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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스마트기술의 새로운 용처

곽지영 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얼마 전 방송된 모녀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을 울렸다. 7살의 어린 나이에 혈액 암으로 세상을 떠나버린 딸 나연이와 엄마가 가상현실(VR)기술의 도움으로 만나게 되는 내용이었다.한 줄짜리 프로그램 요약과 짤막한 예고편 만으로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목이 메었다. 본방송은 차마 보지 못하고 며칠 지난 후에야 찾아보았다. 본방 시청률은 높지 않았지만, 방송사 유튜브(Youtube) 채널 영상의 조회 수가 800만에 육박했다고 하니, 많이들 비슷한 마음이었나 보다.비판의 글도 보였다. 사람들의 감정을 상업적으로 이용했다거나, 남은 자녀들에게 너무 가혹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나연이 엄마의 블로그는 너무 많은 관심이 쏠려 비공개로 돌렸다고 한다. 관점이 다른 사람들이 쏟아낸 댓글에도 적잖이 시달렸으리라.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짤막한 영상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 것은, 누구에게나 대상이 다를 뿐 꿈에서라도 좋으니 얼굴 한번 봤으면 싶은 사람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꼭 삶과 죽음이 아니더라도 공간적 거리나 다른 여러 이유들로 만날 수 없어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사람 말이다.주변에서 빨리 잊으라고 닦달해도,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존재는 결코 잊히지 않는다. 좋았던 기억은 희미해져서 사진 속에만 남고, 오히려 내가 했던 나쁜 말과 행동, 못해준 것, 꼭 그런 것들만 오래 생각난다. 잊었다 싶다가도 생활 속 사물들이 문득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우리 가족에게는 외할머니가 그런 존재이다. 돌아가신지 삼십년이 다되어가는데 아직 그 이름만 떠올려도 눈물부터 글썽거린다.골목길, 철 대문, 석류나무 한그루만 봐도 할머니 생각이 나서 운다. 대문을 ‘딸랑’하고 열어젖히고 ‘할머니’하고 부르면, 맨발로 석류나무 앞까지 달려 나와 구수한 안동 사투리로 “엄머이 싸암들아~”하며 맞아 주시던 외갓집 앞마당의 기억 때문이다.길 가다 지구본을 봐도 목이 메어 온다.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기 1주일 전 마지막 뵈었을 때였다. 다 낡은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이걸 들여다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라”하며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을 보고, 아르바이트해서 하나 사드리려 마음먹었던 지구본을 끝내 못 사드렸기 때문이다.한번만 더 생전의 고운 모습으로 움직이고 말하시는 할머니를 뵙고, “그때 제가 아르바이트해서 지구본 하나 사 드리려고 했는데 못해 드려서 아쉬워요”라고 한마디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할머니를 모셔둔 산소에 가더라도 모습을 뵐 수는 없으니, 가상세계 속에서라도 한번만 만나고 싶다는 나연이 엄마의 마음이 같은 마음 아니었을까.“아…. 한번만 만져봤으면 좋겠어….”라며 흐느끼던 나연이 엄마 얘기가 머리에 남아, 훌쩍이면서도 책을 뒤적여 가상 촉감 구현 기술에 대해 찾아본다.

