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우리 안의 불안과 탐색: 신종 바이러스의 위기와 안전망

대구와 경북 일부지역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서 3월의 중반이 지나갔다. 우리를 조이던 긴장의 끈이 아직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한풀 꺾인 확진자 수에 잠시 안도하다가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장기화될 것이라는 불투명한 전망과 불안은 다시금 우리의 덜미를 잡아챈다. 우울이 과거에 대한 반추와 관련되어 있다면 불안은 미래에 대한 예측과 관련되어 있다. 우울이 부정적 감정에도 불구하고 매우 현실주의적 시각일 수 있다는 역설을 가진 것처럼, 불안은 오늘을 감내하면서 미래를 예측하며 대비하는 추동력을 준다. 이는 위기 속에서 생존해온 종으로서 우리가 얻은 획득 형질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리고 이 불안의 감정은 일상이 멈춘 이질감 속에서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게 한다. 혼란스러운 일상의 정보를 조직하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탐색해 보는 것이다.코로나19로 인해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는 우리를 집이라는 물리적 테두리에 머물게 한다. 집안에 묶인 가족들은 온라인을 통해 생필품과 기호품을 구매하고, 변화된 일상의 하나는 문 앞에 놓일 배송물품을 그 어느 때보다 반갑게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는 하나의 뉴스를 발견한다. 12일 새벽, 안산의 한 배송 노동자가 계단에 쓰러진 채 사망한 것이다. 40대의 그는 입사 4주차로 시간에 쫓겨 쉬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참아가며 승강기도 없는 건물에서 배송 업무를 하던 중 쓰러졌다. 쌀과 물 등의 무거운 생필품 주문이 늘어나면서 폭증한 물량을 아침 7시까지 로켓 배송하려다가 과로와 스트레스로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문 앞에 놓인 물품을 보며 착잡한 마음을 접고 들어와 집안을 살펴보자. 변화들이 보인다. 특히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변화는 더욱 클 것이다. 어린이집도, 학교도, 학원도 가지 않는 아이들. 공교육과 사교육으로 늘 밖으로 나돌던 아이들의 동선이 집안으로 묶여진 것은 큰 변화 중의 하나일 것이다. 양육과 교육의 상당부분을 맡아오던 기관과 장소들이 문을 닫으면서 장시간 양육과 교육에 대한 책임이 고스란히 가정 내로 되돌아온 것이다. 이에 가족들이 직면한 어려움은 매우 현실적일 것일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집안에 묶인 학부모들의 심리적, 물리적, 경제적 어려움. 집집마다 전화를 걸어 아이들을 관리하려는 교사들의 바쁜 움직임과 온라인 학습을 독려하는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양육과 교육의 책임을 돌려받은 학부모들의 어려움은 적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맞벌이, 한 부모 가정을 비롯한 취약가정의 어려움은 클 수밖에 없다. 개학이 연기되면서 발생한 급식지원의 공백, 복지관과 지역아동센터의 휴관으로 인한 양육 공백과 식사를 제때 공급받기 어려워진 아동들의 현재 상황은 가족에게 재부과된 양육 기능의 기본적 작동에 난관이 있음을 보여준다.그러나 한 꺼풀만 벗겨보면 우리는 그간 우리가 간과해온 사실들을 깨닫게 된다. 먼저 폭주하는 배송물량에 쓰러진 그의 죽음은 갑작스런 것이 아니라 예기되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정규직, 노멀 비정규직, 라이트 비정규직, 플렉스와 프리맨에 이르기까지 고용의 불안정성을 극대화한 업무 구조는 그를 사람이 아닌 로켓 경쟁의 수단으로 보아왔고, 일을 시작한지 일주일 내에 90%가 그만둔다는 열악한 노동 조건은 그를 이미 오래 전부터 벼랑 끝으로 밀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또한, 전국 30만명을 넘는 결식위험아동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조금만 빗나가면 끼니를 챙길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을 그간 감내하며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었다. 