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시내에 이 공원 저 공원을 떠돌며 겨우 목숨만을 부지해 나가던 거지 한 사람이 하루는 공사장 부근에서 인부들이 먹다 버린 막걸리와 반쯤 상한 치즈를 잔뜩 집어 먹고는 그만 술에 취해 시뻘건 대낮에 큰 길가에 큰대자로 늘어져 낮잠을 자게 되었는데 갑자기 지나가던 자동차의 경적소리에 깜짝 놀라서 잠에서 깨어난 거지가 지나가는 행인들을 향해서 이렇게 소리쳤다.
“왜 이렇게 고약한 냄새! 내가 잠시 자고 일어난 사이에 온 세상천지가 다 썩었구먼.”
바로 자기 코 밑에 묻은 치즈와 막걸리가 썩어서 나는 냄새인지도 모르고 그 썩은 냄새에 온 세상이 썩었다고 착각하여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는 이 기막힌 거지의 행동이 꼭 서글픈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왠지 씁쓸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어느 나라에든 큰 부패, 작은 부패가 있기 마련이지만 요즘의 박연차 스캔들에서도 나타났듯이 한 장사꾼이 놓은 쥐약을 먹고 탈이 나 전직 대통령의 형과 조카사위, 현직 대통령 친구, 전 정권의 장·차관, 전·현 정권의 대통령 수석비서관, 여야 국회의원, 공기업 회장, 판사·검사·경찰 고위 간부 등이 검찰의 수사 도마 위에서 바둥대고 있거나 머지않아 도마에 오를 거라는 소문에 공직 사회 전체가 덜덜 떨고 있는 이 나라 모습은 아무리 봐도 엽기적(獵奇的)이다.
검찰·법원·경찰 등 쥐를 잡으라고 길러온 나라의 고양이들이 쥐 먹으라고 놓았던 쥐약을 제 입에 털어 넣고 나뒹구는 장면은 코미디에나 나올 일이다.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은 ‘대통령의 코’로서 부패 냄새를 남보다 먼저 맡아 그게 곪아 터지지 않도록 사전 조치하는 것이 임무다. 그 ‘대통령의 코’가운데 ‘전 정권의 코’는 이미 구치소로 실려 갔고 ‘현 정권의 코’는 하루걸러 소문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정치인·공직자는 왜 그렇게 돈과 부정(不正)에 맥을 못 추는가? 건국 이후 수백 수천명의 공인(公人)들이 교도소에 갔고, 특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연례행사처럼 전직 대통령들과 고위층들이 뇌물과 부정에 연루되어 줄줄이 쇠고랑을 차거나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신령스러운 용은 맛있는 먹이를 탐내지 않고 기품 있는 봉황은 새장이 예쁘다고 제 발로 들어가지 않는다(神龍不貪香餌 彩鳳不入雕籠)’. 죽어 관(棺) 속에 누워서도 돈에 손을 내밀 정도로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중국인이 스스로를 경계할 때 되새기는 속담이다.
용(龍)과 봉황(鳳凰)의 흉내를 내며 거드름을 피우다 쥐약 묻은 미끼를 삼키고 쥐덫에 갇히고만 대한민국 공직자들이 반드시 외워둬야 할 구절이다.
그리고 모두가 자신의 주제를 망각한 채 무조건 잘못되면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회 풍조, 자기 자신은 떳떳하지 못하면서 남을 욕하고 서로 시기하고 싸우고 비방하는 삐뚤어진 행동과 남이야 어떻게 되던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잘못된 사고와 자기 분수를 모르는 무절제한 사치와 방탕이 결국은 이 사회를 원칙이 통하지 않는 썩고 부패한 나라, 오늘의 이 엄청난 위기를 가져 왔다면, 이제라도 정신 차려야 한다.
그야말로 자신을 망각하고 온 세상이 썩었다고 착각하는 거지의 코가 아니라 모두의 가슴속에 나로 말미암아 이 나라가 이렇게 병들고 썩었다는 철저한 자기 반성과 함께 항상 나보다는 이웃과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옳은 일이 아니면 행하지 않았던 옛 선조들의 거룩하고 숭고한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우리의 정신과 행동 속에 삶의 좌표로 삼아 나간다면 진정 우리는 오도된 가치관을 바로 잡고 정직하게 양심 껏 순리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대접받고 인정받는 기본이 바로 선 나라, 동방의 등불 대한민국이 21세기 세계 초일류 국가로 거듭나는 지름길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