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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권선희 시인꽃, 핀다 꽃, 터진다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지만 올 봄도 병포 삼거리 벚꽃길 한 번 걷긴 글렀다. 동동거리며 사는 날들은 좀처럼 필 기미가 없고 사시사철 불어대는 얄궂은 바람은 삶이나 꽃이나 피는 족족 떨구기 바쁘다. 그래도 봄인데 한 번은 세상 구경 나서야지. 암만, 그래야지. 바지런한 가구점 형님이 하동 지나 순천만까지 휭 하니 돌아오자 봄나들이를 선동했다. 몇 번을 망설이던 눌태 형님까지 삼삼오오 몰려가 파마도 하고 옷도 한 벌씩 사 입었다.새벽 다섯 시, 정호반점 앞에서 버스는 출발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포구를 슬그머니 빠져 나가는 관광버스. 모처럼 알록달록 차려입고 나선 모습이 도시 아지매들 못지않다. 오늘만은 장터 좌판 비닐로 꾹 눌러 놓고, 손자 놈에게도 돈 몇 푼 쥐어 주고 나들이 간다. 물장화 고무장갑 냅다 던지고, 고무줄바지 낡은 버선 돌돌 말아 처박고, 꽃내 분내 풍기며 우리도 관광 간다. 굼실굼실 떡도 찌고 돼지머리 꾹꾹 눌러 실었다. 소주도 한 박스 맥주도 한 박스 두둑한 길이다.“행님요, 나서길 잘했다 아입니꺼. 이래 아니면 행님이나 내나 은제 꽃구경을 나서겠능교. 천 날 만 날 손 얼가가며 꽁치 배때기만 따다 한 평생 다 보낼 끼요. 마, 한 잔 받으소”가구점 형님이 소주를 들고 좁은 통로 오가며 잔을 권한다. 몇 번이고 손사레 치다가 결국은 에라 모르겠다 받아 마신다. 말간 술 한 잔에 빈속이 화닥화닥 달아오른다. 얼른 새우젓에 쿡 찍은 수육을 안주로 우물우물 씹는다. 버스는 어느새 포항을 벗어나 고속도로를 잘도 달린다. 운전석 위에 걸린 대형 스크린에서는 뽕짝이 울려대기 시작했다.겨울 내내 과메기 배지기 작업에서 손을 놓지 못했다. 몇 해 전부터 방송이고 뭐고 과메기를 선전해 대는 바람에 겨울이면 네 집 내 집 할 것 없이 언꽁치를 상자떼기로 쌓아 놓고 살았다. 연신 밀려드는 일감이야 반갑기 짝이 없지만 세상에 어디 공짜가 있던가. 언 손은 툭툭 갈라져 거북 등딱지처럼 굳고 온종일 쪼그리고 앉아 칼질을 해대느라 허리는 좀처럼 심을 세우지 못했다. 사흘 건너 한 번씩 한의원에 엎드려 침을 맞고 뜸을 떠도 저릿저릿한 오른쪽 다리는 시원하게 피가 돌지 않는다.“마, 퍼뜩 일 나소. 놀라꼬 나왔으믄 정신줄 마캐다 풀고 들고 뛰야 된다 아입니꺼. 글캐야 스트레슨지 스트레튼지 금마가 화딱 달라뺀다 아잉교”무조건 손을 잡아끄는 성화를 이기는 사람은 없다. 아니 죽기로 버틸 이유가 없다. 달리는 버스는 순식간에 춤판이다. 궁디 실룩이며 늙은 형님 젊은 형님 엉기고 성겨 한나절 정신없이 흐른다. 구룡포에서 하동까지 자빠질 듯 자빠질 듯 흔들며 흔들리며 간다. 매화야 피든 동 말든 동, 빗줄기야 치든 동 개든 동 쭉쭉 뻗은 길 따라 술 마시고 막춤 추며 간다. 휴게소에 내려 줄줄이 오줌 누고는 다시 또 간다. 산도 강도 훌훌 흘러간다.“아따, 좋구나. 참말로 좋데이. 이래 호시절이 있았는 줄 내는 우예 모리고 살았드노. 이래 기 나오이 천지가 봄이고나. 산도 곱고 강도 곱고 니도 곱고 내도 곱데이”“아고, 문디 행님요, 와 좋은 날 찔찔 짜고 이카시능교. 내사 마 울 행님 데불고 관광 가이 좋기만 하고마. 한나절 몸 풀고 맘 풀고 쏘댕기다 돌아가믄 내년 봄 꺼정은 끄떡없이 또 산다 아이요”어찌 모를까. 포구에 따개비처럼 붙어 함께 산 세월이 반백년을 넘었다. 복사꽃 같은 시절이 없었겠는가. 길길이 뛰던 청춘이 정녕 없었겠는가. 비린 바람 앞에서 새끼 마중하고 부모 배웅하느라 개복숭나무 꽃필 때마다 솔솔 이는 춘정 삭히며 너나없이 왔다. 가구점 형님이 슬그머니 눌태 형님의 눈물을 닦아 준다. 가슴 치는 뽕짝 사이로 봄밤 내내 염창골 흔들던 소쩍새 울음이 쑴벅쑴벅 들려온다. 비로소 봄이다.

