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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전국에서 소나무 재선충병 피해가 가장 심각한 지역은 경북이다. 산림청이 2021년-2025년까지 조사한 소나무 재선충병 발생 현황에 따르면 경북은 186만 그루가 재선충병에 감염된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 전체의 45%다. 도내에서 피해가 가장 심각한 지역은 포항과 경주, 안동으로 밝혀졌고, 산림청은 3곳을 소나무 재선충병 극심지역으로 분류했다. 이 지역에서는 최근 5년간 재선충병으로 고사한 소나무가 75만그루에 달했다. 불과 5년 사이 7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특히 고사목의 40%는 포항에서 발생했다. 지난달 포항시 소나무 재선충병 지역방제협의회에서 공개된 소나무 재선충병 방제 기본설계용역 최종보고서에 의하면 포항지역의 완전 고사목은 소나무 10개 중 3개 꼴인 31.3%에 달했다. 그동안 방제를 위해 수많은 인력과 예산을 투입했지만 결과는 전국 최악의 재선충병 지역이란 오명만 쓴 셈이다. 용역 보고서는 당국의 방제사업이 비합리적이고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는 바람에 수천억원의 예산을 날렸다는 등의 몇 가지 비판을 제기해 눈길을 끌었다. 보고서는 설계, 조사, 모니터링없이 사업을 진행하는 바람에 사업이 어느 정도 실효성을 보였는지 알 수 없고, 또 오히려 방제의 역효과로 확산을 가속화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지역주민들도 일부 사업은 눈에 보이는 성과를 위해 표본지 몇 곳만 처리하고 끝냈으며 방제지역 경계 설정과 이력 관리가 엉망이었다는 비판 목소리를 냈다. 항공방제나 드론 살포가 필요하다는 제안이 반복됐지만 시행 시기와 범위가 제멋대로여서 효과가 단기에 그쳤다는 비판도 나왔다. 처치 대상 선정 기준도 불분명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보고서는 고사된 숲의 단순한 제거가 우선되면서 재조림, 토양회복, 생물다양성 회복 등 후속 조치는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그나마 늦게라도 재선충 방제 기본설계를 한 것은 다행이라 했다. 포항시는 설계용역 최종보고서를 바탕으로 전국 최악의 재선충병 확산지역이란 오명을 벗어내는 데 총력을 쏟아야 한다.

윤석준 대구 동구청장이 지난 5일 대구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벌금 100만 원 이상은 당선무효형이다. 그는 변호사와 의논해서 대법원 상고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윤 청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선관위에 신고하지 않은 개인 계좌로 문자 발송 등 수천만 원의 불법 선거비용을 지출한 혐의를 받아왔다. 진보당 대구시당은 이날 성명을 내고 “윤 청장이 동구청을 ‘월급 현금인출기’로 여긴 것이 아니라면 상고를 하지 말고 즉각적인 사퇴를 하라”고 요구했다. 그동안 윤 청장은 무단결근과 업무추진비 목적 외 사용 의혹 등으로 지역 시민단체들로부터 사퇴요구를 받아왔다. 전국적으로도 마찬가지지만, 대구·경북에서도 일부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의 불법행위, 이권개입 등의 부패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대구 중구의회가 대표적이다. 중구의회는 차명회사를 세워 중구청·중구의회와 수의계약을 체결했거나 허위공문서 작성, 상표법 위반 혐의 등으로 의원들 간에 법적분쟁이 끊이지 않아 한때 의회기능이 정지되기도 했다. 대구 중구의회가 지난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소속 의원이 의회를 상대로 한 8건의 행정소송에 5321만원을 지출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대구 남구의회에서는 음주운전을 한 의원이 동승자와 ‘운전자 바꿔치기’를 했다가 발각돼 의회로부터 징계처분을 받기도 했으며, 달서구의회에서는 언론사 기자에게 금품을 받은 의원이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는 일도 있었다. 시민들이 보기엔 지방자치 시스템이 감시 사각지대에 방치된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1995년 전면 시작된 지방자치제가 그동안 30년을 거치면서 본연의 기능을 뿌리내리는 측면은 있지만, 각종 비리 문제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내년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은 다시 한번 지방선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는 안목을 키울 필요가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흔들리는 것은 유권자 책임도 크다.

칼럼

포항시 호미곶면 구만리 앞바다에는 암초가 많다. 그러다보니 이곳에는 옛날부터 해상사고가 잦았다. 1907년 일본의 수산강습소 실습선 카이오마루(快應丸)가 이곳에서 좌초되어 교관 1명과 학생 3명이 사망한 사고가 대표적인데, 이 사건이 연유가 되어 1908년에 호미곶 등대가 들어섰다. 암초 중 특별히 교석초(橋石礁)라 부르는 곳이 있다. 구만리 북쪽 약 650m 해상에 자리한 암초로 맨 위쪽 수심은 1.5m이다. 2002년 11월 이 암초에 대해 해양지명위원회에서 교석초로 공식 명명하면서 한국 최초로 확정 고시된 해양지명에 등재되게 되었다. 1959년, 해상 안전을 위해 수중에 암초가 있음을 알리는 등표를 세웠는데, 주민들이 흔히 ‘물등대’라 부르는 교석초 등표다. 교석초는 우리말로 ‘다릿돌’이라는 뜻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1/50,000 지형도에도 표시돼 있는 걸로 봐서 오래 전부터 불러 온 명칭임을 알 수 있다. 다릿돌이라는 이름은 다리로 놓은 돌이라는 의미를 지니는데,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 구만리에 마고할미가 살고 있었다. 마고할미는 남편을 만나러 영덕 축산에 다녀오곤 했다. 구만리에서 보면 축산은 빤히 건너다보이는 곳인데, 영일만 해안을 따라 빙 돌아가려니 너무 멀었다. 그래서 바다에다 징검다리를 놓기로 했다. 마고할미는 물살이 잔잔한 날을 택하여 치마에 바윗돌을 싸 와서는 바다에 하나씩 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밤샘작업에도 불구하고 날이 새는 바람에 완성을 못한 채 중단하고 말았다. 이렇게 마고할미가 놓은 바윗돌이 구만리 앞바다에서 북쪽으로 이어져 있는데, 사람들은 이를 다릿돌 또는 교석초라고 부른다. 구만리 앞바다에 있는 암초의 유래를 설명하는 신화인데, 우리 귀에 익숙한 마고할미라는 여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는 남편이 있는 축산을 오가는 데 편리하게끔 영일만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를 놓기로 한다. 이 할미는 덩치도 크고 힘도 아주 센 ‘슈퍼 우먼’이기에 큰 바윗돌을 치마에 싸서 운반한다. 그런데 날이 새는 바람에 완성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굳이 밤에 다리를 놓아야만 했을까? 신들은 보통 밤에 일을 한다. 인간이 알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이 새거나 닭울음소리가 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만다. 마고할미는 할머니지만 거대한 덩치에 괴력을 소유한 신격으로 우리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창조신이다. 제주도 선문대할망이나 서해안 개양할미, 지리산 성모천왕도 따지고 보면 이름만 달랐지 마고할미계 여신이다. 이처럼 마고할미는 신화 속에서 거대한 덩치와 엄청난 힘으로 산을 만들거나 옮기기고, 바위를 치마폭에 싸서 나르는 괴력을 보여 준다. 다만 이러한 작업을 사람이 보지 않는 밤에 하다 보니 작업 중에 날이 새거나 닭이 울면 작업을 중단해야 하는 약점이 있다. 그래서 마고할미 관련 자연물은 거의 다 미완성이다. 교석초가 위치해 있는 호미곶 구만리에서는 정기적으로 신화의 주인공 마고할미를 위한 제의를 지내오고 있어 주목된다. 이 마을에서 열리는 다릿돌별신굿이 바로 그것이다. 교석초 등표가 건너다보이는 구만리 해안에서 3년두리(격년)로 열리는 별신굿으로 풍어와 해상안전을 기원하는 제의다. 그러기에 교석초 이야기는 구만리의 ‘살아 있는 신화’라 할 만하다. 마고할미가 놓았다고 하는 교석초 일대는 해산물이 풍부한 곳이다. 구만리 갯마을인 까구리개(구만2리)의 지명이 해안에 밀려 온 물고기를 까꾸리(갈고리)로 끌어서 잡는 곳이라는 데서 연유한다는 유래담을 보아도 예로부터 어자원이 풍부한 곳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곳은 파도가 높고 암초가 많아서 배가 다니기엔 매우 위험한 지역이다. 지리적 위치로 인해 강원도 쪽 배들이 남으로 가거나 부산 쪽의 선박들이 북으로 갈 때 반드시 지나야 하는 곳이다. 그러기에 이곳 사람뿐만 아니라 선박을 운행하는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도 마고할미가 놓은 교석초는 두려움의 대상이면서 신앙적 대상이 되었다. 별신굿을 앞두고 구만리 사람들은 경비 마련을 위해 경남, 부산은 물론 강원도 지역까지 모금하러 다녔고, 그곳 뱃사람들은 두 말 하지 않고 성금을 냈다고 한다. 다만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별신굿 대신 소규모 제사로 대신하고 있는 실정이다. 2024년에는 12월 2일 밤에 제사를 지냈다. 현재 포항시에는 포항지역의 숙원사업인 영일만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영일만대교 가설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신화가 집단무의식의 표현이라고 한다면 교석초 신화는 아득한 옛날 사람들도 구만리에서 손에 닿을 듯이 건너다보이는 흥해읍 용한리까지 다리를 놓아, 육지 안쪽으로 빙 돌아가는 대신 바다를 가로질러 편하게 영일만을 건너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러한 꿈이 교석초 신화로 표현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영일만대교는 오래 전 이곳 사람들이 꿈꾸었던 소망의 현실화인 셈이다. 제주도에 가면 선문대할망상이 있고, 지리산 아래의 산청군 중산리에는 성모천왕상이 세워져 있다. 구만리 해안에 교석초 신화의 주인공 마고할멈상이 세워지는 날을 그려 본다. /박창원 동해안민속문화연구소장

