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수입개방으로 가격은 떨어지고 농자재 가격은 폭등했다.
일손은 부족하고 가뭄은 끈질기다. 이처럼 쌀농사의 환경이 대내외적으로 악화됐지만 믿을 건 땅밖에 없는 농사꾼으로서 농사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 해 농사를 시작할 때는 풍년에 대한 기대로 신명이 나야되는데, 사실 이런저런 걱정부터 앞서는 게 현실이지요. 그렇다고 이 나이에 다른 걸 하겠나? 죽으나 사나 기대고 살 곳은 땅입니다.”
가곡1리(가일마을) 권대중(61) 이장이 한숨처럼 내뱉었다.
권씨를 포함해 이 마을 쌀 전업농 7명으로 구성된 ‘쌀 전업농 작목반’은 하루 전인 18일 작목반 공동육묘장에 볍씨를 넣었다.
볍씨를 넣는 작업에는 예닐곱 명의 일손이 필요하므로 작목반은 10년 전부터 공동육묘장을 운영해 일손과 경비를 아끼고 있다.
이 육묘장의 모판에서는 사나흘 후면 모의 싹이 올라오고 이 모는 다음달 중순이면 논으로 나가 해와 바람을 맞고 자랄 것이다.
권 이장은 쌀농사를 짓는 일이 갈수록 힘들어진다고 몇 번을 강조했다.
가장 문제는 역시 가격. 지난해 농협의 나락 수매가는 40kg당 5만4천원으로 나락 40kg 세 포대를 찧어야 80kg 쌀 한 가마가 나옴에 따라 쌀 가격으로 치자면 한 가마니에 16만2천원에 불과하다.
이듬해 봄이면 행여 가격이 오를까 저장해 놓은 쌀은 최근 더 하락한 15만6천원에 팔린다.
농민들의 입장에서 적어도 한 가마에 17만5천원은 되어야 수지타산이 맞는다.
그나마 자기 농토를 가지고 농사를 짓는 전업농은 타격이 덜하지만, 대도시로 떠나버린 마을 출신 지주에게 땅을 빌려 소작하는 소작농의 경우 희망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농사가 어렵게 되자 마을의 농가 수는 해마다 줄고 있다. 한 때 150여 호에 달하던 농가 수는 현재 60여 호에 그친다.
젊은이가 씨가 마른데다 현재 상황대로라면 귀농하려는 젊은이가 있더라도 말려야 할 판이다.
그렇다고 해도 권 이장을 비롯한 작목반 회원들이야 어디 떠나갈 곳도 없는 이 마을 귀신들이다.
“들판에서의 신명이나 풍년에 대한 설렘은 없어요. 그러나 농사가 세상의 큰 근본이라는 옛말이 틀리지 않았다고 믿고, 농사꾼이 잘 사는 세상을 기대하면서 올 농사도 시작해 봅니다”
/이임태기자 lee77@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