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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말의 결, 마음의 결

나무를 만지다 보면 결이 느껴진다. 결을 따라 쓰다듬으면 부드럽지만 거슬러 만지면 손끝이 걸린다. 말도 그렇다. 결이 맞으면 대화는 잘 닦인 포장도로처럼 부드럽지만 결이 다르면 말끝마다 사각거린다. 요즘 나를 지치게 하는 한 사람이 있다. 그녀는 보편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말을 정답이라 믿는다. 그녀의 말은 늘 선을 긋고 그 선 위에서만 옳고 그름을 가른다. 처음엔 설명도 했고, 우회해서도 말했고, 직진으로도 해보았으나 여러 각도의 내 노력이 무색할 만큼 그녀와의 대화는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들리지 않는 듯 했다. 그녀와의 대화는 소통이 아니라 그녀의 확신을 확인하는 절차처럼 느껴졌다. ‘허수아비의 오류’에 빠진 그와의 대화는 나의 에너지를 너무 많이 앗아갔다. 거리를 두고 싶었다.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관계는 늘 존재한다. 그러다 보니 내 말의 결도 거칠어졌다. 나도 모르게 방어적이고 냉소적인 말들이 튀어나왔다. 나를 지키려고 뱉어낸 말들이 나를 더 무겁게 만들고 나만의 틀에 가두어 헤어나오기 힘들게 만들었다. 잘 말하고 싶어 대화창 속에 만들어 낸 언어의 조합을 지우고 삭제하고 감정을 절제하고 최선을 다해 담담하게 보내도 그녀의 답은 가시가 백만 개쯤 붙은 날카로운 검이 되어 내게 돌아온다. 말이 거칠어질수록 내 안의 불안도 커졌다. 그녀와의 소통에는 너무 많은 틈이 벌어져 그 어떤 강력한 본드를 붙인다 한들 틈을 메우기는 힘들었다. 그녀와의 대화는 진심이 아니라 방어였고 넘지 못할 벽을 넘는 일이었다. 잘못된 결을 풀어내야 할 의지조차 희미해졌고 이해 대신 비난만이, 신뢰 대신 의심만이 활어처럼 팔딱거렸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설명하지 않아도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 내 말에 틈을 만들어 주는 사람들, 그들과의 대화는 정답을 찾지 않아도 괜찮다. 어떤 날은 나보다 더 흥분해주고 어떤 날은 나보다 더 차분하고 어떤 날은 조용히 말을 놓아둔다. 그런 사람들 곁에서는 말이 자라난다. 나도 조금씩 부드러운 결을 회복하게 된다. 말이란 결국 마음의 결이다. 서로 다른 결을 억지로 맞추려 애쓰기보다 다름을 인식하고도 멀어지지 않는 연습이 필요하다. 나는 최근에 더 깊이 알아가고 있다. 꼭 잘 맞는 사람만이 고마운 것이 아니라 맞지 않아도 상처 주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의 배려와 마음의 결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의 결을 따지지 않고 내 마음의 결을 맞춰주는 사람들은 여전히 주위에 많다. 무심코 흘리듯 내뱉은 하소연 하나를 기억하고 먼 길을 달려와 미역국 한 냄비와 갈비찜을 두고 가며 밥 잘 챙겨 먹어라 말을 건넨 사람, 바쁜 일상 속에서도 내 표정의 그늘을 읽고 조용히 안부를 물어오는 사람, 내 이야기에 해답 대신 눈물을 건네며 함께 울어주는 사람, 그들은 말보다 마음을 먼저 건네는 이들이다. 그들의 말은 내 안에 스며들어 날카로워진 결을 다듬고 상처 난 마음의 결을 천천히 봉합한다. 나는 그런 이들 앞에서야 비로소 ‘말을 잘하는 법’이 아니라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서로의 결을 존중하고 아껴주는 이 관계들 속에서 나는 말보다 더 깊은 대화를 배운다. 대화의 결이 좋은 사람들과의 소통은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을 비워내게 해준다. 내 말이 누군가의 쉼이 되어주기를, 내가 누군가에게 에너지를 빼앗는 존재가 아니길 바라게 된다. 나의 말이 가까운 이들의 마음을 베지 않기를, 내가 꺼낸 말로 누군가가 결을 다시 세울 수 있도록 마음을 기울이게 된다. 말은 결국 마음을 데우는 그릇이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을 다치게 하는 칼날이 되기도 한다. 어느 쪽으로 말을 쓸 것인가는 나의 선택이다. 관계는 언제나 뜻하지 않게 엇갈리고 말 한 줄에 멀어지기도 한다. 나의 입을 통해 던져진 말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았을 때 무엇으로 기억될지를 생각해 본다. 나의 말이 누군가의 상처가 아니라 지친 하루의 등불이 되고 웃음이 되기를 다시 복기해 본다. 말의 결이 마음의 결임을 오늘도 새겨본다. /김경아 작가

2025-07-22

‘파친코’의 선자가 살았던 이카이노를 찾아서

2025년 4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일본 오사카에서는 세계 박람회가 열리고, 이를 기념하여 간사이 지역 곳곳에서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평소에 볼 수 없는 귀한 전시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6월 9일부터 6월 12일까지 간사이 지역을 답사하기로 했는데요. 6월 9일 오후에 도톤보리 근처 작은 호텔에 짐을 푼 저는 우선 오사카의 이쿠노구(生野区)부터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이쿠노구는 과거 이카이노라 불리던 곳으로, 재일한인의 성지와도 같은 장소입니다. 전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이민진의 ‘파친코’(2017)에서 주인공 선자가 고향인 부산 영도를 떠나 일본에서 정착한 곳이 바로 오사카의 이카이노입니다. 이카이노(猪飼野, 돼지 기르는 곳)는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고대부터 돼지를 기르던 사람들이 살던 곳이라고 합니다. 20세기 들어서는 재일한인들이 이 곳에서 돼지를 길렀다고 하는데요.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듯이, ‘파친코’에서는 이카이노에 도착한 선자가 이카이노는 동물 냄새가 “화장실 냄새보다도 더 지독하게” 나는 곳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본격적으로 이카이노에 조선인들이 몰려든 것은 오사카가 ‘동양의 맨체스터’라고 불릴 정도로 공업도시로 발전한 것과 관련됩니다. 1910년대 히라노강 굴착 공사가 시작되면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러한 수요에 맞춰 조선인 노동자들이 바다를 건너 일본에 왔던 것입니다. 특히 제주도와 오사카 사이에 정기항로가 생기면서, 이곳에는 제주도 출신들이 많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폭증한 재일한인으로 인해, 1930년대 초에는 이미 이 지역에 ‘조선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1933년에 발행된 ‘아사히그라프’에는 ‘백의와 돼지머리로 가득한, 오사카의 명소 조선시장’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을 정도입니다. ‘파친코’에서 남편이 투옥되며, 집안의 가장이 된 선자도 커다란 김치 항아리를 나무 수레에 싣고 이카이노의 노천시장에 가서 장사를 시작합니다. 과거 ‘조선시장’으로 불리던 상점가는 거리 정비를 거쳐, 오늘날의 ‘오사카 코리아타운’으로 그 모습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현재 ‘코리아타운’은 연간 200만 명이 방문하는 오사카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코리아 타운’으로 가기 위해 난바역에서 지하철을 탄 저는 쓰루하시역으로 향했는데요. 쓰루하시역 앞에도 재일한인의 자취는 강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쓰루하시 역의 개찰구를 나와 미로같은 골목에 들어서자, 한식 특유의 매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곳곳에서 풍겨 왔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 상표나 음식들 사진도 가득했는데요.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쓰루하시 ‘국제시장’이었던 겁니다. 1945년 패전 후 쓰루하시역 부근에는 암시장이 생겼고, 이곳에서 조선인 노점상들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그 때의 암시장이 모태가 되어 오늘날의 쓰루하시 ‘국제시장’이 형성된 것입니다. ‘국제시장’을 구경한 저는, 10분 정도 걸어 일본 내 최대 규모의 재일한인 마을이라는 ‘오사카 코리아타운’으로 향했는데요. ‘백제문’을 지나자 오색 문양으로 꾸며진 400미터 거리의 ‘오사카 코리아타운’ 거리가 펼쳐졌습니다. 거리 곳곳에는 한글 간판이 가득했고, ‘민속촌’이나 ‘광장시장’ 같은 낯익은 이름의 상호들도 얼마든지 볼 수 있었습니다. 한류의 인기를 반영해서인지 곳곳에 ‘케이(K)-컬쳐’ 관련 가게들이 많은 것도 인상적이었는데요. 무엇보다도 ‘오사카 코리아타운’의 한복판에 있는 ‘오사카 코리아타운 역사자료관’이 유익했습니다. 2023년에 설립된 이 역사자료관은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재일한인과 코리아타운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귀한 자료를 알뜰하게 모아 놓고 있었습니다. 크게 ‘인트로덕션’, ‘현재-1988년’, ‘1988년-1945년’, ‘1945년-고대’, ‘알면 더 재미있는 코리아타운’이라는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요. 오랜 시간 꼼꼼하게 전시자료들을 살펴보니, 재일한인의 역사는 물론이고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의 오랜 역사가 손에 잡힐듯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재일한인의 성지와도 같은 이곳에는 민족교육을 행하던 오사카시립미유키모리소학교(1923년 설립)와 오사카조선제4초급학교(1946년 설립)도 있었는데요. 특히 오사카시립미유키모리소학교는 2012년에 유네스코의 평화와 국제적 연대라는 이념을 실천하는 학교로 인정되어 ‘유네스코 스쿨’로 불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두 학교는 학생 수의 감소 등으로 2021년 3월(오사카시립미유키모리소학교)과 2023년 3월(오사카조선제4초급학교)에 각각 폐교된 상태였습니다. 비가 내리는 평일 오후여서인지, 사람들의 발걸음도 뜸한 ‘오사카 코리아타운’을 걸으며, 재일한인 앞에 펼쳐진 새로운 미래에 대해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2025-07-22

기후변화와 재난에 대비하여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인정사정없는 괴물 같은 수마에 할퀴고 휩쓸려 무너진 상흔이 처참하기만 하다. 6월초부터 폭염으로 심상치 않던 날씨가 ‘극한폭우’의 가공스러운 물폭탄으로 국토 곳곳을 불과 몇일만에 무자비하게 초토화시키고 말았다. 건물이 통째로 무너지고 산사태로 순식간에 삶터가 사라지는가 하면, 애지중지 가꾸고 키우던 농작물과 가축들은 흔적 자취조차 없어졌으니, 억장이 무너지는 실의와 비통함을 그 무엇으로 달랠 수 있을까. 더욱이 경남 산청군은 지난 3월 장기간의 산불이 난 지역에 기록적인 ‘700mm 괴물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인명피해가 커져서 안타깝기만 하다. 예고된 장마나 태풍급의 영향도 아닌데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걷잡을 수 없는 이상기후와 물불을 가리지 않는 자연재난의 위협과 경고에 망연자실할 따름이다. 수해현장을 보면서 하루하루 무탈하게 일상을 보내며 주어진 삶을 온전하게 지켜간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인지 새삼 느껴지기도 한다. 이른바 기후변화는 자연현상의 한 부분으로 일정한 지역에서 시시각각 또는 오랜 기간에 걸쳐서 진행되는 기상의 변화라 할 수 있다. 폭염, 폭우, 가뭄 등 극단적인 기상현상의 증가로 바람직하지 못한 기상이변이 나타나는 경우이다. 이러한 기상이변은 인간활동이나 산업화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 등으로 지구의 평균기온이 상승하는 지구온난화에서 비롯되며, 해수면 상승, 생태계 파괴 등을 초래해 인간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음산한 구름떼/회오리에 휘감겨//비바람 사정없이 마구마구 쏟아지고 휘몰아쳐/땅과 하늘이 할퀴고 소스라치니 골(谷)과 내(川)가 요동치고/강과 산이 술렁거려 패이고 깎이고 흔들리고 꺾이다가···./적시고 파고들어 불어나 넘쳐 둥둥 떠서 여지없이 휩쓸려 떠내려가는/과욕의 부유(浮遊)같고 오욕의 민낯 같은 잡동사니의 난무(亂舞)-//삼킬 듯 날름거리는/황토빛 하류의 혀”-拙시조 ‘하류(下流)’ 전문 시대가 녹록지않고 사회적인 분위기마저 어수선해지니 날씨마저 갈수록 돌변하는가. 온통 집어삼킬 듯 괴력을 보이며 산하를 어지럽게 휘젓어놓은 자연재난 앞에 속수무책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재난에 대비하고 위협에 대응하는 태세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거나 상시적인 피해가 재발되는 인재(人災)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상습 침수나 홍수경보는 물론이고 산불이나 산사태 대응에 대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연구, 예측으로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단기적인 조치와 중장기적인 복원계획도 마련돼야 할 것이다. 산불과 산사태는 하나의 연쇄고리로 작용해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재해와 재난은 일상 속에 늘 도사리고 있다. 자칫 방심하거나 소홀한 틈을 타고 어김없이 파고드는 사고와 재난의 위험 앞에 늘 조심하고 안전한 마음을 가다듬는 자세와 교육ㆍ훈련을 통해 대응하고 지속적으로 대처해가는 기술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연에 대한 외경심을 갖고 기상이변을 염두에 두며 작은 것 하나라도 소홀이 다루지 않으며, 다각적인 방안과 장기적인 안목으로 기후변화와 자연재난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비태세를 갖춰 나가야 할 것이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07-22