눈을 치우는 사람과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가 한 골목에 나란히 있다 그해 겨울엔 검은 눈이 내렸다 믿을 수 없겠지만 사실보다 더 사실처럼 내렸다 눈송이를 돌려주기 위해서 그들은 빛보다 먼저 내려앉아 눈을 거들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다행이라는 물방울 속에 적설량을 감춰왔나 사람들의 눈금을 지우며 쌓여가는 검은 눈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들에게 소원을 빌었다 하얀 입김이 빚는 검은 눈사람의 형태를 눈이 녹아가는 거리 그들은 이제 모두 같은 골목을 걸어간다 검은 눈은 세상의 하얀 것을 데려간다 없었던 일은 될 수 없겠지만 해프닝으로 남겨지기 위해 머리를 찾는 눈사람이 굴러간다 검은 눈은 사람들을 목격자로 만들어놓고선 이제 아무 때나 오지 않고 ―서윤후, ‘흑설(黑雪)’전문 (‘나쁘게 눈부시기’, 문학과지성사) 골목에는 두 개의 장면이 나란히 포착된다. “눈을 치우는 사람”과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 두 장면은 파편적인 이미지로 펼쳐져 있을 뿐 구체적인 서사가 없다. “눈”과 “눈사람”은 “치우는 사람”으로, “만드는 아이”로 진행 중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보이는 그대로 선하거나 정직하지도 않다. 화자가 기억하는 “그해 겨울”은 “검은 눈이 내렸다”라는 언술에서 감지되듯 이 세계는 드러나지 않는 부정과 불신이 검은 유령처럼 숨어 있다. 하지만 시종일관 검은 것과 흰 것의 대비로 끌고 가며 불안한 정황을 환기하고 있을 뿐이다. 언뜻 보기에 “눈”에 기댄 우회적인 묘사는 밝을 법하지만 외려 어둡다. ‘우리’라는 공동체에 드리운 짙은 음영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가령 “믿을 수 없겠지만”이라는 전제는 “사실보다 더 사실처럼”의 심각성을 강화하고 있다. 이어 “우리는 얼마나 많이 다행이라는 물방울 속에 적설량을 감춰 왔나”는 물음을 통해 줄곧 화자가 나와 타자가 아닌 ‘우리’라는 공동체를 호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송현지의 해설에서, “서윤후는 일반적으로 나와 타자를 묶어 가리키는 ‘우리’라는 말을, 타자와 다름없어진 어제의 나, 지금의 나를, 그리고 여러 ‘나’들을 아우르는 독특한 방식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이러한 개념이 역설적으로 시간의 존재로 살아가는 한 아무도 그런 ‘우리’를 가질 수 없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한 글자 사전에서 김소연은 인간의 눈에 대해 “보이는 것만 잘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들”에 우리는 여전히 무지하다고 했다. 서윤후 시인이 응시하는 세계는 가시적인 공간 그 너머에 있다. 골목이라는 공동체에서 ‘우리’가 감각을 통해 보는 것은 흰 눈과 검은 눈이라는 양가적 윤리성에 있다. 예컨대 “하얀 입김이 빚는 검은 눈사람의 형태”처럼 말이다. 이 무력한 점층법 “사람들의 눈금을 지우며 가는 쌓여가는 검은 눈”처럼 비록 “없었던 일은 될 수 없겠지만” “세상의 흰 것”의 믿음을 끌어안고 가 보려는 노력은 될 것이다. “머리를 찾는 눈사람이 굴러간다” /이희정 시인

“정치권에서 형, 형님, 누나, 누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선배 동료들을 살갑게 부르는 민주당의 일종의 언어 풍토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지난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그는 또 “동료 후배 의원들께서도 저를 의원, 전 대표보다는 대부분 거의 형님, 큰형님이라 부른다”라고 강조했다. 박 의원이 이 글을 올린 이유는 분명하다. ‘현지 누나’를 비호하기 위해서다. 박 의원은 83번째 생일이 6개월이나 지났다. 그는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자칫하면 그의 사소한 언행이 김 전 대통령에게 누를 끼칠 수도 있는 처지다. 그때도 그랬느냐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그런 박 의원까지 나서서 ‘현지 누나’를 엄호하는 것을 보면, ‘세긴 세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동료 의원들끼리 ‘살가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나쁠 리가 없다. 그런 호칭이 굳이 민주당이나 호남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풍토도 아니다. 경북 출신인 한 대학 총장도 젊은 시절 만나는 사람마다 ‘형님’, 아니면 ‘아우님’이라고 부른다고 소문이 난 적이 있다. 친화력이 좋고, 마당발이라는 평가가 따랐다. 국민의 힘 정치인 중에도 ‘형님’이라는 호칭을 버릇처럼 내뱉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정치인이 ‘형님’, ‘누님’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뻔하다. ‘공식적인 관계보다는 가깝게 지내자’는 제의다. ‘너무 야멸차게 원칙만 들이대지 말아달라’는 응석이다. 친 형님처럼 푸근하게, 친 누님처럼 따뜻하게 대해달라는 부탁이다. 좀 더 들여다보면 인사나 청탁을 잘 챙겨달라는 뜻이기도 하다. 남의 부탁은 몰라도 형님이나 아우 부탁은 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계산이 담겨 있다. ‘형님’이란 말을 정치인보다 더 잘 쓰는 집단이 ‘조폭’이다. 무슨 말을 하건 ‘형님’을 갖다 붙이는 게 조폭 어법이다. 개그맨들이 종종 그런 말투로 조폭을 흉내 내 관객을 웃기는 걸 본다. ‘형님’에는 논리가 없다. 명령과 복종뿐이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단순 무식’이 이 세계의 절대 규율이다. 그러나 이런 관계가 정치권, 공직 사회에 얹혀지면 곤란한 일이 생긴다. ‘공(公)’과 ‘사(私)’가 비빔밥이 되는 것이다. 문진석 민주당 수석원내부대표가 김 남국 전 대통령실 디지털소통 비서관에게 보낸 문자는 이렇게 시작한다. “남국 아, 우리 중대 후배고···”. 같은 대학 동문이니 내가 챙기는 것이고, 너도 챙겨야 한다는 논리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업무와 관계없는 줄이 작동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는 민간단체다. 공직, 공공기관, 정부가 공식으로 관여하는 자리가 무수하다. 그런데, 이런 민간단체장까지 대통령실이 좌지우지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디지털소통비서관은 자동차산업과 관계가 없다. 인사 와도 거리가 멀다. 제1부속실장도 인사담당자가 아니다. 그렇지만 거대 여당의 원내 제2인자가 그런 줄을 잡고, 인사청탁을 했다. 대통령실 비서관도 ‘현지 누나’가 인사를 좌우하는 실력자라고 지목했다. 이걸 단순한 해프닝으로 덮을 수 있나.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여권 실세들이 모두 ‘현지 누나’가 민간협회장을 낙점해줄 수 있다고 믿었을까. ‘만사현통’이라는 시중의 소문만 믿은 건 아닐 것이다. 야당이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을 국회로 부르자, 이재명 대통령은 그에게 문고리 권력을 맡겼다. 국회 출석을 회피할 수 있는 자리다. 문자 소동 끝에 김현지 실장은 “나는 아주 유탄을 맞았다”라며 억울해했다. 그렇다면 진즉 국회에 나왔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서원(최순실의 개명)으로부터 사소한 도움을 받다 비선 논란에 휘말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의 지나친 국정 개입을 감싸려다 제 발등을 찍었다. 권력에는 책임이 따른다. ‘비선(秘線)’은 권력은 휘두르는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무책임한 권력만큼 위험한 게 없다. 이재명 대통령의 인재 풀은 매우 좁다. 성남 시절 지인이 아니면, 자기 사건 변호인들이다. 그 밑에서 돌아가는 모양도 ‘끼리끼리’다. 사적 관계에서 살갑고 정이 넘치는 건 좋다. 하지만 공적 영역은 다르다. 달라야 한다. 국정 운영은 더욱 그렇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한국사회의 호칭문화는 매우 복잡하고 독특하다. 사회적 구조와 나이, 서열, 직장에 따라 호칭하는 방법이 각기 다르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애로를 겪는 분야 중 하나다. 친가, 처가, 외가 등에 따라 호칭이 다르고 나이에 따라 존댓말과 반말이 구분된다. 직장에서도 상사와 부하 간 사용하는 호칭이 별도 있다. 영어의 YOU에 해당하는 단어도 ‘님’ ‘씨’가 있는 반면 ‘놈’ 혹은 ‘것’까지 다양하다. 자칫 잘못된 단어 선택은 상대에게 큰 실례가 된다. 4년 전 가장 권위 있는 영어사전인 영국 옥스퍼드는 한국의 단어 26개를 표제어로 등재했다. 먹방, 김밥, 불고기, 삼겹살 등 한류문화와 관련한 단어다. 그중 눈여겨볼 것은 여성들이 주로 사용하는 오빠(OPPA)와 언니(UNNI)가 등재된 사실이다. 옥스퍼드 측은 K팝이나 K드라마가 등재의 결정적 이유라 했다. 외국인은 한국 배우나 가수를 부를 때 자신의 성별과 무관하게 ‘오빠’와 ‘언니’를 사용한다는 것인데 남성 외국인이 ‘오빠’ ‘언니’라 불러도 이상할 것 없다는 뜻이다. “Oppa JinJa Deabak!”(오빠 진짜 대박)과 같은 말들이 K-컬처를 타고 세계 곳곳에서 들을 날도 멀지 않을 것 같다. 청탁문자 파문으로 대통령실 비서관이 사직했다. 이와 별개로 공적 관계 속에 그가 사용한 “형” “누나” 호칭을 두고 논란이다. 일부에서는 “민주당의 일종의 언어풍토”라고 했지만 공직자가 근무 중 “형, 누나”같은 사적 호칭을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많다. 사적 친밀감을 나타내는 표현의 사용은 공적 영역에서는 신중한 게 옳다. 공적 기능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정구(논설위원)

