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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어머니의 추억, 끝없는 사랑 담은 이재춘 시인 첫 시집 ‘엄마를 입다’

“엄마도 여자였다/ 고운 옷 입고/ 얼굴에 동동구리무 바르고/ 꽃밭 가꾸며 예쁘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보리 까끄라기 살갗 파고드는/ 아픔은 참을 수 있어도/ 자식들 배고픈 것은 못 참는다// 곳간에 양식이 간당간당할 때면/ 어머닌 머릿수건 둘러쓰고/ 청보리밭으로 달려간다// 야속한 세월/ 야속한 보릿고개// 봄바람에 출렁이는/ 청보리밭 푸른 파도에/ 어머니 청춘이 실려 간다/ 헐렁한 몸빼 바지 바람에 펄럭인다” -이재춘 시 ‘청보리’ 경주에서 공인중개사로 활동하는 이재춘(72) 시인이 첫 시집 ‘엄마를 입다’(생각나눔)를 펴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문학 활동을 해온 그는 10년 넘게 지은 시 중 100편을 모아 이번 시집을 구성했다. 이 시집은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주제로 하며, 시인은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어머니의 따뜻한 온기를 시로 표현했다. 시인은 ‘엄마를 입다’, ‘밥상에 피는 행복의 꽃’, ‘향수’, ‘봄 향기’, ‘들어내지 못한 바윗돌’ 등 5장에 걸쳐 10여 년간 다듬어 온 시어를 통해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을 묘사하며, 자식이 부모의 진정한 마음을 깨닫기까지의 여정을 아름답게 그려냈다. 이재춘 시인은 보릿고개 시절을 살아오며 가족을 위해 헌신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백한 시어로 담아내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시인은 ‘엄마를 입다’, ‘엄마는 즉결 판사’, ‘시효 지난 효도’, ‘엄마는 만능 의사’ 등의 시를 통해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무한한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깨달음은 자식의 숙명이라고 시인은 강조한다. ‘엄마를 입다’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 속에서도 정신적인 감성에 굶주린 현대인들에게 부모의 사랑과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시인의 진솔한 기억과 감정이 녹아 있어 독자들은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집은 단순한 독서 경험을 넘어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을 제공한다. 이재춘 시인은 “어머니는 가난한 살림에도 자식들에게 새 옷을 입히기 위해 자신의 털옷을 풀어 옷을 짜주셨고, 그 안에 따뜻한 사랑을 함께 담으셨다”며 “세월이 흘러도 그 온기는 여전히 내 몸을 감싸고 있다”고 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5-22

왜 자꾸 먹고 싶을까… 뇌 과학으로 풀어낸 식탐

스트레스를 받을 때나 감정적으로 불안할 때, 우리는 종종 음식에 대한 강한 욕구를 느낀다. 이러한 식탐은 단순한 배고픔 이상의 것으로, 특정 음식에 대한 갈망이나 충동을 포함한다. 이는 뇌가 스트레스나 감정 상태에 반응해 특정 음식을 찾도록 학습한 결과다. 따라서 의지력만을 탓하며 억지로 통제하려 하기보다는, 뇌의 습관 회로를 이해하고 이를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적 중독 심리학 분야의 권위자이자 신경과학자인 저드슨 브루어 박사의 ‘식탐 해방’(푸른숲)은 식습관이 형성되는 기전과 이를 변화시키는 방법을 다룬다. 그는 뇌 과학 및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식습관의 기전을 설명하며, 식품 산업이 어떻게 우리의 식습관을 조작하는지, 그리고 칼로리 제한이 왜 항상 효과적이지 않은지를 지적한다. 또한, 마음챙김을 통해 현재 순간에 집중하고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인식함으로써 식습관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식탐 해방’은 크게 이론 파트와 실전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먼저, ‘Part 1. 식습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는 뇌과학과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우리 뇌가 식습관을 결정하는 기전을 먼저 살펴보고 소위 블리스 포인트를 자극해 우리를 음식 중독으로 이끄는 식품산업계의 꼼수와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칼로리 제한 식단 계획, 측정 및 추적 행위의 역설을 짚어주면서 ‘다이어트와 건강한 식습관 관리에서 중요한 것은 의지력’이라는 통념을 깨부순다. ‘Part 2. 식습관을 재설정하는 21일간의 도전’은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비롯해 그간의 임상 사례를 바탕으로 기존의 식습관 대신 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식습관을 구축할 솔루션을 제시한다. 문제가 되는 식습관 회로를 분석한 다음 이를 대체할 건강한 식습관을 새롭게 설정하는 방법을 차근차근 안내하는데, 특히 ‘마음 챙김’의 효과를 연구와 임상을 통해 입증해 예일대학교와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 마음 챙김 센터에서 교수직을 역임한 바 있는 저자가 소개하는 구체적인 실천법들은 지금 바로 따라 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지만, 그 효과는 탁월하다. 저자가 제안하는 식습관을 바꾸기 위한 3단계는 △현재의 식습관 패턴을 분석하고 도식화한다 △뇌에서 식습관의 보상 가치를 바꾼다 △더 높은 보상 가치를 가진 행동을 찾아 새로운 식습관을 설정한다 등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 친절이다. 자신을 책망하기보다는 몸의 신호를 잘 듣고, 새로운 습관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마음챙김과 자기 친절을 통해 우리는 식탐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5-22

부와 권력으로 기울어진 세상… 우리는 평등한가

‘부와 권력은 왜 불평등을 허락하는가.’ 지난해 5월, 세계적인 두 사상가 토마 피케티와 마이클 샌델이 파리경제대학에서 만나 가진 토론 내용이 책으로 정리돼 나왔다. ‘기울어진 평등’(와이즈베리)이라는 신간이다. 두 사상가는 ‘평등과 불평등, 진보’를 키워드로 평등의 가치를 성찰하고, 불평등이 왜 문제인지, 우리를 둘러싼 각종 격차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토론을 펼쳤다. 두 저자는 불평등의 세 가지 측면, 즉 경제적 불평등, 정치적 불평등,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을 다각도로 조명하면서 지금 우리를 둘러싼 세계화와 능력주의, 불평등한 기본재 접근권, 기울어진 정치 참여, 사라진 노동의 존엄성 등 다양한 문제를 심도 있게 파헤친다. 책에 따르면 샌델과 피케티는 토론을 통해 100년 전, 200년 전의 평등을 향한 여러 사회 운동이 사회의 진보를 불러왔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자유 무역을 바탕으로 하는 시장경제체제와 삶의 지나친 상품화가 부와 소득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켰다는 결론에 이르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평등을 향한 움직임이 더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샌델과 피케티는 세 가지 차원의 불평등과 관련해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심도 있게 파헤친다. 책에 의하면 교육과 의료는 누구나 접근 가능한 기본재가 돼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지나치게 상품화되면서 아무나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워졌다. 주택과 공공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능력주의를 통해 헤쳐나가라고, 즉 학력을 높이는 것으로 개인의 상향 이동을 꾀하라고 권한다. 그러면 경쟁에서 승리해 필요한 것들을 얻을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과연 대학 학위만 있으면 우리는 모두 잘살고 능력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제 과거의 수사가 돼버렸다. ‘개천룡’은커녕 샌델과 피케티가 지적한 대로, 이제 우리는 학위가 없는 사람들을 게으르고 능력 없다고 낙인찍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두 사람은 말한다. 지금 시대는 ‘노동의 존엄성’은 인정받기 힘들며, 우리 사회를 지탱해왔던 연대의 개념은 사라지고 있다고 말이다. 실제로 사회의 여러 계층이 섞이는 기관들은 갈수록 감소하고, 부자들과 가난한 이들이 평소 살아가면서 마주칠 일도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샌델과 피케티는 경제적 격차와 정치적 격차보다도 사회적 격차가 제일 문제라고 진단한다. ‘노동의 존엄성’이 사라져 대학 학위 없이도 공동선에 값진 공헌을 하는 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인정이 부족하고, 명예와 존중이 부족한 것이 우리 사이를 갈라놓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적 격차를 해결하기 위해선 앞선 경제적 격차와 정치적 격차를 해결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격차를 해결할 수 있을까? 샌델과 피케티는 교육과 의료를 포함한 기본재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투자, 더 높은 누진 과세 체제, 부유층의 정치력 통제, 기업에서의 노조 역할 확대, 대입과 선거에서 추첨제 활용, 시장의 과도한 확장 억제 등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이러한 해결책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이, 얼마나 빨리 추진할 수 있을까? 실제로 두 사람이 내놓는 대안들은 대담하다 못해 급진적이기까지 하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5-22

법정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다

“침묵은 인간이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이다. 말은 비우고 마음을 담아라.” ‘무소유’로 깊은 울림을 남기고 떠난 법정(1932∼2010) 스님의 글을 엮은 ‘침묵하라 그리고 말하라’(열림원)가 출간됐다. 이 책은 세월을 뛰어넘어 여전히 깊은 울림을 전하는 법정 스님의 글 중 일부를 엄선해 담아낸 것으로, 책 제목부터 우리에게 깊은 사유를 건넨다. ‘침묵하라 그리고 말하라’는 역설적인 문장은 말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말 이전의 고요함과 존재의 본질을 성찰하라고 권한다. 이 책은 단순히 침묵의 미덕만을 말하지 않는다. 법정 스님은 침묵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단순한 삶을 실천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통해 인간 본연의 자리를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침묵을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인간이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이라고 말하며, 침묵을 통해 말의 무게를 되새기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법정 스님은 이러한 침묵의 태도와 맞닿아 있는 삶의 자세로 ‘단순함’을 강조하며, 비움과 절제를 통해 진정한 풍요를 일구는 길이라 말한다. 그리고 자연은 말없이 존재함으로써, 인간에게 삶의 본질을 일깨워주는 고요한 스승이라 여긴다. 침묵은 사색을 가능하게 하고, 진실한 말이 자라나는 공간이 된다. 법정 스님은 “침묵은 말의 뿌리이며, 진정한 말은 침묵 속에서 여문다”고 강조한다. 침묵 속에서 태어난 말은 소음이 아닌 메아리로 남는다. 침묵은 외부로 향한 시선을 내면으로 돌리고, 마음속 불필요한 소음을 정리하는 과정이다. 그 고요 속에서 새로운 생각과 감정이 여물고, 말은 줄어들되 더욱 깊어진다. 침묵은 우리에게 조용히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삶의 속도를 늦추고 진실한 존재로 살아가는 길을 안내한다. 스님은 물, 나무, 꽃, 새, 바람, 하늘 등 자연의 요소들을 자주 인용하며 그 안에 담긴 생명의 지혜를 전한다. 예컨대 물처럼 낮은 곳에 머무르며 다투지 않고, 조용히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하는 삶은 그가 말하는 이상적인 삶이다. 스님은 말한다. “자연 앞에 다시 무릎 꿇고 겸손해져야 한다.” 자연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존재의 뿌리를 인식하고 생명의 근원 앞에 자신을 낮추는 깊은 철학적 태도다. 자연과 가까이하는 삶은 인간을 정화하고, 존재에 대한 경외심을 회복시킨다. 산길을 걷고, 숲에서 반딧불을 바라보고, 바람 소리를 들으며 스님은 자연과 함께 살아왔다. 자연은 법정 스님에게 명상의 공간이자 깨달음의 경전이었고, 무엇보다 언어를 초월한 침묵의 스승이었다. 이번 책에는 ‘빛의 화가’로 불리는 세계적인 예술가 김인중 신부의 미공개 작품 30여 점이 실려 법정 스님의 글과 깊은 공명을 이룬다. 그는 법정 스님의 정신에 깊이 공감하며, 그 뜻을 담아 정성껏 작품을 선별하고 작업에 참여했다. ‘침묵하라 그리고 말하라’는 우리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지만, 결국 단 하나의 답을 향한다. 덜어내고, 멈추고, 그리고 귀 기울이라는 것. 우리가 잃어버린 고요함을 되찾고, 복잡한 삶에서 잠시 물러설 때, 비로소 자연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진짜 삶의 의미에 가까워진다. 법정 스님은 “수행자는 말을 하려고 할 때 먼저 세 번 돌이켜보아, 자기 자신이나 남에게 득이 된다면 말을 하라. 그러나 자신과 남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면 입을 열지 말라”고 옛 선사의 가르침을 들려준다. 스님은 “말을 안 해서 후회되는 일보다, 말을 해서 후회되는 일이 훨씬 많다”는 스님의 질문은 긴 여운을 남긴다. 말이 많아질수록 진정한 소통은 사라지고, 마음은 오히려 공허해진다. “삶은 소란한 언어가 아닌 고요한 침묵 속에서 자라고, 지나친 욕망이 아닌 단순한 자족 속에서 꽃피며, 인공의 세계가 아닌 자연의 품에서 충만해진다.” 말이 넘치고, 물질이 범람하며, 속도가 지배하는 오늘날, ‘침묵하라 그리고 말하라’는 우리를 정반대의 삶으로 이끈다. 멈추고, 비우고, 귀 기울이며, 감사하는 삶으로.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5-15

