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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지역의 활발한 메세나 활동을 기대

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한 나라나 지역의 문화예술이 꽃을 피웠다면 그곳의 토양에는 반드시 선조들이 남긴 유무형의 유산을 기반으로 하는 인문학적 소양과 정신문화 유산의 철학이 존재한다. 또 그러한 지역일수록 밑바탕에 흐르는 정신적 유산은 문화예술의 맥을 잇는 후손들의 철학으로 녹여져 새로운 독특한 문화의 흐름을 탄생시키기 마련이다. 문화예술 활동의 원리는 컴퓨터의 작동원리와 유사하다. 한 지역의 문화예술 전반을 관통하는 정신적 문화유산은 마치 컴퓨터의 운영체계가 수행하는 역할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일관된 큰 틀로서 작동한다.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예술회관, 극장, 공연시설 등과 같은 창작무대가 컴퓨터의 하드웨어라면 그곳을 무대로 열리는 각종 행사나 공연프로그램은 소프트웨어다. 실제 해당 지역의 문화예술 유산을 계승하고 관련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문인, 사가, 예술가, 학자들은 어디에 속할까. 컴퓨터에 비유하면 하나하나가 데이터일 것이다. 양질의 데이터가 많아지고 다양해질수록 큰 틀인 운영체계 속에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들은 더욱 잘 돌아가고 결과적으로는 매우 양질의 결과물을 생산하면서 또 다른 새로운 데이터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 마련이다.우리는 그동안 그저 제대로 먹고 사는데 급급하다보니 외형의 확장과 경제력에만 무게중심을 두어온 것도 사실이다. 물론 국제사회에서 여전히 힘의 논리는 경제력이 좌지우지하고 있지만 나라의 품격은 문화예술과 그 바탕을 이루는 인문학의 수준이 결정하는 것도 사실이다. 시험을 통한 경쟁사회에서 무시했던 인문학이야말로 지금과 같은 혁신과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영감이 모든 분야의 경쟁력을 키우는데 필요한 핵심소재인 것이다. 이는 이미 시카고대학의 시카고플랜이 입증한지 오래다. 앞으로도 문화예술과 인문학의 중요성은 변치 않을 것이다.그러한 맥락에서 지역의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하여 부를 축적한 기업이 해당 지역의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메세나(Mecenat) 활동은 가장 기초 데이터인 해당분야 종사자들을 확대재생산하는 효과를 높인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2019년 현재 한국메세나협회에서 메세나 활동에 참가중인 회원기업은 232개사에 이른다. 포항도 포스코, 티씨씨스틸 등 메세나 활동을 지속해온 기업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포항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은 매우 많다.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서 활약할 젊은 인재들을 키워나가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저변의 확대와 다양성을 지닌 젊은 인재들이 무엇보다도 많이 육성되어야할 분야는 인문학분야다. 포항의 문화예술이 고유의 특성과 정체성을 나타내려면 그 밑바탕의 정신과 철학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할 인문학적 기반이 함께 하여야만 균형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지역 청년들의 지역학,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이러한 때에 지역 기업들이 금액의 크기와는 무관하게 지역의 문화, 역사 등에 관심을 기울이는 자발적인 메네사 활동이 활발하게 확산되었으면 한다. 퇴근시간 빨라진 분들은 가족들과 꿈틀로 탐방이라도 한번 해보면 어떨까.

2019-11-26

작게 그리고 초라하게 시작하자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연말이 다가온다. 이때쯤이면 지역 내 정치, 행정은 물론 주요 기업, 단체들도 새해의 신규 사업 발굴에 고심하기 마련이다. 사실 새로운 사업 추진을 위한 예산확보 문제는 특정 시기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바쁜 시간을 보낸다고 할 수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어떠한 분야를 불문하고 단일 사업이 계기가 되어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경우란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의 시대적 구분을 할 때 가장 상징적인 하나의 사건을 단지 인용할 뿐이다. 용암이 끓어오르지 않고 갑자기 화산이 폭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경제주체나 시민사회 구성원들의 가치관, 생활양식 등도 마찬가지다. 결코 이러한 것들은 하나의 계기나 사건, 사업만으로 변화할 수는 없다.그러하기에 우리는 신규 사업을 구상할 때 과도한 기대를 접을 필요가 있다. 아무리 화려하게 사업조감도를 작성하고,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더라도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다. 신규 사업을 추진하였을 때 나타나는 진정한 효과는 수없이 통제할 수 없는 많은 요인들이 상호작용하면서 결정된다. 일례로 어떤 사업이 지역에서 추진될 경우 그 사업의 추진과정과 완료된 이후까지도 해당 사업의 성과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그 지역의 정체성, 경제 산업구조, 주민의 정치적 성향, 인구사회구조의 변화 등이 때로는 단독으로 때로는 복합적이고도 상호간에 영향을 미치면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해당 사업의 진정한 효과는 아무도 모른다가 정답이다.문제는 정치가, 행정기관 또는 어느 기업의 최고경영책임자가 투표권자, 시민 내지는 주주들에게 무엇인가를 내세우려면 신규추진사업이 매우 거창하고, 화려하며, 엄청난 기대효과를 주는 사업이어야만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와 관련된 이해관계자인 투표권자, 시민 그리고 주주들도 마찬가지다. 어떠한 정치인이 자신들의 지역사회를 단번에 변화시켜주기를 바라고, 행정수장에게 지역이 갑자기 발전할 수 있는 정책을 펴기를 바라며, 경영진에게는 배당금이 전년보다 엄청 늘어나기를 기대한다.바로 여기에 해당사업이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할 수 있는 요인을 내재하고 있다. 우리는 예전처럼 일사불란이라는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다양성, 계층 간 구분이 없는 포용성 등이 확산되면서 인재채용절차에서 조차 성별 나이를 불문하는 단계까지 왔다.이러한 다양성 사회에서 모든 계층을 만족시키는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 분야의 단일 사업이란 애초에 있을 수 없음을 사업 입안자는 물론 이해관계자인 우리 모두가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리고 지금부터 사업의 규모나 외형보다는 어떠한 사업이든 하나씩 마침표를 찍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거대한 규모의 예산이 투입되고, 화려하게 치장한 엄청난 기대효과로 포장된 사업이 용두사미로 끝나는 악순환을 이제는 끊을 때가 왔다. 모든 지역민이 아니라 농어촌 어떤 한 구석 동네의 소수를 위한 사업이라도 하나씩 확실하게 마무리를 짓고 아주 조그마한 성과라도 낸다면 그것으로 좋다. 작게 더 작게, 화려하지 않고 초라하게 시작하자.

2019-11-19

미중 간 무역전쟁의 향방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추가관세를 서로 부과하면서 과열되던 미중 간 무역 전쟁이 각국의 사정으로 일시 휴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중국의 경우 제조업구매자지수(PMI)가 9월 49.8에서 10월에는 49.3으로 6개월 연속 업황의 확대와 악화를 구분하는 기준선인 50을 밑돈 데다, 홍콩의 민주화운동도 지속되며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도 무역전쟁을 일시 봉합할 사정이라는 점은 다르지 않다.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추가관세 부과 조치로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국내 소매점, 의류업계 등을 다독여야 하는 데다, 중국이 조류인플루엔자를 빌미로 2015년 1월 이래 미국산 닭고기와 계란의 수입을 전면 금지하고 있어 큰 피해를 입고 있는 미국 농가의 표도 의식해야하기 때문이다.양국 간 부분합의 협상이 진전되면서 미국은 지난 10월 예정했던 추가관세 제3탄으로 관세율 25%에서 30%로 인상하는 조치를 보류한 바 있고 12월 15일까지 부분합의가 이뤄지게 되면 9월의 추가관세 제4탄의 일부(1천100억 달러)의 잔여부분(스마트폰 등 1천600억 달러)에 15%의 추가관세를 적용하는 조치도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양국 실무진간 합의가 이뤄져 양국 정상간 합의서명만 남은 단계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 11월 7일 로이터통신은 워싱턴과 베이징발로 미중 통상협의의 ‘제1단계’합의로 추가관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데 합의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날 중국 상무성 가오펑(高峰) 보도관은 기자회견에서 최근 2주간 쌍방이 추가관세의 단계적 폐지에 합의했다고 밝혔고, 국영 신화사도 중국세관총서와 농업농촌성이 미국산 닭고기 수입금지조치의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하지만 미중 간 ‘제1단계’의 합의가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오래 지속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단지 양국의 정치 정세에 따라 일시 휴전한 셈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말 폐막한 중국의 제19기 중앙위원회 제4회 전체회의(약칭 ‘사중전회(四中全會)’)에서 결정한 13개항에 이르는 요지를 보더라도 분명하다. 당의 지도시스템이라는 절대적인 명제 하에 미중 간 무역마찰과 관련하여서는 자주자립의 평화외교정책의 견지정비를 제시하면서 국가주권이나 안전, 발전의 이익을 확고한 것으로 지킨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당장은 국내의 혼란으로 협상에 나섰지만 강대국으로서 미국과의 패권경쟁에서는 양보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국내의 대중 강경파의 목소리는 여전히 크기 때문에 이번 합의의 기간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내년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성공여부에 달려있다고 본다.미중 간 무역전쟁의 합의가 일시적이라도 지역 철강업계에는 긍정적인 신호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안심할 수는 없다. 포항 지역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취약점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경제가 전쟁 상황에 있든지, 평화 상태에 있든지를 불문하고 절대 우위를 가지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혁신과 창의를 바탕으로 연구개발을 통해 이룩한 고기술, 고품질, 고부가가치의 경쟁력을 갖춘 지역제품으로 무장하는 것이다.