사노라면 우연한 계기로 변화와 마주하는 수가 있다. 무슨 연유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2012년에 빅토르 위고(1802~1885)의 ‘레미제라블’을 읽게 되었다. 영화와 드라마, 오페라와 뮤지컬로 여러 차례 만들어졌지만, 정작 원작을 읽지 않았던 터였다. 6권짜리 2400쪽이 넘는 대작이었지만, 대가의 솜씨 덕분에 비교적 빠른 기간에 완독할 수 있었다. ‘레미제라블’ 첫머리에 위고는 쓴다. “지상에 무지와 빈곤이 존재하는 한, 이런 종류의 책도 쓸모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위고 이전에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1812~1870)는 19세기 영국에 만연한 무지와 빈곤에 대한 소설을 출간했다. ‘올리버 트위스트’(1838), ‘크리스마스 캐럴’ (1843), ‘데이비드 코퍼필드’(1850), ‘어려운 시절’(1854)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디킨스의 소설 작품들은 위고의 ‘레미제라블’만큼 울림이 크고 깊지 않다. 필시 그것은 디뉴의 미리엘 주교와 죽음을 눈앞에 둔 86세의 노정객 국민의회 의원 G 사이에 펼쳐지는 프랑스 대혁명 관련 논쟁 때문일 것이다. 왕당파이자 보수주의자 미리엘 주교와 진보적인 공화주의자 국민의회 의원 사이의 기나긴 논쟁은 소설의 백미(白眉) 가운데 하나다. 국민의회 의원은 말한다. “루이 16세 처형은 여성에게는 매춘의 종말, 남성에게는 노예의 종말, 어린이에게는 어둠의 종말이오. 공화제(共和制)에 찬성함으로써 나는 그 일에 찬성한 것이오.” 그의 선택은 왕과 그 아내만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무지와 빈곤에 신음하며 매춘과 노예 노동, 출구 없는 암흑에 빠진 가난한 다수를 위해 불가피한 것이었다는 얘기다. 파괴적인 분노에 반대한다는 미리엘 주교를 반박하면서 의원은 말을 잇는다. “정의에는 분노가 있는 법이오. 올바른 분노는 진보의 요소입니다. 프랑스 대혁명은 예수 탄생 이래 인류의 가장 힘찬 일보였소. 대혁명은 비천한 인간들을 해방했소.” 여기서 우리는 위고의 정치적 입장이 궁금해진다. 그에게는 왕당파와 공화주의자 양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 같다. 어떤 영화나 오페라에도 이런 기막힌 서사는 나오지 않는다. 공연에 필수적인 상업적 고려 때문이다.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소설에서 독자는 무지와 빈곤에 시달리는 여러 인물과 대면한다. 장발장, 팡틴, 코제트, 에포닌, 가브로슈 등등을 거명할 수 있다. 이들 가운데 자기 손으로 무지와 빈곤을 극복한 유일한 인물은 장발장이다. 무지와 빈곤의 최대 피해자 팡틴은 매춘하다가 병에 걸려 죽는다. 그래서 위고는 여자가 비참한 경우에 빠진 것을 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고 단언한 것이다. 애인에게 버림받고, 공장에서 일하다가 미혼모임이 밝혀지면서 쫓겨나고, 저임금으로 바느질하다가 머리털을 잘라 팔고, 끝내는 거리의 여자로 전락해 죽어갔던 비운의 여인 팡틴! 고교교육을 의무화한 한국 사회는 무지와 작별했다. 하지만 빈곤은 여전히 사회 전반적인 문제다. 2014년 2월의 ‘송파구 세 모녀 자살 사건’은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사회 안전망과 경제적 양극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창밖 바람이 차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지난주 금요일부터 포항시의회는 내년도 예산 심사에 돌입했고, 건설도시위원회는 첫 순서로 도시안전주택국 예산을 심사했다. 특히 이번 심사에는 포항시 도시계획과가 제출한 2040 도시기본계획 수립 용역비가 포함되어 있다. 본 의원은 도시안전주택국 정책 질의에서 ‘2040 도시기본계획 수립의 중요성’을 집중 다뤘다. 도시의 미래를 설계하는 이 계획은 앞으로 포항시의 행정·재정·공간정책을 이끄는 도시의 헌법과도 같은 존재다. 사실 그동안 포항시의 도시기본계획은 여러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대표적으로 △생활권 구조 분석의 부족 △인구·경제 전망의 과도한 낙관주의 △구체적 실천 전략의 부재 등이다. 특히 지난 계획에서는 인구 감소 추세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해 택지 과잉 조성, 녹지 훼손, 공동주택 공급 과잉 등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포항 시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2040 도시기본계획은 이런 문제점을 제대로 검토한 다음 계획 수립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첫째, 산업 전환을 반영한 미래 도시상을 제시해야 한다. 포항은 오랜 기간 철강 산업 중심의 산업도시였지만 지금은 AI, 2차전지, 수소 등 신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산업 다변화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변화다. 산업이 바뀌면 도시공간의 기능, 주거와 교육, 교통체계, 청년 정주 환경까지 모두 달라져야 한다. 둘째, 남·북구 균형 발전을 실질적으로 실현할 도시계획 전략이 필요하다. 현재 포항은 남구에 산업단지와 공업시설이 집중되면서 환경 부담이 커지고, 반대로 북구는 주거와 상업 기능이 몰리며 지역 간 편차가 심화 되고 있다. 이로 인해 출퇴근 시간 증가, 교통 혼잡, 주거·교육 서비스 격차 등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남·북구 생활 SOC 균형 배치, 원도심 활성화 전략 등을 포함해 도시 전체가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는 계획이 필요하다. 셋째, 2040 도시기본계획은 개발 중심을 넘어 지속 가능한 도시를 목표로 해야 한다. 그동안 많은 도시는 “아파트를 지으면 인구가 늘어날 것”이라는 개발 중심 논리를 앞세웠지만, 저출생·고령화·인구 유출이라는 구조적 변화를 고려하면 이러한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포항 역시 1인 가구가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도시 인프라, 아이를 키우며 일할 수 있는 보육·교육 환경, 어르신의 돌봄 공백이 없는 촘촘한 복지체계를 우선적으로 담아내야 한다. 또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도시 숲 확대, 안전도시를 위한 환경·재난 계획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2040 도시기본계획은 행정이 일방적으로 정하는 계획이 아니라, 시민이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산업 전환, 균형 발전, 지속 가능성이라는 세 가지 방향을 중심으로 2040 도시기본계획이 설계된다면 포항은 단순히 ‘성장하는 도시’를 넘어 시민이 살기 좋은 도시, 다음 세대가 꿈꿀 수 있는 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 2040 도시기본계획이 지속 가능한 포항시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길 기대해본다. /김은주 포항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최신 오피니언
유영희의 마주침

