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은 왜 죽음을 무릅쓰고 농성하고 있을까? 한진중공업은 배를 만드는 곳인데 몇 년 사이에 한 척도 주문을 받지 못해서 200명을 정리해고 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수긍이 간다. 그러나 한진은 이미 인건비가 싼 필리핀에 대규모 조선소를 건설하고 부산조선소에는 수주를 받지 않은 것이다. 결국 정리해고를 통하여 회사의 이익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수주를 받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노동자의 책임이 아니라 경영자의 책임이다. 노조는 이런 회사에 대해 해고의 부당성을 항의한 것이다.
노조는 회사와 합의를 했는데 김진숙과 몇 명의 노조원은 왜 합의에 수긍하지 못하는가? 회사는 농성하는 노조원들에 각종 고소고발을 했다. 법은 회사의 손을 들어주어 그들의 농성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엄청난 액수의 손해배상금을 요구했다. 법대로 하면 김진숙도 크레인 위에 자면서 하루 1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물어야 한다. 경찰과 용역은 농성하는 노조원들을 불법 농성이라며 강제로 해산을 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노사합의라는 것이 이루어졌다. 노조원들이 회사와 합의한 것은 복직이 아니라 회사가 고소고발을 취하하여 벌금을 물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뿐이다. 이것은 노사합의가 아니라 생존을 위협하는 힘에 노조집행부가 굴복한 것이다. 권력이 밥그릇으로 노동자를 굴복하게 한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모든 노동쟁의는 늘 불법이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기륭전자가 그렇고, 쌍룡자동차가 그렇고, 유성기업이 그러했다. 조노원들이 자기들의 목소리를 내기만 하면 공권력이 투입되고 용역이 투입되어 참사가 일어나고 노조원들은 거리로 내쫓겨 생존의 기반을 잃었다. 노동쟁의뿐이 아니다. 용산참사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유독 우리나라의 노동자들만이 불법을 일삼고 사회의 질서를 허물어뜨리는 사람들인가? 대기업, 정부여당, 공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다고 말한다.
정치권에서 최저임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은 4천320원이다. 노동계에서는 1천원 더 인상해주기를 요구하고 경영계는 30원 올려주겠다고 한다. 시간당 5천원이라고 해도 대학생이 한 학기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6개월 동안 먹지 않고 모아야 될까 말까 한 액수다. 노동계에서 여기에 반발하여 집회시위를 하면 모두 불법으로 처벌될 것이다. 왜일까?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권력에 반하기 때문이다.
권력과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은 이제 드러내놓고 그들의 권력을 정당화 하려 한다. 이승만, 백선엽 등을 미화하고 찬양하는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그들의 반민족적 행위는 반공주의자라는 포장으로 미화되고,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민중은 좌파로 매도된다. 친일 반공주의자들이 우리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한 모든 바른 소리는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매몰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노조원 김진숙의 고공 농성은 세계적인 사건이다. 프랑스의 르몽드도 비중 있게 다루는 기사 거리다. 그러나 우리의 언론은 애써 외면한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이렇듯 우리사회에는 하면 되는 일과 하면 되지 않는 일 두 가지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