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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구국제공항은 한때 이용객이 400만명을 넘어서면서 지방공항으로서 역할과 존재가치를 확실히 과시한 적이 있다. 2019년 대구국제공항은 7개국 15개 노선을 운영하면서 주 246편의 항공기를 띄웠다. 그해 12월 말 기준 이용객은 467만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항공수요가 급격히 줄면서 대구국제공항은 침체일로에 빠져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고도 이전 수준을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올 5월 현재 누적 국제여객은 60만여 명에 그쳐 2019년 같은 기간 대비 약 51% 수준에 불과하다. 코로나 기간 중 국제노선 중단이라는 직격탄을 맞은 항공사들이 팬데믹 이후 빠른 회복을 위해 수익성이 최대한 보장되는 수도권과 충청권 등에 항공기를 집중 투입한 것이 대구공항 수요 회복의 부진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금은 대구공항이 청주공항보다 이용객이 적은 국제공항으로 전락했다. 청주공항은 팬데믹 이후 늘어나는 수요를 잘 관리해 지난해만 460만명의 이용객을 유치했고, 올해는 500만명 돌파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와함께 청주공항은 지역 정치권 등의 협조를 얻어 민간항공기 전용활주로 신설 등을 위한 특별법도 준비하는 등 발빠른 공항 활성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대구경북은 지역의 미래 100년을 이끌 숙원사업으로 군위지역에 2030년 개항 목표의 TK신공항 사업을 벌이고 있다. 신공항 사업의 성공을 위해 반드시 충족시킬 부분 중 하나가 대구국제공항의 활성화다. 팬데믹 이후 지지부진한 대구국제공항의 항공 수요를 끌어올려 신공항의 마중물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구시가 홍성주 경제부시장 주재로 대구국제공항 국제선 활성화 전략회의를 그저께 가졌다. 홍 부시장도 “TK신공항이 개항 초기부터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선 대구공항의 항공수요 기반을 착실히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구시가 준비 중인 노선 신설과 비정기 노선 개설, 인프라 확충 등도 중요하지만 대구공항 활성화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대책으로 분명한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지난 23일 발표한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 인선은 한마디로 파격적이다. 현역 의원들과 전문성 있는 기업인을 중심으로, 예상할 수 없었던 인물들이 대거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번 내각 인사에서 제외된 경제부총리(기획재정부장관)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법무부장관 인선은 이 대통령이 현재 숙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경북에선 안동 출신 권오을 전 의원이 국가보훈부 장관에 깜짝 발탁됐고, 대구 출신의 강선우 의원도 여성가족부 장관에 이름을 올렸다. 권 전 의원 인선배경에 대해, 대통령실은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으며, 지역과 이념을 넘어 국민 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강 의원은 국회 보건복지위 간사 및 여가위원회 위원을 거치며 사회적 약자의 권익 보장을 위해 활동해 온 정책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다. 이번 인사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윤석열 정부에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지낸 송미령 장관이 유임된 것과 현직 기관사인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노동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이다. 김 위원장은 2004년 철도노조 위원장을 지낸 뒤 2010~2012년에 민주노총 위원장을 역임했다. 그는 내각 명단이 발표되는 순간에도 기관사로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배경훈 LG AI연구원장(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한성숙 전 네이버 대표(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 전현직 기업인이 중용된 점도 주목된다. 평소 이 대통령이 강조한 실용주의 원칙에 부합하는 인사로 분석된다. 국방부 장관에 민간인 출신인 안규백 의원(5선)이 지명된 것도 화제다. 이번 인사에서는 영남과 호남의 ‘안배’도 이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북 출신이 3명으로 가장 많았고, 대구·경북과 부산·경남 출신이 각 2명이었다. 서울경기·충남·전남·강원 출신은 각 1명씩이었다. 이번 내각 인사를 계기로 이재명 정부가 본격적으로 출범하게 됐다. 이 대통령은 이번에 지명된 장관 후보자들이 자신의 소신대로 일하면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적극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

칼럼

몇 달 전부터 갱년기 증상이 시작되었다. 이따금 땀이 훅 끼치고 밤이면 이유 없이 잠이 달아났다. 그렇게 자꾸만 눈이 말똥말똥해지는 밤이 늘어나며 이러다 탈 나겠다 싶어 가끔씩 수면제를 찾게 되었다. 다행히 약의 도움으로 서너 시간은 단잠에 들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듯했다. 잠을 못 자는 날이 이어지자 낮에 운동을 시작했다.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이면 밤에 좀 나아질까 싶어서였다. 처음엔 걷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며칠 만에 땀도 나고 숨이 차오르자 몸도 마음도 조금씩 가벼워졌다. 덕분에 최근 며칠은 약 없이도 비교적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뭔가를 했다는 만족감, ‘오늘은 잘 수 있을거야’라는 기대감이 오히려 수면제보다 나은 약이 되어준 듯했다. 며칠 동안 잠이 잘 들어 이제는 약이 없어도 괜찮겠다 싶었던 밤에 다음 날 중요한 약속이 있어 빨리 잠이 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불 속에서 뒤척이기만 몇 시간이었다. 서랍을 열었다. 마지막 하나 남은 수면제를 꺼내 입에 털어 넣고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렇게 푹 자고 일어나 머리를 감으려는 찰나 약 봉투를 보고 나는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수면제가 아니었다. 그 약은 혈압약이었다. 순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으로 부작용을 검색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무 탈 없이 푹 잔 내 몸이 그저 멀쩡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이걸 수면제라고 믿었으니 잔 거였네?” 이내 웃음이 났다. 아찔하면서도 신기했다. 진짜가 아니어도 진짜라고 믿었기에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이른바 ‘플라시보 효과’였다. 알약이 아니라 믿음이 효과를 만든 것이다. 의학적 효능이 없어도 그것이 효과가 있다고 믿으면 몸이 반응하는 것이다. 병원에서도 가끔 쓰이는 이 원리를 나는 내 일상 속에서 실감한 셈이다. 그날 밤 내가 잠든 것은 약 때문이 아니라 ‘이제 잠이 들 거야’라는 믿음. 그것 하나가 나를 편안하게 눕혔고 나도 모르게 몸은 그 믿음을 따라갔다. 어쩌면 우리 삶의 많은 순간이 그런 믿음 하나로 바뀌는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삶에도 이런 ‘심리의 약’이 참 많다. 내 친구는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고 했다. ‘이것도 지나간다. 다 괜찮아진다.’ 처음엔 허무맹랑해 보였지만 어느새 그 말이 친구의 삶을 붙드는 버팀목이 되었다. 믿고 바라보는 쪽으로 삶은 나아가게 되어 있다. 진짜 변화는 어쩌면 바깥이 아니라 스스로 믿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삶에서 플라시보 효과는 단지 마음이 만들어 낸 착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진실로 믿느냐’에 따라 삶의 질감이 달라질 수 있다는 증거다. 본질적으로 사람은 설명되지 않는 불안과 고통 속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견디는 존재다. 그러니 어떤 말, 어떤 행동, 어떤 믿음이 실제로 몸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으로 인해 ‘살아낼 힘’을 얻는 것이다. 치유란 병의 완치가 아니라 그 병을 안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내적 수긍일 수 있다. 플라시보는 그 수긍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때로 거짓말 같은 희망을 붙들고서도 그 믿음 하나로 현실을 견디고 넘어간다. 믿는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방식의 생존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날 이후 내 서랍 속 빈 약 봉투를 가끔 들여다본다. 약이 아니라 내 마음이 나를 재웠다는 사실이 어딘가 뿌듯하다. 어쩌면 진짜 필요한 건 약이 아니라 믿음일지도.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갱년기와 수면 장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화들 앞에서 마음이 약해질 때면 그날 밤을 떠올린다. 혈압약을 수면제로 믿고 스르르 잠든 어설픈 나의 착각이 되레 나를 위로한 밤. 삶은 때때로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이 된다. 플라시보 효과는 그저 의학적 현상만이 아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나를 믿는 마음 하나가 삶을 조금 더 부드럽고 단단하게 만든다. ‘괜찮아 잘 해낼 거야’라고 믿는 마음이 이미 반쯤은 이룬 셈이니 오늘도 내 마음에게 말을 걸어본다. /작가 김경아

