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큰 비에 그 정도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무심코 넘겼다. 그런데 정작 큰 수해가 난 곳은 필자의 연구실이 있는 1동 부근에서 좀 더 올라간 곳의 6동과 7동, 다른 학과의 사무실, 강의실, 연구실이 있는 곳이었다.
요즘 방학을 맞아 6동, 7동이 리모델링 공사를 하느라고 3,4층 선생님들 연구실에 있는 책들을 1층에 옮겨다 쌓아놓았었는데, 그만 이 책들이 빗물을 만난 것이었다.
원래 필자가 있는 학교는 산비탈에 지은 학교라서 경사면을 따라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런데 이번 큰비를 이 경사면 배수구들이 다 감당하지 못한 것이었다. 위쪽에서부터 쏟아져 흘러내리는 빗물을 배수구가 다 감당하지 못하자, 이게 모두 캠퍼스 건물 쪽으로 넘쳐버린 것. 위쪽부터 차례로 7동과 6동의 1층 강의실이 물에 발목까지 잠겨 버렸고, 이 서슬에 잔뜩 쌓아놓은 선생님들 책 박스가 수해를 만난 것이었다. 다 알다시피, 책은 젖으면 구할 방도가 없다.
학장님, 부학장님은 출근하시자마자 물을 퍼내느라 팔다리를 다 걷어부치셨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경황 없는 중에도 어느 분의 책이 젖었는지, 혹시 귀한 책을 많이 갖고 계신 분의 박스가 아래쪽에 쌓여 있었던 것은 아닌지 걱정들을 하셨다.
물의 힘은 무섭다. 최근에 학교에서는 건물들마다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놓기도 했는데, 이 엘리베이터로 스며든 빗물들이 엘리베이터 유리벽을 터뜨리다시피 밀어내면서 아래로, 아래로 쏟아져 내리기도 했다. 또 이런 식으로 쏟아져 내려간 물이 몇 년 전에 새로 지은 건물의 지하에 있는 선생님들 체력 단련실로 흘러 들어가기도 했다. 값비싼 전자 헬스 기구들이 망가져 못 쓰게 된 것은 물론이다.
듣자하니, 6,7동보다 더 높은 건물 쪽에서는 옥외 주차장에 세워둔 자동차가 위에서 굴러 떨어진 바윗돌에 맞아 찌그러졌다고도 했다. 또한 학교 내 농협 건물도 무슨 사고가 났는지 필자가 무슨 일로 은행을 찾았을 때 휴무 상태였다.
비가 워낙 컸기 때문에 이만한 사고만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하지만 백 년만의 비라고는 해도, 여기저기 훼손되어버린 캠퍼스를 바라보는 필자의 마음은 편치만은 않다.
몇 년 전에 캠퍼스를 대대적으로 개보수할 때 필자가 목격한 광경 하나. 그것은 원래 있던 콘크리트 바닥을 완전히 다 제거하지 않고 그 위에 흙을 깔고 보도블럭을 입히는 장면이었다. 그때 필자는 이렇게 하면 땅이 다 죽어버리지 않나, 하고 걱정했었다. 그런데 정작 큰 문제는 이렇게 되면 기초가 부실해져서 큰비에 사고가 나기 쉽다는 것이었다.
그날, 학교의 수해 상황을 접하던 날, 이 캠퍼스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남부순환도로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상했다. 우면산에서 쏟아져 내린 산사태 흙더미에 깔려버린 것이다. 듣자하니, 우면산은 대표적인 난개발 구역이라고 한다. 위험이 뻔한 데도 집값 내려갈까 무서워 쉬쉬하기도 했다고 한다.
가끔, 그러나 절실하게 생각되는 것이 하나 있다. 한국은 일본보다 천연적으로 재해로부터 안전한 나라인데, 왜 이렇게 사고가 많고 사람들이 희생이 많은 것일까. 대구지하철 참사 같은 소식을 들으면, 그 희생자가 나 자신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섬뜩해진다. 제발 인명을 중히 여기는 사회적 체질을 기를 수는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