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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중국 정부가 작년 11월부터 한국인에 대한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면서 우리나라도 이달 29일부터 내년 6월 말까지 한시적이지만 중국 단체관광객에 대해 무비자 입국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쇼핑업 등 관련 산업계는 중국 특수가 일 것으로 보고 크게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정부도 이번 조치로 내수진작 등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 관광객은 2016년 800만명을 피크로 점차 줄어들었다가 2023년부터 늘어나 2024년에는 460만선에 이르고 있다. 한국을 찾는 국가별 관광객을 보면 중국이 가장 많다. 다음으로 일본이다. 중국 관광객이 쓰고가는 관광비용이 국내 내수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그러나 중국 관광객이 다녀가는 곳은 대체로 한정돼 일부 지역에서만 특수를 누리는 것이 사실이다. 관광공사 등에 따르면 중국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서울이고 다음은 부산이다. 각종 문화산업이 풍성한 대도시의 이점이 중국 관광객 유인에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경주도 중국 관광객이 많이 다녀가는 곳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으나 서울, 부산만큼 관광 효과가 커지는 않다. 경북도가 중국 단체관광객의 무비자 입국을 계기로 중국 관광객 유치에 본격 나서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철우 경북지사가 중국 TV에 직접 출연해 경북의 명소 소개와 매력을 알리는 등 마케팅 준비에 열중이라고 한다. 특히 경주는 10월 말 APEC 정상회의 개최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곳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져 중국 단체관광객에게는 특별히 흥미가 있는 장소다. 또 천년고도 경주 자체가 문화재 보고의 도시다. 가장 한국적이면서 한국을 대변하는 문화관광지로 국제적으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APEC 경주 개최를 발판으로 경북과 경주의 관광 활성화에 전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경북관광을 알리는 기회로 이번만한 기회도 잘 없다. 반드시 좋은 성과를 내야 한다. 다만 무비자 중국 관광객 유치를 위한 노력이 경북 외에도 다른 지자체에서도 경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국내 소아청소년과(소아과) 전문의 절반가량이 수도권에 집중돼 대구·경북을 비롯한 비수도권 소아진료 공백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소아응급환자 뺑뺑이’와 ‘소아과 오픈런’이 앞으로 비수도권 지역에서 일반화될 수 있는 위기상황인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3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2분기 기준 전국 소아과 전문의 6490명중 절반정도가 서울(1510명)·경기(1691명)지역 의료기관에서 활동했다. 18세 이하 인구 1000명당 전문의 수는 경북이 0.52명으로 가장 적었고 그다음 충남(0.56명), 전남(0.59명)이 하위권이었다. 문제는 전문의를 준비하는 소아과 전공의 감소세도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일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해 병원을 떠났던 전공의들이 복귀했지만, 지역·전공과목별 불균형이 심하다. 소아과의 경우 수도권 수련병원에는 80명 복귀했지만 비수도권은 23명 복귀하는데 그쳤다. 대구권 수련병원에는 단 4명 복귀했다. 복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저조하다. 의·정갈등 이후 필수진료과목과 비수도권 의사 이탈이 더 심각해진 게 원인이다. 대구권 수련병원에서는 “의정 갈등 이후 소아과 전공의 지원자가 사실상 끊긴 상태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의대생들이 소아과를 기피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근본적인 문제는 낮은 수가(진찰·수술비)다. 신생아 수가 계속 감소하는데다 의료수가가 환자를 볼수록 적자를 보는 구조다. 그리고 우는 아이를 달래며 진료하는 게 ‘감정노동’일 뿐 아니라 동네 맘카페 등에 구설수라도 오르면 엄청난 곤욕을 치러야 한다. 부모들의 의료소송도 주요 기피요인이다. 정부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올 2월부터 필수의료 지원 대책을 줄줄이 내놨지만 의료 현장은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의사의 소송 부담 완화 대책도 환자단체의 반대로 현재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의료대란을 부른 윤석열 정부의 실패요인을 잘 분석해서 필수·지역 의료를 살리는데 총력을 쏟아야 한다.

칼럼

후일담 문학이란 장르 개념이 있다. 후일담이란 말 그대로 어떤 시기가 지났다는 사후(事後)의 의식을 전제로 성립하기 때문에, 시대의 이행과 전환을 사고하려는 시도로부터 반복적으로 출몰하거나 호명되는 서사 양식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한국근현대문학사에서 후일담 문학은 1980년대의 변혁운동에 관한 기억을 담은 1990년대의 문학군을 주로 통칭해 왔다. 즉 1990년대의 후일담은 1980년대, 정확히는 운동권의 경험과 실천, 논리가 함의하고 있던 정치 지평이 이제 만료해 버렸다는 다분히 의식적인 판단의 산물로 여겨져 왔다는 것이다. 후일담을 새삼 떠올린 건 지난 주말에 우연히 보게 된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 덕분이었다. ‘80s 서울가요제’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내용이었다. 80년대 가요를 요즘 가수들이 부른다는 콘셉트가 조금 식상하지 않나 싶었는데, 막상 노래를 들으니 나쁘지 않았다. 다들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일까? 지지부진하던 시청률도 많이 올라 토요일 예능 부분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사실 후일담 문학이란 작가 자신이 내세우는 개념은 아니었다. 후일담은 대체로 평단의 다소 부정적 어감을 함의한 평가 규준에 가깝다. 변혁운동으로부터 이제는 한발 물러난 운동권 출신의 허무주의와 패배 의식, 회환과 죄책감의 토로에 함몰된 장르로 평가절하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후일담에 가까운 회고의 양식은 잊을만하면 한 번씩 찾아오는 것 같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는 오늘날까지도 적지 않은 규정력을 발휘하는 ‘과거’의 지속이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때 그 ‘과거’란 때론 ‘87년 체제’라 불리며 정치경제적 레짐이나 실정적인 힘으로 작동하기도 하며, 때론 ‘386’ 혹은 ‘586’이라는 세대/계층 의식과 그 헤게모니에 입각한 사회사적인 의제를 형성키도 한다. 또한 ‘뉴트로’라 불리는 사회적인 현상의 배후에서 정치와 일상을 매개하는 문화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2020년대의 오늘을 ‘장기 후일담의 시대’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1980~90년대의 정치경제적 의제는 물론 그 사회문화적 함의에까지 여전히 긴박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이제는 1980년대의 변혁운동에 관해서만이 아니라 당시의 문화적 열기에 대한 회고와 향수가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응답하라’ 시리즈와 ‘토토가’를 비롯한 1980~90년대의 문화를 추억하거나 해당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상물들이 범람한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는 한편으론 유튜브로 대표되는 미디어 플랫폼으로 과거 문화를 동시대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기술적 조건이 구비된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정치 변혁에 대한 전망의 상실로부터 미래를 모색하지 못하고 과거의 문화적 활기를 희구하며 현재의 비참을 상상적으로 회복하려는 사회적 무의식의 표현이기도 할 것이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시절에 대한 향수, 그러니까 ‘아네모이아(Anemoia)’가 상품으로 소비되는 사회에서 1980~90년대의 성취와 좌절을 어떻게 적확하고도 정당하게 마주할 수 있을지 더욱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허민 문학연구자