2025년은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된 지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를 기념하여 일한문화교류기금이 주최한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2025년 5월 31일 도쿄 치요다구의 도시센터호텔에서 열렸습니다. 이 날 행사의 취지는 일한문화교류기금 이사장의 인사말에 잘 드러나 있었는데요. 가토리 이사장은 포퓰리즘과 민족주의로 세계의 긴장이 높아지는 지금, 수백년 동안 조일(朝日)간의 무탈한 관계를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조선통신사를 통해 평화의 교훈을 배우자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취지에 걸맞게 심포지엄의 주제도 ‘조선통신사라는 지혜‘였는데요.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요시다 마쓰오(도쿄대 명예교수), 다시로 가즈이(게이오대 명예교수), 이시다 토오루(시마네현립대 교수), 기무라 타쿠(주오대 교수)가 순서대로 ’조선왕조 정치시스템과 통신사‘, ’조선통신사와 쓰시마번의 역할‘, ’조선통신사와 訳官使‘, ’조선통신사라는 명칭에 담긴 의미‘를 발표했습니다. 통신사의 시작은 왜구의 금입(禁入)을 요청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던 1375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는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 이후에 12회(1607년-1811년)에 걸쳐 일본에 파견됐던 사절단을 말합니다. 3회까지 사절단의 공식 명칭은 ‘회답겸쇄환사(回答兼刷還使’였고, 4회부터 ‘통신사(通信使)’라는 명칭을 사용했는데요. ‘회답겸쇄환사’라는 명칭은 쇼군의 국서에 ‘회답(回答)’한다는 의미와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을 데려온다(刷還使)’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통신사가 200년 넘게 유지된 이유는, 막부의 위상을 높이려는 일본의 요구와 일본의 국정을 시찰하고 문화를 전파하려는 조선의 요구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한양에서 에도에 이르는 약 1800킬로미터의 여정은 실로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국가적 이벤트였습니다. 바다를 건너느라고 목숨까지 걸어야 했던 통신사행에 참여한 인원만 5백여명에 이르렀으며, 사행 기간도 10개월에서 1년이 걸렸습니다. 더군다나 잔인한 전쟁까지 겪은 후이기에, 조선과 일본의 교류는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었는데요. 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이들이 남긴 사행록(현재 40여종이 남아 있음)에 따르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배향한 교토의 절에서 연회를 받지 않으려고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이나 쓰시마번의 번주에게 절을 하라는 요구에 분연히 맞서는 모습 등이 나오기도 합니다. 일본 전문가들에 따르면, 조선과 일본은 외교에 대한 기본 의식조차 달랐다고 하는데요. 실용적인 관점에서 외교를 생각한 일본과 달리, 조선은 외교를 도덕적 규범인 예의 문제로 다루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통신사’의 의미조차 달랐다고 하는데요. 일본에서 통신사의 ‘신(信)’이 기본적으로 국서(國書)를 의미했다면, 조선에서 ‘신(信)’은 예의와 직결된 ‘신의(信義)’를 의미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조선과 일본은 교류를 이어가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는데요. 특히 조선과 일본과의 중계무역을 통해서만 생존할 수 있었던 쓰시마번(대마도)의 역할에 주목한 논의가 많았습니다. 쓰시마번은 문서를 위조할 정도로 조선과 일본의 교류를 위해 아낌없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지혜’를 통해 당시 일본에서는 일종의 조선붐이 일었다고 하는데요. 대표적으로 당시 조선 인삼의 인기는 대단했다고 합니다. 1709년 한 해 동안 에도에 992kg의 인삼이 수입되었으며, 하루 매출액이 현재 시가로 수천만 원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다시로 가즈이 교수에 의하면, 이처럼 조선 인삼이 유행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인삼의 약효를 높이 평가한 허균의 ‘동의보감’이 널리 읽힌 결과라고 합니다. 이 날 3시간 넘게 진행된 심포지엄에서 말한 ‘지혜’의 핵심은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지극한 마음이라고 정리해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 열린 마음만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핵심단어(通信使)의 의미조차 다른 상황에서도 수백 년이 넘는 교류를 가능케 한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한 방청객이 오늘날 쓰시마번의 역할을 누가 해야겠냐고 질문했는데요. 이에 대해 발표자는 이제 ‘일본인 전부’가 쓰시마번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답변했습니다. 한국인인 저로서는 일본인뿐만 아니라 한국인도 한일간의 건설적인 관계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교롭게도 행사가 열린 도시센터호텔 맞은편에는 튜더 양식의 아름다운 아카사카 프린스 클래식 하우스가 있었는데요. 조선통신사가 한반도와 일본의 우호 관계를 상징한다면, 아카사카 프린스 클래식 하우스는 일본의 강압적인 한반도 지배를 상징하는 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대한제국의 황태자였던 이은(1897~1970년)이 1930년부터 해방이 될 때가지 살던 곳인데요. 1907년 11세의 나이로 이토 히로부미를 따라 일본에 간 이은은 일제에 의해 유린당합니다. 육군 중앙유년학교에서 공부한 후 일본군이 되었으며, 결혼도 일본 황족 여성인 마사코와 해야 했으니까요. 그럴듯한 어떤 명목을 갖다 붙인다 해도 이은은 일제의 볼모이자 인질이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이은의 부인인 이방자 여사가 스페인풍이 가미된 이 아름다운 영국식 건물을 “관청처럼 감시받는 듯해 숨막히는 곳”이었다고 증언한 것에서도 드러납니다. 심포지엄을 듣고 돌아오는 길에, 저는 도시센터호텔과 아카사카 프린스 클래식 하우스 사이로 한반도와 일본 사이를 가로지르는 두 갈래 길이 펼쳐져 있는 듯한 환영 속에서 오랫동안 서성여야만 했습니다. /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국가가 스스로 수립한 계획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포항의 미래를 열어갈 핵심 인프라 사업이자, 동해안권과 국가 균형발전의 결정적 축인 ‘영일만대교’ 건설사업의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이 결정은 단순히 한 도시의 예산을 줄인 것이 아니다. 이는 수십 년간 이어져 온 포항 시민의 꿈을 짓밟은 것이며, 정부에 대한 신뢰를 송두리째 흔드는 심각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정부는 ‘불용 가능성’을 삭감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이 명분은 현장의 현실과 시민의 바람, 정부 스스로 수립한 정책 기조와도 어긋난다. ‘영일만대교’는 이미 지난 2019년 제5차 국토종합계획에 포함되었고, 이후 국가도로망 계획과 고속도로 건설계획에도 반영된 바 있는 명백한 국책사업이다. 현재 국토부 역시 노선 최적화를 위한 부처 간 협의를 이어가고 있으며,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연내 착공도 가능한 상태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번 2025년도 제2차 추가경정예산안에서 영일만대교 구간 공사비 1821억 원을 전액 삭감했다. 이는 단지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스스로 설정한 계획을 스스로 뒤엎은 것이며, 국민과의 신뢰를 저버린 결정이기도 하다. 포항은 오늘, 몇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정부에 묻고자 한다. 왜 수도권과 특정 지역의 대형 국책사업들은 흔들림 없이 예산이 확보되는 반면, 영일만대교는 ‘불용 가능성’이라는 모호한 이유로 삭감됐는가? 왜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여러 차례 공언한 지역 공약은, 임기 초부터 무시되는가? 이 질문들은 단순한 지역 이기주의의 표현이 아니다. 이는 국가의 행정이 얼마나 일관성 있고 정의롭게 작동하는지를 묻는, 본질적인 질문이다. 포항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 포항은 더 이상 정부 정책의 후 순위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지역 균형발전은 구호가 아닌 국가의 책무이며, 대한민국 전체가 함께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다. ‘영일만대교’는 단지 하나의 교량이 아니다. 그것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내륙과 해안을 연결하는 대한민국 미래의 가교이며, 국가 인프라망의 핵심 고리이다. 더욱이,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당시 내건 ‘영일만 횡단 대교 적극 추진’이라는 공약은 아직도 시민들의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대통령의 말은 국가정책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며, 국민의 신뢰는 곧 정부의 자산이다. 그 약속을 저버린다면, 정부는 국민 앞에 당당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요구한다. 정권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것은 약속이다. 계획보다 앞서야 할 것은 국민이다. 포항 시민들은 단지 지역의 이익을 위해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국민이 가진 신뢰를 지키고, 정부가 지켜야 할 책임과 공공성에 대한 요구이다. 우리는 기다릴 것이다. 하지만 그 기다림이 절망으로 바뀌지 않도록, 정부의 긍정적인 결단을 강력히 촉구한다. 지금이 바로 정부가 답할 시간이다.