2012-04-11

청림(靑林)동 사람들

▲ 권선희 시인“이번엔 걸이다. 걸. 우예든동 걸만 놓그라. 그라믄 곧바로 끝난데이.” 머리칼 희끗한 선수는 두 손으로 꼭 쥔 네 개의 윷가락에 간절히 입을 맞춥니다. 빙 둘러선 사람들의 눈이 그의 손으로 일제히 향합니다. “으럇찻차” 던진 윷가락이 모두 등을 보입니다. “모다, 모. 지화자!” 끗수에 따라 말을 놓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부릅니다. 한 쪽에선 함성이 한 쪽에선 아쉬움이 터집니다.정월 대보름을 앞둔 토요일, 청림 초등학교 강당에선 종일 잔치가 열렸지요. 몰개월 사람, 청림마을 사람, 일월동 사람들 꽃잎처럼 둘러 앉아 떡국을 나누고 막걸리 잔을 치며 묵은 안부를 묻습니다. 좀처럼 나들이가 없던 할머니도 오늘은 발그레한 비로드 모자를 쓰고 물빛 스카프를 둘렀네요. 행여 기념품을 잃어버릴까 다부지게 쥐고 계십니다. 강당에 마련한 자리마다 윷판이 들썩거립니다. 동장도 시의원도 소복소복 머리를 맞대고 응원하는 사람들 모두가 이웃이지요. 1통부터 19통에 이르는 주민뿐 아니라 자생단체와 포스코컴텍, 포스코 열연부, OCI, 금원기업, 미래새마을금고등 청림동과 인연을 맺은 자매기업도 대진표에 따라 대항을 합니다.청림동은 읍, 면을 제외하면 포항시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적은 동입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해변의 방풍림이 아름다워 `푸른 숲(靑林) 사이로 해와 달(日月)이 뜨는 고장`이라 불렸던 곳이지요. 더 오래전엔 낮에도 도적이 출몰한다는 말이 돌 정도로 노송이 우거졌다던 `골뱅이골`의 은밀한 이야기도 있었답니다. 그러나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드넓었던 논과 밭, 울창했던 숲은 공단 부지로 사라졌고 군사시설과 공항까지 인근에 있다 보니 발 빠른 발전과는 다소 거리가 멀 수밖에 없었지요. 포스코가 들어서면서 한 때 외부 인원이 유입되기도 하였으나 주거 환경이나 교육 문제로 점차 도회지로 빠져나갔습니다. 또 해병 가족들은 주소를 청림동에 두었지만 이동이 잦은 현실상 실질적인 주민 역할을 하지 못했구요. 그렇게 청림동은 조금은 황량한 듯 보였습니다.그러나 5년 전, 청림동 사람들은 서로 지킬 10가지 약속을 정하고 선포식을 했습니다. 조선 시대 권선징악과 상부상조를 목적으로 만든 향촌의 자치 규약, 바로 향약(鄕約)인 셈이지요.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합니다` `이웃의 일을 내 일처럼 돕습니다` `우리 마을 상가를 이용합니다` `국경일에는 빠짐없이 태극기를 게양합니다` `법과 기초 질서를 지키는데 앞장섭니다.` `사회 봉사 활동에 적극 참여합니다` `내가 먼저 웃으며 인사합니다.` `서로 다투지 않습니다` 등등 한결같이 자신보다는 공동체를 위하는 절제와 예의와 봉사가 고스란히 담긴 문구였습니다. 그것을 집집마다 배포하고 해마다 정월 대보름을 기점으로 향약 실천 다짐 행사를 열었지요. 남녀노소 동민들이 모여 윷대회를 겸하면서 효과는 매우 컸습니다. 거리에는 칭찬릴레이 현수막이 걸리고 어둡게 휘어지던 골목엔 벽화가 그려지고 또 대로변엔 향수를 일으키는 조형물도 생겨났습니다. 마을행사에 적극 봉사하는 자생단체와 참여 주민들이 늘고 이웃 간의 정이 두터워졌습니다.그 옛날 해변을 울창하게 채웠던 푸른 숲(靑林)은 세월에 흘러갔지만, 이제는 청림동 사람들이 어울려 숲이 되고 있습니다. 건물만 좁혀 앉았을 뿐 사람의 거리가 나날이 멀어지는 도회지에서는 쉬이 만나지 못할 훈훈한 사람의 숲이겠지요.

2012-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