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6년의 여명

수줍게 건네준 노란 봉투를 한참이나 응시했다. 그 위를 조심스럽게 지키고 있는 사과 모양의 캐릭터 스티커는 아이의 취향과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작고 귀여운 인장이 오늘따라 유독 묵직한 작별의 무게로 다가온다. 6년이라는 시간, 한 아이의 유년이 저물고 청소년기라는 찬란한 여명이 밝아오기까지 우리는 이 좁은 방에서 서로의 세계를 공유해 왔다. 처음 그 아이를 만났을 때 아이는 낯선 세상을 경계하는 어린 짐승처럼 눈의 초점이 흔들렸다. 스승과 제자라는 정형화된 틀 안에서 지식을 주고받는 것으로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어느덧 서로의 사소한 일상과 깊숙한 사생활의 편린까지 공유하는 해후로 변모해 갔다. 아이는 성적표의 숫자로 고민했고 그 숫자보다 더 치열했던 사춘기의 고민을 내어 놓았다. 나는 어른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둔 삶의 고단함을 털어놓고 아이의 순수한 시선에 기대어 위로받곤 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훈습(薰習)되어 갔다. 향기가 옷에 배어들 듯, 아이의 싱그러운 에너지는 나의 무채색 일상에 생동감을 불어넣었고 나의 신중한 언어들은 아이의 거친 감정들을 다듬어주는 정원이 되었다. 각박하고 삭막한 세상에서 누군가와 이토록 순수하게 마음을 겹칠 수 있다는 것은 경이로운 축복이었다. 때로는 작은 초콜릿 하나로, 때로는 아이의 어머니가 구운 정성스러운 빵으로, 작은 소품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던 그 시간들은 단순한 물질의 교환이 아니라 서로가 같은 편이라는 이심전심의 의식 같은 거였다. 아이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좀 더 큰 도시로 이사를 갔다. 현실적 이별을 앞두고 내 손에 이 편지를 쥐어주었다. 6년의 세월을 종이 한 장에 가두기엔 턱없이 부족했을 터다. 하지만 봉투를 열기 전에 전해오는 아이의 감정은 우리가 함께 건너온 시간이 값지고 소중했음을 증명했다. 누군가의 성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그 영혼의 문턱을 함께 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숭고했다. 나도 아이를 위해 손글씨로 편지를 적었다. 지난 6년, 아이의 키가 한 뼘씩 자랄 때마다 내 마음의 부피도 함께 커졌다고 고백하고 싶었다. 작은 선물과 함께 나의 진심을 담은 문장들을 봉투에 담았다. 수필의 행간마다 아이의 이름을 새기듯, 그동안 갈피에 숨겨두었던 문장과 아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많은 길들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건넸다. 아이가 나를 통해 세상이 조금 따뜻하다고 느꼈으면 좋겠고 각박한 세상의 파고를 견뎌낼 수 있는 작고 단단한 방패를 만들었기를 기대했다. 마지막 수업이 마쳐야 할 시계의 숫자가 바뀌며 우리는 책을 덮었다. 방문을 나서는 아이를 불러 세워 가만히 안아 주었다. 여리던 어깨가 어느덧 듬직해졌다. 나는 이 아이의 청소년기라는 거대한 숲을 함께 산책했음을 깨달았다. “잘 지내, 언제든 전화하고, 샘 보고 싶다고 울지 말고” ‘울지 말고’라고 말했지만 정작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은 건 나였다. 아이 앞에서 주책맞게 자꾸 눈물이 나왔다. 다시 가다듬고 아이를 보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아이의 잔상을 바라보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긴 시간을 공유한 우리가 나눌 수 있었던 정직한 인사였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수많은 아이들이 썰물처럼 밀려왔다 밀물처럼 떠나가는 이 학습 공간에서 왜 유독 이 아이에게 나의 마음은 정박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이 아이가 나에게 내비친 영혼의 투명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고 지식을 전달받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일상에서 굽은 이야기까지 나누며 서로의 고독을 어루만지고 인간적인 온기를 수혈받았던 평등한 교감이 있었기에 이 아이의 부재가 그토록 아쉬웠음을 확신했다. 이제 아이는 새로운 곳에서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할 것이다. 비록 물리적 거리는 멀어지겠지만 우리가 나눈 애틋하고 비밀스러운 대화들은 아이의 마음 속에 단단한 뿌리가 되어 줄 것이다. 아이와 내가 교환했던 이 편지는 안녕의 종착역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의 삶에 심어둔 다정한 씨앗이 어디서든 꽃 피울 것임을 약속하는 쉼표이자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내 책상 위에는 아이가 남기고 간 노란 봉투만이 윤슬처럼 남아있다. 돌아보면 6년은 시험의 터널이나 막막한 사춘기의 방황 속에서도 서로의 존재로 인해 서로의 앞날을 비추어주던 여명의 시간이었다. 물리적 동행은 이제 멈췄지만 우리의 여명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막 찬란한 아침을 향해 그 지평을 넓혀가고 있을 것이기에 나는 또 다음 수업을 준비한다. /김경아 작가

2026-02-10

겨울의 잔해를 넘어

독감은 예고 없이 찾아온 침략자였다. 처음엔 그저 목구멍 뒤편이 가늘게 떨리고 가벼운 오한이 있어 감기인 줄 알았으나 이내 고열은 육신의 성벽을 허물고 점령군처럼 들이닥쳤다. 자려고 누우면 기침은 폐부 깊은 곳에서부터 우물처럼 길어 올렸고 달아오른 이마는 현실과 환각의 경계를 흐릿하게 지워버렸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시간 동안 나의 세계는 오직 통증이라는 좁은 감옥 속에 유폐되었다. 열이 끓어오르는 와중에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지독하게도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이었다. 고열로 인해 시야는 아지랑이처럼 일렁였으나 그 뒤편에 선명하게 각인된 아이들과의 수업 약속, 마감이 다가오는 원고들, 내가 부재함으로 인해 생겨날 공동체의 작은 균열들은 나를 잠시도 침대에 온전히 뉘어두지 못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기꺼이 아플 자유조차 반납해야 하는 일이었던가. 육신은 비명을 지르며 모든 기능의 정지를 선언하고 휴식을 갈구했지만 책임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은 나를 억지로 생의 현장으로 끌어당겼다. 그렇게 쉼 없이 나를 소진한 대가는 더딘 치료였다. 약은 잠시의 아픔을 유예시킬 뿐, 근본적인 치유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낫는 속도가 이토록 더딘 것은 단순히 면역력의 저하 때문만은 아니라 나의 영혼이 쉴 틈을 찾지 못해 스스로 치유의 동력을 꺼뜨려 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픈 육신을 정신력이라는 가느다란 끈으로 억누르며 버티는 동안, 나의 회복은 정체되고 아픔의 유통기한은 지루하게 늘어만 갔다. 어른의 치유란 이토록 고단한 것인가. 자신의 상처를 돌보기에 앞서 타인의 기대를 먼저 수선해야 하는 삶은 마치 밑 빠진 독에 생의 에너지를 쏟아붓는 일과도 같았다. 하지만 이 느린 회복의 지체(遲滯)는 역설적으로 내가 삶을 얼마나 성실히 지탱해왔는지를 증명하는 가장 정직한 통증의 기록이기도 했다. 문득 아이들이 부러워졌다. 아프면 그저 목놓아 울 수 있고, 차려주는 따뜻한 죽 한 그릇에서 세상을 다 얻은 듯 잠들어도 괜찮고, 자신의 고통을 타인에게 오롯이 의탁하며 떼를 쓸 수 있는 그 투명한 권리가 부러웠다. 홀로 약봉지를 뜯고 스스로 물을 데우고 또 기침으로 보내는 어른의 밤은 차갑고 적막했다. 기침이 조금씩 멈춰갈 즈음, 거울 속의 수척해진 얼굴을 마주하며 또 깨닫는다. 내가 지켜내야 할 약속들은 나를 짓누르는 하중이 아니라 어쩌면 나를 생의 현장에 붙들어 매어주는 단단한 닻이었다는 것을. 아이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담길 나의 존재를 생각한다. 내가 아픔을 이기고 수업하는 아이들을 만날 때 그들은 지식을 배우는 것에서 ‘삶을 책임지는 한 사람의 뒷모습’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나의 고통은 타인에게 나누어줄 사랑의 부피를 가늠하는 성찰의 도구가 되기도 했다. 이제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내 안의 겨울이 저물어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대지는 혹독한 냉기를 온몸으로 품어내야 비로소 봄의 현(絃)을 울릴 자격을 얻는다. 지금 나의 이 무딘 회복세와 더딘 걸음은 결코 쇠락의 징후가 아니다. 오히려 생의 박동을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고귀한 지체(遲滯)이자 어른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온전히 감내하며 얻어낸 시간의 훈장이다. 오랫동안 나를 유폐했던 방을 나와 다시 익숙한 일상의 소음 속으로 발을 내디딘다. 여전히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 때마다 가벼운 기침이 배어 나오지만 그것은 생의 엔진이 다시 가동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아이들을 맞기 위해 다시 책상을 정리하고 해킹으로 자료가 몽땅 날아가 버린 노트북을 펴 다시 수업 자료를 만든다. 정갈하게 다시 문장을 다듬고 아이들의 눈을 비로소 맞출 때 나의 혈관 속에는 약 기운이 아닌 삶의 생기가 도는 것을 느낀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나의 몫을 다하는 행위야말로 진정한 치유란 걸 또 알아간다. 내가 앓았던 겨울의 잔해가 저 산 너머에서 파릇한 새순으로 돋아나는 기적을 나는 믿는다. 비록 떼를 쓰며 쉴 수 있는 내 유년의 안온함은 멀어졌을지라도 나의 아픔을 숭고한 책임으로 치환해낼 수 있는 지금의 내가 더 충만할지도 모를 일이다. 지독했던 통증이 잦아든 자리마다 성숙이라는 이름의 깊은 향기가 배어날 것이다. 나는 이 길고 긴 독감의 끝에서 조우할 맑은 아침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린다. /김경아 작가