혐오하기의 즐거움을 넘어서려면

며칠 전 12·3 계엄 1주년이 지났다. 12·3 계엄 선포는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혐오가 극단적으로 표현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포고령 1호의 1번이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이런 혐오하기가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인간의 마음속에 뿌리가 깊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제인 엘리엇은 1968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살해된 다음 날 자신이 담임을 맡았던 3학년 학생 20여 명을 대상으로 이틀간 ‘푸른 눈, 갈색 눈’ 실험을 시도했다. 교사 엘리엇은 평소 서로 잘 지내던 아이들을 푸른 눈, 갈색 눈 두 집단으로 나눠서 첫날은 푸른 눈이 열등하다고 차별하고, 둘째 날은 갈색 눈이 열등하다고 차별했다. 처음에 아이들은 어리둥절했으나 우월하다고 지목된 집단의 아이들은 하루 만에 바로 열등하다고 지목된 집단의 아이들을 혐오하고 차별하며 공격적인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다. 혐오는 단순히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싫어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혐오 다음에는 반드시 폭력이라는 행동이 뒤따른다. 작년에는 당시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부산에서 기자간담회 도중 칼로 피습 당했고, 같은 해 7월에는 트럼프도 피습 당했다. 윌리엄 피터스의 ‘푸른 눈, 갈색 눈’을 번역한 김희경은 책 말미에 해설과 후기를 아주 자세히 서술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섬뜩했던 것은 엘리엇이 이 실험 결과를 책으로 낸 후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는 뒷이야기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런 일이 몇십 년이 지난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공격 행동을 유발하는 혐오가 여전한 것을 보면, 어쩌면 혐오하기가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실제로 영국의 수필가 윌리엄 해즐릿 (1778-1830)은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산문에서 ‘인간은 순수한 선에 금방 싫증을 내고 변화와 활기를 원한다’면서 ‘혐오할 게 없으면 생각과 행동의 원천마저 잃어버릴 것 같다. 삐걱거리는 이해관계, 제멋대로인 열정으로 계속 파문을 일으키지 않으면 삶은 고인물이 될 것이다.’라고 썼다. 해즐릿이 이런 말을 한 것은 우정과 사랑의 가치를 믿었다가 배신당한 후 냉소적으로 쓴 것이기는 하지만, 그가 제시한 자료들을 보면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질이 있다는 것은 그다지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 사이코패스도 좋은 교육을 받으면 사회에 잘 적응하는 것처럼 인간은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존재이기도 하다. 올해 92세를 맞이한 교사 엘리엇이 여전히 강의 활동을 하는 이유다. 한편, 혐오하기의 즐거움이 가슴속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한, 남의 신발을 신어보라는 ‘푸른 눈, 갈색 눈’ 교육만으로는 혐오를 다 해결하기 어렵다. 행복한 사람은 혐오에 휘둘릴 가능성이 적다. 혐오를 즐기지 않기 위해서는 우정과 사랑의 가치를 믿는 행복한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12-07

칼럼

AI 데이터센터, 축복인가 숙제인가

전 세계적으로 AI 경쟁이 가속화하면서 데이터센터 유치가 각 지자체의 새로운 산업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포항 역시 이 흐름에 올라탔다. 오픈AI와 NeoAI Cloud가 추진하는 글로벌 AI 데이터센터가 조만간 착공될 예정이고 2027년 1월 본격 운영할 목표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내년 포항시장 자리를 노리는 지방선거 출마예정자들도 이에 관한 포항의 미래를 그리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서는 데이터센터 건설사업이 잇따라 중단되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6일 최근 약 3개월간 미국 내 약 242억달러(약 35조7000억원) 규모의 데이터센터 개발사업이 주민 반발로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소규모 일자리 외에는 전기요금 상승, 소음, 환경오염 우려와 같은 ‘외부 불경제 시설'이라는 것이 핵심 이유였다. 일부 지역에서는 아예 ‘혐오시설’로 분류되기도 했다. 전력 문제가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이다. 데이터센터는 대규모 전력을 24시간 사용한다. 미국 버지니아주는 데이터센터 밀집 이후 전기료가 전년 대비 13% 상승했다. AI 데이터센터 비상발전기용 디젤 연료가 배출하는 PM2.5와 NOx가 건강 위험 요인이어서 주민 반대여론에 불을 붙였다. 미국 UC리버사이드는 2028년 데이터센터발 환경비용이 연간 2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의 사례는 포항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남긴다. 광명산단은 국가 간선망 수준인 345kV 변전소를 기반으로 별도 이중화 없이도 전력공급 안정성이 확보돼 유리한 조건이다. 하지만 산업전환과 지역 수용성 측면에서는 과제가 적지 않다. 포항의 데이터센터가 ‘기회’가 될지, 미국처럼 ‘갈등의 불씨’가 될지는 여러 측면에서 어떠한 해법을 제시할 지에 달려 있다. 데이터센터는 지역사회와 밀접한 시설인 만큼 발열·소음·전력소비 등 운영데이터의 투명한 공개와 감시·평가 구조에 시민 참여가 필요하다. 또 미국의 사례처럼 지역과 무관한 데이터 처리·저장시설에 그치면 지역경제에 미칠 파급효과는 거의 없다. 포항이 지닌 철강, 배터리, 바이오, 가속기 등 방대한 기술데이터가 AI와 연계되는 전략이 뒤따라야만 한다. 데이터센터의 고용유발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다. 반면 AI 연구·운영·서비스 생태계가 함께 구축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포스텍·한동대·RIST·KIRO 등 기존 R&D 인프라와 융합된다면 포항은 AI 전문도시로 성장할 수도 있다. 포항은 지금 변곡점에 있다. 데이터센터는 미래 산업의 심장이지만 심장은 혈관과 조직, 생태계가 연결돼야만 제 역할을 한다. AI 데이터센터 유치로 포항의 미래를 바꾸려면 처음부터 그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포항은 데이터센터를 ‘보유만 한 도시’에 그칠지, 이를 계기로 ‘AI 산업을 주도하는 도시’가 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5-12-06

사설

지방의 청년인구 감소, 대책은 없는 것일까?

