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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1-07-21 20:59 게재일 2011-07-2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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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인생의 시계는 오후

시련은 영혼을 담금질하는 축복

찬란한 노을 보는 희망을 노래하다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57) 시인이 열번째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창비 펴냄)를 펴냈다.

부드러움과 강직함 속에 녹아드는 맑고 투명한 언어로 세상을 감싸안으며 전통적인 서정시의 진경을 펼쳐온 시인은 5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예와 다름없이 삶에 대한 성찰과 긍정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진솔한 시편들을 선보이고 있다.

“앞에는 아름다운 서정을 두고 뒤에는 굽힐 줄 모르는 의지를 두고 끝내 그것들을 일치시키는 시인의 타고난 영성(靈性)”(고은 시인)이 지나오는 동안 폭과 깊이를 더해 메마른 가슴과 고단한 몸을 적시는 단비가 돼 흘러내린다.

도종환의 시는 사랑과 연민에 뿌리를 둔 희망의 노래이다. 가난과 외로움으로 얼어붙은 “빙하기로 시작한 어린 날”(`빙하기`)로부터 “흥건한 울음”이 넘치던 “생의 굽이 많은 시간”(`귀뚜라미`)을 지나온 시인은 “모진 세월 속에서 푸르게/자신을 지키는 이들이 있는 걸” 고마워하며 “작은 것에도 크게 위안받는”(`제일(除日)`)다. “툭하면 발길로 나를 걷어차곤 했”(`인포리`)던 세상이지만 상처와 아픔마저도 축복으로 받아들이며 고통 속에서도 새살이 돋는 희망의 안쪽을 바라본다.

“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와 있다 내 생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는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아직도 내게는 몇시간이 남아 있다/지금은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부분)

도종환 시인은 빼어난 서정시인이면서 교육운동가이자 문화운동가로서 청춘의 빛나던 시절을 아낌없이 바쳐왔다.

“모든 몸이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는 꿈”(`몸에 대한 블라지미르 쏘로킨의 발제`)을 잃지 않는 시인은 “어떤 모형을 사회에 강제로 도입하기 위해 인간적 가치들을 버려야 한다면 그것 또한 폭력”(`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신`)이라는 결론에 도달해 다시금 시퍼런 정신을 벼리며 사회의식으로 지평을 넓힌다.

시련을 영혼의 담금질이라고 생각하는 시인은 더불어 살아가는 청안한 삶을 꿈꾼다.

시인은 8년 전인 2003년 3월 심신 허약으로 쉽게 피로가 찾아오는 `자율신경 실조증`이란 병을 얻어 교사직을 그만두고 충북 보은군 내북면 법주리 산방(山房)으로 들어갔다.

오랜 시간 산속에서 생활한 시인은 풀잎에 맺힌 이슬 한 방울에도 의미를 두고 흔들리며 피는 꽃 한송이에도 애정을 담는다. 더욱이 “주목받지 못하는 곳에서/혼자씩 젖”(`나무들`)으며 “머물 곳을 찾지 못하는 영혼들”(`맨발`)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길은 애틋하기 그지없다.

굽이 많은 생을 지나온 시인은 어느덧 인생의 오후에 접어들었다. “허전해지는 삶의 한 모서리 사리물고”(`발치(拔齒)`) 평온한 속도로 “바람 속에서 갈기털을 휘날리며 산을 넘는”(`악령`) 시인의 어깨 위로 “반쪽 달빛”(`하현`)이 환하게 내려앉는다. 시의 산길을 밝히는 희망의 빛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창비 펴냄, 도종환 지음, 132쪽, 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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