2019-11-12

포항형 청년창업생태계를 조성하자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우리는 어떠한 일을 하려고 생각하면 일단 주변부터 살피게 된다. 때에 따라서는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언론에 대서특필하는 특정 지역이나 단체의 성공담을 듣게 되면 순간적으로 우리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그에 따라 사업을 성공시킨 그 지역이 지닌 장점이나 그 지역의 특수성을 함께 분석하기보다는 결과에 초점을 맞춘 벤치마킹을 토대로 ○○형 ××사업을 추진하기 마련이다. 요즈음 각 지역이 주목하는 청년창업도 마찬가지다.지난 9월 미국 스타트업 게놈(Startup Genome)사는 올해도 세계 주요 도시별 창업생태계를 조사 분석한 보고서(Global Startup Ecosystem Report 2019)를 발표했다. 2018년 기준 세계 창업생태계 1, 2위 지역은 여전히 실리콘밸리와 뉴욕시가 차지한 가운데 중국의 베이징이 한 계단 올라 런던과 공동 3위를, 순위 변동이 없는 상하이는 8위를, 새롭게 추가된 홍콩은 25위를 차지하였다. 세계 30위까지 우리나라의 어떤 도시도 포함되지 못하였다. 이는 사실상 포항시가 창업생태계 조성을 위해 벤치마킹을 할 만한 지역은 국내 어디에도 없음을 의미한다. 청년 창업을 지원, 육성하기 위한 포항만의 아이디어가 절실한 시점이다.위의 보고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계적인 창업생태계가 조성된 지역의 결정요인 가운데 정책적인 분야는 사실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의 요인만 꼽는다면 역시 ‘자금’이다. 스타트업은 자금 조달에서 일반 기업이 100이라면 불과 5 정도로 불리하다. 때문에 창업생태계의 핵심은 스타트업에 대한 ‘펀드’의 활성화 여부다. 따라서 포항이 우수한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의 꿈을 지닌 청년들의 ‘꿈의 도시’가 되려면 ‘펀드’문제를 우선 해결해야만 한다. 포항은 창의적이고도 독자적인 ‘펀드’를 조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창업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하다고 본다.지금도 포항에는 수많은 은퇴자들이 창업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커피점, 편의점, 선술집 등에 눈을 빼앗겨 5천만 원 이하의 소자본으로 용감하게 창업하였다가 폐업하는 악순환에 가세할 뿐이다. 이들의 실패는 도심의 빈상가 숫자를 보태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의 부(富)를 축소시킨다. 만약 은퇴자금을 무계획적인 창업과 폐업으로 소비하지 않고 십시일반으로 모아 ‘펀드’를 조성하여 지역에서 창업을 꿈꾸는 자들의 ‘꿈의 펀드’로 만들면 어떨까. 이를 위한 신뢰성은 포항의 행정이나 정책기관이 나서면 된다.만일 이와 같은 시민들이 조성한 ‘창업펀드’가 제 기능을 한다면 은퇴자들의 귀중한 자본소비를 억제함은 물론 신뢰할 수 있는 검증시스템만 거친다면 이 펀드에서 창업지원이 가능한 포항형 창업생태계가 절로 조성될 수 있다. 단 한건이라도 성공사례가 나타나게 되면 유니콘을 꿈꾸는 우수한 청년인재들의 포항유입도 가능하다. 창업공간도 차고 넘친다. 행정이 나서 구도심의 빈 점포를 우선 제공하면 된다. 이제 더 이상 다른 지역에 눈을 돌리지 말고, 우리 스스로 다른 지역에서 찾아와 벤치마킹할 수 있는 포항만의 창업생태계를 만들자.

2019-11-05

진정한 철강경쟁력의 원천에 대하여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세계 각국은 글로벌 경제가 활력을 잃거나 자국 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될 경우 가장 먼저 보호에 나서는 산업 중 하나가 철강 산업이다. 이는 ‘철’이 ‘산업의 쌀’이라고 불릴 정도로 해당국에서 생산하는 다양한 공산품의 경쟁력을 담보하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연간 18억t이라는 세계조강생산량의 절반인 9억t 가까이를 생산하는 중국도 각국의 수입규제조치로 2015년 9천713만t의 수출초과를 기록했던 강재무역이 2018년에는 45.56%가 감소한 5천287만t으로 급감하였다.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초과 물량도 2015년 935만t에서 2018년에는 65.56%가 줄어든 322만t에 그쳤다.그런데 이처럼 세계시장에서 막대한 강재수출초과를 기록하고 있는 중국이 지속적으로 수입초과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가 있다. 일본이다. 일본에 대한 중국의 강재 수입초과물량은 2015년 시점 433만t에서 2018년에는 8.77%가 증가한 471만t을 기록하고 있다. 세계경기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각국의 철강 산업에 대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됨에 따라 중국의 세계 시장에 대한 강재수출이 빠르게 위축되자 자국 철강 산업의 보호에 나선 중국임에도 유독 일본산 강재 수입만큼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현상은 오로지 일본산 강재만이 고품질, 고부가가치제품이기 때문일까. 이는 피상적인 분석에 불과하다. 일본 철강 산업이 지닌 경쟁력의 원천은 따로 있다. 일본 철강업체가 중국으로 수출하는 강재 대부분은 일본의 자동차, 건설기계 등 철강재를 소비하는 전방산업에 해당하는 일본기업의 중국 현지공장들과 처음부터 끈끈하고 치밀하게 연결된 글로벌 공급 사슬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일본 철강업체들은 개도국에 일관제철소를 지어주는 동안 수출실적을 늘릴 수 있는 일시적인 전략은 거의 채용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해당 국가에서 자국 산업 보호라는 명목으로 철강에 대한 보호주의를 발동하게 되어 제 발목을 잡는 행위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해외시장 진출 전략은 일견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 철강기업 단독으로 해외시장 진출을 노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보다는 자동차, 기계금속, 조선 등 자국 철강수요산업의 기업들과 항상 소통하면서 그들의 해외 공장 설치 단계부터 가장 적합하고 필요한 강재의 필요물량을 가늠하여 현지 조달에 어려움이 없도록 부분품이나 중간재 생산을 지원하는 맞춤형 동반진출 전략을 선호한다. 그러한 전략은 일본 국내에서도 거의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 신제품 개발을 추진하는 기업에 필요한 강재를 공동개발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철강업체는 강재개발단계부터 판로를 확보하고 연구개발비까지 절감하는 일석이조를 거두는 셈이다.포항의 철강 산업이 앞으로도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당연히 연구개발을 통한 고품질, 고부가가치 강재를 개발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부터라도 국내외 수요기업들과 보다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강재를 개발, 공급하는 맞춤형 공급 사슬을 형성하여야만 포항 철강 산업의 경쟁력이 원천적으로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2019-10-29