중소기업의 경영자를 보면, 전문 경영인보다 창업주를 많이 만난다. 기업 창업주는 특징이 있다. 6·25 잿더미에서 맨손으로 일군 창업주들은 자사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그 애착심은 집착이 되어 악영향을 주기도 한다. 집착이 깊으면 열린 조직보다 경직된 조직 문화로 가는 경향이 있고, 좋은 기업으로 가는 데 장애가 된다. 회사 규모가 작을 때는 가족 경영이 되지만, 100명 이상의 규모가 커지면 효율적인 조직 운영체계를 갖추고 장기적으로 기업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작은 기업의 조직과 문화를 바꾸는 데는 CEO의 변화가 지름길이다. 경영 리더십의 변화로 건강한 조직을 만들고, 기업 성과를 창출 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으로 TOP 진단이 있다. CEO가 생산 현장의 TOP 진단을 하려면 3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 전 직원 참여다. 현장에 문제와 답이 있다. 전원 참여를 통해 모든 현장의 낭비를 찾고 개선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생산 현장뿐만 아니라 사무 행정 직원들도 개선 활동에 참여한다. 둘째, 활동판을 만들어야 한다. 개선 내용을 자랑할 수 있는 틀인 것이다. 팀을 구성하고 계획 및 실행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활동판 운영이 필요하다. 셋째, TOP의 현장 진단 운영체계다. 최고 경영자의 관심과 개선을 통한 현장과 직접 소통으로 현장 문화를 바꾼다. TOP 진단은 ‘대화의 장, 격려의 장, 코칭의 장’으로 운영한다. 대부분의 CEO들이 이것을 잘 못한다. CEO 교육을 통해 TOP 진단의 목적과 방법, 활동 판에서 개선 활동 내용을 듣고 잔소리 하거나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고 교육을 하면 안 된다고 얘기한다. 작은 개선 활동이라도 끝까지 경청하고, 구체적으로 칭찬한다. 3가지를 칭찬했으면 1가지 코칭을 하고, 코칭 방법은 지시형이 아닌 질문 방식으로 부하 직원들이 주인공이 되게 하는 흐름이다. 인천 남동공단에 위치한 공구 보관함을 만드는 M사를 컨설팅 할 때 일이다. 보관함 제작, 조립 등 수작업이 많이 들어가고, 부품, 완성품의 위치 설정과 수량 관리가 가치 창출로 이어진다. 직원들의 긍정 에너지와 생각이 성과로 연결되는 일의 속성이다. TOP 진단을 앞두고 CEO에게 진단 요령을 설명했다. 막상 현장 가는 길에 흐트러진 물건을 보고 잔소리가 시작된다. 활동판 앞에서는 경청하지 못하고 중간에 끊어 교육 같은 코칭을 한다. TOP 진단은 역효과가 나고, 개선 문화는 멈추게 된다. 이것을 정상화 하는 데 3개월 정도 소요되었다. 사람의 오랜 경험과 지식, 습관은 하루 아침에 변화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M사는 사장부터 임원, 직책 간부까지 한 구역을 정해서 빗자루를 들고 꾸준히 솔선하게 했다. TOP 진단 시 현장과 공감 형성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다. 또한, 정기 회의체를 통하여 현업의 의견을 반영하고 이슈 사항은 즉시 풀어가고, 직책자와 일반 직원들까지 마인드 변화관리를 지속했다. TOP 진단이 6개월 될 무렵, 현장은 변화가 일어났다. TOP 진단이 직원 생각이 열리고, 긍정 조직 기반이 형성되며 개선 활동이 지속되는 기업 문화로 변모하는 것이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사람은 누구에게나 고향이 있다. 태어난 곳이든 성장기 배경이 된 곳이든 누구나가 어느 한 곳이나 본가 또는 외가 등지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 출생과 성장에 관한 당시의 기록이나 문헌자료가 불분명한 위대한 인물일수록, 현재에 이르기까지 배경지의 논쟁이 되고 지자체의 대립과 반목을 유발하는 경우가 더러 있기도 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포은 정몽주 선생의 출생지와 성장지에 둘러싸여진 포항과 영천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주장과 논점일 것이다. 포은 정몽주 선생은 고려말의 절의(節義)의 충신이며 동방이학(東方理學)의 비조(鼻祖)로 추숭되는 큰 인물이다. 고려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학문·외교·경제·군사·정치·인품 등 모든 면에서 특출난 고려 최후의 보루이자 문무를 겸비한 역사에 길이 남은 인물이었다. 문헌에 따르면 포은은 영일현 문충리에서 탄생, 인근 오천 구정리에 옮겨 살다가 유년 시절인 9~10세 경에 영천 우항리 외가댁에 잠시 머물렀고 가족들이 그곳에 터를 잡은 후에는 영천으로 완전히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영천에서는 포은 선생에 대한 기록이나 사료, 자취 등을 근거로 영천시 임고면 우항리에서 출생했다고 하여 생가터와 임고서원을 대대적으로 성역화하는 등 영천이 ‘포은의 고향’임을 굳히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아 포은선생의 고향이 어디인가는 후학들의 관점에서의 문제이며, 포은선생에게 있어서는 포항이던 영천이든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포은선생의 충절과 위업·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지역문화의 정체성으로 제고시키는 노력과 지역민들이 긍지와 자부심을 갖도록 의미 있는 전승활동과 추모사업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한 측면에서 오천읍에서 포은 정몽주 선생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기 위해 2008년부터 매년 포은문화축제를 성대하게 개최해 왔고, 민간에서는 포은추모사업회를 발족하여 포은선생의 시문(詩文)과 예술을 고양시키는 사업 등이 이어지고 있어서 참으로 고무적으로 여겨진다. 포은 정몽주 선생 탄생 688주년을 기념하여 최근 1주일 간(6월 16~22일)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포은국제서예교류전’은 한·미·중·일 등 20여 개 국가의 저명작가들이 출품한 200여 점의 필묵작품들이 포은선생의 학예와 덕행을 만방에 드러내서 주목받았다. 포은선생의 업적과 사상을 서예라는 예술을 통해 되새기는 국제 교류전은 각국의 귀한 작품들을 함께 전시·감상하는 특별한 시간이 단순한 문화교류를 넘어, 예술적 공감과 우정을 나누는 뜻깊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포은선생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고 예술적인 삶을 재조명하여 충효사상과 외교활동을 널리 알리고 창조적인 계승과 발전을 도모하는 포은서예국제대회 공모전·포은선생추모백일장 등의 다양한 문화적인 프로그램도 가을에 예정돼 있어서 사뭇 기대와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역사회에서의 문화예술의 향기와 진흥은 지속가능한 도시의 품격을 높이고 시민의 정서적인 풍요를 이끄는 원동력이다. 지방시대를 선도하는 대표적인 문화도시 포항에 포은선생의 얼과 자취를 보듬어 고유한 정체성으로 확립, 발전시키고, 예술과 문화적인 가치를 지속적으로 발굴, 진작시켜 문화와 예술이 꽃피는 ‘시민 모두가 행복한 포항’으로 나아가도록 각계각층의 노력과 지원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5일 취임 후 처음 가진 국무회의에서 보건복지부장관에게 느닷없이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왜 이리 높나요”라고 질문을 던져 주목을 받았다. 의사단체와 집단 갈등을 빚는 현안 문제에 대한 질문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복지부 주변에서는 자살률을 화두로 삼은 대통령의 의도를 두고 설왕설래가 오갔다고 한다. 정치권 등에서는 새로 취임한 대통령이 자살률을 언급한 것은 한국사회의 만성적 문제로 자리잡은 자살률에 대한 해법을 강구하라는 의미로 해석했다. 우리나라는 2004년부터 OECD 국가 중 줄곧 자살률 1위를 달리고 있다. 2024년 기준 자살률은 인구 10만명 당 28.3명으로 OECD 평균 11.1명의 두배 이상이다. 연령별로 보면 최근 12년 사이 10대에서만 유일하게 자살률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1일 부산에서는 고교생 3명이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져 숨진 채 발견된 충격적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조사결과, 범죄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고 친구 사이인 이들은 유서를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 유서에는 학업 스트레스와 진로에 대한 부담이 컸다는 내용이 담겨 동반 자살로 추정된다고 했다. 매우 충격적 사건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에서 자살률이 높은 것에 대해 복합적으로 해설한다. 실업난 등 경제적 이유, 개인주의 발달로 인한 가정 해체, 대화 부족, 그리고 성공 지향적 사회 분위기 등을 꼽는다. 특히 지나친 경쟁사회가 빚는 부작용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 새 대통령이 던진 화두인 자살률이 높은 이유에 대해 이제 정부가 답할 차례다. /우정구(논설위원)

최신 오피니언
심충택 정치에디터의 관점

여권과의 소통채널 절실해진 TK

경북매일신문은 지난 6·3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대구·경북(TK)과 새 정부를 잇는 채널의 필요성을 특집으로 다뤘었다. 여야가 뒤바뀐 정치지형 속에서 새 정권과의 소통창구 부재로 TK지역의 각종 국책사업 추진과 국비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와 TK지역의 가교역할을 할 메신저로는 주로 이 지역 민주당 출신 정치인들이 리스트에 올랐다. 지난 대선에서 중앙선대위 총괄 위원장을 맡은 김부겸 전 국무총리와 경북도의원을 지낸 영주 출신 임미애 국회의원(비례대표),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이 영입한 안동출신 권오을 전 국회의원, 민주당 대구선대위 총괄위원장을 맡은 허소 대구시당 위원장, 홍의락·최연숙 전 국회의원, 이영수 경북선대위 상임위원장(경북도당위원장) 등의 이름이 거론됐었다. 이들 중 권오을 전 의원은 지난 23일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로 발탁됐고, 이영수 위원장은 농림축산비서관으로 임명됐다. TK지역민에겐 의외의 인물이긴 하지만 서영교 의원(4선)과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수석최고위원)도 이 지역 주요 메신저로 꼽혔다. 이번 대선과정에서 둘 다 TK지역에 대해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상주출신인 서 의원은 대선이 시작되자마자 밤낮 가리지 않고 경북지역 골목골목을 누비며 이재명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다녔다. 김민석 수석최고위원도 대선 당시 TK지역을 전담해 선거운동을 했으며, 최근 대구를 찾아 “대구경북에 책임감과 관심을 갖고 교류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 지역 기업인들의 요구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재명 정부 5년 청사진을 그릴 국정기획위원회가 현재 가동 중이다. 지난 16일 출범한 이 위원회는 8월 중순까지 두 달간 운영되며, 새 정부 100대 국정과제를 선정한다. TK신공항과 영일만 횡단대교 건설을 비롯한 이 지역 주요 현안이 만약 100대 과제에 포함되지 못하면, 자칫 좌초될 위험이 있다. 지금이 골든타임인 셈이다. 국정기획위가 7개 분과위원회와는 별도로 지역 현안과 지방분권 이슈를 전담할 ‘분권균형발전 특위’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니, 대구시와 경북도는 새 정부 정책기조에 맞는 선제적 정책 제안을 할 필요가 있다. 아쉽게도 지금 TK지역은 광역단체장 리더십 실종 상태에 놓여 있다. 이재명 정부와 중앙정치권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광역단체장의 부재는 이 지역으로선 엄청난 위기다. 현재 대구시와 경북도 모두 부 단체장이 중심이 돼 주요 현안이 100대 과제에 포함될 수 있도록 총력전을 펴고 있지만, 단체장이 직접 발로 뛰는 타 시·도에 비해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구·경북 전 공직자들은 지금을 ‘비상사태’로 인식하고, 민주당 대구경북 시·도당을 비롯한 여권 네트워크와 긴밀히 접촉해서 이 지역 현안이 반드시 국정 과제에 포함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현안에 대한 시급성과 당위성, 타당성을 담은 자료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여당으로서도 1년여 남은 지방선거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TK민심을 세심하게 챙길 필요가 있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06-24