5월, 온 가족이 함께 도란도란 즐거운 독서

행복해지고 싶거나, 발전하고 싶다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은 금과옥조다. 괴테는 “행복해지고 싶은가? 사색과 독서의 시간을 늘려라”라며 평생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갔고 소크라테스는 “남의 책을 많이 읽어라”라며 독서를 통해 타인의 경험과 지식을 습득이 자신의 발전을 도모하는 지름길임을 강조했다. 가정의 달 5월,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도란도란 즐겁게 책을 읽고, 삶을 가꾸는 이야기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을 가져보자. △지그문트 바우만 ‘행복해질 권리’  ‘행복해질 권리’(21세기북스)는 20세기 최고의 지성이자, 근대 이후의 사회를 ‘액체 현대’로 규명하며 세계적 명성을 얻은 폴란드 출신 세계적인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책이다. 바우만은 물질적 상품만이 아니라 사랑, 정의, 희망 같은 추상적 가치마저 상품화된 현대 소비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개인의 욕망을 자극하고, 소비를 통해서만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는 착각을 조장한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것을 소비하더라도 욕망은 결코 완전히 충족될 수 없다. 소비사회는 우리에게 불확실성과 불안, 무기력을 확산시킨다. 바우만은 ‘액체 현대’가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고 진단한다. 바우만은 불안을 넘어 진정한 행복과 만족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인생을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끊임없는 사유와 고뇌 끝에 창조되는 예술처럼, ‘삶의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태도야말로, 우리가 진정한 행복과 만족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사피엔스의 의식’ ‘사피엔스의 의식’(틈새책방)은 스페인의 베스트셀러 작가 소설가 후안 호세 미야스가 쓴 교양 인문서다. 소설가 후안 호세 미야스가 질문하면 고생물학자 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가 답변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책은 ‘기억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자유의지는 실재하는가?’, ‘인공지능(AI)도 자아를 가질 수 있는가?’, ‘신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왜 사라졌는가?’ 등의 과학의 성취 속에서 인간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저자들은 이런 질문을 통해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답에 다가간다. 저자들은 의식을 단순한 생물학적 현상이 아닌, 문화적 및 철학적 요소들과 결합된 복합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관점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최신 연구 결과와 역사적 사례를 통해 의식의 진화를 설명하며, 현대 사회에서 의식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분석한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어원 상식 사전’ ‘알아두면 쓸모 있는 어원 상식사전’(크레타)은 흥미진진한 어원설을 유쾌하게 풀어낸다. 이 책은 대망의 ‘올드’질랜드에 불시착한 영국작가인 저자 패트릭 푸트의 캠핑 이야기로 시작한다. 혼란스러워하던 저자는 그곳의 이름이 ‘질랜드’임을 알게 되고 뉴질랜드를 처음 발견한 네덜란드인이 네덜란드 남부 지역인 질랜드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이후 저자는 이름과 기원에 대한 탐구에 깊이 빠져들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많은 단어가 저마다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구독자 38만 명에 육박하는 인기 유튜브 채널 ‘Name Explain’을 운영하며, “내가 알고 있는 매력적인 이야기들을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 가장 큰 전율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의 이야기는 나라 이름의 기원부터 도시와 랜드마크, 동물 이름, 역사적 칭호, 물건, 음식, 장난감 이름까지 다양하다. 독자들이 미처 몰랐던 궁금증을 자극하고, 평범한 단어들의 어원과 기원의 매력에 빠지게 만든다. △‘우주 여행자를 위한 생존법’ 인류는 지구를 넘어 우주를 향한 꿈을 꾸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 일론 머스크와 제프 베이조스, 중국, 일본, 인도 등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주 탐사에 박차를 가하며 인류의 미래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NASA 고문이자 천체물리학자인 폴 서터는 우주가 ‘위험한 곳’이라 경고한다. 우주 방사선, 운석 충돌, 초신성, 블랙홀, 중성자별, 암흑 물질 등 수많은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위험한 우주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우주 여행자를 위한 생존법’(오르트)에 담아 생존을 위해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그동안 인류가 알아낸 모든 사실을 과학적으로, 그리고 유쾌하게 설명한다. 저자는 지구를 떠나면 만나게 될 ‘진공’이 과학적으로 어떤 의미인지에서부터 시작해 태양계를 벗어나, 우리은하를 벗어나 앞으로 우주의 먼 곳까지 여행할 우리가 생존을 위해 알아야 할 우주 정보들을 상세히 소개한다. 블랙홀, 일반 상대성 이론부터 쿼크와 스핀을 포함한 양자 역학의 개념까지, 인류가 밝혀낸 다양한 과학적 지식이 골고루 설명돼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5-15

판사는 왜 억압에 동조하는가 ‘정의를 배반한 판사들’ 출간

세계적인 법철학자 한스 페터 그라베르 교수는 그의 저서 ‘정의를 배반한 판사들’(진실의힘)에서 사법부가 정권에 협력해 국민의 인권을 침해한 현실을 고발한다. 나치 독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미국과 영국 등의 사례를 통해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이자 인권의 수호자로서 역할을 하지 못한 현상을 분석하며, 판사들이 권위주의 정부에 동조하는 이유를 다각도로 설명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법률이 그 자율성을 어떻게 흔들고 공격하는지를 탐구하면서 그 상황에서 판사들이 겪는 문제를 몇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국가가 억압적으로 변하고 사법부가 그 억압에 기여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억압에 협력한 판사들을 법적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그들의 행동을 도덕적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억압에 맞서도록 독려할 수 있는가?   저자는 판사들이 권위주의 정부에 동조하는 다양한 이유들을 제시한다. 압도적인 힘에 굴복, 계급적 이해관계, 직업 경력과 승진을 위한 협조 등이 있지만, 이러한 이유만으로는 법치주의의 본질을 훼손하는 상황을 완전히 설명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판사가 본질적으로 법의 권위에 복종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권위주의 정권이 만든 실정법을 무시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또한, 저자는 이러한 현상이 독재 정권뿐만 아니라 미국과 영국 같은 자유주의 사회에서도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내무부 장관이 발부한 1874건의 구금 명령 사례는 행정부에 무제한 권한을 부여하고 사법심사를 무력화한 사례로 비판받는다.   저자는 “법치주의의 근본을 훼손한 혐의를 받는 판사가 그 항변 수단으로 사법 면책을 이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255~256쪽)라고 하면서도 판사의 책임을 광범위하게 추궁하면 사법부의 독립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일부 학자들은 특정 법적 해석방식, 즉 올바른 법적 방법론을 선택하면 판사가 억압에 가담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저자는 억압이 다양한 법적 접근방식을 통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반박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나치 독일의 판사들은 서로 다른 법적 방법론을 사용했는데도 똑같이 정권의 억압에 동조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 또한 법적 방법론이 핵심 쟁점이 아님을 보여준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판사들은 입법자의 인종차별 이념을 최대한 반영하는 방향으로 법을 해석했고, 독일 판사들은 바이마르공화국 시기의 입법 의도를 무시하면서 법이 적용되는 시점, 즉 나치 시대의 이념과 요구에 맞게 법을 해석했다.”   많은 판사가 불의와 타협한 다음, ‘차악 선택의 논리’를 펴며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한다. 자신이 협력을 거부하면 정부가 더 노골적으로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억압을 저지르거나, 더 순응적인 판사가 임명되어 ‘더 나쁜 상황’이 생겼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나치에 점령된 유럽 국가들에서도 판사들이 저항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저자는 여러 사례를 통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억압적인 환경에서도 판사와 법원이 양심에 따라 정의를 추구할 수 있는 여지가 있고, 주어진 재량권을 행사해 권력의 억압을 견제하거나 상당 부분 완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저자는 판사들이 불의에 가담한 경우 처벌할 수 있는 방안이 제한적일지라도, 판사들이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자신의 판결이 미칠 영향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결국 저자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우선 판사 스스로가 형식적으로 법률을 적용하는 기계적 전문인이 아니라 도덕적 주체로 서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법률이 정한 추상적 요건과 법이론에만 매몰되어 구체적인 인간적 상황과 판결이 현실에서 가져올 결과를 무시하는 법 기술자”(439쪽)로 남기를 거부해야 한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저자는 공동체 차원에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켜낼 수 있는 판사를 양성하는 교육, 문화, 윤리와 제도를 고민”(439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5-08

지혜는 늙지 않는다… 현명해지기 위한 뇌과학 탐구

똑똑한 사람은 많아도 현명한 사람은 드물다. 나이 듦도 지혜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지혜란 무엇이며 어떻게 현명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인지 노화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 달립 제스테 박사는 과학 저널리스트인 스콧 라피와 신화와 종교에서 다루던 지혜를 과학의 영역으로 옮겨와, 신경생물학과 심리학의 관점에서 지혜의 본질과 강화 방법을 탐구한다.   제스테 박사는 지혜를 일곱 가지 핵심 요소로 설명한다. 연민·공감·이타주의에서 비롯되는 ‘친사회적 행동’, 두려움이나 분노뿐 아니라 즐거움마저 다스릴 수 있는 ‘감정조절’, 갑작스러운 변화와 딜레마 속에서의 ‘결단력’, 암울한 순간마저 유머로 승화하는 ‘성찰’, 자기에게 매몰되지 않고 더 큰 것들을 감각하는 능력인 ‘영성’,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는 능력과 사회적 조언을 제공하는 능력 등이다. 이 중 저자가 보기에 가장 필수적인 것은 친사회적 행동이다. 실제로 인류를 생존하게 한 기술, 언어, 사회제도 등 인류의 인지 기능이 여러 사람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전했다는 점에서 지혜의 본질과 맞닿아 있음을 강조한다.   이 책은 지혜가 숭고하고 불가해한 것, 평생에 걸친 깨달음과 나이 듦의 결실이라는 전통적인 관념을 뒤집는다. 인간의 의식과 스트레스, 회복력과 마찬가지로 지혜 또한 생물학적 기반이 있기에 측정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지혜의 구성 요소들은 전전두피질과 편도체를 중심으로 뇌의 다양한 곳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해 생겨난다. 그래서 이 부위가 손상되면 지혜를 잃기도 한다. 1848년 미국 버몬트주 철도 공사 현장에서 사고로 전두엽이 손상된 노동자 피니어스 게이지가 ‘변덕스럽고 불손하며 참을성 없는’ 사람으로 변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다른 기능과 마찬가지로 지혜도 타고난 것과 만들어진 것이 뒤섞여 있다. 인간의 뇌가 이타심을 처리하는 단계에서 작동하는 신경인지 메커니즘이 친사회적 행동을 강화하게끔 진화했다고 보는 ‘이타적인 뇌 이론’, 다른 사람이 공에 맞는 것을 보고 내가 맞은 것처럼 움찔하게 하는 ‘거울 뉴런’ 세포, 생후 6개월 된 아기가 자신과 타인의 정신상태를 본능적으로 구분하고 파악하는 능력인 ‘마음 이론’ 같은 여러 뇌과학·심리학 연구들은 인간이 지혜의 구성 요소들을 어느 정도는 갖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저자에 따르면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부분이 35~55퍼센트이고, 나머지는 외부의 영향과 개인의 행동에 좌우된다.”고 한다.   지혜를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강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혜의 수준을 측정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는 저자가 직접 개발에 참여한 ‘지혜 측정 척도’가 담겼다. 이를 통해 지혜의 구성요소 각각에 점수를 매겨본 뒤 부족한 부분들을 파악할 수 있다. 만약 ‘연민’이 부족하다면 연습하면 감사 일기 쓰기, 소설 읽기, 명상 등인데, 이러한 ‘연민 훈련’을 한 사람들의 뇌에서는 실제로 긍정적 감정이나 소속감과 관련된 뇌 부위인 내측 안와전두피질과 조가비핵 등에서 활성이 나타났다. ‘감정조절’이 고민된다면 주의를 돌리는 훈련,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훈련 등을 권한다. 이런 관점에서 약물, 전자기기, 인공지능 등의 형태로 지혜를 외부에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실제로 도박장애 등을 치료하기 위해 자제력을 활성화하는 게임은 연구를 통해 그 효과가 증명된 바 있다   제스테 박사는 기후 위기, 정치적 양극화, 소득 불평등 등 현대 사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지혜의 전략을 제시한다. ① 감정조절이 중요하다: 당황하지 말자. 현실을 받아들이되 낙관적인 시각을 잃지 않는다. ② 힘들수록 성찰을 피하지 말자: 이겨낸 경험을 떠올리며 어떻게 대처했는지 생각한다. 그때 활용했던 것과 비슷한 전략을 세운다. ③ 친사회적 행동은 내게도 도움이 된다: 연구에 따르면 타인을 돕는 사람은 힘이 나고 행복하며 덜 외롭다. 외로움 같은 스트레스의 최고 해독제는 지혜다. 연민이 특히 효과적이다. ④ 불확실성과 다양성 수용하기: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전략에서 배울 점을 찾을 수 있다. 위기를 한 방에 다 해결하는 방법 같은 건 없다. ⑤ 결단을 내려라: 갑작스러운 변화에는 다양한 도덕적 딜레마가 따라올 수밖에 없다. 그때그때 정보를 총동원해 결정을 내려야 한다.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⑥ 사회적 조언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 누군가에게 조언하려면 인생에 관한 전반적 지식이 필요하다. 평소 전문가들의 말을 귀담아듣자. 조언할 일이 생겼을 때 더 나은 의견을 줄 수 있다. ⑦ 영성 기르기: 우리는 인류 전체와 동물과 식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을 보살펴야 한다. ⑧ 유머감각을 잃지 말자: 유머는 지혜를 만드는 요소이자 지혜가 드러나는 방식이다. 절망적 순간에도 도움이 된다. ⑨ 새로운 경험에 개방적인 태도: 열린 태도를 유지해야 위기를 기회와 성장으로 바꿀 수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5-08

