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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 덖고 아홉 번 말리고

권오신 기자
등록일 2009-04-21 19:58 게재일 2009-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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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차(茶)인들이 가장 힘겨워하는 시기가 지금이다.

겨울 내내 중국 발효차를 마시면서 첫 물차가 나오기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마지막 고비가 삼사월이다.

며칠 전 필자는 동해안에서는 유일하게 차나무가 자라는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성동리 산기슭에 차인(茶人) 황보 기(皇甫 祺· 71) 선생과 올라 연두 빛 고운 찻잎이 간신히 피어나는 자연의 섭리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4월 중순에서 5월 초순이면 봄이 가장 빨리 찾아오는 우리나라 남해안 일대에서 자라는 차나무마다 여리고 연둣빛 고운 찻잎이 올라온다. 우리 차는 언제 딴 찻잎으로 제다를 하느냐에 따라 ‘신분’ 즉 ‘품질’이 결정된다.

봄비가 잦고 본격 농사가 시작되는 곡우(20일) 이전에 딴 찻잎으로 제다된 첫 물차를 ‘우전차(雨前茶)’라고 해서 맛과 향색이 가장 뛰어난 최상급 차로 대접받는다. 더욱이 혀끝을 간질일 첫맛을 느끼려는 차인(茶人)들의 조급함까지 보태지니 우전차가 더 귀한 대접을 받는다.

5월 중순에서 6월 하순에 따낸 찻잎으로 만들어진 차는 ‘두물차’, 8월은 ‘세물차’, 9월∼10월은 ‘끝물’ 또는 ‘네물차’여서 차를 따는 시기가 늦어질수록 찻잎이 두꺼워지고 뻣뻣해져 떫고 쓴맛이 많아져 인기가 떨어진다.

최근 들어서는 찻잎을 따는 시기가 늦어질수록 맛은 떨어지나 카테킨 등 유익한 성분이 많아 건강 유지에는 더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끝물차도 인기가 괜찮은 편이다.

올해는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받아 날씨는 따듯했지만 남도 지방에서 마저 차나무가 생장하는데 도움이 될 봄비가 흡족하게 내리지 않아 찻잎생장이 좋지 못해 차 맛이 떨어질 수도 있다.

차나무는 영하 7∼10도의 기온에 노출되면 냉해를 입고 건조한 날씨에는 여린 잎이 누렇게 변하는 특성이 있어 전남 보성이나 경남 하동, 제주 등 알맞은 습도와 따뜻한 날씨가 유지되는 남쪽 지방에서만 재배되어 왔다.

5년 전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성동리 죽림(竹林)에서 지내시면서 차(茶)재배를 처음으로 성공한 차인(茶人) 황보 기 선생은 동해안은 올 봄 심한 가뭄으로 인해 남쪽지방보다 한 달 이상 늦은 5월 하순에 가야 첫차를 딸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구룡포 성동리 일대는 뇌성산이 겨울 바닷바람을 막아 주고 해풍에 실려 온 습도가 차나무 성장을 도우는 자연여건을 갖추었다.

한편으로는 겨울 추위를 이길 수 있도록 밑거름을 수북하게 쌓아준 주인의 정성이 뒤따랐기 때문에 더딘 성장이긴 하지만 조금씩 커가는 모습이 신기하기까지 했으나 이 일대가 국가산업단지에 들어가 천년 만에 간신히 태어난 차밭이 사라지게 될 처지다.

다섯 잎 차(茶)꽃의 꽃말은 영원한 삶과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꽃말처럼 노란 꽃술을 감싸는 꽃잎색깔이 어머니의 치마폭처럼 수수하다.

“살아가는 길이 너무 편안하게도 인색하게도 어렵게 살지도 말라”는 해석이 담겨 있으니 고요함(靜)과 화경청적(化敬淸寂)으로 이끄는 데는 차 마시기가 단연 으뜸이다.

차의 종류는 찻잎의 발효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한국차인들이 즐겨 마시는 녹차는 발효를 시키지 않는다.

가마솥에서 구증구포(九烝九曝: 아홉 번 덖고 아홉 번 말리고)를 통해 찻잎이 가진 타닌성분이 효소에 의해 발효되지 않게끔 한다.

잎이 완전히 마르기 전 곰팡이 번식을 통해 발효시켜 후(後)발효차라고 불러지는 중국보이차(普珥茶)는 품질이 떨어질수록 곰팡이나 지푸라기 썩는 맛이 나는 것과는 달리 우리 녹차는 맛 향색이 모두 뛰어난 차다.

야생과는 달리 비료나 농약에 의해 자란 차는 우려내보면 잎이 흐늘거리고 차를 넘겨도 목에 단침이 나오지 않는 등 차이가 나고 뒷맛이 텁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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