삶의 발견

초여름 숲에서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꽤 높고 골이 깊은 산이 있다. 인적이 없는 평일에 가끔 그 산에 들어가 한나절을 보낸다. 산을 좋아한다는 사람은 많지만, 산이 사람을 좋아 할 것 같지는 않다. 너른 품으로 너그러이 받아주는 지는 몰라도 반길 것까지는 없지 않겠는가. 이름 난 산일수록 몰려드는 사람들의 발길에 몸살을 앓는다고 한다. 등산객들을 위한 여러 가지 편의시설들도 사람들은 편리하겠지만 산에게는 상처고 훼손일 터이니. 산행이라면 흔히들 등산을 떠올리겠지만, 나는 산을 만나러 산 속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등산이란 말보다는 입산이란 말이 좋다. 출가하여 승려가 되는 것도 입산이라 하지만.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보는 것도 좋지만 산속 깊숙이 들어가서 우거진 숲속에서 한동안 지내는 걸 좋아한다. 세상과 단절된 것 같은 산속은, 어머니의 품속처럼 아늑하다. 인가의 소음이 끊긴 대신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가 마음을 청량하게 한다. 멀지 않은 곳에서 뻐꾸기가 울기 시작해서 숲이 갑자기 팽팽한 긴장감에 싸인다. 짝을 부르는 소리라 하니, 숲의 모두가 그 구애의 이벤트에 참여한 셈이다. 현대인들은 각종 스트레스로 마음이 지쳐있는 경우가 많다. 온갖 소음과 정보의 홍수, 관계의 피로, 끝없는 성취에 대한 강박 등으로 몸과 마음에 과부하가 걸리게 마련이다. 그래서 명상센터나 템플 스테이 같은 곳을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명상을 통해서 복잡한 생각과 감정을 가라앉히고 현재 순간에 집중함으로써 불안과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자기성찰과 집중력 향상, 인지 능력 개선 등의 효과를 본다고 한다. 사찰에서 숙박을 하는 템플 스테이도 불교문화와 자연체험을 통해서 마음의 안정과 내면 성찰의 기회를 갖게 된다고 한다. 내게는 산속의 숲에서 보내는 시간이 나만의 명상인 셈이다. 일부러 마음을 비우려고도 잡념을 끊으려고도 하지는 않는다. 오관을 활짝 열어놓고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는다. 마음도 가는 대로 내버려 둔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새소리 바람소리도 한참을 따라가 본다. 햇빛을 반짝이며 바람에 팔랑거리는 나뭇잎도 한동안 바라보고 수줍게 피어있는 산유화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물아일체로 자연과 내가 하나로 어우러진다. 나는 어느새 세상일 따위는 까맣게 잊고 근심걱정도 스트레스도 사라진 상태가 된다. 초여름의 숲은 참으로 많은 것은 가지고 있다. 우거진 녹음은 광합성으로 탄수화물을 생성해낸다는 과학적 사실 하나만으로도 생명의 원천이라 하겠지만, 그 품에 온갖 생명을 키우는 모성을 가졌다. 그래서 숲에 들면 포근하고 편안해지는 것이다. 참으로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금수강산으로 불릴 만큼 도처에 무성한 숲은 가졌다. 그야말로 천혜의 자연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햇빛 찬란하고 녹음 무성한 초여름에도 외롭고 서럽고 고달프고 지친 마음이면 누구든 숲으로 와서 위로와 안식을 얻고 새로운 기운을 충전하기 바란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5-06-23

공봉학의 인문학 이야기

왜 부자에게 투표하는가

평생 가난에 찌들어도 매번 부자에게 투표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열심히 살았는데 그들은 쉽게 살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애국심의 원천이 분노인 사람이 있다. 사실을 무시하고 허구의 이야기를 따르는 사람이 있다. 냉철한 이성이 아닌 도덕적 잣대로 한 표를 행사하는 사람이 있다. 가난하지만 진보가 아니라 외치는 사람이 있다. 부자보다, 똑똑한 사람을 더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환경오염으로 건강을 잃고서도 오히려 환경규제를 반대하는 정당에 투표하고, 세금 부담으로 고통받으면서도 대기업 감세를 외치는 정당의 깃발을 흔들 가능성이 있다. 이들은 자신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그 이유를 알지 못하며,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바른 정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사유를 거부한다. 이들에게 항해의 목적은 대부분은 편안함과 즐거움! 배가 도착할 최종 목적지는 그저 먼 나라 이야기다. 그저 바람 부는 데로 흘러갈 뿐. 이들이 행사하는 한 표 속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자신이 되고 싶은 계급? 실패한 부자? 지식인에 대한 혐오? 믿고 싶은 이야기? 자신을 노예로 만든 사람들의 신화? 가난의 이데올로기? 이해 아닌 소속감? 이들이 정치를 이야기할 때, 분노는 설득보다 빠르며, 자신의 고통보다 남의 특혜에 더 분노한다. 이들에게는 적이 필요하다. 적들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가상의 적을 만들어서라도 공격한다. 그냥 적이면 된다. 그 적의 실체는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누군가 만들어 준 적에 대하여 그들을 대신하여 칼을 휘두른다. 그 칼부림으로 이들은 더욱 피폐해진다. 혹시 내가 이들에 속하지 않은지를 의심해 봐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의 정치적 감정부터 다시 설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에 의하여 작동한다. 이때의 다수는 이성적 다수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다수가 감정적 다수라면 민주주의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성적 다수는 감정적 다수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의 견해가 분노로부터 출발하였다면, 지금부터라도 그 견해를 내려놓기를 권한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 우리들의 정치적 견해란 대부분 힘 있는 자들이 설계한 것일 가능성이 많다. 힘 있는 자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이들의 분노를 제공받아 자신의 자양분으로 삼고, 더 큰 분노를 요구한다. 애국심에 불타는 이들은 국가에 대한 충성의 맹세를 암송하면서 스스로 자기의 목을 조른다, 이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내쫓는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표를 던진다. 이들은 그 누구보다 가정에 헌신적인 가장들임에도 자기 아이들이 대학 교육이나 적절한 의료혜택을 결코 받을 수 없는 일에 조심스레 동조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자기가 사는 지역을 몰락한 공업 도시로 만들어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날릴 정책들을 남발하는 후보자에게 압승을 안겨주며 갈채를 보낸다. 이곳이 어디인가? 분노는 애국심의 원천이 될 수 없다. 상대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자. 이들에게 정말로 정치의 적이 있다면 그 진짜 적은, 이들과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평범한 그들(이웃)이 아니라, 이들에게 정치적 견해를 설계한 힘 있는 자들(권력자, 정치인, 재벌, 언론사, 엘리트)일 가능성이 많다. /공봉학 변호사