종교와 기업 혁신문화

말레이시아는 다종교, 다민족 국가로 이슬람교 중심의 다문화 사회이다. 이슬람교는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내려 있으며, 기업 문화와 경영 방식에도 중요한 영향을 준다. 이슬람교는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말레이계의 종교이고 국교이다. 인구의 20% 중국계는 불교, 6% 인도계는 힌두교, 도교 및 기타로 구성된다. 종교의 자유 보장은 헌법상 명시되어 있고 자국민 우대 정책은 법조계, 고위 공직 등 사회 전반에 반영되어 있다. 군법보다 상위법이 종교법이고, 이슬람 종교의 영향으로 말레이 식당에서는 술을 마실 수 없고, 할라 의식을 거친 허락된 식당에서만 돼지고기, 소고기를 먹을 수 있다. 기업에서 보면, 공장 건축 시 이슬람교 기도실이 설계에 있어야 허락되고, 하루 다섯 번의 기도를 한다. 이슬람의 가치관은 식품, 화장품, 금융 등 모든 산업에 할랄 인증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 또한, 하루 5회 기도 시간을 고려한 시간 운영계획이 필요하고, 8월 라마단 금식 기간에는 근무시간 조정, 낮 시간 회식, 행사 자제와 무슬림 여성의 히잡 착용 존중 등을 고려해야 한다.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 등 민족 간 그리고 종교 간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고, 갈등을 피하고 공존을 지향하는 조직문화로 가야 한다. 또한, 현지 문화와 융합된 인사관리가 필요하다. 필자가 P사 말레이시아 2개 법인을 1년 7개월 간 컨설팅 할 때 일이다. 사무실은 중국계와 인도계가 주류를 이루고, 공간마다 자민족의 신을 모시는 신전과 법당이 있다. 생산직에 주류를 이루는 말레이계는 공장 일정 위치에 기도실이 있고 하루 근무 중에 5번의 기도와 금요일은 인근 큰 사원에 들러 기도를 한다. 우리 관점에서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나 이들에게는 가장 소중한 삶의 문화다. 2개 법인 중 하나는 말레이계 중심의 생산 흐름이고, 1개는 네팔, 미얀마,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의 외국인 노동자가 주류를 이룬다. 2개 법인 인적 구성과 종교, 기업 상황의 조건은 확연히 큰 차이가 있다. 여기서 혁신을 심어가는 일은 융합과 수용성에서 적잖이 생각할 수밖에 없다. 모사의 혁신 방법을 종교와 문화, 인적 구성이 다른 해외 사업장에 그대로 적용하는 일은 성공하기 어렵다. 종교와 사회문화, 인적 구성원의 사고와 일하는 방식을 고려하여 현지에서 공감하는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실행력을 높여 가야 한다. 혁신 활동의 토양인 기업 문화의 근간이 되는 인사 및 조직문화의 전략이 필요하다. 다문화를 존중하는 조직 구조 설계를 위한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 등 혼합 조직 구성이 필요하다. 음식과 일하는 사고, 습관이 달라서 융합이 어려운 민족과는 협력과 시너지 창출의 방향을 다른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이슬람 라마단, 힌두 디왈리(Diwali·빛의 축제), 중국 춘절 등 종교의 문화를 고려한 휴무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해외 기업에 혁신을 심어가는 일은 종합으로 봐야 한다. 종교 문화를 이해하고 이를 존중하는 조직 운영체계를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 종교와 혁신 활동 흐름이 조화를 이룰 때 좋은 토양이 되어 성공적인 기업 혁신 문화로 간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07-22

충격의 기후 뉴노멀

작년 가을에는 금(金)사과 파동에 이어 금배추 파동이 일어났다. 배추 한통이 2만원까지 치솟았다. 배추 대신 양배추 김치가 식단에 등장했다. 배춧값이 폭등한 것은 작년 여름 전례없이 이어진 고온과 가을 들어 내린 집중 호우 때문이다. 토마토 값이 폭등하자 토마토가 없는 햄버거가 출시되는 이상한 일도 벌어졌다. 올 여름에는 여름철 인기 과일 수박값이 3만원을 돌파하면서 소비자들을 놀라게 했다. 폭염과 장마로 작황이 부진한 탓이다. 한 때 대구는 사과 주산지로 명성을 날렸다. 대구 사과는 조용히 사라지고 지금은 청송 등 경북 북부지방이 사과 주산지로 바뀌었다. 그런데 기상학자들은 2100년 쯤에는 사과 재배가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을 거란 예측을 내놓는다. 이런 현상들은 기상이변이 우리 일상을 바꾸는 한 단면이다. 과거의 정상이 비정상이 되고,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희한한 세상이 돼 가고 있는 것이다. 이를 학자들은 뉴노멀이라 이름을 붙였다. 뉴노멀이란 새로운 질서를 뜻하는 말이다. 세상의 표준이 달라졌다는 말이다. 매년 200mm의 폭우가 쏟아져도 이젠 그것이 바로 정상인 세상이다. 지난주 경남 산청지방에 내린 폭우로 13명의 사망·실종자가 생겼다. 1년에 내릴 비의 10%가 한 시간만에 쏟아졌다. 수백 년 만에 한번 올까 말까 한 폭우가 이젠 매년 찾아온다고 한다. 세계기상기구(WMO)는 “5년 내 사상 최악의 더위가 올 것”이라 경고했다. 지구온난화를 만들어 낸 인류에 대한 자연의 습격일까. 재앙에 가까운 기후 뉴노멀에 대응할 준비가 필요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7-22

국립치의학연구원 유치, 대구시가 앞장서야

대구시치과의사회는 지난 2014년 3월에 국립치의학연구원 대구유치위원회를 발족시킨 바 있다. 10여 년 전부터 대구치과의사회가 중심이 돼 국립치의학연구원의 대구 유치 활동을 벌인 것은 대구가 치의학연구의 최적지라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국립치의학연구원은 치의학 연구의 전반적 발전은 물론 전문인력 양성, 관련 산업의 활성화 등 치의학 분야의 종합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되는 곳이다. 정부가 지방에 연구원을 두고자 하는 이유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대의명분 때문이다. 대구는 치의학 분야 연구와 교육의 중심지다. 치의학 관련 산업과 종사자도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다. 대구경북첨단의료 복합단지가 조성돼 치의학연구원이 들어서기에 적합하다. 풍부한 인력과 우수한 의료기반이 있는데 치의학연구원이 유치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정부가 입지 선정을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인 가운데 국립치의학연구원 유치를 위해 부산과 광주, 충남 천안 등 전국의 주요 도시들이 치열한 유치활동을 벌이고 있다. 각 도시마다 유치 전담팀 구성과 시민 서명 장부 작성 등 사활을 건 유치전에 몰두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구시는 지난해 9월 국립치의학연구원 유치를 위함 포럼을 개최한 이후 한 번도 관련 행사는 고사하고 회의조차 열지 않고 있다. 국립치의학연구원 대구유치단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조직이 됐다. 대구시장이 공백인 것이 이유인지 모르나 대구시가 중대 사안을 두고 뒷짐만 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천안시는 대선공약이라는 이유로 공모 방식 없이 바로 지정해 달라는 정치권의 요구도 나오고 있다. 대선공약이라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수한 인프라와 풍부한 산업인력 등이 뒷받침되는 최적지에 연구원이 설립돼야 설립 취지와도 맞다. 대구시는 지금부터라도 지역 정치권과 힘을 모아 치의학연구원의 대구 유치에 전략적 대응을 해나가야 한다. 지역민의 결집과 의지를 모으는 것도 중요한 유치 전략이다. 10여 년 공들여 온 국립치의학연구원의 대구 유치에 다시 한번 시민과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2025-07-22

TK신공항, 내년 토지보상 들어갈 수 있을까

지난 주말(18일)에는 대구시의회 의원들의 본회의 질의모습을 TV를 통해 시청했다. 새 정부 들어 대구시의원들이 최대현안으로 여기는 이슈가 무엇인지 궁금해서다. 예상대로 현재 표류 중인 TK신공항 건설 사업이 가장 민감한 현안으로 거론되는 듯했다. 군위군이 지역구인 박창석 의원은 이날 김정기 대구시장 권한대행(행정부시장)을 상대로 한 질의에서 “TK신공항 건설이 사업방식 혼선, 재정 조달 불확실성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면서 “이제 논의단계를 넘어 실질적 착공 준비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초 계획된 신공항 사업 로드맵대로라면 내년부터 대구시가 토지보상 작업에 착수해야 하는데 이러한 일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데 대한 질책이었다. 김 대행은 이에 대해 “아직 정치권, 예산 부서와 협의가 지연돼 자금 조달 계획이 확정되지 못했다. 연말까지 자금 조달 계획이 확정되지 않으면 내년 토지 보상 관련 절차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불가피하게 신공항 개항 시기 지연도 예상된다”고 답변했다. 연내에 국회의 관련법안(신공항 특별법)처리, 이에따른 정부 예산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TK신공항 사업이 계속 불확실성 속에서 표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행은 민주당 육정미 의원(비례대표)이 “내년에 재원 조달 방안이 확정 안 되면 토지 보상 절차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냐”고 재차 확인하자, “국비가 먼저 확보되어야 보상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현재 TK신공항 사업의 전체 보상비(토지, 이주단지 조성)는 45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대구시는 지난 정부에서 사업 첫 해(2026년) 들어갈 토지 보상비(공공토지비축사업비 2766억원)를 요청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투자자금 회수 가능성이 불확실하다는 이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시는 현재 TK신공항 사업을 위해 정부에 내년부터 5년간 11조5393억원의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해 둔 상태다. 그러나 이 기금을 받으려면 지원근거가 담긴 특별법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 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중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설사 공자기금을 전액 지원하더라도 대구시가 갚을 역량이 없다는 것이다. 공자기금도 결국 대구시가 지방채를 발행해서 매입하는 부채이기 때문에, 일정기간이 지나면 갚아야 한다. 5년 거치 10년 상환 조건으로 공자기금을 빌린다는 생각인데, 이자율을 3%로 잡더라도 이자만 3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2030년까지는 이자만 갚게 되지만, 2031년부터 10년간은 원금과 이자를 같이 갚아야 한다. 대구시 재정상태로는 공항 건설 사업비 전액을 공자기금으로 조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해법은 이재명 정부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광주도심 군공항 이전사업을 지원하는 것처럼 TK신공항건설도 정부 도움을 받아 추진하는 것이다. 대구·광주 군공항 이전 사업은 정치권이 ‘쌍둥이 법안’을 발의했을 정도로 유사한 부분이 많다. 이 지역 정치권과 대구시, 경북도는 이 해법이 성사될 수 있도록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07-22

