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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취임사에서 국민통합을 다시 한번 약속했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했든 통합하라는 ‘대통령’의 또 다른 의미에 따라,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분열의 정치를 끝내겠다. 국민통합을 동력으로 삼아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했다. 그가 취임식에서 국민통합을 재차 강조한 것은 한국사회의 진영·세대·지역 간 갈등이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이 대통령의 ‘통합정치 선언’과는 달리, 민주당은 이날 법사위를 열어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이 법안은 국민의힘이 ‘대한민국 사법체계를 근본부터 허문다’며 극렬하게 반대해왔다.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법안을 상정하면서 “국회는 국회대로 할 일은 한다”고 했다. 민주당은 현재의 의석으로 국민의힘이 아무리 반대해도 못할 일이 없다. 법안뿐만 아니라 내각 인사, 예산처리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무소불위의 최강정권이 탄생한 것이다. 이 구도는 2028년 4월 총선까지 계속된다. 윤석열 정부 때는 민주당의 입법 폭주에 대해 거부권으로 맞섰지만, 이재명 정부에서는 당정이 한 몸이기 때문에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그대로 시행된다. 민주당은 조만간 대통령에 당선되면 형사 재판을 정지시키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에서 면소(免訴) 판결을 가능케 하는 선거법 개정안, 시민사회 단체에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을 주는 ‘방송 3법’ 개정안도 처리를 예고한 상태다. 사정기관인 감사원을 국회 소속으로 둔다는 개헌안도 처리할 움직임이다. 감사원을 다수당인 민주당이 좌지우지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나타난 민심이 유지된다면, 민주당은 내년 6월 예정된 지방선거에서도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입법·사법·행정 3부 권력은 물론 지방 권력까지 민주당이 가져가면, 이 대통령은 그야말로 ‘절대 권력’이 된다.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 망가진 절대권력은 결국 권력남용의 늪에 빠지게 된다.

이재명 새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국민통합의 길을 열어야 한다는 것부터 정치, 경제, 외교, 안보 등에 이르기까지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각계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지방소멸을 걱정하고 살아가는 비수도권 지역 주민들이 바라는 소망 가운데 하나는 지역균형 발전이다. 국가균형발전의 문제는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정부가 주요 시책으로 삼았지만 변화를 이끌 만큼 실효적인 성과는 한번도 낸 적이 없다. 오히려 지방의 인구는 더 줄고 반대로 수도권은 인구가 넘쳐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토 전체면적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50%가 넘는 사람이 몰려 사는 기형적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도 이런 구조는 진행형이다. 지금 지방은 인구소멸을 넘어 지방소멸을 걱정하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이런 문제가 어제오늘 벌어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절망적 수준에 도달해 균형발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지방소멸을 넘어 국가 위기로 발전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심각한 상황을 알면서 국가의 모든 정책이 여전히 수도권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도권의 대규모 반도체단지 조성과 같은 정책이 대표적 사례다. 대기업 본사의 80%가 수도권에 있고, 행정, 경제, 문화, 예술 등 모든 것이 수도권에 몰려 젊은이들은 취업을 위해서라도 수도권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작년 말 수도권 취업자 수는 국내 취업자의 51.6%에 달했다. 반면에 지방은 기업이 줄고 일할 청년도 줄어든다. 지방경제의 기반 자체가 무너지는 구조다. 새 정부는 절망적으로 바뀌는 지역의 이런 문제에 대해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그 중 하나는 지방분권형 개헌이다. 윤석열 정부도 전국이 골고루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으나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지방 도시에 금융회사 하나 이전하지 못하는 나약한 정책 의지로는 균형발전을 실천할 수 없다. 공공기관 2차 이전 등 과감한 균형발전 의지가 뒷받침 돼야 한다. 새 정부 출범 1년 이내가 이를 실행할 골든타임이다.

칼럼

자신의 색깔을 찾아서 술래가 된 친구에게 간다. 쪽빛 바다를 감고 골짜기를 굽이도는 길에 설렘이 일렁인다. 푸른 산 기스락에 도착하자 어느새 서녘이 노을빛으로 물든다. 민낯으로 반기는 친구의 얼굴이 비 갠 하늘처럼 말갛다. 흙빛이며, 먹빛이며 밤 이슥하도록 나누는 이야기에 별빛이 반짝 내려앉는다. 별이 사그라진 무렵, 친구가 나를 깨운다. 눈 밑에 덕지덕지 붙은 잠을 새벽바람이 몰아낸다. 야트막한 언덕을 넘자 밤새 물을 빨아올린 쪽에 자줏빛이 촉촉이 올랐다. 연보라 꽃을 한 두 송이 물고 있는 쪽은 아침이슬까지 머금어 색깔이 절정에 이르렀다. 햇살이 꽃눈을 틔우는 봄부터 풀빛 바람이 산모롱이를 에도는 여름까지 오롯이 쪽에 담겼다. 친구가 두 계절을 낫으로 베어 내게 한 아름 안긴다. 풋풋한 풀냄새를 맡자 온몸에 쪽빛이 번지는 것 같다. 친구가 소매를 걷어붙인다. 쪽을 맑은 물로 헹군 다음 항아리에 반쯤 채운다. 항아리에 물을 붓고 그 위를 돌로 지그시 눌러둔다. 비닐로 덮고 숨구멍을 뚫어주면 다음은 기다림이다. 하안거(夏安居)에 들어간 쪽은 체액을 배출하고 물은 그것을 받아들이며 둘은 끊임없는 교감을 나눈다. 땅을 달구는 태양열에 쪽이 발효되면서 물은 그 빛을 온전히 수용한다. 어둠 속에서 쪽과 물이 하나가 되고 다시 빛이 들면 쪽은 색깔로 자신을 말할 것이다. 여유를 즐기는 것도 산골의 일상 가운데 하나다. 뜨거운 물을 다기에 부어 작년에 말려둔 국화차를 우려낸다. 친구가 산골에 들어와 해와 달의 주기에 맞추기까지 사계절이 세 번이나 순환했단다. 염료를 구하려면 때를 맞춰야 하고 그 색깔을 우려내려면 땀을 흘려야 했다. 그렇게 도시에서 묻은 때를 씻어내면서 시나브로 자연에 물들었다. 국화차 한 모금 머금자 정겨운 담소에 노란 향기가 더해진다. 며칠 묵힌 항아리를 연다. 쪽잎에서 녹색 기운이 사라질 즈음 한 번 뒤집는다. 첨벙첨벙 물이 흔들리면서 쪽은 바깥공기로 숨을 쉰다. 어둠에 싸여있던 쪽은 그제야 한 줄기 빛을 받아 물에게 자신의 빛을 내놓는다. 마지막까지 제 몸을 우려낸 쪽을 건져 항아리 위의 횃대에 걸친다. 늙은 부모의 속살처럼, 쪽은 이제 알갱이는 물에 내어주고 쪼그라든 껍질만 남았다. 자신의 가치를 빛깔로 남기면서 할 일을 다 한 쪽은 훨씬 자유로워졌다. 암녹색 물에서 풀냄새가 풍긴다. 패각회를 항아리에 넣고 대나무로 휘젓자 기포가 생긴다. 바가지로 퍼서 고운체에 거르자 찌꺼기가 물과 분리되면서 쪽빛은 본연의 색으로 서서히 드러난다. 심연의 색을 두레박으로 길어 올리듯 항아리 속의 물을 퍼 올린다. 잿물을 넣어 쪽 발을 세운 다음 미리 빨아놓은 천을 조금씩 담근다. 천으로 옮겨가는 물은 처음에는 녹색으로 보이다가 건져내면 청색으로 변하는 마법을 부린다. 적시고 말리기를 거듭할수록 쪽빛은 더욱 깊어진다. 둘이 마주서서 천을 길게 펼쳐든다. 친구와 나 사이에 쪽빛 길이 난다. 생명의 기원인 바다, 바다색에서 남색 그리고 감청색까지 점점이 깊어지는 색은 볼수록 신비롭다. 처음에는 하늘색이다가 바다색으로 변한다. 깊이를 더한 쪽빛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하늘과 맞닿은 곳에서 심연에 닿아 꿈의 색깔이 된다. 내 본연의 색깔은 무엇일까. 이십대를 지나면서 빛이 바래다가 엄마가 되면서 유년의 색깔은 흔적 밖에 남지 않았다. 가끔 내 속을 들여다보면 물색이기도 하다가 더러 사라진 꿈의 색깔이 희미하게 스치기도 한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쪽처럼 친구는 새로운 세상에서 자신의 색을 펼치고 있다. 자신을 다 내 놓고 영혼을 우려내야 완성되는 빛, 어제에서 오늘로 이어진 쪽빛은 내일이면 더욱 짙어질 것이다. 천을 펴서 빨랫줄에 널고 바지랑대를 높이 세워 바람을 부른다. 천이 만장처럼 펄럭이자 바람조차 푸른빛을 머금는다. 바람에 실려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곳으로 가면 나의 빛깔을 찾을 수 있을까. 바다로 뛰어들어 수면 아래로 유영하다가 심연에 닿으면 태곳적부터 내려온 그리움의 색을 만날 수 있으려나. 그리움에도 빛깔이 있다면 쪽빛이 아닐까. 오늘은 내 마음도 쪽빛으로 물든다. /배문경 수필가