2025-06-23

세상을 보는 窓

국민의힘, 혁신 없이 미래 없다

보수정치의 미래가 암울하다. ‘국민의 힘’이 아니라 ‘국민의 짐’이 된 지 이미 오래다. 권력에 부화뇌동하는 가짜보수는 민심을 모른다. 대선에 패배하고도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고 생각하니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혁신의지도 없다. 오죽하면 보수진영 내에서도 “망해야 정신 차린다.”, “당을 해체하라”는 등의 격앙된 반응이 나오겠는가. 보수의 참패는 자업자득이요 인과응보다. 중병에 걸린 환자가 수술해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을 무시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 패배의 원인을 알려면 진정한 반성이 필요하고, 그 반성을 토대로 환골탈태할 때 비로소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개혁 성향의 젊은 비대위원장 김용태가 “대선 패배에 대한 오답노트를 제대로 작성해야 한다”고 한 것은 올바른 인식이다. 보수가 자기비판에 인색하거나 기득권 유지에 연연하면 재기는 불가능하다. 무엇을 성찰하고 반성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심을 외면하고 권력의 시녀 역할을 했던 부끄러운 정치행태다. 이른바 ‘윤핵관’과 ‘친윤’으로 지칭되는 권력 해바라기들이 정당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당의 위기를 초래한 주범이다. 이들은 대부분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양남(영남+강남)지역’ 의원들로서 권력에 줄 서는 선수들이다. 비상계엄은 잘못이라면서도 탄핵에는 반대하고, 정상적으로 선출된 대통령 후보 김문수를 한덕수로 교체하려고 한밤중에 쿠데타를 벌인 것도 이들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정치인들이 당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니 진정한 반성과 혁신이 될 리가 없다. 김용태 비대위원장이 제안한 ‘5대 개혁안’은 보수의 재기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임에도 친윤들은 반발했고, ‘윤핵관 권성동’은 의원총회 40분 전에 비대위원장과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회의를 취소했다. 마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낡은 보수가 개혁 보수의 당연한 요구를 거부했으니 민심 이반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최근 국민의힘 지지율(21%)이 민주당(46%)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한국갤럽, 6월 13일). 게다가 신임 원내대표는 친윤과 TK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송언석(3선·김천)의원이 당선되었다. 김 비대위원장의 개혁안에 반대했던 송 대표가 ‘혁신위원회’를 구성하여 당을 쇄신하겠다니 개혁도 ‘내로남불’이 아닌가. 둘 중 누가 더 개혁적인가는 삼척동자도 안다. 민심의 엄중한 명령을 받들어 ‘당 해체 수준의 혁신’을 추진해야 함에도 위기모면용으로 개혁하는 척 흉내만 내거나, 자신을 밀어준 친윤·TK의 정서에 신경을 쓰면 떠난 민심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혁명은 단칼에 반대 세력을 제거할 수 있지만, 개혁은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안고 가야하기 때문이다. 개혁의 대의를 망각하고 사익에 혈안이 된 ‘낡고 늙은 보수’와 결별해야 민심이 돌아온다. 더 이상 국민이 외면하면 재기하기 어렵다. 국민의힘은 뼈저린 반성과 혁신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보수로 거듭나지 않으면 미래가 없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5-06-23

사설

李 대통령, 야당지도부와 자주 만나 소통하라

지난 22일 대통령 관저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의 오찬 회동은 별 성과 없이 마무리됐지만, 이 대통령과 야당이 한 테이블에 앉아 현안을 논의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자리였다. 지난 윤석열 정부에서는 대통령 취임 이후 720일만에 영수 회담이 열렸지만, 당시 윤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서로 얼굴만 붉힌 채 헤어졌다. 이 대통령이 이번에 국민의힘 김용태 비대위원장과 송언석 원내대표 등 야당 지도부와 만나는 시기를 앞당긴 것은 야당과의 원활한 소통을 원하는 이 대통령 뜻이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지난 4일 취임식에서 이 대통령이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통합을 강조한 만큼, ‘정치 복원’에 대한 국민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여야는 현재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 및 임명동의안 표결, 법사위원장을 비롯한 일부 상임위원장 인선, 30조원대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추경) 심의 등을 놓고 충돌하고 있다. 이날 회동에서도 김용태 위원장은 7대 요구사항을 들고 와 읽었고, 송 원내대표는 법사위원장을 야당에 할애해 달라고 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직접적인 답변은 피하며 “최대한 자주보고 대화하자”고 했다고 한다. 사실 원내 압도적인 의석을 갖고 있는 민주당은 마음만 먹으면 총리 인사나 추경예산처리를 모두 단독으로 강행 처리할 수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모든 법안이나 예산,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 등에서 민주당이 양보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지만 이번처럼 민감한 현안들이 여·야·정 협상 테이블에서 논의되는 것 자체가 국민이 보기엔 정치복원으로 인식된다. 특히 여야 대표가 국회에서 형식적으로 만나기보다는 행정부 수반이자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까지 함께하는 자리가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강성 지지층에 기대는 우리나라 ‘진영정치’ 문화가 단시간에 개선될 수는 없지만, 이번 회동이 여야 소통정치의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과거처럼 정권 초반 국민 지지를 얻기 위한 일회성 행사가 돼선 안 된다.

2025-06-23

팔면경

미국이 폭격한 이스파한은…

지난 21일. 미국은 핵 관련 시설이 있다고 의심되는 이란의 세 도시를 폭격했다. 땅 속 깊숙이 들어가 모든 걸 파괴하는 이른바 ‘벙커 버스터’는 아니었지만, 그 역시 무시무시한 폭발력을 지닌 토마호크 미사일이 이란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이를 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를 괴롭히던 핵 위협을 제거했다”고 큰소리쳤지만, 과장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란의 핵 시설 대부분은 아직 무사하다고 한다. 지구 위 최고의 군사력을 가진 미국이 고성능 미사일을 쏟아 붓고도 목적한 성과를 이루지 못한 것 외에도 다른 문제가 더 있다. 미군이 폭격한 도시 가운데 한 곳이 이스파한이다.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 절반 이상이 보관된 것으로 알려졌기에 표적으로 지목됐을 터. 이스파한은 수백 년간 부침을 지속한 사파비 왕조의 수도다. 이맘광장 주위로 화려하게 솟은 자메 모스크와 알리 카푸 궁전은 이슬람 건축양식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부정할 수 없는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앞으로도 보존돼야 마땅할. 그건 미국 것도 아니고, 이란 사람들만의 것도 아니다. 또한, 이스파한엔 ‘사람이 살고 있다’. 이스파한 주민의 절대다수는 난마(亂麻)처럼 복잡하게 얽힌 이란-미국, 이란-이스라엘 전쟁과 무관한 양민들. 제아무리 최첨단 미사일이라도 오폭의 가능성은 상존한다. 이는 전쟁과는 무관한 여성과 아이들이 죽을 수 있다는 말이다. 2011년 초여름. 오렌지색 불빛이 예쁜 이스파한 카주 다리 아래서 이란의 한 사내에게 구운 닭고기와 토마토를 얻어먹었다. 기자 앞에서 커다란 눈망울을 빛내며 착하게 웃던 그의 딸과 아들이 무사하기를 진심으로 비는 오늘이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6-23

사설

중동戰 위기 고조, 지역기업도 비상한 각오를

미국이 이란의 핵시설을 폭격하면서 중동에서의 전쟁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3개 핵시설에 대한 공격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는 가운데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이번 작전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 능력을 무력화하기 위한 조치”라며 이란과의 대화를 요구하며 협상을 재촉했다. 그러나 이란은 미국의 이런 협상 요구에도 전의를 꺾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란 의회는 세계 원유의 20%가량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의결하는 등 중동에서의 전쟁 위기감은 악화일로로 치닫는 분위기다. 중동은 세계 에너지 공급망의 핵심적 위치에 있다. 중동에서 석유를 대부분 수입하는 우리나라 경제는 전쟁 여부에 따라 받을 충격이 적지 않다. 국가 경제가 어려우면 대구 경북의 산업도 예외일 수 없다. 특히 유가 상승과 운송비 증가는 국내 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수출과 내수경기 침체를 동시에 초래할 수 있다. 만약 사태가 확전되거나 장기화 될 경우 전 세계 경제는 예측불허의 국면으로 빠져들 수 있다. 우리 경제는 침체국면이 오래 지속되면서 올해 경제 성장률을 겨우 1%대로 잡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낮고, 최근 10년간 평균 2.5%를 크게 밑도는 수치다. 한국개발연구원은 미국발 통상정책의 불확실성으로 올해 상반기 성장률은 0.2%에 그칠 것 같다는 보고를 했다. 이런 사정을 감안, 이재명 정부는 추경 등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실시할 예정이나 중동전이 확전되면 국내 경기부양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다. 국내 전문가들은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서면 소비, 수출, 투자 전반이 위축돼 경제성장률 0.8% 달성도 어려울지 모른다는 경고를 한다. 철강과 자동차부품, 이차전지 등 지역 산업계는 설상가상으로 위기가 겹치고 있다. 위기 극복에 비상한 각오가 필요하다. 특히 지역의 상공 단체나 중소기업 지원단체, 무역단체 등은 지역기업의 위기 타개에 공동 운명체처럼 함께 해야 한다.

