독일 나치가 상당하게 매력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신임 총리 밀란 스토야디노비치는 히틀러 친위대 SS단(검은 셔츠단)을 벤치마킹해 ‘녹색 셔츠단’을 만들어 세르비아극우민족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또 시위라는 뜻의 폭력조직 ‘즈보르(Zbor)’를 창설해 대세르비아주의를 지상과제로 설정했다. 더 나아가 휘하에 ‘흰독수리’단을 만들어 마치 어린이들 병영놀이처럼 청년조직을 꾸렸다. 알렉산다르에 의해 괴멸된 ‘블랙핸드’ 사생아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이때 국제사회는 빠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 승전국임에도 밥그릇을 빼앗겼다고 생각했던 이탈리아가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로 재무장을 하면서 독일 히틀러와 손을 잡았다. 기세를 올린 독일은 순식간에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기에 이른다. 이로써 오스트리아는 좋던 싫던 독일군에 합병되어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사실 1차 세계대전 전쟁 패전국으로서의 독일의 어마어마한 전쟁배상금은 독일 국민을 히틀러, 나치의 깃발 아래 모여들게 만들었다. 일자리는 줄어들었고,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으니, 이렇게까지 밀어붙인 연합국 중 가장 크게 목소리를 내는 프랑스에 대해서는 절대로 함께할 수 없는 나라라며 날을 세웠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6-05-12

아버지의 안경

낡은 서랍 깊숙한 곳에서 아버지가 생전에 끼시던 돋보기를 발견했다. 시간이 잠시 멈춘 듯했다. 유품을 정리하며 수많은 물건을 비워냈지만 손때 묻은 이 안경만큼은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다. 안경알 너머로 아버지가 평생을 걸쳐 찾아내고 응시했던 수많은 글자와 세상들이 여전히 그 안에 고여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그 안경을 챙겨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노년은 적막했다. 귀가 어두워지면서 세상의 활기찬 소음들은 아버지의 문밖에서 길을 잃었다. 소리로 소통하는 법을 잊어버린 아버지에게 이 돋보기는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하고도 절박한 창구였다. 지인들이 보내온 안부 문자, 서툰 맞춤법으로 사랑을 전하던 손주들의 메시지를 아버지는 이 렌즈를 통해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가셨다. 아버지에게 돋보기는 사물을 크게 보여주는 도구만이 아니라, 고립된 침묵 속에서 타인의 마음을 읽어내려는 아버지의 마지막 의지였다. 돋보기 렌즈가 사물을 확대할 때, 그 이면에는 소외된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는 간절함이 서려 있다. 아버지에게 그 작은 유리알은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지 않으려 붙들었던 마지막 끈이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득한 파도 소리처럼 흩어질 때, 아버지는 침묵의 방 안에서 홀로 돋보기를 닦으셨을 것이다. 깨끗하게 닦인 렌즈 위로 자식들의 짧은 안부를 올리고, 당신의 시력을 다해 그 글자들을 마음속에 새기던 시간들. 멀어져 가는 세상을 다시 끌어당겨 품에 안으려는 눈물겨운 포옹이었음을 나는 체감한다. 책상 앞에 앉아 아버지의 안경을 가만히 써 본다. 시야가 일렁이며 초점이 흐릿해지지만 그 굴곡진 렌즈 너머로 아버지가 걸어온 생의 궤적이 만져지는 듯했다. 아버지는 평생 타협할 줄 모르는 원칙주의자였다. 때로는 고집스럽고 무뚝뚝해 보였지만, 당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 앞에서는 한없이 올곧은 분이었다. 그 안경은 아버지가 세상을 왜곡해서 보기 위함이 아니라 흐려지는 세상 속에서도 본질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했던 정직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우리는 각자 저마다의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본다. 누군가는 욕망의 색채가 덧칠해진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화려하게만 보려 하고, 누군가는 편견이라는 도수가 맞지 않는 렌즈로 타인의 삶을 왜곡하여 재단하기도 한다. 내가 낀 안경의 색깔에 따라 세상은 때로 차갑게 얼어붙기도, 때로 지나치게 과열되기도 하는 법이다. 그 주관적인 굴곡 안에서 우리는 종종 사물의 본질을 놓치고, 보고 싶은 것만을 선택적으로 망막에 담는다. 하지만 아버지의 돋보기는 달랐다. 그것은 화려한 색을 입히지도, 없는 것을 만들어내지도 않았다. 그저 흐릿해진 경계를 선명하게 끌어올리고 작아서 보이지 않던 진실을 정직하게 확대할 뿐이었다. 아버지는 자신만의 안경을 닦으며, 세상이 아무리 소란하고 변칙적일지라도 그 안에서 변하지 않는 ‘원칙’이라는 상(像)을 맺기 위해 평생을 분투하셨던 것이다. 비록 아버지는 곁에 계시지 않지만 나는 이 안경을 통해 아버지의 시선을 배우려 한다. 아버지가 돋보기로 작은 문자 속에 담긴 진심을 찾아내셨듯, 나 또한 삶의 소소한 풍경들 속에서 참된 가치를 발견하고 싶다. 원칙을 지키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던 그 투명한 시선을 물려받고 싶다. 이제 아버지의 유품은 나의 책상 위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아버지가 돋보기를 통해 세상을 읽었다면, 나는 그 시선을 빌려 세상을 ‘기록’하려 한다. 타협하지 않는 원칙과 올곧은 성품이 때로는 고독한 길이었을지라도, 아버지는 한 번도 그 안경을 벗어 던지지 않았다. 나 역시 글을 쓰는 작가로서, 때로는 눈앞의 이익이나 편안함에 시야가 흐려질 때마다 아버지의 안경을 떠올릴 것이다. 돋보기가 작은 것을 크게 보이게 하듯, 남들이 쉽게 지나치는 미소한 존재들의 가치를 크게 들여다보고 아버지가 지켜냈던 그 투명한 진심을 문장 사이에 촘촘히 박아 넣고 싶다. 아버지의 안경은 이제 나의 시력이 되어 내가 써 내려갈 수많은 원고지 위를 묵묵히 동행할 것이다. 오늘도 나는 아버지의 돋보기를 곁에 두고 펜을 든다. 이 렌즈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이전보다 조금 더 선명하고, 조금 더 정직하다. 아버지가 그러하셨듯, 나 역시 나에게 주어진 이 삶을 굽힘 없이 그리고 따뜻하게 지켜내며 살아내고 싶다. /김경아 작가