2026-02-03

멈춰 선 갈채

겨울의 끝자락은 언제나 시리고도 투명하다. 작년 12월, 차가운 공기가 채 가시기도 전 아버님은 당신이 평생을 지탱해온 견고한 육신을 잠시 내려놓았다. 평생을 공직이라는 좁고도 곧은 길 위에서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걸어오신 분이다. 남들이 빠른 길, 쉬운 길을 택해 앞서나갈 때도 아버님은 정직이라는 무거운 보따리를 내려놓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당신의 진급은 늘 동료들보다 한 뼘씩 늦었고 그만큼 당신의 어깨에 내려앉은 노을은 남들보다 조금 더 깊고 고즈넉했다. 아버님은 한 번도 그 ‘늦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들인 남편이 사회라는 거친 파도 속에서 한 단계씩 위로 솟구칠 때마다 당신은 세상 그 누구보다 환한 미소로 아들의 이름을 불러 주었다. 아들의 승진은 아버님에게 단순한 직급의 상승이 아니었다. 당신이 고집스럽게 지켜온 그 정직한 삶의 방식이 아들의 생(生)을 통해 비로소 만개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하고도 유일한 증명이었으리라. 아버님에게 아들은 당신의 인생이라는 문장을 완성하는 마지막 마침표이자 가장 화려한 수식어였다. 새해 첫 아침, 남편의 손에는 잉크 냄새도 채 가시지 않은 새 명함이 쥐어져 있었다. 아버님이 그토록 기다리셨을 아들의 성취가 오롯이 박힌 작은 종이 한 장, 그러나 운명은 잔인하게도 그 순간 앞에 깊고 어두운 강을 하나 놓아버렸다. 뇌졸중이라는 불청객은 아버님의 의식 속에 깃든 기억의 등불을 하나둘 꺼뜨렸고 이제 그 강 건너편에서 아버님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요양병원의 창백한 조명 아래, 남편은 아버님의 초점 없는 시선 앞에 그 명함을 내밀었다. “아버지 저 진급했어요. 명함 새로 나왔어요.” 목소리는 허공을 맴돌다 차가운 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평소 같았으면 명함의 모서리를 조심스레 받아들고 몇 번을 어루만지며 아들의 이름을 소리 내어 읽으셨을 분이다. ‘장하다 내 아들’그 인자한 웃음과 사투리 섞인 칭찬 대신 돌아오는 건 규칙적이고도 서늘한 기계의 숨소리뿐이었다. 돌이켜보면 아버님이 견뎌온 지루하고 올곧은 시간은 아들을 위한 밑거름이었다. 당신의 진급이 늦어졌던 것은 무능함이 아니라 타협하지 않는 영혼이 지급해야 했던 귀한 세금이었음을 나이가 들어갈수록 깨닫는다. 아들은 그 비옥한 정직의 토양 위에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 마침내 오늘날의 푸른 숲을 이루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온 생애를 바쳐 기다려 주지만, 정작 자식이 부모의 갈채를 필요로 하는 순간에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우리는 늘 ‘조금만 더 있으면, 이번 일만 마무리 되면’이라는 유예의 언어로 효도를 미룬다. 그러나 생의 시계추는 자식의 성공을 기다려 줄 만큼 너그럽지 않았다. 아버님의 정직함이 아들의 명함 속에서 깊이 뿌리 내려 결실을 보았을 때 정작 그 뿌리의 주인은 자신의 꽃향기를 맡지 못하는 적막의 세계로 유배를 떠나버렸다. 이 지독한 비대칭성이 우리가 생에서 마주하는 형벌이 아닐까. 인생은 어쩌면 어긋나는 타이밍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부모의 뒷모습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될 즈음 부모는 이미 고개를 돌려 저 멀리 노을 지는 언덕을 넘어가고 있다. 아들의 명함에 박힌 글자를 읽어줄 한 사람의 시선은 멈춰버렸다. 아버님의 침묵은 세상의 모든 소음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 남겨진 갯벌처럼 황량하고도 깊은 슬픔을 머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고 싶다. 아버님의 육신은 비록 아들을 알아보지 못할지라도 당신의 깊은 심연(深淵) 어딘가에 남아 있는 영혼의 감각은 아들의 성취를 느끼고 계실 것이라고. 아들의 명함에 묻어있는 긍지가 당신의 고단하고 외로운 삶을 따스하게 어루만지고 있을 것이라고. 기다려 주지 않는 시간 앞에서 자식은 늘 죄인이 된다. 하지만 아버님이 보여주신 강직한 삶의 궤적은 이제 아들의 삶 속에서, 또 손주들의 삶 속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다. 부자(父子)가 맞잡은 손등 위에 명함을 올려두고 바친 아들의 눈물 한 방울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아버님의 따스한 시선에 바치는 마지막 헌사처럼 보였다. 비록 육신의 대화는 멈췄지만 아버님이 물려주신 따뜻한 영혼의 언어는 아들의 생애를 통해 메아리칠 것이다. /김경아 작가

2026-01-27

마스크 너머의 호흡

코로나라는 이름의 긴 계절을 우리는 얼굴의 절반을 가린 채 건너왔다. 마스크는 어느새 외출을 위한 준비물이 아니라 신체의 일부처럼 여겨졌고 숨을 쉰다는 가장 본능적인 행위조차 의식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아침마다 현관에서 차 키와 휴대폰을 챙기듯 마스크를 집어드는 손놀림은 무심했고 자동적이었다.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것을 불편함이라 부를 새도 없이 우리는 하루를 살아냈다. 삶이란 대체로 그런 것이어서 견뎌야 할 것들은 늘 습관의 얼굴로 다가왔다. 마스크 안에서의 숨은 언제나 조금씩 모자랐다. 깊게 들이마셔도 폐 끝까지 닿지 않는 느낌, 내 숨이 다시 내 얼굴로 되돌아와 맺히는 습기, 말소리가 마스크에 걸려 흐릿해지는 순간들. 그러나 그 답답함은 개인의 것이 아니었기에 우리는 그 시절 불평보다는 침묵을 택했다. 모두가 같은 불편을 감내하고 있다는 사실은 묘한 연대감을 만들었고 그 연대는 우리를 하루하루 앞으로 밀어냈다. 어느 순간, 마스크에서 해방되었다. 얼굴을 가린 막을 벗는 일이 이렇게 가벼울 수 있다는 사실에 잠시 어리둥절했다. 숨을 들이마시는데 아무런 저항이 없다는 것, 공기가 폐로 곧장 흘러들어온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낯설었다. 우리는 자유를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사람들처럼,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잠깐의 해방감을 누렸다. 마치 긴 터널을 빠져나온 뒤에야 하늘의 높이를 실감하는 것처럼. 하지만 삶은 늘 직선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최근 수업을 받던 아이가 독감에 걸렸고 다시 마스크를 꺼냈다. 둘 다 마스크를 쓴 채 마주했다. 예전보다 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천이 두꺼워진 것도, 공기가 더 나빠진 것도 아닌데 유독 갑갑했다. 한 번 맛본 해방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불편에 익숙해질 수는 있어도 자유를 경험한 뒤의 제한에는 더 예민해지는 존재였나 보다. 마스크 너머로 아이의 눈만 보였다. 표정은 읽기 어려웠고 말소리는 마스크 안에서 부서졌다. 숨소리와 숨소리가 천을 사이에 두고 섞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문득 우리가 지나온 길을 떠올렸다. 얼마나 많은 날들을 이렇게 서로의 얼굴을 가린 채 살아왔던가. 서로의 표정에 어린 온기를 완전히 느끼지 못한 채 그저 무사함을 확인하는 것으로 안도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이 답답함도 견딜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시간들 때문에 더 답답해진 것인지 쉽게 해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우리는 어려운 길을 마스크를 쓰고 지나왔다. 숨이 가쁘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길이었지만 멈추지 않고 걸었다. 불확실함 속에서도 하루를 이어갔고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를 조금씩 희생했다. 그 시간은 헛되지 않았고 지금의 공기를 신선하게 마실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우리의 삶에도 마스크를 써야만 하는 시기가 있다. 그것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말을 삼키고 마음을 숨기며 숨조차 조심스러워지는 시간이다.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그 답답함은 무너지지 않기 위한 필수적 거리다. 마스크는 얼굴에 붙어 있는 굴레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일시적인 태도다. 견디지 않고서는 다음 계절로 갈 수 없고 더 넓은 호흡을 얻을 수 없다. 마스크는 영원한 감옥이 아니라 성숙을 향해 통과해야 할 과정이다. 마스크를 쓴 채 수업을 마쳤고 아이를 보낸 후 차가운 공기를 맞았다. 숨이 깊어졌다. 우리의 호흡은 당연하기 보다는 지나온 답답함의 총합이라는 것. 자유는 견딤의 반대편에서 비로소 도착하는 것임을 다시 깨닫는다. 언젠가 또 다른 형태의 마스크를 써야 하는 날이 오더라도 우리는 이미 그 길을 건너온 사람들이다. 숨이 막히는 시간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었고 결국 우리는 다시 호흡을 되찾았다. 마스크 너머의 시간들은 지나갔지만 그 시간들이 남긴 사유는 여전히 우리 안에 머문다. 숨이 막힐 때마다 그 끝에는 다시 맑은 공기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아간다. 삶은 늘 그렇게 답답함을 통과한 사람에게만 깊은 호흡을 허락한다. /김경아 작가

2026-01-20

껍질을 쥔 손으로

나의 삶은 왜 이토록 바쁜 걸까. 새해가 밝은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여전히 나의 하루는 분주하다.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하루가 끝날 것 같은 예감 속에서 서둘러 신발을 신고 서둘러 마음을 정리하고 서둘러 나 자신을 뒤로 밀어둔다. 숨을 고를 틈도 없이 하루가 흘러간다. 고개를 들면 이미 저녁이고 또 이렇게 하루를 잘 버텨냈다는 안도만이 하루를 닫는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상하게도 모두들 여유로워 보인다. 같은 시간을 살고 있음에도 누군가는 천천히 커피를 마시고 식사 시간도 충분히 즐긴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창밖을 바라보는 일도 일상처럼 자연스럽다. 그 풍경 속에서 유독 나만 바빠 보인다. 늘 손에 무언가를 쥐고 놓지 못한다. 책임, 역할, 기대, 내가 해야 할 몫들. 어딜 가나 짐과 책임을 안게 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많은 일들은 늘 내게로 왔다. 누가 정해 놓은 것도 아닌데, 조금 더 익숙해 보인다는 이유로, 조금 더 잘 해낼 것 같다는 인상으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켜켜이 쌓여 물 흐르듯 나의 몫이 되었다. 일 욕심이 많은 것도 아닌데 나는 그 예상에서 벗어나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았다. 어디서든 정리하는 사람이 되었고 남들이 내려놓은 무게를 조용히 들어 올리는 쪽이 되어 있었다. 며칠 전 대게가 담긴 접시 앞에 앉았다. 붉게 삶아진 다리들이 단단한 껍질을 두른 채 겹겹이 쌓였다. 보기에는 풍성했지만 가볍게 먹지는 못했다. 값으로도, 마음으로도 가볍게 다룰 수 없었다. 바다를 건너온 시간과 사람의 손을 거친 수고가 한 끼로 얹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장 귀한 부분을 잃을까 봐 조심히 다뤘다. 과정이 번거롭고 느리지만 그 안에 스며든 모든 이의 땀과 시간이 스며들었기에 허투루 하지 못했다. 괜히 아까웠다. 너무 쉽게 먹어 버리면 안 되는 것은 아닐까. 늘 그렇듯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가장 나중으로 미루고 있었다. 손에 힘을 주고 비틀고 껍질을 벗기고 애쓰고 나서야 하얀 살 한 조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왠지 내 삶도 꼭 대게 같았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안에 닿기 위해서는 쉼 없이 껍질을 벗겨야 하는 삶. 남들 눈에는 풍성해 보일지 모르지만 정작 나는 늘 애쓰고 있는 삶. 손이 아프고 마음이 무거워도, 발이 떼지지 않아도 멈출 수 없는 삶. 가끔 충동적으로 이런 생각에 빠진다. 한 달, 아니 단 며칠이라도 다 먹고 난 게껍질처럼 속까지 완전히 비워버리고 싶다고. 아무것도 들지 않고, 아무 역할도 맡지 않고, 마음 속 감정까지 다 비워낸 상태로 투명 인간이 되었다가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돌아서면 한 시간 뒤의 일을 생각하고, 내일 일을 계획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또 발견한다. 껍질만 남은 접시는 결국 비워짐의 끝이 아니라 먹어낸 시간의 증거다. 수고의 흔적이고 누군가의 배를 불려준 자리의 기억이다. 아무 의미 없이 남겨진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내가 늘 바쁘다는 이유는 어쩌면 내 삶의 살이 그만큼 단단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쉽게 꺼내 먹을 수 없는 대신 천천히, 끝까지 애써야만 얻을 수 있는 삶.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고 더 깊은 맛을 지니는 삶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가끔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어둡고 조용한 곳에 숨어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언젠가는 나도 알게 되리라 믿는다. 지금껏 나를 바쁘게 했던 모든 시간들이 헛된 껍질이 아니었음을. 내 손이 아팠던 것은 비워내기 위함이 아니라 채우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쉽게 꺼내 쓸 수 없는 사람이 되기까지 삶은 나를 서두르지 않게 훈련시켜 왔고 견딜 수 있는 만큼만 맡기며 조금씩 깊어지게 했다. 더 이상 분주함을 전부 불행으로 부르지 않으려 한다. 이 시간이 언젠가 나를 가볍게 증명하는 대신 조용히 단단해지게 할 것임을 믿어보려 한다. 나는 오늘도 바쁘다. 다이어리는 꽉 차 있고 나조차도 기억할 수 없는 일정이 나를 짓누르지만 조급해하지 않으려 한다. 껍질을 쥔 이 손이 결국 나를 굶지 않게 했고 나를 걸어오게 한 힘이었다는 것을 조금 알 것 같기 때문이다. /김경아 작가