대통령이 바뀌고 나니 공직 사회가 조금 흔들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연일 회의 때 대통령의 지적을 받는다. 핑계를 대다가 혼이 나기도 한다. 그냥 대충 굴러가다가 제대로 임자 만난 그런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그동안 놀고먹었다는 느낌까지 드는 것은 왜일까? 공무원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시절이 어느새 힘들어 공무원 못 하겠다면서 퇴직하는 젊은 공무원들이 넘쳐난다는 소식을 접한다. 정말 그럴까? 괜한 의문이 든다. 얼마 전 코로나 시절을 떠올린다. 전 국민의 대부분인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이들의 생활을 떠올리게 된다. 생계가 막막해져 거의 굶어 죽을 지경이라 한 커피점 사장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라며 닫고 있던 가게 문을 열었다. 중소기업은 직원을 내보내는 것으로 버텨야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공무원 월급은 제날짜에 꼬박꼬박 나와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월급은 국민 세금으로 지급되기에 조금은 빈정 상한다. 그런 공무원이 월급이 작아서 혹은 업무가 과다해서 일을 그만둔단다. 이해가 참으로 가지 않는다. 복지부동(伏地不動)이란 말은 공무원들 일하는 태도를 보고 자주 사용했다. 무사안일(無事安逸)도 마찬가지다. 일을 만들면 번거롭기만 해서 시키는 일만 하는 척하면 된다. 절대 잘할 필요도 없고 괜히 잘난 척 앞서 나갈 이유도 없었다. 일 잘한다는 소문이 나면 일만 늘어날 뿐이지 금전적 보상이라든지 이런 건 없다. 때 되면 진급만 제대로 시켜주면 큰 불만도 없다. 그럭저럭 지내다가 동장(洞長)하다 동에서 마련한 전별금 두둑이 챙기고 정년퇴직하면 된다. 그래서 또 하나 이름이 붙었다. ‘철밥통’이란 말이다. 공무원들 비하하는 말인데 이게 공무원들조차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는 게 문제이다. 죽도록 일해서 벌어먹는 소상공인이나 일반 소규모 공장에 다니는 파리 목숨인 사람들로서는 상상조차 못 하는 복지혜택을 누리기에 다소 불만이 있더라도 쉽사리 그 자리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어떻게 된 공무원인데 쉽게 포기하겠는가. 거의 고시처럼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곳이 아닌가. 그런데 공무원들과 자주 접하다 보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일부 고참 공무원들의 고압적이고 권위주의적 업무행태가 젊은 세대들과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뭔가 제대로 해 보려고 하지만 주위 벽이 너무 높아 좌절한다. 그런 기득권을 가진 이들 때문에 젊은 공무원들이 빠져나가지 않는지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출직 공무원들이 요즘 인사권을 쥐고 흔들어 그나마 움직이는 척이라도 하는 게 요즘 분위기라지만 그래도 선출직 입에선 관료주의 때문에 일이 안 된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행시주육(行尸走肉)이라는 말이 있다. 걸어 다니는 시체와 뛰어다니는 살덩어리라는 뜻이다. 배움이 천박해 쓸모없고 무능한 사람을 비유한다. 사람으로 태어나 어디서 이런 대접은 받지 않고 제대로 인정받으면서 살고픈 게 우리네 인생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공무원 월급은 나온다. 국회의원 월급도 나온다. 판사 검사 월급도 딱딱 챙기면서 호의호식하면서 산다. 우리는 이들 월급 주려고 오늘도 뼈 빠지게 열심히 일한다. /노병철 수필가

배우 송하윤이 과거 고등학교 시절 학교폭력 가해자였다는 의혹에 휘말리며 연예계와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피해자는 당시 90분 동안 폭행을 당했고 이로 인해 송하윤씨가 강제 전학까지 갔다고 주장하는 반면, 송하윤씨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강경한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누구 말이 진실인지는 수사를 통해 가려져야겠지만 이번 사건은 학교폭력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 하나를 상기시킨다. 적정한 시기에 사과와 합의가 있었는가라는 질문이다. 학교폭력에 대한 법적인 구제수단은 공소시효나 소멸시효라는 한계가 있다. 폭행죄, 상해죄에 적용되는 공소시효는 5년 또는 10년이고 민사적 손해배상청구권도 10년의 소멸시효가 있다. 송하윤 배우의 사건처럼 십수 년이 지난 사건이라면 피해자는 더 이상 법적인 구제는 기대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법률적 시효가 지나도 피해자의 상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의 기억은 또렷해지고 사과조차 받지 못한 억울함은 더욱 단단해진다. 학창시절 나에게 폭력과 고통을 안겼던 가해자가 수십 년 뒤 배우가 되어 좋은 이미지로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활동하는 것을 보는 피해자의 고통이 어떠하겠는가. 연예계에는 학폭 논란으로 활동을 중단한 인물들이 많다. 배우 지수, 르세라핌 전 멤버 김가람 등이 대표적이다. 학폭의 가해자였다는 점 외에도 이들의 공통점은 사과와 합의의 시기를 놓쳤다는 점이다. 학폭을 가한 이후, 혹은 의혹 제기 후에라도 피해자와 진정성 있는 대화를 나누고 사죄와 합의가 이루어졌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피해자들이 “제때 사과만 있었더라면 공론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한 하소연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사과하지 않았던 이들에겐 결국 법의 심판 대신 사회적 심판이 내려졌다. 실제 학교폭력 사건에서도 가해자 학생과 부모의 사과 한마디만 있었더라도 결과가 완전히 바뀌었을 것 같은 사건들이 있다. 변호사라는 게 결국은 법으로 해결해야 하는 직업이지만 여러 형사사건, 학교폭력 사건을 다루다 보면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심이 담긴 사과였구나 싶어지는 것이다. 교통사고 피해자들이 사고 직후 가해자의 내가 뭘 잘못했냐는 말 한마디에 울분이 맺혀 합의는커녕 가해자와 끝까지 만나려 하지 않기도 한다. 자녀가 학교폭력을 당했어도 아이들 일이니 가해 아이가 사과하면 문제 삼지 않으려 기다리다가 결국은 어떤 연락도 없어 어쩔 수 없이 학폭신고를 접수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과와 합의가 이루어진 사건은 그렇지 않은 경우와 처벌의 수위도 천지차이다. 물론 피해자가 입은 고통의 잔여 정도도 천지차이일 것이다. 그래도 끝까지 사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어떤 사람들에겐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이 참 어려운 일인가 보다. 뉴질랜드와 캐나다는 학교폭력 같은 청소년 범죄에 대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직접 대화하고 화해하는 것을 돕는 회복적 사법 절차를 제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형사사건에서 형사조정절차가 있듯 학교폭력 사건에서도 사과와 합의를 도울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학폭 사건을 징계 수위로만 볼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장래와 이후 학교생활을 위한 회복과 화해에도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때론 사과의 타이밍이 정의이다. /김세라 변호사