2026-05-12

힘겨운 교사들

교사가 학부모에게 존경받고, 사회적으로도 보람 있는 직업으로 인정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옛날이야기가 돼버렸다. 학생들 수업을 진행하는 것 외에도 각종 생활지도, 거기에 과도한 잡무가 겹치는 것은 물론 까다로운 학부모를 상대해야 하는 등 교사의 일은 갈수록 복잡하고 어려워진다는 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부이긴 하겠지만 학부모 가운데는 교사를 자기 아이의 보모나 심부름꾼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발생할 때 교사가 받는 스트레스는 결코 가볍지 않을 듯하다. 여기에 더해 최근 교실에는 정서적으로 불안한 학생들이 많아져 수업을 방해하거나, 학급 분위기를 흐리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조사 결과까지 나왔다. 이로 인한 교권 침해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최근 한국교원교육학회엔 ‘정서·행동 위기 학생 지원의 사각지대 발생 구조와 개선 방안’이란 제목의 논문이 발표됐다. 거기에 따르면 서울 초·중·고교 교사 2485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 지난 1년간 정서·행동 위기 학생에 의한 수업 방해와 교권 침해 빈도가 증가했다고 응답한 교사가 1306명이었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문제의 심각성에 동의한 것이다. 실제로 교실에선 수업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학생들을 방해하거나 교사와 학우들에게 폭력성을 보이는 학생이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고 한다. 중·고교생보다는 초등학생에게서 이런 문제점이 나타나는 경우가 흔하다고.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비이성적 행동을 하는 학생들 탓에 퇴직을 신청하는 교사까지 없지 않다고 하니 정말이지 격세지감(隔世之感). 이젠 교사가 존경받는 직업이 아닌 ‘힘겨운 직업’이 된 것 같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5-11

미국­·이란 전쟁의 국제정치적 함의

‘힘’과 ‘국익’이 지배하는 국제정치는 냉혹하다. 미국의 ‘힘의 정치’와 이란의 ‘신정정치(theocracy)’가 격돌하고 있다. 이 전쟁으로 인해 미국과 동맹국들 사이에는 균열이 생겼고, 이란의 주변국 공격과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전쟁 양상을 바꾸어 놓았다. 중동전쟁이 주는 국제정치적 함의(implication)를 알아야 합리적 안보전략을 모색할 수 있는 까닭이다. ‘미국 우선주의’와 ‘세계 최강의 힘’을 앞세운 전쟁은 오히려 미국의 한계를 드러내었다. 트럼프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NATO·한국·일본·호주 등 동맹국들에게 협력을 요구했으나 그들 역시 자신의 국익을 고려하여 거절했다. 명분 없는 힘의 정치로 동맹국들의 지원을 받기 어려워지자 트럼프는 NATO 탈퇴와 미군철수를 협박하는 등 미국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 또한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에 배치된 무기를 이란전쟁에 투입함으로써 미국이 과연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할 능력이 있는가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전쟁이 한국에 주는 국제정치적 함의는 크게 두 가지다. 그 하나는 ‘자주국방역량을 제고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자기중심적 행태를 지켜본 동맹국들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찾고 있다. 주한 미군의 전략무기를 중동으로 빼내고 파병까지 요구한 것은 한미동맹의 성격이 바뀌고 있음을 말해준다. 북핵 위협과 한미동맹의 변화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은 우리 스스로 강력한 대북 억제력을 갖는 것이다. 평화를 지키는 것은 ‘말이 아니라 힘’이다. 힘이 없으면 북핵의 인질이 되거나 미국의 일방적 요구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특히 중동전에서 핵심전력으로 등장한 저비용·고효율의 드론전력을 강화해야 함은 물론, 북한의 강점인 전자기 공격, 집속탄을 활용한 전쟁에도 대비해야 한다. 또한 호르무즈 봉쇄로 그 취약성이 드러난 우리의 에너지안보, 즉 중동 원유 의존도가 70%나 되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캐나다·호주·아프리카 등 원유 수입원을 다변화하는 한편, 원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더욱 확대함으로써 석유 의존도를 낮추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동맹의 변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관리’이다. 이제 동맹의 의무는 필수가 아니라 선택과 거래의 대상이 되었으며, 미국은 한미동맹의 현대화와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은 한국을 지켜주는데, 정작 한국은 우리를 돕지 않는다”고 불만을 드러낸 바 있고,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북핵 관련 발언에 대한 미국의 비판, 쿠팡 사태를 둘러싼 이해충돌 등 도처에서 한미동맹의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동맹국 간에도 이견과 갈등은 있을 수 있지만, 미국이 제공하는 ‘핵확산 억제력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면 한미동맹을 잘 관리해야 한다. 동맹에 불필요한 갈등유발을 삼가하고 협력 영역을 확대함으로써 상호의존관계를 심화시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동맹은 약속하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6-05-11

