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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불장증시와 서민경제

증시를 해본 적도 없고 주식이라곤 한주도 가져보지 못한 증시 문외한이 보는 한국증시는 정상이 아니다. 증시란 실물경제의 성장이 밑바탕 되면서 장이 올라가는 것이 정상인데 우리 실물경제를 보면 지금의 국내 증시는 분명 과열이다. 작년 초 2000 초반이던 코스피 지수가 불과 1년 반 만에 약 3.5배나 뛰었다. 작년 국내 주식은 76%가 급등, 주요국 증시 중 가장 높은 상승세를 기록했다. 이달 11일 코스피 지수가 7800선을 훌쩍 넘어 8000선 고지를 코앞에 뒀다. 증권가에선 1만2000선 돌파도 가능하다는 장밋빛 전망이다. 너도나도 빚내 증시에 덤벼들면서 신용융자 잔고가 사상 처음으로 36조 원을 넘었다고 한다. 신용융자 잔고란 투자자들이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산 뒤 갚지 않은 돈을 말한다. 파죽지세로 달려가는 국내 증시의 일등공신은 삼성증권과 SK하이닉스다. 두 회사의 시가총액이 전체 총액의 거의 절반인 47%다. 반도체 호황이 국내 증권시장에 불을 붙이고 있지만 900여 전체 종목 중 실제 오르는 종목은 200여 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700여 개는 내리거나 제자리걸음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폭등세에 가려 증시 전체가 마치 폭등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중동전쟁으로 국제유가가 오르면서 지난달 국내 소비자 물가는 1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2.6% 올랐다. 주식시장 호황과는 별개로 시장경제는 고물가로 여전히 악화일로다. 장사가 안돼 가게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의 고통스런 목소리도 여전하다. 증시와 실물경제 간에 놓인 괴리감을 메울 정책이 안 나오면 우리경제에 어떤 위기가 닥쳐올지 모른다는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5-12

리더십과 혁신경영

기업은 위기에서 본질이 드러난다. 그 위기를 돌파하는 힘은 결국 리더십에서 나온다. 이순신의 리더십은 전쟁 영웅을 떠나 위기 속 조직을 살리고 약한 자원을 강한 경쟁력으로 바꾼 ‘혁신형 리더십 모델’이다. 12척의 배로 압도적인 적을 상대하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꿨다. 그의 승리는 전투의 결과가 아니라, 준비와 전략, 조직을 움직이는 리더십의 승리였다. 이러한 탁월한 리더십을 재조명하고, 매일 아침 전쟁을 치루는 기업 혁신 경영에 어떻게 적용하여 경쟁력을 갖춰나갈 것인가, 그 시사점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이순신 리더십은 첫째, 명확한 사명이다. 싸움의 이유를 분명히 했고, 조직원들에게 생존이 아닌 ‘지켜야 할 가치’를 제시했다. 오늘날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스타벅스는 커피를 팔아 이익 실현보다 고객의 니즈(Needs)를 읽어 ‘휴식 공간과 일터 제공’이라는 컨셉으로 성공한 것은 매출과 이익만이 아니라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지에 대한 조직의 방향을 명확히 했다. 둘째, 철저한 준비다. 그는 해류와 지형, 적의 움직임까지 분석하며 전투를 설계했다. 감이 아니라 데이터와 사실에 기반한 판단이었다. 기업 경영에서도 경험과 직관에 의존하는 시대는 끝났다. 미래 경쟁력 확보 방향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과 사전 시뮬레이션 수준이 좌우한다. 셋째, 현장 중심 리더십이다. 그는 언제나 전장의 최전선에 있었다. 책상 위가 아니라 현장에서 답을 찾았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회의실이 아닌 생산현장, 고객 접점에서 문제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기획과 실행의 불균형은 성과를 장담할 수 없고, 현장을 떠난 리더십은 현실과 괴리될 수밖에 없다. 넷째, 리더와 조직의 신뢰다. 수장의 인간적 신뢰와 리더십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목숨을 건 전쟁에서 전투력과 승리는 불가능한 것이다. 또한 공정한 평가와 원칙 있는 행동은 조직의 결속을 맺는다. 이순신의 군대가 끝까지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는 전술이 아니라 리더와 구성원 간 신뢰였고, 신분을 떠나 열심히 하면 성장의 기회가 부여된다는 믿음인 것이었다. 기업에서도 신뢰 없는 조직은 형식적 업무와 관행적 행위가 일어나고,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조직 문화가 형성되어 진정한 혁신을 실행할 수 없다. 이순신의 리더십이 오늘날 기업 혁신 경영에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위기 속에서도 원칙을 잃지 않는 리더십이다. 극심한 압박과 열세 속에서도 준비 없는 출전 금지, 백성과 병사 보호 우선 등 ‘기본과 원칙’이 무너지지 않았다. 기업에서 보면, 안전을 베이스로 설비 안정, 노무에 흔들리지 않는 현장 규율, 데이터 기반 판단 등 원칙과 일관성이다. 적은 자원으로 최대 효과를 만드는 전략형 리더십이다. 물살, 지형, 타이밍, 심리전을 활용하여 이기는 전쟁을 했다. 생존을 위한 인원, 투자, 시간 부족에도 핵심 역량에 선택과 집중하며, 차별화된 기술과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기업 경쟁력은 리더십과 구성원 생각 수준, 행동에 따라 결정된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

2026-05-12

발칸반도의 비극, 2차 세계대전의 서막

발칸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세르비아 대표단과 협상테이블에 앉은 크로아티아 대표단은 하나의 통합안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세르비아는 카라조르지예의 왕가의 지도아래 한 살림을 꾸리기로 했다며 발표했다. 드디어 하나의 나라로 합쳤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앞으로 전개될 폭력의 서막에 불과했을 뿐이다. 결국 세르비아의 왕 알렉산다르의 폭정을 피해 이탈리아 등지로 망명길에 오른 크로아티아 민족주의자들은 극우단체 ‘우스타샤’를 조직해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이 뒤에는 무솔리니가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었다. 우스타샤의 최종목표는 순진하고 바보스럽기만 했던 과거, 세르비아에 나라를 헌납한 치욕적인 역사를 뒤집을 크로아티아 독립이었다. 그 과정이나 방식은 반드시 무력을 통해서였다. 이들은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나치의 지원 하에 세르비아인 학살의 선봉에 선다. 알렉산다르 역시 이들의 손에 죽음을 면치 못했으니 뿌린 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입증한 셈이다. 그러나 역사와 아무런 상관없이, 세르비아 왕 알렉산다르와는 하등의 관계없는, 권력의 단물을 단 일도 빨아본 적이 없는 단지 크로아티아 땅에서 세르비아인이란 이유로, 즉 오래전 피폐해진 삶을 벗어나고자, 아니면 오스만제국의 압정을 피해 고향을 떠나 크로아티아에 정착한 뒤, 그것에서 대를 이어 살고 있던 세르비아인들은 프레차니란 이유로 죽어야 했던, 특히 여성과 어린아이의 주검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각설하고, 유고슬라비즘의 완성, 즉 세르비아의 왕이자 유고슬라비아의 왕으로 등극한 알렉산다르의 대세르비아주의는 일단의 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국제적으로도 알렉산다르는 탁월한 외교술을 발휘하면서 문화의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던 프랑스로부터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국제사회는 모든 것이 국방과 경제적 논리만 통하는 법이다. 이익이 나지 않는 곳에서 저희들끼리 지지고 볶고 뭐를 한들 아무런 상관이 없는 국제사회다. 그러니까 유고슬라비아 친 프랑스 정책은 반 이탈리아라는 의미를 갖는다. 원래가 발칸반도 여러 민족은 이탈리아라면 이를 갈았다. 아드리아해에 대한 지배권을 위해 이탈리아의 집요한 침략에 대한 반감이 상상을 초월했다. 지도에서 국경을 찾아보면 발칸반도 서북쪽 끄트머리 발칸반도에 살짝 굽어진 땅이 여전히 이탈리아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기도 한다. 1934년 10월 알렉산다르는 강대국 프랑스의 사랑을 확인받고, 더불어 대내외에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기 위해 프랑스 마르세이유를 방문했다. 그러나 어찌 알았을까? 그도 한 인간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렇게 허망하게 갈 줄 알았다면 과연 그가 그따위 독재정을 비롯해 차별적 정책을 버젓이 펼칠 수 있었을까. 알렉산다르는 의기에 넘치는 마케도니아 출신 슬라브인에게 암살당해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이 암살자는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하지만, 이탈리아 사주를 받았거나 아니면 크로아티아 민족주의 극우단체 우스타샤 조직원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마케도니아 출신이라는 것이 이탈리아나 우스타샤들에게 변명의 빌미를 제공했다. 알렉산다르가 암살당하자 11세의 그의 아들 페타르 2세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그러자 사촌 폴(파블레)이라는 왕자가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그러나 수렴 뒤에 신임 총리가 또 대리청정하고 있었다. 신임 총리에 밀란 스토야디노비치가 오르면서 마치 조선 영조대의 탕평책을 쓰듯 세르비아급진당을 비롯해 보스니아 이슬람과 슬로베니아 국민당 등 여러 계층과 민족을 껴안으려 노력했다. 그 역시 건국 초기에는 외교에 치중했다. 그러나 알렉산다르와는 반대로 프랑스 사랑을 뿌리치고 이탈리아와 독일에게 사랑을 구걸했다. 그에게는 이탈리아 파시스트와 독일 나치가 상당하게 매력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신임 총리 밀란 스토야디노비치는 히틀러 친위대 SS단(검은 셔츠단)을 벤치마킹해 ‘녹색 셔츠단’을 만들어 세르비아극우민족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또 시위라는 뜻의 폭력조직 ‘즈보르(Zbor)’를 창설해 대세르비아주의를 지상과제로 설정했다. 더 나아가 휘하에 ‘흰독수리’단을 만들어 마치 어린이들 병영놀이처럼 청년조직을 꾸렸다. 알렉산다르에 의해 괴멸된 ‘블랙핸드’ 사생아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이때 국제사회는 빠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 승전국임에도 밥그릇을 빼앗겼다고 생각했던 이탈리아가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로 재무장을 하면서 독일 히틀러와 손을 잡았다. 기세를 올린 독일은 순식간에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기에 이른다. 이로써 오스트리아는 좋던 싫던 독일군에 합병되어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사실 1차 세계대전 전쟁 패전국으로서의 독일의 어마어마한 전쟁배상금은 독일 국민을 히틀러, 나치의 깃발 아래 모여들게 만들었다. 일자리는 줄어들었고,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으니, 이렇게까지 밀어붙인 연합국 중 가장 크게 목소리를 내는 프랑스에 대해서는 절대로 함께할 수 없는 나라라며 날을 세웠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6-05-12

아버지의 안경

낡은 서랍 깊숙한 곳에서 아버지가 생전에 끼시던 돋보기를 발견했다. 시간이 잠시 멈춘 듯했다. 유품을 정리하며 수많은 물건을 비워냈지만 손때 묻은 이 안경만큼은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다. 안경알 너머로 아버지가 평생을 걸쳐 찾아내고 응시했던 수많은 글자와 세상들이 여전히 그 안에 고여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그 안경을 챙겨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노년은 적막했다. 귀가 어두워지면서 세상의 활기찬 소음들은 아버지의 문밖에서 길을 잃었다. 소리로 소통하는 법을 잊어버린 아버지에게 이 돋보기는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하고도 절박한 창구였다. 지인들이 보내온 안부 문자, 서툰 맞춤법으로 사랑을 전하던 손주들의 메시지를 아버지는 이 렌즈를 통해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가셨다. 아버지에게 돋보기는 사물을 크게 보여주는 도구만이 아니라, 고립된 침묵 속에서 타인의 마음을 읽어내려는 아버지의 마지막 의지였다. 돋보기 렌즈가 사물을 확대할 때, 그 이면에는 소외된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는 간절함이 서려 있다. 아버지에게 그 작은 유리알은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지 않으려 붙들었던 마지막 끈이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득한 파도 소리처럼 흩어질 때, 아버지는 침묵의 방 안에서 홀로 돋보기를 닦으셨을 것이다. 깨끗하게 닦인 렌즈 위로 자식들의 짧은 안부를 올리고, 당신의 시력을 다해 그 글자들을 마음속에 새기던 시간들. 멀어져 가는 세상을 다시 끌어당겨 품에 안으려는 눈물겨운 포옹이었음을 나는 체감한다. 책상 앞에 앉아 아버지의 안경을 가만히 써 본다. 시야가 일렁이며 초점이 흐릿해지지만 그 굴곡진 렌즈 너머로 아버지가 걸어온 생의 궤적이 만져지는 듯했다. 아버지는 평생 타협할 줄 모르는 원칙주의자였다. 때로는 고집스럽고 무뚝뚝해 보였지만, 당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 앞에서는 한없이 올곧은 분이었다. 그 안경은 아버지가 세상을 왜곡해서 보기 위함이 아니라 흐려지는 세상 속에서도 본질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했던 정직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우리는 각자 저마다의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본다. 누군가는 욕망의 색채가 덧칠해진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화려하게만 보려 하고, 누군가는 편견이라는 도수가 맞지 않는 렌즈로 타인의 삶을 왜곡하여 재단하기도 한다. 내가 낀 안경의 색깔에 따라 세상은 때로 차갑게 얼어붙기도, 때로 지나치게 과열되기도 하는 법이다. 그 주관적인 굴곡 안에서 우리는 종종 사물의 본질을 놓치고, 보고 싶은 것만을 선택적으로 망막에 담는다. 하지만 아버지의 돋보기는 달랐다. 그것은 화려한 색을 입히지도, 없는 것을 만들어내지도 않았다. 그저 흐릿해진 경계를 선명하게 끌어올리고 작아서 보이지 않던 진실을 정직하게 확대할 뿐이었다. 아버지는 자신만의 안경을 닦으며, 세상이 아무리 소란하고 변칙적일지라도 그 안에서 변하지 않는 ‘원칙’이라는 상(像)을 맺기 위해 평생을 분투하셨던 것이다. 비록 아버지는 곁에 계시지 않지만 나는 이 안경을 통해 아버지의 시선을 배우려 한다. 아버지가 돋보기로 작은 문자 속에 담긴 진심을 찾아내셨듯, 나 또한 삶의 소소한 풍경들 속에서 참된 가치를 발견하고 싶다. 원칙을 지키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던 그 투명한 시선을 물려받고 싶다. 이제 아버지의 유품은 나의 책상 위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아버지가 돋보기를 통해 세상을 읽었다면, 나는 그 시선을 빌려 세상을 ‘기록’하려 한다. 타협하지 않는 원칙과 올곧은 성품이 때로는 고독한 길이었을지라도, 아버지는 한 번도 그 안경을 벗어 던지지 않았다. 나 역시 글을 쓰는 작가로서, 때로는 눈앞의 이익이나 편안함에 시야가 흐려질 때마다 아버지의 안경을 떠올릴 것이다. 돋보기가 작은 것을 크게 보이게 하듯, 남들이 쉽게 지나치는 미소한 존재들의 가치를 크게 들여다보고 아버지가 지켜냈던 그 투명한 진심을 문장 사이에 촘촘히 박아 넣고 싶다. 아버지의 안경은 이제 나의 시력이 되어 내가 써 내려갈 수많은 원고지 위를 묵묵히 동행할 것이다. 오늘도 나는 아버지의 돋보기를 곁에 두고 펜을 든다. 이 렌즈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이전보다 조금 더 선명하고, 조금 더 정직하다. 아버지가 그러하셨듯, 나 역시 나에게 주어진 이 삶을 굽힘 없이 그리고 따뜻하게 지켜내며 살아내고 싶다. /김경아 작가