민생쿠폰 지급, 골목상권 활기 찾는 계기 되길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이 그저께(21일)부터 시작됐다. 신청 첫날부터 대구·경북지역 주민센터와 은행 창구에 수백 명이 한꺼번에 몰려 큰 혼잡이 빚어졌다. 일부 카드사 앱은 마비될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이번 지원금이 취지대로 민생을 회복시키고, 얼어붙은 소비 심리를 녹이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 21일 포항시 북구 장량동 행정복지센터를 찾은 한 시민은 본지 기자에게 “아침 일찍 나와 번호표를 뽑았는데도 116명이 대기 중”이었다고 했고, 대구시 중구 남산4동 행정복지센터도 이른 아침부터 긴 줄이 이어졌다. 이날 오전 민생쿠폰을 신청하러 온 주민들은 대부분 고령자였다. 민생쿠폰을 온라인으로 신청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직접 행정복지센터를 찾아온 듯했다. 일부는 신청 날짜를 출생 연도가 아닌 생년월일 끝자리로 착각해 잘못 찾아온 경우도 있었다. 대구의 경우, 소비쿠폰이 지역사랑상품권인 대구로페이 카드로만 지급돼 지류형(종이) 온누리상품권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던 시민들의 불만이 잇따랐다. 한 시민은 “시장과 골목상권에서 쓰려는데, 카드로만 줘서 당황스럽다. 단말기 없이 장사하시는 어르신들도 많은데, 종이 상품권으로 지급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은 이날부터 오는 9월 12일까지 온·오프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으며 사용기한은 11월 30일까지다. 특히 소비쿠폰 사용처는 지역 민생경제 회복에 기여하고 지역 내 자영업자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주소지 관할 지방자치단체로 제한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꾸준히 시민들이 알아야 할 핵심적인 내용을 알기 쉽게 정리해 홍보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소비쿠폰 정책이 우리 주변의 자영업자 모두가 체감할 수 있는 민생 회복의 출발점이 되고 경기 회복의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시민들도 이번 소비쿠폰을 가급적 어려움을 겪는 우리 동네 가게, 전통시장에서 사용하여 돈이 지역 내에서 선순환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골목상권이 살아나고, 그 효과가 대구·경북 경제 전반으로 퍼져나갈 수 있다.

2025-07-22

정신 나간 공무원

이진숙 교육부장관 후보자의 지명이 철회됐다. 논문 표절로 제자를 곤경에 빠뜨리고, 자식을 수억 원이 없다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특별한 교육을 시킨 자가 ‘보편적 공교육’을 지향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수장 자리에 오른다면 개가 웃었을 것이다. 이진숙은 공교육 일반에 관한 상식조차 없었다. 이진숙을 불러 도덕성과 전문성을 검증한 청문회는 한 편의 조악한 코미디였다. 많은 국민이 실소와 한숨 속에서 그걸 지켜봤다. ‘대체 교육장관을 시킬 사람이 저렇게 없냐’고 이재명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이들도 분명 있었을 터. 청문회가 열린 그날. 코미디의 정점은 상식 밖의 쪽지 한 장이 찍었다. 교육부 공무원에 의해 이진숙에게 전달된 거기엔 ‘모르는 내용도 잘 알고 있다고 말하고, 곤란한 질문은 즉답을 피하며, 동문서답 하라’ 적혀있었다. 아연실색할 일이다. 알다시피 청문회는 국회의원은 호통치고, 공직 후보자는 급조한 변명이나 내놓는 ‘삼류 정치쇼’가 아니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신해 공직 후보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고, 공직 후보자는 국회의원이 아닌 국민을 향해 답변하는 자리가 청문회다. 엄정해야 할 그 현장에서 상식 밖의 쪽지를 교육부장관 후보자에게 써서 건넨 공무원은 제정신인가? 국민이 가소로운가? 그가 속이려했던 건 몇 명의 야당 국회의원이 아니다. 청문회를 지켜본 국민들 모두를 기망(欺罔)하려 했다. 작지 않은 죄다. 반드시 작성자를 찾아내 책임을 묻는 후속 조치가 따라야 마땅하다. 그리고 하나 더 묻는다. 이진숙과는 또 다른 성격의 잡음을 일으켜 국민적 지탄과 공분을 야기한 강선우를 기어코 여성가족부장관에 앉히려는가? 대통령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7-21

우물 안 개구리

‘우물 안 개구리’가 바깥세상을 모르는 것처럼, ‘영남에 갇힌 국민의힘’은 민심을 모른다. ‘우물 밖 세상의 민심’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깨닫지 못하니 반성과 혁신은 언제나 말뿐이다. 최근 여론조사(한국갤럽, 7월 2주차)에 의하면 당의 지지율이 19%로 떨어졌고, 영남마저 민주당에 역전되었음(TK: 민주당 34%, 국민의힘 27%, PK: 민주당 36%, 국민의힘 27%)에도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국민의힘은 어쩌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었는가? 편협한 지식과 경험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교만과 무지 때문이다. 극우세력과의 동행으로 우경화는 심화되었고, 편 가르기를 하면서 객관성을 잃고 진영정치의 노예가 되었다. 물론 당내에는 혁신을 주장하는 ‘소수의 합리적 보수’가 있지만, ‘다수의 우물 안 개구리들’에게 왕따 당할 뿐이다. ‘열린 마음’으로 반성을 통해 혁신해야 했음에도 ‘닫힌 마음’으로 편협한 정치를 고집했으니 자업자득이다. 게다가 정치인의 소명은 공익(公益)을 추구하는 것인데, 사익(私益)에 눈이 멀었으니 보수의 덕목인 ‘견리사의(見利思義)’는 장식품에 불과했다. 허구한 날 우물 안 개구리들의 권력싸움으로 당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당은 망해도 나만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문제였다. 당에서 영남의 중진의원들에게 혈전(血戰)이 예상되는 수도권으로 선거구를 옮길 것을 요구하면 대부분 이를 거부하고 탈당하여 만만한 영남지역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대의(大義)를 위해 소아(小我)를 버릴 줄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들이 중진이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처럼 당은 존폐의 위기에 있는데 소속의원들은 여전히 우물 밖으로 나오려하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인적 청산을 요구한 안철수 혁신위원장은 당 지도부의 거부로 사퇴하였고, 그 후임으로 지명된 윤희숙 혁신위원장의 쇄신 요구 역시 온갖 궤변으로 뭉개는데 여념이 없다. 오직 제 밥그릇 챙기는데 급급한 정당이 과연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 국민은 당 해체 수준의 대대적 혁신을 주문하고 있는데, 대선이 끝난 지 이미 한 달 보름이 지나도 전혀 달라진 게 없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국민의힘이 우물 밖으로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존의 고정관념을 버려야 생각을 바꿀 수 있고, 생각이 바뀌어야 변화와 혁신이 가능하다. 고리타분한 사고를 가진 우물 안 개구리들과 과감히 절연해야 우물 밖의 분노한 민심을 받들 수 있다. ‘낡은 보수’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인식하고,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과감히 혁신할 때 비로소 우물 밖 세상에 적응하게 될 것이다. 우물 밖 세상에서는 개방적 사고와 합리적 행동이 필수다. 보수 또는 진보라는 이념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이다. 경직된 사고에 갇히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만, 개방성과 합리성을 겸비한 자유인은 결코 이념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우물 밖으로 나와서 ‘세상은 넓고 변화는 빠르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5-07-21

국힘 당권경쟁, 또 친윤·비윤 대결구도 되나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였던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20일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하면서 국민의힘 당권 레이스가 본격화됐다. 국민의힘 대표 선거에는 김 전 장관 이외에 조경태·안철수 의원, 양향자·장성민 전 의원이 출마 의사를 밝혔다. 장동혁 의원도 출마한다고 한다. 당권 주자로 거론됐던 나경원 의원은 이날 “당분간 국민의힘 재건을 위해 고민하겠다”며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했다. 주목되는 것은 당권 경쟁이 다자구도로 펼쳐질지, 비윤(윤석열)계와 친윤계 간 계파대결 구도로 압축될지 여부다. 김 전 장관은 최근 친윤 핵심인 한국사 강사 전한길 씨의 입당을 두고 논란이 불거진 데 대해 “이미 당에 입당했고 입당 절차에 하자는 없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입당하는 사람을 받아들여야 한다. 문호를 개방하고 열린 대화를 해야 한다”고 했고, 윤희숙 혁신위원장이 내놓은 인적쇄신안과 관련해선, “당사자가 자기를 변호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절차상의 정당성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다분히 당 주류인 친윤계의 의중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김 전 장관은 최근 강성 보수지지층이 몰려 있는 대구지역도 자주 찾았다. 반면, 당권도전 가능성이 있는 한동훈 전 대표는 최근 연이어 공개 발언을 통해 당내 극우 세력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는 20일에도 페이스북에 “대선 기간 김문수 후보 측에서 극우 정당 중 하나로 알려진 우리공화당과 국민의힘의 합당을 시도했다고 한다. 국민의힘 극우화를 막아야 한다”는 글을 올리며, 김 전 장관 측을 겨냥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9일 안철수 의원과 비공개 오찬 회동을 가지기도 해 연대 가능성이 제기됐다. 두 사람은 “당의 극우화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이달 중순 유승민 전 의원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다음 달 22일 열린다. 한 달 남은 레이스 기간 중 국민의힘 당권 주자들이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해서, 끝없이 추락하는 당 지지율을 반전시키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지 기대된다.

2025-07-21

TK신공항 개항 연기 가능성 언급한 대구시

대구경북의 최대 현안인 대구경북(TK) 신공항이 첫 삽도 뜨기전에 개항 연기 가능성이 나오는 등 차질이 우려된다. 지난 18일 김정기 대구시장 권한대행 행정부시장은 대구시의회 임시회에 참석해 TK 신공항의 개항 연기 가능성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대구시민과 경북도민의 최대 현안으로 총력전을 펼쳐오던 신공항 사업이 재정 문제에 부딪혀 아직까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김 권한대행은 “계엄정국, 조기대선 등으로 정치권과 예산부서와의 협의가 지연돼 자금조달 계획을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고 밝히고 “만약 연말까지 건설비 조달계획이 확정되지 못하면 내년에 예정된 토지보상과 기본설계의 지연이 불가피해 2030년 개항에 차질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 권한대행은 그동안 신공항 사업의 정상적 추진을 위해 새정부 국정기획위원회 등을 찾아 TK신공항 사업의 국정과제 채택과 공공자금관리기금의 차입 등 정부 차원의 지원과 관심을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TK신공항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 언급이 아직 없으며 공공자금 차입도 기재부의 난색 표명으로 사실상 TK신공항 사업은 정체된 상태다. 여당측 인사들은 이재명정부에서 “TK 홀대는 없다”고 밝히고 윤호중 행자부 장관후보도 신공항 사업을 챙기겠다고 말은 하고 있으나 새정부의 지역사업에 대한 관심은 미지근하다. 해양수산부 부산이전이나 대통령실이 광주군공항 이전 사업을 국책사업으로 공식화 한 것 등과 비교하면 소외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지역 정치권이 나서 신공항 사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촉구해야 하SK 정치권 조차 조용하다. 지역민의 실망감이 커져가는 분위기다. TK 신공항 건설 사업은 인구소멸과 지역경제 활력을 통해 지방균형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국가적 사업이다. 11조원의 사업비가 소요돼 지방자치단체가 단독으로 수행하기는 힘든 사업이다. 국가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더욱이 대구는 시장이 없는 공백상태여서 정부와의 소통에도 한계가 있다. TK신공항 사업에 대한 정부의 명확한 입장이 밝혀져야 한다.

