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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문수봉을 오르고 문수봉에서 배부르다

내연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 코스다. 그중에 많은 사람들이 오르는 길은 보경사를 지나 오르는 문수봉까지다. 기념사진을 찍고 삼지봉까지 돌아 은폭포, 연산폭포, 관음폭포의 웅장한 물소리에 귀가 먹먹하게 내려오다 상생폭포에서 잠시 쉬다 보경사로 회귀한다. 이른 아침 김밥 한 줄 먹고 올라갔으니 대부분 사람이 식당으로 향한다. 보경사로 향하는 길 양쪽에 식당은 어느 집에 들어가도, 등산객은 실망하지 않는다. 오래 그 자리를 지키며 쌓은 솜씨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은 등산 코스 중에 제일 먼저 만나는 ‘문수봉’을 간판으로 내세운 곳을 좋아한다. 가게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늙은 호박이 반긴다. 달걀판을 방석 삼아 잘 익은 호박을 돌담처럼 쌓아 창가에, 방에, 야외테이블에도 호박이 올라앉았다. 호박 사이에 밍크 담요가 있어서 자세히 보니 고양이들 잠자리였다. 날이 추워지니 야외테이블 둘레에 비닐로 둘러놓은 탓에 바깥과 달리 따듯했다. 세 마리 고양이가 서로 온기를 나누고 있었다. 호박 밑에 밥과 물그릇이 보였다. 오래전부터 문수봉가든은 유기견 유기묘를 보살피는 곳이라 소문이 난 곳이다. ‘어서 오세요’ 하며 마중 나온 사장님 손에 호박전 반죽이 묻었다. 더덕 정식 2인분을 시키고 방에 들어와 자리 잡았다. 미리 온 단체 손님이 있으니 좀 기다려야 한다고 미리 귀띔해 줘서 뜨듯한 방에 엉덩이 지지며 기다렸다. 단체 손님들의 박수 소리 웃음소리가 우리 방으로 넘어왔다. 5분 후, 손두부가 먼저 나왔다. 함께 싸 먹으라고 김치와 나물도 나란히 내려놓고 가위를 쥐여 준다. 손으로 찢어 먹어야 맛있는 김치지만 오늘은 귀차니즘으로 가위로 잘라 먹었다. 앞접시에 젓가락으로 두부를 스윽 잘라 담고 그 위에 김치를 얹어 먹으니 구수한 손두부의 맛이 최상이었다. 사이사이 나물로 리셋해 주다 보니 호박전이 나왔다. 호박전을 보면 스물여섯에 결혼해 주말마다 시댁에 다니러 갔을 때가 떠오른다. 처음 임무가 들에 나가시며 어머님이 큰 호박 한 덩이와 식칼, 그리고 귀퉁이가 닳은 놋숟가락 하나를 주시며 호박전을 구우라 했다. 할 줄도 모르면서 어떻게 되겠지 했던 철없는 며느리는 단단한 호박에 칼끝을 넣지도 못해 속상해 눈물이 앞섰다. 낮잠 자는 신랑을 불러 반으로 잘라 달라 하고서는 놋숟가락으로 단단한 호박을 긁으며 한 시간을 씨름해도 반도 못 긁었다. 또 눈물이 찔끔. 어찌어찌 찹쌀가루와 밀가루 넣고 소금 설탕으로 간을 하니 양이 ‘다라이’ 한가득이었다. 전기 프라이팬에 두어 시간 기름 냄새를 맡으며 구웠다. 농사일 바쁘신 시어머님은 그렇게 구워서 식힌 호박전을 차곡차곡 찬합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고 두어 장씩 새참으로 드셨다. 겨울에서 봄까지 안방 윗목에 자리 잡은 누런 호박이 자취를 감출 때까지 호박전을 구웠고, 나는 호박전이 싫어졌다. 특히 호박전은 남이 구운 게 제일 맛있다. 문수봉 사장님 솜씨가 그중 제일이다. 더덕 정식이 나오기 전에 우린 이미 배가 부르다. 그래도 주인공인 더덕구이와 함께 15첩 상이 차려져 입이 떡 벌어진다. 거기다 금방 구운 노릇한 가자미와 게가 들어간 된장찌개가 어서 먹으라고 보글보글 부추긴다. 평소 생선은 집에서 구우면 냄새가 나니 외식할 때 먹어야 제맛, 가자미 한 마리씩 앞으로 당겨 하모니카를 분다. 된장찌개 하나만 있어도 밥 한 그릇 뚝딱할 수 있을 맛이다. 배가 불러 남겨도 걱정하지 마시라. 주인장이 미리 알고 싸가라고 일회용 비닐팩을 주신다. 도토리무침과 백숙도 맛있다. 백숙은 예약해야 맛볼 수 있다. 문수봉가든: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로 471, (054) 262 9982. /김순희 시민기자

2025-12-16

분천역 산타마을 축제 즐겨볼까요?

열두 달 달력이 달랑 한 장 남은 차가운 겨울이다. 날씨가 추워져 몸을 움츠리기에 십상인 12월. 그러나 겨울에 접어들면서 더욱 활기를 띠는 곳이 있다. 봉화군 분천역 산타마을은 축제로 이어질 눈 내리는 겨울이 다가오면서 다시 정비하고, 색칠하고 손님맞이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겨울의 진객은 뭐니 뭐니 해도 하얗게 눈 내린 설경. 설경 속에 펼쳐질 분천역 산타마을 축제가 20일부터 2026년 2월 15일까지 58일간 열릴 예정이다. 동화 속 분천역 산타마을은 대표 겨울 여행지로 자리 잡았다. 이곳은 봉화군 소천면 깊은 산골의 간이역을 중심으로 마을 전체가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단장한 곳이다. 빨간색 지붕, 수백 개의 산타 조형물, 크리스마스 장식이 북유럽 못지않다. 경북도와 봉화군, 코레일의 협력사업으로 시작한 분천역 산타마을은 백두대간협곡열차로 명소가 되었고,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은 그야말로 동화 속 마을로 아이들에게는 꿈의 왕국으로, 어른들에게는 동심으로 돌아가는 공간으로 다가오는 곳이다. 감성의 겨울 나들이를 떠날 수 있는 곳으로 동심과 추억을 만들어 주고, 연인과의 낭만적인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조성된다. 분천역 산타마을은 각종 포토존과 놀이시설 등 마을 전체가 한겨울 감성과 콘텐츠가 어우러진다. 기본시설 외에도 새롭게 조성된 겨울왕국 산타 스튜디오, 테마형 관광지로 확장하기 위해 사계절 썰매장, 미니 기차, 슬라이드 등 다양한 체험형 시설들을 조성했다. 분천역 일대 산타 전망대와 친환경 숙박시설, 어린이 종합놀이 공간, 리틀 포레스트 봉뜨락 등도 조성해 새롭게 태어났다. 백두대간협곡열차는 분천역에서 양원역을 거쳐 승부역을 지나 철암역에 이르는 27.7㎞ 구간이다. 12월 찬바람이 쌀쌀하게 목덜미를 파고들고 코끝이 맵싸한 날씨에 난로가 빨갛게 달아오르는 객차에서 정겹게 다가오는 산골 풍경을 보는 건 겨울 낭만의 백미다. 한 해의 마지막. 낭만적인 여행을 하고 싶다면 느릿느릿 달리는 기차를 타고 겹겹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천역과 아담하게 자리 잡은 산타마을로 가보자. 역사 앞과 마을은 계절과 관계없이 온통 크리스마스 분위기다. 백두대간 협곡의 풍경은 웅장하고 경이롭다. 자연이 빚어낸 걸작들이 인상적이다. 철길과 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이야기가 들릴 듯하다. 설경과 잘 어울리는 계곡을 끼고 앉은 산골 집이 정겹고, 황량한 겨울의 삭막함과 포근함이 함께 공존한다. 눈이 내리면 순백의 비경에 등이 굽고 휘어진 소나무, 여기저기 삐죽삐죽 드러나 보이는 기암괴석들의 자태가 절경이다. 오는 20일부터 58일간 펼쳐지는 분천역 산타마을 축제는 함께 웃으며 추억을 만들고, 가족과 연인들이 공유하고 나누는 겨울 축제다. 이번 겨울은 더욱 풍성하게 조성된 봉화 분천역 산타마을에서 순수한 동심으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보면 좋을 것 같다. /류중천 시민기자

2025-12-16

자원봉사자‧ 후원자 송년 감사의 날 행사 성료

달서구노인종합복지관(관장 김진홍)은 지난 11일 복지관 대강당에서 200여명이 봉사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2025 자원봉사자 ‧후원자 송년 감사의 날’ 행사를 개최했다. 본 행사는 한 해 동안 복지관의 어르신 복지증진을 위해 봉사하고 후원해 준 지역주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공헌을 기리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에 참석한 이태훈 대구 달서구청장은 “우리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묵묵히 헌신해 오신 모든 자원봉사자와 후원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인사를 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지난 20년간 복지관을 위해 꾸준히 나눔을 실천해주신 28개 개인 및 단체에 대한 유공자 표창으로 달서구청장상, 달서구의회 의장상, 달서구노인종합복지관 관장상이 시상됐다. 또 달서구청에서는 복지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사회복지법인 가정복지회 대표이사에게 감사패를 수여했다. 극단 ‘늘해랑’의 초청공연을 관람한 참석자들은 한해를 되돌아보며 각종 소회를 나누며 송년의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다. 김진홍 달서구노인종합복지관장은 “올 한 해 어르신 복지를 위해 힘써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복지관이 되겠다”라고 했다. 유병길 기자