경북 청년인구가 5년 새 6만명 감소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경북의 청년인구(19~34세)는 올 10월, 37만여 명으로 5년 전 같은 기간보다 15%인 6만여 명이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평균 4%의 4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경북 인구감소가 자연 감소를 넘어 청년층 위주로 급속히 가속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지방 청년인구 감소는 경북만의 문제는 아니다. 비수도권 지자체가 공통으로 겪는 지방소멸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반면에 수도권 인구집중은 20년 이상 지속된다. 작년 수도권으로 순유입된 인구는 4만여 명. 청년층 비중이 가장 높다. 경북에서 이탈한 청년인구도 70%가 19~24세다. 수도권 유입인구의 대다수가 청년층에 몰려 있는 것과 유관한 통계다. 청년이 지방을 떠나는 이유는 대학 진학과 일자리다. 문제는 수도권에 한번 가면 그들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삶의 기회와 수도권의 매력에 이끌려 대부분 그곳에 머물고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서 지방은 인구소멸로 빠져든다. 국가데이터처가 밝힌 농림어업 자료에 의하면 2024년 기준, 경북 농가 수는 16만가구로 10년 전보다 11.8%가 감소했다. 농가 비중도 17.1%에서 13.4%로 하락했다. 청년인구의 지속된 이탈이 농도 경북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있다. 얼마 전 캄보디아에서는 한국 청년들이 살해, 실종, 감금되는 일들이 벌어졌다. 해외범죄 조직이 내건 고수익 아르바이트와 해외 취업 미끼에 한국 청년들이 속절없이 당한 사고다. 눈여겨보면 피해 청년의 대부분이 지방 청년들이다. 일자리가 없어 놀고 있던 그들이 돈 벌겠다고 나간 뒤 범죄조직에 휘말려 희생된 사건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지방인구 감소에 대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수많은 대책도 내놓았지만 효과가 없다. 매년 수만 명의 인구는 여전히 수도권을 향하고 있다. 앞서 말했지만 삶의 기회나 삶의 질이 지방과 다르기 때문이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지방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청년인구 감소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

2025-12-04

사설

국민의힘 ‘계엄사과’로 오히려 내분 증폭되나

12·3 비상계엄사태 1년을 맞은 지난 3일 국민의힘 당대표, 원내대표, 소장파 의원들이 계엄책임에 대해 서로 다른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분열된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소장파 의원들이 중심이 된 ‘계엄사과’가 국민에게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한 채 당 내분만 부각시킨 결과를 낳았다. 당내 소장파·개혁파로 분류되는 재선·초선 의원 25명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계엄 사과와 함께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을 선언했으며, 의원 40여명은 별도로 자신의 SNS를 통해 계엄사과 메시지를 냈다. 원내 사령탑인 송언석 원내대표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계엄의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감을 통감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장동혁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계엄에 이은 탄핵이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다”고도 했다. 이 메시지를 두고 당내에서도 계엄이 정당했다는 것이냐는 반응이 나왔다. ‘친윤계’가 주류인 대구·경북 지역을 비롯해 영남권 중진의원 대다수는 이날 침묵을 택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강성 지지층의 이탈을 우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계엄사태 1년이 지났지만 국민의힘이 여전히 사분오열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오히려 최근에는 더 계엄의 늪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 이러니 민주당의 ‘내란 프레임’이 국민에게 먹혀들고, 입법독주와 특검남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3일에도 국민의힘 반발에도 불구하고 법사위를 열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법안 등을 통과시켰다. 민주당은 이날 대법원장 인사권을 무력화하는 법원행정처 폐지 법안도 발의했다. 지방선거가 이제 6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국민의힘 지지율은 반등 기미가 없다. 민주당 독주에 대한 반사이익을 전혀 챙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민심이 야당 쪽으로 움직이게 하려면 국민의힘이 혁신을 통해 수권정당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방법밖에 없다.

2025-12-04

팔면경

로비가 본업(?)

대규모 정보유출 사고를 낸 쿠팡의 로비가 언론을 통해 구설수에 올랐다. 최근 언론을 통해 밝혀진 쿠팡의 정관계 로비는 국내 굴지 대기업에 비해 조금도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정관계 인사 영입에서 입증된 결과다. 보도된 내용에 의하면 쿠팡은 2020년부터 올 9월까지 4급 이상 고급 공무원 44명을 영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만 18명을 채용했는데 그중 절반은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이라 한다. 특히 연초 정권교체가 예상되면서 더불어민주당 보좌관을 대거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고, 또 최근에는 고용노동부에서만 8명을 데려왔다고 한다. 이들은 억대 연봉과 임원급 대우를 받으면서 정관계를 대상으로 쿠팡의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전해진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한 방송에서 “쿠팡은 보안 내실보다 정관계 로비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자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같은 사실은 쿠팡의 정보보호 투자액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쿠팡의 정보보호 투자액은 매출 대비 0.2%(660억원)로 카카오나 SK텔레콤 등 다른 IT기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기업은 이해관계를 보호하고 불합리한 규제나 정책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과정에서 로비의 필요성을 제기할 수 있다. 미국 등 일부 나라에선 로비를 합법화해 신고 및 관리한다. 대신 기업은 로비 활동 내역을 분기별로 공개해야 한다. 국가든 기업이든 일에는 원칙이 우선이다. 기본이 지켜지지 않으면 사회는 혼란이 오게 마련이다. 사자성어 정본청원(正本淸源)은 “기본에 충실하자”는 뜻이다. 이커머스 회사의 기본은 정보보안이다. 로비는 그 이후 문제다. 쿠팡 사태는 기본을 망각한 데서 나온 경영의 실패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2-04

김세라의 법 보다는 삶

초코파이 한 개와 기소편의주의

작년 1월 전북 완주군의 한 물류회사에 보안업체 직원이 순찰을 하다가 사무실 냉장고를 열어 초코파이 한 개와 커스터드 한 개를 꺼내어 먹었다. 대기실 같은 곳에 놓여 있는 손님용 다과가 아닌 사무실 내 냉장고에 들어있던 과자였으니까 이것은 회사의 직원들이 먹기 위해 사둔 간식이지 외부인인 보안업체 직원이 먹는 것은 허락되지 않은 것일 수 있었다. 필자의 변호사 사무실에도 캡스 직원이 출동할 일이 있다. 그럴 때 점검을 끝낸 캡스 직원이 사무실 입구 대기의자에 놓인 사탕을 몇 개 집어먹는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탕비실에 들어가 냉장고 문을 열고 그 안에 보관해 둔 박카스나 귤을 꺼내어 먹는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보안업체 측에 문제 제기를 하거나 고소를 생각할 여지도 있다. 이번 초코파이 사건도 그렇게 바라보면 절도죄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절도죄가 성립하려면 불법영득의사와 절취의 고의가 있어야 한다. 불법영득의사란 권리자를 지속적·계속적으로 배제하고 타인의 물건을 자기 소유물과 같이 그 경제적 용법에 따라 이용·처분할 의사를 말한다. 포장이 바뀐 초코파이의 사진을 잠깐 찍기 위해 꺼냈다가 넣어놓으면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금방 다시 사 와서 넣어둘 생각으로 초코파이를 꺼내어 먹고 실제로 금방 같은 초코파이를 사 와 냉장고에 넣어두었더라도 이것은 불법영득의사가 있는 것이고, 절도죄는 기수이다.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다는 점에 대한 고의도 있어야 한다. 회사 측의 명시적인 허락이 있었든 아니면 그동안의 관행에 비추어 묵시적 허락이 있었던 것이든 순찰을 오는 보안업체 직원들도 냉장고 속 과자를 먹는 것이 허락되었다면 절취의 고의는 없는 것이 되겠지만, 반대로 회사의 허락의 의사가 명확하지 않았다면 고의가 인정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물류회사는 초코파이를 꺼내 먹은 보안업체 직원을 고소했고, 검찰은 고의와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해 절도죄로 기소했다. 1심 법원도 절도죄를 인정하며 벌금 5만원형을 선고했지만, 이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며 2심 법원은 불법영득의사는 인정되나 절도의 고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단 한 번, 1050원치의 과자 두 개를 꺼내 먹은 이 사건은 이렇게 오랜 수사와 기소와 재판과 기자들의 취재와 사회적 논란 등을 거쳐 마침내 무죄로 마침표를 찍었다. 이 사건을 절도죄로 인정한 검찰의 판단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법리적으로 절도죄가 맞든 아니든 이런 사건에 이 정도의 공권력과 사회적 에너지를 쏟는 것이 맞는가? 기소독점주의만큼 강력한 검찰의 기소편의주의라는 것이 있다. 기소는 오로지 검사만이 할 수 있지만 검사는 재량으로 기소를 하지 않아도 된다. 법리적 논란도 있고 피해액도 극도로 경미한 이런 사건을 굳이 기소하지 말고 국민세금과 공권력 아끼라고 기소편의주의가 있는 것이다. 처벌받아 마땅한 사건들도 이유 없이 경찰의 불송치결정, 검찰의 불기소결정이 나곤 해 답답한 요즘, 초코파이 한 개, 커스다드 한 개 사건을 보며 당신들 기소의 기준이라는게 도대체 무엇인지 경찰과 검찰에게 묻고 싶어진다. /김세라 변호사 △고려대 법과대학, 이화여대로스쿨 졸업 △포항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2025-12-04