교육부 장관의 덕목은 아주 고결하고 특별한 것일까. 새 정부 들어 교육부 장관 후보에 처음 올랐던 이진숙 후보자가 중도에 낙마하고 난 뒤, 한 언론사는 교육계의 중지를 모아 바람직한 교육부 장관의 덕목을 정리해 보도한 적이 있다. 세 가지로 요약된다. 한가지는 교육가로서 전문성 그리고 도덕성, 다른 하나는 소통 능력이다. 잘 알다시피 전문성은 다양한 교육경험에서 나오는 탁월한 식견과 교육적 안목을 뜻한다. 도덕성은 교육자로서 부끄럽지 않는 청렴성과 정직성 등이다. 소통 능력이란 다양한 교육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직접 소통하고 갈등을 다스리는 교육 리더로서의 능력을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교육열은 세계가 알아줄 정도로 유명하다. 청년층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OECD 국가 중 1위다. 더 놀라운 사실은 치맛바람을 일으킬 만큼 우리 학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은 지구상 최고다. 국회 인사청문회가 끝나고도 최교진 교육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장관 후보자로서는 부적절한 과거 행적과 언사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장관직을 수행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여론이 팽배해지는 분위기다. 음주운전 이력이나 논문표절 의혹, 정치적 편향성, 부적절한 언사 등이 장관직 수행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야당의 거센 반대에도 다수당인 여당이 수용않으면 장관은 여당 뜻대로 간다. 여당은 여당 뜻대로 하더라도 교육부 장관의 덕목은 한 번쯤 살펴보면 좋겠다. 자식의 교육을 국가에 맡기는 부모의 안목이 교육에 관한 한 정치보다 더 높다는 사실도 직관할 필요가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모나코 성곽 위에 서자, 붉게 물든 하늘과 반짝이는 바다가 맞닿았다. 성벽 너머에는 그레이스 켈리가 레니에 3세와 결혼식을 올렸던 성당이 조용히 서 있었다. 영화 속 장면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현실의 공간은 시간을 담담히 품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그녀의 선택과 삶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름다움과 책임, 사랑과 의무가 얽힌 서사가 공간 속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저녁 빛은 단순한 색이 아니라, 그녀의 삶을 닮은 깊은 빛으로 다가왔다. 성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나는 왕비로서 그녀가 맞이했을 하루하루를 상상했다. 할리우드의 스포트라이트와는 다른, 무겁지만 고요한 시선이 성 안을 채웠으리라. 화려한 왕관 대신 마음으로 세상을 비추는 법을 배워야 했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선택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 길 위에서 자신만의 빛을 찾아냈다. 바람이 잔잔히 불어오는 테라스에 섰다. 모나코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작은 나라의 도시가 품은 위엄과 고요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켈리가 이 공간 속에서 느꼈을 떨림과 기대는, 바다 위 파도처럼 잠잠하지만 쉼 없이 흘렀을 것이다. 나는 계단을 걸으며 공간이 말을 하지 않아도 전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은 흔적이지만, 성의 무게와 조명, 바닥의 반짝임이 그녀의 존재를 증명하는 듯했다. 성당 앞마당에 멈추었다. 결혼식 날의 장면이 마음속에 그려졌다. 하얀 드레스가 바람에 흩날리고,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던 순간에 그녀는 단순히 아름다운 배우가 아니라 국가와 사랑, 선택 사이에서 마음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한 인간이었다. 그 장면을 떠올린 뒤에 나는 내 삶을 되돌아보았다. 나는 얼마나 스스로의 선택을 믿고 걸어왔는지, 얼마나 나만의 길을 진정으로 지켜왔는지 물었다. 그레이스 켈리가 견뎌낸 빛과 무게를 생각할 때, 나 또한 마음의 왕관을 조심스럽게 손에 쥐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랑과 책임, 자유와 의무 사이에서 흔들리며 걸어야 하는 길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무게, 선택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순간마다 마음속에서 반짝이는 빛이 있다는 사실을 그녀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나는 문득 그녀가 남긴 흔적은 단순히 영화나 왕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각자의 삶을 비추는 거울임을 깨달았다. 바닷바람에 섞인 파도 소리가 마음을 가득 채웠다. 영화 속 그녀는 스크린 안에서 빛났지만, 현실 속 그녀는 선택의 무게 안에서 빛났을 것이다. 행복이란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길 위에서 발견하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에서 바라본 도시와 항구, 반짝이는 배들이 그녀의 삶과 나의 감정을 포개어 주었다. 영화에서처럼 극적인 장면은 없었지만, 실제 공간은 시간과 사람의 흔적을 담아 내 마음을 울렸다. 자유와 책임, 사랑과 의무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그녀가 느꼈을 감정을 나는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저녁이 깊어져 갈수록 성벽 위의 그림자는 길어지고, 바다는 한층 더 어둡게 반짝였다. 그레이스 켈리의 삶은 단순한 동화가 아니었다.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빛나던 순간은 짧았지만, 그녀가 택한 길은 끝없이 이어진 책임과 사랑의 연속이었다. 그 길 위에서 발견한 마음의 빛은 왕관보다 더 오래, 그리고 더 깊게 반짝였을 것이다. 나는 성을 내려와 항구를 걸었다. 그레이스 켈리가 길을 걸었을 때 느꼈을 설렘과 두려움, 기대와 희생이 오롯이 내 마음에 전해졌다. 모든 것이 시간과 공간 속에 남아 조용히 내 마음을 흔들며 감동시키고 있었다. 모나코를 떠나며 나는 생각했다. 사랑과 선택, 책임과 행복이 뒤섞인 삶 속에서 진정 빛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녀가 보여준 왕관보다 빛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화려함이 아니라 선택의 무게 속에서도 스스로의 길을 밝히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 마음은 오늘도 공간과 시간 속에서 조용히 반짝이고 있었다. /정미영 수필가

첫사랑이라는 이름을 곱씹다가, 초심(初心), 순수(純粹) 좋다, 과연 그렇게 살고 있는가? 그때의 아무 것도 없는 비루한 황무지에서 단지 사랑한다고, 어금니 꽉 다문 다짐, 모든 걸 극복할 수 있을 무모하고 단순한 용기, 그 마음으로 살고 있는가? 오히려 지금 필요한 생활의 장치(裝置) 알겠다, 나의 편지는 결코 배달되지 않는다 살아감의 혹독한 진행형의 삶이 결국 보답이고 앙갚음이다 지나간 시간을 모독하는 사랑의 후회를 항변하는 삶의 법정에서, 오직, 나는 파면이다. … 기억은 퇴색(退色)이 되어도 다시 채색(彩色)이 된다. 불행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덧칠은 자제해야 한다. 자서(自敍)가 서사(敍事)가 될 수 있고, 미시(微視)가 거시(巨視)의 바탕이 될 수는 있다. 발전을 지향하되 퇴행적 변명은 단죄되어야 한다. 사회적 공론화와 합의라는 틀에서 머뭇거리며 찌질거리는 것은. 노예의 도구이며 시대적 방관자로서의 교묘한 처세, 좀 영혼이 없는 지칭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뻔뻔한 직업적 소명에 충실한 놀라운 적응력을 구사한다. 합리와 규정과 기본과 기득의 영역에서 쟁취한 권력에 취해 버린 부패의 구린 냄새를 향기롭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미 적응이 된 듯.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喝! /이우근 …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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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의 신황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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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들네가 방학이라 며칠 내려오겠다고 했다. 광복절 끼워 2박 3일 연휴가 가능해서라고 했다. 두 번의 명절, 두 번의 방학, 그리고 어린이날 연휴가 길면 오기도 해도, 많아야 1년에 다섯 번 정도밖에 못 만나는 그리운 손녀들이었다. 그날부터 몸도 마음도 분주해진다. 가장 먼저 할 일은 2박 3일의 스케줄을 잡는 것. 마침 8월 15일과 그 다음날이 큰손녀와 큰아들 생일이니 합동 생일파티를 하면 되겠다 싶었다. 대구 애들과 합하면 10식구이니 움직이는 일이 만만찮다. 집에서 간단히 파티 준비해야지. 마침 집에 와 있는 손주 둘과 같이 생파 이벤트를 의논했다. 며느리들에게 계획을 알렸더니 모두들 손사래를 친다. 더위에 절대 고생하지 마시라. 허무하게도 생일파티는 취소, 외식으로 결정이 났다. 집에서 가까운 뷔페를 예약하고, 또 볼링을 치기로 했다. 대신 케이크커팅은 집에서 하자. 둘쨋날 스케줄은 남편이 제안했다. 경주 미술관 투어를 하자. 경주예술의전당에서 ‘근현대 4인의 거장전’, 오아르미술관에서 무라카미 타카시의 ‘해피 플라워’를 보면 손녀들이 좋아할 거다. 경주문화관의 ‘고흐전’도 보자고 결정했다. 가장 힘들고 고된 일은 손님맞이 청소다. 가장 먼저 이불 빨래를 하고, 방 청소하기, 주방도 정리 좀 해 두어야 오랜만에 보는 며느리에게 책잡히지 않지. 화장실 청소는 맨 나중에 하자. 작년에 쓰고 그냥 넣어두었던 까슬한 여름용 차렵이불을 꺼내 빨았다. 빨다 보니 우리가 쓰던 이불과 베갯잇도 빨아야지 싶어 모두 내어 빨고, 건조하고, 햇볕에 바싹 말리고, 속통도 건조대에 걸쳐 말리고 소독했다. 네 개의 방 중 정작 남편과 내가 쓰는 방은 거실과 안방뿐이다. 그러나 10명이나 되는 대식구가 모이면 안 쓰던 방도 침실로 사용해야 한다. 책방의 먼지부터 깨끗이 턴다. 큰아들 내외가 특히 그 방을 좋아하니 걸레질도 꼼꼼히 한다. 방학 중 손주들이 아지트로 꾸민 뒷방도 양해를 구해 잠시 철거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네 명의 손주들이 합심해서 또다시 아지트로 꾸밀지언정···. 엉망진창 어질러진 컴퓨터방도 손대야 했다. 창틀의 오래 묵은 먼지까지 훔치고 닦으니 보통 일이 아니다. 아 난 왜 평소에 털고 닦고 걸레질하는 습관이 안돼 있을까 자책한다. 다시는 이렇게 먼지 쌓아두지 말고 평소 청소 습관을 길러야지 아주 잠시 결심하지만 난 날 믿지 못한다. 또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 뻔하다. 연닷새 집안일을 했더니 거의 탈진 지경이었다. 결국 화장실 청소를 제때 못하겠다 싶었다. 내가 이불 빨고 청소하고 주방 정리하며 부산을 떨어도 안마의자에 앉아 책 읽고 TV 보는 남편에게 화장실 청소를 부탁했다. 웬일로 남편은 벌떡 일어나 바짓가랑이를 걷어올리며 화장실로 갔다. 락스와 솔을 찾는 남편에게 과탄산소다를 가져다주며 뜨거운 물을 쓰라고 일러주고 안방으로 가 누웠다. 깜빡 잠이 들었나 보았다. 서울 애들이 곧 도착한다는 전화에 잠에서 깼다. 거의 동시에 대구 손주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 할아버지. 우리 왔어요.” 남편은 막 안방 화장실 청소를 마친 모양이었다. “건아···. 화장실 구경해 봐···. 할아버지가 깨끗하게 청소했어.” 화장실 청소한 생색을 저리도 내고 싶은가 보다. 슬그머니 웃음.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09-03