2025-12-15

대구문인협회 병술년 개띠 모임 ‘몽돌회’ 문학 발표회

세월은 참 묘한 조각가다. 사람을 다듬는 도구는 고운 손길이 아니라 바람과 파도, 그리고 생활의 부딪힘이다. 그렇게 깎이고 부딪히며 생긴 모서리들은 어느새 둥글어지고, 그 둥근 얼굴들이 서로를 마주할 때 비로소 따뜻한 온기가 피어난다. 대구문인협회 병술년 개띠 모임 ‘몽돌회’의 풍경은 바로 그 세월이 빚은 둥근 광채에서 비롯된다. 지난 10일, 대명동 물배기 한정식. 한 해를 매듭짓는 12월, 팔순을 맞은 문인들이 저마다 한 편의 시와 수필을 품고 한자리에 모였다. 오래된 벗들의 눈빛이 오가고 웃음이 번질 때마다 식당은 작은 문학관으로 변했다. 이날 열린 ‘팔순 기념 문학 발표회’는 단순한 연례 행사가 아니라, 서로의 세월을 확인하고 문학으로 다시 잇는 의식에 가까웠다. 몽돌회는 “팔순을 앞두고 한 번 더 둥글어지자”는 뜻으로 결성된 동갑내기 문인 모임이다. 이름 또한 상징적이다. 몽돌은 수천 번 파도에 부딪히며 모난 흔적을 지우고, 마침내 손바닥에 포근히 안기는 둥근 돌이 된다. 문인들의 삶 또한 그러했다. 각자의 풍파는 달랐지만, 세월이 남긴 결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2015년 결성된 몽돌회는 시인 11명과 수필가 5명으로 구성되었으며, 교수·의사·출판인·전직 교장과 군수 등 다양한 이력을 지닌 이들이 함께하고 있다. 창립 멤버였던 고 박방희 시인의 별세로 현재는 15명이 활동 중이다. 한때는 날카롭게 빛나던 경력들이 이제는 오히려 둥근 문학적 감수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발표회는 시작부터 웃음이 넘쳤다. “나이보다 발음이 먼저 떨리면 어쩌나”라는 농담에 방 안 가득 웃음이 퍼졌지만, 작품 앞에서는 누구보다 진지했다. 팔순이라는 숫자가 이들의 글맛을 흐리게 하지는 못했다. 첫 낭독은 전 청도군수 출신 황인동 시인이 맡았다. 자작시 ‘휙’에서 그는 “나와 노을 사이로 KTX가 휙 지나간다, 맞다 저놈이 세월이다”라고 읊었다. 짧은 문장은 오래도록 방 안에 머물며 모두의 마음에 같은 표정을 남겼다. 박창기 시인은 고인이 된 아내의 1주기를 맞아 쓴 ‘돌아가는 길’을 낭독했다. “더 사랑하지 못한 것까지 미워해달라”는 구절에서는 깊은 침묵이 흘렀다. 문학이 상처를 어루만질 때 비로소 위로가 태어난다는 사실을 실감케 한 순간이었다. 이어 손동락 시인의 ‘무너진 사랑 탑’, 손진실 시인의 ‘백장미’, 김숙희 시인의 ‘세월 속에서’가 차례로 발표되며, 각자의 기억과 감정이 저마다의 온도로 청중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이종열 시인은 ‘문학으로 맺은 인연’을 통해 “어색했던 만남도 시로 꿰매다 보니 따뜻한 옷이 되었다”고 말해 공감을 얻었다. 유가형 시인은 칠곡 팔거천의 고요한 풍경을 시로 풀어냈고, 정재숙 시인의 ‘물방울 하나’는 섬세한 관찰의 힘을 보여주었다. 이동민 수필가는 “수필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소신으로 곳곳에 웃음을 보탰다. 가장 큰 공감을 얻은 작품은 남명희 시인의 ‘몽돌회’였다. “세찬 파도에 모서리 잃어 둥글게 어우러진 몽돌 세상 풍파 넘어온 팔순 시인들 구순까지 동글동글 살다가 봄밤에 꽃지듯 떠나자” 낭송이 끝나자 “꽃 지기 전까지 회비는 정확히 내자”는 농담이 터져 웃음바다가 되었다. 몽돌회의 웃음은 언제나 젊었다. 몽돌회를 든든히 지탱하는 두 축은 황인동 시인과 방종현 수필가다. 사회와 연주, 분위기 메이킹까지 맡지 않는 역할이 없을 만큼 활약하며, 두 사람 모두 대구예술상 수상 경력을 지녀 모임의 예술적 깊이를 더하고 있다. 같은 해에 태어난 인연, 문학으로 이어진 인연, 팔순까지 글로 마음을 나누는 인연은 흔치 않다. 이날 확인된 진실은 분명했다. 문학은 삶을 둥글게 만드는 힘이며, 우정을 오래 지속하게 하는 기술이라는 사실이다. 행사 말미, 누군가 조용히 말했다. “세월이 우리를 이렇게 둥글게 만들었으니, 구순 때는 더 빛나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팔순 문인들이 맞잡은 손은 그렇게 구순의 문턱을 향해 또 하나의 약속을 건넸다. 한편, 이날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한 허수연.허홍구·이은재 시인과 최진근·노덕경 수필가의 빈자리는 아쉬움으로 남았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5-12-15

[시민기자] 제39회 상화시인상, 안희연 시인에게

제39회 상화시인상 시상식이 11일 오후 영남일보 대강당에서 성대히 거행됐다. 이번 시상식은 이상화기념사업회와 영남일보, 죽순문학회의 공동 주최·주관으로 열렸으며, 대구광역시와 대구문화예술진흥회가 후원했다. 장두영 이상화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민족정신과 시 정신의 회복을 이끌어온 상화 시인의 뜻을 기리며, 시문학의 순수성과 저항 정신을 계승해 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상화 시인은 일제강점기라는 암흑의 시대 속에서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통해 상실과 희망을 동시에 노래한 민족시의 등불이다. 그의 시 세계는 슬픔과 의지, 절망과 저항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민족의 혼을 시로 승화시킨 저항의 미학 그 자체로 오늘도 읽히고 있다. 심사위원 오정국 시인은 심사평을 통해 “본심에서는 총 다섯 권의 시집을 두고 오랜 토론이 이어졌다”며 “현실과 꿈, 기억과 고통을 교차시키며 치유의 언어로 길어 올린 안희연 시인의 시집 『당근밭 걷기』가 슬픔을 사랑과 연대로 전환 시키는 힘을 지녔다”는 평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어 장두영 이사장이 안희연 시인에게 상패와 상금 2000만 원을 수여했다. 수상소감에서 안희연 시인은 “상화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빼앗긴 들 속에서도 봄을 되찾으려는 정신의 불씨를 느낀다” 며 “시의 이름으로 사랑의 들불을 일으킬 결심으로 다시금 찰흙 같은 언어를 빚겠다” 고 말했다. 그녀의 진중한 언어에는 시인으로서의 고독과 신념,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이 스며 있었다. 이어진 낭송 무대에서는 글로벌낭송가협회 박영선 회장이 수상작 대표 시 ‘당근밭 걷기’를 차분하고 울림 있는 낭송으로 선보였다. 이경숙 열린시 낭송가협회 회장은 이상화의 시를 낭송하며 상화의 정신을 되새겼다. 이수함의 상화 시 노래, 김단희의 민요, 곽나연의 한국무용, 이은경 소프라노의 ‘금강산’, 신현욱 테너의 ‘오 나의 태양’ 등 다채로운 공연이 이어져 문학과 예술이 어우러진 감동의 무대를 완성했다. 올해로 39회를 맞은 상화 시인상은 단순한 문학상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시대를 살아내는 시인의 양심과 언어의 힘을 되새기며, 우리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망하는 문화적 제의(祭儀)이다. 이상화의 이름으로 다시 타오른 이번 시상식은, 문학이야말로 상처 입은 시대의 영혼을 치유하는 불빛임을 조용히 일깨워주었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5-12-15

[시민기자]세계가 즐기는 김치, 김장은 하셨나요?

김치는 삼국시대부터 먹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 김치의 최초 기록은 고려시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등장하는 “무 장아찌 여름철에 먹기 좋고, 소금에 절인 순무 겨울 내내 반찬 되네”라는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 전기 까지 김치는 각종 채소류를 소금에 절인 정도였고, 임진왜란 이후 고추가 들어오면서, 고춧가루를 본격적으로 사용했다. 18세기 중반에 발간된 ‘증보산림경제’에는 잎줄기가 달린 무에 청각채, 호박, 가지 등의 채소와 고추 등의 향신료를 섞고 마늘즙을 넣은 총각 김치의 기록이 있다. 김치는 우리 음식 문화로 전 세계에 인정받아 2013년 유네스코가 가족과 이웃이 함께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한국의 김장문화’를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했다. 이는 한국의 김치가 단순한 음식을 넘어 우리 민족의 전통과 의식을 담고 있는 무형문화임을 인정한 것이다. 또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는 2013년‘kimchi cabbage’를 ‘김치용 배추’의 정식 영문 명칭으로 인정했다. 이는 우리나라가 김치의 종주국이라는 사실을 국제적으로 인증한 것이다. 배추김치를 담글 때는 주재료인 배추를 잘 골라야 하는데, 좋은 배추를 고를 때는 60, 80, 90의 숫자를 기억하면 좋다. 김장용 가을배추는 최소 60일에서 최대 90일 기른 배추로 속은 80% 정도 찬 것이 가장 맛있다. 속이 100% 꽉 찬 배추는 소금에 절이기도 힘들고 양념이 밸 틈이 없어 맛이 덜하다. 또 배춧잎은 얇고 부드러운 것, 잎끝이 서로 겹치지 않으면서, 반으로 잘랐을 때 노란빛을 띠고 씹으면 고소하고 달콤한 맛이 있으면 좋은 배추다. 김치를 담글 때 배추를 골랐으면 무, 고춧가루, 마늘, 젓갈 등 양념을 준비해야 하는데 집집마다 김치 맛이 다른 건 양념의 종류와 차이 때문이다. 김치 맛이 다른 가장 큰 비밀은 젓갈이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젓갈에 따라 김치를 숙성시키는 아미노산의 함량에 따라 김치의 감칠맛이 다르다고 한다. 또 젓갈이 김치 발효를 조절하는 효소인 알파-아밀라아제를 활성시켜 준다고 한다. 새우젓, 멸치젓, 액젓(멸치, 까나리 등), 황석어젓, 갈치속젓 등 젓갈의 종류에 따라 익는 정도와 맛의 깊이는 다르다. 김치를 오래 보관하려면 예전에 단독주택에서는 김장독을 땅에 묻어 보관했지만 1984년 국내 가전사에서 세계 최초의 김치냉장고가 보급되면서 지금은 집집마다 김치냉장고에 보관해 두고 먹는다. 우리의 김치가 해마다 해외로 수출이 증가 하고 있는데, 일본의 기무치, 중국의 침채들은 수출되지 않는다. 우리 김치는 미주, 유럽, 아프리카 등 50여 국가에 수출한다. 북미와 유럽식품 안전신뢰도 표준을 맞추고, 또 그들의 기호에 맞게 양배추, 케일, 당근, 등을 활용한 김치를 수출하기도 한다.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김치의 전통 맛이 퇴색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안영선 시민기자

2025-12-15

문장작가회, 정기총회 및 ‘문장작가 15호’ 출판기념식

문장작가회(회장 이병욱)는 지난 5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그랜드호텔에서 2025년 정기총회와 계간지 『문장』 제15호 출판기념식을 성대하게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계간 『문장』을 통해 등단한 지역 문인들이 한 해의 문학적 성과를 공유하고, 향후 활동 방향을 논의하는 뜻깊은 자리로 마련되었다. 계간 『문장』은 이상화·이태준·정지용 선생으로 이어지는 민족문학의 정통성과 정신을 계승하는 문예지로 평가받는다. 문장작가회는 이러한 전통을 기반으로 지역 문학의 저변을 넓히고, 신진 작가 발굴과 다양한 창작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문학계를 비롯한 지역 문화예술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내빈으로는 ▲한국문인협회 장호병 부이사장 ▲수필과지성 은종일 원장 ▲곽명옥·여남희 전 회장 등 역대 회장단 ▲ 3선 국회의원 박헌기 회원 ▲대구문인협회 방종현 부회장을 비롯해 100여 명의 문인들이 함께해 풍성한 문학 축제가 됐다. 정기총회에서는 지난 한 해 동안의 사업 보고와 더불어 2025년 주요 활동 계획이 발표되었다. 특히 ‘문장작가 15호’ 출판을 계기로 창작 활성화, 문학 강연 확대, 타 지역 문학 단체와의 교류 강화 등 다양한 추진 과제가 제시되며 회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병욱 회장은 인사말에서 “문장은 오랜 민족 문학의 흐름을 이어온 의미 깊은 문예지”라며 “앞으로도 문장작가회가 지역 문학의 중심축으로서 건전한 문학 생태계를 조성하고, 창작의 기쁨을 나누는 공동체로 이어가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출판기념식에서는 이번 호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 소개와 집필 과정이 공유되었으며, 참석자들은 서로의 창작 세계를 나누며 문학적 교감을 깊이했다. 행사는 기념촬영과 친교의 시간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병욱 시민기자

