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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당신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사람이 처음 만나면 통성명을 하고, 바로 다음에 따라 오는 질문은 아마도 이런 게 아닐까. “실례지만, 하시는 일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나이, 사는 곳, 관심사 같은 것에 대한 질문은 보통 그 다음에 이루어진다. 최근 한 술자리에서 어떤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도 직업을 물었다. “저는 가수 겸 시인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하면 많은 사람들은 나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직장인이거나 자영업을 하는 분들에게 내 직업은 생소하게 여겨지곤 한다. 금융권에 종사한다는 그 역시 내 직업을 듣고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 조심스레 질문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내용이 독특했다.“시를 쓴다고 다 시인은 아니잖습니까. 시인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내가 언제부터 스스로를 시인이라고 소개하기 시작했는지를 떠올려보면 별로 어려운 대답이 아니었다. 나는 2008년에 계간 ‘시와 세계’에 시를 발표한 이후로 시인이라 소개하기 시작했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불리게 되었으니까.“아, 그렇군요. 그러면 혹시 가수가 되는 것에도 그런 기준이나 절차가 있나요?”가수의 기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시인이 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처럼 간단치가 않았다. 시인처럼 등단이라는 절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변호사나 의사처럼 라이선스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이 사람이 가수임을 인증할 수 있는 국가공인 기관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대충 얼버무리긴 했지만 그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도대체 가수라는 직업은 어떻게 획득할 수 있는 것일까. 가수란 무엇일까.노래를 불러 소득을 올리고 생활을 꾸려나가는 사람이 가수일까? 아니, 내 주변에는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내며 업계 내에서도 인정받고 있지만, 그것이 소득으로는 연결되지 못해 다른 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나가는 동료들이 얼마든지 있다. 앨범을 내면 가수가 될까? 그 또한 틀린 말이다. 주변의 몇몇 사람들은 단지 취미나 호기심으로 앨범을 만들어 발표하기도 했는데, 그들을 가수라고 부르는 것은 민망한 일일 것이다. 나는 어떻게 스스로를 가수라고 소개할 수 있게 된 것일까. 첫 앨범이 나오기 전부터 나는 홍대 앞의 작은 무대에 서서 “안녕하세요, 가수 강백수입니다” 하고 소개했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당위성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저 나 스스로 ‘그래, 나는 가수야’라고 생각한 것만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결국 가수라는 말은 사회적 위치인 직업과는 별개로 스스로 규정하는 정체성인 것이다. 앨범을 내지 않은 채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더라도 스스로 가수라는 정체성이 있다면 가수일 수 있고, 취미로 낸 앨범이 어쩌다 화제가 되어 수익을 창출했더라도 정체성이 없다면 가수가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정체성이라는 것이 소속이나 사회적인 위치보다 삶에 있어 훨씬 강력한 기준이 될 수도 있다.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직업이나 소속이 정체성과 일치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래야 한다는 전통적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사회적인 위치와는 별개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든지 있다.대기업에 다니는 친구 박 대리는 하루의 대부분을 전자회사 사옥에서 보내지만 여건만 갖추어진다면 언제든 프렌차이즈 커피전문점을 차릴 준비가 되어 있다. 반도체건 아메리카노건 귀여운 아들, 딸이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뒷받침 해줄 수 있다면 아무 상관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박 대리라는 사회적인 위치보다 아빠라는 정체성을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가족에 대한 그의 애착을 알지 못한 채 그의 회사와 직함만을 기억하는 건 그에 대해 절반도 알지 못하는 것이 된다.독립음반 기획사 대표 송 형은 언제나 자신을 음반제작자라 여기며 살아간다. 비록 그가 꾸려가는 음반제작사의 매출이 가계를 책임지고 있지 못하고, 다른 일을 통해 생계를 꾸려가고 있지만 그는 음반제작사를 통해 자아실현을 해나가고 있다. 그에 대해 알기 위해 더 중요한 것도 그가 무엇을 통해 먹고 살고 있느냐 하는 것보다 어떤 정체성으로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새로운 사람을 알고, 이야기를 들어도 그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내가 그가 하고 있는 일이나 사회적 위치만큼 그의 정체성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에 대해 진정으로 알고 싶다면 “당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가 아니라 “당신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를 물어야 했던 것이다.

2021-03-01

누가 해이한가?

2001년 미국 HBO에서 방영된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Band of Brothers)’는 세계 2차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수행한 연합군 ‘이지(Easy)’ 중대의 처절한 전투기를 생생하게 그려냈다.실제 작전에 참여한 생존 노병들의 인터뷰와 각종 사료(史料)들을 바탕으로 1940년대 전쟁을 거의 논픽션처럼 담아낸 이 드라마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쟁 서사물 가운데 불후의 명작으로 회자된다.이지 중대를 이끄는 중대장 소블 대위는 무능하기 짝이 없다. 보병장교임에도 군사지도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모의훈련 때마다 어이없는 작전 지시로 부대원들을 위기에 몰아넣는다. 실전에서 도무지 믿고 따를 수 없을 만큼 지휘 능력이 떨어짐에도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개선의 노력을 하기는커녕 부하들 탓만 한다. 부당한 지시를 내려 부대원들을 괴롭히기도 한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외출을 금지하고, 주말에 구보를 시키고, 자신보다 훨씬 유능한 부하 장교 윈터스 중위에게 온갖 허드렛일을 맡긴다. 가혹행위라 할 만한 ‘갑질’, 원칙도 없이 기분 내키는 대로 내던지는 황당한 지시, 게다가 결과가 잘못되면 부하 탓까지 하는 최악의 리더인 것이다.2014년부터 2017년까지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은 슈틸리케 감독이 꼭 소블 대위 같았다.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이란과의 경기에서 졸전 끝에 0대 1로 패한 후 자신의 전술적 패착을 돌아보는 대신 선수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경기에서 질 때마다 선수 탓부터 하던 슈틸리케는 결국 경질됐고, 이후 부임한 중국프로리그 팀에서도 별다른 성적을 거두지 못한 채 지금은 현장을 떠나 있다. 반면 2002 월드컵의 영웅 히딩크는 단 한 번도 선수 탓을 한 적이 없다. 평가전에서 상대에게 대패하며 ‘오대영’이라는 굴욕적인 별명이 붙었을 때도, 체력 훈련만 시키자 전문가들이 “기술 훈련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비난했을 때도 그는 묵묵히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과 팀 운영 원칙을 가지고 선수들을 지도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질 테니 믿고 따라올 것을 주문했다. 그 결과 국가대표팀은 월드컵 4강이라는 신화를 썼다.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히딩크는 세계무대에서 유능한 감독으로 각광받고 있다.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며칠 전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다시 600명대로 올라섰다. 이에 정세균 국무총리는 “방역 의식이 해이해졌다”며 국민들을 탓했다. 뉴스를 보다가 눈을 의심했다. 저게 이 나라 행정부의 2인자 입에서 나올 소리인가 싶었다. “긴장이나 규율 따위가 풀려 마음이 느슨하다”는 뜻의 ‘해이’라는 말을 참 오랜만에 들었다. ‘기강 해이’ 같은 고압적인 표현은 군대에서나 접하던 것이다. 단순히 부적절한 어휘를 사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코로나 확산의 책임을 국민들에게 돌리는 뻔뻔함에 화가 났다.지난 1년 여 동안 우리 국민들만큼 방역 수칙을 잘 지킨 사례가 세계 어느 나라에 또 있던가? 통계청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시민들의 이동량은 오히려 줄었다. 귀뚜라미보일러 아산공장과 종교시설의 집단감염으로 인해 확진자 수가 늘어난 것이지 국민들은 명절에도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져 마스크 쓰고 손 씻고 가게 문을 내리는 등 방역수칙을 철저히 따랐다.국민들을 탓하기 전에 정부는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원칙도 없이 고무줄처럼 줄였다 늘이는 거리두기 단계 조정으로 국민들에게 혼란과 불편을 준 것을 사과해야 한다. 전체주의 국가가 아닌 이상 사회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일부 유흥업소의 돌출적 감염 사례를 침소봉대해선 그간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디며 방역수칙을 지켜온 대다수 국민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국민들과 의료진의 희생을 빼면 ‘K-방역’은 한낱 우스운 흰소리, 텅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백신 접종이 본격화되면서 전 세계 코로나 일일 확진자수가 4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OECD 37개 국가 중 백신 확보도 가장 늦고 접종 시작도 꼴찌다. 소블과 슈틸리케가 떠오르는 이유다. 해이한 것은 국민이 아니라 정부다.

2021-02-22

클럽하우스의 두 가지 얼굴

최근 많은 이들의 관심사인 클럽하우스를 사용해 보았다. 클럽하우스는 음성 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오직 실시간 음성으로만 소통할 수 있다. 클럽하우스 내에서는 어떤 문자도, 사진도, 동영상도 공유할 수 없다. 오로지 실명성을 기반으로 자신의 목소리로만 대화를 주고받는다.클럽하우스는 앱이 개발된 미국을 시작으로 중국, 일본, 브라질, 터키 등 전 세계를 아우르며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대화방에서 가상화폐 비트코인에 대해 발언을 하며 화제로 떠올랐다. 여기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설립자, 오프라 윈프리 등 해외 유명인이 앱을 사용하면서 더욱 주목받았다. 국내에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 토스 창업자 이승건 대표,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 유명인사와 각 분야의 전문가, 정·재계 인사들이 가입했다. 지난해 연말에는 60만 명 수준이었지만 올해 1월에는 200만을 넘겼다.많은 이들이 클럽하우스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클럽하우스는 유명 연예인부터 정치인, 인플루언서, 창업가, 전문가 등 영향력을 가진 인물과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방의 성격 또한 다양하다. 백색소음 방, 마피아 게임 방, 성대모사를 뽐내는 성대모사 방,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는 노래방도 있다. 원하는 주제를 다양한 깊이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클럽하우스는 코로나19로 인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끊임없는 소통하려는 욕구가 발현된 장소라고 볼 수 있다.클럽하우스를 가입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준비물이 필요하다. 하나는 클럽하우스 가입자로부터 받는 초대장과 또 다른 하나는 아이폰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지만 클럽하우스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클럽하우스 가입자로부터 초대장을 받아야만 입장 할 수 있다. 클럽하우스는 아직 베타버전이기 때문에 현재까지는 아이폰 유저만 사용 가능하다.클럽하우스에 초대를 받아 가입하게 되면 관심사를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진다. 관심 있는 분야를 고르고 나면 본격적으로 클럽하우스에 접속하게 된다. 여느 SNS와 다를 것 없이 관심사와 팔로우에 기반을 둔 대화방 목록이 뜬다. 호기심이 이는 방에 들어가면 동그란 모양의 프로필을 가진 이들이 상하로 나누어져 위치해 있다. 한순간 휴대폰 안에서 여러 명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쏟아져 나온다.클럽하우스의 방을 살펴보자면 방을 만든 사람이자 대화의 흐름을 이끄는 모더레이터, 방장이 선택하여 말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스피커, 말을 할 수 없고 듣는 권한만 가진 리스너로 나누어져 있다. 모더레이터와 스피커는 최상단에 위치해 있고, 말을 듣는 리스너는 그 아래 목록에 자리한다.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클럽하우스의 방은 빠르게 생기고 사라진다. 전체적인 방 분위기는 활발하고 부드러운 생기가 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피력한다. 목소리를 직접 듣기 때문에 신뢰도가 높고 호감도도 빠르게 생긴다. 강연장이나 모임에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질 좋은 만남을 가질 수 있고, 불필요한 화장이나 옷차림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거리두기로 인한 이동 제한이 있다면 온라인에서는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코로나로부터 안전하다.그렇지만 서둘러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클럽하우스를 쓰지 않으려 한다. 무엇보다 나의 성격과는 맞지 않는다. 앱을 처음 사용하려는 이들에게 진입장벽이 있다는 것에도 거부감이 느껴진다. 마치 초대장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유행과 무리에 뒤처져 소외되거나 도태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 클럽하우스에 소속되어 가입된 것만으로도 어떤 권력을 얻은 것처럼 기세등등해 보이는 아이러니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초대장이나 아이폰이 있더라도 청각장애인은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과 사용자의 연락처와 정보를 수집하여 어느 곳에 활용되는지 불투명하다는 점도 마음에 걸린다.게다가 클럽하우스는 방 내에 발언권이 있는 사람만 말할 수 있다. 방을 관리하고 이끄는 모더레이터가 말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권력화되어 있고 위계질서 또한 잡혀 있다. 실제 모더레이터가 되는 사람은 현실에서 힘을 가진 사람이나 많이 알려진 사람이 계속 연장해서 권력을 쥐는 구조다.그럼에도 클럽하우스는 우리에게 어떤 경험과 문화를 가져다줄 것인지 기대되는 것은 분명하다. 전문가들은 아직 베타 버전인 클럽하우스를 두고 비즈니스 모델 설정에 따라 광고물이나 입장료, 구독제 등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일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많은 이들을 유치하고 지속하기 위해 어떤 진화를 택할지, 클럽하우스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2021-02-22