2020-02-11

소는 잃었어도 외양간은 제대로 고쳐야 한다

곽지영 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신종 코로나가 나타났다. 전자현미경 없이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존재들이 자기보다 몇 천 만 배 더 큰 인간들을 상대로 맹위를 떨친다. 첨단의 21세기에 아직 치료제는커녕 정확한 감염경로조차 밝혀지지 않은 그들. 스스로 이동 능력조차 없는 그들은 인류가 만든 교통수단에 무임승차하여 대륙을 넘나들며 팬대믹(pandemic, 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일으킨다.2016년 국민 안전체감도 조사 결과, 자연재해, 교통사고, 시설물 붕괴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신종전염병이 체감위험도 1위를 차지했었다. 사스(SARS), 신종플루, 메르스(MERS) 등 이름도 생소한 바이러스들이 2~3년에 한번 꼴로 창궐한 직후였으니, 신종전염병이 가장 위험한 존재로 인식된 건 당연했다. 뼈아팠던 메르스의 교훈 이후 의료계는 병원 내 2차 감염을 방지하는데 총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응급의료체계와 병문안문화가 크게 개선되었다고 한다. 그 영향인지 2019년에는 위험도 1위가 환경오염으로 바뀌고 전염병은 상대적으로 가장 안전하게 여겨지는 것으로 조사되었다.우리 관심이 미세먼지로 옮아간 사이, 바이러스는 조용히 변이를 거듭해 더 독하고 강해져서 돌아왔다. 몇 년 만에 다시 바이러스 패닉이 시작되고 보니, 지난번 소를 잃었을 때 쏠렸던 범국민적 관심에 비해서는 외양간 고치기가 너무 기본적인 정비에만 그친 것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무엇보다 역학조사를 개인 기억이나 설문조사, 의료기록, 신용카드 결제 이력 등 단편적이고 불완전한 데이터에 의존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물론 개인의 사생활은 어떤 경우에도 지켜져야 하지만, 공공 안전에 위협이 될 경우를 대비한 최소한의 안전망은 마련해 뒀어야 하지 않을까? 개인, 상업 목적의 스마트 디바이스 데이터가 유사시에 제대로 활용만 되었더라도 지역사회를 지키는 안전망의 역할을 해낼 수 있었다. 의료진과 관련기관으로 개인의 건강·의료 기록, 여행·방문이력 등 진단에 필요한 정보를 즉시 일괄 제공하거나, 접촉자의 수와 소재 파악 등 역학조사 전 과정에 스마트 기술은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주었을 것이다. 물론 개인의 사생활은 철저하게 보호되어야 하므로, 개인 데이터를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는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도 함께 마련해둘 수 있었을 것이다.바이러스의 공격은 호흡기를 파괴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불확실성 하에서의 막연한 공포심과 그로 인한 폐쇄적 태도를 유발하여, 마치 생태계를 파괴한 인류에 대한 복수라도 하려는 듯, 사람들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국가의 정치와 경제까지 뒤흔들어 놓는다. 일부 확진 환자가 자유롭게 지역사회 활동을 했다고 하면 불안감이 더 커지니 나라 문을 닫아걸자는 여론으로까지 번지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혹시 나도?’하고 막연히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과민하다 탓할 수만은 없다. 미세먼지 앱처럼 오늘 내가 다닐 경로는 안전할 거라는 ‘좋음’ 표시 같은 거라도 하나 있었다면 사람들 마음이 좀 놓이지 않았을까.