나의 이름은 고독

언어의 탄생과 함께 나의 이름도 생겼다. 나의 이름은 고독. 사람들은 나를 힘들어하였다. 내가 태어날 때 ‘외로움’도 함께 태어났다. 외로움과 나는 닮았다. 사람들은 나를 외로움으로 착각했다. 외로움은 사람들이 싫어했음에도 불구하고 파리 떼처럼 끈덕지게 사람들 주위에서 배회하였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초대받기 전에는 사람들 주변에서 질척거리지 않았다. 하지만 외로움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나를 멀리했다. 그럼에도 몇몇 사람은 나를 초대해 주었다. 그들이 나에게, ‘너는 외로움이라는 외피를 뒤집어쓴 멋진 친구야!’라고 속삭여 준 말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는 삶을 살았던 사람 A가 있었다. 그는 건강과 가정 모두 탄탄했고, 사교 모임과 취미로 일상이 바빴다. 그럼에도 그는 알 수 없는 외로움에 힘들어하였다. 주변에는 맛난 음식과 사람들이 넘쳐났으나 그의 마음은 공허하였다. 만남이라는 광장에서 위선과 거짓으로 상처받았으며, 바르지 않은 타협과 양보를 강요받는 것이 싫었다. 그러던 A가 갑자기 나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저녁 식탁에서 A는 아내에게 말했다. “음식을 적게 먹으면 건강이 좋아지고, 사람을 적게 만나니 마음이 편해져” A의 아내가 애매모호한 표정으로 A를 바라보았다. 그날 이후 A는 좋아하던 몇 가지 습관을 정리했다. 그 이후로 사람들이 A의 주변에서 썰물처럼 사라졌다. 그렇게 사라진 그들의 빈자리를 A는 명상과 독서 그리고 산책으로 채웠다. 아내의 의구심 가득한 곁눈질에도 불구하고 퇴근 후 A의 고독한 여행은 계속되었다. 고독이라는 연료를 태우는 자동차가 이끄는 자유와 행복으로의 여행을. 나 고독도 처음부터 고독은 아니었다. 외로움이었다. 시작은 외로움과 함께 ‘혼자 있음’에서였다. 나와 외로움이 길을 가다 갈림길을 만났을 때, 외로움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소음의 길을, 나는 침묵의 길을 선택하였다. 외로움은 군중 속에서 사람을, 소음 속에서 인정받기를 갈망하다 지쳐갔다. 하지만 나는 자기 자신에게 모든 걸 간직할 수 있는 사람 속에서 평화를 찾았다. 외로움에 지쳐 사람들이 무너지는 도시를 높은 곳에서 나는 보았다. 나는 ‘혼자 있음’이란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외로움은 여기로 돌아오지 못했다. 나는 안다. ‘혼자 있음의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는 것과, ‘나와 함께 친구 할 수 있다’는 것은 자연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선물일지 모른다는 것을. 나의 친구 A는 어느 날 ‘고독이 외로움에게’라는 제목으로 편지를 한 통 썼다. 그 마지막 부분은 아래와 같다. “외로움아/ 사실 나 고독은 너의 오랜 미래야/ 사람들이 너를 끝까지 외면하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조용히 바라보기 시작할 때, 그때 너는 서서히 나로 변할 거야/ 어느 봄날 저녁 혼자 마시는 차 한잔 속에서/ 아무 연락도 오지 않는 밤 창밖의 바람 속에서/ 한 권의 책을 덮고 오래 침묵하는 순간 속에서/ 너는 조금씩 나로 자랄 거야/ 잊지 마/ 혼자는, 결핍이 아니라 그저 공간이라는 것을/ 침묵은, 공허가 아니라 깊이라는 것을/ 자기 자신과 함께 있는 시간이야말로 가장 늦게 도착하는 평화라는 것을/ 굿바이! 외로움/” /공봉학 변호사

2026-05-11

만화방창, 포항철길숲

포항철길숲(포레일·Forail)’이 만화방창(萬化方暢)이다. 4월 하순부터 이곳엔 이팝꽃, 조팝꽃, 송화가 흐드러졌다. 벌써 영산홍은 많이 졌고, 장미꽃도 피어난 곳이 있다. 이름 모르는 나무꽃, 풀꽃들도 질세라 활짝 피어나 얼굴을 뽐낸다. 꽃들에 더해, 오뉴월에나 만날 신록도 넘실대기 시작한다. 예전엔 교외나 산에 가야만 느끼던 생명의 찬란함을 도심 철길 숲에서 만나다니 그야말로, 만화방창이다. 지난 늦가을, 직장사무실을 옮기는 바람에 평일 낮에 10여 분 정도 용흥 고가도로 부근 철길숲을 걸어 퇴근하게 되었다. 이 변화가 내게 또 하나의 행복을 선물해 주고 있다. 사람의 조경술이 빚은 멋진 정원처럼 자연과 조화를 이룬 숲길을 걷는 일은 몸의 건강은 물론, 마음 건강도 챙기는 시간이 된다. 만나는 나무, 풀들과 교감을 주고받는 일은 사람과의 소통에 비해도 모자람이 없으니까. 하여, 이곳은 힐링을 바라는 도심 사람들에겐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다. 이 숲길이 생기기 전엔 많은 사람이 건강을 위해 양학산 등산로를 올랐었다. 나도 그랬다. 나라의 IMF 경제위기 체제 이후, 실로 많은 사람이 찾은 양학산은 사람 발길에 큰 몸살을 앓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포항역의 이전으로 폐철도가 된 도심 철길구간이 숲, 조형물, 보도, 자전거 길 등으로 단장해 철길숲으로 재탄생했다. 그 덕에 등산객이 확 준 양학산은 몸살이 나아가니 철길숲 조성은 일거양득인 셈이다. 1918년 개통되어 약 100년간 기차가 다니던 효자역과 옛 포항역 사이 구간이 2015년 포항역 이전으로 폐철도 유휴 부지가 되었다. 이 부지를 포항시장의 ‘그린웨이(Green Way) 프로젝트’에 포함 시켜 착공 2년 반만인 2018년 12월 준공하였다. 쓸모 잃은 철도와 부지가 ‘포항철길숲 1918 포레일’로 아름답게 다시 태어나 도시 미관을 살리고, 대기 정화 등 환경 개선도 이바지하고 있다. 숲의 영문 ‘Forest’와 기찻길 영문 ‘Rail’을 합성해 만든 말이 포레일이다. 지역신문 K지 보도에 따르면, 이 숲은 유성여고~서산터널의 2.3㎞ 1차 구간, 서산터널~효자교회 앞 광장까지 4.3㎞의 2차 구간을 합하면 길이가 6.6㎞에 이른다. 준공 다음 해 포항시 추산 방문객 수는 평일 5천 명, 휴일 1만 명에 달하였다. 그러니 시민 힐링 마당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철길숲을 걷다 보면 중간중간에 옛 철도가 남아있어 기찻길이었음을 알려주지만, 객차나 화차, 기관차, 철길 신호등 같은 실물들이 뜨문뜨문 배치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또, 강원 정선 레일바이크나 울진 스카이레일 같은 레포츠 시설을 벤치마킹하여 가능한 곳에 설치 운영한다면, 시민들에겐 더 멋진 곳이 되고 고용 창출도 가능할 것이다. 다행히 성모병원 입구 인근 어울누리숲에 무궁화호 폐객차를 리모델링한 철도 문화공간이 있다. 하지만, 긴 숲 전체와 포항시민, 관광객을 다 커버하기엔 역부족이지 싶다. 우수 도시 숲으로 여러 번 상도 받은 멋지고 아름다운 ‘포항철길숲 1918 포레일’이 시민과 더 밀착하는 지속 가능한 숲으로 발전하면 좋겠다. /강길수 수필가