한방산책

커피와 에너지 음료, 왜 두근거림과 불면을 부를까

카페인은 현대인의 생활과 뗄 수 없는 기호 성분이다. 아침마다 마시는 커피 시험이나 야근 때 찾는 에너지 음료 심지어 초콜릿에도 카페인이 들어 있다. 카페인은 순간적으로 정신을 맑게 하고 피로를 덜어주는 듯한 효과를 주지만 본질적으로는 교감신경을 흥분시키는 화기(火氣) 성질의 물질이다. 한방에서는 이런 성질을 가진 음식이나 약물을 화기 식품이라 부르는데 이런 식품을 섭취하면 일시적으로 힘이 나는 거 같지만 이를 장기간 섭취하면 몸의 균형이 깨지고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교감신경은 긴장과 각성을 담당한다. 카페인을 섭취하면 아데노신 수용체가 차단되어 뇌가 피곤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교감신경이 항진된다. 그 결과 심장이 빨리 뛰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잠이 잘 오지 않고 불안이 심해진다. 특히 갱년기나 화병 증상을 가진 사람들은 원래부터 체내의 열과 긴장이 높아져 있기 때문에 카페인 섭취 시 증상이 훨씬 심해진다. 얼굴이 붉어지고 사소한 일에도 화가 치밀며 가슴 답답함과 불면이 악화되기 쉽다. 카페인과 에너지 음료는 순간적인 힘을 주는 대신 장기적으로 자율신경 불균형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이런 경우 한약 치료가 도움이 된다. 황련, 시호, 치자, 석고 같은 약재는 가슴의 울체된 열을 꺼주고 흥분된 교감신경을 진정시킨다. 황련은 심장의 열을 내려 불안을 가라앉히고, 시호는 간울을 풀어 가슴 답답함을 덜어준다. 치자는 화기를 내리고 불면과 초조를 진정시키며 석고는 강한 열을 식혀 두근거림과 상열감을 줄인다. 이러한 약재들이 배합된 한약을 복용하면 교감신경 항진 상태가 안정되고 부교감신경 기능이 회복되어 수면의 질과 자율신경 균형이 개선된다. 직접 시술로는 자율신경 약침 치료가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성상신경절과 미주신경 자리에 약침을 시술하면 교감신경 흥분이 줄어들고 부교감신경의 기능이 강화된다. 교감신경이 조절되면 불안, 불면, 두근거림 같은 증상이 개선되고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 심신이 안정되고 소화 기능과 수면 그리고 몸의 회복이 좋아진다. 초음파를 활용한 정밀 시술로 안전성을 높일 수 있으며 한약 복용과 병행할 때 치료 효과가 배가된다. 실제 임상에서도 카페인 과민이나 갱년기 불면 화병으로 인한 가슴 답답함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약침 치료 후 증상이 빠르게 호전되는 경우가 많다. 생활 관리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카페인과 에너지 음료를 찾는 습관을 줄이고 규칙적인 수면과 식사, 가벼운 운동을 실천해야 한다. 교감신경 항진 상태에서는 아무리 오래 누워 있어도 몸이 쉬지 못하지만 자율신경 치료와 생활습관 교정이 함께 이루어지면 몸은 본래의 리듬을 되찾는다. 카페인과 같은 화기 식품은 순간적으로 힘을 주는 듯 하지만 결국 교감신경 항진과 불안 불면을 불러온다. 생활관리와 함께 가슴의 열을 꺼주고 신경의 균형을 바로잡는 한약과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을 직접 조절하는 약침 치료가 함께 이루어질 때 비로소 자율신경은 안정되고 몸은 진정한 회복을 향해 나아간다. 결국 건강은 순간적인 자극이 아니라 균형과 안정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09-03

사설

영양군 원전비상구역 편입, 군 발전 동력 삼자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지난달 29일 영양군 수비면 수하 3리를 한울원전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에 포함하는 변경안을 승인했다. 2015년 방사능 방재법 개정 시행령 발효때 방사선비상계획구역에 미포함됐던 영양군 수비면을 10년 만에 포함시켰다. 최근 한울원전 1·2호기 준공과 3·4호기 착공 등 울진군이 세계 최대 원전밀집단지로 조성됨에 따른 주민안전 확보 차원에서 나온 결정이다. 원전 밀집지역인 울진과 인접해 있으면서 원전사고 발생 시 뚜렷한 대피시설조차 준비되지 못했던 영양군으로서는 천만다행한 정부 조치다. 특히 비상계획구역에 포함된다는 사실이 자칫 위험지역으로 분류되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 해석이 나올 수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번 원전 비상계획구역 포함 조치는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국가가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 본래의 취지여서 이번 조치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결과를 주민 안전 강화와 재정자립 기반 확대라는 두가지 효과를 동시에 거둔 모범적 사례로 평가한다. 비상계획구역 포함으로 영양군은 연간 최대 100억 원의 지역자원시설세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내년에는 50억원을 확보하고, 연차적으로 100억원의 세입효과를 가지게 된다. 현재의 군 재정 규모에 비쳐볼 때 적지 않은 예산이다. 군이 이런 재정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군의 모습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오도창 영양군수는 “확보된 재원으로 주민안전망 구축과 생활 인프라 개선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원전비상구역 편입으로 생기는 세입을 군 발전의 동력으로 삼아 일자리 창출이나 군민 복지 분야에 많이 투자할 생각임을 비쳤다고 한다. 영양군은 한때는 인구 7만 명의 도시였다. 국가적으로 저출생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지금은 인구 1만5000명의 소도시로 떨어져 도시소멸을 걱정하고 있다. 도시의 발전은 작은 동기에서 비롯돼 의외의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영양군의 비상계획구역 편입이 군 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해 군을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힘이 되길 바란다.

2025-09-03

팔면경

전한길의 과대망상

“나를 품는 사람이 내년에 지방자치단체장이 되고, 향후 국회의원 공천도 받을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다음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한 말일까? 그는 이런 큰소리도 쳤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내 대학 선배다. (다음) 대구시장은 이진숙 위원장이 맡아야 한다. 만약 내가 공천을 받는다면 이 위원장에게 무조건 양보하겠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반대론자들에게 주목받으면서 전 역사강사 전한길 씨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때론 정치학자이자 미래를 예측하는 유사 점술가 같은 행태도 보인다. 얼마 전부턴 ‘전한길 뉴스’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스스로를 언론인이라 부르고 있기도 하다. 파토스 넘치는 전씨의 음성과 격정적이고 직설적인 어법에 지지자들은 열광하지만, 그와 다른 견해를 가진 이들은 비난의 손가락질을 보내는 게 지금의 상황.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부풀려지고 터무니없는 헛된 생각을 지속하는 걸 우리는 ‘과대망상(誇大妄想)’이라 부른다. 심리학자들은 자기 확신과 주관적 신념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이 과대망상증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한다. 한국처럼 매일매일 상황이 변하는 정치 환경에서 2026년에 열릴 지방선거의 구체적인 결과를 확언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그러니, 그보다 더 훗날의 일인 국회의원선거와 대통령선거에 관해선 더 말할 것도 없다. 개인의 과대망상이 개인의 불행으로 끝난다면 과하게 걱정할 필요 없다. 그러나, 이미 전씨는 ‘한 개인’의 범주를 벗어난 정치적 영향력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위험해 보인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 지도부가 전한길 씨의 과대망상에 부화뇌동하지 않기를 바란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9-03