2020-02-04

3.0과 4.0의 차이

곽지영 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스마트시티 연구를 하다 보니 소위 ‘4차 산업혁명 관련 내용’으로 강의해 달라는 요청을 더러 받게 된다. 학생, 기업, 공무원, 일반 시민 등 강의 대상은 그때그때 다르지만, 청중들로부터 비슷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4차산업혁명이나 스마트시대는 자동화 시대의 연속이거나 아직 막연히 먼 미래 아닌가요? 얼마 전까지도 이제 곧 모든 게 자동화될 거라며 세상이 떠들썩했는데 주변을 보면 갈 길이 멀지 않은가요?”떠들썩했던 3.0 시대의 등장을 기억한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앞세운 3.0의 시대는 마치 폭주하는 마법사처럼 ‘자동화’의 마술지팡이를 휘두르며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변화시켜버릴 기세로 우리 삶 속으로 날아 들어왔었다. 산업, 시장, 리더십, 조직, 일자리, 웹, 미디어 등 우리에게 익숙했던 거의 모든 것들에 유행처럼 3.0이라는 숫자가 붙었다. 신기하게도 3.0이라 불리게 된 순간, 마법에라도 걸린 듯, 그 이전의 것들은 일제히 낡고 무능해 보이기 시작했다. 증기기관이 이끈 산업혁명의 시대를 1.0으로, 조립생산 라인이 가져온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를 2.0으로, 누가 봐도 오래된 것임이 명백하도록 선을 딱 그어 놓은 다음 주인공처럼 마지막에 등장했으니 그럴 만 했다.그러나 3.0시대가 불러온 보다 의미 있는 변화는 그 이후에 시작되었다. 강력한 컴퓨팅 파워에 힘입은 자동화의 물결은 산업현장에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그 결과, 제품을 만들면 팔리는 공급자가 ‘갑’인 시대는 끝났고, 시장에서는 기업들 간의 무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기업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장이나 소비자를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을 시장, 혹은 단순한 소비의 주체로만 바라보던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의 무모함을 반성하게 되었고, 이제 사용자를 이성과 감성, 취향과 영혼을 가진 전인적 존재로 인식하고 ‘고객’이라 칭하며 모시기 시작한 것이다.3.0시대로의 변화가 아직 미치지 못한 산업 분야도 적지 않은데, 이미 세상은 4.0의 시대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고 하니, 3.0과 4.0의 차이가 ‘허상’으로 느껴질 만도 하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3.0과 4.0은 순차적인 개념이 아니라 서로 효능이 다른 ‘마술지팡이’로 봐야 한다. 3.0시대의 마술지팡이가 사람의 역할을 대체할 자동화 대상을 찾아내는 데 주로 쓰였다면, 4.0시대 마술지팡이의 효능은 연결성과 지능화의 대상을 찾아 사람이 하는 일을 돕는데 있기 때문이다.자동화를 무리하게 추진하여 생태계 내의 저항이나 마찰을 야기하는 ‘자동화의 늪’에 빠져 실패하는 기업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자동차 업계는 미래차의 전략적 방향성을 무인차가 아닌 자율주행차로 조정하여 운전자 탑승여부가 아니라 연결성과 지능화를 통해 차량이 스스로 판단하고 주행하는 기술에 집중함으로써 그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자신의 분야가 지금 비슷한 난관에 부딪혀 있다면 서둘러 마술지팡이를 바꿔 드는 것을 권하고 싶다. 3.0시대의 지팡이를 과감히 버리고 4.0시대의 지팡이로 갈아탄다면 더 쉽고 확실한 답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2020-01-14

스마트세상은 누가 만드는가?

곽지영 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얼마 전 영국의 브리스톨이라는 도시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회의장소인 브리스톨 대학으로 이동하는 중 택시기사님께 인사치레로 ‘브리스톨은 참 흥미로운 도시 같다’고 한마디 건네자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우리 브리스톨은 지금 런던을 능가하는 혁신적인 도시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브리스톨의 혁신을 위해 시의회와 브리스톨 대학이 시민들과 함께 정말 많은 일을 하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기사님의 이야기는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십 수분 간 길게 이어졌다. 브리스톨 시의회와 브리스톨 대학이 진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스마트화 노력에 대한 기사님의 해박한 지식과 자긍심은 그저 우연이라기에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혹시 브리스톨 대학 관계자가 아닌지 묻고 싶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계시는지 조심스레 물었다.“운전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많이 들으니까요. 게다가 곳곳에서 도시 혁신을 위한 활동들이 수시로 진행되고 있으니 모를 수가 없지요….” 기사님의 당연하다는 듯한 답변에 우리는 말문이 막혔다.‘영국을 비롯한 유럽 스마트시티의 성공 비결은 시민 참여를 통해 도출된 일상 속 해법이라는 점이다.’ 여느 보고서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이 구절은 이번 영국 방문을 계기로 우리에게 새로운 발견의 대상이 되었다.영국인들에게 스마트시티란 국가나 지자체가 ‘알아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들에게 스마트시티는 이제 구성원들이 직접 나서서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도시 혁신활동 그 자체로 시민들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 그것을 택시기사님의 증언을 통해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영국인에게 있어 과학기술은 그 역사를 자신들이 이끌어 왔다는 특별한 자긍심의 대상인 동시에, 누구나 쉽고 친근하게 대하는 대중문화의 일부’라는 요지의 논설을 읽은 것이 떠올라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예술에 대한 그들의 시각과 태도 역시 무관하지 않다. 대부분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무료로 이용 가능한 영국. 그들에게 예술은 높은 곳에 걸어 두거나 유리 상자 안에 고이 모셔두고 멀찍이서 감상하는 경외의 대상이 아니다. 바로 가까이에서, 언제고 자유롭게 접할 수 있는, 일상 속에 녹아든 생활 그 자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과학기술과 예술을 일상생활 그 자체로 만들어 버린 그들이기에,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누군가 일방적으로 창조하도록 허용하지도, 유리상자 속 전시용 스마트 세상이 되게 내버려두고 뒤로 물러나 있지도 않았다. 스마트 세상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손수 한번 만들어 보겠다며 직접 나서고 있는 것이다.소위 ‘엄친아’와 비교 당하는 언짢은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 글을 통해서나마 우리 지역 시민들께도 슬쩍 한 번 부추겨 보고 싶다. 우리 모두가 실생활에서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진짜 스마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말이다.

