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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어느 늙은 `포철-맨`의 회고와 분노

▲ 이대환 작가· (사)포항지역사회연구소장지난 16일 목요일 이른 아침. 포항 날씨는 태풍의 끝자락을 타듯 드센 바람이 잔뜩 찌푸린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일찍 숙소를 나선 나는 효자동 대중목욕탕으로 걸어갔다. 내가 옷장에 열쇠를 꽂았을 때, 목욕 후 옷을 입고 평상에 걸터앉은 두 노인이 `박태준`을 화제에 올렸다. 키 큰 노인이 보통 체구의 노인을 형님이라 불렀는데, 얼핏 던진 곁눈질에도 팔순을 바라볼 두 노인은 그러니까 `늙은 포철-맨`이었다.“형님, 홋카이도 무로랑제철소 연수 시절이었는데요, 하루는 박태준 사장님이 와서 저녁에 우리 연수생들을 식당에 모았습니다.” 나는 얇은 잠바만 벗어 옷장 속에 걸어두고는 일부러 꾸물대고 있었다. 내놓고 엿듣기가 민망해서 잔꾀를 부린 것이었다.키 큰 노인이 이야기를 이었다. “포철로 오기 전의 직장에서는 월급 6만원을 받았는데, 포철로 가면 해외연수 기회도 잡을 수 있다고 해서 옮겼더니, 포철에서는 월급이 4만5천원이대요. 25퍼센트나 줄었으니 마누라는 입이 튀어나왔지요.” 보통 체구의 노인이 한마디 끼어들었다. “그때 없던 살림에는 충격이 컸겠다.”키 큰 노인이 쿡쿡 웃었다. “그날 저녁에 박 사장님이 술도 하자고 해서 제법 마셨는데, 건의가 있으면 하라고 해서, 내가 월급 얘기를 했어요.” “6만원 받았는데 4만5천원밖에 안 준다고?”“예에. 그랬더니, 북한에서 혼자 내려왔느냐고 물어요. 아니라고 했더니,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요. 울산 정자라고 했더니, 거기는 자기 외가라고 합디다. 그래서 모두가 웃었는데, 그 뒤에도 몇 사람이 이런저런 건의를 했어요. 박 사장님이 다 듣고 나서 자네, 자네, 하고 나를 포함해서 넷을 앞으로 불러내요.”나는 천천히 양말 한 짝을 더 벗는 중이었다. “우리는 다 작업복을 입고 있었는데, 상의를 배꼽까지 들어 올려 보라고 해요. 영문도 모르고 긴장을 해서 그렇게 했더니, 모두 허리띠는 매고 있구나 하고는, 허리띠 칸을 최대한 줄여 보고 각자 몇 칸까지 줄여지는지를 말하라고 해요.” 보통 키의 노인은 듣고만 있고, 나는 양말 두 짝을 옷장 속에 넣었다.“나는 네 칸, 내 옆에는 세 칸, 다른 둘은 두 칸을 줄였다고 발표처럼 했는데, 아, 그러자 그 양반이 아주 진지하게 이러는 겁니다. 우리는 자손들을 위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가자.” 문득 나는 박태준 어록의 한마디를 떠올렸다. `우리 세대는 다음 세대를 위해 순교자적으로 희생하는 세대다.` 평전 `박태준`을 쓴 작가로서 내 주인공은 빈말하지 않았다는 점도 새삼 아리게 확인했다.“형님, 나는 그때 그 말씀과 그 장면을 평생 못 잊어요. 그거 참 가슴이 찡하더니만, 오래도 가네요.” 듣고만 있던 보통 키의 노인이 낮게 한탄을 했다. “그런데 이게 뭐고? 요새 회사를 보면 허파가 뒤집어진다.” 키 큰 노인이 발끈했다. “성진지오텍이다 뭐다, 무슨 수사가 뒷북만 친답니까?”“그러게. 포항 민심은 하나도 못 밝히면서 질질 끌어대며 회사 이미지만 자꾸 실추시키고.”나는 속옷을 벗었다. 두 노인의 입에서 실명(實名)들이 튀어나왔다. 한때 권력을 쥐락펴락한다던 그 이름들을 육두문자로 바꿔 부르기도 했다.“박 회장님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설 일이지. 어제 발표한 쇄신안들이 제발 잘돼야 할 건데.” 선배의 차분한 분노를 후배가 거칠게 받았다.“회사가 엉망이 되는 동안에는 새로 생기는 외주파트너사를 실세다 국회의원이다 뭐다 그 똘마니들이 여러 개 먹었다고 하잖아요? 회사의 빽이 돼준답시고 그 빨대에서 빼낸 돈으로 공천권 가진 것들한테 줄을 대고는 공천 받는다, 무얼 해먹는다, 분수도 모르고 설쳐댄 놈들도 있었잖아요? 그 난장판에 얼굴마담이나 해준 OB들도 없지 않았고요. 쇄신을 확실히 하자면 그런 빨대들도 솜씨 좋게 뽑아버려야지. 형님, 안 그래요?”나는 발을 옮겼다. 발가벗은 몸으로는 차마 나를 소개하고 성함을 여쭐 수가 없었다. 한산한 목욕탕의 둥그런 열탕에는 혼자였다. 어느 순간에 `야속한 운명인가, 고운 순정 보람 없이`로 시작하는 노래 `백치 아다다` 2절을 쓸쓸히 부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2015-07-20

왜 `박정희와 박태준`을 쓰는가?

▲ 이대환 작가·계간문학지 ASIA 발행인1973년 7월 3일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큼직한 아치가 세워져 있었다. `포항종합제철준공`을 경축하는 것이었다. 일제식민지 배상금 일부를 들여서 연산 조강 103만t에 불과한 `포철 1기`를 준공했지만, 그날은 온 나라가 들썩인 경축일이었다. 모든 언론이 이구동성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날`이라 했다. 그 41주년을 맞은 2014년 7월 나는 조선일보의 프리미엄조선에 위대한 만남-박정희와 박태준 연재를 시작했다. 매주 2회쯤 실어서 70회를 넘었으니 `포철 준공` 42주년 즈음에 연재를 마치면서 책으로 나올 것 같다.그 글을 왜 쓰는가?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궁금해 한다. 나는 개인적인 소박한 이유와 시대적인 중요한 이유를 품고 있다.박태준, 철의 사나이는 2011년 12월 13일 흙으로 돌아갔다. 1997년 5월 나는 포항에서 처음 그를 만났다. 나날이 인연이 깊어졌다. 그가 타계한 날까지 15년 동안 거의 매주 한두 번씩 깊은 대화를 나눴다. 산술적 평균으로는 그보다 더 잦았을 것이다. 혼자서 걸을 때나 가슴을 펼치는 술자리에서 나는 김소월의 시 `산(山)`을 곧잘 노래로 부른다. 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 십오 년 정분을 못 잊겠네. 이제 박태준은 내 영혼을 현(絃)처럼 떨게 하는 그 언령(言靈)에도 존재하고 있다.약속을 지키는 것은 무엇보다 지키는 자의 즐거움이다. 고인(故人)과 약속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2011년 한가위 무렵이었다. 그때 박태준은 기침에 시달리며 생의 마지막 계절을 소일하고 있었다. “내가 만났던 박통 얘기도 우리가 참 많이 했는데, 이 선생은 정리해볼 수 있겠소?” 이렇게 묻는 노인의 목소리와 눈빛은 강요든 청유든 그런 낌새조차 묻지 않은 것이었다. 안 받아도 좋고 받아도 좋다는, 그저 툭 던지는 화법이었다.그러나 그 말에는 찰나적으로 예리하게 번뜩이는 무엇이 박혀 있었다. 그것을 나는 냉큼 알아차렸다. `박정희`란 이름만 내놔도 삿대질부터 해대는 세력이 만만찮은 세태인데 앞날이 창창한 작가로서 `박태준이 만난 박정희`를 쓸 수 있겠느냐, 이것이었다. 나는 생각을 가다듬어 대답했다.“어떤 가치를 옹호할 것인가, 이 기준의 문제입니다. 옹호할 가치를 개인의 명예 관리보다 하위에 두는 것이 정치계도 아니고 연예계도 아닌 한국 지식사회의 부끄러운 실정입니다만, 작가까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저는 주장해 왔습니다.”이래서 내 삶에 새로운 약속이 성립됐다. 그 글을 쓰는 것에는 그 약속을 실천하는 개인적인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시대적인 이유가 있다.역사의 법정은 지도자를 늘 피고석에 앉힌다. 방청석의 작가는 최후 변론과 최후 판결이 나온 뒤에도 그의 내면과 인간적인 또 다른 가치를 놓치지 않으려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 글은 박정희의 공과(功過)를 살피고 따지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가 먼 험로(險路)를 걸어가는 동안 보이지 않는 발자취처럼 남겨둔, 흥미롭고 아름다운 `박정희와 박태준의 완전한 신뢰의 인간관계`를 사실 그대로 포착한 실록(實錄)이다.위대한 만남-박정희와 박태준을 연재하는 `작가의 말`에는 “진정한 신뢰로 위대한 일을 창조한 `롤 모델`이 우리 권력동네엔 없는가? `박정희와 박태준`이 답할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작가정신이 반드시 옹호해야 하는 그 귀중하고 아름다운 가치를, 나는 옹호한다. 포철이고 포항이니 그 가치를 어느 누구보다 먼저 포스코 임직원들, 포항시장과 공무원들, 포항의 오피니언 리더들, 포항의 청소년들이 깊이 헤아리게 되기를, 나는 희망한다.우리는 중국 고사(故事)에서 유래한 사자성어에 익숙하다. 아득한 미래의 어느 날부터 박정희와 박태준이 신뢰에 대한 한국 고사의 단골로 불려나오며 `쌍박일심(雙朴一心)`같은 사자성어로 거듭날지 모른다. 이것이 그 글을 쓰고 책으로 세상에 내려는 궁극적인 이유다.