2026-05-11

드보르작의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

5월은 가족을 돌아보게 되는 계절이다. 어린 시절 당연하게만 느껴졌던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가정의 달을 맞아 꼭 한번 들어보길 권하고 싶은 클래식 곡이 있다. 바로 ‘Songs My Mother Taught Me’, 우리말로는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이다. 짧은 곡이지만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삶의 애환이 깊게 담겨 있어 어버이날과 특히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이 곡의 작곡가 드보르작(Antonín Dvořák·1841~1904)은 현재의 체코 프라하 근교 넬라호제베스에서 태어난 체코 국민 작곡가다. 당시 그의 고향은 오스트리아 제국 아래의 보헤미아 지역이었으며, 훗날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기 전의 체코슬로바키아 일부였다. 그는 스메타나(Bedřich Smetana)와 함께 체코 음악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히며, 민족적 색채가 짙은 작품들을 통해 고향의 정서와 향수를 음악 안에 담아냈다. 드보르작의 대표작으로는 흔히 ‘신세계 교향곡’이라 불리는 ‘Symphony No. 9’이 있다. 또한 ‘현악사중주 No. 12’ ‘American’역시 널리 사랑받는다. 특히 ‘신세계로부터’의 4악장은 한국에서 아이스크림 광고 음악으로 사용되며 ‘죠스바 테마곡’으로 익숙하게 알려지기도 했다. 드보르작은 미국 체류 시절에도 늘 고향을 그리워했다. 그는 현지 원주민과 흑인들의 민요를 연구하며 새로운 음악적 영감을 얻었지만, 그 안에서도 늘 보헤미아 특유의 향수를 잃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음악에는 어딘가 그리움과 회상의 정서가 짙게 배어 있다. 1880년에 작곡된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 역시 그러한 감성이 가장 아름답게 담긴 작품 중 하나다. 이 곡은 체코 시인 아돌프 헤이둑(Adolf Heyduk)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으로, 드보르작의 연가곡집 ‘집시의 노래(Gypsy Songs Op.55)’ 가운데 네 번째 곡이다. 드보르작은 이 곡을 작곡하며 여러 차례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가사는 매우 담백하지만 깊다. "늙으신 어머니 나에게 그 노래 가르쳐주실 때, 어머니 눈에 눈물이 곱게 맺혔었네. 이제 내 어린 딸에게 그 노래 들려주노라니, 내 그을린 두 뺨 위로 한없이 눈물 흘러내리네." 이 노래가 더욱 애틋하게 들리는 이유는 드보르작 개인의 삶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는 이 곡을 쓰기 전 몇 년 사이 세 아이를 어린 나이에 떠나보내야 했다. 그래서인지 곡 전체에는 단순한 향수를 넘어선 깊은 상실감과 슬픔이 배어 있다. 어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했던 그의 진심이 음악 안에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 특히 피아노 반주의 독특한 당김음 리듬과 체코 민요풍 선율은 마치 오래된 자장가처럼 따뜻하게 다가온다. 원래 ‘집시의 노래’ 모음곡의 다른 곡들은 활기차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강하지만, 유독 이 곡만은 조용한 회상과 눈물 어린 정서를 품고 있다. 오늘날 이 작품은 성악뿐 아니라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등 다양한 악기로 편곡되어 연주되며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언어와 문화는 달라도 ‘어머니의 사랑을 기억하는 마음’만큼은 모두에게 같기 때문일 것이다. 바쁜 일상 속 잠시 시간을 내어 이 곡을 들어보길 권한다. 어쩌면 우리 마음속에도 오래전 어머니가 들려주셨던 따뜻한 목소리가 다시 조용히 울려 퍼질지도 모른다. /박정은 객원기자

2026-05-11

날과 날 사이에서

가정의 달이라 불리는 5월은 행사가 넘치는 달이다. 20대 질풍노도 시절에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도무지 달갑지 않았다. 어린이와는 무관(無關)했고, 어버이나 스승을 기리는 일보다는 반독재 민주화 투쟁이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지금도 나는 그런 자세를 온존하며 살고 있다. 혈연보다 공동체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주 예전에는 ‘어버이날’이 아니라 ‘어머니날’이었다. 어머니날 같은 행사가 어린 시절의 내게는 무척이나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다. 4남매가 모여 엄마한테 빨간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어머니 은혜’를 불러야 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소리 내서 ‘어머니 은혜’를 불러본 기억이 거의 없다. 너무 속 보이는 부끄러운 짓 아닌가, 생각한 탓이다. 당신 눈앞에서 둘째 아들이 입도 달싹거리지 않는 걸 보는 엄마는 서운한 기색이다. 그렇다고 눈치 보면서 형제들의 노래를 따라 하기는 싫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내고 대학생이 되었으니, 그 뒷일이야 재언(再言)이 필요하지 않을 터다. 여기에 찬물을 끼얹은 행사가 스승의 날이었다. 대학원 시절, 학과 교수님들 모시고 조촐하게 식사했던 기억이 새롭다. 1958년 강경여고 단원들이 시작했다는 스승의 날은 1965년 5월 15일부터 공식적인 행사로 자리매김한다. 1973년 박정희는 스승의 날 행사를 돌연 금지하고 ‘국민교육헌장’ 선포일인 12월 5일에 통합해버린다. 전두환이 1982년에 스승의 날 행사를 되살린 것은 참 불가사의한 일이다. 권력 찬탈을 위해 동족 학살마저 꺼리지 않던 자가 스승 운운이라니?! 세월이 무상하게 흘러 교수가 된 후에 학생들이 마련한 스승의 날 행사에 참여하곤 했다. 언젠가는 학과 ‘엠티(MT)’에 갔다가 한밤중에 느닷없이 들려오는 ‘스승의 은혜’ 합창 소리에 아연실색(啞然失色)한 일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고, 떨떠름하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역시 행사는 내게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다. 언제부턴가 스승의 날 행사에 일절 가지 않았다.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나는 스승이 아니라, 일개 교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제자가 없으면 스승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나온 말이 사제지간(師弟之間)이다. 그런데 문득 돌아보니 나는 지식을 전달하는 교수일 뿐이고, 학생들 역시 제자가 아니라, 지식 전수자(傳受者)에 지나지 않았던 터였다.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행사에 얼굴을 들이밀고 작은 선물을 받는 어색함과 불편함을 거부한 것이다. 그러다가 ‘김영란법’이란 게 만들어지고, 그 주요 목표물은 초중고교 교사들로 확정된다. 참으로 보기 민망한 일들이 이어졌고, 어떤 교사들은 스승의 날에 학교 가기가 죽기보다 싫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밀어낸 셈이다. 제자도 없는 나라에 무슨 스승의 날이 필요한지, 의아하기 짝이 없다. 최소한의 기본적인 예의범절마저 사라진 학교에서 딱 하루 날 잡아서 행사한다는 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짓인가?! 의미도 없이 행사만 넘쳐나는 5월에 백작약 화사하게 피어나니 그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5-10

스님도 로봇으로?

