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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타조`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1-08-04 20:45 게재일 2011-08-0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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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비극 그린 슬픈 자화상

안광(54) 작가가 15년 간의 긴 침묵을 깨고 두 번째 소설집을 출간했다.

정처 없는 존재들의 애옥살이를 좇던 첫 소설집 `쥐와 그의 부하들`에서 작가가 보여주었던 핍진한 관찰력은 한층 성숙해졌고, 장편 `유령사냥꾼`에서 묻어나던 우화성 짙은 스토리라인과 환상적 리얼리즘은 독특한 구도로 새로 짜여졌다.

`성난타조`(실천문학사 펴냄)에서 안광 작가는 일상에서 파생되는 현대인들의 전형적 고통과 애환을 특유의 상상력과 탄탄한 알레고리 구조를 통해 재현해낸다. 타의에 의해 욕망이 획일화되고 재편성되는 현대사회구조 속 존재의 군상들이 이 소설 속에는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소설가 김원일은 안광의 소설을 두고 “넉넉한 정서로 소재를 수용하면서도 긴 여운을 이끌어내어, 애잔하면서도 아름답다”고 평하며 현대인이 당면한 비극적 상황을 준엄하게 환기시킨다.

표제작인`성난 타조`는 남성 판타지의 한 양상을 보여준다. 화자인 `나`는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되고 퇴직금으로 `타조 농장`을 시작한다. 세상 물정 모르는 주인공은 `21세기 미래 축산 타조 벤처사업`에 대한 심포지엄에 홀려 아내와 함께 “호주의 대농장주처럼 풀장 있는 대저택에서 수십 명의 인부와 하인들을 거느리고 성주처럼” 사는 전원생활을 꿈꾸었으나 주문이 쇄도할 거라고 믿었던 타조알과 타조고기는 외면당하고 3년 만에 망하고 만다. 여기에서 주인공의 `농장`은 `전원과 자연`에 대한 꿈이 아니라 총화되고 집적된 `자본`을 향한 판타지이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인간의 꿈과 이상조차 가판대에 진열되어가는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을 그려낸다ㅏ. 저마다의 `개별`의 만개를 꿈꾸는 것이 불가능한 이 시대에 우리는 쇼윈도에 진열된 `기성품`으로서의 `판타지`를 산다. 온갖 크레딧 카드와 최신 브랜드의 기호품과 첨단 기기들을 존재 증명이라고 믿으며 우리는 매끈한 기계와 아스팔트 위에 구축된 `인공의 판타지`를 꿈이라 믿고 달려 나간다. 그리고 그 끝에서 욕망의 바닥과 환멸, 죽음의 얼굴을 본다. 안광의 소설은 우리 시대 기관차처럼 폭주하는 욕망이 죽음과 함께 펼치는, 어지러운 무도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이를 풍자하고 또 애도하고 있다. 이 황폐한 삶이 누구의 삶도 아닌, 바로 우리의 삶이라는 사실, 안광의 소설이 신랄하면서도 슬픈 것은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실천문학사 펴냄, 안광 지음, 240쪽, 1만1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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