2025-12-14

대경하모니카 아카데미클럽, 가족사랑 음악회

(사)대경하모니카 아카데미클럽(대표 이영자)은 2025년 매듭달 13일 경산시립박물관 대강당에서 제15주년 기념 ‘가족사랑 음악회’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회원과 가족, 지역 시민 등 500여 명이 참석해 하모니카 선율 속에서 가족의 의미와 이웃 간 정을 나누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음악회에 앞서 이영자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지나 다시 한해를 돌아보니 반가운 얼굴들이 한자리에 모여 더욱 든든하다”며 “바쁜 일상 속에서도 열정을 잃지 않고 하모니카로 서로에게 활력과 기쁨을 나눠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만큼은 하모니카 사랑으로 함께 웃고 즐기며 감사의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1부 공연은 대경하모니카 아카데미클럽 강사회가 여는 시작 연주로 막을 올렸다. 이영자 대표가 출강하는 20여 개 팀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선보였으며, 친숙한 가요와 추억의 명곡들이 이어지자 객석에서는 자연스럽게 노랫소리와 박수가 어우러졌다. 관객들은 연주자들과 하나가 되어 음악회를 함께 만들어가며 공연장의 분위기를 한층 따뜻하게 달궜다. 2부에서는 김대현 단장이 이끄는 앙상블 공연과 이종준 회장이 이끄는 비네타반 등 각 팀의 개성 있는 무대가 이어졌다. 섬세한 합주와 조화로운 음색은 하모니카의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며 큰 호응을 얻었다. 한편 이영자 대표는 하모니카 대중화와 지역 문화 활성화를 위해 꾸준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18년 사문진 나루터에서 열린 ‘100대 피아노 연주 행사’에서는 100명의 하모니카 연주를 지휘해 주목을 받았으며, 2025년에는 남매지못 공연장에서 100인의 하모니카 버스킹 공연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등 대규모 기획 공연을 통해 하모니카 인구의 저변 확대에 힘써왔다. 이영자 대표는 “이번 음악회가 가족 간 사랑과 화합을 다시금 확인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대경하모니카 아카데미클럽은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다양한 문화 활동을 통해 음악으로 소통하고 나눔을 실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방종현 시민기자 (사)대경하모니카 아카데미클럽 사무실 010-2807-0885(원장 이영자)

2025-12-14

대경시민언론위원회, 정기총회 개최

대경시민언론위원회(위원장 석종출)는 지난 12일 오후 진석타워에서 신문 기사 작성법 교육과 정기총회를 겸한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위원 및 관계자 등 50여 명이 참석해 시민 언론인의 역할과 향후 활동 방향을 공유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대경 시민 언론위원회는 2017년 (사)대경언론인협회 부설 언론 아카데미 수료생을 중심으로 구성된 단체로, 언론의 공공성과 책임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시민들이 활동하고 있다. 정기총회에 앞서 방종현 위원의 신문 기사 작성법 강의가 진행됐다. 방 위원은 “사건이나 보도문을 작성할 때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의 육하원칙을 충실히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바탕으로 글을 쓰면 객관성과 정확성을 높일 수 있고, 독자 또한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행사 취재, 인물 인터뷰, 지역 소식, 시니어 동호회 소개, 생활 정보 기사 등 다양한 유형의 간단한 기사 예문을 소개하며 실무 중심의 설명을 덧붙였다. 참석자들은 직접 짧은 기사를 작성해 발표하는 시간도 가지며 현장감을 높였다. 이후 설준원 부회장의 사회로 정기총회가 열렸다. 석종출 위원장은 경과보고와 인사말을 통해 “현재는 50여 명이 함께하고 있지만, 앞으로 100여 명 이상으로 확대해 내년에는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추진해 나가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선완 대구·경북 언론인협회 부회장은 축사를 통해 “기자는 글로 말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성명 발표 등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 지역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며 “대경뉴스를 비롯해 블로그와 유튜브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시민 언론위원회가 힘과 자신감을 가지고 새해를 열어가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이어진 임원 개편에서는 방종현 위원이 제2기 대경시민언론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또한 1기부터 7기까지 기수별로 회원들이 단상에 올라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며 세대와 기수를 아우르는 연대의 의미를 되새겼다. 유병길 시민기자

2025-12-14

[시민기자 단상]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

최근 한국 정치에서 사법부와 입법부, 행정부 간의 갈등이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다. 국회는 사법개혁을 명분으로 법원 조직 개편이나 검찰 권한 조정에 나서고, 행정부는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사법부 판결이나 재판 운영에 의견을 표출하는 일이 늘었다. 반대로 사법부는 국회 입법의 위헌성을 판단하고, 행정부의 결정에 제동을 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삼권분립의 원래 의미와 사법부 독립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삼권분립은 국가 권력을 입법·행정·사법으로 나누어 서로 견제하게 함으로써 권력 집중을 막고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려는 제도이다. 한 기관의 권한이 다른 기관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세 권력이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삼권분립의 본래 목적이다. 사법부가 정치권력이나 여론 압력으로부터 자유롭고, 법관이 오로지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재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사법부의 독립이다. 이 원칙이 무너지면 시민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잃고, 권력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끌어낼 수 있다. 한국처럼 정치적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기 쉬운 환경에서는 사법부 독립이 매우 중요하다. 사법부 독립은 ‘모든 영향으로부터의 완전한 고립’이 아니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사법부는 헌정 질서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지만 동시에 민주적 통제의 대상이기도 하다. 일부 법관 임명 절차에 국회와 행정부가 참여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참여가 헌법이 정한 절차적 한계를 넘어 정치적 압박이나 재판 간섭으로 변질이 되면 위험하다. 사법부 독립의 진정한 의미는 사법부가 정치의 하위 기관으로 전락하지 않는 것, 그리고 정치권은 사법적 판단을 존중하되 사법부가 본질을 벗어난 영역으로 넘어갈 때는 헌법적 논의로 제어한다는 균형에 있다.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세 기관 모두 헌법이 정한 권한의 경계에 대한 합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입법부는 때때로 다수결을 명분으로 사법부 판단을 견제하려 하고, 행정부는 대통령 권한을 이유로 사법부 판결에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반면 사법부는 정치적 사안에 판결을 내릴 때마다 ‘정치 사법화’ 논쟁에 휘말린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상대 기관을 향해 ‘월권’과 ‘독재’를 주장하며 비난을 쏟아내는 정쟁이 아니다. 사법부가 독립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할 뿐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의 한계를 자각해야 한다. 입법부와 행정부 또한 사법부를 향한 비판이 헌법적 논의를 벗어나 정치적 목적에 기울어지지 않도록 자제해야 한다. 삼권분립의 궁극적 목적은 어느 기관이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되지 않는 국가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석종출 시민기자

2025-12-14

2025년 대구미술인 날 수상자 시상식

(사)대구 미술협회(회장 노인식)는 9일 대구문화예술회관 1층 중정 홀에서 ‘2025 대구미술인의 날’ 시상식을 열고 한 해 동안 지역 미술 발전에 이바지한 작가들에게 상을 수여했다. 행사에는 내·외 귀빈과 수상자, 지역 작가 등이 대거 참석해 뜻깊은 자리를 함께했다. 노인식 회장은 인사말에서 “수상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대구 아트페스티벌을 소개해 드리면 올해로 15회가 됩니다. 작가, 회원 중심으로 운영되며, 대구 미술의 힘은 작가 한 분 한 분의 열정에서 나온다.”라며 “앞으로도 지역 미술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협회가 든든한 동반자가 되겠다”라고 밝혔다. 이어 대구시 문화정책과장과 대구 예총 회장이 “창작의 열정으로 도시의 문화적 품격을 높여 온 미술인들께 깊은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라고 축하를 건넸다. ■ 수상자 명단 □ 베스트 작가상(대구미협 회장상) 김대일(서예 문인화), 소선영(서양화), 윤원의(서예 문인화), 이주용(서예 문인화), 임순득(한국화), 허재 원(서양화), □ 올해의 작가상(대구미협 회장상) 강석원(서양화), 김태곤(미술행정), 남명옥(설치미술), 옥지난(수채화), 이상기(전통공예), 정경희(서양화), 정삼이(서양화), 조경희(서양화), 조정이(입체미술), 최준영(공예), 하종국(서양화), 홍경표(입체미술) □ 미술문화상(대구예총 회장상) 김성향(서양화), 민영보(서예 문인화), 이동양(서예 문인화), 이원부(공예), 이일남(서양화), 이태형(서양 화), 정연한(서예 문인화), □ 자랑스런 미술인 공로상(대구미협 회장상) 김일해(한국현대미술가협회 회장) , 주태석(외교통상부 미술자문위원) □ 특별공로상(대구예총 회장상) 변기옥 ㈜삼화여행사 대표, 이재하 ㈜삼보모터스 회장 □ 대구미술인 본상(한국예총 회장상) 민병도(한국화), 민태일(서양화), 정성근(서예 문인화) 유병길 시민기자

2025-12-11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

“저녁에 어떤 사람이 와서 집안 편지를 전했다. 봉투를 뜯지도 않았는데 뼈와 살이 먼저 떨렸다. 마음도 아찔하고 어지러웠다. 겉봉투를 와락 펼쳤더니,(둘째아들)열의 글씨가 보이고 바깥 면에 ’통곡‘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 마음속으로 (막내아들) 면이 전사한 것을 알았다. 나도 모르게 간담이 떨어졌다. 목 놓아 소리 높여 슬피 울부짖었다. 소리 높여 슬피 울부짖었다. 하느님께서는 어찌 이토록 모지신가. 간담이 타고 찢어졌다. 타고 찢어졌다. 불쌍한 내 어린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하룻밤이 일 년 같다. 1597년 10월 14일” 아들의 전사 소식에 슬픔을 누르며 담담히 써 내려간 난중일기. 가슴이 먹먹하고 목이 멘다. 불패의 장군이기 이전에 그도 한 가정의 따뜻한 아버지였다. 이순신 장군 탄신 480주년과 광복 80주년을 기념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을 전시하고 있다. 258건, 369점에 이르는 방대한 사료(史料)는 이순신의 영웅적인 모습과 인간적인 면모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침략자였던 일본 다이묘 가문의 유물까지 전시하며 전쟁을 양측 관점에서 조명한다. 전시는 주요 해전인 명량해전과 노량해전, 백의종군 과정, 조정의 불신과 모함 속에서 겪는 고독과 고통, 그리고 전쟁 이후 후대가 기억해 온 이순신의 재해석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구성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재침(再侵) 조서는 그의 야망이 주는 집요함과 조선을 향한 팽창 의지를 그대로 보여 준다. 모친상, 억울한 백의종군, 전사한 아들의 비보, 조정의 불신과 모함 이 모든 것을 감내하고 있던 이순신에게 히데요시의 재침 소식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는 절박한 경고였다. 다시 참혹한 비극이 시작될지 모른다는 공포와 절망이 조선을 뒤흔들었고, 그 압박과 긴장감을 감당했던 이순신의 활약은 그래서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선조의 오해와 사형선고는 그 억울함과 허무함이 상상 이상이다. 나라로부터 버림받았던 그 순간에도 그는 나라의 운명을 걱정했고, 모친상을 당하고도 나라가 위태롭다는 이유 하나로 백의종군한다. 그는 천재적인 전략가라기보다 군사와 백성을 끔찍이도 챙겼던 철저한 준비형 리더였으며 ‘불패의 영웅’이 감당해야 했던 좌천, 모함, 고독, 고통, 책임감 그리고 여리고 감성적이었던 정서까지 고스란히 담긴 난중일기에는 사람 냄새가 난다. 거칠고 다급한 필체는 끝없이 흔들리고도 무너지지 않으려는 그의 마음을 드러내고, 그 시대 사람들이 겪은 공포와 혼란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을 버텼는지, 전쟁의 긴장감 속에서 흘려 쓴 일기는 그의 거친 숨결까지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일기의 친필본 앞에서니 마치 그와 직접 마주한 듯하다. 전시 전체가 하나의 큰 이야기로 가슴에 와 닿는다. 이순신과 그 시대를 담은 유물과 영상들 한 점 한 점이 그저 경이롭고 숭고하게 느껴진다. 이번 전시는 이순신 만이 아니라 그 시대를 버텨 온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기록이다. 전시장을 나서니, 아무런 두려움 없이 오늘 하루를 내 의지대로 채워가는 이 당연함이 새삼 감사하게 다가온다. 제한된 지면으로 이순신을 온전히 전하기는 애초 무리다. 긴박한 전쟁 속에서도 기록을 남긴 사람, 주어진 권력을 나라와 군사와 백성을 위해 오롯이 쓴 사람, 이순신을 특별전을 통해서 만나보는 그 시간은 결코 아깝지 않을 것이다. 특별전은 2026년 3월3일까지 열리며 관람료는 성인기준 5000원이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5-12-11