전통시장이 살아남는 법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각 지역의 전통시장은 해당 지방의 발전사와 동고동락해왔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정치인들이 시민들과 만나기 위해 시장으로 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곳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데다 가장 민감한 정치 문제부터 경제, 사회 전반에 대해 주부나 상인들의 여과 없는 이야기가 오가 민심의 동향을 파악하는데도 최적의 장소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장날에만 열리는 시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 장소의 전통시장들도 처음에는 장날에만 상거래를 하였지만 수요가 늘어나면서 고정된 장소에 자리잡은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들이 장날의 상인에서 고정형 상인으로 변신하기까지는 많은 혁신과 생존의 노력이 뒤따랐다고 할 수 있다.이제 또 전통시장이 지금의 방식만으로는 결코 살아남기 힘든 상황을 맞이했다. 1인 가구라도 부담 없이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는 깨끗하고 소량 단위로 포장된 것, 굳이 바쁜 상인에게 일일이 물어볼 필요도 없이 중량과 원산지 그리고 가격까지 인쇄된 식품, 야근하고 퇴근이 늦어도 구매 가능한 영업시간, 차량도 없고 깔끔한 옷차림에 약속장소로 가기 전이라도 마음껏 필요한 물품을 구매한 후 주소만 대면 택배가 가능한 곳이 대형유통점포다. 이들과 전통시장이 경쟁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동안 상품권 발행 등 전통시장 살리기 정책과 시장 근처 일정거리 범위 내에는 대형유통점이 아예 입점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까지 마련하면서 어찌어찌 생존해왔다. 하지만, 그마저도 골목마다 작고 깔끔한 소매형태의 프랜차이즈 유통업체들이 진출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졌다.포항의 전통시장들은 그동안 교통오지였던 만큼 물류비용까지 가미된 다소 비싼 가격이었어도 고도 성장기에 힘입어 무리 없이 성장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교통망이 확충되어 시민들의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게다가 도시외곽으로 주거지가 형성되면서 굳이 구도심의 전통시장까지 찾아올 특별한 유인책까지도 필요하게 되었다. 이제 전통시장 상인들은 과거 장날 상인에서 붙박이 상인으로 변신하였던 것처럼 또 다른 변혁을 통해 생존해야만 하는 기로에 섰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전통시장이 모든 부분에서 대형마트와 동등한 여건을 갖추고 경쟁하라고 하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시장 손님의 생활패턴이나 환경이 바뀐 부분에 대해서는 전통시장도 수용해 나갈 필요가 있다.그런 의미에서 최소한 두 문제만큼은 해결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시민들이 전통시장을 이용할 수는 있어야만 한다. 직장인들이 퇴근해 시장을 가려면 빨라도 오후 7시는 넘어야한다. 그러나 그때쯤이면 식당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문을 닫아 어둠만 반기고 있어 이용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둘째, 전통시장 전체를 아우르는 일괄 결제시스템은 무리라도 시장에서 구입한 물품들을 가정까지 배달해주는 통합택배시스템은 갖춰야만 한다. 자동차가 없어도, 장바구니가 없어도, 편하게 전통시장을 이용하려면 택배서비스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주차장 부족문제가 전통시장 활성화를 저해하는 절대적인 원인은 결코 아니다.

2019-10-22

포항경제의 새로운 가치사슬을 기대하며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지난주 세계은행은 “글로벌 가치사슬시대의 개발을 위한 무역”이라는 제목의 ‘세계개발보고서 2020(World Development Report 2020)’을 발표하였다. 이 보고서에서는 개발도상국이 고용확대와 소득증대 등을 동반하며 성장하기 위해서는 선진국들과의 글로벌 가치사슬(value chain)에 참가하여야만 무역 확대와 더불어 성장을 촉진하는 변화를 가속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어느 특정 국가나 지역이 자체적인 순환경제만으로는 성장이나 발전에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다.그런 면에서 포항 지역 경제는 우리나라 고도 성장기에 건설, 자동차, 조선 등 수많은 성장산업들과 연계된 국내 가치사슬의 한축을 담당하면서 성장과 발전을 이루어 왔다. 그러한 가치사슬에 동참함으로써 지금 포항지역 주민소득은 전국 지자체별 평균소득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다만 2000년대 이후 가속화되기 시작한 자동차 공장 등의 해외이전 등 여파로 포항과 연결되었던 국내의 공급사슬 또는 가치사슬이 매우 느슨해져 지역경제 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때문에 적어도 지역 철강과 연계된 국내 가치사슬의 성장 동력 약화를 보완할 수 있도록 포항은 지역 자체의 철강생태계 조성에 더욱 힘써야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마침 그동안 경북도와 포항시가 한국로봇융합연구원(KIRO)과 함께 추진해왔던 안전로봇실증센터가 10월 17일 개소된다. 이 센터는 포항경제의 새로운 돌파구의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기대된다. 하지만 한국은행 포항본부가 2013년 9월 한국로봇융합연구원과 공동으로 지역의 로봇산업 육성을 위한 공동연구를 진행한 지 만 6년이 지났지만 당시에 제기되던 정책과제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실정이다. 포항이 로봇산업의 핵심 연구기관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로봇산업의 불모지나 마찬가지인 것은 로봇개발에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어야하는 특징 때문이며, 그나마 이를 뒷받침하는 공공수요도 개발 이후의 상용화가 아닌 개발 자체에 목표를 두는 단발적인 사업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포항경제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해결해 나가야할 최대의 과제는 비록 일회성의 단발적인 공공수요라고 할지라도 해외의 공공수요를 추가로 개척하거나, 개발된 기술이 민간수요로 원만히 이어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그러한 맥락에서 이번에 문을 여는 안전로봇실증센터는 앞으로 포항 로봇산업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일례로 영일만대교를 건설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수중건설로봇, 해양탐사 등에 활용할 수중안전로봇 등 실제 사업에 활용할 수 있는 로봇기술들은 많다. 세계은행이 지적한 것처럼 한 지역이 모든 것을 끌어안을 필요도 없다. 국내 안전로봇의 공공수요가 부족하면 영일만항의 주요 기착항인 동남아시아 등지의 정책당국과 협의하여 포항발 안전로봇의 가치사슬을 확장시키는 전략도 필요하다. 그러기에 앞으로 영일만항 배후단지에 자리잡게 된 실증센터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 나가야만 한다. 부디 실증센터의 개소를 계기로 포항 경제가 새로운 가치사슬을 엮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19-10-15

지금 포항경제의 우선순위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포항지역 경제를 주도하는 지역 철강업체들은 요즈음 매우 조용하다. 지난 수년간 미국에게 고율의 반덤핑관세와 쿼터물량 제한이라는 폭탄을 맞은 데다 유럽까지 수입물량 제한에 동참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느라 기진맥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위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금 당장은 가시화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미국과 중국 간 관세인상 등 양자 간 힘겨루기 결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내년 봄 이후부터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사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에서 가장 피해가 작은 분야가 철강분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중 간 무역전쟁의 여파가 지역 철강기업에 미칠 영향을 간과할 수는 없다. 포항 지역 철강업체의 매출과 수익성은 국제 원자재 가격과 국제 철강재 가격이 어떤 방향인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데 중국 당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에 따른 영향을 줄이기 위해 금년 5월부터 그동안의 환경규제를 완화하고 국내 부동산개발에 주목하자 중국 철강사들이 생산을 다시 늘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미중 간 무역전쟁의 여파가 결과적으로 중국내 강재생산 증가로 이어지면서 국제철강재가격을 하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것이 야금야금 지역 철강업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불과 한 두해 전만 하더라도 수출 강재물량 감소분을 국제 시황 개선이 메꾸면서 다소라도 버틸 수 있었지만 앞으로 내년까지는 매출액으로 직결될 강재시황이 하락 경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 당국이 부동산개발업자의 과도한 부채비율을 우려해 대출심사를 강화하기 시작하면서 개발사업 위축에 따른 중국내 과잉 강재들이 언제든지 낮은 가격을 무기로 다시 국내시장으로 흘러들어올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이처럼 지역경제의 비중이 높은 철강 산업의 시계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지금 포항경제에 시급하고 중장기적으로도 유익한 개발 사업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에 대해 우선순위를 매긴다면 과연 어떨까. 지역 경제의 경기부양을 위해서는 지역 철강제품을 사용하고 지역 건설업체가 참여하여 최대한 개발사업의 과실이 지역에 떨어질 수 있는 사업이어야 함은 물론이다.그런 의미에서 첫째, 지진피해지역에 대한 도시재생사업은 도시의 활력과 시민의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최우선 실시되어야만 한다. 둘째, 당장 내년으로 다가온 국제크루즈여객부두의 완공 이후 외국인 관광객이 본격적으로 포항을 찾더라도 마음 놓고 휴식할 수 있는 고급숙박시설과 그들의 주머니를 가볍게 해줄 대형쇼핑시설도 서둘러 보완해야만 한다. 끝으로 국내외관광객들이 포항이 경유지가 아닌 시작점과 종결점이 되도록 노력하여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항만과 철도, 공항이 모두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연계교통망의 구축도 중요하다. 포항이 위기상황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회는 남아있다. 다만 우선순위를 간과할 경우 모처럼 주어진 기회가 언제나 기다려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적어도 미분양이 넘치는 상황에서 아파트를 개발하려는 사업만큼은 최우선순위가 아닐 것이다.