오히려 신종 바이러스로 인한 일상의 변화가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낸 셈이다.뒤늦게나마 구멍 난 안전망을 메꾸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특별재난지역의 선포와 함께 실시되는 생계지원, 각종 감면 혜택, 그리고 전국의 취약가정을 대상으로 한 가족돌봄비용의 지급 등이 그것이다. 또한 배송 노동자의 죽음을 애도하고 잔인한 새벽 배송을 비판하며 ‘늦게 배송 와도 괜찮다’는 소비자들의 반성과 위로. 결식아동들의 안타까운 사정 앞에 자발적으로 출근해서 아이들을 챙기는 지역아동센터의 직원들. 성금을 모으고 도시락을 전달하는 이웃들의 진심어린 노력은 안전망이 뚫린 오늘의 위기를 극복할 우리의 잠재된 힘일 것이다.코로나19로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는 우리의 일상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일부의 변화는 바로 사라지겠지만, 일부의 변화는 흔적을 혹은 장기적 변화를 남길 것이다. 가령, 이제 집 앞에 놓일 배송물품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어떨까? 사태가 안정된 후에도 온라인을 통한 구매의 증가와 배송경쟁의 심화는 지속될 것이고, 이윤을 앞세우는 경쟁논리는 인간다운 노동조건에 대한 요구를 다시금 묵살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는 소비자로서 물건을 빨리 받고 싶은 욕구와 로켓 배송경쟁에서 희생될 배송 노동자의 노동조건 사이에서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다시금 선택을 내려야할 순간을 맞을지도 모른다.그리고 전염병에 의한 전 세계적 위기와 사회적 거리두기의 경험은 장기적으로 원격학습의 확대를 가져올 것임에 분명하다. 이에 학습동기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온라인 학습 콘텐츠의 개발과 보급은 교육계의 주요 과제가 될 것이다. 학습의 독려와 모니터링의 책임이 각 가정에게 맡겨지기에 돌봄이 가능한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 간의 차이는 큰 격차를 만들어낼 수 있고, 교육계는 이에 대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기적 변화보다 우려되는 흔적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코로나19로 봉쇄된 중국에서 가정폭력이 급증했던 사실을 간과하기 어렵다. 경제활동의 위축으로 인한 수입원의 감소, 그리고 집에 갇혀있는 시간이 길어질 때 가족 내 잠재적 갈등요인들은 폭력적 형태로 분출될 수 있다. 여기에 물리적, 사회적 약자인 아동·청소년은 무기력한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국내 아동학대 신고는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나 이는 국내 아동들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학교와 상담현장에서 실제 아동학대 사례들은 많은 경우 신고로 이어지지 않는다. 피해자가 경험하는 심리적 부담감, 보복에 대한 두려움, 신고자에게 가해졌던 공공연한 위협, 아동보호시설의 부족 등이 신고의무자들의 신고율을 높이는데 걸림돌로 작용해 온 것이다. 이를 입증하듯, 국내 신고의무자에 의한 신고율은 30%에 미치지 못한다. 또한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수의 증가와 함께 아동학대 확인사례 건수가 증가한다는 사실은 국내 아동학대실태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낳게 한다.격리된 집 안이 사적 공간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양육과 교육의 책임이 가족 내로 되돌려진 오늘의 일상에서 가족 내 폭력은 신고 되지 못하고 다시 조용히 묻힐 수 있다. 그러나 가정 내 폭력과 학대의 경험은 학교와 교실에서 아이들의 우울, 잦은 자해와 자살시도, 혹은 학교폭력의 형태로 치환되어 드러난다. 사적 공간의 폭력이 공적 공간에서 보다 파괴적 형태로 파급력을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정부와 사회의 안전망 확보를 위한 지원과 가정 내의 노력이 충분하지 않다면 그 흔적은 내일 우리에게 더욱 큰 비용을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김은영 경북대 교수

