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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

최재영 기자
등록일 2009-06-18 20:03 게재일 2009-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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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영 서양화가


해가 바뀌면서 우리 집에는 아주 특별한 녀석이 이사를 왔다. 도도라는 이름을 가진 러시안 블루의 암고양이 한 마리다. 아들이 키우던 녀석인데 처음부터 아내의 반대가 만만치 않아 입씨름도 많았지만 당분간이란 전제로 맡았다.


녀석은 처음 대하는 낯선 환경이 무어가 그리도 궁금한지 탐색을 하느라고 종일 내내 온 집안 구석구석을 바닥이 꺼질세라 조심스럽게 헤집고 다녔다.


그리고 이삼일이 지나자 차츰 안정이 되는지 거실의 창문 가까이에 있는 텔레비전 꼭대기에 올라가서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고 눈을 지그시 감고 졸음을 즐기기도 했다.


아들에게 왜 도도라고 했느냐 물었더니 걷는 뒷모습이 하도 도도해 보여서 붙인 이름이라고 했다. 그래서 녀석을 가만히 관찰해보니 정말로 걷는 뒷모습이 팔등신 미녀가 높은 하이힐을 신고 아주 자신만만하게 히프를 살랑거리며 걷는 모습과 흡사하다. 이름 하나는 그럴듯하게 잘도 붙였다.


우리는 흔히들 다른 짐승들에 비해 고양이는 매우 영악하고 재빠르며, 성질이 그다지 온순하지 못한 동물로 알고 있지만 소문과는 무척 다르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워낙 동물을 좋아하는 아들 덕분에 요키, 치와와, 스파니엘 등 여러 애완견을 번갈아가면서 근 십년동안 키운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종전에 알고 있던 고양이에 대한 선입견이 꽤 부정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사실 고양이는 강아지보다 성질이 훨씬 낙천적이고 느긋하다. 물론 사냥감이 생기면 빠르기가 비호같지만 평소에는 느려 빠진 곰탱이다.


또한 냄새를 많이 풍긴다고 하지만 고양이를 키워 본 사람이라면 고양이가 신변관리를 얼마나 철저하게 하는지를 잘 안다.


배변은 모래로 덮어 전혀 냄새가 나지 않게 하고 발이나 털에 붙은 먼지조차도 깨끗이 털어내는 것을 보면, 한마디로 철두철미하다. 거기에 비하면 강아지는 웬만큼 훈련되지 않고서는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경우가 많아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고는 키우기가 어렵다.


고양이는 의외로 길들이기도 쉬울 뿐만 아니라 주인의 눈치를 잘 살펴서 사람에게 가까이할 때와 멀어져야 할 때를 잘 분별 한다. 여러모로 보나 강아지는 고양이를 따르지 못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는 고양이의 부정적인 선입견 때문에 반려동물로 고양이보다 강아지를 더 선호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잘못 알아서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특히 직업에 따른 외모의 경우가 그렇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은 다른 어떤 직업군보다도 편견이 많다.


대부분 사람들이 화가라면 흐트러진 긴 머리칼에 텁수룩한 수염과 마도로스파이프를 입에 물고 헐렁한 복장에 담배연기에 찌들어 구질구질해 뵈는 모습이라야 제격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말끔하고 세련된 모습은 화가답지가 않다는 거다.


나를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내가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고 하면 대부분은 믿으려 하지 않는다. 전혀 그런 일을 하는 사람 같지가 않다는 거다. 아무리 봐도 공직이나 특별한 직에 있는 사람으로 안다.


어릴 때부터 꾀죄죄한 꼴을 못 보는 성격이라, 입성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고 보니 화가라는 선입견과는 전혀 맞지 않아 보인다는 거다.


왜 이런 등식이 생겨났을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서양의 화가들 대부분이 생전에 인정을 받은 작가는 드물었다. 그래서 화가라면 가난에 찌들어 늘 허기진 모습이 고착된 이미지로 남은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다 보면 사람은 물론이고 사회현상에 대해서도 선입견에 사로잡히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바로 고정관념에 의한 생각의 경직에서 비롯된 탓이다.


세월이 흐르니 세상도 변하고 사람도 변해 간다. 어느 것 하나 변하지 않고 제자리에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선입견이라는 고정관념에 붙잡히면 변화가 어렵다. 부정적인 과거의 역사, 과거의 사람, 과거의 생각으로 굳어진 선입견을 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열린 생각으로 가는 길이자 바로 창조의 원동력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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