2026-01-13

짝퉁

플리마켓의 공기는 느슨하다. 물건들은 정해진 자리를 벗어나고 가격은 흥정이라는 이름으로 흔들리며 사람들은 잠시 일상의 위계를 내려놓는다. 그날도 그랬다. 정갈하지는 않지만 성실한 손길이 느껴지는 작은 부스 앞에서 나는 손바닥만 한 파우치를 발견했다. 익숙한 무늬, 너무나 익숙해서 오히려 웃음이 새어 나오는 문양. 누가 보아도 명품 브랜드를 연상시키는 솔직하고 직설적인 물건이었다. 영세한 업체였다. 과장된 설명도, 번듯한 배너도 없이 봉사하는 사람들이 물건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거 직접 만들었어요.”라는 말 한마디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세웠다. 가격은 삼천 원. 그냥 보기에도 너무 싸고 질겨 보였다. 차키를 넣어도 좋고 카드 몇 장을 넣기에도 알맞은 크기였다. 무엇보다 이 물건이 가진 순수함이 마음에 들었다. 숨기지 않는 흉내, 감추지 않는 닮음. 나는 열 개를 샀다. 필요해서라기보다는 물건을 만든 이들의 시간을 조금 보상해주고 싶었다. 지인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대부분의 반응은 가벼웠다. “우와 명품이네?”웃음 섞인 농담이 오갔고 모두 그 물건이 가진 유머를 이해했다. 그것은 명품을 흉내 낸 것이 아니라 명품을 소재로 한 농담에 가까웠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웃었고 그 웃음은 그날의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주었다. 유독 한 사람의 말이 날카로웠다. 같은 회사의 진품을 들고 있던 한 사람이었다. 그는 파우치를 받아 들고는 얼굴을 굳혔다. “나는 짝퉁은 안 해.” 마치 선언처럼 말한 뒤 한 마디를 덧붙였다. “진품도 짝퉁으로 알겠네.” 그 말은 물건을 향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것 같았다. 순간 공기가 식었다. 농담은 자리를 잃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지키고 있는지 분명히 말했지만 내 눈에는 무엇을 잃고 있는지가 분명히 보였다. 나는 명품을 과시하고 싶은 욕심도 없었고, 단순히 영세 업체를 도와주고자 산 파우치를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닌다고 해서 사람이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을 드러내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언어였고, 태도였으며, 타인을 대하는 결이었다. 그가 내뱉은 말속에는 고급스러움도, 품위도 없었다. 오히려 과시와 방어가 섞인 냄새가 났다. 그의 말과 태도는 짝퉁을 넘어 하(下)품처럼 느껴졌다. 오래된 흉내, 새로울 것 없는 허세같은. 우리는 왜 진품과 짝퉁을 나누는 데 집착할까. 정말 보이고 싶은 것은 물건의 진위일까, 아니면 그 물건을 통해 증명하고 싶은 나의 위치일까. 진품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이렇게 도덕의 언어가 되었는지. 마치 짝퉁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 곧 고귀함의 증거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삶은 과연 진품일까. 매일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가. 상황에 따라 표정을 바꾸고 관계에 따라 언어를 조절하며 때로는 나 자신조차 속이며 하루를 살아낸다. 직장에서의 나, 가족 앞에서의 나, 친구들 사이의 나는 모두 조금씩 다르다. 생존의 기술일 수도 있고 사회의 요구일 수도 있다. 그 모든 모습 중에서 진품은 어디에 있을까. 내면이 진품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실패가 필요하며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고통이 필요하다. 값비싼 물건을 사는 일보다 인내하고 이해하려 애쓰는 일이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내면의 진품은 카드로 결제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래 걸리고 불편하며 누구도 대신 만들어 줄 수가 없다. 삼천 원짜리 파우치는 솔직했다. 흉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고 웃음의 자리도 알았다. 그 파우치를 만든 사람들 역시 명품을 팔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었고 그 시간을 정직하게 가격으로 붙였을 뿐이다. 나는 지금 어떤 진품을 만들고 있는가. 가면을 쓰고 살아가더라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아직 길을 잃지 않은 것이다. 짝퉁을 쓰지 않겠다는 선언보다 어떤 언어를 쓰고 사람들에게 어떤 온도를 남기는지에 더 시간을 쏟아야 할 것이다. 삼천 원이었지만 파우치는 나에게 가장 값비싼 질문을 남겼다. /김경아 작가

2026-01-07

퍼즐의 끝에서

성탄의 불빛이 거리를 덮고 연말이라는 단어가 달력 위에 눌러앉을 즈음이면 사람들은 으레 설렘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는 탓인지 계절의 변화가 무심해진다. 성탄이 와도 마음은 조용하고 연말이 되어도 가슴이 먼저 반응하지 않는다. 축제는 여전히 반복되지만 감흥은 해마다 한 겹씩 옅어진다. 어쩌면 우리는 기쁨에 둔감해진 것이 아니라 기쁨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진 것인지도 모른다. 한 해가 이렇게 빨랐던가. 새해라는 말이 입에 붙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또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다. 시간은 분명 같은 속도로 흘렀을 텐데, 체감은 해마다 더 가팔라진다. 빠르다는 감각은 결국 충만함의 다른 이름일까. 아니면 붙잡지 못한 날들에 대한 아쉬움일까. 그 질문 앞에 쉽게 답을 찾지 못하고 또 연말을 맞았다. 돌이켜보면 한 해는 언제나 ‘완성’아니라 ‘과정’으로 존재했다. 시작할 때부터 계획했던 그림이 그대로 실현되는 경우는 드물다. 삶은 늘 예고 없이 방향을 틀고 우리는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 앞에서 임시방편의 선택을 내린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쌓인다. 그 하루들이 모여 한 해가 되지만 그 전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은 언제나 마지막에 허락된다. 종종 한 해를 퍼즐에 비유해 본다. 수많은 조각들이 제각기 다른 모양과 색을 하고 흩어져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퍼즐의 완성된 그림을 미리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조각이 중요한지, 어떤 조각이 빠져도 되는지 처음에는 가늠할 수 없다. 때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각들이 의외의 자리에서 맞물리고 애써 붙잡고 있던 조각은 끝내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남기도 한다. 그 퍼즐을 맞추는 동안 수없이 망설이고 실수하고 떼어낸다. 이 선택이 옳았는지, 저 결정이 너무 성급했던 것은 아닌지 자문한다. 그러나 퍼즐은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다만 다음 조각을 내밀 뿐이다. 우리는 그 조각을 받아들고 또다시 하루하루를 맞추며 이어가다 보면 퍼즐은 조금씩 윤곽을 드러낸다. 그 조각들은 무작위로 흩어져 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한 해의 끝에 다다라서야 조금씩 알아 간다. 기쁨이라 믿었던 순간도, 실패라 여겼던 장면도 모두는 한 그림을 이루기 위한 필연적인 요소였다는 것을. ‘나’라는 자아를 만들기 위해 이 일이 필요했구나. 시간이 지나가야 했구나를 조금씩 깨닫게 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연말이 되어도 별다른 감흥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삶이 더 복잡한 결을 가지게 되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단순한 환희보다는 깊은 이해가 필요해진 나이. 번쩍이는 감정 대신 오래 남는 의미를 찾게 된 시간. 그래서 더 이상 크게 들뜨지 않고 잠잠히 돌아본다. 한 해 동안 내 손을 스쳐간 퍼즐의 조각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많은 사람들의 퍼즐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완성되기를 꿈꾼다. 모든 조각이 빛나지 않더라도 적어도 전체가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림이기를 바란다. 상처 난 조각은 그 나름의 결을 지니고 닳아버린 조각은 그 시간만큼의 깊이를 품은 채 제자리를 찾기를 소망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또다시 내년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퍼즐 상자를 받게 될 것이다. 아직은 아무 그림도 알 수 없는 퍼즐을 다시 조각을 맞추며 헤매고, 의심하고, 때로는 웃고 울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해의 끝에서도 지금과 같은 자리에서 조금 더 다정한 시선으로 지난 시간을 바라볼 수 있기를 꿈꾼다. 연말은 평가의 시간이 아니라 이해의 시간이라 생각한다.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따지기보다 어떤 조각들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는지 헤아려 본다. 하나하나를 헤아려 보면 자신에게 조용한 박수를 보낼 수 있다. 아무도 대신 맞춰주지 않은 퍼즐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완성해온 자신에게. 성탄의 불빛이, 연말의 소음이 크게 와닿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는 이미 많은 조각을 품고 살아왔기에. 한 해의 끝에서 퍼즐을 내려다보며 더 환하게 웃는 얼굴의 퍼즐을 향해 다시 한 해를 살아갈 준비를 한다. /김경아 작가