2020-03-18

우리 안의 불안과 흥분: 대구 경북 지역 코로나19의 너머에

한국인에게 종종 쏟아지는 ‘냄비’라는 비난은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차가워진다는 부정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삶의 전체를 뒤흔드는 외부 세계의 위기와 위기가 불러오는 불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 위기가 한풀 가라앉으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일상을 일구는 우리만의 강인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올해 설 명절을 전후로 시작된 코로나19의 위기는 하루가 지날수록 급박해진다. 잠시 진정되었나 싶었더니 대구와 청도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사회 감염 사례가 확산되었고, 이제 대구 경북지역은 코로나19 폭풍의 핵이 되어 일부 병원과 응급실들이 폐쇄되고 확진자의 동선을 따라 곳곳이 폐쇄되는 상황이 줄을 잇고 있다. 뉴스 특보의 바쁜 호흡만큼 이를 지켜보는 우리의 맥박도 빨라지는 것 같다. 상가 골목과 음식점에서는 손님들을 찾기 힘들고, 문을 닫은 곳 조차 많다. 생필품을 판매하는 슈퍼와 마트 또한 예외는 아니다. 슈퍼에 들어서면 전시된 상품들조차 여느 때와 다르다. 곳곳에 텅 빈 선반들이 눈에 띄고 수량을 제한하는 품목들도 보인다.마스크를 끼고 잔뜩 웅크린 채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며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에는 2020년 2월 오늘의 카랑카랑한 뉴스 특보가 불러일으키는 불안과 흥분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임에도, 혹은 이러한 상황이기에 더욱 거세지는 정쟁의 수위 높은 발언들과 대구 경북 봉쇄를 운운하는 누리꾼들의 발언들은 심장박동을 더욱 빠르게 몰아간다.아마도 우리는 흥분 중인 것 같다. 패닉(panic)이라는 용어 대신, 흥분(agitation)이라는 용어를 선택한 것은 이러한 불안과 흥분이 처음이거나 낯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글에서 수우족과 유록족의 비교를 통해 우리 사회가 개인 내면의 내적 질서보다는 세계의 외적 질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세’와 시류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능동적 행위자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근대로의 급격하고 비정한 변화, 그리고 아마도 그 이전의 시간과 또한 그 이후의 시간에도 경험해 온 크고 작은 침략과 삶의 터전을 뒤엎는 위기들. 이러한 격동에 대처해야 했던 경험들은 우리 유전자의 어디쯤에, 혹은 우리 교육과 양육방식의 어디쯤에 생존을 유지하고 적응을 용이하게 하는 급격한 흥분과 금새 잊고 돌아서서 다시금 삶을 시작하게 하는 습성을 남겨놓은 것 같다.한국인에게 종종 쏟아지는 ‘냄비’라는 비난은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차가워진다는 부정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삶의 전체를 뒤흔드는 외부 세계의 위기와 위기가 불러오는 불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 위기가 한풀 가라앉으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일상을 일구는 우리만의 강인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그런 의미에서 2020년 2월 코로나19의 위기가 가져오는 불안과 우리 안의 흥분은 결코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뉴스 특보를 집에서 혼자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뉴스를 모든 사람들과 함께 지켜보는 것 같다고 느끼는 착각 또한 착각이 아닐 것이다. 