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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랜드마크는 도시의 의지다

나는 ‘랜드마크’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느낀다. 도시는 랜드마크를 통해 달라질 수 있지만, 그 기대가 너무 쉽게 정치적 수사로 소비되는 장면 또한 숱하게 봐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랜드마크의 영향력을 부정하긴 어렵다. 도시재생에서 랜드마크의 효용을 말할 때 흔히 ‘빌바오 효과’가 언급된다. 철강·조선·항만물류에 의존하던 스페인의 산업도시 빌바오는 1970~80년대 산업구조 변화로 실업과 도시 쇠퇴가 심화된, 이른바 망해가던 공업도시였다. 그러나 1997년 강변의 낡은 항만 부지에 건축가 프랑크 게리가 설계한 구겐하임 미술관 빌바오가 들어서며 도시 이미지는 관광과 문화로 전환되었고, 빌바오는 ‘문화로 재탄생한 도시’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나의 랜드마크가 만들어낸 이 강력한 파급력은 이후 수많은 도시에서 랜드마크 프로젝트의 당위성을 정당화하는 상징으로 작동해왔다. 하지만 빌바오가 남긴 진짜 교훈은 “유명한 건물 하나면 된다”가 아니다. 랜드마크는 해답이 아니라 촉매이며, 촉매가 작동하려면 접근성·동선·주변 공간·프로그램·운영까지 도시 전체의 준비가 필요하다. 외형만 모방한 랜드마크가 반복해서 실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는 동대문 DDP설계로 잘 알려진 런던의 자하 하디드 건축사무소에서 12년 동안 일하며 여러 나라의 랜드마크 프로젝트를 경험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형태’지만, 실제로 더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은 도시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였다. 랜드마크는 멋진 조형물을 넘어, 사람들이 실제로 걷고 머물고 다시 찾게 만드는 경험의 장치여야 한다. 운영이 빈약하면 사진 배경으로 끝나고, 주변과 단절되면 섬이 되며, 도시의 이야기와 연결되지 않으면 상징은 금방 낡는다. 최근 포항시가 영일대해수욕장 공영주차장 부지에 노보텔 브랜드의 26층 규모 특급호텔을 건립해 체류형 관광과 MICE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본궤도에 올린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숙박시설을 넘어, 포항이 어떤 도시로 전환하려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다. 그러나 관광도시는 “좋은 호텔을 지었다”는 사실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진정한 랜드마크가 되려면 “특급”이라는 등급이나 외관의 화려함이 아니라, 포항만의 다름과 가치를 물리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누가 이 건축을 설계했는가,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졌는가, 이 프로젝트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건축가의 정체성과 설계의 방향, 공공과 민간이 어떤 비전을 공유했는지까지 모두 도시 브랜딩의 일부가 된다. 결국 사람들은 호텔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그 호텔이 대표하는 포항의 세계관을 경험하러 온다. 랜드마크는 차이와 가치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물리적 증거여야한다. 그때 비로소 이 프로젝트는 미래 세대를 위한 유산이 될 수 있다. 어디선가 본 듯한 건물이 아니라, 여기만의 건물이어야 한다. 결국 랜드마크는 도시의 자존심이 아니라 도시의 의지를 스스로 공간과 형태로 증명한다. 포항의 새로운 특급호텔이 “건물 하나”가 아니라, “도시의 시스템”을 바꾸는 촉매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조관필 한동대 교수

2026-02-01

21세기 도시 생존은 ‘차이’에 달려 있다

20세기 도시 발전의 목표는 ‘결핍 해소’와 ‘차이 제거’에 있었다. 서울과 지방 간 주거·교육·문화 등 삶의 조건을 구성하는 인프라 격차를 줄이는 것이 곧 발전이며 진보라고 믿어졌다. 어디를 가나 동일한 아파트 브랜드와 프랜차이즈 상업시설, 효율 중심의 도로망은 도시를 빠르게 팽창시켰고, 우리에게 안정과 편의를 제공했다. 개발의 언어는 효율과 속도가 중심이 되었고, 차이는 불편한 것으로 간주되어 제거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사라진 것은 단지 불편함만이 아니었다. 각 도시의 고유한 특성과 특별한 개성도 사라졌다. 낯선 도시의 역에서 내려도 어디선가 본듯한 대단지 아파트 숲이 눈앞을 가로막고, 골목마다 똑같은 프랜차이즈 간판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 서울 외곽의 수많은 신도시 프로젝트에서부터 지방 도시, 유럽 교외에서 아시아 해안 도시까지, 같은 건축물과 인프라, 접근 방식, 논리가 복사된 듯 반복되었다. 도시는 효율적으로 작동하지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무색무취한 공간으로 전락했다. 요즘 도시, 특히 지방 도시의 문제는 인프라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기본적인 도로와 건물, 각종 시설은 이미 충분히 갖추어져 있다. 진짜 문제는 “왜 굳이 이 도시에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지방소멸은 단순한 인구나 일자리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도시가 더 이상 어떤 삶을 제안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지방 도시가 삶의 선택지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단순히 일이 많은 도시만을 고르지 않는다. 일 이후의 삶까지 상상하며, ‘나다운 삶’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선택한다. 결국 사람들이 도시를 고르는 기준은 그 도시만이 가진 공기의 질감, 축적된 역사의 기억, 그리고 그 안에서 형성되는 고유한 관계의 방식 말이다. 포항과 경북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산업과 항만, 대학과 자연이라는 충분한 자산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 도시가 어떤 삶을 제안하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어느 도시에나 있는 프랜차이즈와 똑같은 풍경으로 채워지는 ‘어디에나 있는 도시’가 되는 순간, 젊은 세대는 떠나고 도시는 빠르게 늙어간다. 따라서 21세기 도시 전략은 장식이 아닌 구조적 차이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차이는 일회성 축제나 화려한 건축물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시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을 보호하며, 어떤 삶의 방식을 지지하는지에 대한 구조적 선택이다. 공간과 건축, 문화와 산업, 그리고 일상의 방식까지 포함한 총체적 차이다. 차이는 단순히 더 많은 일자리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람들을 이 도시에 머물고 싶게 만드는 이유다. 20세기의 인프라가 이동과 생산을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21세기의 도시는 여기에 더해, 관계·기억·정체성을 만들어내는 인프라를 갖추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빠르고 편리한가가 아니다. 이 도시만이 제공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 무엇인가다. 다름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가 살아남기 위한 핵심 전략이다. 차이를 잃어버린 도시에 미래는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조관필 한동대 교수

2026-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