2015-04-13

포항시장 이강덕의 행운과 그 약점

▲ 이대환 작가·계간 문학지 ASIA 발행인한 남성 작가가 초저녁에 전화를 받는다. “오늘 밤에 커피 한 잔 주실 수 있나요?” 여성이다. 굉장한 여성, 독일 총리 메르켈이다. 이윽고 작가와 총리가 대화를 나눈다. 주로 총리가 묻고 작가는 답한다. 토의도 이뤄진다. 몇 시간이 몇 분처럼 지나간다. 작가의 행운인가, 메르켈의 행운인가? 후자다. 풍부하게 알지 못하는 일에 대하여 퇴근 후 해당 지식인을 찾아가는 메르켈의 행운은 독일의 기운으로 거듭나는 중이다.포항시장 이강덕의 행운은 선거준비 기간이 아주 짧았던 것이다. 석 달? 두 달? 십여 년을 준비해온 아무개가 감옥 가는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시장이 못 되었다는 뒷말도 남았다. 하기야 그 준비라는 것이 포항의 과거와 현재를 제대로 공부하고 미래를 통찰하는 노력이 아니라, 공천권을 거머쥔 국회의원에게 줄을 대고 손을 비비면서 경선에 대비한 조직이나 꾸려 몰래 `물`을 대주는 노력이 거의 전부이니, 어쨌든 이강덕에겐 이래저래 행운이 찾아왔던 모양이다.지금 이강덕은 그 행운을 포항의 기운으로 창조하고 있는가? 나는 그와 대담(본지 2014년 9월 15일자)하느라 처음 만났고, 지난 25일 밤11시를 지나 우연히 신경주역에서 재회했다. 서울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청암상 시상식에 다녀오는 시장, 역시 거기 참석하고 고(故) 황대봉 회장 빈소에 국화 한 송이 놓으려 부랴부랴 KTX를 탔던 작가.시장은 작가에게 교통편을 묻지 않았으나 내가 차를 얻어 타자고 했다. 자정을 넘기지 않고 포항성모병원에 닿으려는 내 조바심 탓이었다. 포항남부경찰서 입구를 지나 나를 내려줄 때까지 30분 동안 우리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박태준`을 화제로 삼는 가운데 그가 “박근혜 대통령 시기라서 포스코 경영진이 박정희 대통령의 포철 공로를 말하는 게 아닌가”라고 했다. 즉각 내 목구멍까지 답이 차올랐다.김영삼, 노무현 대통령 시기에 박태준 없는 포스코에서 경영진이 박정희의 공적을 떠받들 수 있었겠나? 김대중 대통령 초기에 김종필과 박태준이 그 좌우를 지킨 때는 정부가 `박정희대통령기념관건립예산`도 편성했지만 두 사람이 김대중과 결별한 뒤로야 어떠했겠나? 이명박 대통령 시기에는 이명박과 박근혜가 각을 세우고 있는데 감히 그럴 수 있었겠나? 박태준이 포스코를 떠났던 1993년 이후 20년 만에 비로소 정상화됐고, 앞으로 변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박태준은 죽는 날까지 박정희를 잊지 못했다는 점인데, 이건 알고 있나?하지만 나는 말들을 삼킨 대신에 내가 프리미엄조선에 연재하는 위대한 만남-박정희와 박태준을 꺼냈다. `신뢰`라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는 작가로서의 신념을 들려주고, 2004년 노무현 대통령 시기에 나온, 내가 쓴 박태준 평전의 한 대목을 외었다.“박정희는 박태준의 순수하고 뜨거운 애국적 사명감만은 범할 수 없는 처녀성처럼 옹호했다. 정치권력 방면으로 기웃거리지 않고 당겨도 단호히 뿌리치는 박태준의 기개를 높이 보았다. 여기엔 한 인간과 한 인간, 한 사내와 한 사내로서 오직 둘만이 온전히 알아차릴 수 있는 서로의 빛깔과 향기가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박정희와 박태준의 독특한 인간관계는 박태준이 자신의 리더십과 사명감을 신명나게 발현할 수 있는 양호한 정치적 환경을 조성해주었다.”이강덕은 `박정희와 박태준의 완전한 신뢰관계`의 구체적 사실들을 거의 모르고 있었다. 내가 처음 만나 선물한 박태준 평전과 요즘 연재하는 글을 읽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한 그가 “박태준 정신, 경영철학, 리더십 등을 포항에서 문화 인프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나는 지난번에도 들었음을 알려줬다.이강덕은 시장이 되는 과정의 행운을 포항의 기운으로 창조할 책무가 있다. 그러자면 지금쯤 메르켈을 잘 봐야겠다. `박태준 구상`만 해도 그렇다. 기획자가 먼저 `박태준`을 풍부하게 공부해야 한다. 나에게 만나자고 전화할 필요는 없다. 내가 선물한 그 책에, 내가 연재하는 그 글에 다 나와 있다. 진정한 겸손의 진정한 소통이 그 창조를 부를 것이다.

2015-03-30

`진정한 소설`을 모욕하는 정윤회의 `소설` 발언

▲ 이대환 작가·계간 문학지 `ASIA` 발행인`진정한 소설`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해본 적 없는 인간들이 우리나라에는 많다. `진정한 소설`이 사회체제나 권력동네의 깊숙한 어딘가에 암세포 덩어리처럼 발육하는 `악의 실체`를 어떻게 밝혀내는가에 대해 까맣게 모르는 인간들이 우리나라에는 많다. `진정한 소설`이 평범한 시민의 술자리나 수다자리에 올라온 굉장한 화젯거리의 배후에 숨겨진 `진실`을 어떻게 피사체처럼 찍어내는가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인간들이 권력동네에는 부지기수로 많다. 물론 그러한 인간들은 세계 여러 나라에도 많은데, 그들 모두의 공통점은 `진정한 소설`에 대하여 전혀 몰라도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고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아니, 그래서 더 편하게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그들 모두는 또 다른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자신이 모종의 흉계나 음모에 걸려 고통을 당하는 경우에든 자신의 엄청난 비밀이 들통 나서 고통을 피할 수 없게 된 경우에든 정말 웃기게도 한결같이 `소설`이라는 단어를 믿음직한 방패처럼 흔들며 `소설`이라는 단어를 욕설처럼 뱉어댄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그들 모두가 방어본능처럼 저지르는 짓이기도 하다. 숱한 사례들을 일일이 다 들춰내기란 불가능한 일이니, 지금 우리 눈앞에 전개되는 사례 하나만 보자.첫 추위가 밀물처럼 밀려온 이즈음에 `소설`이란 단어가 또다시 모욕적 수난을 당하고 있다. 이번 주인공은 `정윤회`와 `십상시`다. 며칠 전에 정윤회는 청와대 문고리 권력이라 불리는 3명과 만난 적이 없으니 “하나라도 사실이면 감방 가겠다”며 “소설”이란 단어를 들이댔다. 청와대에서 유출된 문제의 문건을 근거한 보도가 `거짓`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니까 정윤회는 “모든 게 다 말짱 거짓이다”라고 말해야 할 자리에서 “소설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진정한 소설`에 대한 명예훼손이 성립될 수 있다.이번 정윤회의 `소설` 발언과 유사한 사례는 말했다시피 여러 나라들에 수두룩하다. “그건 거짓이다”라고 말해야 할 경우에 마치 방어본능이 작동되듯 “그건 소설이다”라고 뱉는 것이 무슨 상식이란 말인가? 더러운 감정을 못 참는 경우의 욕설과 같은 것이란 말인가?시시껄렁한 우스갯소리나 신변잡기나 성감대를 자극하느라 바쁘거나, 대충 뭐 그렇고 그런 `소설`만으로 한정할 경우에는, 이번에 정윤회가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소설`이라고 우겨대도 괜찮다. 그따위 소설이란 재미나 오락을 위해, 즉 서비스를 위해 온갖 구질구질한 거짓을 잔뜩 생산해내기 때문이다.그러나 `진정한 소설`은 다르다. 그렇게 `소설`이란 단어가 함부로 뱉어지는 것을 참기 어렵다. 분노할 수도 있다. 인간 존재의 근원을 성찰하며 진선미를 추구하고, 당대를 활보하는 야만에 맞서며 시대정신을 창출하고, 모든 권력의 폭력성을 감시하며 더 인간적인 사회체제를 탐구하는 문학, 이것이 `진정한 소설`이다.`진정한 소설`이 활용하는 거짓, 그 허구란 무엇인가? 이것은 어떤 현상들의 배후에 똬리를 틀어 도사리고 있는 `총체적 사실`이나 `실체적 진실`을 포착하고 체포하고 적출(摘出)하려는`진정한 작가`에게 문학(예술)이 부여한 거의 유일한 특권이다. `진정한 작가`는 그 거짓, 그 허구의 특권, 그 유일한 권력적 수단(도구)을 활용해서 `진정한 소설`에 활기찬 상상력을 불어넣고 첨예한 작가정신을 살려내며 드디어는 작가정신이 노리는 그 현상들의 배후에 도사린 `총체적 사실` 또는 `실체적 진실`을 포착하거나 체포하거나 적출하게 되는 것이다.그런데 아무나 함부로 `소설`이란 단어를 뱉어대다니? 정말 `진정한 소설`이 무엇인가를 까맣게 몰라서 그러는 것인가? 우리나라 신간시장에서 `진정한 소설`이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 지가 오래 된다는 수치스런 비밀을 안다는 말인가? 아니면 `소설`이란 단어가 진실을 숨겨줄 듬직한 `방패`라도 된다는 것인가?이제부터는 누구든 자기방어를 위해 `소설`이란 단어를 뱉지 말라. 아직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소설`을 창작하려고 좀체 인생의 긴장을 풀지 못하는 `진정한 작가`들이 아무렇게나 `소설`을 방패나 욕설처럼 써먹는 자들을 응시하고 있다.

2014-12-05

시진핑의 영혼을 신뢰하는 나의 근거

▲ 이대환 작가·계간 문학지 `ASIA`발행인대체로 우리는 어떤 일화를 통해 그 주인공의 사람 됨됨이를 짐작한다. 이때 `사람 됨됨이`란 그의 향기와 고뇌와 신념을 아우르는 말이니 `영혼`이라 불러도 괜찮을 것이다.지난 10월초에 발간된 계간 문학지 `ASIA` 제34호에서 나는 중국 주석 시진핑(習近平)의 사람 됨됨이, 곧 그의 영혼을 짐작케 해주는 일화와 만났다. 중국 서남민족대 한국어학과 교수 허련화가 `ASIA`에 보내온 통신 성격의 글부터 옮겨놓는다.올해 들어 중국 문단에서 새롭게 조명 받는 작고(作故) 작가가 있다. 그의 이름은 쟈따산(賈大山, 1943~1997)이다. 쟈따산은 허베이성 쩡띵 사람이다. 1978년에 단편소설 `경(經)을 구하다`가 전국 제1회 우수단편소설상을 수상, 1980년대에 문단에 이름을 날렸다. 불행하게도 그는 1997년에 식도암으로 세상을 떴다.쟈따산은 중국 국가 주석 시진핑의 망년지교였다. 쟈따산이 세상을 뜬 이듬해 시진핑은 `따산을 추억하며`란 추모의 글을 썼었다. 올해 1월 12일 허베이성 작가 캉쯔강이 자신의 블로그에 시진핑의 이 글을 올렸고, 잇따라 광명일보를 비롯한 여러 언론매체에서도 이 글을 게재하면서 인터넷 검색어 순위가 오르는 등 추모열기가 뜨겁다.시진핑은 1982년 3월 중앙부처에서 허베이성 쩡띵현으로 내려가 부서기 직을 수행하게 됐다. 그때 쟈따산은 현 문화관 직원이었다. 쟈따산 소설의 애독자였던 시진핑은 쩡띵에 부임되어 간 뒤 어느 겨울날 황혼 무렵에 쟈따산의 집을 방문했다. 두 사람은 비록 나이가 열 살이나 차이가 났지만 첫 만남부터 오랜 지기처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우정은 1985년 5월 시진핑이 쩡띵현을 떠날 때까지 지속됐으며 이별을 앞둔 마지막 만남에서는 서로 아쉬운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그 3년 동안 두 사람은 때로는 쟈따산의 집에서 때로는 시진핑의 숙소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늘 밤중에서야 헤어지곤 했다. 심지어 몇 번은 새벽 두세 시가 되어서야 이야기를 끝내기도 했다. 그때마다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을 집까지 배웅해 줬는데, 쟈따산이 시진핑의 숙소에까지 배웅을 해주는 날이면, 대문을 걸어 잠그고 잠든 경비원을 깨우지 않으려고 시진핑이 담장 밑에 쭈그려 앉으면 쟈따산이 그의 어깨를 딛고 담장을 뛰어넘어 대문을 열곤 했다. 그 기간에 쟈따산은 또 시진핑의 추천으로 쩡띵현 문화국 국장을 맡기도 했다.시진핑은 쩡띵현을 떠난 후에도 매년 쟈따산에게 연하장과 선물을 보냈고 가끔 편지를 주고받던 중, 1995년에 쟈따산이 식도암에 걸려 북경에서 수술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마침 북경에 출장 간 기회에 시간을 내서 병원을 찾아간 시진핑은 이별할 때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1997년 쟈따산이 세상을 뜨기 약 10일 전에 시진핑은 마지막으로 쩡띵현에 가서 쟈따산을 위문했는데 그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슬픈 눈물을 흘렸다. 시진핑의 요청으로 두 사람은 마지막 기념사진을 남겼다. 이 사진은 역시 쟈따산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과 함께 찍은 사진이기도 하다. 쟈따산의 단편소설들은 대부분 중국 문화대혁명(1966~1976)의 암울한 시기와 문화대혁명 직후 새로운 역사 시기를 배경으로 허베이성 농촌마을과 시장거리에서 벌어지는 일상과 인물들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혁명 공신인 시진핑의 아버지는 마오쩌둥이 주도한 문화대혁명의 피해자였고 덩샤오핑이 주도한 개혁개방의 동지였으며, 그가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내가 가장 주목하는 대목은 시골에 박혀 있는, 잘 팔리는 인기작가도 아닌, 그러나 더 사람다운 세상을 꿈꾸는 순정한 고뇌를 보듬고서 그 무게를 오롯이 감당해나가는 작가의 영혼과 진정한 친구가 되는 시진핑의 푸른 영혼, 숙소 경비원을 깨우지 않으려고 작가에게 자기 어깨를 내줘서 담장을 넘게 하는 시진핑의 푸른 영혼이다.중국 고위층의 부패와 투쟁하는 시진핑, 한국 대통령 박근혜를 보며 미소 짓는 시진핑, 일본 총리 아베 신조(安倍晋三)에게 시선을 주지 않으려는 시진핑. 이제 나는 그의 영혼에 인간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 아, 그리고, 아파트 경비원을 자살에 이르게 만드는 부자들만 따로 모아서 쟈따산과 시진핑의 저 담치기를 조곤조곤 들려주고 싶다.

