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주, 그리고 그 하늘을 찌를 듯한 엘리트의식. 일선 기자로 법조 담당 때의 기억이다. 당시 기자 눈에 검사들은 `대한민국에서 우리보다 더 똑똑하고 잘 난 집단은 없다`는 오만함으로 무장해 있었다. `청산도 잡아넣으면 죄가 있다`며 무소불위 권력을 은근히 과시하기도 했다. 무슨 일에서나 앞자리는 늘 그들 차지였고 심지어 술자리에서 폭탄주를 마실 때도 결투하듯 누구에게도 결코 지지 않으려 했다.
그 잘난 검사의 기억이 권재진 법무부장관 후보자와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의 임명과 겹쳐졌다. 수천억원대의 탈세 혐의로 지금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선박왕의 변호인 중에 전직 검찰 최고위직 출신이 3명이나 포함돼 있다고 한다. 웃기는 것은 이들에게 수억원씩의 수임료를 줬다는 서류를 발견했지만 정작 이들은 아무도 선임계를 낸 변호인 10여명에 포함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소위 잘 나가는 변호사는 `전화 한 통`의 대가로 수억원을 받는 것이 관행이라는 현실을 증명한 셈이다.
말썽많은 전관예우 중 한 예에 불과하다. 많은 고위직 후보자들이 청문회 문턱에서 주저앉는 그 전관예우 말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 갈등과 관련, 임기를 고작 한 달 여 남겨두고 퇴임한 김준규 전 검찰총장 자신도 임명될 때는 전관예우의 덕을 톡톡히 봤다. 지난번에는 전직 검찰 간부가 퇴직 후 로펌에서 7개월동안 일하면서 7억원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에도 세상 사람들의 놀라움과는 달리 법조계에서는 `흔한 일`로 치부해 한 번 더 보통 사람들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이명박 대통령이 권 전 민정수석을 법무장관 후보로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청문회를 통과할 자신이 없어서”라는 대목이 납득이 간다.
대한민국 검사들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칼을 갖고 있다. 그들이 엘리트 의식을 갖게 된 데는 그만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스폰서 검사니 그랜저 검사니 하는 말들이 만들어진 것도 그 힘을 배경으로 해서 현실을 반영한 말이다. 이득이 없는데 그들에게 스폰서가 돼 주고 전화 한 통에 억대를 건네주는 바보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는 칼을 갖고 있는데다 이 칼을 편리한 데로 쓸 수 있도록 법이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7조원대의 금융 비리로 대검중수부가 수사중인 부산저축은행 사건만 하더라도 그런 의심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VIP 고객이나 임직원 등 영업정지전 예금 부당 인출한 사람이 총 4만5947명이고 인출액은 1조1410억 원에 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검찰은 특혜 인출된 돈이 85억 원밖에 되지 않는다고 발표했으니 검찰 수사를 믿는 국민이 얼마나 있겠는가. 대통령까지도 믿지 못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부산저축은행 사건이 국정조사까지 이어진 것은 검찰이 국민의 불신을 받고 있다는 증거 중 하나이다.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는 과거를 들춰내기보다 그들이 얼마나 능력을 발휘할지에 초점이 맞춰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후보자들의 자질이나 능력 뿐 아니라 도덕성에서도 떳떳한 고위직 후보자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힘을 못가진, 약한 사람들을 위해 쓰는, 세상의 변한 모습을 보고 싶다. 권력을 가진 검찰 출신이 재력까지 갖고 청문회에서 `자리`를 구걸하는 모습은 `팔아서 조질 수밖에 없는` 백성들에게는 `실망`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