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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인생은 다큐멘터리, 그 속에 첫사랑의 달콤함을”…

수필가 김남희가 신작 수필집 ‘사랑도 말을 알아들었으면 좋겠습니다’(학이사)를 펴냈다. 2019년 ‘한국수필’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내놓은 첫 수필집 ‘푸른 별 지구’에 이어, 한층 깊고 성숙해진 시선으로 세상과 마주한 기록이다. 유아교육기관에서 20여 년간 아이들과 호흡해 온 작가는 어른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찰나의 장면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길어 올리는 데 탁월하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체득한 그는, 쉽게 이름 붙일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들에 다정한 언어의 옷을 입힌다. 작가는 이번 작품집을 통해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라고 담담히 고백한다. 극적인 반전이나 화려한 연출이 없는 삶일지라도, 그 지루할 수 있는 나날 속에 ‘첫사랑 같은 달콤함’이 스며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그에게 행복이란 거창한 미래의 성취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감각과 좋은 사람이 이기는 세상을 기다리는 순수한 믿음에 맞닿아 있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독자를 삶의 깊숙한 곳으로 안내한다. 1부 ‘일상의 온도’: 하루의 틈새에서 건져 올린 생활의 풍경을 담았다. 순대를 좋아하는 소박한 취향부터 갓 구운 빵의 온기까지, 작가의 취향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 자신의 기억 또한 조용히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2부 ‘내 안의 별’: 자기 성찰과 내면의 속삭임에 집중한다.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서 포착한 섬세한 감정들이 문장마다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3부 ‘자연의 위로’: 여행지에서 만난 자연이 건네는 치유의 순간들을 기록했다. 낯선 곳에서 마주한 풍경이 어떻게 개인의 내면을 어루만지는지를 보여준다. 4부 ‘길 위의 사색’: 떠남과 머묾의 의미를 사유하며 삶의 본질을 묻는다. 김남희 작가는 영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계명대학교 유아교육대학원을 졸업한 후, 오랜 시간 어린이집과 유치원 원장으로 재직하며 아이들의 순수한 세계를 지켜왔다. 현재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으로 근무하며 한국수필가협회, 대구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등에서 활발한 문학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6-02-08

인간이 사라져 가는 전쟁 속에서 ‘최종 승자’는

기술은 언제나 전쟁의 양상을 바꿔 왔다. 화약은 중무장한 기사(騎士)를 고꾸라뜨렸고, 철도와 전신은 총력전을 가능하게 했으며, 원자폭탄은 전쟁의 대가를 인류가 감당 못 할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은 이전의 기술들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이전의 기술들이 인간의 능력을 ‘확장’했다면, AI는 인간의 역할 자체를 ‘대체’한다. 운명을 가르는 순간에 인간이 개입할 여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인간이 사라져 가는 전쟁에서, 인류는 과연 최종 승자가 될 수 있을까? 신간 ‘인간 없는 전쟁’(북트리거)은 이 물음에 응답하려는 시도다. 저자인 최재운 광운대 경영학부 빅데이터경영 전공 교수는 기술과 전쟁이 얽혀 온 역사를 개괄하고, 우크라이나와 중동 등 최근의 전쟁터에서 AI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톺아본다. 인간의 손아귀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는 기술이 야기할 윤리적 딜레마를 찬찬히 짚어 보고,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한다. ‘인간 없는 전쟁’은 인공지능(AI)이 현대 전쟁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으며 초래하는 윤리적·사회적 문제를 심층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AI는 이전 기술과 달리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며 전쟁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AI의 발전과 군사적 활용은 막을 수 없는 흐름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감각을 바탕으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되묻는다. AI 전쟁의 가장 큰 문제는 책임 소재의 불분명성이다. AI 오작동으로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해도 법적·윤리적 책임을 물을 대상이 없다. 원격 전쟁에 익숙해진 병사들은 ‘일상과 전투의 괴리’로 인해 오히려 심리적 스트레스가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소개된다. “AI는 생사 결정의 주체를 기계로 전환하며, 책임 소재마저 모호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섣부른 기술 낙관주의나 묵시록적인 비관주의, 양쪽 모두와 거리를 두고 ‘AI 시대의 인간다움’을 재고하기를 요청한다. 2023년 하마스와 휴전 중인 이스라엘군은 AI 시스템 ‘라벤더’(패턴 분석), ‘가스펠’(목표 특정), ‘웨얼스 대디’(위치 추적)를 활용해 표적을 식별하고 폭격을 수행한다. 인간 장교는 AI가 생성한 살생부를 20초 만에 승인하는데, 이는 “남성 여부만 확인하고 공격 결정을 내리는 수준”이라고 책은 전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드론 전쟁’의 실험장이다. 양측은 유선 드론, 엣지 AI 기술 등으로 통신 차단 상황에서도 자율 작전을 펼치며, AI 참모가 전략·전술을 제안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AI 드론부대는 통신 두절 시 스스로 최적의 작전을 수립한다. LLM 기반 AI는 정세 분석과 여론 조작까지 담당하며, 딥페이크 영상 유포와 사이버 공격이 일상화됐다. 저자는 “SNS 피드와 알고리즘도 전쟁의 첨병으로 변모했다”며 “트로츠키의 경구처럼 이제 전쟁은 우리에게 직접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한다. 실리콘밸리 기업들(팔란티어, 구글 등)은 AI 기술을 군사 목적으로 확대하며,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 지원 사례처럼 민간 기업이 전쟁을 좌우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저자는 “국제적 협약은 무력화됐고, AI 군비경쟁은 불가피하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안전한 AI를 만들기 위한 몇 가지 기술적 원칙을 제시한다. AI의 목표와 행동을 인간의 가치와 일치시키고, 의사 결정 과정을 추적할 수 있게끔 작동 프로세스를 투명화하고, AI를 즉각 중지할 수 있는 킬 스위치를 구비하고, 인간이 주도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설명 가능한 인터페이스를 구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술적 해결만으로는 부족하다. 저자는 “시민이 기업의 AI 개발 목적과 정부 정책의 투명성을 요구해야 한다”며 “작은 질문과 행동이 변화를 만들 것”이라 강조한다. 저자는 “AI 시대의 전쟁은 화면 너머 인간의 고통을 망각하게 만든다”며 “생명을 다루는 결정에는 반드시 인간적 책임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6-02-05

8개국 32명 스피노자 전문가의 기념비적 연구성과 담아

신간 ‘스피노자 편람 (‘The Bloomsbury Companion to Spinoza·그린비)은 빕 판 뷩어·헨리 크롭·피트 스테인바이커스·예룬 판 더 펜 등 8개국 32명 스피노자 전문가의 기념비적 연구성과로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1632~1677)의 거의 모든 것을 담은 입체적인 성과물이다. 기존의 편람류 도서가 스피노자 철학의 제 주제에 관한 논문을 묶어 출판했다면, ‘스피노자 편람’(그린비)은 스피노자의 생애(1부), 스피노자에게 영향을 준 이들이나 사조(2부), 그의 철학에 대한 초기 비평가들의 비평(3부), 스피노자 철학의 주요 용어 해설(4부), 그의 저작에 관한 소개(5부)와 스피노자 연구사(6부)를 다루는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구성을 하고 있다. 1부 ‘생애’는 세금 장부, 파문 문서, 교회 기록 등 1·2차 사료를 통해 스피노자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복원했다. 유대인 공동체 추방 사건, 홀란트 정치가 암살 관련 기록 등이 포함돼 역사적 맥락을 제공한다. 2부 ‘영향’에서는 데카르트, 스토아 철학, 유대교 신비주의, 17세기 신탁마니즘 등 스피노자 사상의 원천과 주변 사상가들의 관계를 분석한다. 3부 ‘초기 비평가’는 스피노자에 대한 당시 적대적 비평을 모아 당대의 논쟁적 평가를 재조명한다. 4부 ‘용어 해설’은 112개의 핵심 개념(신, 실체, 양태 등)을 20여 명의 전문가가 해설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5부 ‘저작 개요’에서는 ‘에티카’를 비롯한 주요 저작뿐 아니라 ‘히브리어 문법 강요’처럼 덜 알려진 작품까지 소개하며, 각 저작의 핵심 내용을 요약했다. 6부 ‘연구사’는 19세기 이후 스피노자 연구의 흐름을 정리해 그의 사상이 현대에 미친 영향을 입증한다. 스피노자는 토마스 홉스, 르네 데카르트, 존 로크,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와 함께 근대 철학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특히 질적 일원론(신과 세계가 동일하다는 주장)과 결정론적 자유 개념은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그를 “철학의 그리스도”라 칭하며, ‘차이와 반복’ 등에서 스피노자의 사상을 재해석했다. 헤겔은 “누구나 철학을 시작할 때 스피노자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언급했고, 신유물론 계열 학자들(로지 브라이도티, 필리프 데스콜라 등)은 스피노자의 물질적 일원론에서 포스트-휴먼 담론의 실마리를 찾는다. 이번 완역본은 원서의 오류를 수정하고 세심한 해설과 역주를 추가해 학술적 완성도를 높였다. 진태원 교수는 “원서보다 나은 번역본”이라며 “학자의 성실함이 빚어낸 역작”이라 평가했다. 특히 1000쪽이 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각 분야의 권위자들이 협력해 스피노자 연구를 집대성한 점에서 주목받는다. 스피노자의 사상은 종교적 관용, 정치적 자유, 자연과학적 세계관 등에서 현대 사회의 핵심 가치를 예견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6-02-05

광물 확보에 국가의 명운 달렸다

과거의 패권 전쟁이 영토와 석유를 중심으로 일어났다면, 21세기의 전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광물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싸움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KIGAM)의 선임연구원 박준혁 저자는 그의 저서 ‘핵심광물 공급망 전쟁’(시크릿하우스)에서 핵심 광물을 단순한 자원이 아닌, 국가 산업 경쟁력과 안보, 외교 전략이 교차하는 ‘공급망 전쟁’의 핵심 요소로 조명한다. 21세기 전쟁의 새로운 전장은 바로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곳, 바로 핵심 광물 자원이다. 스마트폰, 전기차,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모든 첨단기술의 뿌리에는 리튬, 코발트, 희토류와 같은 핵심 광물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미국과 중국은 반도체와 AI를 넘어 핵심 광물을 둘러싼 견제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흑연과 희토류 수출 통제를 통해 공급망에서의 영향력을 드러내며, 미국과 EU는 핵심 광물 확보를 국가 전략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 법과 정책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현재 공급망 전쟁에서 가장 앞서 있는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채굴(업스트림)보다 훨씬 중요한 정·제련과 가공 단계(미드스트림)에서 압도적인 지배력을 확보하며, 사실상 글로벌 핵심 광물 공급망의 ‘마스터키’를 쥐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가공 능력의 80~90%를 독점하고 있으며, 배터리 핵심 소재인 흑연과 리튬 제련 시장을 좌우하고 있다. 패권 경쟁 중인 미국은 그린란드를 차지하려 덴마크를 압박하는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핵심 광물 확보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린란드는 막대한 희토류를 품고 있어 ‘유럽의 광물 창고’로 불린다. EU 역시 핵심원자재법(CRMA)을 통해 역내 채굴 및 재자원화 비중을 높이고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등 독자적인 산업 주권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자원 빈국인 한국은 어떻게 이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저자는 한국이 자원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공동 탐사, 기술 개발, 인력 교류 등을 포함한 입체적인 ‘파트너십’ 외교를 펼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자원 전문가를 양성하는 ‘사람에 대한 투자’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이 책은 총 6장에 걸쳐 전 지구적 핵심 광물 공급망 경쟁의 실체와 한국의 생존 전략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1장에서는 세계화의 퇴조와 함께 부활한 자원 민족주의의 실체를 파헤치며, 그린란드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지정학적 수싸움이 단순한 영토 분쟁을 넘어 광물 자원 확보를 위한 보이지 않는 전선임을 밝힌다. 2장에서는 디지털 전환(DX)과 AI 혁명이 가져온 광물 수요의 폭발적 증가를 분석하며, 반도체와 데이터센터가 핵심 광물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3장에서는 광물의 탐사부터 최종 제품까지의 전 과정을 추적하며, 요소수 사태를 통해 시장 조달을 넘어선 ‘공급망 내재화’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4장에서는 광산 개발에 소요되는 시간과 기후 변화, ESG 규제 등이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을 진단하고, 5장에서는 폐배터리에서 보물을 찾는 ‘도시 광산’ 기술과 재자원화의 중요성을 다룬다. 마지막으로 6장에서는 리튬 직접 추출(DLE)과 AI 기반 광물 탐사 등 혁신적인 기술을 통한 미래 비전을 제시한다. 핵심 광물 문제는 특정 산업이나 기업의 고민을 넘어 국가 경제 전체의 회복력과 직결된 사안이다. 저자는 위기감을 과장하기보다, 공급망 충격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이유와 현실적인 대응 방안을 제시하며 독자가 현재의 국제 정세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6-01-29