외부 세계의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우리의 이웃과 주변의 움직임에 민감한 속성. 이러한 특성이 집단주의라는 이름으로 정의될 수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각자가 가진 내적 질서만큼이나 우리를 둘러싼 집단의 움직임과 집단의 외적 질서가 커다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오늘 경험하는 흥분은 결코 개인주의적 흥분이 아니며, 집단적 형태의 그 무엇쯤으로 느껴지는 흥분이다. 그리고 이러한 집단적 대응이 가지는 신속함과 일사불란함 속에서 이번의 위기 또한 잘 헤치고 나갈 것이라는 믿음이 우리의 의식의 저변에 놓여 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더더욱 코로나19의 위기는 결코 패닉이 아닌 흥분으로 경험된다.불확실성이 확실성이 되어버린 현대 사회에서 우리 사회가 보여 온 놀라운 적응력과 대응력은 ‘냄비’와 ‘대세 추종’이라는 이름으로 비난받아온 우리 사회의 속성에 대해 다시금 들여다보게 한다. 쉽게 흥분하는 것은 결코 흠으로만 볼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쉽게 잊는 것 또한 결코 흠으로만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저 위기에 정신을 못 차릴 만큼 흥분만 했다면, 혹은 위기가 지난 후 과거를 까마득히 잊기만 했다면, 아마 우리의 역사는 오래 전에 명맥이 끊겼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점점 격해지는 정쟁의 듣기 거북한 목소리들과 봉쇄를 운운하는 논의들은 더욱 답답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소리들은 흥분이 아니고 패닉이다. 혹은 자신의 불안을 주체하지 못하고 외부로 공격성을 전환시키는, 혹은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는 집단적 공격성일 수 있다.학교의 교실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교실에서 집단 따돌림이나 학생들에 의한 집단적 교권 침해가 이루어지는 순간들은 종종 교실에서 팽배해진 불안들이 그 공격성을 누군가에게 돌렸을 때이다. 더욱 어이없는 상황은 그 피해자가 전학을 가거나 교직을 떠나면, 그 피해자를 대신하는 누군가가 다시금 들어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개입은 여러 가지 방향과 형태로 이루어진다. 개인적 접근을 우위로 할 수도 있고, 집단적 접근을 우위로 할 수도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에게 상담을 받게 하거나, 강력하게 반을 휘어잡는 교사를 투입하거나, 아이들이 공격성을 안전하게 배출할 수 있는 구조와 기회를 제공하거나, 사회적 기술 학습과 분노 조절 집단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등 말이다.학교 따돌림과 폭력에서 피해자가 다시금 생겨나는 기제와 이에 대한 개입의 방법들은 그 자체로 무언가의 의미를 던져준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피해자의 많은 경우는 집단의 희생양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의 아이들이 속한 교실과 학교는 이러한 희생양이 번번이 생겨날 만큼 가혹한 곳, 즉 녹녹한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학급에서 이러한 희생양은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아이들, 가령 사회적 기술이 부족한 아이, 발달이 늦은 아이, 혹은 다문화 아이가 되기도 한다.이야기를 다시 우리 사회로 돌려보자. 교실의 확대판인 우리의 사회는 쉽게 희생양을 만들어 우리의 불안과 공격성을 쏟아내는 속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위기와 불안에 직면하여 지역주의를 불러일으키고, 선정적인 정쟁의 발언을 쏟아내는 일부의 모습은 우리의 불안을 희생양에게 전가시키는 패닉의 공격성일지도 모른다.