2019-10-01

20대를 위한 지역이벤트도 만들자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요즈음 과거에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기발한 지역 축제나 선발대회들이 많다. 영양의 고추아가씨, 김천의 포도아가씨, 남원의 미스 춘향, 장성의 홍길동축제가 있다. 그리고 천안의 흥타령춤 축제나 성남의 춤짱 선발대회 등도 젊은이들이 끼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놀이터가 됐다. 이처럼 지역 특산물이나 지역과 관계되는 옛날 이야기속의 등장인물, 그도 저도 아니면 하나의 주제로 특화시켜 국제적인 규모의 행사까지 확대 가능한 분야를 선정해 지역의 명물로 키워나가고 있다. 각 지역이 이처럼 자기 고장의 독창적인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고 만드는 데 열중하는 것은 모두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최종목표를 이루기 위함이다.그런 면에서 포항도 이들 지역에 비해 전혀 밀리지 않는 소재와 자원을 가지고 있다. 도농복합도시답게 전국 브랜드로 성장한 구룡포과메기를 비롯하여 이제는 부추, 시금치, 문어, 아귀, 가자미 등 지역농수산물을 ‘영일만 친구’라는 통합브랜드로 묶었고, 최근에는 같은 이름의 야시장까지 열고 있다. 포항산 시금치는 수도권에서 이미 ‘포항초’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유명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농수산물은 계절이나 기후변화에 따라 품질, 시세가 달라질 뿐만 아니라 그마저도 전국 어디에서든 온라인구매가 가능해 관광객을 모으는 역할까지 기대하기는 어렵다.반면, 지역이 지닌 유무형의 문화유산은 연중 어떠한 상황이라도 큰 영향을 받지 않고 고부가가치의 관광자원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금년은 특히 포항시가 시로 승격한지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도 하여 지역 단체들도 이를 이용한 다양한 축제나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포항의 읍면동 단위에서도 해당 지역에 의미 깊은 행사를 적지 않게 개최하고 있다. 그만큼 포항에는 유무형의 문화유산이 차고 넘친다는 이야기다.당장 다음 달인 10월은 문화의 달이기도 하다. 그 직전인 이번 주부터 포항문화재단이 야심차게 준비해온 한국형 암각화의 원형이라고도 평가받고 있는 포항암각화의 특별전(아로새기다, 바위그림 인류최초의 기록)이 포문을 연다. 그 후 포항의 전설인 연오랑 세오녀를 배경으로 하는 제13회 일월문화제도 개막된다. 특히 삼국유사에 나오는 연오랑 세오녀의 설화는 오직 포항만이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콘텐츠다. 이것을 주제로 삼은 축제나 행사는 기획하기에 따라서는 전국을 뛰어넘어 국제행사로도 확장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포항이 가진 강력한 무형자산의 하나인 것이다.금년에도 일월문화제와 함께 연오랑 세오녀 부부선발대회가 개최된다. 바로 여기에 새로운 축제를 기획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 지금까지 포항에서 개최해온 부부선발대회는 그대로 두면 된다. 여기에 20대, 30대 젊은이들을 포항으로 유인할 수 있는 이벤트를 새로 만들었으면 한다. 굳이 이름을 붙여본다면 미스터 연오랑, 미스 세오녀 선발대회가 되지 않을까. 다소 철지난 축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국의 끼 넘치는 20대, 30대의 미혼 남녀들이 미스터 연오랑과 미스 세오녀를 꿈꾸며 찾아오는 새로운 놀이마당. 이 또한 포항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관광 상품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19-09-24

자녀와의 친목도 포항을 살리는 길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최근 포항의 부동산시장이 여전히 약세인 것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절대적인 가격수준만 보면 최근 몇 년간 최고점에 비해 낮아진 것이지 장기적인 추세로는 상승세를 이어온 것으로 볼 수도 있다. 2000년대 이후 지역 주민소득이 제자리걸음을 한 것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포항은 가장 조용히 그리고 안전하게 부동산시장에서 가격조정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고맙게 여겨야할지도 모른다. 지역의 인구가 유출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지 못한 채 일정기간이 경과하게 되면 부동산시장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기 쉽기 때문에 이와 같은 선제적인 시장의 가격조정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문제는 포항의 부동산시장이 아직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 대구와 같이 한국전쟁의 피해가 적었던 지방 대도시에서는 세대 간 부동산 상속시장이 형성된 지 오래다. 반면 포항은 부모에서 자녀로 이어지는 부동산 상속시장이 이제부터다. 타지에 거주하는 자녀세대들은 부모가 생존했던 도시와의 유일한 끈은 상속부동산뿐이다. 결국 이것을 급매로 시장에서 처분하고 나면 그 끈도 끊어진다. 포항에서 분가해 거주하던 자녀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녀세대가 상속으로 추가보유하게 된 부동산은 결국 포항의 상속시장으로 들어가 지역 부동산가격을 하락시키는 계기로 작동할 우려가 있다.결국 이를 억제하려면 부모와 자녀의 연결고리를 최대한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부모세대들은 설날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을 쓸쓸하고 외롭게 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일이 우선, 힘들면 다음기회에 등으로 타지에서 생활하는 자녀들을 배려해 인내하며 고향방문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자녀에 대한 배려는 결국 지금 부모세대가 지키고자 애쓰는 지방도시 포항을 소멸도시로 이끄는 최대의 원인으로 작용하기 쉽다. 실제 지금 포항을 고향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조차 과거 70, 80년대에 포항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왔던 자녀세대들이 아니었는가.다행히 다른 지방도시와는 달리 포항에는 부동산시장에 긍정적인 재료도 적지 않다. 그동안 국제항만이라고는 하지만 약점이었던 인입철도, 국제여객부두 등도 내년이면 해결된다. 적기에 영일만관광특구도 생겨났다. 이를 통해 유동인구가 증가하고 국내외 방문객들이 넘쳐나면서 지역경기가 호전되면 자연스럽게 국내외 관련 기업의 진출, 새로운 주거지를 찾는 부동산투자자들은 생겨나기 마련이다.지금 포항에서 살고 있는 부모세대들이 할 일은 하나다. 틈만 나면 자녀들을 포항으로 부르기만 하면 된다. 추석, 설날과 같은 명절에 자녀들을 굳이 배려하고 싶다면 명절을 피해 오도록 시기만 조절해주자. 그래야만 부모가 살고 있는 포항이 변화하는 모습, 부모들과의 추억거리가 많아질수록 포항과 타 지역 자녀들과의 끈은 단단하게 강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가족 간의 친화라는 최대의 행복을 맛보겠지만 그와 더불어 지역 부동산 상속시장의 약점을 최대한 보완하는 것이기도, 그로인한 자신들의 재산 가치를 보호하는 최고의 수단도 되기 때문이다.

2019-09-17

지금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전국 각지의 도시들은 어떻게든 소멸도시의 위험에서 벗어나 생존할 것인가 고심하고 있다. 일부 도시들은 중앙 관청이나 대형 공기업의 이전 또는 혁신도시 지정 등에 힘입어 도시의 면목을 일신하기도 하였다. 그에 따라 인구증가라는 가시적인 성과도 나오자 다른 도시들도 이와 유사한 발전 전략에 주목하는 모습이다.하지만 적어도 포항만큼은 유사한 전략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본다. 포항 정도의 지방 대도시들은 대부분 지난 수십 년 동안 산업과 소비, 물류 등 경제기반이 도로교통망과 밀접한 연결고리를 가지면서 오늘의 도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때문에 어떠한 단일 공기업의 본사나 대기업의 공장 하나를 유치한다고 해서 도시 전체 네트워크가 재편되거나 새로운 산업의 생태계가 조성될 정도로 파급력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결국 이들은 지금의 기반을 활용하여 활로를 모색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도시가 지닌 장단점, 그중에서도 약점을 제대로 규명할 필요가 있다.사실 포항시만큼 잠재력이 큰 지방도시도 드물다. 적어도 일정 수준만큼은 도시의 생산과 고용 그리고 소비를 책임지는 철강 산업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로운 발전의 계기도 생겨났다. 최근 영일만 해안선 주변의 구도심 일원이 영일만관광특구로 지정된 것이 그것이다. 이번 기회에 해양관광도시 포항으로서의 모습을 제대로 그려야만 한다.그렇다면 이것을 방해할 포항의 약점은 무엇일까. 하나만 꼽는다면 영일만이라는 천혜의 수변공간임에도 해운대 마린시티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같은 바다에서 조망할 만한 랜드 마크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포항이 자랑하는 포스코 야경도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하지만 독보적인 야경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영일만 바다에서 바라보는 송도와 영일대해수욕장에는 단 하나의 고층빌딩도 찾을 수 없다. 바로 이것이 해양관광도시 포항으로 가는 길을 막는 최대의 약점이자 걸림돌이 아닐까 한다.사실 멋진 수변공간을 가지면서도 초고층 특급호텔이 들어오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부산기상청 포항기상대가 송도에 자리잡은 이래 송도가 고도제한을 적용받고 있기 때문이다. 포항기상대는 일제강점기였던 1943년 설치된 포항측후소가 전신인데 1963년부터 국내 유일의 고층기후관측소로서 우리나라 기상관측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하지만 송도에서만 기상관측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과거의 포항은 모르지만 십여 년 이상 지역경제가 정체된 지금의 포항은 어떠한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약점을 해결해 나가야만 한다.해양관광도시의 핵심은 영일만관광특구다. 그리고 그 특구의 꽃인 송도는 ‘영일만의 홍콩’처럼 개발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지금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포항이 해양관광도시로 거듭나려면 먼저 송도개발의 약점인 포항기상대문제부터 해결하여 어떠한 랜드 마크라도 들어설 수 있도록 환경부터 조성해야만 한다. 포항이 모든 것을 그대로 둔 채 개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도시가 생존하려면 주어진 환경에 순응만 해서는 안되고 필요하다면 아예 그 환경조차 바꾸려는 노력이 뒤따라야만 한다.