故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의 삶과 사상

2022년 별세한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의 삶과 사상을 담은 회고록 ‘김동길 육성: 이게 뭡니까’(나남)가 출간됐다. 이 책은 김동길 교수가 남긴 칼럼과 저술을 모아 엮은 것으로, 일제강점기 평양에서의 학창 시절부터 해방, 김일성 체제 체험, 월남, 6·25 전쟁, 연세대 교수 시절, 유신독재 반대, 투옥, 재야 지식인의 길, 그리고 그의 마지막 성찰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다. 김동길 교수는 정확한 언변과 정연한 논리, 기발한 유머, 깊은 통찰력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논객이었다. 그의 화두는 항상 ‘자유’와 ‘정의’였으며, 이를 실천하고 알리는 것이 평생의 사명이었다. 유신독재 반대, 북한 주체사상 비판, 3김 정치 청산, 자유민주주의 수호, 태평양 시대 구상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단순히 보수 진영의 논객이 아니라, 진영 논리를 넘어선 가치를 추구했다. 김동길 교수는 “불의를 보고 침묵하는 것은 용기 없는 일”이라고 믿었으며, 시시비비를 직설로 가렸다. 그의 삶은 자유와 사랑의 실천에 중점을 뒀으며,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의 핵심이 사랑이라고 믿었다. 김동길 교수는 1928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나 연세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민주화 운동에 관여했고, 이후 보수 인사로 변신하여 국회의원직도 지냈다. 그의 제자인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가 그의 육성을 바탕으로 이 회고록을 엮었다. 이 책은 김동길 교수의 주요 발언뿐만 아니라 그의 삶의 여정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며, 한국 사회에서 논객의 역할이 단순한 해설자가 아닌 역사의 흐름을 읽고 대중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책임 있는 지식인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또한, 김동길 교수의 삶을 통해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을 성찰하게 하며, 자유와 사랑의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김동길 교수는 인생의 주제를 사랑으로 삼았으며, 이는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를 넘어 나라와 민족, 전 인류를 아우르는 것이었다. 그는 독신으로 살면서도 수많은 사람과 소통하며 사랑과 연대의 가치를 나누었다. 대학에서는 2300명이 수강한 인기 교수였고, 5000회가 넘는 강연으로 30만 명의 청중을 만났으며, 100권이 넘는 저술로 독자들과 호흡했다. 이 책은 김동길 교수의 공적 자서전으로, 단순한 개인의 내면 고백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한 지식인이 어떻게 사유하고 말하고 행동했는지를 기록한 중요한 역사적 자료다. 서구 지식인의 자서전 전통을 잇는 이 책은 국내외 지식인의 공적 자서전 전통을 이어가며, 당대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 김동길 교수의 삶을 통해 한국 현대사에서 지식인이 차지해온 위치와 역할을 성찰하게 한다. 김동길 교수는 어린 시절 에이브러햄 링컨을 영웅으로 삼았으며, 그의 명연설은 김동길 교수에게 깊은 믿음을 심어줬다. 감옥에 갇혀서도 청년 죄수들을 가르치고 돌보며,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그의 신앙은 자존심이었고, 이는 인격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메시지를 제자들에게 전하며, 옳다고 믿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 “역사가의 일차적 임무는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사실대로 알아내는 것. 그러나 국가권력이 정치적 목적 때문에 과거사를 파헤치고, 그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 집권 세력의 구미에 맞게 풀이한다면, 이는 절대 용납해선 안 될 일이다.”(227쪽)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6-01-29

인류의 생명을 구한 자연이 만든 동물의 생존 전략

인류의 생명을 구한 것은 첨단 기술이 아닌 자연이 만든 동물들의 독특한 생존 전략이었다. 영국의 중환자 전문의 매트 모건 박사가 신간 ‘인간은 동물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지식서가)에서 밝힌 것처럼, 캥거루·기린·개구리 등 동물들의 신체 메커니즘은 현대 의학의 혁신으로 이어졌다. 이 책은 동물학적 발견이 어떻게 인간 치료법으로 재탄생했는지, 나아가 인간과 동물의 공존 필요성을 묻는다. 호주 캥거루 암컷은 세 개의 질(腟)을 갖고 있다. 이를 연구하던 과학자들은 체외수정(IVF) 성공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캥거루의 삼중 질 구조는 수정란의 안전한 착상을 돕는 것으로 밝혀졌고, 이는 1977년 세계 최초의 시험관 아기 탄생으로 이어졌다. 모건 박사는 “동물의 번식 메커니즘은 인간 생명의 기적을 재현하는 열쇠였다”고 말한다. 기린은 목이 길어 폐활량이 크다. 하지만 높은 나무 위의 잎을 먹을 때는 머리를 갑자기 숙여야 하므로 혈압 조절 시스템이 발달했다. 현재 이 원리를 이용한 천식 치료제가 임상에 진입했으며, 기린의 점진적 호흡 패턴은 인공호흡기 설계에도 차용되고 있다. 개구리는 피부로도 산소를 흡수한다. 이 특성을 모방한 인공 폐장치가 개발되며 중환자실 생존율이 크게 올랐다. 특히 폐렴 등으로 호흡기에 이물질이 유입됐을 때, 개구리의 이물질 배출 메커니즘은 기도 확보 기술 개선으로 이어졌다. 모건 박사는 “개구리가 비스킷 조각을 흡입해도 살아남는 방식을 연구한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전한다. 혹등고래는 잠수 시 심박수를 분당 2회로 낮춘다. 이 극단적 심박 조절 능력은 심부전 환자 치료에 응용됐다. 고래의 심장 구조를 분석한 결과, 심근 수축력을 유지하는 특정 단백질이 발견됐고, 이를 활용한 약물이 현재 임상 3상에 돌입했다. 모건 박사는 “150kg 고래의 심장이 인간의 생명을 연장하는 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총 4부 1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땅·하늘·바다·땅속’이라는 네 가지 생태 환경을 중심으로, 생물의 독특한 적응 메커니즘이 인간 의학 기술로 재탄생한 과정을 추적한다. 1부 ‘땅’에서는 캥거루의 삼중 자궁 구조가 체외수정 기술 발전으로 이어진 사례와 개미 군집의 협력적 면역 시스템이 백신 설계에 영감을 준 과정을 조명한다. 2부 ‘하늘’에서는 철새의 장거리 이동 경로 최적화 메커니즘이 응급 구조 헬기의 연료 효율성 향상에 적용된 사례와, 맹금류의 눈 구조가 망막 질환 진단 기술 개선에 기여한 사실을 분석한다. 3부 ‘바다’에서는 고래의 잠수 시 심박수 조절 전략(범고래의 분당 2회 심박)이 심부전 환자의 심장 재활 프로그램 설계로 연결된 과정과 산호초의 광합성 공생 관계가 인공 장기 배양 기술에 도입된 사례를 소개한다. 4부 ‘땅속’에서는 지하 미생물의 항생제 생성 능력이 슈퍼박테리아 퇴치 신약 개발로 확장된 사례와 흰개미 둔덕 구조가 에너지 절약형 건축 설계에 적용된 혁신을 탐구한다. 모건 박사는 동물 장기 이식과 신약 개발을 위한 동물 실험의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 돼지 심장을 인간에게 이식하는 ‘크세노이식’ 기술은 성공을 거뒀지만, 동물 복지와 생명 윤리 논쟁을 촉발했다. 그는 “동물을 단순한 실험 도구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공존의 파트너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단세포 박테리아부터 고래까지 모든 생명이 인류의 스승”이라 말한다. 실제로 남극 펭귄의 동결 방지 단백질은 저체온증 치료제로, 바퀴벌레의 신경계는 마비 환자 재활 로봇 설계에 활용되고 있다. 모건 박사는 “개구리의 피부 호흡이나 캥거루의 자궁 구조가 미래 의료 혁명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책을 마무리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6-01-15

인구 데이터 분석을 통해 기존 통념을 뒤집는다

그동안의 인구 증가를 이끈 핵심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페미니즘의 확산은 정말로 출생률 감소에 영향을 미칠까? 자녀 출생 시 현금을 지원하는 정책은 출생률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AI 시대에도 인구는 여전히 중요할까? 오랫동안 전 세계 인구 데이터를 분석해온 두 인구경제학자 딘 스피어스와 미국 텍사스대 경제학과 마이클 제루소 교수는 최근 출간한 책 ‘인구는 거짓말하지 않는다(원제 ‘The Poupulation Myth’·웅진지식하우스)에서 인구 감소와 환경, 경제, 사회 변화에 대한 기존 통념을 뒤집는 분석을 제시한다. 저자들은 인구 증가가 반드시 환경 악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중국, 싱가포르, 니제르의 사례로 입증한다. 2013년 최악의 스모그를 겪은 중국은 이후 10년간 인구가 5000만 명 늘었지만 미세먼지 농도는 절반으로 감소했다. 인구 밀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싱가포르는 공기 오염도가 낮은 반면, 인구 밀도가 낮은 니제르는 오히려 높은 오염도를 기록했다. 이는 에너지 사용 방식과 기술 발전이 환경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저자들은 “석탄 의존도가 높은 저소득 국가에선 인구 감소보다 에너지 전환 정책이 더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전 세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임금 격차·복지 수준·여성 사회 진출 등과 출생률 간의 명확한 상관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사회적 평등 수준이 높을수록 출생률이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한국을 사례로 든 저자들은 “성차별이 심한 국가일수록 출생률이 낮다”며 “페미니즘 확산이 출생률 하락의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성차별 완화가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낙태 허용 여부와 출생률의 연관성도 약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스웨덴의 유급 육아휴직 확대와 보육비 지원 정책은 출생률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2018년 1.76명이던 합계출산율은 2019년 1.70명으로 오히려 떨어졌다. 저자들은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출생률이 낮아지는 글로벌 트렌드에서 보듯, 경제적 지원보다 삶의 질 개선과 일-가정 양립 문화 정착이 더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저자들은 기술 발전이 인구 감소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다고 경고한다. mRNA 코로나19 백신 개발 같은 혁신은 대규모 인력과 협업이 필수적이며, “10억 명 수준의 인구로는 현재의 기술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봤다. 또한 인구 감소로 인한 소비 시장 축소, 혁신 유인 감소 등 경제적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책은 인구 감소 자체를 문제시하기보다 가치관 변화와 사회 시스템의 유연성 확보를 주문한다. 인구 증감은 단순한 숫자 변동이 아니라 교육 수준 향상, 여성의 권리 확대 등 사회 진보의 지표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억압적 정책 대신 평등한 노동 분배와 육아 지원 체계 구축이 장기적 해법”이라며 “정부 주도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출판사 측은 “두 저자는,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통념을 차례로 바로잡는다. 특히 한 나라나 한 세대에 국한되지 않고 인류사 차원에서 인구를 분석함으로써, 인구 증감이 단순한 숫자 변화가 아니라 가치관 변화·사회 구조 재편·인류 번영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호임을 일깨운다”고 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6-01-15