우리에게는 가진 것이 많다. 집단으로서의 신속함과 시간적 연속성 속에서 성장해 온 경험들과 수차례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온 힘이 있다. 경북지역의 대학과 초중고교는 모두 개강과 개학을 연기하였고, 아이들의 학원 또한 2월 말까지 휴업을 결정하였다. 폐쇄된 곳은 방역을 서두르고 있고, 문을 닫은 상가 또한 3월과 4월을 기약하고 있다. 우리는 위기 속에서 불안하고 흥분하면서도 일상으로의 귀환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봄을 예기할 수 있는 능력은 아마도 우리가 가진 소중한 자산일 것이다./김은영(경북대 교수)

2020-02-23

우리 안의 불안과 경쟁: 수우족과 유록족의 이야기(2)

앞선 글에서, 우리는 수우족의 관대함, 유록족의 정결과 절제라는 미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상이한 미덕의 저변에는 각기 다른 불안이 자리 잡고 있었다. 수우족의 불안은 무리로부터 낙오되는 것이었다. 가령 버팔로 떼나 적이 나타나면 그들은 서둘러 이동해야 했고, 그 때 마침 누군가가 산통 중이었다면 그 여성은 홀로 남아 아이를 출산하고는 서둘러 부족을 뒤따라가야 했다. 반면, 연어잡이 유록족에게 있어 가장 큰 불안은 연어 떼가 오지 않는 것이었다. 연어가 회귀하기까지 1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던 유록족은 그들의 일상을 정결과 절제라는 미덕을 중심으로 조직하였다.이 두 부족의 사례가 반드시 각각의 맥락 내에서 이해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잠시 불안이라는 심리적 기제에 한정하여 비교와 유형화라는 과감한 시도를 해보자. 의외의 시사점들이 발견된다. 먼저 우리 사회가 수우족과 유록족 중 어느 쪽과 더 닮아 있는지 질문해 보자.에릭슨이 수우족을 방문했을 때, 근대식 학교의 교사들은 아이들이 걸핏하면 결석하거나 일이 생기면 그냥 집으로 가버린다며 불평하였다. 수우족 아이들이 근대식 교육의 경쟁에 적응하지 못했던 사실은 쉽게 납득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유록족은 이미 소유와 근대적 화폐 개념을 가지고 있었고, 서부로 밀려드는 백인과 소유권 소송을 하고 있었다. 에릭슨의 기술 내에 유록족 아이들의 근대식 학교 적응에 대한 설명은 부재하지만, 그들의 양육에서 강조되었던 강박적 자기 절제 훈련이 근대 학교에서의 적응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였으리라는 추측은 합리적일 것이다.유록족의 강박적 절제는 연어 떼의 회귀에 대한 불안을 견디기 위해 환상과 환각을 일상화시키고, 이 환상을 통해 내면과 신체를 통제하는 과정의 산물이었다. 그들이 환각에서 연어를 보는 일은 연어가 현실에서 오는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즉 그들은 기다림의 시간에서 현실을 그들의 내면에 종속시켰던 것이다. 어찌 보면, 그들에게 연어는 열흘 동안만 현실일 뿐, 나머지는 모두 내면화된 연어였다. 그들은 각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자신만의 연어와 관계하고 있었고, 그들에게 부족이란 매우 느슨한 개념이었다. 그들은 철저히 개인주의자들이었고, 이들이 서구적 개인주의와 친화성을 가지리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환상과 내면화된 연어가 우리에게 비범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연어에 대한 반증일 수 있다.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근대식 학교와 경쟁에 적응할 수 없었던 수우족에게서 우리와의 기묘한 유사성을 발견하게 된다. 유록족의 불안이 개인과 개인의 내부에서 개별화된 세계와의 사이에 놓여 있었다면, 수우족의 불안은 개인과 자신을 두고 떠나는 부족과의 사이에 놓여 있었다. 수우족의 불안은 결코 내면으로만 향하도록 통제되지 않았다. 이는 유록족이 연어 떼를 기다려야만 하는 수동적인 행위자였던 반면, 수우족은 버팔로를 쫓아 사냥하는 능동적인 행위자라는 점에서도 차이를 찾아볼 수 있다. 