여름이면 많은 이들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하지만 시원함을 찾다 보면 몸의 면역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흔히 냉방병이라고도 불리는 질환에 걸릴 수 있는데 단순한 감기와는 다르다. 더운날 갑자기 그리고 장시간 너무 찬바람을 많이 맞아 일시적으로 몸의 균형이 깨지고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로 한의학에서 보면 체온조절 기능의 교란, 기혈의 순환 장애, 그리고 장부의 기능실조가 복합적으로 얽힌 상태다. 증상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일반적으로는 감기 증상과 비슷하다. 두통, 코막힘, 오한, 피로감 등이 주로 나타나고 증상이 심한 사람은 위장 장애, 생리불순, 관절통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여름엔 외기에 맞춰 적당히 땀을 흘려주도록 인체 시스템이 형성되는데 에어컨은 아주 강력하게 피부 표면을 차갑게 해 이를 막아 버린다. 순환의 관점으로 보면 피부 밖으로 나가야할 땀이 못나가고 막힌 피부로 인해 소통되어야 할 기혈의 순환에 문제가 생긴다. 피부와 근육 표면은 차가운 기운에 노출되어 막히고 속은 오히려 열이 차서 체내 에너지가 원활히 순환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위장이 냉해져 소화력이 떨어지고, 어깨나 무릎 같은 관절 부위에 통증이 발생한다. 특히 평소 몸이 찬사람 혹은 비위가 약하거나, 한랭한 음식을 즐겨 먹는 체질의 사람들에게 이런 증상을 더 자주 볼 수 있다. 치료는 피부를 따뜻하게 하는 약재를 사용해 냉기를 몸 밖으로 몰아내고 장부의 기능을 조화롭게 맞춰주는 것이 관건이다. 대표적인 처방으로는 계지탕 시호계지탕이 등이 있고 속에 열이 많으면 석고나 치자 등으로 가미를 한다. 습이 많이 끼어 있는 경우 오령산 같은 몸의 습과 물을 제거하는 처방들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이러한 처방은 피부 쪽을 따듯하게 하면서 혈액순환을 원활히 하고 습기를 제거하며 기혈 순환을 도와 전신의 기능을 회복시킨다. 만약 관절 통증이 동반될 경우 독활이나 강활 같은 약재를 추가하는 처방을 사용할 수 있다. 한편, 여름철에는 “한약을 먹어봤자 땀으로 다 빠져나가서 효과가 없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한약의 유효 성분은 대부분 위장관을 통해 흡수되고 땀을 통해 배출되진 않는다. 오히려 여름처럼 체온조절과 수분, 기력 소비가 많은 시기에는 더더욱 장부를 보호하고 기를 보충해주는 한약이 도움이 된다. 여름철에는 기허로 인한 식욕저하, 과도한 땀 배출로 인한 탈진 소화장애 등이 흔히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는 보중익기탕, 생맥산, 사군자탕 계열의 처방이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실내외 온도차는 5도 이하로 유지하고, 장시간 에어컨 아래에 있지 않도록 하며 특히 배와 허리를 덮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에어컨은 현대인의 여름을 견디게 해주는 훌륭한 도구이지만 그만큼 체온 조절이라는 생리적 부담을 우리 몸에 안겨준다. 한의학은 이 부담을 자연스럽게 해소해주는 조율의 의학이다. 차가운 바람 아래서 ‘괜찮겠지’ 하고 넘기지 말고, 여름철 몸의 신호에 귀 기울여야 한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스페어는 영어이지만 우리 일상에서도 종종 사용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있는 단어다. 급한 경우에 바꾸어서 사용할 수 있도록 예비로 준비하여 두는 같은 종류의 물품을 이른다. 볼링에서는 남은 핀을 그 다음에 모두 쓰러뜨리면 스페어 처리라고 한다. 스페어 타이어(spare tire)는 자동차의 펑크에 대비한 예비 타이어다. 어떤 단어이든 간에 여분이나 예비용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데, 외래어로 그대로 쓰고 있어 익숙한 말이다. 그런데 이 스페어라는 단어를 다소 생경한 의미로 사용한 책을 최근에 읽었다.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즐겨 본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지만, 특히 서양 왕실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일부러 찾아보고, 본 걸 또 볼 정도로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영국 왕실 배경 영화는 시대를 가리지 않을 정도로 즐긴다. 좋아하는 영화를 역사로 확인하려고 종종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기도 한다. 그러던 중에 포착된 책이 바로 영국의 둘째 왕자 해리가 쓴 ‘스페어(Spare)’였다. ‘예비용 왕자에서 내 삶의 주체가 되기까지’라는 부제가 붙어있었고 책 소개글에 이렇게 적혀있다. “형은 나보다 두 살 위인 데다 왕위 계승자였고, 반면에 나는 ‘예비용(spare)’이었으니까.” 스페어라는 말은 그가 태어난 날, 그의 아버지이자 현 영국의 국왕인 찰스가 한 말이기도 했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그 자체로 귀하고 소중한 것이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고 고결한 것이다.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심지어 미물이라 할지라도. 따라서 어느 누군가의 탄생도 여분일 수 없고, 예비용일 수는 없다. 그런데 태어나자마자 예비용이라니, 그것도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니 정말 말이 되는 말인가. 아들의 탄생을 기뻐하고 아내의 수고로움에 대한 고마움을 표해야 할 그 순간 뱉은 말이라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충격이었다. 평소 찰스가 왕자였을 때도, 그의 결혼 전 갖가지 추문과 행실에도, 다이애나와의 결혼과 이혼, 다이애나비의 충격적 죽음 이후 지금의 왕비와의 연애사와 결혼에 이르는 온갖 뉴스를 접할 때도 밉상이었던 그였는데, 속물적 근성의 그를 철저히 경멸하기로 작정한 것은 바로 이 책 때문이었다. 책을 소개하면서 저자가 처음으로 전하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여실하고 주저없이 솔직한 태도로 삶의 여정을 기록한 기념비적인 책이며, 통찰과 고백, 자기성찰, 그리고 힘겨운 삶 속에서도 슬픔을 넘어서는 영원한 사랑에 대한 깨달음으로 가득한 향연이라고 야단을 떨었지만 아직 40살도 채 되지 않은 남자의 삶이 뭐 그리 성찰적이겠는가. 단지 그가 특별한 신분의 왕자의 삶을 살아 세간의 관심이 힘들었고, 누구나 다 겪는 방황의 시기를 어머니의 죽음으로 더 특별히 겪었을 것이라는 정도의 내용은 뭐 그다지 감동을 줄 만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나는 그가 태어나면서 규정된 ‘예비용(spare)’의 삶을 어찌 살아내었는지에만 관심이 쏠렸고, 그것이 안쓰러웠을 뿐이었다. 이 세상 그 누구의 삶도 예비용은 없다. 온전히 그만의 삶이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6개월 전인 2024년 12월 3일 늦은 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그 이후 오늘까지 한국 사회엔 참으로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비상계엄은 그 즉시 국회에 의해 해제됐고, 계엄을 선포했던 전 대통령 윤석열은 탄핵된 후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이 결정됐다. 지금은 내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그의 아내 역시 검찰 소환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진통을 겪어야 했다. 선거운동 기간 주요 대선 후보들은 서로를 향해 비판과 비난의 말을 쏟아냈다. 후보와 가족의 도덕성 문제, 과거 적절치 못했던 발언과 행실, 후보 선출까지의 잡음 등이 질타의 대상이었다. 네거티브 선거전은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심해졌다. 이에 따라 국민들도 진보와 보수, 청년과 노년, 남성과 여성으로 갈려 상처가 될 말들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6월 3일. 6개월의 혼란 끝에 21대 대선이 끝났다. 누구는 승리했고, 누구는 패배했다. 국민 10명 중 5명은 승리한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고, 10명 중 4명은 패배한 김문수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결과가 어떻건 대선 과정은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 피투성이 싸움이었다고 하면 과한 표현일까? 앞으로의 6개월, 아니 새 대통령의 임기 내내가 지난 6개월의 갈등과 상처를 봉합하는 화해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왜냐? 승리한 후보와 패배한 후보는 물론,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 모두에게 어쨌건 삶은 단절 없이 계속되는 것이니까.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 법이니까. 허니, 오늘. 국민은 과도한 환호나 비탄에 빠질 이유가 없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새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선거는 끝이 났고 결과는 분명했다. 결과보다 깊이 헤아릴 것은 선거가 남긴 판세 지형도다. 투표 결과를 지도에 올려놓는 순간, 동과 서로 뚜렷하게 갈라진 색깔이 눈에 들어온다. 지역이 갈리고 민심이 나뉘었다. 선명한 분할이 남긴 건 승패라기 보다 어디까지 멀어져 있는 가 바로 그 현실이다. 경북은 이번에도 등을 돌렸다. 새 대통령을 밀지 않았다. 낯선 일도 아니다. 반복되어온 정치의 대립구조 속에서 경북은 늘 특정한 정치세력에 무게를 실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예전과는 다르다. 경북의 선택은 단지 정치적 보수성이 아니라 오늘 정치가 흘러가는 방향에 대한 날카로운 거부로 보인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치는 민생과 동떨어졌고 정쟁이 일상이 되었으며 사람들은 삶보다 진영을 먼저 말하기 시작했다. 지역은 소외되었고 정책은 공허했다. 경북이 보인 ‘등돌림’ 현상은 무력한 저항이자 마지막 자존심이다. 선거는 끝났다. 대통령은 결정됐고 정권은 교체됐다. 상황이 바뀌었으니 시선도 달라져야 한다. 대통령은 특정 진영의 대표가 아니라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어야 하듯, 유권자 역시 등을 돌린 채 그대로 있을 수는 없다. 무작정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지역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 마음을 닫은 채 냉소에 머무르면, 변화는 늘 우리를 스쳐만 갈 터이다. 화합은 인위적으로 성취되지 않는다. 통합은 선언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돌아선 마음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돌이켜야 한다. 대통령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화해를 말하기 전에 국민의 삶을 돌아봐야 한다. 말보다 실천으로 증명해야 한다. 정치는 혐오의 무대가 아니라 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마당이다. 실증적인 변화가 느껴질 때 지역도 마음을 열기 시작할 것이다. 책임이 대통령에게만 있을까. 지역 역시 냉정한 눈으로 새로운 정부의 행보를 지켜보아야 한다. 못하면 비판하되 잘하면 지지해 주어야 한다. 중요한 기준은 정치적 성향이 아니라 일상을 중심에 둔 판단과 실천이다. 지역이 시민적 성숙을 이루어야 한다. 경북은 한때 한국 정치의 중심이었다. 산업화의 초석이었으며 보수정치의 심장이었다. 지금은 외면받고 있다는 자각이 있다.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중심성을 회복해야 한다. ‘반대’ 일변도는 방법이 아니다. 정치의 방향성을 가늠하고 지역을 위한 비전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성숙한 정치 주체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대통령은 5년마다 바뀌지만 국민은 오래 남는다. 지역의 생명 또한 길고 또 길다. 돌아앉은 마음이 돌아서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변화는, 새 대통령의 진정어린 실천과 시민의 준비된 마음이 만나는 지점에서 가능하다. 그럴 때 비로소 오늘처럼 갈라진 지형도 위에도, 다리가 놓이고 새길이 열릴 터이다. 우리 모두는 나라와 국민이 잘되기를 바라는 같은 마음으로 한 배에 타고 있지 않은가. 차이를 극복하고 일상을 회복하며 자신 있게 미래를 열어가는 대한민국의 참모습을 다시 만나고 싶다. 어려운 시점에 5년을 책임질 새 대통령의 어깨에 온 나라와 모든 국민을 살피는 진심이 실리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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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의 ‘정치 풍향계’