2019-09-10

포항은 최고의 로봇시티다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세계를 진동시키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언론의 주인공은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AI)이었다. 빠른 속도의 기술 진보와 혁신이 그동안 제조공장에 국한되었던 그들의 역할을 세상 밖에서 찾기 시작하였다. 결국 지금까지 축적되어왔던 인공지능의 기술, 유무선 통신망의 발달, 새로운 산업간 융합과 협업체제의 구축과 같은 여건이 갖추어진 결과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어 나타난 것뿐이다.로봇분야도 마찬가지다. 용접과 같은 단순 반복적인 기능을 전담하던 산업용 로봇들은 오랫동안 대량생산 체제에서 효율성 증대와 공장프로세스 개선에 기여해 왔다. 산업용 로봇이라는 이름 그대로 이들은 공장 내에서만 존재하였다. 그랬던 로봇들이 점차 공장 밖으로 진출하게 된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관점에 따라 다양한 개념이 있겠지만 그 핵심 중 하나가 빅 데이터인 것만은 분명하다.오랫동안 존재했지만 우리 시야에 노출되지 않았던 산업용 로봇들이 형태와 모습, 그리고 그 기능을 확장하여 우리 생활 속에 서서히 침투하고 있다. 우리가 서비스로봇이라 부르는 것들이다. 굳이 인간모습으로 걷고 말하는 것만 서비스로봇이 아니다. 인공지능으로 제어되면서 운전자의 필수품이 되어 버린 내비게이션도 광의의 서비스로봇이라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서비스로봇은 청소로봇, 요양보호로봇 등 가정용이나 개인용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는 태풍이 극심한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기자를 대신하여 리포터의 기능을 수행하는 언론방송용 미디어로봇까지 출현하였다. 이러한 서비스로봇의 관심과 수요가 확장되면서 세계 서비스로봇시장은 지난 5년간 약 12.3%라는 경이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중국전자학회가 발표한 ‘중국로봇산업발전보고서 2019’에 따르면 2019년 세계로봇시장규모는 약 294억1천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포항은 여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포항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은 지도 무척 오래되었다. 문제는 항상 다른 곳을 쳐다보면서 새로운 것만 찾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포항은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대단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포항에는 국내 6대 로봇연구기관의 하나인 한국로봇융합연구원이 있다. 이곳은 실용로봇의 개발과 생산 모두가 가능한 로봇전문기관으로서 포항에서 한국지능로봇경진대회를 개최한지도 이미 20년이 넘는다. 포항이 명실상부한 최고의 로봇시티라는 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을 뿐이다.최근 포항은 환호공원부터 죽도시장 일대까지를 영일만관광특구로 지정받았다. 관광특구에는 먹고, 보고, 즐기고, 체류하는 것이 모두 있어야만 활성화된다. 이왕이면 한국로봇융합연구원이 그동안 개발했던 다양한 서비스로봇들을 직접 보고, 만지고 체험할 수 있는 전시관을 관광특구로 이전 확장하는 방안도 검토하였으면 한다. 이를 계기로 관광특구의 자랑거리를 확보하고 여기에서 판매 가능한 서비스로봇을 생산하는 지역기업까지 육성하면 좋겠다.

2019-09-03

영일신항만의 경제영토를 키우자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그동안 환동해 거점 도시, 국제 항만도시라는 슬로건에 어울리는 포항의 모습이 더딘 속도지만 이제야 이루어지고 있다. 10년 전 국가항만기본계획 발표 당시의 예정보다는 다소 지연된 느낌이지만 영일신항만 인입철도가 마무리 공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국제페리나 국제크루즈선을 맞이할 국제여객부두도 내년이면 완공된다고 한다. 동해안 유일의 국제 컨테이너항만이면서도 수도권 등의 물동량을 유치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던 최소 필요조건인 철도와 여객물류망이 항만 개장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갖추어지게 된 셈이다. 그동안 지역 경제계는 영일신항만 물동량에 고민이 많았다. 항만 물동량은 배후지역인 대구 경북지역에서 창출되어야 마땅하지만 인입철도의 부재가 최대의 약점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와 더불어 현재 영일신항만의 정기 운항경로에 미주지역이 없다거나 다른 지역으로도 확장되지 못하여 물동량 창출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그러나 국가항만전략상 환동해 거점항만으로 자리매김한 영일신항만은 일반적인 항만의 성장경로를 밟기보다는 오히려 기능과 전략적인 측면에서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 선택과 집중의 문제다. 영일신항만이 현재 기항하고 있는 지역·국가는 9개 지역(일본, 러시아, 중국, 홍콩, 태국, 필리핀,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이다. 이 지역을 시장의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영일신항만은 지금까지 제대로 알짜배기의 지역과 항로를 개설하며 경제영토를 확장해온 셈이다.실제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경제전망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시장성에 입각한 영일신항만과 관련된 9개 지역의 구매력평가GDP규모(2018년 기준)를 집계해 보면 총 42조6천22억 달러로 전 세계의 31.6%를 차지한다. 반면 그동안 항로가 없다며 아쉬워했던 선진 영어권 6개국(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아일랜드)의 비중은 20.2%에 불과하다. 게다가 2024년까지 9개 지역의 구매력평가GDP의 성장률전망치가 연평균 6.8%인 반면, 영어권 6개국은 3.9%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어 세계 시장에서의 비중은 더욱 낮아질 것이라는 점이다.결론적으로 영일신항만은 앞으로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기항 지역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 파이를 키워나가기만 하면 된다. 따라서 국제물류와 여객을 맞이할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 등에 능통한 우수인재만큼은 계속 양성해 나가야만 한다. 여기에 자체 항만물동량의 창출만 해결하면 된다. 다행히도 9개 지역 대부분 생활수준이 그리 높지 않은 지역임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는 과거가 된 80~90년대의 세탁기, 냉장고 등 가전용품들이 이들 지역 소비자에게는 통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참에 국내 시장에서 퇴출된 이들 제품을 생산하던 중소기업들을 영일만항 배후산업단지로 모아 과거의 제품들을 다시 생산하는, 굳이 명명하자면 ‘복고경제’를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수출시장에 맞춘 복고제품들을 포항에서 직접 생산, 수출한다면 지역 내 철강생태계를 보완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영일신만항의 물동량까지 늘리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2019-08-27