사과의 골든타임

나는 스포츠 관람 마니아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야구, 겨울철에는 농구와 배구까지. 어지간한 구기종목 프로 스포츠는 다 챙겨보는 편이다. 요즘 특히 재미있게 보고 있는 종목은 배구인데, 최근 들어 포털 사이트 배구 기사란에 참담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배구 선수들의 ‘학폭’논란이 그것이다. 논란은 여자부 리그에서 시작되었다. 며칠 전 한 게시판에 한 누리꾼이 현재는 스타 반열에 오른 선수들에게 학창시절 당했던 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한 것이다. 해당 구단과 선수는 빠르게 사과문을 올렸지만 누리꾼들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남자부에서도 마찬가지의 사건이 일어나 구단과 선수가 사과를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잇따른 학폭 논란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나 역시 중학교 시절 학교 폭력의 그늘 아래 있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7교시 종이 울리면 눈앞이 캄캄해져모두가 웃으며 가방을 싸는데나는 고갤 숙인 채 화장실로 가야 해그곳엔 너희가 기다리고 있어공처럼 온 몸을 웅크린 채주먹과 발길질을 받아내면서더러운 바닥을 나뒹굴었지화장실 창문 밖에 빛나는태양과 구름은 저리도 예쁜데왜 나만 이렇게 아파야 하는지-강백수 ‘나쁜 노래’ 가사 중2013년 발매된 1집 앨범의 수록곡인 ‘나쁜 노래’의 노랫말은 그 시절의 이야기를 담아낸 것이다. 길지 않은 기간 동안 나는 동급생 몇몇에게 상습적으로 폭언과 폭행을 당하곤 했다. 불과 몇 달 정도 겪었던 일인데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때 느꼈던 참담한 감정들을 생생히 떠올릴 수 있다. 나는 아직 그들 대다수를 용서하지 않았다.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딱 한 명 용서하기로 마음먹은 이가 있었으니 그는 이제는 내 친구가 된 H다. H는 세월이 흘러 이십대 후반이 되었을 무렵 SNS를 통해 나를 찾았다. 그가 만나자고 했을 때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십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고서야 그는 나를 만나 고개를 떨구며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자신이 철이 없었다고. 나이를 먹고서야 그때의 행동들이 내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을지 알게 되었다고.굳이 나를 찾고, 만남을 청하고, 안 하고 살았어도 상관없었을 사과를 하는 H가 나는 참 대단해 보였다. 어린 마음에 새겨진 상처가 그의 사과 덕분에 어느 정도는 씻겨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 이제라도 진심어린 사과를 해 주어 고맙다고 말했다. 그를 용서할 테니 이제는 나와 친구가 되어달라고 했다. 이제 H는 언제라도 불러내어 함께 소주 한 잔 할 수 있는 편안한 친구가 되었다.H가 내게 했던 사과의 말과 그리고 스타 배구선수들의 사과문을 번갈아 떠올린다. 그 둘을 똑같은 사과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들의 과오가 만천하에 드러난 뒤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에서 한 사과를 진정한 사과라고 할 수 있을까. 선수들이 진정으로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뉘우침에는 ‘골든타임’이 존재한다. 사과를 하는데 있어 진정성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사과의 시기인 것이다. 이러한 폭로와 논란이 일어나기 전에 그들은 뉘우치고 사과했어야 했다.선수들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뉘우치고 사과했어야 할 시기를 놓친 것 역시 대가를 치루어야 하는 일이다. 소속 구단과 협회 차원에서의 무거운 징계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과오가 있는 다른 모든 이들 또한 이 사과의 골든타임에 대해 한 번씩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2021-02-15

나의 증조할머니

나의 문학적 감수성이 어디서 기원 되었을까 돌이켜보면 역시 증조할머니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할머니는 지금까지도 내 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며 나의 자의식을 구성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증조할머니는 외할머니를 키웠고, 엄마를 키웠고, 나를 키웠다. 그녀는 1920년에 태어나 굴곡진 한국사를 온몸으로 경험했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노라면 그녀는 쪼글쪼글하고 거친 손으로 톡 튀어나온 내 이마를 쓰다듬어주었다. 나는 그 다정한 손길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하지만 그 평화로운 시간도 잠시, 오빠가 집에 돌아오면 나는 자리를 비켜줘야 했다. 증조할머니에게는 다른 어떤 것보다 아들이 가장 귀했다. 자신이 죽으면 제사를 지내줄 사람이 없다며 양아들을 들일 정도였으니까.나는 그녀의 사랑을 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오빠와의 경쟁에서 무참하게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내가 백 점짜리 시험지를 가지고 와도 무심했으며 오히려 그것이 오빠의 기를 죽이지 않을까 걱정했다. 할머니의 논리는 단순했다. 오빠는 증손자, 나는 증손녀. 할머니에게는 그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했다.부당하다는 생각이 든 건 당연했다. 나는 중학생이 되었고 차별이라는 단어에 대해 곱씹게 되었으며 내 의견을 당당하게 피력할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가 서운한 행동을 보일 때마다 나는 “그건 잘못된 거야”라며 항변했다. 그러자 내 세계를 좌지우지할 만큼 거대한 힘으로 작동하던 할머니가 조금씩 작아지기 시작했다. 새롭게 생겨난 집 밖의 세상은 언제나 나의 상상을 뛰어넘었고 지나온 과거는 아둔해 보일 뿐이었다.할머니와 멀어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맛있는 걸 먹으면 할머니부터 생각나던 어린 시절은 끝나 있었다. 그러는 사이 할머니는 나이가 들었고, 이런저런 병을 진단받았으며, 결국 요양원으로 가게 되었다.요양원에서도 할머니는 꼬장꼬장한 성격을 버리지 못했다. 병동을 함께 쓰는 사람들이 “너희 할머니는 대체 왜 그러냐”는 말을 하면, 내심 ‘그래도 아직 우리 할머니의 더러운 성격은 건재하군’ 하고 안심했더랬다. 할머니는 병원에서 배식 받은 음식을 이불 밑이나 베개 속에 감춰놓았는데, 그 이유는 “자는 사이에 누군가가 먹을 것을 훔쳐 갈까 봐 그런다”는 것이었다.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그 모습을 보자 익숙한 기억이 선연하게 떠올랐다. 할머니는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꼭 사탕이나 과자 같은 것을 벽장에 감춰놓았다. 그리고 손님들에게 물 한 잔도 내어주지 않았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면 그제야 벽장을 열고 먹을 것을 꺼내서 “이건 은강이 너만 먹어라” 하면서 주었다. 나는 그런 할머니가 부끄러웠고 제발 그만하라고 소리치고 싶었다.소설을 쓰면서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자주 복기하게 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던 것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니까. 어느 순간 그녀는 나의 증조할머니가 아니라 백 년이라는 시간을 살아온 한 명의 인물로 구성되어 눈앞에 나타났다.그녀는 위안부에 동원되지 않기 위해 열다섯에 모르는 남자와 결혼한 사람, 징용에 끌려간 남편이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혼자 출산의 고통을 감내하던 사람, 남편과 핏덩이 같은 어린 자식 두 명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사람,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동네에서 손가락질 받던 사람, 여자의 몸으로 홀로 전후 시대를 지나오며 먹고 살기 위해 이를 악물고 지금까지 버텨온 그런 사람.스스로가 그토록 조소하던 어른의 모습이 되었다고 느껴지면 나는 나의 증조할머니를 떠올린다. 이제 할머니는 통제된 요양 시설에서 2021년의 코로나바이러스를 견뎌내고 있다.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라는 새해 인사조차 무색한 지금, 나는 어떤 태도로 우리 할머니를 떠나보내야 하는지 고민한다. 그녀 앞에만 가면 나는 사랑 받기 위해 투정만 부리는 어린아이가 된다. 언제나 모자라고 어리석은 당신의 증손녀는 여전히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모르겠노라고 고백하고 싶어진다.

2021-02-15

정확하게 사랑하기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창문을 본다. 오늘의 날씨는 어떤지 직접 두 눈으로 보기 위해서다. 미세먼지가 잔뜩 낀 먹먹한 하늘이나 눈이 내리는 날은 만날 수 있는 확률이 극명히 낮아지기에 걱정이 앞선다. 반면 볕이 느껴지는 따뜻한 날에는 일렁이는 마음을 잠잠히 누르며 여분의 생수와 사료가 있는지 확인한다. 쾌청한 날 느지막한 오후에는 흰 고양이가 집 앞으로 찾아오기 때문이다.몇 주 전 쯤 집 앞 화단에서 흰 고양이를 만났다. 평소 집 근처에서 자주 보이곤 했던 고양이였지만 사실 그간 별 감흥이 없었다. 어렸을 때 작은 사건으로 인해 동물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던 어느 날 지인을 기다리던 와중 흰 고양이가 나타났고, 한두 번 울음을 뱉더니 내 발치 아래로 와서 자신의 등을 비비기 시작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얼어붙은 내게 고양이는 돌연 자신의 배를 보여주었다. 마치 만져보라는 듯 이리저리 몸을 구르는데 그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조금씩 손가락을 펼쳐 흰 등을 쓸어보니 고양이가 대답에 응하는 듯 활발히 움직였다. 몸을 구부릴 때마다 뼈가 두드러졌고 고양이가 내뱉는 숨에 따라 손이 오르내렸다. 조금씩 옮겨져 오는 고양이의 체온에 한동안은 손바닥을 꼭 쥐고 있었다.흰 고양이는 자신의 구역이 있는 건지 볕이 좋은 날에만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 날은 줄무늬 고양이 두 마리도 함께였는데 가까이 다가가자 재빨리 도망갔다. 아직까지도 줄무늬 고양이들과는 늘 일정 거리를 둔 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한다. 그럴 때 비어있는 두 손이 부끄럽기만 하다.길고양이에 대한 지식이 없던 나는 인터넷에 검색해보고 영상을 찾아보며 정보를 습득했다. 길고양이를 만났을 때는 무작정 예쁘다고 만지거나 아무 먹이나 주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다. 길고양이를 위한 급식소가 따로 있는데, 만약 급식소가 없는 곳에서 굶주린 고양이를 발견한다면 깨끗한 생수와 사료를 주어도 된다. 사료는 고양이가 한 끼 먹을 만큼만 주어야 하며 먹이를 주는 통은 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또, 먹는 걸 천천히 지켜보다 다 먹은 그릇을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그릇과 물통은 제때 치워야 한다.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자동차 엔진룸에 들어간 고양이를 확인하기 위한 라이프 노킹(Life Knocking)이나 밥을 챙겨주는 장소에서 TNR(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이 되지 않는 고양이를 파악하는 것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였다. 라이프 노킹이란 겨울날 따듯한 곳을 찾기 위해 자동차 엔진룸에 들어가는 고양이를 확인하기 위해 창문을 두드리거나, 차 문을 힘껏 닫아 소리로 확인하는 방법이다. TNR은 Trap(포획), Neuter(중성화 수술), Return(리턴)의 앞글자를 딴 것으로, 도심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의 개채 수를 적절하게 유지하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중성화 사업이다. 인도적인 방법으로 고양이를 포획하여 중성화수술 후 원래 장소에 풀어주어 부상과 질병에 노출되지 않도록 돕는다. TNR은 마친 고양이들은 왼쪽 귀 끝부분이 조금 잘려 있어 구분하기 쉽다.동물은 예쁘다고 마음껏 만질 수 없다. 안쓰럽고 가엽다는 이유로 길가에 놓인 고양이를 모조리 만지고 지나치게 먹이를 챙겨주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 나의 능력으로 내가 책임질 수 있을 만큼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규칙이 필요하다. 다른 구역에서 넘어오는 고양이가 있을 수 있기에 제시간에 맞춰 같은 장소에 밥을 주기, 밥을 먹은 자리는 깨끗하게 유지하기, 너무 사람의 손을 타지 않도록 적당한 애정을 주는 등 분명한 기준을 통해 행해야 한다.고양이를 좋아하는 이들이 있다면 싫어하는 이들 또한 있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함께 살아가는 이웃의 의견을 존중하여 타협점을 찾아 나가야 하며 반려동물 등록제, 입양 문화, 반려동물 놀이터 확충 등 동물 보호 행정을 파악하고 구체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켜봐야 한다.무언가 급하게 쫓기는 날에는 볕 아래 몸을 만 고양이를 생각한다. 작고 하얗고 단단하게 놓인 고양이의 묵묵하고도 순수한 등을. 안네-소피 스웨친은 한 방향으로 깊이 사랑하면 다른 모든 방향으로의 사랑도 깊어진다고 했던가. 조금만 눈을 돌리면 주변에서 무수히 많은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날이 흐려도 고양이가 있던 쪽을 계속해서 기웃거려 보는 이유다.