2026-05-12

힘겨운 교사들

교사가 학부모에게 존경받고, 사회적으로도 보람 있는 직업으로 인정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옛날이야기가 돼버렸다. 학생들 수업을 진행하는 것 외에도 각종 생활지도, 거기에 과도한 잡무가 겹치는 것은 물론 까다로운 학부모를 상대해야 하는 등 교사의 일은 갈수록 복잡하고 어려워진다는 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부이긴 하겠지만 학부모 가운데는 교사를 자기 아이의 보모나 심부름꾼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발생할 때 교사가 받는 스트레스는 결코 가볍지 않을 듯하다. 여기에 더해 최근 교실에는 정서적으로 불안한 학생들이 많아져 수업을 방해하거나, 학급 분위기를 흐리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조사 결과까지 나왔다. 이로 인한 교권 침해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최근 한국교원교육학회엔 ‘정서·행동 위기 학생 지원의 사각지대 발생 구조와 개선 방안’이란 제목의 논문이 발표됐다. 거기에 따르면 서울 초·중·고교 교사 2485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 지난 1년간 정서·행동 위기 학생에 의한 수업 방해와 교권 침해 빈도가 증가했다고 응답한 교사가 1306명이었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문제의 심각성에 동의한 것이다. 실제로 교실에선 수업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학생들을 방해하거나 교사와 학우들에게 폭력성을 보이는 학생이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고 한다. 중·고교생보다는 초등학생에게서 이런 문제점이 나타나는 경우가 흔하다고.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비이성적 행동을 하는 학생들 탓에 퇴직을 신청하는 교사까지 없지 않다고 하니 정말이지 격세지감(隔世之感). 이젠 교사가 존경받는 직업이 아닌 ‘힘겨운 직업’이 된 것 같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5-11

‘깜깜이’ 교육감 선거 피해자는 결국 아이들

6·3 지방선거 이슈가 광역단체장 선거에 집중되면서 전국적으로 교육감 선거는 주목받지 못해 아쉽다. 학생 수가 해마다 급감하고 있는 대구·경북의 경우 다양한 교육 현안이 누적돼 있어서, 차기 교육감이 누가 당선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구MBC가 지방선거를 한 달 앞둔 지난 2일과 3일 양일간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대구·경북 교육감 후보들을 대상으로 지지도 조사를 한 결과, 모두 현 교육감이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거나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대구는 30.2%, 경북은 36.5%에 달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서 부동층이 10명 중 3~4명에 이른다는 것은 선거가 그만큼 유권자들에게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현재 대구시교육감 선거는 3파전(강은희 현 교육감, 임성무 전 전교조 대구지부장, 서중현 전 대구 서구청장), 경북도교육감 선거는 4파전(임종식 현 교육감, 김상동 전 경북대 총장, 이용기 전 전교조 경북지부장, 한은미 전 김천대 교수)으로 치러지고 있다. 전국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대구·경북 모두 ‘진보 대 보수’ 대결 구도를 띠고 있으며, 현직 교육감의 3선 여부가 주요 쟁점이 되고 있다. 교육감은 ‘교육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인사권한(교원의 임용, 승진, 면직, 파면)과 교육예산 집행 권한, 자사고·특목고 설립과 이전, 폐지 권한, 교육과정 편성 권한 등이 주어진다. 어떤 교육감이 선출되느냐에 따라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고 올바른 교육을 받을 수도 있고, 왜곡된 역사교육과 편향된 이념교육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교육감 선거는 오히려 대구시장 선거보다 중요할 수 있다. 교육감 선거가 ‘깜깜이 선거’라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유권자의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권자가 교육감을 잘 선택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언론이나 선거공보물을 통해 각 후보의 교육이념·정책이 담긴 공약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투표하는 것이다.

2026-05-11

‘쇠제비갈매기 협의체’ 출범한 생태도시 안동

안동호에 쇠제비갈매기가 처음 관측된 것은 2013년 일이다. 국내 쇠제비갈매기 최대 서식지인 부산 을숙도 등 낙동강 하구 일대가 개발 사업으로 서식지로서 기능이 상실되면서 안동호 쌍둥이 모래섬에 그 모습을 보인 것. 그러나 안동호의 수위가 올라가면서 이곳 서식지가 물에 잠기는 현상이 이어지게 되자 안동시가 쇠제비갈매기 보호를 위한 대책 마련에 고민하기 시작했다. 안동호 한 가운데 인공 모래섬을 조성하고, 쇠제비갈매기 생태계를 돕는 노력들을 더해가자 드디어 서식지로서 자리를 잡아가게 된 것이다. 쇠제비갈매기는 매년 4월부터 7월까지 한국과 일본 등에서 번식을 하고 8~9월쯤 호주와 필리핀으로 이동해 겨울을 난다. 국내에서는 2022년 멸종위기 야생생물Ⅱ급으로 지정됐다. 안동시의 지극한 정성과 보호로 현재 안동호에는 100마리가 넘는 쇠제비갈매기가 13년째 찾아오고 있다. 특히 바닷새인 쇠제비갈매기가 내륙지방인 안동호에 정착한 것 자체가 세계적으로 드문 일이어서 향후 추이에 대해 학계의 관심이 크다. 또 안동호를 중심으로 한 주변 생태계가 이들을 품어줄 만큼 건강하다는 것 또한 주목할 만한 일이다. 지금은 쇠제비갈매기의 서식지로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탐조관광객들이 대거 찾아와 안동지방의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부상하고 있다. 국립생태원과 안동시, 국립경국대 등이 참여한 안동 쇠제비갈매기 공존협의체가 발족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국내에서 특정 종을 대상으로 단독 공존협의체가 구성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한다. 이 단체는 앞으로 안동 쇠제비갈매기의 안전한 보전을 위해 정보 공유와 연구협력 등을 약속했다. 지역사회의 이같은 관심이 멸종 위기에 있는 쇠제비갈매기의 생태계를 복원하는데 큰 힘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본지는 쇠제비갈배기가 안동호에 정착하기 시작한 과정을 전국 최초로 수년간 추적해 보도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공존협의체 발족이 생태관광도시 안동을 더욱 발전시키는 전기가 되고, 쇠제비갈매기가 영구적으로 보존되는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

2026-05-11

미국­·이란 전쟁의 국제정치적 함의

‘힘’과 ‘국익’이 지배하는 국제정치는 냉혹하다. 미국의 ‘힘의 정치’와 이란의 ‘신정정치(theocracy)’가 격돌하고 있다. 이 전쟁으로 인해 미국과 동맹국들 사이에는 균열이 생겼고, 이란의 주변국 공격과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전쟁 양상을 바꾸어 놓았다. 중동전쟁이 주는 국제정치적 함의(implication)를 알아야 합리적 안보전략을 모색할 수 있는 까닭이다. ‘미국 우선주의’와 ‘세계 최강의 힘’을 앞세운 전쟁은 오히려 미국의 한계를 드러내었다. 트럼프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NATO·한국·일본·호주 등 동맹국들에게 협력을 요구했으나 그들 역시 자신의 국익을 고려하여 거절했다. 명분 없는 힘의 정치로 동맹국들의 지원을 받기 어려워지자 트럼프는 NATO 탈퇴와 미군철수를 협박하는 등 미국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 또한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에 배치된 무기를 이란전쟁에 투입함으로써 미국이 과연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할 능력이 있는가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전쟁이 한국에 주는 국제정치적 함의는 크게 두 가지다. 그 하나는 ‘자주국방역량을 제고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자기중심적 행태를 지켜본 동맹국들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찾고 있다. 주한 미군의 전략무기를 중동으로 빼내고 파병까지 요구한 것은 한미동맹의 성격이 바뀌고 있음을 말해준다. 북핵 위협과 한미동맹의 변화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은 우리 스스로 강력한 대북 억제력을 갖는 것이다. 평화를 지키는 것은 ‘말이 아니라 힘’이다. 힘이 없으면 북핵의 인질이 되거나 미국의 일방적 요구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특히 중동전에서 핵심전력으로 등장한 저비용·고효율의 드론전력을 강화해야 함은 물론, 북한의 강점인 전자기 공격, 집속탄을 활용한 전쟁에도 대비해야 한다. 또한 호르무즈 봉쇄로 그 취약성이 드러난 우리의 에너지안보, 즉 중동 원유 의존도가 70%나 되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캐나다·호주·아프리카 등 원유 수입원을 다변화하는 한편, 원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더욱 확대함으로써 석유 의존도를 낮추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동맹의 변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관리’이다. 이제 동맹의 의무는 필수가 아니라 선택과 거래의 대상이 되었으며, 미국은 한미동맹의 현대화와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은 한국을 지켜주는데, 정작 한국은 우리를 돕지 않는다”고 불만을 드러낸 바 있고,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북핵 관련 발언에 대한 미국의 비판, 쿠팡 사태를 둘러싼 이해충돌 등 도처에서 한미동맹의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동맹국 간에도 이견과 갈등은 있을 수 있지만, 미국이 제공하는 ‘핵확산 억제력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면 한미동맹을 잘 관리해야 한다. 동맹에 불필요한 갈등유발을 삼가하고 협력 영역을 확대함으로써 상호의존관계를 심화시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동맹은 약속하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6-05-11