허상으로 살아가는 시대의 초상··· 연극 ‘그들의 기억법’

지난 12월 5일 밤, 오랜만에 공연 관람을 했다. 장소는 대구봉산문화회관. 3일부터 무대에 오른 극단 나무태랑의 포럼연극 ‘그들의 기억법’이었다. 갑작스레 지인의 연락을 받고 동행한 자리였지만, 불을 밝히는 순간 나는 예상치 못한 이야기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말았다. 우리가 앉은 자리는 객석 앞줄, 정확히 무대 한가운데와 마주한 자리였다. 솔직히 말하면, “혹여 공연 중 무대 위로 이끌려 가는 건 아닐까?”라는 우스운 상상을 했다. 하지만 막이 오른 뒤, 우려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무대 위 인물들과 숨소리, 눈빛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다가왔고, 그 긴장감은 첫 장면부터 끝까지 이어졌다. 연극은 병실 장면으로 시작된다. 엄마가 퇴원하고, 딸은 그 소식을 SNS에 올린다. 화면 너머로 드러나는 두 사람의 삶은 단순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엄마의 부재로 할머니 손에 외롭고 사랑 없이 자란 딸. 그 딸은 성장 후 성공했고, 이후에는 엄마가 자신에게 의탁해 생활했다. 딸은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원망을 엄마에게 마구 퍼붓는다. 하지만 엄마를 다그치고 윽박지르는 행동들이 치매를 앓고 있는 엄마를 위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 펼쳐진 장면들 속에서, 극은 놀라운 반전을 연이어 드러낸다. 엄마가 술집에 나가 딸을 돌봤다는 과거. 그리고 엄마가 아니라 딸이 알츠하이머 환자였다는 사실. 더 충격적인 건, 딸이 말했던 직업, 남자친구, 삶으로 포장한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딸은 엄마에 대한 원망과 상실감, 그리고 결핍을 스스로 지어낸 허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결국 엄마는 모든 진실을 알게 되지만, 딸을 지켜주기로 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딸은 SNS에 이렇게 쓴다. “엄마가 자살했다. 나에게 더는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던 엄마.” 그 글 아래로 ‘좋아요’ 수치는 점점 가파르게 치솟고, 딸은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린다. 무대가 끝난 뒤에도, 그 웃음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이 연극은 단순히 가족 드라마를 넘어, 이 시대의 문제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잘 보이지 않는 외로움, 채워지지 않는 사랑, 그리고 타인의 시선에 집착하며 쌓아 올린 허상. 어떤 이들은 허구를 진실로 믿고, 그 속에서 자기를 잃는다. 공연 중 관객 참여도 있었다. 객석의 누군가가 무대 위로 불려 나가는 장면에서, 나 자신이 그 누군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잠시 숨을 죽이고 있었다. 하지만 공연이 끝나고 관객과 후기를 나누는 시간에는 나도 손들어 두서없는 말을 보탰다. 그만큼 반전에 반전을 더한 연극의 설정이 강렬하게 머리에 박혔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요즘 나도-그리고 내 주변도-얼마나 SNS에 매몰되어 있는지 생각했다. ‘좋아요’라는 숫자, 타인의 시선, 인정받고 싶은 마음. 그것이 마치 존재의 증명인 양, 사람들을 허상의 세계로 몰아넣고 있다. ‘그들의 기억법’은 무대 위에서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를 꺼내놓고, 그 속에 숨은 진실과 고통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누구나 한 번쯤 가졌을 가족, 사랑, 상처 ‘그 보이지 않는 흔적’들이 무대 위에서, 너무도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공연이 끝난 후 열린 관객과의 포럼도 인상 깊었다. 무대 위에서 말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객석에서, 그리고 관람 후의 대화 속에서 복기 되고 공유되었다. 때로는, 이렇게 일상의 궤도를 벗어나 연극 한 편, 전시 한 차례를 경험하는 일이 필요하다. 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서 잠시 멈추어, 나의 상처와 기억을 마주하고, 누군가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것. 오늘의 무대가 내게 준 건, 단순한 감동을 넘어 깊은 사유의 시간이었다. /손정희 시민기자

2025-12-11

이 겨울의 깊은 감동 ‘어머니의 시간’

“시어머니 팔촌 소개로 만나도 못하고/ 얼굴도 안 보고 결혼했지/ 결혼식날 처음 본 내 신랑/ 아들딸 육남매 낳아/ 재미있게 잘 살았네/ 알뜰살뜰 모아/ 아파트도 샀지/ 이런 저런 고생하다/ 돌아온 내 고향/ 뭐가 그리 급한지/ 인사도 못하고 떠난 그 사람/ 잘 가소 다시 만나요.” - 김이자(안동시 풍천면 기산리)씨의 시 ‘신랑’ “한글교실에서 키오스크 배워서/ 빵 사먹으러 갔다/ 햄버거랑 쥬스랑/ 아이스크림을 키오스크에서 주문했다/ 손주들이 우리 할머니/ 엠지라 하네···./ 엄지는 또 머꼬?” - 권경자(안동시 풍산읍 수곡리)씨의 시 ‘키오스크’ 올겨울에도 안동시 찾아가는 한글배달교실 문해시화전 ‘어머니의 시간’이 열렸다. 세계물포럼기념센터에서 지난 2일부터 열린 시화전은 안동시 14개 읍면 308명의 어르신이 한 해 동안 갈고 닦은 활동의 결과물을 공유하는 자리다. 직접 쓴 삐뚤삐뚤한 글씨에는 정감이 묻어나고 내용에는 감동이 배어난다. 짧은 시 한 편에는 부모 세대를 봉양하고 자식 세대에 헌신한 노년 ‘어머니들’의 고단한 삶과 더불어 배움에 대한 기쁨이 담겼다. 시어머니 팔촌 소개로 얼굴도 못 보고 만나 결혼해 육 남매 키우고 이제야 살만하니 떠난 신랑을 그리워하고, 만주에서 태어나 열한 살에 안동으로 와 온갖 궂은일 하다 결혼해 칠 남매 키우고 층층시하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던 사연, 키오스크를 배워 음료와 빵을 사 먹는 기쁨을 알게 되고, 사과밭에서 일하다가 수업 시간이 되면 급하게 자전거 페달을 밟아 경로당에 가고, 텃밭 감나무에 달린 홍시를 보며 유난히 떫은 감을 좋아하던 엄마를 그리워하고, 뜨거운 산불에도 살아나 추석 제사에 쓰인 밤나무에 대한 고마움을 노래하고, 나이 구십에 공부를 시작해 자꾸 잊어먹기 일쑤지만 그래도 수업 시간이 기다려진다는 내용 등 모두 굽이굽이 깊은 사연과 서사를 풀어놓았다. 평생을 반추해 풀어놓은 젊은 날의 이야기부터 소소한 일상과 산불의 아픔까지, 한 편의 시에 응축한 어르신들의 삶은 그 자체로 기록이며 지역의 역사이다. ‘찾아가는 한글배달교실’은 안동시와 한국수자원공사, 안동시 평생학습교육지도자협의회가 2014년부터 협약을 통해 읍면 지역 어르신들에게 한글 및 음악, 미술, 공예, 디지털 등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는 맞춤형 평생학습 사업이다. 이번 ‘어머니의 시간’ 시화전은 내년 1월 15일까지 안동댐에 있는 세계물포럼기념센터에서 열리고 이후 1월 16일부터 2월 23일까지 안동역에서 2차 전시를 열어 더 많은 시민이 관람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백소애 시민기자

2025-12-11

제1회 비슬산 일연문학상 시상식

지난 9일 오후 달성군여성문화복지센터 국화홀에서는 문학과 지역문화의 향기를 함께 담은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제1회 비슬산 일연문학상 시상식 및 “달성문학” 제17집 출판기념회가 그것이다. 박정미 사무국장의 사회로 시작된 이날 행사는 신경용 비슬산 일연문학상 운영위원장의 인사말을 비롯해 최재훈 달성군수, 김은영 군의회 의장, 상민 스님, 하청호 대구문학관 관장, 그리고 전 한국예총 대구시연합회 회장의 축사로 이어졌다. 또 대구문인협회 신노우 부회장과 장호병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이 격려사를 전하며 문학인들의 헌신과 노고를 치하했다. 이번 행사는 한국문인협회 달성지부가 주관한 것으로, 올해로 “달성문학” 제17집을 발간한 지부 회장 신경용 시인은 비슬산 일연문학상 제정비를 사비로 쾌척하며 지역 문학 진흥을 위한 결단을 보여 주었다. 그는 발간사에서 “달성문학”은 개인의 사유와 감정을 넘어서 지역 공동체를 풍요롭게 하는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며 “비슬산 일연문학상이 달성군의 문학적 가치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비슬산 일연문학상은 고려 후기의 고승이자 “삼국유사”의 편찬자인 일연 스님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됐다. 일연 스님은 13세기에 불교와 설화, 민속, 신화를 아우른 “삼국유사”를 집필한 인물로서, 유가사에서 수행과 강학을 병행하며 민족문화의 근원을 탐구했다. 달성군 비슬산 자락은 바로 그의 사유와 학문이 꽃피었던 터전이다. 초대 수상자인 오유균 시인은 시집 “플랜B”<시인의 일요일> 로 본상을 수상하였다. 심사위원단은 “언어를 유연하게 다루면서도 내면의 현실적 탐구를 밀도 있게 밀고 나가는 시적 태도가 돋보였다”고 평했다. 오 시인은 수상 소감에서 “시와 함께 걷고 울고 먹고 자며 시를 몸에 붙이고 사는 일, 그것이 열심이라면 그 길 끝에서 죽을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작가상은 신표균 시인에게 돌아갔다. 그의 시 <인간 증명서 외 2편>에서 시는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일상의 틈새 속에서 새롭게 조명하는 시적 통찰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신 시인은 “시작(詩作)의 시작(始作)은 곧 나를 찾는 여정이었다”며 “달성문협과 함께 걸어온 문우들의 따뜻한 손길에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이번 비슬산 일연문학상의 제정은 단순한 시상 행사를 넘어 지역 문학의 자생력과 창조적 확산의 출발점이 되었다. “삼국유사”가 잊힌 이야기를 기록으로 새긴 것처럼, 이 문학상은 지역의 정신을 다시 우리 삶 속에 불러들이는 ‘현대의 전승(傳承)’이라 할 수 있다. 달성의 문학인들이 한 데 모여 17년 동안 이어온 창작의 불씨 위에 새로이 세운 이 문학상은 지역에서 피어난 문화의 씨앗이 어떻게 민족문학의 큰 숲으로 자라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비슬산의 맑은 바람처럼, 달성의 문학은 이제 한층 높고 넓게 울려 퍼지고 있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5-12-10