2020-01-07

스마트 세상, 컵케이크로부터

곽지영 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최근 글로벌 IT 리더 기업들의 신제품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10, 11, 버전 숫자가 두 자릿수까지 올라가면서, ‘혁신’ 그 자체보다는 자연스러운 진화와 가성비를 통한 저변 확대에 방점을 두는 기업들. 발표회가 채 끝나기도 전, 리뷰어들은 ‘혁신은 없었다’, ‘특별함은 없었다’ 등의 싸늘한 반응들을 약속이나 한 듯 쏟아낸다.IT 업계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 중에 기술 수용 주기(Technology Adoption Lifecycle)라는 것이 있다.혁신 기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시간차를 두고 확산돼 가는 것을 그래프로 표현하면 볼록한 종 모양의 곡선이 된다는 마케팅 이론으로, 제안한 사람의 이름을 붙여 로저스의 종(Rogers’ Bell Curve)으로도 불린다.이 ‘로저스의 종’에는 캐즘(Chasm)이라는 작은 ‘틈’이 있다. 혁신적인 기술이나 제품이 출시 초기 시장에서는 어느 정도의 시장 반응을 보이지만, 그 후 수요가 일시적으로 멈추거나 후퇴하는 단절현상을 말한다. 호기심이 발동해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에 관심을 보이며 무조건 구매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실용성이 확인될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구매를 시작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바로 이 ‘틈’에서 IT 업계 리더 기업들의 딜레마가 생긴다. 소위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들의 주목과 호응을 얻으려면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혁신적인 제품을 남보다 먼저 내놓아야 한다. 경쟁자보다 한발 늦으면 초기 시장에서의 입지를 빼앗긴다는 위기감에, ‘실용성’은커녕, 사용자의 기대치를 살필 겨를도 없이 쫓기듯 제품을 내놓아야 할 때도 있다. ‘실용’을 원하는 대다수 사용자의 마음을 제대로 못 읽고 결국 대중화에 실패하게 되는 ‘캐즘’. 출시가 늦어져 혁신에 실패하는 경우나, 서둘러 제품을 내놓느라 대다수의 기대치를 제대로 충족 못한 두 경우 모두, 제품개발 과정의 막대한 투자가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기업은 혁신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선택상황에 놓이는 것이다.그런 시행착오를 거친 후 IT업계가 터득한 것이 바로 ‘린(Lean=군더더기 없이 가벼운) 접근법’이다. 예를 들어, 시장에 내놓고 싶은 제품이 화려한 3단 웨딩 케이크라고 하자. 청사진은 3단 웨딩 케이크를 멋지게 그려 두되, 파티셰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작은 ‘컵케이크’부터 만들어(Make), 먼저 손님들의 반응을 확인해보고(Check), 아니다 싶을 때는 보완책을 모색하여 고치는 것(Think)이 린 접근법의 핵심이다.스마트 세상을 만드는 일은 비유하자면 3단 웨딩 케이크 만큼이나 복잡하고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든다. 컵케이크부터 차근차근 키워 나가는 IT업계의 린 접근법이 스마트 세상을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안내해 줄 것이다.