나의 이름은 고독

언어의 탄생과 함께 나의 이름도 생겼다. 나의 이름은 고독. 사람들은 나를 힘들어하였다. 내가 태어날 때 ‘외로움’도 함께 태어났다. 외로움과 나는 닮았다. 사람들은 나를 외로움으로 착각했다. 외로움은 사람들이 싫어했음에도 불구하고 파리 떼처럼 끈덕지게 사람들 주위에서 배회하였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초대받기 전에는 사람들 주변에서 질척거리지 않았다. 하지만 외로움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나를 멀리했다. 그럼에도 몇몇 사람은 나를 초대해 주었다. 그들이 나에게, ‘너는 외로움이라는 외피를 뒤집어쓴 멋진 친구야!’라고 속삭여 준 말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는 삶을 살았던 사람 A가 있었다. 그는 건강과 가정 모두 탄탄했고, 사교 모임과 취미로 일상이 바빴다. 그럼에도 그는 알 수 없는 외로움에 힘들어하였다. 주변에는 맛난 음식과 사람들이 넘쳐났으나 그의 마음은 공허하였다. 만남이라는 광장에서 위선과 거짓으로 상처받았으며, 바르지 않은 타협과 양보를 강요받는 것이 싫었다. 그러던 A가 갑자기 나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저녁 식탁에서 A는 아내에게 말했다. “음식을 적게 먹으면 건강이 좋아지고, 사람을 적게 만나니 마음이 편해져” A의 아내가 애매모호한 표정으로 A를 바라보았다. 그날 이후 A는 좋아하던 몇 가지 습관을 정리했다. 그 이후로 사람들이 A의 주변에서 썰물처럼 사라졌다. 그렇게 사라진 그들의 빈자리를 A는 명상과 독서 그리고 산책으로 채웠다. 아내의 의구심 가득한 곁눈질에도 불구하고 퇴근 후 A의 고독한 여행은 계속되었다. 고독이라는 연료를 태우는 자동차가 이끄는 자유와 행복으로의 여행을. 나 고독도 처음부터 고독은 아니었다. 외로움이었다. 시작은 외로움과 함께 ‘혼자 있음’에서였다. 나와 외로움이 길을 가다 갈림길을 만났을 때, 외로움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소음의 길을, 나는 침묵의 길을 선택하였다. 외로움은 군중 속에서 사람을, 소음 속에서 인정받기를 갈망하다 지쳐갔다. 하지만 나는 자기 자신에게 모든 걸 간직할 수 있는 사람 속에서 평화를 찾았다. 외로움에 지쳐 사람들이 무너지는 도시를 높은 곳에서 나는 보았다. 나는 ‘혼자 있음’이란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외로움은 여기로 돌아오지 못했다. 나는 안다. ‘혼자 있음의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는 것과, ‘나와 함께 친구 할 수 있다’는 것은 자연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선물일지 모른다는 것을. 나의 친구 A는 어느 날 ‘고독이 외로움에게’라는 제목으로 편지를 한 통 썼다. 그 마지막 부분은 아래와 같다. “외로움아/ 사실 나 고독은 너의 오랜 미래야/ 사람들이 너를 끝까지 외면하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조용히 바라보기 시작할 때, 그때 너는 서서히 나로 변할 거야/ 어느 봄날 저녁 혼자 마시는 차 한잔 속에서/ 아무 연락도 오지 않는 밤 창밖의 바람 속에서/ 한 권의 책을 덮고 오래 침묵하는 순간 속에서/ 너는 조금씩 나로 자랄 거야/ 잊지 마/ 혼자는, 결핍이 아니라 그저 공간이라는 것을/ 침묵은, 공허가 아니라 깊이라는 것을/ 자기 자신과 함께 있는 시간이야말로 가장 늦게 도착하는 평화라는 것을/ 굿바이! 외로움/” /공봉학 변호사

2026-05-11

만화방창, 포항철길숲

포항철길숲(포레일·Forail)’이 만화방창(萬化方暢)이다. 4월 하순부터 이곳엔 이팝꽃, 조팝꽃, 송화가 흐드러졌다. 벌써 영산홍은 많이 졌고, 장미꽃도 피어난 곳이 있다. 이름 모르는 나무꽃, 풀꽃들도 질세라 활짝 피어나 얼굴을 뽐낸다. 꽃들에 더해, 오뉴월에나 만날 신록도 넘실대기 시작한다. 예전엔 교외나 산에 가야만 느끼던 생명의 찬란함을 도심 철길 숲에서 만나다니 그야말로, 만화방창이다. 지난 늦가을, 직장사무실을 옮기는 바람에 평일 낮에 10여 분 정도 용흥 고가도로 부근 철길숲을 걸어 퇴근하게 되었다. 이 변화가 내게 또 하나의 행복을 선물해 주고 있다. 사람의 조경술이 빚은 멋진 정원처럼 자연과 조화를 이룬 숲길을 걷는 일은 몸의 건강은 물론, 마음 건강도 챙기는 시간이 된다. 만나는 나무, 풀들과 교감을 주고받는 일은 사람과의 소통에 비해도 모자람이 없으니까. 하여, 이곳은 힐링을 바라는 도심 사람들에겐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다. 이 숲길이 생기기 전엔 많은 사람이 건강을 위해 양학산 등산로를 올랐었다. 나도 그랬다. 나라의 IMF 경제위기 체제 이후, 실로 많은 사람이 찾은 양학산은 사람 발길에 큰 몸살을 앓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포항역의 이전으로 폐철도가 된 도심 철길구간이 숲, 조형물, 보도, 자전거 길 등으로 단장해 철길숲으로 재탄생했다. 그 덕에 등산객이 확 준 양학산은 몸살이 나아가니 철길숲 조성은 일거양득인 셈이다. 1918년 개통되어 약 100년간 기차가 다니던 효자역과 옛 포항역 사이 구간이 2015년 포항역 이전으로 폐철도 유휴 부지가 되었다. 이 부지를 포항시장의 ‘그린웨이(Green Way) 프로젝트’에 포함 시켜 착공 2년 반만인 2018년 12월 준공하였다. 쓸모 잃은 철도와 부지가 ‘포항철길숲 1918 포레일’로 아름답게 다시 태어나 도시 미관을 살리고, 대기 정화 등 환경 개선도 이바지하고 있다. 숲의 영문 ‘Forest’와 기찻길 영문 ‘Rail’을 합성해 만든 말이 포레일이다. 지역신문 K지 보도에 따르면, 이 숲은 유성여고~서산터널의 2.3㎞ 1차 구간, 서산터널~효자교회 앞 광장까지 4.3㎞의 2차 구간을 합하면 길이가 6.6㎞에 이른다. 준공 다음 해 포항시 추산 방문객 수는 평일 5천 명, 휴일 1만 명에 달하였다. 그러니 시민 힐링 마당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철길숲을 걷다 보면 중간중간에 옛 철도가 남아있어 기찻길이었음을 알려주지만, 객차나 화차, 기관차, 철길 신호등 같은 실물들이 뜨문뜨문 배치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또, 강원 정선 레일바이크나 울진 스카이레일 같은 레포츠 시설을 벤치마킹하여 가능한 곳에 설치 운영한다면, 시민들에겐 더 멋진 곳이 되고 고용 창출도 가능할 것이다. 다행히 성모병원 입구 인근 어울누리숲에 무궁화호 폐객차를 리모델링한 철도 문화공간이 있다. 하지만, 긴 숲 전체와 포항시민, 관광객을 다 커버하기엔 역부족이지 싶다. 우수 도시 숲으로 여러 번 상도 받은 멋지고 아름다운 ‘포항철길숲 1918 포레일’이 시민과 더 밀착하는 지속 가능한 숲으로 발전하면 좋겠다. /강길수 수필가

2026-05-11

드보르작의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

5월은 가족을 돌아보게 되는 계절이다. 어린 시절 당연하게만 느껴졌던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가정의 달을 맞아 꼭 한번 들어보길 권하고 싶은 클래식 곡이 있다. 바로 ‘Songs My Mother Taught Me’, 우리말로는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이다. 짧은 곡이지만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삶의 애환이 깊게 담겨 있어 어버이날과 특히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이 곡의 작곡가 드보르작(Antonín Dvořák·1841~1904)은 현재의 체코 프라하 근교 넬라호제베스에서 태어난 체코 국민 작곡가다. 당시 그의 고향은 오스트리아 제국 아래의 보헤미아 지역이었으며, 훗날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기 전의 체코슬로바키아 일부였다. 그는 스메타나(Bedřich Smetana)와 함께 체코 음악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히며, 민족적 색채가 짙은 작품들을 통해 고향의 정서와 향수를 음악 안에 담아냈다. 드보르작의 대표작으로는 흔히 ‘신세계 교향곡’이라 불리는 ‘Symphony No. 9’이 있다. 또한 ‘현악사중주 No. 12’ ‘American’역시 널리 사랑받는다. 특히 ‘신세계로부터’의 4악장은 한국에서 아이스크림 광고 음악으로 사용되며 ‘죠스바 테마곡’으로 익숙하게 알려지기도 했다. 드보르작은 미국 체류 시절에도 늘 고향을 그리워했다. 그는 현지 원주민과 흑인들의 민요를 연구하며 새로운 음악적 영감을 얻었지만, 그 안에서도 늘 보헤미아 특유의 향수를 잃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음악에는 어딘가 그리움과 회상의 정서가 짙게 배어 있다. 1880년에 작곡된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 역시 그러한 감성이 가장 아름답게 담긴 작품 중 하나다. 이 곡은 체코 시인 아돌프 헤이둑(Adolf Heyduk)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으로, 드보르작의 연가곡집 ‘집시의 노래(Gypsy Songs Op.55)’ 가운데 네 번째 곡이다. 드보르작은 이 곡을 작곡하며 여러 차례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가사는 매우 담백하지만 깊다. "늙으신 어머니 나에게 그 노래 가르쳐주실 때, 어머니 눈에 눈물이 곱게 맺혔었네. 이제 내 어린 딸에게 그 노래 들려주노라니, 내 그을린 두 뺨 위로 한없이 눈물 흘러내리네." 이 노래가 더욱 애틋하게 들리는 이유는 드보르작 개인의 삶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는 이 곡을 쓰기 전 몇 년 사이 세 아이를 어린 나이에 떠나보내야 했다. 그래서인지 곡 전체에는 단순한 향수를 넘어선 깊은 상실감과 슬픔이 배어 있다. 어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했던 그의 진심이 음악 안에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 특히 피아노 반주의 독특한 당김음 리듬과 체코 민요풍 선율은 마치 오래된 자장가처럼 따뜻하게 다가온다. 원래 ‘집시의 노래’ 모음곡의 다른 곡들은 활기차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강하지만, 유독 이 곡만은 조용한 회상과 눈물 어린 정서를 품고 있다. 오늘날 이 작품은 성악뿐 아니라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등 다양한 악기로 편곡되어 연주되며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언어와 문화는 달라도 ‘어머니의 사랑을 기억하는 마음’만큼은 모두에게 같기 때문일 것이다. 바쁜 일상 속 잠시 시간을 내어 이 곡을 들어보길 권한다. 어쩌면 우리 마음속에도 오래전 어머니가 들려주셨던 따뜻한 목소리가 다시 조용히 울려 퍼질지도 모른다. /박정은 객원기자

2026-05-11

날과 날 사이에서

가정의 달이라 불리는 5월은 행사가 넘치는 달이다. 20대 질풍노도 시절에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도무지 달갑지 않았다. 어린이와는 무관(無關)했고, 어버이나 스승을 기리는 일보다는 반독재 민주화 투쟁이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지금도 나는 그런 자세를 온존하며 살고 있다. 혈연보다 공동체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주 예전에는 ‘어버이날’이 아니라 ‘어머니날’이었다. 어머니날 같은 행사가 어린 시절의 내게는 무척이나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다. 4남매가 모여 엄마한테 빨간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어머니 은혜’를 불러야 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소리 내서 ‘어머니 은혜’를 불러본 기억이 거의 없다. 너무 속 보이는 부끄러운 짓 아닌가, 생각한 탓이다. 당신 눈앞에서 둘째 아들이 입도 달싹거리지 않는 걸 보는 엄마는 서운한 기색이다. 그렇다고 눈치 보면서 형제들의 노래를 따라 하기는 싫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내고 대학생이 되었으니, 그 뒷일이야 재언(再言)이 필요하지 않을 터다. 여기에 찬물을 끼얹은 행사가 스승의 날이었다. 대학원 시절, 학과 교수님들 모시고 조촐하게 식사했던 기억이 새롭다. 1958년 강경여고 단원들이 시작했다는 스승의 날은 1965년 5월 15일부터 공식적인 행사로 자리매김한다. 1973년 박정희는 스승의 날 행사를 돌연 금지하고 ‘국민교육헌장’ 선포일인 12월 5일에 통합해버린다. 전두환이 1982년에 스승의 날 행사를 되살린 것은 참 불가사의한 일이다. 권력 찬탈을 위해 동족 학살마저 꺼리지 않던 자가 스승 운운이라니?! 세월이 무상하게 흘러 교수가 된 후에 학생들이 마련한 스승의 날 행사에 참여하곤 했다. 언젠가는 학과 ‘엠티(MT)’에 갔다가 한밤중에 느닷없이 들려오는 ‘스승의 은혜’ 합창 소리에 아연실색(啞然失色)한 일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고, 떨떠름하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역시 행사는 내게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다. 언제부턴가 스승의 날 행사에 일절 가지 않았다.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나는 스승이 아니라, 일개 교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제자가 없으면 스승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나온 말이 사제지간(師弟之間)이다. 그런데 문득 돌아보니 나는 지식을 전달하는 교수일 뿐이고, 학생들 역시 제자가 아니라, 지식 전수자(傳受者)에 지나지 않았던 터였다.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행사에 얼굴을 들이밀고 작은 선물을 받는 어색함과 불편함을 거부한 것이다. 그러다가 ‘김영란법’이란 게 만들어지고, 그 주요 목표물은 초중고교 교사들로 확정된다. 참으로 보기 민망한 일들이 이어졌고, 어떤 교사들은 스승의 날에 학교 가기가 죽기보다 싫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밀어낸 셈이다. 제자도 없는 나라에 무슨 스승의 날이 필요한지, 의아하기 짝이 없다. 최소한의 기본적인 예의범절마저 사라진 학교에서 딱 하루 날 잡아서 행사한다는 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짓인가?! 의미도 없이 행사만 넘쳐나는 5월에 백작약 화사하게 피어나니 그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5-10