2025-07-21

베네수엘라로 가는 길

베네수엘라는 남아메리카 북단에 위치한 나라다. 국토의 면적은 한반도의 4배가 넘지만 인구는 2800만 정도다. 북쪽으로 대서양과 카리브해를 마주하고 있으며, 동쪽으로 가이아나, 남쪽으로 브라질, 서쪽으로 콜롬비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정식 국가명은 베네스엘라볼리바르공화국.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수도는 카리카스이다. 한때 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던 베네수엘라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전락했다. 석유 매장량 세계 1위, 천혜의 자원을 가진 나라가 어쩌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국민과 천문학적 인플레이션, 대규모 난민을 양산하는 최빈국으로 변했을까. 그 비극은 정치 지도자의 실정과 국민 다수의 잘못된 선택이 맞물린 결과다. 1999년 등장한 차베스는 반미 민족주의를 앞세우며 석유 수익으로 무상 복지와 빈민 정책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무료의료, 무료교육, 식량배급으로 서민의 지지를 얻었고, 그 인기에 힘입어 권력을 강화해갔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오로지 석유수입에 기대고 있었다는 점이다. 차베스는 경제를 산업 기반이 아닌 석유 판매에만 의존하게 만들었다. 민간기업들을 국유화하며 자율성과 생산성을 무너뜨렸고, 환율을 통제하고 가격을 규제해 시장기능을 마비시켰다. 외환은 고갈되었고, 필수품은 사라졌다. 독립적 언론은 폐쇄되고 비판적 지식인은 탄압당했다. 차베스 사망 후 권력을 이어받은 마두로도 이 위기를 오히려 가속화시켰다. 경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그는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화폐를 마구 찍어내는 오류를 반복했고, 그 결과 연간 인플레이션이 수십만 퍼센트를 기록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시장에는 생필품이 사라지고, 거리에는 굶주린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 와중에 마두로 정권은 비판을 봉쇄하며 독재화의 길을 걸었다. 선거를 조작하고, 야당이 장악한 국회를 무력화하며 친정부 세력만으로 헌법을 고치는 ‘제헌의회’를 만들었다. 국가 경제는 군부와 권력층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부패는 일상화되었다. 이 모든 고통을 견디지 못한 수백만 명의 국민이 국외로 탈출했다. 남미 전역에 흩어진 베네수엘라 난민은 이미 700만 명을 넘었다. 이런 결과를 초래한 원인은 독재자들의 실정만이 아니다. 차베스의 환상에 열광하고, 마두로의 거짓말을 방조했던 국민들의 선택 역시 몰락의 한 원인이었다. 포퓰리즘은 당장의 이익을 약속하며 다가오지만, 그 뒷면에는 국가 시스템의 붕괴와 자유의 상실이 도사리고 있었다. 차베스가 처음 대통령에 당선될 당시, “이제 서민이 나라의 주인이 된다”며 열광하던 군중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유권자, 눈앞의 이익보다 장기적 비전을 중시하는 국민이 있을 때 비로소 건강하게 작동한다. 무책임한 정치인보다 더 위험한 것은 무분별한 대중이다. 자유와 번영은 공짜가 아니다. 국가의 미래는 지도자의 역량뿐 아니라, 그 지도자를 선택하고 감시하는 국민의 의식 수준에 달려 있다. 팔아먹을 자원조차 없는 한국의 경우, 잘못된 길을 가면 어떻게 되는지는 북한이 잘 보여주고 있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5-07-21

최고의 취미, 공부

헤르만 헤세는 1946년 자신의 저서 ‘유리알 유희(Das Glasperlenspiel)’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작중 배경인 ‘카스틸리안(Casastalian)’이라는 가상의 교육공동체에서 매년 벌어지는 최고 지성들의 게임인 유리알 유희는 ‘이성과 감성, 과학과 예술, 동양과 서양, 현실과 이상’이라는 이분법을 초월하고자 하는 인간 정신의 궁극적 시도였다. 헤세는 유리알 유희에 대하여, ‘수 세기 동안 인간 정신의 모든 창조물들을 기호와 상징으로 추상화하고, 이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하고 조율하는 예술이다’라고 묘사했다. 헤세는 작품에서 유희의 구체적 방법을 의도적으로 불분명하게 묘사한다. 유리알 유희의 실질적인 게임의 규칙이나 실제 진행 방식은 자세히 서술하지는 않는다. 유희가 상징하고자 하는 것은 ‘형식’이 아니라, 그 ‘정신’이기 때문이다. 헤세의 유리알 유희는 ‘지(知)적 유희’다. 지적 유희는 수학, 철학, 음악, 문학, 과학 등 모든 학문의 영역을 연결하고 상징하는 ‘놀이’다. 헤세는 ‘놀이야말로 인간 정신의 가장 숭고한 표현이다’라고 책에서 묘사한다. 카스틸리안의 유희는 놀이 치고는 너무 진지하다. ‘삶 전체를 건’ 놀이 임과 동시에 ‘유희자 자신의 존재를 묻는’ 놀이다. 헤세가 ‘유희’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가 무엇일까. 공자는 학이편 첫 구절에서, ‘학이시습지불역열호아'라 하였다. 간단히 풀이 하자면, ‘공부는 즐겁다’이다. 여기서, 즐거움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야 한다. 공부의 목적이, ‘무언가 얻음’이 아니라, ‘즐거움’이라 선언한 대목이다. 무언가 얻으려는 사람에게는 노동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즐거움이다. 그런 연유로, 공부가 즐거움인 사람에게 학이편의 ‘열’은 ‘습(習)’과 함께하는 것이다. 공자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은 많아도, 자신처럼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은 없다’ 고 말했다. 공부가 즐거움이 되는 도리가 있다. 공자에겐 공부가 최고의 취미 활동인 셈이었다. 헤세의 유희와 공자의 공부가 다를 리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두 거성은 공부가 즐거움이라 하였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나 재밌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에겐 공부가 밥 벌이었다. 의무적으로 해야 했기에, 공부는 힘든 것이자 언젠가 마쳐야 하는 것이었다. 수 백년 동안 공자왈, 맹자왈 했어도 학이편 한 구절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지난 세월 동안 우리의 사회는 공부가 즐겁다는 걸 가르쳐 주지 않았다. 늦었지만 공부를 다시 시작하자. 뭐든 읽고 깨우치자. 공부하자. 최고의 취미 활동을 하자. 이 취미는 우주와 세계와 삶의 본질을 다루는 최고의 놀이다.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려울 만큼 재미가 있다. 헤세의 유희란, 얽매이지 않음이며, 진리에 도달하는 길이다. 자유, 진리라는 거창한 말에 기죽을 필요는 없다. 지적 유희라는 취미 활동이 별거 있으랴.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심하고 자신의 생각을 깨뜨려 가면 되는 것이다. 재미에 덤으로, 당신의 의식을 저 높은 곳까지 인도하여 쓸데없는 일에 마음을 걸어두는 일도 없을 것이다. /공봉학 변호사

2025-07-21

자정능력을 잃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지난 한 주 많은 국민이 분노와 허탈을 경험했다. 서민들에게는 너무 낯선 사람들을 장관 후보로 만났다. 성실한 사람은 넘을 수 없는 선을 ‘이 정도는…’이라며 어물쩍 넘어가는 뻔뻔함을 보았다. 증인도 모두 거부하고, 자료도 내지 않고, 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배짱을 부렸다.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갑질은 서민들의 서러운 기억을 소환했다. 대부분의 서민은 을(乙)로 산다. 갑질을 하고도 ‘뭐가 문제냐’라는 민주당 태도에 ‘을지로위원회’가 사기라고 깨닫는다. 눈을 똑바로 뜨고, 끝까지 거짓말하는 장관 후보에 질려버렸다. 을을 보호하는 장관이 아니라, 을에게 갑질해본 장관이다. 이진숙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불법 조기유학이나 논문 표절만 문제가 아니다. 기본 교육정책에 대한 구상은커녕, 개념조차 없었다. 오죽하면 ‘모르면 동문서답하라’는 쪽지를 앞에다 붙여놓고 답변했을까.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어떻게 기본적인 질문에도 답변을 못 하나. 굉장히 실망스럽다”라고 분개했다. 더 화가 치미는 건 국민의힘이다. 국민은 속이 터지는데, 야당 청문위원은 남의 다리만 긁는다. 언론에 공개된 내용에서 한발도 더 나간 게 없다. 그것도 중언부언, 우물쭈물, 요령부득이다. 준비를 한 건지 의심이 든다. 오히려 여당 의원, 친여 시민단체의 후보 사퇴 요구가 신선하게 들린다. 한국이 1.5당 체제로 가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자해적인 비상계엄이 국민의힘 입지를 부숴버렸다. 의석만 적은 게 아니라 싸울 줄도 모른다. 전략은 없고, 고함만 지른다. 아니 고함도 지를 줄 모른다. 혼자 흥분할 뿐 유권자를 설득하지 못한다. 여당에는 할 말도 못하면서 당권 다툼은 피를 튀긴다. 극단적인 선동이 난무한다. ‘공천=당선’이라는 안일함에 젖은 의원들은 정권보다 당권이 관심이다. 이성은 사라지고, 선동가가 설친다. ‘윤 어게인’으로 뭘 하자는 건가. 다시 쿠데타라도 해 복귀시키겠다는 건가. 비상계엄은 실패했으니, 무장 폭동이라도 하자는 건가. 국민의힘을 해체하는 길로 몰아간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찬양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같은 일을 부추기는 꼴이다. 정신 나간 사람들 아닌가. 수많은 정당이 명멸했다. 국민의힘이 소멸해도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민주당이 절대 권력이 되는 건 민주당은 물론 민주주의에도 위기다. 영국의 역사가이자 정치인인 존 달버그 액턴 경은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라고 말했다. 민주주의 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민주당이 행정권은 물론 입법권까지 압도적으로 장악했다. 검찰과 법원을 겨냥해 사법권까지 쥐려 한다. 진영화는 우리 편을 무조건 옹호하는 방향으로 정치를 왜곡했다. 조국 사태가 그 전형이다. 야당뿐 아니라 여당에서도 부패한 아첨꾼들이 설치는 판이 깔린다. 견제받지 못한 권력은 안으로부터 곪기 마련이다. 견제할 야당이 없으면 집권당이라도 스스로 정화 작업을 해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8년 동안 절대 권력을 휘둘렀다. 그런 박 전 대통령은 내부 정화 장치를 가동했다. 대통령의 친인척, 고위공직자, 여당 정치인부터 감시하고, 단속했다. 권력기관끼리도 견제시켰다. 서정쇄신(庶政刷新) 등으로 서민의 불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절대 권력을 건드리지는 못하지만, 장기 집권을 이어간 기반이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특별하게 결격에 이를 문제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모든 부담을 이 대통령에게 떠넘기는 고백이다. 고름은 살이 되지 않는다. 도려내지 않으면 종양은 번지기 마련이다. 원칙 없는 인사는 이재명 호 밑바닥에 썩은 나무를 까는 꼴이다. 회생불능인 국민의힘에게는 유일한 반전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민주당 강득구·김상욱 의원은 “윤 정권과 달라야 한다”라며 이진숙·강선우 후보의 사퇴를 촉구했다. 경실련은 두 후보가 ‘자질 미달’이라며 지명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친여 시민단체들이 진영의 틀을 벗어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신선하다. 그만큼 문제가 많은 후보자라는 뜻이겠지만, 야당이 구실을 못 하니, 그렇게라도 견제와 균형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7-20