현대사회 핵심 원리 ‘효율’…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최적화는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 원리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최적화 모델은 항공기 운항 일정부터 데이트 상대 매칭 사이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제 최적화는 우리의 물질적 현실을 넘어 기술과 사고방식에까지 깊이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하나의 수학적 개념이 어떻게 이렇게 거대한 문화적 변화를 일으켰는지, 그리고 효율성을 얻음으로써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된다.   신간 ‘최적화라는 환상’(위즈덤하우스)은 효율성과 최적화의 문제를 단순히 지적하는 것을 넘어, 이러한 개념이 현대 사회와 문화에 미친 깊은 영향을 탐구한다. 저자 코코 크럼은 MIT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실리콘 밸리에서 데이터 과학자로 활동했으며, 이후 과학 컨설팅 회사를 설립해 운영했다. 그는 한때 “더 많은 데이터를, 더 많은 모델을, 더 많은 해결책을” 추구하며 열정을 불태웠으나, 점차 그 낭만이 사라졌다. 세상이 최적화에 열광할수록 그의 내면에는 불신이 깊어졌다.   크럼은 실리콘 밸리의 기업가, 정리 전문가, 농부, 토착민 등 다양한 인물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최적화가 어떻게 우리 삶의 모든 측면을 지배하게 됐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이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들-여유, 장소, 규모-을 상기시키며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특히 이 책은 효율성 중심의 사회가 초래한 환경 파괴, 건강 문제, 사회적 불균형 등의 부작용을 지적하며, 독자들에게 최적화의 이면을 다시 한번 생각하도록 촉구한다. 저자는 “최적화를 강화하는 것도, 최적화에서 탈출하는 것도 답이 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독자들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보다 균형 잡힌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효율성과 수익성을 추구하며 우리는 경제 성장과 인구 증가, 기술 발전을 이뤘지만, 무언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바로 최적화의 이면에서 우리는 여유, 장소, 규모의 감각을 잃어버렸다. 외부 충격을 완화할 여유, 다양한 농법을 적용할 장소, 그리고 상황에 맞는 규모의 선택을 상실했다. 효율성의 달콤한 과실을 즐겼지만, 그 대가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현재 우리는 불안의 시대, 나르시시즘의 시대, 제4의 전환 혹은 제국의 몰락을 겪고 있다. 신자유주의 질서와 지속적인 성장이 끝나가며, 권위주의가 부상하고, 암흑기 또는 기후 재앙의 서막이 열리고 있다. 최적화는 우리의 시간과 관심, 심지어 미래까지 삼켜버렸다.   최적화를 강화하거나 탈출하는 것만으로는 답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이들이 과도한 효율성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있다. “지금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우울증과 불안증의 증가, 공급망과 사회의 붕괴, 고비용 도시 생활, 결혼과 출산의 감소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적화의 신봉자들은 효율성을 강화하면 불만을 잠재울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반대편에서는 효율성에서 벗어나거나 이를 완전히 무력화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두 접근 모두 최적화의 우위를 지속시킬 뿐이다. 첫 번째는 탈최적화를 목표로 하면서도 오히려 최적화를 강화하고, 두 번째는 현재의 자원을 과거의 기준에 맞춰 사용하는 방식으로 최적화의 우위를 유지한다.   우리의 생계, 삶의 질, 인간관계, 세계 이해 방식 모두 최적화에 의존하고 있지만, 이를 외면할 수는 없다. 크럼은 최적화에 휘둘리지 않고 나아가기 위해 새로운 시각과 태도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효율성과 수익성의 탈을 쓴 최적화의 불도저가 ‘여유’와 ‘장소’와 ‘규모’를 역사의 뒤꼍에 파묻어버렸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최적화와 효율화의 광적인 추구 때문에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관계, 삶의 질, 여유 등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을 복원할 때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최적화와 효율화를 맹신하며 숨 가쁘게 달려온 욕망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5-01

글로벌 거대기업 ‘이윤 추구 새로운 제국’ 급부상

“이윤 창출이 목표인 기업이 오랜 이념 갈등 끝에 발전해 온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의 거대 기업들은 실제로 권력을 쥐고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새로운 제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들은 국제사법제도를 적극 활용해 각국 정부를 상대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소송을 제기한다. 또 저개발국 원조라는 비즈니스로 이미지와 신용을 제고하며 이윤을 극대화하고, 경제특구를 조성해 최고의 혜택을 누릴 뿐만 아니라 민간 보안 조직을 만들어 국가의 역할을 대신한다. 신간 ‘소리 없는 쿠데타: 글로벌 기업 제국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가’(소소의책)는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저개발국 곳곳을 갈취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의 행태를 비판적으로 조명한 르포르타주다. 영국 언론인으로서 런던 탐사보도센터(CIJ)의 회원 클레어 프로보스트와 매트 켄나드는 2년간 전 세계 25개국을 조사해 기업들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어떻게 뒤흔드는지 분석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폐기와 광산 지분 보유 규정을 도입하자, 다국적 광산 기업들이 ICSID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국 최소한의 지분만 넘기는 조건으로 소를 취하했다. ICSID는 2021년 말까지 900여 건의 소송을 처리했으며, 이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 ‘기업 사법’은 국가와 기업 간의 법적 갈등을 다루며, 기업들이 국가와의 법적 분쟁에서 이익을 관철시키는 방식과 그 과정에서 국제법과 조약의 역할을 살펴본다. 또한, 세계은행이 설립한 국제 중재 기관이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모습과 투자자 보호를 위한 비밀 보험 제도가 초래한 결과를 분석한다.   제2부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와 선진국 대기업들의 금융 활동을 다루며, 이 활동들이 현지 주민들에게 진정한 도움을 주는지, 아니면 대기업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또한, 새로운 형태의 식민주의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으며, 이러한 금융 활동이 상위 1% 부자들에게 집중되는 현상을 탐구한다.   제3부 ‘기업 유토피아’는 경제특구와 같은 기업 중심의 도시 개발 프로젝트를 다룬다. 아일랜드의 사례를 통해 노동자의 권리가 제한된 ‘나쁜 일자리’의 현실을 보여주고, 아시아의 노동 착취 도시들을 통해 기업들이 노동력을 착취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제4부는 기업들이 자사의 보호를 위해 준군사 조직을 운영하거나 군사적 역할까지 수행하는 현상을 다룬다. 이는 민간 경비업체가 경찰력을 대체하거나, 심지어 핵 보안 사업까지 대기업이 맡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은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 또는 신중세주의로 해석될 수 있다.   저자들은 기업들이 국제사법제도를 활용해 각국 정부를 압박하고, 원조 사업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며, 경제특구와 민간 보안 조직을 통해 국가 역할을 대신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이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며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를 형성하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례는 기업의 국제사법제도 활용이 민주주의적 입법 취지를 훼손하는 예시로 볼 수 있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는 2021년 말까지 900여 건의 소송을 처리했으며, 이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도 론스타 소송 등 해외 투자자들의 타깃이 됐다. 기업들은 이러한 제도를 통해 막대한 이윤을 추구하며, 개발도상국의 정책과 법 제정을 방해하고 있다.   저자들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쥐고 의사 결정을 좌우하는 주체는 기업이라고 단언하며, 기업 권력의 현실을 직시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0세기 이후 민주주의의 승리 대신 기업 권력이 커지며 새로운 인프라가 세워졌다면서 이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밖에도 민간 군사 조직을 동원해 자신들의 안위를 지키는 동시에 국가의 역할을 대신하려 한다고 저자들은 비판한다. 전 세계에서 실제로 권력을 쥐고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기업체들의 비상식적인 비상을 ‘소리 없는 쿠데타’라고 규정한다. “20세기 들어 유럽의 제국들이 무너지면서 뒤이어 일어난 것은 민주주의의 승리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소리 없는 쿠데타였다. 전 세계에서 기업 권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서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인프라가 세워진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5-01

극우·극좌보단 중도의 사고가 유연

‘왜 어떤 사람은 보수이고, 어떤 사람은 진보인가?’라는 질문은 인간의 정치적 태도와 의사결정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려는 주요 연구 주제였다. 그러나 정치 신경과학의 선구자 레오르 즈미그로드 박사는 신간 ‘이데올로기 브레인’(어크로스)에서 이제 왜 인간은 이데올로기적 사고에 빠지게 되는지를 탐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레오르 즈미그로드 박사는 이 책에서 우리의 정치적 신념이 어떻게 형성되고, 왜 특정 사람들이 극단주의에 빠지게 되는지를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그는 우리의 뇌 구조와 세포 차원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상호작용의 결과임을 밝힌다. 신경과학적 분석을 통해 극단주의를 촉발하는 주요 원인인 팬데믹, 극우 포퓰리즘, 전쟁과 자연재해 등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다.   저자는 이데올로기가 단순한 사회적 규범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우리의 뇌에 깊이 침투해 사고의 경직성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이러한 경직성은 정치적, 종교적 극단주의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밝힌다.   또한, 극단주의가 타고나는 것인지, 아니면 만들어지는 것인지를 탐구한다. 그는 정치와 신경과학을 결합해 이데올로기의 기원을 연구하며, 개인의 성격, 인지적 특성, 심지어 도파민 유전자가 이데올로기적 사고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한다. 정치적 이념에 깊이 몰입한 사람들은 현실을 왜곡해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는 우리의 자유 의지를 제한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생각을 바꾸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정치적 이념에 집착한다 저자는 2015년 이슬람 근본주의가 확산하면서 영국 소녀들이 ISIS에 가담하기 위해 시리아로 향하는 현상을 보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의문을 품었다. 저자는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극단주의에 빠진 이들의 뇌 구조와 기능을 연구하며, ‘정치신경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이데올로기는 세상을 이해하고 일관된 세계관을 유지하려는 인간의 욕구, 같은 생각을 가진 집단에 소속되고자 하는 욕망을 강화해 뇌는 점차 사고의 경직성을 띠게 된다.   실험을 통해 이념적 성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새로운 정보를 수용하거나 사고를 전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규칙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극단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높고, 인지적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반면, 유연한 사고를 지닌 사람들은 변화에 빠르게 적응했다.   △극단주의는 타고나는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 책 1부 ‘우상’에서는 이데올로기를 설명하는 기존 은유를 분석하고, 정치와 신경과학을 결합해 이데올로기적 사고의 뇌 메커니즘을 탐구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다. 2부 ‘마음과 신화’에서는 이데올로기의 기원과 역사를 검토하며, 이데올로기에 대한 잘못된 신화를 반박한다. 또한, 이데올로기 연구의 초점을 ‘이데올로기가 인간에게 미치는 강력한 영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3부 ‘기원’에서는 모든 사람이 이데올로기에 동일하게 취약하지 않다면, 그 기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탐구한다. 이는 닭과 달걀의 문제와 유사하며, 개인의 성격과 인지적 특성이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미치는지, 아니면 경직된 이데올로기가 뇌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룬다.   저자는 경직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의 뇌에서 도파민 농도가 조절되는 방식이 다른 이들과 유전적으로 다른 요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는 이데올로기에 취약한 사람들의 뇌 보상 회로망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의미하며, 이념 변화는 단순한 의견 변화가 아닌 생물학적 수준에서의 변화임을 보여준다.   △어떻게 이데올로기라는 족쇄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최신 신경과학이 전하는 유연한 태도가 중요한 까닭 우리가 사는 세계는 심화하는 양극화로 인해 사람들은 서로 다른 현실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정치적 이념에 깊이 몰입한 사람은 중도 성향의 사람보다 현실을 왜곡해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4부 ‘결과’에서는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몸과 뇌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다. 시각적 착시와 정치적 착시의 연관성, 감정 처리를 담당하는 뇌 영역의 차이 등을 통해 이데올로기가 두뇌 구조에 깊숙이 침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5부 ‘자유’에서는 유전적, 환경적 요인이 경직된 사고를 유발할 수 있지만, 이는 유전적 결정론이나 자유 의지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짚는다. 결국 우리는 어떤 이념을 열정적으로 수용하거나 거부할지 스스로 선택할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저자는 “이데올로기적인 사고를 분석할 때 후성유전학에 따라 이데올로기적 경직성이 출현하는 과정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는 유전자의 발현이 고정돼 있지 않다는 얘기로, 삶의 경험에 따라 유전자가 발현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4-24