2014-11-14

그 아우를 다시 만날 날이 언제 오려나

▲ 이대환 작가엊그제, 오랜만에 남북군사회담이 열렸다. 군사회담은 우리 정부가 이달 30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갖자고 제안한 남북고위급회담의 사전 정지작업일 거라는 시각이 유력하더니 어제는 평양 2인자 황병서의 `긴급 단독 회담` 소식이 알려졌다. 부디 남북고위급회담이 정례화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오늘 아침, 문득 나는 평양에서 사귄 그 아우를 그리워한다.벌써 십여 년 전 일이다. 2004년 여름인가 2005년 여름인가 냉큼 떠오르지 않을 만큼 긴 세월이 흘러갔다. 그해 여름에 평양, 삼지연, 백두산 천지, 묘향산에서 열린 5박6일 민족문학작가대회. 나는 남측 작가단 3조 심부름꾼(조장)이었다. 그때 3조 버스 뒷자리에는 북한의 깡마른 남성이 앉았다. 성은 김(), 김일성대학 정치경제과 졸업, 삼십대 중반. 아마도 김은 보위부 소속이었을 것이다.우선 나는 김의 살벌한 눈빛이 싫었다. 깡마른 체구가 마치 먹이를 노리는 괭이 같은 눈빛을 발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는 만경대(김일성 생가)에서 일차로 세게 부닥쳤다. 내가 생가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어슬렁어슬렁 배회하며 담배나 뻑뻑 빨아댔으니 안내(감시) 책임자로서는 이만저만 속이 끓지 않았을 터. 그날 저녁에 북측 안내원들이 총화를 열고 나에게 경고를 보내왔지만, 작가들은 미리 신변안전보장을 받고 있었으니 김과 나는 닷새 내내 불편한 사이로 지내게 되었다.방북 닷새째, 작별 만찬. 남북 작가들끼리 만남인데 내가 앉은 3번 둥근 테이블에 뜻밖에도 김이 출현했다. 바로 내 왼편 옆자리였다. 나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동무도 작가야?” 웬일로 김이 예쁘게 웃었다. “아닙네다. 지난 닷새 동안 미운 정 고운 정 많이 들었으니 끝까지 같이 지내면 좋지 않습네까?” 나는 동석을 허용하며 조건을 달았다. “좋아. 대신에 우리 둘은 무조건 `쭉 내기`다. 됐어?” 북한 사람들은 `건배`를 `쭉 낸다`고 했다. “좋습네다.”김과 나는 곧바로 평양 소주를 건배로 마셔대기 시작했다. 오직 둘만 떠들어댔다. 나는 북한 작가들에게 주려고 가져간 저서들 중에 박태준 평전을 그에게 선물했다. “북측에서는 남침을 부인하지만, 이 책에는 인민군이 거의 부산까지 밀고 왔다가 미군한테 쫓겨서 청진까지 밀려가는 얘기도 나오는데, 그거 시비 걸지 말고 그냥 봐. 북측이 일본에게 식민지배상금 받으려고 하잖아? 그거 돈으로 안 주는데, 그거 받아서 전깃줄부터 싹 다 갈아치우고, 발전소 만들고, 도로 철도 항만 새로 만들어야 돼. 그런 공부가 이 책 속에 다 있어. 박태준 선생을 신의주특구 지도자로 모신다는 뉴스가 나온 적도 있었는데, 만약 그분이 생전에 평양을 공식 방문하게 되면 내가 대변인으로 수행할 거니까 그날이 오면 내가 평양 와서 너를 찾으마. 기다려 봐”우리는 소주 서너 병을 안주도 거의 안 먹고 빈속으로 끊임없이 `쭉 내기`를 해댔다. 나보다 먼저 취한 김이 문득 자기 왼편의 남측 작가를 쳐다보며 털어놓았다. “저는 이대환 선생님이 굉장히 질이 나쁜 사람인 줄 알고 있었는데, 아주 좋은 사람이란 걸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네다” 이때 내가 김의 어깨를 툭 쳤다. “헤이, 우리 의형제 하기로 하자” “좋습네다”우리는 굳센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 내가 외치듯 말했다. “남쪽에서는 의형제를 맺으면 형이 아우에게 이놈, 임마,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동무, 아니 임마, 다시 쭈욱 내자” 우리는 의형제 기념으로 여러 잔 더 건배를 했다. 별안간 내 목소리가 좀 젖었다.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나겠나? 통일은 못 해도 남북 자유왕래가 허용되는 날이 오면, 그날 내가 반드시 아우를 내 고향 포항으로 초대할 거다. 임마, 포항에는 제철소도 있고 포항공과대학도 있는데, 특히 회가 좋고 술이 좋다. 영일만도 아름답고 일출도 멋져. 그날까지 건강해라”이것이 김과 나의 마지막 대화였다. 아니, 주변인들이 싸움 났다고 오해할 정도로 더 큰 소리로, 더 시끄럽게 떠들었다. 그러나 기억이 없다. 드디어 김도 나도 필름이 끊어졌던 것이다. 남북교류사에 북한 보위부 요원을 엉망으로 나가떨어지게 만든 `초유의 대취 화해 사건`이라는 뒷얘기를 남긴 그해 여름의 평양. 어느덧 얼굴마저 감감한 그 아우를 언제쯤 포항으로 초대할 수 있으려나.

2014-10-17

국회의원의 수준인가, 포항시민의 수준인가

▲ 이대환 작가“밤늦게 죄송합니다. 오늘 이병석 의원께서 배포한 보도자료 보셨지요. 내년 남북구 심지어 울릉도 독도 예산까지 혼자 다한 것처럼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기재위에 있는 제가 허수아비입니까. 한마디 의논도 없이 이런 식의 내년도 예산 보도자료 내면서 남구의 박 의원과 함께했다는 일언반구도 없이 정말 이건 아니네요. 어안이 벙벙합니다. 자료를 받아본 기자들이 오히려 박명재와 같이 했다고 고쳐 보도한다고 들었습니다.(중략) 누구보다 기재부 부총리 차관 예산실장 예산국장 과장 접촉하면서 가장 예산 확보에 애쓰는 사람이 저입니다. 그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색을 내고 싶더라도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어이가 없어 글 보냅니다. 정말 국회부의장까지 한 4선 의원으로 너무 하네요”인용한 글은 지난 5일 밤에 새누리당 박명재 의원(포항 남·울릉)이 기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다. SNS 세상이니 사이버세계를 기웃거리지 않는 나에게도 스며들었다.관련 기사를 뒤져보니 박 의원이 7일 새벽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은 스스로 자랑하면 빛이 바래고 혼자 독점하면 적이 생기고 공이 세상을 뒤덮으면 목숨이 위태롭다`라는 글도 올렸다고 한다. 초등학생들의 치열한 다툼 같은 장면에 뜬금없이 중국 어떤 고전에 새로 등재해도 될성부른 가르침 한 수가 등장한 것처럼 보인다.박 의원이 그토록 발끈한 발단은 그의 장문 문자메시지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대체 4선까지 지내고 있는 이병석 의원이 어떤 보도자료를 배포했을까? 관련 기사들이 잘 보여준다.지난 5일 포항 북구가 지역구인 이병석 의원이 `포항 내년 국비 1조6천억원, 사상최대`란 보도자료에서 “지역의 국비 예산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게 된 것은 지역발전을 뜨겁게 염원하는 포항시민들의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환태평양 중심도시로 도약할 수 있도록 포항시민 여러분과 함께 더 열심히 뛰겠다”고 밝혔다. 이 내용만 보면, 이병석 의원은 열심히 뛰었는데, 박명재 의원은 갑자기 발병이 났는지 아니면 발이 부르트도록 뛰었는지를 알아차릴 재간이 없다. 그러니까 박 의원은 기자에게 보낸 저 문자메시지로 이 의원의 보도자료를 반박했던 것이다.이병석 의원이 `사상최대`라 자랑한 그 국비 예산에도 `포항과 관련이 깊고 다른 지역들과도 관련이 깊은 국가적 SOC 예산`이 압도적이다. 동해중부선(포항~삼척) 4천540억원, 동해남부선(울산~포항) 3천762억원, 울산-포항 고속도로 1천357억원, 포항~영덕 고속도로 150억원 등이 그러하다. 1조6천억원 중 거의 1조원에 가깝다. 그나마 현재는 `정부안`일 뿐이다. 국회에 넘겨지면 야당에게 무슨 트집을 잡혀 얼마나 깎일지 모르는 단계다. 그리고 동해중부선 하나만 봐도 포항의 두 국회의원만 뛰어다닐 사안이 아니다. 영덕 울진의 강석호 의원이나 그 위쪽의 강원도 의원도 열심히 뛰어다녔을 것이다.개인적인 마음을 드러내자면, 이 지면의 필자로서 나는 세계와 남북관계와 국가적 현안에 대한 사유를 내놓고 고향(포항)사람들과 소통하는 기회로 삼으려 한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고향(포항) 문제를 피하려 해서 `포항소재문학상 폐지와 한흑구문학상 제정`만 다뤘던 것 같다.그런데 고향의 두 의원이 철부지처럼 공(功)다툼 하는 모습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포항 국회의원이 포항시민의 의식수준을 초등학생 수준으로 여기거나 60년대 70년대의 수준으로 얕보지 않는 다음에야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을 이 부끄러운 사건에 대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두 의원 중 누가 더 잘못이 큰가에 대한 판단은 시민 개개인의 몫이지만, 더 근본적인 책임은 포항시민의 것이다. 국회의원이 없는 자리에선 험담을 퍼부어도 막상 그 앞에서는 대단한 권세가와 만난 듯이 손바닥을 부비며 웃음이나 팔아대고 있으니….어제가 한글날이었다. 훈민정음 창제에는 `어리석은 백성`을 사랑하는 세종의 정신이 담겼지만 요즘 그런 백성은 없고 시민과 언론이 국회의원을 계도하는 세상이니, 진짜로 정치를 하겠다면 이제라도 `세종 리더십`은 공부해야 한다.

2014-10-10

`박근혜 외교`는 언제쯤 적(敵)과 대화하나?