2025-12-30

붉은 시간의 가장자리

동지가 다가온다. 해가 가장 짧아지는 날, 어둠이 세상의 주인이 되는 순간을 앞두고 나는 엄마의 팥죽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팥죽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던 기억이 있었지만 중년을 지나오면서 왜 팥죽이 유독 그리워지는지 알 수가 없다. 그 시절 겨울은 엄마가 새벽부터 불 앞에 서 있던 등에서부터 시작되었고 팥이 끓는 냄비에서는 김보다 먼저 오래된 평온이 부엌을 채웠다. 몇 년 전부터 엄마는 더 이상 예전처럼 오래 서 있을 힘이 없고 팥을 불리고 삶아 체에 거르는 반복의 노동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팥이 타지 않게 저어 주었던 아버지의 손길조차 부재했다. 부재는 때로 가장 정확한 요청이 되었다. 여전히 팥죽은 먹고 싶었기에 마침내 혼자서 팥죽을 해보기로 했다. 기억을 따라 하는 요리는 늘 실패를 동반하지만, 실패마저도 한 시절에 대한 예의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팥을 씻는 일부터 오래 걸렸다. 검붉은 콩알 하나하나가 제 몸의 먼지를 놓지 않으려는 듯 물 위에서 굴렀다. 몇 번이고 헹구며 깨달았다. 엄마의 팥죽에는 맛보다 시간이 먼저 들어 있었다는 것을. 팥은 오랜 시간을 삶아야 물러졌다. 엄마가 말하던 ‘기다림의 맛’이 이런 것일까 이해가 되었다. 팥은 붉은색으로 재앙을 막는 상징이었다. 동짓날 조상들이 팥죽을 먹는 풍습은 잡귀를 물리치고 새해의 기운을 맞이하려는 믿음이 깃들어 있다. 종교적인 이유로 그러한 상징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에게 팥죽은 주술의 음식은 아니었다. 그것은 엄마가 해마다 반복하던 어떤 기억의 몸짓, 믿음 대신 사랑을 남기는 행위에 가까웠다. 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 내기 삼킨 것은 재앙을 막는 붉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간을 견뎌온 방식이었다. 새알은 이름처럼 새해의 알, 탄생의 은유다. 지역에 따라 나이를 먹는다는 뜻으로 먹는 수만큼 알을 세기도 했다. 나는 나이를 세지 않았다. 다만 하나하나 지나온 겨울과 건너갈 겨울을 포개어 넣었다. 엄마의 손에서 태어났을 알들을 대신해 서툰 내 손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있었다. 그 질서는 능숙하지 못했다. 동일한 모양으로 들어갔던 알들은 익는 속도도 제각각이었고 어느새 일그러져 있었다. 그 불균형이야말로 나와 가장 닮았다고 생각했다. 삶은 언제나 고르게 익지 않았고 어떤 시간은 너무 빨리 가라앉았으며 또 어떤 기억은 끝내 형태를 잃지 않았다. 팥죽 속에서 천천히 떠오르던 새알들을 바라보며 한 가지 깨달음이 있었다. 엄마가 매년 같은 일을 반복했던 것은 액운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엄마의 힘겹고 흩어졌던 시간을 한데 모아 한 그릇으로 건네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팥물에 간을 맞추는 순간, 소금을 넣을지 설탕을 넣을지 망설여졌다. 단맛은 이 음식에 익숙한 타협처럼 느껴졌고 소금은 어딘가 고집스럽고 불친절한 선택처럼 보였다. 엄마의 팥죽을 떠올려보니 달지도 않았고 무미하지도 않았다. 나는 결국 소금을 집어 들었다. 단맛으로 덮지 않고 팥이 가진 고유한 깊이를 남기고 싶었다. 삶을 지나치게 달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작은 선언 같은 것이라고 해두자.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처음 해보는 일은 늘 과해진다. 나는 그릇에 나누어 담아 이웃들에게 건넸다. 겨울 저녁의 문 앞에서 팥죽은 인사말이 되었고 안부는 숟가락보다 먼저 오갔다. 함께 먹는다는 것은 경계를 낮추는 일이었다. 팥죽이 잡귀를 막는다면 나눔은 고립을 막았다. 나눔을 끝내고 팥죽을 다시 데웠다. 혼자 먹는 그릇 앞에서 엄마를 떠올렸다. 더 이상 엄마와 같은 방식으로는 이어갈 수 없겠지만 다른 방식으로 이어가며 엄마를 기억해 낼 수 있으니 괜찮다. 기억은 반복될 때가 아니라 변주될 때 살아남는다. 올해의 팥죽은 엄마의 것과 닮지 않았지만 엄마의 태도를 닮아 있었다. 동지가 지났다. 해가 길어졌다. 붉은 시간의 가장자리에서 팥죽은 그렇게 나의 겨울을 통과시키는 한 그릇의 문학이 되었다. 어떤 음식은 배를 채우지 않고도 사람을 살게 한다는 따뜻한 문장과 말로 하지 못한 엄마의 온기를 품은 문장이 되었다. /김경아 작가

2025-12-23

잠금 이후

작년에 새 노트북으로 바꾼 후 일 년을 나의 호흡처럼 품고 있었다. 손끝이 닿을 때마다 수업의 문장들이 깜빡이며 살아났고 미완의 글들은 밤의 잔열을 머금은 채 잠들어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노트북은 나를 배척했다. 늘 통과하던 비밀번호가 더는 문이 아니었다. 기계는 침묵했고 나는 의아함과 불안함이 번갈아 오고 갔다. 서비스 센터에서는 백업이 불가하다 하여 외부 수리에 맡겼지만 문을 통과하지 못한 원인은 간단했다. 해킹, 누군가 나의 공간에 들어와 비밀번호를 바꾸었고 나는 나의 방에서 추방되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은 초기화였다. 그 단어의 무정함은 늘 정확했다. 누군가의 손에 의해, 혹은 시스템의 명령에 의해 기억은 지워졌다. 이전 노트북에서 옮겨 놓은 수많은 수업자료와 켜켜이 쌓아온 문장들, 밤마다 키워온 내 삶의 비유와 숨결들. 자식 같은 글이라는 표현이 과장 같을지 모르나 글을 써 본 사람이면 안다. 문장은 태어나기까지 오랜 진통을 치르고 태어난 뒤에도 수없이 넘어지며 자란다는 것을. 그 아이들이 한꺼번에 몽땅 사라졌다. 기계의 망각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인간의 기억을 떠올렸다. 같은 주, 시아버님이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병실의 밝은 불빛 아래에서 우리는 수없이 아버님을 불렀다. 자식들의 부름은 공중으로 흩어졌고 아버님의 몸은 그저 누운 채로 저 깊은 수면 상태로 시간은 흘러갔다. ‘반응 없음’ 의료 기록의 차가운 문구는 우리의 심장을 뜨겁게 파고들었다. 해킹은 더 이상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삶에 침입해 문을 잠그는 행위, 기억의 경로를 바꾸고 접근 권한을 박탈하는 폭력이었다. 나의 노트북이 그러했고, 아버님의 몸도 그러했다. 뇌라는 서버에 갑작스러운 오류가 발생하자 아버님이 평생 축적해 온 얼굴과 목소리, 하물며 사랑의 암호까지 모두 접근 불가 상태가 되었다. 우리는 늘 대비하며 산다고 믿는다. 백업을 하고, 보험도 들고, 검진도 미루지 않고 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삶의 취약점은 우리가 방심한 틈을 비집고 들어와 순식간에 열린다. 보안은 완벽할 수 없고 건강은 영구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아는 것과 몸으로 겪는 일은 전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초기화 이후의 노트북은 말끔했다. 공백은 깔끔했고 빈 바탕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능성은 애도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지워진 것들 위에 새로 쓴다는 것은 상실을 전제로 한 창조였다. 지금의 나의 저울은 새로운 것을 찾기보다 이전의 기억을 더듬는 데 더 기울어져 있었다. 아버님이 계신 병실에서 우리는 손을 잡고 체온을 확인하고, 숨의 리듬을 읽었다. 기술은 반응을 숫자로 보여주었지만 우리는 숫자 너머의 미세한 떨림을 기다렸다. 삶은 언제나 데이터보다 느리다. 그리고 그 느림 속에서만 회복된다. 나는 다시 문장을 쓴다. 기억을 백업하고 비밀번호를 바꾸며 동시에 사람의 손도 더 오래 붙든다. 기술은 보호막이지만 결국 삶을 지키는 것은 주의와 애정의 지속이다. 아버님의 침묵은 아직 풀리지 않은 암호처럼 남았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로그인을 시도한다. 이름을 부르고 기억을 들려주고 사랑의 키를 바꿔간다. 반응이 돌아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시도 자체가 우리의 삶을 해킹으로부터 지키는 최후의 보안이라 나는 믿고 싶다. 해킹은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침입자는 로그를 지웠고 시스템은 정상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용자는 어딘가 달라졌다는 것을 안다. 아버님의 맥박도 규칙적이라고 기계는 말했지만 우리가 알던 아버님의 리듬은 사라졌다. 정상과 온전함 사이의 간극에서 우리는 매일을 건너고 있다. 잠금은 늘 풀릴 수 있고 잠금 해제는 예고되지 않는다. 우리가 믿어온 ‘안전’이 얼마나 임시적인지 생각한다. 기록은 기계에 남기되 삶의 의미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남기고 나눠야 함을 다시 한 번 나에게 로그인한다. /김경아 작가

2025-12-16

호박전

어떤 기억은 시도 때도 없이 삶의 틈으로 스며들어 내가 오래전 잊었다고 믿었던 자리에 조용히 자리를 펴고 앉는다. 나에게 호박전은 그런 기억의 문을 여는 열쇠와도 같다. 사소하고 투박한 음식에 불과하지만 그 음식이 지닌 따뜻함만큼은 내 생애를 따라 부유하며 계절의 냄새처럼 되살아난다. 결혼하기 전, 아버지는 해마다 초가을이 기울어질 때쯤이면 누런 늙은 호박을 하나씩 들고 들어오셨다. 마당에서 호박을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다독이는 듯했다. 아버지가 호박을 가를 때마다 단단한 껍질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어쩐지 집 안의 고요를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장독대의 숨결처럼 어디 선가부터 천천히 일어나는 생명의 소리 같았다. 아버지는 늘 같은 방식으로 호박의 속살을 퍼냈다. 숟가락을 깊이 밀어 넣은 뒤 흩어지지 않도록 살짝 비틀고 그러고는 한 줌씩 그릇에 고이 담았다. 그 단순한 동작에 담긴 인내와 다정함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부엌으로 들어가면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후라이팬 위에서 호박전이 반질한 표면을 드러낼 때 집은 한순간에 축제 같은 온기를 머금었다. 아버지는 완성된 호박전을 내 앞에 놓으며 항상 같은 말을 덧붙였다. “뜨거우니 조심해서 먹어라.” 그 말은 사실 ‘너를 위해 만들었다’는 아버지의 또 다른 말이라는 것을 나는 어른이 되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결혼 후 집을 떠난 뒤, 호박전은 내 삶에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누구도 내게 해주지 않았고, 스스로 찾아서 해 먹을 마음도 없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아니면 그 시절의 냄새를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나는 오랫동안 아버지의 호박전을 잊으려 했다. 마치 그 맛을 잊어버리면 그 시절도 사라질 거라 착각하듯. 얼마 전, 직장을 그만둔 친구가 내게 호박전을 해 주었다. 어설픈 모양이었지만 젓가락을 들려는 순간 밀려드는 감정에 숨이 멎을 듯했다. 기름 냄새와 부드러운 감촉, 달큼한 향이 한꺼번에 스며들었다. 호박전을 한 입 베어 넣는 순간 아버지가 호박을 긁던 모습, 그릇을 기울여 반죽의 농도를 맞추던 손끝, ‘뜨거우니 조심해’라고 말하며 나를 바라보던 얼굴이 겹겹이 떠올랐다. 그 기억의 정경이 너무도 선명하여 마치 바로 어제 있었던 일처럼 가슴이 찌르르 저려왔다. 음식이라는 것은 참으로 묘하다. 말보다 앞서 마음을 건드리고 논리보다 먼저 어떤 진실을 들춰낸다. 한 접시의 음식에는 누군가의 손길과 시간, 그가 품고 있던 생각들, 꾹 눌러 담은 마음의 결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리움도, 체념도, 오래된 사랑도, 때로는 잃어버린 것들의 그림자까지도 그 속에 담겨 있다. 사람의 삶이란 결국 수많은 맛과 향을 통과하며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음식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시간을 먹고, 서로의 마음을 삼키고, 서로의 과거를 나누며 살아간다. 아버지의 호박전도 그런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한 끼의 음식이 아니라 아버지가 나에게 건넨 가장 온순한 형태의 사랑이었다.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 어설프게 감추어 둔 애정, 부드럽게 감싸려 했던 마음이 모두 그 한 장의 노란 전 속에 스며 있었다. 내가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고 그 시간을 건너오는 동안 아버지는 너무 많이 늙어 있었다. 이제는 아버지의 호박전을 맛볼 수 없다. 그러나 그 음식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손길과 숨결, 눈빛을 함께 떠올린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 장면들은 여전히 따뜻하게 익어가며 때로는 내 삶의 한 귀퉁이를 밝혀준다. 인생의 어느 날, 내가 누군가를 위해 호박전을 부치게 된다면 아버지가 내게 건넸던 그 마음의 결을 조금은 닮아 있기를 바란다. 음식은 결국 이야기다. 음식을 만든 사람의 역사와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가장 오래되고 순한 언어다. 호박전의 노란 빛이 내게 그러했듯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삶에서 건너온 이야기를 먹고 자라며 다시 누군가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조용히 건네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누런 호박을 가르던 아버지의 손등 위에 떨어지던 햇빛처럼, 그 모든 이야기는 지금도 내 기억 속에서 사르르 익어가고 있다. /김경아 작가