사설

‘철강관세 인하’위해 백악관까지 간 포항시장

이강덕 포항시장이 지난 1, 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 있는 백악관과 국회의사당 앞에서 ‘동맹국인 한국에 대한 철강 관세 부과를 멈춰달라’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했다. 시위에는 미국 버지니아한인회 김덕만 회장을 비롯한 회원들과 포항시 공무원 등도 함께 참여했다. 정부의 외교적 노력만으로 포항철강산업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시장이 직접 철강업계의 절박한 상황을 미국 정부에 알리기 위해 시위라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이 시장은 이번 캠페인을 시작으로 코트라(KOTRA) 등과 연계해 철강관세 인하와 지역기업의 북미시장 진출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후속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미국 퇴직 경제관료들이 포진한 글로벌컨설턴트 대표와도 만나 철강품목 관세인하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자리도 가진다. 이 시장은 이날 미국 무역대표부와 상무부, 국제무역위원회에 보내는 건의문에서 “미국정부가 동맹국인 한국에 50%라는 살인적 철강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 “영국처럼 최소 25% 수준으로 조정하거나 제한적 쿼터 예외를 적용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 시장은 이 호소를 미국이 받아들여 국제사회의 호혜적 무역환경 조성에 기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국내 철강산업의 심장부인 포항은 현재 관세 폭탄으로 지역경제 기반이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 지난달 28일 산업통상자원부가 포항을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했지만 이 조치만으로는 복합적인 위기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같은 대기업들도 포항지역 일부 공장의 가동을 중단하거나 축소했고, 협력업체들은 일감부족으로 줄줄이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 결국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도시 전체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시장의 백악관 시위로 당장 관세가 인하되는 가시적인 효과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시위가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문제의 심각성을 공론화하는 데는 크게 기여했다. 미국 정부에도 경각심을 주는 효과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2025-09-03

오그러네

검찰개혁, 제자리인가

검찰개혁. 화두가 표류하고 있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 공소청 설치, 중수청 신설이라는 큰 방향은 이미 촛불광장에서부터 제기된 국민적 요구였다. 시간이 이렇게도 흘렀음에도 구체적 제도설계와 집행단계로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은 개혁을 기대했던 시민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든다. 핵심은 분명했다. 검사들이 독점했던 기소권과 수사권을 나누어 권력의 임의적 남용을 막고 견제와 균형을 제도적으로 확보하겠다는 것이었다.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개편해 기소만 담당하게 하고, 수사는 국가수사본부나 중수청 등 기구가 맡는 구조였다.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방향은 국민들이 납득하는 최소한의 개혁안이었다. 국회와 정부의 움직임은 오히려 개혁의 본뜻을 흐리고 있다. 중수청을 법무부에 둘지 행정안전부로 옮길지를 두고 벌이는 줄다리기는 국민으로서는 피곤할 따름이다. 관건은 중수청이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수사기관이 정치권력과 이해집단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그런데도 권한 배분을 둘러싼 부처 간 이기주의와 정치적 계산이 논의의 중심을 차지하는 게 아닌가. 검사들의 집단적 반발 역시 국민을 불편하게 한다. 수십 년간 검찰은 권한을 자의적으로 휘두르며 무소불위라는 평가를 들어왔다. 정치적 편향, 피의사실 공표, 수사권 남용, 제 식구 감싸기 등 숱한 비리와 악행은 이미 국민적 기억 속에 생생하다. 검찰 구성원들이 입을 모아 개혁과정에 목소리를 내거나 자기 권력 지키기에 몰두하는 모습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는커녕 오히려 불신을 강화할 뿐이다. 여권의 태도도 문제다. 검찰개혁은 촛불 시민들의 가장 강력한 요구 중 하나였다. 현 정권이 탄생한 역사적 배경에도 깊이 새겨져 있다. 그럼에도 아직껏 체계적 개혁안을 확정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납득하기 어렵다. 국민은, 의지가 있는 것인가, 정권 내부의 이해관계가 그렇게 중요한가 등 의문을 던지게 된다. 개혁은 구호가 아니다. 개혁을 외쳤던 정치인과 집권 세력은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과는 달라야 한다. 검찰개혁의 의지를 말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기획이 분명해야 하고 제도설계가 정교해야 하며 추진력과 실행력이 담보되어야 한다. 지금 논의는 추상적 원칙과 부처 간 자리싸움에 머무르고 있다. 이대로라면 개혁은 실종되고 남는 건 국민적 피로감뿐일 것이다. 검찰개혁은 특정정권의 이해를 위한 정치적 카드가 아니다. 민주사회에서 권력기관의 견제와 균형을 확립하기 위한 제도적 토대다. 원칙을 잊는 순간 개혁은 퇴색하고 국민적 지지는 사라진다. 출발점이었던 국민들의 열망을 기억한다면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정부와 여당은 개혁의 본령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소와 수사 분리라는 대원칙 아래 공소청과 중수청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정치적 중립성과 제도적 독립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입안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과의 투명한 소통이다. 개혁의 주체는 검사나 정치권이 아니라 국민이다. 검찰개혁이 구호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 용기있는 결단과 실질적 제도화가 필요하다. 촛불 과제를 완수하려면 행동해야 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09-03

이경재의 일본을 읽다

일본(인)은 하나의 얼굴이 아니다

7월 18일 초가지붕으로 되어 있는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도케이지 산문을 나왔을 때는 1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이어서 저는 5km 정도 떨어진 고토쿠인(高徳院)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요. 한해 이천만명이 찾는다는 관광도시 가마쿠라에서도 고토쿠인은 가장 유명한 관광명소 중 하나입니다. 고토쿠인이 유명한 이유는, 그곳에 일본을 대표하는 거대 불상인 가마쿠라 대불이 있기 때문인데요. 기타가마쿠라역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가마쿠라역까지 전철로 이동한 저는,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고토쿠인으로 향했습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앉아 있는 아미타불은 12미터의 높이와 121톤의 무게로 보는 이를 압도했습니다. 전각 안이 아닌 야외에 노출되어 있어 더욱 웅장하게 느껴졌는데요. 이 청동불상은 본래 나무로 만들어졌다가, 태풍으로 파괴된 이후 1252년에 다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본래는 대불이 머무는 전각도 있었지만 15세기 무렵 자연재해로 파괴되면서 이후에는 대불만 야외에 덩그러니 놓이게 되었습니다. 일본 최초의 무사 정권인 가마쿠라 시대에 만들어져서일까요? 이 청동 대불에서는 자애로움보다는 뭔가 엄격한 위엄이 느껴졌습니다. 얼마나 큰지, 50엔(500원 정도)만 내면 불상 내부에까지 들어가 볼 수도 있었습니다. 고토쿠인은 규모로 승부를 보겠다는 듯이, 가마쿠라 대불 옆의 건물에는 길이 1.8m의 짚신이 걸려 있었습니다. 대불이 “짚신 신고 일본 곳곳을 걸어다니길” 바라는 염원을 담아 아이들이 만들어 기부하는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다고 하는데요. 방금 전까지 토케이지의 34cm 수월관음상을 보며 ‘축소지향의 일본’을 떠올렸던 저는, 불과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이토록 크기와 규모로 사람을 압도하는 청동 대불과 짚신이 있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수천년의 역사와 남한 면적의 4배에 이르는 영토를 가진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를 하나의 명제로 정리한다는 것은 애당초 인간의 영역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제가 전공하는 문학에서 다루는 ‘근대적 인간’이란, 우주보다 깊고도 심오한 내면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요. 한 명의 개인이 그러할진대, 1억 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를 한두마디로 규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겁니다. ‘축소지향’과 더불어 ‘확대지향’을 지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고, 이러한 문화의 양면성과 복합성이야말로 모든 문화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날 고토쿠인을 찾은 진짜 이유는, 얼마 전에 한국 언론에도 크게 보도된 관월당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지난 6월 23일 관월당이 한국에 돌아왔다는 보도를 접하셨을 텐데요. 그 관월당이 있던 곳이 바로 고토쿠인입니다. 현재 관월당은 낱낱이 해체되어 4000여 점의 조각이 파주시에 있는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관월당은 전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단층건물로 맞배지붕 형태의 전형적인 한국 건축물인데요. 관월당이 바다를 건너 대불 뒤편에 놓이게 된 사정은 비교적 상세히 밝혀져 있습니다. 평소 일본 재계의 거물이었던 스기노 키세이(1870-1939)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던 조선식산은행이, 1924년 무렵 담보로 갖고 있던 관월당을 스기노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스기노는 일단 관월당을 메구로에 있는 자신의 집에 가져다 놓았다가, 10년 후쯤에 폐병으로 가마쿠라에서 요양과 기도를 할 무렵, 고토쿠인에 기부했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고토쿠인에서 관음보살을 모셔놓은 법당으로 사용된 관월당이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던 데는, 사토 다카오 고토쿠인 주지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는 고고학 연구자로 게이오대 교수이기도 한데요. 2002년 고토쿠인의 주지가 되었을 때부터 관월당을 한국에 반환하려고 애써 왔다고 합니다. 관월당은 언제 어떤 용도로 만들어져, 어디에 있었던 것인지가 분명하게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 조선 왕실의 사당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이지만, 1871년 정학교(丁學敎)가 썼다는 ‘무량수각(無量壽閣)’이라는 현판이 있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해외에 있는 문화재를 돌려받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환수를 위한 방법은 소장국가에 반환요청을 하거나 경매로 구매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요. 반환요청을 하기 위해서는 약탈이나 도난의 증거를 제시해야 하며, 설령 도난과 약탈을 증명하더라도 소장국가에서 반환을 거부하면 그것을 강제할 방법은 없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토 다카오 주지는 흔쾌히 관월당을 고향에 돌려보낸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반환비용 전부를 사토 다카오 주지가 부담했으며, 나아가 한일 간 문화유산 연구와 학생교류를 위한 별도기금 1억엔(10억원 정도)까지 기부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고토쿠인을 찾았을 때, 관월당이 있던 곳에는 바닥돌과 좌우 석등만이 남아 있었는데요. 관월당의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계 각국에서 모인 관광객들은 한가롭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 빈터에는 곧 가마쿠라 대불은 물론이고, 관월당에 대해서도 소개하는 자료관이 세워질 예정이라고 합니다. 언젠가 서울에도 멋지게 복원된 관월당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백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관월당을 보며, 우리는 그 고풍스러움과 아름다움에 취해 행복해할 텐데요. 그 행복 속에서 우리는 사토 다카오라는 한 일본인의 따뜻한 마음도 오랫동안 기억할 것입니다. /이경재(숭실대 교수)