2021-02-08

집합금지와 소갈비찜

직계가족이라도 주소가 다르면 5인 이상 모일 수 없는 관계로 우리 가족은 각자 사는 곳에서 따로 명절을 쇠기로 했다. 코로나로 인한 일시적 이산가족인 셈이다. 아버지는 충남 당진에, 엄마는 서울 신림동에, 결혼한 여동생은 김포에, 나는 안양에 살고,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계신다. 병원이야 면회 금지라 어쩔 수 없고, 동생과 매제, 조카까지 함께 모이면 6인이 되는지라 이 또한 별 수 없다. ‘핵가족’, ‘1인가구’라는 말이 등장한 지 꽤 오래 됐지만, 1년에 한두 번 모이는 것마저 어렵게 되니 그 단어들에 함의된 고독감이 더 짙게 느껴진다.비록 한 자리에 모이진 못하지만 같은 음식을 먹을 수는 있다. 이번 설에 우리 집은 명절 음식을 준비한다. 축산업을 하는 친구가 한우 갈비 10kg을 선물로 줬고, 그동안 낚시 가서 잡아온 참돔이 냉동실에 여러 마리 있다. 이 귀한 재료들을 신림동 집에 가져다주고, 재래시장서 장을 보고, 엄마가 음식 하는 걸 옆에서 도왔다. 갈비찜, 도미찜, 소고기무국, 삼색전, 나물무침, 잡채, 조카가 좋아하는 백김치 등이 완성됐다. 양껏 나눈 음식을 스티로폼 아이스박스에 잘 포장해서 아버지께는 고속버스 택배로, 김포 동생네는 운전해서 직접 갖다 줬다.차례를 지내는 것도 아니고, 가족들이 한 데 모이는 것도 아닌데 굳이 시간과 돈과 힘을 들여 명절 음식을 준비할 필요가 있느냐고 혹자는 말할지 모른다. 이때 가족이라는 말을 ‘식구(食口)’로 바꾸면 그것으로 충분한 대답이 될 수 있다. 사전에서는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으로 되어 있는데, “한 집에서 함께”가 불가하니 “끼니를 같이”만이라도 함으로써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보자는 것이다.“삼춘 삼춘엄매 사춘누이 사춘동생들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 뽁은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것들이다(…)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백석, ‘여우난곬족’)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가족이 모일 수 없는 설을 앞두고 시 읽는 마음이 축축해진다. 아버지한테 택배 보내고, 동생네 갖다 주고 오니 남은 내 몫의 갈비찜을 엄마는 김치통에 담아 보자기로 싸뒀다. 어디서 많이 보던 보자기가 반가웠다. 어릴 적 ‘슈퍼맨’ 흉내 내며 육교 아래서 롤러스케이트를 탈 때 망토처럼 목에 두르던 것이다. 엄마의 패션 스카프는 이제 음식 보자기가 됐지만 엄마 갈비찜 맛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이 맛있는 걸 뿔뿔이 흩어진 우리 가족들은 각자 사는 곳, 사는 형편에서 먹으며 가족 해체 시대에 ‘식구’의 유대를 지켜낼 것이다.음식은 가족을 통합하고 외부 집단과 구별시키는 고유하고 내밀한 문화다. 음식의 향미는 개인의 성향에 따라 수용되는 양상이 천차만별인 주관적 감각 작용인데,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라든가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 또 “두부와 콩나물과 뽂은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의 맛은 ‘여우난곬’ 가족들에게 공통의 만족감과 유대감을 제공한다. 음식은 가족 집단의 특징적 취향을 넘어 유전 형질로까지 확장된다. 음식은 뼈와 살을 이루고, 나아가 DNA에 관여하기 때문이다.‘여우난곬’ 가족들은 한 솥에 끓인 ‘무이징게국’을, 우리 가족은 한 냄비에 끓인 소갈비찜을 나눠 먹음으로써 ‘혈육’, ‘식구’라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특정한 음식의 맛과 냄새는 가족의 해체 또는 가족으로부터 분리된 상황에서도 과거 온가족이 함께 지내던 시절을 재생시킨다. 오늘 저녁 한 그릇의 갈비찜은 내 어린 날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해준다. 명절 음식은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처럼 맛있는 식사를 한 충남 당진과 서울 신림동과 김포와 안양의 식구들은 또 살아갈 ‘똑같은 힘’을 얻어 코로나 시대에도 용기를 잃지 않을 것이다.

2021-02-08

대인관계에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조금 야박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새해 들어 나는 대인관계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조금 더 친절히 이야기 하자면 이제 내가 진정으로 보고 싶은 사람과 나를 정말로 보고 싶어 하는 사람만 만날 것이라는 거다. 안본지 너무 오래됐으니까, 볼 때 되었으니까, 이러다 영영 안 보고 지내게 될까봐 누굴 만나는 건 이제 그만 둘 생각이다. 그동안 친구와 지인 사이를 애매하게 부유하는 관계들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쏟았다. 사람을 잃는 것이 두려워서 의무감에 전화를 걸고 밥을 먹고 술을 먹느라 청춘의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제 그 노력을 그만 둘 생각이다. 이러한 선언을 하게 된 것은 문득 내가 애매한 관계들을 챙기느라 나 자신과, 내게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사람들에게 충분히 나의 삶을 내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기 때문이다.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있는 것과 피부로 느끼는 것은 다른 문제인가보다. 서른을 훌쩍 넘긴 이 시점에서 나는 이십 대 때에는 무한할 것 같던 것들이 사실은 유한한 것이었다는 걸 조금씩 깨닫고 있다. 몸이야 아직 쌩쌩하긴 하지만 작년만큼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여전히 술을 좋아하지만 이십대 때 만큼 잘 마시지는 못 하게 되었다. 무한할 것 같았던 많은 것들을 떠나보내며, 제 인생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나와 동갑인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와 두 살 많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신체능력이 하락세에 접어들었다고 들었다. 밥 먹고 운동만 하는 그들도 그런데 하물며 맨날 앉아서 글이나 쓰는 나야 오죽할까. 그들은 효율적이고 영리한 플레이로 여전히 정상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 나도 이제 그것을 참고 해 보려고 한다. 효율적이고, 영리한 플레이.단지 신체적인 한계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갈수록 책임져야 할 것들도 많아진다. 책임질 게 많아진 동시에, 진작에 느껴야 했을 책임감을 뒤늦게 느끼고 있는 것인지는 모른다. 정신적 에너지와 시간은 한정적인데 책임이 늘어나고 있으니 당연히 이제는 절약을 해야 한다.효율성 있게 체력과 시간과 정신을 절약하며 살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카톡이나 이메일로 절연장을 날릴 정도로 나는 냉정하지 못하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노력을 그만두는 것이다. 애써 연락하지 않으면 만나지지 않는 사람, 그렇게 만나지 않으면 멀어지고 마는 사람, 붙잡지 않으면 관계가 끊어지고 마는 모든 사람들을 더 이상 붙잡지 않으려고 마음먹었다.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실오라기처럼 위태롭던 관계에 빨간 불이 켜졌을 때 말고 정말로 누군가 보고 싶을 때, 아니면 누군가 나를 진실로 보고 싶어 할 때 만남을 시도할 거다. 아마 그 빈도가 현저히 줄어들겠지. 새로운 만남에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언젠가 읽겠지’하는 막연한 마음으로 책장에 꽂아둔 오래된 새 책 같은 사람들을 더 이상 늘리지 않으려 한다. 딱히 내키지 않는 이에게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며 함부로 다음 만남을 약속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절약된 에너지는 나 자신에게 사용하고, 절약된 시간은 자주 봐도 또 보고 싶은 소중한 이들과 함께하는 데 사용할 거다.이 글을 읽게 될 나의 지인들에게도 부탁하고 싶다. 우리가 볼 때가 되었는데 안 보고 있다거나, 단지 멀어진 것 같다는 이유로 내게 애쓰지 않기를. 그렇게 멀어지면 멀어지는대로 두다가, 어느 날 뜻밖에 진정으로 보고 싶어진다면 그때 부담 없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면 되는 것이다. 그때까지 서로의 소중한 사람들, 그리고 누구보다 소중한 자신에게 에너지와 시간을 쏟을 수 있기를 바란다.