다시 오고, 머물고 싶은 ‘희망찬 영양’을 위하여

‘지방소멸’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은 시대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지역 주민들에게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이 문제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민선 8기를 시작하며 스스로 다짐했다. 영양을 지키자. 그리고 누군가 다시 돌아오고, 오래 머물 수 있는 곳으로 만들자고. 지방소멸은 더는 막연한 걱정이 아니다. 이미 현실이고, 피해갈 수 없는 흐름이다. 그래서 사람이 떠나는 곳이 아니라, 살아갈 이유가 있는 곳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다. 풍력발전 기금을 통해 복지 재원을 확보하고, 공공임대주택과 LPG 배관망, 전원마을 조성 등을 통해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조건부터 하나씩 마련해가고 있다. 행정의 기초는 예산이다. 민선 8기 초반, 영양의 연간 예산은 2800억 원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국도비 공모사업에 매달리고, 조직을 다시 정비하고, 낭비를 줄이며 버틸 수 있는 구조부터 만들었다. 올해 예산은 5167억 원이다. 두 배 가까운 확충이다. 예산이 늘었다는 건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교육, 복지, 산업, 도로, 환경 등 군민의 삶과 연결된 모든 곳에 숨을 불어넣을 수 있는 동력이 생겼다는 뜻이다. 재정의 체력을 갖췄고, 이제는 더 먼 곳까지 달릴 수 있게 됐다. 영양은 오랫동안 교통 3무 지역이라 불려왔다. 고속도로도 없고, 철도도 없고, 4차선 도로도 없는 땅. 때로는 스스로도 낙담했을 정도로, 단절과 고립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총 5309억 원 규모, 37개에 이르는 도로·방재·하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국도 31호선 선형 개량, 지방도 정비, 자라목재 터널과 답곡 터널 개통 등 끊겼던 길을 잇고, 위험했던 구간을 안전하게 바꾸고 있다. 길이 연결돼야 사람도, 물자도, 기회도 들어온다. 교통은 단지 이동수단이 아니라 지역의 생명줄이다. 이제는 누구나 더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영양을 만들고 있다. 영양은 농촌이다. 그리고 나는 늘 말해왔다. 농업 없이 영양을 말할 수는 없다고. 그래서 농민이 편하게 농사짓는 환경부터 만들고자 했다. 농작업 대행반 운영, 계절근로자 도입 확대, 농업인 보험료 지원, 과수산업 육성, 유통망 정비. 겉으로 드러나진 않아도, 뿌리처럼 현장을 지탱해주는 정책들이다. 특히 홍고추 전국 최고가 수매, 농산물품질관리원 영양분소 승격 건의 같은 일들은 한 해 농사를 마친 농민들의 손끝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다. 농업은 여전히 이 지역의 생명줄이고, 그 가치는 지켜야 한다. ‘숲, 물, 공기’. 영양이 가진 가장 큰 자산이다. 이 자연은 그대로 두어도 훌륭하지만, 지역 발전과 연결된다면 더 의미가 있다. 자작나무 숲 에코촌 조성, 자작누리 산촌명품화, 삼지수변공원 정비, 바들양지 경관림 조성… 생태 기반을 활용한 관광 인프라가 하나둘 자리를 잡고 있다.자연을 지키며 관광을 키우고, 관광을 통해 사람이 들어오고, 그 사람들이 다시 머무를 수 있는 곳. 그게 바로 영양이 가야 할 길이다. 정책이 아무리 정교해도, 행정의 마지막 목적지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작고 구체적인 일들에 집중해왔다. 기초연금 확대, 65세 이상 대상포진 무료 예방접종, 건강검진비 지원, 바로민원처리반 운영, 소방서 신설, 정주여건 개선, 온단채 조성, 신재생에너지 보급 등. 이 모든 일들은 군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바꾸는 데 목표가 있다. 사는 데 불편하지 않고, 위험하지 않고, 필요한 걸 제때 받을 수 있는 고장. 그게 내가 만들고 싶은 영양의 모습이다. 민선 8기 4년 차. 이제 남은 1년은 마무리가 아니라 도약의 시간이다. 그동안 다져온 기반 위에서 더 높이, 더 멀리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산불 피해 복구부터 시작해 농업 혁신, 관광 개발, 정주환경 개선, 복지 확대, 교통망 확충까지 우리가 만들어낸 변화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군민 모두의 인내와 참여, 함께 버틴 시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영양에 살고 있는 사람들,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영양에 오고 싶은 사람들, 이곳은 희망의 땅이다. 떠나는 곳이 아니라 돌아오는 곳, 잠시 스쳐가는 곳이 아니라 오래 머무는 곳. 그런 영양을 만들기 위해 남은 시간, 흔들림 없이 달릴 것이다. 나는 행정가 이전에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다. 그래서 더 잘 알고, 더 책임감을 느낀다. 이 고장을 지키는 일, 끝까지 책임지겠다. /오도창 영양군수

2025-07-20

흔한 듯 흔하지 않는 내 이름

패키지 여행은 바쁘고 흥미롭다. 각기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버스에 올라 함께 여행을 한다. 외도 가는 배에 승선하기 위해서는 신상을 적어야했다. 버스 뒷자리에 앉았던 나는 승선명단을 눈으로 훑었다. 30여명의 일행 중 같은 이름이 세 명이었다. 다행이라면 성이 다른 것이랄까. 다음 날은 해상 케이블카를 탔다. 8명이 한 케이블카에 올랐다. 바다 위를 거쳐 산 정상에 오르는 코스이다. 앞에 앉은 여자의 이름을 친구가 불렀다. 같은 이름 중 한 명이다. 반가움에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케이블카 타는 내내 그 흔한 이름으로 인해 생겼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초등학교 2학년 학기 초였다. 시험을 보고 선생님이 이름을 불러가며 시험지를 나눠주셨다. 내 이름이 불렸다. 네하고 일어서는데 다른 아이도 같이 일어섰다. 선생님이 우리 반에 같은 이름이 있구나 하시며 나와 보라고 하셨다. 시험지를 본 다른 아이가 자기 것이라고 했다. 시험지를 다 나눠주신 후 선생님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나보고 일 년 동안 시험 볼 때마다 작은 전영숙이라고 쓰라고 하셨다. 같은 이름의 다른 친구는 큰 전영숙으로 쓰라고 하시며. 그 한해 시험 볼 때마다 이름 앞에 ‘작은’이라는 글자를 쓰면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작은 키가 더 부각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적당히 흔한 이 이름은 한때 ‘영숙이, 숙제했어’라는 유행어로 코미디 프로에 나오기도 했다. 무엇보다 한글로는 흔한 이름인데 한자로 쓰면 거의 없는 내 이름이 자주 못마땅했다. 대학시험 때였다. 입학원서를 학교에서 단체로 작성해서 냈고 수험표만 받았다. 아뿔싸. 이름의 한자가 달랐다. 선생님께 이야기하니 괜찮을 거라고 하시며 시험에 그냥 응시하라고 했다. 마음으론 걱정이 되었다. 면접날이었다. 잔뜩 긴장하고 면접장에 들어갔다. 서너 분의 교수님이 앞에 앉아 계셨다. 그 중 키가 크고 체격이 좀 있는 교수님이 갑자기 화를 벌컥 내셨다. 도대체 어떻게 자기 이름을 한자로 제대로 쓰지 못하느냐고 하면서 이런 학생은 합격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목소리가 큰 교수님이 화를 내시니 더 마음이 졸아들었다. 담임 선생님이 작성한 것이라 하니 핑계대지 말라고 하시며 더 크게 화를 내신다. 머리가 하얗게 비어갔다. 불합격하면 큰일인데 싶어 진땀이 흘러내렸다. 벌벌 떨고 있으니 옆에 계신 교수님이 안 됐다 생각했는지 얼른 나가라고 하셨다. 혼난 것으로 끝난 면접은 내내 기억에 남았다.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최초로 드러내는 것으로 한 사람을 특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다. 또한 집안이나 집단의 소속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 이름은 특정 시대의 가치관이나 사회상을 반영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에게 어울리며 앞으로 그 삶을 살아가기에 적합한 뜻을 가진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다. 부모의 바람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작명소를 통해 태어난 아이의 사주와 맞는 이름을 지어오기도 했다. 늘 흔한 이름이 불만이었던 나는 가끔은 개명을 생각하기도 했고, 글을 쓰면서 필명을 심각하게 고려하기도 했다. 쉽게 그것을 결정하지 못한 것은 여러 가지의 상황을 상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망설이게 했던 것은 몇 년 전 주고 받았던 아버지와의 대화 때문이었다. 지나치게 평범한 이름 지어준 것과 흔하지 않은 한자 이름에 대해 투덜거렸을 때 아버지는 그 이름을 짓기 위해 큰아버지와 몇 날 며칠 옥편을 뒤졌노라고 말씀하셨다. 전영숙(全瑛琡), 이것이 내 이름이다. 이름 석자에 임금 왕(실제로는 구슬 옥)을 넣으려고 애를 썼다고 하셨다. 그만큼 고결하고 귀하게 왕비처럼 살기를 바랬다고 하시며. 농담처럼 난 아버지에게 이야기했다. 왕비의 삶이 아버지 생각처럼 편하고 귀하기만 하냐고. 얼마나 힘들고 노력을 많이 해야 하는 자리인 줄 아시냐고. 한 사람의 인생이 어찌 늘 잔잔한 물결이기만 했을까. 그걸 아시면서도 자식이 조금 덜 고생하길 원했던 아버지의 사랑이 내 이름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평범하기만 한 내 이름 한자에 숨어 있는 아버지의 바람을 마음 깊이 이해한 것은 나 역시 많은 풍파를 겪은 후여서일 것이다. 오랜 고민 끝에 나는 개명도 필명도 쓰지 않기로 했다. 흔한 듯 흔하지 않은 내 이름. 이런 이야기를 싣고 케이블카는 산 정점을 돌아 내려가고 있었다. 같은 이름의 여행객과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보지 못하더라도 행복하자는 덕담을 서로 주고 받았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5-07-20

김호령과 함평 타이거즈의 감동

2016년 10월 11일 KIA 타이거즈와 LG 트윈스의 프로야구 와일드카드 결정전 2차전, 0대 0으로 팽팽한 9회말 트윈스가 원아웃 주자 만루의 기회를 잡았다. 3루 주자가 홈을 밟으면 그대로 경기가 끝나는 상황. 김용의가 좌중간으로 날린 타구는 의심할 여지없이 끝내기 안타로 보였다. 혹 외야수가 잡는다 하더라도 3루 주자의 태그업 득점을 막을 가능성은 없다. 보통 이런 경우 외야수들은 공을 포기한다. 잡아봤자 경기는 끝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이거즈 중견수 김호령은 수십 미터를 전력질주한 끝에 공을 잡았다. 그러고는 혼신을 다해 송구했다. 타이거즈는 탈락했지만 김호령의 눈물겨운 투혼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201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꼴찌로 지명된 김호령의 선수 경력은 보잘 것 없다. 규정타석을 채운 게 단 한 시즌에 불과하며 통산 타율도 2할4푼밖에 되지 않는다. 뛰어난 외야 수비와 주루 능력을 가졌음에도 공격력이 약해 만년 후보다. 나이가 들며 경쟁력을 점차 잃어 2군에서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불성실하고 거들먹거리기라도 하면 차라리 미워할 텐데 누구보다 성실하고 묵묵하며 바른 인품을 가진 선수라 팬들에겐 아픈 손가락이다. 죽어라 공부하는데 고시에서 매번 낙방하는 막내아들 보는 마음이랄까. 150억원의 사나이 나성범, 경기 출장이 언제나 보장된 최원준, 2024년 우승에 역할을 한 이우성, 백업 선수로 나름의 팬덤을 거느린 박정우 등이 외야를 점거하는 사이 김호령은 자리를 잃었다. 점차 팬들의 기억에서도 지워지던 중 기회가 왔다. 나성범이 올해도 부상으로 ‘유리몸’이라는 오명을 쓴 채 이탈했고, 이우성과 최원준은 ‘철밥통’이라 할 만큼 감독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았음에도 처참한 부진을 거듭하다 2군으로 내려갔다. 이들 외에도 김도영, 김선빈, 윤도현, 이의리, 곽도규, 황동하 등 주전들의 부상이 겹치면서 2군 선수들이 1군에 대거 콜업될 때 오선우, 김석환, 고종욱, 박민 등과 함께 김호령도 올라왔다. 타이거즈의 2군 경기장이 전남 함평에 있는 관계로 팬들은 이들을 ‘함평 타이거즈’라고 부른다. 주전들이 뛸 때 10개 팀 중 9위로 추락해 있던 팀은 2군에서 올라온 선수들의 믿을 수 없는 선전에 힘입어 6월 승률 1위를 기록하며 단독 2위로 올라 왔다. 이 기간 동안 ‘함평 타이거즈’는 팬들의 심금을 울리는 장면을 연일 보여줬다. 만년 유망주 꼬리표를 뗀 오선우의 꾸준한 활약은 물론 중요한 경기 막판 승부처에 대타 역전 홈런을 친 김석환, 타석마다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어떻게든 출루해내는 이창진 등이 그랬다. 고종욱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매 경기 매 타석마다 간절함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6월 29일 경기에서 634일만에 3안타를 친 그는 수훈선수 인터뷰 도중 임신한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다 눈물을 펑펑 쏟았다. 가장 뭉클한 건 역시 김호령이다. 7월 5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 첫 타석에서 올 시즌 첫 홈런을 치더니 다음 타석에서는 프로 데뷔 첫 만루홈런을 치며 생애 처음 한 경기 두 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두 번의 홈런 장면에서 다른 선수들이 다 하는 그 흔한 ‘빠던(타격 후 배트를 요란하게 던지는 쇼맨십 행위)’이나 화려한 세리머니도 없었다. 늘 그렇듯 열심히 베이스를 돌다가 타구가 담장을 넘는 걸 확인한 순간 자신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얼떨떨한 표정으로 수줍게 기쁨을 표현했다. MVP로 선정돼 인터뷰를 하면서도 달변은 아니지만 한 마디 한 마디에 진심과 겸손함을 눌러 담아 소감을 말했다. 그날 많은 타이거즈 팬들은 눈물을 흘렸다. 가족이나 친구도 아닌 남이 잘 되기를 이처럼 바란 적이 없다고들 했다. 착하고 성실하고 겸손하고 묵묵하고 헌신적인 사람이 오랜 시간을 견뎌 마침내 빛을 보는 서사를 김호령은 우리에게 보여줬다. 주전 선수들이 돌아오면 김호령을 비롯한 ‘함평 타이거즈’는 다시 2군으로 내려갈지 모른다. 하지만 2025년 여름, 이들이 보여준 절실함과 감동의 야구는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별 감흥 없이 함부로 흘려보낸 한 경기가 그들에겐 인생을 건 도전이었다. 소중히 생각지 않고 마땅한 권리인양 여겼던 한 타석이 그들에겐 평생 꿈꿔 온 순간이었다. 김호령의 수줍은 미소를 계속 보고 싶다. 야구 앞에 진실하고 노력 앞에 정직하며 기회 앞에 간절한 사람이 잘 되는 걸 계속 보고 싶다. /이병철(시인)