화려하고 요란한 일본 문화의 뿌리

일본에 있는 소위 3대 전통 미학이라는 개념은 헤이안 시대 귀족의 미의식 ‘모노노아와레’, 에도 시대 지배계급의 미의식 ‘와비사비’, 그리고 서민의 미의식 ‘이키’다. 신간‘도쿄 미학’(책과함께)은 그중 ‘이키’라는 미의식에 방점을 두고, 그 발현과 대중문화로서 지위를 획득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는 책이다. 저자인 최태화 국립군산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는 일본의 3대 전통 미학 중 서민들의 미의식으로 꼽히는 ‘이키’의 기원과 변천을 조명하며, 이 미의식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했는지를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이키’는 17세기 초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이어진 에도 시대에 생겨난 것이다. 이키는 17세기 초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이어진 에도(江戶) 시대에 생겨나 시대를 거치면서 변천된 일본의 미의식의 하나를 말한다. 옷차림이나 행동이 세련되고 보기 좋게 느껴진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이키는 서민들의 미의식으로 시끌벅적하고 요란하며 화려한 느낌을 준다. 이키는 단정하고 차분한 분위기와 더불어 현대인이 흔히 떠올리는 일본스러운 이미지의 양대 축을 이루고 있다. 자국 문화를 산업적으로 육성하려는 일본 정부의 전략과 맞물려 2021년 열린 ‘2020 도쿄올림픽’을 전후로 이키가 부활했다고 책은 진단한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16년 무렵부터 ‘쿨 저팬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문화산업을 수출하는 데 힘을 쏟았는데 이와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일본의 미학이 바로 이키라는 것이다.  ‘이키’는 오늘날의 도쿄, 즉 에도라는 대도시의 탄생 배경과 그 도시가 가진 특성과 맞물리며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이키’는 ‘이키즘’이라는 개념으로 더욱 확장된다. 20세기 도쿄에서 ‘이키즘’은 퇴색하고 지나간 유행이 되지만, 21세기 들어 ‘이키’는 재발견되면서 ‘모던 이키즘’으로 새롭게 등장한다. 특히 2020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현대화된 미의식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이키’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오늘날 첨단 도시 도쿄에서 ‘이키’는 여전히 ‘일본의 미’를 대표하는 키워드다.   일본의 미의식은 헤이안 시대부터 이어져 오는 귀족의 미의식 ‘모노노아와레’와 에도 시대 무사 계급의 미의식 ‘와비사비’가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모노노아와레는 대상에 대한 공감, 애정, 배려, 연민, 동정 등의 감정을 느낄 때 얻어지는 미적 쾌감으로 정의된다. 와비사비는 단정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중시하는 미의식으로, 다도, 일본 정원, 마쓰오 바쇼의 하이카이 등을 통해 일본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이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에 걸쳐 형성됐다.   한편, 19세기부터 시작된 일반 서민 대중의 미의식인 ‘이키’는 에도 토박이인 ‘에돗코’에 의해 발전했다. 시골 무사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반영한 문화를 창조하고 향유했으며, 경제적 부를 축적한 조닌들은 에도의 대중문화 중심지에서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일본 정부는 자국 문화를 산업적으로 육성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2021년 열린 ‘2020 도쿄 올림픽’을 전후해 ‘이키’를 부활시켰다. 2016년부터 추진된 ‘쿨 저팬 프로젝트’ 과정에서 ‘이키’는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일본의 미학으로 자리 잡았다. ‘이키’는 에도라는 대도시의 탄생 배경과 그 특성 속에서 나타났으며, 19세기 에도의 유곽과 가부키 극장에서 비롯됐다. 유녀들의 미의식이 ‘이키’로 발현돼 저잣거리로 퍼지며 유행하게 됐고, 가부키 극장은 현실의 불만과 괴로움을 해소하는 공간으로서 ‘이키’와 밀접하게 연결됐다.   20세기 들어 ‘이키’는 ‘모던 이키즘’으로 부활하며, 2020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현대화된 미의식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오늘날 도쿄는 전통과 현대를 융합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며‘이키’는 여전히 일본의 미를 대표하는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4-24

성공을 위해 자신을 갈아 넣을 때…

‘불공정한 사회 구조가 인간의 건강과 수명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저명한 공공보건학자 알린 T. 제로니머스 교수는 신간 ‘불평등은 어떻게 몸을 갉아먹는가’(돌베개)에서 불공정한 사회 구조가 소외된 집단의 건강과 수명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있게 탐구했다. 미시간대 공공보건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30여 년간의 연구를 통해 차별이 신체 건강에 미치는 생리학적 작용을 과학적으로 밝혔다. 제로니머스 교수는 대도시에서 사는 흑인이 같은 권역에 거주하는 백인에 비해 일찍 만성 질환에 걸리는 현상을 주목했다. 이 현상은 유전적 차이 또는 생활 습관만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주류 백인들의 관점에서 설계된 공공 보건 정책과 차별 및 혐오가 주요 원인으로 지적됐다. 이러한 불공정한 사회 구조는 개인의 건강을 서서히 무너뜨리며, 이를 ‘웨더링’(weathering)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웨더링은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생리적 스트레스 반응으로 인해 세포 수준에서 점차 마모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웨더링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적으로 경험되는 현상이다.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면역 체계를 약화시키고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이러한 과정은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되며, 결국 노화와 만성 질환, 장애, 심지어 돌연사의 원인이 된다. 제로니머스 교수는 사회적 요인이 개인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차별과 불평등이 신체에 미치는 생리학적 작용을 연구하며, 불공정한 사회가 개인의 건강을 서서히 갉아먹는다는 사실을 명확히 했다. 통계 데이터와 분자 생물학 연구를 바탕으로, 불공정한 사회가 주는 스트레스가 노화를 촉진하고 건강과 수명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웨더링 개념은 인종, 민족, 종교, 계급, 성별, 성 정체성 등에 따른 차별과 편견에 의한 반복적인 스트레스가 신체에 점진적으로 끼치는 생리학적 작용과 과정을 의미한다. 저자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성공을 위해 자신을 갈아 넣을 때 그 스트레스가 신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차별 시스템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예외로 두지 않으며, 오히려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더 큰 스트레스에 노출돼 건강을 잃는 아이러니를 지적한다. 제로니머스 교수는 “사람의 건강은 유전자보다 사회가 그 사람을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더 크게 좌우된다”고 주장하며, 건강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기존 인식을 비판한다. 그는 공정한 사회를 위한 변화가 공공 보건의 핵심이라고 강조하며, 웨더링 작용을 중단시키는 것이 공평한 사회로 나아가는 중요한 발걸음이라고 말한다. 그는 “불공정한 사회는 몸과 마음을 닳게 하여 소리소문없이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끈다”라고 경고하며 “차가운 과학의 이성과 정의를 향한 따뜻한 희망의 결합을 통해 불공정한 사회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차별받는 약자 집단은 편견과 배제의 시스템 속에서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더 많은 웨더링의 가능성에 노출된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불공정한 사회가 성실한 사람들을 조기에 죽음으로 내몬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인종화(인종차별주의만을 말하지 않는다. 특정 집단을 사회적으로 차별·배제하는 모든 허구적 이데올로기가 인종화이다)에 의한 차별 시스템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피해가지 않는다”며 “웨더링 작용을 중단시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공평한 사회로 나아가는 중요한 발걸음이 된다”고 역설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4-17

美 메릴랜드 숲속 신비로운 사계절·식물과의 교감 이야기

그림 그리는 식물학자이자 ‘식물학자의 노트’, ‘이웃집 식물상담소’의 저자 신혜우 작가가 산문집 ‘식물학자의 숲속 일기’(한겨레출판)를 출간했다. 이 책은 미국 스미스소니언 연구원으로 지내며 경험한 메릴랜드 숲속의 사계절과 열두 달 식물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2025년 런던 린네 학회에서 질 스미시스상을 수상한 작가의 그림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사계절 식물 도안이 눈길을 끈다. 이 상은 식물의 과학적 식별을 돕는 그림을 그린 작가 중 우수성을 인정받은 식물학 예술가에게 주어지며, 신혜우 작가는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이 상을 수상했다.   과거 1년간 메릴랜드에서 연구원 생활을 했던 신혜우 작가는 당시 외롭고 힘든 기억이 가득했으나, 4년 만에 다시 찾은 메릴랜드에서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숲을 만났다. 복잡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숲속을 걸으며 식물들과의 소통을 기록한 내용이 책에 담겼다. 김금희 작가는 이 책을 추천하며 “자연의 아름다운 질서를 일깨우는 다정한 기록이자 상냥한 안내자”라고 평가했다. 이 책은 자연의 조화, 연결, 순환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며, 식물들의 다양한 생태적 과정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예를 들어, 벚꽃 잎이 떨어질 때 생기는 상처를 식물이 어떻게 회복하는지, 난초의 씨앗이 특정 곰팡이의 도움으로 싹을 틔우는 과정 등을 통해 자연의 신비로움을 드러낸다. 또한, 크랜베리의 공기주머니가 씨앗을 퍼뜨리는 방식이나 호랑가시나무가 겨울의 추위를 견디는 방법 등 계절에 따른 자연의 메커니즘을 상세히 설명한다. 신혜우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자연을 이해하고 배우며 성장하는 과정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했다. 그는 메릴랜드에서의 경험을 통해 식물학자로서의 재능과 인간관계를 돌아보며 성숙한 자아를 발견했다. 이 책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깊이 있게 탐구하며, 편견 없는 시선과 사랑을 담아내고 있다. 결국, 신혜우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자연의 신비로움과 인간의 성장을 동시에 그려내며, 독자들에게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 그의 글은 단순한 식물학적 지식을 넘어, 삶의 깊은 통찰과 따뜻한 감동을 선사한다. 작가는 숲에서 만난 식물들을 하나씩 소개하며 자신이 머문 숲속 시간들을 들려준다. 한겨울 얼어버린 숲속을 걸으며 겨울에 잎을 내는 크레인플라이난초에 관한 에피소드와 겨우내 눈이 쌓이면 식물의 씨앗과 각종 미생물들을 따뜻하게 덮어 봄이 오면 파릇파릇한 신록을 마주하게 하는 자연의 섭리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른 봄, 선임연구관과 함께 폐쇄된 연구동 건물에 들어갔다가 크로커스꽃으로 뒤덮인 비밀의 화원을 마주한 순간의 경이와 봄에 열리는 오키드쇼(난초 꽃 축제) 이야기를 통해 화려하게 핀 꽃들을 싹 틔운 곰팡이의 세계를 펼쳐놓는다. 3월의 어느 날 연구소 한쪽에서 활짝 핀 배나무꽃을 보며 서양배에 관해 ‘오해’했던 재밌는 일화와 5월의 메릴랜드 숲속에서 발견되는 튤립나무 꽃송이와 꽃이 분해되고 흙 속에 스며들어 양분이 되는 과정, 그리고 튤립나무 가지의 가루로 난초의 영양분을 만든다는 신기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우산 모양의 메이애플은 잎 전체에 강한 독성이 있지만, 자신의 씨앗을 퍼뜨려줄 동물에게는 해를 입히지 않게 하기 위해 노란 열매에는 독성이 없도록 구조화했다는 것은 신비롭고도 놀라운 사실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4-17