2021-02-01

세상을 보는 창 혹은 창으로 보는 세상

집에 있는 날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시간 역시 길어졌다. 친구와의 대화는 통화나 문자로 하고 얼굴이 그리우면 영상으로 마주 보는 것도 가능하다. 직접 만나지 못해 답답하고 서운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다양한 비대면 만남이 가능하다니, 참 발전된 세상이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감탄도 인다. 어린 시절 공상 만화에서 보았던 최첨단 미래 기술이 바로 지금 실현되고 있는 기분이다.인터넷에는 그야말로 모든 것이 다 있다. 밖으로 나가야만 할 수 있었던 많은 일이 네모반듯한 스마트폰 하나면 충분하다. 이 작은 화면을 통해 친구들을 만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듣는다. 배가 고프거나 카페인이 필요하면 클릭 한 번으로 음식과 커피를 시켜 먹는다. 푹신한 침대에 누워 워런 버핏의 인터뷰를 시청하고 프리먼 다이슨의 저서를 읽는다. 세상에는 늘 새로운 사건사고가 벌어진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일련의 사건에 함께 공감하고 분노하다 보면 어느덧 하루가 저물어있다. 이 모든 것이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아도 가능하다. 그러니 스마트폰 화면은 세상을 보는 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렇듯 삶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인터넷 때문에 우리는 때때로 지식을 장악하고 있다는 오만에 빠지기도 한다. 나부터가 그렇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스스로 생각하기에 앞서 검색창부터 연다.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원하는 정보가 와르르 쏟아진다. 인터넷은 맞춤옷처럼 내게 딱 맞는 답을 선사한다. 가끔은 인터넷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럴 수밖에. 내가 그 정보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당하고 있기 때문이다.‘에코 체임버(Echo Chamber) 효과’가 그 대표적인 예다. 에코 체임버는 방송이나 녹음 시 닫힌 방 안에서 인공적으로 메아리를 만드는 기계를 뜻한다. 이러한 효과가 현재의 우리 삶에도 적용되고 있다. 내 의견에 동조하는 의견이 메아리처럼 반복되면서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특히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은 이러한 에코 체임버 효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우리는 페이스북에서 내가 원하는 사람들을 팔로우한다. 그들은 내 심기를 거스르는 말을 하지 않는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손쉽게 끊어낼 수 있다. 정치적 성향이 맞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또는 그런 기사나 댓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 내가 옳을 줄 알았어! 강력한 확신과 동시에 자기 의심은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유튜브 역시 마찬가지다. 유튜브는 실행과 동시에 가장 먼저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보여준다. 보기 싫은 것을 볼 필요가 없다. 알고리즘이 알아서 필터링해주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광고로 상영된다. 엊그제 최저가를 검색했던 보디로션, 수면 잠옷, 강아지 사료까지. 우리는 이렇게 작은 화면에 갇힌 상태에서 더 넓은 시야를 확장하지 못하고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에서 ‘라푼젤’의 서사를 가장 좋아한다. 높고 좁은 탑에 갇혀 있던 여성이 안온함을 박차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이야기라는 점이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라푼젤이 작은 창으로 내려다본 세상은 닿을 수 없는 비밀로 가득 차 있다. 그녀의 계모는 밖은 온통 위험한 것뿐이며 탑에 머무는 지금이 가장 안전한 방식이라고 속삭인다. 그러나 그녀는 기꺼이 현실과 마주한다. 두려움과 슬픔, 상실의 감정을 만나며 좌절에 빠지기도 하지만 멀리서 관조했던 빛의 풍경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된다.창문으로 보는 풍경이 세계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회의 안전을 위해 좁은 탑에 갇혀 있어야만 하는 요즘이다. 이런 때일수록 화면 너머에 존재하는 삶을 기억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을 존중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2021-02-01

‘신춘문예’ 생각

매년 그렇듯 이번 1월 첫 주도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읽으며 보냈다. 이른바 ‘신춘병’이라는 것에서 자유로워진 지 오래됐지만 아직도 1월 1일이면 가슴께가 아리다. 떡국 대신 열등감과 좌절감, 분노를 끓여 먹었던 새해 첫 날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12월 초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 마감 시즌이 되면 원고를 들고 추운 광화문 거리를 돌아다녔다. 우편 사고가 일어날까봐, 혹 시인을 꿈꾸는 집배원이 ‘신춘문예 응모작’이라고 써진 내 등기우편을 열어보고는 감탄하며 자기 이름으로 바꿔 낼까봐 우체국도 못 믿고 직접 갖다 주느라 그랬다. 그때부터 한 열흘 기대와 희망, 불안과 초조함을 마구 널뛰며 지냈다. 당선소감을 써보기도 하고, 신문에 실릴 사진을 고르기도 하고, 학교에 현수막이 내걸리는 상상도 하고, ‘20대 얼짱 시인’으로 유명해져 방송에 출연하는 망상에도 빠지곤 했다.12월 20일쯤부터 당선통보 전화가 가기 시작해서 크리스마스 전에는 모든 당선자가 확정된다. 크리스마스이브마다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던져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리고 1월 1일, 당선작들을 읽기 전 심사평부터 찾아 봤다. ‘예심은 통과했겠지’, ‘내 작품이 거론됐을 거야’… 눈 씻고 봐도 이름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의 심정은 참으로 처참했다. 한 며칠 술만 마시며 지냈다. 내가 쓴 시들이 다 쓰레기 같았다. 삼성 계열사인 중앙일보에 본명으로 응모한 게 탈락 사유일 거라고 ‘음모론’을 써보기도 했다. 심사위원들이 세상에서 제일 미웠다. 심사평과 본심진출자 명단에 이름이 없다는 건 나라는 존재 자체가 이 세상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불 뒤집어쓰고 있으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걸 10년 동안 했다.10년 동안 1월 1일에는 남들 박수나 쳐줬다. 2004년 동아일보 김성규 시인, 문화일보 김지훈 시인은 가까이서 보던 선배들, 그저 경외감만 들었다. 2005년 한국일보 신기섭의 ‘나무도마’는 넋 놓고 감탄했던 시, 행간에 스민 죽음의 냄새가 시인에게도 비극이 될 줄 상상도 못했다. 시인은 신춘문예에 당선한 그해 불의의 교통사고로 요절했다. 2006년 조선일보와 세계일보를 동시 석권한 이윤설 시인은 정말 대단했다. ‘나무 맛있게 먹는 풀코스법’, ‘불가리아 여인’은 지금 읽어도 세련됐다. 이윤설 시인도 지난해 가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이병철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2007년에는 경향신문 신미나 시인, 조선일보 김윤이 시인, 2008년에는 경향신문 이제니 시인, 동아일보 이은규 시인이 돌아가며 내 마음을 폭행했다. 퍽, 퍽, 퍽, 절망과 감탄, 질투가 피멍처럼! 2009년엔 김은주, 민구, 정영효, 이우성 등 훗날 주목받게 되는 시인들이 나란히 나왔다. 2010년에는 동아일보 유병록 시인, 2011년에는 조선일보 신철규 시인, 2012년에는 동아일보 안미옥 시인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2013년에는 동아일보 이병국 시인과 그간 수십 번 최종심에서 떨어진 ‘불운의 아이콘’ 이해존 시인의 경향신문 당선이 기억난다.그리고 2014년, 박세미, 최현우, 이소연 시인이 화려하게 데뷔하는 걸 지켜보며 나는 신춘문예를 내려놓았다. 연말에 ‘시인수첩’ 신인상에 투고했고, 떨어지면 이제 시 안 쓸 거라고 마음먹었는데 운 좋게 당선이 됐다. 그 후 열심히 작품 발표도 하고 시집도 냈다. 이제는 12월과 1월의 우울, 증오, 오기, 좌절, 망상, 마음 졸임, 초조함, 술병, 억지웃음, 거짓축하, 겨우 뱉어내는 괜찮다는 말, 눈물 같은 것들과 모두 작별했지만 내가 이루지 못한 꿈 ‘신춘문예’는 여전히 아름답다.몇 해 전부터 문학계에서 등단 제도의 불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그때마다 가장 화려하고 강력한 등단 제도라는 상징성을 지닌 신춘문예의 폐지가 논의되었다. 그리고 지난해, 중앙일보는 정말로 신춘문예를 폐지했다. 앞으로 등단 제도 개혁에 대한 요구가 더욱 거세지겠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여전히 피와 땀과 눈물어린 꿈이라면 신춘문예는 계속 유지되어야 하지 않을까? 꿈을 이룬 2021년 당선자들 축하합니다. 정말 부러워요!

2021-01-25

경계에 선 사람들

무대에 선 한 가수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신호등이 바뀔 때 빨간색과 초록색 불빛 사이의 노란 불빛이 3초간 빛나는 모습을 보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최선을 다해 빛내는 모습이 자신과 닮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나 나이, 학력이나 소속사 대신 ‘63호 가수’라고 소개했다.JTBC에서 방송되는 ‘싱어게인’은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무명 가수들이 출연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무명가수를 대상으로 출연자의 정보나 배경을 배제한 채, 익명성을 부여하여 출연자의 무대만을 조명한다.30호 가수는 자신을 ‘배 아픈 가수’라며 소개한다. 뛰어난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게 재능이며 자신을 전형적인 실력 없는 사람임을 덧붙인다. 그는 자신의 위치가 명확하지 않기에 경계를 서성이고 있는 사람이라 칭하며 언뜻 불안감을 내비치지만, 조명이 꺼지고 노래가 시작되면 그간 숨겨 왔던 내밀한 경계선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의 노래는 지나치게 감정이 고조되어 어색하고 불안정하지만 반면 그만이 할 수 있는 독보적이고 새로운 무대를 보여준다.연이은 실패와 소외 속에서 꿈을 부르는 간절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타인에 대한 이해의 시도와 용기와 강인함을 준다. 다시 한 번 무대를 갖게 된 그들의 노래는 열렬했고 자유로워 보였다. 실패와 흠으로 꾸준히 엮었을 경계는 예리하면서도 단단한 테두리가 되어 보였고, 완전함보다는 온전함에 가까웠다.윤여진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실험적이고 독보적인 물결을 일으킨 존재는 자신의 불안정함을 나이테처럼 겹겹이 쌓아 새롭게 탄생한다. 63호와 30호 가수는 심사위원의 혼을 빼놓을 정도로 놀라운 무대를 보여주었다. 63호 가수는 투박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독특한 음색과 연주로 방송 첫 화 최고의 1분 시청률을 기록했다.30호 가수는 이효리의 댄스곡인 ‘치티치티뱅뱅’을 새로운 록 장르로 재해석하여 ‘장르가 30호’라는 유행어를 만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명곡을 그의 색깔을 입혀 재해석해 30년 전 서태지가 처음 등장했을 때를 떠올렸다는 심사위원의 극찬이 이어지기도 했다.그들이 노래라는 경계를 서성이고 확장하는 것처럼 나 또한 다양한 경계를 가지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는 무수한 경계도 있고, 때에 따라 달리 부르는 이름의 경계, 무지에서 비롯되는 부끄러움의 경계, 읽기와 쓰기와 사랑으로부터 빚어지는 경계도 있다.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할 때면 하루 중 불쾌한 일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늘 사람으로 가득 찬 퇴근길 지하철에선 어쩌다 부딪친 사람에게, 큰 목소리로 통화하는 이에게 인상을 찌푸리고 불쾌함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다 누군가 정류장 앞 오밀조밀 만들어둔 눈사람을 보았을 때나 일몰을 구경하던 이와 눈이 마주칠 때에 서로의 연한 경계가 드러나듯, 잠시 묘한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경계는 사물이나 기준을 나누는 한계가 될 수도 있고, 지역을 구분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경계하여 지키는 것이 있고, 반대로 확장하여 새로운 세계와 자아를 발견하는 경계도 있다. 불교에서는 경계를 인과의 이치에 따라 스스로 받는 과보라 칭한다. 다시 주어진 무대를 묵묵히 그리며, 살아가며, 꿈과 현실로 행하는 이들을 보며 내게 주어진 약간의 운과 불운을 생각한다. 무엇을 경계 안에 두느냐에 따라 경계는 단단한 테두리가 되기도, 철조망이 되기도, 화단이 되기도, 무성한 울타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게 주어진 운에 가까워지며 조금 더 명징해질 것이다.