2025-12-09

국수 한 가닥

국수가삶을 닮았다는말은 진부하지만 잔치국수를 앞에 두고 기다리는 순간만큼은 그 말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새삼 깨닫게 된다. 국수 한 그릇을 위해 문밖까지 이어진 긴 줄에 서 있었던 날,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했다. 허기를 참는 고단함보다 오히려 그 기다림 자체가 하나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오래 끓여낸 멸치 국물처럼 사람 사이의 정 또한 금방 우러나는 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조용히 상기시키는 시간이었다. 잔치국수는 언제나 누군가를 부른다. 화려한 식재료도 아니고 값비싼 음식도 아니지만 사람을 모으는 힘이 있다. 그 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깊은 온도에서 비롯되는 듯했다. 웨이팅을 하며 줄 끝에서 바라본 국숫집 내부는 소란스러웠지만 그 소란은 피곤한 소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미세한 온도였다. 그릇에 담긴 뜨거운 국물처럼 삶이 서로에게 스며드는 소리였다. 잔치국수를 떠올리면 문득 힘겨웠던 시절이 떠오른다. 속이 뒤틀리던 날에도, 마음이 휘청이던 밤에도, 어쩐지 자극적이지 않은 그 한 그릇이 떠올랐다. 잔치국수는 늘 ‘부드럽게 삼킬 수 있는 위로’였다. 첨가물 없이 담백한 맛은 잠시나마 세상과 나의 거친 접촉을 완화해주는 한 줄의 여백 같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언제부턴가 잔치국수를 먹는다는 건 나를 다시 백색 소음으로 데려다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숫집에 들어서면 뷔페의 화려한 음식들 사이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잔치국수가 떠오른다. 늘 한쪽 구석에 조용히 놓여 있으면서도 마지막까지 사람들이 국자를 들이대는 음식, 겉으로 화려하지 않고 향도 세지 않지만 누구나 찾게 되는 음식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도 오래 함께 할 사람은 이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과한 향기로 주위를 끌지도 않고 번쩍이는 장식으로 눈을 홀리지도 않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사람이 있어서 좋았다’고 조용히 떠올려지는 존재같은 사람 말이다. 예전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돋보이고 싶었다. 인생이 원색으로 칠해져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갈수록 나는 잔치국수처럼 서서히 우러나고 은근하게 스며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겉모습은 화려하지 않아도 오래 함께 할수록 깊이가 드러나는 사람, 한 번 가까이 하면 오래 남는 향처럼 누군가의 삶에 은은하게 배어드는 사람, 그리고 마침내 뷔페의 끝에서 국수를 퍼 담는 사람들의 손길처럼 문득 떠올리면 자연스레 마음이 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얼마 전 외국에 나가 있던 친구가 몇 년 만에 귀국했다.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묻자, 그는 잔치국수를 말했다. 멀리서 지내며 한국이 그리워질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른 음식이 잔치국수였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좀 시시하게 들렸지만 그리운 맛은 가장 소박한 곳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화려한 순간에만 떠오르는 존재가 아니라 삶이 고단해질 때 생각나는 그런 존재. 머나먼 곳에 있다가 돌아온 누군가가 가장 떠올리는 이름이 나의 이름이 될 수 있을까. 정결한 멸치 국물처럼 과하지 않고 깨끗한 마음으로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잔치국수처럼 담백한 위로가 되고 싶다. 인생의 맛이 깊어질수록 나는 더 이상 빠른 향을 지닌 요리를 닮고 싶지 않다. 대신 오래 우려내야만 드러내는 깊이, 누군가의 한 끼를 위해 묵묵히 시간을 들이는 그 과정, 남에게 과하지 않게 흘러 들어가는 잔치국수의 성품을 닮고 싶다. 사람의 마음도 결국 국물처럼 저마다의 시간이 필요하고 관계의 향도 결국 천천히 배어드는 법이니까. 오늘도 나는 잔치국수 한 그릇 앞에서 생각한다. 삶이 우리를 어디로 밀어내든 지치고 흔들리는 순간마다 떠오르는 누군가가 나이기를. 화려함보다는 오래됨으로, 강렬함보다는 은근함으로, 번쩍임보다는 따뜻함으로 남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누군가의 마음속에, 오랜만의 귀국 날 다시 먹고 싶어지는 잔치국수처럼 보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한 그릇의 국수가 단지 배를 채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삶을 살아가면서 과한 말과 행동이 때때로 스스로를 소모시킨다는 사실을 배울수록 잔치국수의 단정함이 새삼 귀하게 느껴진다. 굳이 떠들지 않아도 곁에 두고 싶은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내 삶도 국수의 한 가닥의 길이만큼 길게, 온기만큼 넓게 은근히 퍼져가길 바란다. /김경아 작가

2025-12-02

아이들의 언어걸음, 어른들의 발걸음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은 족보를 족발과 보쌈으로 부르며 웃음거리가 되었다. 단어 하나가 가계도와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맛있는 고기처럼 들리는 순간, 우리는 단순한 어휘 오류라고 치부할 수 없다. 그 뒤에는 언어의 깊이가 사라졌고 아이들은 말의 의미 너머에 깔린 맥락을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이 단어 뒤에 놓인 역사와 관계 같은 무형의 세계를 놓치는 순간, 우리의 무관심은 반영 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조사들은 아이들의 문해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글을 읽어도 뜻을 모르는 학생이 늘고 있고 긴 글을 버겁게 느끼며 요약본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졌다. 통계는 숫자로 표현되지만 교실과 가정에서 느껴지는 현실은 훨씬 더 안타깝다. 아이들이 글과 마주할 때 이해와 질문보다 정답과 속도를 우선시하게 된 이유다. ‘빨리빨리’‘즉시’‘한 줄 요약’이 일상이 된 시대에서 글 읽기는 느림과 숙고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영상이 스크롤되고 앱이 순식간에 바뀌는 환경 속에서 글 읽기는 도태되었다. 아이들은 글을 마주했을 때 무슨 말을 하려는가 보다 정답이 무엇인가를 먼저 떠올린다. 그 간극이 문해력 저해의 한 축이다. 디지털 기기의 편리함은 아이들의 글 읽는 힘을 대신하지 않는다. 영상과 앱이 시간을 채우고 어른들은 그것을 ‘학습 효과’로 포장하기 쉽지만 글 읽기는 멈춤과 되돌아봄, 질문과 물음표가 필요하다. 글을 천천히 읽으며 의미를 해석하는 습관은 디지털 스크롤 속에서 쉽게 사라진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권하지만 스스로 책을 펼친 적이 적은 어른의 말은 공허하다. 언어는 공급되어야 한다. 아이는 집안의 대화, 독서, 교류 속에서 언어를 흡수한다. 어른이 보여주는 말투와 책 앞의 자세, 질문과 대화가 아이의 언어 세계를 만든다. 이러한 환경이 없다면 아이는 의미 없는 단어의 파편 속에 머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독서량이 줄어들면서 긴 문장, 낯선 단어, 복잡한 문장 구조와 마주할 기회도 사라졌다. 단순히 독서 시간이 적은 것이 아니라 글 속에서 질문을 던지고 의미를 탐색하는 기회가 줄어든 것이다. 글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글이 제공하는 느림과 여백, 생각의 틈을 포기한다는 의미이다. 교육은 오랫동안 정답을 빨리 맞히는 것에 집중해 왔다. 아이들은 빠르게 선택하고 제출하며 넘어가지만, 읽기는 천천히 질문하고 서술하며 생각을 조직하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 시간이 사라진 환경에서 아이들은 글을 마주할 때 무엇을 읽고 이해해야 하는지 질문조차 하지 못한다. 집안의 언어 환경도 아이의 언어 능력과 직결된다. 대명사로만 말하고 설명 없이 넘어가는 대화가 많다면 아이는 스스로 문장을 완성할 수 없다. 언어는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공유되고 대화될 때 살아난다. 구체적인 단어를 함께 쓰고 무심히 넘어간 문장에 왜 이런 말을 썼는지 묻는 어른이 필요하다. 속도가 미덕처럼 여겨지는 세상에서 아이들은 글을 천천히 탐색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숙제, 시험, 학원 평가가 모두 빠르게 해결되며 글 읽는 시간은 설 자리가 없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문해력 문제는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독서 태도는 숫자가 아니다. 몇 권을 읽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글을 마주하고 글을 읽을 이유를 제공하며 글을 마주할 동기가 필요하다. 아이에게 무조건적으로 책을 쥐어주고 읽으라고만 말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어른이 옆에서 문장과 단어를 함께 고민하며 질문을 던질 때 읽기는 시작이 된다. 교육과 생활 구조 속에서 아이들은 글 읽는 시간을 허용받지 못한다. 속도와 효율이 미덕인 환경에서 그 행위는 부담으로 여겨진다. 어른들이 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문해력 문제는 다음 세대로 미뤄질 뿐이다. 아이들이 족보를 족발보쌈으로 알고 사흘을 4일이라 여기는 것은 단순히 웃을 일만이 아니다. 그 안에는 우리 사회의 언어 탐험이 멈춘 흔적이 담겨 있다. 어른이 속도를 늦추고 아이와 함께 한 문장을 천천히 읽어 걸어갈 때 아이의 언어 걸음은 흔들리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을 것이다. /김경아 작가