▲ 이대환 작가·계간 문학지 `ASIA` 발행인요즘 한국에는 `적`인 듯 느껴지나 적이 아니어야 하고 적이 아니기도 한 상대가 최소 둘이다. 북한과 일본이다. 한국이 군사적으로 북한을 `주적`으로 삼고 있으며 상황을 두루 살펴볼 때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북한은 우리 겨레로서 평화통일의 파트너이니 궁극에는 사이좋은 형제가 되어야 한다. 일본은 어느 면으로 따지든 서로 좋게 지내야하는 이웃나라이니 적이 되어서도 안 되고 적으로 삼아서도 안된다.그러나 `박근혜 외교`에게 평양 정권은 현실적으로 적과 다름없어 보이고 도쿄 정권은 정서적으로 적과 다름없어 보인다. `박근혜 외교`는 아마도 `원칙`이 제일 장점일 것이다. 특히 그것은 `개성공단 정상화 힘겨루기`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다. 발리 APEC정상회의 때 아베를 외면한 것도 국민정서상 괜찮은 효과를 얻었다. 그러나 무릇 장점은 단점을 내포하기 마련이다.고대 인도의 경전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죽음의 신(神)이 “죽음이 뭐냐”고 묻는 아이에게 동전을 손바닥에 올려놓게 하고는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했던 그 가르침에 기댄다면, 인간의 성격에서 장점과 단점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박근혜 외교`의 그 원칙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뛰어난 장점이라 해도 원칙이 지나치면 유연성과 상상력이 빈약해지기 마련이다. 유연성과 상상력이 빈약하면 `적`과의 외교에서 심각한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 덕담외교, 통상외교, 경협외교, 동맹(안보)외교 등은 모두 `적`이 아닌 `친구`와의 관계다. 그동안 `박근혜 외교`는 친구와의 관계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집권 후반기를 앞둔 `박근혜 외교`는 장점이 단점으로 미끄러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지난 14일 한국 외교장관과 주한 일본대사가 18개월 만에, 그나마 행사장에서 인사하는 사진이 일간지 머리를 장식했다. 그것이 나에게는 대화 예고로 들리기도 하고 `장점이 단점으로 미끄러질 경계지점`에 이르렀다는 경종으로 들리기도 했다. 재임 중 평양도 방문해 김정일과 만났던(2000년) 미국 최초 여성 국무장관 매를린 올브라이트, 이 비범하고 대범한 여성은 이렇게 일갈했다. “평화란 친구가 아닌 적과의 관계에서 이뤄지는 것이며, 외교란 적과 대화하는 일이다.” 지금쯤 `박근혜 외교`가 곰곰이 헤아려야 할 말이 아닐까?중국 시진핑에게도 엿볼 것이 있다. 시진핑은 일본 아베와 늘 으르렁거린다. 전쟁불사도 외쳤다. 대문을 꽁꽁 잠근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샛길로 나가는 뒷문을 열어뒀다. 비밀리 특사를 아베에게 보냈고, 베이징에서 직접 후쿠다 전 일본 총리와 만나 화해를 의논했고, 외교부장이 미얀마에서 일본 외무상과 만나게 했다.문제는 이제부터다. `세월호 특별법`이 꼬였든 풀리든 드디어 `박근혜 외교`가 적이 되어서는 안 되는 적(평양 정권), 적이 아닌 적(도쿄 정권)과의 관계에서 `대화 외교`를 복원해야 한다. 뒷문의 샛길도 쓰며 대로(大路)로 나가야 한다. 국가이익, 국민행복이라는 대의(大義)가 `박근혜 외교`의 원칙에 유연성과 상상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상대를 탓하는 것`은 여기까지다. 더 이상은 국민의 귀에 `장점이 단점으로 미끄러진다는 경고음`으로 들릴 것이다.다행히 무대는 마련된다. 장날로 말하면 한가위 대목장보다 더 큰 장터가 마련된다. 뉴욕의 유엔. 오는 23일부터 반기문 사무총장이 주관하는 `유엔기후정상회의`가 유엔에서 열린다. 193개 회원국 정상들이 여러 수행원들과 참석한다. 기후라는 주제를 초월한 대규모 정상회의와 외교 각축장인지 모른다.아주 오랜만에 북한의 외무상(리수용)이 유엔에 등장한다. 아베 총리와 외무상이 부지런히 움직일 테고, 물론 박근혜 대통령과 외교장관의 일정도 빡빡할 것이다. 부디 이번 기회는 `박근혜 외교`가 적이 되어서는 안 되는 적, 적이 아닌 적과의 대화를 시작하여 평화의 대로로 나가는 길목이 되기를, 나는 염원한다.

2014-09-19

`6자회담`의 목적을 고칠 수 없나?

▲ 이대환 작가·계간 문예지 `ASIA`발행인염천 무더위에 북한 정권은 미사일과 방사포를 쏘아대는 재미에 빠진 듯하다. 그 뉴스를 접할 때마다 필자는 평양의 누군가가 `6자회담? 좋아하네`라며 비웃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어쩌면 그럴 만도 하다. 미국과 중국이 마치 먼지를 덮어쓴 게임도구를 가끔 건드려보듯이 `6자회담 재개`를 `편리한 외교적 수사(修辭)`로 써먹지만, 대다수 한국인은 6자회담이 언제부터인가 있으나마나 `국제회담`으로 전락했다고 여긴다. 6자회담은 그 명칭에 명시된 목적부터가 틀려먹은 것이라는 내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북한 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의 비핵화 실현을 위한 다자(多者)회담, 이것이 이른바 6자회담이다.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6개국의 차관급이 실무대표로 참여한다. 1차 회의는 2003년 8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다. 그때 한국은 출범 6개월의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의욕에 충만해 있었다. 대통령 탄핵은 이듬해 봄날의 사건이었던 것이다.역사적 상상력의 빈곤이었을까. 국제적 이해관계의 덫에 걸렸을까. 그래서 말문이 막혔던 것이었을까? 한국은 `북한 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의 비핵화 실현을 위한`이라는 목적을 명시한 명칭에 동의했다. 마지못해 동의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그때 `6자회담` 앞에는 `한반도의 평화체제 정착을 위한`이라는 목적을 붙였어야 `옳은 것`이고 `좋은 것`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럴 경우에는 북한과 미국만 마주앉아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보겠다는 북한의 전술에 말려드는 것 아니냐? 휴전협정에는 한국이 없고 러시아와 일본도 서명하지 않았으니 6자 중 3자는 그 회담 참여에 대한 자격미달이 아니냐? 이러한 반문들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견에 불과하다. `평화체제`의 하위개념과 하위수단의 목록들 중에 `휴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북한 핵 문제`와 `한반도의 비핵화`도 사실은 남북평화체제 정착을 위한 하위개념과 하위수단에 위치해야 합당한 것이다.그런데 2007년 여름 베이징의 4차 6자회담이 공동성명에다 아예 까먹은 것 같았던 `한반도 영구 평화체제`라는 말을 담았다. 제4항(평화체제 협상)에 `직접 당사자들은 한반도의 영구 평화체제를 위한 협상을 별도의 포럼을 통해 하기로 했음`이라고 밝혔던 것이다. 별도의 포럼을 통해 한반도의 영구 평화체제를 위한 협상을 하기로 한다? 이것은 참으로 불쾌하고 졸렬하다.왜 그럴까? 단적으로 말해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등 4자 모두가 한반도 분단체제 고착의 직접적 당사자들이요 역사적 책임자들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분단의 근원은 누가 뭐래도 일본의 식민지지배이다. 2차 세계대전 후 지구적 냉전체제가 한반도의 허리를 칼로 두부 베듯 자를 때 미국과 러시아(옛 소련)는 실질적 집행자였다. 중국은 6·25전쟁 참전으로 한반도의 `잔인한 재분단`을 결정했다.그들 4자를 한자리에 모아둔 한국과 북한이 하나의 목소리로 한반도 분단에 대한 윤리적 시대적 책임의식을 촉구하지(북한은 중국에게 침묵하고) 못한 것은 우리 민족이 드러낸 실력의 한계였다고 할지언정, 한국만이라도 시대적 진실과 역사적 상상력에 의존하여 그들 4자에게 책임의식을 자극하며 `한반도 영구 평화체제를 위한 6자회담`을 고집했어야 옳았다. 더구나 2003년 8월이면 김대중-김정일의 `6·15선언`이 서울 권력과 평양 권력 사이에 `우리 민족끼리`의 대화들을 어느 때보다 편하게 왕래시키고 있지 않았던가!현실적으로도 `북한 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의 비핵화 실현`은 남북관계의 이슈인 동시에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의 패권관계와 직결된 이슈다. 이것은 한국(또는 남북)이 시대적 진실이나 역사적 상상력과 더불어 핵 문제를 `평화체제`의 하위개념 및 하위수단에 위치시킬 전략의 중대한 근거다. “좋다. 핵을 다루자. 그러나 평화체제 밑에서 다루자” 이렇게 나갔어야 했다.지금도 너무 늦진 않았다. 오래 흐지부지할 때가 새 기회다. 논리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한국과 우리 민족이 그들 4자보다 압도적 우위에 있다. 언제까지 이것을 버려둘 것인가.

2014-07-25

`북한의 개방체제 연착륙`이 최고 전략이다

▲ 이대환 작가·계간 문예지 `ASIA`발행인국가미래전략에서 남북관계의 최고 전략은 무엇인가? 아마도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통일대박론`에 담겼을 것이다. 통일은 대박이다. 그러나 `전쟁통일`은 쪽박이다. `민주주의와 인권과 시장경제의 평화통일`이 대박이다. 그 대박의 `필요충분조건`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서 `남북관계의 최고 전략`이 나온다.올해 5월에 포항공과대학교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가 저명한 교수들을 대상으로 `미래전략연구 주제선정의 우선순위` 설문조사를 해보았다. 미래사회의 윤리, 21세기 동북아 공존공영의 리더십 등 20개 주제가 넘었는데 최우선에 뽑힌 것이 `북한의 개방체제 연착륙 방안 연구`였다. 제안자로서 나는 지식사회의 폭넓은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현재 남북관계는 세계사에 유례없이 특수하고 불안정하고 위험하다. 이 난제를 풀어나가는 한국의 최정점과 최전선에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그래서 한국의 전략은 곧 대통령의 확신과 직결된다. 과연 대통령은 어떤 확신을 품고 있는가? 참모들은 어떤 조언을 하고 있는가? 엊그제 출범한 통일준비위원회는 어떤 묘안을 내놓을 것인가?대북관계는 크게 두 축이다. 안보와 외교, 경제와 문화다. 튼튼한 안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박근혜 17개월`의 대북관계는 유난히 `안보`만 돋보였다. 외교적 유연성을 보기 어려웠고, 물처럼 흐르는 성질이 가장 강한 경제와 문화는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드레스덴 구상`이 훌륭해도 평양과의 상관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북한의 개방체제 연착륙 성공`이 이뤄지지 않으면 대박 통일로 가기 위한 필요충분의 조건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정부의 남북관계 최고 전략은 마땅히 `북한이 개방체제 연착륙에 성공할 수 있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모든 수단과 방법을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바탕이 `튼튼한 안보`지만, 그것만 돋보이는 상황에서는 다른 수많은 수단과 방법이 무용지물처럼 버려질 수 있다.세계의 교류에는 아이러니하게 전쟁이 큰 역할을 했지만, 전쟁을 빼고 나면, 무릇 세계의 교류란 `먼저 돈이 길을 열고 그 길을 따라 문화가 간다.` 나는 작가지만 그것을 인정한다. 남북관계에도 특별히 뾰족한 수가 없을 것이다. 전쟁 예방의 안보 능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경제의 작은 물길들을 열고 문화가 따라가야 한다. 그러나 천안함 폭침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등장한 5·24조치는 그 물길을 죄다 틀어막았다. 한국기업이 중국 안의 한국기업을 통해 북한에 하청을 주던 생산방식마저 막아버렸다. 중국기업이 북한에 하청을 주고 북한이 가공한 상품을 한국인이 `중국산`이라 여기며 소비하는 실정이다. 경제의 작은 물길들이 막히니 문화의 작은 물길들도 막혀야 했다. 강물이든 대하(大河)든 작은 물길들이 어우러진 현상이고 실체이다.외교문제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 유연성의 부족이나 결핍을 주장하고 있다. 6자회담은 방치된 것이나 진배없는 상태다. 이 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은 따로 밝히겠지만, 6자회담에 명시된 그 목적과 명칭을 이제라도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을 위한 6자회담`으로 고쳐야 한다고, 한국정부가 주장해야 한다. 왜냐하면 `북한 핵 문제와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을 위한 하위 문제요 수단일 뿐만 아니라, 평화체제야말로 북한을 개방체제로 유도하고 개방체제에 연착륙시킬 수 있는 최적의 정치적, 외교적, 군사적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정권 출범부터 통일준비위원회 출범까지 박 대통령은 인사의 참담한 실패를 거듭해왔다.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사고의 변화를 요구하면서 비서실장에게도 싸늘하고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는 가운데 통일준비의 대표 얼굴들을 보게 되었다. 비서실장이 그렇듯, 그들은 한국에서 경륜이 높다. 그러나 장점이 곧잘 단점으로 둔갑하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다. 그들은 대체로 역사적 상상력이 부족해지는 연령을 살고 있지 않는가. 상상력의 부족은 창의적인 도전을 가로막지 않는가. 이런 염려를 나는 해보고 있다.

