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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교육은 진로교육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7-29 21:17 게재일 2011-07-29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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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명시인
최근 미국 뉴욕타임스에 `한국은 국가적으로 신경쇠약에 걸리기 직전인 듯하다`라는 기사가 나왔다. 이런 내용을 다룬 신문기사를 읽다가 옆 사람에게 전하니 “이미 신경쇠약에 걸렸다”고 단정해서 같이 씁쓸한 웃음을 나눈 적이 있다. 진단내용은 `과도한 노동과 스트레스, 상시적인 걱정 이런 것 때문이다` 라고 했다. 그 증거로 치솟는 이혼율, 학업에 짓눌린 학생들, 세계 최고의 자살률, 근무시간 뒤에도 폭음을 권유하는 남성위주의 기업문화를 들었다. 이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자살률, 특히 10대의 자살률의 증가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한국에 대해 말한 것이 생각난다. “한국학생들은 하루에 10시간 이상 열심히 공부를 하는데 쓸데없는 공부를 한다. 왜냐하면 장차 필요치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에 대한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교육에 대해 “너무한다. 좀 바꿔야 한다”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녀에게는 “공부 열심히 해라”고 말한다. 왜 그럴까?

어느 블로그에 이런 글이 씌어져 있다.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는 대한민국이 더 넓은 바다로, 세계로 뻗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엔 그것도 어느 정도 맞는 것처럼도 보였다. 확실히, 대한민국은 전보다 커지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속의 우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는 것이었다` 세계화 혹은 자유시장경제, 신자유주의, 국가경쟁력, 무한경쟁과 같은 이런 용어들은 다 들어보았을 것이다. 거시적인 세계의 흐름이 결국 개인의 삶을 초토화시키는 현장을 우리는 매일 목격하고 있다. 앞서 말한 우리나라가 걸린 신경쇠약은 알고 보면 바로 이 무한경쟁의 결과다. 누구나 이런 것 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왜 그럴까?”란 반문하지 않는 것은 그런 큰 이야기는 골치 아플 뿐만 아니라 너무나 자신과는 무관한 먼 나라 이야기만 같기 때문이다. 이 너무나 먼 나라에서 무한경쟁으로 자살하는 사람은 하루에 33명쯤 된다고 한다. 이 `무한경쟁`이란 말 참 가슴 아프다. 생각해보면 자녀에게 공부 열심히 해라 몰아 부칠 때는 다 이유가 있었다. `내 자식인 너만은 그래도 좋은 직장을 얻어서 남이 부러워하는 삶! 을 살아야지`하는 속내가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다. 이것은 본능이니 뭐니 말할 수도 없는 것, 그래서 낮은 성적을 참지 못하고 야단을 칠 수밖에 없고 돈을 들여서라도 성적 올리기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사교육 증가로 이어지고 과도한 사교육비 때문에 출산율 저하, 조기유학 붐까지 온갖 사회문제를 낳고 있다.

지엽적인 이야기이지만 학생들이 가장 열망하는 것은 `자율학습`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건 자율학습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살펴보면 조금은 의문이 사라질지 모르겠다. 자율학습이 전라도와 광주지역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설이다. 지역주의가 한창 판칠 때 대구 경북 교육계에서 위기감과 반성이 일어났다. 위기감이란 `왜 전라도에서만 사시합격생이 많이 나오느냐? 이러다가 판검사는 죄다 전라도사람으로 채워지겠다`는 것이었고, 반성이란 `찾아가서 살펴보고 원인분석을 하자`는 것이었다. 결론이 바로 `교육경쟁력` 이었고 바로 실천사항 중 가장 앞서는 것이 `자율학습`이었던 것이다.

과다한 경쟁은 결국 공멸하게 만든다. 이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과다한 경쟁이다. 광활한 들판에 풀을 찾아 이동하던 양떼가 멈출 때 충분한 초지가 있으면 문제없지만 초지가 적으면 뒤따라오던 양들이 앞에 멈춘 양들을 떠미는 바람에 선두는 계속 뛰게 되고 후미가 풀에 도착했더라도 선두가 계속 뛰니 집단에서 떨어져서는 곤란한 후미의 양들이 계속 뛰게 된다고 한다. 이때 만약 절벽이라도 만나게 되면 양떼는 몽땅 추락사한다. 현재 교육현실이 이와 같아서 옳은 것, 진실한 것, 교육적인 것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데도 포기하고 다른 학교를 따라 가야하는 추락사위기의 양떼를 닮았다. 우리는 왜 스스로 경쟁을 줄이지 못하는 걸까? 왜 그럴까? 계속 의문이 남지만 누군가 이 무한경쟁을 멈추게 해야 한다.

나는 교과부가 새로 도입한 진로교육에 희망을 건다. 앞의 이야기가 모두 진로교육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교과부도 여기에 큰 희망을 걸고 있는듯하다. 이런 말도 나오고 있다. “모든 교육은 진로교육이고 진로교육에 귀결된다” 그러나 이 말은 `진로교육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다` 라고 잘못 읽히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잡으면 `진로교육은 저 무한경쟁에 빠져 공멸할 위기의 우리에게 강력한 신호가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라고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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