대구 낙석사고, 원인 밝히고 재발 막아야

어버이날인 지난 8일 오전 대구시 남구 봉덕동 용두낙조 지하차도 옆 경사면에서 대형 암석과 토사 등이 쏟아지면서 이곳을 지나던 50대 남성 보행자가 매몰돼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가 발생한 용두낙조 지하차도는 차량과 보행자 모두 다니는 구간이다. 신천둔치와 고산골을 오가는 통로로서 평소에도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그럼에도 대형 암석이 무너질 정도의 위험한 상태로 현장이 방치됐었다는 것이 의아하다. 현장에 도착한 소방관계자도 사고가 난 경사면에는 큰 암석들이 박혀있지만 낙석사고에 대비한 안전펜스나 낙석위험 구간임을 알리는 표지판은 없었다고 했다. 또 주민들 사이에 이곳 경사면에 쌓여 있는 암벽 상태를 두고 평소 불안해 왔다는 이야기도 나오니 사고 원인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구시와 남구청 등은 사고 후 현장을 통제하고 추가 붕괴 가능성에 대비, 전문가 안전진단과 보완조치에 나서고 있다. 또 대구시내 유사 시설물에 대한 전수 조사도 병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사고가 나면 사후약방문식의 행정조치가 따르기 마련이다. 대구시는 지난 2월부터 47일간 해빙기 취약시설에 대한 안전점검을 실시한 바 있으나 점검상황이 제대로 이행됐는지 의문이다.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기후변동이 심해지면서 지반약화가 빈번해지고 있다. 당국이 지정한 기존 취약지가 시민의 안전을 제대로 담보하고 있는지 근본부터 살펴야 한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이번 사고에 대한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 소재도 따져야 한다. 멀쩡하게 길을 가던 시민이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사고를 당한다면 불안해 바깥출입을 할 수 있겠는가. 사고원인 조사와 함께 대구시내 전역에 걸쳐 옹벽과 석축, 경사면 등에 대해 전면 조사를 벌여 유사한 사고가 재발되지 않게 해야 한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대구시장에 출마한 대구시장 후보들도 이를 반면교사 삼아 안전한 대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안전에는 설마가 없다. 철저한 조사와 대책 마련으로 시민들이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2026-05-10

보수결집 속도내나

국민의힘 대구시장 예비후보 경선에서 컷오프된 후 반발해왔던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지난 8일 대구시당 선대위에 합류해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았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구가 김부겸과 민주당에 넘어가는 것만은 결단코 막아야 한다”면서 “국민의힘이 대구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회견장에는 추경호 대구시장 후보도 깜짝 등장해 주 부의장과 두 손을 맞잡고 “보수의 심장 대구에서 반드시 이기겠다”고 다짐했다. 주 부의장은 선대위에 전격 합류한 배경에 대해 “당 대표와 추 후보가 잘못된 공천 과정에 대해서 사과하고 선거지원을 간곡하게 부탁했다. 그리고 대구 동료 의원 전원과 많은 당원 동지들이 당을 위해서 앞장서 주기를 요청해 왔다”고 설명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2일 대구 지역 국회의원들이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추대하는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고, 3일 열린 추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도 참석하지 않아 후유증이 오래 갈 것으로 예상됐었다. 민주당 김부겸 후보를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과 관련해서는 ‘가짜 뉴스‘라고 밝히면서 “현재 나돌아다니는 왜곡된 영상을 더이상 방치해선 안 되겠다 싶어 오늘 나오게 됐다“고 했다. 국민의힘 대구시당은 이로써 경선과정에서 불거졌던 예비후보들간의 갈등을 모두 봉합하고 원팀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현재 각종 대구시장 선거 여론조사를 보면, 김부겸 후보와 추경호 후보가 초접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선거가 얼마나 치열하게 전개되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지난주(5~6일) JTBC가 대구 유권자 8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구시장 지지도 조사(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에서는 김 후보가 40%, 추 후보가 41%로 나타났다. 오차범위 내이긴 하지만, 김 후보가 앞서가던 초반 흐름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어느 한쪽의 우세를 점치기 어려운 박빙 구도다. 앞으로 누가 지지자를 투표장으로 더 많이 끌어들이냐가 대구시장 선거 승패의 핵심변수가 됐다.

2026-05-10

스님도 로봇으로?

지난 2월 일본 교토의 유서 깊은 한 사찰에 사람처럼 말하고 움직이는 로봇스님이 등장해 화제가 됐다. 이름하여 붓다 로이드. AI를 탑재한 인간형 로봇이다. 불교 경전을 학습해 인생 상담이나 마음의 고민 같은 인간적인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만든 로봇스님이다. 취재에 나선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너무 많이 생각하고 걱정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고 했더니 로봇스님이 답했다. “불교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 자체를 내려놓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라 했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로봇스님 등장 배경으로 인구감소와 초고령사회로 인한 인력난을 지적한다. 일본에 있는 많은 지방사찰들이 후계자를 찾지 못해 문을 닫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또 스님 한 명이 여러 사찰을 돌아다니며 운영하는 곳도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부족한 스님을 대신해 로봇으로 대체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는 찬반 양론도 있다. 반대쪽은 종교란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로 교감을 이루는 특성이 있는데 AI가 대신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견해다. 한국 불교계가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우리나라 최초의 로봇스님을 선보여 관심을 끌었다. 서울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열린 수계식에서 휴머노이드 G1 로봇스님은 ‘가비’라는 법명을 수여받고 불교 계율에 서약했다. 앞으로 부처님 오신날을 전후해 명예스님으로 활동할 예정이라 한다. 조계종은 “인간과 기술이 함께 공존해 새로운 가능성을 상징하는 것”이란 말로 로봇스님 등장의 의미를 설명했지만 우리나라 사찰에서도 로봇 스님을 만나는 일이 멀지않아 있을 것 같은 예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5-10

‘행정가’가 아닌 ‘전략적 리더’를 선택하라

오는 6월 지방선거는 인공지능(AI) 확산과 다중격차 심화라는 거대한 전환기 속에서 지역의 생존 방향을 결정할 분수령이다. 이제 지방은 단순한 인물 교체를 넘어 스스로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설계해야 하는 ‘전략 공간’이 됐다. 이번 선거는 공약의 양을 겨루는 경쟁이 아니라, 지역의 복합적 현실을 정확히 읽고 지속 가능한 해법을 설계할 수 있는 인물을 선택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오늘날 지역이 마주한 문제는 결코 단선적이지 않다. 인구 감소는 일자리 부족으로, 이는 다시 교육·주거·복지 위기로 이어진다. 고령화는 의료와 재정 부담을 키우고, 디지털 격차는 교육과 소득의 양극화를 고착화한다. 하나의 문제가 다른 문제를 증폭시키는 구조 속에서 과거식 단편 개발 공약이나 일회성 사업으로는 해법을 찾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현상 너머의 시스템을 읽어내는 통찰력이다. 자치단체장은 지역의 인구 구조, 산업 기반, 재정 여건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핵심 과제를 도출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제한된 예산과 인력 속에서 우선순위를 정할 용기가 필요하다. 모든 민원을 동시에 해결할 수는 없다. 리더는 당장의 표심을 자극하는 인기 사업이 아니라, 지역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을 선택해야 한다. 단기 성과에 매몰되지 않고 10년 뒤의 지역을 설계하는 중장기 전략가로서의 면모가 본업이 되어야 한다. 또한 다중사회에서 리더는 지배하는 지휘자가 아닌 갈등을 조정하는 ‘조정자’여야 한다. 지역 내 다양한 세대와 계층, 원주민과 다문화 가정 등의 요구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갈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리더의 역량이다. 정책의 취지를 충분히 설명하고 주민의 의견을 경청하며, 반대 의견조차 존중하는 태도가 필수적이다. 설명 없는 결정은 불신을 낳고 행정의 동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AI 시대에는 기술이 정책의 중요한 기반이 되지만, 결국 주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정책은 지속될 수 없다. 단체장은 기술의 혜택이 소외된 곳 없이 닿을 수 있도록 기술과 사람을 잇는 다리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유권자는 후보가 상대를 비난하기보다 설득하는지, 어려운 정책을 주민 눈높이에서 쉽게 풀어내는지, 다양한 계층과 소통해 온 실질적인 경험이 있는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실행력과 책임성도 빼놓을 수 없는 덕목이다. 아무리 좋은 구상이라도 성과로 연결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예산 확보 능력과 조직 관리, 협치 능력은 필수 조건이다. 더불어 정책의 한계나 실패 앞에서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가 주민의 신뢰를 만든다. 특히 단체장에게 부여된 권한은 시민이 위임한 것인 만큼, 도덕성과 청렴성은 행정의 공정성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된다. 이번 6월 지방선거는 개발 공약의 화려함을 겨루는 자리가 아니다. 우리 지역의 미래를 설계할 전략가를 선택하는 자리다. 유권자는 후보가 지역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갈등을 조정하며 약속을 책임 있게 실행할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결국 지역의 미래는 공약집의 분량이 아니라, 그것을 실천할 ‘사람’의 역량에 달려 있다.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전 대구경북연구원장

2026-05-10

스페이스워크

포항 북구 환호공원 언덕 위에 세워진 스페이스워크는 이제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2021년 포스코 기부 이후 2026년 1월 기준 누적 방문객 371만 명을 넘어섰고, 400만 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주말마다 인근 도로가 관광객 차량으로 가득 차 혼잡할 만큼 이곳은 이미 강력한 핫 플레이스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들은 한 상인의 말은 이 활기를 다른 시선으로 보게 만든다. “사람은 많은데, 손님은 아닙니다. 올라갔다가 그냥 내려와서 가버려요.” 이 짧은 문장은 지금 포항 관광의 구조적 한계를 정확히 드러낸다. 스페이스워크는 사람을 불러 모으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시간을 붙잡아 두는 데까지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하나의 강력한 목적지는 만들어졌지만, 그 이후의 흐름은 비어 있다. 사람들은 올라가서 풍경을 보고 사진을 찍은 뒤, 더 머물 이유를 찾지 못한 채 도시를 떠난다. 결국 포항은 경험되는 도시가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장소로 남는다. 이제 필요한 것은 무엇을 더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왜 머물러야 하는가에 대한 설득이다. 언덕 아래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음악, 해 질 무렵 시작되는 미디어아트, 매일 반복되지만 지루하지 않은 짧은 공연 같은 요소들은 공간의 체류 시간을 바꾸는 작은 계기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지속성이다. 일상처럼 이어지는 콘텐츠가 쌓일 때, 이곳은 단순한 방문지가 아니라 다시 찾는 공간으로 바뀐다. 관광의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보고 끝나는 여행보다 기억을 가져가는 경험을 원한다. 스페이스워크의 형태와 이야기를 담은 디자인 상품, 포항을 상징하는 감각적인 굿즈, 지역 작가의 시선이 담긴 작품들은 단순한 기념품을 넘어 도시의 이미지를 확장시키는 매개가 된다. 이런 경험이 축적될수록 포항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더 오래 남는 도시가 된다. 현재 운영 중인 포항관광 시티투어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주요 관광지를 연결하는 기능을 넘어, 스페이스워크를 체류의 시작점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이곳에서의 체험이 공연과 전시, 야간 프로그램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면 관광객의 동선은 단순한 방문에서 머무는 경험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이동 중심의 투어가 아니라 경험 중심의 흐름으로 전환되는 순간, 하나의 점은 도시 전체를 잇는 선이 된다. 결국 핵심은 흐름이다. 스페이스워크에서 시작된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그 길 위에 머물 수 있는 공간과 경험이 연결될 때 사람은 떠나지 않는다. 지금처럼 올라갔다 내려오는 구조에서는 체류가 만들어지기 어렵다. 관광은 점이 아니라 선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미 스페이스워크는 사람을 불러 모으는 힘을 충분히 증명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 힘을 시간으로 바꾸는 일이다.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소비는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그 경험은 기억으로 남는다. 371만 명이라는 숫자를 기록으로 남길 것인지, 도시 전체를 경험하는 흐름으로 확장할 것인지. 그 선택이 포항 관광의 다음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손철호 지역문화포럼 따로또같이 대표