2019-09-17

도시의 영웅 탄생을 방해하다

곽지영 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소방관, 경찰, 군인, 구급요원, 응급의료 종사자 등등. 공공의 안전과 시민의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 자기 몸을 던져 위험을 상대하는 것이 일상인 사람들. 언론은 삶과 죽음의 현장에서 벌어진 그들의 영웅담을 생생하게 전하고, 우리는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린다.매번 그런 데자뷰 같은 반복을 접하는 필자의 감정은 이내 수치심으로 이어진다. 사명감으로 빛나는 제복 뒤에 가려져 미처 못 볼 수 있겠으나 그들은 우리 부모이고, 형제자매이고, 귀한 자식들이다. 국가와 도시 시스템이 취약하여 우리 가족인 그들을 자꾸만 순직하는 ‘도시 영웅’으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후배들 볼 면목이 없다.물론 국가 차원의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토부는 2022년까지 전국 80개 이상 지자체에 스마트시티 통합 플랫폼과 도시 안전망 서비스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스마트시티 통합 플랫폼은 관내 CCTV 영상, 교통, 기상, 시설물 정보 등 도시의 안전 상황을 한곳에서 모니터링하고 시청, 소방서, 경찰의 현장 대응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경북에서도 올해 구축이 완료된 포항과 경산을 시작으로, 2019년 새로 선정된 구미를 비롯해 김천, 영천, 안동, 울릉 등 여러 지자체가 다음 차례를 준비하고 있다. 통합플랫폼과 도시 안전망 서비스가 스마트시티 구현의 근간이긴 하지만 사람들의 기대치와 비교할 때 아직 첫 걸음마를 내딛은 정도에 불과하다. 예측불허, 위험천만인 삶과 죽음의 현장에서 사람들을 지켜내는 일을 믿고 맡기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는 뜻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첨단의 정의를 갱신해가는 통신, 가전제품이나 엔터테인먼트 분야와 비교할 때, 공공안전 분야의 스마트화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은 반성해야할 일이다.그래서 필자는 미래의 도시, 스마트시티 구축에서 우리가 가장 정성을 쏟아야 할 분야가 바로 안전이라 믿는다. 도시의 바람직한 미래에는 기술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위험 상황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사람들은 절대 없어야하기 때문이다.조용히 눈을 감고 우리가 기대하는 미래의 모습을 다시 한 번 그려본다.일반 가정을 비롯한 도시의 모든 건물에는 위험감지와 자기방어를 위한 지능형 장치가 마련되고, 유사시 그 장치의 모니터링과 제어가 원격으로도 가능하게 서로 연결된다. 집집마다 설치된 화재경보기와 소화기는 이제 상황을 스스로 감지해 자율적으로 동작하고 중앙 시스템에 상황을 알릴 줄도 아는 ‘스마트’ 버전으로 바뀐다.재난현장의 소방관은 스마트 안전장치로 철저하게 보호받는다. 각종 센서를 통해 수집된 현장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분석되고, 혼합현실 장치를 통해 구조자의 위치와 안전한 이동 루트 등 현장 대응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으며 효과적으로 임무를 수행한다. 상황실에서는 소방관들의 실시간 위치와 그들의 생체 데이터를 모니터링하며 만약의 위험상황에 2중, 3중으로 대비한다. 그 꿈속 도시는 스마트 기술의 가장 큰 특징인 연결성과 지능화를 통해 스스로의 안전을 지켜낼 수 있도록 변모하여 시민들과 안전요원 모두를 위한 진정한 안전망이 된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이제 더 이상 도시 영웅의 희생에 슬퍼하고 미안해할 일은 없다.

2019-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