2025-07-20

미지의 행성에서

요즘 나는 ‘플래닛 크래프트’라는 컴퓨터 게임에 푹 빠져 있다. 게임은 단순하다. 지구에서 무거운 죄를 저지른 게임 속 주인공은 자신의 형량을 없애기 위해 이름도 없는 외계 행성으로 떠나야만 한다. 형량을 없애는 대신 주어진 주인공의 임무는 외계 행성을 사람이 살 수 있는 지구의 환경을 만드는 것, 그리고 머지않아 외딴 행성에 홀로 떨어진다. 주인공은 미지의 행성을 떠돌며 맵을 넓히는 동시에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물과 음식, 공기 등의 자원을 끊임없이 모아야만 한다. 홀로 외롭게 떨어진 행성은 때론 아름답기도, 또 때로는 빛 한줌 없는 어둠속에 잠겨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을 갖게도 한다. 그럴 때마다 통신 기기에 ‘라일리’라는 사람이 말을 걸면서, 살아남을 수 있는 약간의 팁을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이지 않는 어둠을 더듬어 나가며, 결국 이 행성을 지구처럼 테라포밍 후 탈출해야 하는 게임이다. 게임 속 아이템은 꽤나 디테일하다. 철, 마그네슘, 규소, 티타늄, 코발트를 모아 약한 인간의 피부를 보호할 수 있는 우주복을 만들고 일정 시간 버틸 수 있는 산소통도 만든다. 희귀 광물인 알루미늄으로 각종 추가 장비나 실험 공간 등을 건설하고, 우라늄을 캐서 로켓이나 제트백을 만들기도 한다. 각 광물은 특정 구간에서만 만날 수 있고, 또는 시간에 따라 캘 수 있는 곳이 다르기 때문에 꽤나 오랜 기간 맵을 직접 돌아다니며 지리를 익혀야만 한다. 이 게임의 묘미는 어둠 속에 잠긴 지형이라던가 붉은 색으로 뒤덮인 기괴한 지형, 나무가 거꾸로 자라는 지형 등 실제 외계 행성을 탐험하는 듯한 설레임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모래 먼지로 뒤덮인 장소는 한치 앞도 안 보이기 때문에 지나치기 쉽고 때론 무섭기 때문에 피하곤 하지만 호기심으로 그 지형을 점차 파고들다 보면 결국 가장 한가운데에 가장 값어치 있는 광물이 있는 이벤트가 숨어 있는 등, 실제 모험을 하는 듯한 생생한 경험을 안겨 준다. 게임은 위협을 가하는 악당이나 깜짝 놀라게 하는 공포스러운 요소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기 위해 무언가에게 쫓기듯 바삐 움직여야 한다. 광물이나 씨앗을 캐서 꽃과 나무를 자라게 하고, 미생물을 연구해서 물 속 식물과 물고기를 만들어 내고, 유전자를 연구해서 동물을 탄생시키는 등등, 말 그대로 황무지였던 외계 행성 속의 창조주가 되어 꽤나 집중해서 플레이하게 된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겨우 집 근처만 맴돌던 나는 점차 행성 곳곳을 누비며 다니게 된다. 두려움으로 내딛던 유난히 공포스럽던 땅도 게임의 막바지에 이르면 텔레포트를 타고 앞마당을 거닐 듯 가볍게 날아다닌다. 결국 모든 것은 처음과 시작이 어려울 뿐, 거듭 반복된다면 결국 익숙해질 것이고 또 다른 나만의 노하우가 생길 것이며 그러다보면 결국 모든 행동은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것이라는 안도감이 들기 시작한다. 내 이야기를 하기 조금 부끄럽지만, 근래의 나는 조금 불안했다. 이직한 회사 내 조직에서 빠르게 적응해야 할 것만 같았고 내가 잘하는 것을 충분히 어필하면서 성과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면 참 좋으련만, 이상하게도 나는 시선과 관심이 압박감처럼 느껴졌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경직되어 있었던 것 같다. 가만 생각해보면 이렇게 까지 움츠러들 필요는 없을 텐데,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상황 때문에 거듭 속상해졌다. 고민만 늘어가는 나날들 속에서 결국 단순하고도 명쾌하게 답을 내려준 것은 게임 속 미지의 우주였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건, 멈춰 있는 대신 계속해서 행동하며 나아가는 일이 아닐까. 게임은 중반부부터 아주 놀랍게도 지루해진다. 같은 자원을 캐고 같은 일을 하며, 배가 고프다는 알림이 울리면 밥을 먹고, 산소가 떨어졌다는 경보음이 울리면 산소를 흡입한다. 점차 필요한 자원은 많아지지만 해야 하는 일은 대부분 매우 비슷하기에 지루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을 정도로 긴장감을 잃게 된다. 매일 같은 시간 출퇴근 하는 일상의 루틴처럼, 게임 속에서도 일정한 일을 견디고 행동하지만 결국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다음 챕터로 넘어가게 되는 지점을 마주하게 된다. 새로운 행성에서도 나의 역할을 잘 해내는 사람, 그러기 위해선 그저 더듬거리며 나아가는 일을 반복하는 수밖엔 없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결국 해내고 있다 보면 결국 이 모든 고민에 더욱 능숙히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윤여진(소설가)

2025-07-20

벼랑끝 국힘, ‘새 리더십’ 찾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이 사면초가 상태다. 대선 참패 이후 한 달 반 넘게 이어지는 당 지지도 하락이 멈출 기미가 없다. 리더십도 사실상 실종상태여서 정부·여당의 일방적인 국정운영은 거칠 게 없다. 윤희숙 혁신위는 현재 좌초 위기에 빠졌다. 윤 위원장이 ‘실명 인적쇄신안’에 이어 ‘차기 총선 불출마’까지 언급하자 당내 반발이 격화하고 있다. 이미 혁신 동력을 상실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석열 어게인’을 주장하는 전한길씨의 입당을 둘러싼 파문도 커지고 있다. 전씨는 윤석열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후보가 없으면 본인이 당 대표에 출마할 수 있다고 했다. 당이 친윤과의 단절을 통한 혁신은커녕 더욱더 깊숙이 ‘윤석열의 늪’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국민의힘이 이처럼 퇴행적 모습을 보이면서 지지율은 10%대로 추락하고 있다. 이제 유일한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대구·경북(TK) 지역의 민심 이반 현상도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니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은 국정 운영에서 거칠 게 없다. 정청래 당 대표 후보가 언급한 것처럼 ‘전광석화 같은 폭풍개혁’(인사·정책)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제1야당과의 소통은 안중에도 없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이 계속 고공비행 중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사분오열되자 ‘3대 특검’은 야당 의원들을 줄줄이 수사선상에 올리고 있다. 일부 의원은 피의자 신분이다. 핵심 친윤이었던 권성동 의원은 ‘건진법사 청탁 의혹’, 이철규 의원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과 관련해 수사받고 있다. 권 의원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의 피의자 신분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 8일에는 윤상현 의원이, 11일에는 임종득 의원이 자택·사무실 압수 수색을 당했다. 국민의힘이 벼랑 끝에서 다시 동력을 찾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다음달 22일로 예정된 전당대회다. 전당대회에서 당의 이미지를 바꾸고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가 나와야 한다. 만약 내년 지방선거를 지휘할 새 대표마저 구(舊)주류 중에서 나올 경우, 국민의힘의 미래는 암울해진다.

2025-07-20

폭우 등 기상이변 대비 방재체계 재설계해야

지난 16일부터 내린 폭우로 전국이 비상경계에 들어간 가운데 경남 산청군에서는 전 군민에 대한 대피령이 내려지는 이변이 일어났다. 20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산청군에사는 이번 폭우로 6명이 사망하고 7명이 실종됐다고 밝혔다. 지난 16일부터 내린 비로 산청군 시천면의 경우 누적 강수량이 798mm에 달했고, 군내 일대에 632mm의 극한 호우가 쏟아진 것으로 밝혀졌다. 인구 3만여 명의 산청군은 이번 폭우로 마을 곳곳이 폭격을 맞은듯 아수라장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대구와 경북도 곳곳에서 비 피해가 발생했다. 16일부터 누적 강수량 기준으로 청도 365mm, 달성 338mm, 경주 외동 287mm, 경산 245mm의 비가 내려 산사태, 토사유출, 시설물 붕괴 등이 이어졌다. 경북 의성군 점곡면에서는 고립된 주민 2명이 소방관에 의해 구조되기도 했다. 지난 봄 초대형 산불이 난 안동 등 도내 5개 지역에서는 그나마 큰 피해가 없었던 것으로 파악돼 다행스럽다. 시간당 100mm의 강수량을 기록하면 웬만한 지역은 폭우를 견디기가 어렵다. 도로에 물이 차면서 교통이 두절되고 집이 침수되며 인명피해도 잇따른다. 언제부턴가 수백 년 내 혹은 역대급이란 표현이 요즘은 흔할 정도로 자주 쓰인다. 게다가 비가 한번 왔다 하면 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쏟아붓는 게릴라 형태로 쏟아져 인명피해는 물론이거니와 가축이나 과수 등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 기상청은 “기후변화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강수 패턴이 바뀌고 있다”고 밝히고 “한국도 그 변화를 겪고 있으며 특히 여름철에는 국지성 호우가 자주 발생한다"고 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시스템도 기상변화에 맞게 좀 더 정교해질 필요가 생겼다. 과거에 준비해놓은 방재체제를 다시 점검하고 장기적으로 집중 호우에 대비하는 인프라 투자를 늘려야 한다. 특히 안전사고 우려가 높은 지역에는 사람부터 대피시키는 등 긴급재난 대응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여름철 극한 호우와 폭염이 일상화되는 시대다. 재해당국의 치밀하고 장기적 안목의 대응책이 마련돼야 한다.