2025-09-02

김경아의 푸른 돋보기

비오는 날의 우산

볼일을 마치고 건물 밖을 나오는 순간, 하늘이 무너져 내린 듯 비가 쏟아졌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만 해도 햇빛이 쨍쨍했기에 우산은 아예 준비조차 하지 않았다. 설마 비가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비 예보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하늘은 순식간에 변덕을 부렸다. 그야말로 억수같이 쏟아지는 소나기였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편의점까지 뛰어갈까 했지만 물이 땅에 닿기도 전에 튕겨 오르는 빗줄기를 보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빗방울은 그저 내리는 게 아니라 마치 작은 못처럼 박히는 기세였다. 나는 상가 건물 처마 밑에 몸을 붙이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골목을 지나가던 사람들도 다들 같은 처지였다. 누구도 비를 뚫고 나설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저 하늘의 변덕이 잠잠해지기를 바라는 표정들이었다. 그때였다. 한 사람이 우산을 들고 내 앞에 서더니 말을 걸었다. “이거 쓰고 가세요.” 순간 무슨 말인가 싶어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는 빗속에서 서성이는 나를 한 번 힐끗 보더니 다시 우산을 내밀었다. “저도 누가 주신 거예요. 그냥 쓰고 가세요.” 그 말은 너무 짧고 무심하게 들렸지만 그 안에는 묘한 온기가 숨어 있었다. 그는 더 설명하지도 않았다. 우산을 건네주자마자 곧장 비 속으로 사라졌다. 우산을 쥔 내 손끝이 괜히 따뜻해졌다. 한낮의 소나기 속에서 뜻밖에 건네받은 건 비를 막는 우산 하나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마음 한 구석도 함께 가려주는 듯 했다. 우산을 펴고 집으로 향하는데 그의 뒷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누군가에게서 우산을 받았고, 다시 누군가에게 그 우산을 내어주었다는 사실이 어쩌면 그 우산은 오늘 하루만 해도 몇 사람의 손을 거쳤는지 모른다. 비 오는 날의 우산 하나가 사람들의 손을 타고 옮겨 다니면서 누군가의 발걸음을 적시지 않게 해주고 있는 셈이었다. 집 근처에 이르렀을 때였다. 또다시 비를 피해 처마 밑에 웅크리고 있는 사람이 내 눈에 들어왔다. 허둥지둥 뛰어온 듯 바짓단은 이미 젖어 있었고, 그는 연신 빗줄기를 원망스럽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문득 내 손에 준 우산이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우산을 내밀었다. “이거 쓰고 가세요. 저도 누가 주신 거거든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표정에 안도의 빛이 스쳤다. 그는 몇 번이고 고맙다고 말하며 우산을 받아들었다. 그 순간 알았다. 우산은 단순히 비를 피하는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였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였다. 우리의 삶이란 것도 이와 닮아 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크고 작은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건네주고, 누군가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손을 내밀어준다. 그 손길 덕분에 우리는 넘어지지 않고 다시 걸음을 옮길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게 된다. 받은 것을 갚는 방식은 꼭 같은 모양일 필요가 없다. 다만 그 마음이 이어지면 된다. 도움의 손길이 한 방향에서 다른 방향으로, 한 사람에게서 또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다니며 세상을 조금씩 따뜻하게 바꾸는 것이다. 집에 도착해 오늘 몇 번을 스쳐간 우산의 여정을 그려보았다. 아마도 언젠가 또 다른 비오는 날, 누군가는 오늘의 나처럼 서성이고 있을 것이고, 그때 또 다른 손이, 이 우산을 건네주리라. 그렇게 이어진 마음들이 겹겹이 포개져 어느새 세상을 감싸 안게 될 것이다. 오늘의 우산은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 나눔의 사슬이었다. 그 사슬이 끊어지지 않도록 이어가는 일, 그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며 앞으로 만들어 나가야 할 숙제가 아닐까. 우산 한 자루에서 시작된 작은 나눔이 오늘은 나를 거쳐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이어졌다. 비는 그쳤지만 그들이 베푼 온기는 오래 머문다. 우리가 함께 지켜야 할 것은 거창한 약속이 아니라 이 사슬이 끊어지지 않도록 마음으로 이어가는 일일 것이다. /김경아 작가

2025-09-02

팔면경

강릉의 가뭄

“가뭄이 더 무서울까” “홍수가 더 무서울까” 결론이 잘 나지 않는 질문이다. 우리 속담에 “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는 말이 있다. 가뭄에는 아무리 심해도 얼마간의 거둘 것이 있지만 큰 장마 끝에는 아무것도 거둘 것이 없다는 말이다. 또 다른 속담에는 “칠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 달 장마에는 못산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도 장마의 후유증이 더 무섭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홍수는 단기적으로 큰 피해를 내지만 가뭄은 시간적으로 오래 끌기 때문에 피해를 당하는 입장에서는 가뭄이 더 무섭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기후변화가 심각해지면서 홍수, 폭우, 가뭄, 폭염 등이 지구촌 곳곳에서 잇따라 변괴를 일으킨다. 한쪽은 폭우로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가 하면 다른 한쪽은 폭염으로 생명을 잃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올 8월 서울에는 시간당 10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져 교통두절 등 시민들이 난리를 겪었다. 그 시간 서울에서 150km 떨어진 강릉에는 50일 넘게 비가 내리지 않아 땅이 갈라지고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는 일이 벌어졌다. 좁은 한 나라 안에서도 극명하게 대비되는 기후 변동이 일어난 것이다. 2년 전 중남미 우루과이에서는 100년 만에 닥친 가뭄으로 수도권 인구 340만 명의 물을 공급할 저수지가 바닥나자 생수 가격이 폭등했다. 이 바람에 물 부족 사태에 항의하는 시위가 번지는 소동까지 일어났다. 물 부족 사태를 이유로 강릉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국가재난지역으로 선포되는 사례를 남겼다. 기후 위기 시대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님을 보여준 강릉의 가뭄 사태를 반면교사 삼는 기회로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9-02

사설

지역기업 70% 對美 수출 줄었다는데···대책은

8월 우리나라 수출이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하며 선방했지만 대미수출은 오히려 12%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관세정책의 영향이 현실화되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돼 정부 당국의 적절한 대응전략 마련이 절실해지고 있다. 산업통산자원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총 수출은 584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3% 증가했다. 반도체와 자동차가 수출 성장세를 이끈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는 인공지능 서버용 수요 강세와 메모리 가격 상승, 자동차는 친환경차와 중고차까지 수출에 힘을 보태 실적 호조를 보였다. 그러나 시장별로 보면 중국시장이 2.9% 줄었고, 미국시장은 87억달러에 그쳐 12%가 전년 동월보다 감소했다. 이처럼 미국 수출이 급감한 것은 미국의 관세정책이 핵심적 이유다. 수출 전문가들은 “미국의 상호관세의 효과가 실제 시장에 나타나려면 한두 달 걸리지만 전반적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대미 수출에 적신호가 켜진 셈이라 분석했다. 특히 품목별로 보면 철강과 자동차 부품산업이 중심인 대구경북 경제의 타격이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자동차 부품(-14.75), 철강(-32.1%), 일반기계(-12.75) 등 지역산업과 연관된 분야의 실적이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대구상공회의소가 미국 관세 정책에 따른 지역 제조기업의 영향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지역기업의 위기감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조사내용에 의하면 조사대상(302개사) 중 미국으로 수출하는 기업의 70.4%가 미국관세 정책 후 미국 수출이 감소했다고 응답했다. 그중 17%는 20% 이상 수출이 감소했다고 대답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인데도 뾰쪽한 대응책이 없다는 점이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 45%는 미국 관세정책에 대한 대응을 묻는 질문에 “특별한 전략이 없어 상황만 모니터링 한다”고 답했다. 대구와 경북의 대중·대미 수출의존도는 47%, 48%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수출구조 다변화 등 지역 차원에서 지역기업 활로 모색을 위한 묘수 찾기에 힘을 모으는 지혜가 필요하다.