고(故)민웅기 사진작가 특별기획전을 보고

지난달 25일부터 30일까지 고 민웅기(1952-2025) 대구예술제 특별기획전인 고 민웅기(1952-2025) 사진 작가전이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다. 작가는 사단법인 한국사진작가협회 대구시지회 제34대 회장을 역임하고 건강 악화로 지난 9월 별세했다. 계명문화대학에서 사진 영상학을 전공하고, 2008년 경일대학교 일반대학원 사진영상학과 미술학 석사를 마쳤다. 1996년 처음으로 개인전 ‘소리 없는 대화’ (동아갤러리)를 시작으로 대구예술제 특별전 (대구문화예술회관) 등을 가진 바 있다. 단체전으로는 1995년 영, 호남 사진교류전 “7인의 시각” (여수문화예술회관)과 2025년 ‘KYOTO GRAPHE 2025’ “귀를 기울이면” (시조도리갤러리, 일본) 등 여러차례 가졌고 전시기획으로 1997년 현대사진의 시각 (동아갤러리, 대구), 2024년 사람과 사진 사진전 대구안의 풍경” (대구문화예술회관)등을 가졌다. 1993년 대구광역시문화상(사진부문)을 수상했으며 2024년에는 대한민국 예술문화대상(사진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 유작전을 가지게 된 것은 여러 제자 (민웅기 포토 그라피)들이 힘을 모았고, 옛 흑백 필름을 스캔 받기 위하여 서울로 수차례 오르내린 배원태 선생의 도움이 컸다. 박순국씨(대구사진작가협회 자문위원)는 대구예술지에 「예술인이 예술을 말한다」편에 민웅기 선생님의 눈물겨운 삶의 역정과 사진에 대한 열정을 기록한 바 있는데, 이 글에서 작가의 작은 거인과 같은 삶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평소에도 개인전을 위한 준비를 많이 하여 왔기에 고인이 된 뒤에도 이번 전시가 힘들지 않게 진행될 수 있었다. 같은 사진인으로 작가가 떠난 자리는 그가 남긴 “신천(新川)” “세탁소” “굴뚝” 등의 작품을 보면서 작가가 젊은 시절 꿈을 꾸었던 과거사를 읽어볼 수 있었다. 이번 전시회에는 대구지회장을 역임한 장진필(22), 김일창(23), 서규원(24,25), 강부만(26), 권정태(32) 등이 참석했으며 이창환 대구예총회장, 이호규 대구사진협회 회장도 참석해 축사를 했다. 부인은 더 말할 것 없이 슬퍼하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권정태 시민기자

2025-12-10

겨울에 맛있는 무떡

오랜만에 김장을 했다. 시어머니가 암 투병을 시작하면서 김장 같은 대소사를 접었었다. 친정엄마의 다급한 연락을 받고 달려가니 거실에 붉은 양념 다라이가 우릴 반겼다. 소금에 절였다 물기를 뺀 배추에 양념을 발라 통에 넣으며 사이사이에 숭덩 썰어서 아이 주먹만 한 무를 박았다. 시원한 맛이 배로 늘어난다. 끝나고 삶은 고기를 싸서 먹으니 겨우살이 준비를 끝낸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손에 친정엄마가 미리 해놨다 들려 보낸 김치 종류는 몇 가지 더 있다. 총각김치, 물김치, 오그락지까지 바리바리 싸 주셨다. 한동안 반찬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겨우살이 채비로 먹거리 준비가 1순위다. 어린 시절 안동에서는 밭에서 배추 무를 뽑아 일단 밭에 묻어두었다. 날이 따뜻한 날은 양지쪽에서 무를 납작납작하게 썰어 말렸다. 새들하게 시들었다 마르면 광에 따로 보관했다. 그렇게 말린 무를 물에 불렸다가 갖은양념을 더해 꼬들꼬들한 무말랭이를 만든다. 안동에서는 ‘곤짠지’라고 불렀다. 무가 시들하게 골았으니 ‘곤’ 소금에 절인 짠 김치 종류이므로 ‘짠지’를 붙여 곤짠지다. 포항에 오니 ‘오그락지’라 불렀다. 무가 물기가 빠져 모양이 오그라들었으니 직관적인 이름이다. ‘무말랭이’보다 맛있어 보인다. 겨울엔 무가 여러모로 쓰인다. 뒤뜰에 구덩이를 파서 묻어두고 국을 끓이면 달큰한 맛이 났고, 생채로 먹고 긴긴밤 고구마와 더불어 깎아 먹는 간식이기도 했다. 채소가 부족한 겨울에 배추전 무전을 해서 영양의 균형을 맞췄다. 무를 썰어서 앉힌 밥에 양념장을 더해 비벼 먹으면 이가 약한 할머니도 편하게 드셨다. 포항에 무떡이 맛있는 떡집이 있다. 떡 만들기가 어려웠던 어린 시절엔 구경도 못 해서 무떡을 먹어보지 못했다. 지인이 사 와서 먹어보라고 해서 첫 대면을 했다. 흰팥고물을 가득 묻힌 떡을 한입 베어 물자 이가 자동으로 쑥 들어갔다. 몰캉한 식감과 달달한 무맛이 입안에 번졌다. 무떡이 이 맛이구나. 무떡 맛집이 어디냐고 물어 찾아갔다. 효자 시장 안에 자리한 ‘그린 떡방앗간’이었다. 전날 무떡 한 되를 해달라 미리 맞춰 놓았더니 시루에 막 찌는 중이었다. 가게는 기계가 많았지만, 전체 기계를 스테인리스로 만들고 기계 벨트는 차인 벨트로 사용하여 불필요한 실내 공간을 최소화하였으며 도시가스 보일러를 사용하고 있어 실내가 한층 청정했다. 포스코에 다니던 남편이 은퇴하면서 처가에서 운영하던 이곳을 물려받아 함께 운영 중이다. 떡 만드는 아내를 위해 식히는 기계도 만들었고 가게 앞에 무인 판매대도 그의 아이디어다. 이곳은 1970년부터 한결같이 떡방앗간을 운영해 왔다. 처음에는 떡과 참기름, 고춧가루 등 시골 방앗간처럼 운영하였으나 지금은 떡만 전문으로 한다. 주로 단골손님께서 쌀 가지고 떡 하러 많이 오고 오래전부터 맞춤식 떡을 주로 한다. 무떡 말고도 솜씨 좋은 안주인의 손에서 빚어지는 떡이 많았다. 무떡 시루가 김을 술술 풍기며 나왔다. 잘라서 한 개씩 자동으로 포장하는 모습도 재밌다. 포장하는 사이 쑥떡이 다 되어 나오니 한 조각 떼서 맛보라며 건넸다. 주인장이 슬쩍 건네서 가볍게 받으니, 손이 뜨거워서 잡고 있기 힘들었다. 역시 오래 일해서 세월의 굳은살이 박여서 뜨거운 것도 아무렇지 않았나 보다. 겨울 무가 맛나듯이 무떡은 봄이 되면 주문을 받지 않는다. 김장 김치와 함께 먹으면 더 맛나니 지금이 가장 맛있을 때다. 그린 떡방앗간:포항시 남구 효자동길 10번길 6, 054-277-6326, 매일 오전 8~ 오후 5시 30분까지 문을 연다. 토요일과 일요일엔 문을 닫으니 참고하시길. /김순희 시민기자

2025-12-09

지금, 달리는 중입니다

천만 러너시대, 요즘은 어딜 가나 달리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공원이나 해변가, 심지어는 길을 가다가 도심 도로에서도 달리는 사람을 본다. 시간과 장소도 가리지 않는다. 러닝화를 신고 복장을 갖춰 입은 사람부터 편한 복장 차림으로 달리는 사람도 있다. 혼자서 달리기도 하고 여럿이 함께 뛰기도 한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달리기 열풍, 하나의 문화가 되어버린 ‘러너’들의 세상이다. 시민기자도 지난여름부터 달리기 열풍에 합류했다. 하고 싶은 것을 계속 이어 나가려면 무엇보다 좋은 체력이 필요했다. 필라테스는 그만한지 오래고 배드민턴도 꾸준히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게 ‘달리기’였다. 말 그대로 지금 바로 시작할 수 있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니 안성맞춤 운동이었다. 러닝화와 무릎보호대를 장만해서 마음먹은 그날부터 저녁을 먹고 동네 한 바퀴를 달렸다. 시간이 될 때는 아이와 같이 달리기도 했다. 저녁에 밖에서 달리다 보니 혼자가 아니었다. 같은 시간에 걷는 사람들 사이로 달리는 사람 2~3명 정도는 자주 마주쳤다. 동네 가까이에서도 달리기 열풍을 느끼는 순간이다. 달리는 인구가 많아지니 마라톤 대회도 전보다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접수부터가 엄청난 경쟁이다. 시민기자도 지난 9월에 처음 참여한 마라톤 대회에서 달리기에 대한 사람들의 뜨거움을 한 몸에 느꼈다. 많은 인파에 놀랐지만, 가족 단위로 많이 참가한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빨리 달리는 기록 경쟁이 아닌 완주를 목표로 달렸다. 5km를 부모와 아이가 함께 달리고 심지어는 어린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함께 달린 젊은 엄마도 여럿 보였다. 지금은 자연스레 달리기가 ‘핫’한 운동이 되었지만, 언제부터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에 동참하게 되었을까. 아무래도 그 시작은 팬데믹 시절이 아닌가 한다. 인원수 제한이 있던 시절, 야외에서만큼은 제약이 없었다. 건강에 관심이 높았던 시절이었고 전문가들은 답답한 집보다 바깥에서 활동을 적극 권장했다. 포항에서는 스페이스워크가 개장하기 전 환호공원에서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걸 기억한다. 달리기도 이때쯤 많이 늘어난 것 같다. 지금은 걷고 달리는 사람들의 열기는 더 뜨거워졌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달리기는 헬스장이나 다른 운동처럼 등록이 필요 없다. 특별한 기구도 필요 없다.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아도 달릴 수 있다. 시작할 때 간단하게 러닝화 정도만 있으면 된다. 시간에 제약이 없어 직장인도 시간이 되는대로 달릴 수 있다. 그리고 달리는 거리도 자신이 편하게 정하면 된다. 마라톤 대회도 풀코스가 부담스러운 아마추어 러너에게 하프 코스(21.0975km)와 10km, 5km의 다양한 코스가 마련되어 진입 장벽을 낮췄다. 직접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보니 기록 경쟁보다는 가족들과 즐겁게 완주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달릴 때 스치는 송도 해변 풍경에 스트레스가 사라져 기분도 시원했다. 완주 메달을 받은 참가자들은 일상의 작은 성공의 기쁨을 맛보고 건강도 함께 따라오게 했다. 김선경(52·포항시 북구 양덕동) 씨는 “러닝크루에 침여해 경주에도 갔었다. 처음엔 조금 힘들었지만 끝까지 뛰었다. 달리고 나서 쾌감이 무엇보다 컸다. 목표했던 다이어트도 성공해 기뻤다. 이제는 10km 정도는 어렵지 않게 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허명화 시민기자

2025-12-09

달콤한 부사 하나 맛보실래요?

