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는 베트남전쟁에 나갈 청룡부대 용사들(해병들)의 낙하산 훈련. 송정동 허공에서 작은 정찰기와 큰 수송기가 빙글빙글 돌고 있으면 동네 아이들은 만사를 제쳐두고 형산강 둑으로 달려갔다. 강물에 떨어지는 낙하산을 직접 지켜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고아원의 눈먼 아이. 언제였던가. 그로부터 십여 년이 더 지난 대학생 시절에, 날마다 시(詩)를 써대는 젊은 시인이었던 어느 가을날에, 나는 비로소 그 장님 아이에게 `홍이`라는 이름을 지어 바쳤다. 그리고 얼굴조차 모르는 아이를 아무도 몰래 혼자서 `눈먼 홍이`라 불렀다.
포항제철 제1제강공장이 들어선 자리에는 수녀원이 있었다. 프랑스에서 귀화한 벽안(碧眼)의 신부와 160여명의 수녀들이 500명 넘는 고아들과 무의탁 노인들을 보살피는 예수성심시녀회. 동네 아이들은 그저 간단히 `수녀원`이나 `고아원`이라 불렀지만, 솔숲에 둘러싸인 그 성스러운 시설은 부지 18만평에 건평 4천평으로 현대식 대규모 학교와 같은 위풍을 갖추고 있었다. 어쩌면 그 고아원은 세계 최대 규모였다. 바로 그 자리에 세계 최고 제철소가 들어섰다.
송정분교 4학년 우리반에는 고아들이 절반이었다. 어찌 고아가 그토록 많았을까? 전쟁과 전후의 절대빈곤이 거리로 몰아낸 아이들이었다. 1968년 봄날의 꼭두새벽에도 강보에 싼 아기를 송정동 초입의 주막집 앞에 버려두고 총총히 자갈도로를 밟아서 형산강 다리 쪽으로 사라져가는 여인들이 있었다. 물론 그 아기들은 처음 발견한 동네 사람의 품을 거쳐서 고아원에 맡겨졌다.
어린 시절의 그런 기억들이 이십대의 어느 가을날에 `눈먼 홍이`라는 시(詩)로 태어났다. 내 시적 상상력은 세상의 빛을 한 번도 보지 못했을 `어린 장님`의 순진무구의 웃음을 단단히 포착했다. 그래서 `눈먼 홍이의 웃음`부터 호명할 수밖에 없었다.
`오래 잊었다가도 한번 부르기만 하면/괜스레 목 잠기는/이름 하나는//이제는 내 좁은 가슴에 못 박혀/사랑도 노래도 정녕 뽑을 수 없는/그 이름 하나는//내 어릴 적 분교 갯마을/눈먼 홍이의 앞니 빠진 웃음`
눈먼 홍이의 어머니는 무슨 사연으로 앞도 못 보는 어린 아들을 송정동 초입의 주막집 앞에 버렸어야 했을까? 눈먼 홍이의 아버지는 해병대 직업군인이었고 얼룩무늬 번쩍이며 베트남에 파병되었다가 폭우 쏟아지는 밀림 속에서 전사한 것은 아니었을까? 조국에는 뜨거운 청춘의 아내와 눈먼 아기를 남겨둔 채로… 그래서 이렇게 노래할 수밖에 없었다.
`베트남 땅 퀴논의 폭우 속/마지막 네 이름을 외쳐 부른 아버지의 절규가/부산항 떠나던 날 뱃고동 소리처럼/남녘 바람결에 아스라이 묻어올 적마다//송정동 고아원 철문 밑에 너를 버려두고/앙, 앙, 앙, 목 끊일 듯 울어대는 너를 홀로 버려두고/새벽이 오는 신작로 따라 자박자박 멀어져간/어머니의 발자국 소리가 고요한 물살처럼 밀려올 적마다//피멍울음 삭여 삭여/봉숭아꽃 제 봉우릴 펼치듯/하얗게 피어나던 눈먼 홍이의 앞니 빠진 웃음`
눈먼 홍이의 앞니 빠진 웃음을 시의 세계로 불러들인 그해 가을 어느 저물 무렵, 나는 형산강 둑에 앉아 떨리는 영혼으로 그의 이름을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은 아버지의 눈빛은/강 건너 공장의 한 톨 불빛으로 살아왔건만/어딜 갔나, 외톨박이/눈이 먼 나의 홍아!`
베트남전쟁은 한국 산업화의 밑천과 분리할 수 없다. 경부고속도로는 그 상징이다. 그해 가을에 `젊은 시인`으로서 나는 강 건너 공장의 숱한 불빛들 가운데 베트남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한 `눈먼 홍이의 아버지의 눈빛`과 마주쳤을 것이다. 그의 죽음이 한국 산업화의 현장으로 부활해온 순간이었을 것이다.
지난주 포항에는 제8회 포항국제불빛축제가 성대히 열렸다. 수만 개의 불빛이 수만 사람들의 환호성을 받으며 영일만 어둔 허공을 찬란히 수놓았다.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황홀한 찰나의 예술이었으며, 수만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즐기고 한꺼번에 환호성을 지르고 한꺼번에 스트레스를 푸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축제였다. 다만 나는 그들이 어떤 의미 하나쯤을 불씨 한 톨처럼 가슴에 보듬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포스코가 밤하늘에 펼친 불꽃의 향연은 `눈먼 홍이의 아버지와 같은 죽음`을 동시대 사람들이 결코 헛되이 하지 않았다는 `또 하나의 찬란한 증거`였다고, 혼자서 생각해본 것이었다.
지금, 눈먼 홍이는 어디에 있을까? 불꽃의 향연에서 오래 전에 사별한 아버지의 눈빛을 느끼며 봉숭아꽃이 제 봉오리를 펼치듯이 그렇게 웃는 그의 모습과 정녕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