지난 2월 일본 교토의 유서 깊은 한 사찰에 사람처럼 말하고 움직이는 로봇스님이 등장해 화제가 됐다. 이름하여 붓다 로이드. AI를 탑재한 인간형 로봇이다. 불교 경전을 학습해 인생 상담이나 마음의 고민 같은 인간적인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만든 로봇스님이다. 취재에 나선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너무 많이 생각하고 걱정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고 했더니 로봇스님이 답했다. “불교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 자체를 내려놓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라 했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로봇스님 등장 배경으로 인구감소와 초고령사회로 인한 인력난을 지적한다. 일본에 있는 많은 지방사찰들이 후계자를 찾지 못해 문을 닫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또 스님 한 명이 여러 사찰을 돌아다니며 운영하는 곳도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부족한 스님을 대신해 로봇으로 대체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는 찬반 양론도 있다. 반대쪽은 종교란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로 교감을 이루는 특성이 있는데 AI가 대신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견해다. 한국 불교계가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우리나라 최초의 로봇스님을 선보여 관심을 끌었다. 서울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열린 수계식에서 휴머노이드 G1 로봇스님은 ‘가비’라는 법명을 수여받고 불교 계율에 서약했다. 앞으로 부처님 오신날을 전후해 명예스님으로 활동할 예정이라 한다. 조계종은 “인간과 기술이 함께 공존해 새로운 가능성을 상징하는 것”이란 말로 로봇스님 등장의 의미를 설명했지만 우리나라 사찰에서도 로봇 스님을 만나는 일이 멀지않아 있을 것 같은 예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5-10

‘행정가’가 아닌 ‘전략적 리더’를 선택하라

오는 6월 지방선거는 인공지능(AI) 확산과 다중격차 심화라는 거대한 전환기 속에서 지역의 생존 방향을 결정할 분수령이다. 이제 지방은 단순한 인물 교체를 넘어 스스로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설계해야 하는 ‘전략 공간’이 됐다. 이번 선거는 공약의 양을 겨루는 경쟁이 아니라, 지역의 복합적 현실을 정확히 읽고 지속 가능한 해법을 설계할 수 있는 인물을 선택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오늘날 지역이 마주한 문제는 결코 단선적이지 않다. 인구 감소는 일자리 부족으로, 이는 다시 교육·주거·복지 위기로 이어진다. 고령화는 의료와 재정 부담을 키우고, 디지털 격차는 교육과 소득의 양극화를 고착화한다. 하나의 문제가 다른 문제를 증폭시키는 구조 속에서 과거식 단편 개발 공약이나 일회성 사업으로는 해법을 찾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현상 너머의 시스템을 읽어내는 통찰력이다. 자치단체장은 지역의 인구 구조, 산업 기반, 재정 여건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핵심 과제를 도출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제한된 예산과 인력 속에서 우선순위를 정할 용기가 필요하다. 모든 민원을 동시에 해결할 수는 없다. 리더는 당장의 표심을 자극하는 인기 사업이 아니라, 지역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을 선택해야 한다. 단기 성과에 매몰되지 않고 10년 뒤의 지역을 설계하는 중장기 전략가로서의 면모가 본업이 되어야 한다. 또한 다중사회에서 리더는 지배하는 지휘자가 아닌 갈등을 조정하는 ‘조정자’여야 한다. 지역 내 다양한 세대와 계층, 원주민과 다문화 가정 등의 요구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갈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리더의 역량이다. 정책의 취지를 충분히 설명하고 주민의 의견을 경청하며, 반대 의견조차 존중하는 태도가 필수적이다. 설명 없는 결정은 불신을 낳고 행정의 동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AI 시대에는 기술이 정책의 중요한 기반이 되지만, 결국 주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정책은 지속될 수 없다. 단체장은 기술의 혜택이 소외된 곳 없이 닿을 수 있도록 기술과 사람을 잇는 다리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유권자는 후보가 상대를 비난하기보다 설득하는지, 어려운 정책을 주민 눈높이에서 쉽게 풀어내는지, 다양한 계층과 소통해 온 실질적인 경험이 있는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실행력과 책임성도 빼놓을 수 없는 덕목이다. 아무리 좋은 구상이라도 성과로 연결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예산 확보 능력과 조직 관리, 협치 능력은 필수 조건이다. 더불어 정책의 한계나 실패 앞에서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가 주민의 신뢰를 만든다. 특히 단체장에게 부여된 권한은 시민이 위임한 것인 만큼, 도덕성과 청렴성은 행정의 공정성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된다. 이번 6월 지방선거는 개발 공약의 화려함을 겨루는 자리가 아니다. 우리 지역의 미래를 설계할 전략가를 선택하는 자리다. 유권자는 후보가 지역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갈등을 조정하며 약속을 책임 있게 실행할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결국 지역의 미래는 공약집의 분량이 아니라, 그것을 실천할 ‘사람’의 역량에 달려 있다.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전 대구경북연구원장