2014-07-18

포항소재문학상 폐지, 한흑구문학상 제정

▲ 이대환 작가·계간 문학지 `ASIA`발행인포항시는 세금 3천만원의 포항소재문학상을 폐지해야 옳다. 공모를 주관해본 나는 벌써 3년 전 `폐지와 대안`을 포항시에 제의했다. 대안은 그 예산으로 한흑구문학상을 제정하자는 것. 포항시의 반응이 좋았으나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새 시장이 취임하고 새 의회가 구성될 지금이 다시 공론할 적기다. 왜 `폐지`해야 하는가? 포항사랑 선양과 포항스토리텔링 찾기라는 취지가 무색해졌다. 뛰어난 작품이 응모되지 않았다. 특히 단편소설에는 여태껏 하나도 없었다. 수준 낮은 응모작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나마 수준을 좀 갖춘 것들은 대체로 `상금 사냥꾼` 냄새를 물씬 풍겼다.상금도 터무니없이 많아졌다. 어떤 문학인의 한심한 아이디어였을까? 지난해 제5회에는 갑자기 `대상 1천만원`이 생겼다. 시, 단편소설, 수필에 각각 최우수작, 우수작들을 뽑고 그들 중 최고에게 대상을 준다는 것. 신인 공모에서 시나 수필이 아무리 뛰어나도 한 편에 1천만원을 줄 수는 없다. 단편소설 말인가? 한국 최고 권위 신춘문예의 단편소설 당선작이 상금 700만원이다. 포항소재문학상에 뽑힌 단편소설에는 신춘문예의 예심 통과조차 어려워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동네잔치`니까 잣대를 낮췄던 것인데, 대상 1천만원이라? 헛된 허영이고 낭비다.그것은 매우 부끄러운 소동도 일으켰다. 소설에서 대상을 줘야 하고, 첫 대상이니 꼭 줘야만 계속 예산을 받게 된다는 강박증에 눌렸는지 몰라도, 심사위원들(포항에 사는 시인들, 아동문학가, 수필가로 구성)이 소설 부문의 입상 후보작들 중 하나를 놓고 대상으로 뽑자는 데 성급히 합의하고, 그들이 잘 아는 응모자에게 성급히 통지하고 말았다. 나는 한 걸음 늦게 심사위원 자격을 받았다. 기대를 걸고 `1천만원짜리`라는 소설을 정독했다. 정신이 아찔했다. 아직 좋은 소설이 되지 못한 여러 문제점들을 안고 있었다. 재심회의가 열렸다. 통지가 번복됐다.주관측의 잘못에 크게 상처를 입은 응모자가 조용히 있었겠는가? 어떤 인터넷 카페가 달포쯤 지저분하게 와글와글했다. 회장이 `책임 사퇴서`까지 냈으나 잘못한 심사위원들은 끝내 진상조차 밝히지 않았다. 하나의 사건이었다. 일일이 못된 버릇을 고쳐주자면 오늘이라도 `허위사실 유포의 명예훼손 피고소인`으로 대접할 수 있지만, 나는 `동네의 작은 일이어도 작가로서 문학의 명예를 지켰으니`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냥 덮어둘 따름이다.3년 전에 내가 포항문협 회장으로서 포항시에 `폐지와 대안`을 제의했을 때는 포항문협이 엄정한 관리의 적임자가 아니라는 점도 깨닫고 있었다. 제5회의 번복 통지는 그것을 명백히 드러냈다. 광범한 홍보에도 포항문협은 적임자가 아니다. 지역언론사가 주관해야 옳다. 그러나 근본적인 개선은 폐지 및 한흑구문학상 제정이다.한흑구가 누구인가? 포항 최초 근대적 지식인, 전국적 문학인이었다. 1920년대 미국 유학을 거쳐 1930년대 제일 왕성한 영문학 번역가였다.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시, 소설, 평론, 수필을 썼다. 단 한 줄의 친일문장도 쓰지 않았다. 신간회 활동으로 항일의 옥고를 겪었다. 문학인 한흑구의 선구적 지성과 활약을 기리기 위한 문학상이 마땅히 포항에 있어야 한다.예산이 문제다. 포항소재문학상을 폐지하고 그 예산으로 운영하면 된다. 포항에는 한흑구를 존중하는 기업인들도 있다. 포항시가 기본예산을 확보해주면 해마다 기금을 보태겠다는 기업인이 나에게 연락도 해왔다. 그러나 한흑구문학상은 지역언론사가 주관해야 옳다. 울산의 `오영수문학상`이 좋은 본보기다.문학단체가 진정한 문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작가가 뛰어난 작품을 쓰지 않으면 아무리 문학단체가 여럿이고 회원들이 넘쳐나도 진정한 문학은 없다. 새 시장, 새 의회가 바르게 문학을 응원하고 싶다면, 포항소재문학상 예산으로 한흑구문학상을 제정해야 옳다. 이것은 쉬운 일이다. 진짜 문제는 새 권력에 줄을 대서 마치 이권사업 하듯이 반대할 목소리들이다. 낡아빠진 그 `비정상`은 품위 갖춘 공론으로 혁파하면 된다.

2014-06-20

302명 부활은 302개 개혁으로!

▲ 이대환 작가·계간 문학지 `ASIA` 발행인다시 지방선거를 잘 마친 대한민국은 세계선거관리협의회(A-WEB, 2013년 창립) 초대 의장국이다. 투표마감 직후부터 거의 완벽하게 집계하는 전자개표기, 이것이 그 영광의 힘이다. 2012년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평가에도 대한민국은 167개국 중 20위를 차지해 `완전민주주의`에 들었다. 일본(23위), 대만(35위)보다 앞섰다. 대한민국이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룩한 나라들의 모임인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가입한 때는 1995년이었다. 박정희 통치 18년 동안에 마치 역사의 동일한 무대에서 공존할 수 없는 모순관계처럼 극렬히 상충했던 산업화와 민주화가 실상은 상보(相補)관계였다는 사실이 그때 드디어 세계적 안목에서 인정됐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인정`이 아니었다는 점도 증명해 보였다. 경제는 IMF사태를 극복하고 세계 10위 수준이다. 1997년 12월과 2007년 12월, 대립적 정치세력이 선거로써 평화적 정권교체를 해서 민주주의 공고화 기준(two-turnover test)을 통과하고 선진형 민주주의에 진입했다.2014년 봄날에 대한민국의 자존심과 자신감은 문화(한류)를 타고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북한문제(남북분단)를 거대한 짐으로 짊어졌어도 누구든 `감당할 수 없다`는 비관이나 절망에 빠지지는 않았다.그러한 어느 날 느닷없이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꽃다운 청춘들, 갖가지 사연을 간직한 사람들 302명이 수장됐다. 그리고 두 달, 한국은 상중(喪中)이었다.유병언 일가의 추악하고 음습한 몰골이 낱낱이 드러났다. 관피아들의 문어발 빨대들이 해부됐다. 총리, 내각, 청와대 참모들이 바뀐다. 그리고 국가대개조….그럼에도 많은 국민은 여전히 가슴이 허전하다. 남달리 예민해서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개혁의 구체성을 실감하지 못하는 불안과 불만도 그이들의 가슴을 자극할 것이다.나는 주장한다. 우리의 누적해온 부정부패가 302명을 수장시켰으니 최소한 302개 개혁안의 실현을 통해 모든 희생자들의 목숨을 역사 속에 영원히 부활시켜야 한다는 것을! `세월호 참사 302개 개혁위원회`를 2년 기한으로 신설하고, 실행 책임자 302명을 임명하고, 언론과 시민대표가 수시로 점검하고, 최종 보고와 확인을 거친 대통령이 임무완수를 승인하는 그 특별기구 신설을, 나는 제안한다. 대통령, 총리 집무실에는 302개 개혁안의 실행진도를 알려주는 막대그래프가 붙어야 하고, 그것이 가끔 302명의 부활사진처럼 언론에 나와야 한다는 것을, 나는 역설한다.302개 개혁안이 엄청 많아 보여도 관피아 혁파, 유병언류 혁파만 해도 100개로는 부족할 것이다. 국회 혁파에도 30개쯤은 필요하다. 비겁한 지식인들의 비겁한 작태를 예방하는 일에도 상당수가 들어간다. 그러나 시스템을 뜯어고치는 개혁만으로는 사회를 바꿀 수 없다. 문제는 인간의 정신이요 윤리다. 정신과 윤리의 수준이라 할 개인의 가치관, 그 가치관의 총체라 할 당대의 문화적 수준이 문제의 근원이다.그러므로 302개 중 100개는 `물신(物神)`을 다스릴 각종 부적을 만들기 위한 디자인과 재단(裁斷)에 사용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후 종교 지도자들이 한국인의 가치관을 지배하며 한국사회를 억압하는 `물신`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정신적 가치, 윤리적 가치, 문화적 가치의 회복과 융성을 강조했다. 지당한 말씀들이었다. 다만, 그분들의 종교계에도 `규모의 경제`라는 물신적 경쟁에 몰입한 작태가 포항 등 전국 각처에서 끊임없이 출현하고 있으니 가슴 아픈 현상이다. 이 혁파를 위해서도 20개 이상은 써야 할 것이다.대한민국이 경제와 민주주의의 수준에 걸맞은 사회로 거듭나는 길은 세월호 희생자 302명을 역사에 부활시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국가대개조의 길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302개 구체적 개혁안으로 응답해야 한다. 한국 국회, 한국 정부, 대통령, 그리고 한국사회는.

