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뭐 하세요?”
“젓가락질 연습하고 안 있나. 남들하고 밥 먹을 때도 그렇고~ 젓가락질을 못하니 좀 그래서~”
그렇게 시작한 젓가락질은 20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어머님, 쉬엄쉬엄 하시죠~. 같은 근육을 쓰는 일이라 손가락에 무리가 갈 텐데~”
“괘않다. 연습하면 나아지겠지~ 젓가락도 자꾸 쓰니까 금방 느는구만~ 인자는 쌀알도 안 집나.”
그렇게 며칠을 하시더니 이제는 제법 젓가락 사용이 익숙해지셨단다.
어머님의 유년시절, 어머님 댁의 여성들에게는 밥상 위의 금기가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선택적으로 집을 수 있는 젓가락의 사용을 남자들에게만 허용했었다는 것이다. “어디 여자가 감히~어른들 앞에서 음식을 콕콕 집어서 먹느냐~”는 금기가 어머님댁에는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숟가락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중심으로 먹을 수밖에 없었단다. 때문에 어머님께서는 젓가락 사용법을 익힐 기회가 없었으며 지금까지도 젓가락 사용이 서툴다고 하신다. 덕분에 나의 남편도 젓가락 사용이 서툴다.
어머님의 시대에는 특별히 여성들에게만 적용되는 금기들이 많았던 듯하다.
논리가 정연한 언변, 활동적인 성격, 자주 웃는 일, 공부 잘하는 것, 글 잘 쓰는 것 등 이들 모두 어른들의 걱정을 듣기에 충분했었다고 한다. -나름 근대화된 시기를 살아온 내게는 납득하기 힘이 들지만 말이다.- 그래서일까? 어머님과 비슷한 시절을 살아오신 세대의 어머님들에게는 후회와 한이 많아 보인다.
“내가 그때 부모님 말씀 거역하고 공부를 더 했으면 지금 더 나은 삶을 살았을까?”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면 꿈이 있던 자리에 후회가 조심스럽게 들어선다.
후회가 들어선 자리엔 한과 질투도 혼돈스럽게 공존한다.
여성으로서 당신들의 삶이 얼마나 소외받고 배제당했었나를 한스러워하시지만, 이에 대한 젊은 여성들의 저항에 대해선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내기도 한다. 자신의 입장과 상황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것이다. 어떤 입장과 처지에 있든 보편적 가치에 따른 초지일관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대체로 많은 이들이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사회현상과 일상을 판단하겠으나 자신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 가치의 적용이 달라지기도 함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개인에게 있어 가치관의 적용과 판단이 변화하는 것은 그다지 사회적 반향을 불러오지는 않을 것이나, 그것이 제도를 비롯한 사회로 확대될 때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음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인권에 대한 보편적 가치는 시대와 정권의 성격을 불문하고 관통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시민들의 인권이 침해될 때 이를 구제할 수 있도록 국가와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기구인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되기에 이른 것이다.
더불어 소외되거나 배제되었던 여성인권이 오늘날처럼 확장되기까지 그저 주어진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머님 세대 여성들이 가족과 사회로부터 받았던 차별적 관행들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산되면서 이에 대한 개선의 요구가 높았으며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이들의 희생과 헌신적인 싸움 끝에 얻어낸 성과였던 것이다. 이후 국가정책 속에 여성들의 삶의 질을 높여내기 위한 정책 전담 기구로서 여성부가 신설되었으며 여성가족부를 거쳐 다시 여성부로 오늘까지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외된 이들의 인권과 복지를 담지해야 할 직무를 가진 국가인권위원회와 여성부에 대한 권한의 축소와 정책 방향의 시대적 역행은 유감스럽다 아니할 수 없다. 특별히 근래 들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권고한 권고안이 시정되지 않는 일이 많다 하니 인권 구제의 후퇴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음이다.
심려가 늘어나는 요즘, 어떤 정치적 입장과 처지에 따라 변화하지 말아야 할 보편적 가치의 중심은 인권-평등권·자유권·사회권 등- 즉, 국민들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고르게 누릴 수 있도록 함에 있음을 위정자들이 잊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