늦가을에 접어들자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람이 차가워질수록 사과는 붉게 튼 아이볼처럼 발그레 익어갔다. 근심어린 모친의 표정에도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여름내 매끄럽기만 하던 열매의 바닥도 거칠어져 간다. 부사는 일본어로 후지로 일본에서 들여온 사과 품종 중 하나다. 일본에서는 별도의 한자 표기 없이 히라가나로 표기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후지산의 한자를 따와 부사라고 표기하고 있다. 박정희 정부 때 농가 소득 증대를 위해 국내로 도입되었다. 가장 크고 가장 맛있는 사과라는 이유였다. 부사는 광택 나는 붉은 껍질에 단단한 과육을 가졌으며 과즙이 풍부하다. 위는 붉고 아래쪽이 살짝 노르스름하며 거친 것이 가장 맛있다는 게 30년 넘은 과수원집 딸의 소견이다. 과수원을 하기 전엔 주변에서 나눠주는 사과가 대부분이었던 터라 맛 같은 걸 크게 따지지 않았다. 다들 농사를 짓다 보니 저마다 흠과가 나오면 서로 나눠 먹었다. 썩은 부위를 도려내고 주기도 했는데 큰 구멍에서부터 작은 구멍까지 저마다 제각각이었다. 벌레가 먹은 과일이 가장 맛있다는 말처럼 썩은 부위가 클수록 더 맛있었다. 그러다 과수원집 딸이 되고부터는 입맛이 무척 까다로워졌다. 아쉬움이 줄어들면 느낄 수 있는 행복도 그만큼 줄어드는 법이다. 어린 청춘의 나무에서부터 과수원이 생겨나고부터 지금까지 자리를 잡고 있는 오래된 나무들까지 고루고루 결실을 맺어줬다. 올 한해도 참으로 애썼다. 이상 기온탓에 예년에 비하면 갈수록 수확량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지만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라 그저 받아들이고 있다. 사과는 더위에 취약하기 때문에 여름이 길어진다는 것은 위험신호다. 이래서야 얼마 후엔 망고를 기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부사는 1년 내내 농부의 땀과 바람으로 키워지는 과일이다. 한 계절도 허투루 보낼 수 없다. 다른 농사는 한 계절 정도 쉬어갈 때도 있지만 수확철이 추운 늦가을과 겨울이라 그마저도 쉴 틈이 없다. 봄철엔 이상 저온현상으로 꽃이 못 피거나 혹은 얼어버렸고 여름이 되자 폭우 폭염 등 이상 기후 현상으로 낙과가 늘어났다. 겨우 여름이 지나나 했더니 달력으로는 가을이 훌쩍 넘어섰는데도 불구하고 더운 날씨가 이어졌다. 찬바람이 불어야 익어가는 부사 입장에선 낭패다. 부사는 찬바람이 세어질수록 과육은 더 단단해지며 아삭한 식감이 더해진다. 열매들은 얼어붙지 않기 위해 힘껏 당도를 올려댄다. 그렇기에 서리가 내리는 계절이 되면 단맛은 더 깊어진다. 부사의 당도와 저장성이 뛰어난 이유다. 올해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쪽은 말벌들이었다. 가장 맛있고 가장 좋은 것을 노린다. 포유류에 비해 작은 몸체임에도 불구하고 먹어대는 양이 상당하다. 결국 포획틀이라는 처방이 내려졌고 대략 이주 간 이른 단맛을 실컷 즐긴 말벌들은 자취를 감췄다. 또 다른 포식자가 넘어오기 전에 서둘러 수확에 들어가야 하기에 농부의 손은 바빠진다. 온 계절을 가득 담아낸 부사의 향기는 유달리 진하다. 한 입씩 베어 물때마다 새콤달콤함에 기분도 밝아진다. 2025년도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부사처럼 하루하루가 더 단단해진 한해였길 바라본다. /박선유 시민기자

2025-12-09

평택시립국악관현악단 초청 공연, ‘해를 안고 달을 안고’

대구시 서구문화원(원장 박수관)에서는 지난 3일 서구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평택시립국악관현악단을 초청하여 “해를 안고 달을 안고, 피고야 지고 살고 지고”라는 주제의 국악공연이 개최됐다. 이날 행사는 류한국 서구청장을 비롯한 구의회 의원, 각급 기관장과 많은 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TBC 대구방송 문채희 아나운서의 사회로 오후 7시부터 약 2시간 동안 진행됐다. 김재영 평택시립국악관혁악단 상임지휘자의 현란한 지휘와 함께 단원들의 수준 높은 연주에 관객들은 연신 앙코르를 외쳤다. 단원들은 평균 연령이 29세의 젊은 남녀로 구성돼 있으며 전국 우수대학에서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이들 중에는 대구 출신이 두 명이나 있었다. 첫 순서는 ‘관현악 아라랑’으로 문을 열었다. 한국의 전통 민요 ‘아리랑’을 오케스트라의 다채로운 음색을 담아 변주하며 환상곡 풍으로 만든 곡으로 서정적이면서 격정적인 흐름을 잔잔하면서도 절절한 선율로 확장해 가며 관객들을 애환과 환희 속으로 몰아넣었다. 다음은 현악기 소개였다. 해금, 가야금, 거문고, 아쟁을 차례로 소개하였는데 으스름 달빛과 함께 귀신이 나타나는 소리를 내는 대금과 전설 찾아 삼천리를 떠올리는 피리 소리를 들려줄 때는 국악이 우리민족의 음악임을 느끼게 했다. 문세미 연주자가 출연하여 새로운 악기인 25현 가야금 협주곡 도라지를 들려줘 국악관현악의 현대적 감각이 가미된 음악적 깊이를 음미하게 했다. 다음으로 관악기와 타악기가 소개됐다. 대표적인 북, 태평소, 양금을 소개하고 양금 협주곡 ‘바람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양금은 서양 악기로 특유의 맑고 단정한 울림이 매력적이었다. 이번 무대에서는 평택시립국악관현악단의 신자빈 연주자가 고도의 리듬감과 섬세하고도 현란한 손동작 선율이 한겨울밤을 수놓으면서 공연장 안을 더욱 달구었다. 이번에는 흐름을 달리하여 박수관 명창의 동부 민요 ‘뱃노래’와 ‘신고산 타령’이 진행되었는데 그의 구수한 목소리와 한복 차림은 악기 연주와 또 다른 매력을 안겨 주었다. 관현악단 연주와 조화를 이룬 노랫가락은 관객들로 하여금 흥이 저절로 나게 하면서 어깨를 들썩거리게 했다. 앙코르곡으로 관현악 신뱃놀이가 연주되고 박수관 명창의 소개로 평택시립국악관현악단의 박범훈 예술감독이 무대에 올라 관현악단의 창단 배경과 단원들의 우수성을 소개하였으며 후원해 주시는 박수관 문화원장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번 국악 연주회에 초청된 관객들은 모두가 평택시립국악관현악단의 초청 공연이 훌륭했으며 앞으로 이런 공연이 자주 개최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이번 관람으로 인해 우리나라 국악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말했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5-12-07

[시민기자 단상] 역사의 알몸을 되찾기 위해

역사는 현재에도 태어난다. 우리가 사는 이 순간에도 새로운 기록이 쌓이고, 오래된 기억은 다시 해석된다. 문제는 그 과정이 언제나 순수하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역사라는 몸 위에는 권력과 시대의 의도가 옷처럼 덧입혀지고, 때로는 가면으로 굳어 진실을 가려버리기도 한다. 우리의 근현대사는 이러한 왜곡의 흔적을 가장 깊게 남긴 시기를 알고 있다. 일제강점기다. 일본은 조선을 통치하기 위해 역사부터 다시 짜 맞추려 했다. 1921년부터 1937년까지 운영된 조선사편수회는 그러한 의도의 집약체였다. 일왕의 명으로 구성된 그 조직은 한국사의 기둥을 의도적으로 깎아내리고, 약 400년의 역사를 통째로 삭제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전하는 고대 국가의 시원은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배제되었고, “일본서기”와 중국 사료가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이는 단순한 연구가 아니라, 식민지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적 편집’이었다. 그 영향은 광범위했다. 조선총독부 산하 학자들은 한국 고대사의 틀을 재구성했고, 조선인 학자들 역시 그 학문 체계 안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마니시 류가 경성제국대학에서 강의하며 후대 국내 사학계에 남긴 흔적은 지금도 논쟁적이다. 역사라는 알몸은 그 시기 가장 두껍게 가려졌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가려진 부분을 다시 들여다보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2022년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와 경상북도의회가 제기한 통일신라 북방 경계 재해석은 그 한 예다. 현재의 압록강(鴨綠江)과 다른 물줄기인 삼수변의 압록강(鴨淥江)을 주목함으로써, 통일신라의 실제 영역이 더 넓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학계 전체의 합의는 아니지만, 중요한 문제 제기임은 분명하다. 왜곡된 지도를 바로잡는 작업은 결국 정체성을 회복하는 과정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전라도 천년사”가 일본서기의 지명을 국내 특정 지역에 대응시키며 논란이 되었을 때, 지역민과 시민단체가 봉정식 연기를 이끌어 낸 사건은 상징적이다. 정사에도 없는 지명을 근거로 우리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은 결국 일본이 만든 지도로 우리 땅을 바라보는 일이다. 이제는 지역 공동체가 이러한 시각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식민지 통치자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조선인에게 일본의 혼을 심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 말에 걸맞게 수많은 고서를 불태우고 반출했다. 그럼에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온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은 기적에 가깝다. 일본의 데라우치 문고에 지금도 우리의 고서가 다수 보관되어 있다는 소식은 여전히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오늘 우리가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이유는 단순히 분노 때문만은 아니다. 후손이 “당신들은 조상으로서 무엇을 했는가”라고 묻는다면, 그에 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진실을 요구하며, 진실을 남길 책임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있다. 역사는 언젠가 모든 왜곡의 옷을 벗고 햇빛 아래 설 것이다.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우리는 이 순간에도 진실의 옷을 한 벌씩 지어가야 한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김성문 시민기자