2021-01-25

나는 내가 실패하는 사람이 될까봐 두려워

열일곱의 나는 모든 것이 싫었다. 학교는 왜 다녀야 하는지, 대학은 왜 진학해야 하는지, 우리는 왜 굳이 태어나서 허망하게 죽어야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세상에는 모종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고 그건 분명 나를 괴롭히기 위해 구축된 시스템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비대한 자의식은 사실 나는 먼지만큼이나 작은 인간이라는 것을 상기하는 반증에 불과했다. 어차피 끝은 정해져 있으며 내가 원하는 미래의 모습은 아무리 노력해도 될 수 없을 것이라는 묘한 패배주의에 빠져있던 것이다.요즘의 학생들도 그때의 나와 비슷한 기분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소설 수업을 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눠보면 “제 인생은 망했어요” 하는 말로 끝맺음을 짓기 일쑤다. 그럼 나는 당황하고 마는데 이 친구들은 그때의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조숙하고 열린 태도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정말 잘하고 있어.” 진심을 가득 담아 이야기하지만 별로 와 닿아 보이진 않는다. 그저 선생의 의례적인 위로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혼자서 베트남을 종단했던 적이 있다. 커다란 배낭 하나 둘러매고 호기롭게 떠난 여행이었다. 하노이를 떠나 사파에서 2박3일을 보내고 다음으로 예정된 도시는 닌빈이었다. 땀꼭 호수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사파에서 닌빈으로 이동하려면 슬리핑 버스를 타야 했다. 나는 머물고 있던 숙소의 호스트에게 닌빈으로 가는 버스표를 예매해줄 수 있냐고 물었고 그는 흔쾌히 알겠노라고 답했다. 자신의 오토바이에 나를 태우고 터미널에 데려다주기까지 했다. 엄지를 척 내미는 그의 환한 미소만 믿고 아무 확인 없이 버스에 올라탄 것이 실수였다. 8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라오스와 국경이 맞닿은 도시, 디엔 비엔 푸였다.그러니까 나는 내가 원했던 곳과 정반대에 위치한 도시에 떨어진 것이다. 호스트의 실수였던지 내 실수였던지 모르겠지만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도착한 시간은 늦은 밤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부랴부랴 터미널 근처의 숙소를 예약했다. 주인은 불친절했고 침구는 더러웠으며 숙소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피로하고 지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웠다. 피곤은 쏟아졌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애써 짜놓은 계획이 모두 틀어졌다. 시간과 예산이 부족했고 예약된 일정을 모두 취소해야 했다. 축축하게 젖은 마음은 부패되어 곰팡이가 필 지경이었다. 나는 몸을 웅크리고 앉아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망했다.그렇게 퉁퉁 부은 눈으로 맞이한 다음 날 아침, 나는 무작정 숙소를 나섰다. 여행 책자에도 인터넷에도 이 도시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았다.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낙담한 기분으로 발길이 닿는 대로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지금 떠올려보면 그때의 나는 많은 것과 마주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가게 주인에게 손짓발짓으로 주문한 볶음 쌀국수와 철부지 동네 꼬마들. 망망하게 펼쳐진 도시를 바라보며 단숨에 읽어 내려갔던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에서의 감동. 그렇게 나는 계획에도 없던 도시에서 이틀을 보내고 다시 하노이로 돌아와 여행을 재개했다. 여행 일정은 완전히 수정되었지만 오히려 나는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기분으로 이곳저곳을 유랑할 수 있었다.우리는 무언가를 시도하려고 할 때 먼저 실패하는 상황을 걱정한다. 이게 끝이라면? 여기가 나락이라면? 두려움은 경험을 가로막는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은 어느 날 갑자기 성난 파도처럼 몰려와 우리를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유려한 서퍼처럼 거친 물살을 헤쳐 나가면 좋겠지만 균형을 잡지 못한 채 바닥으로 꼬르륵 잠길 수도 있다.돌이켜보면 다양한 실패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다. 실패한 사람이 될까봐 두렵지만, 실패가 두렵진 않은 나를. 그러니 나는 언제든 실패할 준비가 되어있다. 사무엘 베케트가 남긴 그 유명한 정언처럼. ‘실패하라, 또 실패하라, 그리고 더 나은 실패를 하라.’

2021-01-18

올 겨울 한파, 어쩌면 지구의 경고일지도

지난 1월 8일, 한반도에는 기록적인 한파가 불어 닥쳤다. 서울의 아침 기온은 영하 18.6℃로 2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고, 경북 지역의 수은주도 영하 15℃ 아래로 떨어졌다. 1964년 이래 57년 만에 제주도도 한파 경보가 발효되는 등 실로 어마어마한 한파가 한반도를 매섭게 할퀴었다.갑자기 폭설도 내리는 바람에 도로가 아수라장이 되고 곳곳의 수도 계량기가 동파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사 오고 3년 간 한 번도 언 적이 없었던 우리 집 수도도 얼었다.불과 하룻밤 사이의 일이었다. 내일 일어나면 수도가 얼지 않도록 물을 살살 틀어놔야지 마음을 먹고 잠들었는데, 그 하룻밤 만에 수도가 얼어붙은 것이다. 수도가 얼자 나는 더 이상 이 집에서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수도가 얼었다는 것은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고,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씻는 건 둘째 치고 기본적인 생리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얼어붙어버린 집에서 나는 몇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짐을 싸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나는 친구 집과 아버지 집을 전전하며 떠돌이 생활을 했다. 자연재해의 피해자가 되어 (사실상)집을 잃기는 처음이었다. 얼어버린 수도가 자연스레 녹길 기다리며 며칠을 버티다 결국 동네 철물점 사장님께 수십만 원을 드리고 배관을 녹일 수 있었다. 우리 집 배관은 보일러실부터 계량기까지 싹 다 얼어붙어 있었다. 불과 하룻밤 사이에 말이다.이번 한파는 역설적이게도 지구 온난화가 그 원인이라고 한다. 지구가 따뜻해지는데 어째서 한반도는 더 추워진 것인가. 이번에 뉴스를 보며 공부한 바에 의하면 이러하다. 겨울철 한반도의 추위는 주로 북서쪽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인데, 겨울철 한반도와 시베리아 사이에는 고맙게도 시베리아 기단을 가로막는 제트기류가 형성된다고 한다. 그런데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제트기류의 양 끝 지점의 온도차가 줄어들고, 그로 인해 이 제트기류가 힘을 잃게 되는 것이다.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한반도를 쉽게 침범하지 못하던 시베리아 기단이 마음껏 한반도로 넘어와 이번과 같은 한파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요약하자면, 지구온난화로 몸살을 앓던 지구가 ‘콜록’하고 기침 한 번 한 바람에 한반도에 한파가 몰아치고 폭설이 내리고 도로가 마비되고 계량기 7천여개가 망가지고 우리 집 수도가 얼어붙고 내가 일주일간 이재민 아닌 이재민이 된 것이다.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나는 사실 환경 문제에 관심이 별로 없는 편이다. 쓰레기를 버릴 때에도 분리수거는 대충대충 흉내만 낼 뿐, 페트병에 붙어있는 비닐 라벨을 떼거나 종이박스에 붙어있는 비닐 테이프를 제거하는 일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왔다. 쓰레기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지인들을 보며 ‘뭘 굳이 저렇게까지…’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고 나니까 문득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나에게 지구가 ‘이놈’하며 가벼운 호통을 한 번 친 느낌이었다.지구 온난화가 불러온 한파 때문에 하얗게 얼어붙은 동네를 보며 재난영화 ‘투모로우(2004)’가 떠오르기도 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다 녹고, 이로 인해 지구에 빙하기가 찾아온다는 내용의 이 영화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분노한 자연 앞에서 인류의 무력함을. 인류는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지구의 자원을 마음대로 쓸 권한이 있다고. 허나 그건 오만이었습니다.”이번에는 고작 우리 집 수도가 어는 정도의 경고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계속해서 우리가 ‘지구의 자원을 마음대로 쓸 권한’과 같은 오만이나, 환경문제에 대한 나와 같은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면 지구는 더욱 더 엄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항의를 해 올지도 모를 일이다.

2021-01-18

참사람 장경식

북극한파와 함께 폭설이 쏟아진 지난 6일, 제주도에서 부고 하나가 날아들었다. 제주 ‘봄 연구소’ 장경식 소장이 새해 첫 날 뇌출혈로 쓰러진 후 결국 세상을 떠난 것이다. 역사나 인명사전에 등재될 수 없는 한 개인이지만, 이 땅에서 60년을 지내온 그의 삶을 공적인 사건으로 기록하고 싶다. 그는 사회적 약자와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며 특히 제주 지역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힘써왔다. 그가 지향한 ‘발전’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 문화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 연대의 감각이 지역은 물론 우리 사회 전체에 봄비처럼 퍼지는 일이었다. 아내인 봄 정신건강의학과 신윤경 원장과 함께 그 봄비의 마중물이 되어 왔다.‘장경식 추모’ 단체채팅방에는 2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슬픔과 위로를 나누며 고인을 추억했다. 빈소에는 대안학교인 제주 볍씨학교 학생들이 한달음에 달려와 생전 고인이 좋아했던 노래 ‘그대와 함께 평화가 되어’와 ‘아침이슬’을 울먹이며 합창했다. 유가족들은 너무 이른 이별에 황망해 하면서도 더운 파도처럼 밀려오는 조문객들의 손을 잡고 의연하게 슬픔을 견뎠다. 청소년, 이주노동자, 영세상인, 가톨릭 신부, 스님, 작가, 교수, 음악가, 공무원 등 수많은 이웃들이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발인일에는 솜뭉치 같은 함박눈이 하염없이 내렸다. ‘장경식의 친구들’은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손에 손 잡고 하늘 향해 “안녕, 안녕!” 외쳤다. 고인이 어떠한 삶을 살아 왔는지 짐작할 만하다.2008년, 아내와 제주도로 온 후 이주민이라는 제한적 위치에도 아랑곳 않고 ‘불의 전차’처럼 달리며 지역을 위한 활동들을 펼쳤다. 그가 걷어 부친 굵은 팔뚝은 척박한 땅을 일구는 개척의 호미나 다름없었다.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활달한 생명력이 우렁우렁 넘치는 그의 호탕한 웃음은 끝내 여러 장벽과 빗장을 열었다. 아내가 개원한 봄 정신건강의원에 별도의 사무실을 두고 ‘돌봄’, ‘들여다봄’, ‘새싹이 돋는 봄’이라는 뜻의 봄 연구소를 열어 지역민들에게 인문학을 통한 마음 치유와 회복을 선물했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볍씨학교 등을 물심양면 후원하며 아동과 청소년 봉사에 힘썼다. 또 제주에 온 예멘 난민들을 향해 혐오와 적대감이 일어날 때 그들을 위한 거처를 마련하고, 지역사회 인식을 바꾸어 난민들이 안전하게 정착하도록 밤낮없이 일했다.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유목민’이라는 인문학 모임을 이끌며 독서와 영화 감상, 명사 초청 강연 등을 펼쳤고 그 모든 활동 안에는 반드시 토론이 자리 잡게끔 했다. 그가 꿈꾼 세상은, 사람들이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다양한 생각들이 막힘없이 흘러 큰 바다를 이루고, 그 바다에서 생명과 평화가 탄생하는 ‘행복의 나라’였다. 그는 물리적인 연대보다 정서적, 정신적 연대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연대를 위해 불쏘시개, 마당발, 스피커를 자처했다. 불의를 참지 못하고, 감정표현에 거침없으며, 주관이 뚜렷하고 고집 센 데다 ‘투머치토커’라 때론 일부러 피해야했지만, 그는 어린아이에게도 늘 배우려 했고, 자신과 다른 정치적 견해에도 귀 기울이는 열린 사람, 넓은 사람이었다.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재야운동가 백기완 선생,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인권운동가 서승 교수 등을 아버지처럼 모셨고, 청소년, 어린아이, 여성, 이주노동자를 살뜰하게 챙겼다. 단체채팅방 인원의 몇 배나 되는 사람들이 그에게 신세를 졌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진심이었다. 막걸리와 꽃과 사람을 뜨겁게 사랑한 참사람, 장경식 소장은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 윤리, 타자에 대한 무한 책임이라는 비대칭적 관계를 온몸으로 살다 갔다.그는 떠났지만, 그가 수많은 이들에게 남긴 감명은 늘봄처럼 환한 빛이 되어서, 그를 기억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변의 10명에게, 그 10명이 다시 10명에게, 그렇게 또 10명, 10명씩 빛을 나눌 때, 볍씨학교 학생들이 그의 영전에 바친 노래처럼, 제주를 넘어 “온 누리 흘러넘치는 평화의 물결”이 될 것이다. 그렇게 계속 살아 있을 것이다. 안녕, 안녕!

