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화 시편 : 행성의 사랑` 창비 펴냄, 고은 지음, 292쪽, 9천5백원
고은 시인이 작품활동 53년 만에 처음으로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 연시집 `상화 시편: 행성의 사랑`(창비 펴냄)은 28년 전 결혼한 아내, 영문학자 이상화씨에게 바치는 시집이다.
이 시집에는 사랑에 행복해하고 애달파하는, 사랑을 그리워하고 사랑으로부터 깨달음을 얻는`한 남자`로서의 시인의 모습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시인의 소소한 일상은 물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시인이 되기까지의 세월과 사유의 과정을 담은 시편들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나아가 인간의 사랑 속에서 시간의 무한성과 우주의 약동으로 확장되어나가는 깊이있는 주제의식에서는 대시인의 풍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고은 문학의 또하나의 기념비적 성과라 할 만하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 가난해진 빈 몸으로 돌아와야 한다”
`서문`에서 시인은 스스로 “80세 앞에서 사랑의 시를 쓰는 나를 이제까지의 누구도 예상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시인은 지난해 자신의 대표적인 연작시집인 `만인보`를 마치고 “완만한 흐름의 강물이 갑자기 숨찬 흐름으로 바뀌는” 일에 몸을 맡겼다. 그래서 시인의 `사랑시`는 그의 삶과 문학세계가 오롯이 담긴 “삶의 최고 형태”로서의 모습을 갖추었다.
“해가 진다 / 사랑해야겠다 / 해가 뜬다 / 사랑해야겠다 사랑해야겠다 // 너를 사랑해야겠다 / 세상의 낮과 밤 배고프며 너를 사랑해야겠다”(`서시` 전문)
시인은 시작부터 거침없이 사랑을 이야기한다.
선 굵고 강렬한 시인 특유의 필치로 선언하는 이 사랑은 태곳적 인류의 태동과 함께 살아숨쉰, 인간이 존재하는 근거이자 존재 그 자체로서 면면히 이어져내려온 것이다.
하여 연인은 시인에게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너는 먼 근원이다`)이며 `둘의 나신으로 태고의 달빛을 밀어내고 현재로 건너오게 하는`(`달밤`) 존재의 기원과도 같다.
또한 시인에게 사랑은 관념 혹은 이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현실에 토대를 둔 실재하는 그 무엇이다.
그런만큼 사랑은 “언제까지나 정의되지 않”는, “무수한 정의들 이전, 무수한 정의들 이후” (`아직 가지 않은 곳`)에 자리한 것이지만 동시에 이 세계와 유구한 역사 속에서 형성된 장엄한 인연이기도 하다.
`상화 시편: 행성의 사랑`에서는 고은 시인의 소소한 일상을 들여다보는 쏠쏠한 재미도 얻을 수 있다.
28년 전 결혼식의 풍경, 자택에서 보내는 부인과의 시간 등 시집 곳곳에는 시인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더불어 사랑에 울고 웃고 감동하는 범부로서의 솔직한 모습 또한 이 시집을 읽는 감흥을 더욱 드높인다.
황혼에 즈음해 탄생을 노래하다``내 변방은 어디 갔나` 창비 펴냄, 고은 지음, 236쪽, 7천원
`내 변방은 어디 갔나`(창비 펴냄)에서 시인은 바람 같고 폭포 같은 목소리로 우리시대의 한복판에 서서 시대와 맞서고 시대를 넘어서는 `큰` 시인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끊임없이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 시쓰기를 꿈꾸는 시인의 모습이 중단없는 갱신과 변화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도저한 시정신을 확인하게 한다.
시인은 기왕의 성과와 세월에 안주하는 일 없이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맹렬한 기세로 놀라운 창작 에너지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시집에 실린 114편의 시 한편 한편이 모두 “고여 있지 않으려는, 낡아가지 않으려는, 어떻게든 다시 태어나려는 역동성의 증거”이자, “세월이 가도 늙지 않는, 여전히 청춘으로 사는 귀신이 있는 모양”(안도현, 추천사)이라는 생각을 절로 품게 만든다. 그만큼 힘이 넘치는 시들이다.
“오늘도 내 발밑에서 / 고생대 화성암 층층의 억센 함구로 캄캄할 것 / 오늘도 내 서성거리는 발밑에서 / 바스라져 / 바스라져 / 쌓여 울부짖다 퇴적암의 굳은 포효로 캄캄할 것 / (…) / 이토록 지엄한 암석의 하세월로부터 / 내 고뇌가 와야 한다 / (…) / 이 모독의 지상 여기저기 내 석탄의 고뇌가 와야 한다”(`태백으로 간다`부분)
시인은 자신의 발밑에 쌓인 `지엄한 암석의 하세월`을 돌아보는 시선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그것은 고즈넉한 관조의 시선과는 거리가 멀다. 시인은 석탄으로부터 곧장 수억년의 시간을 거슬러 고생대의 시간을 현재의 눈앞에 펼쳐 보이며, 그로부터 단숨에 시인의 고뇌가 와야 함을 거듭 다짐한다.
부당한 시대를 향해 화살이 되어 꽂히는 시를 토해내었던 시인은 여전히 시대의 한복판에서 조금도 비켜서지 않고 시대와 맞서고 있다.
모두가 중심을 향한 그릇된 욕망에 사로잡혀 있을 때, 시는 시대의 변방을 자처한다. 변방은 곧 중심으로부터 밀려난 곳, 우리가 오래전에 떠나온 곳이다. 하지만 그곳이야말로 우리가 두고 온 우리의 고향이며, 그곳을 통해서만 우리는 중심을 향해 비뚤어진 이 시대를 바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변방의 시선을 지닌 시인이 바라보는 이 시대는 `흉측망측`하기 이를 데 없어, 시인은 한탄을 금치 못한다. 삼천리강산을 초토화시키는 4대강 사업을 비판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그래서 더욱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오늘도 강은 강대로 죽어가고 산은 산대로 마구 죽어갑니다 // 돌아보소서 / 이 꼬라지 / 이 꼬라지가 / 할아버지 할머니 후손의 막된 나의 삶입니다 // 돌아다보지 마소서 / 더이상 나는 당신들의 무엇이 아닙니다 / 한갓 이 문명 떨거지 생핏줄 끊긴 불초막심의 삽날입니다”(`나의 삶―네 강을 걱정하며`부분)
나아가 시인은 이 `막된 삶`을 낳은 모든 중심의 문명을 향해 거침없는 일갈을 날린다. “더이상 발견하지 말 것 / 다시 말한다 / 더이상 발견하지 말 것 // 불을 발견하고 술을 발견하던 시절이여 / 거기로부터 / 너무나 멀리 와버렸구나”(`포고`).
그러나 시인은 시원에 기대어 모든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시집 곳곳에 배어 있는 신생을 향한 열망과 애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시인은 끝내 세상을 내던지지 않고 끊임없이 이 세상에 새로 태어나기를 꿈꾼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