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스케줄이 끝나면 포항 또는 경주로 달려오고 했던 것이다. 지인들과 술자리를 갖기도 했지만 기관장들과 지역 발전에 대한 토론도 종종 벌였다.
이 인사는 포항이 고향은 아니었지만 어려울 때 포항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고, 슬픈 일, 즐거운 일을 함께 겪었다. 세월이 지나 이 인사는 누구나 알아주는 자리에 올랐고, 시간을 쪼개 써야 할 처지가 됐으나 틈만 나면 대구·경북을 찾았다.
그리고 공식 일정이 마무리되면 포항 등으로 왔다. 당시 이 인사의 지원으로 포항뿐만 아니라 경북도내 적잖은 사업들이 해결되기도 했고, 일부 관료들은 승진과 이동에 도움을 받기도 했다.
이 인사는 `포항에서의 아련한 추억이 발길을 붙잡곤 한다`고 자주 토로하기도 했었는데 이 일화는 포항에서 출입하는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일이다. 인연은 그만큼 소중하기도 하고 애틋한 것이기도 하다.
18일 이명박 대통령이 포항에 온다.
대통령 취임이후 첫 고향 방문이다.
사람이 살다가 힘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어머니와 고향이라 했던가.
대통령도 사람인데 마찬가지 일 터다.
그러나 처지가 마음대로 움직일 입장이 아니니 불쑥 찾아 올수도 없다. 대통령은 편하게 움직인 YS 정부 당시 모 고위 관료와 달리 공식 일정이 아니고서는 동선이 제한되는 것이 관례다.
이번 고향 첫 방문도 영일만항 개장식이라는 공식 스케줄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고향을 찾을 이 대통령의 마음은 어떨까. 모르긴 해도 온갖 상념들이 교차할 것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 추억은 평생 간직한다. 죽도시장 좌판에서 장사를 하던 어머니의 모습은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다.
주린 배를 움켜쥐어야 했던 가난과 천진난만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동빈 내항을 활보했던 그 기억들을 어떻게 잊겠는가.
영일만항 식장으로 가는 사이 이 대통령은 고향에서의 추억들을 하나하나 파노라마처럼 되돌려 보기도 할 것이다.
혹자는 이 대통령이 이번에 무슨 선물을 가져 오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러나 고향 사람들은 그런 소아적인 것에 함몰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연초 가뜩이나 `형님 예산` 시비에 휘말려 곤혹을 치룬 마당에 대통령마저 고향 오는 길에 `선물`을 들고 온다면 또다른 논란거리가 될 것임은 불문가지다.
그보다는 편하게 고향의 모습을 보고 가도록 해주어야 할 것이다.
어찌 보면 이 대통령 보다 포항의 시정을 훤하게 꿰뚫어 보는 이도 드물다.
지금 포항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사업들도 대통령의 구상일수도 있다.
며칠 전 이 대통령은 포항 덕성리 주민 180명이 청와대를 방문하자 “고향마을 손님들이 온다는 소식에 밤잠을 설치며 기다렸다. 정말 환영한다.”고 말하고 함박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대통령으로서는 정말 뿌듯하고 편한 자리였을 거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된다.
덕성리 이장도 “고향의 일은 고향사람들에게 맡기고 대통령께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큰일을 해 달라.”면서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록된다면 고향사람으로서 더 이상의 바람과 영광은 없을 것”이라고 정겹게 화답했다.
같은 고향 이니까 주고받을 수 있는 모습이다.
포항에선 간혹 고향출신 대통령 있을 때 이것저것 챙겨야 한다는 이도 있다.
그러나 지금 포항은 잘 돌아가고 있다.
그동안 나온 사업들만 잘 챙겨도 포항은 천지개벽에 가까운 변신이 가능하다.
이번 이 대통령의 고향 방문에 너무 무리한 기대도 말고 이것저것 해달라는 요구도 말았으면 한다.
정말 고향이 편하고 좋구나 하는 마음을 갖고 떠나도록 해주는 것이 국가와 포항을 위해서도 더 바람직스런 일이다.
이 대통령은 죽도시장도 찾는다. 대통령 후보시절 `당선되면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란다.
이 대통령의 애환이 서려있는 죽도시장이다.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 올 것이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의 취임 후 첫 고향방문이어서인지 지역이 조금은 들떠 있다.
이해는 된다. 허나 조용히 맞이하고 편하게 보내주자. 대통령의 발걸음이 가벼워 진다면 나라와 포항으로서도 큰 득이다.
고향 사람들이 요란스레 떠들지 않아도 이 대통령은 영일만항 개장식장에서 영일만 앞바다를 바라보며 포항 청사진을 그려 볼 것임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 대통령이나 YS 정부 당시 모 고위 관료나 인연은 그만큼 소중하다.
포항시민들은 대통령이 고향 사람이라는 명예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다른 지역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었지 않는가.
고향사람들이 진정 해야할 것은 이 대통령이 성공, 퇴임 후 가벼운 마음으로 고향에 올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