2021-01-11

낙태죄 폐지 이후 나아가야 하는 것

2021년 1월 1일부로 낙태죄가 입법 공백 상태에 놓였다. 지난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2020년 12월 31일까지 대체 입법을 시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대체 입법 기간을 지난 현시점에선 낙태죄 일부 효력이 상실되었고 명확한 대체 입법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사실상 낙태죄는 폐지된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지만 완전한 폐지는 아니다. 현재 입법이 공백으로 놓여 있기 때문에 의료계와 여성계 전반적으로 혼란이 일고 있다. 의료계는 선별적 낙태 거부를 선언하였고, 이에 따라 병원과 의료진마다 낙태 가능 여부나 금액이 천차만별이다. 또한 여성이 안전하게 임신을 중지할 수 있는 대책 마련과 법적인 보호 장치가 없어, 빠르게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그간 임신 중지가 필요한 여성들은 암암리에 인터넷 사이트나 비공개 카페를 통해 임신 중지에 관련된 정보를 얻었다. 미프진과 같은 유산 유도제를 비밀리에 구하고, 잘못된 방식으로 복용하거나 부작용으로 인해 응급실을 찾는 여성 또한 적지 않았다. 앞으론 이와 같은 상황을 줄이기 위해 누구나 간편하고 빠르게 정보를 찾아볼 수 있도록, 임신중지를 위한 각종 정보와 자료가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상담이나 구체적인 의료 가이드라인 또한 의료진과 전문가의 충분한 논의를 통해 제정되어야 한다.낙태죄 폐지를 말하는 여성들은 ‘여성의 재생산권’에 대한 분명한 목소리를 꾸준히 냈다. 재생산 권리는 성관계, 임신과 출산 여부와 시기, 자녀의 수 등 출산에 해당하는 모든 행위를 포함하여 여성이 스스로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모자보건법 14조는 본인이나 배우자가 유전으로 정신 장애나 질병이 있을 시,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한 임신, 혈족이나 인척간의 임신, 임신 지속이 모체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시에만 임신 중단이 가능하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강간, 준강간의 경우 입증이 어려웠으며, 여성의 입장에서는 신체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고 여겨졌다. 또한 과거 국가 차원에서 산아 제한 정책을 펼치며 오히려 임신 중단의 범위를 허용하는 법으로 기능했다. 새로 개정되어야 하는 모자보건법의 방향은 임신과 출산이 더는 국가의 인구 정책 수단이 아닌, 개인의 선택이자 권리가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남녀의 결혼 제도 없이 자발적으로 임신을 선택하는 ‘자발적 미혼모’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방송인 사유리 씨는 자신의 SNS를 통해 “고심 끝에 결혼하지 않고 엄마가 되기로 결정했다”고 말하며 임신 소식을 알렸다. 산부인과 검진 결과 자신의 난소 나이가 48세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서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녀는 원치 않는 결혼 대신, 자신이 직접 아이를 선택하여 낳아 기르는 것을 택했다.중국 광저우에 살고 있는 이에하이양은 갈색 머리와 하얀 피부, 푸른 눈을 가진 아이를 안고 있다. 밝게 웃는 아이의 얼굴은 얼핏 보아도 서양인에 가깝다. 28살, 사랑하는 남자는 없지만 아이를 갖고 싶었던 이에하이양은 외국으로 가서 정자를 직접 고른 뒤 자신의 딸인 ‘도리스’를 낳았다. 홀로 화장품 사업을 시작하였고 몇 년 뒤 놀라울 만한 성과를 이끌어낸 그녀는 자신의 경제적 여유와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책임감을 고려한 뒤, 스스로 임신과 출산을 결정했다.그녀들은 자신의 의지로 출산을 택해 새로운 가족 형태를 꾸렸다. 과연 한 사람이 두 사람 몫을 해낼 수 있을지 의문과 우려를 내비칠 수 있겠지만, 누구도 한 가정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거나 개인의 행복을 정의할 수 없다.아직 임신 중단 세부 절차나 구체적인 법안 등 남아 있는 문제로 갈 길이 멀다. 낙태죄가 사라진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실질적이면서도 유용한 법안들이 마련될 수 있도록 개인의 지속적인 관심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식이나 문화, 교육 등 바뀌어야 할 것이 많다. 임신중지에 취약한 여성에게, 같은 고민을 나누는 친구에게, 여성 스스로가 신체 결정권을 내릴 수 있는 날이 어서 주어지기를 바란다.

2021-01-11

시간의 밖에 있는 괄호

인간이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긋게 되는 경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켄 윌버의 책 ‘무경계’. /정신세계사늘 그렇듯 한 해의 시작은 기대와 설렘을 몰고 온다. 힘겨웠던 2020년을 지나 보내고 나니 새해라는 단어가 더욱더 귀하게 여겨진다. 이러한 마음으로 2021년을 맞이한 모두가 각자의 소망을 움켜쥔 채로 힘차게 나아가는 중일 것이다.한 해를 떠나보내면서 내가 꼭 지키는 규칙이 하나 있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다이어리의 가장 마지막 장에 적어두는 것이다. 실현 가능한 포부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적되 그것에 집착하거나 일부러 곱씹지 않는다. 열두 해를 살아가며 내가 어떤 각오를 다졌는지 까맣게 잊어버리다가 12월의 마지막 날 비로소 다이어리의 마지막 장을 펼쳐본다. 목표한 바를 이루기도 그렇지 못하기도 하지만 성공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막막한 종이를 앞에 두고 골몰하던 작년의 나를 돌아보며 새롭게 나아갈 힘을 얻는다.이 작업은 해마다 달라지는 나의 상태를 조망할 수 있기에 흥미롭다. 건강과 주변의 안녕 또는 작년보다는 조금 더 두툼해진 지갑을 바랄 때도 있다. 공통된 점이라 하면 당시의 상황에서 결핍된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이다.이따금 씁쓸해지기도 한다. 이루고자 하는 바가 나의 기준에 입각한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적 통념에 따라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때가 그렇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나이라는 숫자에 연연하면서 조바심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켄 윌버의 저서 ‘무경계’에서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긋게 되는 경계에 관해 이야기한다. 어떠한 관념이 나뉘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이 하나의 세계로부터 두 개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고 작음, 빈곤과 부, 흑과 백, 젊음과 늙음. 이것은 모두 다르긴 하지만 결국 단일한 사건을 나타내는 서로 다른 표현일 뿐이다.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반쪽에만 집착하며 다른 쪽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것은 출구가 없는 입구만의 세계를 얻으려고 애쓰는 것과 같다.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제에 살면서 내일을 꿈꾼다. 그렇게 해서 하나의 시간을 둘로 나눈다. 과거와 미래가 압박하고 있다는 기분과 함께 괴로워하며 자신을 속박하게 된다.우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허망하게 흘려보내고 있는지에 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현재는 한정되고, 담으로 둘러싸이고, 제한된다. 열린 순간이 아니라 짓눌린 순간, 압착된 순간, 즉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인 덧없는 순간이 된다. 과거와 미래가 너무나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샌드위치 속의 고기인 현재의 순간은 단지 얇은 종잇조각처럼 축소되고 우리의 실재는 이내 내용물 없는 두 조각의 빵이 되어버린다.’우리는 언제나 더 나은 내일을 원한다. 그러나 힘겹게 걸어온 끝에 당도한 순간이 바로 현재라는 것은 쉽게 망각하곤 한다.미셸 투르니에의 ‘외면일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크리스마스와 정월 초하루 사이의 기이한 일주일은 시간의 밖에 있는 괄호 속 같다.’ 주요한 명절을 앞뒤로 두고 마치 공백으로 남은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탁월하게 묘사한 것이다.어쩌면 우리는 소중한 매일을 이러한 기분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아직 진짜가 아니라고,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어딘가에 있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고요히 내리는 눈을 그저 바라보는 대신에 꽝꽝 얼어붙은 도로의 출근길을 맞이해야 하는 내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 미래를 예측하려는 시도를 멈추는 것만으로 우리는 한결 더 가벼워질 수 있다. ‘바로 지금’ 보고 느끼는 것만큼 중요한 체험은 없다. 변화와 지속이 공존하는 삶 속에서 미래는 현재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리라. 새해에는 그런 다짐을 해본다.

2021-01-04

기다림의 끝이 보일 무렵

2021년 새해가 밝았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이 즐거운 사람이야 얼마나 되겠냐마는 2020년을 마감하는 것에 대한 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주로 아쉬움보다는 드디어 지긋지긋한 한 해가 끝났다는 후련함이었다. 2020년 한 해가 그만큼 지긋지긋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코로나19 때문이었을 것이다.불과 일 년 전만 해도 매일매일 착용해야 하는 마스크, 그래서 돋아나는 뾰루지, 사이버 강의, 음식점 및 주점 아홉시 이후 영업 금지, 헬스장을 비롯한 운동시설 집합금지, 하나하나 영업을 포기하는 작은 가게들과 같은 풍경들이 일상이 아니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마스크 하나 쓰지 않고 옹기종기 모여 영화를 보고, 공연을 보고,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던 풍경이 불과 일 년 전의 것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기억들이 까마득한 이유는 그만큼 우리에게 이 시절이 길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으리라.차라리 코로나 19와의 싸움이 끝나는 날이 정해져 있었다면, 그 날까지의 기다림이 일 년이건 이 년이건 그 기간을 미리 알 수 있었다면 우리의 마음이 이토록 힘들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원래 기약 없는 기다림은 그 기다림 자체보다 기약이 없다는 사실로 인해 더욱 고통스럽기 마련이므로.새해의 시작부터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 하나 들려온다. 정부가 미국 제약사인 모더나와 2천만 명분의 코로나19 백신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다. 질병관리청은 이번 계약으로 인해 정부가 구매한 백신의 수는 인구의 100%를 상회하는 5천600만 명분이 되었고, 5월부터 백신의 접종이 가능하다고 발표했다.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멀든 가깝든, 그 끝이 정해져 있는 기다림은 그렇지 않은 기다림에 비해 훨씬 수월하다. 지긋지긋했던 우리의 기다림에도 드디어 예정된 끝이 희미하게나마 보이게 되었다. 적어도 여태까지 우리가 기다린 것보다 앞으로 기다려야 할 시간이 길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생각하니 한결 희망적인 기분이 된다.그런데 어떤 이들에게는 모두의 기다림을 끝내는 일보다 당장 작은 것들을 누리는 것이 더욱 중요한 모양이다. 간절곶, 호미곶, 해운대, 정동진, 성산 일출봉 등 해돋이 명소를 보유한 지자체들은 제발 해돋이를 보기 위해 모이지 말아달라며 1월 1일 당일 해당 장소들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하고 해돋이 인파를 막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폐쇄된 해맞이 명소들의 변두리에서라도 해돋이를 보겠다며 해당 장소들에서 장사진을 이루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곳에서마저 거리두기 등 방역지침조차 지키지 않는 일부 시민들을 보며 기분이 씁쓸해진다. 그들 중 대다수는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자신들과 주변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을 것이다. 코로나 방역지침을 어겨가며 빌었을 소원이 건강과 행복이라니, 이보다 더한 역설이 또 있을까.올해는 기필코 이 긴 기다림을 끝내야 한다. 우리는 다시 마스크를 벗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회사원이건 자영업자건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 걱정 없이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일이 끝난 후에는 다섯 명이건 여섯 명이건 상관없이 모여 자신들의 하루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어야 하며, 거리를 밝힌 음식점과 주점의 간판들은 아홉시건 열시건 꺼지지 않고 반가운 손님들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그럴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다. 그러나 그날은 거저 오지는 않을 것이다.여태까지 해온대로 지루하고 고단하게, 우리의 즐거움을 조금씩 희생하며 정부의 방역지침을 지키는 것이 긴 기다림의 끝을 하루라도 앞당기는 일이 될 것이다. 온라인으로 중계되는 2021년 새해의 해돋이를 바라보며 부디 얼마 남지 않은 이 기다림이 무사히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2021-01-04