개인보단 조직이 먼저···‘레알'의 성공 비결 분석

세계 최고의 축구 클럽을 넘어 비즈니스 제국으로 도약한 스페인 프로축구팀 레알 마드리드의 성공 비결을 경영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신간 ‘레알 마드리드 레볼루션’(세이코리아)이 나왔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부교수를 역임한 저자 스티븐 G. 맨디스의 저서다. 레알 마드리드는 UEFA 챔피언스리그 통산 15회 우승, 스페인 라리가 36회 우승에 빛나는 명실상부한 축구 명문이다. 2024년 포브스 추산 클럽 가치는 9조300억 원으로, 3년 연속 ‘세계 최고 가치 축구 클럽’으로 선정됐다. 특히 팬데믹 기간에도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이를 단순히 단기적 성과인 경기장에서의 승리가 아닌, 장기적 가치에 집중한 독립적 경영의 결과로 해석한다. 최근 스포츠 업계가 데이터 분석(세이버메트릭스)을 기반으로 선수 영입과 전략을 결정하는 추세인 반면, 레알 마드리드는 조직 문화를 핵심 경쟁력으로 삼았다. 저자는 “레알의 진정한 힘은 데이터가 아닌 조직 문화”라며 팀워크와 희생을 중시하는 문화로 ‘스타 과잉 효과’를 극복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2018년 슈퍼스타 호날두의 연봉 인상 요구를 거부하며 탄탄한 재정 시스템을 증명했으며, 이는 메시의 연봉 인상 후 재정 위기에 빠진 바르셀로나와의 대조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글로벌 팬덤 6억 명을 보유한 초강력 브랜드 레알 마드리드는 팬덤을 단순 응원단이 아닌 수익 창출의 핵심 자원으로 활용한다. 자체 OTT 플랫폼 ‘RM PLAY’를 통해 콘텐츠를 직접 공급하고, 스포츠 테크 기업 ‘RMNext’를 설립해 기술 혁신을 주도 중이다. 6억 명에 달하는 SNS 계정 총합 팔로워 수는 경기장 밖에서의 승리를 경기력으로 연결하는 전략의 산물이다. 미국 하버드대학교는 레알 마드리드의 경영 방식을 MBA 교재로 채택할 정도로 높이 평가한다. 특히 외부 자본의 간섭 없이 독립적 경영을 실현한 점이 주목받는다. 오일 머니나 사모펀드에 의존하지 않고, 회원과 공유하는 장기적 가치를 추구한 것이 비결이다. 유럽 축구계가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등 중동 자본의 공세에 직면한 상황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오히려 회원만의 소유 구조를 강점으로 삼았다. 2000년 페레스 회장은 팬 설문조사를 통해 “정당한 성공으로 세계적 존경을 받는 다문화 클럽”이라는 미션을 수립했고, 이는 조직의 모든 결정에 반영된다. 저자는 “레알은 경기장 밖에서 승리하고 이를 경기력으로 연결하는 의도적 구조를 갖췄다”고 해석한다. ‘레알 마드리드 레볼루션’은 스포츠 구단뿐 아니라 기업의 경영진에게도 통찰을 준다. 핵심은 시스템의 힘이다. 레알은 스타 선수 한 명에 의존하지 않고, 조직 문화를 통해 지속 가능한 성과를 창출한다. 이는 인재 리스크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에게 교훈적이며, 팬덤 수익화와 디지털 전환 전략의 실용적 사례도 담겼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6-01-15

인간의 외로움은 뇌를 파괴하는 고립의 경고

“인간의 뇌는 타인과의 연결에는 보상을, 고립에는 벌을 주도록 진화했다!” 최근 출간된 신간 ‘뇌는 왜 친구를 원하는가’(더퀘스트)가 현대인의 고립감과 외로움 문제를 뇌과학으로 풀어낸다. 미국 스탠퍼드대 출신 뇌과학자 벤 라인은 이 책에서 “인간의 뇌는 타인과 연결될 때 가장 건강하게 작동하며, 고립은 뇌 기능 자체를 무너뜨리는 치명적 위협”이라고 경고한다. AI와 디지털 기술이 일상화된 오늘날, 역설적으로 사회적 연결은 약화되고 외로움은 건강의 최대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다. 저자는 최신 신경과학 연구를 통해 “고립이 단순히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신체적 질병을 유발하는 생물학적 현상”임을 입증한다. 고립 상태가 지속되면 뇌는 생존 위협으로 인식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과잉 분비한다. 신체 면역체계가 손상되고 만성 염증이 발생하며, 뇌혈관 조직이 파괴되기 시작한다. 충격적인 것은 고립된 뇌의 시냅스가 위축되고 소멸한다는 사실이다. 실제 연구 결과, 고립된 노인들은 대뇌피질이 얇아지고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축소되며, 이는 치매 발병 위험을 2배 이상 높인다. 반면, 타인과의 긍정적인 상호작용은 뇌에 ‘화학적 칵테일’을 선사한다. 친구와의 눈 맞춤, 가족과의 포옹, 반려동물과의 교감 등에서 분비되는 옥시토신(신뢰 호르몬), 세로토닌(행복 호르몬), 도파민(보상 체계)은 뇌 건강을 지키는 천연 영양제 역할을 한다. 심지어 엘리베이터에서 이웃과 나눈 짧은 인사나 카페 점원과의 미소도 뇌 활성화에 기여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고립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현대인이 자발적 은둔을 택하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 “뇌의 신경학적 오류”로 설명한다. 고립이 반복되면 뇌는 타인의 무표정을 ‘거절’로 왜곡하고, ‘위험’ 신호를 보내 사회적 신뢰를 차단한다. 또한 ‘밖에 나가도 소용없다’는 잘못된 판단을 강화해 즐거움을 느끼는 보상 시스템까지 마비시킨다. 스마트폰과 온라인 세계에 익숙해질수록 이러한 악순환은 심화된다. 특히 MZ세대는 SNS로 연결돼 있지만 오히려 현실 관계에서 고립되기 쉽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오프라인 만남이 10대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더 크다. 반려동물과의 교감 역시 뇌의 회복력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책은 문제의식 제시에 그치지 않고, 뇌과학 기반의 관계 회복법을 제시한다. 핵심은 작은 행동의 힘이다. 저자는 집 밖으로 나가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다고 전한다. ‘미소 짓기’와 ‘눈 마주치기‘ 같은 얼굴 근육의 움직임은 뇌에 긍정적인 신호를 전달한다. 상대방의 말투나 자세를 모방하면 친밀감이 높아진다. 가상 연결보다 실제 만남이 뇌의 보상 체계를 더 활성화한다. 저자는 “내향형이든 외향형이든 관계의 질이 중요하다”며 “단순한 대화나 작은 관심이 뇌 건강을 지키는 최고의 투자”라고 말한다. 벤 라인은 “인간의 뇌는 결코 혼자 설계되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고독사, 은둔형 외톨이, 청년 우울증 증가는 사회적 연결의 붕괴가 가져온 필연적 결과다. 그는 “기술이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며 ‘함께 살아가는 능력’을 되찾아야 한다고 촉구한다. 그는 “진정한 행복은 연결 속에 있으며, 관계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조건”이라고 강조하며 독자들이 일상 속에서 작은 유대감을 쌓는 실천을 시작하길 권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6-01-08

K-반도체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한국이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을 보유하면서도 지정학적 리스크에 휘말린 현실에서 ‘기술 초격차’와 ‘기업 외교’가 유일한 생존 전략이라고 주장한 책이 출간됐다. 삼성전자 중국 주재원 출신 이병철 전 부사장이 쓴 ‘K-반도체 초격차전략’(더봄)이라는 책이다. 미중 간 패권 경쟁이 ‘반도체 전쟁’으로 치닫는 가운데 저자는 “AI·로봇·우주·핵심 무기체계 모두 반도체 위에서 작동한다”며 한국의 대응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기정학(技政學) 시대의 도래: 기술이 안보가 되다 21세기 세계 질서는 ‘기술 패권’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미국은 CHIPS 법안을 앞세워 반도체 제조 역량 복원에 나섰고, 중국은 ‘중국 제조 2025’와 ‘중국 표준 2035’로 기술 자립을 선언했다. 저자는 이를 ‘기정학(技政學)’ 시대로 규정하며, “반도체 공급망을 장악한 자가 세계 패권을 쥔다”고 분석했다. 특히 AI·5G 등 첨단 기술의 군사적 활용 확대는 반도체를 국가 안보의 핵심 인프라로 격상시켰다. △샌드위치 신세 한국, 지정학적 함정에 빠지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기술력을 갖췄으나, 미중 사이에 낀 ‘샌드위치’ 처지로 공급망·시장·안보에서 동시에 위협받고 있다. 미국 주도의 반도체 동맹(Chip4) 참여 압력과 중국 시장의 의존도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저자는 “기술 개발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중국의 급성장(예: 화웨이의 AI 기술 발전)과 미국의 공급망 재편 정책은 한국 기업에 ‘투자 지역 조정’과 ‘현지 정부 관계 구축’을 요구한다. △생존 키워드: 기술 초격차+기업 외교 저자가 제시한 해법은 ‘기술 초격차’와 ‘기업 외교’의 결합이다. 기술 초격차는 AI 반도체·고성능 메모리 등 차세대 기술 개발로 경쟁국을 압도해야 한다. 기업 외교는 단순 로비가 아닌 장기적 전략으로, 현지 정부 및 사회와의 신뢰 관계 구축, 글로벌 표준 선점, CSR 활동 등을 포함한다. 정치·문화·시장 특성을 고려한 유연한 전략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도약과 추락의 갈림길, 한국 기업의 위기” 전문가들은 한국의 현실을 “반도체뿐 아니라 산업 전반의 위기”로 진단한다. 김용석 가천대 교수는 “중국의 기술 굴기가 한국의 8대 주력 산업 위기와 직결된다”며 “이 책은 기업인·정책가·학자 모두에게 로드맵을 제시한다”고 평가했다. 특히 중국의 딥시크(DSMC) 등 반도체 기업 성장과 미국의 수출 통제는 한국에 ‘공급망 다각화’와 ‘정책 네트워크 강화’를 시급한 과제로 내던졌다. ‘K-반도체 초격차전략’은 단순한 산업 서적을 넘어 국제정치·기술·경영이 융합된 생존 지침서다. 저자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면 ‘기술 초격차’를 무기로 한 기업 외교가 필수적”이라며 ”한국이 세계 질서 재편의 주역으로 도약할지 여부는 지금부터의 선택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6-01-08

정일근 시인, 열다섯 번째 시집 출간

한국의 대표적 서정시인으로 꼽히는 정일근(67·경남대 석좌교수) 시인의 열다섯 번째 시집 ‘시 한편 읽을 시간’(난다)이 나왔다. 난다시편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으로 출간된 이번 시집은 총 62편의 시를 6부에 나눠 담았다. 여기에 시인의 편지와 대표작 ‘시란(A poem is)’의 영문 번역본(정새벽 번역)도 함께 수록됐다. 특히 2025년 10월 한 달간 ‘시마(詩魔)’라 불리는 창작의 열정과 동고동락하며 완성된 작품들로, 시인은 이를 “시마와의 공동 시집”이라 표현했다. 정일근 시인에게 ‘시마(詩魔)’는 “시를 짓고자 하는 생각을 일으키는 마력”이자 “피할 수 없는 유혹”이다. 시마는 한 단어나 문장을 툭 던져주고 사라지지만, 그 순간을 포착해 시로 빚어내는 과정은 온전히 시인의 몫이었다. 수록작 ‘밤 열한 시 오십육 분의 시’에서 제목을 딴 이번 시집은 “아직 기도할 시간, 시 한 편 읽을 시간이 남았다는 고마움”을 담아내며, 삶의 끝자락에서도 시를 향한 열망을 놓지 않는 시인의 모습을 투영한다. 이번 시집은 시인의 순수한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해설이나 발문을 배제하고, 시인과 번역가의 협업으로 영문판을 수록하는 독특한 방식을 취했다. 특히 휴대용 ‘더 쏙’ 에디션은 7.5×11.5㎝의 소형 판형에 9포인트 글씨로 제작돼 “손에 쏙 들어오는 시의 순간”을 선사한다. 1984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정 시인은 소월시문학상, 영랑시문학상, 이육사시문학상 등 주요 서정시 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 현대시의 한 축을 이끌어왔다. 투병 중에도 마산 바다의 윤슬과 금목서 향기 속에서 시심을 잃지 않은 그는 “시를 사랑하는 일이 나의 전부”(‘정일근의 편지’)라고 말한다. 이번 시집에는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시인이 “다시 뜨겁게 품은” 자연과 삶의 단상이 오롯이 담겼다. “언어를 찧고 쓿어 독자에게 좋은 시의 술을 빚어내야 한다”(‘시를 도정하듯’)는 그의 철학은 시어 하나하나에 정갈하게 스며들어 깊은 여운을 남긴다. 표제작 ‘시 한 편 읽을 시간’은 바쁜 일상에서도 잠시 멈춰 시를 읽는 행위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멀리 다녀온 바람이 지쳐 돌아온 밤”, “아직 기도할 시간 남아 있음”에 감사하며 시인은 우리에게 “시의 세계로 함께 떠나자”고 손짓한다. 난다시편 시리즈가 지향하는 것처럼, 이 시집은 ‘사랑과 희망처럼 날개 없이도 마음을 날게 하는’ 시의 힘을 증명한다. 정일근 시인의 40년 시력이 응축된 이번 작품은 “시의 순간”을 선물하며,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채워줄 것이다. 정 시인은 1984년 ‘실천문학’에 ‘야학일기 1’ 등 7편의 시를 발표하고,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6-01-08

