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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 세상 한 생각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7-28 23:22 게재일 2011-07-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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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일요일에 무슨 일이 있어 e-메일을 열어 보는데 부고가 한 장 와 있다. 이름을 보니

이미 병이 위중한 것으로 알려져 있던 분이다. 지난 2월 말인가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더니 위암 말기라는 무서운 판정을 받았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보다 나이가 세 살이나 네 살밖에 많지 않은데 벌써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같은 곳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서로 너무 분주해서 캠퍼스 식당 같은 곳에서나 몇 번 마주쳤을 뿐인 분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본다. 약력이 나오는데 젊은 시절을 열심히 산 티가 역력하다.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에 가서 영문학을 석사, 박사를 했다. 어디 빈 시간 없이 꽉꽉 눌러 공부하고 국내로 돌아오자마자 모교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 나서 17,8년 동안 재직을 하며 학생들을, 다른 사람들이 질투를 느낄 만큼 열심히 가르쳤다. 그런데 그만 불운을 만난 것이다.

이 분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 드려야겠다고, 대학병원 장례식장을 밤에 찾아갔다. 일요일 밤인데 비가 몹시 내렸다. 누구 연락할 사람도 없이, 그러나 가보면 내 또래 몇 년 선후배 분들이 많이 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생각이 맞았다. 서로 남의 일 같지 않았던 것이다.

그곳에 다른 손님들 다 빠질 때까지 열두 시 너머까지 앉아 있었건만. 그래도 쓸쓸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집에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포장마차에라도 들렀다 가야 할 것 같다. 이렇게 혼자 포장마차를 찾아 본 게 지난 십 년 동안 한 번도 없었던 일이라는 생각이 난다. 나라는 사람도 참 한심하다. 무슨 바쁜 일 있다고 이렇게 호젓함 한 번 느껴볼 여유조차 없었더란 말이냐.

작년부터 사람들과 함께 자주 찾아가던 집 동네 포장마차를 혼자 불쑥 머리를 들이미니, 한창 손길 바쁜 주인 `여자`가 반색을 해 준다. 사실 이 분도 나랑 나이가 비슷하다. 예전에 무슨무슨 얘기 끝에 알게 된 사실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고등학교 겨우 마치고 공장이다, 어디다 해서 고생고생하다 뒤늦게 신랑을 만났더란다. 그런데 이 남편 분이 그만 병이 생겨서 세브란스 병원을 십 년 출입을 했더란다. 그러다 어떻게 어렵게, 구청에서 허가를 내주는 포장마차를 하게 되어 새로 살아보려고 저녁부터 새벽까지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여사장님`이다.

어째 한쪽 다리가 불편해 보인다. 이 분이 내 표정을 보고 다리를 쑥 내민다. 보니까 두꺼운 다리가 허벅지 위에서 종아리 아래까지 붕대를 친친 감아 맸다. 지지난 주쯤에 아침이 다 될 때까지 일하다가 그만 뜨거운 물이 든 들통을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뜨거운 물이 다리를 타고 흘러 내려 그만 크게 데고 말았더란다. 정신 없는 중에도 남편 병원 수발 때 보고 들은 게 있어 흐르는 수돗물에 일단 삼십 분 정도 담가서 열을 뺐다고 한다. 그리고 나선 길 건너편 작은 종합병원으로 달려갔는데, 병원 사람들은 그렇게 다리를 크게 덴 사람을 수수방관할 따름이었단다. 응급실에 마땅한 전문의가 없으니 다른 데나 가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어찌어찌해서 응급 처지를 하고, 그 다음엔 병원에서는 보험 때문에 하루에 한 번밖에 소독을 해주지 않는 것을, 자기가 손수 약국에 가서 소독용 거즈를 사서 바꿔 붙이기를 하루에 오만원어치씩이나 하고 있단다.

이 포장마차에서 참 맛있는 안주인 꼼장어는 한 접시가 만원이다. 나는 한 접시는 내가 먹고 한 접시는 싸달라고 하면서 주머니를 뒤져 보는데, 동전까지 탈탈 터니 겨우 소주 한 병까지 셈할 수 있는 돈이 된다. 소주 한 잔 하고 포장마차를 나오는데 아직도 비가 주룩주룩이다.

우리네 사는 인생, 참 사람마다 사는 모양들 다르지만 서로 연민으로 품어 주어도 될 것 같다. 그만큼 아프고 시린 사연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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