2014-06-13

베르사유조약과 히틀러를 생각한 아침

▲ 이대환 작가·`ASIA` 발행인1933년 독일 총선에서 히틀러의 나치당은 제1당으로 등극했다.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히틀러를 수상에 임명했다. 많은 유럽인이 문제의 콧수염 남자를 주목했다. “히틀러가 독일 지도자가 됐으니 머잖아 필연적으로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히틀러는 평화를 역설했다. “평화 없이는 독일이 살아갈 수 없다” 프랑스에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평화를 원하는 유럽에서 베르사유조약이 독일의 목을 죄고 있으니 평화를 지켜야 하는 거지”베르사유조약이 독일의 목을 죄고 있다는 주장은 틀리지 않았다. 1918년 1차 대전이 끝난 뒤 1919년 베르사유궁전에서 태어난 그것은 `평화조약`이면서 독일을 꽁꽁 조여 매는 사슬이었다. 전쟁배상, 군대제한, 영토축소, 해외식민지 포기 등을 담고 있었다.`전쟁 배상금`은 전후 독일인의 삶을 곤궁 속으로 몰아넣고 독일경제에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요구했다. 하지만 프랑스가 히틀러의 `평화 공세`에 안도할 때는 `군대 제한`에 더 기댔을 것이다. 독일은 공군을 가질 수 없다. 육군 10만을 넘을 수 없다. 탱크를 가질 수 없다. 이러니 베르사유조약이 건재하면 프랑스는 독일 군대에 대한 염려를 놓아도 좋았다.베르사유조약 14년 만에 독일 대중이 메시아처럼 환영한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 인간은 개인이든 집단이든 자신을 옥죄는 사슬을 싫어한다. 그것에 저항한다. 벗어나려고 한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히틀러는 그 본성을 정치적 변혁의 역동성으로 재창조하는 정치공학 방면에서 놀라운 천재성을 발휘했다. 베르사유조약의 사슬에서 벗어나자. 이것이 히틀러에게는 중요한 국내 지지 기반이었다.히틀러는 공군을 원했다. 민간항공기 개발을 명분 삼아 비행기를 생산했다. 기관총만 장착하면 전투기로 바뀌는 비행기들이었다. 조종사도 훈련시켰다. 육군이 10만 이하에 묶여 있으니 나치 완장을 두른 청소년단을 대대적으로 조직해 군대식 훈련을 시켰다.1935년 3월 드디어 히틀러는 마각을 드러냈다. “베르사유조약에 규정된 공군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파기한다” 프랑스와 유럽 각국이 시끄러웠다. “쳐들어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프랑스 평화주의자들이 막아섰다. 독일이 비행기 몇 대 있다고 뭘 하겠느냐는 것이었다. 프랑스의 행정부, 의회, 학계에는 평화주의자들이 넘쳐났다. 어쩌면 그들은 레마르크의 장편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 펼쳐진 그 끔찍한 전쟁의 트라우마에 몸서리치고 있었을 것이다. 일주일 뒤, 히틀러는 육군 제한 규정도 철폐한다고 선언했다. 프랑스 군부가 들끓었으나 이번에도 평화주의자들이 그들을 무마시켰다.1936년 3월, 히틀러는 크게 한 걸음을 더 나갔다. `라인강 서남쪽에 있는 독일 영토에 독일군은 프랑스 영토를 통과해 1명도 들어갈 수 없다`라는 베르사유조약의 규정을 무시하고 독일군 1개 대대를 진주시킨다고 선언했다. 프랑스 군부가 이번에는 당장 쳐들어가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비겁한 평화`를 애호하는 평화주의자들이 쓸데없는 걱정이라며 주저앉혔다.그로부터 3년 동안 히틀러는 최강 군대를 육성했다. 1939년 9월 어마어마한 기갑부대를 앞세워 폴란드를 침공했다. 폴란드의 40만 군대는 2주 만에 항복했다. 그리고 히틀러는 프랑스로 쳐들어가 2달 만에 끝장을 보았다.영국 처칠이 회고록에 썼다. “2차 대전은 우리가 막을 수 있는 불필요한 전쟁이었다. 만약에 우리가 전쟁을 하겠다는 결심만 하고 그 결심을 히틀러에게 정확하게 통보만 했어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전쟁이었다” 이 후회는 정곡을 찌른 것이었다. “라인강 서남쪽에 독일군 1개 대대를 진주시킨다는 선언을 해놓고 프랑스 군대가 쳐들어올까 해서 48시간 동안 자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했다” 이 회고를 남긴 인간은 바로 히틀러였다.한국이 한 달째 세월호 참사를 감당하는 지난 15일, 일본 아베가 미국 오바마에 기대어 `집단자위권 행사`를 선언하고, 중국 시진핑과 러시아 푸틴은 포옹을 준비했다. 그날 아침, 나는 베르사유조약과 히틀러를 생각했다.

2014-05-23

우리의 폭력들을 생각한다

▲ 이대환 작가·`ASIA` 발행인생존의 기본조건은 폭력이다. 동물의 세계가 그렇다. `먹이`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 먹이를 구하는 일, 이것은 반드시 타자(他者)에 대한 폭력을 수반한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생존의 기본조건은 절대적 폭력이다. 호랑이는 토끼라도 잡아먹어야 한다. 독수리는 들쥐라도 잡아먹어야 한다. 토끼는 하다못해 토끼풀이라도 뜯어먹어야 한다. 들쥐는 감자라도 갉아먹어야 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생존하기 위해 짐승이라는 타자들에게 끊임없이 폭력을 가해야만 한다. 제아무리 채식주의자라도 `생존의 기본조건은 절대적 폭력`이라는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날 뾰족한 방책이 없다. 식물의 목숨이라도 앗아야만 하는 것이다.그러나 짐승과 인간은 다르다. 생존을 위한 폭력 행사에 있어서 짐승이 인간보다 훨씬 더 윤리적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짐승은 생존을 위한 본능의 수준에서 폭력을 멈출 줄 안다는 뜻이다. 가령, 최상위 포식자인 사자나 호랑이를 보라. 일단 배를 채우고 나면, 즉 생존을 위한 폭력을 행사하고 나면, 바로 눈앞에 통통한 영양이 낮잠을 자고 있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이래서 인간이 짐승들에게 대단히 그럴싸한 말을 선사했다. 먹이사슬의 법칙, 약육강식, 자연의 섭리 등이 그것이다. 철학자나 과학자, 문학인이나 종교인이 `생존의 기본조건은 절대적 폭력`이라는 말이 너무 끔찍하게 들리기 때문에 그러한 수사적(修辭的) 명명(命名)을 개발한 것이다.인간은 어떠한가? 일단 배를 채우고 나면 눈앞에 군침 돌게 만드는 먹잇감이 있어도 더 먹으려고 덤벼들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가 흔하다. 이 지점에서는 아주 엄격하게 육체적 생존과 경제적 생존으로 구분할 수 있다.육체적 생존을 위한 폭력 행사에 있어서는 인간도 `자연의 섭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재벌 총수라 해봤자 하루 세 끼밖에 더 먹겠느냐. 이 말은 그래서 생겨났다. 빌 게이츠도 하루 세 끼밖에는 못 먹을 것이다. 더 먹고 싶어도 위장병이나 체중초과의 각종 성인병이 염려되어 반드시 참을 것이다.인간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경제적 생존이다. `경제`라는 고상한 말 대신에 그저 쉽게 `돈`이라고 하자. 돈에 대한 허기는 생존을 초월한다. 그것은 인간의 탐욕을 부추긴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 인간의 탐욕,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탐욕. 생존하고 또 생존할 수 있어도 더 챙겨야 하는 먹잇감, 이것이 인간의 돈이다.물론 탐욕은 경제적 동력이다. 탐욕이 강해야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이것이 탐욕의 긍정적 측면이다. 그러나 탐욕은 사회적 질서와 안녕을 파괴한다. 그래서 숱한 법률이 만들어지고, 그것을 집행할 권력기관이 탄생했다. 법치주의란 말이 거창해 보여도 그 바탕에는 인간의 탐욕을 믿지 못하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세월호 참사`의 슬픔을 이제는 가슴의 무덤으로 간직하면서, 그것은 생존 본능의 수준을 훨씬 초과한 우리의 폭력에 대한 자화상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는 밑바닥을 드러냈건만 도무지 끝을 알 수 없는 그 탐욕의 먹이사슬은 어마어마한 폭력이다. `자연의 법칙`을 무시하고 파괴한 것이다.살생을 금기한 석가모니도 육체적 생존을 위한 운명적 폭력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야 했다. 곡식을 먹고 야채를 먹고 열매를 먹는 것도 `만유일체`의 눈으로 보면 폭력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지만 그쯤의 폭력은 윤회의 쳇바퀴를 돌리는 최소한의 에너지라고 깨달았는지 모른다.그러나 우리의 일상에는 부질없는 폭력들이 난무한다.손톱 같은 이익에 대롱대롱 매달려 송사(訟事)를 남발한다. 크게 잘못된 일을 지적해줘도 자기 자존심만 내세워 사과할 줄 모를 뿐만 아니라 도리어 성을 내고, 뒤에서 험담한다. 재바른 손가락으로 사이버 공간을 욕설로 도배한다. 진정한 신뢰가 무엇인가를 고민하지 않기 때문에 인생의 그 아름다운 가치를 추구하기는커녕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선거판에는 여전히 돈과 거짓말이 위력을 발휘한다. 시대적 사명의식을 거론하면 `그게 돈 생기는 일이냐?`며 힐난하고…. 이런 것들이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착각한 행동들이 `자연의 법칙`을 파괴하는 폭력들이고, 이 폭력들이 뒤엉켜 제2의 `세월호 참사`를 예비하는 것이다.

2014-05-09

평전 `박태준`, 드라마 `불꽃 속으로`

▲ 이대환 작가·계간 문학지 `ASIA` 발행인2010년 1월27일 저녁, 베트남 하노이의 하노이대우호텔. 내가 쓴 평전 `박태준`의 베트남어판 `철의 사나이 박태준`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베트남 정관계, 재계, 학계의 실력자들과 주베트남 한국대사를 비롯한 현지 한국인들이 대거 가득 모였다. 나는 순차통역의 `저자 인사`를 이렇게 했다.“한국에서는 제법 유명한 말인데, 저는`58개띠`입니다. 한국전쟁 후 베이비붐 세대지요. 고향 마을은 바로 포스코의 포항제철소가 들어선 곳입니다. 그 마을을 열 살 때 떠나야 했습니다. 포스코 때문이었지요. 그때 어른들은 스스로를 `철거민`이라 불렀습니다. 그 말은 고향을 상실하는 쓸쓸함과 뿔뿔이 흩어지는 서러움을 담았습니다. 원망과 저항의 감정도 묻었을 겁니다. 마을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규모였을 고아원이 있었습니다. 벽안의 프랑스 신부가 이끄는 예수성심회의 백오십여 수녀들이 전쟁의 폐허와 절대적 빈곤이 양산한 고아들 500여 명을 돌보았던 겁니다. 암수 두 그루 커다란 은행나무가 정문을 지켜주는 아담한 성당에서는 일요일마다 청아한 성가가 울려 나왔지만, 마을 분교(分校)에는 교실이 두 칸밖에 없어서 1, 2, 3, 4학년을 이부제로 쪼개야 했습니다. 저의 짝꿍도 고아였습니다. 헤어진 뒤로 다시는 만나지 못했습니다.어른들이 낡은 트럭에 남루한 이삿짐을 싣는 즈음, 마을에는 `제선공장`, `제강공장`, `열연공장`이라는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저게 뭐지? 저는 그저 시큰둥하게 허공의 그것들을 노려보았습니다. 그런데 아주 나중에 듣게 됐지만, 제가 태어난 이듬해 12월24일, 그러니까 1959년 크리스마스이브, 런던 거리에는 크리스마스트리들이 찬란히 반짝이고 구세주 찬미의 노래들이 넘쳐났을 그날, 영국 BBC가 `a far Cry`라는 4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고 합니다. 런던에서는 머나먼 한국, 그 `머나먼 울음`은 굶주리고 헐벗은 한국 아이들의 비참한 실상을 보여주는 것이었지요. 그 아이들이 바로 저와 친구들이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면 눈물 없이는 보지 못했을 그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 아이들에게 희망은 있는가?`, 이것이었습니다. 그 절망적이었던 질문에 대한 답변의 하나로서, 쉰 살을 넘어선 제가 보시다시피 조금 살진 얼굴에 점잖은 신사복을 입고 여기에 서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제가 고향을 떠날 무렵에 나부끼고 있었던 포스코의 깃발들이 한국의 희망이요 저희 세대의 희망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이십 년쯤 지난 뒤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서른아홉 살에 박태준 선생과 처음 만나게 됐고, 2004년 12월에 한국어판 `박태준` 평전을 펴냈습니다. 그 책은 2005년에 중국어로 번역 출판됐고, 오늘 이렇게 베트남어판이 나왔습니다. 작가가 왜 전기문학을 써야 할까요? 전기문학은 왜 있어야 할까요?고난의 시대는 영웅을 창조하고, 영웅은 역사의 지평을 개척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얼굴과 체온을 상실한 영웅은 청동이나 대리석으로 빚은 우상처럼 공적(功績)의 표상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 쓸쓸한 그의 운명을 막아내려는 길목을 지키는 일, 그를 인간의 이름으로 불러내서 인간으로 읽어내고 드디어 그가 인간의 이름으로 살아가게 하는 일, 이것이 전기문학의 중요한 존재 이유의 하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저는 아무리 긴 세월이 흐르더라도 저의 주인공이 어떤 탁월한 위업을 남긴 인물로만 기억되는 것을 강력히 거부합니다. 그의 고뇌, 그의 정신, 그의 투쟁이 반드시 함께 기억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가장 저명한 인물인 박정희 대통령과 저의 주인공이 국가적 대의와 시대적 사명 앞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는지, 서로 얼마나 완전하게 신뢰했는지, 또 그것이 정신적으로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의 가치인지를 반드시 함께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국가, 민족, 시대라는 거대한 짐을 짊어지고 필생을 완주한 인물에 대한 동시대인과 후세의 기본예의라고 확신합니다”평전 `박태준`을 피할 수 없는 드라마 `불꽃 속으로`가 18일부터 TV조선에서 방영된다. 드라마니까 허구를 피할 수 없다. 다만, 1959년 영국 BBC가 던진 그 마지막 질문에 대한 진실의 대답만은 결코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2014-04-11

