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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노동을 통해 지혜를 얻는 철학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1-06-09 19:30 게재일 2011-06-0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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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연습` 민음사 刊, 서동욱 지음, 332쪽, 1만5천원

`철학연습` 저자 서동욱씨
삶의 골칫거리들과 현대철학의 고민거리들은 어디서 어떻게 만나나?

철학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기쁨, 슬픔, 질투, 고통, 불안)이 깊숙이 감추고 있는 진실을 찾아내, 그 원인들과 당당하게 마주하게 하기도 한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진짜로 대면해야 할 문제들을 밝혀주기도 한다. 늘 새로운 것이 출몰하는 현대의 삶에서, 정말로 바뀌는 것과 바뀌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는 것도 바로 철학이다.

철학자이자 시인인 서동욱씨가 펴낸 `철학연습`(민음사 펴냄)은 현대철학의 핵심적 내용을 성실하게 소개하고 있다.

학생부터 주부까지,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마옴속에 간직한 이들이라면 누구든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썼다. 쉽게 썼지만 현대철학이 품고 있는 깊이를 무시한 채 단순화하고 도식화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저자의 생각과 마음을 통해 철저히 소화된 이야기만을 실었다. 또 철학자들이 고심했던 문제를 소개할 때, 그 치열함과 진지함을 가능한 한 생생하게 전달한다. 가령 스피노자나 키르케고르 철학이 당대의 네덜란드와 덴마크 사회와 어떤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는지, 사르트르가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문장으로 귀결되는 `의식의 익명성`에 주목하게 된 것이 어떤 경험과 연관돼 있는지, 다음과 같은 설명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렇게 네덜란드는 자유와 예속의 체험 모두를 통해 스피노자의 사유를 자극했다. 스피노자가 유대인 공동체로부터 당한 파문을 감수한 것,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교수 초빙을 거절한 것 등은 모두 그의 삶 전체가 예속에 맞서 자유를 획득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이루어낸 하나의 작품임을 알려준다.”(31쪽)

“의식은 말을 통해 대상에 의미 부여를 하고 의미를 통해 대상을 규정하는 일을 한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사르트르가 자신의 성장에 관해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서 다시 태어났다. 글을 쓰기 전에는 거울 놀이밖에는 없었다.” 거울 놀이 속에서 자기 시선을 통해 자기자신을 규정하는 소극적인 방어를 했던 어린이는, 이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의식 바깥의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규정하려고 한다.”(96쪽)

이렇게 철학자들의 사유가 발을 디딘 현장을 목격하게 하는 장치 역시 이 책이 깊이를 양보하지 않고서도 쉽게 읽힐 수 있는 비결이다.

우리에게 철학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몸을 움직여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양식을 얻듯이, 그렇게 이성의 노동을 통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은 현대철학에 대한 쉬운 안내서일 뿐만 아니라, 저자의 독창적인 에세이라 할 수 있다.

책은 1부 `이론`과 2부 `연습`으로 나뉜다. 1부에서는 현상학(실존주의)과 구조주의(탈구조주의)라는, 현실에 특별히 밀착했던 두 흐름을 중심으로 주요 철학자들을 살핀다. 각 꼭지 뒤에는 철학자들의 핵심 개념과 저작에 대한 설명, 더 공부할 때 도움이 될 만한 국내외 자료들이 나온다. 철학자들의 대표 저작 목록을 백과사전을 참조해 정리한 자료가 아니라 저자가 20년 이상 공부해온 내용을 압축해 알짜배기만 담아놓은 노트나 마찬가지이다. 한 줄의 설명에도 저자의 내공이 스며들어 있다.

2부에서는 주제를 앞세워 생각을 전개시키는 에세이들이 등장한다. 존재와 무, 차이와 환대, 진리, 진짜와 가짜 등 고전적인 주제에 관한 논의들을 현대철학 버전으로 재정비한 글들이 준비운동을 돕는다. 그러고 나면 돈, 사랑, 외모, 스마트폰 시대의 책읽기와 글쓰기 등 현대적 삶의 국면이 철학의 언어와 만나는 흥미진진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책 곳곳에 실린 컬러 사진들은 이러한 철학적 사유의 즐거움, 혹은 괴로움을 최대한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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