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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김기포 기자
등록일 2009-05-15 21:33 게재일 200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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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포 <포항기계중앙교회 담임목사>


봄비가 그리운 계절이다. 몇 번 봄비가 내렸지만 가뭄을 해갈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밭작물이 타 들어가고 사람들의 마음도 타들어간다. 이러다가 한해 농사가 망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봄비에 관한 속담은 봄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보여준다. ‘곡우에 비가 안 오면 논이 석자가 갈라진다.’ 4월 하순경이면 농가에서 씨앗을 파종하게 된다.


이때 비가 안 오면 파종한 씨앗이 싹이 트지 않게 되어 가뭄을 심하게 타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봄비는 쌀 비다.’ 이 말은 건기인 봄철에 비가 넉넉히 오면 그 해 벼농사 짓는데 수월하여 풍년이 든다는 뜻이다.


또한 ‘봄비가 많이 오면 시어머니 손이 커진다.’ 봄에 비가 많이 오면 밭작물의 생육이 좋아지고 모심기도 잘되어 풍년이 들어 시어머니 인심이 좋아진다는 뜻이다.


물은 생명이다. 특히 봄비는 움트는 새싹들에게 최고의 영양분이고 밭작물에는 최고의 소식이며 목말랐던 대지에는 최상의 음료가 된다. 그런데 봄비가 적어서 하천에는 점점 물이 말라간다.


하천이 바닥을 드러낸다. 큰일이다. 아무리 인간이 기계를 이용하여 지하수를 퍼 올린다 해도 한번 내리는 봄비만 못하다.


봄비는 겨울의 묵은 때를 씻어 주듯 사람들에게 시원함을 준다. 그래서 봄비는 반가운 손님이다. 봄비는 사람과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한다. 봄비는 낙담을 희망으로 바꾸고 근심을 기쁨으로 바꾼다. 그래서 봄비는 귀한 손님이다.


봄비는 세상의 온갖 먼지를 쓸어내린다. 비가 오고 난 거리는 깨끗하다. 가로수는 한결 생기가 돈다. 그리고 하늘도, 숲도 더 가까이 보이고 청명하게 보인다. 봄비는 초록의 여름을 더 푸르게 만든다.


봄비가 내리면 누구나 생각이 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봄비는 첫사랑이다. 추억이다. 그리움이다.


비가 내리면 사람들이 그립다. 그래서 비 오는 날에는 따뜻한 커피가 그립고 시골 어느 간이역이 그립다.


봄비는 우리의 마음을 그리움으로 적신다. 흘러간 인연을 떠오르게 한다. 그래서 봄비를 맞으면 옛 추억들이 살아난다.


비가 오면 논두렁에서 고기 잡던 유년의 시절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때만 해도 논도랑엔 메기, 붕어, 미꾸라지들이 많았다. 이제는 그 때 그 추억들이 사라져서 슬프기는 하지만 그래도 봄비는 반가운 손님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봄비가 내리고 나면 마음이 행복해 지고 마음이 촉촉해 진다.


이렇게 봄비는 누구에게나 그리움이다. 흔히 사람들은 봄비를 단비라고 부른다. 나무가 봄비를 만나면 잎을 만들고, 땅이 봄비를 만나면 꽃을 피우고, 들판이 봄비를 만나면 푸른 생명으로 자란다.


지금 대지는 봄비에 목말라하고 있다. 메마름에 목마른 만물들은 봄비를 기다리고 있다.


이 세상을 흠뻑 적셔주는 봄비가 그립다. 봄비 소식은 모든 이들의 갈증을 풀어 주리라. 그리고 각박한 인심을 녹여 주리라. 그래서 우리에게 자유와 생기를 주리라.


계절이 변하는 것도 우리 마음이 언제나 한곳에 머무르지 못하는 것도 아마 언제나 새로움을 갈망하는 몸부림인지 모른다.


그 무엇이 보이지 않게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봄비는 정신없이 달려왔던 세월의 수레바퀴를 잠시 멈추게 만든다. 바쁜 일상의 시간들을 돌아보게 한다.


봄비가 주는 평온과 기쁨, 환한 들판의 미소, 그리고 파란 생명의 새싹은 생기 없는 미물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봄비가 내리면 사람들은 시인이 되고 음악가가 된다. 어느 시인은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우리도 무엇인가 두드리는 사람이 될 것을 노래했다.


‘무엇인가 창문을 똑똑 두드린다. 놀라서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본다. 빗방울 하나가 서 있다가 쪼르르 떨어져 내린다.


우리는 언제나 두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이 창문이든, 어둠이든, 또는 별이든’ ‘빗방울 하나가 가지 끝에 매달려 오전 내내 지지 않고 있다 아, 바람이 불 때마다 온 나무숲이 신선하다. 모든 작은 것들을, 모든 흔들리는 것들을 사랑하고 싶다. 시인의 말처럼 모든 흔들리는 것은 신선하다.’


봄비가 그리운 계절이다. 우리들도 봄비처럼 서로에게 그리움이 되어 무엇인가 두드리는 사람이 되었으면…. 봄비를 사랑하면 언젠가 봄비가 내리지 싶다. 흔들리는 것은 모든 것이 아름답다. 나뭇잎에 흔들리는 봄비도 아름답다.


아, 그리움의 봄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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