“교양은 혈통·학문 아닌 올바른 품성의 고결함”

교양이란 무엇일까. ‘대추 한 알’로 유명한 장석주(70) 시인은 최근 펴낸 에세이 ‘교양의 쓸모’(풍월당)애서 교양을 “본성이나 혈통이 아닌 올바른 품성의 고결함”으로 정의하며, 삶의 경험과 성찰에서 우러나오는 내적 기품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AI와 속도가 지배하는 시대에 교양이 지닌 진정한 가치를 탐구하며, 독자들에게 삶의 밀도를 높이는 방법을 제시한다. 장석주는 교양을 거창한 학문이나 화려한 지식이 아닌 몸으로 익힌 감각으로 규정한다. 그가 말하는 교양은 들길을 걷고, 밥을 짓고, 나이 들어가는 과정에서 마주한 소박하지만 깊이 있는 순간들에서 비롯된다. 그는 “교양은 용기를 전제로 한다”고 말한다. 일상을 기계적으로 소비하는 대신, 삶의 경유지에서 부딪히고 성찰하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마음에 남는다는 점에서다. 이는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교양의 핵심임을 시사한다. 책은 속도전과 파편화된 사회에서 인간적 품위로서의 교양을 역설한다. 장석주는 밥을 ‘생존을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 노동을 ‘정신을 붙드는 힘’, 꿈을 ‘내일을 향한 불씨’로 해석하며, 이들이 교양의 근간이 됨을 밝힌다. 청년기의 가난과 흔들림조차 교양의 재료가 된다는 그의 고백은 삶의 무게를 정직하게 견뎌낸 자만이 발산하는 빛을 보여준다. 저자는 속도전을 잠시 멈추라고 말한다. 밖으로만 향하는 시선을 안으로 돌리라고 권한다. 주의를 기울이고, 몸의 감각을 세심하게 깨우라고도 한다. “교양의 소멸은 인간다운 주체의 소멸”이라는 경고는 날카롭다. 그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정신적 빈곤이 심화되는 현실을 지적하며, 밥상머리에서 시작된 인간적 품격이야말로 사회를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라고 주장한다. 현대 사회의 ‘어른 부재’ 현상을 교양 부족으로 진단한 시인은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를 참된 어른의 조건으로 꼽는다. 교양이란 “말을 아끼고 귀 기울이며 다정함을 잃지 않으려는 작은 의지”라며 관계가 쉽게 깨지는 시대에 교양이 상처를 막는 보이지 않는 보호막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어른이란 타인을 쉽게 상처 내지 않는 태도로 완성된다’는 문장은 SNS 시대의 단절된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교양은 단순한 예절이 아니라 공감과 사려 깊은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기술인 셈이다. 독서와 사유의 과정을 통해 교양이 내면화됨을 보여주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장석주는 헤세, 카뮈, 월컷 등 문학·철학자들의 문장을 삶의 순간과 연결하며, 읽기가 곧 자신을 다시 쓰는 행위라고 말한다. “문장은 저자를 닮는다”는 말처럼, 평생 쌓아온 독서 경험이 그의 내면을 빚어냈음을 책은 증명한다. 이는 교양이 자기 삶을 투명하게 바라보는 태도에서 비롯됨을 의미한다. 기술이 인간의 지혜를 초월하는 듯한 오늘날, 장석주는 교양을 체험과 성찰의 여정으로 재정의한다. AI가 결과만을 빠르게 산출하는 반면, 교양은 들길 산책, 책 읽기, 노동의 과정에서 얻는 느린 배움의 가치를 강조한다. 그는 “나를 지켜낸 것은 지식이 아니라 삶에 밴 교양이었다”며 지식의 양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30

그늘진 삶의 슬픔을 품는 성찰과 위로

한국 전통 서정시의 맥을 이으며 시의 지평을 넓혀온 이상국(76) 시인이 열번째 시집 ‘나는 용서도 없이 살았다’(창비)를 펴냈다. ‘시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시 쓰기’의 의미를 묻는 철학적 사유를 담아낸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시력 반세기의 시론과 인생론을 펼쳐 지나온 삶을 조용히 되돌아보며 삶의 비의와 존재의 근원을 탐색한다. 민족예술상, 백석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이 시인은 이번 작품에서 단아한 시어와 진솔한 언어로 삶의 그늘진 구석까지 포용하는 서정을 펼친다. “사람이 살려고/ 너무 애쓰는 일을 재앙”(‘핑계’)으로 규정하며, 가난 속에서도 삶의 소박한 가치를 발견하는 시인의 혜안이 이채롭다. “가난하면 사랑하는 자식들이 다툴 일이 없고/ 세상 떠날 때도 소풍 가듯 가벼워서 좋다”는 구절에서 드러나듯, 그는 고단한 현실을 초월한 듯한 여유와 체념 사이의 균형을 동시에 전한다. 또한 ‘저녁의 위로’에서는 “인간이라는 게 죽을힘을 다해 세상에 나와/ 어떤 사람은 평생 고기를 잡고/ 어떤 사람은 벽돌만 쌓다 간다”며 생의 덧없음과 유한함을 담담히 풀어낸다. 특히 “네게 내 인생의 대부분을 쓰고도/ 나는 용서도 없이 살았다”는 고백은 평생 시인으로 살아온 그의 내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시인은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나의 시는 늘지 않는다// 인생이 늘지 않는다”(‘나의 시’)라며 시와 삶을 하나의 몸처럼 연결된 것으로 인식한다. 그럼에도 “시를 쓰면서도/ 시 같은 건 대단찮게 여기기도” 했으나, 끝내 “가진 게 시밖에 없”다는 자각에 이른 그의 모습은 예술가의 숙명을 떠올리게 한다. 이번 시집의 화두는 ‘슬픔’과 ‘위로’다. “저녁이다 슬픔들아/ 어둠의 등에 업혀 집으로 가자”(‘저녁의 위로’)라는 구절은 고단한 하루를 보낸 이들에게 전하는 은유적 위안이다. 시인은 “누가 울고 싶어 울겠으며/ 아프고 싶어 아프겠는가”라며 모든 존재의 고통을 공감하면서도, “어쩌다 온 세상에서/ 우리는 어떡해서든 살아야 한다”며 순응적 태도를 권유한다. 이는 “아무리 조그맣게 살아도 산다는 건/ 그 모든 걸 가슴에 묻는 일이고/ 남몰래 꺼내 보는 일”(‘어른은 울지 않는다’)이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장석남 시인은 추천사에서 “오래 묵은 흙냄새와 살림살이의 낮은 물결 자국들이 스민 작품”이라고 평하며, “삶이 가벼울 리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기에 가능한 말”이라고 덧붙였다.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시적 우보(牛步)의 고유한 위의(威儀)를 지닌 시집”이라며 “웅숭깊은 서정의 힘으로 작고 소박한 것들이 함께하는 사람살이의 본래면목을 노래한다”고 해석했다. 이상국 시인은 강원도 양양 출생으로 1972년 강원일보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을 하고, 1976년 ‘심상’으로 문단 데뷔했다. 한국 전통 서정시의 맥을 잇는 작품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의 시는 화려함 대신 투박함과 진정성으로 승부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30

‘모든 것들의 민영화’ ··· 미국의 공공과 민주주의 조명

‘공공재를 잃는 순간, 우리의 삶은 비싸지고 불안해진다. 민영화가 일상을 바꾸고 시민의 손에서 통제권을 빼앗을 때,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으로 후퇴하는가?’ 최근 출간된 책 ‘모든 것들의 민영화’(북인어박스)는 1950~60년대 번영의 기반이었던 미국의 공공재가 1980년 레이건 정부 이후 민영화되면서 민주주의 구조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날카롭게 조명한다. 상수도부터 교육, 보건, 사법 시스템까지 공공부문이 민간으로 넘어가며 시민의 통제권이 약화되고 불평등이 심화된 과정을 분석한 이 책은, “민영화는 시장 효율성 실험이 아닌 권력 재편의 정치적 과정”이라고 지적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의료·교육·교통 등에서 민영화 흐름이 확산되는 가운데, 이 책은 공공성 회복이 민주주의의 핵심 과제임을 경고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2015년 가뭄으로 물 사용 제한 정책을 시행했을 때, 공영화된 지역에선 사용량 감소에 따라 요금이 인하됐다. 그러나 민영화된 지역에서는 오히려 요금이 인상됐다. 민간 기업은 수익 하락을 메우기 위해 단위당 가격을 올린 것이다. 수도 요금 결정권이 시장에서 기업 이익 논리에 종속되면서, 공공의 감시 체계는 무력화됐고 주민들은 더 비싼 비용을 치르며 더 적은 서비스를 받게 됐다. 미국 사법 시스템의 민영화는 더욱 충격적이다. 지오 그룹(GEO Group)과 같은 민간 교도소 기업은 수감자 증가와 장기 복역을 통해 이익을 추구한다. 이들은 보호관찰 비용, 마약 검사 수수료 등을 추가해 원래 벌금보다 더 큰 부담을 개인에게 전가한다. 특히 의무적 최소형량제와 같은 법안은 사기업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설계돼, 교화와 재사회화라는 사법제도의 본질을 훼손한다. 민영화된 교정시설은 인권 침해와 불평등의 온상이 되고 있다. 19개 주에서 민간 통신사의 이해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지방정부가 자체 공공망을 구축하는 것을 금지하면서, 소외 지역은 기술 발전에서 배제됐다. 이는 결국 기술 혁신이 아닌 시장 논리가 지역 발전을 좌우하는 역설을 낳았다. 차터 스쿨(독립형 공립학교)과 영리 대학의 확산은 교육의 계층화를 가속화했다. 차터 스쿨은 저소득층 학생을 배제하고, 공립학교에 남은 학생들은 자원 부족에 시달린다. 영리 대학은 ‘정원 판매’로 수익을 올려 학생들에게 막대한 학자금 빚을 안겨준다. 이로 인해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아닌 족쇄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영화된 의료 시스템은 보험료 부담으로 저소득층 접근을 차단해 건강 격차를 심화시킨다. 학교 선택제는 인종 분리 정책을 부활시키는 도구로 악용되며, 통합 교육 시스템의 기반을 약화시킨다. 공공도서관은 예산 삭감으로 서비스가 축소돼 지역사회의 지식 공유 플랫폼이 사라지고 있다. 대학의 상업화는 지식 생산의 공공성을 훼손한다. 저자들은 민영화의 대안으로 시민의 적극적 참여와 공적 통제권의 회복을 제시한다. 공공재는 시장의 실험이 아닌 민주주의의 핵심 기능이므로, 시민이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 개입해 공공성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의 민영화와 공공서비스 해체 문제를 다루는 정책연구자이자 사회운동가인 도널드 코언과 작가인 앨런 미케일리언 두 저자는 “공공재는 시민의 권리이자 민주주의의 기반”이라며 “시민의 참여와 감시가 없다면 공공성은 시장 논리에 잠식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30