2025-12-07

‘고금소총’, 노인복지관서 정규 강좌로 인기

조선 후기 민간에 전해 내려온 우스운 이야기, 즉 소화(笑話)를 집대성한 설화집 ‘고금소총’. 조선초기에서 후기까지 편찬된 웃음 관련 설화집이다. 한때는 은밀히 읽던 책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나, 오늘날에는 고전적 지혜와 풍자를 담은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다시 조명되고 있다. 대구노인종합복지관에서 열리고 있는 ‘고금소총 해설반’은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고금소총’은 1959년 유인본으로 간행된 이후 널리 알려진 소화문학집으로, 서거정의 “태평한화골계전”, 강희맹의 “촌담해이” 등 12종의 작품집을 묶어 모두 830여 편의 우스운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다. 흔히 음담패설이나 속된 이야기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내용의 90% 이상은 조선 후기 백성의 삶과 지혜, 사회 비판과 풍자를 담아낸 건전한 해학서다. 특히 작품 말미에 등장하는 ‘야사씨(野史氏)’의 평가는 작품의 핵심으로 꼽힌다. 인물의 잘못된 처신을 꾸짖고,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는 촌철살인의 문장들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통찰을 담고 있다. 이러한 고전 문학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데 앞장서고 있는 사람은 전 대구대학교 문리대 학장을 역임한 오상태 교수다. 오 교수는 연암 박지원의 “호질”과 “양반전” 등 한문 단편소설의 풍자성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국문학자로서 오랫동안 고전의 현대적 가치 복원에 힘써 왔다. 그가 지도하는 대구노인종합복지관의 ‘고금소총 해설반’은 2007년 개설 이후 17년째 이어지는 인기 강좌다. 복지관에는 60여 개의 다양한 강좌가 개설돼 있으나, 이곳은 매주 수강생들의 등록 문의가 이어지는 ‘장수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강의는 작품 감상에 그치지 않는다. 이야기 속에 녹아 있는 풍자(諷刺), 해학(諧謔), 기지(機智), 반어(反語) 등 이른바 ‘골계성(滑稽性)’을 통해 일상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고, 현실을 보는 눈을 넓히는 과정에 더 큰 비중을 둔다. 수강생들은 “웃다가 배우고, 배우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가벼워진다”며 강좌의 묘미를 설명한다. 또한 강의는 한자·한문 학습의 기초과정으로도 활용된다. 수강생들은 작품 원문을 직접 직역·의역하며 자연스레 한자 실력을 쌓는다. 더 나아가 ‘사서삼경(四書三經)’ 같은 고전 개념도 함께 짚어보며, 동양 고전의 흐름을 한층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수강생 정재언씨(75)는 “고금소총은 18~19세기 우리 조상들이 직접 지은 생활의 기록이라 훨씬 친근하게 다가온다”며 “옛이야기를 통해 지금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고금소총을 흔히 음담패설과 동일시하는 오해도 강의에서 바로잡힌다. ‘패설(稗說)’의 ‘패’ 자는 벼와 비슷해 보이지만 열매가 맺히지 않는 잡초, 즉 논에서 뽑아내야 하는 피를 뜻한다. 본래는 ‘하찮고 속된 말’을 의미하는 한자어가 와전되며 선정성을 강조하는 용어처럼 굳어졌다는 것이 오 교수의 설명이다. 하지만 실제 고금소총의 다수 작품은 인간의 허위·위선을 풍자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비틀어 웃음 속에 교훈을 담는 정통 해학문학이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서민의 삶을 기록한 민속자료이자, 인간 심리를 해부한 고전 문학으로 평가할 만하다. 오 박사는 “고금소총은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살고, 어떤 문제의식을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생활철학서”라며 “웃음 속에 담긴 시대정신을 읽는 것이 강좌의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한때는 숨어서 읽는 책으로 오해받았던 ‘고금소총’. 그러나 대구의 한 복지관에서 펼쳐지는 이 작은 강좌는 고전 문학이 가진 힘과 품격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웃음 속에서 시대를 보고, 옛이야기 속에서 오늘의 지혜를 찾는 배움의 장이 지역 사회의 새로운 문화교육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5-12-07

미리 본 병오년(2026년) 빨간 말의 해

2025년 을사년(乙巳年), 푸른 뱀의 해가 가고 2026년 병오년(丙午年)이 다가오고 있다. 우주항공청은 천문법으로 산정하는 2026년(단기 4359년) 달력 제작 기준을 발표했다. 새 달력을 받으면 직장인과 근로자들이 가장 먼저 보는 것은 빨간 날, 즉 쉬는 날이다. 근로자는 쉬는 날이 많아도 걱정 적어도 걱정이다. 내년 연간 총 휴무일은 118일로 올해보다 하루 적다. 국경일, 설날 등을 합친 빨간 날’은 70일이고, 18일간의 휴무일을 더해 ‘주 5일 근무자의 연간 휴무일은 118일이다. 내년에 3일 이상 연휴는 설, 삼일절, 부처님오신날, 광복절, 추석, 개천절, 한글날, 성탄절 등 8회로 설은 5일, 추석은 4일 연휴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우리 민족의 전통 명절 설날은 2월 17일, 추석은 10월 25일이다. 2026년은 60갑자로 병오년이다. 병오년을 왜 붉은 말의 해라고 할까? 그 답은 이렇다. 60갑자는 한해 한해가 천간과 지지로 결정되는데, 천간은 10자, 지지는 12자로 이루어져 있다. 천간과 지지의 시간은 순환을 나타내는 중국의 역법 단위인 간지(干支)로 이어지는데, 지구가 자전과 공전하듯이 시간과 세상 만물이 순환한다는 것이다. 시간의 순환을 60개의 단위로 본래의 자리가 된다. 먼저 음양오행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행은 지구를 뺀 수성(水), 금성(金), 화성(火), 목성(木), 토성(土)까지의 행성을 사용한다. 사람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행성이 토성까지이기 때문이었다. 오행이 각각 음과 양으로, 10개의 천간(天干)과 12개의 지지(地支)가 된다. 천간은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하늘의 기운을 나타낸 것이고, 지지는 12개로, 이를 십이지(十二支)라고 한다. 이는 땅의 기운 즉 땅의 작용을 나타내는 것이다. 지지도 천간과 마찬가지로 음양과 오행으로 나눠지는데. 지지는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로 많은 의미가 들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동물을 나타내는 띠도 여기에 있다. 시간의 순환 단위는 60개인데, 한 단위는 1년이다. 그 첫 번째는 천간의 첫 번째 ‘갑’과 지지의 첫 번째인 ‘자’가 합해져 ‘갑자년’이 되고 그다음 해는 천간의 두 번째인 ‘을’과 지지의 두 번째인 ‘축’이 합해져 ‘을축년’이 되며 천간과 지지를 차례차례 합해가면 ‘갑자’ ‘을축’ 다음은 ‘병인’, ‘정묘’, ‘무진’, ‘기사’, ‘경오’, ‘신미’, ‘임신’ ,‘계유’, 등으로 다시 갑자년이 되려면 60년이 걸리는데 이를 회갑이라고 한다. 사람이 한번 태어나서 태어난 해가 돌아오는 것이 회갑이다. 새해를 붉은 말의 해라고 하는 것은 천간인 갑을은 청색, 병정은 적색, 무기는 황색, 경신은 백색, 임계는 흑색이며 지지의 자는 쥐, 축을 소, 인은 범, 묘는 토끼, 진은 용, 사는 뱀, 오는 말, 신은 원숭이, 유는 닭, 술은 개, 해는 돼지의 동물을 뜻하기 때문에 2026년은 병오(丙午)년이므로 병은 붉은색, 오는 말을 뜻하므로 붉은 날의 해가 되는 것이다. /안영선 시민기자

2025-12-07

우리예절원, 제21기 예절지도사 수료식

(사)우리예절원(원장 남주현)은 지난 6일 대구시 중구 명륜동 우리예절원 강당에서 제21기 예절지도사 과정 수료식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박영순 부원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수료생 10명이 정식으로 예절지도사 자격을 취득했다. 우리예절원은 예절지도사를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기관으로, 입학 단계부터 까다로운 선발 절차를 거치며 학사 운영 또한 ‘예절지도사 사관학교’로 불릴 만큼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1년 과정의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수료생들은 전통 예(禮)와 다양한 전례 문화를 심도 있게 익힌다. 우리예절원은 2005년 1월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부설 전통예절교육원으로 출범했으며, 2008년 1월 ‘도산 우리예절원’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후 2016년 사단법인 ‘우리예절교육원’으로 개편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번 21기 10명 수료를 포함해 현재까지 총 622명의 예절지도사를 배출하였으며 지역 전통문화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또한 우리예절교육원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민간자격 등록을 통해 전문성과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날 수료식에는 남주현 원장을 비롯해 박영순 부원장, 이원우 감사, 방종현 동창회 고문, 김윤숙 동창회 부회장, 박주희 예절원 재무이사 등이 참석해 수료생들을 격려했다. 제21기 회장 도기현 씨는 “전통 예절의 가치를 현대 사회에 맞게 널리 알리고, 배운 예(禮)를 실천하는 예절지도사가 되겠다”며 “앞으로 지역 사회와 청소년을 위한 예절 교육 활동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우리예절교육원은 2026학년도 1년 과정의 신입생 40명을 모집하고 있다. 교육비 무료. 문의 박영순 부원장 010-9663-4607. /방종현 시민기자

2025-12-07

연일 무료급식소의 겨울준비, 김장봉사로 따뜻함을 담다

지난 11월 29일, 연일무료급식소 마당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다. 중앙라이온스 후원으로 김장용 절임배추 500kg과 양념이 준비되고, 김장을 도우기 위해 중앙·재아 라이온스클럽, 한봉우리 봉사단, 방송대 학생회 등 다양한 단체의 자원봉사자들이 모여든다. 그들은 하나같이 밝은 표정으로 즐거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분주히 오간다. 이날 담근 김장김치는 무료급식소를 찾는 어르신들의 한 해 식탁을 책임진다.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시작된 무료급식소. 17년째다. 운영자 김희철 씨는 경상북도에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을 하고 포항시로부터 최소한의 행정지원을 받고 있다. 무료급식 대상은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독거노인 등이지만 대상자가 아니더라도 혼자 식사를 해결해야하는 어르신이라면 누구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따뜻한 점심을 먹을 수 있다. 봉사자들은 매일 장을 보고 직접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든다. 그날 만든 음식은 반드시 그날 소진을 원칙으로 한다. 하루 80~100인분을 준비하는 식재료비 일부는 보조금으로 충당이 되지만 직원인건비, 월세, 관리비 등의 운영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부족분은 운영자의 사비로 채워진다. 무료급식소가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힘은 자원봉사자와 지역주민들의 참여 그리고 작은 정성이 담긴 CMS 후원 덕분이다. 무료급식 대상이 아닌 어르신들의 요청으로 급식소 안에 작은 모금함도 놓여졌다. 마음의 불편함을 덜고자 넣는 백 원, 천 원은 그들의 또 다른 자존감이다. 혼자 생활하는 어르신이 냉장고에 묵혀 둔 반찬으로 스스로 챙겨야 하는 식사와는 비교가 안 된다. 하루 한 끼라도 든든히 드시게 하는 즐거움에 17년을 쏟았다. 가족들도 처음에는 많이 힘들어 했지만 남편과 아버지로서 가정에 충실하며 성실히 살아가는 모습에 지금은 든든한 지원군이다. 가장 힘들었던 코로나 시기, 봉사자의 발길도 후원금도 끊겼다. 외출이 제한되면서 대체식(푸르미)으로 연명했지만 팬데믹이 길어지며 그마저도 한계가 왔다. 그 와중에 집세와 관리비는 꾸준히 빠져 나가 사실상 운영이 멈출 위기에 선다. 팬데믹 상황이 끝나고도 봉사자와 후원금이 쉽게 회복되지 않았던 당시는 정말 ‘그만둬야 하나’라는 생각을 수없이 반복했다. 봉사는 왜 할까? 자신들의 소중한 시간과 노동 그리고 비용까지 들이면서 굳이 봉사를 하겠다는 그들에게 물어본다. 그냥 기분이 좋다, 마음이 가벼워진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하고 싶다, 마음이 즐거우면 어떤 노동도 힘들지 않다 라며 흔흔히 말한다. 김희철 씨는 “봉사도 중독입니다”라며 웃는다. ‘중독’이라는 말에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김장을 마치고 누군가 가져 온 과메기를 펼친다. 꿀맛이다.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니라 함께 일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성취의 맛이다. 공자는 말했다 “선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난초가 있는 방에 앉아 있는 것처럼 향기롭다”고. 이들의 온기와 웃음으로 채워진 연일 무료급식소에 김치 냄새 어디가고 난초향이 가득하다. 누군가에겐 대수롭지 않은 한 끼가 누군가에게는 내일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고 또 누군가에겐 삶의 이유가 된다.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데워준 그 온기는 봉사자들의 따뜻한 마음이 식지 않는 한 계속 지속될 것이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5-12-04