시장의 지배자는 소비자다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매일 같이 쏟아지는 다양한 뉴스를 보거나 들으면서 심장이 뛰거나 울리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 그럼에도 최근 한일, 미중, 남북 등 국가 간 뉴스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지역사회 전체, 때로는 국가 전체를 한 마음으로 결집시킬 정도로 마음을 뒤흔드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처럼 개인들의 입장에서는 그 뉴스가 자신의 인생사 속의 어느 한 구석과 동화되거나 마치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끼기도, 자신의 생업과 직결되는 어떠한 영향을 주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하지만 지역사회 전체를 결집시키는 문제부터는 다소 성격이 달라진다. 지역민의 결집은 국제정세 변화보다는 대부분 국내 사정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가령 국책사업의 배정을 둘러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갈등 같은 경우다. 그런데 범국가적인 관심사이면서 국민들 대부분이 동조하는 것은 종교적인 문제, 역사적인 문제, 국제 정치외교적인 다툼, 그리고 민족 문제인 경우가 주류를 이룬다. 사실 이번에 발생한 한일 간 사태의 도화선에 불이 쉽게 붙은 것도 앞서 언급한 4대 문제 가운데 3개나 중첩되면서 국민 각자가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적극 동참하는 계기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그런데 이와 같은 갈등을 계기로 어느 일방이 선제적인 공격을 하고 상대방이 수비에 나섰다고 하여 반드시 공격자가 경제적 이득을 얻는다는 보장은 없다. 때로는 양측 모두가 손해를 입을 수도 있으며 공격자가 얻을 수도 수비자가 얻을 수도 있다. 누구나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경제문제에 관한한 누가, 어떤 지역이, 어느 나라가 더욱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 시장을 읽고 있는가에 승패는 갈린다.미중 무역전쟁, 남북 경협문제, 사드배치를 둘러싼 한중간 갈등, 최근의 한일경제전쟁도 마찬가지다. 비록 정치외교적인 마찰이 원인이라도 외형적인 싸움의 수단은 결국 군사력이 아닌 경제력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 경제의 싸움터는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시장이다. 그런데 국가나 지역의 문제로 발발하는 경제 전쟁이 어떠한 의사결정체계를 가지더라도 그 영향의 파급력은 결국 공급자 주도냐 소비자 주도냐에 따라 결정된다. 달리말하자면 과연 어느 측이 보다 정확하게 자신의 한계와 능력을 진단하고 시장의 향방을 예측할 수 있는가에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례로 최근 유럽의 고급브랜드들이 홍콩을 중국과 다른 별개의 국가처럼 인식하면서 때 아닌 곤혹을 겪고 있다. 이는 중국이라는 시장(market)의 소비자를 무시한 결과다. 중국은 자신들이 세계의 공장이었지만 이제는 시장이기도 하다는 자신들의 힘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 이번에 이탈리아의 베르사체, 프랑스의 지방시 등 세계적인 고급브랜드를 공급하는 그들이 세계 고급시장의 30% 이상을 소비하는 화교권의 반발에 바로 사죄한 것도 처음에는 안일했을지 모르지만 사태 발생 이후 시장의 지배자가 소비자임을 즉각 깨달았기 때문이다.포항도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거 한때는 공급자로서 철강시장에서 지배력을 가지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진지 오래되었다. 그렇다고 대단한 구매력을 지닌 소비자도 아니다. 최근 강소특구에 이어 관광특구까지 지정되면서 조금은 자신감을 되찾은 모습이지만 그럴수록 보다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 포항이 추진 중인 다양한 관광 사업들도 실은 관광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포항이 준비하고 있는 관광서비스의 공급이 과연 관광소비시장에서 지배력을 발휘하는 국내외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살펴보아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최초의 소비자가 될 포항시민에게, 그리고 국내 다른 지역의 서비스를 소비해 온 내국인, 나아가 국제크루즈여객선을 타고 세계의 관광서비스를 소비해 온 외국인들의 눈높이 수준에 맞출 수 있을지를.

2019-08-20

은퇴를 앞두고 있다면 공부하자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지금 지구촌은 ‘지속가능’이라는 공통된 숙제 해결에 골몰하고 있다. 이 말 자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전 세계가 한 목소리로 이 지속가능이라는 목표에 동참할 정도로 옳은 이야기지만 그것을 위해 포기하는 것이 크다고 여겨 그동안 애써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지구촌의 과학문명이 발달하면서 세계의 산업경제가 발전하는 동안 지구 생태계가 병들고 급기야 인간의 생존까지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음을 이제야 깊이 인식하게 된 것과 마찬가지이다.포항도 지구촌의 축소판과도 같은 발전 과정을 거쳤다. 시로 승격한지 1년 만에 발발했던 한국전쟁은 도시 포항의 모습을 거의 지워버렸다. 당시 포항시민 즉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들은 생업의 터전이었던 바다가 메꾸어지고, 울창했던 산림과 산허리가 잘려나가고, 마실 정도로 맑았던 강물이 막히거나 오염되는 것 정도는 신경쓸 겨를조차 없었다. 당장 내 가족이 머물 곳을 마련하고 배불리 먹일 수만 있기만을 바랐다. 희망찬 ‘내일’보다 당장 눈앞의 ‘생존’이 중요하였던 것이다. 그로부터 오륙십년이라는 세월 동안 포항시 인구는 6만 명에서 50만 명으로 늘어났고, 국가경제 성장에 필요한 산업의 쌀인 철강을 공급하였다는 자부심도 가지게 된 반면 원래 지녔던 적지 않은 천혜의 자연과 생태환경을 잃어버린 것도 사실이다.지금 포항시는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지역경제의 주력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어 과거와 같은 급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데다 인구사회구조도 저출산과 고령화가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더구나 과거처럼 환경파괴와 같은 것을 도외시한 채 무분별한 개발로 성장을 견인하는 방법은 쓸 수도 없는 상황이다. 결국 다른 나라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포항도 언젠가 ‘소멸도시’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 속에 ‘지속가능’을 보다 분명하게 의식해야할 때가 온 것이다.다행히도 포항시는 상대적으로 다른 곳에 처지지 않는 ‘지속가능’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포항시는 대구·경북지역의 유일한 바다의 관문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 동해안에서 유일하게 국제화물과 국제여객 모두를 수용할 수 있는 영일만항을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조만간 영일만항까지 철도망이 진입할 수 있는 인입철도가 연결되고, 국제페리선이나 국제크루즈선을 타고 해외에서 관광방문객이 찾아올 수 있는 국제여객부두도 완공을 앞두고 있다.포항시가 추구할 ‘지속가능’의 방법론은 많겠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국제항만도시’라는 정체성을 포항시와 시민들이 어떻게 정립하고 활용해 나가는가에 성공여부가 달려있다고 본다. ‘환동해권’을 좁은 시각으로 보면 한반도 동해안과 중국 동북3성, 러시아 극동연방관구 그리고 일본 서안지역 정도다. 이 권역에서 국제 화물과 국제여객을 수용 가능한 해외관문 가운데 포항은 충분히 거점도시로서의 역량을 가지고 있다. 환동해는 영일만항을 거점으로 포항시가 앞으로 확장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잠재적인 경제영토인 셈이다.그런 의미에서 은퇴한 산업역군, 사업가, 연구원 등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포항시민은 포항시가 ‘지속가능’을 추진하는데 최고의 자원이며 바로 그들이 주역이 되어야만 한다. 포항의 미래 경제영토인 환동해권과 이들 시민은 어떻게든 연결고리를 만들어 나가야만 한다. 포항에는 특급호텔이 없는 것이 약점이라고 한다. 하지만 포항에는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은퇴자나 은퇴예정자들도 많다. 이왕이면 이들이 영어 외에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중 하나 정도는 더 공부하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준비된 시민들부터 국내외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홈스테이를 추진하였으면 한다. 그럴 경우 포항은 미래 경제영토인 환동해권을 선점하며 ‘지속가능한’ 해양관광도시 포항으로 재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2019-08-13