2026-05-10

선택

창문을 연다. 집 뒤 야산에 하얗게 아카시아꽃이 피었다. 푸른 잎들과 함께 바람결에 제 몸을 맡기고 흔들리고 있다. 향기가 바람을 타고 온 집안으로 퍼진다. 봄의 온기가 무르익고 있다. 어린 시절 아카시아는 우리에게 친숙한 꽃이었다. 하교 길에 가끔씩 따 먹기도 했고 친구들과 잎 따기 놀이도 했다. 풍성하고 아름다운 꽃으로 눈길을 끌기도 했지만 향기가 매우 좋았다. 그 이름을 딴 껌이 있었는데 씹으면 향기를 먹는 듯해 자주 샀던 기억이 있다. 요즈음은 옛날만큼 아카시아가 흔하지는 않다. 아까시가 원 이름인 이 나무는 빠른 성장 속도와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 1960년대 산림녹화사업에서 주종 수종으로 선정되었다. 이차대전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황폐해진 산을 짧은 시간 동안 살리기에 적합한 나무로 보았던 것이다. 빠른 성장력은 산을 푸르게 하는 것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부작용을 가지고 왔다. 다른 나무의 생장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뿌리의 번식 속도나 힘이 좋다 보니 주변의 묘지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일이 생긴 것이다. 특히 소나무를 죽인다고 해서 아카시아를 뿌리까지 파서 개체수를 줄였다. 개발로 인한 군락지 훼손, 1세대 나무의 수령이 다함으로 인한 감소. 그리고 부정적인 여론에 급격히 줄어들었다. 2012년부터 5년 동안 절반 이상 사라졌다고 한다. 단순히 이것으로 끝났으면 좋은데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꿀은 아카시아가 70~80%를 차지하고 있는데 꿀의 생산량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이다. 결과 양봉업자의 피해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아카시아가 주는 부작용을 줄이는 일에 신경을 쓴 나머지 일어날 일을 미처 예측치 못한 것이다. 선택은 여럿 가운데서 필요한 것을 골라 뽑는 일이다. 선택은 작은 것에서 큰일까지 다양하게 그리고 매 순간 우리 앞에 나타난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그런 선택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매번 우리가 최선의 선택을 뽑는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게 잘 풀리지만은 않는다. 가벼운 선택은 커다란 난제를 동반하지 않지만 설사 문제가 생겨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때로는 하나의 선택이 삶의 변곡점을 그어놓기도 한다. 선택이 늘 책임이라는 것과 떼어놓을 수 없는 이유이다. 가장 적합한 수종이라 생각해 고른 아카시아가 생각 외로 피해를 줬고 그래서 아카시아를 많이 없앴다.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했지만 사라진 것은 나무만이 아니었다. 우리의 선택은 사회에 커다란 흔적을 남기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도 묻히고 양봉업자의 시름은 깊어지며 삶의 온도가 달라졌다. 선택은 자유를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지만 책임이라는 그림자를 깊이 남기기도 했다. 꿀의 부족과 양봉업자들의 위기는 선택이 빚어낸 결과였다. 우리가 그 결과를 보며 그 전의 선택을 한탄만 하고 있다면 그 역시 올바른 일은 아닐 것이다. 그 전의 일들을 되짚어보고 책임지는 일들이 없다면 그와 유사한 일들은 이름만 바꾸어 반복될 것이다, 정부는 아카시아를 다시 심어 그 나무의 개체수를 일정 부분 늘여가고 있다. 젊었을 때에 내 삶은 내가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믿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은 할 수 있고 얻을 수 있다는 자만에 빠져 살았다. 삶은 자유로웠고 선택은 무겁지 않은 것이었다. 실수를 해도 쉽게 되돌릴 수 있고 가볍게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삶의 범위와 관계는 확장되었고 선택은 나날이 모양과 형태가 다양해졌다.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수많은 변수가 나타났다. 수시로 조용한 후회가 내 삶에 찾아왔으며 참담한 결과를 가져온 일도 생겨났다. 그 이면에는 결과를 상상하지 못한 나의 경솔함이 낳은 선택도 있었다. 뒤늦은 후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내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결국 좋은 선택이란 결정하기 전에 최대한 책임을 상상해보고 덜 무너지는 쪽을 택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아카시아의 짙은 향기를 맡으니 두 마음이 든다. 집안일을 계속 할까 아니면 산책을 나갈까. /전영숙 시조시인

2026-05-10

보이지 않는 손, AI가 짠다···물류·유통의 새 질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전 세계 항만이 멈추고 마트 진열대가 비어가던 풍경을 우리는 아직 또렷이 기억한다. 마스크 한 장, 손 소독제 한 통을 구하려 줄을 서던 그때, 지구촌이 거대한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공급망(Supply Chain)’에 우리 일상이 얼마나 깊이 의존하고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그 톱니바퀴를 다시 돌리고 더 정교하게 다듬는 새로운 동력이 등장했다. 바로 인공지능(AI)이다. 물류·유통은 본질적으로 ‘예측 게임’이다. 어떤 상품이, 언제, 어디서, 얼마나 팔릴지 미리 알 수 있다면 재고도 줄이고 배송도 빨라진다. 문제는 변수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날씨, 명절, 환율, 입소문, 심지어 SNS의 짤막한 글 한 줄까지 수요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의 직관과 엑셀 표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AI는 바로 이 빈틈을 메우는 도구로 떠올랐고,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공급망 재편 흐름과 맞물려 그 가치가 더욱 커지고 있다. ■ 종이 장부에서 ‘파운데이션 모델’로 수요 예측은 기업의 오래된 고민 중 하나다. 과거 유통 담당자들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판매량에 약간의 보정을 더해 발주 수량을 정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기존 방식은 단순 추세를 연장하는 것이라 사실상 예측이라 부르기 어려웠다”고 토로한 바 있다. 그 결과 폐기·결품·인력 낭비라는 세 가지 고질병이 늘 따라붙었다. 너무 많이 들이면 버려지고, 너무 적게 들이면 손님을 놓친다. 그 사이를 가르는 칼날은 늘 흐릿했다. 이마트는 이런 한계를 넘기 위해 자체 예측 엔진 ‘사이캐스트(Saicast)’를 개발해 7만여 개 상품의 판매 패턴을 AI에 학습시켰다. 요일·가격·날씨·시즌·행사 여부 등 40여 개 변수를 동시에 따져 다음 주 판매량을 추론한다. 신세계그룹은 한발 더 나아가 지난달 미국 AI 기업 ‘리플렉션AI’와 손잡고 상품 소싱(Sourcing)부터 발주, 가격 책정, 물류, 재고, 고객관리에 이르는 6대 영역 전반에 첨단 AI를 접목하기로 했다. 유통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AI가 흐르게 하겠다는 선언이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은 이 분야의 교과서로 통한다. 아마존은 4억여 개 상품의 일일 수요를 예측하는 자체 시스템 ‘SCOT(Supply Chain Optimization Technology)’을 30년간 다듬어 왔다. 지난 2024년 6월에는 새로운 ‘파운데이션 AI 모델’을 공개했는데, 판매 이력에 더해 날씨와 휴일 데이터까지 통합해 지역별 예측 정확도를 20%, 대형 할인 행사 예측을 10% 끌어올렸다고 발표했다. 매사추세츠 해안의 여름철 자외선 차단제와 콜로라도 겨울철 스키 고글을 따로 예측하는 식이다. 같은 미국이라도 지역마다 ‘내일 팔릴 것’이 다르다는 점을 AI가 읽어낸다. 여기에 생성형 AI 매핑 기술 ‘웰스프링(Wellspring)’까지 더해 단 몇 달 만에 280만 개의 아파트 주소를 자동으로 정리해, 라스트마일 배송 효율을 한층 끌어올렸다. ■ 공급망 최적화, AI가 바다와 하늘을 읽다. 수요 예측이 ‘얼마나 팔릴지’를 푸는 문제라면, 공급망 최적화는 ‘어떻게 옮길지’를 푸는 문제다. 글로벌 해운사 머스크(Maersk)는 전 세계 700여 척의 선박에서 매일 20억 건의 데이터를 수집해 AI로 분석한다. 부품 이상이 나타나기 3주 전에 85% 정확도로 고장을 예측해 정비를 미리 끝낸다. 그 결과 선박 가동 중단 시간이 30% 줄고 연간 약 3억 달러를 절감한 것으로 평가된다. 컨테이너 적재 순서, 항만 혼잡, 항로 변경까지 AI가 실시간으로 계산한다. 항해 한 번에 한반도 면적의 바다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선박이, 사실은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에 의해 조용히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미국 유니레버는 SNS 트렌드와 기상 데이터를 결합한 ‘디맨드 센싱’ 플랫폼으로 예측 오차를 30% 줄이고 재고 비용 3억 달러를 아꼈다. 월마트 역시 AI 수요 예측으로 결품률을 낮춰 고객 만족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공급망이 ‘일직선 파이프라인’에서 ‘실시간 신경망’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최근 아마존웹서비스(AWS)는 ‘Amazon Connect Decisions’라는 에이전틱 AI 솔루션을 공개해, 25개가 넘는 공급망 도구를 ‘AI 동료(Teammate)’로 묶어 인간 실무자와 24시간 함께 일하도록 만들었다. 24시간 잠들지 않는 디지털 동료가 재고를 감시하고, 이상 신호를 추리며, 필요한 결정을 사람에게 추천한다. ■한국 물류, ‘에이전틱 AI’ 시대로 국내 기업들의 행보도 빠르다. 신선식품 새벽 배송으로 시장을 연 마켓컬리는 자체 개발한 AI 분석 시스템 ‘데이터 물어다 주는 멍멍이(데멍이)’로 고객 주문을 정교하게 예측한다. 상품 종류, 연령별 수요, 날씨, 시기별 이슈, 고객 반응률, 기획전 등 수십 개 변수를 일·주·월 단위로 따져 발주량을 결정하고, 입고된 상품의 시간대·지역별 판매 추이까지 실시간으로 추적해 재고와 인력 운영을 미리 조정한다. 그 결과 일반 대형마트 폐기율이 3% 내외, 슈퍼가 7~8%에 달하는 가운데 마켓컬리는 신선식품 폐기율을 7년 연속 1% 미만으로 유지하고 있다. AI가 환경 부담과 운영 비용을 동시에 줄이는 좋은 본보기다. CJ대한통운은 한 걸음 더 들어가 ‘에이전틱 AI(Agentic AI)’ 전략을 내세웠다. 단순 자동화를 넘어, AI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자율 운영 체계다. 미들마일 운송 브랜드 ‘더 운반’은 AI·빅데이터 기반 라우팅으로 운임과 경로를 동시에 최적화한다. 라스트마일 ‘오네’는 2025년 업계 최초로 주 7일 배송 ‘매일오네’를 도입했다. 군포 풀필먼트센터에서는 AI 휴머노이드 로봇이 포장 공정에서 완충재 보충 작업을 실증하며 상용화를 준비 중이다. 로봇이 단순한 팔다리가 아니라 ‘판단하는 동료’가 되어가고 있다. ■ 포항·경북, 산업 물류의 새 무대 이 흐름은 포항에도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다. 포스코그룹은 지난 2월 제철소 철강 제품 물류관리에 휴머노이드 로봇 도입을 공식화했다. 이미 포항제철소에서는 AI 기반 크레인 자동 운송 시스템이 가동 중인데, 영상 인식과 라이다(LiDAR) 센서로 비정형으로 쌓인 코일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 한 번에 최대 8톤을 안전하게 옮긴다. 과거 12시간이 걸리던 복잡한 소량 주문 설계가 AI 덕분에 단 1시간으로 단축됐고, 용광로에서 쇳물을 빼는 출강 과정까지 AI가 스스로 최적화하고 있다. 그룹 물류 자회사 포스코플로우는 통합 물류 시스템 ‘플라워(Flower)’로 그룹 전반의 선박·차량·재고 정보를 실시간으로 연동하고 있다. 철강뿐 아니라 영일만항을 거쳐 가는 수출 컨테이너, 경북 내륙의 농수산물 산지 출하, 의성·청송 사과의 출고 타이밍 조절까지 AI 공급망 기술이 적용될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중소 판매자가 대형 플랫폼의 AI 풀필먼트 인프라를 빌려 쓰는 네이버의 ‘NFA(네이버 풀필먼트 얼라이언스)’ 같은 모델은 지역 소상공인에게도 새로운 길을 열어 주고 있다. 거대 IT 기업의 전유물이던 AI 물류 역량이 작은 가게의 무기가 되는 시대다. 포스텍과 지역 연구기관이 보유한 데이터 분석 역량이 지역 물류 스타트업과 결합한다면, 동해안에 한국형 ‘AI 물류 허브’가 자리 잡는 그림도 결코 먼 미래가 아닐 것이다. ■ 과제와 전망···사람과 AI의 동행 물론 그늘도 있다. 데이터 품질이 곧 예측 품질을 결정하기에, 양질의 데이터 확보가 관건이다. 전쟁·기후 재난·관세 같은 외부 충격에는 어떤 모델도 완벽히 대응하기 어렵다. 일자리 변화도 풀어야 할 숙제다. 단순 분류·운반 직무는 줄지만, 데이터 분석가, 로봇 운영자, AI 트레이너 같은 새 직무가 생겨난다. 정부와 지자체의 재교육 투자, 그리고 중소 물류·유통기업의 AI 도입을 돕는 공공 인프라가 절실한 이유다. 결국 AI 물류·유통 혁신의 진짜 가치는 ‘빠른 배송’을 넘어선다. 폐기 식품을 줄여 환경 부담을 낮추고, 품절로 인한 헛걸음을 막아 시민의 시간을 아끼며, 영세 판매자에게도 대기업 수준의 예측 도구를 손에 쥐여 준다. AI가 짜는 보이지 않는 연결망은, 결국 우리 일상의 풍경을 조용히 바꾸어 가고 있다. /서용운 계명대 글로벌 창업대학원 벤처창업학과 교수

2026-05-10

경북 전기차 지원 확대, 충전기 개선도 병행을

이란전쟁으로 유가가 폭등하면서 세계 전기차 시장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에너지 전문시장 조사업체인 SNE는 지난 1월 올 글로벌 전기차 시장침투율을 27%로 내다봤으나 이달 들어 29%로 상향 조정했다. 실제로 유럽 각국에서는 전기차 수요가 폭발해 3월의 경우 전기차 판매가 전년 대비 33% 증가했다. SNE는 2035년에는 전기차 시장침투율이 85%까지 치솟을 거라 했다. 국내 사정도 비슷하다. 전기차 수요가 가파르게 올라 지난달 국내 전기차 신규등록만 3만대를 넘었다. 전기차 신차 수요 증가와 더불어 중고시장에도 수요가 몰린다.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돌파하면서 내연기관차 유지비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가 대거 전기차로 눈을 돌린 탓이다. 경북도가 올해 정부 추가경정예산에 전기자동차 보급사업 국비 223억원을 추가 확보하는 등 친환경차 보급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했다. 이번 국비 확보로 도는 당초 계획한 전기차 보급량보다 5000대를 더 늘린다고 한다. 중동전쟁으로 늘어난 전기차 수요에 대응하면서 국가에너지 대전환 정책에도 부응할 수 있으니 도의 이번 정책은 시의적절해 보인다. 전기차 보급은 원래 내연기관차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량을 줄여 지구온난화에 대응하는데 목적이 있다. 전기차 보조금도 탄소배출량을 줄이고 지속 가능한 교통수단을 확보하는데 근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다만 경북도가 이번 전기차 보급 확대에 맞춰 친환경차 보급 효과를 높일 충전 인프라 관리에 더 많은 신경을 썼으면 한다. 충전 인프라의 양적 확대만큼 질적 개선이 매우 중요한 때문이다. 현재 국내 충전시설의 약 10%가 관리부실로 고장 나 있다 한다. 단순히 충전기 숫자를 늘리는 것을 넘어 고장난 채 방치된 충전기가 없도록 운영 및 관리 책임을 강화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향후 유가가 안정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전기차 수요는 지속 늘 것이다. 도민들이 불편없이 전기차를 구매하고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친환경차 보급의 효과도 높일 수 있다.