국민이 먹고사는 일, 이제 당신 손에 달렸습니다

오늘 새 대통령이 취임한다. 선거는 끝났다. 전임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 되면서 앞당겨 치른 선거다. 이런 헌정 중단 사태를 누가 책임을 져야 하나. 비상계엄이라는 터무니없는 조치를 내던진 윤 전 대통령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의 책임이 비교할 수 없게 크지만,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민주당을 포함해 정치권 전체가 져야 할 책임도 절대 가볍지 않다.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 그 내용을 간결하게 잘 정리했다. 선고 요지는 “국회는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결론을 도 출하도록 노력하였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에게도 “국민의 대표인 국 회를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하였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새 대통령이 누누이 강조하였듯이 비상계엄 사태의 정리가 시급하다. 비상계엄에 참여한 인사를 찾아내 징벌하는 것만 아니다. 사건 연루자는 검찰·경찰의 수사와 재판을 통해 정리될 것이다. 새 대통령이 할 일은 갈가리 찢어진 국민을 하나로 묶어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헌재의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정부와 국회의 충돌이 아니라, 두 가지 권력을 모두 장악했을 때의 독주에 대한 국민의 걱정도 덜어줘야 한다. 이제 선거는 끝났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진영의 논리로 돌진하던 시간은 지났다. 선거 동안 후보들은 “반쪽에 의지해서 나머지 반쪽을 탄압하고, 편 가르는 반(半)통령이 아니고,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모두의 대통령이 반드시 되겠다”라고 약속했다. 열성적인 지지자의 환호에 취하지 말고, 극단적인 진영 정치를 통해 훼손된 민주주의를 복원해야 한다. 일방적인 주장, 자극적이고, 편향된 가짜뉴스로 선동과 분열을 꾀하는 유튜버와 선동가, 음모론자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졌던 윤 전 대통령의 사례가 증명해 준다. 민 주주의는 절제와 자제다. 특권을 포기하고, 자기 손에 든 것을 내놓고, 나눌 때 대화도, 타협도 가능해진다. 정권을 뒤흔드는 민심의 흐름은 먹고사는 일에 달렸다. 수출도, 일자리도 위 기다.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을 0.8%로 전망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 전쟁은 우리 경제에 폭탄을 터뜨렸다. 5월 대미·대중 수출은 지난해 대비 각각 8% 이상 감소했다. 이재명 후보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민생” 이라며 “내수 경기 진작을 포함해 경제를 살리는 일부터 시작하겠다”라고 말했다. 선거용이 아니길 바란다. 새 정부도 탄핵 이후 정부다. 문재인 정부처럼 인수위도 거치지 않고 취임한다. 사전투표 직전에야 공약집을 내놨다. 구체성이 떨어지고, 급조된 흔적이 많다. 선거용으로 급조한 선심 공약이라면 다시 검토하는 게 옳다. 이제 후보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진 대통령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실용주의를 강조했다. “반미(反美)하면 안 됩니까”라 고 말했던 그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이라크 파병, 강정해군기지를 결정했다. 이재명 후보도 “김대중 정책이면 어떻고, 박정희 정책이면 어떻나. 유용하면 쓰고, 유용하지 않으면 버리면 된다”라고 말했다. 말에 그쳐서는 안 된다. 문재인·윤석열 전 대통령은 말과 행동이 달랐다.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한 축이 사법 체계다. 정치가 엉망이라도, 선출된 정치인이 부패해도, 법의 심판은 피할 수 없다는 믿음이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다. 사법의 정치화, 정치의 사법화가 만연하면서 법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정치가 사법 질서에 개입하면, 당연한 결과도 특혜와 꼼수로 비친다. 이 역시 정치권력의 자제가 절대 필요하다. 선거는 끝났다. 패배한 정당은 선거 결과에 깨끗이 승복해야 한다. 지지자들도 마찬가지다. 경쟁 정당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정 운영이고, 우리 자신의 생명과 재산이 걸린 문제다. 그래야 다음에 집권했을 때 경쟁 정당의 협조를 요구할 명분이 생긴다. 더구나 승자의 발목을 잡는 게 아니라, 스스로 패인을 분석하고, 반성하고, 고쳐야 패배 정당에게도 미래가 있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6-04

심충택 시평

TK신공항 건설은 순항할 수 있을까

부산 가덕도신공항 건설 공사가 사실상 올스톱됐다는 뉴스가 남의 일 같지 않다. 대구경북(TK)신공항 건설도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가덕도신공항 건설의 우선협상 대상자인 현대건설이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했다. 표면적으로는 “공기(工期·2029년 개항)가 촉박하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정치적인 부담과 안전사고, 법적(중대재해처벌법) 위험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는 후문이다. 현대건설은 그동안 600억원을 투입해 6개월간 가덕도 현지에서 기술 검토를 해왔다. 이제 새 정부가 새로운 시공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가덕도신공항은 이전에도 공사를 하겠다고 나서는 건설사가 없어 네 차례나 유찰됐었다. TK신공항 건설도 순탄하지 않다. 대구시는 지난 2024년부터 신공항건설 특수목적법인(SPC)에 참여할 민간사업자 공모에 들어갔지만, 지원하는 건설업체가 없었다. 우선 한국토지주택공사(LH)부터 사업의 위험성을 들어 참여를 거부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투자비 회수에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TK신공항은 전액 국비가 투입되는 가덕도신공항과 달리 ‘기부 대 양여’ 방식이어서, 자금력이 있는 사업자가 나서지 않으면 공사가 불가능하다. 결국 대구시는 SPC 구성을 포기하고, 대신 정부의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을 지원받아 신공항을 건설하기로 했다. 이미 정부에 내년부터 5년간 11조5000억원의 공자기금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해 둔 상태다. 그러나 이 기금이 나오려면, 지원근거가 담긴 특별법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 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중이다. 공자기금을 지원받더라도 갚을 역량이 있느냐도 문제다. 대구시는 5년 거치 10년 상환 조건으로 공자기금을 빌린다는 생각인데, 이자율을 3%로 잡더라도 이자만 3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2030년까지는 이자만 갚게 되지만, 2031년부터 10년간은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아야 한다. 대구시는 이 돈을 K2 군공항 후적지를 개발해 갚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후적지 개발이익은 주로 아파트 분양에서 나오는데, 지금 대구지역 건설경기를 고려하면 불가능에 가깝다. 정부가 공자기금 지원을 꺼리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고 부동산경기가 좋아질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도 없다. 지금 신공항 예정부지 주민들은 토지거래 허가구역에 묶여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고 있다. 대구시는 최근 정부에 사업 첫 해(2026년) 들어갈 토지 보상비(공공토지비축사업비 2766억원)를 요청했지만, 정부가 난색을 표했다. 투자자금 회수 가능성이 불확실하다는 이유에서다. 공공토지비축사업은 국책사업 추진을 위해 LH가 필요한 부지를 먼저 매입하는 제도다. 오늘(4일) 출범하는 새 정부가 TK신공항 건설자금으로 공자기금을 활용하는데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TK신공항은 국가균형발전뿐 아니라 유사시 인천공항을 대체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새 정부는 대구시가 이미 제출해둔 공자기금 신청서를 꼼꼼하게 읽어보고, 전향적인 지원책을 내놓길 기대한다. /논설위원