사랑의 빛으로 빛나기를 기원하며

이번 주말에 딸이 결혼을 한다. 어느새 이만큼 자랐는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엄마 생각이 난다. 스물넷 철모르는 딸이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혼자 그렇게 펑펑 우셨다던 엄마. 그때 엄마의 심정이 어땠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딸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엄마일 것이니 결혼이라는 쉽지 않은 길로 들어갈 걸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그 길을 어떻게 걸어갈까 혼자 노심초사 하셨으리라. 이제 내가 엄마가 되어 그 길을 걸어가는 딸을 위해 가만히 기도한다. 그리고 어머니를 그리는 시를 읽는다. “어둠 속의 별 하나, // 어머니의 눈빛이다 // 별도 천천히 돌아가던 시절 / 멍석에 누워있으면 은하수 무량하고 매캐한 모깃불에 / 저만치 반딧불이 날아다녔지요 / 엄마 / 별을 갖고 싶어요 / 엄마 / 별을 먹고 싶어요 / 엄마 / 별과 놀고 싶어요 // 어머니는 / 풀벌레 울음 섞인 목소리로 / 나중에 나중에···. // 오늘 밤에는 별 대신 그리움 하나 / 나의 가슴을 채우고 있다” - 채만희 시 ’별‘ 어머니는 영원한 우리의 고향이다. 어머니를 통해 세상으로 건너왔으니 당연한 일이리라. 나를 여기 데려다준 어머니는 먼저 돌아가서 밤하늘의 별빛이 되어 나를 바라보신다. 어머니의 다정한 눈빛이 하늘에 가득하다. 별을 쳐다보며 아련한 시절로 되돌아간다. 기억 속에 새겨져 있는 밤하늘에는 은하수가 무량하고 푸르게 반딧불이가 날고 있다. 그 어린 날의 꿈은 하늘만큼이나 넓었다. 그때는 어머니도 우주만큼 커 보이던 시절. 저 무한한 별을 다 갖고 싶다고 마구 떼를 쓰는 아이. 별을 먹고 싶고 별이 되고 싶던 아이. 어느 어머니가 아이에게 별을 따 주고 싶지 않을 것인가. 반짝이는 것들은 죄다 아이에게 안겨주고 싶었으나 어머니는 그러지 못했다. 나중에 나중에를 되뇌이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애절한 안타까움이 묻어있다. 별이 되고 싶다던 아이를 위해 울먹이는 것이 엄마의 마음이다. 이제 삶의 새로운 출발점에 선 아이에게 엄마로서 어떤 길잡이가 되어야 할까.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며 아끼라는 말만이 떠오른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신뢰와 존중이 가장 중요할 것이라 믿는다. 엄마의 마음을 닮은 축시를 써서 간절한 마음을 담아본다. 햇살처럼 아름다운 신부가 될 아이에게 엄마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축원이 앞길을 밝혀주길 바라본다. “사랑하는 딸아, 네가 품은 꿈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길 바라며, 엄마는 네 곁에서 늘 지켜볼게. 결혼이란 두 사람이 서로의 그림자가 되어주는 일이라더라. 때로는 햇살처럼 따뜻하게, 때로는 폭풍 속에서도 함께 손잡고 걸어갈 수 있기를. 네 웃음소리가 집안을 가득 채우던 어린 시절처럼, 앞으로도 행복이 너를 떠나지 않길 기도해. 엄마의 눈빛이 닿는 모든 곳에 네가 있음을 잊지 말고, 두려울 땐 하늘을 보렴. 거기엔 네가 태어났던 그날처럼 환한 별이 빛나고 있을 테니까.” /엄다경 시민기자

2025-12-04

지하철 속 숨겨진 이야기, ‘2호선 세입자’를 보고 나서

포근했던 지난 주말, 남자친구와 함께 연극 ‘2호선 세입자’를 보기 위해 대구 송죽씨어터로 향했다. 표를 확인하고 어둠 속 객석에 자리를 잡고 앉자, 눈앞에 펼쳐진 무대는 이미 조용한 지하철 플랫폼으로 꾸며져 있었다. 회색빛 금속 기둥, 낡은 좌석, 형광등 조명 아래 놓인 소품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지하철의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이곳에서 관객은 마치 ‘2호선’의 한 칸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2호선 세입자’는 웹툰을 원작으로 한 연극으로, 특이한 점은 등장인물들이 모두 2호선의 역 이름을 따서 서로를 부른다는 것이다. 시청, 성내, 구의, 방배, 역삼-이 다섯 명의 인물들은 자신이 탔던 역을 자신과 동일시하며 살아간다. 공연이 진행될수록 그들의 각기 다른 과거와 트라우마가 드러난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과거를 묻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품어주며 서로에게 물들어간다. 이 연극의 진면목은 극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가는 섬세한 무대 연출에 있다. 조명과 소리가 과하지 않게 절제되어, 관객을 ‘지하철 안’으로 완전히 끌어들인다. 특히 조명은 마치 실제 지하철의 차창 밖 풍경처럼 움직이며, 연극에서 느낄 수 없는 장소가 이동되는 느낌을 주었다. 이는 관객에게도 ‘2호선’의 객실에 앉아 이동하는 느낌이 들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승객이 된 듯해 생동감 넘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하였다. 의상과 소품도 과하게 꾸미지 않고 일상적인 느낌을 그대로 살려냈다. 작은 몸짓 하나, 옷깃을 여미는 손동작 하나가 캐릭터들의 깊은 내면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그 안에서 삶의 굴곡을 엿볼 수 있다. 이런 현실적인 느낌의 요소들은 ‘정말 지하철에 누군가 살 수 있을까?’하는 어린시절 할 법한 귀여운 생각에 잠기게 했다. 특히, 열차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는 공간 전환을 상징하는 동시에, 인물들이 다시 또 하루를 떠밀려 살아가야 하는 반복의 시간을 나타내는 듯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반복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각자의 아픔과 치유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음을 은유적으로 전달하는 소리가 더욱 효과적으로 다가왔다. 배우들의 연기는 ‘2호선 세입자’의 감동적인 요소를 한층 강화했다. 과장되지 않은 담담한 톤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그들의 연기는 오히려 현실적이고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무대에서의 작은 떨림이나 숨 고르기까지도 그들의 연기를 더욱 사실감 있게 만들어, 관객들은 그들의 삶을 마치 자기 자신의 일처럼 느끼게 되었다. 배우들이 서로에게 기대고, 밀어내고, 다시 다가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표현하면서, 그들이 만들어가는 관계의 변화를 더욱 입체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과정을 통해 관객들은 각자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외로움이나 불안을 어느 인물에게서든 투영하며, 그들과 감정적으로 동화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후반부에서는 정들었던 2호선에서의 생활을 떠나 각자의 길을 찾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각자가 짊어진 짐을 여전히 내려놓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기쁘면서도 마음 아픈 장면으로 남았다. 완전한 해결이나 해답을 찾는 길은 아니지만, 어려운 세상 속에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몸을 던지는 모습에 위로를 얻게 되기도 했다. 이번 공연은 단순한 연극 관람이 아니라,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과 감정을 깊이 있게 성찰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대의 정교한 구성과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에너지는 관객을 ‘2호선’의 객실 안으로 깊숙이 끌어들였고, 무엇이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드는지 명확하게 증명해 보였다. 일상의 외로움과 고단함을 지나,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찾아가는 여정은 현실 그 자체였고, 그 과정은 관객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김소라 시민기자

2025-12-04

대한노인회 달서구지회 부설 노인대학 제22기 졸업식

대한노인회 대구 달서구지회(지회장 김해동)는 부설 노인대학(학장 조철제) 제22기 졸업식을 2일 지회 2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졸업식에는 이태훈 달서구청장과 서민우 달서구의회 의장이 함께 참석해 축하했으며. 유영하 국회의원과 윤재옥 국회의원은 축전을 통해 졸업생을 축하했다 이날 졸업식은 조용완 사무국장이 사회를 맡고 졸업장 수여와 유공자 표창, 학장의 인사말, 구청장 축사, 교가 제창 순으로 진행했다. 졸업장은 최고 연장자인 90세의 이종권님이 대표로 받았고, 그동안 봉사해 온 공로로 구경순 학생회장과 이동연. 김국자. 정옥이 부회장이 표창을 받았다. 달서구지회 노인대학은 매주 화요일 10시부터 12시까지 다양한 분야의 교양강좌와 노래 교실을 각 1시간씩 수업하고 추계 문화탐방도 한다. 이번에 졸업하는 22기 학생 수는 197명으로 현재까지 3,85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조철제 학장은 “여러분은 조국 근대화를 이룬 위대한 분들로서 함께한 학우들은 물론 사회에서도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살아가시고, 항상 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무병장수하시길 바란다”고 했다. 김해동 지회장은 격려사를 통해 여러분들은 노인대학을 발전시켜 주신 주역이며 졸업하시더라도 계속해서 향학열을 불태우며 배우신 역량을 사회에 봉사할 수 있도록 해주시고 항상 건강관리를 잘하셔서 백세시대를 맞이하시길 바란다고 했다. 유병길 시민기자

2025-12-04

92세 이해호 작가를 찾아서

이해호 작가(92)는 화가이자 민속학자다. 동네에서는 만물박사로 통한다. 그가 태어난 대구 달서구 갈산동은 지금은 공단으로 바뀌었지만 당시는 농사를 짓고 사는 농촌마을이었다. 그도 평범한 농촌의 아들로 태어나 농사를 짓고 지냈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3000평 논에 농사를 지으며 살다 어느 정도 생활에 여유가 생긴 50대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시절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고 아버지가 칭찬해주셨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을 생각하면 그림에는 소질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2003년 인터불고 갤러리에서 ‘선녀들의 맵시’란 제목으로 첫 인물화 작품전을 열면서 본격적인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2006년 대구회화 대상전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대구미협회원으로 활동하며 그가 그린 초상화가 현재 2000여점에 이르고 있다. 그가 동네에서 만물박사로 통하는 것은 화가이면서 수필가로 책을 내고 과학, 민속학, 고고학 등 다방면에 뛰어난 재주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동네 주민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그의 손에 들어가기만하면 척척 모두 해결이 된다. 초상화만 2000점 이상 그린 특이한 화가 생활로 2013년에는 “세상에 이런 일”이란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책도 여러권 썼다. ‘버려진 낟알을 찾아서’와 ‘표준어와 경상도 대구말씨’라는 책도 집필했다. 밀양 얼음골에 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언론보도에 이의를 제기해 사회적 이슈를 일으킨 적도 있다. 결국 그의 주장대로 밀양 얼음골의 얼음은 여름에 얼음이 어는 것이 아니고 겨울에 언 얼음이 이듬해에 가서 해빙된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도 했다. 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값진 선물이 초상화라고 생각한다”며 “주위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무료로 그림을 그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권정태 시민기자

2025-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