변창흠, 말로 흠을 만들다

얼마 전 SNS에서 화제가 된 영상이 있다. 미국의 무명배우 루카스 게이지는 집에서 화상 오디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가 간절함을 담아 마지막 대사 연습을 하고 카메라 테스트를 마칠 무렵, 마이크 끄는 것을 깜빡한 감독의 부적절한 말이 들려왔다. “가난한 사람들은 저런 작은 아파트에 사는군. 저 낡은 티브이 좀 봐” 당혹스러울 만도 한데 게이지는 “음소거가 되어 있지 않네요. 저도 알아요. 형편없는 아파트죠. 제가 좋은 집에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주세요”라고 의연하게 대처했다. 감독은 즉시 사과했다. 스스로에게 모멸감을 느낀다는 감독에게 게이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예요. 저는 작은 상자 안에 살고 있지만, 작품에 출연할 기회를 주신다면 우리는 괜찮아질 겁니다”라며 오히려 위로를 건넸다. 막말을 한 감독은 트리스트램 샤피로. 1966년생인 그는 루카스 게이지보다 서른 살 더 많다. 나이, 경력, 지위, 물질적 풍요와 인격의 성숙은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부패한 정치권력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이 있다. 어느 국회의원 후보가 티브이 연설을 한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여러분을 섬기고 사랑하겠습니다” 온화한 얼굴로 연설을 마친 그는 카메라가 꺼지자마자 돌변한다. “멍청한 개돼지들이 뭘 알기나 해? 이만큼 먹고 살게 해주는 걸 감사할 줄 알아야지” 곧이어 재래시장을 방문해 억울한 일을 겪은 상인의 호소에 귀를 기울인다. 연민의 표정을 짓는 그에게 상인은 와락 안기며 눈물을 쏟는다. “제가 다 해결해드리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상인의 등을 토닥여주던 그는 재래시장을 나서자마자 보좌관의 뺨을 때린다. “더러운 것들이 감히 내 몸에 손을 대? 막지 않고 뭐했어?” 썩은 오물이라도 묻은 듯 신경질적으로 옷을 터는 국회의원 후보를 보며 관객들은 씁쓸함을 느낀다. 영화 속 가상인물이지만, 현실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공직 근처에는 평생 가볼 일 없는 내게도 부끄러운 ‘막말의 추억’이 있다. 15년 전쯤인가 다니던 교회에서 지역주민들을 위한 바자회 겸 야외 음악회를 열었는데 내가 기획 및 MC를 맡았다. 이전에 트로트나 사물놀이를 공연했을 때는 반응이 좋더니 바이올린과 첼로 등 클래식 연주를 한 그날은 영 썰렁하고 산만했다. 연주자들이 정성껏 연주하는 동안 누구도 음악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연주자들 보기 민망하기도 하고, 화도 났던 것 같다. 미성숙한 이십대 초반, 왜곡된 문화의식을 가졌을 때다. 다른 진행 스태프에게 “이런 공연은 강남 같은 데서 해야지 우리 동네랑은 수준이 안 맞는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지나가던 한 주민이 그걸 듣고는 “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며 항의했다. 그 즉시 여러 번 고개 숙여 사과했다. 해명할 것도 없는 명백한 잘못이었다. 그분이 사과를 받아주어 일단락됐지만 그 말실수를 떠올리면 아직도 부끄럽다.그 일을 통해 나는 말의 경솔함을 경계하게 됐으므로 실수도 좋은 경험이겠지만, 깨달음의 대가로 부끄러움은 평생 안고 가야 할 몫이 됐다. 한 번 뱉어진 말은 발화자의 입을 떠나도 세상에 내내 떠돌기 마련이다.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막말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사망한 비정규직 노동자 김 군을 두고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걔가 조금만 신경 썼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될 수 있었다”며 사고의 책임을 김 군에게 돌렸다. 노동자와 노동 현장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여실히 드러낸 막말이다. 또 이런 말도 했다. 공공임대주택 공유주방 사업 논의 중 “못 사는 사람들은 밥을 집에서 해 먹지 미쳤다고 사 먹냐”라면서 임대주택 입주 대상자인 서민들을 비하했다. 얼마 전 그걸 해명한답시고 한 말은 더 가관이다. “특히 여성은 화장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과 아침을 먹지 않으려 한다”고 했는데, 그가 평소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대충 짐작이 된다.각각의 막말마다 그럴듯한 해명을 내놓긴 했지만, 말이라는 것은 뱉어지는 순간 그 소유관계가 달라진다. 말한 사람이 말의 진의를 ‘가나다라’ 주장해도 듣는 사람이 ‘아자차카’ 들으면 그 말은 결국 ‘아자차카’가 된다. “엎질러진 말은 주울 수 없다”라든가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격언은 초등학교 때 배우는 건데, 너무 오래되어 까먹었는지도 모르겠다. 말 한 마디로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도, 상처와 절망을 줄 수도 있는 공직자라면 자기 말에 부드러운 깃털이 달렸는지 아니면 날카로운 가시와 이빨이 달렸는지 철저한 자기검열을 해야 한다. 특히 그는 주거와 교통 등 국민의 기본 생활을 관장하는 부서의 장관이다. 나 같은 삼류 시인의 글도 1차, 2차, 3차 교정을 거쳐야만 세상에 나오고, 막걸리 한 병을 생산하기 위해 양조장의 설비 시설은 수차례의 품질 검사를 진행한다. 변 장관 막말의 경우, “말이야 막걸리야”라는 속어는 막걸리 입장에서 치욕이다. 음가를 가지고 유치한 이름 풀이를 해보자면, 변창흠은 ‘말로 흠을 만든 사람’이 된다.말의 진의가 어떻든 국민이 듣는 ‘아자차카’는 이렇게 풀이된다. “걔가 조금만 신경 썼으면” 운운은 “위험의 외주화 등 열악한 노동 현실을 계속 쉬쉬하며 덮을 수 있었는데 재수도 없게 노동자 하나가 사고를 쳐서는 골치 아프게 됐다”, “못 사는 사람들” 어쩌고는 “공공임대주택 입주자들은 ‘임거(임대아파트 거지)’들인데 분수도 모르고 무슨 외식을 하겠냐”, “여성은 화장을” 저쩌고는 “여자들은 반드시 화장을 해야 한다. 화장을 안 하면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 그게 아니라고, 억울하다고 아무리 항변해도 소용없다. 그렇게 들리는 걸 어쩌란 말인가? 그러니까 말을 가려 했어야 한다. 말의 무서움을 알고, 말하기 전에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야 한다. 하지만 말이라는 것은 결국 가치관과 인식의 표현이므로, 한 인간의 사고는 어떻게든 말을 통해 표출된다. 말에 나타난 변 장관의 노동인식, 사회인식, 여성인식은 공직자의 것으로는 부적합하다.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그동안 많은 공직자들이 막말과 말실수로 몰락했다. 2008년 당시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은 “버스 요금이 70원쯤 하나?”라고 했다가 민생을 전혀 모른다고 맹비난을 받았다. 그 말실수는 정 의원의 정치 여정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서민과 괴리된 재벌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었다. 한편 2004년 당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미래는 20대, 30대들의 무대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한걸음만 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아요. 그분들이 꼭 미래를 결정해 줄 필요는 없단 말이에요. 그분들은 어쩌면 곧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그분들은 집에서 쉬셔도 돼요”라고 했는데, 노인을 폄하했다며 거센 반발을 불렀고 그 결과 정 의장은 강력한 차기 대권 후보의 아우라를 상실하고 말았다. 정몽준 의원과 정동영 의장의 말은 막말이라기보다 말실수에 가깝고, 변창흠 장관에 비하자면 아무것도 아니다.지난 2016년 교육부 정책기획관이었던 나향욱은 “민중은 개돼지”라고 했고, 이듬해 충북도의원 김학철은 “국민은 레밍”이라고 했다. 이런 게 진짜 막말이다. 무슨 이솝우화도 아니고 국민을 개, 돼지, 쥐에 비유한 상소리에 사람들은 분노했다.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두 사람의 사퇴 및 제명을 촉구했다. 변창흠에게도 똑같이 해야 하거늘 정부와 여당은 국민의 분노와 실망에도 불구하고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변창흠의 장관 임명은 이번 정부의 도덕성과 직결된 문제다. “저쪽은 더 심했는데…”라는 볼멘소리가 이번만큼은 씨도 안 먹힐 듯하다. 변창흠 장관의 막말은 비교불가 ‘역대급’이다. 많은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부디 정부와 여당에서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변 장관이 조금만 말에 신경 썼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될 수 있었다”고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막말도 문제지만 말만 번지르르한 것도 곤란하다. 국민들은 도덕성과 청렴성, 철학, 능력을 두루 갖춘 인사를 원한다. 대단하고 특별해보이지만 사실 그것들은 공직자가 갖춰야 할 기본 자질일 뿐이다.