2025-06-03

사설

“국민통합이 제1과제”…진실이길 바란다

21대 대통령은 개표 완료 이후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바로 임기가 시작된다. 과거처럼 당선인 신분으로 대통령 인수위를 구성해 취임 준비를 할 시간이 없다. 전직 대통령 파면 궐위로 인한 대선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신임 대통령은 오늘 낮 12시를 전후해 국회에서 취임식을 갖고, 바로 집무실로 출근해 업무를 시작해야 한다. 신임 대통령 앞에 놓인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최우선 처리해야 할 현안은 국민통합이다. 이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 “국민통합이 제1과제”라고 했었다. 국민통합은 대통령과 입법·사법 ‘3대 권력’이 모두 합심해야 실현할 수 있다. 많은 국민은 이번 대선 캠페인 과정을 겪으면서, 민주주의의 근간인 3권분립 위기를 우려하고 있다. 대통령을 배출한 민주당 공약집을 보면, ‘대법관 증원’을 명시해 두고 있다. 대법관 수를 늘려 상고심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제고하겠다는 게 민주당 측의 설명이지만, 이를 의심하는 국민이 많다. 민주당 공약대로 대법관 수가 늘어날 경우, 집권당 입맛대로 대법관을 임명할 수 있어 대통령이 사법부를 장악하게 된다. 이뿐 아니라 정치판사를 양산할 수 있는 ‘법 왜곡 처벌법’도 발의돼 있고, 검사 파면제도도 도입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판사도 검사도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수사를 하지 못하게 된다. 공약집대로라면, 우선 판검사에 대한 대대적인 ‘적폐청산‘이 예상된다. 이는 국민통합 약속과는 거꾸로 가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누차 “권력을 남용한 정치보복의 해악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제가 분열의 정치를 끝낼 적임자”라고 했다. 그러나 판사·검사에 대한 탄핵이나 문책 인사가 시작되면, 12·3 비상계엄 사태에 연루된 군, 정치적 중립 논란이 있었던 감사원, 국민권익위, 방송통신위 등도 연쇄적인 긴장 분위기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이 약속했듯이, 새 정부가 유례없는 국내외 위기를 극복하려면 ’적폐청산‘보다는 국민통합이 최우선 국정 기조가 돼야 한다. 그래야 극단으로 갈라진 국론을 한마음으로 모을 수 있다.

2025-06-03

사설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부터 시작하라

21대 대통령에게 주어진 가장 시급한 과제는 경제문제 해결이다. 대선 과정에서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드러났듯이 국민이 바라는 새 정부에 대한 바람은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다. 국민통합과 개헌보다 경제회복에 더 많은 기대를 걸었다. 보수, 진보를 떠나 경제문제 해결을 우선으로 꼽은 것은 경제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이런 국민적 요구는 지금의 우리 경제 상황과 무관치가 않다. 우리 경제는 성장동력이 약화되고 글로벌 경제전쟁이 겹치는 내우외환의 위기에 있다. 작년 12월 계엄 사태 후 계속되는 경기침체는 시간이 가도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행은 우리 경제 성장률을 1%대에서 0.8%로 낮추었다. 해외의 많은 기관들도 한국의 성장률을 1% 이하로 전망했다.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마이너스 성장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고금리 장기화와 내수 부진 등으로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소상공인들이 하나둘 무너지고 있다. 통계청에 의하면 한 해 동안 100만명의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스스로 자멸의 길로 들어선 이들을 다시 노동시장으로 유도할 정책이 필요하다. 일하지 않고 노는 청년 실업자들이 늘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도 발등의 불이다. 양극화 심화도 풀어야 할 숙제다.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밝혔듯이 만사 제쳐두고 경제 살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국내적으로는 꺼져가는 내수경기에 불을 지피고 대외적으로는 트럼프 정부와 관세 협상을 잘 이끌어 위기에 빠져 있는 기업들을 구해야 한다. 나아가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신성장 동력 확보에 대규모 투자도 시작해야 한다. 경제는 심리적 요인에 의해 움직일 때가 많다. 정부가 경제 살리기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이면 내수경기부터 조금씩 고개를 내밀 것이다. 과거 정부의 경제 실패를 반면교사 삼고, 지금부터 우리 경제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해 대응책 마련에 나서길 바란다. 믿음이 가는 경제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2025-06-03

팔면경

트럼프와 TACO

TACO(Trump Always Chickens Out)는 “트럼프는 항상 겁먹고 도망간다”는 뜻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조롱하는 신조어 타코가 빠르게 유행 중이라 한다. 소셜미디어에는 치킨 복장을 한 트럼프의 사진까지 나돌아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는 소식이다. 이 신조어가 등장한 배경은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 때문이다. 폭탄이라고 불릴만큼 강력한 관세정책을 펼쳤지만 경제적 압박이나 시장에서 불안하게 반응하면 곧바로 철회하는 일들이 그동안 반복되었다는 것. 그로 인한 불신이 쌓이면서 정책에 대한 불만이 조롱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연방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가 대통령의 권한을 벗어난 것이라며 무효 판결을 내리자 트럼프 관세정책이 조롱거리로 전락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트럼프의 정책에 반발하는 다른 사례도 있다. 최근 영국 등으로 이민가는 미국인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들은 트럼프의 오락가락하는 관세정책과 이민자 추방정책, 소수자 적대 정책 등에 환멸을 느껴 유럽 등지로 이민을 간다는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치를 표방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가 자신이 내세운 정책의 부메랑을 맞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런 대목이다. 지난 4월 미국 전역에서는 트럼프 정책을 규탄하는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고, CNBC의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 정책에 반대한 사람이 55%나 됐다고 한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MAGA)는 트럼프의 구상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켜볼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6-03

박필우의 맛보기 세계사

상처뿐인 영광 베오그라드를 가다

세르비아는 발칸반도 내륙국 고도(古都) 베오그라드로 대표되는 나라다. 베오그라드는 남쪽 슬라브의 나라, 즉 유고연방의 수도이자 이들의 영웅 티토 무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남쪽 니슈부터 국토 중앙 세메데레보, 그리고 수도 베오그라드를 지나 북쪽을 향해 노비사드에 이르면 왼쪽은 크로아티아 조금만 더 가면 헝가리 국경이 지척이다. 세계사 중심에서 늘 상처를 입어야 했던 태생적 폭력 현장이자 아픔의 터전이다.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사연을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꿈에서나 보았을 법한 아름다운 풍경에 피맺힌 역사가 마르지 않은 채 곳곳에 묻어 있었다. 베오그라드 발 보스니아 전쟁, 크로아티아 전쟁, 1998년 최근래에 이뤄진 베오그라드 발 코소보 살육전, 그리고 나토의 베오그라드 공습 등 ‘악마의 시대’에 중심적 이미지가 뿌리박혀 있는 곳이 아닐까. 그러나 도착과 동시에 우리 아니면 살육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상한 수도라는 생각은 대번에 깨어졌다. 물론 16년의 세월이 지난 후였지만 말이다. 18세기 말까지 세르비아는 물론이고 발칸반도 나라들 역시 민족주의 싹이 움틀 만한 조건이나 의식 자체가 거의 없었다. 대신 정교, 가톨릭, 혹은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있었을 뿐이다. 신을 믿는 사람조차도 어디 교구 소속인지 아무런 관심조차 없었다. 삶이 곧 믿음이었고, 종교가 그냥 삶이었다. 다만 수많은 침략을 당해내면서도 처참하게 견뎌낸 세르비아정교가 이들의 정체성이자 가치 정점이었다. 상징적 구심점 세르비아정교회 ‘성 사바(St. Sava)성당’은 오스만제국 이슬람과 오스트리아 가톨릭 세력의 침략에도 민족 저항정신의 요람으로 거듭났다. 그런 만큼 상처도 깊다. 깔끔한 미감, 비잔티움 형식을 닮은 외형과는 달리 어느 순간 어떤 물리적 힘에 의해 멈춰버린 듯한 성당 내부 모습, 세르비안 선지자와 성자들이 슬픈 모습으로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거무튀튀한 공간은 이방인 마음까지 점령하는 듯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시선들···. 침묵 속에서 우러나는 숙연함, 신을 향한 간절한 내면을 볼 수 있었다. 베오그라드 도심에 시민 휴식처이자, 여유와 여백의 공간 칼레메그단 성채가 있다. 공원 이름이 요새(Kale)와 전쟁터(Megdan)라는 단어가 합해진 만큼 베오그라드는 오스만제국과 비잔티움제국 틈바구니에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져야 했다. 오랜 세월 그렇게 흘렀을 도나우강(다뉴브, 돈, 두나이, 드네브 등으로도 불린다. 이곳이 세르비아니 드네브라고 해야겠지만···.)이 잔물결 일으키며 침묵으로 대신하고, 사바강과 만나는 교차점의 두물머리 풍경은 역사를 잊은 사람들에게 도심의 삶에서는 도무지 풀릴 것 같지 않은 시름을 풀어주기에 딱 알맞다. 그 위에 우뚝 솟은 칼레메그단 성채는 석양의 황혼에 몸을 맡긴 채 묵묵히 서 있다. 이름처럼 격동의 세월을 온 몸으로 견뎌낸 칼레메그단은 이슬람과 기독교 연합군과의 수전을 온몸으로 겪는다. 2014년과는 달리 2017년에 찾은 칼레메그단에서 한가롭고도 녹녹한 기운을 온 몸으로 받았다. 성채에 올라 먼데 사바강과 도나우강이 합류하는 삼각주의 잔잔한 물길을 바라보다 두물머리에 서 있는 육각형 타워 ‘네보이샤탑’이 눈에 다가왔다. 에니체리들이 세르비아 봉기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포로로 잡은 세르비아 민중을 학살하던 장소다. 어떤 식으로든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같은 발칸반도 내 그리스나 세르비아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늘씬하게 빠진 청춘남녀 시원시원한 발걸음에 힘이 넘치고, 이방인 서툰 말에도 친절한 미소로 끝끝내 화답하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존적이며 꼴사나운 비틀림에 지나지 않은 어린 학생에 의한 동양인에 대한 멸시 어린 시선과 조롱이 매우 자연스럽기도 하다. 공화국 광장에서 마주친 청춘들이 내뿜는 열기는 서울 홍대거리 못지않았다. 전철 속에서 세르비아대성당 성 사바 가는 길을 묻는 이방인에게 목적지는 잊은 듯 갈등의 기색이라곤 추호도 없이 전철에서 내려 목적지까지 함께하고 돌아서던 자매 눈길은 잊을 수 없다. 그러다 문득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 식당에서 만난 세르비아 신혼부부 말이 생각났다. 코소보에서 오는 길이라고 하자 대뜸 이렇게 말한다. “코소보가 무슨 나라라고···.” 여전히 코소보는 현재진행형이 분명했다. 세르비아인의 성지 코소보에 이방인이 독립을 선언한 이 억울하고도 미칠 듯한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코소보가 중세 서사시적 영광이 서린 세르비아인 고향이라는 인식의 뿌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음을 보았다.(본 오피니언 2024년 6월 18일자 16면 ‘검은 새의 들녘’ 세르비아 민족 성지 코소보 참조) 코소보 프리슈티나 박물관에서 각 나라 국기들 중 유독 태극기를 망토처럼 걸치고 사진을 찍던 프리슈티나대학교 2학년 여학생 말이 떠올랐다. “코소보를 어떻게 생각해요?” 어눌한 한국말이지만, 알아들었다. 그러나 답은 글쎄···. 갈 길이 멀다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에겐 대한민국은 ‘BTS’의 나라였다. /스토리텔링 작가