어둠 속에도 희망과 연대를 꿈꾸는… 서로 다른 존재들의 연결방법 모색

“시와 물질,/ 또는 시라는 물질에 대해 생각한다// 한 편의 시가/ 폭발물도 독극물도 되지 못하는 세상에서/ 수많은 시가 태어나도 달라지지 않는 이 세상에서”(시 ‘시와 물질’ 부분)   올해로 등단 37년을 맞은 나희덕 시인의 10번째 시집 ‘시와 물질’이 문학동네시인선 229번으로 출간됐다.   이 시집은 소외되고 침묵을 강요받은 존재들의 맨얼굴과 목소리들이 전면에 나서게 되는 무대와 같다. 거미불가사리, 닭, 지렁이, 버섯 등 비인간 존재들이 지구와 인간을 지탱해온 주인공이었음이 드러난다.   시인은 인간이 잃어가는 생명과 연대 감각 회복이라는 과제를 위해 이들의 목소리를 담고, 시와 시인의 역할을 질답하며 서로 다른 존재들이 연결되는 방법을 모색한다. 오랫동안 시인들이 자연을 묘사하던 방식과는 달리, 이 시집은 자연을 확언하거나 진화생물학자의 관점을 따르지 않고 제3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박동억의 해설에 따르면, 이 시의 ‘사랑’은 인간의 실존을 초월하는 실존적 탐구다. 시인은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애쓰며, 사랑을 말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   피와 같은 성분을 지닌 석유를 시추하기 위해 인간이 피를 흘려야 한다는 모순을 고발하는 ‘피와 석유’, 제빵 공장에서 참담한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를 생각하는 ‘샌드위치’, 삶의 막다른 곳에서 자신의 장례 비용을 남겨놓고 스스로 숨을 거둔 기초생활수급자의 이야기인 ‘존엄한 퇴거’, 12·3 비상계엄 사태 전후의 여의도의 모습을 생생한 현장감을 더해 다룬 ‘광장의 재발견’ 들에선 시대를 향한 시인의 비판 의식이 각고히 벼려져 빛을 발한다.   암담한 현실에서 시는 무엇을 하는가. 표현의 도구로서의 언어를 넘어, 시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역동적인 힘이어야 한다는 인식은 그렇다면 시인은 어떠해야 하는가 묻는 질문을 외면하지 않는다.   시인은 시대의 목격자이자 참여자이어야 하지만, 대출 담당자 앞의 시인은 무력한 시처럼 자신이 “국경을 넘어/ 돈을 물어 나르는 매개”에 불과함을 절감한다. 김광균의 시를 떠올리며 “은행에 대해서는/ 시 한 편 쓰지 못했다고 중얼거리”(‘시인과 은행’)는 시인의 모습은 드높은 이상을 꿈꿀 순 있지만 현실에서는 갈 곳을 잃은 현대인을 정확히 표상한다. 한편 베트남 사공의 비참한 현실을 “좀 더 리얼하게/ 좀 더 예술적으로” 찍으려다가 핸드폰을 강물에 떨어뜨린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관음증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 감상적인 동일시를 인정할 수 없다는 듯/ 강물은 배를 흔들어 손에 든 핸드폰을 삼켜버렸다”(‘강물이 요구하는 것’). 이처럼 시와 시인에게조차 성역 없는 묘사와 비판은 ‘시와 물질’ 속 순정한 목소리들을 귀 기울여 듣게 하는 바탕이 된다.   강고한 비판들을 목도하며, 과연 인간에게 어떤 대안이 있는지 막막해진 독자에게 ‘시와 물질’의 4부는 든든한 손길이 돼 줄 것이다. 어둠 속에서도 끝내 희망과 연대를 발견하려는 시인의 고투가 독자를 맞이한다. “한 술 한 술 누군가 떠 먹이여 살아야겠다고”(‘이 숟가락으로는’) 결심하는 손으로 시인은 시집의 대단원에서 실테를 독자에게 건넨다. “세상에 무엇을 건넬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나희덕 시인이 그리는 삶의 자세는 인간을 포기하거나 인간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넓히고 인간 그 이상으로 다시 그리는 일에 가깝다. 시인이 ‘마음 한 조각’을 버리고 얻는 것은 다시 타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림이다. - 박동억 해설, ‘가없는 휴머니즘’ “살아 숨 쉬는 물질로서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온몸이 귀로 이루어진 존재가 되고 싶었다. 경청의 무릎으로 다가가 낯선 타자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시인의 말’에서) 나희덕 시인은 현재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89년 중앙문예에 시 ‘뿌리에게’로 등단한 이후,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가능주의자’ 등 다수의 시집과 산문집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김수영문학상을 비롯해 소월시문학상, 백석문학상, 영랑시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삶과 인간, 생명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사랑을 받아온 시인은, 세계의 균열을 간명한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4-17

‘사찰요리 명장’ 정관 스님의 철학과 요리법을 만나다

‘요리가 명상이며 수행’이라는 말처럼, 정관 스님의 첫 번째 요리 에세이 ‘정관스님 나의 음식’(윌북)은 사찰요리의 명장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관 스님의 철학과 요리법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음식에 담긴 지혜와 정성스럽게 정리된 58개의 요리법을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소개한다. 정관 스님은 독자들에게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도란도란 이야기하듯 전달한다. 마치 향기로운 차 한 잔을 마시는 듯한 고요한 기쁨이 책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정관 스님은 17세에 출가해 50여 년 동안 몸과 마음을 맑게 하는 사찰음식을 만들고 알리는 일에 헌신해왔다. 특히 그의 대표 음식인 ‘표고버섯 조청 조림’ 등의 레시피를 이 책에서 처음으로 공개하며, 자연과 조화로운 섭생 방법과 소식을 통해 탐욕 없이 살아가는 법을 강조한다. 이 책은 또한 최소한의 재료에 시간을 더해 멋과 맛을 이루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요리 레시피를 소개한다. 정관 스님은 제철 채소를 통해 자연과 어우러지는 섭생 방법을 깨우치고, 자신의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만 소식하며 탐욕 없이 살아가는 법을 되새긴다. 이러한 겸손과 절제, 그리고 가벼운 에너지는 독자들에게 깊은 통찰과 위로를 제공한다. 정관 스님은 음식을 만드는 것이 깨달음으로 가는 수행이라고 믿으며, 이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인류를 평화롭게 하는 바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정관 스님이 직접 집필한 레시피를 최초로 공개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의 시그니처 요리인 ‘표고버섯 조청 조림’부터 여름의 토마토장아찌, 가을의 우엉 고추장 양념구이, 그리고 각종 양념장과 청 담그는 방법까지 다양한 요리법이 담겨있다. 정관 스님과 스위스 출신 저널리스트 후남 셀만이 함께 작업한 이 책은 백양사 천진암 주지로서 정관 스님의 일상과 그가 음식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소개한다. 흔히 승려가 채식주의자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불교 국가에서는 여전히 고기와 생선을 먹는 경우가 많다. 정관 스님은 사찰음식이 단순한 채식이 아니라 수행자를 위해 고안된 음식이라고 본다. 그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 깨달음을 향한 수행이라고 규정한다. 음식을 만들 때 정성을 다하고, 더하기보다는 덜어낼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이는 인생의 이치와도 같다고 말한다. 정관 스님은 한 끼의 식사가 단순히 배고픔을 면하는 것을 넘어 삶의 의미를 찾고 인류를 평화롭게 하는 바탕이 될 수 있다는 철학을 공유하고자 한다. 정관 스님은 1957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뛰어난 음식 솜씨를 이어받았다. 출가한 이후, 그는 사찰음식을 만들고 연구하며,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사찰음식의 가치와 철학을 널리 알리고 있다. 2017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시즌3’에 출연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뉴욕 타임스는 그를 ‘철학자 셰프’로 소개했다. 현재 매년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방문객과 미쉐린 스타 셰프들이 그의 음식을 경험하기 위해 백양사 천진암을 찾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4-10

고르바초프의 리더십 중심으로 소련 붕괴의 순간 재구성

미국과 러시아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며 국제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전쟁으로 인해 수십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트럼프의 개입으로 휴전의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푸틴의 시간 끌기로 인해 더욱 암울해지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유럽군의 주둔 여부를 놓고 찬반 논쟁을 벌이고 있으며, 약소국인 우크라이나는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러시아가 왜 이러한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를 이해하기 위해 소련 시대의 역사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신간 ‘소련 붕괴의 순간’(위즈덤하우스)의 저자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런던정경대 교수(국제사)는 30년간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소련의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은 소련 붕괴의 원인을 단순히 불가피한 사건으로 보지 않고, 고르바초프의 리더십을 중심으로 붕괴의 순간을 재구성한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은 소련 경제를 무너뜨리고 민족 간 분리주의를 강화했다. 또한, 러시아의 민주주의적 포퓰리즘, 발트 3국의 독립 투쟁, 소련의 재정 위기 등이 소련 붕괴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저자는 소련 붕괴를 예측할 수 없었던 다양한 우발적 상황과 인간의 이상, 두려움, 열정이 어떻게 국가 붕괴로 이어졌는지를 상세히 설명하며, 고르바초프의 리더십과 정책이 소련의 자멸을 초래한 과정을 다룬다. 고르바초프의 리더십은 이데올로기적 열성과 정치적 소심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으며, 이는 소련의 자멸을 초래했다. 경제적 위기와 민족주의의 부상, 계획경제의 구조적 결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소련은 갑작스럽게 붕괴됐다. 저자는 소련 붕괴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여러 요인이 얽힌 정치적 사고라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소련 붕괴는 미국과의 힘겨루기, 고르바초프의 리더십, 경제 위기, 민족 갈등 등 여러 조건이 한순간에 폭발하며 ‘퍼펙트 스톰’을 일으킨 결과다. 저자는 소련 붕괴가 러시아를 제국주의의 망령으로 이끌었으며, 현재의 러시아는 소련 말기의 권위주의적 퇴행과 유사하다고 경고한다. 2014년 푸틴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러시아는 서방의 무관심 속에서 제국의 망령을 좇고 있다고 분석한다. 경제적 요인과 민족적 갈등 역시 소련 붕괴의 중요한 요소로 다뤄진다. 소련의 계획경제의 결함과 고르바초프의 시장경제 도입이 경제와 재정을 파괴했으며, 다양한 민족과 종족 간의 갈등이 소련의 내부적 불안정을 심화시켰다. 역사가에게 소련의 붕괴는 조각이 딱 들어맞지 않는 퍼즐이다. 퍼즐의 정중앙에는 소련의 마지막 공산당 서기장이자 초대 대통령,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고르바초프가 자리 잡는다. 저자는 이 지도자의 성격과 리더십이야말로 소련의 해체에 관한 이야기에서 많은 조각을 짜 맞추는 데 도움이 됐다고 설명한다. 1980년대, 15년간 모든 개혁에 저항해온 소련 지도부는 고르바초프 아래서 전 연방 규모의 경제적·정치적 변화를 개시했다. 그러나 그 개혁을 뒷받침하는 구상과 계획은 치명적으로 낡았고, 경제적으로 결함이 있었으며, 기존 경제와 정치체를 내부로부터 파괴했다. 특히나 고르바초프의 리더십, 성격, 신념, 무능력이야말로 소련 자멸의 주원인이었다. 고르바초프의 의도와 정책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 당시 소련이 맞이한 사회경제적 딜레마에 대한 균형 잡힌 탐구를 동반한 재평가를 시도한다. 경제 체계의 구조적 결함 탓인가, 민족주의 혹은 종족주의의 탓인가?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이 첨예하게 대립한 가장 큰 이유는 ‘이데올로기’였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한 미국과 1당 독재를 기본으로 한 소련은 이데올로기만큼이나 ‘경제적인 요인’이 두 나라의 관계를 크게 좌우했다. 소련 내부의 복잡한 민족 문제도 붕괴를 촉진했다. 다양한 민족과 종족이 뒤섞인 제국의 구조 속에서, 민족주의는 억눌린 감정으로 잠재돼 있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저자는 소련의 붕괴는 이런 개개의 요인이 연쇄반응을 일으킨 퍼펙트 스톰의 결과라고 말한다. 그는 느닷없는 소련의 붕괴가 러시아를 다시 제국주의의 망령으로 치닫게 했다고도 주장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서방과의 대립 구도, 내부 통제 강화 등 현재의 러시아는 소련 말기의 권위주의적 퇴행과 너무도 닮았다. 특히 2014년 푸틴이 크림반도를 병합한 이후 러시아는 서방의 무관심 속에서 다시 제국의 망령을 좇는 길로 들어섰다고 경고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4-10

베토벤의 소나타 시 와 소설로 만나다

낭만주의 음악가 베토벤의 소나타 4곡이 전율, 공포, 놀라움, 고통 등 삶의 희노애락을 느끼게 해주는 책으로 출간됐다. ‘베토벤을 읽다’는 출판사 득수의 ‘득수 읽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으로, 작년에는 쇼팽을 주제로 한 책에 이어 올해는 베토벤의 음악을 통해 그의 이야기를 소설과 시로 풀어냈다. 특히 이 책은 4명의 소설가와 4명의 시인이 베토벤의 소나타 ‘비창’, ‘월광’, ‘폭풍’, ‘열정’에서 영감을 받아 각 곡의 감정과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어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김도일, 백가흠, 이수경, 하명희 네 명의 소설가는 각각 베토벤 소나타 중 한 곡씩을 맡아 그 곡에서 얻은 느낌과 감상, 그리고 스토리를 바탕으로 작품을 재해석한 소설을 선보인다. 권상진, 김은지, 서숙희, 이병일 네 명의 시인은 베토벤 소나타 4곡을 모두 듣고 느낀 감정을 담아 시를 작성했으며, 각 소나타마다 시 1편씩을 수록했다. 또한, 이 책에는 최정호 포항시립교향악단 사무장이 베토벤 소나타에 대한 해설을 담아 독자들이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도서출판 득수의 김강 대표는 “1년에 한 번씩 작곡가가 남겨놓은 이야기를 시와 소설로 찾아보겠다는 것에서 ‘득수 읽다’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두 번째 작곡가로 베토벤이 남긴 수많은 명곡 중에서 대중적이면서도 그의 명성과 음악성을 가장 충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4곡을 선정해 8명의 작가가 작품을 창작했다”고 말했다. 한편 도서출판 득수는 ‘베토벤을 읽다’ 출간을 기념해 베토벤 소나타‘비창’, ‘월광’, ‘폭풍’, ‘열정’을 지역의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직접 연주하는 음악회 ‘베토벤을 듣다’를 오는 12일 오후 3시 포항시청 대잠홀에서 연다. 해설은 포항시립교향악단 최정호가 피아노는 길은영, 이은총, 이슬기, 황지영이 함께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4-07