2025-06-23

기자수첩

‘가재는 게편’인 구미시의회

여러 시민들이 지켜보는 공공장소에서 시의회 사무국 직원의 뺨을 때리고 폭언을 하는 등 공개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구미시의회 안주찬의원에 대한 징계가 23일 본회의 안건심의에서 30일 출석정지로 당초예상보다 한단계 낮게 결정됐다. 안의원에 대한 제명과 처벌을 요구하며 잇따라 규탄집회를 열어왔던 구미시공무원노동조합은 물론 일부 시의원까지 당혹감과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곽병주 구미시공무원노조 위원장은 이날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며 “퇴출되어야할 동료의원을 감싸고 도는 지방의원들의 행위는 스스로를 범죄집단임을 자인하는 꼴”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향후 경북공무원노조연맹과 시민단체 등과 연대한 규탄집회를 열어나갈 것"이라며 반발을 예고했다. 지난 9일 안 의원을 제명하기로 의결하고 본회의에 징계안건을 회부한 시의회 윤리특별위 허민근 위원장도 이날 징계처분 결과에 대해 “좋은 결과를 보여주지 못해 죄송스럽다”며 “향후 재발 방지 대책 수립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박교상 구미시의장 역시 “의장 개인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시의원 개개인들도 표결 결과에 따른 시민들의 질책과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 아니겠냐”며 유감을 표명했다. 이날 징계 수위가 최종 결정되자 당사자격인 구미시의회 사무국 직원들은 더욱 격앙했다. 폭력피해 당사자는 이 사안에 대해 묵묵부답하고 있지만 주변 동료 직원들은 “가해자인 안의원께서 마음에서 우러나는 반성과 사과를 하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며 “ 참회하지 않는 폭력가해자에게 방패가 되어주고 징계수위를 낮추어주는 동료 의원들의 태도를 보면서 역시 ‘가재는 게편’ 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비난했다. 사실 이날 제명 징계처분이 부결된 것은 의외의 결과였다는 후문이다. 많은 의원들이 시민들의 공개적 비난과 언론의 거센 비판에 고개를 숙이며 ‘제명처분이 불가피하다’ 는 분위기가 당초 예상이었다. 예상됐던 징계수위가 갑자기 뒤틀린 과정을 놓고 확인되지 않은 여러 루머까지 나돌고 있는 지경이다. 과정이 어찌됐든 이날 징계수위 변경으로 징계대상자인 안의원은 제명의 부담에서 벗어나게 됐다. 그 대신 나머지 24명 시의원들은 ‘여론 비난의 짐’을 모두 함께 떠안게 됐다. 동료의원의 허물을 덜어주고 감싸주려는 얄팍한 호의와 동정심이 ‘가재는 게편’이라는 비판의 굴레에서 구미시의원들은 과연 자유롭고 떳떳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류승완기자 ryusw@kbmaeil.com

2025-06-23

기자수첩

울릉도는 세계적 식물보고(寶庫), 산불나면 큰 손실…철저한 지도 필요

울릉도는 세계적 식물 보고(寶庫)다. 지난 2008년부터 3년 동안 울릉도 실물 표본을 채집한 적이 있는 산림청 국립수목원에 따르면 울릉에는 선모시대, 섬꼬리풀, 섬광대수엽, 섬국수나무, 섬양지꽃 등 전 세계에서 울릉도서만 자라는 특산 식물 28종과 실사리, 난장이이끼, 분홍바늘꽃, 나도생강 등 희귀식물 50종, 그리고 자생식물 464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중 ‘울릉도 특산 식물’은 28종은 대부분이 개체 수 100개 미만의 멸종위기여서 보존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했다. 섬벚나무만 해도 그렇다. 울릉도의 독특한 화산섬 생태계에서 진화한 고유종으로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한국 고유 나무로 생태적·문화적 가치가 매우 높다. 하지만 지금 멸종위기다. 관광 개발, 불법 채취, 기후변화 등의 위협으로 개체 수가 급감해 현재 약 700~1000그루에 그치고 있다. 환경부가 급한 나머지,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과 천연기념물 제189호로 지정해 보존에 나서고 있다. 울릉에서는 식물 이름 앞에 섬(島)자가 붙은 식물은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희귀식물로 일단 판단한다. 다행이라면 울릉도가 육지와는 130km 이상 떨어져 식물이 교잡(交雜) 되지 않아 울릉도 자생식물이 해마다 늘어난다는 점이다. 정부도 이를 눈여겨 보고 있다. 특히 산림청 국립수목원은 개체 수가 수십 개에 불과한 선모시대, 섬꼬리풀 등의 종자를 수집·증식해 올해부터 복원에 나는 등 보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과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울릉군도 인공증식 기술로 증식 재배한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인 큰바늘꽃(Epilobium hirsutum) 200개체를 울릉도 봉래폭포 인근에 이식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울릉도에는 벌써 두건의 산불이 발생,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서면에서 일어난 이 산불은 각각 1.5ha와 400㎡를 태웠다. 만약 이곳이 개체 수가 소수인 식물의 서식지였다면 세계적 희귀식물이 사라졌을 수 있다. 알다시피 산불이 나면 남는 건 잿더미뿐이다. 특히 울릉도의 산은 거의 절벽 수준이다. 화재가 발생하면 밧줄을 이용해 접근해 화재를 진압해야 해 산불끄기도 어렵다. 대형산불이라도 발생하면 육지에서 헬기가 와야 해 피해면적이 커질 수 밖에 없다. 한순간의 실수로 세계적으로 귀중한 희귀수목이 사라지는 것을 특별히 유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울릉도 산불은 대부분 실화였다. 이번 산불을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당국의 철저한 지도와 감독이 필요하다. /김두한 기자 kimdh@kbmaeil.com

2025-06-23

박창원의 포항 민속문화 이야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호미곶

포항의 ‘핫 플레이스’, 호미곶에 관해서 떠도는 풍문 중에 고산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 때 이곳을 일곱 번이나 답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교통수단이 발달한 지금도 일곱 차례나 답사하기는 쉽지 않은데, 순전히 발품을 팔아 다녀야 했던 당시에 일곱 번이나 이곳에 왔다고? 사이버 공간 곳곳에 기정사실처럼 설명하고 있는 기사 하나를 예로 들면 이렇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는 호미곶과 죽변 두 곳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동해로 튀어나왔는지를 재려고 죽변과 장기 사이를 일곱 차례나 오갔다고 한다. 그 결과가 대동여지도에 정확히 반영되어 호미곶이 더 튀어 나오게 그려졌음은 물론이다.“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 때 포항 호미곶과 울진 죽변 중 어느 곳이 동쪽으로 더 튀어나왔는지를 알아보려고 죽변과 장기 사이를 무려 일곱 번이나 왕래했으며, 호미곶이 더 튀어나왔음을 확인하고는 지도에 반영했다는 것이다. 죽변에서 호미곶까지 거리가 얼마인데 일곱 번이나? 그리고 수백 리 떨어진 두 곳 중 어디가 더 튀어나왔는지를 어떻게 측정하지? 등등의 의문이 들지만 ‘의지의 한국인’ 김정호라는 사람 앞에서 의심은 묻히고 만다. 사실처럼 떠도는 이 이야기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1967년에 발간된 포항의 향토사학자 박일천의 ‘일월향지(日月鄕誌)’에 처음 언급되었다. 이 책 ‘김정호와 대동여지도’라는 꼭지에 적힌 내용은 이렇다. “김정호는 조선 철종 때의 사람으로 자는 호는 고산자(古山子)이고 예산인이며 출생과 사망은 상세하지 않다. 어릴 때부터 뜻을 세워 힘써 공부하여 천문지리에 통달하고 여러 차례 잡학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신분이 미천하여 급제하지 못하였다. 후에 느낀 바가 있어 응시를 포기하고 독학으로 공부한 지리학을 후진에게 가르치고 편의를 제공하고자 순조 말년 5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청구선표도(靑丘線表圖)라는 우리나라 지리원도(地理原圖)를 제작하여 나라에 바치니 순조가 표창하였다. 후에 30여 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답사하며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것이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와 대동지지(大東地志) 전 23권 15책인데, 이를 천하에 공포하니 사계가 극찬하였다. 대원군 섭정시에 쇄국정책을 시행하자 이 저술이 국가기밀을 누설한 것이라 하며 판각을 압수하여 불태우고 김정호를 체포하여 투옥하니 옥사하였다. 김정호의 유적을 살펴보면, 죽변갑(竹邊岬)과 장기갑(長鬐岬)에서 여러 날 체류하며 죽변갑과 장기갑 중에서 어느 갑이 더 돌출하였는가 살피면서 장기 죽변 사이를 7회나 걸어서 오고갔다 한다.“ ‘일월향지’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장기갑(현 호미곶)과 죽변 중 어디가 동해 쪽으로 더 튀어나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장기와 죽변 사이를 일곱 번이나 답사했다고 적었다. 그런데 ‘일월향지’의 저자 박일천은 어디에 근거하여 자신의 책에다 이렇게 썼을까? 대동여지도를 제작할 때 있었던 김정호의 활약상은 육당 최남선이 처음 꺼냈다. 최남선은 1925년 동아일보에 ‘고산자를 회(懷)함’이라는 글에서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김정호가 전국을 답사했으며, 백두산을 일곱 번이나 올랐고, 수십 년을 떠돌아다녔다고 적었다. 아마도 최남선은 김정호 개인의 노력을 부각시키려고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했던 듯한데, 이후 이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어린이잡지를 통해 더 극적인 내용으로 각색되었고, 이것이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초등학교 교과서인 조선어독본에 실리면서 김정호에 대한 상식으로 굳어졌다. 그 과정에서 대동여지도를 본 대원군이 나라의 비밀을 누설한다며 지도판을 압수하고 김정호 부녀를 옥에 가둬 죽게 했다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김정호의 이야기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 때의 과정은 최한기가 쓴 ‘청구도제’, 신헌이 쓴 ‘대동방여도서’에 “오랜 세월 동안 자료를 찾고 수집·열람하였다,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증거로 삼고 여러 지도를 서로 대조하며 여러 지리지 등을 참고하였다.”는 등의 기록에 전하는데, 어디에도 직접 답사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당연히 몇몇 부족한 곳은 직접 답사를 했겠지만 경제적 여건이 좋지 못했던 김정호가 전 국토를 답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1960년대말 포항의 향토사학자 박일천은 최남선이 퍼뜨려 교과서에까지 실린 김정호에 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일월향지’에다 적었다. 다만 여기서는 ‘백두산 일곱 번 등정설’이 ‘장기갑 일곱 번 답사설’로 바뀌었으며, 장기갑과 죽변갑 중 어디가 더 튀어나왔는지를 확인할 목적으로 장기와 죽변 사이를 일곱 번이나 답사했다는 자신의 상상력까지 보태 기술한 것으로 보인다. 그게 확대·재생산 과정을 거쳐 사실처럼 인식됐고, 조선 중엽 격암 남사고가 이곳을 호미등이라 함으로써 오늘날 호미곶으로 부르는 단초가 됐다는 설과 함께 호미곶을 설명할 때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되고 말았다. 우리가 역사를 기술할 때 아무리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라도 합리적인 의심을 해 봐야 하고,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 왜곡이라는 우를 범하게 되고, 이를 바로 잡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박창원 동해안민속문화연구소장