2025-06-03

김경아의 푸른 돋보기

내 마음의 쉼표

요즘 나는 자꾸 숨이 막힌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머릿속은 쉴 틈이 없다. 온종일 생각하고 걱정하고 또 반복한다. 뇌가 과부하가 걸린 것처럼. 생각의 회로는 타버릴 것만 같고 마음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그렇게 정신이 무거우면 몸도 무거워진다. 한 걸음 내딛는 것도 버거울 만큼 마음의 짐이 육체의 짐으로 옮겨 붙는다. 일상이 나에게만 모든 일을 쏟아붓는 것만 같다. 아이들이 자신의 일을 찾아 독립하고 나도 어느 정도 여유를 부릴 법한데 나는 여전히 일 무덤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가만히 있어도 해야 할 일들은 나를 향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가족도, 이웃도, 친구도, 그 모두의 짐이 마치 내 몫인 양 어깨에 켜켜이 쌓여 지쳐간다. 혹독한 사회에 첫 발을 디딘 아이의 고민, 아버지의 입원, 자기 말만 쏟아내는 친구의 전화, 교회에서 맡은 일은 늘어나고, 쓰고 있는 글들은 늘 미완성인 상태로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다. 하나를 끝내기도 전에 다른 일이 머릿속을 치고 들어온다. 마음은 하루를 몇 번씩 앞질러 달려가는데 내 호흡은 턱 막히고 완주가 버겁다. 어쩌다 삶이 이렇게까지 나에게 배려가 없는 걸까 싶을 때는 눈물이 솟구친다. 하고 있는 일에 온전히 집중할 여유가 없는 날의 반복, 그 속에서 나는 점점 억눌렀던 것들이 터져 나오려 틈을 비집는다. 별처럼 맑은 봄날 이유 없이 자꾸 눈물이 났다. 햇살은 고요했고 바람은 부드러웠지만 내 마음은 자꾸 흐려졌다. 전화 통화를 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을 이어가는데 어느 순간 눈물이 툭, 떨어졌다. 괜히 바쁜 내 삶을 탓하게 되고, 도와주지 않는 이들이 미워졌고 나 혼자 이 짐을 안고 있다는 사실이 서러웠다. 내가 바라는 건 거창한 도움이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는 성격 덕분에 주위의 신임을 얻긴 했지만 그 때문에 어딜 가든 짐을 떠맡아야 하는 책임이 언제부턴가 내게는 꼬리표처럼 붙었다. 막내지만 맏이처럼, 맏며느리, 남자가 할 일도 내가 척척, 너무 많은 역할을 자처하고 있었다. 기대는 이들은 늘고, 챙겨야 하는 이들도 늘어가는데 정작 나는 허공에 떠 발버둥치고 있었다. 지친다는 말조차 사치처럼 느껴져 삼켜버린 날들이 누적되었다. “힘들지?” 진심으로 물어주는 따뜻한 한 마디가 듣고 싶어 그렇게 발을 동동거렸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무거워 터질 것 같아 집 앞에 있는 바다로 무작정 나갔다. 파도 소리도 만나고 억척스러운 나도 만나고 싶었다. 말없이 커피 한 잔 내어줄 이는 없지만 나를 위해 커피 한 잔 들고 바다와 마주하고 싶었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브런치를 시켰다. 샐러드를 먹고, 바삭 구워진 빵도 먹고, 소시지도 먹었다. 파도는 쉬지 않았다. 끝도 없이 밀리면서 또 밀어 붙이는 파도의 근성이 부러웠다. 모래성처럼 금방 무너져 버리는 나와는 달랐다. 커피를 들고 바다로 나가 모래사장에 앉았다. 파도는 여전히 쉼 없이 밀려왔다가 또 조용히 물러났다. 그 부드러운 리듬이 마치 내 숨결을 다독이는 것 같았다.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복잡한 생각들이 조금씩 파도처럼 물러가는 것 같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타자를 치지도 않고, 몸을 움직이지도 않는 이 시간이 이토록 귀한 것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한 번도 나에게 주지 못했던 쉼표를 찍고 있는 시간이었다. 너무 긴 시간 동안 멈추지 못했음을 보게 되었다. 가야 할 길만 생각하고, 해야 할 일만 붙잡고, 달리기만 하던 내 삶에 빠져 있던 주어, ‘나’는 없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늘 마주하던 바다였지만 정작 가까이하기는 처음인 이 바다 앞에서 비로소 내가 사라지지 않기 위해 잠시 멈춰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래 위에 발을 묻고 하늘을 보았다. 세상은 여전히 바쁘고 내게 맡겨진 일은 변함없지만 지금은 ‘나’를 위한 쉼이다. 내 안의 소음이 잦아들고 묵직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조금은 여유롭게, 조금은 너그럽게 또 삶을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아마도 바다가 내 마음에 작은 쉼표 하나를 찍어주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또 버거운 날들이 오겠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오늘의 바다를 떠올릴 것이다. 자기 말은 하지 않고 아무 말 없이 들어주고 묵묵히 넓은 품을 내어주었다. 잠시 멈추어 설 용기가 필요했던 나에게 고요하고도 단단한 용기로 곁을 내어 준 내 마음의 쉼표, 나는 그 바다에서 나를 다시 만났다. /작가

2025-06-03

정상철의 혁신경영

생산 물류 혁신으로 경쟁력 확보

생산 물류 혁신은 생산과 물류의 흐름을 구조적으로 변화시켜 전 과정을 통합 최적화하여, 리드 타임 단축, 재고 최소화, 품질 향상, 납기 준수, 비용 절감 등을 이루는 혁신활동이다. 제조업이 적용 대상이며, 생산 과정에 정체 현상이 자주 발생하거나 원료 관리, 중간 재고, 완성 재고, 수주와 생산의 불균형으로 일어나는 손실 등이 생산 물류 개선 대상이 된다. 생산 물류 개선 활동의 절차는 첫째, 현황 분석이다. 생산 및 물류 흐름, 병목 현상, 낭비 요소, 문제점 진단을 VSM(Value Stream Mapping), 데이터 분석을 통해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둘째, 목표 설정이다. 납기, 재고, 리드타임, 비용, 품질 등 목표 설정이 숫자로 구체화 되어야 한다. 셋째, 혁신 기획이다. 혁신 기법은 수행 원리와 기능이 있다. PAC, Lean, TPM, TOC 등 각 기법의 수행 원리와 기능을 알면 자사의 문제 속성에 맞는 적합한 기법을 선택하여 실행 기획을 수립할 수 있다. 넷째, 설계 및 실행이다. 공정 재배치, 자동화, 물류시스템 구축, 교육 실시 등 상황 분석에서 발췌된 문제들을 적합한 기법을 적용하여 해결하는 것이다. 계획이 구체적이고 명확하면 실행력이 높아지고 목표 달성이 된다. 다섯째, 성과 측정 및 피드백이다. 목표 대비 달성 여부와 개선 효과를 분석하여 피드백 하고 공정한 포상을 한다. 여섯째, 지속적 개선이다. 개선 후 작업 표준화를 하고, 제로 베이스에서 낭비를 찾고, CAPD(Check Action Plan Do)로 지속적 개선을 하는 것이다. 필자가 4년간 지원한 구미 2차 전지 소재 생산의 양극재 공장은 원료와 중간 제품 관리가 미흡하며, 창고의 저장량 한계로 사외 창고 위탁을 검토중이었다. 신품종 개발 시 고객사로부터 3번의 오디팅(Auditing)을 받는데, 2차 전지 소재는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다. 이에 따라 생산 과정에서의 원료 관리와 중간 제품의 항온, 항습 관리가 잘 되는지 검증한다. 현재 생산 라인의 작업장 레이아웃 설정과 원료, 환경, 재고관리의 한계로 오디팅 때마다 불필요한 이동 낭비가 반복되고 있다. 이는 최적 물류 생산관리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체 생산공정의 작업 조건과 물류 흐름을 한 달간 분석한 후, 각 공정에 비치된 다양한 물류량을 파악했다. 필요량 이상의 물량은 정리하고, 생산 라인의 원료와 중간 제품의 적정량을 설정하며 적재 공간을 확보해 생산 물류 흐름을 최적화했다. 또한, 생산 조건의 불합리를 개선하고, 리튬, 니켈, 크롬, 망간 등의 원료에 대한 온도 및 습도 관리 기준을 정립했다. 배터리 화재에 민감한 이물질 혼입 방지 장치를 설치하고 지속적인 환경 관리 체계를 시스템화했다. 생산 라인의 원료, 중간 재고, 완성 재고량을 계산하여 표준화하고, 1개 단위 생산체제를 마련했다. 생산량이 증가할 경우 재공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여 저장량을 확대하고 종합 물류 생산체계를 완성했다. 생산 물류 혁신의 성공 조건은 작업 변화에 대한 저항을 이기고, 변화 추진력 확보를 위한 경영진의 강력한 의지가 중요하다. 생산, 물류, 품질, 영업 등 전사적 참여와 유기적 협력, 고객 가치 중심적 사고가 있어야 가능하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06-03