사건지평선 넘어 닿을 수 없는 ‘블랙홀’ 속으로

블랙홀은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존재다. ‘블랙홀을 알기 위해서는 물리의 거의 모든 내용을 알아야 한다’고 할 만큼, 블랙홀은 물리학, 천문학 등을 공부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다. 블랙홀을 통하지 않고서는 우주에 진입할 수 없다. 신간 ‘블랙홀’(알에이치코리아)은 블랙홀의 신비로운 세계로 초대하는, 물리학과 천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과학서다. ‘차세대 칼 세이건’이란 별칭이 붙은 물리학자 브라이언 콕스 맨체스터대 입자물리학과 교수와 같은 대학 동료 제프 포셔 교수가 공동 집필한 이 책은 블랙홀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과학자들의 치열한 연구와 논쟁을 다루며, 물리학의 거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방대한 지식을 제공한다. 저자들은 아인슈타인에서 스티븐 호킹 그리고 오늘날 양자역학 연구에 이르기까지 한 세기에 걸친 물리학의 최전선을 살펴본다. 저자들은 블랙홀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과학자들의 수많은 논쟁과 연구를 소개한다. BBC 과학 다큐멘터리 ‘경이로운 우주’, ‘경이로운 생명’ 등에 출연하면서 유명해진 브라이언 콕스는 과학의 신비를 대중에게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차세대 칼 세이건’이라는 명성을 얻은 물리학자다. 같은 대학에서 입자물리학을 가르치는 제프 포셔와 함께 연구를 진행하며 그간 ‘퀀텀 유니버스’, ‘E=mc² 이야기’등 몇 권의 베스트셀러를 출간했다. 블랙홀은 그 자체로 미지의 영역이다. 빛조차 탈출할 수 없는 이 천체는 18세기 영국의 과학자 존 미셸이 처음으로 그 존재를 제안했다. 이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등장하면서 블랙홀 연구는 급물살을 탔고, 최근에는 ‘사건지평선 망원경’을 통해 실제 블랙홀 이미지가 촬영되기에 이르렀다. 이 책은 블랙홀 연구의 역사와 현재를 아우르며, 양자역학, 일반상대성이론, 호킹 복사, 슈바르츠실트 해 등 다양한 이론과 개념을 소개한다. 특히 콕스 교수는 복잡한 물리학 개념을 일상적인 예시로 풀어내며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 날 가족 간의 TV 채널 쟁탈전을 통해 시공간 개념을 설명하는 식이다. 블랙홀에 대한 연구는 단순히 천체의 비밀을 밝히는 것을 넘어, 우리 우주가 거대한 양자 컴퓨터일 수 있다는 놀라운 결론에 이른다. 저자들은 블랙홀의 복잡성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전달하며, 물리학의 최전선을 탐험하는 여정을 제공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책의 주제는 블랙홀이다. 블랙홀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과학자들, 수많은 논쟁과 연구로 책의 서막이 열린다. 호기심에서 시작된 연구는 블랙홀에서 우주의 기원과 시공간의 근본적 특성까지 유추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양자역학, 사건 지평선, 일반상대성이론, 특이점, 호킹 복사, 커 블랙홀, 슈바르츠실트 해, 펜로즈 다이어그램 등 블랙홀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우리는 왜 블랙홀을 안다는 게 어려운 일인지 곧바로 깨닫는다. 블랙홀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양자역학, 상대성이론, 열역학을 알아야 하는데 이는 곧 물리학의 거의 모든 내용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에서 스티븐 호킹 그리고 오늘날 양자역학 연구에 이르기까지 한 세기에 걸친 물리학의 최전선을 향한 과학적 여정은 우리 우주가 거대한 양자 컴퓨터일 수도 있다는 놀라운 결론에 도달한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시공간, 블랙홀. 빛마저 빠져나오지 못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천체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 내뱉은 사람은 18세기 영국의 목사이자 과학자인 존 미셸이었다. 그 별 위에 껍질을 씌운다면 그 이름은 사건(의) 지평선이다. 그 너머에 존재하는 ‘특이점’은 자연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통하지 않는, 장소라기보다 시간이며, 어쩌면 “시간의 끝”이다. 블랙홀에 관한 본격적 연구는 1915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서 비롯됐다. 아인슈타인은 물론 후배 물리학자들도 한동안 블랙홀이 수학적으로 유도 가능할 뿐 실존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2019년 인류는 지구 곳곳의 전파망원경을 네트워크로 연결한 ‘사건지평선 망원경’을 통해 실제 블랙홀을 촬영하기에 이르렀다. 콕스는 BBC 과학 다큐멘터리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입자물리학자다. 그는 블랙홀이 “물리학을 공부하는데 더없이 좋은 과제”라고 말한다. 그는 일반상대성이론, 호킹 복사, 슈바르츠실트 해, 홀로그래피 원리, 양자적 얽힘 등 우리가 사건지평선을 넘어 특이점에 도달하기까지 필요한 이론과 개념들을 세세히 그러나 흥미롭게 소개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4-03

‘한나 아렌트의 삶과 사랑’ 삶과 사유 통한 정치철학의 통찰

독일 출신의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작가, 정치 이론가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를 다룬 ‘한나 아렌트의 삶과 사랑’(마르코폴로 출판사·사진)이 출간됐다. 스웨덴의 학자 겸 작가인 안 헤벨라인이 집필한 이 책은 단순한 전기 형식을 넘어,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철학자 중 한 명인 한나 아렌트의 삶과 사상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한나 아렌트(1906∼1975)는 나치 독일의 만행을 고발하며 ‘악의 평범성’ 개념을 제시한 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녀는 현대 사회가 행정 관료제의 안락함을 위해 민주주의의 자유로부터 자주 후퇴한다고 경고하면서도, 어떠한 정부도 인간의 자유를 완전히 소멸시킬 수 없다고 믿었다. 이러한 그녀의 정치적 유산은 점점 더 억압적인 세계에 맞서 자유를 강력히 옹호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안 헤벨라인은 아렌트의 사고가 그녀의 삶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며, 철학과 정치의 교차점에서 그녀의 사유가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조명한다. 특히, 나치 정권의 부상과 냉전 위기 속에서 인류의 가치와 죄책감, 책임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형성한 그녀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아렌트가 스승이자 한때 열렬히 사랑한 연인이었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와의 관계를 통해 불가능해 보이는 화해와 용서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사랑만이 용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썼으며, 이는 그녀의 철학적 탐구에 깊이 반영됐다. 하이데거 외에도 발터 벤야민, 시몬 드 보부아르, 장 폴 사르트르 등 당대 지식인들과의 관계를 통해 아렌트의 지적 여정을 더욱 풍부하게 그려낸다. 안 헤벨라인은 아렌트가 사상가로서 발전하는 과정을 그녀의 삶 속 중요한 사건들과 어떻게 얽혀 있었는지를 보여주며, 복잡하면서도 매혹적인 초상화를 제공한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현재 우리가 직면한 정치적, 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며, 한나 아렌트의 사유와 삶의 깊이를 체험할 수 있게 한다. ‘한나 아렌트의 삶과 사랑’은 단순한 전기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현대 정치철학의 거장을 새롭게 조명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4-03

타인이 규정하는 나의 실패… 실패에서 무엇을 배우나

실패에서 배워야 혁신과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실패에서 배우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한국 사회는 실패에서 제대로 배울 만한 환경과 분위기를 갖고 있는가? 신간 ‘실패 빼앗는 사회’(위즈덤하우스)는 실패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법을 탐구한 책이다. 2021년 6월 설립된 카이스트 실패연구소는 3년 넘는 기간 동안 다양한 세대와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실패에서 배우는 법을 연구해왔다. 이 책은 실패에서 배우기가 개인의 의지나 능력에 국한되지 않으며, 오히려 사회 구조와 문화가 이를 방해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들은 실패의 쓸모를 알리는 것을 넘어, 각자의 실패 경험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성찰하고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실패에서 제대로 배울 수 있음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2024년 10월 실패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실패가 성공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한 사람이 73.5%로, 실패가 성공의 장애물이라고 응답한 사람(26.5%)의 두 배를 넘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 전반은 실패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으며, 이는 실패를 통한 학습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은 “성공률이 80%가 넘는 연구는 지원하지 않겠다”는 파격적인 선언을 하며, 실패를 거듭해도 재시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실패연구소를 설립하게 된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실패연구소는 참여형 연구, 세미나, 공모전, 전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실패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자 노력했으나, 실제로 사람들에게 가닿지 못하는 문제를 겪었다. 이에 연구소는 실패를 기록하고 공유하는 과정에 집중하며, ‘포토보이스’라는 질적 연구 방법을 도입해 학생들이 자신의 실패 경험을 사진과 글로 기록하게 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실패를 보다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통해 얻은 배움을 다양한 방식으로 공유하게 됐다. 안혜정 카이스트 실패연구소 연구조교수, 조성호 카이스트 전산학부 교수,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은 이 책에서 실패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법을 제시하며, 개인과 조직, 사회 전반에 걸쳐 실패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배울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저자들은 “실패를 용인하고 배움을 장려하는 문화에서는 실패로부터 학습이 활발하게 일어난다”고 강조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4-03

걸작은 천재적 재능일까, 노력의 결과일까?

천재는 타고나는 것인가, 아니면 길러지는 것인가? 이 질문은 오랜 세월 동안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오랫동안 천재가 신으로부터 부여된 타고난 재능이라고 여겨졌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교육과 사회적 환경이 천재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주장도 늘었다. 신간 ‘천재와 거장’(글항아리)의 저자 데이비드 갤런슨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학 이론과 관점으로 천재성을 분석한다. 그는 대학 시절 현대미술 강연 수강 후 미술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고, 훌륭한 컬렉션을 보유한 여러 미술관을 다니며 작품을 감상하며 경매가 분석을 통해 작품의 가치를 연구했다. 그 결과, 젊은 나이에 높은 가치를 창출하는 ‘개념적 혁신가’와 경력을 쌓아가며 가치를 높이는 노련한 ‘실험적 혁신가’의 차이를 발견했다. 예를 들어,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은 26세에 그린 작품이 67세의 작품보다 4배 더 높은 가치를 보였고, 세잔의 경우 67세의 작품이 26세의 작품보다 15배 더 높은 가치를 보였다. 저자는 이러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념적 혁신가는 연역적 사고를 통해 어린 나이에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급격한 창조를 이루는 반면, 실험적 혁신가는 귀납적 사고를 통해 인생 후반부에 주요 성과를 낸다고 설명한다. 이 책은 ‘두 혁신가 사이의 긴장과 협력이 예술적 혁신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두 접근 방식의 차이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얻는 이점을 설명하며, 인간의 창의성에서 생애 주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결국, 이 책은 천재와 거장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예술 발전에 기여했으며, 이들의 혁신적 접근 방식이 예술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결론짓는다. 저자는 개념적 혁신가의 대표 주자로 피카소와 앤디 워홀을, 실험적 혁신가로는 세잔·폴록·로스코 등을 꼽는다. 또한, 많은 실험적 혁신가들이 완벽주의적 성향 때문에 작품을 쉽게 공개하지 않으며, 외부 비판을 피하려다 보니 성장 속도가 느려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불확실성을 연구의 촉매제로 삼아 더 많은 연구를 자극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두 접근 방식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보여주며, 이를 통해 인간의 창의성에서 생애 주기의 역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저자는 두 유형의 혁신가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류의 예술 발전에 기여했음을 강조하며, 각각의 접근법이 지닌 독특한 가치를 인정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3-27