인간은 파멸로부터 구원받을까

우리는 왜 인류 역사상 가장 똑똑한 시대에 살면서도, 가장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할까?’ 옥스퍼드대 인류학과 교수 하비 화이트하우스가 신간 ‘인간 본성의 역습’(위즈덤하우스)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과학적 사실을 외면한 채 음모론에 휘둘리며 사회적 갈등은 깊어만 간다. 기후 위기의 심각성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플라스틱 사용을 멈추지 않고 불필요한 소비를 계속한다. 그는 현대 문명의 위기를 ‘인류 본성과 현대 사회의 괴리’에서 찾으며, 선사시대부터 이어진 세 가지 인간 본성-순응주의, 종교성, 부족주의-을 해부한다. 저자는 이 모든 위기의 뿌리를 ‘오늘날 세계가 망가진 이유는 인류 본성과 현대 문명 간의 격차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현대 문명이 순응주의(집단을 따라가는 성향), 종교성(초월적 존재를 믿고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성향), 부족주의(집단에 충성하는 성향)라는 세 가지 본성에 기대어 성장했다고 분석한다. 집단 학습과 모방은 수렵채집 시대 생존의 열쇠였지만, 오늘날에는 ‘모두가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집단적 태만’으로 이어진다. 기후 위기를 인지하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현대인의 모순이 대표적이다. 초월적 존재를 향한 믿음은 농경사회에서 제도화된 종교로 진화했으나, 이제는 민족·국가라는 ‘상상의 공동체’와 결합해 내부 결속과 외부 배척을 동시에 강화한다. 소집단 간 충돌과 정복 전쟁은 고대 문명의 확장을 이끌었지만, 현대에는 정치적 양극화와 극단주의로 나타나 사회 분열을 심화시킨다. “과거에는 생존의 도구였던 본성이 현대에는 위기의 근원이 됐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책은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시간 순으로 전개된다. 1부에서는 세 가지 인간 본성을 개념적으로 정리하고, 2부에서는 각 본성이 인류 문명을 어떻게 확장시켰는지 알아보고, 3부에서는 본성이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변천됐는지 설명한다. 특히 3장(사회적 접착제)과 6장(부족과 전쟁)에서는 부족주의의 기원과 문명 팽창 과정이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묘사된다. 선사시대 작은 집단에서 시작된 ‘우리 vs 적’의 본능은 문명의 성장을 이끌었지만, 현대에는 민족, 국가, 정당으로 재편되며 분열을 촉발한다. 저자는 문제의 해법으로 제도 설계를 통한 본성 활용을 제안한다. 예컨대 ‘마이어스(MyEarth)’ 앱은 사용자의 탄소 발자국을 추적해 집단 규범에 민감한 순응주의적 본성을 자극함으로써 환경 보호 행동을 유도한다. 저자는 이러한 방식이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제도 설계를 통해 본성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하는 방법들을 하나씩 짚어낸다. 인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이미 갖고 있는 본성을 활용해 ‘더 협력적인 미래’로 이끄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하비 화이트하우스는 ‘세계 최대의 인류 역사 데이터뱅크’ ‘세샤트(Seshat)’의 공동 설립자로, 전 세계 방대한 역사 자료를 계량적으로 분석하는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한 인류학자다. 40년에 걸친 그의 학문적 업적을 바탕으로 한 저자의 첫 대중서가 바로 이 책 ‘인간 본성의 역습’이다. 이 책은 화이트하우스 자신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결정판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류의 가장 위대한 성공과 실패를 통찰력 있고 흥미진진하게 설명한다”라는 유발 하라리의 찬사와 “수십 년간 쌓아온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담은 야심 찬 역작”이라는 ‘가디언’의 평은 이 책이 가진 학문적 깊이와 대중적 설득력을 동시에 보여준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25

아이가 넘어질 권리를 주다···성공 부르는 ‘가족문화의 힘’

가족은 단순한 혈연 공동체가 아니다. 한 개인의 사고방식, 꿈, 성취까지 좌우하는 보이지 않는 힘의 원천이다. 신간 ‘성공하는 가족의 저녁 식탁’(어크로스)은 퓰리처상 수상 저널리스트이자 예일대 교수인 수전 도미너스가 10년간 6개 가문의 삶을 추적하며 밝혀낸 ‘가족문화의 힘’을 집약한 책이다. 이 책은 의사 집안에서 의사가, 예술가 집안에서 예술가가 나오는 이유부터 형제자매의 경쟁이 재능을 꽃피우는 메커니즘까지, 성공의 유전자를 정리한다. 책은 미국 법조계·정치계를 이끈 무르기아 가족,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융합) 분야에서 이름을 남긴 워치츠키 가족, 올림픽 선수와 소설가를 키운 그로프 가족 등 6가족의 사례를 통해 ‘성공의 패턴’을 분석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녀의 실패를 허용하고,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유전적 잠재력을 깨우는 ‘문화적 토양’을 가꾼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들 가정에선 몇몇 공통점이 발견됐는데,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건 “대담함의 문화”다. 이들 가족은 “자신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거나, 위대한 예술작품을 만들어내거나, 세계 기록을 깰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워치츠키 가족의 어머니 에스터는 딸의 과제 리포트에 “다시 써라”는 말 대신 “B를 받을 수 있겠다”는 피드백으로 스스로 개선하도록 유도했다. 세라 그로프가 14km 호수를 수영으로 건널 때 아버지는 안전을 걱정하기보다 보트로 동행하며 도전을 지지했다. 이들은 아이가 넘어질 권리를 빼앗지 않았다. 발달심리학 연구는 부모의 과도한 개입이 아이의 동기를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반면, 아이들은 부모의 열정과 성장을 보며 자신만의 목표를 세운다. 워튼스쿨 조나 버거 교수는 “형제자매 중 동생이 운동에 몰두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손위 형제를 뛰어넘기 위한 전략”이라며 경쟁이 재능 개발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미국 여자축구 대표팀의 75%가 동생이었으며, 맏이가 명문대에 진학하면 동생도 같은 길을 따르는 경향이 나타났다.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실험은 유전자가 환경에 따라 발현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유전적으로 동일한 쥐라도 자극에 따라 학습 능력이 변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재능도 유전적 소질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저자가 인터뷰한 부모들은 자녀의 유전적 특성을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경험을 허용했다. 예를 들어, 무르기아 형제는 서로의 성취를 발판 삼아 동반 성장했다. 형은 동생의 보호자였고, 동생은 형의 기대에 부응하며 학생회장까지 올랐다. 그러나 성공은 공짜가 아니다. 책의 마지막 장은 “위대함에는 희생이 따른다”고 경고한다. 뛰어난 성취를 이룬 가족들은 마음의 평화, 사랑, 여유, 혹은 가족 간의 온전한 시간 같은 것을 포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이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했다. 단순히 직업적 성공을 넘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도록 이끈 것이다. ‘성공하는 가족의 저녁 식탁’은 자녀 교육의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가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로 펼치도록 환경을 조성하라”고 조언한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고, 유전적 잠재력이 현실 속에서 빛을 발하도록 돕는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25

미시마 유키오의 다면적 내면세계·시대적 맥락 동시 조망

전후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평전 ‘미시마 유키오, 죽음의 충동과 허무의 미학’(교양인)이 출간됐다. 미시마 유키오는 단순한 작가를 넘어선 사상가로, 탐미적이고 외설적인 경지를 넘어선 인물이다. 그의 삶과 사상은 복잡한 다면체로 비유되며, 이를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적 인간 시리즈’의 제16권으로 출간된 이 평전은 근대적 주체성을 삶의 형식 안에서 극대치로 전개한 인물을 재발견하는 작업이다. 미시마 유키오는 1925년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병약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러한 배경은 그의 몽상과 상상력의 원천이 됐고, 12세부터 시 창작에 몰두하며 문학적 재능을 드러냈다. 1941년 단편소설 ‘꽃이 한창인 숲’으로 문단에 데뷔한 그는 전쟁과 패전의 시기에 활동하며 죽음, 몰락, 허무 등의 주제를 천착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자전적 고백을 담은 ‘가면의 고백’(1949), 교토 금각사 방화 사건을 소재로 한 ‘금각사’(1956) 등이 있다. 1950~60년대에는 소설, 희곡, 비평뿐만 아니라 영화, 연극, 사진 작업에도 참여하며 대중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보디빌딩과 검도를 통해 정신과 육체를 동시에 수련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정치적 발언과 행동을 시작한 미시마는 자위대 체험 입대를 통해 민간 방위 조직을 구상하고, ‘방패회’를 결성해 헌법 개정과 천황제 수호를 주장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네 권으로 구성된 대작 ‘풍요의 바다’로, 시대의 허무를 주제로 삼았다. 1970년, 그는 작품을 출판사에 넘기고 자위대 총감부를 점거한 후 할복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은 일본 사회에 큰 충격과 논쟁을 남겼다. 이 평전은 미시마 유키오 연구 1인자인 문학평론가 이노우에 다카시가 집필했으며, 방대한 1차 자료와 새로 발굴한 자료를 철저히 고증해 미시마의 생애를 객관적 사실과 심리적 분석 위에 재구성했다. 2021년 제72회 요미우리문학상 수상작으로 미시마의 복잡하고 다면적인 내면 세계와 시대적 맥락을 동시에 조망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25

박수철 화가 첫 산문집 ‘오늘도 나는 이젤 앞에서 서성입니다’ 출간

포항 출신의 독학 화가 박수철(75)의 첫 산문집 ‘오늘도 나는 이젤 앞에서 서성입니다’가 출간됐다. 포항지역 출판사인 도서출판 득수가 펴낸 이 책은 박 작가가 1969년부터 2022년까지 55년간 써 내려간 일기와 편지를 엮은 기록으로, 평생 붓을 놓지 못한 채 작업실에 머물렀던 한 예술가의 내밀한 삶의 여정을 담았다. 1950년 포항에서 태어난 박수철은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했다. 생계를 위해 낮에는 직장에 다녔고, 밤에는 캔버스를 마주했던 그는 “작업실은 나의 유일한 안식처였지만, 스스로를 예술가라 칭하기엔 늘 부족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번 산문집은 성공담이 아닌 실패와 회의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은 ‘투쟁적 창작기’다. “그림은 내게 구원도, 영광도 아니었다. 다만 숨 쉬듯 멈출 수 없는 것이었다”는 그의 문장은 예술가의 숙명을 넘어 인간적 고뇌를 드러낸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며, 각 부마다 상징적인 색상을 배치해 작가의 내면을 시각화했다. 1부 ‘엘로우 오커(Yellow Ochre)’는 1969년부터 1995년까지의 청년기 가난과 무명의 시절을 기록한 초창기의 모습이다. 2부 ‘프러시안 블루(Prussian Blue)’는 1996년부터 2012년까지 지역 예술계와의 교류 속에서 모색한 정체성을 담았다. 3부 ‘크림슨 레이크(Crimson Lake)’는2013년부터 2022년까지 노년의 열정과 회한이 교차하는 시기를 표현했다. 4부 ‘에메랄드 그린(Emerald Green)’은 1977년부터 2018년까지 40년간의 스케치 원본을 수록해 미완의 순간들까지 포착했다. 특히 4부의 스케치는 완성작 이전에 드러나는 흔들림과 망설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출판사는 책 말미에 삽입된 QR코드를 통해 독자가 박수철의 주요 작품을 온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박수철은 “이 작업실에서 나는 또 하나의 정물”이라고 자신을 표현했다. 그림 그리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세월 앞에 놓인 객체로서의 고백은 예술가의 신비화를 거부한다. ‘캔버스 앞의 나는 고독했지만, 그 고독이 나를 살렸다’는 문장처럼, 책은 예술적 성취보다 삶을 버텨내는 모든 이들에게 공감을 전한다. 박수철은 2005년 포항문화예술회관 기획 초대전을 시작으로 2025년 포항시립미술관의 원로작가전 ‘박수철, 오래된 꿈’까지 10여 회의 개인·단체전에 참여했다. 특히 2024년 ‘정물 풍경’ 전과 2023년 ‘The cross 40전’은 그의 독특한 ‘정물적 풍경’ 미학을 집약한 작품들로 주목받았다. 김강 도서출판 득수 대표는 “박수철 화백의 작품과 기록에는 붓을 놓지 않으려는 집념, 삶의 고뇌를 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한 끊임없는 몸부림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며 “이 책이 ‘예술가의 신앙’이 아닌, 끊임없이 고민했던 ‘예술가의 흔적’으로 닿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22