心山書窓

130년 만의 일깨움, 해월문화제의 의미

6월의 초목은 새벽부터 내리는 비에 더욱 짙어지며 싱그러움을 더해가고 있다. 지난 5월 12일부터 22일간 초단기 대선 레이스에 목놓아 외치던 지지와 호소도 암록(暗綠) 속에 잠기며 지금은 ‘갈림길의 선택’을 하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전직 대통령의 탄핵과 파면으로 인한 정치적 혼돈과 사회적 피로감이 고조된 국면에서 제21대 대통령을 뽑는 6·3 조기대선의 투표가 시작됐지만, 전국의 유권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책임감 있는 선택이 중요하다고 본다. 오늘의 귀중한 한 표가 대한민국의 미래 5년을 결정지으며 새롭게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관심이 온통 대선후보의 경쟁이나 판세 가름으로 요동칠 때, 차분하게 정중동(靜中動)의 몸짓으로 의미 있는 걸음을 옮기며 고찰과 추모, 일깨움의 움직임이 있어서 참으로 고무적이다. 그것도 여타 지역에 비해 비중이 크며 정작 실제적인 활동을 펼친 본거지에서는 그다지 부각되지 않은 존재와 그 의미를 심도 있게 되짚어서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행보라 한결 바람직하게 여겨진다. ‘사람을 하늘처럼 섬겨라(事人如天)’는 가르침을 실천한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을 기리는 ‘해월문화제’가 5월 30일부터 오늘까지 포항 일원에서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해월 최시형을 깨우다’ 주제의 2025년 해월문화제는 (사)일월문화원의 창립 15주년 기념사업으로 해월선생의 숨결을 더듬어 동학의 정신과 자취를 재조명하는 문화축제이다. 동학 2세 교주로 포항이 길러낸 위대한 실천가이자 정신적 지도자였던 해월 최시형 선생을 집중 조명·기념하여 바른 인식과 보급, 전승을 위한 문화행사로 전국적인 대규모 행사로는 처음이다. 작년 11월 ‘포항시 동학사상 계승·발전을 위한 지원 조례안’이 포항시의회에 의결된지 6개월만에 소기의 결실을 맺는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해월과 일월 동행 전시회’ 개막식과 함께 시작된 해월문화제는 문화·학술·예술·탐방·순례·추모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됐다. 해월초상화 그리기 대회와 해월 어록 서예전·해월 생애와 사상· 해월 순례길 안내도·해월 도피 경로연표 등의 보기 드문 전시물들이 해월선생의 고고하고 험난한 일생과 포덕(布德)을 떠올리며 관람객들의 발길을 머물게 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도종환 시인을 초청해 ‘해월이 키운 어린이 세상’ 주제강연과 백승종 교수의 ‘21세기 동학을 묻다’와 김상백 시의원의 ‘검등골 사적지 지정’ 등에 대한 열띤 강연이 열렸다. 그리고 해월순례길(용담정↔검등골) 1~4구간 안내판 설치와 1구간 걷기·천곡사~해월 어록비~동학 16접주 임명지 답사·숲속 작은 음악회 등이 진지하고 다채롭게 펼쳐졌다. 오랜 세월 동안 잊혀지고 바람처럼 떠돌던 구도자의 아픈 이름-포항 사람, 해월선생께서 130여 년의 잠을 깨고 후대들의 늦은 일깨움과 추념의 정에 여한(餘恨)이 조금이나마 풀리셨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포항이 낳은 ‘거룩한 성자’ 해월 최시형임에도 그와 관련된 유적이나 기념물은, 포항시민의 해월선생에 대한 인지도 만큼이나 너무 빈약하다. 민간주도의 기념·추모사업은 예산과 지원에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이번 해월문화제를 계기로 해월에 대한 포항시민들의 관심과 자긍심이 높아지고 자치행정 주관의 해월문화제 인프라가 꾸준히 구축되기를 기대해본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06-03

기자수첩

[기자수첩] 구미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빛과 그림자

육상은 태고적부터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탄생한 원시 스포츠인 만큼 중력과 저항을 거부해온 온몸의 드라마이자 인간 능력의 한계치를 조금씩 확장해온 신기록의 서사(敍事)이다. 육상은 또 포환던지기 등 극히 일부 종목을 제외하곤 온전히 몸뚱아리 하나만으로 촌각과 거리를 다투며 버티는 스포츠 종목이다. 그만큼 얄팍한 속임수나 번지르한 꾸밈이 없는, 순수하고도 경이로운 운동으로 칭송받고 있다. 아시아 43개국에서 빨리 달리고, 높이 뛰어 오르고, 멀리 내닫는데 내노라하는 젊은이 803명이 같은 날 한자리에 모여 기량을 겨루는 드라마 같은 육상의 명승부, 제26회 구미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가 지난 31일 5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지난 5일간 대회 메인스타디움인 구미시민운동장에서는 0.01초 찰나의 순간에 새로운 영웅이 등극하고, 1cm의 짧은 뺨 차이로 불패의 황제가 몰락했다. 육상대회 기간 중 출전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전력을 다해 온 힘을 쏟아 붇고 사자처럼 포효했다. 이번 대회 남자 높이뛰기에서는 우상혁 선수가 대회 2연패를 달성하고, 남자 400m 계주 결승에서는 한국 신기록을 세우는 성과를 냈다. 또 누적 인원 8만 명의 관중이 몰리고, 주한 외교관 30여 명이 방문하는 등 국제스포츠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구미시의 국제무대 인지도도 한껏 올리게 됐다. 그러나 빛나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잡음이 없지 않았다. 이번 대회 최고의 하이라이트 경기로 기대를 모았던 남자높이뛰기에서 우상혁의 라이벌 바르심(카타르)은 대회 하루를 앞두고 결장을 통보해 언론의 오보가 잇따르는 등 혼선을 빚었다. 대회를 빛낼 최고의 명장면이 사라진 순간이기도 했다. 출전선수들의 일정과 컨디션을 꼼꼼히 챙기지 못한 대한육상연맹과 조직위의 미숙한 대처란 지적이 뼈아프다. 대회 운영과는 상관없지만 이란 선수와 코치진 등 3명의 한국 여성 성폭행 사건 또한 훌륭한 대회성과를 훼손시켰다. 국제스포츠행사에 참가한 외국선수· 코치진이 타국에서 몹쓸 범법행위를 자행한 이 사건은 숭고한 스포츠 정신으로 출전한 다른 선수단들에게도 낯부끄러운 일이 되고 말았다. 대회를 기념하기 위해 열린 구미시 인동 야시장 행사에서 구미시의회 모 의원이 의전에 불만을 품고 시의회 직원을 폭행한 사건도 대회 열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육상대회를 코앞에 두고 이같이 ‘후진적인 갑질행위’가 발생하자 “국제적 망신이다”라는 시민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이제 대회는 끝났다. 대회성과를 차분히 복기하고 미흡했던 점을 채울 때다. 시도민들은 육상대회에서 메달을 딴 승자는 물론 상위권 탈락으로 패배의 눈물을 삼킨 꼴찌들에게도 응원과 위안을 보내야 마땅하다. 선수들은 다음 대회의 재도약을 기약할 시간이다. 대회 운영 기간 어려운 여건에도 눈물겨운 활동을 펼친 330여명의 자원봉사자와 대회 관계자에게도 뜨거운 박수와 격려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류승완기자 ryusw@kbmaeil.com