2025-06-22

김진국의 ‘정치 풍향계’

청문회는 국민에게 겸허하게 소명하는 자리다

인사청문회의 뒷맛은 대부분 참담하다. 근엄하고, 고결한 척하던 고위 인사들이 한 꺼풀만 벗기면 왜 모두 그 모양인지…. 물론 제기된 의혹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날 때도 있다. 야당이 억지로 문제 삼는 일이 다반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를 둘러싸고도 말이 많다. 국민의힘에서 제기하는 의혹을 보면 버는 돈보다 지출이 터무니없이 많다. 지난 5년간 최소 5억 원을 수입보다 더 많이 썼다고 한다. 부정한 돈을 받았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다. 중국 칭화대 학위를 취득이나 아들의 특수학교 전·입학, 유학에 대해서도 지적이 나온다. 2억 원이 넘는 유학비용만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의 교육 철학을 거슬러, 도덕적 문제도 제기된다. 대부분의 공직 후보자가 안고 있는 의문일 수 있다. 그 대응 과정이 더 문제다. 무엇보다 본인의 태도다.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면 차분하게 설명하는 게 정도다. 그런데 정작 의혹에 대한 해명이 본질을 피하고, 구차하다. 사실을 밝히기보다 정치적 탄압으로 몰아 동정심을 구하려 한다. ‘표적 사정’은 정치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굳이 비리를 들춰낸다는 뜻이다. 혐의를 사실이라고 믿게 한다. 이미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도 부인했다. 세금 추징과 과징금 부과를 부당한 정치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세무 당국이 봐주지 않았다고 불평했다. 탈세해도 눈감아주는 게 정상인가. 불평하기에 앞서 세금을 추징당했다면 국민에게 먼저 사과부터 해야 도리다. 그는 ‘노부부 투서 사건’을 “정치 검찰, 쓰레기 지라시 협잡 카르텔에 의한 허위 사실”이라고 비난했다. 노부부가 그런 내용을 유서에 남겨도, 검찰과 언론이 모른 체 했어야 하나. 기자가 불편한 질문을 하자 “누가 질문했느냐?”, “어디 채널이냐?”라고 추궁했다. 정치적 공격이라는 다른 틀(프레임)로 의혹을 덮어버렸다. 동문서답(東問西答)이다. 더구나 민주당은 청문회 증인·참고인을 모두 거부했다. 민주당은 처음에 ‘윤석열·한덕수·김문수’를 증인으로 요구했다. 그래 놓고 김 후보자를 검증할 증인은 모두 거부했다. 김 후보자의 가족과 전처까지 부르는 건 지나치다고 해도, 이들을 모두 제외했는데도, 다른 증인들을 모두 거부했다. 자신이 있다면 해명할 수 있는 자리인데, 굳이 피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힘들다. 민주당이 아직도 특검을 밀어붙이는 김건희 여사 전례를 봐도, ‘가족은 건드리지 마라’는 말은 통용되기 어렵다. 민주당은 한술 더 떠 인사청문회법을 바꾸겠다고 한다. 인사청문회의 문제점이 오래전부터 지적됐다. 개인 비리와 도덕성에 대한 청문은 비공개로 하고, 정책 능력 위주로 공개 검증하자는 대안도 나와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총리와 장관들 청문회를 앞둔 이 시점에 “빠르게 개정하겠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속 보이는 위인설법(爲人設法)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허위 사실 공표로 선거법 위 반 유죄 판결이 나오자, 관련 조항을 아예 삭제하겠다고 나선 것과 같은 맥락이다. 누가 정당한 입법이라고 생각하겠나. 김 후보자는 자신을 가장 아프게 공격하고 있는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을 장관으로 추천한다는 윤재관 조국혁신당 의원의 페이스북 글을 공유했다. “검증받을 좋은 기회 얻기를 덕담한다”라는 댓글도 달았다. 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주 의원에게 “70억 원 재산 형성 과정을 소명해 보라”라고 공격했다. 정당하게 모아도 자산이 많으면 죄악이고, 가난하면 부정을 저질러도 된다는 억지와 다를 바 없다. 더구나 청문회는 국민을 향한 검증이다. 의혹 해명은 국민을 향해 하는 것이다. 때 묻은 정치인끼리 짜고, 같이 해 먹는걸 ‘관행’이라고 덮을 일이 아니다. 김 후보자는 벌써 총리 행보다. 부처 보고를 받고, 재난상황실과 현장을 다닌다. 민주당 의석만으로도 임명 동의안 처리가 가능하다. 그래선가 의혹 해소에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망신 한번 당하는 통과의례로 생각하나. 아무리 관행이라도 잘못이 있다면 사과해야 한다. 사과는 사실 확인이 먼저다. 청문회는 국민의힘이 아니라 국민의 의심을 풀어주는 자리다. 아무리 총리 후보자라도 국민 앞에서는 좀 더 겸손하기를 기대한다.

2025-06-22

김규인의 세상보기

낮은 출산율, 해결해야만 한다

회사원 J 씨의 비혼식이 열린다. MZ세대에서 요즈음 늘어나는 추세다.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진다. 어디 이뿐인가? 인구가 줄어든 농촌 지역에선 콩나물이 사라졌다. 어린이집은 매년 폐원이 속출한다. 인구감소에 따른 자연스러운 걸 왜 새삼 거론하느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구 4000만 명 이상 국가 중 0~14세의 유소년 비율은 우리나라가 10.6%로 미국의 17.3%에 비하면 크게 낮은 수치다. 어쩌면 저출산이 문제라고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에 이제는 만성이 되어버린 것 같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한다고 매년 수십조 원을 퍼붓는 정부의 정책은 이미 빛을 잃은 지 오래다. 이제는 국가의 존립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 출산율 하락은 국가의 모든 문제가 섞여서 나타난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다. 청년층은 높은 결혼식 비용과 빚을 지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질 좋은 취업 자리는 부족하고 취업 후도 일자리가 불안하고 높은 사교육비는 한국을 아이 없는 사회로 내몬다. 이에 따라 우리 사회는 노동력 감소와 생산성 저하로 활력을 잃고 한은의 거듭된 금리 인하에도 소비는 위축되고 내수는 바닥 모를 침체의 늪에 빠졌다. 고령화로 복지 부담은 늘어나는 데 이를 떠받치는 청년층은 점차 줄어든다, 이에 따라 지방 소멸과 지역 불균형 문제는 커져만 간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내어놓는 정책은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지도 못한 채 주위만 맴돌고 있다. 이제는 출산율을 회복해도 인구감소는 일어난다. 한국의 인구 유지에 필요한 70만 명의 인구는 이제는 넘볼 수 없는 수치가 되었다. 현재의 출생률이 유지되더라도 매년 50만의 인구가 감소한다. 가임 여성 인구는 해마다 줄어든다. 앞으로 몇 년이 중요하다. 어쩌면 인구감소 문제를 해결할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그 기간 안에 우리는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출산율 하락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거의 모든 나라가 출산율 하락으로 고민한다. 비교적 성공한 해외의 정책을 살펴보면 일본의 ‘2 지역 거주인구 대책’이 관심을 끈다. 도시와 농촌의 2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거주지 이동 고속버스 비용 지원, 거주지 내 지역대학 연계 지역 아카데미 프로그램 마련, 온천 활용 건강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효과를 거두었다.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의 ‘1유로 프로젝트’도 빈집 문제 해결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힘을 보탰고, 대학까지 학비를 지원하는 정책도 프랑스의 인구 증가를 낳은 성공적인 정책이다. 기술자나 노동 인력이 많이 몰리는 국가의 이민정책도 눈여겨볼 만하다. 우리나라 기업체의 자녀 출산 1인당 1억 원을 지원하는 정책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다. 지금이 출산 문제를 해결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시급히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시간은 문제를 해결하도록 기다려 주지 않는다. 모두가 출산 증가의 필요성을 느끼는 이 시간이 해결의 마지막 기회이다. 우리나라와 각국의 좋은 정책을 모으고 보완하여 해결해야만 한다. 시간을 놓치면 어떠한 처방도 효과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김규인 수필가