2026-05-07

김부겸·추경호의 경제공약 舌戰, 신선하다

김부겸·추경호 여야 대구시장 예비후보가 지난 5일 밤 SNS를 통해 침체한 대구경제를 회복시킬 해법을 놓고 공개 설전을 벌였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오랜만에 대하는 경제정책 담론의 장이어서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설전은 민주당 김 후보가 먼저 “이번 선거전을 대구경제 회복에 대한 해법을 찾는 계기로 만들자. 추 후보가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서 내놓은 ‘대구경제 대개조론’은 디테일이 부족하다”고 언급하면서 시작됐다. 추 후보의 경제공약에 재원 마련과 입법 추진 등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돼 있지 않다는 점을 꼬집으며, 여당 후보로서의 프리미엄을 부각시킨 것이다. 추 후보가 이날 밤 곧바로 반격했다. 그는 김 후보의 글을 읽고 SNS를 통해 “대구경제 대개조 공약은 지난해 12월 대구시장 출마 선언 이후 여러 차례 공개해온 내용이다. 김 후보가 뒤늦게 유사 공약을 내놓고 저작권을 거론하는 것은 정치적 시비”라고 응수했다. 실제 두 후보의 경제공약은 대동소이하다. 추 후보의 ‘대구경제 대개조’ 공약은 대구 산업구조를 AI, 로봇, 미래 모빌리티, 바이오, 반도체 등 5대 미래 성장 산업으로 대전환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김 후보도 대구시장 출마를 공식화한 후 ‘인공지능(AI) 기반 대구산업 대전환’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재명 정부가 대구를 ‘AI 로봇 수도’로 만들겠다고 공약한 만큼, 대구의 주력 산업인 자동차 부품, 기계, 금속, 섬유 분야에 AI를 접목하는 산업 대전환(AX)이 시급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번 6·3 지방선거에서도 전국적으로 중앙정치 이슈가 지배하면서 ‘지역 의제’는 뒷전으로 밀리는 감이 없지 않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각 정당과 후보자들이 쏟아내는 네거티브전은 여전히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런 혼탁한 분위기에서 두 후보가 대구경제를 살리기 위한 해법을 놓고 공개적인 설전을 벌이는 모습은 박수받을 만하다. 단체장과 지방의원 후보들이 자신의 정책·비전을 내놓고, 경쟁하는 것이 지방선거 본연의 취지와도 맞다.

2026-05-07

세한도(歲寒圖)

대구간송미술관은 지난달 7일부터 전시한 추사 김정희의 작품인 ‘세한도’를 오는 10일까지 전시한 후 마감한다. 서울과 제주에서만 볼 수 있었던 ‘세한도’가 처음으로 대구에 와 전시된 후 이번 주말을 끝으로 마감된다고 하니 아직 구경 못 한 분들이 있으면 시간을 내서라도 한번 가보길 권한다. ‘세한도’는 가로 69.2cm, 세로 23cm 크기 작품으로 국보 180호다. 조선 문인화 중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그림이다. 세한(歲寒)은 자신의 처지를 빗대 표현한 말이다. “날씨가 차가워지고 난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고 푸르다”는 논어 자한편에 나오는 ‘추운 겨울’이란 뜻의 세한에서 따온 말이다. 1844년 김정희는 50대에 제주도로 유배를 가 9년간 긴 유배생활을 한다. 그는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이른바 위리안치형을 받아 그와 접촉하는 것조차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의 제자 이상적은 추사를 극진히 모시고 중국으로부터 구입한 책들을 가져다 준다. 그의 정성에 감복한 추사가 선물로 그려준 그림이 ‘세한도’다. 초라한 집을 가운데 두고 소나무와 잣나무가 그려진 모습은 자신과 자신에게 정성을 다한 이상적을 상징하는 것으로 묘사했다. 그림 낙관에는 ‘오랫동안 서로 잊지 말자’는 뜻의 ‘장무상망(長毋相忘)’이 쓰여 있다. 이 그림은 일본인 추사 연구가 후지쓰카가 골동품 가게에서 구입한 후 보관하고 있다가 우여곡절 끝에 중앙박물관으로 돌아오게 된다. 대구간송미술관은 이번 연휴 기간이 세한도가 전하는 감동을 경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 했다. 이번 주말에는 꼭 대구간송미술관을 찾아 선비의 절개가 담긴 그림을 음미해보면 어떨까. /우정구(논설위원)

2026-05-07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 사이에서 길을 잃다

5월 8일, 어버이날이다. 부모님의 가슴에 꽃 한 송이를 달아드리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서구 사회에도 ‘어머니의 날(Mother’s Day)’이 있지만, 부모 모두에게 감사를 드리는 어버이날은 한국식 정서이자 전통이다. 그러나 올해 어버이날을 맞이하는 마음은 예년과 달리 무겁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하나뿐인 자녀에게 부모의 사랑이 집중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그 사랑이 왜곡된 형태로 발현된다는 데 있다. 몇 년 전부터 학교 현장에서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에 악성 민원을 제기하고,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각종 민원들의 홍수에 현장체험학습과 체육활동은 위축되어 유명무실해졌다. 급기야 감당하기 힘든 학부모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 초등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까지 벌어졌다. 교육 현장에서는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는 자조적 분위기가 만연하다. 이대로는 공교육이 무너질 수 밖에 없다. 더 심각한 것은 자녀들이 이를 배운다는 사실이다. 부모가 교사를 불신하고, 정당한 교육행위를 문제 삼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 역시 교사를 존중하지 않는다. ‘잘못된 행위를 해도 부모가 해결해줄 것’이라는 왜곡된 확신을 자녀에게 심어주는 것, 그것이 부모의 바람직한 역할인지 냉정히 물어야 한다. 자녀에 대한 맹목적인 보호는 사랑이 아니라 아이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벽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없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어머니는 시장에서 구입한 손수건을 곱게 포장해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부모님과 같은 분이니, 선생님 말씀을 잘 새겨들어야 한다.” 그 한마디는 어린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부모의 은혜와 스승의 은혜는 지금까지 나를 성장시킨 원동력이라는 점에서 결코 다르지 않았다. 그 시절 부모들은 교사를 신뢰했고, 교사들은 그 신뢰에 책임으로 응답했다. 그 믿음 위에서 아이들은 가정과 학교를 오가며 성장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임금과 스승과 부모는 하나라는 뜻이다. 오늘날 군주는 사라졌지만, 스승과 부모가 한 사람의 성장을 함께 이끈다는 본질적 가치는 시대를 초월한다. 5월에 어버이날(8일)과 스승의 날(15일)이 일주일 간격으로 나란히 놓인 것도 이 같은 철학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두 기념일이 같은 계절에 어깨를 나란히 하는 데는, 부모와 스승이 결국 같은 뿌리의 가치를 공유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와 스승은 대치하는 존재가 아니라 협력하는 존재여야 한다. 가정과 학교가 서로를 신뢰하고 협력할 때, 아이는 비로소 건강하게 자란다. 과잉보호의 온실 속에서 자란 아이는 실패를 견디는 힘을 잃고, 타인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부모의 사랑은 아이가 넘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설 힘을 길러주는 데서 더 깊어진다. 어버이날에 다시 묻는다. 부모와 교사가 함께 아이들에게 물려줄 값진 유산은 무엇인가?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아는 아이, 실패 앞에 타인을 탓하지 않는 아이, 부모와 스승 모두의 은혜를 함께 간직하는 아이 — 그것이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이 남겨야 할 유산이다. /주재원 한동대 교수

2026-05-07

국가폭력과 애도

한국 현대사에서 5월은 국가폭력에 관한 기억으로 점철되는 시기인 것 같다. 80년 5월 광주도 그렇지만, 91년 5월 투쟁도 있었기 때문이다. 광주에 비해 잘 기억되지는 않지만 91년 5월 투쟁도 시대의 전환을 알린 중요한 사건이었다. 1991년 4월 26일 대학생 강경대의 죽음으로부터 6월 29일 범국민대책회의가 명동성당 농성을 해제하기까지 약 60일 동안 민주주의를 사수하기 위해 전국에서 열린 대중 집회와 시위, 투쟁이 있었던 것이다. 91년 5월 투쟁은 ‘분신’과 ‘의문사’, ‘백골단의 쇠파이프’와 ‘지랄탄’, ‘유서’와 ‘부검’, ‘장례’와 ‘추모’ 등으로 상징되는 공안 통치의 폭력(성)이 수많은 죽음을 양산한 사건이기도 했다. 짧지 않은 투쟁의 시간 동안 13명의 열사가 목숨을 잃었는데, 이는 한국 사회가 2~3일 간격으로 국가권력에 의한 타살을 목도해야만 했었다는 사실을 뜻하기도 했다. 국가폭력에 대한 이 거대한 저항은, 당시엔 87년 6월 항쟁의 반복(제2의 6월 항쟁)으로 의미화되기도 했지만, 심각한 차이도 인식되고 있었다. 운동을 촉발한 공안당국의 야만성이 훨씬 노골화된 상태에서 현상한 이유에서였다. 박종철, 이한열 열사는 밀실에서의 고문과 시위대를 향해 쏜 최루탄에 희생되었지만, 강경대 열사는 백주 거리에서 정경들의 쇠파이프에 맞아 죽은 것이었다. 민주화 이후에 벌어진 폭력과 죽음이었기에 사회적인 충격은 더 컸다. ‘열사의 죽음’과 ‘분신 정국’, 91년 5월 투쟁에 관한 정치 공방이 죽음을 둘러싼 상징 투쟁의 양상으로 이어진 것은 그런 의미에서 일견 예견된 수순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91년 5월 투쟁이 실패의 역사로 기억되거나 기록되는 이유에도 ‘죽음으로부터의 도피’라는 실존적인 의식이 선재해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91년 5월 투쟁은 ‘80년대적’인 운동과 투쟁의 ‘마지막 불꽃’이었으며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의 (일종의) 분기였는데, 그 분기의 결절(結節)에는 ‘죽음으로부터의 실존적인 도피’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1980년대의 운동과 저항은 수많은 형태의 죽음에 의거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80년대적인 것’의 상징적·실존적 ‘죽음’으로부터 새로운 ‘삶으로의 전환’을 희구했던, 전도되고 오인된 다분히 사회(사)적인 인식의 이행 속에서 1990년대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영위하는 ‘삶’이란 수많은 타인들의 ‘죽음’에 빚지고 있다. 자유롭게 누린다고 상상된 일상도 무수한 저항과 희생 위에서 가능했다는 사실을 상기해봐도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애도’는 언제나 중요한 국가적·사회적 과제가 아닐까 싶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애도란 떠나간 자들과의 단절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단절의 불가능성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말한 바 있다. 희생 이후, 지속되는 슬픔과 우울에서 출발하는 애도는 언제나 이미 우리의 삶이 누군가의 뒤에서 살아남는다는 의미의 ‘생존’으로 새롭게 정의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희생된 자들의 죽음과 상실을 그대로 간직한 채 ‘베인 흉터’를 가지고, 남은 나날에 충실해야 한다. 상실 이후에 남겨진 우리의 삶을 위해서라도 애도는 계속돼야 한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6-05-07