‘권리’ 너머의 인권, 성리학에서 길을 찾다

동양사상의 핵심인 성리학을 현대 인권 담론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문제작이 출간됐다. 채형복(현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신간 ‘금동이의 술은 백성의 피―성리학과 인권’(학이사)은 유학을 과거의 도덕 교본이 아닌, 오늘날 인권의 철학적 토대로 다시 불러내는 학문적 시도로 평가 된다. 저자는 근대 이후 인권이 서양 정치철학을 기반으로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인간의 내면적 존엄과 윤리적 성찰이 소홀해졌다고 진단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성리학이 강조해 온 인(仁)·의(義)·성(性)·리(理)의 개념을 통해 ‘권리 중심 인권론’을 넘어선 ‘도덕적 인권론’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성리학이 말하는 인간은 외부 제도에 의해 존엄해지는 존재가 아니라, 본성 안에 이미 선(善)을 지향하는 도덕적 주체라는 점에서 근대 인권사상의 선언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주희의 ‘성은 곧 리’라는 명제는 인간의 존엄을 제도 이전의 철학적 토대 위에 놓는다. 성리학적 자율은 개인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서구적 개인주의와 달리, 타자(他者)와의 조화 속에서 자신을 완성하는 관계적 자율이다. 저자는 이를 ‘공동체적 인간주의’로 규정하며, 인권을 타인의 권리를 인정하고 배려할 수 있는 윤리적 능력으로 확장한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조선후기 고전소설을 분석 텍스트로 적극 활용한 점이다. ‘홍길동전’, ‘흥부전’, ‘춘향전’ 등 대중에게 익숙한 작품을 통해 성리학이 지배하던 사회의 모순과 인간 군상(群像)을 읽어내고, 이를 현대 인권의 문제의식과 연결한다. 이는 성리학을 추상적 이념이 아닌 살아 있는 삶의 철학으로 되살리는 방법론적 성과로 평가된다. 저자는 본문에서 “위계 질서와 남성 중심성 등 성리학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도, 그 내부에서 인간의 도덕적 자율과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강조했다. 인권의 위기가 제도의 부족이 아니라 공감과 연민의 결핍에서 비롯된다는 저자의 문제 제기는 오늘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전통의 언어로 인권의 미래를 다시 묻는 이 책은 동양 인문정신의 현대적 의미를 새롭게 환기(換氣)시키는 문화적 성과로 읽힌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5-12-22

내년 트럼프는?···'2026 세계대전망’

영국의 국제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창간 40주년을 맞아 기획한 ‘2026 세계대전망’ 한국어판(한국경제신문)이 출간됐다. 전 세계 25개 언어로 동시 발간된 이번 특별판은 2026년 국제 정치·경제·비즈니스·금융·과학·문화 분야의 핵심 이슈를 심층 분석하며, 예측 불가능한 시대 속 ‘최적의 나침반’을 제시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등장으로 촉발된 지정학적 혼란과 AI·기후 위기 등 복합적 도전 속에서 각국 정부와 기업의 대응 전략을 집중 조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재선으로 복귀한 이후 ‘본능에 기댄 거래형 외교’를 고수하며 전통적 국제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하더라도 그의 강압적 관세 정책과 보호무역주의 기조는 유지될 전망이다. 이로 인해 미국·중국·러시아 3국이 영향권을 나눠 갖는 ‘세력권 세계’로의 전환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교체 역시 금융시장 변동성을 키울 변수로 주목받는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중국의 ‘글로벌 사우스’ 협력 강화와 첨단기술 분야 타협(틱톡·반도체 등)을 유도하며 역설적 기회를 창출하고 있지만, 동시에 무역 분쟁 심화와 공급망 재편을 초래하고 있다. △지정학적 불안 최고조···‘21세기 들어 전쟁 사망자 최다 기록’ 예상 2026년은 ‘21세기 들어 전쟁 사망자 최다 기록’이 예상될 만큼 갈등이 격화될 전망이다. 우크라이나·수단·미얀마의 내전은 장기화되고, 러시아와 중국은 북유럽·남중국해에서 서방의 방어 의지를 시험할 예정이다. 하마스와 일시적 휴전 상태인 이스라엘은 내부 갈등으로 ‘내부 결속’ 문제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관세 충격 vs AI 투자 붐···양극화된 리스크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새로운 무역 협정 경쟁’을 촉발하며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 중이다. 2026년 선진국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110% 초과할 것으로 예측되며, 인플레이션 재확산 우려도 있다. AI 인프라 과잉 투자가 금융시장 과열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 한편, AI 발전이 고학력 일자리 감소와 ‘경력 사다리 붕괴’를 가속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기후 위기:1.5℃ 억제 목표 좌절···새로운 해법 모색 산업화 대비 지구 온도 1.5℃ 억제 목표는 사실상 실패했지만, 탄소 배출 정점 통과와 지열 에너지 부상이 대안으로 떠오른다.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가 각국의 핵심 과제로 부상할 전망이다. △스포츠·문화:도핑 허용 경기 논란과 월드컵 위기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인핸스드 게임(도핑 허용 경기)’이 약물 사용의 윤리적 논란을 촉발할 전망이다. 미국·캐나다·멕시코 공동 개최 FIFA 월드컵은 세 나라의 정치적 갈등으로 성공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GLP-1 기반 체중감량제 확산으로 ‘오젬픽 게임’과 같은 사회적 현상도 예상된다. 트럼프 재선이 초래한 ‘예측 불가의 시대’는 2026년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이코노미스트 편집진은 “복잡한 글로벌 이슈를 데이터 기반으로 분석해 독자들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며 ‘Mapping 2026’ 섹션을 통해 분쟁 예상 지역, 경제 지표, 기술 혁신 현장을 시각화했다고 설명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18

글로벌 경제 위기 ‘문명전환기’의 서막

전 세계가 부채 위기와 자산 버블 속에서 신음하는 지금,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닌 중대한 ‘문명 전환기’가 시작됐다는 진단이 나왔다. 신간 ‘슈퍼 체인지-리플혁명과 약탈경제 그리고 대공황의 닻’(도서출판 BMK)은 달러 중심의 국제 통화 체제 종말과 암호화폐 리플(XRP)의 부상, 그리고 ‘모던 II’ 시대의 도래를 예견하며 글로벌 경제위기의 근본 원인을 파헤쳤다. 저자 화이트독은 150년간 지속된 세계 금융 시스템의 약탈적 구조가 한계점에 도달했으며, 블록체인·AI·기후 변화·패권 전환이 얽힌 복합적 위기가 ‘파이널 슈퍼 체인지’로 이어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유동성이 빚으로 커질수록 현금 확보와 부채 축적이 생존 전략”이라며 코로나 이후 형성된 버블이 ‘슈퍼 대공황’으로 폭발할 가능성을 지적했다. 책은 리플이 단순한 암호화폐를 넘어 국제 결제망의 핵심 인프라로 진화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피도르 은행의 초기 참여, 비자의 어스포트 인수, 웨스턴유니언·머니그램과의 협업 등은 ‘감자 줄기 네트워크’처럼 연결된 금융 확장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저자는 “리플의 진정한 경쟁자는 비트코인이 아니라 달러”라며, 디지털 연방준비제도 개념까지 제시하며 암호화폐·CBDC·스테이블 코인이 통합된 새로운 금융 체계의 등장을 예고했다. 이와 함께 국제결제은행(BIS)을 “법적 강제력 없이 세계 금융 규칙을 통제하는 ‘보이지 않는 마피아’”로 규정하며, CBDC 규격부터 금융 실험까지 BIS 주도로 이뤄지는 현실을 비판했다. IMF와 각국 중앙은행의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리플 기술과 연계되는 점도 주목할 부분으로 꼽았다. 저자는 ‘모던 I’(산업 확장기) 시대가 끝나고 ‘모던 II’(산업 수렴기)가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AI 기술의 확산, 인구 감소, 태양 활동 증가로 인한 기후 변동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생산과 소비 구조가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솔라 플레어(태양 흑점 폭발)가 전력망과 통신 인프라를 마비시켜 ‘전기 문명의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산업 구조의 급격한 재편을 경고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미국 중심의 금융 패권이 약화되고,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가 새로운 경제 주도권을 쥘 가능성도 제기됐다. 중국의 정치 변화, 한반도 통일 시나리오, 부산의 초거대 물류기지화 등이 위기 속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책은 19세기부터 이어진 금융 세력의 약탈적 패턴을 집중 조명한다. 자산 버블을 인위적으로 조성한 뒤 대중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펌앤덤클럽’ 메커니즘이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좀비 경제’(수입으로 이자도 감당 못 하는 구조)가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투자 수익보다 자산 보호가 우선”이라며, 개인·기업·국가 모두가 부채 의존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슈퍼 대공황’ 시나리오에서는 달러 가치가 일시적 폭등 후 소멸되는 하이퍼 인플레이션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현금 확보와 불필요한 자산 정리를 권고했다. ‘슈퍼 체인지’는 리플 혁명과 달러 패권 붕괴, 산업 구조 재편 등을 통해 ‘금융·기술·기후가 동시에 변하는 시대’를 경고한다. 저자는 “과거 위기 패턴을 보면 이번 조정은 단순한 조정이 아닌 체제 전환의 서막”이라며 글로벌 경제의 복합 신경망을 해독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18

디지털 시 형식 중심 실험적 시도 ‘눈길’

포항지역 문단을 대표하는 시동인 '푸른시'(회장 김선옥)는 최근 스물네 번째 동인지 ‘푸른시 2025 제24호'를 출간했다. 이번 호는 디지털 시 형식인 ‘디카시(Dica Poetry)’를 중심으로 한 실험적 시도를 선보여 눈길을 끈다. 회원 9명은 디카시 1편과 개인 시 8편씩 총 91편을 수록했으며, 디카시의 시각적 이미지와 간결한 언어가 조화를 이뤄 포항의 자연·도시·인간 내면을 파노라마처럼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푸른색 타이포그래피와 미니멀한 디자인의 표지는 현대적 감각을 강조하며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푸른시’ 동인은 포항문인협회에서 활동하는 젊은 시인들이 지역 문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활발한 창작 활동을 목표로 1999년 결성됐다. 현재 활동 회원은 손창기, 김말화, 김선옥, 김성찬, 김동헌, 조혜경, 조현명, 이주형, 오호영 9명이다. 이들은 매월 1회 합평회를 통해 창작 의지를 다지며, '시는 세상의 푸르름'이라는 슬로건 아래 공동체의 가치를 시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 동인지에는 김선옥 시인의 ‘찰나를 건너온 말들의 온기’라는 발간사로 문을 열었으며, 김왕노 시인의 디카시 평론 ‘푸른시 동인이 펼치는 디카시 파노라마를 보며’ 가 수록됐다. 김왕노 시인은 짧은 문장 안에 담긴 세계와 삶의 울림을 깊이 있게 분석하며 디카시의 예술적 가능성을 확장시켰다. 또한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라음’ 문학동인 10명의 작품을 초대해 지역 간 문학적 교류를 도모했다. 동인들의 신작 시 72편과 함께 임지훈 평론가의 ‘하나의 마음과 각자의 악력’ 이라는 동인시 해설도 실렸다. 해설에서는 공동체적 지향점과 개별 시인의 언어적 개성이 조화를 이루며 작품 속 정서와 확장 방향을 세심하게 조명했다. 김선옥 회장은 “‘푸른시’는 지역 문학의 경계를 넘어, 젊은 시인들과 함께 세상의 푸르름을 만들어갈 동반자를 기다린다”고 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16