2025-06-02

지홍석의 한국 테마 기행

서해의 절해고도 어청도, 그 전설 속으로 들어가 본다

어청도(於靑島)는 고군산군도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섬이다. 군산에서 약 72km 떨어져 있는데, 중국에서 개 짖는 소리와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러나 중국 산둥반도와는 약 300Km 정도의 거리라 어불성설이다. ㄷ자형으로 움푹 들어간 어청도항구는 태풍 때마다 선박들의 피난처 역할을 한다. ‘어청’이라고 하면 대부분 바다와 연관된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어청도는 ‘물고기 어(魚)’가 아닌 감탄사의 의미인 ‘어조사 어(於)’, 맑을 청(淸)이 아니라 푸를 청(靑)자를 쓴다. 섬 이름에 얽힌 이야기는 역사적 사료와 전설이 혼재된 구전에 기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어청도라고 하지만 중국에서는 ‘오호도’라 부르기도 한다. 진시황이 죽은 후 제나라를 세워 왕 노릇을 하던 전횡 장군이, 한나라 유방에게 쫒겨 부하 500여 명과 돛단배를 타고 서해에서 3개월 동안 표류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안개가 자욱하였는데 갑자기 푸른 산 하나가 우뚝 나타났다고 한다. 전횡은 얼마나 반가웠던지 자신도 모르게 “아! 푸르다”라고 외쳤고, 그 감탄사가 그대로 섬 이름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어청도에는 전횡 장군의 사당인 ‘치동묘’가 있고 초상화가 모셔져 있다. ‘치동’은 제나라 도읍지인 임치(臨淄)의 동쪽이라는 뜻이다. 어청도로 가기 위해서는 군산 연안여객선 터미널에서 배를 타야 한다. ‘어청카훼리호’는 하루에 한 번 운항하지만, 4월에서 9월까지는 주말에 2회로 증편 운항한다. 오전 9시, 군산항을 출발하면서부터 좌측으로 많은 섬들이 점점이 흩뿌려진다. 얼마 전 지면을 통해 소개한 고군산군도의 주옥같은 섬 들이다. 횡경도, 방축도, 명도, 보동도, 말도 등이 확연하게 구분되면서 이어진다. 군산항을 출발한 지 40 여분이면 승선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측 바다로 향한다. 비경으로 일컬어지는 십이동파도의 절경이 한동안 펼쳐져서다. 십이동파도는 군산 외항 서쪽 38km 떨어진 군도로 12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 1960년대까지 주민들이 살았으나 지금은 무인도다. 평화롭던 이 섬에 간첩선이 들이닥쳐 모자가 살고 있던 집에 침입해 아들을 납치하려고 하자, 어머니가 아들을 놓아두면 자신이 대신 가겠다고 자청했다. 그 이후 북으로 끌려간 어머니는 소식이 끊겨버렸다고 한다. 배가 출발한 지 한 시간 정도면 멀리 전방으로 어청도와 외연도가 서서히 다가선다. 두 섬은 같은 행정구역에 묶일 법도 하지만, 어청도는 전북 군산시, 외연도는 충남 보령군에 속해진다. 조선 말엽까지만 해도 어청도도 충남 보령군 오천면에 속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전북 옥구군, 1989년에 군산시로 편입되었다. 어청카훼리호 뱃머리 앞쪽에는 포토존이 설치되어 있어 두 섬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다. 군산항에서 어청도까지는 약 2시간 정도가 소요 된다. 어청도항은 동과 서에 긴 방파제를 따로 쌓아 높은 파도의 접근을 막았는데, 빙 둘러싼 봉우리와 능선들이 항구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서쪽에서부터 당산과 공치산, 안산과 검산봉, 독우산과 돗대등 등이 마치 부챗살처럼 펼쳐진다. 선착장에 도착하면 전방으로 신흥상회가 보인다. 어청도 승선 매표소 겸 섬을 일주하는 트레킹 시작점으로, 우측 뒤편으로 어청도 최고봉 당산과 석산 오름길 계단이 이어진다. 섬에 도착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먼저 숙소부터 찾는다. 그리곤 점심을 해결한다. 아무리 해기를 마음껏 들이켰다고는 하나, 그것으로 배를 채울 수는 없는 일이다. 또한 여유 있는 오후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우선 배가 든든해야 한다. 탐방의 목적에 따라 코스가 정해진다. 섬 트레킹을 할 것인가, 아니면 여행을 즐길 것인가다. 여행코스는 단순하다. 마을 안쪽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르면서 ‘치동묘’와 ‘어청초등학교 사랑나무’를 살펴보고, 팔각정이 있는 고갯마루에서 ‘붉은색 하트 조형물’과 ‘헨리 아펜젤러 목사’의 추모 비석을 살펴볼 수 있다. 아펜젤러 목사는 배재학당을 세우고 정동교회, 중앙교회 등을 설립한 인물이다. 한국어 성경 번역을 위해 목포에서 개최되는 회의에 참석하려다 어청도 서북 바다에서 선박 사고로 순직했다. 당시 함께 배를 탔던 생존자에 의하면, 목숨을 잃는 그 순간까지도 동료와 정신여학교 학생을 구하는 데 앞장섰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시신은 끝내 찾지 못하였다. 어청도 여행의 백미는 “어청도 등대”다. 1912년 일본의 정략적인 목적에 의하여 건설되었는데 군산항 및 서해안의 남북 항로를 통하는 모든 선박이 이용하는 등대다. 해안 절벽 위에 높이 14m의 콘크리트 건물로 지었는데, 그 불빛이 약 37km 떨어진 곳까지 비춘다. 삼각형 돌출지붕과 이를 장식한 꽃봉우리, 상부로 갈수록 좁아 드는 단면 처리 등이 주변 바다의 풍광과 잘 어울린다. 특히 해가 질 때 등대 주변의 해송과 어우러진 그림 같은 풍경은 절대 잊혀 지지 않을 정도로 환상적이라고 한다. 트레킹 위주의 일정이라면 신흥상회 우측 뒤편의 데크계단을 오르면 된다. 어청도 최고봉은 공산, 해발이라야 지리산 천왕봉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173m 남짓이다. 노약자도 오를 수 있는 동네 뒷산 정도의 수준이다. 중간 지점인 팔각정은 길이 네 갈래다. 좌측은 어청도 등대, 우측은 마을, 그리고 직진 방향은 계속 이어 가야 할 능선 길이다. 팔각정에서 어청도 등대까지는 약 10분 정도가 소요된다. 공치산을 넘어 계속 이어지는 능선은 어청도 트레킹의 백미다.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전망이 좋은 길인데 좌측으로는 외연열도가, 우측으로는 어청도항과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공치산에서 목넘 쉼터로 내려서는 길에는 한반도 지형이 펼쳐져 눈 호강을 하게 된다. 페이스에 따라 독우산 까지 연결이 가능하지만, 목넘 쉼터까지 되돌아와야 한다. 전체 트레킹에 소요 되는 시간은 약 세 시간 정도다. 어청도를 탐방하려면 숙식이 가장 중요하다. 민박을 겸하는 식당이 있지만, 사전에 예약해서 다녀올 것을 권한다. 혼자서 떠나는 여행자라면 특히 더하다. 어느 집이든 음식 맛이 비슷할 것 같지만, 아름 민박식당의 백반은 필자가 섬 여행 중에 먹어본 음식으로는 최고라고 자부한다. 반찬의 종류가 무려 11가지에 달한다. 어청도에서 군산항으로 돌아오는 배편이 이전까지는 하루에 한 번(오후 1시)이었지만, 4월부터 주말엔 두 번으로 증편됐다. 1박2일을 적극 추천하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당일 여행과 트레킹도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 어청도는 절대 후회하지 않을 명품 섬이자 멋진 여행지다. /지홍석 수필가

2025-06-02

공봉학의 인문학 이야기

5060의 2030 사랑

‘자식에 대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 자식 사랑의 시작이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온전하게 소유한 부모가 어디에 있겠는가. 부모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식의 실패이므로, 모든 부모의 자식 사랑은 불완전하다.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결국은 자식을 망치는 왜곡된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을 수없이 보아 왔지 않은가. 자식은 활의 시위를 떠나가는 화살과 같은 존재이다. 활이 할 일은, 자식이라는 화살이 멀리 똑바로 나아가도록 최대한 자신을 휘어지게 하는 것이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 어디로 갈지, 얼마나 갈지, 활은 알 수도, 간섭할 수도 없다. 태어났지만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함께 있지만 부모의 소유가 아니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생명 자체가 재생을 염원하는 그 염원의 아들이자 딸이다. 부모는 자식이 지은 생각이라는 집속으로도 결코 들어갈 수 없다. 충고는 그저 공허한 메아리일 뿐. 우리들의 소중한 자식들인 2030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때는 귀엽고 순한 유치원생이었고, 중·고등을 지나 대학입시를 향해 달렸던 아이들이 지금은 취업난, 주거난, 관계의 단절 속에서 휘청거리고 있다. 지난 세월동안 2030들은 사이버공간에서 다시 탄생하였고, 그곳이 그들의 현실이 되었다. 5060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그들은 5060의 세계로 초대받는 것조차 꺼려한다. 이해하지 못하므로 대화는 단절되었다. 누가 누구를 이해하여야 하는지조차도 애매해졌다. 세대 차이가 아닌, 공유영역조차 없는 세대 단절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속의 다른 인류들이 되었다. 밥상머리에서는 침묵이 흐르고, 5060들은 2030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그들의 상당수는 페미와 잰더 갈등 속에서 공정이라는 단어의 개념조차 의심한다, 생명이 염원하는 따뜻한 체온의 교감을 멀리하고, 사이버공간의 차가운 위로를 선호한다. 부모와 자식이 갈라지고, 남녀가 갈라지고, 정치적으로 분열되었다. 활의 시위를 떠난 화살들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얼마나 멀리 가버렸는지 5060들은 알지 못한다. 오호 통재라!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곳에 있는지 모른다. 그들을 어떻게 사랑하여야 하는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사라졌고, 단절되었다. 무엇이 되어야 하며, 무엇을 이루어야 하며,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다그쳤다. 그래서 남은 것이 무엇인가. 누군가 이기면 누가 져야 되며, 누군가 살아남으면 누군가 죽어야 되지 않은가. 이제 우리 모두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 서로를 알아야 하고, 이해하여야 하며,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들에게 생각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세계를 긍정하고, 사랑하여야만 한다. 무엇이 그들을 여기까지 오게 하였는지에 대하여 깊이 사유하여야 한다. 2030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누군가의 자식이다. 보라, 그들의 인생을. 어떤가. 잘 된 인생. 못 된 인생. 그런 저런 인생. 전부 다르지 않은가. 부모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하여 자식의 실패를 두려워 해서는 안 된다. 2030이 공정이라는 단어를 의심하였듯, 5060은 실패라는 단어를 의심하자. 세상엔 성공한 인생. 실패한 인생 따위는 없다. 다만 ‘그런 인생’이 있었을 뿐이다. 자식의 실패조차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사랑의 대화가 시작될 수 있으리라. /공봉학 변호사

