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한양석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 변호인은 "검찰이 1만 쪽에 달하는 수사기록 중 3천여 쪽을 변호인에게 공개하지 않았고 이에 대해 재판부가 열람ㆍ등사 허용 결정까지 내렸는데 이행하지 않았다"며 형사소송법에 따라 법원이 이를 압수해달라고 신청했다.
변호인은 검찰이 공소유지 의무뿐만 아니라 공익 대변자로서 객관의 의무를 지녀야 하며 피고인의 이익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최근에 추가로 공개된 서류에서 경찰의 진술 내용이 일부 번복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지적했다.
변호인은 "이미 시너가 뿌려진 상황에서 직원들을 망루로 들여 보냈다가 사고가 발생하다 보니 걱정이 돼 말을 바꾸려 했다. 그래서 불이 난 후에야 시너를 창밖으로 들이붓는 것을 보았다고 말을 바꾸었다"는 경찰 특공대 진술이 있었다고 밝혔다.
또 "진술 내용 중에 사실과 다른 게 있는데 화염병이 떨어진 게 아니라 망루 계단 쪽으로 직선으로 뚝뚝 불똥이 떨어져 내렸다"는 진술 번복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 밖에 시너를 붓는 시기를 본 것이 언제인지에 관해서도 진술이 바뀌기도 해 검찰이 선별적으로 공개한 기록에만 의존한다면 화재 발생 시점과 원인이 중요 쟁점인 재판에서 농성자의 방어권 행사에 큰 제약이 예상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객관 의무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며 편파적으로 농성자에게 유리한 증거를 감추는 것이 아니다. (재판과) 별 상관없는 정치적인 것이 포함돼 있고 사건 진행에 방해될 우려가 있어 공개하지 않았다"며 왜곡이나 은폐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열람ㆍ등사 결정을 준수하지 않으면 형사소송법에 따라 이를 증거로 사용하지 못하게 조치할 것이고 변호인의 압수 신청을 받아들일지는 별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형사소송법은 변호인이 검사에게 공소사실의 인정 및 양형에 영향을 미치거나 자신의 주장에 관한 서류의 열람ㆍ등사를 요구할 수 있으며 검찰이 이를 거부하면 재판부에 교부 허용 신청을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법원이 열람ㆍ등사 결정을 했음에도 검찰이 즉시 이행하지 않으면 관련 증인이나 서류에 대해 증거 신청을 할 수 없다.
검찰은 이날 참사 당시 상황에 대한 촬영물 등을 증거로 신청했으나 변호인이 "동영상 중간에 끊기는 장면이 발견되는 등 중요 부분이 편집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동의하지 않아 촬영자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변호인은 공소사실과 관련, 농성자들이 망루 내부로 불이 붙은 화염병을 투척했다는 혐의는 인정할 수 없으며 이들의 행동과 경찰관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고, 설사 있는 것으로 드러나더라도 결과를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입장을 밝혔다.
재판부는 22일 오전 10시에 첫 공판을 열고 공소사실에 대한 농성자 본인의 입장을 청취한다.
검찰은 재판이 끝난 뒤 비공개 사유와 관련, 열람ㆍ등사를 허용하지 않은 서류에 정치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재판과 관련없는 부분까지 공개할 경우 전국철거민연합 등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