플랜B의 철학

계엄 이후의 민주주의

어두운 시절의 철 지난 유품처럼 여겨졌던 계엄을 목도한 지도 벌써 1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문학으로 비유하자면 삼류 소설이자 흔한 졸작조차 되지 못할 어설픈 국가 폭력의 시도를 떠올리면 지금도 어안이 벙벙하다. 내란 종식에는 한 치의 타협도 있을 수 없건만 별의별 사족들이 왜 그렇게 달리는지 모르겠다.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 아닌가. 계엄을 선포한 자나 이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의 위증을 지켜봐야 하는 일도 고되다. 조속히 응분의 대가를 받길 바랄 뿐이다. 요즘 들어 출근길 지하철 역사의 안내방송이 눈에 밟힌다. “특정 장애인 단체의 불법 시위로 열차 운행이 지연되고 있다”는 식의 내용이다. 불법이라는 이름으로 장애인 농성의 의미를 축약할 수 있을까. 법대로 소수자들의 권리가 쟁취되는 꼴을 여태껏 보고 들은 경험이 없다. 직장이나 학교에 조금 늦는 일도 각자의 일상에서 작지 않은 손실일 수 있겠지만, 남은 생애를 바쳐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연에도 귀를 좀 열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쿠팡 새벽 배송에 관한 논란들은 어떤가. 야간 근무에 시달리다 사망한 노동자의 죽음을 뒤로하고, 나름 배웠다는 정치인도 그들의 선택이었음을 강조한다. 노동권의 자발적 행사였으면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건가. 그런 논리면 자살 방지 대책 같은 것들도 쓸모없는 일이 될 것이다. 자발적으로 죽음을 택하는 자들을 정부나 지자체에서 왜 챙기려 하는지 이해를 못 하는 건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계엄 이후의 민주주의는 불법이라 호명되는 소수자들의 행진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수호되는 노동자의 죽음에 천착하는 태도로부터 비롯되지 않을까 한다. 민주주의란 본래 소란을 의미한다. 질서의 반의어라는 말이다. 계엄 이전에도 윤석열 정권은 ‘입틀막’으로 버티고 있었다. 독재는 고요한 법이다. 권력에 반하는 무수한 말들을 억누르는 힘의 강제야말로 전횡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반면 민주주의란 사회에서 자신의 몫이 없다고 간주되던 자들이 여기저기서 자기의 권리를 주창하고 나서는 사태를 의미한다. 숨죽이며 지내던 이들의 목소리로 세상이 분란할 때야말로 민주주의를 실감할 수 있는 적기라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어떤 이들의 목소리와 행동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연히 퀴어 축제나 장애인 시위, 노동자 파업이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굳이 자신들의 주장을 왜 관련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며 해야 하느냐는 성토도 이해 못 할 건 아니란 거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불편 따위가 무슨 큰 대수인가 싶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바쳐 행해야만 하는 과제가, 다른 누군가에겐 그저 ‘남의 일’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용인하면 되겠나. 사회란 그렇게 굴러가서는 파멸할 뿐이다. 따라서 계엄 이후의 민주주의는 어쩌면 공동체 의식을 되살리는 일로부터 쟁취될 수 있는 것 아닐까. 학창 시절에는 지겹게 듣던 ‘더불어 사는 삶’이라는 표어가 여전히 유효한지 모르겠다. 분명 우리의 곁에는 마치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비)존재들이 있다. 이들의 삶과 죽음을 ‘남의 일’로 여기지 않을 때, 계엄을 해제하며 소망하던 그런 민주주의가 비로소 당도하지 않겠는가 싶다. /허민 문학연구자 외부 기고는 기고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5-12-04

노병철의 요지경

덜 떨어진 금성인

‘깻잎논쟁’이란 말이 있다. 남의 부인이 깻잎을 먹는데 잘 안 떨어지는 것을 본 남자가 깻잎을 떼주다가 자기 부인에게 된통 혼이 났다는 이야기다. 이게 방송을 타자마자 패널들 사이에서 논란거리가 된다. 별것 아닌 이야기가 이렇게 논쟁이 된다는 자체가 놀라웠다. 깻잎이 안 떨어져 곤란을 겪고 있으면 좀 도와주는 것이 뭐 어떤가 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많이 당황하게 된다. 사실 주위에 물어보니 이와 유사한 사례가 많이 벌어졌고, 남자들은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른 채 당한 적이 많다는 것이다. 생선 가시를 발라주다가도 낭패 보고 술자리에서 한 잔 따라주다가도 잔소리 들은 적이 많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는 부부가 함께하는 모임을 자제하게 된다. 내 물건에 누가 손대는 것을 싫어하는 소유욕 혹은 독점욕이 너무 과한 것은 아닐까 싶어 조심스레 물어보았지만, 자신의 프라이버시와 나름 고상한 체면 때문인지 대답을 잘하지를 않는다. 단지 그러한 행동을 좋아하는 여자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에둘러서 말한다. 그냥 애착과 소유욕으로 인해 그런 친절한 서비스는 나만 받을 자격이 있고 나 이외에 그 어떤 여자가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을 보는 순간 눈에 불이 튄다는 말은 애써 자제한다. 요즘 유행하는 ‘천박한’ 언어이기에 사용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대놓고 “내가 뭘 잘못했느냐?”라고 물었다간 일이 커질 것이 불 보듯 뻔하기에 그냥 늘 하던 식으로 내가 또 뭘 잘못해서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접는다. 남자 인생이 뭐 별거가 있나. 이런 것을 서로 말이 안 통할 수밖에 없는 화성인 금성인으로 구분한다든지, 혈액형으로 성격을 분류해서 왜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인지 아니면 요즘 유행하는 MBTI에 가져다 붙여,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성격상 차이를 규명하고자 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 같아 보인다. 그래서 한동안 논란에 휩싸인 라캉의 한 책에서 그 정답을 찾곤 했다. 남자와 여자는 동일한 언어 체계로 수렴되지 않고, 부부가 ‘서로 통하는 사랑’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으나, 실제로는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논리에 격하게 공감하는 것이다. 아마 이런 상황이 한국 남자만 겪는 일이 아닌 것 같다. 모임에서 여행을 갔다가 여자분이 나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한다. 별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 정도의 부탁은 당연히 들어줄 수 있다는 나의 이성적 판단으로 몇 가지 포즈를 더 요청하면서까지 성의를 베풀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 벌어졌다. 집사람이 말을 안 한다. 분명 내가 또 무슨 잘못을 한 것이 분명하다. 깻잎을 떼어준 적도 없고 생선 살을 발라준 적도 없기에 집에 올 때까지 안절부절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해서 남은 여행 일정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조차 없다. 사진 찍어준 것도 죄가 되나? 나이가 들어도 이런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한참이나 이어질 것 같고 이해할 수 없는 여자의 마음 때문에 누구라도 붙잡고 이 억울한 마음을 하소연하고 싶다. “AI, 너는 아느냐? 저 여자가 왜 저렇게 삐졌는지를?” /노병철 수필가

2025-12-04

사설

호미곶 생태공원, 동해안 관광업 기폭제 되길

경북 포항 호미반도가 올해 내로 국내 최초의 국가해양생태공원으로 지정된다. 해양수산부는 포항 호미반도와 충남 가로림만, 전남 무안, 전남 여자만 등 4곳을 국가해양생태공원으로 지정한다고 밝히고, 연말까지 해양수산발전위 심의를 거쳐 국가해양생태공원 지정을 완료하겠다고 했다. 국가해양생태공원은 해양보호구역 및 그 인근 해양 자산의 가치를 보전하고 지속 가능한 이용을 위해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제도다. 해수부는 국가해양생태공원 지정을 계기로 해양생태계를 유엔생물다양성협약(UNCBD) 기준으로 끌어 올리고, 이를 바탕으로 해양생태공원을 지역경제 활성화 거점으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2030년까지 생태공원을 찾는 관광객을 1000만명까지 달성하겠다고도 했다. 한반도 최동단의 호미반도는 해안선 길이만 106.7km다. 해양생물인 게바다말과 물수리,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보호종으로 지정된 점박이 물범, 해양보호생물인 바다거북이 등이 출현하는 곳이다. 또 호미반도 주변 해양생태계 건강도도 우수하다. 수천만 년 전 만들어진 동해안 지질과 해안단구가 다양한 생물자원의 보고 역할을 한다. 경관적 가치 또한 뛰어나다. 정부가 국가해양생태계공원을 지정한 배경에는 늘어나는 해양생태 관광수요를 수용하고, 해양생태 자원을 활용해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지자체 개발 욕구를 충족하고자 하는 데 있다. 정부는 해양생태계를 보존과 이용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복합해양생태 관광의 지역거점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관광 수요가 늘면 지역경제가 잘 돌아가고 인구소멸을 걱정하는 어촌지역의 지역소멸 위험도 줄일 수 있다는 전략이다. 포항 호미반도는 일출·일몰 명소로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호미반도의 국가해양생태공원 지정은 포항 등 동해안 지역 관광산업을 진작하는 획기적 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다. 국가정원 1호인 순천만은 연간 43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됐다. 포항시도 호미반도 국가해양생태공원 지정의 효과를 높이는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2025-12-03