팥쥐엄마가 그립다

달력을 보니 벌써 5월이다. 어버이날이 다가온다. 내 어릴 때는 분명 ‘어머니 날’이었다. 아버지의 존재는 미미했다. 어쨌든지 어머니한테만 잘하면 끝나는 날이었다. 빨간 카네이션과 하얀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면서. 그날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지 못하면 천하 불효자로 낙인찍힌다 싶어 먹을 것 안 먹고 알뜰하게 모아 나름 정성을 다했다. 그 당시 하얀 카네이션은 엄마가 돌아가신 애들이 사는 꽃이라고 했는데 돌아가신 엄마한테 어떻게 꽃을 달아 드리는지 참 궁금했었다. 그 의문은 여전하지만, 이미 하얀색이든 빨간색이든 카네이션 자체를 달고 다니는 부모를 찾아보기 힘들다. 나이 칠십 전에 꽃 달고 거리에 나가면 많이 민망하다. 그래도 상술은 먹히는지 카네이션 모양의 배지 같은 것을 달아준다. 아직 연로한 부모님이 아직 생존하시는 터라 챙겨드리기도 하지만 대접받는 위치에도 있는 입장이라 별로 쓸모도 없는 선물 쪼가리라도 받으면 은근히 기분은 좋다. 하지만 왜 지네들 마음대로 선물을 고르는지 알 수 없어 항상 주고받는 현금 속에 잔정이 더 싹튼다고 입이 마르도록 이야기했건만, 말에 씨가 안 먹힌다. 일찍 어머니는 여의고 한평생 어버이날에 산소만 찾은 친구가 있다. 하얀 카네이션을 그냥 무덤에 꽂아두고 한참 햇살이 주는 온기만 느끼다 온단다. 콩쥐 팥쥐 이야기가 생각난다. 콩쥐 팥쥐의 주된 이야기는 ‘계모’는 나쁜 엄마라는 것이다. 하지만 팥쥐에게 엄마는 어떤 엄마일까? 아마도 엄청 좋은 엄마가 아닐까? 반대로 콩쥐 엄마는 어떤 엄마일까? 콩쥐 엄마는 착하고 좋은 엄마일까? 내가 아는 콩쥐 엄마는 일찍 죽고 없다. 그래서 그 엄마가 착한지 나쁜지는 알 길이 없다. 팥쥐에게 좋은 엄마인 여자가 전처소생인 콩쥐에겐 악독한 짓을 하는 나쁜 엄마로 취급받는다. 네 사람 중 한 사람이 이혼하는 이 시점에서 뭔 말도 안 되는 콩쥐·팥쥐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 웃기지 않나 말이다. 더 황당한 것은 사람들은 있지도 않은 콩쥐 엄마를 닮으려고 한다는 게 더 우습다. 어떻게 행동하면 콩쥐 엄마가 되는 것일까? 무조건 애 놔두고 일찍 죽거나 이혼하면서 애 버리고 가면 콩쥐 엄마 되나? ‘맘충(Mom蟲)’, 엄마를 뜻하는 영어 단어 맘(Mom)과 벌레를 의미하는 한자 충(蟲)을 합성한 신조어 말이다. 자식 사랑을 핑계로 몰지각한 행동을 일삼는 엄마들을 말한다. 일부 개념 없는 행동을 일삼으면서도 자신들이 뭘 잘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 아예 없는 무개념 엄마들도 분명 보인다. 하지만 차라리 맘충 엄마들을 변호한다. 고상한 척 예절 바른 척하면서 애도 낳지 않거나 애를 버리는 엄마보다는 백번 낫다고 보기 때문이다. 어버이날 노래 가사처럼 하늘처럼 높고 바다 같은 넓은 사랑을 가진 것이 엄마라고 하는 바람에 지금 엄마들이 다 자기가 천사인 양 콩쥐 엄마가 되기 위해 허우적거리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콩쥐 엄마는 이 세상에 없다. 없는 콩쥐 엄마 흉내 내지 말고 현실을 직시해 보자. 자꾸 버려지는 애들이 많아지고 있단다. 지금은 콩쥐 엄마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식 끝까지 챙기는 팥쥐 엄마가 그리운 세상이다. /노병철 수필가

2026-05-07

압도적인 봄의 꽃잔치, 산청 대명사 꽃잔디 탐방

수식어가 화려하다. 아는 사람만 찾아간다는 봄 여행의 숨은 정수라고 한다. 돌계단을 오르면서 탐방이 시작되지만, 눈은 잠시라도 쉴 틈이 없다. 좌우로 펼쳐지는 꽃들의 자태는, 화려한 봄을 수놓기 충분하다. 사찰과 주변의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꽃밭으로 탈바꿈해, 다양한 색깔의 카펫을 깔아놓은 듯한 착각에 빠진다. 사찰의 이름은 대명사. 이곳은 몇 해 전만 해도 무명의 장소였다. 2008년 창건했으니 이제 겨우 서른 살 안팎의 연혁이다. 그런데 이 절은 우리가 흔히 알던 한국의 고즈넉한 목조 사찰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단청이 없는 하얀색 외벽의 현대적 건축 양식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불교의 조계종과 천태종이 아니라, 중국 소림사의 선풍을 이어받은 ‘소림선종’의 사찰이란 점이다. 해마다 4월이면 대명사는 사찰 전체가 분홍빛 꽃잔디로 뒤덮인다. 이국적인 하얀 건물들과 조화를 이룬 전체적인 분위기가, 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을 연출한다. 이곳이 사찰인지 꽃잔디 정원인지 구분이 불가할 정도다. 대명사에 꽃잔디가 심어진 것은 17여 년 전부터다. 주지 스님이 직접 꽃잔디를 심고 가꿔온 결과물의 산출이며 보답이다. 꽃잔디의 꽃말은 온화함과 희생이다. 빈틈없이 빽빽하게 자라는 특성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이곳이 위치한 지자체는 해마다 이 꽃 하나로 10일간이나 축제를 연다. 꽃의 원래 태생은 미국 중부와 동부, 여러해살이풀로 땅을 덮을 듯이 낮게 자라며 꽃을 피운다고 ‘꽃잔디’다. 척박한 조건인 건조한 모래땅에서도 잘 자라나 생명력이 대단한 식물로 알려졌다. 암울한 절망의 시대에서 오늘의 결과물을 만들어낸 우리의 국민성과도 어느 정도 상통하는 이미지가 있어 겹쳐 보이기도 한다. 대명사 꽃잔디 탐방은 절의 입구에서 101계단을 오르면서 시작된다. 대웅전으로 직진으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좌우에는 화려한 분홍색과 흰색의 꽃잔디가 영산홍과 어울려 돌계단 사이에서 절경으로 승화된다. 대명사의 첫 이미지로 강렬하게 각인되어서인지 가장 대표적인 포토죤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절의 큰 마당에는 분홍빛 꽃잔디가 절정이다. 정면으로 건물 한 층 높이의 돌계단이 보이고 그 끝머리에 대웅전이 세워져 있다. 현재 꽃잔디의 개화율은 약 80 프로 정도다. 꽃물결이 흥건한 마당을 지나가기 위해서는 징검다리처럼 배치된 맷돌 길을 한발 한발 건너야 한다. 탐방객들은 이 맷돌을 밟고 이동하면서 발아래에 피어난 꽃들을 감상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여건이 완성된다. 정면으로 오르는 중앙 돌계단 오름길은 꽃을 보호하기 위해 막혀 있다. 꽃잔디를 밟지 않고 바닥에 깔린 맷돌이나 화살표 방향을 따라 우측으로 이동하면, 꽃길이 이어지면서 대웅전과 연결된다. 최적의 방문 시기는 보통 4월 중순에서 5월 초까지다. 해마다 꽃의 개화 시기나 개화율이 다를 수 있어 사전에 검색해서 다녀오길 권한다. 사진 촬영 시 가장 대표적인 구도는, 대웅전을 배경으로 꽃잔디를 앞마당에 가득 담는 방식이다. 또 하나는 대웅전을 지나 사찰 뒤편의 산책로에서 대웅전을 내려다보는 풍경도 일품이니 취향에 따라 한번 시도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단 주의할 것은 이곳은 관광지가 아닌 실제 수행 중인 사찰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대웅전을 비롯한 사찰의 수양 공간에는 대부분 촬영이 금지돼 있다. 대웅전을 통과하면 꽃길은 자연스레 좌측으로 이어진다. 석가모니불과 약사여래불이 대웅전과 사찰의 내부를 내려다보고 있다. 청아한 물소리가 들리는 작은 소품 같은 조경이 일품인데, 작은 볼거리 겸 즐길 거리인 돌할매도 약사여래불 옆에 보인다. 돌을 들면서 자신의 운세를 점치는 것으로, 두 손으로 돌을 들어 올릴 때 돌이 들리면 자신의 염원이 이뤄지지 않고, 돌이 꼼짝도 안 하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삼선당으로 오르는 맷돌 같은 돌계단 길 좌우에는 흰철쭉이 도열한다. 사찰의 부속 건물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부속 건물답게 오름 길에서 살펴보는 주변의 전망과 조망은 빼어나다. 대명사 방문이 주는 특별한 의미는 단순한 꽃잔디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101계단을 오르면서부터 이어지는 동쪽으로의 조망이 산청휴게소와 경호강이 가장 먼저라면, 대웅전 앞이나 삼선당 주변에서의 조망은 먼 곳까지도 충분히 가능하다. 등산인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월명산(320m)과 백마산(286.3m), 적벽산(166.3.m)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너머의 황매산까지 풍광이 이어진다. 가장 빼어난 조망은 뭐라고 해도 북쪽이다. 산청의 명산 둔철산(823m)과 대명사의 철쭉들이 경계를 이루면 한 폭의 진경산수화가 따로 없다. 사찰의 탐방로 곳곳에 볼거리가 가득하다. 이름 모를 꽃들이 심어져 피어나고 곳곳이 포토 존이다. 바위솔이 조경으로 한몫한 장독대 주변과 노송과 기와집, 넝쿨이 원형의 독립문을 형성한 지점이 대표적이다. 절이 위치한 장소는, 경상남도 산청군 신안면 원지강변로 63번길 100이다. 사찰에 주차 공간이 마련돼 있으나, 꽃잔디 시즌의 주말에는 방문객이 많아 혼잡할 수 있어 진입로 주변 도로에 세워야 한다. 가장 좋은 점은 별도의 입장료나 주차비가 없다는 것이다. 주변으로 연계할 관광지가 많다는 것도 장점이다. 대명사에서 자동차로 13분 거리에 남사예담촌이 있고, 15분 거리에는 산청 정취암이 있다. 남사리에 있는 한옥마을인 예담촌은 현대에 인위적으로 만든 한옥마을이 아니라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같은 전통마을로 역사가 500년에 달한다.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정취암은, 상서로운 기운이 가히 금강에 버금간다고 하여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일컫던 장소다. 그다음으로 고려할 장소는 20분 거리의 생초국제조각공원이다. 생초국제조각공원 꽃잔디 축제가 열리는 장소로, 축제는 끝났어도 꽃잔디는 아직도 절정이다. 어느 장소를 연계해도 산청의 봄을 가장 완벽하게 정복하는 하루 코스가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지홍석 수필가·여행 칼럼니스트

2026-05-07

탄소문명에서 수소문명으로, 환경운동의 철학적 전환

요즘의 날씨는 지구온난화가 더 이상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폭염과 홍수, 가뭄과 산불이 반복되고 있으며, 기후위기라는 말은 이제 학자들의 연구 주제가 아니라 시민의 일상이 되었다. 기후재난은 점점 더 강해지고 그 빈도 또한 높아지고 있다. 인류는 지금 산업혁명 이후 가장 거대한 문명 전환의 시대 앞에 서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위기를 인식하는 것만이 아니라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동안 환경운동은 주로 개인의 도덕적 실천을 강조해 왔다. 에너지 절약, 자동차 덜 타기,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 재활용 확대와 같은 실천은 시민의 의식을 높이고 환경문제에 대한 책임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면 이러한 방식만으로는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 지구온난화의 핵심 원인은 개인의 생활 습관이 아니라 산업 구조와 에너지 체계에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 시민들은 경제활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 가족을 부양하고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산업과 일자리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환경운동 역시 단순한 도덕운동이 아니라 경제와 산업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사회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 다시 말해 환경운동은 이제 탄소중립 경제를 만들어 가는 시민운동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현대 문명은 단순히 자연을 파괴하는 체제가 아니라 인간의 고통을 줄여 온 문명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병원의 응급실과 수술실을 떠올려 보자. 그곳에서는 단 한 순간도 전기가 멈추어서는 안 된다. 심장박동을 감시하는 모니터, 인공호흡기, 수술 장비, MRI와 CT 같은 의료 장비는 모두 전기에너지에 의존한다. 만약 전기가 멈춘다면 수많은 생명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 팬데믹의 시대 역시 이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전 세계의 의학자들은 밤낮없이 연구를 이어가며 백신을 개발했다. 백신은 냉장 보관이 필요하고 생산 과정 역시 막대한 전기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백신을 생산하는 제약회사들의 연구소와 공장 또한 거대한 전력 시스템 위에서 작동한다. 인류의 질병을 치료하는 의약품과 의료 기술 역시 산업과 과학기술, 그리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위에서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분명히 말해야 한다.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좋은 전기를 멈추는 것은 결코 환경운동이 될 수 없다. 환경을 지킨다는 이름으로 문명을 멈추는 것은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환경운동은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말해 왔다. 그러나 인간 사회가 자연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만약 산업과 에너지 시스템이 멈춘다면 가장 먼저 고통받는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일 것이다. 의료 시스템에 의존하는 환자들, 현대 의약품과 치료 기술에 의지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산업과 일자리 속에서 삶을 유지하는 시민들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 환경문제를 바라보는 철학적 시각 역시 중요하다. 19세기 미국의 사상가 소로우(Henry David Thoreau)는 저서 ‘월든(Walden)’에서 자연 속에서의 단순한 삶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성찰했다. 그는 자연을 존중하고 인간 문명의 과도한 물질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20세기의 과학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는 인간 사회의 발전을 “열린사회”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며, 사회 문제는 비판과 토론, 과학적 검증을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철학자 한스 요나스(Hans Jonas)는 현대 기술 문명 속에서 인간이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책임의 원칙”을 제시했다. 이 세 철학자의 이야기를 함께 들으면 하나의 중요한 메시지가 드러난다. 자연을 존중하면서도 과학과 기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을 지는 문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환경운동 역시 문명을 거부하는 운동이 아니라 이러한 책임 있는 문명 전환의 운동이어야 한다. 1970년대 환경운동의 상징적인 보고서인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는 산업 성장의 한계를 경고하며 세계적인 환경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보고서는 인류 문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졌지만 동시에 산업 발전 자체를 부정하는 해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환경운동은 단순한 성장 억제론을 넘어 지속가능한 문명 전환을 고민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문제는 문명 자체가 아니라 탄소 중심의 산업 구조에 있다. 인류의 산업 문명은 오랫동안 석탄과 석유라는 탄소 에너지 위에서 발전해 왔다. 철강과 자동차, 조선과 건설 산업은 이 에너지 구조 위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새로운 에너지 체계로 이동해야 한다. 태양과 바람, 그리고 수소와 같은 청정에너지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산업 문명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인류는 지금 탄소문명에서 수소문명으로 이동하는 역사적 전환의 문 앞에 서 있다. 이러한 전환 속에서 포항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도시다. 포항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상징적인 도시이며 철강 산업의 중심지다. 동시에 포항은 탄소중립 산업 전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도시이기도 하다. 특히 수소환원제철 기술은 포항이 새로운 산업 문명으로 이동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아직까지의 철강 생산은 석탄을 사용하는 고로 공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탄소가 배출된다. 그러나 수소환원제철 기술은 석탄 대신 수소를 사용하여 철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는 탄소 대신 물이 배출된다. 이 기술이 산업적으로 성공한다면 철강 산업은 더 이상 기후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산업으로 변화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하나의 문장을 강조하고 싶다. “포항의 다음 50년은 수소환원제철에 달려 있다.” 이 문장은 단순한 산업 정책의 슬로건이 아니다. 그것은 포항의 미래 경제와 기후위기 대응, 그리고 지역 공동체의 생존이 연결된 문제다. 환경운동 역시 이러한 산업전환을 고민해야 한다. 환경운동은 산업을 무조건 반대하는 운동이 아니라 산업을 더 친환경적인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사회운동이 되어야 한다. 문명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문명을 바꾸는 것. 탄소문명에서 수소문명으로 거대한 전환의 길 위에서 포항이 새로운 산업 문명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포항의 다음 50년은 수소환원제철에 달려 있다.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2026-05-06