2026-05-10

스페이스워크

포항 북구 환호공원 언덕 위에 세워진 스페이스워크는 이제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2021년 포스코 기부 이후 2026년 1월 기준 누적 방문객 371만 명을 넘어섰고, 400만 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주말마다 인근 도로가 관광객 차량으로 가득 차 혼잡할 만큼 이곳은 이미 강력한 핫 플레이스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들은 한 상인의 말은 이 활기를 다른 시선으로 보게 만든다. “사람은 많은데, 손님은 아닙니다. 올라갔다가 그냥 내려와서 가버려요.” 이 짧은 문장은 지금 포항 관광의 구조적 한계를 정확히 드러낸다. 스페이스워크는 사람을 불러 모으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시간을 붙잡아 두는 데까지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하나의 강력한 목적지는 만들어졌지만, 그 이후의 흐름은 비어 있다. 사람들은 올라가서 풍경을 보고 사진을 찍은 뒤, 더 머물 이유를 찾지 못한 채 도시를 떠난다. 결국 포항은 경험되는 도시가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장소로 남는다. 이제 필요한 것은 무엇을 더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왜 머물러야 하는가에 대한 설득이다. 언덕 아래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음악, 해 질 무렵 시작되는 미디어아트, 매일 반복되지만 지루하지 않은 짧은 공연 같은 요소들은 공간의 체류 시간을 바꾸는 작은 계기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지속성이다. 일상처럼 이어지는 콘텐츠가 쌓일 때, 이곳은 단순한 방문지가 아니라 다시 찾는 공간으로 바뀐다. 관광의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보고 끝나는 여행보다 기억을 가져가는 경험을 원한다. 스페이스워크의 형태와 이야기를 담은 디자인 상품, 포항을 상징하는 감각적인 굿즈, 지역 작가의 시선이 담긴 작품들은 단순한 기념품을 넘어 도시의 이미지를 확장시키는 매개가 된다. 이런 경험이 축적될수록 포항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더 오래 남는 도시가 된다. 현재 운영 중인 포항관광 시티투어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주요 관광지를 연결하는 기능을 넘어, 스페이스워크를 체류의 시작점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이곳에서의 체험이 공연과 전시, 야간 프로그램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면 관광객의 동선은 단순한 방문에서 머무는 경험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이동 중심의 투어가 아니라 경험 중심의 흐름으로 전환되는 순간, 하나의 점은 도시 전체를 잇는 선이 된다. 결국 핵심은 흐름이다. 스페이스워크에서 시작된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그 길 위에 머물 수 있는 공간과 경험이 연결될 때 사람은 떠나지 않는다. 지금처럼 올라갔다 내려오는 구조에서는 체류가 만들어지기 어렵다. 관광은 점이 아니라 선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미 스페이스워크는 사람을 불러 모으는 힘을 충분히 증명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 힘을 시간으로 바꾸는 일이다.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소비는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그 경험은 기억으로 남는다. 371만 명이라는 숫자를 기록으로 남길 것인지, 도시 전체를 경험하는 흐름으로 확장할 것인지. 그 선택이 포항 관광의 다음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손철호 지역문화포럼 따로또같이 대표

2026-05-10

선택

창문을 연다. 집 뒤 야산에 하얗게 아카시아꽃이 피었다. 푸른 잎들과 함께 바람결에 제 몸을 맡기고 흔들리고 있다. 향기가 바람을 타고 온 집안으로 퍼진다. 봄의 온기가 무르익고 있다. 어린 시절 아카시아는 우리에게 친숙한 꽃이었다. 하교 길에 가끔씩 따 먹기도 했고 친구들과 잎 따기 놀이도 했다. 풍성하고 아름다운 꽃으로 눈길을 끌기도 했지만 향기가 매우 좋았다. 그 이름을 딴 껌이 있었는데 씹으면 향기를 먹는 듯해 자주 샀던 기억이 있다. 요즈음은 옛날만큼 아카시아가 흔하지는 않다. 아까시가 원 이름인 이 나무는 빠른 성장 속도와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 1960년대 산림녹화사업에서 주종 수종으로 선정되었다. 이차대전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황폐해진 산을 짧은 시간 동안 살리기에 적합한 나무로 보았던 것이다. 빠른 성장력은 산을 푸르게 하는 것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부작용을 가지고 왔다. 다른 나무의 생장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뿌리의 번식 속도나 힘이 좋다 보니 주변의 묘지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일이 생긴 것이다. 특히 소나무를 죽인다고 해서 아카시아를 뿌리까지 파서 개체수를 줄였다. 개발로 인한 군락지 훼손, 1세대 나무의 수령이 다함으로 인한 감소. 그리고 부정적인 여론에 급격히 줄어들었다. 2012년부터 5년 동안 절반 이상 사라졌다고 한다. 단순히 이것으로 끝났으면 좋은데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꿀은 아카시아가 70~80%를 차지하고 있는데 꿀의 생산량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이다. 결과 양봉업자의 피해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아카시아가 주는 부작용을 줄이는 일에 신경을 쓴 나머지 일어날 일을 미처 예측치 못한 것이다. 선택은 여럿 가운데서 필요한 것을 골라 뽑는 일이다. 선택은 작은 것에서 큰일까지 다양하게 그리고 매 순간 우리 앞에 나타난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그런 선택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매번 우리가 최선의 선택을 뽑는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게 잘 풀리지만은 않는다. 가벼운 선택은 커다란 난제를 동반하지 않지만 설사 문제가 생겨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때로는 하나의 선택이 삶의 변곡점을 그어놓기도 한다. 선택이 늘 책임이라는 것과 떼어놓을 수 없는 이유이다. 가장 적합한 수종이라 생각해 고른 아카시아가 생각 외로 피해를 줬고 그래서 아카시아를 많이 없앴다.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했지만 사라진 것은 나무만이 아니었다. 우리의 선택은 사회에 커다란 흔적을 남기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도 묻히고 양봉업자의 시름은 깊어지며 삶의 온도가 달라졌다. 선택은 자유를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지만 책임이라는 그림자를 깊이 남기기도 했다. 꿀의 부족과 양봉업자들의 위기는 선택이 빚어낸 결과였다. 우리가 그 결과를 보며 그 전의 선택을 한탄만 하고 있다면 그 역시 올바른 일은 아닐 것이다. 그 전의 일들을 되짚어보고 책임지는 일들이 없다면 그와 유사한 일들은 이름만 바꾸어 반복될 것이다, 정부는 아카시아를 다시 심어 그 나무의 개체수를 일정 부분 늘여가고 있다. 젊었을 때에 내 삶은 내가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믿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은 할 수 있고 얻을 수 있다는 자만에 빠져 살았다. 삶은 자유로웠고 선택은 무겁지 않은 것이었다. 실수를 해도 쉽게 되돌릴 수 있고 가볍게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삶의 범위와 관계는 확장되었고 선택은 나날이 모양과 형태가 다양해졌다.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수많은 변수가 나타났다. 수시로 조용한 후회가 내 삶에 찾아왔으며 참담한 결과를 가져온 일도 생겨났다. 그 이면에는 결과를 상상하지 못한 나의 경솔함이 낳은 선택도 있었다. 뒤늦은 후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내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결국 좋은 선택이란 결정하기 전에 최대한 책임을 상상해보고 덜 무너지는 쪽을 택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아카시아의 짙은 향기를 맡으니 두 마음이 든다. 집안일을 계속 할까 아니면 산책을 나갈까. /전영숙 시조시인