사설

정치 후폭풍 몰고올 ‘추경호 영장기각’

서울중앙지법이 3일 새벽 국회 계엄 해제 표결방해 혐의를 받는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정재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9시간에 걸친 영장실질심사 후 “피의자 주거·경력, 수사 진행 경과 및 출석 상황, 관련 증거들의 수집 정도 등을 볼 때 도망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추 의원이 현직 국회의원 신분인 만큼 도주의 우려가 없고, 실제 국회의 계엄해제 표결을 방해했는지도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본 것이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당일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던 추 의원은 당시 의원총회 장소를 국회에서 중앙당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 중앙당사로 세 차례 바꾸며 계엄 해제 표결을 방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특검팀은 수사 기간(14일 종료)이 얼마 남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할 때 영장 재청구 없이 추 의원을 불구속기소 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추 의원에 대한 영장을 기각하면서 향후 정국은 살얼음판을 걷게 됐다. 민주당은 예고한 대로 내란 공세와 사법부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고, 국민의힘은 여권 독주에 대해 대대적인 역공에 나섰다. 국민의힘은 계엄 선포 1년 만에 ‘위헌 정당 해산심판’에 내몰릴 상황은 일단 면하게 됐다. 민주당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에 이어 추 의원에 대한 특검의 영장이 잇따라 기각되자 법원을 향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에 따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등 ‘사법개혁’ 패키지 법안 처리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정청래 대표는 최근에도 “추 의원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그 화살은 조희대 사법부로 향할 것이다. 내란 재판부 설치 같은 사법 개혁 요구가 봇물 터지듯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의 영장 기각을 ‘조희대 사법부’ 책임으로 규정하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민주당의 사법부 위협과 국민의힘에 대한 ‘위헌 정당 심판 드라이브’ 공세가 계속 강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극단 정쟁이 몰고 올 정치적 후폭풍이 걱정된다.

2025-12-03

오그러네

고객정보 유출, 책임은 어디에?

쿠팡이 사고를 쳤다. 소비자 고객들의 소중한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름, 주소, 전화번호, 계좌내역, 심지어 자택입구 비밀번호까지 시중에 떠돌게 되었다. 정보유출이 퇴직자의 소행이었다지만, 책임의 소재를 단순히 개인에게만 떠넘길 수는 없다. 회사는 고객정보를 관리하고 보호할 책임을 지닌 주체로서, 이 같은 사고로 초래되는 모든 문제에 대해 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미국이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쿠팡이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한 기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의 규제환경을 인지하고 있었을 터이다. 상응하는 소비자 보호체계를 갖추어 높은 수준의 정보보호시스템을 보유했어야 한다. 개인정보 유출은 단순한 행정실책이 아니라 기업생존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건으로 여겨져야 한다. 막대한 금액의 피해 보상은 물론 주주와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고경영진이 직접 사태수습에 나서야 한다. 회사의 신뢰가 흔들리면 주가급락과 투자자 손실이라는 직접적 피해가 뒤따르기 때문에, 미국 기업이라면 기업의 사활을 걸고 대응했을 사건임에 틀림없다. 쿠팡의 대응은 전반적으로 미흡하다. 한국 사업장에서만 활동하는 기업이라는 이유로, 미국 본사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소비자 정보가 유출되어 발생할 수 있는 사기, 금전적 피해, 심리적 불안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게 필요하다. 기업이 법적, 도덕적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소비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단순한 관리소홀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문화와 경영철학의 문제다. 한국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이유 중 하나는, 기업에 대한 규제와 처벌이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슨하기 때문이다. 개인정보보호법이 존재하지만, 현실적 강제력과 피해보상 체계는 턱없이 부족하다. 데이터 유출 시에 금융적, 평판적 피해가 단기간에 직접적으로 가시화되어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므로 책임있는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쿠팡이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한 등록기업으로서 한국소비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글로벌수준의 개인정보 관리와 책임 있는 대응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퇴직자의 실수’라 치부하며 면죄부를 줄 수 없다. 고객의 개인정보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결국 소비자 대중이 짊어지게 된다. 제도적인 보완과 철저한 규제확보가 뒤따라야 한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한국소비자들이 기업에게 정당하게 요구해야 할 책임과 투명성, 그리고 대응수준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쿠팡은 고객정보 유출로 발생한 모든 문제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기업의 신뢰와 사회적 책임은 법적 의무를 넘어, 공공의 신뢰형성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부도 제도개선에 나서야 한다. 기업이 소비자를 가벼이 여기는 풍토를 일소해야 하며, 정부가 국민을 대신하여 기업으로 하여금 소비자 국민을 존중하고 개인정보를 소중하게 여기도록 이끌어야 한다. 경제환경이 예전과 비교할 때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인 소비자 환경이 나아지지 않고는 선진국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 국민이 신뢰하고 소비하는 기업이 되어야 하며, 소비자 국민은 늘 깨어있어 경계해야 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12-03

한방산책

왜 운동과 치료를 해도 괜찮다가 다시 나빠질까

통증이 생기면 사람들은 운동을 하거나 약을 먹고 병원·한의원 치료를 받아 일단은 편해지는 순간을 경험한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시 똑같은 통증이 올라오고 좋아졌다가 나빠졌다를 반복한다. 마치 몸 안에 보이지 않는 스위치가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움직인다. 이것이 단순한 근육의 문제라면 반복될 이유가 없지만 몸의 더 깊은 층위에는 늘 같은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존재한다. 그 힘의 정체가 바로 자율신경의 긴장 패턴과 무너진 체형 구조다. 스트레스, 과로, 수면 부족이 반복되면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몸은 싸우거나 도망가야 하는 모드에 들어간다. 이 상태에서는 어깨와 목, 뒷목, 허리 근막이 미세하게 수축한 채로 유지된다. 이 긴장은 겉으로는 눈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내부에서는 계속 근육과 근막을 조이고 커다란 고무줄을 팽팽하게 당겨놓은 것처럼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침 치료나 마사지, 스트레칭, 운동을 하면 일시적으로 개선되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고무줄이 잠깐 느슨해졌다가도 이내 다시 원래의 팽팽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문제는 통증이 오래될수록 체형과 움직임도 함께 변한다는 점이다. 사람은 아프면 아픈 부위를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보상 자세를 만든다. 허리가 아프면 골반을 틀고 목이 아프면 턱을 당기고 어깨가 아프면 팔을 덜 쓰는 식이다. 이런 보상 패턴은 통증을 일시적으로 줄여주지만 결국 또 다른 부위에 부담을 주고 그 부담이 다시 통증을 만들며 악순환을 완성한다. 결과적으로 단순한 운동이나 한 부위만 푸는 치료로는 이 보상 구조를 되돌릴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한 건 몸이 이미 이렇게 긴장된 상태가 정상이라고 기억해버렸다는 것이다. 자율신경은 몸의 전체적인 톤을 조절하는 시스템인데 이 시스템이 긴장 상태로 세팅되어 있으면 잠깐 이완시켜도 다시 긴장 쪽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래서 운동을 잘해도 치료를 아무리 받아도 몸은 다시 원래의 불편한 패턴을 반복한다. 결국 재발의 핵심은 통증 자체가 아니라 통증을 만들어내는 배경 패턴이 유지되고 있어서이다. 이 패턴을 바꾸는 과정은 단순히 아픈 부위를 손보는 것과 다르다. 자율신경의 과흥분을 낮추고 근막의 전체적인 긴장도를 줄이며 잘못 굳어진 구조와 움직임을 다시 조정해야 한다. 성상신경절이나 익구개신경절을 다루는 치료는 높아진 자율신경의 신경 흥분을 끌어내리고 몸의 톤을 이완 방향으로 다시 설정한다. 초음파 가이딩 약침은 긴장된 근육·근막을 정밀하게 풀어주며 매선은 약해진 구조를 장기적으로 안정시키고 다시 긴장으로 돌아가는 속도를 늦춘다. 한약은 늘 경계 상태에 머물러 있던 몸의 회복력을 끌어올려 부교감신경을 활성화 시켜 이 패턴 전환을 더 빠르게 만든다. 결국 잠깐 좋아지고 다시 나빠지는 몸은 아픈 곳만의 문제가 아니다. 몸 전체가 긴장을 기본값으로 저장한 채 그 방향으로 되돌아가려는 성질 때문이다. 자율신경, 근막, 구조, 호흡, 움직임이 함께 조율될 때만 비로소 몸은 새로운 패턴을 학습한다. 치료 효과가 길게 유지되고 재발이 줄어드는 몸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12-03