능동적 행위자였던 수우족은 그들의 불안과 공포를 외부의 적을 향해 전환의 형태로 완화시킬 수 있었던 반면, 유록족은 그들의 불안을 내면으로 체화시켜야만 했던 것이다. 이러했기에 에릭슨은 짧은 관찰에서도 수우족이 어떻게 그들의 공격성을 분출시켰는지에 대해 기술할 수 있었다. 그의 관찰에 따르면, 3년에 달하는 긴 수유기간 동안 아이의 이가 나면서 발생하는 최초의 공격성은 어머니의 젖을 무는 행위가 처음 나타났을 때 아이의 이마를 세게 가격하는 것으로 억제되었고, 이 때 아이의 우렁찬 울음은 용맹한 전사와 사냥꾼의 자질로 격려되었다. 즉 아이들의 공격성은 유예되었고, 이후 사냥감과 외부의 적을 향한 용맹함으로 전환 분출되었던 것이다. 또한 양육과정에서 아이들은 형제들을 지켜봄으로써 배뇨와 배변훈련을 익혔고, 놀림과 수치심을 의식하면서 사회성을 습득하였다. 에릭슨은 이러한 방식으로 습득된 사회성이 버팔로 사냥에 필수적이었던 협력과 형제애의 토대와 맞물려 있었다고 추론한다. 다시 말해, 수우족은 그들의 확대가족과 무리로부터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이다.우리가 가진 교육열의 중심에는 타자와 이웃, 주위를 끊임없이 살피는 우리의 모습이 공존한다. ‘대세’라는 용어만큼 오늘의 우리사회를 보여주는 언어는 드물지도 모른다. 주위와 대세에 예민한 오늘의 모습은 우리가 겪어온 근대적 경험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근대화와 식민지 지배라는 험난한 시기를 거쳐 급격한 산업화의 역사에서 우리는 그 누구보다 능동적 행위자로 적응해야 했고, 시간적, 역사적 연속성(historical continuity)의 감각에 예민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능동적 행위자로서 변화에 적응했는가 혹은 대세를 놓치지 않았는가는 실제 현실에서의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맨 손으로 시작한 사업이 어떠한 선택들을 통해 재벌로 성장하였는지의 성공신화에서부터, 당시 강남에 땅 한 귀퉁이라도 사놓았는지, 그 아파트에 청약을 넣었는지, 학군을 잘 골라 이사를 갔었는지, 우리 아이를 그 학원에 보냈는지 등등 말이다. 아메리칸 드림이 노력에 대한 보상의 꿈이라면, 우리의 성공 신화는 급변하는 대세와 시류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해왔는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시류에 대한 민감성과 현실적 부의 창출 사이에서 개인이 경험한 인과성은 능동적 행동주의를 더욱 부추기며 효능감을 불러일으킬만한 것이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의태(mimicry)는 유기체가 스스로를 보호하거나 먹이를 잡아먹기 위해 주변에 맞춰 자신의 모양, 색깔, 자세 등을 변화시키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의태는 급변하는 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우리 사회와 개인들이 자연스럽게 터득한 적응방식일 수 있다. 그리고 이제 대세, 경쟁으로부터의 이탈과 낙오는 우리가 안고 있는 불안일지도 모른다. 주변에 맞추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유기체에게 있어, 내면의 초점은 스스로가 아닌 주변과 타자에 맞추어져 있을 것이고, 타자와의 끊임없는 비교는 개인의 내면을 고갈시키는 관성일 수 있다. 종일 교실에 엎드려 있다가 방과 후 학원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제 오늘날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승자가 없어 보이는 이 끝없는 경쟁에서 쉽사리 내려설 수 없는 것은 의태가 가진 관성 그리고 낙오에 대한 불안일지도 모르겠다.안동 하회마을의 강 너머에는 높은 절벽이 있다. 절벽의 정상에 오르면, 하회 마을과 굽이치는 낙동강 상류의 절경을 보게 된다. 절경을 보고 내려오면, 중턱 즈음 나무들로 가려진 곳에서 유성룡 선생과 그의 형님이 거주했던 곳들을 발견한다. 왜 이들은 절벽의 정상에 떡하니 스카이캐슬을 짓지 않고, 중턱에 집을 지었던 것일까? 하회탈을 꼼꼼히 살펴보면, 당시에도 대세와 시류에 대한 대중의 열망은 분명 존재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스카이캐슬을 택하지 않았고, 그 미덕은 우리의 내면 어느 깊은 곳에 집단 무의식의 형태로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미덕은 앞으로 우리가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다시 불러일으킬 희망의 한 자락이 될 것이다. /경북대 교수