화웨이(華爲)의 인재영입 전략에서 배우자

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아프리카의 정글에만 치열한 약육강식의 논리가 통용되고 있지는 않다. 세계경제의 생태계 또한 전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절대적인 천적관계를 형성하는 동물의 세계에서는 좀처럼 그 관계가 바뀌는 경우가 없지만, 세계경제에서는 영원한 우방이나 친구란 있을 수 없다. 오직 자국의 이익이라는 대원칙만 변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상황에 따라 협정을 맺거나 파기하기도 한다.우리는 이러한 세계경제질서의 재편과정에서 언제나 그 과정을 주도하기보다는 대체로 주변에서 일으킨 풍파를 해결하는데 급급하였다. 그것은 우리가 세계경제를 들썩일 정도의 힘을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달리 말하자면 우리가 그만큼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최근 전국을 들썩이고 있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강화 조치도 결국은 우리가 그런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일본제품 불매운동이나 일본여행자제 등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조차 하지 않으면 양국 간 협상이나 타협조차 시도해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중요한 수단중 하나인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일본도 그에 대해서는 맞불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일본이 한국을 여행위험국가로 지정하고 나선 것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수순이라 하겠다.그런데 그동안 우리가 겪어 왔던 위기들에 대한 대응책이 과연 옳은 방향이나 전략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지금 이야기되고 있는 수입대체효과, 수출입 다변화 등은 수십 년 전에도 있었다. 물론 수치상 개선되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효과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더라도 그것이 최적의 대책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재고해볼 여지가 있다.최근 미국과의 무역 전쟁이 한창인 중국의 대형통신기업인 화웨이(華爲技術)의 런청페이(任正非) 회장의 발언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그는 지난 6월 사내 회의석상에서 금년에는 전 세계에서 천재소년 20∼30명을 채용하고, 내년에는 200∼300명을 채용하겠다고 하였다. 그는 미국과의 경제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적어도 3∼5년 동안 우수인재로 모두 교체할 생각을 가져야만 한다고 믿고 있는 셈이다.즉 당장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대책에 앞서 보다 근본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인재가 핵심이라고 본 것이다. 화웨이는 박사학위를 취득한 인재를 최대 약 200만 위안(약 3억 4천만 원)의 연봉으로 채용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화웨이가 인재를 키우지 않고 단지 스카우트를 한다고 폄훼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감한 연봉으로 우수인재를 발탁하고 채용하는 방식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미국에서 오래전부터 증명된 인재확보 전략이며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최고 전략의 하나임은 분명하다.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우수 인재를 보는 시각이 다소 다르다. 제대로 된 대우가 이루어지지 않아 우수한 젊은이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우리는 호시탐탐 우리의 약점을 살피면서 틈만 보이면 우리를 먹이로 삼으려는 약육강식의 경제생태계속에서 살고 있다. 지난 수년간 중국이 미국이 그리고 이제 일본이 나선 것뿐이다.포항도 지역의 젊은 인재가 유출되는 것을 그저 막으려는 것에만 주목해서는 안된다. 화웨이의 전략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역 기업에 필요한 인재나 지역에 필요한 우수한 자원이 있다면 이들을 유인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발굴해내야만 할 것이다. 그래야만 앞으로 지역경제와 지역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지역의 미래를 책임질 일꾼을 지키고 또 다른 일꾼을 지역으로 유인할 수 있을 것이다.

2019-08-06

이제 우리 주변도 살피자

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최근 한일 간 경제전쟁에서 국민들이 자신의 평소 취향과 기호를 포기하고 일본에서 온 다양한 수입 식료품, 의류, 전자제품 등 소비재를 다른 것으로 교체 사용하면서 후방 지원에 적극 동참하는 결집력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 개개인이 조금씩 포기하는 경제적 효용 자체는 비록 작은 크기일지 모르지만 이것이 전국 단위로 모이게 되면 결코 무시하지 못할 힘을 발휘한다. 실제 2018년 기준으로 일본은 우리나라의 소비재 수입 상위 5개국 중 5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소비재 수입규모는 2017년에는 전년대비 12.1%가 늘어난 33억1천80만 달러였고, 2018년에는 거기에서 다시 7.2%가 늘어난 35억4천980만 달러를 기록하였다. 1달러당 원화환율을 1천원으로 간주하여 이를 원화로 환산해 보면 2018년 한 해 동안 우리가 일본에서 들여온 소비재 수입액은 3조5천498억 원에 달한다. 물론 여기에는 원재료, 소재부품, 중간재, 자본재 등이 전혀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국민들의 소득 수준이 향상되면서 의식주를 둘러싼 개인의 취향과 선호를 저격하는 선택의 폭도 매우 다양하게 확장되었다. 그러한 한 줄기를 이루고 있던 일본에서 수입되는 소비재를 과감히 포기한 우리 국민들은 충분히 할 만큼의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소비자행동의 변화가 일시적인 이벤트로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이번 한일 관계에서 나타난 불협화음이 다소 해소된다고 하더라도 이 문제가 영원히 잠잠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그런데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또 다시 우리 사회와 문화 전반에 다시 침투되기 시작한 일본의 문화에 대해서는 무방비였다는 사실을 이번 기회에 깨달아야만 한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각국에서 수입되는 문화를 완전 차단할 수도 없겠지만 이러한 것들은 저절로 한국화라는 필터링을 거치기 마련이다. 거창하게 전통보전이나 민족성 변질에 대한 우려보다는 직수입된 문화나 풍습이 자국문화와 이질적이기에 저절로 거부감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우리에게 남겨진 법과 제도, 사회적 관습,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편해서, 적절한 우리말 찾기가 귀찮아서 등 다양한 이유로 그대로 답습해온 원죄가 사방에 흩어져 있다는 점이다. 바로 그처럼 우리 주변에 남겨진 잔재들이 최근 수년간 급격하게 다시 침투되고 있는 일본문화의 직수입에 대한 거부감을 희석시키며 나도 모르게 필터링이 생략되고 있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무서운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현대 사회에서 외국의 다양한 음식, 의복, 생활, 문화 등을 즐기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원숭이 흉내를 낸다고 원숭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식 요리 전문점임을 강조하려고 종업원들에게 기모노를 입힐 필요까지는 없다. 아예 일본인들로 구성된 일본가게라면 몰라도. 심지어 주요 고객층이 한국인인데도 ‘어서 오십시오’ 대신 ‘이랏샤이마세’를 외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이제 다음 달이면 또다시 광복절을 맞이하게 된다. 비록 순수한 우리 힘으로 독립을 쟁취한 것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우리 스스로 민족의 자긍심과 전통문화를 부정하고 우리말을 훼손시키는 것은 20세기 들어서 우리 민족이 겪었던 과거의 실수를 스스로 재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직도 남아있는 수많은 기술용어, 건축용어 심지어는 언론기관에서 사용하는 말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손 대어야하고 바꾸어 나가야할 일본이 36년간 짧게 남겼던 잔재가 그 기간을 두 배나 넘긴 지금에 까지 번거로움을 이유로 지워나가지 않는다면 위기가 도래했을 때 우리의 구심점을 찾는데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의 주변을 살피고 바꾸자.

2019-07-30

포항에서 보고,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것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얼마 전 음식점에서 포항 12경이 인쇄된 종이 식판을 보았다. 시에서 관광객 유치를 위해 포항 12경을 선정하고 있는 것은 알았지만 일부가 바뀐 줄은 미처 몰랐다. 지난 2009년 포항시 승격 60주년 당시 선정했던 12경 가운데 몇 개가 금년 70주년을 계기로 교체된 것이다. 종전에 선정되었던 12경이나 이번에 선정된 12경 모두 선정될만한 곳이었다. 다만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번에 빠진 곳들의 경치에 하자가 생긴 것도 아니었을 텐데 빠지게 된 것은 아마도 자랑거리는 늘어났지만 12경을 고수하려는 숫자에 과도하게 얽매인 결과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포항이 지속가능한 관광산업의 발전을 지향한다면 이러한 방식이 최선이었을 지는 의문이다.그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거주지와 전혀 다른 경치나 문화, 유적을 보는 관광을 선호하였다. 예로부터 유명 경승지인 단양8경, 관동8경과 같은 말이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에는 전국 어디를 가도 해당 지역 지자체 자신들이 자랑하고 싶은 10경, 12경을 선정하여 적극 홍보하고 있다. 이것이 전혀 효과가 없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관광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취향이나 니즈를 무시한 채 관광지 공급자인 해당 지자체의 일방적인 정보 발신만으로는 해당 지역민은 물론이고 타 지역으로부터도 지속적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현대의 관광소비자들은 과거처럼 그저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무한경쟁에 지친 직장인들 중에는 새로운 것을 배워 정신적인 힐링을 얻으려는 학습파, 그저 맛난 음식이 있으면 최고라며 전국을 누비는 식도락파, 각종 체험에 도전하는 행동파 등 관광의 대상이나 형태는 복잡하며 회사, 동아리, 동창회 등 관광주체나 싱글, 커플, 가족, 단체 등 관광인원단위도 매우 다채롭다.포항 12경에 집착하여 스스로 한계를 지을 필요는 없다. 굳이 숫자를 정한다면 탑10도 나쁘지 않다. 대신 포항은 이번 기회에 관광객들이 자기 취향에 따라 보고, 배우고, 즐길 수 있는 선택의 폭을 넓혀주었으면 한다. 포항에서 봐야할 곳을 포항 10경(景), 포항에서 배우고 느낄만한 곳을 포항 10학(學), 포항에서 직접 체험하며 즐길 거리를 포항 10락(樂)으로 선정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일 것이다. 이를 위한 마중물의 역할을 위해 먼저 세 분야에 대해 시범적인 예시를 제안하고자 한다. 물론 시민들마다 마음속의 10경, 10학, 10락은 다를 것이지만 이는 얼마든지 포항시가 시민 의견을 수렴하여 조정해 나가면 될 것이다.먼저 포항 10경에는 한반도에서 가장 해가 빨리 뜨는 호미곶, 내연산의 12폭포, 죽장 하옥계곡, 운제산 오어사, 경상북도 수목원, 영일대와 포스코 야경, 덕동 문화마을 숲, 환호공원 주변, 4.3㎞의 철길숲과 불의정원, 한반도 최동단 땅끝마을인 구룡포 석병리를 꼽았다. 포항 10학에는 장기읍성과 유배문화체험관,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과 포항지구전적비, 영일 냉수리 신라비와 고분, 칠포리 암각화군, 연일 중명자연생태공원, 포스코 역사관, 포항가속기연구소, 한국로봇융합연구원을 꼽았다. 포항은 석기시대부터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르는 정치, 충의, 환경, 경제, 신화 등 다양한 학습이 가능한 곳이다. 포항 10락에는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산책, 포항운하 크루즈 탑승, 포항 꿈틀로에서 문화예술 체험, 영일신항만 방파제에서 바다낚시, 칠포 재즈페스티벌 감상, 포항국제불빛축제 구경,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관람, 흥해 북송리 소나무숲 걷기, 동해안 최대 죽도어시장 탐방, 구룡포 대게와 과메기 먹어보기는 어떨까. 의외로 포항은 자랑거리가 풍부하다. 포항에서 보고,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관광프로그램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2019-07-23