2020-12-29

그럼에도 희망하는 것

올해가 끝나간다. 머지않은 날에 2020년도를 돌이켜 보며 ‘맞아, 2020년은 유독 다사다난한 해였지’ 말하며 아무것도 가리지 않은 입으로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올 한해는 코로나19로 인한 질병의 두려움으로 혼란스러웠고 여전히 세상 안팎에선 많은 사건 사고가 오갔다. 그럼에도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엔 때에 맞춰 꽃이 폈고 기온이 오르내렸다. 꿈쩍하지 않을 것 같았던 한 해가 끝나간다니. 아직 모든 것이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되진 못 했지만, 한 해의 끝에서 올해를 돌아보자니 나의 생활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적게 소비하고 소유하는 미니멀라이프와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제한하는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를 지향하면서 내가 가진 것으로만 생활하고 기쁨을 느끼며 현재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무척 만족하고 있다.코로나 블루로 인해 우울감을 느끼는 나날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웃음을 자아내는 이들에게 눈이 오래 머물렀다. 구독자 57만 명을 보유하고 있는 유튜버 ‘핏블리(FITVELY)’는 국제 트레이너이자 스포츠 영양코치다. 주로 운동 콘텐츠를 올리던 그는 코로나로 인해 개업을 앞둔 헬스장을 닫아야 하는 위기에 처했다. 열지 못한 헬스장 안에서 치킨을 먹으며 하소연하는 방송을 진행하자 신기하게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건강한 몸을 위해 영양학적 지식을 쌓으려 영양학 자격증까지 딸 정도로 공부한 그는 평소 절대 먹지 않을 음식들을 한 상 가득 차려 맛있게 먹는다. 난생처음 맛보는 치즈볼 먹방이나 케이크, 마카롱, 족발 등 고칼로리 먹방을 선보이며 타락한 헬스인, 코로나19가 만든 괴물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한 포털사이트에서 자신이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라 밝힌 닉네임 ‘월터’는 “단골 가게에서 매일 시켜 먹는 메뉴에 내 닉네임이 추가 됐다”는 글을 올렸다. 인천 남동구에 위치한 ‘짐승파스타’에서 가게 단골 손님이 매일 감바스를 시킨다는 이유로 배달 앱 내 메뉴 이름인 ‘감바스 알 아히요‘를 ‘월터 감바스 알 아히요’로 수정한 것이다. 이 유쾌한 사연은 순식간에 각 커뮤니티와 SNS에 화제가 되며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과거 폐업까지도 고민했던 ‘짐승파스타’였지만 현재는 본점에 이어 부평점을 오픈하는 등 큰 인기를 끌고 있다.코로나19로 경기가 침체되자 코로나가 이어지는 기간 동안 임대료를 면제하는 착한 건물주의 사례나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저렴한 가격을 그대로 유지한 채 메뉴를 판매하는 가게의 선행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매출로 혼쭐을 내주자’라며 사람들은 가게의 상호를 공유하고 리뷰를 남기며 현재까지도 선한 영향력을 활발히 나누고 있다.지난 1일 사다리차로 인명을 구한 한상훈 씨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인테리어 자재 운반을 하던 한상훈 씨는 불길 속 베란다 난간에서 구조 요청을 하는 주민을 발견한 뒤, 자신의 사다리차를 이용하여 주민을 구했다.이어 구조 요청을 하지 않는 학생 2명을 발견하고 사다리차가 망가질 것을 감수하면서도 학생들을 구조했다. 긴박한 상황이었음에도 자신의 안전보다 타인을 위해 기꺼이 나서는 용기 있는 행동에 많은 이들의 경직된 마음에 따스함을 안겨 주었다.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도 우리는 웃음을 찾고 따스한 것에 본능적으로 눈길을 둔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가장 간절한 것은 사람과의 대화뿐만 아닌, 서로가 지닌 온기나 존재감, 우리가 여기 함께 있다는 믿음이나 확신이 아닐까.코로나19는 그간 볼 수 없었던 새롭고도 독특한 문화 양상을 보여주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은 평소에 하지 않던 즐길거리를 집 안에서 찾기 시작했다. 올해 초 인스턴트 커피와 설탕, 약간의 물을 넣은 뒤 400번 저어야 만들 수 있는 달고나 커피나 1000번 저어 만드는 수플레 계란말이, 1000번 이상 주물러 만드는 아이스크림 등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어야 하는 레시피가 큰 인기를 끌었다.N차 신상은 또 어떤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불황으로 사람들은 새로운 물건을 구입한다기보단 집에 잠자고 있는 안 쓰는 물건을 팔아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저렴한 가격의 필요한 물건을 산다. 최근 지역 기반으로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당근마켓이 큰 인기를 끌면서 중고거래는 하나의 새로운 놀이문화가 됐다. 희소성을 가진 한정판 운동화나 구하기 힘든 명품 의류나 가방을 거래하며 신상이 아닌, N차 신상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뿐만 아니라 취향이 유사한 사람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제품의 사용법을 공유한다. 단순히 가격만 보고 사고파는 것이 아닌 공감대를 형성하며 취향을 나누는 모이는 모임이 성행하고 있다.코로나19는 글로벌 색채전문기업인 팬톤(PANTONE)의 올해의 컬러에도 영향을 미쳤다. 매년 12월 올해의 컬러를 선정하는 팬톤(PANTONE)은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에 영감을 주며, 한 해의 컬러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지난 10일 발표한 2021년의 컬러를 대표하는 두 가지 색상은 일루미네이팅(Illuminating)과 얼티밋 그레이(Ultimate Gray)다. 밝은 노란빛으로 보이는 일루미네이팅은 따뜻한 햇살을 떠올리게 하며 긍정, 낙관을 의미를 담고 있다. 다소 차분한 회색빛의 얼티밋 그레이는 풍화를 견디는 해변의 자갈 같은 회색으로 견고함과 회복을 의미한다. 팬톤은 위 색상을 코로나19로 불확실하고 우울했던 한 해를 격려하고 극복해 나가자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말했다.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일루미네이팅과 얼티밋 그레이 색상이 재미있는 것은 두 가지 색상은 빛과 그림자처럼 상반되는 색을 띠었다는 점이다. 로리 프레스만 부사장과 레트리스 아이즈만 전무 이사는 “코로나19로 거리를 둬야 했지만 동시에 서로가 필요함을 체감한 한 해를 보냈다”고 말하며, 두 가지의 색상을 올해의 컬러로 지정한 이유에서는 ‘강인하고 희망찬 두 컬러의 화합을 통해 우리에게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로 위 컬러를 선정했다고 말했다.코로나19로 인해 내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성은 간략하고 분명해졌다. 화장품이나 옷을 사는 대신 꼭 필요한 것들로만 내 안을 채우는 소비 습관을 지니는 것은 물론 필요 없는 물건이나 관계마저 정리하게 되었다. 혼란의 폭풍 속에서 한 발짝 멀어져 휘청거리던 나를 다시금 바로 세우는 일은 많은 죄책감을 갖게 했지만 어떠한 용기가 생겼다. 타인을 멀리하고, 그러다 쉽게 배제도 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거리두기의 시간은 사람의 정과 온기를 그리워하게 했다.그럼에도 늘 세계는 혐오와 증오로 점철되어 있고, 나 또한 어느 순간에는 나만이 아는 무지의 동굴로 빠져들지만 그런데도, 정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돌아보게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이 무척 이기적이고 무모하고 난해하더라도 동굴 속의 빛을 쫓듯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의 희망을 바라고 믿어보는 것이다.

2020-12-22

성공한 이들의 TV, 그리고 미란이

코로나19 감염자 수가 연일 세 자릿수를 기록하는 가운데 내가 살고 있는 수도권 지역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2.5단계로 격상된 지 며칠이 지났다. 틈나는 대로 전시회 보는 것을 즐기고, 저녁이면 친구들과 만나 소주 한 잔 씩 나누는 것이 인생의 낙이었으나, 아무래도 외출을 삼가야 하는 시기이니만큼 나의 삶은 여러모로 달라졌다. 커다란 변화를 꼽자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게 되면서 TV시청 시간이 대폭 늘었다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이름 그대로 버라이어티한 버라이어티 쇼들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잘 간다. 그런데 요즘 TV프로그램들을 보면 과거에 느끼지 않았던 헛헛함 같은 게 느껴진다.그 헛헛함의 원인에 대해 고민하다가, 한 누리꾼이 SNS에 적어둔 짧은 글을 우연히 접하고 무릎을 탁 쳤다. “예전에는 가난하고 어렵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장애도 치료해 주거나 집을 고쳐주는 방송도 있었는데, 요새는 연예인들이 방송사 돈으로 국내외 여행가고 먹고 마시거나 준재벌 3세의 수십 억대 아파트 소개하거나 가난하지 않은 연예인들 집 정리를 도와주는 방송들이 나온다. 방송들이 낯설다.”코로나 19로 경기는 점점 어려워지는데, TV속에는 언제나 성공한 사람들이 나온다. 1인 가구의 삶을 조명하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MBC의 ‘나 혼자 산다’에는 언제부터인가 강남이나 한남동 같은 곳에 수십 억대 주택에 사는 연예인들이 출연하고 있다. 처음에는 다소 협소한 빌라에 살거나 어딘가에 얹혀살던 출연진들도 모두 고가의 주택에서 생활하며, 그들의 생활을 시청하는 이들과는 전혀 다른 규모의 경제생활을 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 한 언론은 우리나라 1인가구 10가구 중 4가구에 해당하는 38%가 월세로 생활하고 있으며 1인가구의 평균 연 소득은 2116만원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평균적인 1인가구 생활자의 시각으로 이 프로그램을 보면 출연진과 자신의 삶 사이의 간극을 필연적으로 느끼게 되고, 그로 인해 심리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최근 ‘온앤오프’라는 프로그램으로 논란이 되어 누리꾼들로 하여금 ‘플랙스님(Flex 스님)’이라 별명을 지어 부르는 등 수많은 원성을 듣는 승려 혜민의 사례는 어쩌면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응집된 박탈감이 터져 나오며 일어난 현상일 수도 있다.다른 프로그램들도 마찬가지이다. 온갖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의 집과 일상이 공개된다. 그들의 집과 일상은 우리의 것과 다르다. 새로이 정리된 집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신박한 정리’의 출연진들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미니멀하게 정돈된 집에서 살고 싶다. 그러나 좁아터진 원룸에서 무슨 미니멀 라이프가 가능하겠는가. 그나마 정리가 가능한 것은 그들이 살고 있는 넓은 집 덕분일 것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나오는 귀여운 아기들, 그들의 부모가 돈 걱정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좁아터진 집에 발 디딜 틈 없이 늘어놓은 아기 장난감들 탓에 인테리어고 무엇이고 포기해버린 가정을 본 적이 있는가?과거의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는 그런 사람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MBC의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의 ‘눈을 떠요’라는 예능에서는 가난을 이유로 치료를 받지 못하던 시각장애인들에게 개안수술을 해 주기도 했고,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인기코너였던 ‘신동엽의 러브 하우스’는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사는 이들에게 주택 리모델링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보통의, 혹은 보통보다 조금 열악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에게 새 희망을 주는 장면 장면은 충분히 감동적이었지만 이제는 찾아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부유하고 성공한 사람들만 등장하는 TV 속 세상은 국제 스포츠행사의 개최를 앞두고 거리의 부랑자들을 ‘청소’라는 명목으로 수용소에 가둬버렸던 어느 정권의 만행을 떠올리게 만든다.이것이 꼭 방송사 제작진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경제적 풍요만을 비추는 프로그램의 제작 배경에는 그러한 콘텐츠를 원하는 대중의 부추김이 필연적으로 존재했을 것이므로. 최근 일본에서는 만화 콘텐츠에 대한 소비 경향이 바뀌었다고 한다. 과거 ‘드래곤볼’이나 ‘슬램덩크’같은 만화는 재능은 있으나 처음부터 모든 면에서 특출나지는 않았던 주인공들이 숱한 위기와 노력을 통해 성장하고 그 세계의 최강자가 되는 모습을 그려냈다. 그런데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청년들 사이에서 노력으로 무언가를 달성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식이 팽배하면서 새로운 경향의 만화 콘텐츠가 유행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주인공이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순조롭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먼치킨’류가 바로 그것이다. 어차피 현실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차라리 아예 비현실적인 세계에 몰입함으로써 현실을 망각하려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대중들도 열심히 살다보면 좋은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언젠가부터 포기하게 되었고, (적어도 대중들의 눈으로 보기에는)애초부터 막대한 부를 갖춘 셀러브리티들의 삶 속으로 피신하고 싶어지게 된 것이 아닐까.이처럼 허탈한 생각들로 TV를 보다가 특별히 눈길이 가게 된 프로그램이 있었다. 바로 힙합 경연 프로그램인 쇼미더머니9 였다. 가장 주목받는 출연자는 아마 여성 랩퍼인 ‘미란이’일 것이다.Hey new water new vv 난 알바 째고 무대 위Yeah go get it go get it 가사 위 가난이 빛나지안 가 무한리필 살아봐야겠어 내 빌딩 Yeah개 같던 세상의 뒤통수 치러 왔지더 크게 Callin’ ma name 모두 날 보고 놀래‘미란이가 TV에’ 떼버려 Tag사 새롭게 Yeah yeah 타고 비행Skrr skrr 난 올라가 Skrr skrr 난 빛이 나내가 뭐라 했어 Mom 꺼내겠다고 포차맨 밑바닥의 소녀 엄마의 술병이 날 만들어허기져 이를 꽉 물어 Chit chat bout me 덤벼 겁쟁이 너VVS on ma neck 꿈 앞에 녹슨 팔찌 버려 문 앞에구제 벨트 아직 허리에 원망하던 과거와 춤출래-VVS 중 미란이 part.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포차를 운영하는 어머니와 함께 가난 속에서 자란 소녀가 랩퍼가 되고, 쇼미더머니9에 출전해 패자부활전을 통해 겨우 살아남더니 이제는 동료 랩퍼인 머쉬베놈과 함께 꾸민 무대가 유튜브 1000만 뷰를 돌파하고, 방탄소년단을 제치고 음원차트 1위까지 쟁취해내는 모습은 드래곤볼의 손오공이나 슬램덩크의 강백호와 같은 성장형 캐릭터들의 방불케한다.그에게 열광하는 대중들이 이토록 많은 것을 보면 아직까지 우리에게는 평범한 사람들의 희망 스토리가 필요한 것 같다. 2021년에는 부디 보면서 주눅 드는 TV보다, 보면서 희망을 얻는 TV가 되길 바란다.

2020-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