공격을 넘어서는 감정… 왜 세상은 분노에 휘둘리는가

현대 사회는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정치권을 필두로 극단적 선동과 혐오 발언으로 물든 공론장, 소셜 미디어에서의 마녀사냥 등 각종 분노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분노는 단순한 감정을 넘어, 문화, 이념, 성별, 계급 간의 갈등을 증폭시키며 사회적 기능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저명한 영문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조시 코언 영국 골드스미스런던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는 신간 ‘분노 중독’(웅진지식하우스)에서 이러한 분노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그 기원과 대처 방안을 탐구한다. 그는 분노를 ‘의로운 분노’, ‘실패한 분노’, ‘냉소적 분노’, ‘유용한 분노’ 등으로 나눠, 문학과 심리학, 역사와 철학을 통해 그 내밀한 기원을 분석한다. 저자는 개인의 내면과 사회·정치적 맥락을 모두 아우르며, 분노의 본질을 탐구하는 방대한 지적 여정을 시작한다. 감정의 도가니와 같은 자신의 상담실에서부터 성경과 셰익스피어, 프로이트와 헐크, 트럼프와 툰베리를 넘나들며, 단순히 분노를 나쁜 것, 위험한 것으로 단정 짓는 시각을 뛰어넘는 인간 본성에 관한 근본적 통찰을 펼쳐 보인다. 저자는 분노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사랑처럼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분노는 공격과 짝을 이루지만, 공격은 분노를 표현하는 여러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분노는 억압되거나 과장된 친절로 감춰질 수 있으며, 이는 자기 이해와 성찰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특히 저자는 ‘의로운 분노’에 주목하며, 이는 자신이 옳다는 확신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분노는 공격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폭력적일 수 있으며, 무능하고 취약한 자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분노는 억압될 경우 무의식에 남아 정치적 자원으로 악용될 수 있다. 따라서 저자는 분노를 완전히 없애거나 관리하는 대신, 분노를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분노를 느끼고 이를 표현함으로써, 이를 예술적 창조나 자아 성찰의 도구로 전환할 수 있다. △공격과 폭력을 부추기는 성난 감정의 정체 저자는 서론에서 정신분석학을 기반으로 분노를 재조명한다. 일반적으로 분노를 공격과 동일시하지만, 실제로 공격은 분노를 표출하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분노는 태어날 때부터 경험하는 욕구와 만족의 간극에서 비롯된다. 요구가 거부되고 불만이 지속될 때, 분노는 무의식에 ‘총체적 무력감’으로 새겨진다. 이러한 유아기의 분노는 일생의 여러 단계에서 끈질기게 남아 영향을 미친다. △스스로가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의 분노는 자신과 세상을 파괴한다 저자는 분노의 이면에 있는 유아기적 무력감을 지적하며, 분노의 네 가지 유형 중 첫 번째로 주목하는 것은 ‘의로운 분노(Righteous Rage)’다.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확신에서 비롯되는 이러한 분노는 뚜렷한 공격으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폭력적일 수 있다. 옳음은 울음을 통해 즉각적인 보호를 받으며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한다는 ‘전능 환상’과 유사하다. 저자는 이러한 심리적 배경에서 발생하는 ‘의로운 분노’가 어떻게 총기 난사범이나 폭탄 투척범들의 정의 구현 서사로 이어지고, 사실을 왜곡하는 음모론이나 ‘우리’와 ‘저들’을 나누는 분열적 사고로 발전하는지 상세히 설명한다. △우리는 분노를 완전히 없앨 수 없는 걸까: 분노의 정치적 악용 분노를 완전히 제거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는지 묻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분노를 억제하거나 긍정적 사고를 강요하는 접근, 즉 ‘실패한 분노(Failed Rage)’는 무력감과 우울감을 초래하며, 수동적 공격 등 부정적 방식으로 표출된다. 억압된 분노는 정치적 악용에 취약해진다. ‘세상 다 망해버려라’, ‘모든 것은 조작되었다’와 같은 구호는 공동체를 결속시키며 모호한 위안을 제공한다. 또한, 극단주의자들은 이를 이용해 ‘외부의 적’을 지목하고 폭력을 정당화한다. 이러한 분노는 냉소적 분노(Cynical Rage)’로 변질된다. △분노하는 것과 분노를 느끼는 것은 다르다…분노의 파국적 영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법 분노는 인간의 원초적 감정이며 삶의 필연적 요소다. 이를 다루는 방법으로 저자는 분노를 ‘느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과정에서 분노는 예술적 창조의 원동력, 자아와 관계의 균열을 메꾸는 접착제, 그리고 타인에 대한 진정한 호기심으로 변모한다. ‘유용한 분노(Usable Rage)’는 충족되지 않은 분노의 무게를 견디는 내성을 통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불행과 분노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기 쉽다. 이해되지 않은 분노는 우리를 내부에서부터 갉아먹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자기감정에 대한 깊은 성찰과 타인에 대한 공감, 호기심을 회복해야 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3-27

가족 위한 사랑과 희생… ‘엄마의 고물상’에 담아

사람들이 쓰다 버린 온갖 물건들이 모이는 고물상 흙바닥에서 다섯 아이는 맨발로 뛰어다니며 자란다. 엄마는 갈 곳 없는 사람들에게 방을 내어주고, 손수레와 엿판도 마련해 주었다. 그들은 아침마다 밤새 만든 엿을 손수레에 가득 싣고 가위를 흔들며 길을 나선다. “고물 삽니다! 맛있는 엿으로 바꿔 줍니다!” 소란스럽고 어수선해도 따뜻한 정이 흘러넘치는 그곳은 엄마의 고물상이다. 도서출판 비엠케이에서 출간된 그림책 ‘엄마의 고물상’은 다섯 아이를 키우기 위해 고물상을 열었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은 대통령 직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현지영 작가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그림책이다. 한국어린이교육문화연구원의 ‘으뜸책’으로 선정됐으며, 2025년 볼로냐 아동도서전에 위탁도서로 해외에 소개되기도 했다. 현지영 작가는 다섯 남매 중 넷째로서, 공무원으로 일하면서도 오랫동안 품어온 그림책 작가의 꿈을 이뤘다. 특히 올해 아흔넷을 맞은 그녀의 어머니에게 이 책을 바치고 싶다는 소망을 실현하게 됐다. ‘엄마의 고물상’은 고물상이라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가족의 사랑과 희생을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엄마가 다섯 아이를 키우기 위해 연 고물상은 단순한 폐기물의 집합소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놀이터였다. 작가는 이 그림책을 통해 고난 속에서도 가족을 위해 헌신한 어머니의 모습을 생생히 묘사한다. 어머니는 갈 곳 없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정을 나눴다. 그림책 ‘엄마의 고물상’은 독자들에게 시대를 초월한 감동과 희망을 전달하며,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의 힘을 일깨운다. 현지영 작가는 “엄마의 희생과 사랑은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가치”라며 “이 책이 독자들에게 아름다운 가치와 희망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3-23

문무학 시인 ‘예술로 노는 시니어’출간

문무학 시인 대구예총 회장을 역임한 문무학 시인이 ‘예술로 노는 시니어’(뜻밖에)를 펴냈다. 이미 어르신 세대가 된 문 시인이 자신의 시니어 일기이자 문화, 예술 섭렵 기록을 담담한 일상 언어로 엮어냈다. 5명 중 1명이 시니어가 된 사회에서, 시니어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사는 날이 많아져도, 사는 일에 익숙해지기는 쉽지 않다고들 한다. 문무학 시인은 고민 끝에 예술에서 그 답을 찾고자 결심하고 직접 실천에 나섰다. 작가는 이미 매주 한권씩 쉰 두권의 책을 읽고 쓴 서평을 모아 ‘책으로 노는 시니어’를 세상에 내놓은 적이 있다. 그리고 ‘책으로 노는 시니어’의 범주를 확장해 이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예술로 노는 한 시니어의 실천기 성격을 띠고 있다. 작가는 한 해 동안 다양한 예술 장르를 넘나들었다. 한 달 4주를 첫째 주는 영화나 연극, 둘째 주는 공연, 셋째 주는 책, 넷째 주는 전시를 보고 매주 한 편씩 그 관람기를 남겨 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예술로 노는 시니어’는 단순히 한 시니어의 일 년 기록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수백 년을 살아남은 책이, 지역에서 누릴 수 있는 수준 높은 문화생활과 지역 예술가들의 창작열이 이 한권의 책에 담겨 있다. 저자는 좋으면 좋은 대로,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솔직하게 감상기를 펼쳐 나갔다. 단순 예술 감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련 일화와 자료, 해석 등을 추가해 독자들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돕고, 예술소비에 앞서 미리 참고하면 좋을 것, 찾아보면 좋을 것들을 짚어준다. 저자는 매주 한 장르의 예술을 소비하는 일을 통해 삶에 활기가 돌고 생각이 많아진 것에 더해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긍심이 생겼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처럼 문화생활을 향유하며 지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도 지루하지 않는 삶,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삶,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삶을 시니어들도 찾아보자고 권하고 있는 듯하다. /한상갑기자

2025-03-20

암각화 2-고래의 항변: 황폐해져가는 우리 영혼과 정신을 깨우다

“대관절 사무친 원한을/땅속에 묻고 살았더냐//단칼에 참수형을/당하고도//줄/줄/이/끌려온//영어(囹圄)의/저 몸.”- 손수여 시 ‘무시래기’ 전문 손수여 시인의 아홉 번째 시집 ‘지금도 시위 중이다’(신아출판사)가 출간됐다. 68편의 시가 4부로 나눠 구성된 시집이다. 손수여 시인은 시집 앞머리 ‘시인의 말’에서 ‘결이 곱고 쉬운 시, 나만의 색깔로 그려볼 수 없을까. 홀아비바람꽃이 불러 모은 천상의 화원처럼 얼마나 더 간절해야 향기 글꽃 나도 피울 수 있을까’라고 쓰고 있다. 표제가 ‘지금도 시위 중이다’인 이 시에서, 시인은 삭막해지는 환경 재해 속에서 인류의 생존을 위해 암각화의 고래들이 시위하는 모습을 통해, 황폐해져 가는 우리의 영혼과 정신세계를 지키고자 시를 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시 ‘암각화 2-고래의 항변’의 마지막 구절인 ‘경계를 내려놓고 허구 세월을/ 반구대에서 지금도 시위 중이다’는 이러한 메시지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손 시인의 시 세계는 삶의 본질을 직시하는 데 있어 과거와 현재, 개인과 역사, 현실과 초월적 사유를 넘나드는 깊은 통찰과 사색에 기반하고 있다. 일상과 역사적 경험을 소재로 해, 단순한 단어 나열에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한국적 정서와 삶의 근원을 탐구하려는 태도가 특징이다. 시 ‘노루 한 마리가’는 아련한 회억이 묻힌 경주 계림과 천년 왕조의 숨결이 일렁이는 반월성을 배경으로 하며, 석굴암과 토함산의 전설을 통해 서라벌의 불국토적 풍경을 묘사한다. 시인은 과거의 흔적을 따라가며 사라진 존재들을 떠올리며, 자연 속에서 시인의 부재를 느끼고 슬픈 노루가 바람의 시를 듣는 장면을 그려낸다. 손수여 시인 ‘홀아비바람꽃’에서는 눈 덮인 땅에서도 피어나는 꽃들과 함께, 사랑하는 이가 없는 봄의 허무함을 표현하며,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도 인간의 감정과 연결됨을 보여준다. 시인은 오랜 시간 숙성된 시를 창작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아, 그리움과 상실, 그리고 회복의 과정을 시로 풀어내고 있다. 김철교 문학평론가는 “손수여 시인의 시 세계는 삶의 본질을 직시하는데 있어서 과거와 현재, 일상과 영성의 경계를 아우르는 통합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개인적 감정 발산에 머무르지 않고, 전통과 역사, 인간과 자연을 아우르며 인간 내면의 진정성을 발견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라고 평했다. 손수여 시인은 한국시학, 시세계를 통해 시로, 월간 문학을 통해 문학평론으로 등단했다. 제4회 도동시비문학상, 제34회 P.E.N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시집으로는 ‘성스러운 해탈’, ‘숨결, 그 자취를 찾아서’ 등 총 8권을 출간했으며, 평론으로는 ‘매헌 윤봉길의 문학사적 위상 조명’ 외 다수를 집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3-20

AI 시대, 지속가능한 기업 성공 방법 제시

포스코에서 20년 넘게 기술혁신 컨설팅을 담당해온 장광일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가 신간 ‘AI 시대, 그래도 사람이 최고다’(퍼플)를 펴냈다. 저자의 풍부한 현장 경험과 통찰을 바탕으로 기업이 지속 가능한 성공을 이루는 방법이 제시된 이 책에는 ‘포스코 현장 혁신 스토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장 교수는 동국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졸업하고, ISO 14001 및 ISO 9001 심사원보 자격을 갖춘 전문가로서 6시그마·통계·TPM 자주보전 등 다양한 혁신 기법을 기업 현장에 적용해 왔다. 그는 경북매일신문에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연재한 칼럼과 20년간의 컨설팅 경험을 바탕으로, 매년 변화하는 시장 환경과 기술 발전 속에서도 기업의 생존과 성장은 운이 아닌 철저한 준비와 전략에 달려 있음을 강조한다. 장 교수는 1990년 포스코 제강부에 입사해, 15년 후인 2005년에 혁신지원그룹에 소속됐다. 이 시기에 그는 포스코만의 맞춤형 혁신 활동인 QSS(Quick Six Sigma)를 처음 도입하고 전파하며 회사의 변화를 주도했다. 그는 작은 정리와 개선부터 시작해 현장을 변화시키는 경험을 쌓아왔다. 장 교수는 “현장에 직접 가서 보고, 문제를 느끼고, 해결책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다”며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또한, “변화하지 않는 기업은 시장의 흐름에서 도태된다”면서 변화의 패턴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장 교수는 직장 내 즐거움과 몰입할 수 있는 일터의 중요성을 들어 “기업은 개인의 성장을 돕고, 개인은 기업의 성과를 높인다”는 선순환 구조를 제시한다. 책은 총 8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각 장에서는 혁신과 지속 성장, 안전과 친환경 경영, 현장 개선과 동반성장, 조직 문화와 소통 리더십, 효율성과 낭비 없는 운영, 직장 생활과 개인 성장, 리더십과 협상 전략, 미래를 위한 기술과 방법론 등을 다룬다. 장 교수는 “AI 시대에도 여전히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작은 변화가 큰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이 책은 단순한 이론서가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검증된 사례들을 바탕으로 조직이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향과 전략을 제시한다. 장 교수는 “미래는 준비된 자의 몫”이라며 이 책이 독자들에게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데 실질적인 지침서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3-20