2025-09-02

사설

교통 단속카메라 과잉설치…이유 있었네

대구·경북을 비롯해 전국도로 곳곳에 무인교통단속장비(단속 카메라)가 요즘 왜 폭증하고 있는지 그 이유가 밝혀졌다. 1일 국회 예결위 소속 임미애 의원(민주당)이 경찰청·행정안전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단속카메라를 통해 징수된 교통과태료 수입은 2019년 7198억원에서 지난해 1조3500억원으로 5년 새 2배가량 증가했다. 이 기간 징수 건수 역시 1460만 건에서 2450만 건으로 늘어났다. 경찰은 2020년 시행된 ‘민식이법’ 제정 이후 어린이보호구역 내 무인 단속 카메라 설치가 의무화됐고 공익 신고도 늘어나 과태료 수입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임 의원이 경찰청에서 확보한 ‘어린이보호구역 안전강화 방안 및 조치계획’에 따르면 민식이법 통과에 따라 경찰청이 수립한 어린이 보호구역 단속카메라 설치 계획 대수는 5년간 8800대였지만, 실제로는 2배가 넘는 2만2489대가 설치된 것으로 파악됐다. 전국 어린이보호구역은 1만6500여 곳인데, 실제 설치된 카메라 수는 이를 훨씬 초과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청은 이에대해 “입찰 과정에서 단가가 내려가면서 낙찰차액 등이 생겼고 이를 활용해 추가 구매해서 대수가 늘어났다”고 밝혔지만, 임 의원은 폐교·폐원된 초등학교, 유치원 주변 어린이보호구역에도 여전히 많은 단속카메라가 설치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니 경찰이 과태료 수입을 위해 단속카메라를 과잉 설치했다는 비난이 나오는 것이다. 차량 통행량이 대도시에 비해 훨씬 적은 경북의 경우에도 올 7월 기준 포항 275대, 구미 210대 등 모두 2046대의 단속카메라가 가동되고 있다. 문제는 과태료 대부분이 국고에 귀속된다는 것이다. 현재 단속카메라 설치비와 운영비는 지방자치단체가 전액 부담하고 있다. 그러나 과태료 수입의 20%(응급의료기금)만 지자체에 지급하고, 나머지는 전액 정부 일반회계에 편성돼 별도 목적 없이 사용되고 있다. ‘재주는 곰(지자체)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정부)이 번다’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2025-09-02

심충택 시평

국힘,‘尹 부부’에 대한 입장정리부터 하라

장동혁 대표 취임 이후 국민의힘 당내갈등이 차츰 해소되는 것 같아 다행이다. 제1야당의 내분은 여당 입법독주의 핵심요인으로 작용한다. 전당대회 당권경쟁 때부터 “내부총질을 하면 결단하겠다”고 강경자세를 보였던 장 대표는 최근 연일 ‘원팀’을 강조하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두고 장 대표와 사사건건 부딪혔던 6선의 조경태 의원도 지난 주말 중진회의 참석 후 “내부 갈등과 분열을 극복해나가겠다. 앞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소통을 자주 했으면 좋겠다”고 기자들에게 밝혔다. 장 대표와의 갈등을 수습하려는 의지를 표현한 말로 여겨진다. 8·22 전당대회 과정에서 마치 ‘콩가루 집안’ 같았던 국민의힘이 이제 한 가족이 된 것처럼 보인다. 의원 107명이 하나로 뭉쳐 여당 폭주에 맞서야 한다는 당위성을 공유한 듯하다. 지난주 중진의원 회동에서 지적됐듯이, 국민의힘이 단일대오를 유지하려면 우선 탄핵반대파와 찬성파가 진심으로 서로의 생각을 인정해 주는 자세가 선행돼야 한다. 그러자면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당의 정체성부터 선명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대구지역 국민의힘 지지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열성 당원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윤 부부에 대한 특검 수사 강도에 반발심을 가지고 있다. 유죄 여부를 떠나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전직 대통령 부부에 대한 동정심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정심은 탄핵 찬반과 관계없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 표현이다. 대구·경북 출신 국회의원들의 경우 ‘친윤계’가 아니더라도 이러한 민심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당내 탄핵찬성 의원들이 민주당의 내란 프레임에 동조해 이러한 동정심마저 매몰차게 걷어차면 당은 산산조각 날 수밖에 없다. 찬탄파 의원들도 국민의힘이 열성당원 없는 정당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탄핵반대파가 당의 주류라고 해서 소수인 찬탄파 인사들을 쫓아내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들은 당심보다 민심을 얻는데 주력하고 있지 않은가.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 국민 10명 중 6명이 찬성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들이 없으면 외연확장이 불가능하다. 내년 지방선거나 2028년 총선을 감안하면 한동훈 전 대표, 유승민 전 의원, 나아가서는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와도 한솥밥을 먹어야 좁은 울타리를 벗어날 수 있다. 민주당이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은 야당의 내분이다. 서로 편을 갈라 당심과 민심 모두를 갉아먹고 있는데, 이보다 더 좋은 정치지형이 있겠는가. 국민의힘 찬탄, 반탄 두 계파는 하루빨리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포용해야 한다. 국민의힘이 최근 민주당의 입법 폭주에 맞서 상임위 보이콧에 나서자 상당수 국민은 잠시나마 당이 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보이콧’이 정기국회 개막으로 흐지부지 됐지만, 과거처럼 당 지도부가 나서 메시지만 남발하는 모습은 누구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 기자들도 뉴스 가치가 없어 보도를 꺼린다. 국민의힘이 앞으로 ‘정청래의 민주당’과 싸워 민심을 얻으려면, 사즉생(死則生)의 각오를 할 필요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국회의원직까지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09-02

心山書窓

책과 이야기로 만나는 해파랑문화쉼터 책담회

처서가 지나선지 바람의 결이 확연히 달라졌다. 그토록 뙤약볕을 내리쬐며 끝 모르게 대지를 달궈대던 태양도 말복을 지나면서 몇 차례 비가 내리자, 아침 저녁으로는 건들바람이 불고 한낮의 더위마저 숙지는 것 같아 벌써 가을의 느낌이 조금씩 묻어나는 요즘이다. 계절의 시계는 이렇게 적확한 것일까? 더위와 꿉꿉함에 눌려 심신마저 지쳐가는데, 차츰 또렷하고 맑게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 생기와 활력의 추임새를 넣어주는 듯하다. ‘때는 가을철 긴 장마 개이고(時秋積雨霽)/신선하고 서늘한 기운 교외에서 불어오네(新凉入郊墟)/등불 점점 가까이할 만하니(燈火秒可親)/서책 펼쳐 읽을 만하지 않은가(簡編可卷舒)’-한유 ‘부독서성남(符讀書城南)’ 중 바람 서늘하고 풀벌레 소리 청아해지는 초가을은 어떤 활동을 하거나 어딜 가기에도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그중 일상에서 편리하고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이 독서일 것이다. 선선해진 기온에 책 읽는 흥미로움과 마음의 양식을 쌓을 수 있는 독서는 단연 ‘가을의 상징’이 아닐까 싶다. 서늘한 가을밤은 등불을 가까이하여 글 공부하기 좋았기에 1500여 년 전 당나라의 문장가인 한유(韓愈)는 아들 부(符)에게 ‘등화가친(燈火可親)’을 시사하며 독서를 권면했는지도 모른다. 가을의 길목에서 산들바람을 타고 불어오는 ‘책바람’이 이쪽저쪽에서 생겨나 상당히 고무적이다. 혼자만의 독서도 의미가 있겠지만, 책을 매개로 시민들이 어울리고 소통하는 행사나 축제를 통해 매력적인 책 문화 콘텐츠를 선보이는 일들은 지역의 문화적인 품격을 높이고 도시의 가치 제고와 독서문화의 저변확대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최근 구룡포읍 해파랑문화쉼터에서 열린 ‘구룡포의 이야기를 담다-소소한 책담회’는 참신한 기획과 깔끔한 진행, 청중의 환호로 성황리에 마무리돼 눈길을 끌었다. 구룡포 어업인 자녀 공부방에서 시작해 읍민도서관을 거쳐 해파랑문화쉼터로 리모델링해 지난 6월 개관 이후 처음으로 열린 책담회는, 지역주민 스스로 기획하고 주관한 문화행사의 첫걸음이다. 구룡포에 23년간 살면서 바닷가 순정한 포구와 순정한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시로 담아낸 사연을 시인의 입담으로 담담히 풀어내고, 구룡포를 노래하거나 해녀의 애환이 서린 시를 시낭송가의 특색있는 음색으로 낭송하는 등 시종 감흥과 정겨움으로 어우러지는 시간이었다. 구룡포에서 살아온 얘기를 지역주민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을 통해 ‘구룡포에서 살아가는 행복’을 되새기며 문화적인 소통과 교감을 하는 자리에 보름달마저 환하게 비춰주었다. 이러한 해파랑문화쉼터 책담회는 앞으로 다양한 책과 작가들을 소개하고 지역민들과 함께하며 문학, 인문학, 교양, 자기 계발 등의 분야에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마련, 책과 저자와의 만남을 통해 생생한 소양과 지식을 더해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포항시는 국내 최대 독서문화축제인 ‘2024년 대한민국 독서대전’을 치른 경험을 바탕으로 2025 지역독서대전 지원사업에 선정돼 음악 특성화 도서관인 포은흥해도서관에서 강연, 북토크, 북마켓, 공연, 전시,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책과 함께하는 축제 ‘2025 포항 독서대전’을 개최할 예정이라서 사뭇 주목된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09-02