좋아하지 않으면 싫어하는 건가요

SNS에서 우연히 어떤 이의 소식을 보게 되었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면 누군가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굳이 설명하자면 꼭 그렇지는 않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일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처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나는 그에게 어떤 감정적인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상태라는 것을 이야기한 것뿐이다. 그런 중립적인 상태에 대해 말하려면 이처럼 말이 다소 장황해진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면 좋아하지 않는구나 생각하면 될 텐데 꼭 싫어한다고 받아들이는 것이 나는 조금 번거롭다. 그와는 오래 전에 만났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만난 지인의 지인이었는데, 술에 취해 목소리가 커지고 말을 조금 경솔하게 내뱉는 느낌이 있었다. 그냥 술자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례한 종류의 사람이었다. 부적절한 언사를 여기저기 난사하다 보니 어떤 말은 나를 향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런 사람을 만나면 반응하지 않거나 도망을 가는 편이 현명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때는 때때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들이 받아버리곤 하던 시절이었다. 무례에 무례로 대응하자 그는 욕을 했고 우리는 고성을 내지르며 다투게 되었다. 지인들이 우리를 뜯어 말리는 수준에 이르자 나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해가 질 무렵,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자리에 있던 내 지인에게 번호를 받았다고 했다. 자기가 술에 취해 실언을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나도 잘 한 것은 아니니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이것도 인연인데 소주나 한 잔 하고 친해졌으면 좋겠다며 내게 괜찮은 때를 정해달라고 말했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 정도로 풀었으면 된 것이지 굳이 술 마시고 내게 행패 부린 사람과 또 술을 마시는 것은 영 내키지 않았다. 적당히 둘러대고 흐지부지 넘어갔으면 되었을 텐데 그때 나는 그런 것을 참 못했다. “서로 나쁜 감정은 다 풀었으니 된 것 아닐까요? 굳이 친하게까지 지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조금 매정하게 들릴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에게 그렇게 말했고, 그와는 그 이후로 만난 적이 없다. 그렇게 말한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사실 그것이 나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교류하고 지내는 이가 많은 편이다. 소중하게 대해야 하는 이들도 많고 그만큼 챙겨야 하는 이들도 많다. 그래서 그것을 잘 해내며 살아가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팽창해버려 내 그릇의 크기를 벗어나버린 내 대인관계가 언제나 버겁다. 그런 판국에 굳이 첫인상이 좋지 않았던 이와 친하게까지 지내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가뜩이나 부족한 내 마음의 공간을 그에게까지 내어주고 싶지는 않았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싫어한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처럼, 어떤 이들은 친하게 지내지 않으면 사이가 나쁘다고 판단해버리곤 하는 것 같다. 어쩌다가 서로를 만나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굳이 친해지자고 다가오면 나는 때때로 당황스러운 기분이 든다. 같이 일을 하고 있으니 당연히 밥도 같이 먹고 술도 같이 먹어야 하지 않냐는 사람들, 인간적인 매력을 알 만한 계기조차 없었는데 갑자기 나이를 묻더니 형 동생으로 지내자는 사람들. 결국 연락도 하지 않는 사이가 되어 이따금 우연히 카톡에 뜬 서로의 이름을 보며 개운치 않은 기분을 느끼곤 한다. 애초에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더라면 겪지 않아도 되었을 일이다. 서로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고,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고, 상대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고 싶은 욕망이 동한다면 친구가 될 수도 있겠지만 굳이 같은 공간에 잠시 머물렀다는 이유만으로 친해지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사이,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지만 굳이 누가 누구를 챙기지 않아도 되는 사이는 얼마나 편리한가. 오래전 다투었던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특별히 반갑다거나 아니면 불쾌하다거나 한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그냥 잠시 그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사이로 지내고 싶었던 내 마음에 대해 생각했을 뿐이다. 그가 여기저기 내 험담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적도 있고, 그에게 내 번호를 알려주었던 지인에게서 왜 굳이 그렇게 야박하게 굴었느냐고 타박을 받기도 했다. 좋지 않은 사람과 나쁘지도 않게 지낸다는 것이 그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나보다. 그렇지만 그것은 결국 그의 사정이다. 나는 여전히 그를 애써 좋아하거나 싫어할 생각이 없다. /강백수(시인)

2026-05-06

겁 많은 사람

영화 ‘살목지’가 24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손익분기점의 세 배를 넘어선 엄청난 기록이었다. 한국 영화계에서 호러 장르가 흥행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보통 호러 장르의 호황 시기는 여름이지만 지금은 봄이므로 비수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호러의 어떤 점에 매료된 것일까? 나는 귀신이 등장하는 공포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 서린 귀신, 악령, 유령 같은 존재가 인간을 공격하는 전개로 흘러가는 순간 김이 팍 샌다. 육체 없이 둥둥 떠다니는 존재들은 생전에 억울한 죽음을 맞아서, 그게 너무 분하고 서러워서 인간들을 홀려 죽음으로 꾀어낸다. 그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대개는 어떤 장소에 매여있다는 것이다. 물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으로 시끄러운 저수지나 이사 오는 족족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바람에 폐가나 다름없는 저택, 과거 공동묘지였다던 학교, 문 닫은 폐병원 등, 귀신이 상주하는 곳은 일반인이라면 쉽게 접근하지 않을, 감히 접근할 생각도 하지 못할 곳이 대부분이다. 물론 나 또한 그런 곳은 이전에도 가본 적 없고 앞으로도 갈 생각이 전혀 없다. 평생 방문할 일 없는 곳이므로, 그곳에 사는(?) 귀신들을 만날 일 또한 평생 없으리라 생각하니 전혀 무섭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겁 없이 용감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겁 많은 사람에 속한다. 어둠을 무서워하고, 바퀴벌레와 비둘기를 무서워하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무기력과 우울을 두려워한다. 그중에서 제일 두려운 건 무기력과 우울이다. 특히 지금처럼 봄철이 돌아오면, 익숙하고 지겨운 우울감이 나를 깊이 짓누른다. 실제로 자살률이 가장 높은 계절이 봄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봄이 되면 우울증이 증가하는 현상을 ‘스프링 피크(Spring Peak)’라고 부르는데, 기온과 일조량이 증가해 신체 리듬에 변화를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봄은 새로 시작하는 계절이기 때문에, 성취에 대한 압박과 대인 관계 변화 등이 사람들을 더욱 우울한 방향으로 밀어낸다는 것이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잠자고 있던 열정과 의욕이 깨어난다. 나 또한 매년 1월 1일이 되면 한 해의 목표와 버킷리스트를 적어둔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을 정리하며 올해는 기필코 다르게 살겠노라 다짐하지만, 2월이 지나 3월, 4월, 그리고 봄의 끝물이라 할 수 있는 5월이 되는 순간 좌절에 휩싸인다. 남들은 벌써 무언가를 이룬 것 같은데 나만 아직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밀려온 탓이다. 그런데 이런 감정을 나만 겪는 게 아니었다니. 많은 사람이 이 시기에 움츠러들고 작아진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사계절 중 가장 환하고 활기차며 생명이 움트는 시기인 봄의 뒷면에 이런 그늘이 있을 줄이야. 다시 영화관으로 돌아가 본다. 매점에서 팝콘과 음료를 고르고 화장실에 간 일행을 기다린다. 상영 10분 전이 되면 같은 영화를 보는 사람들과 함께 천천히 상영관 안으로 입장한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광고가 끝나길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은 옆 사람과 수다를 떨거나 휴대폰을 본다. 이윽고 상영관의 불이 꺼지면 일제히 커다란 스크린을 바라본다. 그 안에서 어떤 무시무시한 존재가 나오더라도, 푹신한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 우린 안전하다. 사람들이 호러 장르에 매료된 건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불이 켜지고 상영관 밖으로 나오는 순간 우리를 공포에 떨게 했던 귀신과 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니까. 그들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존재이든 간에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걸 아니까. 그러나 무기력과 우울은 그런 식으로 우리 곁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낀다. 올봄에는 가족들과 자주 나들이를 갔다. 한강도 가고 식물원도 갔다. 서울 근교로 나가 사람 많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고 인적 드문 곳을 찾아 걸었다. 날이 좋다거나 바람이 시원하다거나 같은 뻔한 말도 없이 그저 걸었다. 햇볕이 따뜻하고 꽃이 아름다워서 어쩐지 조금 쓸쓸하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겁 많은 사람답게 꽃을 밟을까 봐, 빨리 걷다 발이 꼬여 넘어질까 봐 걱정하며 걸었다. 그때 나를 앞질러 뛰어가던 강아지가 우뚝 멈춰 서선 나를 바라보았다. 앞서간 강아지가 인간을 돌아볼 때는, ‘여긴 안전하니 와도 돼’라는 뜻이라고 했던가. 그 얼굴이 너무나 근엄해 보여서 나는 조금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겁 많은 사람이 내디딜 수 있는 가장 큰 보폭으로. /양수빈(소설가)

2026-05-06

5월에 어울리는 영화 한 편

‘가정의 달’이라 불리는 5월이다. 가정을 이루는 구성 요소는 재론할 것 없이 가족. 부모와 자식, 거기서 영역을 확장하면 조부모와 손자녀를 가족이라 칭한다. 유교적 관점이 사회를 지배했던 과거 한국에선 혈연으로 얽힌 사람들만을 ‘가족’이라 불렀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 가족의 개념도 확대되고 있다. 입양한 자녀 또는, 이복과 이부형제 역시 가족의 범주에 포함하는 게 이젠 자연스럽다. 이런 변화된 가족 형태를 웃음과 감동 속에 담아낸 영화가 있다. 개봉한 지는 꽤 됐지만 5월에 다시 본다면 그 의미가 작지 않은 작품이다. 송해성 감독이 연출한 영화 ‘고령화 가족’은 혈통의 순수성을 절대적으로 생각해온 우리 사회에서 현대적 가족의 의미를 관객들에게 물었다. 영화의 원작이 된 소설은 천명관이 썼다. 중년임에도 철없는 실수를 거듭하는 장남, 사회 부적응자인 차남,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막내딸, 가출과 비행을 거듭하는 손녀, 이들을 애정으로 감싸며 가족의 중심에 선 엄마이자 할머니. ‘고령화 가족’은 어째서 이 가족이 현재와 같은 입장에 처했는지, 그들이 지나온 길은 어떠했는지, 무슨 사연이 5명의 가족을 같은 공간에서 살게했는지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때론 웃고 때로는 울게 된다. 실수가 연속되고, 아픔이 반복되는 가난한 삶. 영화 속 가족의 모습은 한국의 보통 가족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실수와 아픔 속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게 ‘가족이 길’이 아닐까? 감독은 이런 질문을 사람들에게 던진다. 가정의 달 5월. ‘고령화 가족’을 본 후 이런 질문을 해본다. “꼭 피를 나눠야만 가족인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