2025-11-25

스팸문자

아침이라는 말은 언제나 새롭고 부드럽지만 완전히 나에게 결속되지는 않는다.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희끄무레한 빛은 또 하루의 시작을 알리지만 그보다 내게 먼저 도착한 것은 금속이 주는 진동이다. 침대맡에 놓아둔 전화기가 잠결에 취한 자아를 흔드는 떨림, 발신자가 불투명한 문자다. 읽어보기도 전에 나는 그것이 스팸이라는 것을 짐작한다. 이제는 번호도 낯설지가 않다. 발신인은 무의미하고 문장 구성은 비슷비슷하며 메시지가 담고 있는 내용은 늘 내가 알고 쉽지 않은 정보들이다. 나를 전혀 모르는 이가 나를 향해 보낸 것도 아닌 허공의 잔해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기어이 내 하루의 초입을 건드린다.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작은 균열을 공략하는 방식으로. 한 번 차단하면 끝날 것 같은데 스팸은 이상할 정도로 끈질기다. 오늘 막아낸 번호는 내일 새로운 번호로 다시 찾아오고, 그 다음 날에는 전화번호 뒤의 한 자리만 바꿔 또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들이 왜 ‘스팸문자’를 어쩔 수 없는 숙명처럼 받아들이는지 좀 알 것 같다. 차단이 완성이 아니라 막아도 또 다른 모양으로 다시 온다는 사실을 체감하니까 그런듯 하다. 오늘은 이 스팸문자가 우리의 인생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일상의 틈새마다 우리는 계획에 없던 염려를 한다. 마음속 깊이 저장하고 싶지 않은 걱정들, 원치 않는 근심들, 때로는 스스로도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발신된 불안의 파편들. 그것들은 우리가 허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를 가진 생명체처럼 조용히 침입한다. 어디에도 원치 않는 감정들이 있다. 잠잠하다고 느낀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또다시 정체 모를 불안감이 메시지처럼 도착한다. 오늘은 아무런 위협도 없었고 별다른 사건도 없었는데 갑자기 이유 없는 가속이, 심장을 자극한다. 마음은 물결처럼 잔잔해지는 듯싶다가도 바람 없는 날에 갑자기 일어나는 파도처럼 스스로를 흔들어 놓는다. 가끔 나에게 묻는다. “이제는 좀 평안해져도 되지 않나?” 그 질문을 던질 때마다 나는 깨닫는다. 평안을 방해하는 건 외부의 어떤 거대한 힘이 아니라 나의 내부에 있는 스스로 발신한 스팸문자라는 것을. 우리는 종종 스스로에게 무자비한 발신인이 된다. 이미 끝난 과거의 실수를 싸늘한 문장으로 다시 출력하고,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재난을 마치 공지사항처럼 보내고, 타인의 말 한 조각을 확대 해석한 뒤 그것을 불필요하게 꾸며서 새 메시지를 만들어 마음의 우편함에 꽂아 넣는다. 우리는 마음속 편지함을 불필요한 감정들로 가득 채운다. 삭제하지도 못한 채, 또 차단하지도 못한 채 묵혀둔다. 그리고 어느 날, 마음은 견디기 어려운 무게로 가득차 오른다. 그럼에도 희한하게 그 메시지들이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에는 오래 침묵한다. 불안의 정체가 스스로 만든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소한 흔들림에 마음이 지배되는 순간들을 반복하면서도 스스로가 발신인이라는 사실을 가장 마지막에야 깨닫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스팸문자 차단의 권한은 우리의 손 안에 있다. 삶의 뿌리가 흔들리는 밤들이 있다. 모든 일이 너무 무겁고 손에 잡히지 않을 때 불안은 고장난 메시지 발신기처럼 계속 울린다. 그 불안을 열어볼 것인지, 바로 지울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 하루의 향을 결정한다. 예고 없이 종종 찾아오더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자리가 넓어졌다면 불안에게 내어줄 자리는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중년을 맞으며 조금씩 배워간다. 텅 빈 시간 속에 간헐적으로 날아드는 알 수 없는 진동들, 이전처럼 급히 열어보지 않으려 한다. 삶은 끝없이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어떤 것들은 분명 소중하지만 어떤 것들은 분명 스팸처럼 자리만 차지하며 나를 소란스럽게 만든다. ‘삭제’ 버튼을 누르고 그것이 실제 위협인지 혹은 마음의 기만인지 구별하는 일은 나의 몫이다. 몇 번이고 스팸문자를 보내온다 해도 언제든, 또다시 차단할 수 있기에 이제는 괜찮다. 그 반복 속에서 평안의 깊은 자리는 더 가까워질 것이다. /김경아 작가

2025-11-18

문 하나의 거리

한때는 아무렇지 않게 밀고 나가던 문 하나가, 이토록 높은 벽이 될 줄은 몰랐다. 최근 다리 골절로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게 된 뒤 나는 ‘통행 약자’라는 낯선 문턱에 서게 되었다. 세상을 걷는 나의 발걸음만이 느리게 변했을 뿐인데 세상은 그 느림을 참아주지 않았다. 며칠 전 한 건물의 문 앞에서였다. 문을 열면 닫히고, 한 걸음 나아가면 또 닫히는 문의 냉정함 속에서 나는 몇 번이고 목발을 짚은 팔힘과 발끝으로 균형을 잡느라 허우적거렸다. 그때 마주친 여인은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볼 뿐, 도움의 손길 하나 내밀지 않았다. 그녀의 침묵은 문보다 무겁게 내 앞을 가로막았고, 나는 어색한 미소로 상황을 넘겼다. 도시 문은 닫히는 속도보다 사람 마음이 닫히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걸 깨달았다. 또 다른 날, 교재와 짐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남편이 그 일을 도와주었지만 그날은 남편이 오기 전에 잠시 짐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 손에 짐을 들어 맞지 않은 균형으로 목발을 짚고 낑낑대며 짐을 나르는 근처에 나를 바라보던 중년의 부부가 있었다. 그들의 눈은 분명히 나를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 시선 속에는 어떤 결심도 피어나지 않았다. “도와 드릴까요?” 그 한마디면 충분했을텐데, 그 말은 끝내 공기 중에서 태어나지 못했다. 꼭 도와주길 바랐던 것도 아니었고 나는 시간이 지나면 곧 회복될 사람이지만 그 짧은 순간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컸다. 세상에는 아직도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문이 닫혀 있음을 깨닫게 했다. 나 또한 그 문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누군가의 불편함을 보면서 내가 가야 할 길이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의 타이트함을 이유로 모른 체한 적은 없었을까. 이 사회의 냉담함은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금씩 무뎌진 나의 마음과 우리 모두의 문제는 아닐지. 우리의 일상은 효율과 속도에 길들여져 타인의 느림을 불편함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 결과 정서적 부재가 사회의 공기처럼 스며들었다.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손을 내밀지 못하는 것은 기술이나 제도의 결핍이 아니라 마음의 근육이 약해진 탓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닫혀 있던 것은 문이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머물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달랐다. 수업을 하기 위해 만나는 아이들은 나의 목발을 대신 챙겨주었고 물을 떠다 주며 “선생님 괜찮아요?”하고 물어주기도 했다. 순수한 배려는 계산도, 시선도 없었다. 그저 어른들에게 배운대로, 학교에서 배운대로 불편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기어이 짐도 들어주며 마냥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미소가 따뜻했다. 그들은 세상의 인정(人情)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문득 생각했다. 이 나라의 미래가 어둡다고 말하는 어른들이 가끔 있지만 정작 어두운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그 아이들을 가르치는 ‘우리 어른들’이 아닐까. 그래도 세상이 모두 차가운 것은 아니었다. 내가 목발을 짚고 택시를 탔을 때 기사님은 굳이 내려서 문을 열어 주고 한참을 기다려 주었다.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서성일 때 한 중년의 남성이 아무 말 없이 문을 잡고 서 있던 모습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들의 행동은 거창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용한 배려 속에는 언어보다 깊은 인간의 온기가 배어 있었다. 세상은 무심과 냉담만으로 이루어져 있지는 않았다. 어딘가에서 여전히 남의 불편함을 자기 일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존재가 사회를 붙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약자의 눈으로 볼 때 안타까운 부분이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절망 대신 희망을 본다. 무심함이 전염되듯, 따뜻함도 누군가의 마음에서 다른 이의 마음으로 옮겨 다닐 수 있음을 믿는다. 나는 곧 깁스를 풀고 다시 두 발로 걷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험은 나에게도 값진 경험이었다. 세상은 늘 건강한 보행자의 속도로 돌아가지만 그 사이에는 걸음이 느린 이들의 숨결이 있다. 문 하나를 열어주는 손길, 그 사소한 배려가 누군가에게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 된다. 그 문 앞에서 멈춰 선 사람으로 살 것인가. 혹은 문을 잡아주는 사람으로 살 것인가. 이제 나는 그 질문을 나의 삶 한가운데에 세워두려 한다. /김경아 작가

2025-11-11

관계의 결을 돌아보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결이 있다. 그것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시간이 켜켜이 쌓이며 만들어진다. 어떤 관계의 결은 매끄럽고 단단하게 이어지지만 어떤 결은 쉽게 틀어지고 거칠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 결의 질감을 세심히 느끼며 살아왔다. 마음의 거리를 재고 온도를 가늠하며 서로의 결이 상하지 않도록 손끝으로 어루만지듯 관계를 다듬어왔다. 나에게 관계란 늘 섬세한 조율의 예술이었다. 그런데 최근, 그 섬세한 균형이 무너졌다. 내가 서로를 알게 한 두 사람이 있었다. 나는 각각과 다른 방식으로 신뢰를 쌓아왔고 우리 세 사람의 관계가 유연하게 이어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어느 날 그 중 한 사람이 나와 의논 없이 다른 한 사람에게 과도한 선물을 건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별일 아닌 듯 넘기려 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알 수 없는 피로감에 잠식되었다. 마치 조용히 흘러가던 물 위에 돌멩이가 던져진 듯 파문이 일어났고 그 진동은 결국 나의 마음에까지 닿았다. 나는 언제나 ‘관계의 균형’을 지키는 사람이라 자부했다. 주어야 할 만큼 주고 감사를 표현해야 할 만큼 하며 감정의 흐름을 일정하게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규율이 통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돌출된 행동과 미성숙한 흐름이 관계의 결을 어긋나게 만들었고 나는 그 틈을 매만지려 애쓰다가 점점 지쳐갔다. 마치 세 사람의 관계를 억지로 맞추려는 장인처럼 나는 관계의 결 사이를 계속 문질렀다. 그러나 아무리 다듬어도 이미 나버린 미세한 금은 메우기가 어려웠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조율자’의 위치보다는 나의 기준을 자꾸 흐리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갔다. 나만의 잣대가 있는데도 상대의 방식을 맞춰주려 했다. 무게가 기울면 내가 더 들어 올렸다. 그렇게 하면 관계가 원만해질 줄 알았지만 그것은 조율이 아니라 나의 기준이 흔들리는 일이었다. 그 흔들림은 관계를 정리하고 싶은 욕구로 자꾸 흘러갔다. 관계는 늘 주고받음의 균형 위에 서 있다. 그러나 그 균형이 무너질 때 우리는 종종 자신을 잃는다. 상대가 불편하지 않게, 상황이 어긋나지 않게, 모든 흐름이 부드럽게 이어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작 나는 자 자신에게 불편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 감정의 결은 뒤로 밀려나고 타인의 기준이 나를 차지했다. 겉으로는 평화로웠지만 마음 한켠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가 쌓여갔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피로라기보다는 나를 잃어버린 데서 오는 피로였다. 관계의 온도를 맞춘다는 것은 어쩌면 오만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각자의 체온을 가지 존재이고 그 온도를 완전히 같게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온도를 동일하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인정한 채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일일 것이다. 단순한 진리를 최근에야 되새기게 된다. 가까워질수록 명확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거리가 자신을 지키는 최소한의 경계라는 것을. 이제 나는 관계 속에서 ‘어떻게 맞출까’보다 ‘어디까지 지킬까’를 먼저 생각해본다. 관계의 평온을 위해 무리하게 마음을 맞추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의 호의나 방식이 내 기준과 다르다면 그것을 불편으로 받아들이기보다 흔한 말이긴 하지만 다름으로 인정하려 한다. 관계의 진정한 성숙은 조율이 아니라 기준을 지키며 타인을 존중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너무 밀착된 관계는 숨통을 죄고 너무 멀어진 관계는 온기를 잃는다. 그 중간 어딘가 결이 맞되 엇갈리지 않는 그 지점을 찾는 일, 그것이 성숙한 관계의 기술일 것이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인간관계는 난로 같은 거리가 가장 알맞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거리를 두는 용기가 이 가을, 나에게는 필요해 보인다. 삶은 여전히 관계의 결들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결들을 억지로 다듬지 않는다. 어긋난 결은 어긋난 대로 두고 그 틈새에 바람이 스며드는 것을 허락한다. 그 바람 속에서 나는 더 단단해지고 더 나다워진다. 관계의 피로는 결국 나 자신에게 돌아오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 신호를 외면하지 않고 내 결을 다시 세워가는 일이 남은 인생의 길을 걸어가기 전, 관계의 결을 다시 배워야 하는 삶의 태도일 것이다. /김경아 작가