그리운 스승, 구상(具常) 시인

▲ 이대환 작가·계간 문학지 `ASIA` 발행인대학 3년(1979), 나는 혼자서 한강으로 나가곤 했다. 술을 마시거나 강가를 따라 걸으며 시를 쓰는 청춘의 한 절기가 비틀비틀 지나가고 있었다. 한번은 오지게 오줌을 갈기고 `방뇨`란 시를 썼다. “해맑은 가을 한낮/한강에 오줌을 갈기노니/일 주일 뒤 내 생일 아침/하숙집 식탁에 오를 숭늉이어/제발 내 오줌이길 비노라/아니면 오줌이어/목쉬고 캄캄한 강물의 노래에 스몄다가/저 노래들이 먼 바다에 모여/기어이/검은 바위로 솟아오를 때/새똥에 섞여온/풀씨 한 톨 뿌리 내릴/옥토 한 줌을 일구어다오”며칠 뒤에는 광화문에서 엉망으로 취했다. 길거리 고성방가와 방뇨…. 파출소에 끌려갔다. 취중기세는 더 부풀었다. 유신독재를 비방했다. “오, 묘한 액체여, 기고만장한 허세여, 비겁하고 남루한 용기여, 그러나 술병의 주둥이 같은 숨구멍이여!”보잘것없는 사건이 어떻게 구상(1919~2004) 선생의 귀에 들어갔을까. 아마도 지도교수의 이름을 대라는 경찰의 요구에 내가 당신의 존함과 댁 전화번호를 불렀을 것이다.고교 시절의 나는, 시(詩)란 마침내 도달해야 하는 신묘한 성(城)처럼 저 아득한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것이 휘청거리는 걸음을 지탱해주는 힘이었다. 그 청년이 간신히 대학의 문지방을 넘어서자 보듬어준 스승이 구상 시인이었다. 시 쓰는 청년시절을 나는 누에처럼 당신의 섶에서 뒹굴었다고, 지금 고백해도 거짓이 섞이진 않겠다.짧은 동안 광화문 귀퉁이를 휘저은 그 밤, 나는 종로경찰서 둥근 유치장에 갇힌 다음에야 갈증을 느꼈다. 물론 즉결재판소로 넘겨졌을 때는 정신이 초롱초롱했다. 잡동사니 사내들 틈바구니에 끼여 대기실에 앉아 있다가 문득 내 이름을 들었다.“판사하고도 토의를 했어. 오해는 없을 거다” 구상 선생이 지갑을 꺼냈다. “사식이 필요할 거다” 말씀과 지폐 석 장을 나는 받았다. 스승의 사랑이 온몸에 전율을 일으킨 순간, 인사도 안 받고 돌아서서 걸어가는 당신을 내가 큰 소리로 불렀다. “선생님, 이거요. 한번 봐 주십시오” 내가 당신에게 건넨 것은 빌린 볼펜과 종이로 쓴 시 한 편이었다. 아주 뒷날에 당신은 이 장면을 두고 `이대환은 천성의 시인`이라 썼다.유치장에서 엿새를 더 보낸 나는 충남 공주의 친구(요절한 정영상 시인) 자취방으로 내려가 며칠을 퍼마시며 놀았다. 자금은 당신의 돈이었다. 유치장에서 사식은 한 끼도 먹지 않았던 것이다. 서울로 돌아와서야 알게 된 사연이지만, 구상 선생은 내가 종로경찰서로 넘겨진 그 밤에 이른바 `시국사범`으로 오인되지 않도록 하려고 치안의 고위와 긴 통화도 했다.그해가 저물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 당한 한국사회는 혼란에 빠져 있어도 문학청년에겐 신춘문예 절기였다. 나는 서울 일간지에 시를 응모했다. “오뚝이를 바라보면 도립의 욕망이 끓어오르고/내가 물구나무를 서 있는 것처럼/똑바로 선 그가 불안하고 힘겨워 보인다” 이것이 내 회심작의 첫 연이었다. 고향집으로 전보가 오지 않았다. 새해 첫 신문을 살폈다. 내 회심작은 최후 두 편에 거론됐다. 심사위원은 구상 시인과 김구용 시인이었다.새봄에 구상 선생이 나를 학과 사무실로 불렀다. 시큰둥해 있는 제자에게 당신이 따뜻하게 말했다. “김구용 시인이 둘 중에 나이가 훨씬 더 많은 쪽을 주자고 해서 대환이는 미뤄야 했어. 너무 일찍 데뷔해도 좋을 게 없어” 나는 꾸벅 절을 올리고 돌아섰다. 이미 내가 장편소설을 현상공모에 던진 뒤였다. 신춘문예에 낙방하고 열을 받아서 겨울방학 두 달 동안 수험생처럼 덤벼들어 두툼한 대학노트를 깨알 글씨로 가득 채웠던 것이다. 그 작품이 4월에 당선 전보로 돌아왔다. 졸지에 나는 `소설가`가 돼 버렸다. 마침 내 안에는 `작가와 시대`에 대한 작가의식의 맹아(萌芽)가 돋아난 참이었는데, 내 삶은 겨우 스물두 살이었다.박정희 대통령의 오랜 술친구인 구상 시인. 5·16 직후엔 국가재건최고회의 상임고문을 마다했고 뒷날에는 장관직도 사양했으나, 그가 무참히 세상을 떠나자 추모시를 바쳤고 “독재자에게 시를 바치다니”라는 돌멩이들에도 “친구니까”라며 웃어넘긴 구상 시인. 오늘, 그 스승이 몹시 그립다.

2014-03-21

아베, 일본의 새벽인가 황혼인가

▲ 이대환 작가·계간 문학지 `ASIA` 발행인“일본은 현재 황혼이 아니라 새로운 새벽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개혁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기득권으로 단단하게 굳은 바위를 뚫는 강력한 드릴 역할을 할 각오가 돼 있습니다”이 당당한 목소리는 올해 1월23일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행한 기조연설에 포함돼 있었다. 아베는 일본의 새로운 새벽을 열고 있는가, 일본의 더 어두운 황혼을 불러들이고 있는가?아베가 `기득권의 바위를 뚫는 강력한 드릴`이 되겠다는 것은 일본 경제시스템을 확실히 개혁하겠으니 세계 자본가들은 주저 없이 일본에 투자하라는 유혹이었다. 실제로 전력시장 자유화, 지주회사 체제의 대규모 의료기관 설립, 민간 연구기관의 줄기세포 연구 지원, 농작물(쌀) 정책의 시장화, 환태평양전략적경제동반자협정(TPP) 및 유럽연합과의 경제동반자협정 적극 추진 등 경제개혁의 목록을 자랑스레 열거하기도 했다.아베는 과거사 문제로 특히 동북아에서 망나니 같은 문제아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경제에 승부처를 두고 있다. 아베노믹스란 말이 귀에 익었을 정도다. 아베노믹스의 화살은 3개다. 대담한 양적완화정책, 기동적인 재정정책, 민간투자를 불러일으키는 성장정책을 가리킨다. 3개의 화살을 따로 쏘지 않고 한 묶음으로 쏘아댄다. 그것들이 일본 경제의 심장에 꽂힐지 모른다는 일각의 우려와 비관적 전망이 없진 않으나, 엔저 효과와 주가급등으로 정권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가운데,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는 대승을 거두어 안정과반수 의석을 차지했다.한국이 아베노믹스에서 가장 예민한 것은 양적완화에 의한 엔저 지속이다. 철강산업만 보아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일본 철강업계가 치열한 생존 투쟁을 전개하고 있던 2012년 일본 4대 제철소인 신일본제철과 스미모토금속(제철소)이 통합한 신일철주금(NSSMC)이 출범했다. NSSMC는 2013년 경영 실적이 큰 폭으로 개선된다. 전년 대비 매출액이 1조2천억엔 증가하고, 영업이익이 3천100억엔(약 3조1천40억원) 증가했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해온 포스코와의 수익성 격차가 사라지고 시가총액에서 포스코를 추월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엔저 효과였다. 물론, 같은 기간에 포스코는 국내적으로만 보아도 현대제철에게 전통의 고객들(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을 넘겨주고 있었다.경제에 우선적으로 집중하는 아베의 전략은 실패 경험에서 나온 것 같다.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후계자로 총리직에 올랐으나 경제를 후순위로 여기며 애국주의적 교육에 치중한 결과 1년 만에 물러나야 했던 것이다.한국과 중국 국민은 아베노믹스에는 관심이 적은 편이다. 아베의 과거사 인식과 언행에 는 참을 수 없는 분노의 관심을 기울인다. 가령, 아베노믹스가 성공하여 아베 정권이 국내적 지지 기반 위에서 헌법 제9조를 개헌하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확보하게 된다고 하자. 그러나 그때도 과거사 문제에 대해 최소한 무라야마 담화, 고노 담화조차 승계하지 않으면 아베는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협하는 문제아 신세에서 벗어날 수 없다.왜 아베는 과거사 문제에서 메르켈 독일 총리와 정반대의 길을 달려가는 것인가? 일본의 잘못된 우익세력이 지지해 주니까 야스쿠니신사 참배 같은 언행을 국내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나는 아베의 이념적 정체성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고 판단한다. 침략의 과거사를 인정하면 아시아 근대화의 선구자로서 대동아공영을 추구했던 일본의 위대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아베는 확신하는 일본인이다. 경제적으로는 현실주의자지만 이념적으로는 원리주의자로 보인다.모든 원리주의는 위험하다. 그것은 화해를 거부하고 평화를 파괴한다. 설령 아베노믹스가 일본 경제의 새로운 새벽을 연다고 해도 일본 국민이 경제 효과에 취하여 아베의 그 원리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면 일본은 황혼의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2014-03-07