이정옥의 신황금기

'쌍벽가' 감상하기

내방가사가 2022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 아태목록에 등재되자 대구와 경북의 관심 있는 여성들은 내방가사 공부에 더 큰 열망을 가졌다. 물론 오래전부터 안동내방가사보존회에서 내방가사 공부방을 열어 안동과 주변 지역의 뜻있는 여성들 대상으로 지속적인 교육이 있긴 했다. 대구에서도 동호회나 연구모임 같은 자생단체가 있어 공부한다는 정보도 들어 알고 있었다. 나는 퇴직 후 여러 사회단체에서 특강 형식의 강의를 하긴 했으나 단발성이어서 아쉬움이 컸다. 강단에서 연구하고 강의하던 것을 사회적 교육으로 지속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긴 했으나 용렬한 탓에 뜻을 비쳐 내지도 못한 터였다. 그러던 차에 몇 달 전부터 대구에서 뜻을 같이하는 몇 분과 같이 공부 모임을 만들었다. 비록 카페에서 만나서 한 달에 두어 번, 한두 시간 공부하는 거지만 나로서는 제대로 수업하고 싶다는 생각에 강의 준비를 나름 열심히 했다. 내방가사 이론을 제대로 알고 창작까지도 할 수 있는 수준을 목표로 잡았다. 강의계획서를 만들어 나누고, 내방가사의 역사를 짚고, 이론을 정리하여 수업 준비를 했다. 내방가사에 대한 이론을 단단히 잡은 후에야 창작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훌륭한 작품 감상에 특히 공을 들였다. 내방가사 창작을 꾸준히 하는 분들이 많기는 하지만 이론적 바탕만 있으면 좀 더 나은 작품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신변 소회 정도의 시적 소재와 내용을 4.4조의 운문 형식에 맞춘 듯한 작품이 많아 안타까움이 컸다. 공부하는 분들의 열정이 크고 넘쳐 나기에 강의 준비에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무엇보다 국문학 사상 손꼽히는 훌륭한 가사를 먼저 읽어 이해하고, 문체와 구성을 익히는 것이 좋다는 판단을 했다. 정극인의 ‘상춘곡’, 송순의 ‘면앙정가’, 송강 정철의 ‘속미인곡’과 같은 명작 가사를 세심하게 읽고 문체와 표현과 구조 분석을 하면서 내용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공부했다. 나로서도 새삼 다시 공부하는 기회가 되었기에 나름 귀한 시간이었다. 며칠 후 잡힌 시간에는 ‘쌍벽가’를 감상해 볼까 준비하고 있다. 현전 대부분의 내방가사가 작자와 연대가 미상인 데 비하여, 이 작품은 작자와 연대가 잘 알려진 작품이며 연대가 가장 오래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강의 주해만 있을 뿐 제대로 된 해석본은 없어 감상하기 어려웠다. 한자어 많음에도 한글로 쓰여진 것도 원인이었다. ‘쌍벽가’는 1794년(정조 18) 안동 하회의 연안이씨(延安李氏)가 지은 내방가사인데,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애독되었던지 경북 여러 집안에서 발견된 이본도 상당히 많다. 작자는 예조판서의 딸로 한양에서 하회로 시집와 신고를 겪은 뒤 58세 되던 해, 맏아들과 조카가 한 해에 과거에 급제하는 경사를 맞는다. 당시 임금 정조가 제문을 지어 내리자 이를 경축하는 내용의 가사이다. 제목에 쓰인 ‘쌍벽’은 과거 급제한 두 형제의 준수하고 출중함이 서로 백중함을 칭찬한 것이다. 구성의 일관성, 뛰어난 표현과 유려한 문장이 초기 내방가사임에도 수작으로 꼽힌다. ‘쌍벽가’를 필두로 다양하고 훌륭한 내방가사를 감상해 볼 계획이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12-03

이우근 시인과 박계현 화백의 포항 메타포

입추(立秋), 그 너머-오도 바다* 고운 모래알과 몽돌

입추(立秋), 그 너머 -오도 바다* 고운 모래알과 몽돌 생각해 보니 실패가 성공이었다 그러나 과정은 무너지지 않는다 겨울이 와도 어떨까, 과연 우리에게 어떤 빙하기가 있었는가 물기가 없으면 얼지 않는다 하여 암각화가 될 수도 있고 물욕이 없으면 망할 일도 없을 것 업적이 초라해도 그것으로의 역사가 되고 벼락박 똥칠도 무늬가 된다며, 깨달음은 없다고(悟道) 가르치는 오도 가을 바다, 마른 눈길 늘 울음을 참는, 그래서 나의 가을 풍향계처럼 그 바다를 탐지하며 결국엔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만 하소연 없는 태연하고 불량한 바다 그래서 행복하고 불행했지만 그래, 밑천 뻔한 한 끗 차이, 마치 마을에 가닿지 못하는 저 파도 소리.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의 작은 바다 마을 …. 시간에는 절대 상처가 나지 않는다. 방치와 외면으로 흘러 지나가는 무서운 존재, 파괴가 없는 절대적인 무형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무책임에 분연히 항거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과거에 머물러 지금에 와서 상처를 입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무기가 되고 훈장이 되어야지 굴레는 아니다. 경험의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된다는 클리세는 그만두어야 한다. 상처는 새 살을 돋게 한다. 박테리아 혹은 세균도 사람을 돕는다. 거부에 집착하다 보면 외딴 섬이 된다. 진정한 섬은 고립이 아니다. 가능성의 신호, 혹은 미지의 공간에 대한 개활지이다. 존재가 작다고 의미가 축소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우근 ……….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12-03

팔면경

대만 관광객 매혹한 돼지국밥

2025년 상반기 부산을 찾은 대만 관광객이 대략 24만9000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부산을 여행한 외국인 5~6명 중 1명이 대만 사람이라는 이야기. 숫자로도 비율로도 가파른 상승률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대만 여행자들은 부산에 와서 뭘 먹었을까? 알다시피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으로는 싱싱한 해산물과 밀면, 돼지국밥 등을 꼽는다. 대만인들은 자신들의 나라에서도 돼지고기는 물론 돼지의 내장까지 요리해 즐겨 먹는다. 이는 한국인과 유사한 섭식 형태다. 이 사실을 증명하듯 대만 관광객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맛있다~”를 연발하는 음식은 부산 도처에서 판매되는 돼지국밥이라고. 유명세를 얻은 돼지국밥 식당 앞에서는 몰려든 대만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최근 대만 관광객 1만579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돼지국밥은 66.9%라는 높은 지지율을 얻으며 ‘부산을 찾는다면 꼭 먹어봐야 할 한국 음식’으로 대만인들 사이에서 자리 잡았다. 그 뒤를 어묵(37.4%), 씨앗호떡(22.4%), 장어구이(19.4%)가 이었다. 그렇다면 돼지국밥의 인기 요인은 뭘까. 대만과 달리 뽀얀 국물에 담백한 맛을 즐길 수 있고, 여기에 양념을 더해 얼큰함까지 느낄 수 있는 매력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잡내가 나지 않기에 부모를 따라온 대만 아이들도 좋아한다고. 항공기를 이용한 여행이 세계적으로 보편화되면서 국가의 경계는 물론, 즐기는 음식의 경계 또한 무너지고 있다. 대만과 같은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남북 아메리카 사람들의 입맛을 매혹할 한국 요리가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이는 관광산업 발전을 가져올 키워드가 될 수도 있으니까.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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