앞으로의 경제전쟁에서 이기려면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일본이 소재를 무기로 한국경제에 대한 영향력을 가늠하려는 간보기가 시작되었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우리 민족이 일본제국에 맞섰던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다. 당시 만세운동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목숨 건 대한의 애국지사들이 한민족의 자존감을 세계만방에 알린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흘렀다. 우리는 한국전쟁과 전후 재건, 고도성장, 올림픽, 민주화운동, 외환위기 등 산재한 현안 해결에 골몰하느라 불과 36년 동안 일본이 뿌리내렸던 잔재들을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거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게다가 밀레니얼세대들은 부모세대들과 달리 공무원시험 준비생이 아닌 한 ‘국사(역사)’라는 과목은 말 그대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셈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과거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화하던 과정만큼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일본은 각 분야의 모든 계층과 계급이 치밀한 계획 하에 한반도에 사전 침투하여 바닥을 다진 다음에야 사후적으로 조약이라는 형식을 갖추어 공식화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조약 체결 시점 이전부터 이미 식민정책은 선행되고 있었던 것이다.이를 고려하면 최근 일본이 수출 제한이라는 칼을 빼든 것도 그저 일본 총리의 즉흥적인 발언이라 쉽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분명 한국이 보일 다양한 반응에 대해 사전시뮬레이션을 수없이 거친 후 시기와 범위 등을 결정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장 매출감소를 우려하는 일부 대기업들이야 과거처럼 정부가 나서서 정치적인 협상이나 양보를 통해 현재의 위기상황을 넘겼으면 하겠지만 앞으로 이러한 일이 다방면에 걸쳐 재발할 경우까지 고려한다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최근 일본의 한 언론에서는 한국 내 일본 불매운동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논조를 피력하였다. 사상 최악의 한일관계였다는 지난 수년 간 한국이 정치나 역사문제로 일본을 기피하였으나 실제 한국인의 문화와 소비, 레저 등에서는 반대로 일본 붐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해당 기사는 다음과 같은 근거를 제시하였다. 한국인의 일본방문은 2005년 174만 7천명에서 2018년 753만 9천명으로 늘어났다. 또한 2019년 상반기 수입차 중 일본차 비중은 21.5%였는데 이는 2015년의 2배 수준이다. 그리고 2017년 한국인 청년의 일본취업비중은 해외취업자중 약 29%에 이른다. 이외에도 한국 내 일본음식전문점이 늘어나고, 어패럴이나 일용잡화는 유니클로나 무인(無印)양품이 시장을 석권중이라 밝히고 있다. 실제 편의점에서 일본 주류, 과자, 커피 등이 많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지금 세계는 ‘자유’와 ‘공정’보다는 ‘국익’을 최우선하는 경제 전쟁이 한참이다. 사드배치를 빌미로 한 중국의 한국에 대한 보복조치의 여파가 여전한 가운데, 미국우선주의로 촉발된 미중간 무역전쟁도 현재진행형이다. 중요한 것은 경제전쟁에는 해당국 국민이 동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엔 일본이 불씨를 지폈다. 어떠한 전쟁이건 승리를 위해서는 후방의 협력이 있어야만 한다. 경제전쟁에서 과연 우리의 경제체질과 구조가 견딜 수 있는지를 시험받는 순간이 왔다. 후방의 국민들이 경제전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저 평소 생활습관에서 의식하지 않았던 의식주와 관련된 소비재의 선택에 조금만 유념해도 충분하다. 일례로 2018년 일본으로 여행했던 한국인이 가령 2박 3일 일정으로 60만원의 경비를 지출하였다면 이것을 국내여행으로 바꾸기만 해도 단순 계산으로 한일 양국에는 4.5조원이 각각 가감되는 효과를 발휘한다. 적어도 3·1운동 100주년인 올해 우리를 향한 일본의 작은 불씨조차 제대로 밟아 끄지 못한다면 앞으로 어떠한 경제전쟁에도 승리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2019-07-16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아니하기에, 그 꽃이 아름답고 그 열매 성하도다.”라는 용비어천가가 구가했던 조선 왕조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이 시구가 담고 있는 깊은 통찰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다. 우리 경제의 전체 모습을 수풀이 무성한 삼림으로 비유해보면 숲속에서 생장하는 나무들 가운데 뿌리 깊은 나무는 과연 얼마나 될까. 1998년 외환위기를 겪을 당시 수백에서 수 천 퍼센트에 이르는 과도한 부채비율을 가지면서도 외형 확장에만 혈안이 되어 ‘대마불사’를 맹신하며 오만이 극에 달하였던 기업집단들이 사라지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만큼 기업을 나무로 비유할 때 나무를 지탱하는 뿌리인 기술개발, 인재 육성, 재무건전성을 튼튼하게 하는 데는 관심을 두지 않고 외형적인 모습인 이파리에 해당하는 멋진 사옥을 건설하거나 손쉬운 광합성을 위해 가지를 쉽게 뻗기 위해 정관계와의 로비에만 신경을 쓰던 기업들은 외환위기라는 비바람에 손쉽게 뿌리째 뽑히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오늘 나라 경제 숲의 큰 나무인 대기업들 가운데 과연 가뭄에도 견디고, 태풍에도 끄떡없는 깊은 뿌리를 지닌 곳은 얼마나 될까. 그리 많지는 않은 듯하다. 게다가 제조 대기업인 경우라면 더욱 많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기업의 우선 가치가 수익극대화이고 가장 좋은 달성 수단이 원가절감이기 때문이다. 직접 소재·부품을 생산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조달하는 것이 손쉽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으면 굳이 막대한 자금과 시간을 들여 개발할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소재·부품을 중소기업들과 협업하여 직접 개발하면 나라경제인 숲이 매우 무성해지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 자기만 햇볕을 쉽게 받고 손쉽게 물가를 차지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고용직 최고경영자들이라면 주주나 재벌일가에게 성과를 보여야만 연임도 가능할 것이기에 자신의 임기동안 굳이 장기적으로 막대한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자하여 핵심 소재부품을 개발, 생산하려는 프로젝트는 그 중요성을 알더라도 외면하고 당장의 성과에는 도움이 되지 않기에 먼저 이익을 내는 방안들을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최근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핵심 소재 내지는 원자재 수출을 제한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 수십 년간 학계나 정부에서 수입원자재 다변화, 수입대체산업 육성, 소재부품 연구투자 강화 등을 부르짖었지만 큰 소용은 없었다. 점차 세계는 무한경쟁의 시대로 돌입하고 있다. 희토류, 석유, 식량 등은 국가차원에서 이미 국가안보수준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자원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은 오랫동안 휘두르고 싶었던 칼을 이번에 한번 뽑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그동안 자사의 뿌리를 깊이 내리는 인재육성이나 연구개발투자보다는 외적 디자인이나 주요 기능개선 등을 통한 매출 확대로 이익창출을 이끌었던 기업들이 뿌리의 중요성을 제대로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수출제한이 확대되기 시작한다면 어쩌면 앞으로 국내에서 폴더형 핸드폰을 구입하지 못하거나, 자동차 사이드미러를 수동으로 접게 될지도 모른다.물론 일본 기업도 먹고 살아야하기 때문에 영원히 수출제한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세계경제가 어려운 지금이라면 한국을 제외한 여타 시장에 대한 수출만으로도 충분히 버틸 수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번에 한번 휘두른 칼은 앞으로는 수시로 뽑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일본산 소재부품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최대한 조기에 낮추지 않는 한 한국 경제 숲에 뿌려지는 일본산 씨앗이나 비료가 언제든지 우리 나무의 뿌리를 고사시킬 수 있는 독약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2019-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