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기획 `…한국문학을 생각한다` 눈길
지난해부터 반연간지로 변모를 시도한 `포항문학`은 지난 1981년 창간호 발간 이후 그동안 다른 지역에서 그 지역의 이름을 달고 발간되는 문학지와는 달리 책의 면모나 내용에서 전국적 문학지를 지향하는 가운데 지역 거주 회원들의 신작도 충실히 담아내면서 정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포항에서 중요한 거점 역할을 담당해왔다.
이번 30호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오늘의 한국문학을 생각한다`는 권두 기획.
과연 오늘의 한국문학은 새로운 시대적 조건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가, 야합하고 있는가, 아니면 창조적 대응의 가능성을 드러내며 그 길을 열어 나가고 있는가? 이 엄중한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특별히 마련한 이 기획에서는 현재 한국문단에서 주목 받는 문학평론가로 활약하고 있는 방민호(서울대 교수), 유성호(한양대 교수), 고봉준(`문학수첩` 편집위원) 3인이 오늘의 한국문학이 당면한 심각한 병폐를 진단하고, 이어 한국의 진보적 문학비평을 선도해온 문학평론가 염무웅(전 영남대 교수)과 이번 30호에 특별히 편집책임을 맡은 소설가 이대환의 에세이가 오늘의 한국문학에 대한 깊은 사유를 보여준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누구인가? 어디로 가는가?` 존재에 대한 이 근원적 물음에서부터 출발한 방민호의 사유는 1930년대 임화, 김기림, 김환태의 세계를 섭렵한 바탕 위에서 오늘날 한국문학의 커다란 문제로 대두된 인생비평, 문명비평으로서의 비평정신이 작가에게나 비평가에게나 똑같이 고갈 또는 퇴행된 것이라는, 숨길 수 없는 부끄러운 곤혹과 직면하고, 더 나아가 파시즘의 징후들이 다시 출현하고 있는 우리 사회를 직시한다. 이러한 눈으로 읽어낸, 황석영 등 우리 시대의 주요 작가들에 대한 비판은 문학이 왜 총체적인 인생비평과 문명비평이 되어야 하는가를 똑바로 가리킨다.
유성호는 `오늘의 한국 시단에 대한 단상`을 통해 1980년대의 진영 개념이 소멸된 `백가쟁명`의 우리 시단이 개별성과 보편성을 통합적으로 형상화하는 현실 지향의 시정신을 회복해야 하는 과제를 비롯해 인간을 배제한 자연숭배의 속성, 인간의 존재 조건에 대한 탐색의 빈곤, 신성한 존재와의 소통 부재 등을 지적한다. 또 그는 텍스트 해석의 정확성 견지·서구 추수성 극복·상업주의(문단권력)와의 밀월관계 청산을 전제로 하는 비평의 적극적 개입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고봉준은 `한국문학의 빅 브러더`에서 지나간 계몽의 시대에 문학이 누렸던 특권적 지위가 해체되고 오히려 문학의 존재 자체에 대한 냉소의 분위기가 무르익은 이 자본주의 상품시스템 안에서 가장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품`의 하나로 전락해가는 문학의 운명을 직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문학과 필생의 인연을 맺게 된 사연에서 출발한 염무웅의 `미지를 향한 모험-서구문학의 자장 안에서 돌아본 반세기`는 우리 근대문학에 대한 회고를 넘어 `서구문학의 자장 안`에 갇혀 그 미혹의 감옥에서 탈출하지 못한 우리 문학의 난관에 대한 사색을 담은 귀중한 글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