“시와 밥 사이를 헤매며 혹독한 지금을 뚫고 나가는 희망의 불사조”

신경용사진 시인의 첫 시집 ‘시간의 강 위에 피어난 불꽃’(북랜드)이 출간됐다. 신 시인은 계간 ‘문장’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자신만의 개성적인 감각과 체험의 깊이가 담긴 내용과 직선적이고 단순한 형식을 추구하며 고유한 시 세계를 구축해 왔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금화복지재단 이사장인 신 시인은 지난해 5월 수필가로 먼저 문단에 등단해 수필집 ‘금화의 노래’를 펴낸 바 있다. 이번 시집에서는 신 시인의 유년 시절의 슬픈 이야기와 사모곡, 성공과 좌절 속에서도 교육사업을 일으킨 노정, 비슬산을 둘러싼 수필가, 시인으로서의 따스한 시선에 대한 인간적 정서가 아름다운 시어에 녹아 있다. 특히 감성적 서정시의 빼어난 형상화는 주목할 만한 성취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 시인의 시는 설움과 고통과 외로움이 흥건하지만, 오뚝이 정신으로 다시 일어서서 걸어가는 힘이 있다. 모호하지 않고 단순하며 직유적임에도 오히려 이런 점이 주제를 명료하게 해 공감이 더 깊고 울림이 크다. 직선적인 시적 기술로 농밀한 시어를 통해 타인과의 공감을 끌어내는 강한 힘이 신경용 시의 장점이다. 김동원 문학평론가는 신 시인의 시를 “국밥처럼 뜨거운 김이 오르는”, “외로운 울음소리가 들리는”, “찬 겨울 골목을 서성이는 붉은 노을의 시”라고 평가했다. 또한 “눈물 젖은 빵을 먹은 자의 설움이자, 생의 쓸쓸함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고독한 시”라며, “꿈과 욕망이 뒤엉켜 현실로 드러나는” 신 시인의 시는 “시와 밥 사이를 헤매며 혹독한 지금을 뚫고 나가는 희망의 불사조”라고 말했다. 신 시인은 시집의 표제작인 ‘침몰하지 않는 배’에서 “나는 침몰하지 않는 배/실패의 능선을 넘어 검은 구름을 지나/폭우가 쏟아져도 뚫고 나가리/군데군데 피 맺힌 상처들 만나도/꺼꾸러지지 않으리/슬픔과 고통을 모두 안고 생을 건너리”라며 어떠한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를 표현했다. 신 시인의 시는 오랜 체험과 농밀한 시어로 생활과 정서를 잘 버무려 타인과의 공감을 목적으로 하며, 좋은 시는 리듬이 중요하듯 그의 변주는 음악적이다. 최근 그의 시작(詩作)의 경향은 익숙함에서 새로운 비밀을 찾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으며, 단순하고 심플한 구도에서 시의 요체가 드러난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인은 드라마틱한 시인의 인생 역전을 노래한 61편의 시편을 1부 ‘늘푸른실버타운’, 2부 ‘어릴 적 나는’, 3부 ‘비슬산 참꽃’, 4부 ‘가을 당신’, 5부 ‘지혜의 문’등 총 5부에 나눠 생생하게 실었다. /윤희정기자

2025-03-13

어느날 이름이 도망쳤다… 존재권을 상실한 인간

이정희 위덕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현대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아베 코보(1924∼1993)의 출세작 ‘벽’(이정희 번역, 마르코폴로)이 새롭게 복간됐다.‘벽’은 25년 전 소량 번역 출판돼 희귀본이 된 1951년 제2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품집이다. 지난 2000년 한국어판으로 처음 나왔으나 오랫동안 절판 상태였다가 이번에 재발간이 결정됐다. 출판에 앞서 알라딘이 북펀딩을 시작해 단 며칠 만에 목표액을 달성한 것을 봐도 국내 아베 코보 팬들이 복간을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 알 수 있다. 역자인 이정희 위덕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는 이번 복간에서 수록 작품 중 화자의 말투를 오리지널 원서에 가깝게 경어체로 환원시키는 오류를 바로잡았다고 말했다. ‘S. 카르마씨의 범죄’의 주인공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자기 이름이 도망친 것을 알게 된다. 이 순간부터 그는 관습으로 포장된 현실 세계에서 존재권을 상실한다. 존재권을 상실한 인간, 그것은 현실 세계에선 범죄자가 아니면 미치광이 외에는 없다. 주인공은 당연히 읽는 독자들의 시선에 따라 세상으로부터 그 존재를 모두 강탈하려고 하는 흉악 범죄자나 미치광이로 비치게 된다. 존재권을 상실해 어디에도 귀속되지 못한 주인공의 눈에는 현실 세계가 더없이 기상천외하고 부조리한 덩어리로 비친다. 자신과 타인이 서로 각각 또 하나의 자신 혹은 타인으로 변신하는 주인공은 현실 세계 속에서 살고 있으되 자신의 명함이나 번호로 존재하고 사랑하는 소녀는 마네킹 인형으로 변신한다. 이것은 카프카 이상으로 카프카적인 그로테스크한 세계다. 이 때문에 아베 코보는 ‘일본의 카프카’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베 코보는 카프카의 아류가 아니다. 아베 코보의 독창성을 알기 위해선, 독자는 꼭 카프카와 아베 코보를 비교해 본질적인 차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카프카에 비해 아베 코보의 작품이 훨씬 가볍고 밝은 인상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베 코보의 가벼움 내지 밝음은 그의 주인공이 현실 세계의 존재권을 상실해도 그다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으며, 주인공은 상실에 대해 그 어떤 향수도 느끼지 않는다. 사람들은 우연한 계기로 저마다 벽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곳은 인간의 생활과 우주의 법칙이 교차되는 장소이지만 어느 순간 벽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베 코보가 ‘마법의 분필’로 벽을 그리면 벽은 존재한다. 작품집 ‘벽’에는 ‘S. 카르마씨의 범죄’, ‘붉은 누에고치’, ‘홍수’, ‘마법의 분필’, ‘바벨탑의 너구리’, ‘사업’ 등 모두 6편의 중단편이 수록돼 있으며, 책의 말미에 역자 이정희 교수의 ‘일본 현대문학의 기수, 아베 코보의 문학 세계’가 실려 있어 독자의 소설 읽기를 돕는다. 역자인 이정희 교수는 일본 쓰쿠바대학에서 아베 코보 연구로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한 한국 최초 아베 코보 연구자다. 아베 코보의 장편소설 ‘타인의 얼굴’을 번역하기도 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3-13

‘비폭력 저항’이 세상을 바꿀 희망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4년이 흘렀지만, 세계 곳곳에서는 여전히 전쟁과 무력 충돌로 인한 무고한 희생이 계속되고 있다. 군사주의가 지배하는 시대, 힘으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더 큰 폭력을 불러오고 있다. 한국 역시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지난 5년간 국방비 예산이 정부 재정의 12~14%를 차지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군사주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평화는 여전히 멀리 있다. 이제는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역사 속에서 비폭력으로도 평화를 수호한 사례가 있지 않을까? 덴마크 출신 사회학자 마이켄 율 쇠렌센이 쓴 ‘전쟁 없는 세상’(오월의봄)은 바로 그 해답을 제시한다. 평화주의, 비폭력 시민 저항에 관한 회의론자와의 이 짧은 대화록인 이 책은 군사주의 아닌 평화주의에, 폭력 수단이 아닌 비폭력 수단에, 지배자의 논리를 따르지 않는 시민 저항에 정말로 힘이 있느냐는 가슴속 깊은 우리의 의심을 하나하나 해소해준다. 저자는 200쪽이 채 되지 않는 짧은 분량 안에 비폭력 시민 저항의 이론적 토대와 역사적 사례,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평화주의적 관점, 그리고 구체적인 대안과 실천 방안을 압축적으로 담아냈다. 회의론자의 현실적인 질문들2014“이런 시기에 어떻게 평화주의자가 될 수 있습니까?” “우크라이나에 무장 방어가 아닌 다른 대안이 있습니까?” “비폭력 저항으로 점령자를 몰아낼 수 있습니까?”2014에 대해 저자는 한 사람의 평화주의자로서 차근차근 답변하며, 독자들에게 평화주의와 비폭력 시민 저항을 현실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특히, 이 책은 도덕주의적 차원을 넘어 실용주의적 차원에서 비폭력 저항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이미 비폭력 저항이 실천되고 있으며, 한국의 평화운동 역시 한국산 무기의 우크라이나 수출 반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반대 등 다양한 연대 활동을 통해 비폭력 저항에 힘을 보태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그리고 제3국의 시민들이 이미 비폭력 저항을 실천해왔다. 저자는 그러한 저항의 사례들을 함께 아우르며 이러한 움직임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라고 짚는다. 전쟁이 어떠한 결말을 맞게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전쟁을 마주한 당국의 시민들이 아니더라도 비폭력 저항에 힘을 보탤 다양한 연대 활동의 방법들이 있다. 실제로 한국의 평화운동은 한국산 무기의 우크라이나 수출 및 이전에 반대하는 한편,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따른 한국군의 우크라이나 파병 가능성에도 반대 목소리를 높여왔다. 러시아의 병역거부 난민들을 지원하는 활동도 전개 중이다. ‘전쟁 없는 세상’은 군사주의에 대한 믿음을 돌아보고, 비폭력 저항이 만들어낸 과거와 현재의 변화,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변화들을 알려준다. 폭력에는 폭력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오래된 환상에 균열을 일으키며, 군사력 증강이 평화 수호로 이어지는지, 아니면 폭력의 악순환을 초래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윤희정기자

2025-03-06

나 누굴 살아온 걸까?… 중년의 위기 넘어 진정한 자기찾기

인간 심리를 의식과 무의식의 상호작용 속에서 해석한 카를 구스타프 융은 “마흔이 되면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중년의 위기는 겉으로는 안정된 삶을 사는 듯하지만 내면은 불안하고 공허한 시기를 의미한다. 이러한 중년의 위기를 ‘진정한 자기를 찾으라는 초대장’으로 해석하며 의미 있고 충만한 삶을 찾아가는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 출간됐다. 바로 세계 최고의 융 권위자로 불리는 제임스 홀리스 미국 세이브룩대학교 교수의 ‘마흔에 읽는 융 심리학’(21세기북스)이다. 저자는 마흔 즈음에 찾아오는 위기를 ‘진정한 내가 되라는 내면의 신호’로 해석하며, 이를 무시하지 말 것을 제안한다. 그의 안내를 따르면 타인의 기대나 사회문화적 압박, 트라우마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다. 마흔 이후의 삶은 둘로 나뉜다. 지금껏 살던 대로 살면서 우울한 잠에 취해 있거나, 불안하더라도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다시 한번 성장을 선택하거나. 내면의 초대에 응답하면 치유의 길을 통과해 더 큰 본연의 나를 만날 수 있다. 인생의 전반부는 외적 성취를 좇으며 자아의 만족을 최우선 순위에 두기에 내면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하지만 자아 아래에는 무의식을 포함한 더 큰 전체로서의 ‘자기(Self)’가 있으며, 이 자기는 마흔 즈음부터 ‘이게 정말 내가 원한 삶이었나?’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의문은 혼란, 우울, 무기력, 실망 등으로 찾아오지만, 이는 재난이 아니라 더 큰 ‘자기’가 보내는 초대장이다. 이 초대는 의식과 무의식, 빛과 그림자를 모두 포용하는 전일성(wholeness)을 향한 첫걸음이다. 융은 “나는 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내가 되기로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껏 나에게 일어난 일, 축적된 낡은 역사는 자기를 만나는 길을 막아선다. 이제 진정한 성장을 이루고 온전한 나를 만나기 위해 다른 선택을 해야 할 때다. 인생 후반기에는 용기 있는 선택으로 자기 인생의 각본을 스스로 써야 한다. 완벽해지려고 애쓰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진정한 자유의 시작이다. 내면에서는 매일 전진과 퇴행이라는 쌍둥이가 대화를 나눈다. 자아는 안전한 자리에 머물라 하지만, 영혼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라며 재촉한다. 저자 제임스 홀리스는 이 갈림길에서 “이 선택이 나를 확장시킬 것인가, 아니면 축소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라고 제안한다. 진정한 성장의 시작은 두려움을 내려놓고 내면에 귀 기울이며 조금 더 큰 신발을 신어보기로 마음먹는 순간 비롯된다. 이 여정을 이어가며 더 풍부한 경험과 더 넓은 시야, 더 깊은 의미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아름다운 모험이자 의미로 가득한 충만한 삶의 비밀인 것이다. /윤희정기자

2025-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