미국 패권 이후 ‘중·러’가 이끄는 글로벌 사우스

내외적으로 쇠퇴하는 미국, 점차 세력을 확장해온 다극적 세계 체제가 마침내 현실로 다가왔다. 다극화 진영 최고 저널리스트, 브라질 출신 지정학 분석가 페페 에스코바의 책 ‘다극세계가 온다’(돌베개)가 국내 번역 출간됐다. 페페 에스코바는 미국의 패권이 약화된 새로운 국제 질서가 어떻게 구축돼 왔는지, 탈패권주의적 시각으로 2020년대의 최신 역사를 분석해냈다. 저자는 지난 20년 동안 미국 패권 그리고 그에 대항하는 중국·러시아 등이 이끄는 글로벌 사우스의 세계정세를 치열하게 탐구하며 생동감 넘치는 분석으로 명성을 쌓아 왔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 달러 패권 이후, ‘브릭스’(BRICS)의 확장판인 브릭스 플러스(BRICS+)와 상하이협력기구(SCO), 국제 경제 회랑 대결, 중국·러시아·조선(북한) 협력, 팔레스타인 독립 등 우리 시대 세계정세의 가장 첨예한 문제들을 유라시아 대륙과 전 세계를 직접 누비며 보고 듣고 분석했다. 에스코바는 “미국이 군사적·경제적으로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2023년 PPP 기준으로 브릭스 5개국이 G7을 경제적으로 추월했으며, 2025년에는 격차가 더 벌어졌다. 저자는 “달러를 무기화한 미국의 정책이 오히려 탈달러 거버넌스 구축을 가속화했다”며 브릭스 국가들이 R5(런민비·루블·루피·헤알·란드)를 활용한 자체 결제시스템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극세계의 핵심 축은 BRICS+와 SCO, 일대일로다. 이들은 정치·경제·군사·문화 전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 중이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경제연합(EAEU)과 상하이협력기구(SCO)는 중앙아시아를 경유해 유럽까지 연결되는 ‘국제남북운송회랑(INSTC)’을 구축하며 서방의 ‘분할’ 전략에 맞서고 있다. 저자는 “중앙아시아는 다시 ‘심장지대’로 부상하고 있다”며, “파이프라인을 둘러싼 각축전이 새로운 지정학적 경쟁의 핵심”이라 강조했다. 브릭스 국가들은 자국 통화로 교역을 확대하며 달러 의존도를 낮추는 1단계 전략을 추진 중이다. 2단계로는 달러를 참조하지 않는 새 가격 형성 체계, 3단계로는 금과 핵심 자원에 기반한 ‘준비통화’ 창설을 목표로 한다. 저자는 “다극세계의 경제 성장은 실물 중심 체제에 기반해 서방보다 효율적”이라며 이를 “미국이 공황 상태에 빠진 이유”라고 주장했다. 에스코바는 “한국이 미국의 ‘동맹 수탈’ 정책에 휘말려 주변국과 갈등을 키우는 것은 매국”이라며 “다극세계로의 전환”을 촉구한다. 그는 “한국이 집단서방과 거리를 두고 유라시아 경제권에 동참한다면 새로운 기회를 얻을 것”이라 조언했다. 에스코바는 “미국의 재정 적자와 군사적 실패가 누적되는 지금, 다극세계의 승리는 시간문제”라며 “2030년 헤게모니의 안락사가 올 것”이라 단언했다. 프레드 짐머맨은 추천사에서 “미국 중심의 세계관이 편향을 낳는다”며 “다극세계의 논리를 직시해야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에스코바는 “지금이라도 유라시아와 손잡고 다극세계의 흐름을 타야 한다”고 주문한다. 미국 패권의 붕괴는 역사적 필연이지만, 한국이 그 과도기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릴 것이라는 경고다. “달러 이후의 세계, 군사적 대립이 아닌 무역을 통한 번영”이라는 그의 메시지는 한국 사회에 묵직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11

도무지 모를 中 시진핑 체제 속 ‘저항의 메시지’

2022년 5월, 오미크론 확산으로 상하이 2500만 명이 고강도 봉쇄에 갇혔을 때, 절망 속에서 탄생한 팟캐스트 ‘부밍바이(不明白·도무지 모르겠다)’가 2년 만에 책 ‘저항의 수다’(글항아리)로 재탄생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위안 리가 기획한 이 프로젝트는 중국 정부의 ‘제로 코로나’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체제 저항 운동의 중심이 됐다. 180회에 이르는 방송 중 핵심 인터뷰 25편을 엮은 책은 중국 내부의 암울한 현실과 저항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부밍바이’는 감염자 0을 목표로 한 봉쇄 정책으로 일상이 무너진 시민들의 “도대체 중국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느냐”는 절박한 질문에서 시작했다. 건물에 갇혀 굶주리는 사람들, 경기 침체로 무너진 서민 경제, 건강 코드로 추적당하는 개인의 자유-이 모든 것이 ‘부밍바이’의 소재였다. 정치학자 페이민신, 경제학자 쉬청강 등이 출연해 “제로 코로나는 1958년 대약진운동 같은 미친 정책”이라 비판했고, 영세업자와 농민공들은 복지 사각지대의 고통을 고발했다. 또 “시진핑은 어떠한 균형도 필요 없고, 자기 비서만으로 상무위원회를 만들겠다는 뜻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면서 시진핑 중국 주석을 직격하기도 한다. 방송은 2회 만에 중국 내 청취가 금지됐지만, 해외 스트리밍을 통해 중국어로 송출되며 ‘읽는’ 문화로 저항을 이어갔다. 책은 중국 경제의 위기를 부동산 거품, 실업률 상승, 악성 부채 등 구조적 문제로 진단한다. 쉬청강은 “부분적 시장경제를 도입해도 권력 집중화로 자체 개혁이 불가능하다”며 구소련 몰락을 떠올렸고, 우궈광은 “혁명은 필연적이며 개혁은 그 길을 터줄 뿐”이라 말했다. 2022년 봉쇄된 건물에서 화재로 수십 명이 사망한 사건은 ‘백지운동’으로 번졌다. 시민들은 백지를 들고 “비극마저 선전으로 둔갑시키는 정부에 맞서자”고 외쳤고, 한 참여자는 “우리가 마지막 세대”라며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비관 속에서도 저항 의지를 드러냈다. 중국 바깥에선 공산주의 체제 아래 국민을 ‘어쩔 수 없는 존재’로 보지만, 저널리스트 장제핑은 “무릎 꿇고 반란을 일으키는 것과 서서 저항하는 것 사이에서 일상이 투쟁”이라고 말한다. 정부의 탄압에 맞서 창작과 토론 플랫폼으로 탈집중화를 시도하는 언론인들, 해외 이주를 고민하면서도 현장에 남는 활동가들의 선택은 “완전하지 않은 자유라도 복종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책은 “체제에 답이 없다면 우리가 답을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로 마무리된다. 한 청년은 “현실 세계가 우릴 버려도 새로운 작은 세계를 창조하자”고 외치며, 무력감에 맞서는 연대의 힘을 강조한다. 위안 리는 “이 책은 절망했지만 각성한 이들의 용기를 외면하지 않는다”며 “무의미한 단편이 새로운 세계를 여는 계기가 될 것”이라 덧붙였다. ‘부밍바이’는 검열에 맞서 해외에서, 책은 타이완에서 중국어로 출간되며 체제 비판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중국 내부의 저항은 한국 촛불집회처럼 익숙한 얼굴이지만, 공산주의 국가라는 프레임에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는 분명하다. “혁명은 필연적이지만, 그 전에 작은 행동이 역사를 바꾼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11

하나의 거대한 갤러리 서울···도심 랜드마크 탄생의 여정

서울이라는 도시는 알고 보면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손길로 빚어진 하나의 거대한 갤러리다. 단순히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간을 넘어선다. 매일같이 지나치는 서점,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 쇼핑몰 등은 사실 그 자체로 건축 예술의 산물이며, 이는 서울의 문화적 풍경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서울 곳곳에는 프랭크 게리, 렌조 피아노, 안도 다다오, 자하 하디드와 같은 건축계의 거장들이 설계한 건축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들을 포함해 총 22명의 건축가로, 그들의 작품은 단순한 건물을 넘어 도시의 문화적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자산이 됐다. 이러한 건축물들은 서울을 세계적인 예술 도시로 변모시키는 데 기여했다. 건축가 공주석은 그의 저서 ‘서울, 작품이 되다’(청아출판사)에서 이러한 건축물들을 소개하며, 건축가들이 한국의 자연과 문화, 그리고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이를 건축에 녹여냈는지를 상세히 설명한다. 이 책은 서울의 건축 문화를 재발견하고, 그 가치를 재평가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 책은 강북과 강남으로 나뉘어 각 지역의 주요 건축물을 소개한다. 강북에서는 장 누벨의 리움미술관 M2,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아모레퍼시픽 사옥, 자하 하디드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등이 눈길을 끈다. 강남에서는 프랭크 게리의 루이비통 메종 서울,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의 송은 아트스페이스, 안도 다다오의 LG아트센터 서울 등이 소개된다. 각 건축물의 설계 과정과 배경, 그리고 시공 중의 에피소드까지 다루며, 건축물이 지닌 상징성과 도시와의 관계 변화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또한, 이 책은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저자는 건축 전문가로서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건축물의 디테일과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며 독자들이 일상 속 건축물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책은 각 건축물의 설계 과정과 배경, 시공 중의 에피소드를 통해 건축물의 상징성과 도시와의 관계 변화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또한, 지역 특징, 방문 동선, 건축물 개요 등 실용적인 정보와 다양한 부록을 수록해 정보성을 높였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11

강성태 시조시인 첫 시조집·시가 있는 칼럼집 동시 발간

“세월의 더께 속엔/켜켜이 지층 같은//시간이 박제되고 사연이 스며들어/한줄기 바람결조차/소리 되어 머무네//고색(古色)이 창연(蒼然)할수록/ 숨 막히는 아련함//심원의 절규인가/메아리쳐 맴도는데//무연(憮然)히 사그라드는/천만 갈피 실마리” - 강성태 시조 ‘옛것에 대하여’ 전문 포항의 중진 강성태 시조시인(62·사진)이 등단 31년 만에 첫 시조집 ‘그리움의 날갯짓’과 칼럼집 ‘스침과 스밈’(도서출판 신진)을 동시에 출간, 진솔하고 진중한 삶의 이야기를 선보이고 있다. 강성태 시인의 첫 시조집 ‘그리움의 날갯짓’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 존재의 의미를 성찰한 80여 편을 담았다. 시인의 시간 인식은 과거와 현재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데서 비롯된다. ‘옛것에 대하여’에서는 시간의 퇴적 이미지를 통해 역사의 층위를 읽어낸다. 여기서 시간은 박제된 기억이 아니라 현재의 감각으로 되살아난다. 또한 ‘유년의 꿈’에서는 “석양이 얼비치는 유년의 길섶”에서 피어나는 추억을 공동체적 차원으로 확장한다. 시인의 시간 인식은 또한 일상의 긍정성과 타자와의 공존으로 이어진다. ‘새소리로 여는 아침’은 “깃 터는 아침이 선물처럼 다가오는” 순간을 포착하며, 새소리의 청량함을 통해 생동하는 하루의 가능성을 노래한다. 한편 ‘동행’은 “낮은 데로 스며들어 파인 곳을 채우듯”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을 “물 같은 흐름, 바람 같은 소통”에 빗댄다. 이는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 사상을 연상시키며, 경쟁적 이기주의를 넘어선 연대의 가치를 강조한다. 시인은 자연과 예술을 통해 시간의 이치를 배우기도 한다. ‘필화(筆花)’에서는 “뿌리로 물을 긷는 쉼 없는 작용”으로 성장하는 나무에서 생명의 순환을 읽어내고, “점과 획을 넘나드는 붓과 먹의 거친 맥박”을 통해 예술적 완성의 과정을 성찰한다. 맹문재 문학평론가는 강성태 시조의 세계를 “시간 인식의 현상학”으로 규정하며, 과거-현재-미래를 관통하는 시인의 체험적 사유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 가치를 조명한다고 분석했다. 시인은 시간의 연속성과 그로 인한 기억, 꿈, 상생 등을 시적 이미지로 형상화하며 독자에게 내밀한 성찰을 요구한다. 함께 발간된 ‘스침과 스밈’(도서출판 신진) 칼럼집은 저자가 20여 년간 경북매일신문에 기고한 칼럼 300여 편 중 본문 중에 자작 시조나 인용 시가 포함된 칼럼 61편을 주제와 상황에 따라 시점 분류해 5부로 엮었다. 1부 ‘새날, 새로운 시작’ 2부 ‘시간의 결, 마음의 결’ 3부 ‘발길 닿는 대로’ 4부 ‘자연과 더불어’ 5부 ‘아름다운 매듭’ 등으로 구성하고, 말미에 칼럼집 단평을 싣기도 했다. 강성태 시인은 “43년에 이르는 기나긴 직장생활의 여정과 궤를 같이하는 문학과 예술 활동의 산실을 올 연말 포스코 정년퇴직을 기념하여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두 권의 책을 펴냈다”고 밝혔다. 수필가이자 맥시조 동인인 김병래 시조시인은 “강 시인의 칼럼집을 일관하는 특징의 하나는 계절의 흐름을 시적 감성으로 열고, 삶에 대한 긍정과 희망을 전하는 것”이라고 평했다. 강 시인은 지난 11월 30일 출간기념회를 가졌으며, 11월 27~30일에는 첫 시조집에 수록된 평시조·연시조·사설시조 등 30여 편을 골라 작가가 직접 붓으로 쓰고 시화작품을 포항시산림조합 숲갤러리에서 전시했다. 발간 기념 감사 이벤트로 11월 28일 갤러리 입구에서 가훈 및 덕담 붓글씨 써주기 나눔 활동도 열었다. 포항에서 40여 년간 시조와 서예 창작, 저널 활동을 해온 그는 1994년 계간 현대시조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사)한국문인협회 경상북도지회 시조분과위원장과 맥시조문학회 회장·포항문인협회 회원·포항서예가협회 회장 등을 맡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07