2020-02-09

우리 안의 불안과 경쟁: 수우족과 유록족의 이야기(1)

교육 특구를 자처하는 대구 수성구의 범어동 거리에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눈으로만 알 수 있는 표식들이 있다. 평범한 건물의 소박한 간판 뒤에 월급쟁이 부모들은 엄두도 낼 수 없는 고액의 개인 과외와 소그룹 과외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늦은 밤, 삼삼오오 모여 다니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최근 발표된 정시 확대 결정은 수능 준비를 위해 학교를 그만 두려는 아이들까지 속출시키면서, 학원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마냥 무겁게 보인다. 종일 무기력하게 교실에 엎드려 있다가 해질녘 학원가를 향할 아이들의 모습에 어느 원주민 부족 아이의 물음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수업에서 달리기 경쟁을 시키자, 아이는 ‘누가 이길지 아는데, 왜 달리라는 거죠?’라고 반문하였다. 그 아이에게 학교에서의 경쟁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왜 달리라고 하는 것인지, 그리고 왜 또 달리라고 하는지 말이다. 아이의 답변에서 우리는 경쟁이라는 현상이 인류의 보편적 현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실마리를 얻게 된다. 경쟁에 익숙해진 우리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에릭 에릭슨(E. H. Erikson)의 유년기와 사회에 기술된 수우(Sioux)족과 유록(Yurok)족의 아이들을 차례대로 만나보도록 하자.수우족은 미국 사우스다코타 지역의 초원을 지배하던 버팔로 사냥꾼이자 용맹함으로 이름을 떨치던 전사였다. 넓은 초원은 그들 삶의 원천이었고, 버팔로의 고기, 가죽, 뼈, 내장, 배설물은 모든 삶의 수단을 제공해주었다. ‘관대함’은 이들의 주요한 미덕이었고, 이는 버팔로를 사냥하며 유랑하는 삶에서 최소한의 생계 도구 외의 소유나 저장은 불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식량은 바닥날 때까지 공평하게 나누어졌고, 식량이 떨어지면 그들은 팀을 꾸려 사냥에 나서거나 식량을 나눠 받기 위해 친척을 찾아갔다. 그러했기에 보호구역의 근대식 학교를 다니던 한 아이는 그의 부모가 은행을 이용한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기도 하였다.소유에 대한 개념만큼이나 수우족의 양육방식은 독특하였다. 그들은 놀라울 만큼 아이들의 양육에 관대했는데, 수유기간이 평균 3년에 이르렀다. 어머니의 초유는 짜서 바로 버려졌고, 어머니의 젖이 충분히 나올 때까지 이웃의 어머니들이 아이에게 공동으로 넉넉히 젖을 물렸다. 에릭슨은 이를 다음과 같이 추론했다. 갓 태어나 굶주린 아이가 안간힘을 다해 얻은 것이 찔끔 나온 젖 한 모금이라면, 과연 그 아이가 세상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이다. 또한, 아이들의 배뇨와 배변훈련은 매우 느슨하였는데, 보호구역의 백인 교사들은 ‘수우족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방치한다’며 분노하였다. 그러나 수우족의 아이들은 그들의 배설물이 초원의 태양과 바람 아래 잘 마르게끔 배설하도록 양육되었고, 수우족의 시각에서 본 서구식 화장실은 햇볕과 바람을 막으면서도 정작 파리 떼는 막지 못하는 신통찮은 것이었다. 에릭슨은 긴 수유기간과 너그러운 양육방식이 수우족의 미덕인 관대함의 바탕이 되었다고 추론했다. 그리고 이렇게 성장한 수우족 아이가 근대식 학교와 교실 내의 경쟁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반면, 캘리포니아 지역에 거주하던 유록족은 대서양와 만나는 클래머스강을 중심으로 거주하던 연어잡이 부족이었다. 대서양에서 헤엄쳐 온 연어는 강의 급류를 거슬러가 상류에 이르러 알을 낳은 후 생애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산란한 치어들은 강을 내려와 다시금 대서양으로 향한다. 