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갈증 10년만에 푼 홍진주<BR>“체력·시드 유지 시 계속 선수로”
“엄마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다. 이 세상 모든 워킹맘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
홍진주(33·대방건설)는 지난 6일 경기도 용인 88 골프장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팬텀 클래식에서 연장전 끝에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2006년 SK 엔크린 인비테이셔널 우승 이후 10년 만이다. 홍진주는 KLPGA 투어 현역 선수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다. 홍진주는 세 살 난 아들을 키우는 `워킹맘`이기도 하다.
우승의 감격이 채 가시지 않은 홍진주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가장 하고 싶은 말`을 묻자 “내 우승 소식이 엄마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진주는 “체력이 뒷받침되고 시드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미국의 줄리 잉스터처럼 오래도록 투어 선수로 뛰고 싶다”면서 “후배들에게도 결혼과 출산은 선수 생활에 장애가 아니라는 걸 말해주겠다”고 밝혔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미국에 진출했지만, 빈손으로 복귀해야 했던 아픔은 “시련이라 할 게 못 된다”면서 “지난 10년 동안 행복하다고 여기며 살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음은 홍진주와 일문일답.
- 10년 만에 우승이다. 소감이 남다르겠다.
△ 두 번째 우승이 아니라 처음 우승한 것 같다. 난생처음 우승한 기분이다.
- 선수라며 누구나 우승을 꿈꾼다. 지난 10년 동안 우승 갈증을 어떻게 견뎠나.
△ 물론 우승을 꿈꿨다. 하지만 조급한 마음은 없었다. 지난 10년 동안 좋은 성적도 못 냈고 기복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을 위로했다. 투어에 올라오고 싶어도 못하는 선수들도 있는데 나는 투어에서 계속 버티고 있고 우승 한 번이라도 해봤던 것 아니냐며… 나는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고, 얼마나 행복하냐로 생각했다.
- 10년 동안 시련도 적지 않았는데.
△ 시련이라 내세울 건 없다. 그 당시 죽을 만큼 힘들다고 생각했던 게 지금 보면 누구나 다 겪는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조금만 참으면 될 것이었는데 힘들다고 그랬던 거다.
- 주부, 엄마의 역할을 하면서 투어를 뛰고 있는데 힘들지 않은가.
△ 직장 다니는 엄마들은 다 힘들지 않나. 나라고 다르지 않다. 나는 다행히 남편과 시부모님이 선수 생활을 하라고 적극적으로 밀어주니 큰 어려움은 없다. 결혼했다고 일을 그만두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혼한 여자도 자기 일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존감도 높아지고…내가 집에서 살림만 한다면 바가지나 긁지 않겠나. 하하.
- 시상식 때 어머니, 남편, 아들이 모두 참석했다. 이번 우승 역시 가족의 힘인가?
△ 가족을 보면 나도 모르게 힘이 되는 건 사실이다. 내가 열심히 사는 이유다.
남편에게도 뒤처지거나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고, 아들에게도 늘 멋진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열심히 살게 된다.
- 엄마로서 가장 힘들 때는 언제인가.
△ 아들이 손을 잡으며 나가지 말라고 할 때다. 다녀올 때 로봇 장난감 사준다고 설득하곤 하지만 요즘은 그것도 잘 안 먹힌다. 그럴 때면 그만둬야 하나 생각이 든다. 하지만 생각뿐이다. 현실은 다르니까. 직장 다니는 엄마들의 공통된 고민 아닐까. 아들에 늘 미안하다.
- 프로 골프 선수는 월요일이 휴식일이다.
△ 월요일이 더 바쁘다. 가정이 있고 엄마니까 감수해야 하지 않겠나.
- 언제까지 투어 선수로 뛸 생각인가?
△ 몸 관리를 잘해 체력이 뒷받침되고 시드를 유지할 수 있다면 미국의 줄리 잉스터처럼 오래도록 선수로 뛰고 싶다.
- 이번 우승이 후배 선수들에게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에도 선수로 뛸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한다.
△ 그렇게 생각해주면 좋겠다. 저마다 사정이 다 다르니까 무작정 권하기는 그렇지만 집에서 도와준다면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용기를 내라고 말해주고 싶다.
- 오로지 운동에만 매달리는 `다 걸기`식 선수 생활을 하는 후배들이 많다.
△ 나는 프로 초년병 때부터 대회가 없으면 여행을 다니거나 하면서 나 자신만의 시간을 즐겼다. 버릇이 되어서인지 결혼 생활과 투어를 병행할 수 있는 것 같다.
요즘은 오로지 연습에만 매달리지 않고 시간 나면 영화를 보거나 맛집을 찾아다니는 후배들도 많더라. 삶의 균형을 찾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 투어에서 성적보다는 외모 꾸미기에 몰두하는 선수가 있다고 한다.
△ 오해라고 생각한다. 정말 다들 열심히 하는 선수들이다. 정말 모르시는 얘기다. 그렇게 비치는 건 동의할 수 없다. 꾸미고 싶은 건 여자의 마음이지만 그것 때문에 훈련을 소홀히 하는 선수는 없다.
- 본인은 어떤가.
△ 꾸밀 시간에 잠이나 더 자겠다. 하하. 대회 나갈 때는 그래도 얼굴 화장은 한다.
- 투어 선수 중에 가장 나이도 많으니 후배 선수들에게 잔소리도 좀 하는 편인가.
△ 많이 한다. 제일 많이 했던 잔소리는 쓰레기 아무 데나 버리지 말라는 얘기였던 것 같다.
- 선수들의 권익 보호에 앞장서는 협회 선수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다. 투어에 가장 바라는 것은 뭔가.
△ 지금 가장 큰 현안은 경기 시간이다. 경기 시작 시간이 너무 늦다. 하지만 협회뿐 아니라 중계 방송사와 스폰서 등 많은 당사자가 있으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사안이다.
- 선수로서 목표나 꿈이 있다면.
△ 우승 많이 하고 그런 것보다는 잊히지 않는 선수가 되고 싶다. 한국 여자골프 역사를 되돌아봤을 때 한 문장이라도 내 이름을 남기고 싶다.
- 그렇다면 인생의 목표는 뭔가.
△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 뭔가 목표를 딱 정하기보다는 우리 가족 모두가 하루하루 건강하게 행복하게 지내는 걸 바란다. 무병장수? 하하. 나중에 인생의 목표를 정하면 말씀드리겠다.
- 우승하고 나서 매스컴을 통해 가장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다. 이 세상 모든 워킹맘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