자본주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 이대환 작가·계간 `ASIA` 발행인설밑에 다보스 포럼이 열렸다. `1% 세계인 2천500명`이 모였다. 박근혜 대통령, 아베 총리가 연설을 했다. 누가 더 잘했을까 따위는 부질없는 궁금증이다. 자국(自國)의 경제정책 홍보에 열중했던 것이다. 자본주의의 원초적 문제를 그 화려한 무대에 올려놓은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었다. “인간은 부를 창조해야 하지만 부에 의해 지배돼서는 안 된다. 부의 불평등으로 인해 고통받는 가난한 사람들을 구해내야 한다. 평등에 대한 요구는 경제성장보다 더 중요하며, 인류 최상의 비전이다. 더 평등한 분배, 더 나은 고용과 복지를 위한 결의, 체제와 과정이 필요하다”자본주의, 어디서 왔는가? 교황의 메시지에 답이 있다. `부(富)의 창조`에서 왔다. 인간사회에서 부를 창조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과 제도가 시장(市場)이다. 그래서 인류는 시장경제를 끝없이 키우고 있다. 자유무역협정도 시장경제를 더 키워가는 글로벌 자본주의체제의 수단이자 제도일 따름이다.자본주의, 어디로 가는가? 교황의 메시지에 답이 있다. 인간이 부에 의해 지배되지 않으면서 `인류 최상의 비전`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여기서 질문은 `자본주의,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고 수정되어 마땅하다. 어떤 강제력이 자본주의의 운전대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목적지는 `체제`다. `결의`만으로는 미흡하니까 `체제`를 갖춰야 한다. `인류 최상의 비전`이 `체제`와 직결된 것이 아니라면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바이블`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진기록은 세워질 수 없었을 것이다.한국의 설 연휴 동안, 오바마 대통령이 국정연설을 했다. “최상층에 있는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잘살고 있지만 미국 근로자의 평균임금은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불평등의 골은 깊어지고 상황 이동은 멈춰 섰다” 상황 이동이란 한국에서 말하는 신분 상승, 계층 이동이다. 그래서 오바마는 남은 임기 중에 `기회의 사다리`를 재건할 것이며, 의회가 협조하지 않으면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발동하겠다고 했다. 교황이 다보스에 보낸 메시지가 희미한 메아리로 워싱턴에 깃든 것 같았다.오바마는 교황의 `체제`야 꿈도 못 꾸지만 작은 `결의`라도 행동할 태세다. 그럴 수밖에 없어 보인다. 2009년~2010년 미국이 2.3%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는데, 그때 99%의 미국인은 소득이 0.2%만 증가한 반면에 최상위 1%는 소득이 11.6%나 증가했다. 이것은 `20 대 80`이 아니라 `1 대 99`의 체제로 굳어지고 있다는 숨기지 못할 증거다.슈퍼리치(Super Rich, 대갑부)가 지배하는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이것이 불평등의 실상이며 자본주의 위기론의 실체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다보스 메시지가 21세기 인류의 양심에 깊은 공명(共鳴)을 일으킨다.자본주의, 어디로 가야 하는가? 기회균등은 기본조건에 불과하다. 세습과 경쟁의 결과물인 불평등을 최소화할 `체제`에 도달하기 위해 공동체적인 결의와 행동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는 애덤 스미스와 카를 마르크스가 종종 참고인으로 불려나올 테지만, 만약 현재의 불평등체제가 악화되어 99% 대다수가 `자본주의는 진화해왔듯이 앞으로도 진화할 것`이라는 믿음을 팽개치는 경우에는 영원히 역사관에 박제돼야 할 `피의 혁명`이 다시 심장을 장착할 수도 있다. 이것은 `똑똑한` 슈퍼리치들이 잘 아는 역사의 원리다. 사회적 존재, 정치적 존재로서는 스티브 잡스보다 훨씬 더 똑똑해 보이는 빌 게이츠의 `친절한 자본주의`도 저주 받은 `피의 혁명`을 미리미리 예방하자는 전략적 사고를 담았을 것이다.슈퍼리치들이 잘 모르는 것은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는 소박한 허무주의고, 그들에게 너무 부족한 것은 `인간은 지구의 하숙생에 불과하다`라는 소박한 허무주의적 감성이다. 인간은 윤리적 이성의 힘으로 엔간히 욕망을 다스리긴 하지만,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이 소박한 허무주의가 사실은 욕망을 길들이는 윤리의식의 뿌리인 것이다.

2014-02-14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마라톤

▲ 이대환 작가·계간 `ASIA` 발행인박근혜 정부의 특별 심벌은 `비정상의 정상화`다. 비정상이란 잘못된 관행과 잘못된 시스템이다. 잘못된 관행의 첫 자리를 부정부패가 차지한다. 잘못된 시스템이 그것을 감추고 부추긴다. 부패척결 없이 정상화는 없다. 부패척결은 정상화의 강력한 동력이다. 세계의 모든 정상인을 경악시킨 `한국의 원전 비리`가 웅변한 사실이다. 부정부패를 척결하면서 잘못된 시스템을 뜯어고치는 정치적 행위를 흔히 `개혁`이라 부른다. 이 간편한 말을 왜 버렸을까. 말이 주는 피로감을 줄여 보려는 아이디어가 조금 시적(詩的)인 작명을 낳았을 것이다. 1987년 이래 모든 정권이 한국인의 귀에 대못처럼 박아준 말이 개혁이다. 하지만 실망감이나 배반감이 귓병을 일으켰다.중국 정부도 부패척결을 개혁의 강력한 동력으로 활용한다.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행한 주룽지(朱鎔基)가 상하이 당서기와 국무원 부총리를 거쳐 총리에 오른 것은 1998년 3월이었다. 그는 장쩌민(江澤民)의 지원 속에서 반부패 투쟁을 밀어붙였다. 투쟁이란 말에 그의 의지가 보디빌더의 근육처럼 드러난다. 그것은 국유기업 개혁, 금융 개혁, 정부 규제 철폐라는 개혁의 동력이기도 했다. 그때 국유기업 개혁만으로도 약 5천만명(한국 총인구와 맞먹음)이 실직하거나 재배치되었다.주룽지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부패관리가 아닌 청렴한 관리로 기억되는 것”이라 했다. 정치적 제스처가 아니었다. 그는 단호했다. “관을 100개 준비하라. 그 중 하나는 내 것이다” 이 말에 주룽지의 개혁을 성공시킨 비결이 있다. 두 가지다. 하나는 자기가 부패에 연루되면 자기 목숨을 내놓겠다는 비장한 결의와 기개이고, 또 하나는 그것이 인민의 가슴속에서 공감을 일으키게 만든 청렴이다.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 이들 정권의 공통점은 불행히도 날이 갈수록 부패에 깊이 연루돼 개혁의 동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기세 좋게 막을 올렸던 김영삼 정부의 `사정(査定)`이 어떻게 막을 내렸는가? 이명박 정부의 개혁은 또 어떻게 되었는가? 2009년 3월, 나는 “이명박 대통령의 불행은 어떤 말을 해도 국민의 가슴에 감동을 일으킬 수 없는 것”이라 했다. 청렴을 잃으면 결의와 기개는 시드는 법이다.시진핑(習近平)의 중국 정부는 `개혁의 전면적 심화`를 선언했다. 국가와 사회의 시스템을 좀 더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겠다는 것이다. 정치개혁의 느린 속도는 민주투사들의 저항을 부르겠지만, 시진핑의 개혁 드라이브에도 부패척결이 강력한 동력이다. 부패와의 전쟁을 외치고 있다. 고위 당정 간부의 부정부패를 방지하고 그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이중지도`를 `단일지도`로 고치겠다는 뜻도 내비친다. 어떤 문제에 대해 기율심사위원회와 공산당위원회가 함께 지도(指導)해온 제도를 기율심사위원회의 단일지도로 바꾸어서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려는 것이다.과연 박근혜 정부가 `비정상의 정상화`에 도달할 수 있을까? 주룽지의 성공사례는 청렴과 기개의 중요성을 일러준다. 반면교사는 한국의 역대 정권이다. 성공사례도 있고 반면교사도 있지만, 비정상의 정상화는 시대적 거사(擧事)다. 부정부패는 고질적이고 집단이기주의는 악착같으며, 정파적 이념적 대립이 시스템 뜯어고치기를 가로막는 것이다.한국사회는 비정상의 정상화에 도달해야 마침내 압축성장과 변혁운동의 기나긴 후유증을 벗어날 수 있다. 마라톤의 길이다. 완주할 동력이 충분해야 한다. 대통령의 청렴과 기개만으로는 부족하다. 시민적 덕성이 함께 달리고 응원하고 생수도 준비해야 한다. 시민적 덕성은 개인의 자문(自問)에서 태어나고 자라난다. 삶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진지한 자문이 절실하다. 나는 프랑스 작가 볼테르의 원칙을 되새겨 본다. `소름 끼치는 것들(부조리)을 박살내라. 관용하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라`

2014-02-07

라틴 다리, 센카쿠 열도

▲ 이대환 작가라틴 다리(Latin Bridge)와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두 이름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지리적 거리도 아주 멀다. 라틴 다리는 발칸반도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 있고, 중국명이 괄호 속에 따라붙는 센카쿠 열도는 동중국해에 있다. 그러나 2014년은 제1차 세계대전 100주년이라는 사실이 두 이름에게 새해의 짝짓기를 시키고 있다. 물론 그것은 동북아의 위험한 전선에 대한 강력한 경고이다. 100년 전 라틴 다리에서 일어났던 `필연을 위한 우연`이 올해 동중국해의 바위덩어리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법칙이 우리 시대에 존재하는가?20세기 벽두, 세르비아는 보스니아를 먹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1908년 중부유럽 절대강자 오스트리아 제국이 보스니아를 무력으로 합병해 버렸다.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은 복수의 총구를 닦기 시작했다. 비밀결사조직 흑수단(Black Hand)도 조직했다. 드디어 때가 왔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 제국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황태자비 소피아가 점령국 현지 민심을 살핀다며 사라예보를 방문한 것이다. 의전은 요란했다. 역에서 시청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였다.그 거리에서 흑수단 요원들이 황태자를 노렸다. 거사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첫 번째 암살요원은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서 황태자 일행이 지나갈 때 감히 총을 꺼내지도 못했다. 두 번째 암살요원은 간신히 용기를 내서 수류탄을 던졌지만 황태자의 뒤를 따르는 차 앞에서 폭발했다. 목표물은 멀쩡하고 수행원만 스무 명쯤 다쳤다.반전(反轉)의 주인공은 황태자였다. 인간미를 뽐내려는 황태자의 돌출행동이었다. 환영식 중에 그가 부상당한 사람들을 위로하겠다며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짧은 동안 `전하`의 주위에는 감동의 전류가 강하게 흘렀을 것이다. 어쩌면 대참화의 도화선에 `우연히 불을 붙인` 멍청이는 황태자도 아니고 그에게 총을 쏜 세르비아 청년도 아니었다. 황태자의 운전사였다. 멍청하게도 병원 가는 길을 잘못 들어선 운전사가 밀야츠카강 라틴 다리 앞에 차를 세웠다. 그 자리는 `시러 식품점(Schiller`s delicatessen)` 앞이기도 했다. 때마침 식품점에는 흑수단 요원 하나가 있었다. 스무 살의 대학생 가브릴로 프란치프. 요기를 하러 들른 그는 황태자 암살기도를 포기하고 있었다. 문득 젊은 식욕이 뜨거운 사명감으로 바뀌는 순간, 깜박 허기를 잊은 `피 끓는 민족주의 청년`의 총에 황태자 부부는 즉사했다. 도화선이 다 타는데는 한 달이 걸렸다. 발칸반도를 통째로 삼키려는 오스트리아 제국에게 황태자 부부는 희생양에 불과했다. 지중해 진출을 염원하는 러시아 제국은 발칸반도를 포기할 수 없었다. 오스트리아와 군사동맹을 맺은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가만있을 수 없었다. 러시아에게 복수하고 싶은 오스만튀르크(터키)에게는 발칸반도가 잃어버린 영토이기도 했다.9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1차 세계대전. 그 전쟁 100주년을 맞아 유럽 언론이나 지식사회는 참담하고 잔혹한 야만의 기억을 `유럽연합(EU)`이라는 거대한 연대의 보자기로 덮어버리고 동북아의 위험한 전선으로 시선을 모으는 듯하다. 과연 동중국해의 바위덩어리에서는 라틴 다리의 그 `기막힌 우연`이 발생할 수 없는 것일까? 여기서 우리가 통찰할 것은 동북아의 위험한 전선이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은 필연의 전쟁을 잉태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이다.센카쿠 열도에서 `라틴 다리의 우연`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중국군대나 일본군대의 `피 끓는 민족주의`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중국군대의 뜨거운 복수심과 일본군대의 뜨거운 자존심은 그 피를 펄펄 끓이는 중이다. 다만, 100년 전 발칸반도에 비해 동북아의 위험한 전선에는 아직까지 필연의 전쟁이 곧 홍수를 일으킬 먹구름으로 존재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소나기 먹구름은 형성돼 있다. 누군가 찰나의 실수로 당긴 민족주의의 방아쇠가 국지전을 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불행한 경우에는 100년 전보다 무기의 속도가 훨씬 빨라졌듯이 그만큼 빨라진 강대국 지도자들 간 소통의 속도가 확전 예방의 둑이 되겠지만, 조기 종전을 성사시키려면 쌍방 피해가 비슷해야 할 것이다.

2014-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