연어의 삶은 유록족의 삶에 깊이 녹아 있었는데, 이들에게 주요한 미덕은 ‘정결함‘이었다. 유록족은 인색하고 의심이 많으며 강박적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가령 강 상류에 사는 유록족은 다른 호전적인 부족이 강 하류의 유록족을 공격하러 가는 것을 보고도 못 본 척 할 만큼 주위에 무관심했다. 이들은 사적 소유와 조가비 화폐에 익숙했고, 강을 둘러싼 수많은 강박과 금기를 가지고 있었다. 가령 사냥한 동물의 피나 사람의 분비물은 강에 섞여 들어갈 수 없었다. 또한 성관계를 갖거나 이성과 같은 집에서 잠을 잤다면, 그들은 다음날 아침 한증막에서의 정결 의식을 통과한 후 클래머스강을 헤엄치는 것으로 정화를 마무리해야 했다.유록족은 양육방식 또한 수우족과 판이하게 달랐다. 신생아에게는 열흘간 젖 대신 견과즙이 주어졌다. 수유는 6개월이 되는 어느 날 갑자기 끊겼는데, 유록족은 이를 ‘어머니 잊기’라고 불렀다. 이후 양육은 매우 엄격하였고, 아이들은 음식에 먼저 손댈 수 없었으며 더 달라고 조를 수도 없었다. 식사 자리는 위아래가 정해져 있었고, 아이들은 숟가락에 음식을 조금만 올려놓고 숟가락을 입에 가져갈 때에는 손을 천천히 움직여야 하며, 씹는 동안에는 숟가락을 내려놓아야 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 과정 내내 돈과 연어를 생각하며 침묵하도록 교육받았다. 이는 유록족의 절제된 현실과 내면화된 환상 간의 간극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유록족의 내면에서 클래머스강 어귀는 연어가 밀려오는 수평선을 향해 기다림의 형태로 열려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연어 떼가 밀려와 그들에게 믿기 어려운 풍요로움을 선사하는 그 환각은 한편으로는 그들의 정결하고 절제된 일상을 유지시켜주는 환상이자, 현실에서의 예기된 보상이기도 하였다. 1년에 한 번 연어가 찾아오면 유록족은 강 양쪽 기슭에서부터 댐을 축조하기 시작하였는데, 댐이 완성되면 마침내 연어잡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열흘간의 축제가 시작되었는데, 그들은 축제 기간 동안 금기를 깨고 이교도의 의식에서나 볼 수 있는 방탕하고 난잡한 해방의 시간을 가졌다.수우족의 불안이 ‘무력해지고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는 것’, 즉 이동하며 생활하는 무리로부터 낙오되는 두려움이었다면, 유록족의 불안은 ‘연어 떼가 돌아오지 않는 것’, 즉 양식이 없이 남겨지는 것이었다. 수우족이 관대함과 확대가족을 통한 긴장의 분산으로 그들의 불안을 이완시켰다면, 유록족은 연어 떼의 도래를 수동적으로 기다려야 하는 긴장과 불안을 자신의 몸 안에 체화시켰다. 유록족의 쪼그라든 일상의 이면에는 거대한 환상, 즉 클래머스강 어귀에 도래한 연어 떼의 환각이 열망처럼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거리두기를 마치고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와 본다. 겨울 방학에도 학원가에 늘어선 아이들의 행렬은 끊이지 않는다. 수우족과 유록족의 사례는 각각의 맥락 내에서만 이해가능하며, 그들의 미덕인 관대함이나 정결함을 우리 사회의 미덕에 견주어 해석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러나 어떤 것은 우리에게 여전히 유의미한 질문과 단서를 던져준다. 우리 안의 불안이 대체 무엇이기에 혹은 우리의 환상이 무엇이기에, 우리의 일상은 어느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경쟁으로 숨 막히게 짜여진 것일까? 우리에게 연어는 무엇일까? 자연으로부터 너무도 동떨어져 버린 우리 삶의 방식과 주기가 이제 자연을 닮지 않은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안에 내재하는 불안과 열망을 질문하는 작업은 우리로 하여금 일상을 넘어선 진화를 가능케 할지도 모른다. 이어지는 수우족과 유록족의 두 번째 이야기는 이러한 탐색을 계속해갈 것이다. /김은영 교수김은영 미국 텍사스AM대학에서 교육학 석사, 조지워싱턴대학에서 임상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20-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