2025-07-20

고(故) 안철택 교수 영전에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인연생(因緣生) 인연멸(因緣滅)이란 말은 깊은 울림을 준다. 인연 따라 생겨나고, 인연 따라 사라진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인연이 있으면 생겨나고, 인연이 다하면 흩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오는 일도, 세상과 작별하는 일도 모두 인연의 생겨남과 사라짐에 달려있다는 말이니 새삼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다. 7월 6일 한낮의 땡볕이 내리비치는 순천만 국가정원을 허위허위 걷다가 숨이 턱에 차는 느낌과 만난다. ‘인문 여행’이란 이름을 가진 전남대-경북대 교수들이 오랜만에 순천에서 만난 것이다. 하늘의 뜻을 거역하지 아니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장 순천(順天)의 대표적인 명소 국가정원을 걷는 것은 고역이었으되,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었다. 그리고 여수로 옮긴 저녁 자리에서 가슴 서늘한 전화가 불쑥 나를 찾는다. 아끼던 대학 후배 교수가 세상을 등졌다는 비보(悲報)였다. 잠시 숨을 돌리고 나서 경북대 교수들에게 안타까운 상황을 말한다. 일순 아연실색하는 동료들의 표정이 어둡다. 지난 4월 초부터 몸과 마음의 고통을 호소했던 후배 교수의 부음에 망연자실한 얼굴이 역력하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22년 봄 연구실에서다. 전화 통화로 미리 통성명은 했던 터였고, 따라서 낯설지 않은 대면이었다. 더욱이 그는 마주 대하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남다른 능력의 소유자였다. 오랜 유학 생활을 경험한 그였기로, 나는 자연스레 이런저런 분야의 서책에 관한 이야기를 그와 함께했다. 넓고도 깊은 그의 독서 편력이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 후로 여러 차례 만남으로 그와 자연스레 교분을 키울 수 있었다. 특히 전태일 열사 기념관 신축 기금 모집에 열렬하게 헌신하는 그의 모습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자기에게 맡겨진 과업을 뚝심 있게 추진하는 열정과 헌신적인 활동성은 아름답게 보였다. 그는 아는 것은 아는 대로 실천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하는 용기 있는 지식인의 자세를 견지(堅持)했다. 그의 열망은 한국 사회의 공적 인식과 실천적 지평을 도이칠란트 수준까지 고양하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인 주권자들의 앎과 실천의 영역을 더 넓고 깊게 확장-심화하는 것을 자신에게 부여된 과제로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분단과 전쟁, 빈곤과 독재, 장기간에 걸친 군사 쿠데타로 얼룩진 우리나라를 멋진 나라로 만들고자 하는 열망에 불탔던 인물이 그였다. 그 문제에 관해 그와 심도(深度) 있는 논의를 진척하지 못한 아쉬움이 내겐 남는다. 언제부턴가 나는 각각의 개인이나 사회 혹은 국가는 나름의 역사적-문화적 차이를 가지고 있기에 그에 따른 발전과 변화 양상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통일 도이칠란트는 우리의 참고서는 될지언정 교과서는 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졌던 터다. 이런 이야기를 뒤로 미뤄야 하는 작별의 시각이 너무도 불시에 찾아왔다. 여수의 저녁놀이 아름다웠지만, 쓸쓸해진 마음에 좋아하는 술도 마다하고 눈길이 자꾸만 헛헛해진다. 이튿날 아침 소주로 그의 명복을 빌면서 작별 고한다. ‘안 선생, 부디 평안하게 영면(永眠)하시게!’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7-20

대구 두류공원의 꿈

미국 뉴욕시 맨해튼구에 위치한 센트럴파크 공원은 해마다 25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미국 최고의 명품공원이다. 공원의 규모가 작은 나라지만 모나코보다 크다. 공원 안에 동물원과 야생보호구역이 있다. 중앙에 큰 호수도 있다. 본래는 뉴욕시의 땅이었으나 무허가 채석장과 가축농장, 판자집 등이 무질서하게 들어섰던 것을 한 저널리스트의 제안으로 개발이 시작됐다. 당시 사람들은 사람 살 땅도 부족한데 빈땅을 공원으로 개발한다고 불평을 해댔다. 하지만 과감한 개발로 지금은 뉴욕시민의 자랑이자 세계적 명소가 됐다. 당시 공원 설계사는 “지금 이곳에 공원을 조성하지 않으면 100년 후에 이만한 크기의 정신병원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유명한 명언을 남겼다. 도심의 공원은 시민의 휴식처이자 여가 공간이다. 시민에게 단순히 휴식만 제공할 뿐 아니라 도시의 공기를 맑게 한다. 더운 여름의 기온을 3~5도 가량 낮춰주기도 한다. 특히 자연경관을 보호하고 시민들의 건강과 정서 안정에 기여한다. 나라마다 도시공원을 권장하고 지원하는 것이 대세다. 대구 두류공원의 국가도시공원 지정 여부가 관심으로 떠올랐다. 국가공원으로 지정되면 공원 관리에 획기적인 전기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두류공원을 관할하고 있는 달서구는 오래전부터 두류공원의 센트럴파크화를 꿈꾸어 왔고 연구용역까지 벌였다. 센트럴파크 말고도 영국의 하이드파크나 밴쿠버의 스탠리파크 등은 도심공원으로서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규모도 크고 멋진 경관의 도심 속 자연공원으로서 여행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 센트럴파크를 꿈꾸는 두류공원의 꿈을 응원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7-20

고립된 청년, 보이지 않는 ‘지역사회 위기’

청년 고립은 단순한 외로움을 넘어 삶의 다방면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사회 문제다. 이는 개인의 미래뿐 아니라 사회적 우울과 자살 등 다양한 문제를 유발한다. 기존 대응은 고독사 예방과 1인 가구 지원에 집중했으나, 이제는 정서적 관계 형성을 위한 실질적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 청년 고립은 경제 활 단절, 지역사회 연결망 상실, 사회 참여 배제라는 세 가지 축에서 동시에 나타난다. 이는 직업 부재를 넘어 경제 활동 기회 박탈, 최소한의 관계망 부재, 다양한 사회 활동 참여의 소외를 포함한다. 초기에는 사회적 거리 두기로 보일 수 있지만, 장기화할수록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악영향을 미치며 삶의 전반에 걸쳐 위협을 가한다. 경상북도 거주 청년 중 약 7.8%가 사회적 고립 상태에 놓여 있다는 최근 조사는 전국 평균(6.3%)보다 높은 수치로, 약 1만명의 은둔형 청년 중 3500명 이상이 6개월 이상 외부와 단절된 상태임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통계를 넘어 사회 구조적 위기의 신호로 해석되어야 한다. 고립은 경제적 단절, 심리적 침체, 사회적 소외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시작점이다. 많은 은둔·고립 청년들은 학업, 직장, 관계에서의 실패 후 회복 기회를 찾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시민’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고립은 개인의 일시적 문제가 아닌 장기적이고 복합적인 문제로, 생산성 저하와 사회 통합 저해 등 사회·경제적 비용을 급격히 증가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언제’ 개입하느냐이다. 대부분의 정책은 위기가 가시화된 이후에야 복지체계에 편입된다. 그러나 고립 청년 문제는 선제적 발견과 예방 중심의 접근 없이는 실효를 기대하기 어렵다. 지역 공동체는 조기 발견–심리 회복–사회 재참여의 흐름을 만드는 실천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 경상북도는 올해부터 은둔 청년 전수조사와 맞춤형 심리지원 사업을 본격화한다고 한다. 그리고 청년을 비롯한 사회적 고립가구를 사전에 발굴하고 정기적인 안부 확인을 위한 ‘행복기동대’, 경북행복재단 산하 사회적 고립 해소 및 고독사 예방을 위한 ‘경상북도사회적고립예방지원센터’가 보다 촘촘한 사회적 지원체계를 위해 활약하고 있다. 포항시에서도 경북 최초로 사회복지관의 지역밀착형사업인 ‘숨은 이웃 행복센터’라는 간판을 걸고 포항지역 6개 읍면동에 사회복지관을 부설로 설치하였다. 숨어 있는 노인, 청년 등을 발굴하고 치유하기 위해 선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사업들이 작금의 문제에 대한 일회성 사업이나 행사성 사업에 그쳐선 안 된다. 청년 고립은 그 자체로 지역 공동체의 건강성을 위협하는 지표다. 우리는 이들의 침묵 속에서 사회의 미래를 읽어야 한다. 문제는 드러나기 전부터 존재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위기’를 먼저 보는 눈과 그것에 응답하는 정책의 감수성이다. 고립으로 인한 위기는 살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아프기 전에 미리 알아차리고 청년들이 스스로 돌볼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사각지대에 은둔하고 있는 고립 청년들에 대한 시민들의 깊은 관심과 공감적 자세가 절실하다. /이형 포항 학산사회복지관장·철학박사

2025-07-20

환대, 사람됨의 조건

며칠 전, 세탁기 없는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오래전이지만, KBS ‘일요스페셜’에 세탁기 안 쓰는 사람으로 출연했을 만큼 세탁기를 안 썼다. 잠시 세탁기를 들인 적도 있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그나마도 오래지 않아 없앴다. 그런데 석 달 전 손목에 이상이 생겨 빨래를 짤 수 없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세탁기를 사게 된 것이다. 마침 중고거래 장터에 새 상품이 반값에 나왔다. 인수하려면 한 달을 기다려야 하고 용달비를 추가로 물어야 해서 대단히 유리한 조건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물건을 사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세탁기용 수도가 없다는 것이다. 세탁기 쓸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오래전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집수리센터에 가서 사진을 보여주고 견적을 받았으나 직접 와서 보고는 못 하겠다고 한다. 사진만 보고 부른 견적이 너무 싸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비용 받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궁금했지만 이유도 묻지 못하고 중고거래 동네생활에 사정을 올렸다. 그런데 어떤 분이 나눔으로 해주겠다고 나섰다. 전문업자도 안 한다는 일을 생면부지 남을 위해 나서준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이유를 물었다. ‘생활 속에서 부품 몇 개로 DIY로 할 수 있는 간단한 일들을 도와드리는 것뿐, 금전을 받을 만큼 전문은 아닙니다. 우울한 일상에서 몰랐던 것도 배우게 돼서 해드립니다.’ 드디어 세탁기가 들어와서 나눔 해주시는 분이 오기로 했다. 하필 전날 폭우가 내리쳐서 계단참에 빗물이 흥건히 고였길래 얼른 나가서 물웅덩이를 말끔히 쓸었다. 집안 여기저기 널려있는 자질구레한 물건들도 다 치웠다. 그러면서 과연 내가 돈을 지불하는 집수리업자가 와도 이렇게 했을까 의문이 들면서 ‘환대’라는 말이 떠올랐다. ‘환대’는 김현경의 책 ‘사람, 장소, 환대’에 나오는 말이다. 이 책은 그의 대학 강의 내용을 정리한 것인데, 출간된 지 10년이 되어가는데도 지금도 여러 독서 모임에서 선정되고 있다. 사람을 교환가치로만 생각하는 현실을 비판하는 묵직한 문제의식이 시의성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현경은 프롤로그에서 그림자나 웃음, 눈물이 없다면 사회에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우화 몇 개를 소개하며 그림자나 웃음, 눈물 같은 조건을 갖추어야만 환대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그러나 나는 그림자나 웃음, 눈물을 환대할 줄 아는 마음이라고 재해석하고 싶다.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존재가 공공성을 창출하는 ‘사람’이 되는 조건이 바로 환대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라고 말이다. 나눔을 해준 분은 동네생활의 몇 글자만 보고 기꺼이 도움을 약속했고 90분에 걸쳐 세탁기 수도를 연결해주고는 공구 가방을 따릉이에 싣고 ‘손목 아프지 마세요’ 인사를 남기고 어떤 선물도 거절한 채 홀연히 떠나갔다. 김현경은 환대와 증여를 구분하면서 준 것을 잊어야 환대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나눔해준 그 분이야말로 진정으로 환대를 실천하는 ‘사람’이다. 다만, 받은 것도 잊어야 환대라는 저자의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준 사람은 잊어도 받은 사람은 잊지 않는 것, 그것이 환대의 완결이 아닐까.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7-20

‘물순환촉진법’