2025-06-22

유영희의 마주침

양성평등이냐 성평등이냐

정부 부처의 명칭은 조직 개편이나 정책 변화에 따라 바뀐다. 박근혜 정부 때 출범한 미래창조과학부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변경되었다. 더 극적으로 명칭이 변경된 부처는 행정안전부다. 김대중 정부 때 내무부와 총무처를 통합해서 행정자치부라고 한 것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행정안전부로 바꾸고 박근혜 정부 때는 안전행정부로 다시 문재인 정부 때는 다시 행정안전부로 이름을 바꿨다. 이번 국민주권정부에서는 여성가족부가 성평등가족부로 변경된다고 한다. 여성가족부 명칭 변경은 이미 2022년 대선 때부터 공약으로 내세웠던 것이니 당연한 변화다. 역사를 조금 더 올라가보면 여성가족부 명칭을 변경하려는 시도는 10년 전에도 있었다. 박근혜 정부 때였던 2015년 김희정 여가부 장관이 양성평등가족부나 양성평등청소년가족부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한 적이 있다. 2023년 김도읍 의원을 비롯해 국민의힘 소속 의원 9명이 발의한 ‘양성평등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성평등 대신 양성평등으로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의원들은 제안이유에서 ‘헌법 제36조제1항’에서 ‘양성의 평등’이라고 되어 있고, 양성평등기본법이 이미 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일부 법률에서 ‘성평등’이라는 표현을 쓰면 혼란이 생긴다면서 양성평등으로 통일하자고 한 것이다. 그러다가 작년 7월, 황유정 국민의힘 시의원이 발의한 ‘서울시 성평등 기본조례 전부개정 조례’가 통과되었다. 그 내용은 김도읍 의원의 발의한 법률안과 일맥상통한다. ‘성평등 기본조례’의 명칭을 ‘양성평등 기본조례’로 변경하고, 조례 각 조항의 ‘성평등’이라는 용어도 ‘양성평등’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황유정 시의원은 “본 조례가 헌법에 명시된 ‘양성평등’ 이념을 실현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례이기 때문에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 같은 용어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도읍 의원이나 황유정 시의원의 발의 취지를 보면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성평등을 양성평등으로 변경할 때 성소수자들의 반발이 심했던 것을 보면 정말 개정법안이 단순히 표현의 일관성만 주장한 것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양성평등이냐 성평등이냐 글자 하나 차이지만 의미는 크게 다르다. 그런 점에서 2021년 양성평등기본법이 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주권정부가 굳이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쓴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성평등이라는 용어는 차별금지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평등이라는 단어에는 남녀뿐 아니라 동성애까지 포함한 다양한 성이 포함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2007년 처음 발의된 차별금지법의 주요 내용 중 하나가 동성애 차별 금지다. 이 법안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논의를 거듭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이번 여성가족부 명칭 변경 움직임에 대해서도 기독교에서는 성평등가족부라는 명칭은 차별금지법을 관철하려는 것이라면서 양성평등가족부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에 정해진 평등 이념에 따르면 모든 차별은 금지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굳이 양성이라고 제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6-22

사설

“TK에 책임감 갖겠다”는 김민석, 진심이길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 20일 대구를 찾아 “대구경북에 책임감과 관심을 갖고 교류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총리가 되면 이 지역 기업인들의 요구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김 후보자는 이날 수성구 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DIP)에서 열린 ‘인공지능 대전환(AX) 간담회’에서 대구·경북(TK)지역 정보통신 기업인·전문가들과 만나 “총리가 되면 바로 대구경북에 못 올 가능성이 있어 조금 더 자유로운 입장일 때 와서 인사를 드린다”며 방문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수성알파시티는 영남권 AI 연구개발의 허브로서 바이오, 로봇 등 지역특화산업을 AI 융합산업으로 전환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 “이곳이 대한민국, 더 나아가 세계의 AI 발전에 중요한 기반 지역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가 말한 것처럼 수성알파시티는 수도권 이남 최대 ICT 집약 단지이다. 우리나라에서 기업인 스스로 클러스터를 구축한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 취임 직후에는 이곳을 ABB(인공지능, 블록체인, 빅데이터)산업 허브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구상이 실현되려면 수조 원의 예산이 필요한데, 향후 국비 확보가 관건이다. 김 후보자는 이날 이재명 대통령이 안동 출신임을 언급하면서 “대통령이 원래 갖고 계신 대구경북에 대한 관심을 제가 잘 알고 있고,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는 입장에서 이 지역이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TK지역은 지금 6·3 대선 이후 정치적 소외감이 아주 강하다. 여야가 뒤바뀌는 정치 지형 속에서 정권과의 소통 채널이 거의 없어 각종 국책사업 추진과 국비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지역 25명의 지역구 국회의원 중 여당 의원은 비례대표인 임미애 의원(의성)을 제외하고는 전무하다. 이런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바쁜 가운데서도 대구를 찾은 김 후보자가 TK지역의 후원자가 되겠다고 약속한 것은 무엇보다 다행으로 여겨진다.

2025-06-22

破顔齋(파안재)에서

‘국뽕’은 즐거워?!

12·3 내란 전에 내가 즐겨 보고 들었던 유튜브는 ‘국뽕’과 관련된 것이었다. 근현대 문학 작품과 이름난 무협지 낭독을 듣기도 하고, 영화도 더러 보았지만, 역시 주류는 국뽕이었다. 나처럼 나이 먹은 자들은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성향이 어느 정도 체화돼 있다. 어린 시절부터 나라와 민족, 역사와 위인들에 관한 내용을 반강제로 읽고 기억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힘을 보탠 원인 제공자는 내가 다닌 대학의 분위기였다. 모든 사안에 ‘민족’을 붙여야 직성이 풀리는 기묘한 대학에서 나는 10년 동안 학부와 대학원 석박사 과정, 시간강사와 연구소 간사로 살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의 깊은 곳에는 민족혼이나 강렬한 자주적 역사의식이 자리한다. 혹자는 나를 자유주의자라고 부르지만, 나는 민족주의자를 자처하고 살아간다. 각설하고, 얼마 전 미국의 경제 전문 매체 ‘포브스’(Forbes)가 발표한 2025년 세계 10대 강대국 순위가 눈에 들어온다. 세계 각국의 국민총생산과 군사력, 외교적 영향력, 기술력, 문화 파급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서 순위를 매겼다고 한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도이칠란트의 뒤를 이어 세계 6위 강대국으로 선정되었다. 우리나라 뒤를 이어 프랑스,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이 7위부터 10위까지 이름을 올렸다. 언론 보도를 보다가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야, 이게 정말 실화냐’,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국방력이 세계 5위라는 사실은 나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하지만 국방력 이외의 주요 요소를 고려해서 선정한 강대국 6위라는 게 실감 나지 않았던 터다. 1965년 1인당 국민소득 105달러로 세계 최하위 수준의 대한민국이 60년 뒤 세계를 선도하는 기술과 군사력, 문화와 예술의 나라가 된 것이다. 정말 경이로운 사변(事變)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 경제적인 성공만이 아니라,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통한 민주주의 성장도 현저하다. 항상 우리를 얕잡아본 일본도 우리보다 12년이나 늦은 2009년에서야 정권교체에 도달했다. 1951년 10월 1일 영국 ‘더타임스’에 실린 ‘한국의 전쟁과 평화’ 기사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한국의 폐허에서 건강한 민주주의가 자라나는 것보다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가 성장하는 걸 기대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다.” 민주주의와 경제의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낸 우리의 저력에 새삼 가슴 뻐근하고 어깨가 절로 으쓱한다. 역시 나는 민족주의자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내란수괴를 비롯한 내란 잔당과 그 수하 떨거지들의 협잡과 망발이 아직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수구 삼류 언론과 정치검찰, 극우에 기대서 생명줄을 연장하려는 얍삽한 정치인들과 그 세력이 한여름 독버섯처럼 기생하고 있다. 사적(私的)인 이익과 대물림, 편법과 불법, 무법과 탈법, 초법(超法)과 무소불위로 무장한 자들의 약탈 만행! 만약 반민특위가 성공했다면, 5·16 군사쿠데타와 1980년 광주학살과 1990년 3당 야합이 없었다면, 716호의 부패와 타락, 503호의 국정농단 사태와 탄핵, 12월 3일 계엄과 내란이 없었다면, 우리는 훨씬 더 높이 날아올랐을 것이다. 국뽕의 기억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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