2026-05-10

보이지 않는 손, AI가 짠다···물류·유통의 새 질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전 세계 항만이 멈추고 마트 진열대가 비어가던 풍경을 우리는 아직 또렷이 기억한다. 마스크 한 장, 손 소독제 한 통을 구하려 줄을 서던 그때, 지구촌이 거대한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공급망(Supply Chain)’에 우리 일상이 얼마나 깊이 의존하고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그 톱니바퀴를 다시 돌리고 더 정교하게 다듬는 새로운 동력이 등장했다. 바로 인공지능(AI)이다. 물류·유통은 본질적으로 ‘예측 게임’이다. 어떤 상품이, 언제, 어디서, 얼마나 팔릴지 미리 알 수 있다면 재고도 줄이고 배송도 빨라진다. 문제는 변수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날씨, 명절, 환율, 입소문, 심지어 SNS의 짤막한 글 한 줄까지 수요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의 직관과 엑셀 표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AI는 바로 이 빈틈을 메우는 도구로 떠올랐고,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공급망 재편 흐름과 맞물려 그 가치가 더욱 커지고 있다. ■ 종이 장부에서 ‘파운데이션 모델’로 수요 예측은 기업의 오래된 고민 중 하나다. 과거 유통 담당자들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판매량에 약간의 보정을 더해 발주 수량을 정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기존 방식은 단순 추세를 연장하는 것이라 사실상 예측이라 부르기 어려웠다”고 토로한 바 있다. 그 결과 폐기·결품·인력 낭비라는 세 가지 고질병이 늘 따라붙었다. 너무 많이 들이면 버려지고, 너무 적게 들이면 손님을 놓친다. 그 사이를 가르는 칼날은 늘 흐릿했다. 이마트는 이런 한계를 넘기 위해 자체 예측 엔진 ‘사이캐스트(Saicast)’를 개발해 7만여 개 상품의 판매 패턴을 AI에 학습시켰다. 요일·가격·날씨·시즌·행사 여부 등 40여 개 변수를 동시에 따져 다음 주 판매량을 추론한다. 신세계그룹은 한발 더 나아가 지난달 미국 AI 기업 ‘리플렉션AI’와 손잡고 상품 소싱(Sourcing)부터 발주, 가격 책정, 물류, 재고, 고객관리에 이르는 6대 영역 전반에 첨단 AI를 접목하기로 했다. 유통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AI가 흐르게 하겠다는 선언이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은 이 분야의 교과서로 통한다. 아마존은 4억여 개 상품의 일일 수요를 예측하는 자체 시스템 ‘SCOT(Supply Chain Optimization Technology)’을 30년간 다듬어 왔다. 지난 2024년 6월에는 새로운 ‘파운데이션 AI 모델’을 공개했는데, 판매 이력에 더해 날씨와 휴일 데이터까지 통합해 지역별 예측 정확도를 20%, 대형 할인 행사 예측을 10% 끌어올렸다고 발표했다. 매사추세츠 해안의 여름철 자외선 차단제와 콜로라도 겨울철 스키 고글을 따로 예측하는 식이다. 같은 미국이라도 지역마다 ‘내일 팔릴 것’이 다르다는 점을 AI가 읽어낸다. 여기에 생성형 AI 매핑 기술 ‘웰스프링(Wellspring)’까지 더해 단 몇 달 만에 280만 개의 아파트 주소를 자동으로 정리해, 라스트마일 배송 효율을 한층 끌어올렸다. ■ 공급망 최적화, AI가 바다와 하늘을 읽다. 수요 예측이 ‘얼마나 팔릴지’를 푸는 문제라면, 공급망 최적화는 ‘어떻게 옮길지’를 푸는 문제다. 글로벌 해운사 머스크(Maersk)는 전 세계 700여 척의 선박에서 매일 20억 건의 데이터를 수집해 AI로 분석한다. 부품 이상이 나타나기 3주 전에 85% 정확도로 고장을 예측해 정비를 미리 끝낸다. 그 결과 선박 가동 중단 시간이 30% 줄고 연간 약 3억 달러를 절감한 것으로 평가된다. 컨테이너 적재 순서, 항만 혼잡, 항로 변경까지 AI가 실시간으로 계산한다. 항해 한 번에 한반도 면적의 바다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선박이, 사실은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에 의해 조용히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미국 유니레버는 SNS 트렌드와 기상 데이터를 결합한 ‘디맨드 센싱’ 플랫폼으로 예측 오차를 30% 줄이고 재고 비용 3억 달러를 아꼈다. 월마트 역시 AI 수요 예측으로 결품률을 낮춰 고객 만족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공급망이 ‘일직선 파이프라인’에서 ‘실시간 신경망’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최근 아마존웹서비스(AWS)는 ‘Amazon Connect Decisions’라는 에이전틱 AI 솔루션을 공개해, 25개가 넘는 공급망 도구를 ‘AI 동료(Teammate)’로 묶어 인간 실무자와 24시간 함께 일하도록 만들었다. 24시간 잠들지 않는 디지털 동료가 재고를 감시하고, 이상 신호를 추리며, 필요한 결정을 사람에게 추천한다. ■한국 물류, ‘에이전틱 AI’ 시대로 국내 기업들의 행보도 빠르다. 신선식품 새벽 배송으로 시장을 연 마켓컬리는 자체 개발한 AI 분석 시스템 ‘데이터 물어다 주는 멍멍이(데멍이)’로 고객 주문을 정교하게 예측한다. 상품 종류, 연령별 수요, 날씨, 시기별 이슈, 고객 반응률, 기획전 등 수십 개 변수를 일·주·월 단위로 따져 발주량을 결정하고, 입고된 상품의 시간대·지역별 판매 추이까지 실시간으로 추적해 재고와 인력 운영을 미리 조정한다. 그 결과 일반 대형마트 폐기율이 3% 내외, 슈퍼가 7~8%에 달하는 가운데 마켓컬리는 신선식품 폐기율을 7년 연속 1% 미만으로 유지하고 있다. AI가 환경 부담과 운영 비용을 동시에 줄이는 좋은 본보기다. CJ대한통운은 한 걸음 더 들어가 ‘에이전틱 AI(Agentic AI)’ 전략을 내세웠다. 단순 자동화를 넘어, AI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자율 운영 체계다. 미들마일 운송 브랜드 ‘더 운반’은 AI·빅데이터 기반 라우팅으로 운임과 경로를 동시에 최적화한다. 라스트마일 ‘오네’는 2025년 업계 최초로 주 7일 배송 ‘매일오네’를 도입했다. 군포 풀필먼트센터에서는 AI 휴머노이드 로봇이 포장 공정에서 완충재 보충 작업을 실증하며 상용화를 준비 중이다. 로봇이 단순한 팔다리가 아니라 ‘판단하는 동료’가 되어가고 있다. ■ 포항·경북, 산업 물류의 새 무대 이 흐름은 포항에도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다. 포스코그룹은 지난 2월 제철소 철강 제품 물류관리에 휴머노이드 로봇 도입을 공식화했다. 이미 포항제철소에서는 AI 기반 크레인 자동 운송 시스템이 가동 중인데, 영상 인식과 라이다(LiDAR) 센서로 비정형으로 쌓인 코일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 한 번에 최대 8톤을 안전하게 옮긴다. 과거 12시간이 걸리던 복잡한 소량 주문 설계가 AI 덕분에 단 1시간으로 단축됐고, 용광로에서 쇳물을 빼는 출강 과정까지 AI가 스스로 최적화하고 있다. 그룹 물류 자회사 포스코플로우는 통합 물류 시스템 ‘플라워(Flower)’로 그룹 전반의 선박·차량·재고 정보를 실시간으로 연동하고 있다. 철강뿐 아니라 영일만항을 거쳐 가는 수출 컨테이너, 경북 내륙의 농수산물 산지 출하, 의성·청송 사과의 출고 타이밍 조절까지 AI 공급망 기술이 적용될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중소 판매자가 대형 플랫폼의 AI 풀필먼트 인프라를 빌려 쓰는 네이버의 ‘NFA(네이버 풀필먼트 얼라이언스)’ 같은 모델은 지역 소상공인에게도 새로운 길을 열어 주고 있다. 거대 IT 기업의 전유물이던 AI 물류 역량이 작은 가게의 무기가 되는 시대다. 포스텍과 지역 연구기관이 보유한 데이터 분석 역량이 지역 물류 스타트업과 결합한다면, 동해안에 한국형 ‘AI 물류 허브’가 자리 잡는 그림도 결코 먼 미래가 아닐 것이다. ■ 과제와 전망···사람과 AI의 동행 물론 그늘도 있다. 데이터 품질이 곧 예측 품질을 결정하기에, 양질의 데이터 확보가 관건이다. 전쟁·기후 재난·관세 같은 외부 충격에는 어떤 모델도 완벽히 대응하기 어렵다. 일자리 변화도 풀어야 할 숙제다. 단순 분류·운반 직무는 줄지만, 데이터 분석가, 로봇 운영자, AI 트레이너 같은 새 직무가 생겨난다. 정부와 지자체의 재교육 투자, 그리고 중소 물류·유통기업의 AI 도입을 돕는 공공 인프라가 절실한 이유다. 결국 AI 물류·유통 혁신의 진짜 가치는 ‘빠른 배송’을 넘어선다. 폐기 식품을 줄여 환경 부담을 낮추고, 품절로 인한 헛걸음을 막아 시민의 시간을 아끼며, 영세 판매자에게도 대기업 수준의 예측 도구를 손에 쥐여 준다. AI가 짜는 보이지 않는 연결망은, 결국 우리 일상의 풍경을 조용히 바꾸어 가고 있다. /서용운 계명대 글로벌 창업대학원 벤처창업학과 교수