지난 몇 년간 우리는 기후변화의 위력을 피부로 느꼈다. 기록적인 폭우로 대구 도심의 도로가 순식간에 흙탕물에 잠기고, 연이은 가뭄에 청도 운문댐이 바닥을 드러내는 모습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도시를 뒤덮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는 빗물이 땅으로 스며들 길을 막아버렸고, 왜곡된 물의 흐름은 기후변화라는 ‘위협 증폭기’를 만나 홍수와 가뭄이라는 극단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물관리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때이다. 지난해 10월 시행된 ‘물순환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물순환촉진법)이 바로 그 전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물순환촉진법’은 무엇이 달라지는 것일까? 핵심은 ‘통합’과 ‘회복’이다. 이 법은 빗물을 더 이상 빨리 내다 버려야 할 골칫거리가 아닌, 땅에 스며들게 하고(침투), 잠시 머물게 하여(저류), 다시 사용하는(재이용) 소중한 자원으로 바라본다. 이를 위해 ‘물순환 촉진’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는데, 이는 단순히 재해 예방을 넘어 깨끗한 물 공급, 수생태계 보전까지 아우르는 포괄적인 활동이다. 법은 투수성 포장, 빗물정원, 인공습지 같은 ‘물순환 시설’을 체계적으로 설치하도록 장려한다. 특히 물순환 왜곡이 심각한 지역을 ‘물순환 촉진구역’으로 지정해 국가가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관리하게 된다. 환경부가 국가 전체의 청사진(국가물순환촉진기본방침)을 그리면,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특성에 맞는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워 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이다. 국고 보조를 통해 사업 비용을 지원하고, 관련 제품의 품질을 인증해 주는 제도로 산업 발전도 꾀하게 된다. 세계의 선진 도시들은 이미 도시가 거대한 스펀지처럼 기능하는 ‘스펀지 시티’로 변모하고 있다. 독일은 건물의 지붕이나 주차장처럼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는 ‘불투수면적’이 넓을수록 하수도 요금을 더 내게 하는 ‘빗물세’를 도입했다. 이는 시민들이 스스로 옥상에 정원을 가꾸고, 마당에 투수 블록을 깔도록 유도하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미국 포틀랜드시는 ‘깨끗한 강 보상(Clean River Rewards)’ 프로그램을 통해 빗물정원 등을 설치한 시민에게 수도요금을 직접 깎아준다. ‘물순환촉진법’ 시행을 계기로 대구·경북은 기후 위기 시대에 지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발판으로 삼는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첫째, 안정적인 ‘재원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고 지원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독일의 빗물세처럼 지역 실정에 맞는 독자적인 재원 조달 체계를 조례로 제도화하는 방안을 공론화해야 한다. 둘째, ‘제도개선’과 실행 조직 구축이 시급하다. 물순환 정책을 총괄할 컨트롤타워를 세워 부서 간 칸막이를 허물고, 전문가와 시민이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활성화해야 한다. 셋째, ‘물순환촉진법’에 명시된 ‘지원센터’나 ‘전문인력 양성기관’과 같은 핵심 기관을 우리 지역으로 유치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대구·경북이 물산업 선도도시로 도약하는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다. 그리고 ‘물순환촉진법’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손에 쥔 지금이야말로 대구·경북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물 안심 도시’로 거듭날 절호의 기회이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5-07-17

복날이 뭐지?

달력을 보니 초복이 코앞이다. ‘복따름’을 해야 이 더운 날씨를 어떻게 해서든지 버티지 싶어 삼계탕집에 전화를 돌렸으나 이미 허탕이다. 어지간한 집은 예약조차 받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니 더운 날씨에 더 더운 듯하다. 불난 집 앞에서 부채질한다더니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친구가 ‘복따름’이 아니라 ‘복달임’이라고 단어를 수정해 준다. 대충 알아먹으면 될 것을 지적질이다. 닭 한 마리도 못 먹어 헤매는 사람보고 부아를 돋운다. 시청에 가면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시장에게 하소연하고 싶은 마음에서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 그중에는 개고기 먹지 말자는 취지에서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칠성시장 개 판매 장소를 없애 달라고 시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서울 경동시장의 개 도살장이 없어지고 국내 3대 개 시장 중 경기도 성남 모란시장과 부산 구포시장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데, 마지막으로 남은 대구 칠성시장의 개 시장을 폐쇄해 달라는 것이었다. 복날쯤에 어김없이 나오는 ‘개고기’ 이야기는 이제 식상하다. 보신탕, 보양탕이라 부르는 개고기는 우리 민족의 전통음식 중 하나였으나 시대가 개고기 먹는 것을 거부하고 있으니 방법이 없다. 이젠 법으로 못 먹게 되다 보니 강짜 부린다고 될 일도 아니다. 복날에 복달임을 위해 가족이나 이웃이 모여 노는 것은 ‘복놀이’라 한 것을 보면 가족 친지들이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더위를 이겨보자는 뜻이 강한 것 같다. 특히 어른들 여름에 기력이 빠질까 싶어 챙기는 의미로 여름 들어갈 때 한 번, 중간에 한 번 그리고 여름 끝날 때쯤 마지막으로 건강을 챙겨드리는 마음에서 복놀이를 한다. 이게 우리가 복날을 챙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초복은 어른들 여름 나시라고 영양가 있는 음식 챙겨드리는 날로 배웠고 여태 그렇게 해왔다. 애들 외숙모가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초복날 일이 터졌다. 집사람이 갓 시집온 처남댁에게 초복 날 장인어른 안 챙긴다고 나무란 것이다. 찾아뵙지도 못하면 전화라도 해서 안부를 여쭙는 것은 상식이건만, 그냥 넘기는 바람에 장녀인 집사람이 열이 뻗혔다. “우리 집에선 초복 행사 같은 건 없어예.” 아마 처남댁 집에선 초복이란 행사 자체가 없었던 모양이다. 모르면 처남이라도 언질을 줘야 하건만 똑같았다. 갑자기 팔에 소름이 돋아 딸들에게 시집가서 초복 행사 가볍게 여기다가 아비 어미 욕 먹이지도 말라고 ‘단디’ 교육했다. 이제 삼십여 년이 흘러 장인어른도 돌아가셨고 애들도 삼십 대에 접어들어 각자 결혼해 생활이 바쁜 것 같다. 가족끼리 함께 밥을 먹는 시간도 거의 없는지라 밥상머리 교육인지 뭔지도 해 본 적이 까맣다. 문득 시대가 형식적인 절차나 예절 방식 같은 것이 없어지는 느낌이다. 편한 세상에 살면서 피곤하게 절차 따지는 것이 우습게 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모든 게 대충 대충이다. 큰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전화 한통으로 안부만 물어줘도 될 일인데 이조차 허례허식으로 치부한다면 할 말이 없다. 괜히 복날에 복잡한 식당 찾다 스트레스 받지 말고 집에서 수박이나 시원하게 한 통 잡아야겠다. /노병철 수필가

2025-07-17

상선약수의 교훈

중국의 철학자 노자는 도덕경에서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삶의 기본이라 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며 누구와 다투지도 않고 억지로 무엇을 하지도 않으려하며 오히려 만물을 이롭게 한다고 했다. 도가사상의 창시자인 노자는 물은 겸손하며 유연하고 포용력이 있으면서도 강인함이 있다고 풀이했다. 그는 자연 순리에 따르는 삶을 옳은 태도라 가르쳤다. 물은 흔하지만 과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물질이다. 지구상 생물체를 살 수 있게 하는 물질이다. 물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지구 표면의 70%가 바다다. 바다는 지구상에서 발생하는 열을 저장해 기후를 부드럽게 한다. 사람의 인체도 70% 이상이 물이다. 몸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려면 매일 1~5l의 물을 먹어야 탈수를 예방할 수 있다. 사람 몸에 물이 2%가 부족하면 갈증이 오고, 5%가 부족하면 뇌사 상태가 된다고 한다. 물은 컵에 담으면 컵 모양이 되고 둥근 그릇에 담으면 둥근 그릇 모양이 된다. 물의 유연하고 정직한 기질처럼 사람도 남을 이롭게 하고 겸손하게 사는 것이 노자의 상선약수에 담긴 의미다. 한 나라의 장관은 행정부의 으뜸 관료다. 막중한 책임과 권한을 갖는다. 국민들 앞에 모범이 되고 깨끗해야 함은 물론이다. 국정에 대한 신뢰도 그로부터 시작된다. 이재명 정부의 장관 청문회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으나 장관 후보자들의 자질 문제를 두고 청문회가 파행으로 흐르고 시끄럽다. 한 나라의 장관으로서 자질이 있는지 여부는 앞으로 그들이 일해 보면 안다. 후보자들이 만약 장관이 된다면 노자의 상선약수의 마음 정도는 가져야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7-17

경주 두 번 찾은 총리, APEC 성공 기대치 높였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15일과 16일 양일간 2025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회의장을 방문했다. 지난 11일 이재명 대통령 지시에 따라 경주 APEC 준비상황을 둘러본 데 이어 두 번째 방문이다. 김 총리의 방문에는 외교부 관계자와 경북도 부지사, 경주시장 등이 참석했다. 김 총리는 숙박시설, 공사 진행 상황, 문화콘텐츠 준비현황을 일일이 점검하고 K-APEC을 기존의 어느 정상회의보다 특별하게 만들 것을 당부했다. 그는 16일 경주에서 열린 국내 최대 경제계 포럼인 대한상의 하계포럼에 참석, 기조연설을 통해 “경주 APEC 정상회의는 단순한 외교 행사를 넘어 한국의 초격차 산업역량과 문화적 비전을 결합해 세계에 새로운 행사모델을 제시할 기회”라고 밝히고 “APEC 경주를 대한민국의 새 출발점으로 삼자”고 강조했다. 대한상의 포럼에는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과 전국 상의회장단, 기업인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도 “APEC 정상회의와 글로벌 경제인 행사의 성공적인 개최에 기업인도 모두 한뜻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출산위원회도 경주에서 10월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서 ‘인구 구조 변화 공동대응을 위한 경주선언을 채택하자는 제안을 16일 했다. 3개월 앞으로 다가온 경주 APEC 행사가 대통령의 관심과 김 총리의 방문, 경제계의 동참 등으로 서서히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 모습이다. 특히 정부와 경제계 등 범국가적 차원의 지원과 관심을 모으면서 행사의 성공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행사가 개최되는 경북도와 경주시는 지역의 명예를 걸고 빈틈없는 준비로 역대 최고의 APEC 행사가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20년만에 돌아온 글로벌 행사를 유치한 경주와 경북도는 행사의 경제적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해 포스트 APEC 준비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21개국 정상과 각료 등 2만여 명의 외국인이 경주를 찾는 일은 앞으로도 드물 것이다. 지난해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의 실패로 인한 국가적 망신을 교훈으로 삼아 특별한 각오로 행사를 준비해야 한다.

2025-07-17

농축산물 시장 개방, 농촌소멸 가속화 한다

미국이 다음 달 1일 25% 상호관세 부과를 앞두고 한국에 농축산물 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사과와 소고기, 쌀 등 민감한 품목들이 개방 대상으로 거론되다 보니, 최대 농업도시인 경북 도내 농가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과 관세 협상을 준비 중인 정부 당국은 “농산물도 전략적 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밝혀, 미국 측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사과와 소고기, 쌀 등의 시장개방은 우리나라 농가의 생계와 직결되는 만큼, 정부는 농민들과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결론을 내려야 한다. 경북도로서는 사과와 소고기가 최대 민감 품목이다. 경북지역 사과 생산량은 전국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소 사육 규모는 전국 1위다. 미국산 사과와 소고기는 국내산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가격 경쟁력이 높다. 특히 이미 일부 개방된 한우와 달리, 사과는 개방하게 되면 대폭적인 가격 하락이 불가피하다. 미국 사과 생산량은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10배가 훨씬 넘는다. 사과 주산지인 청송의 한 농가는 “미국 사과는 한국 사과 가격의 절반 이하 수준에서 거래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경북도의회와 청송군의회는 최근 “미국산 사과 수입이 현실화하면 경북 농가는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는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 농정당국은 소고기와 사과의 경우 검역 완화 조치 등을 통해 수입을 상당 부분 허용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형성되는 모양이다. 한국은행도 최근 들어 이상기후로 사과값이 폭등하자 “수입 과일 가격은 국산에 비해 가격 변동성이 낮다”며 과일 검역 절차 완화를 검토할 때가 됐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정부로서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난제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농업을 콕 집어 관세 협상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문제가 많다. 경북도의 경우, 이제 막 ‘농업대 전환’ 정책을 통해 청년인구 유입, 농가소득 향상 등에 일정 부분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부의 농축산물 수입 개방 조치는 이러한 흐름에 찬물을 끼얹고 농촌소멸을 가속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2025-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