2025-11-04

크레센도

어린 시절에는 세상이 조용했다.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았고, 시간은 언제나 나를 기다려 주었다. 그때의 하루는 낮게 깔린 선율 같았다. 피아노의 도와 레 사이를 오가며 간간이 불협의 음이 섞여도 금세 사라지곤 했다. 나는 나의 음표에 맞춰 살아도 괜찮았다. 어느새 어른이 되어도 벌써 어른이 된 중년에 접어들었다.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해야 하고 일정표는 빈칸이 없으면 불안할 정도로 꽉 차 있다. 손끝에는 처리해야 할 문서와 원고들이, 마음 한쪽에는 챙겨야 할 관계들이 쌓였다. 나의 하루는 점점 음량이 커졌다. 아침엔 휴대폰 알람으로, 점심엔 수업 알림으로, 저녁엔 문자 알림으로···. 세상은 나에게 쉬지 말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제는 음악의 볼륨을 줄이는 방법을 잊은 사람처럼 살아간다. 어릴 땐 소리가 점점 커지는 음악을 듣는 일이 설렜다. 그건 무언가가 완성되어 간다는 신호였으니까. 음악에서 크레센도(crescendo)란 ‘점점 세게, 점점 커지게’ 연주하라는 뜻이다. 처음엔 낮게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힘이 더해지고 소리가 세상을 가득 채운다. 그 단어에는 기대와 긴장, 생동감이 함께 깃들어 있다. 나는 늘 그 악상기호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어떤 순간에도 점점 커져가며 하나의 절정에 다다르는 것이 마치 우리의 꿈이 커지고 포부가 커져가는 순간에도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크레센도는 다르다. 내 인생의 음량은 점점 커지는데 정작 내 마음의 여백은 점점 작아진다. 처음엔 잠시일 줄 알았다. 일이 많아도, 챙겨야 할 사람이 많아도, 언젠가 다시 조용한 구간이 찾아오리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의 악보엔 ‘디미누엔도(점점 작게)가 잘 없었다. 지휘자는 언제나 손을 들어 올리고 나는 그 손짓을 따라 힘껏, 있는 힘껏 소리를 내어야만 하는 구간이 너무 길었다. 가끔 나는 묻는다. 이 음악은 언제 끝나는 걸까. 언제쯤이면 쉼표를 얻을 수 있을까. 이상하게도 나는 여전히 그 무게 속에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 누군가의 기대를 감당하며 나를 필요로 하는 손길을 만나며 때로는 버겁고 때로는 울컥하면서도 나는 계속 나의 소리를 내고 있다. 그건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의 본질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삶이 점점 커지는 소리에 휩쓸리면서도 그 안에서 새로운 조화를 찾아내는 일일지도. 친구들은 늘 나에게 일을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왜 그렇게 일을 많이 하냐고 물어올 때마다 나는 명징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해야 해서’라는 말은 뭐가 초라해 보이고, ‘좋아서’라고 말하기에도 뭔가 진심이 아닌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자발적 연주자가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일원으로 살아가게 된다. 각자의 파트가 있고 그 파트는 서로 얽혀서 하나의 곡을 만든다. 내가 내 음을 멈추면 누군가의 멜로디가 끊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멈추지 못하는 것 같다. 조금 지쳐도, 조금 흔들려도, 나의 악보를 읽어 내려간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크레센도는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모두의 삶이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아이의 울음 속에서, 누군가는 회사의 불빛 속에서, 누군가는 늦은 밤 병실의 모니터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소리를 조금씩 키워내고 있었다. 이 커짐은 소음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부르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이 크레센도는 끝나지 않아도 괜찮다. 언젠가 음악은 자연스럽게 다음 악장으로 넘어갈 테니까. 잠시 조용해질 때, 그 여백 속에서 나는 다시 내 소리를 조율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단단한 음으로 울릴지도 모른다. 단단한 음은 세게 내는 소리가 아니라 오래 울릴 수 있는 소리일 것이다. 삶이 나를 흔들 때마다 나는 그 울림으로 다시 나를 지탱해 본다. 삶은 한 곡의 연주다. 누구도 리허설 없이 각자의 템포로, 각자의 악기로 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모여 세상을 채운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커져가는 크레센도로. 우리 모두의 크레센도로. /김경아 작가

2025-10-28

가장 단순한 리듬

다리를 다친 지 3주째다. 처음에는 며칠만 버티면 낫겠거니 생각했지만 붓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다리를 움직일 수 없으니 온 세상이 멈춘 듯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창밖의 햇살만 바삐 움직였고 나는 그 속에서 고여 있는 물처럼 하루를 흘려보냈다. 시간을 채워보려 애썼다. 책을 읽고 그동안 못 본 영화와 드라마를 정주행했다. 밀린 글도 써 보았다. 그런데 눈으로는 글자를 따라가는데 마음은 자꾸 다른 곳으로 흘렀다. 첫 직장 생활을 하는 아이들 염려,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해 조급해진 마음, 내가 책임져야 할 역할에 대한 부재 등의 생각으로 아무리 화면을 넘기고 문장을 써 내려가도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갑갑함이 가슴 속에서 둥둥 부풀었다. 그때 주방 식탁 한쪽에 놓여 있는 멸치 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 전 명절에 시누이가 많이 샀다며 나누어 준 멸치였다. 별생각 없이 식탁에 앉아 멸치를 한 줌 꺼냈다. 신문지를 깔고 작은 접시를 옆에 두었다. 그리고 한 마리씩 집어 들어 머리와 내장을 떼어냈다. 처음에는 그저 손을 움직이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단순한 움직임이 마음을 가라앉혔다. 멸치를 다듬는 동안에는 잡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손끝이 천천히 움직이는 동안 머릿속은 고요해졌다. 작은 생선의 은빛이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거실 안에 바다 냄새도 퍼지는 것 같았다. 남편은 힘들다고 쉬어라고 했지만 나는 그 평온함을 놓치고 싶지 않아 작은 멸치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짠 냄새를 맡으며 문득 깨달았다. 인생이란 것도 결국 이런 손끝의 일과 비슷하다는 것을. 살면서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붙잡고 산다. 해야 할 일, 관계의 의무, 지나간 일에 대한 미련, 그 모든 것들이 내장처럼 붙어 있어 마음을 무겁게 하고 비릿하게 만든다. 하지만 멸치의 머리와 똥처럼 떼어내야 더 맑아지는 것들이 있다. 불필요한 감정, 의미 없는 걱정, 내가 만들어 놓은 확증편향, ‘이래야만 한다’는 고집들. 그것들을 하나씩 떼어내자 내 마음도 조금씩 가벼워졌다. “요즘 뭐해, 다리는 좀 어때?”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 물었다.“멸치 따.”“그게 재밌어?”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머리가 맑아졌어.” 단순한 손의 리듬이 나의 빈 시간을 채워주었다. 생각할 것도 비교할 것도 없었다. 단순함이 결국은 마음을 맑게 했다. 단순하다는 건 단조롭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며 본질에 가까워지는 일이었다. 세상을 다 가지려 할 때는 늘 모자라지만 덜어낼수록 오히려 충분해지는 역설의 리듬을 깨닫게 했다.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은 때로 얻는 것보다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손에 쥔 것을 내려놓을 때, 나는 비로소 내 안에 남아 있던 고요한 공간을 발견한다. 그곳엔 욕망도 후회도 없고 다만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마음 하나뿐이다. 그 마음이 나를 조금씩 자유롭게 만들었다. 깁스한 다리는 여전히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고요를 느낀다. 예전엔 하루가 쏜살같이 흘러 내 몸이 두 개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는데 지금은 느리게 흐르는 구름의 소리까지 들리는 것만 같다. 그 느림이 내게 한 가지를 가르쳐 주었다. 세상은 늘 복잡해 보이지만 결국 우리가 단순하게 보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을. 바다는 끊임없이 파도를 일으키지만 멀리서 보면 한결같이 출렁인다. 우리의 사는 모습도 복잡하게 얽혀 있는 듯 해도 끝내는 하나의 리듬으로 이어진다. 다만 그 리듬을 듣기 위해서는 잠시 멈춰야 한다. 오늘도 멸치 한 줌을 집어든다. 똥을 따고 머리를 떼고 그릇에 가지런히 모아둔다. 단순한 손의 움직임이 내 마음의 박자가 된다. 어느새 시간은 아주 고요히 흘러가고 나는 그 리듬 속에 놓여 있다. 깁스한 다리로 꼼짝 못하는 이 시간, 나는 삶의 또 다른 속도를 배운다. 단순한 일 속에서도 마음의 음악은 흘러나온다. 인생도 가장 단순한 리듬으로 갈 때 가장 조화롭고 가장 나답게 흐르는 것이다. /김경아 작가