미래를 알려면 과거를 돌아봐라

우리는 현재와 과거가 끊임없이 대화하는 시대 속에 살고 있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영국 역사학자 E.H.카의 말처럼,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중요한 도구로 여겨진다. 최근 출간된 영국의 사회철학자이자 로먼 크르즈나릭의 신간 ‘내일을 위한 역사’(더 퀘스트)는 이러한 관점에서 응용역사의 접근법을 통해 인류가 직면한 21세기의 주요 도전 과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을 탐색한다. 크르즈나릭은 기후위기, 불평등 심화, 민주주의 위기, 기술 독점 등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난제들에 대한 해답을 지나간 문명의 지혜 속에서 찾는다. 그는 “역사는 우리에게 과거의 위기가 어땠는지 상기시키고, 하마터면 잊힐 뻔한 다양한 사회 조직 방식을 전수하고, 현재의 불의와 권력관계의 뿌리를 드러내고, 생존과 번영을 위한 변화를 이끌 단서를 제공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민이 촉발하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세 스페인의 알안달루스 왕국에서 무슬림, 유대인, 기독교인이 평화롭게 공존했던 ‘콘비벤시아’ 문화를 사례로 든다. 이는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갔던 역사적 교훈을 현대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로 제공한다. 또한, 현대의 무한 소비주의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일본 에도시대의 순환 경제 모델을 제시한다. 이는 자원의 효율적 사용과 재활용을 통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는 방법을 보여준다. 소셜미디어가 빚어낸 정치적 양극화와 가짜 뉴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18세기 런던의 커피하우스 문화를 떠올리며, 평등하고 숙의적인 공론장을 형성했던 과거의 경험을 디지털 시대에 맞게 재설계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크르즈나릭은 역사적 사례를 통해 집단 연대와 변혁적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과거의 지혜를 AI 플랫폼 협동조합 같은 오늘의 혁신과 결합함으로써 우리 문명이 위기 앞에서 ‘부러지지 않고’ ‘구부러질 수 있는’ 회복력을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과거의 성공 사례를 현재의 기술과 결합하여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한다. 저자는 ‘점진주의’로는 시급하고 복합적인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화석연료 중독을 끊기 위한 ‘멸종반란’ 운동 같은 급진적 저항 운동의 잠재력을 재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은 중세 에스파냐의 알안달루스에서 무슬림, 유대인, 기독교인이 평화롭게 공존했던 ‘콘비벤시아’ 문화를 소개하며, 사회적 관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또한, 일본 에도시대의 순환 경제 모델을 통해 무한 소비주의를 극복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18세기 런던의 커피하우스 문화를 통해 정치적 양극화와 가짜 뉴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디지털 공론장의 재설계를 제안한다. 극우 정권의 대두와 엘리트 정치에 대한 신뢰 상실 앞에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라에티아 자유국과 쿠르드족의 로자바 자치정부를 소개하며 시민의회(숙의민주주의) 도입을 촉구한다. 이는 권력을 민중에게 돌려주고, 보다 참여적이고 포용적인 정치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크르즈나릭은 ‘파괴적 변화의 연결고리(Disruption Nexus)’라는 독자적인 모델을 제시하며,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한 조건을 설명한다. 그는 기후위기와 인구 절벽 같은 위기와 촛불 집회와 환경단체 활동 같은 사회운동, 그리고 탈성장 경제와 공동체 민주주의 같은 새로운 사상이 결합될 때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저자는 ‘위기’, ‘운동’, ‘사상’이라는 세 요소의 상호작용이 정치적 의지를 자극하고, 사회 전체가 중대한 결정의 시점에서 새로운 길을 선택하도록 만든다고 설명한다. 이는 인류의 회복력을 구축하고 대격변을 막아내는 근본적인 기둥으로 작용하며, 우리에게 근본적인 희망을 제시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04

경영의 신이 말하는 인생철학

1968년 첫 출간 이후 60여 년간 꾸준히 사랑받아온 ‘마쓰시타 고노스케 길을 열다’(원제: 道をひらく·21세기북스)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원전 완역본으로 선보인다. 이 책은 일본에서만 287판 이상을 거듭하며 누적 570만 부가 판매된 불멸의 스테디셀러로, 출간 이래 일본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다. 2014년에는 누계 511만 부를 돌파하며 전후(戰後) 베스트셀러 단행본·신서 부문의 2위에 오른 바 있다. 이 책은 일본 전자 기업 파나소닉 창업자이며 정치·경제 지도자 양성 학원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을 설립한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1894∼1989)가 경영 일선에서 직접 기록한 121편의 짧은 수필을 엮은 것으로, 일상 속 태도와 마음가짐을 강조한다. 그는 “삶의 본질은 화려한 성공이 아니라 매일의 성실한 걸음에 있다”라고 말하며, 위기와 좌절을 극복하는 힘, 사람과 신뢰를 지키는 용기,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철학을 전한다. 대공황, 전후 패전, 오일쇼크 등 격랑의 시대에도 단 한 명의 해고 없이 회사를 지켜낸 일화는 이 책이 단순한 자기계발서가 아닌 삶과 경영의 교과서로 읽히는 이유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존 코터 교수는 마쓰시타를 두고 “천 년에 한 번 나올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철학은 단순한 기업가의 유산을 넘어, 오늘날 혼돈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원칙으로 살아 있다. 초등학교조차 제대로 마치지 못한 가난한 소년이 전기기구 제작소를 창업해 오늘날 글로벌 기업 파나소닉으로 성장시킨 여정은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라 경영과 삶의 본질을 드러내는 생생한 증언이다. “기업은 사람을 만드는 곳”이라 천명한 그의 철학은 기업을 단순히 이윤 추구의 장이 아니라 사회와 함께 번영하는 공동체로 바라보는 독창적 관점을 보여준다. 이 책은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대표작이자 그의 철학과 사상의 원전으로 손꼽힌다. 그의 문장에는 삶을 헤쳐 온 생생한 체험이 배어 있으며, 실패와 좌절, 인간관계의 갈등, 조직을 운영하며 느낀 책임감과 무게를 꾸밈없이 담아냈다. 이 책의 제목에는 저자의 평생 철학이 압축돼 있다. 길을 여는 것은 외부 환경 탓을 하거나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 태도와 마음가짐을 다잡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수십 년 동안 사랑받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접근성이다. 마쓰시타 특유의 말하듯 전달하는 글쓰기로 몇 페이지에 불과한 짧은 수필을 엮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덕분에 바쁜 직장인이나 학생도 잠깐의 시간을 내어 읽을 수 있고, 필요할 때 원하는 부분만 펼쳐봐도 충분한 울림을 얻는다. 이 책은 경영자부터 사회 초년생, 가정주부,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주제를 다룬다. 그래서 이 책은 일본에서 국민적 고전으로 자리 잡았으며, 한국에서도 리더들에게 삶의 바이블로 여겨지고 있다.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삶과 경영, 개인과 공동체를 아우르는 지침이다. 다시금 기본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힘을 제공한다.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냉혹한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잔뼈가 굵은 만큼 특히 프로라는 자각을 지니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어떤 직업이든 그 방면의 일을 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고 있다면 그 사람은 프로다. 진정으로 프로의 값어치를 하지 못하면 고객은 쉽게 지갑을 열지 않는다. 고객은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04

낙원에 대한 갈망이 ‘대항해 시대’ 열었다

중세 이후 서양 기독교 문명의 공포와 죄의식을 연구해온 프랑스 역사학자 장 들뤼모가 낙원 개념의 역사적 변천을 추적한 책 ‘낙원의 역사’(앨피)가 번역 출간됐다. 창세기의 에덴동산에서 출발한 낙원은 수메르·그리스 신화와 결합해 ‘지상 정원’으로 구체화됐고, 이 탐색 열망이 르네상스와 대항해 시대를 촉발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중세 학자들은 낙원을 아르메니아나 메소포타미아 등으로 지도화해 콜럼버스·마젤란의 탐험을 이끌었다. 당시 성직자들은 아담과 이브의 원죄를 논증하며 금단의 땅에 대한 집착을 부추겼고, 16~17세기 학자들은 과학적 증거로 낙원의 실재를 입증하려 했다. 그러나 화석 발굴과 다윈의 진화론은 지리적 낙원 신화를 붕괴시켰다. 저자는 “과학적 패배 후 유토피아 사상과 예술적 상상력이 그 자리를 채웠다”며 낙원 상실 서사가 서구인의 죄의식과 멜랑콜리를 심화시켜 루소의 ‘자연 상태’나 칸트 철학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낙원 3부작의 첫 권인 이 책에서 저자는 “서양 문명은 금지된 행복과 잃어버린 낙원을 찾는 순례”였다고 결론짓는다. 단순한 종교적 도피처가 아닌 불안과 희망이 교차하는 인간 정신의 투영으로서 낙원의 의미를 재조명한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04

“고향서 마주한 삶의 풍경과 사색 고스란히 담아”

경북 예천 출신의 안도현(64) 시인이 5년 만에 열두 번째 시집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문학동네)를 출간했다. 1981년 등단해 시력 45년을 바라보는 그는 동시, 동화, 산문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시집은 2020년 고향 예천으로 귀향한 후 쓴 작품들을 묶은 것으로, 타향살이를 마치고 고향 땅에서 마주한 삶의 풍경과 사색이 고스란히 담겼다. 안 시인은 2020년 4월 전주 생활을 접고 고향 예천으로 돌아왔다. 마당, 텃밭, 연못이 있는 집에서의 일상은 이전과 다른 시적 영감을 선사했다. 그는 “아파트 허공의 둥지에서 살다가 땅에 착지한 느낌”이라며 “새소리, 풀 뽑는 일상의 소소한 것들이 시가 되어 다가왔다”고 말한다. 시집에는 닭 키우기, 풀 뽑기, 장에서 열무씨 사기 등 소박한 농촌 생활이 녹아있다. 예를 들어 ‘풀 뽑는 사람’에서는 “책에 밑줄 긋는 일보다 풀 뽑는 일이 천배 만배 성스럽다”며 자연 속 노동의 가치를 되새긴다. ‘꽃밭을 한 뼘쯤 돋우는 일을’에서는 친구가 “시인은 원래 이렇게 쓸데없는 일 하는 사람이냐”고 묻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시인이 추구하는 ‘쓸모없음의 미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시집 제목부터가 그렇다. ‘쓸데없다’는 부정적 의미를 ‘눈부시다’는 긍정적 표현과 병치시켜, 하찮아 보이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안 시인은 “유용성과 경제적 가치만을 좇는 사회에서, 정작 소중한 것은 눈에 띄지 않는 것들”이라 말한다. 그는 “무의미한 것 속에도 의미는 존재한다”며 시를 통해 일상 속 사소한 순간들을 재발견하려 했다. 특히 팬데믹 기간 요양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며 쓴 ‘유리 상자’는 이별의 아픔과 동시에 “죽음이 세상을 털어내는 시원함”일 수 있다는 역설적 통찰을 담았다. 어머니의 부재 이후 “글과 행동이 더 자유로워졌다”는 시인의 말에서, 상실 뒤에 찾아온 창작의 여유가 엿보인다. 안 시인은 이번 시집 작업에 대해 “의도나 결론을 밀어두고 언어 자체를 따라가려 했다”고 설명했다. 과거 사회적 메시지에 무게를 뒀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말의 빛깔과 물기를 자유롭게 마주하는 데 집중했다”는 것. 그는 “시인은 말을 앞질러 가면 실패한다”며 “언어가 이끄는 대로 흘러가게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안 시인은 후배들에게 “남의 시를 분석하지 말고 언어 자체의 차이를 느껴보라”고 조언한다. 그는 “시인을 의식하거나 메시지를 찾지 말고, 시어가 가진 독특한 색채를 즐기라”고 강조한다. 또한 “시적 대상이 사라질수록 더 선명해진다”며 고향의 옛 역 ‘고평역’이나 어린 시절 기억을 소재로 삼은 시편들을 소개했다. 문학관에 대해선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학은 무용하기에 오히려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는 김현 문학평론가의 말을 인용하며, “무의미와 유의미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시인의 역할”이라 설명했다. 올해 초 단국대 교수직을 퇴임한 안 시인은 텃밭 가꾸기와 글쓰기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는 “내년에 동시집을 출간할 예정”이라며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1996년 베스트셀러 ‘연어’로 대중적 인기를 얻은 그는 “한 작가가 한 장르만 고집해야 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