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동아시아 대승불교 초석 놓은 고구려 출신 `승랑` 사상 조명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1-07-22 21:18 게재일 2011-07-22 20면
스크랩버튼

경주동국대 김성철 교수 `승랑-그 생애와…` 펴내

김성철 교수
고구려 출신으로 동아시아 대승불교의 초석을 놓은 승려 승랑(僧郞·5세기 후반~6세기 초반).

흔히 한국의 고대 사상가 가운데 동아시아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로 신라의 원효(617~686)를 들지만 승랑은 원효보다 170여 년 전에 태어나 동아시아 불교 전체를 대승(大乘)으로 선회시킨 주인공이지만 정작 우리들에겐 낯선 이름이다.

승랑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길이 남을 대 사상가였다.

그가 초석을 놓은 삼론학은 중국 남조 양나라 무제때 불법을 크게 폈고 그 근원은 인도의 나가르주나와 아리아데바가 쓰고 구차라는 작은 서역(오늘날 중국 신강 지역) 나라 출신으로 생의 대부분을 중국에서 보낸 구마라즙이 한문으로 번역한 3개의 논서인데 그 중심 이념은 공(空)과 연기(緣起)다. 범부들이 세계의 각종 현상들이 실재하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실제로 이는 인연에 따라 떴다 없어졌다 하는 일종의 가상(假像)일 뿐이라는 것이다.

김성철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교수가 최근 펴낸 `승랑-그 생애와 사상의 분석적 연구`에 따르면 승랑은 지금부터 1천500여 년 전 고구려 요동지역에서 태어나, 중국 남조(南朝)의 수도인 건강(健康), 지금의 난징 부근에서 교화활동을 했다. 그의 가르침은 제자 승전에게 전수됐고, 손제자인 법랑대에 이르러 하나의 학파로 이룩된 뒤 증손제자인 길장과 혜균의 저술을 통해서 삼론학(三論學)으로 집대성됐다. 이 삼론학의 사상적 토대 위에서 천태(天台)의 교학과 남종선의 수행론이 창출됐으며, 남조의 화엄학 역시 그 연원이 승랑에게 있다. 또한 `보살황제`인 양무제가 소승불교에서 대승불교로 전향하게 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 것도 승랑이었다.

저처럼 한국 출신의 고대 불교사상가 가운데 승랑이 동아시아 불교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다른 누구보다 높지만, 원효나 원측 등과 달리 아직까지 독립된 전기도 없고, 저술도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

김성철 교수는 “근대 불교학 탄생 이후 국내외의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승랑에 대한 연구가 이어졌지만 승랑과 관련한 주장은 이견이 끊이지 않았다. 승랑의 본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승랑에게 삼론을 가르친 스승이 누구였는지, 승랑이 요동을 떠나서 중국의 장강 이남으로 내려온 시기가 언제였는지, 승랑이 남조 불교계에 전했거나 창안했던 신삼론 사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히 결론내려진 바가 없었다”면서 “책`승랑`은 치밀한 자료 분석과 과거 연구 성과들의 비판적 탐구를 통해 승랑의 생애와 사상을 조명하고 있다. 동아시아 불교사를 명쾌하게 규명하고 그 사상적 체계까지 파악할 수 있게 불교학계의 획기적인 저서로 평가받고 있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 책 `승랑`출간으로 승랑에 대한 합리적·객관적 연구가 이뤄진 셈이다. 얼마전 BBS 불교방송이 원효를 소재로 불교계 최초의 대형 창작 뮤지컬을 제작해 전통문화 알리기에 성공했던 것처럼 승랑을 세계로 알려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뮤지컬이 됐건 혹은 오페라가 됐건 우리 고대 사상을 한국전통문화 세계화의 기수로 삼을 기회가 온 것 같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승랑의 생애

450년경 - 고구려 요동 지역에서 탄생

470년경 - 고구려 요동에서 출가. 이후 여러 불전을 학습함.

476년 이후 - 요동을 떠나 중국의 화북지역으로 들어감. 이후 돈황과 장안 그리고 북위의 수도인 평성 등을 방문하면서 불전을 학습함.

479년 - ①법도와 함께 강남의 건강 지역으로 내려감. ②건강 북동쪽의 종산 초당사에 머물면서 제(齊)나라의 관리 주옹에게 가르침을 주어 `삼종론(三宗論)`을 짓게 함.

479~482년 - 제(齊)나라를 건국한 고제(高帝: 479~482년 재위) 소도성(蕭道成: 427~ 482)을 만나서 8회에 걸쳐 `화엄경`을 강의하고 `화엄의소를 저술함.

482년 직후 - 섭산 서하사의 전신인 오(등)산사에서 경릉왕(竟陵王: 460~494)이 개최한 법회에서 강의.

482년 이후 - 회계(會稽) 산음현(山陰縣)의 영(令)이 된 주옹과 함께 산음현으로 이동하여 은둔(嘉祥寺에 머묾?).

494~498년 - 주옹이 사망한 뒤 법사들의 초청으로 섭산(攝山)의 지관사(止觀寺)로 귀환하여 가르침.

512년 - ①승랑의 명성을 들은 양무제가 황실로 초청하나 응하지 않음. 양무제가 보낸 10인의 학승들에게 가르침을 주었고 이들 가운데 승전이 제자가 됨. 지관사에서 서하사로 거처를 옮김. ②소명태자에게 이제에 대한 가르침을 베풂.

530년경 - 서하사에서 입적하여 섭산에 묻힘.

문화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