2025-10-21

걸음을 멈추고서야

세상은 늘 걷는 자들의 속도에 맞춰 돌아간다. 나는 그 흐름 속에서 나도 모르게 발을 재촉하며 살아왔다. 지난 금요일, 평범한 계단 한 칸이 내 걸음을 멈춰 세웠다. 헛디딘 발목이 심하게 부어올랐고 시커먼 멍이 자리를 잡았다. 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뼈에 금이 갔고 인대가 파열된 상태였다. 깁스를 하고 3주 동안은 땅에 발을 디딜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었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당연히 여기며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하는 시간이었다. 계단 몇 칸, 문턱 하나, 식탁 의자 하나가 이렇게 높은 장벽이 될 줄은 몰랐다. 혼자 병원에 가는 길,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일, 진료비를 수납하고 다시 택시를 호출하는 과정이 하루치 에너지를 다 소진하게 했다. 택시가 오기까지 목발에 의지하여 기다려야 하는 그 몇 분이 유난히 길었고 내 발끝은 사무치게 땅을 그리워했다. 깁스에 갇힌 발을 보며 나는 묘한 고립감을 느꼈다. 세상은 그대로 움직이는데 나만 정지된 듯했다. 가장 서운했던 건 사람보다 내 마음이었다. ‘괜찮냐’는 말 한마디를 기다리던 나는 정작 아무에게도 내 고통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가까웠던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의 근황과 자신의 힘든 상황만 이야기했고 나는 ‘그래, 그랬구나’하며 웃어 보였다. 웃음 뒤에 서운함이 밀려왔다. 다리를 다쳤다고 해서 세상이 나를 배려해 주리라는 기대는 너무 큰 기대였나 보다. 가족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바쁘게 살아갔다. 내가 청소하고, 챙기고, 잔소리하던 일들을 대신해 줄 거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식사 시간이 되어도 밥을 챙겨주는 사람은 없었고 분리수거를 비롯한 많은 집안 일들은 쌓여갔고 더뎌졌다. 내 눈에는 보이지만 내 발은 꽁꽁 묶여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손과 발이 되어주던 일상은 나 혼자 만들어 낸 순환이었구나, 결국 아프면 나만 손해구나 하는 자조가 밀려왔다. 그 와중에도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이들이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발목은 좀 어때?’라며 문자를 보내오는 친구, 뜬금없이 반찬을 가득 사서 건네주는 친구, 그들의 짧은 안부는 놀랍게도 진통제보다 나를 더 깊이 진정시켰다. 몸은 불편했지만 마음 한편은 포근하게 데워졌다. 인간관계란 결국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작은 행동 하나, 작은 관심 하나, 작은 말 한 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버티게 만든다. 움직이지 못하니 오히려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창문 너머로 스치는 햇살의 각도, 마룻바닥을 따라 번지는 먼지의 그림자, 하루에도 몇 번씩 일상의 기적을 체험하며 감사하는 내 목소리, 나는 그동안 너무 빨리 달렸고 너무 많이 여기저기 챙기며 살아왔던 것이다. 나를 돌볼 시간도, 나를 위로할 여유도 없이 타인들만 챙기며 너무 많이 뛰었다. 걸음을 멈추고서야 비로소 내가 어디까지 챙기고 어디쯤에서 멈춰야 하는지가 보였다. 3주라는 시간은 짧지만 나에게는 길게 느껴졌다. 아직 나는 깁스에 갇혀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발을 내려 딛고 싶은 충동이 밀려오지만 통증이 주는 무게가 그것을 막는다. 멈춤 속에서 다른 것들을 보게 된다. 물 한 컵을 먹기 위해 애쓰는 손끝의 섬세한 의지가 평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예전에는 몰랐다. 걷는다는 것은 그저 이동하는 수단만이 아니라 세상과 연결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간다. 깁스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손이 자유롭다는 것. 두 발이 동시에 땅을 딛는다는 것, 식탁까지 걸어가 밥을 먹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 평범한 동작들이 이렇게도 눈부신 행위였다는 걸. 몸이 멈춘만큼 시선은 깊어졌고 불편함은 감사의 형태로 변해갔다. 세상이 내게서 멀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에 기대어 살아왔다는 사실을 지금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깁스를 풀면 나는 다시 자유로워지겠지만 예전처럼 무심히 걷지는 않을 것이다. 바람이 발끝을 스치는 감각, 계단을 오르며 들리는 숨소리, 길가의 사람들과 스치는 짧은 인사마저 새롭게 느낄 것이다. 아픔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나는 삶을 다시 배운다. 걸음이 멈춘 자리에서 비로소 보게 된 것들, 그것은 나의 쉼이고 인생의 또 다른 시작이다. /김경아 작가

2025-10-14

가을 바람의 안부

아침에 창문을 열자 차가운 기운이 거실에 내려앉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잔열이 남아 도로 위를 달궈 놓았던 바람이었는데 오늘은 달랐다. 뚜렷하게 결이 바뀐 공기 속에서 나는 하던 일들을 잠시 멈췄다. 길가의 가로수가 어느새 하나씩 물들어가고 있었다. 아파트 주위 들풀도 붉은빛을 품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는 순간은 늘 조용하지만 그 조용함 속에서 삶의 큰 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그 바람이 좋아 모자만 쓰고 아파트 둘레길을 걸었다. 바람은 낯선 악보처럼 내 마음에 선율을 그려 넣었다. 가을의 향을 품고 내게 감긴 그 바람이 좋아 집 안으로 들어가기가 싫었다. 가을바람은 단순히 계절을 알리는 신호가 아니라 오래된 기억의 문을 열어젖히는 열쇠 같았다. 문득 어린 시절, 운동장에서 깃발처럼 펄럭이던 학창시절도 떠올랐고 바람을 타고 교문을 달려 나가던 여러 장면들도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미래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알 수 없는 설렘을 품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와는 다르다. 살아온 세월은 바람의 방향처럼 끊임없이 변했고, 그 변화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달려왔다. 그러나 가을바람은 다급히 흘러가는 발걸음을 붙들어 세운다. 잠시 멈추어 하늘을 올려다보라고, 고개를 들어 구름의 흐름을 바라보라고, 바람은 그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산책길 옆 작은 벤치에 앉았다. 낯익은 풍경이었지만 바람은 그것을 전혀 다른 그림처럼 바꾸어 놓았다. 느티나무 잎새가 흔들리는 소리는 오래된 편지의 활자처럼 내 귀에 새겨졌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 어느 집에선가 들리는 바이올린 소리, 내 안에서 되살아나는 묵은 감정의 소리들이 들려왔다. 가을바람은 안부처럼 다가온다. 무더운 여름을 잘 지냈는지, 마음은 무겁지 않은지, 스스로를 잊고 살지는 않았는지. 바람의 물음 앞에서 나는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가족을 돌보느라. 일에 쫓겨 사소한 근심에 사로잡히느라, 내 안의 목소리를 외면한 날이 많았다. 그러고 보면 계절의 바람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는 가장 솔직한 거울인지도 모른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바람이 내 어깨에 가만히 내려 앉았다. 위로처럼 느껴졌다. 무더운 여름을 지나오면서 잘 버텨냈으니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위로는 멀리 있지 않았다. 화려한 말이나 거창한 행동이 아니어도 계절의 바람 한 줄기면 충분했다. 돌아오는 길 카페 앞 노란 국화가 눈에 들어왔다. 향기가 풍겼다. 바람은 향기를 데리고 다닌다. 삶에서 중요한 것들도 어쩌면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을지 모른다. 오래 머물지는 않지만 그 순간의 향기와 빛깔은 마음에 오래 남는다. 사랑도, 추억도, 슬픔도 모두 바람처럼 다녀가지만, 다녀간 자리에 남는 흔적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 집 앞에 다다르자 오후의 빛이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햇살은 정오의 날카로움을 거두고 서쪽 하늘로 기울며 누런 금빛을 흘러내렸다. 나뭇잎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줄기마다 바람이 흔들어놓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가을바람은 여전히 곁을 맴돌며 내 결음을 가볍게 했다. 그 바람 속에서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바람은 흘러갔다. 흘러감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몸짓일 것이다. 오늘의 바람이 내일의 구름을 움직이고 다시 새로운 계절을 불러오듯이. 바람은 붙잡을 수 없는 것이라 더 귀하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이야말로 마음에 오래 남는다. 바람은 흘러가지만 그 곁에 스친 향기와 서늘함은 내 안에서 겹겹의 결을 이루며 쌓인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삶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일 것이다. 오래 머물지 못할지라도 잠시 머무는 순간에 따뜻한 기운을 건네준다. 가을바람은 오늘도 그렇게 덧없음 속에서 충만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바람을 맞으며 비로소 나는 나에게 안부를 묻는다. “너는 잘 지냈느냐.”그 물음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경아 작가

2025-10-12

물레방아

호수공원을 거닐다 보면 잔잔한 물 위에 유유히 떠 있는 연꽃들 사이로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물레방아가 눈에 들어온다. 철썩이며 물을 퍼 올리는 소리도 없고, 강가처럼 세찬 물살도 없지만 호수공원의 물레방아는 고요한 물결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쉼 없이 돌아가고 있다. 나들이 나온 사람들은 그저 하나의 풍경으로 지나치지만 그 안에는 묵묵히, 자기 일을 감당해내는 단단한 내공이 깃들어 있다. 물레방아는 한낱 장식물처럼 보일지 몰라도 여전히 그 본래의 쓰임을 잊지 않는다. 물이 주는 힘을 받아 톱니바퀴가 맞물리며 돌아가는 순간, 나는 시간의 무게를 느낀다. 곡식을 빻아내던 지난날의 소임은 사라졌어도 그 반복의 움직임은 여전히 우리 삶과 겹쳐진다. 나의 하루 또한 다르지 않다. 같은 일, 같은 동작, 같은 장소, 같은 일과가 이어지지만 그 속에서 삶이 빚어지고 세월이 완성된다. 물레방아의 바퀴가 돌고 도는 동안 계절도 바뀌고 사람들의 얼굴도 변해간다. 한 번 돌 때마다 똑같아 보이지만 물은 언제나 새 물이고 풍경은 조금씩 달라져 있다. 나의 하루도 같은 자리를 지키는 듯해도 매일의 햇살과 바람이 다르고 그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늙고 조금씩 익어간다. 반복은 단순한 되풀이가 아니라 하루하루를 채워내는 원의 결이다. 물레방아는 자신의 자리에서 이탈하지 않고 그 사실을 조용히 들려준다. 반복의 무늬가 모여 삶의 무게를 지탱한다는 사실을 물레방아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물레방아는 호수의 물결을 거스르지 않는다. 다만 흘러오는 물을 받아내어 제 몸을 돌리고 그 힘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할 뿐이다. 불평하지 않고 억지로 앞서려 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물레방아의 가장 큰 지혜일지 모른다. 우리 삶 또한 그러하다. 바꿀 수 없는 환경을 원망하기보다 그 안에서 자기 길을 걸어갈 때 삶은 비로소 단단해진다. 가을이 성큼 다가온 길목에서 물레방아를 바라보고 있자니 세상의 성급한 발걸음과는 달리 한결같은 그 움직임이 내 마음을 붙들어 놓는다. 성취와 잘하고 싶은 욕심만을 좇느라 쉼 없이 달리던 나의 질주가 잠시 멈춰 서고, 호수 위를 스치는 바람처럼 고요한 평온이 찾아온다. 삶은 반드시 직선으로 뻗어야만 빛나는 것이 아니다. 돌고 도는 원 안에서 고요히 제 몫을 감당하는 것 또한 존귀한 삶의 얼굴임을 가르쳐준다. 호수공원의 물레방아는 혼자가 아니다. 햇빛이 닿아야 반짝이고 물이 흘러야 움직이며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어울려야 하나의 풍경이 된다. 초록빛 연잎들이 바람에 일렁이며 물결을 만들고 그 사이사이 연꽃들이 고운 무늬를 더했다. 연못의 심장처럼 연밭과 어울려 반짝이며 톱니바퀴는 연밭과 어울려 하나의 풍경을 완성했다. 지나가는 바람과 새소리마저 그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 결코 혼자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흔히 스스로 고립되었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가족과 친구, 스쳐 지나가는 이웃의 따뜻한 인사 하나까지도 우리의 하루를 지탱해준다. 물레방아가 연밭과 햇빛, 바람, 웃음소리에 기대어 서 있듯 우리의 존재도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간다. 그렇기에 자연도 삶도 풍경이 되고 의미가 되어 아름다움을 완성한다. 하루가 여백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나는 불평을 조금 줄여 보리라 다독여 본다. 세상은 늘 돌고 도는 물살 같아도 그 물살을 받아내는 물레방아처럼 묵묵히 나아가고 싶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구멍 난 삶의 일부가 채워지고 단단히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물레방아 앞에 서서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운동을 나오신 어르신들도 소풍을 나온 아이들도 주위를 돌며 포즈를 잡고 있다. 사람들의 발걸음과 이야기 소리가 어우러져 풍경은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할 때 사람과 자연은 저절로 모여들고 의미도, 아름다움도 찾아온다는 둥글둥글한 삶의 법칙을 문득 깨닫는다. /김경아 작가

2025-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