2025-06-02

明鏡臺

2025 조기 장미 대선 유감

오월 절반을 방송국 장미 담장에 붙인 제21대 대선 벽보 곁을 걸어 출퇴근했다. 나라의 두 번째 조기 대선 벽보다. 처음엔 속으로, ‘벽보가 붙었구나’하고 생각하며 지나쳤다. 얼마간 지나다니다가 어느 날, ‘벽보가 장미 담장에 붙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맞아. 불행히도 우리는 두 번째 조기 ‘장미 대선’을 치르는 거다.”라는 속말이 나왔다. 웹에서 장미의 꽃말을 찾았다. ‘사랑, 순수, 감탄, 우정 열정, 신비, 풍요, 기적, 재탄생’ 등 많은 꽃말을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 장미 대선은 2017년 5월 9일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치적 탄핵으로 임기를 못 채우고 퇴진하여 치러진 불행한 대선이었다. 언론과 정치권은 왜 이를 ‘장미 대선’으로 불렀을까. 2025 올해 조기 대선도 사전투표가 5월 29, 30일에 있었고, 당일 투표는 장미 피어있을 6월 3일이니 역시 ‘장미 대선’으로 불러도 좋겠다. 장미 대선은 공교롭게 두 번 다 우파 대통령 탄핵이 그 원인이었다. 또, 탄핵의 요인은 모두 여당 국회의원들의 내부 분열에 있었다. 여론에 휘말려 자당이 배출한 대통령에게 어떻게 탄핵 찬성표를 던질 수 있단 말인가. 나라와 국민의 복리(福利)보다는 자기 정치적 이득을 앞세운 결과라는 게 범인인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암튼, 진행 중인 두 번째 장미 대선에서 큰 선택의 분수령에 서게 된 국민 각자다. 나라와 나, 우리 가정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장미 대선은 정부나 정권 교체를 넘어 나라의 방향과 그 시스템 전반을 다시 점검, 고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니 나와 너, 우리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주권행사의 선거이다. 어제와 오늘 이틀간의 사전투표에서 중차대한 세 문제와 관리 부실의 여러 문제가 나타났다. 한데, 지상파나 종편 방송, 주류 신문 등의 보도는 관리 부실의 지엽적 문제만 주로 다루고 핵심 세 사안은 거의 외면하고 있다. 세 사안은 첫째, 중앙선관위가 발표한 사전투표자 수가 부풀려져 부정선거 방지대 등 선거 감시 요원들의 계수 수치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과 둘째, 용인 수지 성복동 사전투표소에서 회송용 봉투에 이미 1번 후보를 기표한 투표지 한 장이 들어 있는 사실을 발견자가 경찰에 신고한 사건과 셋째, 내한해 활동하고 있는 ‘국제공정선거연합(NVEIA)'과 '국제선거감시단(IEMT)’의 활동과 성명발표 등이다. 5월 29일 발표된 ‘국제공정선거연합 선거감시단 성명서’는 한국 선관위의 고발 조치, 정치적 중립성 의문, 사전투표관리관 도장 미날인, 자유롭고 공개적 비판과 논쟁 불수용의 5요소를 지적했고, 선거 기간의 정치적·법적 조치 전반에 대한 종합적 국제 보고서를 작성, 배포하겠다고 말했다. 2025 조기 장미 대선도, 사전투표자 뻥튀기 같은 부정선거의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만일 사실이면, 이는 나라의 미래가 ‘일당의 괴물 독재’에 빠진다는 징표다. 하지만, 먹구름 아래서도 좋은 꽃말의 장미가 피어나는 하늘의 섭리를 믿고, 당일 투표에 꼭 나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는 후보를 뽑겠다. /강길수 수필가

2025-06-02

사설

본투표에서는 부정의 ‘ㅂ’자도 안나오게 해야

6·3 대선 본투표가 오늘 오전 6시부터 전국에서 시작됐다. 득표율 차이에 따라 변수는 있지만, 결과는 오늘 자정 전후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초박빙이었던 20대 대선 때는 다음날 오전 2시에 유력후보가 결정됐고, 19대 대선 때는 오후 10시 쯤 당선유력 결과가 나왔다. 각 후보는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2일까지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유세전을 벌였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서울 여의도에서 마무리 유세를 하며 “투표로 계엄을 심판해 달라”고 호소했다. 유권자들에게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를 상기시키는 데 유세 초점을 둔 것이다. 이 후보는 대구·경북(TK) 지역에서 30%대 득표율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이날 부산역을 시작으로 동대구역, 대전역, 서울역 유세를 거쳐 서울시청 광장에서 마무리 유세를 했다. 김 후보는 유세 때마다 “대한민국이라는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선 이재명 후보의 당선만은 막아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보수 텃밭인 TK지역에서 김 후보가 80% 득표를 기록하면 당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대구에서 마지막 유세를 했다. 이번 대선에서 그의 목표는 보수 진영 차세대 주자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TK에서 깜짝 놀랄만한 성적을 기록해야 한다. 이 후보는 두 자릿수 이상 득표는 달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오늘 치러지는 본선거가 부정 논란 없이 끝나려면 선관위의 공정한 선거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서 치러진 사전선거에서는 투표용지가 투표소 밖으로 반출되는가 하면, 투표함에서 작년 총선 투표지가 발견되고, 투표 사무원이 대리·중복 투표하는 등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대법관)이 “선거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문제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밝혀 엄정한 법적 절차를 밟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국민들은 선관위의 투표관리를 불안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 선관위는 유권자들이 부정 의혹으로 투표 결과에 불복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선거관리에 한치의 빈틈도 없도록 해야 한다.

2025-06-02

방민호의 생각의 빛

불심(佛心)은 중생심(衆生心)

세상의 논란, 소용돌이의 한 귀퉁이에 서 있어 마음 편할 수 없는 나날이다. 지난 31일, 토요일, 서울대학교 신양학술정보관에서 설악무산(雪嶽霧山) 스님을 추모하는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헤아려보니 벌써 어언 7년. 2018년 5월 26일 원적에 드셨다. 세수 87세요, 승납 60세이셨다. 그때 최동호 선생님, 권성훈 시인과 함께 마지막 누워계신 곳으로 갔을 때, 병풍 뒤 유리관 안에 계신 스님께서 눈을 반짝 뜨시고, 너 왔느냐, 하셨다. 유리관에 맺힌 이슬이 마침 스님의 감으신 눈에 맺힌 것이다. 다시 살아나셔, 한 말씀, 제대로 살라, 하시는 듯했다. 사제이신 홍사성, 김병무 선생이 엮으신 ‘무산 스님의 방할’, 생전의 스님 언행과 법문을 담은 책이 있다. 이를 보면, 무산은, 대승불교의 정신은 불심(佛心), 부처님의 마음은, “중생심(衆生心)”, 중생의 마음에 있다 하시며, 스님들이 좋은 곳에 앉아 덕담만 하면 어찌 부처님이 되겠느냐, 저자거리에 시장바닥에 나가보라 하셨다. 불경에 전하는 화두(話頭), 1700 공안(公案)에 속지 말라시며 뜰 앞에 있는 나무가 잣나무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떻겠느냐고도 하셨다. 옛날 중국 조주 스님의 문답에, 어느 스님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오신 까닭을 물으니, 스님 답하시기를,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 뜰 앞의 잣나무라 하셨다는 것이다. 불법의 이치를 묻는 스님에게 그 실상(實相)을 보라 하셨다는 것인데, 그야 내가 제대로 알 리 없다. 무산은 화두에 묻히지 않도록 안거(安居) 수행을 끝내고 산문을 나서는 스님들께 해제 법문에서 그렇게 이르셨다는 것이다. 세속 세상, 보통 사람들, 서민들 살아가는 곳에 나아가, 수행에서 얻은 것이 참 깨달음인지 아닌지, 제대로 얻은 것인지 아닌지, 제대로 한 번 자문해 보라, 하셨다는 것이다. 시비인(是非人)이 되지 말고 무사인(無事人), 일상 자체를 수행으로 여기는, 애써 구하려 하지 않는, 생각을 내려놓고 볼 줄 아는 수행자가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도 경계하시기를 그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세상이 어지럽고, 그 혼탁한 가운데 불의가 정의가 되고, 권력이 저항으로 둔갑하는 마당에, 옳고 그름을 가려 그 세상이 언제까지, 어디까지 그렇겠느냐고 매서운 추위의 겨우내, 시절 좋은 봄에도, 세월 가는 줄 몰랐었다. 시비(是非)에 묻혀, 저 숲속의 마르고 구부러진 나무 되기를 꺼리고 세속 세상에 나와 싸우려 하기를 거듭했다. 사제 되신 분께 그분의 사유에서 무엇을 얻어야 하느냐 여쭈니, 수행해서, 참선해서 부처님 되신 후에, 중생을 구하려 하는 불교에서, 부처처럼 살아가야 부처가 되는 도리로, 중생 속에서 부처의 삶을 살아야 부처가 될 수 있음을, 그래서 화두 수행이 공허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수행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이루신 것이라 한다. 중생들의 삶이, 내게 제대로 비추이도록, 나 또한 중생의 하나임을 잊지 않도록 마음 거울을 닦아야 함을 잊지 않아야 하리라 생각한다. ‘세상 마음’이 투명해지도록.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5-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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