2026-05-10

세한도(歲寒圖)

대구간송미술관은 지난달 7일부터 전시한 추사 김정희의 작품인 ‘세한도’를 오는 10일까지 전시한 후 마감한다. 서울과 제주에서만 볼 수 있었던 ‘세한도’가 처음으로 대구에 와 전시된 후 이번 주말을 끝으로 마감된다고 하니 아직 구경 못 한 분들이 있으면 시간을 내서라도 한번 가보길 권한다. ‘세한도’는 가로 69.2cm, 세로 23cm 크기 작품으로 국보 180호다. 조선 문인화 중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그림이다. 세한(歲寒)은 자신의 처지를 빗대 표현한 말이다. “날씨가 차가워지고 난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고 푸르다”는 논어 자한편에 나오는 ‘추운 겨울’이란 뜻의 세한에서 따온 말이다. 1844년 김정희는 50대에 제주도로 유배를 가 9년간 긴 유배생활을 한다. 그는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이른바 위리안치형을 받아 그와 접촉하는 것조차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의 제자 이상적은 추사를 극진히 모시고 중국으로부터 구입한 책들을 가져다 준다. 그의 정성에 감복한 추사가 선물로 그려준 그림이 ‘세한도’다. 초라한 집을 가운데 두고 소나무와 잣나무가 그려진 모습은 자신과 자신에게 정성을 다한 이상적을 상징하는 것으로 묘사했다. 그림 낙관에는 ‘오랫동안 서로 잊지 말자’는 뜻의 ‘장무상망(長毋相忘)’이 쓰여 있다. 이 그림은 일본인 추사 연구가 후지쓰카가 골동품 가게에서 구입한 후 보관하고 있다가 우여곡절 끝에 중앙박물관으로 돌아오게 된다. 대구간송미술관은 이번 연휴 기간이 세한도가 전하는 감동을 경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 했다. 이번 주말에는 꼭 대구간송미술관을 찾아 선비의 절개가 담긴 그림을 음미해보면 어떨까. /우정구(논설위원)

2026-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