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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르의 고향서 쓴 1초 1초의 의미와 성찰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1-08-18 21:36 게재일 2011-08-1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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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1초들` 문학동네 펴냄, 곽재구 지음, 352쪽, 1만3천8백원

시인 곽재구
`사평역에서` `포구기행` 등으로 가슴 뭉클한 감동과 따뜻하고 위로를 줬던 곽재구(57) 시인이 산문집 `우리가 사랑한 1초들`(문학동네 펴냄)을 펴냈다.

이번 산문집 `우리가 사랑한 1초들`은 시인이 인도 시성(詩聖) 타고르의 고향 산티니케탄에서 540일을 사는 동안, 우리 생의 수많은 1초들, 찰나의 시간들의 가치와 의미를 성찰한 영혼의 기록이다. 이 책에는 가난하고 힘들고 어렵지만 언제나 지상이 천국이고 삶이 축복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2009년 7월, 시인 곽재구는 순천대 문예창작과에서의 시 강의를 잠시 멈추고 타고르의 고향인 산티니케탄으로 떠난다. 그리고 2010년 12월28일까지 540일 동안, 그는 산티니케탄에 체류하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여행을 한다. 2000년대 최고 베스트셀러 중 하나였던 `포구기행`이후 시인은 여러 작가들이 참여하는 앤솔로지에 한 편씩 글을 발표하기도 하고, 동화를 쓰거나 신문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하는`우리가 사랑한 1초들`은 어느 지면에도 발표한 적이 없는 `전작`이며, 책의 출간에 대한 의식도 없이 `필연적으로 쓰여진` 글들을 묶은 것이다. 이 산문집의 배경은 비슈와바라티 대학교가 자리한 한적인 시골 마을인 산티니케탄이지만, 그것은 여느 여행기나 인도에 관한 잠언집들과는 출발점부터 차이가 있다. 시인에게 그것은 “오래 묵힌 마음의 여행”이었다.

시인이 인도의 유명한 성지도 장엄한 풍광이 사람을 압도하는 여행지도 아닌 산티니케탄으로 떠난 것은 바로 40년 동안 꿈꿔왔던 `만남`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평화의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산티니케탄은 타고르가 작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전까지는 평범한 농촌 마을이었다.

△1장- 우리가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 사람이 하나의 별이라면

시인이 묘사하는 산티니케탄은 우리나라의 1960년대 농촌과 비슷한 풍경이다. 초가집들, 뙤약볕 아래 논에서 일하는 농부들, 우물 긷는 아낙네, 흙먼지 이는 시골길 위로 자전거 타고 가는 아가씨, 소와 개와 염소들, 맨발로 뛰어다니는 아이들, 저녁마다 전깃불이 나가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반짝이는 반딧불들…. 신을 섬기며 농사짓고 아이를 기르고 정을 나누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산티 사람들은 욕심도 경쟁도 고통도 절망도 알지 못한다. 시인은 이들을 `별`이라 일컫는다. 1부에서는 그 별과 같은 사람들과 얽힌 `인연`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2장-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릭샤 스탠드| 행복을 찾는 가장 빠른 길

산티니케탄에 체류하는 동안 시인의 일상을 늘 함께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릭샤`라 불리는 자전거 택시를 모는 `릭샤왈라`들이다. 길가의 꽃과 나무 등 모든 생명에게 `발로 아첸`(안녕) 인사를 건네고 시인에게 산티의 수많은 꽃이름들을 벵골어로 가르쳐준 인력거꾼 수보르는 그에게 `꽃 선생님`이자 시인보다 더 시인의 영혼을 가진 아름다운 영혼이었다.

△3장-마시 이야기| 일상 속 소중한 1초들

마시는 `가정부`를 뜻하는 벵골어다. 산티에서의 일상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마시 이야기`에는 마시에 대한 여러 풍경들이 세세하게 묘사돼 있다. `만만한 주인`과 `만만치 않은 마시들`의 줄다리기는 때론 우스꽝스럽고 때론 가슴 졸이게 하고 때론 안타깝거나 화가 나기도 하지만 결국은 감동적인 소통에 이른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것에는 행복과 기쁨은 물론이고 갈등과 반목을 극복해나가는 과정 또한 포함된다는 평범한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글편들이다.

△4장- 가난한 신과 행복한 사진 찍기| 지상이 극락인 시간이 여기에

벵골어를 공부해 타고르의 시들을 한국어로 옮기는 것이 시인이 1년 6개월 산티니케탄 체류의 중심 과제였지만, 산티 사람들과 지내다 보니 작가로서 그곳의 사정을 기록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이 장에서는 이 정주의 기간 동안 터득하게 된 삶의 지혜들에 관한 글이 주를 이룬다.

시인은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산티의 노천카페 거리인 `라딴빨리`에 나간다. 반얀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그늘 아래 앉아 짜이를 마시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그가 이 나무 아래 앉아 있는 데는 까닭이 있다. 맞은편에 `달빛의 냄새`가 난다는 `조전건다` 나무가 서 있기 때문이다. 어린 소녀에게 종이배를 산 날 말을 걸어온 암리타라는 아가씨가 알려준 꽃나무였다. 그는 1년 동안 조전건다 나무를 지켜보며 꽃이 피기를 기다리고, 2010년 5월, 마침내 찬란한 빛의 축제와도 같은 광경을 목도한다. (`조전건다 꽃이 필 때` 1, 2)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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