정상철의 혁신경영

잠시 멈춤의 힘

예전에 코카콜라 광고에 나온 ‘상쾌한 이 순간’이라는 카피를 기억하는가, 성장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 잠깐 멈추고 뒤를 돌아보면 그렇게 상쾌함을 되찾는 순간이 온다. 잠깐 멈추는 법을 배우면 성장이 따라올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되돌아보기의 법칙이다. 살면서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는 것은 성장에 4가지 영향을 준다. 첫째, 되돌아보면 경험이 지혜로 발전한다. 오랜 역사 이전부터 사람들은 경험을 최고의 스승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경험은 최고의 스승은 아니다. 최고의 스승은 ‘평가를 거친 경험’이다.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수많은 경험을 하고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데, 이는 잠깐 멈춰 되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잠깐 멈추는 여유는 그만큼 중요하다. 마차용 채찍 만드는 회사가 있었다. 생산 공정을 개선해 뛰어난 품질의 채찍을 만들어 내고 계속해서 개선해 나갔고 업계 선두에 섰다. 어느 날 자동차가 시장에 등장했다. 승승장구하던 말채찍 회사는 문을 닫고 말았다. 만약, 말채찍 회사 리더들이 잠깐 멈춰 경험이 주는 의미를 이해하고 진로를 바꿨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둘째, 잠깐 멈춰 되돌아볼 시간과 장소가 필요하다. 새벽 명상이 주는 가치는 경험한 사람은 안다. 잠시 멈춰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은 격려나 동기부여보다 더 도움이 된다고 한다. 걸음을 멈추면 자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확인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하루를 몹시 바쁘게 살아간다. 많은 경험을 하지만 정리가 안 된다. 되돌아 볼 시간과 장소가 있고, 습관화 되면 하루 일어나는 경험들이 주는 의미를 알게 되고 더 나은 삶이 된다. 셋째, 의도적으로 멈추면 더 넓고 깊게 생각할 수 있다. 세상에 영향을 끼친 위인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기업의 리더들은 보통 사람보다 바쁘게 살아간다. 1분 동안 생각하는 시간이 한 시간 동안 말하는 것보다 가치 있는 경우가 있다. 대학은 교수에게 가르치는 시간 외에 생각하고 연구하고 저술할 시간을 준다. 그것은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면 지식과 경험을 뜯어보고 합리적으로 평가해 내일을 계획할 수 있다. 넷째, 잠깐 멈출 때 활용하면 좋은 것들이 있다. 생각 속 내용은 탐구, 숙성, 각성, 실증 등 네 가지로 나아가야 한다. 새로움의 추구는 탐구에서 시작된다. 경험에서 지혜와 진리를 찾아내야 한다. 인생의 경험을 마음의 솥에 넣고 얼마 동안 찌는 것이 숙성이다. 이것은 명상과 비슷하다. 하루를 마칠 때 자신이 한 일을 되새겨보라. 스스로를 칭찬하거나 자극하게 될 것이다. 각성이란 갑자기 무릎을 탁 치며 깨달음이나 지혜를 얻는 순간을 뜻한다. 실증은 아이디어에 살을 붙이는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는 뼈와 같다. 뼈는 살이 붙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체가 없고, 실체가 없으면 쓸모가 없다. 바쁜 현대인의 생활에서 잠시 멈추고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수많은 지식과 경험들을 바로 세우는 길이고, 미래 삶의 질로 연결된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09-02

공봉학의 인문학 이야기

잘못된 만남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얼마나 듣기 좋은 구절인가. 듣는 순간 따뜻한 사랑이 엄습해 온다. 이웃이 정겨워진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나와 이웃은 서로를 사랑하는 따뜻한 사이인 것 같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올리고 생각해 보자. 내가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지. 나의 이웃사랑이 진정한 헌신인지, 아니면 자기 위안 인지를. 이웃사랑이라는 감정 속에 숨겨진 동기와 욕망은 따로 있지나 않은지. 우리는 수시로 이웃(지인)을 찾는다. 우리가 이웃을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스스로의 고독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이웃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싶어서? 이웃에게 자신을 인정받고 싶어서? 어쩌면 우리들은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들 스스로를 견디지 못하여 이웃에게 달려갈지 모른다. 고독이란 감옥을 탈출하기 위해, 자기애의 결핍을 치유하기 위해, 이웃들에게 달려간다. 이웃을 만나서 그 이웃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고, 이웃의 잘못을 핑계 삼아 나 자신을 합리화한다. 우리의 이웃을 통하여 나 자신을 정당화하고, 이웃에게 나의 증인이 되어 줄 것을 요구한다. 어쩌면 대부분의 이웃사랑은 위장된 자기애일지 모른다. 자기 내면의 공허를 메우기 위해 타인과 관계 맺고, 관계를 꾸며댄다. 이때의 이웃사랑은 진정한 베품이 아니라, 자기 결핍이다. 오늘도 우리들은 고독과 권태, 자기 상실감에 떠밀려 이웃에게 달려간다. 이웃을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나를 속이고, 이웃을 속이지는 않은지. 진정한 이웃사랑은, 이웃의 인정이나 위로에 매달리지 않는다. 오히려 고독 속에서 스스로를 견디고 그 힘으로 타인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이 이웃사랑이다. 이웃을 내 결핍을 충족시키는 도구가 아닌, 하나의 독립적 존재로 존중하는 태도가 진정한 이웃사랑이다. 나의 고독을 견딜 줄 알고 타인의 고독을 존중할 때, 비로소 이웃사랑은 실천된다. ‘타인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타인을 얽어매고 동시에 자신을 정당화하는 장치일지 모른다. 좋은 말이지만 조심해야 한다. 현대 사회의 이웃사랑은 도덕적 미사여구로 소모된다, SNS의 ‘구독’과 ‘좋아요’처럼. 형식적 기부, 보여주기식 봉사활동은 타인 속에서 나를 증명하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망의 표출이자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타인을 끌어들이는 교묘한 위장 전술이다. 이런 것들이 이웃사랑이라면, 나는 이웃사랑을 거부한다. 이웃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이웃과 통화를 하고, 이웃의 SNS에 좋아요 누른다. 커피숍을 나설 때, 전화를 끊을 때, 좋아요를 누른 후에도 나의 이웃사랑은 그대로 인지 궁금하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근심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는다’라는 공자의 한마디가 이웃사랑의 시작일지 모른다. 이웃을 통해 나 자신을 인정받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웃은 없다. 말 안해도 다 안다. 나도 알고, 이웃도 안다. 내가. 그대가. 이웃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지를. /공봉학 변호사

202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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